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근심과 염려로부터 해방되는 길


“그러므로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태복음 6:25.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음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아신다. 태초에 몸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는 우리가 의복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계신다.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의 죽음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먹을 것과 입을 것들을 채워주시지 않겠는가! 예수께서는 아무런 근심 걱정없이 즐거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새들을 가리키면서, 새들은“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지라도 하늘 아버지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그분께서는“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하셨다. 참새 한마리도 그분께서 모르는 사이에 떨어질 수 없으며, 어떤 사람도 그분 몰래 머리 숙여 기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언제, 그리고 어느 곳에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흘러내리는 괴로운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그분의 손등을 적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분께서는 당신을 의지하기 위해서 당신께 나오는 사람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아침 이슬을 맞아 생기를 머금은 꽃들을 가리키시며, 예수께서는“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셨다. 길가에 존재하는 꽃 하나도 하늘의 별세계를 움직이는 그분의 위대한 능력에 의해서 존재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인류의 심장을 지금도 고통치게 하고 있다. 들의 꽃들조차 세상의 어떤 왕이 입었던 것보다도 아름다운 옷으로 단장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불신과 이기심, 그리고 불안한 근심과 염려를 버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백합화의 꽃잎 위에 기록해 놓으신 기별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눈으로 보는 태양계의 모든 별들이 태양을 쳐다보면서 돌고 있는 것처럼, 꽃들도 햇빛을 향하여 꽃잎을 펼치고 있는데, 어찌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있는가? 꽃을 아름답게 옷입히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품성의 아름다움으로 옷입히기를 더없이 바라고 계신다. 어떻게 백합화가 차갑고 어두운 땅을 뚫고 피어 올라와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향기를 풍기는지 생각해 보라. 누가 거친 갈색의 뿌리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가? 뿌리 속에 감추인 생명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비와 햇빛을 받으며 피어날 때에야 비로서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보고 찬탄한다. 꽃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로 그 말씀을 읽고 받아들이는 자들은 마음 속에서 새로운 생각과 감정이 샘솟듯 올라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재창조의 기쁨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만이 자신들의 생애를 통하여 꽃과 같은 아름다움 향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풍길 수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마태복음 6:33절. 이기적인 마음으로 예수를 따르던 자들은 모두 실망하였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던 무리에게 계속해서 하늘의 교훈을 소개하려고 애쓰셨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를 따름으로써 얻게 되는 보상만을 생각하였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안락과 부를 추구하였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시면서(누가복음 12:30),“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호소하셨다(마태복음 6:33).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시는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나는 너희에게 사랑과 의와 평화의 나라를 알려주기 위해서 왔노라. 마음을 열고 이 나라를 받아들이라. 이 나라를 위한 봉사에 최대의 관심을 기울이라. 현실의 생활을 위한 너희 자신의 필요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아라. 너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열중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께서 너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다.” 물론, 우리는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처음과 마지막 그리고 최고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셨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는 생애를 산다면, 우리의 생애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더하리라”는 그분의 보증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질 것이다. 가난과 부, 질병과 건강, 우둔함과 지혜, 이 모든 것들은 그분의 은혜로운 허락을 통하여 각자에게 제공된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연약한 자라도 당신의 팔로 감싸안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가운데, 이 세상에서 그분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사는 자들만이 끝까지 살아남아 영생의 복을 누릴 것이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일서 2:17. 실패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분의 지혜, 그리고 위로와 소망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운 자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하늘 진주성문은 활짝 열려질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 6:34.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기 위해서 자신을 그분께 바친 상태라면, 내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대를 종으로 택하신 하나님께서 처음과 끝을 주관하실 것이다. 장래의 사건들이 비록 그대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능하신 그분의 눈에는 환히 다 보인다. 모든 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며, 일의 성공을 위해서 자신의 지혜를 의지할 때,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맡기지 않으신 짐에 억눌리게 된다. 하나님께 속한 책임을 우리가 부담으로 안음으로써, 사실상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는 것이 된다. 물론, 우리가 걱정하고 위험과 실패를 예측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닥쳐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신뢰한다면, 또한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훨씬 더 염려하신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모든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최선을 믿는 믿음으로 전진해야 한다. 어린아이가 신뢰하는 마음으로 부모에게 온 몸을 맡기면서 의지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염려하기 보다는 우리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기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내일 일을 오늘의 부담으로 짐질 때,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도움도 우리에게 약속할 수 없으시다. 오늘, 그분께서는 우리에게“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고린도후서 12:9).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만나를 하루 하루 공급해주셨던 것처럼, 그분의 은혜는 하루의 필요를 위해서 주어진다. 광야에서 순례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아침마다 그 날 하루를 위해서 꼭 필요한 만큼의 하늘의 떡을 공급받을 수 있다. 내일에 대한 걱정을 오늘 하지 말라. 내일 필요한 은혜를 오늘로 미리 가져오려고 하지 말라. 은혜에 대한 하나님의 공급 계획은 그날 하루를 위한 것이다.

우리에게 속한 것은 한 날 뿐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오늘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우리의 모든 목적과 계획의 성공 여부를 하나님의 손에 맡긴채, 성실과 정직과 근면과 봉사로서 하루를 살아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걱정과 염려의 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날마다 주님을 찾는 가운데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자유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면서, 그리스도의 멍에 곧 순종과 봉사의 멍에를 멘다면, 모든 불평은 사라지고, 모든 어려움이 제거되며, 현재 그대에게 복잡하게 보이는 문제가 매우 단순한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전진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비록 우리가 흑암 속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우리의 발밑에는 찬 물결이 출렁거리며 우리를 삼키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 명령을 따라야 한다. 주저하고 의심하는 자들에게는 앞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불안의 그림자가 물러갈 때까지 전진하기를 연기하며, 실패나 패배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조금도 순종하지 않게 될 것이다. 불신은“모든 장애물들이 제거되어 앞이 환하게 보일 때까지 기다리라”라고 우리에게 속삭일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신뢰하면서 앞으로 전진하라”는 그리스도의 전진 명령에 순종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이 글은 Living the life of the Life Giver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결혼과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뜻

로버트 베텔

모든 것이 창조주의 손에서 새롭게 만들어졌던 그때로 돌아가 보자. 창조 후 첫번째 주말에 인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2가지 제도가 세워졌는데, 그 중 하나는 안식일 제도이고 다른 하나는 결혼 제도이다.

그 두 가지 제도는 온 우주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는 날로서 정해진 날인데,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안식일을 잘 준수함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을 계속해서 기억하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또한 결혼제도를 설립하심으로써, 가정을 통하여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진리가 전수되고 그분의 뜻이 계승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제도는 세상 끝날까지 사단의 집요한 공격 목표가 될 것이다. 만물을 창조한 이후,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결혼식을 주관하시면서 세우신 결혼 제도,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지구에 세우신 가장 첫번째 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창세기 1장 27절에서“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말씀을 읽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을 따라서 몸과 마음을 창조하셨다. 이사야 43:6-7에는,“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인간의 시조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하였다. 왜냐하면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결혼은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 사이의 사랑으로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세워진 제도이다. 하나님께서는 결혼한 남녀들이 결혼 생활을 통하여 당신의 성품을 드러내기를 원하신다.

결혼제도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제도이며, 하나님을 이해하는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결혼은 사단의 가장 무서운 공격으로 인하여 파괴되어 가고 있다. 결혼의 열매로서 생기는 가정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사단도 그의 최대의 관심을 가정에 두고 있다. 왜 결혼과 가정이 사단의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을까? 왜냐하면 결혼과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이 날마다 실제적으로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울 가정의 성격과 목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이 부모가 되었을 때에 맡겨지는 신성한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어린 자녀들의 행복은 대개 부모들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 부모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자녀들의 육체적, 도덕적 특성이 결정된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가 이토록 부패하고 부도덕한 이유는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 가정이 부패되고 부도덕하게 변모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결혼하는 당사자들 뿐 아니라 그들에게서 태어날 자녀들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유익을 얻기에 가장 합당한 조건을 고려해야만 하며, 동료 인간들에게 축복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젊은 남녀들은 자신들이 결혼에 따른 의무와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실제적인 사회 생활을 경험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조혼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혼과 같이 그 결과가 본인들이 무덤에 들어간 후에도 자녀들을 통하여 지속되는 일생일대의 중대사를 조급하거나, 충분한 준비없이, 그리고 정신적, 육체적 능력이 충분히 발달되기 전에 결정해서는 않된다.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귀중한 선물이다. 순결하고 거룩한 애정은 감정이 아니고 원칙이다. 참된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충동적이거나 맹목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 눈이 가리워져서 모든 일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것은 진실되고 순결한 사랑이 아니다. 참된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은 각자의 마음에 역사하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상대방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게 된다. 결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생애의 운명을 함께 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품성을 낱낱이 헤아려 보아야 하며, 그 성품이 표현되는 하나 하나를 정확하게 관찰하고 판단해 보아야 한다. 결혼 관계에 이르는 모든 계단은 겸손, 단순, 성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간절한 동기와 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결혼은 이 세상에서의 삶과 장차 얻게 될 영원한 생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인정할 수 없는 결혼 계획을 세우지 않을 것이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문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권고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 만일 그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듭난 부모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라. 그대들의 계획과 희망을 부모에게 말하고, 그들의 인생 경험에서 습득한 교훈을 배우도록 하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불필요한 많은 고통과 시련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그대들의 안내자로 모셔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이 결혼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연구하라. 여자는, 순결하고 남성다우며, 부지런하고, 긍정적인 진취성이 있으며, 정직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남자를 일생의 반려자로 만나야 한다. 또한 남자는, 자기에게 고상한 감화력을 끼치며, 생애의 부담과 짐을 함께 질 수 있고,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남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바칠 수 있고, 가정을 환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만들 수 있는 영적인 여자를 찾아야 한다.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그와 같은 아내를 얻는 자는“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잠 19:14, 31:26-29, 18:22)

