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고 계십니까?


한 살인자가 사형을 선고 받았다고 가정합시다. 형 집행 날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법 아래 있는 것이며, 죄책감 속에서, 정죄함 아래서, 사형 선고하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형이 집행되기 하루 전에, 대통령이 이 죄수의 형편을 재검토하고 난 후, 용서해 주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대통령이 그 정상을 참작하여 자기의 권한을 이용해서 그 죄수를 완전 석방해 주었습니다. 이제 그는 더는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법은 더 이상 그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는 법률의 고소에 대하여 완전히 죄 없이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자유로이 걸어나갈 수 있으며 어느 경찰이라도 그를 체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은혜 아래 있고 더는 법 아래 있지 않다고 해서 마음대로 법률을 깨뜨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용서를 받은 사람으로서 대통령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법률을 더 잘 순종할 의무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는 남은 생애 동안에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대통령께 대한 감사화 충성의 마음으로 국가의 법을 더욱더 조심스럽게 존중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은혜와 율법에 대한 성경이 말하는 바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31. 여기에 모든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변이 있습니다. 이 성결 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다고 해서 율법을 더는 소용없는 것으로 폐할 수 있는가?”라고 우리에게 질문하면서 스스로 대답하기를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생애에서는 율법이 세워지고 재강조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은혜, 법 그리고 믿음이 구원에 미치는 관계는 아주 단순하고 명확해서 재차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율법에 순종하기를 피하려고 교묘히 이유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때문에 조금 더 이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속도 위반으로 경찰에게 붙들린 경험이 있으십니까? 여러분 자신이 법을 범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여러분은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경찰이 법규위반 보고서를 쓰고 있는 동안, 아마 여러분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매우 급한 사정 때문에 속도 위반을 하게 되었다고 경찰에게 호소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경찰관은 자신이 쓰고 있던 보고서 용지를 천천히 접더니 찢어 버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좋습니다. 이번만큼은 용서해 드리지요. 그러나...” 경찰이 말한 “그러나...”라는 말에는 무슨 뜻이 내포되어 있을까요? 두말할 나위 없이 “그러나 다시는 속도 위반하면 안됩니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지요. 경찰의 이러한 용서(은혜)가 여러분에게 법을 불순종해도 좋다는 길을 열어 줍니까? 아니면 그와 반대로 다시는 법을 어기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마음을 변화시켜 줍니까? 물론, 그 경찰관의 자비로운 용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회개의 정신을 깊이 새겨 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마련된 은혜 때문에 죄를 용서 받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용서받고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나는 은혜 아래 있으니 더 이상 십계명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순종의 삶을 살게 되는 이유

오래 전에 미국 뉴올린즈 노예 시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은혜와 율법의 관계에 대한 참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두 명의 목화밭 주인들이 반항적인 음성으로 소리지르고 있는 어떤 쓸모없는 흑인 노예를 노예 시장에서 경매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한 농장 주인이 경매에 이겨서 그 노예를 마차에 태우고 농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동안, 그 흑인 노예는 반항적인 말투로 새 주인을 위하여 일하지 않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농장에 도착하는 순간, 그 주인은 새로 산 노예의 손에서 사슬을 풀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자유요. 당신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오. 나는 당신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비싼 값을 치르고 당신을 사 온 것이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흑인 노예는 농장 주인의 발 밑에 엎드려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주인님! 나는 당신의 명령을 순종하면서 영원토록 섬기기 원합니다.”

그 흑인 노예와 같이, 인류도 죄의 속박과 정죄와 죽음 가운데 노예로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희망 없는 노예 상태로 있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주님껫 큰 희생을 치르신 것은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구속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당신께서 나를 위하여 이렇게 은혜를 베푸셨으니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제부터 내 평생 동안 당신만을 충성스럽게 섬기겠습니다.”

인류가 율법을 범하는 죄를 지었을 때, 즉시로 율법은 죄의 대가로서 인간에게 죽음을 요구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에게 선고된 죄이 대가를 대신 감당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삵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 6:23).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의 율법이 폐하여 질 수 있는 성질의 법이었다면, 율법이 죄의 대가로서 요구하는 형벌도 없애버릴 수 있었을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택하지 않았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리라” 로마서 4:15. 율법의 권위는 영원 불변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도 그것을 폐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를 죽음으로 내어 주시면서까지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도 폐하실 수 없는 율법을 폐지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엄숙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는 하나님의 율법과 은혜를 잘 설명해 주는 좋은 예화가 됩니다. 아버지는 판사였습니다. 어느 날, 그의 아들이 법을 범한 죄수로서 판사인 아버지 앞에 끌려왔습니다. 나타난 모든 증거들을 볼 때, 자기 아들은 분명히 유죄였습니다. 법정 안에는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판사가 이러한 경우에도 공정하고 의로운 재판을 할 수 있을까? 판사는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엄숙하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리고는 법에 따라서 최고의 벌금형을 부과했을 때에 법정 안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판사는 즉시로 내려와서 아들을 끌어안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너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러나 너에게는 그렇게 많은 벌금을 낼 만한 돈이 없지?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를 대신하여 모든 벌금을 갚아 줄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줍니다. 죄인인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용서를 받았지만, 법률이 요구하는 형벌을 면제받지는 못했습니다. 판사인 아버지는 벌금을 대신 갚아줌으로써, 버을 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법의 권위를 더욱더 높였습니다. 그 판사는 법을 범한 죄인은 어떤 사람도 법률이 요구하는 형벌을 결코 면할 수 없다는 진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하여 율법을 폐하지 않으셨으며, 또한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법은 높여져야만 했고, 최고형이 선고되었으며, 형벌에 대한 값은 지불되어야만 했습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아들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당신의 공의만큼이나 완전한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죄이 형벌을 대신 지심으로써, 율법이 요구하는 형벌을 만족시키심으로써 모든 인류들 앞에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폐하여질 수 없는 십계명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취하셨던 하나님의 엄숙한 결정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온 우주 앞에서 율법의 권위와 존엄성을 옹호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더 확신 있고 반박할 수 없는 논증을 제시할 수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잘못 오도된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자신도 존중하시는 율법을 격하시키고 무시함으로써 하나님의 권위를 격하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우신 사랑의 성품을 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폐한다고 하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을 대적하는 음모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율법인 십계명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해 보십시오. 율법은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이며, 그분의 성품을 반사하는 것입니다. 만일 진실로, 여러분의 신앙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한다면, 율법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성품에 여러분의 생확과 양심을 반사시켜 보십시오. 아마도 여러분은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의 완전한 표준대로 살 수 없다는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죄로부터 구원해 줄 구세주를 간절히 필요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러분의 눈을 그리스도께로 돌려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은혜)를 달라고 간청하십시오. 그리고 의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실 수 있는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에 초청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심으로써,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사도 바울과 함께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은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어떤 천사의 편지


나는 어떤 인간 친구를 보호하며 관찰하는 천사랍니다. 그 친구는 지금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있답니다. 한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그 친구가 자신의 입장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꼭 그러한 상황에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 자신의 선택의 결과로 인하여 그렇게 되었답니다. 이 글은 나의 인간 친구에게 보내는 마지막 호소의 편지인데, 돈을 사랑하고 있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교훈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나의 편지는 그 친구가 가난과 싸우던 시절부터 시작됩니다.


유혹의 시작: 친구야, 나는 너의 믿음이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하늘을 향하여 뻗어나가던 때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단다. 오직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던 너의 신앙은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엄숙한 경고가 되었지. 네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가난과 싸우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구나. 너는 암담한 장래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지. 하나님께서 너의 상심한 마음을 위로해 주셨고, 네 마음 속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 넣어 주셨던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단다. 그 당시, 하나님은 네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분이였지. 가장 고달픈 환경 하에서도, 너는 항상 그분의 위로와 사랑을 맛보면서 살았었지. 그 때, 너는 정말 그리스도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살았었단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네게로부터 부를 향하여 올라가는 욕망의 꿈틀거림을 보게 되었단다. 물론, 너는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을 하였지. “만일 내가 재물을 모은다면, 나는 그것을 헛되게 낭비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인색한 구두쇠 부자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모본을 보여줄 거야. 그들에게 재산을 선한 일에 사용하였을 때에 따라오는 하나님의 축복을 보여줘야지.” 너의 욕망은 돈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돈을 사용하는 선한 방법에 있었지. 재물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자들이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의 필요에 대해서 눈을 감는 모습을 보면서, 너는“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행한바대로 그들에게 갚으실 것이다”라고 생각했었지. 부자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이기심으로 꽁꽁 동여매는 모습을 보면서, 너는 그들이야말로 정말 가난하고 궁핍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했지. 너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눈으로 바라보았지.

너는, 돈 많은 장노님과 세속적인 집사님들이 세상에서 얻은 부와 명예를 교회 안까지 가지고 들어와서 힘을 과시하며, 하나님의 사업을 그들의 세상적인 재치와 수학적인 판단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보면서 한탄했지. 너는 네가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러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였지. “만일 나에게 돈이 있다면, 그러한 부자들에게 날카로운 경고와 책망을 주는 방법으로 돈을 사용할 것이야”라고 맹세했었지. 바로 이러한 모습이 부에 대한 욕망이 너의 마음 속에 자리잡기 시작하던 때의 모습이란다.


시험받는 마음: 그때까지는 너는 가난과 고난을 통하여 시험받았지만, 너는 나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님의 손을 굳게 붙잡고 있었단다. 너는 하나님의 영을 대항하는 생각과 계획을 품지 않았단다. 그러나 일단 부에 대한 욕망이 너의 마음 속에서 시작되면서부터, 너는 부와 번영으로 시험받게 되었지. 그것은 네게 있어서 전혀 새로운 시험이었단다. 너는 네 자신도 잘 모르고 있던 네 마음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지. 나는, 돈이야말로 그때까지 네가 만났던 원수 중에서 가장 위험한 원수라는 사실을 네가 깨닫게 되기를 바랐단다. 나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네가 재물의 기만적인 성질을 올바로 보게 되기를 소원하셨단다. 너는 너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이기심을 과소 평가하였지. 너는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정신, 과시, 자만, 그리고 사람들의 칭찬 같은 것들에는 결코 시험받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지.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덫이라는 사실을 너는 모르고 있었단다.

