많은 사람이 어두움 가운데서 무디어진 삶의 바늘이 가리키는 대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허둥대는 삶을 살다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빛의 부재를 감지하지 못한 채 흑암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느때 간혹 섬광처럼 번뜩이며, 신의 손길로 빚어진 섭리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은 마음을 잠깐 깨울 때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다시 똑같은 잠 속에 빠지고, 세월은 뿌연 먼지 낀 창문처럼 혼탁한 세상의 잔영을 남겨 놓은 채 빨리 지나쳐 가 버립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깨어난다는 것은 매우 신비하고 축복스러운 경험입니다. 기나긴 어둠의 동굴을 지나 갑자기 나타나는 눈부신 빛을 만나듯이, 깊은 잠을 자다 문득 환한 새벽을 맞아 그 아름다운 빛 속에서 눈을 뜨듯이, 그리고 그때에야 귓가를 울리는 새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듯,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영적으로 깨어나 빛 속에서 나를 보게 되는, 알게 되는 경험은 새롭고도 신비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결코 다시 어두움 속에서 잠들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눈이 먼 물고기 미국 테네시 주에는 “로스트 씨(Lost sea)”라는 유명한 관광 명소가 있습니다. 로스트 씨는 미국 최대의 지하 호수인데, 300피트 정도 지하로 내려가야 볼 수 있습니다. 좁은 동굴의 입구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깊은 굴 안에 숨겨져 있는 큰 호수가 나타납니다. 깊은 땅속 지하에 어떻게 그렇게 큰 호수가 있는지 신기해하며 사람들은 그 이름을 “잃어버린 바다(lost sea)”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신기한 것은 그 호수 속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은 모두 눈이 멀었다는 것입니다. 빛이 전혀 없는 캄캄한 지하 동굴의 호수에서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 물고기들의 눈은 점점 퇴화되어 눈이 멀게 된 것이지요.
로스트 씨의 눈이 먼 물고기들처럼, 영적인 눈이 점점 퇴화되어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4~5).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사람들을 깨우십니다. 그러나 눈이 먼 사람들은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눈을 감아 그 빛을 거부합니다. 마치 빛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날 자신의 모습이 견디기 어려운 듯 빛을 피하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을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마 13:13)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어둠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그리고 진정으로 찾아 소유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한채, 이 세상을 그냥 그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하 동굴 속 캄캄한 호수에서 헤엄치며 살고 있는 눈먼 물고기와 같습니다.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녔다고 해도, 아무리 오랫동안 믿었다고 해도, 만일 빛이신 예수님이 마음속에 함께 사는 경험이 없다면, 예수님의 그 환한 빛에 한 번도 자신을 비추어보지 못했다면, 그리고 그 빛을 투명하게 통과시킬 만큼 자신이 없어지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오로지 그 빛 속에서 즐거워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리고 빛이 일으키는 변화를 체험하지 못한 채 타성에 젖은 종교 생활에만 안주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빛을 가지지 못한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입니다.    

 

은안(隱眼) 중국에서 눈이 없이 태어난 한 아기 때문에 중국 국민들이 안타까워 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중국 푸젠성 퉁안에 사는 갓 돌이 지난 “샤오쉬”라는 사내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코와 입만 있을 뿐 눈이 없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현재 샤오쉬를 치료 중인 안과 전문의는, “이 아이의 병은 일명 ‘은안(隱眼)병’으로 전 세계에서도 100여 건 정도의 사례밖에 없는 희귀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의료팀은 5월 29일 아이의 안구를 찾는 첫 번째 수술을 진행했으며, 다행히 피부 안에서 안구 하나를 찾아내어 6월 말경이면 수술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은안(隱眼), 숨겨진 눈이 있습니다. 가슴 속 깊이 숨어 있는 영적 눈이 있습니다. 그 눈은 아주 멀어 버리기 전에 찾아내어져야 합니다. 다시 크게 뜨여진 눈으로 진정한 빛이신 예수님을 보게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원하면 자신의 숨겨진 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눈을 열어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고개를 돌려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빛 같지만 진정한 빛이 아닌, 세상의 현란한 색채들이 가슴속의 눈을 교란시키게 허용하지만 않는다면….
예수님께서는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요 9:39)시려고 오셨습니다. 숨겨진 눈을 찾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눈을 떴지만 소경인 사람들, 눈으로 보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눈으로 진정한 것을 찾을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진정한 눈을 뜨게 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빛을 찾는 염원 "주광성" 이란, 빛에 반응해 행동하는 성질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식물과 나방류는 주광성을 가지고 있는데, 빛을 향한 그들의 성향은 놀랍습니다. 주광성을 가진 식물들은 햇볕을 향해 해 있는 방향으로 이파리를 향하고 가지를 굽힙니다. 아무리 큰 바위 밑이나 돌밭에 깔려 있어도 햇빛을 받으려고 빛을 향해 뻗어 나오는 가느다란 들풀들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나방류는 어두운 밤에 불을 켜 두면 아무리 멀리서도 불빛으로 몰려듭니다. 나방이를 비롯한 야행성 주광성 벌레들은 4Km나 되는 먼 거리에서도 불빛을 감지하고 그 불빛을 향해 달려온다고 합니다. 


주광성을 가진 듯, 사람들에게도 빛을 찾는 염원이 있습니다. 빛을 찾으려는, 빛을 향하려는 마음속 깊은 곳의 염원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 3:11). 하늘로부터 선물로 주어진 이 아름다운 염원은 세속의 먼지가 너무 두껍게 쌓여 무디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세상의 재물들로, 혹은 명예와 부귀로, 쾌락으로 이 염원을 덮어 버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의 섭리(?)로 인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빈손이 되는 상황을 만나게 될 때, 문득 사람들은 가슴속에 하나님을 간절하게 열망하고 찾는 염원이 자신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전율하게 됩니다.

 

빛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빛이 되십니다. 너무 큰 해를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듯이, 예수님의 빛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햇살로 다가오는 예수님의 빛은 우리의 가슴을 치료하고도 남을 만큼 따뜻하게 흘러 넘칩니다. 진리의 빛으로 다가오는 예수님의 빛은 과거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을 만큼 힘이 있습니다. 생명의 빛으로 다가오는 예수님의 빛은 속사람을 완전하게 하여 빛 속에서 계속 자라나도록 합니다. 끊이지 않는 생명의 연속이 되도록….        
가슴속에 들어온 예수님의 빛은 우리를 치유하여 빛의 사람으로 만듭니다. 입을 열어도 빛의 소리, 손을 벌려도 빛의 행동이 나와 영혼들을 살리게 됩니다.     눈을 뜨고 빛을 보십시오! 빛을 깨달으십시오! 빛 속에서 자신을 보십시오!
빛을 찾고, 빛으로 온통 자신의 삶의 이유를 삼은 사람들의 입에서는 언제나 이렇게 아름다운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눈을 예수께 돌려 그 얼굴을 주목하라. 그의 영광스러운 광채에 세상 영화는 사라지네.”
빛을 향한 염원을 꺼 버리지 마십시오. 항상 당신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던 그 염원은 당신의 가슴속이 온통 그 빛으로 가득 찰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