아무리 결혼이 신중하고 현명하게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결혼식 날에 완전히 연합되어 있는 부부는 별로 없다. 결혼에 있어서 진정한 연합은 후년에 이루어진다. 근심과 걱정의 짐이 신혼 부부에게 닥쳐오면, 흔히 결혼 생활에 대한 장미빛 꿈과 로맨스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남편과 아내는 그들이 그동안 가졌던 교제에서 깨달을 수 없었던 피차의 성격을 비로서 알게 된다. 바로 그러한 때가 결혼 생활을 시작한 부부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시기이다. 장래에 그들이 맞이할 부부의 행복은 그러한 위기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때때로 피차에 전혀 예기치 못했던 약점과 결점이 드러났을 때, 그것을 어떠한 태도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결혼 생활의 행복이 결정될 것이다. 사랑으로 연합된 마음은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상대방의 장점들로서 단점들을 덮어주게 될 것이다. 각자는 약점보다는 장점을 발견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의 연약한 면이 드러날 때마다 그대의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상대에게 표현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편안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라. 그대 자신의 관대하고 동정적인 사랑을 표현할 때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강력한 것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표현되지 않으면,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사랑을 독생자를 주심으로써 결정적으로 표현하셨다. 그분께서는 인류가 당신의 사랑에 대해서 어떠한 의심도 갖기를 원치 않으셨던 것이다. 상대방이 친절함과 동정과 관심으로 표현되는 그대의 사랑에 굶주리지 않도록 하라. 비록 곤란함과 어려움과 실망이 있을지라도, 남편과 아내 중 어느 한편에서 자신들의 결혼이 잘못되었다거나 실패하였다는 생각을 결코 품지 말라. 인생의 여정에 나타나는 모든 어려움과 투쟁 속에서, 서로 끊임없이 서로를 격려하라.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라. 사랑은 보라빛 새벽 안개 속을 함께 걸어가는 것과 같은 값싼 감정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서 오래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만일 결혼을 앞둔 그대들이 이러한 교훈을 받아들인다면, 결혼식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의 시작이 될 것이다.

부부는 부부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에 의해서도, 부부만의 영역을 침범받아서는 안된다. 부부는 규칙적으로 둘만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서로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부부는 서로의 사랑과 희생을 강요하기 보다는 서로를 위하여 그것을 주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장점을 계발하고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좋은 특성들을 인정해주고 격려해 주는 일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는 생각은 놀라운 용기와 만족을 샘솟게 만든다. 사랑은 보다 고상한 목적을 위해서 가꾸어 나갈 때에 거룩한 것으로 승화될 수 있다. 남편과 아내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개성을 자신의 개성에 흡수하려고 해서는 않된다. 각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무엇이 옳은 길이며, 무엇이 잘못된 길입니까?”라는 질문을 남편과 아내는 각각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무엇이 우리 가정의 영원한 행복을 위한 선택입니까?”라는 질문을 각자가 하나님께 여쭈어야 한다. 그리고 각자가 하나님의 대답하시는 음성을 들어야 한다. 서로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대답을 교환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뜻을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대들 사이의 사랑도 순결하고 강한 것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나타내신 정신이야말로 부부가 서로에 대해서 나타내어야 할 정신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에베소서 5:24-25. 남편과 아내가 상대방을 독재적으로 지배하고자 해서는 결코 안된다. 서로 상대방을 자기의 뜻에 굴복시키고자 노력하지 말라. 그대들이 그렇게 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대들의 사랑은 그 빛을 잃어가게 된다. 친절하고, 인내하며, 견디고, 사려깊고, 예의있게 행하라. 그대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그대들이 결혼 서약에서 실천하기로 맹세한 그대로 피차를 행복하게 하고 사랑하는데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 두 사람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서로의 애정을 나누는 일에만 집중한다고 할지라도, 참된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그대들의 주변에 데려다 놓은 사람들의 불행과 가난과 아픔을 도와줄 수 있는 기회들을 포착하라. 참된 행복과 기쁨은 오직 이기심없는 봉사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대들이 그리스도의 생애와 같은 삶을 살려고 애쓰고, 자아와 이기심을 정복하며,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노력할 때, 비로서 그대들은 승리에서 승리로 올라가는 영광스런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인생에 닥쳐오는 모든 시련과 고통들은 오히려 그대들의 사랑과 보람을 가치있게 만들어 주는 묘약이 될 것이다. 두려워 하지 말라.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가운데 용감하게 전진하라. 그대들의 참된 사랑은 세상을 정복하기에 넉넉한 것이 될 것이다.
 

달걀의 안전도를 검사해 보셨나요?


“계란이 건강에 유익합니까? 건강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달걀을 먹어야 합니까? 계란에는 얼마나 많은 양의 콜레스테롤이 들어 있습니까?” 대충 이러한 질문들이 달걀에 대해서 던져지고 있는 질문들이다.

1850년대에 시골집의 뒷 마당에서 기르던 1마리의 암탉이 1년에 생산하는 달걀 숫자는 평균 15개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현대 과학의 발달과 함께, 정선된 종자를 통해서 1년에 약 300개의 계란이 1마리의 암탉으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진기록들을 수록하고 있는 책인 알마넥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실려 있다. “1980년, 미조리 주립대학의 농과대학 유전공학 연구소에서는 1마리의 암탉에서 1년 동안 371개의 계란을 생산해 내는 개가를 올렸는데, 이것은 하루에 약 1.02개의 계란을 생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1800년대의 암탉과 1980년대의 암탉 사이에 어떤 변화가 생겼기에 이토록 커다란 생산량의 증가가 이루어졌는가?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암탉이 일년에 300개 이상의 계란을 생산하도록 창조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계란 비지니스

오늘날 닭과 계란 비지니스는 매우 커다란 비지니스로 성장하였다. 한꺼번에 수백만 개의 달걀들이 달걀 공장(?)으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약 98%의 계란 시장이 거대한 회사들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데, 한 회사에서 4백만 마리 이상의 암탉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란케스터에 있는 회사의 경우, 반경 50마일(80km)의 지역에 9백만 마리의 알낳는 닭을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양계장은 총 9개로 구성된 창고 스타일의 막사인데, 각각의 길이가 축구장 2배에 달하며, 각 막사에 30000마리의 암탉들이 들어 있다. 막사 안에는 가로, 세로가 각각 30cm/45cm 정도 되는 조그만 닭장에 각각 3-4마리의 닭들이 갇혀 있다. 모이를 주고, 물을 주며, 계란을 거두는 모든 일들이 기계에 의해서 자동화 되어 있다.

1950년대 이후부터, 닭의 성장을 촉진하고, 계란의 생산성을 높이며, 닭의 껍질 색깔을 곱게 하고, 닭털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 비소 계통의 아르사닐산(arsanilic acid)을 닭의 사료에 섞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상업용 양계장에서 길러진 닭 중에서 약 90% 이상은 아르사닐산이나 아르손산(arsonic acid)이 첨가된 사료에 의해서 길러지고 있다. 비소는 사람에게 유해한 독성 물질로 분류되는 물질이다. 그러나 미국의 F.D.A.는 닭과 칠면조의 고기에 있어서는 0.5 파트(0.5 part/million)의 비소량을 허용하고 있으며, 계란에는 이것의 2배에 해당하는 양만큼 허용하고 있다.

달걀은 얼마나 안전한가요?

모든 계란에는 사람의 간이나 콩팥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는 유황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계란 흰자위를 구성하는 알부민에는 독성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계란을 섭취하였을 경우에 위장에서는 그것을 소화기키기 위해서 다른 음식물의 소화에 장애가 되는 산을 만들어 내게 된다.

계란에는 닭의 사료로부터 전달된 여러가지 화학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계란을 얻기 위해서 기르는 닭에게는 보통보다 2배나 많은 양의 항생제가 사료에 섞여지며, 닭이 먹는 물에도 항생제를 용해시킨다. 그러나 닭이 계란을 생산하는 시기에는 항생제가 포함된 사료를 공급해서는 안되는데, 이러한 규칙이 정확하게 지켜진다고 할지라도, 계란에서 여전히 항생 물질이 발견된다.