얼마 후, 네 앞에는 재물을 모을 수 있는 기회가 열렸지. 드디어, 네가 재물을 하나님의 사업과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지. 네가 마음 속으로 그토록 다짐했던 그 일이 네게 벌어졌지. 그 순간 나는 매우 긴장된 마음으로 너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단다. 하나님께 결정적으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네게 왔던 것이었지.

그러나 재물이 너의 손에 들어오자, 너는 무의식 중에 점차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가기 시작했단다. 너는 네 자신의 편리함과 안락함을 위해서, 좋은 집과 비싼 차와 아름다운 가구로 네 주위를 둘러 싸기 시작했단다. 나는 너의 그러한 모습을 슬픔으로 바라보았단다. 나의 슬픔에 찬 눈길도 아랑곳하지 않고 너는 너의 길을 고집했었지. 너의 주머니에 돈이 채워지자, 너는 네가 과거에 결심했던바를 실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완전히 잊어버린 것같이 살았지. 재물이 가지고 있는 기만이 너를 정복하였으며, 너는 네가 목적하던바로부터 서서히 떨어져 나갔단다. 사람들이 너의 주변에 몰려들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미치는 너의 영향력이 확장되었지. 처절하게 가난하였던 네가 어려움으로부터 해방되자, 사람들은 너에게 영광을 돌리면서“당신은 성공했습니다”라는 말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되었으며, 너는 비천한 인생들의 입술로부터 나오는 칭찬에 매료되게 되었지. 너는 부자들의 모임에 쫓아다니기에 바빴으며, 네 자신의 위치에 걸맞게 살아가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지. 너는 하나님의 눈보다는 사람들의 눈과 평판에 더욱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고, 그들의 판단과 의견에 따라서 너의 인생이 움직이게 되었지. 너는“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너에게 주어진 재물을 사용하였지. 나는 그러한 너의 모습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하나님께 올릴 수 밖에 없었단다. “제가 지키는 인간 친구는 자신만을 영화롭게 하였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너는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값비싼 물건들을 살 수 있는 자신의 부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단다. 가난한 형제들과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다정하고 동정적이었던 네가, 이제는 그들과의 교제를 피하고 불편해하게 되었단다. 부디, 네 마음 속에 일어났던 이러한 변화를 깨달아야 할텐데....


위기의 순간: 너의 은행 계좌에 쌓이는 돈의 양에 비례하여, 너의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단순한 신뢰심은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물론, 너는 한순간에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았어. 너의 타락은 점진적인 것이었지. 날마다 드리던 아침 예배를 소홀히 여기게 되었고, 결국에는 너무 바쁘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폐지하게 되었지. 부에 대한 너의 자부심은 자존심을 부채질하였으며, 바쁘고 이기적인 생활은 너를 점점 더 초조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단다. 네 자신의 성격의 거친 면들이 가족들 사이에 빈번히 노출됨에 따라서, 가족 예배 시간은 너에게 있어서 매우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이 되었단다. 그 무렵부터 너의 가정은 기도가 없는 가정이 되었단다. 네가 하는 사업과 장사가 최우선이 되었으며, 주님과 그분의 진리를 따라가는 일은 부수적인 일이 되어 버렸지. 과거의 너는 정말 진실한 그리스도인이었는데.... 과거에는, 너의 모습을 악한 천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나의 최고의 기쁨이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너의 생애를 손가락질하며 지금까지 너를 위하여 바쳐온 나의 봉사를 비웃고 있단다. 과거에는, 그들이 던져주는 모든 시험과 유혹에서 네가 승리할 때마다, 그들은 날개를 감추고 어둠 속으로 도망쳐 버렸단다. 아, 그 때는 정말 통쾌했었단다! 그러나, 이제는 네가 그들의 절친한 친구로 변모해 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구나.

더 이상 소리내어 기도를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으며, 네가 가정에 미치는 거룩한 감화력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단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던 너의 모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네 자신의 죄와 가족들의 죄를 하나님께 고하는 가족 제사장의 역할을 계속 수행했어야만 했단다. 너를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지혜를 계속 간구하면서 전진했어야 했단다. 그러나 너의 재물은 과시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단다. 과거에 다른 사람들이 자기 과시를 위해서 재물을 사용하였을 때, 그들에 대해서 깊은 슬픔을 느꼈던 일을 기억하니? 재물이 가지고 있는 마력이 너의 이성과 양심을 마비시켰단다.

사실상, 너는 너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재물을 도적질하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단다. 하나님께서 네게 허락한 재물을 너는 마치 네 것인양 마음대로 사용하였단다. 그러한 너의 모습을 보시면서, 마침내 주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이제 나는 흩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그가 자신이 선택할 길을 걷도록 허용할 것이다. 그의 판단력이 흐려지고, 지혜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무력하며, 무능한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그를 낮출 것이며, 그의 눈을 열어서 그가 나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가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가 나를 전심으로 찾지 않거나 모든 면에 있어서 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의 손이 그를 흩을 것이다. 그와 그의 자녀들의 교만을 낮추기 위해서, 가난이 다시 그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의 가정에서 나의 이름은 다시 높여져야만 한다. 인간의 자고함은 낮아져야 하며, 교만함은 무너져야 한다.”

과거에 네가 가난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너에게 영향력의 달란트를 주셨지만, 재물의 달란트는 주지 않으셨단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가난 중에 있던 네가 재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없음을 알고 계셨단다. 그러나 그 당시, 너는 너의 처지나 형편에 비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나누었지. 네가 병중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너에게 전처럼 왕성한 봉사 활동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단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건강과 재물에 있어서 너무나 제한된 상태에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네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나누어 주라고 명하지 않으셨단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가지고 있는 것에 따라서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헌신하였던 너의 마음을 기쁨으로 받으셨단다. 하나님께서는 너의 하잘 것없는 헌물일지라도 결코 멸시하지 않으셨단다.

너는 열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단다. 선한 일에 있어서 나타났던 너의 열성은 정말 칭찬을 받을만한 것이었지. 고난과 가난함의 경험을 통하여, 너는 고난당하는 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되었단다. 너는 하나님의 진리에 전심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실제적이었으며, 마음에 와서 닿는 것이었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가 너의 삶의 모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너의 열렬한 호소를 정직한 것으로 받아들였단다. 진리를 전하는 너의 말에는 매우 강력한 힘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너의 말과 행동과 생활이 네가 전하는 진리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정하였기 때문이란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너의 영향력은 확장되었으며, 또한 재물의 달란트까지 받게 되었단다. 하나님께서는 너에게 재물을 허락하심으로써, 진정한 너의 마음을 시험하기로 하셨단다. 재물이 많거나 적거나를 불문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너의 모습을 사단과 그의 천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으며,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너의 성품과 믿음이 높이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단다. 그리하여 너는 무거운 의무를 실행해야 되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란다.

그러나 너의 경제적인 생활이 향상되자, 너는“먼저 아담한 집을 장만한 다음에 하나님의 사업에 재물을 드려야지”라고 말하였지. 그렇지만 일단 집을 소유하게 되자, 너는 집안을 편리하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돈을 사용하였지. 너는 너에게 부과된 의무와 책임을 잊어버렸으며, 오히려 가난하던 시절보다 하나님의 사업을 전진시키고자 하는 정열이 감소되었단다. 너는 세상과 친구 관계를 맺었으며, 하나님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라는 주님의 경고를 까맣게 잊어버렸단다(눅 21:34). 너는 재물에 대한 시험을 넉넉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것이 실제로 너에게 다가오자 너는 철저하게 실패하고 말았단다. “그런 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12

사단이 너의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항상 기억해야 할 네가지 표어가 있단다. “깨어라. 성경의 진리를 연구하라. 기도하라. 일하라.” 거룩한 생애를 유지하려면, 기도와 경성이 요구된단다. 너의 유일한 안전책은 이 세상을 파수꾼처럼 살아가는데에 있단다.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 너는 네가 가난하였을 때에 가장 많은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그 때에 너는 다른 영혼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단다. 그러나 이제 너는 많은 돈과 높은 명예를 얻어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

사랑하는 친구야, 사람들이 너의 재물에 대해서 던지는 찬사와, 그러한 말을 들으면서 너도 모르는 사이에 높이 올라간 우쭐대는 정신은, 네가 인식하고 있는 이상으로 너를 심각하게 망가뜨렸단다. 너는 본성적으로 정이 많고, 너그러운 성격을 가졌단다. 그러한 특성이 아직도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지만, 네 자신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단다. 네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네 자신을 높이는 정신과, 재물에 대한 애착심이 숨겨져 있단다. 친구야, 지금 즉시 이기심의 늪에서 나와야 한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허락하신 재물을 다시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함으로써, 네 자신을 축복의 통로로 만들어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적 죽음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네가 아무리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 칠지라도....


마지막 기회: 친구야, 너는 지금 네가 영향력의 달란트와 재물의 달란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단다. 너에게 맡겨진 책임과 의무가 막중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단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계획해야만 한단다. 너의 인간적인 꾀를 버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지혜를 간구해라. 하나님께서 너에게 두 세계를 보여주고자 하신 계획이 성취되었단다. 너는 가난한 자와 부자의 세계를 보았으며, 하늘이 주는 평화와 세상이 주는 만족을 맛보았지. 하늘의 가치와 이 세상의 가치를 저울질해 보아라. 이제, 너는 두 세계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할 순간을 맞이 하였단다. 너를 에워싸고 있는 흑암의 세력을 물리칠 것인지, 아니면 그 세력과 손을 잡고서 이 세상을 멋지게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때가 되었단다. 사랑하는 친구야, 아직도 돌이킬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있단다. 너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라. 바로 그것이 너를 향한 하나님의 요구이시다. 너의 마음은 아직 성령의 감화에 대항할만큼 굳어지거나 완악해지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진리가 네 앞에 제시될 때마다 너의 마음이 아직도 움직이며 반응을 나타내고 있음을 나는 안단다. 부디, 너무 늦기 전에 네가 걷고 있는 길에서 돌아서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커다란 가치를 지닌 사람은 겸손과 온유로 채워진 영혼이란다. 다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헌신해라. 그리하면 잃어버렸던 너의 확신과 영향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친구야, 만일 네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면, 너도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말을 할 수 있단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5-39

골다공증


현대인들의 식생활과 생활 스타일이 급격하게 변화됨에 따라서 급증하고 있는 질병 가운데 하나가 골다공증이다.

껴안을 때에 갈비 뼈를 조심하고, 악수할 때에 손 뼈를 조심하며, 앉을 때에 엉덩이 뼈를 조심하라는 심각한 농담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골다공증은 현대인의 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골다공증이란 뼈의 조직이 감소됨으로써, 뼈가 약해지는 질병을 말하는데, 이것은 뼈 조직의 생성과 파괴의 비율이 균형을 잃어버리는 결과로 생기는 현상이다. 가장 일반적인 증세는 뼈의 통증, 뼈의 변형, 그리고 뼈가 쉽게 부러지거나 깨지는 것이다. 50-70세의 남성들에게도 발병되지만, 폐경기 이후의 여성들에게 가장 많이 일어나는 질병 중의 하나이다.


A. 운동과 골다공증


#. 여러가지 연구를 통하여, 운동은 뼈의 형성을 도와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서, 일반적으로 운동량이 감소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노인층에게 골다공증이 많이 생기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젊은 시절에 운동을 많이 하고, 나이가 들면서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계속해서 하는 것이야말로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좋은 대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미항공우주국의 고문으로 일했던 도날드 위든 박사는, 하루에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3시간 동안 서있는 것도 칼슘의 밸런스(균형)에 좋은 효과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또한 그는 하루에 4시간 동안 서있고 나머지 20시간은 침대에서 휴식만을 취한다고 할지라도, 칼슘의 손실을 막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위든 박사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서, 뼈의 무게를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운동은 뼈에 중력 방향의 힘을 가하게 되는 운동, 즉 걷거나 뛰는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뼈에 가하여지는 수직 방향의 중력을 제거하면, 뼈 안에 있는 칼슘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미우주인들은 그들이 우주에서 운동을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8일 동안의 우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뼈의 칼슘의 손실 정도를 측정해보았더니 하루에 200mg 씩 칼슘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체가 무중력 상태에 들어갈 경우, 뼈는 즉시로 칼슘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 뼈에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정도에 따라서 뼈의 크기와 밀도가 증가된다. 날마다 정상적으로 하는 활동을 통해서도 뼈의 무게는 증가될 수 있다. 한꺼번에 많은 운동을 하는 것보다는 적당한 운동을 자주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 오랜 시간 동안, 침대에서 생활해야 되는 환자의 경우, 뼈의 칼슘 밸런스가 악화될 수 있다. 기부스를 한 뼈나 관절염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뼈에도 국부적으로 골다공증이 생길 수 있다. 반신불수 환자의 경우, 마비된 쪽의 뼈에 골다공증이 생겨서 쉽게 부러지는 위험이 증가된다.

#. 육체적인 일을 많이 하는 중국이나 만주 여인들은 운동량이 부족한 서구의 여인들보다 골다공증에 걸리는 위험도가 낮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 사람들보다 뼈의 밀도가 높다.

#. 양로원에 살고 있는 69-95세의 노인 여성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에게는 하루에 30분씩 일주일에 3번 적당한 운동을 시켰고, 다른 그룹에게는 운동을 시키지 않았다. 실험이 끝나갈 무렵에 두 그룹을 비교 검사한 결과, 운동을 한 노인 여성 그룹이 운동을 하지 않은 그룹보다 뼈의 손실률이 낮은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 갱년기를 맞은 여성들을 9명씩 두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은 1년동안 하루에 한시간씩 일주일에 3일간 운동하였으며, 다른 그룹은 평상시의 활동량을 그대로 유지하였고, 두 그룹 모두 그들의 일상적인 식단으로 식사를 하였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한 그룹에 속한 여성들의 총칼슘량이 증가된 반면, 다른 그룹은 저하되었다.


B. 단백질과 골다공증


#. 단백질의 섭취량은 체내의 칼슘 수치에 영향을 미친다. 위스컨신 대학에서 있었던 실험 결과를 통하여, 고단백질 식사가 칼슘의 손실을 가져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현대인들은 육식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단백질을 과다하게 섭취하게 된다. 식사가 거의 육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에스키모인 노인들은 같은 나이의 백인들보다 뼈의 무기질 함유량이 심각할 정도로 낮다.

#. 60-90세 사이의 채식가와 육식가를 상대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육식가의 뼈속 무기질 함유량이 35% 감소된 반면에, 채식가는 단지 18% 감소되었다. 동일한 실험을 나이가 젊은 채식가와 육식가에게 시도한 결과, 거의 유사한 결과를 얻었다. 그러므로 뼈속 무기질의 감소율은 어떤 것을 먹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으로 결론내릴 수 있다.

#. 고기에 함유되어 있는 과량의 인은 단백질로 하여금 체내로부터 더 많은 칼슘을 빼앗아가도록 도와 주는 역할을 한다. 인이 많이 들어 있는 식품을 동물에게 섭취시킨 결과, 골다공증이 생성되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

#. 쥐에게 오랜 기간동안 산을 투여하면, 골다공증에 걸리는 반면, 알칼리를 투여하면 칼슘의 손실을 막을 수 있다. 동물성 단백질과 소다수는 다량의 인을 함유하고 있으며, 산-재 식품(acid-ash food)으로 알려져 있다. 플럼(plum), 크랜베리, 자두(푸룬)을 제외한 대부분의 채소와 과일은 알칼리-재 식품(alkaline-ash food)이다.


C. 탄수화물과 골다공증

실험 동물에게 고탄수화물(자당, sucrose 56%)의 식사를 6주 동안 공급한 결과, 뼈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설탕은 골다공증을 일으키는 원인 임에 틀림없다.

D. 칼슘과 골다공증

#. 지난 수년 동안, 의사들은 골다공증이 칼슘의 부족으로 인하여 유발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이론은 입증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섭취하는 총 칼슘의 2/3는 체내에서 흡수되지 않고 대변을 통하여 배출된다. 칼슘 섭취량을 증가시키는 것보다는 몸밖으로 배출되는 칼슘의 양을 줄이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치료 방법이다.

#. 우유를 마시는 사람과 우유를 마시지 않는 사람의 뼈의 밀도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조사 결과가 이미 1973년에 발표되었다. 실제에 있어서, 긴 뼈의 골절은 우유를 마시는 사람에게서 훨씬 더 많이 생긴다. 이것은 우유를 마시는 것이 골다공증에 오히려 유해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 여러가지 실험 연구 결과들은 칼슘의 섭취량과 골다공증 사이에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골다공증은 평균치 이상으로 칼슘을 섭취하는 사람들에게도 발생되기 때문에, 뼈의 조직 변화는 칼슘의 섭취량과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장의 칼슘 흡수량이 감소됨에 따라 생기는 칼슘의 보유량의 저하 현상이 노년층의 사람들에게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골다공증이 발병되지 않는다. 칼슘의 부족이 골다공증을 초래한다면, 왜 이러한 사람들에게 골다공증이 발생되지 않는가?

#. 비타민 D가 부족하지 않는 한, 하루에 평균 300mg 정도의 칼슘(1일 권장량의 절반 이하)을 섭취하는 사람들에게도 뼈가 제대로 형성된다. 페루의 감옥소에 있는 죄수들은 하루에 0.2-0.3 그램 정도의 칼슘을 섭취함에도 불구하고, 대사작용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칼슘 흡수와 그 보유량의 변화가 골다공증과 어느 정도 관련 있다고 가정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골다공증의 주요 원인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골다공증의 발병에 어느 정도 기여한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Wyngaarden. op. cit. pp 1331.


지방과 골다공증

#. 늙은 쥐와 햄스터(쥐의 일종)를 대상으로 한 9차례의 실험을 통하여, 칼슘의 손실은 지방의 섭취량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지방식은 저지방식보다 칼슘의 손실을 4배 이상 높여 준다.

#. 지방의 경도(hardness)는 칼슘의 배출량에 영향을 미친다. 소기름은 옥수수 기름보다 몸밖으로 배출되는 칼슘의 손실량을 훨씬 더 증가시킨다.

#. 복합 불포화 상태의 마아가린은 성장 과정에 있는 쥐의 뼈로부터 일정량의 무기질을 빼앗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광과 골다공증


#. 태양욕에 의해서 생성되는 비타민 D는 골다공증의 예방에 매우 중요하다. 1일 권장량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양의 칼슘을 섭취하는 사람들일지라도 비타민 D를 적당하게 공급받는다면, 골다공증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 태양빛을 받는 시간과 골다공증의 발병률은 역비례 관계에 있다. 그러나 비타민 D 정제를 계속해서 과량으로 먹을 경우, 오히려 뼈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흡연과 골다공증


#. 한 연구 보고서는 골다공증에 시달리는 중년 남녀들을 조사한 결과, 그들의 흡연량이 매우 많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여성 흡연가들의 경우, 담배가 결과적으로 난소의 파손을 가져오기 때문에 갱년기를 일찍 맞이하게 된다.


골다공증의 치료법

1. 환자들은 등뼈를 받쳐주는 딱딱한 잠자리에서 자야한다.

2. 어떠한 경우에도 과로를 피해야 한다.

3. 무거운 물건을 들지 말 것. 신체의 어느 한쪽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가벼운 물건일지라도 양손으로 들어 올려야 한다.

4. 에스트로겐의 사용을 삼가하라. 에스트로겐을 사용하는 치료법이 처음에는 뼈의 형성을 돕지만, 궁극적으로는 뼈의 형성을 저해하며, 부갑상선 홀몬에 대한 반응을 감소시킨다. 에스트로겐은 유방암, 뇌졸증, 그리고 심장 마비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5. 비타민 C가 풍부한 신선한 과일과 날채소를 많이 섭취할 것. 비타민 C의 만성적인 결핍은 골다공증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6. 넘어지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주변 환경을 잘 정돈해야 한다.