또한 여러가지 다른 약품들이 알낳는 닭에 사용될 수 있다. 항생제와 함께 신경안정제가 사료에 섞여지고 있는데, 신경안정제가 닭의 사료에 투입되는 이유는“닭을 진정시키고, 혈압과 심장의 박동을 낮추어 주며, 호흡숫자를 증가”시킴으로써 계란의 생산성을 높여주기 위해서 이다. 또한 닭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축쳐지는 것을 막고, 사료값을 절약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약품들도 계란에서 발견되고 있다.

알을 많이 낳은 닭의 경우, 주기적으로 노란자위의 색깔과 비타민 함유량에 변화가 생기는데, 노란자위의 색깔이 흐리거나 탄력을 잃고 수분이 많으며 맛이 없을 경우, 노란 자위의 색깔을 진하게 만들기 위해서 사료에 합성 비타민과 같은 화학 약품을 닭에게 공급하게 된다. 또한 노란자위의 질과 색깔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항산화제를 사료와 함께 닭에게 투여하는데 이것 역시 계란에서 발견된다.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한 닭이 낳는 계란의 껍질은 잘 깨지지 않고 견고하다. 그러나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거나 칼슘의 섭취량이 부족한 닭이 낳은 계란의 껍질은 매우 쉽게 깨어진다. 달걀의 껍질을 견고하고 잘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료에 테레프탈산(terephthalic acid)과 항생제를 넣어야 하며, 닭에게 주는 물에 산성탄산염을 용해시키거나, 다른 화학물질을 투여해야 한다. 또는 계사 내에 탄산가스를 발산시켜서 계란의 껍질을 경화시키는 기술이 이용되고 있다. 탄산가스를 흡입한 닭은 껍질이 두꺼운 달걀을 낳게 된다. 지금까지 언급한 독성 화학물질들은 닭 자체 뿐만 아니라, 계란도 오염시키고 있다. 닭의 피를 뽑아서 검사해 보라. 얼마나 많은 종류의 항생제와 약품들이 검출되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닭고기와 계란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품으로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살모넬라균으로 오염된 달걀

계란이 살모넬라균으로 오염되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계란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박테리아, 특히 살모넬라균에 의한 전염이다. 미국에서, 계란에 의해서 야기된 질병이 1974년 7325건로부터 1986년 14,000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오래 전에는 계란이 살모넬라균을 옮기는 주요 매체로 간주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북미에서 계란에 의해서 야기되는 질병의 숫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닭이 살모넬라 균으로 감염되어 있는 동물의 배설물을 먹었을 경우에만, 그 닭이 낳은 계란이 살모넬라균으로 오염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살모넬라균은 닭에게 잠행성으로 침입되기 때문에 그 경로를 추적하기가 몹시 어렵다. A급 달걀이 살모넬라균으로 오염되는 원인을 연구하기 위해서, 살모넬라균으로 오염된 달걀을 조사하였더니, 달걀의 노른자위와 흰자위에서 살모넬라균이 발견되었다. 연구원들이 살모넬라균으로 오염된 달걀을 낳는 닭을 잡아서 해부해 본 결과, 닭의 알집(난소)에 살모넬라균이 번식하고 기생함으로써 염증을 일으키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연구원들은 닭의 알집에서 살모넬라균이 기생하고, 번식함으로써, 알집에서 달걀의 껍질이 형성되기도 전에 살모넬라균이 노란자위와 흰자위로 전염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오늘날의 닭은 이전보다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고 있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달걀을 생산하고 있다. 오늘날 식품점에 나와 있는 달걀의 대부분은 대규모의 양계 공장에서 생산된 것들인데, 이러한 달걀들은 오래 전에 닭들이 앞뜰과 뒷뜰에서 자유롭게 뛰놀면서 생산하던 달걀에 비해서 노른자위가 작고 탄력성이 없으며, 흰자위가 크고, 전체적으로 약하며 힘이 없고, 고소한 맛이 부족하다.

닭뿐만 아니라, 오늘날 가정의 식탁에 올라오는 여러가지 가축들이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닭이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계란이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식사, 알러지, 그리고 계란

영국의 권위있는 의학전문지인 Lancet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기재되었다: “알러지를 일으키는 음식인 우유와 계란을 먹이지 않을 경우, 생후 1년 동안 천식과 알러지로 고통당하는 예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58쌍의 산모와 아기에게 우유, 계란, 생선이 포함되지 않은 식사를 공급하였고, 다른 62쌍의 산모와 아기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포함된 식사를 공급하는 실험을 하였다. 12달이 지난 후, 두 그룹을 비교하였더니, 우유와 계란과 생선을 먹지 않은 어머니와 아기 그룹의 천식과 알러지 발생률이 다른 그룹에 비해서 현저하게(50% 이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때가 되었습니다!

계란 껍질이 깨지지 않고 오래가도록 하기 위해서, 상업용으로 생산되는 달걀은 모종의 기름이나 기름 용해제(oil solvent)에 담갔다가 빼거나, 스프레이로 기름을 껍질에 뿌린다. 이렇게 처리된 달걀은 비록 오래되었을 지라도, 외관상으로는 신선한 것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구별하기가 힘들다. 시장에 나가기 전에 2주정도는 대형 냉장실에 보관되었다가 나가게 되기 때문에, 소비자가 암탉이 갓낳은 신선한 달걀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

오늘날, 현대 과학자들은 계란이 심장 질환을 일으키고, 심장마비를 유발시킨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의학자들과 양심적인 영양학자들 역시 계란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계란이 사람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식품으로 취급될 수 있을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달걀을 먹지 않기로 선택하는데에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대와 그대 가정의 건강을 위해서, 달걀을 먹지 않기로 결심할 때가 되었다. 환경의 오염과 인간의 이기적인 상업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이제 달걀을 더 이상 안전한 식품으로 사용할 수 없는 때가 되었다.

이 기사는 Freedom of Health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무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가타 뜨레쉬 의사

무좀은 피부의 표면에 나타나는 가장 일반적인 곰팡이로서, 발톱 부위에 생길 경우 치료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무좀을 치료하는데에 있어서, 습기와 마찰을 방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

처음 문제가 발단될 때에는 곰팡이와 습기가 주요 원인이 되지만, 박테리아가 주된 문제거리이다. 샤워장을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함으로써, 감염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무좀은 신발을 신는 지역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갖게 되는 공통적인 문제이다.

화학 약품에 의지하지 않고 가정에서 천연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발의 청결을 위해서 매우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치료가 된다.

치료법

1. 하루에 두차례씩 20~30분간 다음과 같은 용액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 발을 씻을 것.

A. 4온스의 백리향(thyme)에 1파인트의 알콜을 섞은 용액.
B. 약초인 골든씰을 끓은 물에 푼 후, 물이 적당하게 식었을 때에 발을 씻은 다음, 발을 잘 말렸다가 무좀 부위에 골든씰 가루를 뿌릴 것.
C. 바닷물이나 바다 소금으로 만든 식염수.
D. 마늘을 갈아서 섞은 물

2. 기본적으로 발을 하루에 두번씩 씻으며, 특히 발가락 사이를 비누와 물로 깨끗히 씻어내야 하고, 물기를 잘 닦고 발을 잘말리며 잘 말린 양말을 신는 것이 중요하다.

3. 습기를 잘 증발시키는 양말을 신어야 하며, 신발은 샌달이나 공기 유통이 잘되는 신발이 적당하다. 신발의 내층에 플라스틱이 들어 있는 것을 피하고, 신발이 습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틀에 한번씩 신발을 바꾸어 신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이다.

4. 발가락 사이가 습한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 때에 발가락 사이에 솜을 끼워 두면, 발가락 사이가 습기를 흡수하는데 도움이 된다.

5. 면양말을 신을 것. 면은 합성물질보다 땀을 잘 흡수한다. 염색된 양말에는 알러지 반응이 나타날 수 있으며, 그러한 경우 문제를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6. 매일 10`~15분 동안 햇볕에 발을 노출시키는 것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7. 맨발로 수영장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를 걷지 말 것.

8. 날마다 또는 가려울 때마다 식초에 발을 담그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목욕 후에는 곰팡이의 성장을 막기 위해서 식초에 발을 담그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발은 알칼리성 ph를 나타내는데, 무좀 곰팡이는 알칼리성(alkaline medium)에서 더 잘 성장한다. 발을 식초에 담그웠다가 공기 중에서 서서히 말리는 것이 좋다.

9. 감염 부위를 생마늘로 문지른다. 또한 마늘가루를 발에 여유있게 뿌린 후에 양말을 신으면 좋다.

10. 발가락 사이와 감염부위에 옥수수 전분가루를 뿌리고 양말을 신으면 습기를 흡수할 수 있다.

11. 찬물과 뜨거운 물에 교대로 발을 담그는 것이 좋다. 뜨거운 물을 발목 위까지 올라오도록 담은 물통에 발을 담근다. 이 때 물의 온도는 겨우 참을 수 있는 정도로 뜨거운 것이어야 한다. 물의 온도가 낮아지면, 뜨거운 물을 더하여 물의 온도를 유지시켜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6분 동안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근 후, 1분 동안 얼음물에 발을 담근다. 이것을 3번 반복한 후, 발을 잘 말린 다음, 옥수수 전분가루나 골든씰가루를 발에 뿌린다. 무좀이 매우 심한 경우에는 2시간마다 한번씩 이러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12. 일반적으로 약국에서 구입하는 약으로 무좀을 치료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40%가 약의 성분으로 인한 알러지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무좀약 중에 함유되어 있는 붕산 성분은 체내에 흡수되기 매우 쉬운 것이기 때문에 상처가 있는 부위에 붕산이 접촉하였을 때에는 체내에 흡수되어 독소를 생산하게 된다. 약국에서 팔고 있는 무좀약들 중에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들이 많이 있다.

13. 무좀이 심한 사람은 잠자리에 들 때에, 꿀에 담근 솜뭉치를 발가락 사이에 끼우고 잘 것. 이러한 경우, 잠자리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는 사이즈가 큰 면양말을 신어야 한다.

14. 종종 무좀이 심한 경우에 그리세오폴빈(griseofulvin)이라는 항생물질을 복용하고 있는데,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 물질은 쥐에게 암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독성이 강한 물질이기 때문에 아기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임신부들은 결코 사용해서는 않된다. 그리세오폴빈은 두통, 정신적인 혼돈 상태, 혈류장애, 위장 장애 등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외에도 무좀을 치료하기 위해서 복용하는 어떤 종류의 의약품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15. 발이 항상 습한 경향이 있는 사람이나 건조한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임시로 포르말린이나 리조올을 사용하여 습기를 제거할 수도 있다. 약 10% 포르말린 용액에 1분간 담그면 되는데, 발에 상처가 있는 경우에는 통증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상처부위를 가리운 상태에서 발을 담그는 것이 좋다.


 

새로운 삶으로 가는 길


이 시대에도, 자신의 생활을 바꾸고, 고결한 생애를 살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개혁과 변화를 위한 소원이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해야 할지를 몰라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과 신체의 건강을 개혁하고자 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모본을 따라야만 한다. 그분께서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어떤 죄인을 구원하고자 하실 때, 먼저 그의 육체적 상태를 돌보셨다. 왜냐하면 육체의 상태는 마음의 상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절제와 방종과 부도덕한 생활을 정리하고자 할 때, 먼저 우리 자신의 육체적 상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의 모본을 통하여 육체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르쳐 주셨으므로, 우리는 모든 자극적이고 건강에 유익하지 않은 식물을 삼가하고, 깨끗하고 단정한 의복을 입으며, 신체를 청결하게 유지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의 개혁을 시작해야 하고, 우리 자신을 고상하고 영적인 환경 하에 두어야 한다.

생활의 부절제와 탐욕적인 마음은 죄악적이고 방종한 생활로 사람들을 유도한다. 결국,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과 품성에 심각한 상처를 받게 되며,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회에서도 소외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게 되며, 아무런 소망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렇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그런 상태로 만든 모든 환경들을 이해하시며, 그들을 동정하신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도움이 요구되는 사람들이다. 높은 지위나 학식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식욕이나 정욕의 방종과 여러가지 부절제에 빠져서 마침내는 유혹에 대해서 전혀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자제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의 손이 없이는 스스로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 방종과 부절제의 결과로 인하여 도덕적인 죄악과 육체적 질병에 압도된채 불행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대개 부절제한 생활에 깊이 빠진 사람들은 자신을 스스로 자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의지가 비록 타락하고 연약해졌을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의 마음 속에서 고상한 동기와 고귀한 욕망이 소생될 수 있다. 성경에 나타난 복음을 통하여 자신의 앞에 제시되어 있는 소망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부도덕한 습관과 부절제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적인 힘이 된다. 모든 소망과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생명나무의 잎사귀와 같은 생명력을 줄 수 있다. 떨리는 손을 펴서 자신의 앞에 제시된 소망을 온 힘을 다하여 붙잡아야 한다. 술과 담배를 계속해서 하고 싶은 욕망이 올라올 때마다, 마약이나 저항하기 어려운 정욕에 대한 시험을 받을 때마다,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면서 구조를 위한 손길을 간구하라.

투쟁의 중요성

부절제와 부도덕한 생활에 깊이 빠졌던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의지력은 이미 연약하고 힘을 잃어버린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유혹과 시험이 올 때에 거듭해서 넘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들은 도덕적 용기와 결단을 회복하고, 악으로 기울어지는 유전적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 부도덕한 욕망이나 감각적인 충동 등은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타고 나는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주의 깊이 경계되어야 하며, 건전한 의지에 의해서 지배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는 선과 악에 대한 지배권을 쟁탈하고자 하는 맹렬한 투쟁이 날마다 전개된다. 그러나 비정상적으로 뛰어 오른 식욕과 제어되지 못한 부도덕한 습관 등에 압도된 생활을 오랜 세월 동안 해온 사람들은 모든 일에 절제하고자 결심할 때에 마음 속에서 생기는 투쟁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노예 생활을 오래할수록, 투쟁하고자 하는 소원이 마비되어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스도께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식욕과 정욕과 탐욕을 대항하는 싸움을 계속할 수 있는 도덕적 힘이 부족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들이 혼자서 투쟁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섬기는 천사들과 진실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그들을 돕는 일에 가담할 것이다. 투쟁은 인간이 해야할 몫이지만, 투쟁에서의 승리와 회복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일에 달렸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투쟁하는 영혼들에게“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신다(마가복음 2:5).

자신의 나쁜 습관과 부절제의 결과로 인하여 질병을 얻은 사람들은 회복을 위하여 스스로 투쟁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값없이 내려지고, 천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위해서 봉사하며, 진실한 이웃과 친구들이 그들을 돕는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스스로 일어나서 싸우지 않는 한, 모든 일은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죄악적인 방종과 부절제의 결과로 인하여, 마음과 육체가 허물어진 사람들은 위대한 도덕적 개혁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방종과 부절제의 희생자들에게 대장부다운 기백을 가지고 일어나서 잃어버린 건강과 도덕심을 회복하라고 호소하고 계신다. “나는 죄악과 부절제한 습관을 정복할 수 없어요”라는 말을 하지 말라. 과거에 계속해서 실패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될 필요는 없다. 부절제하고 부도덕한 생활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의 결심과 맹세에는 썩은 새끼줄과 같이 도덕적 용기와 능력이 결핍되어 있다. 과거에 자신이 스스로 약속을 깨뜨리고 맹세를 어겼던 사실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는 자신의 성실성에 대한 확신이 흐려졌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시 받아주시거나 도와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은 어떤 유전적이거나 후천적으로 배양된 나쁜 습관과 기질의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모든 빗나간 식욕과 정욕을 넉넉히 정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한한 힘으로 악과 싸우도록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신다. 우리의 선천적 또는 후천적 성격이 아무리 잘못 비틀어졌을지라도, 우리는 그분께서 공급해주시는 능력을 통하여 승리할 수 있다.

의지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

시험받는 사람이나 질병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의지의 참된 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의지력이란 사람의 품성 중에 존재하는 지배력, 즉 결정하고 선택하는 능력이다. 모든 일은 의지의 올바른 사용에 달려 있다. 선과 순결한 생애에 대한 욕망을 갖는 자체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거기에서 그치면, 우리의 생애에 아무런 유익도 얻을 수 없다. 실제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악한 기질과 나쁜 습관을 정복할 것을 바라고 소원하면서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들은 마음 속에 선한 소원과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결정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과 성경 말씀에 굴복시키지 않는다. 자신의 뜻을 양심 속에서 호소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복종시키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선택력을 주셨으므로, 그것을 올바로 활용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고,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애정을 지배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순결하게 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적합한 상태로 만들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는 있으며, 우리의 의지를 그분께 드릴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의 의지를 그분께 드리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서 우리 안에 역사하신다. 그리하면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연합되고, 우리의 뜻은 그분의 뜻과 조화를 이루게 되며, 우리의 생각은 그분께 사로 잡히게 되어서 드디어 우리는 그분의 생애을 살게 된다.

의지력의 올바른 사용을 통하여 생애에 완전한 개혁과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의지를 그리스도께 굴복시킴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을 굳게 붙들어줄 능력을 위로부터 받게된다. 순결하고 고상한 생애, 식욕과 정욕에 승리하는 생애는, 연약하고 변하기 쉬운 인간의 의지를 전능하고 확고한 하나님의 의지에 접목시키는 일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하다.

식욕의 힘에 대항하며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에 나타난 건강의 원칙에 대해서 교육받아야만 한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의 마음과 육체에 새겨놓으신 생명의 원칙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야말로 건강과 치료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건강의 유지와 회복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건강 원칙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육체와 마음의 완전한 회복을 소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생명의 법과 도덕률을 지키는 삶을 영위함으로써,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 글은 The pathway to the health & happyness에서 발췌하였음.


 

지치고 병든 간을 어떻게 치료해야 합니까?


켈빈 트레쉬 의사

간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15가지 방법

1. 일주일에 1~2일을 완전 금식(물만 마시는 금식)하라. 금식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유익 중에서 가장 커다란 유익은 간의 휴식과 치유이다.