7. 운동은 뼈에서 무기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억제해주며, 뼈의 성장을 촉진시킬 뿐 아니라, 근육을 강화시켜 줌으로써 뼈가 받는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8. 매일 옥외에서의 운동은 비타민 D를 공급해 주며, 조골 세포를 자극함으로써 뼈의 조직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9. 불소 화합물(fluoride)은 골다공증의 예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지만, 과량으로 사용하면 오히려 해로운 독소가 된다. 하루에 16mg 정도의 소량의 불화나트륨도 비정상적인 골수 세포를 만든다. 불소 화합물은 모든 종류의 음식물과 수도물에 극소량 포함되어 있다.

10. 헤파린, 콜티코스터로이드(corticosteroids), 커피, 알루미늄 성분을 포함한 제산제(antacid), 담배, 그리고 술 등은 인체의 칼슘 요구량을 증가시키므로 금해야 한다.

11. 추위와 냉기를 피하라. 쥐를 저온 상태의 방에 놓았더니, 뼈의 밀도가 저하되었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12. 음주 행위는 뼈의 밀도를 저하시키고, 골다공증의 유발을 돕는다.

아침 식사에 숨겨져 있는 건강의 비결


하루 세 끼 중 어떤 식사가 가장 중요한 식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가? “어떤 식사를 가장 많이 먹어야 하고, 어떤 식사를 가장 적게 먹어야 할까?”라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가?

아침 식사야말로, 가장 중요한 식사라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아침에 먼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연료 탱크가 비어있다면, 연료를 채워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넣어야 하는가? 아니면, 여행을 다녀 온 후에 넣어야 하는가? 물론,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연료 탱크에 고옥탄가의 기름을 넣고 출발해야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하루의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아침 식사를 충분하게 해야 한다. 하루의 생활을 끝마치고 쉬는 시간인 저녁보다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더 많은 양의 식사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아침 식사는 왕처럼

다음과 같은 옛 격언에서, 놀라운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아침 식사는 왕처럼, 점심 식사는 왕자처럼, 저녁 식사는 거지처럼 하라.” 영어에서 아침 식사(break-fast)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처럼, 아침 식사는 하루밤 동안의 금식(fast)을 끝내는( break) 식사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금식을 끝내야 할 시간에 끝내지 않고 계속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아침 식사는 건너 뛰고, 점심 식사를는 패스트 푸드로 간단히 떼운 다음, 저녁 식사에 가장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는 정반대의 생활을 하고 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연료를 넣는 대신에,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쉬어야 할 시간에 위장에 음식을 가득 채움으로써, 온 내장은 소화를 위해서 풀 가동하게 된다. 이러한 습관은 인체에 말할 수 없는 부담을 안겨주게 된다.

신체에 적절하게 공급되는 음식과, 그것에 의해서 유지되는 혈당치는 신체의 안정와 균형을 파악하는데 사용되는 기준치들 중의 하나이다. 혈당치는 식사를 하자마자 즉시로 상승하지 않는다. 식사 후, 혈당은 글리코겐이라고 불리우는 저장 형태로서 근육이나 간에 스며들어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간에 있는 글리코겐이 혈당으로 전환된다. 밤 시간 동안, 신체의 필요를 채워주는 혈당을 안정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간에 저장되어 있는 글리코겐이 방출된다. 그런데, 만일 아침 식사를 먹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신체에 문제가 생기는데, 특히 뇌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당(glucose)이 적당하게 공급되지 않으면, 뇌는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을 경우, 어린 아이와 어른 모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의 발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건너 뛰는 사람들

아침 식사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침 식사를 건너 뛰고 있다. 약 20%의 학생들이 아침 식사를 먹지 않은채 학교에 가고 있다. 아침 식사를 습관적으로 걸르는 것은 어른들에게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더 위험한 일이다. 어린아이들의 경우, 어른들보다 뇌의 무게와 간의 무게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아침 식사를 하지 않으면, 혈당이 훨씬 더 많이 떨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어린아이들의 간은 적은 양의 글리코겐을 저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어른들만큼 오랜 시간동안 적당한 혈당치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또한 어린아이들의 대사작용이 훨씬 더 왕성하기 때문에, 혈당에 대한 뇌의 요구 역시 어른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훨씬 높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뇌의 기능은 저하된다는 사실이다. 아침 식사는 점심 식사 시간 전까지 필요되는 연료를 공급하는 중요한 공급원이라는 사실을 잊지말라. 어린아이들의 경우, 아침 식사를 하지 않으면, 두뇌가 명민하게 회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하여 밝혀졌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아이들은 실수를 많이 범하게 되며, 문제를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밤에 연료 탱크를 채우는 사람들이 받는 재앙

아침 식사를 먹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밤에 많은 양의 음식을 위장에 넣고 자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시간에는 금식을 하고, 편히 누워서 잠을 자는 시간에는 가장 많은 음식을 위장에 채우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에너지를 사용하는 양에 따라서 섭취하는 음식의 양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몸 안으로 들어가는 에너지의 양이 몸 밖으로 빠져 나가는 에너지의 양보다 계속적으로 많을 경우, 어떤 일이 생기겠는가? 무엇보다도, 몸무게가 올라가게 된다. 저녁 시간에 필요한 에너지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라. 텔레비젼 시청, 가족들이나 친구들과의 대화, 소파에서 편히 쉬기, 신문 보기, 전화 하기, 등등. 영양학적인 면에서 볼 때, 신체가 요구하는 에너지의 요구량이 가장 적은 하루의 마지막 시간에 가장 많은 음식을 먹을 경우, 나머지 여분의 칼로리는 지방으로 전화되어서 신체의 곳곳에 쌓이게 된다.

아침 식사는 하루에 필요되는 에너지의 1/3 - 1/2 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아침 식사를 습관적으로 거를 경우, 비타민과 무기질이 결핍될 수 있다.

아침 식사 습관과 건강

비만은 이제 거의 모든 현대인들의 가정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되었다. 지방이 적게 들어 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애쓰지만, 체중이 점점 더 올라가는 문제에 봉착되어 있다. 한가지 흥미있는 사실이 발표되었는데, 아침 식사를 먹는 사람들보다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많은(약 2배) 비만증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 식사를 먹지 않는 것이 비만과 관련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침 식사를 하지 않을 경우,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잦은 간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대개 간식은 설탕이나 지방이 많이 함유된 인스턴트 식품으로 하게 된다. 도우넛, 캔디, 쿠키, 칩스, 컵라면, 등등.

캘리포니아와 미시간 주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침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건강하다는 보고가 발표되었다. 또한, 아침 식사를 먹는 사람들의 콜레스테롤치가 아침 식사를 먹지 않는 사람들의 수치보다 낮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바람직한 아침 식사의 구성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침 식사는 풍성하게 차려져야 하며,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와 단백질의 30-50%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아침 식사는 탄수화물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야만, 뇌와 신체가 필요로 하는 고품질 연료인 글루코스를 충분하게 공급할 수 있다. 이러한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아침 식사가 현미밥, 통밀빵, 콩, 야채, 과일 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현미밥과 신선한 야채 반찬류, 또는 통밀빵이나 곡류로 만든 와풀(waffle)과 과일 종류로 식단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분은 생과일이나 말린 과일 속에 섬유질에 감싸진 형태로 섭취할 수 있다.

또한 아침마다 위장에 따뜻한 음식을 넣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위가 약한 사람들은 아침에 차가운 음식을 먹을 경우, 여러가지 문제를 갖게 된다.

아침 식사를 이러한 식으로 할 경우,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 그리고 섬유질, 단백질, 전분, 등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로 짜여진 건강한 아침 식사는 각종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으며, 장에 생기는 암세포를 막을 수 있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고,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적은 아침 식사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에너지 공급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달걀, 베이컨, 쏘세지, 등은 혈관을 막히게 하는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또한 계란과 우유로 만는 팬케익과 프렌취 토스트에 버터나 크림을 발라서 먹을 경우, 심장에 해로운 아침 식사가 된다.

결론

건강하게 차려진 아침 식사야말로 건강한 삶을 위한 기초석이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을 경우, 오전에 노곤한 피로감을 느끼게 되며, 정신 능력이 저하되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이 증가하게 된다. 따뜻하고 신선하게 차려진 아침 식사를 규칙적으로 해보라. 자신의 건강과 생활에 나타나는 변화의 경험을 이웃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기사는 Health & Healing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서론 - 비밀 휴거를 성경으로 재검토한다!


세상의 도덕이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타락해 가고 있으며, 자원이 고갈되고, 천연 재해가 빈번해지며, 불치의 질병이 난무함에 따라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세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까지도, 세상의 종말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증폭되어 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재림이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기에, 신약성경에만 331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과거나 현재 또는 미래에 있어서 이보다 중요한 사건은 없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아무도 의심하거나 혼돈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재림의 약속을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요한복음 14:2-3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완전하신 구속의 계획은,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우리를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실 때까지는 완전하게 성취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 지구의 역사 속으로 임하게 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오늘날, 재림에 관한 잘못된 가르침들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불길처럼 번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감람산 위에서“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대답하시기를“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라고 말씀하셨던 사실을 주목해야 된다. 주님의 대답에 나타나 있는 분명한 암시는 주의 재림에 관한 잘못된 가르침들이 말세에 많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말세가 된 지금, 주의 재림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기독교계에 들어왔다. 오늘날, 수백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무런 검토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기독교계에 엄청난 교리적 혼동의 요인이 되고 있는 신학적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 질문은 세상 끝에 그리스도께서 어떤 방법으로 이 땅에 임하실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비밀리에 공중 재림하실 것이라는 가르침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소위 휴거(rapture)라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휴거설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환란이 전에 의인들만 비밀리에 살짝 들어 올려가셔서 그들이 환란을 통과하지 않게 해주신다고 말한다. 그래서 휴거설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 지구에 일어날 엄청난 충돌 사고들을 예상하고 있다. 비행기 조종사와 버스와 자동차 운전기사들이 갑자기 들리어 올라가게(비밀 휴거) 되면 굉장한 사고들이 연발하여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공상 소설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꽤 많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휴거론은“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또는“미래주의”를 지지하는 목사들에 의해서 전파되고 있는 예언 해석과 접목되어서 여러가지 모양의 오해와 혼란을 빗어내고 있다. 이제, 먼저 비밀 휴거론자들이 만들어놓은 종말론의 씨나리오를 대략 살펴본 다음,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8가지 면으로 나누어서 하나씩 차례로 분석하여 보자.

A)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비밀 휴거 씨나리오

비밀 휴거 시나리오는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전개된다: 다니엘 9장 25절에 나오는 70주일에서 마지막 70번째 주일에 해당하는 1주일(7일) 즉, 7년을 사이에 두고 그리스도께서 각각 다른 모양으로 두 단계에 걸쳐서 재림하신다. 첫번째는 7년 환란이 시작되기 직전에 비밀리에 공중에 강림하셔서 부활한 죽은 의인과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아무도 모르게 공중으로 끌어 올려가는 비밀 휴거가 있다. 그런 다음 곧 이어서, 지상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제사 제도를 회복시키고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자처하는 가증한 일을 행하고, 7재앙을 내리기 시작한다. 이에 자극받아서 아랍과 아프리카 동맹세력이 일어나고, 러시아와 그 동조세력들이 개입하여 대결한다. 이렇게 위기가 고조된 상황 속에서 드디어 유대인들이 회심하여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4만 4천은 복음전도자로서 세상에 나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방인들을 돌이키는 대역사가 전개되는 한편,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 위기가 고조에 달하게 된다. 이 때에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지상에 재림하셔서 전쟁을 끝내시고 다시 유대인 위주의 천년 왕국을 이 땅 위에 세우신다는 것이 세대주의자들이 가르치는 종말론의 씨나리오이다.

이러한 비밀 휴거론에는 다음과 같은 8가지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

B) 비밀 휴거론에 포함되어 있는 8가지 주장

1. 소리없이 일어나는 휴거: 그리스도께서 공중에서 교회를 휴거하시는데, 이 사건은 구원받지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어난다. 즉, 그리스도의 비밀 공중 재림과 함께 휴거가 아무런 소리없이 일어난다.
2. 비가시적으로 일어나는 휴거: 휴거는 비밀리에 일어나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3. 살아남는 악인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휴거하실 때, 악인들은 지구에 살아서 존재하게 된다.
4. 환란 전에 일어나는 휴거: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마지막 시대의 환란이 닥치기 전에 의인들을 휴거하신다.
5. 예수 재림의 2단계론: 예수 재림은 2단계로 일어날 것인데, 첫번째 단계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비밀 휴거이며, 두번째 단계는 예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실제적이고 공개적으로 지상에 강림하신다.
6. 7년의 간격: 2단계로 나누어진 그리스도의 재림 사이에는 7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이 있다.
7.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비밀 휴거 사건 이후에 지상에 나타남: 그리스도의 비밀 휴거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이루어지며,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세상을 장악한 후, 7년간의 환란에 돌입한다.
8. 악인들을 위한 두번째 기회가 주어짐: 휴거 때에 악인들은 지상에 남아서,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마음을 바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두번째 기회를 갖게 된다.

위에 언급한 8가지 주장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확증될 수 있는 것들인가? 다음에 계속되는 기사에서, 휴거론이 주장하는 8가지 문제들을 하나씩 순서대로 성경에 비추어서 살펴보도록 하자.

 

1부 - 휴거는 아무런 소리없이 조용히 일어날까요?


Is The Rapture Silent?

A) 조용한 비밀 휴거가 아니라, 가장 떠들썩한 승천: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 전서 4:15-17

이것은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휴거 또는 성도들을 모으는 사건을 설명하면서 사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성경절이다. 살아있는 성도들이 죽은 자들보다 결단코“앞서지 못”할 것이며, 죽은 성도들이“먼저 일어날”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라. 죽었던 자들이 무덤에서 나오면서 기쁨으로 소리치고, 감사의 찬송을 부르는 장면이 이 성경절 속에 그려져 있지 않은가? 이 성경절은 매우 비밀스럽고 조용한 장면을 나타낸다기 보다는 오히려 매우 커다란 소리들이 울려퍼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성경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호령(shout)”과 “천사장의 소리(voice)”와 “하나님의 나팔(trumpet)”이 온 천하에 울려 퍼진다. 그것은 죽은 사람을 깨워서 일으킬 수 있을만큼 큰 소리이어야 한다. 들리지 않는 호령은 호령이 아니고, 소리나지 않는 나팔은 나팔이 아니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린도전서 15:51-52. 무덤이 열려서 죽은 의인들이 부활하고 살아있는 성도들이 변화되어 승천하는 일이 어떻게 비밀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가? 그 사건은 아무런 소리없이 이루어지는 비밀 강림이 아니라 극도로 떠들썩한 재림이 될 것이며, 비밀 휴거가 아니라 가장 떠들썩한 승천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공중 재림하시고, 성도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사건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시끄러운 사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하는 또 다른 성경절들이 있다.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곧 희생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시편 50:3-5. 하나님께서만 크게 외치시는 것이 아니라, 불멸의 몸을 가지고 부활하는 성도들도“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크게 부르짖을 것이다(고린도전서 15:55).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태복음 24:31

B) “도적같이”의 의미: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그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요한계시록 16:15. 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성경절을 이용하여 예수께서는 도적이 비밀리에 조용히 남의 집 담을 넘어가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재림하신다고 설명한다. 과연, 이 성경절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께서 도적처럼 비밀리에 조용히 오신다는 것인가? 성경의 다른 곳에 나오는 이와 유사한 성경절이 그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데살로니가전서 5:1,4. 여기서, 바울은 주께서 오시는“때와 시기”에 대하여 언급하면서“도적 같이”오신다는 말을 사용하였다. “도적 같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오시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시는“때”에 대한 묘사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도적처럼“갑자기”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표현했던 것이다.

“도적 같이”라는 표현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 베드로후서 3:10에도 나와 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여기에 나오는“도적같이”의 뜻은 “소리없이, 아무도 모르게”라는 뜻이 아니라,“갑자기”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만일 예수께서“ 밤에 도적같이”오신다는 말씀이 비밀 휴거를 의미한다면, 어떻게 베드로가“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갈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마태복음 24:43에 나오는“만일 집주인이 어느 경점에 올 줄 알았더라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서도 그것이 시간에 관계된 표현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성경에는 도적이 오는 것처럼 “때와 시기”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재림은 여러번 강조되어 있지만, 소리없이 이루어지는 비밀 재림이나 비밀 휴거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 때에 기습 공격 날짜는 극비였지만, 그 공격이 시작되는 날은 하와이 전체가 폭음으로 진동하였던 것처럼,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 역시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지만(“그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시느니라.”마태복음 24:36), 그 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시끄럽고 떠들썩한 날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성경상의 증거들을 볼 때,“휴거는 아무런 소리없이 조용히 일어날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독자들 스스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부 - 휴거는 보이지 않게 일어날까요?

The Rapture Invisible?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휴거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성경이 그 문제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가복음 13:26-27. 여기서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그분이 영광 가운데서 오시는 모습을 볼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셨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여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태복음 24:30-31. 여기서 통곡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물론, 악한 자들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악한 자들까지도 그분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온 세상에서 모으시는 모습을 볼 것이라고 하셨다. 의심할 여지없이, 악인들도 그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는 증인들이 될 것이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들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요한계시록 1:7. 오직 의로운 사람들만 예수의 재림을 볼 것이라고 말하였는가? 아니다. 각인 즉, 각 사람의 눈이 그분의 오심을 볼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악인들이 주께서 재림하시는 장면을 볼 때, 그들은“그를 인하여 애곡”하게 될 것이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27. 밤하늘에 치는 번개보다 우리들의 눈에 잘 보이는 것이 있는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오시겠다는 사실을 이것보다 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자, 이제“휴거는 보이지 않게 일어날까요?”라는 질문에 대해서 독자 자신들이 대답할 차례가 되었다. 이 질문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있지 않은가?

3부 - 휴거 후에 악인들은 살아서 지상에 남아 있게 될까요?

Does The Rapture Leave The Wicked Alive?

A) 노아와 롯의 때: 비밀 휴거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문맥을 무시한채 다음의 성경절을 사용한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도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태복음 24:37-39. 이 성경절에서, 예수께서는 노아의 때와 재림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점을 비교 설명하셨다. 노아의 때에 방주에 들어간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으며, 방주에 들어가기를 거절한 사람들은 밖에 버려짐을 당하였다. 왜 그런가? 또 다른 기회를 주기 위해서? 아니다. 그들은 홍수에 휩쓸려 멸망당하였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재림을 준비한 사람들은 마지막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며,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멸망당하게 될 것이다.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누가복음 17:28-29. 롯의 때에도 노아의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나타나는”날에 악인들은 멸망당할 것이라는 경고가 이 성경절이 강조하는 바가 아닌가? 심판의 날에 악인들은 정녕 멸망당할 것이다.

B) 죽은 상태로 버려둠을 당함: 비밀 휴거론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성경절은 누가복음 17:34-35 일 것이다.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비밀 휴거론자들은 이 말씀의 뜻을 두사람이 함께 있다가 한 사람이 상대방도 모르는 사이에 감쪽같이 하늘로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말하기를,“성도는 하늘로 데려감을 당하고, 악인은 지상에 남아서 적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며, 적그리스도와 함께 환란을 통과하게 된다”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아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나오는 두 남자와 두 여자에 대한 비유는,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까지는 외적으로는 아무런 구분없이 어울려 살지만, 재림하실 때에는 본인의 준비 여부에 따라서 운명을 달리하는 영원한 분리가 이루어짐을 강조한 말이다. 한 무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늘로 데려감을 당할 것이고, 다른 한 무리는 멸망을 위해서 버려짐을 당하게 될 것이다.

자, 계속해서 이어지는 제자들의 질문과 그리스도의 답변에서, 우리는 이 성경절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설명하시는 해석을 보게 된다. “저희가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제자들은 의인들이 하늘로 승천할 것을 알았지만, 하늘로 가지 못하는 악인들은 어디에 버려짐을 당하게 되는지 궁금해 하였다. 예수께서 주시는 명확한 답변을 보도록 하자. “가라사대 주검(죽음)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너무나 분명하지 않는가! 예수께서는 악인들의 시체는 지상에 버려져서 독수리의 먹이가 될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의인들은 그분과 함께 승천할 것이며, 악인들의 시체는 땅 속에 묻히지도 못한채 온 세상에 널리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9:17-18에는 한 천사가 악인들의 죽은 시체를 먹으라고 새떼들을 초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들을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절을 다시 한번 더 살펴보자.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하는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데살로니가전서 5:2-3. 바울은 마지막 시대에 평안과 안전의 기별을 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임하는 멸망을 결코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누가 재림의 그날에 악인들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가?