금식을 시작하기 앞서, 숯가루 정제를 10개 먹을 것. 과로와 스트레스에 지친 간에게 휴식을 주는 것이야말로 치료의 지름길이다.

2. 여러 주일 동안, 지방, 설탕, 고단백질, 고기, 우유, 계란, 치즈와 같은 농축된 음식을 삼가하는 식이 요법을 하라. 너트와 씨앗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준비된 식사는 간의 부담을 줄여 주며, 내장의 박테리아 상태를 변화시키고, 간이 처리해야 할 독소의 양을 훨씬 줄여준다. 당분과 지방을 함께 먹는 것을 특별히 삼가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당분은 지방의 대사과정에서 간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3. 과식을 철저하게 삼가하라. 과식은 언제나 간을 과로하게 만든다.

4. 음식물을 한번에 조금씩 입 속에 넣은 다음, 음식물이 고운 죽처럼 될 때까지 잘 씹어서 천천히 먹는 일은 그대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준다.

5. 식사가 끝나는 시간과 다음 식사가 시작되는 시간의 간격이 적어도 5시간 이상이 되어야 한다.

6. 결코 간식을 하지 말라. 식간에는 오직 물과 약초로 만든 차만을 마셔야 한다. 간에 유익한 약초: 민들레 뿌리, 엉겅퀴의 추출물인 씰레마린

7. 식사 후에 눕지 말라. 활발한 혈액 순환은 간으로 하여금 지방을 잘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식사 후에 가벼운 운동은 간의 일을 도와 준다.

8. 음식물을 단순한 방법으로 조리하고, 음식물의 가지수를 단순하게 줄여라. 현미밥에 단순하게 요리된 채소 반찬 두가지, 또는 통밀이나 현미 빵을 한 두 종류의 과일과 함께 먹는 단촐한 식사를 하라.

9. 위에서 소화된 음식물의 찌꺼기가 장을 통과하는 시간을 줄여라. 숯가루 정제 10알을 먹은 후, 숯가루가 내장을 통과하는 시간(intestinal transit time)을 측정해 보라. 가장 이상적인 숯가루의 통과 시간은 음식물을 섭취한 후, 30시간이 지나면 대변에서 숯가루의 검정색깔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고지방 및 고단백질의 서구식 식사를 즐기는 현대인들은 일반적으로 90시간 이후에도 대변에서 검정색깔을 보게 될 것이다.

10. 날마다 2~4 스푼의 밀기울(wheat bran)과 함께 6~10컵의 물을 마시고, 적어도 하루 1시간 이상의 옥외 운동을 하면, 음식물이 내장을 통과하는 시간을 줄여 준다.

11. 수치료(hydrotherapy)는 간의 치료에 매우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 옷을 벗고 편안하게 누운 상태에서 배와 가슴 사이에 뜨거운 물수건을 올려 놓고, 발은 뜨거운 물이 담긴 대야에 넣으며, 얼굴과 이마 위에는 찬물로 적신 수건을 놓는 수치료를 하루에 1-3회 반복한다. 수치료는 혈액 순환을 빠르게 만들며, 신체의 저항력을 순간적으로 증진시킨다.

12. 신체를 조이는 옷을 절대 삼가해야 하며, 특히 상체에는 약간의 자국을 남기는 옷일지라도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간은 매우 약한 압력에도 장애를 받기 쉬운 민감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13. 다리와 팔의 온도를 균일하고 따뜻하게 유지해 주는 옷을 입어야 한다.

14. 술과 담배를 절대 삼가하고 화학적으로 만든 약을 먹지 말 것. 화학물질은 간에 직접적으로 부담을 안겨준다. 한번 섭취된 화학물질들은 반드시 간에 의해서 처리되어야 하므로, 간의 부담이 증가된다.

15. 간염을 치료할 때에, 운동에 대해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처음에는 매우 조금씩 시작해야 하지만, 신체의 전반적인 기능들이 잘 유지될 수 있을 정도는 해야 한다. 태양욕을 해야 하며, 산보를 해야 하지만, 결코 피곤할 정도로 해서는 안된다.
 

Life Line


점점 더 채식주의자들이 많아지는 이유 12가지

1. 동물의 근육에 번식하는 각종 기생충이나 세균으로 인한 감염을 피하기 위해서
2. 병들어 있는 동물의 고기를 섭취함으로써, 결핵이나 암과 같은 질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3. 보다 강한 뼈를 소유하기 위해서
4. 채식을 통해서도 인체가 필요로 하는 단백질을 충분하게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5. 여분의 동물성 단백질이 체내에서 쓰레기로 축적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6. 가축에게 투여된 각종 홀몬과 항생제 그리고 살충제 등이 가축의 고기나 피 속에 잔존하기 때문에
7. 건강에 유익한 식물이 주변에 풍요롭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창조물을 불필요하게 도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8. 보다 건강한 심장과 혈관을 소유하기 위해서
9. 다양하고 충분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10. 보다 맑은 정신을 소유하기 위해서
11. 각종 암과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서
12. 보다 강력한 신체의 면역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디스크의 노화 방지법

척추뼈 사이에 있어서 허리의 유연함을 돕는 디스크 역시 혈액의 공급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디스크로 들어가는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축적되어서 혈관의 단면적이 좁아지기 시작하면 디스크에 노화 현상이 와서 부드럽고 유연해야할 디스크가 딱딱하게 경화되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것이 디스크의 노화이다. 고지방식은 모세 혈관까지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하게 만들며, 동맥경화를 유발시킨다. 디스크의 노화를 방지하고 싶은가? 동물성 지방의 섭취를 삼가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라! Light For Life

성화 숯가루를 준비해 두세요!

일반적으로 숯은 단단한 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데,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나무를 서서히 연소시킬 때에 생성된다.

숯의 흡수력은 미세한 입자들의 표면에서부터 나오는 것인데, 숯 1그램에 들어 있는 미세한 입자들의 표면적을 계산해 보면 무려 400~1800 평방 미터나 된다! 그러므로 분말 상태의 숯가루의 표면적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면적이 되는 것이다. 매우 곱게 갈아진 활성화시킨 입자는 너무나 작아서, 숯가루 1파운드(약 450그램) 안에는 약 5천만개의 입자들이 들어 있다!

숯가루가 흡수할 수 있는 독소들의 종류에 있어서 약간의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여러가지 독소들에 대하여 강력한 흡수력을 나타낸다. 농약이나 살충제와 같은 산업용 독소들을 놀라울 정도로 빨리 흡수함으로써 무력화시키며, 여러 종류의 약품들을 흡수하는 “기적의 가루”이다. 아편, 아스피린, 코케인, 몰핀, 니코틴, 페니실린, 설파제 이외에 여러가지 마약과 약품에 대해서도 강력한 흡수력을 발휘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무기질에 대해서도 매우 효과적인 흡수력을 가지고 있다: 수은, 인, 염소, 철, 납, 은 등등. 숯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서, 숯가루는 가정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비상용 해결사이다. 약품이나 화학물에 의한 위급한 중독일 경우, 숯가루는 일반적으로 어떠한 해독제보다도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우선 독소를 들이킨 사람을 토하도록 만든 다음, 많은 양의 숯가루를 물에 타서 마시도록 해야 하는데, 대개 약 1\4 컵, 즉 30~60그램을 가능하면 빨리 물에 타서 마시도록 하는 것이 좋다. Last Generation

알로에

알로에는 가정에서 쉽게 관상용으로 키울 수 있는 식물로서, 화상을 입은 경우 즉각적이고도 확실하게 통증을 제거해 준다. 알로에 잎을 짜서 만든 쥬스를 화상에 바를 경우, 환부를 부드럽고 빠르게 치료해 줄 수 있다. 또한 위궤양 환자들의 경우,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알로에 젤 1/4컵을 마시면 위장의 내부를 부드럽게 치료해 줄 수 있다. Health & Healing


 