“그 날에 나 여호와에게 살륙을 당한 자가 땅 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그들이 슬퍼함을 받지 못하며 염습함을 입지 못하며 매장함을 얻지 못하고 지면에서 분토가 되리로다.”예레미야 25:33. 재림 후 적어도 7년간은 악인들에게 은혜의 집행유예가 계속된다는 가르침이 도데체 성경의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자, 이제 다시 독자들이 대답해야 할 때가 되었다. “휴거 후에 악인들이 살아서 지상에 남아있게 될까요?”

 

 

4부 -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 환난을 면제해 주실까요?

Must God Remove The Righteous?

비밀 휴거를 믿는 세대주의자들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대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지상으로부터 하늘로 휴거당하기 때문에, 환란을 모면하게 된다는 이른 바 전 환란설(Pretribulationism)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말씀이 없다. 예수님의 감람산 설교를 살펴보면, 성도들은 오히려 환란을 당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환란 가운데서 그들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 나와 있다. “그 때 사람들이 너희를 환란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태복음 24:9.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서,“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신 말씀은 마지막 날에도 적용된다.

A)“면케하리니”의 의미: 비밀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 환란이 오기 전에 의인들이 비밀리에 휴거할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다음과 같은 요한계시록 말씀을 매우 자주 인용한다. “내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케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요한계시록 3:10.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서, 성도들은 마지막 대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휴거하여 지상을 떠남으로써, 환란을 모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말씀을 지켰은즉 ... 면케하리니”로 번역된 헬라어(tereo...ek)가 그러한 뜻이 아니라는 사실이, 동일한 단어가 사용된 요한복음 17장 6,15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원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고 보전하시기(tereo...ek)를 위함이니이다.” 여기에 예수님의 뜻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원함이 아니요 ... 오직 악에서 ... 보전하시기.”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3:10에 나오는“면케하리니”라는 말의 의미는 악한 세상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죄와 악의 세력으로부터“보전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두 성경절에서“말씀을 지켰다”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왔으므로(순종), 시험(환란)의 때에도 하나님께서 악으로부터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잘못 오해해서는 않된다. 하나님께서 환란 속에서 의인들을 지키시는 방법이 무엇인가? “네가 나의 말씀을 지켰은즉.” 바로 이것이 대답이다.

참된 성서의 가르침은 성경의 어느 한두 구절에 기초하지 않으며, 성경 전체가 말하는 바와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다.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어떻게 피할 수 있다고 하였는가? 세상 끝에 환란이 닥치기 전에 그들을 하늘로 살짝 데려가는 휴거를 통하여 피할 수 있다고 하였는가? 천만에! 환란을 맞는 의인들을 위한 예수의 기도를 다시 한번 들어보라.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다.” 이 성경 말씀은 휴거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배격하고 있다고 생각치 않는가?

B) 환란을 통과한 의인들: 비밀 휴거론을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은 과거에도 종종 의인들은 환란을 하나님의 은혜로 모면하였기 때문에, 마지막 시대에도 의인들은 비밀 휴거를 통하여 마지막 환란을 모면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정말 그런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서 출애굽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바로왕 때문에 이집트에 내렸던 10재앙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환란 속에서 어떻게 취급하셨는가를 살펴보자. 처음 3재앙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함하여 이집트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렸으며, 나머지 7재앙은 이집트 사람들에게만 내려진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재앙으로부터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을 이집트 국경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으셨다. 10가지의 재앙이 모두 끝마쳐진 다음에, 홍해를 가르시는 기적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셨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시대에도 7재앙을 피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 교회를 하늘로 휴거시키지 않으실 것이다. 의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내로 지킴으로써, 환란 속에서 보호를 받게 될 것이며, 7재앙과 환란이 끝난 후에야 공중으로 승천하게 될 것이다. 의인들도 재앙에 의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성도의 인내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환란을 통과하여 승리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요한계시록 14:12.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환란 속에서 보호하신 예를 찾아 보자. 창세기 6-8장에는 노아 홍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가족을 하늘로 휴거시키는 대신에 홍수 속에서 보존하셨다. 다니엘 3장에는,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세친구를 보존하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풀무불이라는 환란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써,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셨다. 풀무불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써, 그들의 머리털 하나도 불에 타지 않게 보호하셨다. 다니엘 6장에는,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찬가지로,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심으로써, 다니엘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사자굴 안에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시는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다니엘을 보전하셨다.

C) “올라오라”는 명령의 대상: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4:1. 어떤 비밀 휴거론자들은 휴거를 증명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인용한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당신의 교회를 휴거시키기 위해서“올라 오라”라고 명령하시는 것으로 이 성경절을 해석한다. 그러나 여기서“올라 오라”고 말하는 음성은 지상에 있는 교회에게 하시는 명령이 아니라, 계시를 받고 있는 요한에게 하셨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문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라. 성경을 읽되,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읽지 말고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면서 읽어야 한다.

D) 분리는 세상 끝에 일어남: 마태복음 13:24-30, 36-43에 나오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비밀 휴거의 모순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인용 구절이 너무 길어서 다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비유를 설명해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보자.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38.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 끝에 천사들을 보내셔서 추수하실 때, 오직 두 그룹의 사람들 즉, 구원받는 의인들과 멸망당하는 악인들로 나뉘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질문이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환란과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세상 끝이 되기 7년 전에 하늘로 조용히 휴거당하게 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의 설명을 들어보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서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니.”30. 이 비유의 말씀은 의인과 악인의 분리가 추수 때인 세상 끝에 이루어짐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세상 끝까지 함께 자라도록 놔두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플랜은 세상 끝이 되기 7년 전에 의인들을 먼저 휴거시킬 것이라고 가르치는 비밀 휴거론자들의 플랜과 얼마나 상반되는가! 또한 의인들이 먼저 비밀리에 휴거당하는 것이 아니라,“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E)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 비밀 휴거론자들의 주장대로, 의인들이 세상 끝이 되기 7년전에 악인들로부터 분리된다면, 부활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예수께서는“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는 말씀으로 세상 끝에 있을 의인의 부활을 약속하셨다. 여기서“마지막 날”은 세상의 마지막 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바울은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그 시간에, 의인들이 공중으로 승천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공중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고.”데살로니가후서 4:16-17. 예수께서는 이 부활을 가르켜 마지막 날이라고 부르신 것을 기억하라. 성도들을 모으는 이 사건이 세상 끝이 되기 7년전에 있다면, 어떻게 그 날을 마지막 날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또한 그 사건이 마지막 날에 생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때에 울리는 나팔의 소리를 마지막 나팔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자, 이제 독자들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할 시간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 환란을 면제해 주실까요?”

5부 - 예수께서는 두 단계로 오시나요?

Is Jesus Coming In Two Stages?

성경은 예수 재림을 역사의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마지막 종점을 이루는 한 사건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밀 휴거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재림의 사건을 두 단계로 나누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무리한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사실, 초기 그리스도 교회 이후로 수세기를 거쳐오는 동안, 모든 신학자들과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은 재림을 한번에 일어나는 한가지 사건으로 해석하여 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단계로 나누어서 재림하신다는 비밀 휴거 사상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부터 생기기 시작한 최근의 발명품이다. 2단계 재림론을 입증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 성경 말씀들은 어떠한 것들인가?

신약 성경에서 예수 재림을 지칭하는 세가지 헬라어의 의미

헬라어 원어 의미
1. parousia(파루시아) 오심(coming), 도착(arrival), 임재(presence)
2. apokalupsis(아포칼립시스) 나타나심(revelation)
3. epiphaneia(에피파네이아) 출현(manifestation)

A) 한 사건을 나타내는 3개의 헬라어: 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이 두 단계로 나누어질 것이라는 사실이 헬라어 원어의 의미 속에 나타나 있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먼저 파로시아 즉, 비밀리에 오시는 비밀 재림이 있고, 7년 후에 아포칼립시스 또는 에피파네이아 즉, 예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재림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헬라어들은 두 단계로 나누어진 별개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헬라어로 표현하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파루시아, 아포칼립시스, 그리고 에피파네이아는 모두 동일한 사건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이들 단어에는 7년간의 시간의 간격이 있다는 어떠한 암시도 없다.

B) 공개적인 재림의 의미로도 사용된 파루시아: 휴거론자들은 헬라어 파루시아는 항상 비밀 재림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파루시아)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데살로니가전서 4:16-17. 이 말씀에서 강림(파루시아)이라는 말이 휴거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구름 속으로 끌어올려”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었기 때문에, 성경에서 파루시아는 비밀 재림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에서 빗어진 추측에 불과하다. 바울의 편지서인 데살로니가전서 3:13에서는,“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파루시아)하실 때에”로 쓰여 있다. 파루시아 라는 단어가 휴거론자들이 말하는 7년 환란기 끝에“성도들과 함께”오시는 영광스러운 공개 재림을 뜻하는데에도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C) 파루시아 = 에피파네이아: 데살로니가후서 2:8에도,“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파루시아)하여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으로 폐하시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밀 휴거론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불법한 자(적그리스도)는 7년 환란의 끝에 예수께서 두번째로 다시 한번 더 강림하실 때에 죽게 되어 있는데, 이 성경절에서는 불법한 자가 죽게 되는 강림을 말하면서 파루시아를 사용하고 있다. 이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파루시아라는 단어 역시 영광스런 재림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일 파루시아가 그들이 말하는대로 비밀 재림을 의미하는 단어라면, 적그리스도는 예수께서 비밀리에 강림(파루시아)하실 때에 죽는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비밀 휴거 다음에 곧바로 이어지는 7년 환란기 동안에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장악할 것이라는 그들의 종말 시나리오에 치명적인 모순이 생기게 된다. 더구나 이 성경절에서“강림(파루시아)”과“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이 한 사건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기 때문에,“강림(파루시아)”과“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사이에 7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을 수도 없다.