1부 - 인류의 타락과 하나님의 사랑의 선택

사망과 생명의 법칙

인류의 구원은 인류의 타락에서 연유되었다. 사람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영원히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았을 것이다. 사망, 질병, 슬픔, 고통, 늙음과 같은 죄의 결과들도 물론 이 지구상에 전혀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사랑과 화평과 행복과, 영원토록 전진되는 기쁨과 발전만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해와가 범죄함으로 그 모든 조화는 깨어지고 엄청난 어두움과 재난의 그림자가 이 세상에 드리우기 시작하였다.“죄의 삯은 사망”이다 (로마서 6:23). 그런데 성경은 인류의 조상 아담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범죄하였다고 선고하고 있다.“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였다 (로마서 3:23). 물론 죄를 시작하고 그 결과로 죄에 대하여 약하여진 본성을 유전하여 준 총체적인 책임은 아담과 해와에게 있다고 하겠지마는 그러나 그들의 모든 후손들도 한결같이 자기들의 선택을 통하여서 죄들을 짓게 되었고 그리하여 사망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인류가 타락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죄는 어떻게 성립되는 것인가? 성경은 죄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려 주고 있다.“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한일서 3:4. 다시 말해서 죄란 하나님의 율법인 계명을 범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우주에는 법칙이 있다. 하나님의 창조물들이 존재하는데는 원칙이 있다. 별들이 회전하는 괘도가 있고 생물들이 호흡하는 생성 원리가 있는 것이다. 이 법칙을 깨어 버리면 질서와 평화와 행복이, 아니 더 나아가서 그 생명의 존재 자체가 파괴되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자연계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그리고 영적인 세계에도 법칙이 존재한다. 그 법칙은 어떠한 면에서 천연계의 법칙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도덕적이고 영적인 법칙이 또한 자연계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잘못된 도덕적인 법칙을 세우고 원자 폭탄을 만들면 자연계에 엄청난 파멸을 초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도덕적인 법칙을 어기게 되면 이웃들에게 내지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아니 더 나아가서는 온 우주에 큰 슬픔과 고통을 불러 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들인 사기, 절도, 강간, 살인, 불효, 시기 질투등의 두려운 결과들을 주목하고 살지 아니하는가! 사람들은 하나님의 정부, 곧 우주의 헌법인 계명을 무시하는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타락하게 된 것이고, 그 결과로 무서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

하나님께서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신 분부는 에덴 동산의 눈에 보이는 계명이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 분의 지배를 받는데에만 안정과 평화와 행복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시조는 그 계명을 어기고 사단의 꾀임을 더 신뢰하였다. 마귀는 하나님을 이기적인 분으로 고소하였다. 불공평한 분으로 고소하였다. 이 과실을 먹으면 하나님 자신처럼 눈이 밝아질 것이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도 괜챦은 것이며 결코 죽지 않을 테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기만하였다. 인류의 시조는 마귀의 말을 하나님의 말보다 더 신뢰하고서 우주의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인 계명을 어기고 반역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가슴에 너무나 커다란 슬픔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제 선택을 하셔야만 하게 된 것이다. 범죄한 인간을 그저 대수롭지 않은듯 용서해 주어 버리면, 온 우주에 거하는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될 것이고, 그 결과로 엄청난 반역과 파괴가 우주를 휩싸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인류를 그저 영원히 소망없이 죽어 가도록 내버려 두실 수는 도저히 없으셨다. 그러한 갈림길에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 값을 대신 치루어 주시고 두번째의 은혜의 기간를 가지고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주시기로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자유 의지와 자유 선택권을 주시었다. 자유 의지와 선택이 없는 인간은 로보트요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이요, 또한 자유 의지와 선택이 없이는 성품의 발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울러서 인간에게 자유 의지와 선택권을 주셨을 때에는 인간이 반역과 불순종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신 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 계획 속에는 인류의 타락의 가능성과 그 사후 대책에 대한 계획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범죄한 인간들을 위하여 인간이 되어 오셔서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고 또한 그들에게 의로운 삶의 모본을 보여 주시는 일이었다. 그 일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생명의 댓가를 치루는 어마어마한 값을 지불해야 하는 일이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의 선택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바치기로 선택하신 것이다. 그것은 쑈(Show)가 아니었다. 성소 제도의 속죄제를 공부해 보면 알게 될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참으로 우리의 두뇌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인류는 두번째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통하여 태어나게 될 수많은 자손들을 보시고 차마 인류를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실 수가 없으셨다.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는 내어다 보신 것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영원히 살게 된다면 현재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이 생명의 가치야 말로 이루 형용 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이 된다. 우리의 지식과 성품이 계속적으로 영원토록 발전하여 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태어날 아담의 후손들에게, 구원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그 적당한 숫자가 차기까지, 또한 죄악의 역사를 용납하실 수 있는 기간까지 이 땅에 태어 나도록 허용하신 것이다. 그러나 인류에게 두번째 기회를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허용하셔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지구상에 죄의 결과가 그대로 임하도록 허용하시는 일이었다. 그것은 공평한 처사였고 또한 사단과의 전쟁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온 천하에 드러날 때까지 그 공정성을 지키셔야만 하시기 때문이었다. 또한 죄와 반역은 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 결과를 보여 주심으로 공개하실 필요가 있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는 하지만 잠깐 살다가 죽게 되어있고 또한 죄의 결과인 슬픔과 질병과 늙음의 영향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유일한 이유와 목적은, 사는 동안 더듬어서 진리와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여 구원의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기회를 주시는데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17:25-28 참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생명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고 구원의 선물을 받으면 우리는 영원히 사는 삶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아무리 어려운 시련들을 당하게 되든지 간에 불문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이 놀라운 기회에 대하여 영원토록 감사와 찬송을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은혜의 기회는 놀라운 것이기 때문이다.

II.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에 대한 계시

인간을 다시 살게 해 주신 후에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아담과 해와에게 주신 계시가 바로 성소에 대한 계시였다. 그것은 창세기 3장에 나타나는데, 에덴 동산에서 내어 쫓기는 인류에게 하나님께서는 가죽 옷을 해 입히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죽 옷을 해 입히시기 위해서는 동물을 죽이셔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성소의 의식 속에는 반드시 소나 양이나 염소등 제사에 바치는 동물의 희생이 수반되어야만 하는데, 그 동물의 죽음은 바로 장래에 십자가에서 돌아 가실 속죄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소 제도야 말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어떻게 구원하실가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신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유일한 계시였다. 그러므로 죽음의 선고를 들은 아담이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성소 제도의 제사 제도에 대하여 알고 난 후에 감격하여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해와” 라고 지었는데, 그 뜻은“산자의 어미”라는 의미였다. 지금 방금 사망의 선고를 받은 아담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청사진인 성소 제도에 대한 계시는 그에게 커다란 소망을 안겨다 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아내를 산자의 어미라고 불렀다. 시편 77:13은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다.“오 하나님이여, 주의 길이(道-필자 주) 성소에 있으니 누가 우리 하나님처럼 그렇게 위대한 하나님이리이까?”(킹 제임스 성경 번역).

성소의 의식 속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들어있다. 성소 제도는 인간들이 직접 그 의식에 참가하여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생생하게 보고 느끼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성소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은 우리들의 구원의 문제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III. 지상 성소 - 하늘 성소의 모형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 하실 때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식양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양식을 따라 지을지니라.”출애굽기 25:8,9. 이 성소는 하나님께서 인류와 다시 같이 사실 수 있는 계획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고안 되었다. 이 성소 제도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지상 생애와 그 분의 사역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 가셔서 하실 봉사 사업까지를 상징하는 기구들과 예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의 기구들 하나 하나, 의식 하나 하나, 그리고 색깔 하나 하나 마다에 인간을 구속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가르침과, 또한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해야 할 구원의 단계들을 상징하는 표상들이 알알이 맺혀져 있다. 이 성소의 모형은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양을 계시 가운데 보여 주시고 그 모형대로 짓도록 모세에게 지시 하셨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히브리서 8:5.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도 모세가 지었던 성소 모양 비슷한 참 성소가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성소 제도야 말로 하늘이 내어 주신 우리 인류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청사진이 아닐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성소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을 인간들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계획하심으로써, 인류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방법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앞으로 몇번에 걸쳐서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함께 연구해 보도록 하자!

 

2부 - 성소, 구원의 청사진


1. 성소의 모형에서 찾는 구속의 의미

성소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구원을 세 단계의 사역을 통하여서 이루신다는 뜻이다.

              

바울은 예수께서 우리의 대 제사장이시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 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 ...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 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6:19,20; 7:24,25; 8:1,2.

예수께서는 우리의 대 제사장으로서 성소 뜰에서, 첫째 칸인 성소에서 그리고 둘째 칸인 지성소에서 죄인들을 위하여 속죄 사업을 이루시는 것으로 표상되어 있다. 성소 뜰에서 죄인이 끌고 온 희생 제물을 죽이고 번제단 위에 태우는 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인류를 위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시어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돌아 가실 것을 상징한 것이요, 첫째 칸 성소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성소로 가시어 당신께서 흘리신 피를 힘입어 회개하며 나아오는 자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시며, 죄를 사하시고, 나아가서는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나누어 주시는 일을 행하신 사실을 나타내 주는 것인데, 그 일은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해인 A.D. 31년 부터 진행해 오셨다고 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 사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1-12. 둘째칸 지성소는 예수께서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앞에서 인간을 심판하시는 마지막 구속의 국면을 상징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성소의 세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들을 위한 구속 사업의 세가지 국면들을 상징하고 있다.

2. 성소가 보여 주는 우리의 최종 목적지

10성소 제도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는 지성소이다. 그 말은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나아가야 하는 최종 목적지가 지성소라는 말이 된다. 상징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성소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 그 분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섭리들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으로 표상되어 있는 것이다.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다. 그 언약궤 속에는 십계명이 들어 있는데, 그 법궤의 뚜껑을 우리는 속죄소 (시은좌) 라고 부르며 그 속죄소 양편에는 금으로 만들어진 그룹 천사 둘이 서 있었다 (출애굽기 25:17-21 참조). 그 속죄소에서는 하나님의 임재인 세키나 영광이 비추이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감히 지성소에 들어 가지 못했다. 죄있는 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면 죽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제사장만이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서 일년에 한번씩만 대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앞에 설 수가 있었다. 성소제도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류를 구속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구원의 청사진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지막에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 곳이 그리스도인들의 최종 목적지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두번째 임하게 되실 때에는 더 이상 인성을 쓰신 분이 아니라 영광의 하나님의 본체 그대로 임하실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계시 가운데 외쳤다.“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낮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요한계시록 6:15-17.