D) 파루시아 = 아포칼립시스: 마태복음 24:37에서 우리는,“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파루시아)도 그러하리라”는 말씀을 보게 된다. 그런데 동일한 내용의 말씀이 누가복음 17:26,30에는“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 인자의 나타나는(아포칼립시스) 날에도 이러하리라”고 쓰여 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이 사건은 누가 보아도 동일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 성경절에는 파루시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재림을 표현하였고, 다른 성경절에서는 아포칼립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서 재림을 표현하였다. 파루시아(임함)와 아포칼립시스(나타남) 사이에 7년의 간격이 있다는 어떠한 암시도 찾을 수 없다.

E) 재림의 소망을 두 쪽으로 쪼개는 비밀 휴거: 비밀 휴거를 믿는 세대주의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이 기다리고 소망으로 삼아야 할 것은, 환란의 끝에 있는 영광스런 재림과 부활이 아니라, 7년 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있을 파루시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디도서 2:13에는“복스러운 소망”을“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절망에 빠져 있는 모든 인류의 소망인 재림을 두개로 쪼개어 놓은 것이야말로 비밀 휴거론자들이 만들어 놓은 최고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독자들에게 질문하고자 한다. “예수께서는 두 단계로 오시나요?”

6부 - 7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나요?

Seven Years Apart?

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은 7년 환란을 너무나 자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그 기간을 매우 자주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성경의 단 한 구절도 7년이라는 기간을 세상 끝이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련하여 말하고 있지 않다.

A)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70주 예언: 성경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라면, 비밀 휴거를 가르치는 세대주의자들이 7년이라는 기간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니엘 9장 24-27절을 문맥을 무시하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놀랄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다니엘 9:24-27을 잘못 해석하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다니엘에게 보내준 그 기별을 그리스도의 재림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 성경절은 재림이 아니라, 메시야의 초림에 관한 예언임을 이해해야만 한다.

다니엘 9:23에는, 다니엘이 예언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니엘이 기도하고 있는 동안, 가브리엘 천사는 그의 기도에 대한 답을 들고서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다니엘아,“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을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B) 유대인들을 위한 70주의 은혜의 기간: 가브리엘 천사는 즉시로 예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였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70 week, 70주일)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다니엘 9:24. 바로 여기에 나오는 70 주일에 관한 예언은 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이 종말의 시간표를 작성한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 예언을 올바르고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휴거론자들의 문제점을 분명하게 포착할 수 있다. 이 예언에 나오는 70주일 기간은 이스라엘이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렘 29:10)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다시 한번 허락된 마지막 은혜의 기간을 의미한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70 주일이라는 예언적 기간은, 그들이 메시야의 오심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은혜의 기간이었다.

C) 70주 예언의 계산법: 살아남는 이들 제7호에서 자세히 소개했던 것처럼, 기간적인 예언을 해석할 때에는 하나님의 계산법을 따라야 한다. 마치 건축기사들이 청사진을 만들 때, 1인치를 1피트로 계산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기간적인 예언을 해석할 때에는, 그분께서 지정하신 계산법을 따라야 하는데, 그것은 에스겔 4:6과 민수기 14:34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같이“1일은 1년이니라”라는 법칙이다. 따라서 70이레 즉, 70주일은 70 x 7=490일인데, 490일은 예언의 해석법칙에 따라서 490년으로 환산된다. 그런데 490년이 시작되는 시점은 언제인가? 계속해서 나오는 가브리엘 천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야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7 week)와 육십이 이레(62 week)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요.”25절. 자,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70주일 즉, 490년의 시작점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질 때이며, 그때부터 시작해서 7주일과 62주일 즉, 69주일(69 x 7=483일, 즉 483년)이 지나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야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 가브리엘 천사의 설명이다. 누가 감히 천사가 설명하는 예언 해석을 부인할 수 있는가?

그런데, 70주일 예언이 시작점인“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내려진 해가 언제인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마지막 명령이 언제 포고되었는가? 에스라 7:7,13에서 우리는 예루살렘 성의 중건령을 볼 수 있다. “아닥사스다 왕 7년에 ... 조서하노니.” 중건령이 내려졌던 아닥사스다왕 7년은 역사적으로 확립된 해이다. 성경의 관주에 나오는 해석을 보아도, 중건령이 내려진 해는 B.C. 457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70주일 예언의 시작점은 B.C. 457년이다. 예루살렘성의 중건령의 조서가 그 효력을 발휘하는 B.C. 457년 가을부터 시작해서 483년을 내려가면, 역사의 연대표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는 해를 만나게 되는데, 그 해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받으셨던 해와 일치한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유대인을 위한 은혜의 기간(70주일) 예언표

D) 기름부음을 받은 자에 대한 예언의 성취: 누가복음 3:1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침례를 받은 해에 관한 매우 결정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디베료 가이사 즉위 열다섯 해,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 분봉왕으로.” 역사는 가이사가 즉위한 해가 A.D. 12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디베료 가이사 즉위 15년은 A.D. 12년에 15년을 더한 해, 곧 A.D. 27년이 된다. A.D. 27년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가? 같은 장 21절에 나와 있다.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셨으며,“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심으로써, 다니엘 9장에 나오는“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야”라는 예언을 성취시키셨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러한 예언을 근거로 당신의 지상 사업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마가복음 1:14-15에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The time is fulfilled, 때가 성취되었고).” 무슨 때가 찼다는 것인가? 다니엘 9장에 예언되어 있는 69주일(483년)의 예언의 때가 찼던 서기 27년에,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셨으며,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 공중전도를 시작하셨다.

E)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의미에 대한 예언의 성취: 70주일 중에 마지막 남은 1주일(70주일-69주일=1주일)인 7년 동안에는 무슨 일이 이루어질 것인가? 마지막 남은 한주일에 대하여, 가브리엘 천사가 하는 설명을 들어보자.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자, 곧 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지겠고.”26절. 가브리엘 천사는 62주일 후, 즉 서기 27년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끊어져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한 후에,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하실 일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1week)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week)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27절. (여기서“이레(week)의 절반”은 7년의 반이므로 3.5년 즉, 3년 반이 됨)

그렇다면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서기 27년 가을부터 3년 반 후인 서기 31년 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인간이 범죄한 이래 장차 오실 것으로 약속된 메시야의 죽음을 상징하여 드려온“제사와 예물을 금지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유대인들은 양을 성소의 번제단 위에서 태움으로써, 죄의 용서를 받아왔으며, 동시에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더 이상 양을 잡아서 태워 죽이는 제사 제도는 필요없게 되었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였도다 ...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브리서 10:5-7. 또한“이 (구약 시대의)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써,“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브리서 10:12,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가 3년 반 동안 이루어졌으며, 서기 31년 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성소 안에 있던 성전 휘장이 갑자기 찢어짐으로써(“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자, 이에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고.”마 27:50), 모세가 제사 제도에 대해서 기록하였던 의문의 율법이 더 이상 필요 없음을 보여주셨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골로새서 2:14.

그러나 비밀 휴거론자들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으심에 관한 예언인 다니엘 9:24-27을 적그리스도의 행적으로 해석하는 엄청난 착오를 일으켰다. 그들은“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하셨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적그리스도로 해석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생애의 목적에 대한 예언을 완전히 왜곡시켰는데, 이것이야말로 비밀 휴거론이 만든 최대의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F) 유대인들을 위한 은혜의 시간의 종결: 이제, 마지막 1주일인 7년 중에서 나머지 3년 반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허락하신 70주야의 전체 예언이 완전히 종결된다. 나머지 3년 반동안 제자들은 주로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끝까지 일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지 3년 반 후인 서기 34년, 새언약의 복음을 끝까지 거절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을 향하여 경고와 호소의 설교를 하던 스데반에게 산헤드린 공회가 돌로 쳐서 죽이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스데반은 그리스도 교회의 첫번째 순교자가 되었으며(행 7:51-60), 이로서 유대인들을 위한 70주일(490년)의 유예 기간은 완전히 끝났으며, 곧 이어서 일어난 핍박과 함께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행 8:1~).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기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사도행전 13:46

서기 70년, 다니엘 9:26-27에 예언된 대로“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로마제국의 군대들에 의하여, 성전은 불타서 잿더미가 되었으며, 110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포위된채 예루살렘성 안에 갇혀서 참혹한 최후를 맞이 하였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 뿐만 아니라, 다니엘서에 기록된 여러 예언들이 일시에 성취되었다.

다니엘의 예언대로, 유대인들은 한 국가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특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더 이상 한 국가로서 선택받은 백성이 되기를 끝까지 거절하였기 때문에, 서기 34년부터 그들은 이방인과 같이 개인 단위로 구원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은혜의 시간이 끝난 것에 대해서 신약 성경은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마태복음 21:43
“길가에서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자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개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 나무가 곧 마른지라(무화과 나무는 유대 국가를 상징함).”마태복음 21:19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할 것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마태복음 3:28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라디아 3:29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니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로마서 10:12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씨가 여기심을 받으리라”로마서 9:6-8. 신약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영적 이스라엘을 가납하시며, 육체적 이스라엘을 거절하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할 것이라.”로마서 2:28-29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얻기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사도행전 13:46
(유대인들의 은혜의 시간에 대한 문제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음)

G) 결론: 이제, 우리는 휴거주의자들이 어떻게 7년이라는 환란 기간을 만들어 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다니엘의 70주 예언에서 마지막 7년을 역사의 중간으로부터 뚝 떼어서 저 멀리 미래 즉, 세상 끝으로 가져갔다. 그들은 마지막 70번째 주일은 말세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의인들을 비밀리에 휴거시킨 후에야 성취될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주장하는 7년 환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어떤 성경절을 붙잡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다니엘 9:25의 69주일이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예언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69주와 70번째 주 사이에 200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집어 넣었다. 즉, 예언의 시간표를 69주(483년)+거의 2000년에 이르는 그리스도 교회시대+1주(7년)으로 만들었다. 70번째 주인 마지막 7년을“7년 대환란”이라고 이름붙인 후, 7년 환란기의 앞과 뒤에 비밀 공중 휴거와 공개 지상 강림이 있을 것이라는 2단계의 재림설을 만들어 낸 휴거론이야말로 너무나 허구에 찬 인간의 상상인 것이다.
자, 이제 다시 독자들이 스스로 결론을 내릴 시간이 되었다. “7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나요?”

 

7부 - 휴거는 적그리스도의 출현보다 먼저 이루어집니까?


비밀 휴거론자들은 세상 끝이 되기 7년 전에 성도들이 비밀리에 휴거를 당하고, 그 후에야 비로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과 사도 바울의 설명을 비교해 보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 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한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좌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하느니라.”데살로니가후서 2:1-4

A) 바울의 설명: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너무나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리스도의 강림의 날에 앞서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 곧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적그리스도가“나타나기 전에는”“그리스도의 강림(파루시아)”이 없을 것이므로“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 하거나 하지”말라는 것이 바울의 설명이다. 적그리스도가 먼저 나타나고, 그리스도의 강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오해할 수 없게 설명되어 있다. 바울은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세상 끝으로 미루어 놓지 않았다. 그가 당대에“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라고 기록하였던 점을 주목하라.

B) 요한의 설명: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주께서 강림하시는 사건과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사건의 순서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착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성경은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하고 말하고 있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의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멸하시리라.”8절.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적그리스도가 멸하여질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라는 바울의 경고를 주의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3절). 요한계시록 20:4에도, 이 문제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이 차기까지 왕노릇하니 이는 첫째 부활이라.” 적그리스도와 그의 세력이 강요하게 될 짐승의 표를 거절하는 사람만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사도 요한의 기록은, 먼저 비밀 휴거와 부활이 있은 다음, 적그리도가 이 세상을 7년동안 장악할 것이라는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을 완전히 무산시켜 버린다.

최근에 어떤 방송 목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짐승이 사람들에게 강제로 그의 표를 강요할 때, 나는 휴거되어서 환란기 동안 하늘에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착각인가? 적그리스도는 첫째 부활이 있기 전에 그의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C) 종교개혁자들의 일치된 예언해석법: 종교 개혁자들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그리스도 교회에 엄청난 배도를 가져왔으며,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무섭게 박해하였던 세력이라고 가르쳤다. 위클립과 마틴 루터의 동료 개혁자인 멜랑히톤, 요한 낙스, 그리고 예언 해석을 많이 강조하지 않았던 요한 칼빈까지도 중세기의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칼빈의 저서인“기독교 강요”에는 이러한 기록이 담겨 있다. “다니엘과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서방 교회에 있어서 이 저주받은 가증한 왕국의 머리를 우리는 교황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교황권(Papacy)은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적그리스도라고 선포하는데 제일 앞장 섰던 사람은 마틴 루터였다. 거의 모든 개혁자들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해석에 있어서 놀라운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그것이 쓰여진 때로부터 시작해서 세상 끝날까지의 역사 속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으로 해석하였다. 그들의 예언 해석은 역사 속에서 입증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들의 해석을 부인할 수 없었다.

24-1D) 비밀 휴거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종말론의 뿌리: 사도 바울이“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다고 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미래의 어떤 시점으로 가르치는 비밀 휴거론자들의 주장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개혁자들에 의해서 성경이 영어로 번역되자, 종교개혁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갔으며, 성경에 예언된 적그리스도는 바로 교황권을 가르킨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자 로마 천주교회는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종교개혁자들의 예리한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두가지의 새로운 예언 해석법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개혁자들의 역사주의 예언해석법에 대항하기 위해서, 과거주의 예언 해석법과 미래주의 예언 해석법을 만들어 내었는데, 여기에 비밀 휴거를 탄생시킨 세대주의 종말론의 뿌리가 숨겨져 있다. 19세기의 유명한 성경 주석학자 요셉 태너(Jeseph Tenner)는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24-2“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확신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확산되자, 교황권은 마침내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않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 두가지의 다른 해석법을 마련하였다.

“16세기 말경, 로마천주교회의 제수잇(예수회) 소속인 두명의 신부는 자신들이 이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동일한 목표를 위해서 각각 노력을 기울였다. 말하자면,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교황권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하여 적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법을 창안해 내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제수잇(예수회) 신부인 알카자르는 심혈을 기울여 과거주의 예언 해석법을 만들어 내었다. 그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교황이 로마에서 통치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애를 썼다. 이와 반면에 또 다른 제수잇 신부인 리베라는 미래주의 예언 해석 체계를 내놓음으로써,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교황권에 적용하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그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교황권에게 적용해서는 않되며,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어떤 초자연적인 인물 즉, 마지막 환란기 동안에 지상을 장악할 인물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였다 ...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은 미래주의 해석법을 지지하고 있다. 개신교회가 천주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서,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성경적인 진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가리워 주는 일을 돕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Joseph Turner 의 저서 -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16-17페이지.

천주교회의 두 신부가 만들어낸 과거주의나 미래주의 예언 해석법은 1260년 동안 중세기의 종교적 암흑시대를 주도해온 로마 교황권의 역사와 행적을 예언에서 흔적도 없이 빼어버리기 위해서 창안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래주의 해석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비밀 휴거론자들의 세대주의는 현대의 칼빈 신학을 대표하는 벌코프 박사나 훼케마 박사에 의해서도 매우 위험한 것으로 비평받고 있다. 성경이 적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바를 혼돈시키는 비밀 휴거론자들의 종말론이야말로 매우 위험한 기만이다(적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상세하게 다루기로 하겠음).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요한계시록 20:6. 첫째 부활이 있은 다음에, 천년기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짐승으로 상징된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의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만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왕노릇하게 된다(계 20:4). 성도들은 적그리스도가 장악한 이 땅에서 환란을 통과한 후에야 하늘로 승천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의 표를 받지 않는 성도들을 가리켜서“성도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계 14:12).

이제, 독자들이 대답할 차례가 되었다. “휴거는 적그리스도의 출현보다 먼저 이루어 집니까?”

8부 - 믿지 않는 자들에게 두 번째 구원의 기회가 주어집니까?


비밀 휴거론자들은, 첫번째에 휴거되지 않는 자들에게도 구원받을 수 있는 두번째 기회가 주어진다고 7년 동안의 환란기 동안에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성경의 어느 곳에도 예수께서 오신 후에 두번째 구원의 기회를 받는 사람이 있다는 기록이 없다. 노아와 롯의 때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도 단 한번의 기회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인간이 고안해낸 교리이다. 다음의 성경절들을 주의 깊이 읽어 보라.

“보라 지금은 구원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고린도후서 6:2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은혜의 시간의 끝).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재림과 함께 주어지는 성도들을 위한 보상).”요한계시록 22:11-12.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은혜의 시간은 재림 이전에 끝난다. 구원을 위한 은혜의 시간이 끝남과 함께 성령이 세상에서 거두어지며, 칠재앙이 내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것이 마지막 사건들의 순서이다.

“추수할 때(세상 끝의 예수 재림)가 지나고 여름이 다 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예레미야 8:20

마태복음 25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묘사한 열처녀의 비유가 나온다. 신랑으로 비유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체되자, 그분을 기다리던 처녀(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졸면서 잠들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갑자기 예수께서 재림하신다는 소리가 나자, 그 때에야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구하기 위해서 뛰어다니지만, 문은 굳게 닫히고 만다.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10절. 미련한 다섯 처녀에게 두번째 기회가 있었는가? 아니다. 문은 굳게 닫혔으며, 다시 열리지 않았다. 재림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들은 예수께 문을 열어달라고 간청하였지만, 이미 그들을 위한 은혜의 시간은 끝이 났다. 그들은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가졌지만, 소홀함과 부주의함으로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11절.

성경 전체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에는 구원을 위해서 주어지는 두번째 기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사랑과 자비의 구세주께서는 모든 인류들이 변명할 수 없을 만큼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시지만, 일단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간이 끝나면 그것으로서 모든 것은 끝나게 된다.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로운 일을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요한계시록 22:11. 노아의 설교와 회개의 초청을 거절하였던 사람들에게 은혜의 시간이 끝났었던 것처럼, 소돔을 떠나라는 롯의 간절한 호소를 거절하였던 가족들과 소돔의 시민들에게 은혜의 시간이 끝났었던 것처럼, 마지막 시대에도 심판과 재림이 있기 전에 은혜의 시간이 끝난다.

이제, 독자들이 대답할 시간이 되었다. “휴거당하지 못한 악인들에게 두번째 구원의 기회가 주어질까요?”

결론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참 진리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비밀 휴거론과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종말론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가상 스토리이다.

그것은 개신교회의 신앙을 물려준 종교 개혁자들의 신앙과도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바와도 전혀 다르다.

만일 비밀 휴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이단으로 취급한다면, 그러한 가르침을 들어보지도 못했던 루터, 낙스, 칼빈, 웨슬리 등과 같은 19세기 이전의 개혁자들 역시 이단의 가르침을 전했던 선구자로 낙인 찍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바는, 재림의 광경은 문자 그대로 일어날 것이며, 가시적이고(계1:7), 가청적이며(살전 4:16), 온 세상이 알 수 있고(마24:27), 단 한번만 일어나는 역사의 마지막 사건이라는 것이다. 재림 시에는 죽은 의인들의 부활과 살아있는 성도들의 홀연한 변화(고전 15:50-53)와 영광스런 승천(살전 4:16-18)의 장면이 온 지구 상에 펼쳐질 것이다. 의인들은 그리스도의 강림 장면에서 나오는 광채로 인하여 몸이 홀연히 변화되어 승천할 것이지만, 동일한 광채가 악인들에게는 죽음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오직 두 부류의 사람들만이 존재한다. 각자의 운명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자신이 한 일과 성품에 의해서 결정된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시간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 시간이 매우 가까이 왔다는 증거들이 온 세상에 편만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의 품성을 닮은 참 그리스도인들은 그분께서 오실 때를 분별하게 될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라.”데살로니가전서 5:3-4. 누가 곧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서 자신의 생애를 준비할 것인가? 누가 지금 당장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하늘을 위해서, 거룩한 삶을 살기로 결정할 것인가? 지금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만, 결국에는 오직 의인과 악인으로 구별될 것이다. 오직 완전한 구원과 완전한 멸망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준비하라! 준비하라!”라는 성령의 호소에 누가 반응할 것인가?

이제, 지금까지 소개한 글들의 최종 결론을 내리면서, 독자들에게 최종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비밀 휴거의 가르침은 성경적인 진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