인류는 누구나가 다 언젠가 하나님의 면전에 서야 한다. 그 앞에서 인간은 그 영광의 광채에 타서 죽게 되던지 아니면 그의 앞에 서서 즐거워하며 다시 이별이 없이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든지 결정되는 것이다. 무엇이 그러한 차이를 만드는가? 그것은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문제의 해결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소 제도를 고안 하실 때에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셔서 결국에 인간이 하나님의 면전 앞에 설 때에 그 영광에 의하여 타서 죽지 아니하고 당신과 함께 영원히 다시 살 수 있을지를 가르치시고자 계획하신 것이다. 성소 제도의 제일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시는지를 보고 배우는 것이다. 바로 그 일을 위하여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소를 지으라고 분부하셨는데, 이 성소 제도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실물 교훈으로 주신 것이다. 아담과 해와는 범죄하기 전까지는 하나님 앞에서 대화하고 그 분의 영광의 광채 앞에서 살았었다. 하나님의 세키나 영광은 그들에게 생명과 활력소의 원천이 되었고 하나님의 임재는 그들에게 큰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었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여 죄를 짓자 마자 갑자기 하나님의 영광은 그들을 파괴하는 대상으로 변하고 그들은 두려워서 피하여 숨게 되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속성이 바뀌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변하여 타락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할 수 없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나올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다음의 예를 들어 보도록 하자. 몇년 전에 나는 아내와 함께 집 앞에 있는 채소 밭에다가 배추를 심었다. 가을이 되자 그 배추들은 싱그럽고 푸르게 폭이 넓은 배추들로 성장하였다. 나는 이번 해에는 좋은 김치를 많이 담그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였다. 아내가 지금 당장 추수해 들여오자는 제안을 무시하고, 오늘은 피곤하니 일찍 자고 내일 아침에 뽑자고 말하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난후 곧바로 배추가 있는 밭으로 가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간밤에 갑자기 이른 된 서리가 내린 것이 아닌가? 배추들이 다 꽁꽁 얼어 붙어 있었다. 나의 실망은 말할 수가 없이 컸다. 얼마나 공을 드려 키운 것인데.... 그런데 그 때 막 동쪽으로 부터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자 어제까지 그렇게 싱그럽던 배추들이 시들시들 녹아 내리는 것이 아닌가? 더 이상 김치를 담글 수 없는 배추로 다 시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바로 그 전날 까지만해도 태양 빛은 배추들에게 있어서 생명과 활력소의 원천이었었다. 그러나 갑자기 태양 빛은 그 뜨거운 열기로 배추들을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태양 자체에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니라 간밤에 된 서리를 맞은 배추들의 본성이 더 이상 뜨거운 태양열을 견딜 수 없는 상태로 바뀌어져 버린 것이다. 그때 나는 그 큰 실망 속에서도 한가지 커다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해와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는 생명과 활력과 행복의 원천이었었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하자 마자 더 이상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없는 것을 알고 피하여 도망을 하였다. 그 이후로 하나님의 영광은 그들을 죽이는 것이 되어 버렸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범죄하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영광 자체가 바뀐 것이 아니라, 범죄한 인류의 본성이 타락하여 더 이상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 수 없는 존재로 변하여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여 다시 당신의 영광 앞에서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시기 위해서는 인간 속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만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지성소 즉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기 전에 먼저 성소 뜰과 첫째 칸인 성소를 거쳐 가면서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성소제도를 고안하여 주신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법대로 성소 의식을 따라가면서 성소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3. 성소로 나아 가는 길

제일 먼저 성소로 나아가는 첫 단계는 죄인의 마음 가운데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범죄하였을 때에 즉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을 때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 죄를 지은 사람은 심판과 멸망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 때에 죄인은 마음 속의 평화를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죄의 용서와 기쁨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죄인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성소로 가져갈 흠없는 동물을 고르게 되는데, 그것은 죄 없으신 흠없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동시에 흠없이 순전한 우리의 전적인 헌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려고 나아 갈 때에는 온 마음을 다하여서 진실된 회개의 심정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나누어진 반쪽 마음을 받으실 수가 없으시다. 이제, 죄를 진 자는 제사 드릴 제물을 가지고 성소로 향하여 걸어가게 되는 데, 그 때에 그는 성소를 바라보며 희망을 돋구워 주는 세가지 물체를 보게 된다. 하나는 흰 세마포로 만들어진 성소 바깥 벽인데, 그 흰 색깔은 죄인이 성소 안에 머물러 있는한 하나님의 의로 가리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줌으로써 큰 위로를 안겨다 주게 된다. 또 한가지는 번제단에서 타오르고 있는 연기인데, 그것은 죄인이 죄를 자복하기만 하면 자기의 죄가 연기처럼 올라가 버리고 말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가지 눈에 들어 오는 것은 성소 지붕위에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었다. 그것은 성소 안에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다는 엄숙한 마음을 갖게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두렵기만한 분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인간들 가운데 머물기를 즐거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인 사실을 일깨워 준다.

성소에 다다르자 성소의 문을 통과하게 되는데, 그것은 문이라기 보다 휘장이었다. 그 휘장은 붉은 색, 청색, 자주색으로 짜여져 있었다. 붉은 색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 곧 구세주의 흘리실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고, 청색은 그 분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온전하게 지키시는 충성스러운 순종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에게 청색은 언제나 율법에 대한 순종을 상징하였다. 또한 자주색은 왕족들만 입는 색깔로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을 상징한다. 아울러 이 색깔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고 그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서 하늘 왕국의 자녀들이 된다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었다. 양을 끌고 온 죄인은 벌써 이러한 자세한 교훈들과 배려를 통하여서 깊은 감동을 받으며 성소 뜰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를 맞아 들이는 제사장은 그를 친절하게 안내하여 들이며 가져온 제물이 흠이 없는 것인지를 먼저 확인한 후에 성소 의식 절차를 설명하여 주게 된다. 이제 다음 기사에서 성소 뜰 안에서 벌어지는 제사 광경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하자. 그 성소 뜰의 경험은 바로 우리의 회개의 경험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하나님께서 실례로 보여 주신 것이다.

 

3부 - 성소, 구원의 청사진


1. 성소의 제사 제도들 - 그 첫 번째인 번제

성소 뜰에 들어간 죄인은 제사장의 안내에 따라서 가져간 희생 동물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그 머리에 얹고 자기가 지은 죄를 고백하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에 우리의 죄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옮겨지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 죄인은 칼을 꺼내어 양의 목을 따서 죽이는 것이다. 바로 우리의 죄가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만든 것처럼.... 그런 후에 (제사 제도에 있어서 크게 네가지 종류로 나뉘어지게 되는데) 성경 레위기서에 기록된 순서대로 첫번째는 번제, 두번째는 화목제, 세번째는 속죄제, 그 다음으로는 속건제로 나뉘어 진다. A. 번제는 헌신과 희생을 목적으로 드리는 제사요, B. 화목제는 회개한 죄인이 감사와 서약의 의미로 드리는 제사이고, C. 속죄제는 말 그대로 죄를 속하기 위하여 드리는 희생의 제사요, D. 속건제는 속죄제와 같은 종류의 제사로서 손해 배상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제사이다. 그 첫번째인 번제는 개인적으로도 드리는 것이었지만 특히 아침 저녁으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드리게 되어 있었는데, 이 번제는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경험해야 하는 거듭남의 경험이 무엇인지를 상세하게 가르쳐 주는 제사이다.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위기 1:3-9

성소에 있어서의 의식 하나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의미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구원의 경험과 단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번제는 회개와 거듭남의 경험을 실물교훈으로 보여주신 제사제도이다. 죄를 고백한 죄인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위에 있는 번제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대로 희생 동물의 가죽을 벗기는 일이 있게 된다. 왜 그렇게 지시하셨을까? 그것은 회개하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선이나 의에 대하여 무가치함을 깨닫고 자기의 의의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어야 겠다는 소원을 상징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추함과 속절없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겸비의 표현이다. 그리고는 배를 가르고 그 속에 있는 모든 내장을 꺼내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물로 깨끗하게 씻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죄를 고백하였지만, 혹시 또 마음 속에 아직도 숨어 있는 죄가 있을까봐 자기의 마음을 활짝 열어 젖히고 “하나님! 혹시 내 속에 무슨 다른 죄가 있는지 살펴 주세요. 저는 하나님께 전적인 마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생각과 묵상이 주님께 열납되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속의 내장들과 창자들까지도 다 물로 깨끗하게 씻는 것이다. 성경에서 물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그래서 회개한 죄인은 죄만 고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낱낱히 고백한 뒤 포기하여 내어버리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진리의 말씀을 따라 잘못된 부분들을 시정하고 개혁하는 일이 반드시 뒤 따라야 하는 것이다. 형식적인 회개와 쉽게 넘어가는 표면적인 회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죄를 포기하여 버리며 잘못된 생활들을 진리를 따라 바꾸고 개혁하는 철저한 회개를 가르치시기 위한 제사가 곧 번제였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청사진을 비추어 볼 때에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회개가 얼마나 피상적인가!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얼마나 엉터리인가! 오늘날 기독교회의 진정한 문제점은 대부분의 교인들에게 진정한 거듭남의 경험이 없는데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열납받는 회개를 드려야 한다.

2. 속죄제

속죄제는 죄인이 자기의 죄를 용서함 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로서 가장 중요한 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죄없으신 하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하는 사실을 실물교훈을 통하여 분명하게 죄인에게 실감시키는 제사이다. 구속이란 영어로 “Redemption”인데, 그 낱말은“값을 치루고 도로 사옴” 혹은,“값을 치루고 도로 물러 줌”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피는 그 생애에 따라서 가치가 생기는 법이다. 죄를 지은 우리들의 피는 죄를 속하는 힘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죄를 한번도 지은적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보혈이 되어 우리의 모든 죄를 씻는 샘물이 되는 것이다. 율법을 제정하신 창조주의 죄 없으신 피가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흘려짐으로 우리가 다시 새로운 생명 가운데 살게 된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성소 뜰에서 동물을 죽여서 피를 흘리는 제사를 드려야만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도록 계획 하셨을까? 피 흘리는 장면을 보기 좋아하시기 때문이었을까? 그럴리가 없다. 하나님께서 피흘리는 제사의 법칙을 주셨던 이유는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용서가 무슨 댓가를 치룸으로 가능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깊히 인상 짓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렇다! 회개하는 죄인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너그럽게 용서 하신다. 그러나 그 용서를 위하여서 갈바리의 십자가의 댓가를 지불하셔야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동물이 피를 흘리는 장면을 직접 목도하도록 성소제도를 고안하셔서 죄인이 구세주의 사랑과 희생에 대하여 뼈저린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됨으로, 그 결과로, 인간들이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도록 만드시기 위하여 제사제도를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대인들은 성소를, 동물을 잡는 도살장처럼 만들어 버렸다. 제사제도를 마치 죄를 용서받는 면허증처럼 사용하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죄를 그치게 되기를 바라셔서 제사제도를 주신 것이었는데도.... 그들은 다시 죄를 지으면 양을 한마리 또 끌고 오면 된다는 식으로 죄를 짓기에 과감하여 졌던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의 용서를 마치 죄를 짓는 면허증인양 생각하고 죄 짓는 일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처럼....

아담과 해와가 범죄한 직후의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 보자. 그리고 인류의 시조와 하나님 사이에 있었을 법한 다음과 같은 대화를 상상하여 보도록 하자. 이 이야기는 필자가 만든 것이지마는 분명히 그러한 내용의 말들이 오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범죄한 후 떨고 서 있는 아담과 해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아담아! 네 뒤에 있는 동물들을 보느냐?”“예! 하나님! 두 마리의 어린 양들이 뛰 놀고 있군요!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동물들 중 하나입니다.”“그 양들을 불러보렴!” 아담과 해와가 휫파람을 불자 그 두마리의 어린 양들은 껑충 껑충 뛰어와 한 마리는 아담의 품으로 또 다른 한 마리는 해와의 품속으로 안긴다. 그 때 하나님의 아들께서 다시 명령 하신다.

“아담아! 저기에 있는 돌 두개를 집어 오너라!” 영문도 모르고 돌들을 집어오는 아담에게 다시 말씀하신다. “아담아! 그 돌들을 서로 부딪쳐서 깨뜨려라!” 아담이 돌들을 깨뜨리자 하나는 칼처럼 날카롭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다시 명령하신다. “아담아! 이제 그 돌로 그 어린 양의 머리를 힘있게 내리 치거라!” “하나님! 저보고 이 양을 죽이라는 겁니까?” 놀라서 쳐다보는 아담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더 엄숙하게 말씀하신다. “그렇다!” 어떻게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 할 수 있는가! 아담은 명령에 따라 돌을 들어 양의 머리를 내리 쳤다. “더 세게!” 더 세게 내려친 돌을 맞은 죄없는 양이 바르르 떨면서 눈을 크게 뜨며 피를 흘리며 죽어 간다. 죽음의 장면을 처음으로 목격한 아담은 두려움에 질려서 양의 시체를 땅 바닥에 떨어뜨리 며 이렇게 묻는다. “하나님!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 겁니까?” 그 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아담아! 아니다. 너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앞으로 너희를 위하여 내가 저렇게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이야!” 구속의 계획을 한 눈으로 알아차린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외친다. “하나님! 오, 하나님! 그렇게 하시지 마십시요! 우리는 그러한 사랑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오, 주님!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무참한 죽음을 당하셔야 속죄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제부터 죄를 정말로 미워합니다. 어떻게 주님의 마음에 고통을 다시 가져다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오, 하나님!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를 정말로 미워합니다! 다시는 그러한 일을 반복 할 마음이 없습니다!”

속죄제에서는 희생 동물 전체를 번제단에서 태우는 것이 아니라 그 기름만 잘라내어서 태우게 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기름은 죄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되어 없어지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시편 37:20). 그 나머지 시체는 이스라엘 진영 밖에 지정된 장소에 내다가 불로 소각해 버렸는데, 그것은 죄와 분리되지 아니한 죄인들은 결국 새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유황 불로 타서 멸망받게 될 것을 상징한 것이었다 (요한 계시록 20장 참조).

속죄제에 있어서,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이 죄를 범했을 경우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죄를 범했을 경우에는 그 둘을 동일한 크기의 죄로 다루었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제물의 피를 성소 안으로 가져가서 지성소 앞에 있는 휘장 앞 바닥에다가 일곱번 뿌리게 하였다. 그 피를 통하여 죄인이 고백한 죄는 상징적으로 성소로 옮겨지게 되는데, 제사장이 그 죄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중보의 기도를 올려야 죄를 용서 받게 되는 것을 표상하는 것이었다. 레위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제사장의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장 앞에 일곱번 뿌릴 것이며 또 그 피로 회막 안 여호와 앞에 있는 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는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그 기름은 다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르되 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것 같이 할지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라.”레위기 4:16-20. 성경은 제사장이 성소에서 속죄한즉, 다시 말해서 중보기도를 드려야 죄가 사함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상징적으로 성소 안에 뿌려진 피는 죄인의 죄가 성소 안으로 옮기워진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궁극적으로 죄인이 고백한 죄가 하늘 성소에 있는 죄의 기록책으로 옮기어 져서 하늘 성소에 계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죄인을 위하여 중보기도하셔서 죄를 사하여 주시는 일련의 과정을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는 일이 십자가의 죽음에서 다 끝나버렸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인류의 죄를 위한 용서를 마련하신 것이요 또한 구속을 시작하신 것이다. 성소의 번제단으로 표상된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의 죽음으로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마련하신 이후, 당신 자신의 피를 가지고 승천하셔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 우리들을 위하여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중보하시며 당신의 보혈의 은혜와 능력을 제공하고 계신 것이다.

성소제도에 있어서 희생 제물의 피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 피 속에 상징적으로 전가된 죄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했을 경우나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범죄했을 경우는 피가 휘장안으로 옮겨져 뿌려지는데, 평민인 개인이 범죄했을 경우에는 피가 성소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뜰에 있는 번제단 주위에 뿌려 졌으며 죄는 다른 방법으로 옮겨져 중보의 기도를 드리게 되어 있었다. 왜 그랬을까? 거기에는 참으로 감동적인 속죄의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다. 그것이 속죄제가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인데 지면 관계상 그 이야기는 다음 달에 나오는 11호에서 다루기로 하자.


 

눈으로 보는 설교

나는 설교를 귀로 듣기보다는
눈으로 보기를 원한다.
그저 길을 가리켜 주는 설교보다는
나와 함께 걸어 주는 설교자의 모습 보기를 원한다.

눈은 귀보다 더 효과적이고
순종적인 학생이지.
좋은 말은 곧 잊혀지지만,
올바른 모본은 항상 분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지.

가장 훌륭한 설교자는
자신이 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지.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가정과 이웃에게 실천되는 진리를 보는 것이지.

만일 그대가 그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내게 보여 준다면
나도 곧 그대를 따라서 그렇게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거야.
나는 움직이는 그대의 손을 볼 수 있지만
그대의 혀는 손이나 발보다 빠를 수 있거든.

그대의 설교와 가르침이 꼭 필요한 것이고
논리적이고 진실한 것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대가 하는 행동과 살아가는 모습을 봄으로써
어떤 교훈을 얻고 싶군.
왜냐하면, 그대의 설교와 말과 충고는 잘못 이해될 수 있지만,
그대의 움직임과 생활은
누구에게나 오해할 수 없는 증거들로 남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