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가장 중요한 진리를 아시나요?


가장 큰 위험

가장 큰 위험은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자기 만족에 도취되어 하나님의 진리를 등한시 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빠질 수 있는 위험 중의 하나이다.

우리의 육신적 성향은 성령의 음성과 진리로 교정되지 않으면, 자기 멋대로 뻗어 나가서 결국에는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도덕적 양심은 둔화되고, 마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떠나가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자신을 육신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해 줄 구세주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깊이 느끼느냐에 따라서 구세주의 도움을 구하는 심정의 간절함이 달라진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부족함과 죄를 깊이 인식하는 자들만을 구해 주실 수 있다. 우리가 전혀 속절없는 우리의 상태를 깨닫고, 자신을 의지하고자 하는 모든 마음을 버릴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온 마음을 다하여 붙잡게 된다.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 자아를 버리는 일은 그리스도를 처음 믿었을 때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하늘을 향하여 옮겨놓는 매 발자국마다 그 일은 새롭게 반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이웃을 사랑하는 선은 우리 자신의 의지나 힘으로는 전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치밀어 오르는 육체의 죗된 요구를 거절하고, 타고난 이기심과 게으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율법주의적 경향을 버리고, 오랫동안 믿어온 오류와 잘못된 경험을 부인하고 버리는 일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아가야 한다. 그분의 성품과 생애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부족과 연약함을 깊이 느끼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울 수 있으며, 자아를 버릴 수 있다.

사람은 자기의 의지력의 강화를 통하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사람에게는 성경이 요구하는 변화를 성취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죄인의 양심은 성경의 진리를 통하여 변화되지 않는 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자격을 이룰 수 없다.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과 문화라고 할지라도 죄인을 하늘 자녀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변화시키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한다. 그 변화는 오직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구원얻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은 성령의 역사에 순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변화되지 못하는 이유

밀가루 속에 감추인 누룩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밀가루 반죽 전체를 부풀린다. 이와 같이 진리의 누룩도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그리고 끊기있게 사람의 마음과 생애를 변화시킨다. 천성적 성벽이 부드러워지고 제어된다. 새 사상과 새 감정과 새 동기가 마음에 부식된다. 새 품성의 표준인 그리스도의 생애가 마음 속에 아로 새겨지게 된다. 마음이 변화되고 재능이 새로운 방면으로 활용되는데, 이 때에 새로운 재능을 받는 것이 아니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능이 성화된다. 양심은 각성되어서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특성을 나타내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지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말, 정신, 품성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변화된 특징을 볼 수 없는 것은 어찜인가? 탐욕적인 계획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거룩하지 못한 성벽을 나타내며, 말이 거칠며 거만하고 툭하면 짜증을 잘 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리스도인의 생애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특징인 자기를 사랑하는 정신, 이기심, 급한 성미, 성급하고 거친 말이 나타나는 것은 어찜인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전혀 모르는 자들처럼 교만하고, 과민하며, 천성적인 괴벽한 성벽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은 어찜이뇨?”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그들이 진실로 거듭나지 못하였다” 라는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진리

우리가 연구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 진리, 즉 무엇이 마음에 간직하고, 사랑하며, 높이고, 순종해야 할 진리인가?”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진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인생의 촛점을 모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의 마음과 생애를 변하시키기 위하여 그들을 훈련시키시고 가르치셨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와 같은 일을 지금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하기 원하신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이론적이기 때문에 구세주의 살아있는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자아를 부정하고, 묵묵하게 겸손한 생애를 사신 그리스도의 유년 시절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처음 30년 동안의 생애에 대해서 성경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3년 반동안의 공중 봉사를 위하여, 그분께서는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나사렛의 목수간에서 조용히 준비하였다.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는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말않듣고 고집센 염소와 양을 돌보면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침례 요한은 랍비들과 제사장들의 가르침을 피해 광야에 가서 자신을 준비하는 긴 세월을 보내야만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들은 조용히 자신의 진정한 영적 상태를 살피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준비되어 있지 못함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성경의 진리에 대한 지식이 매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업의 최전선에 나서길 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놀라운 기적과 은사를 간구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늘의 권능을 맡기시기엔 그들이 너무나 준비되지 못했다. 바로 이러한 틈을 이용하여 사단은 그들을 인도하는 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진리인가? 그것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리에 따라서 인간의 마음과 생애를 변화시키는 진리이다. 그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통하여 타락한 인간을 의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진리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생애에 비추어져야만 하는 빛이며, 소망이다. 마음과 생애를 변화시키는 진리를 아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간증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나는 내게 필요한 모든 도움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하였다. 나의 모든 필요와 요구는 채워짐을 받았고, 내 심령의 갈증과 주림은 충족되었다. 이천년 전에 육신으로 이 땅을 거닐었던 예수님께서는 다시 말씀이 되어 내 생애에 역사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은 내 마음에 새겨졌으며, 나는 그것을 통하여 내가 느끼고 경험하며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판단한다. 나는 더 이상 내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이나 생각을 의지하지 않는다. 나는 내 뜻대로 살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뜻대로 생애한다. 나는 막연한 진리가 아니라, 확실한 진리를 발견했으며, 그 진리는 내 마음과 생애를 변화시켰다.”

자아가 죽지 않은 18가지 증거
By John Grosboll
1. 다른 사람과 경쟁하기를 좋아 한다
2. 야망을 버리지 못하며, 남에게 받는 부당한 취급을 도무지 견디지 못한다
3.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무엇보다도 중요시 여긴다
4. 진리와 아무 상관없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5. 자신이 모든 일을 주관하지 않는한 동료들과 함께 일하지 않는다
6. 스스로 자기 만족에 빠진다
7. 자신은 항상 남보다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취된다
8.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 싶어한다
9. 그가 가는 곳마다 투쟁이 생긴다
10.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하지 않는다
11. 항상 자신의 의견과 견해를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12.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나타내려고 애쓴다
13. 사소한 일에도 까다로운 규칙과 법칙을 만들고 싶어한다
14.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끌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추구한다
15. 분노, 거칠음, 인내치 못하는 정신을 드러낸다
16. 시기와 질투의 정신을 버리지 못한다
17. 다른 사람과 마찰이 생겼을 때, 자신을 동정한다
18.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성경 말씀보다 위에 놓는다

권두언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종교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앙을 제외하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에덴 동산에서 시작한 사단의 거짓말에서 유래된 종교입니다.

그 종교는 현대어로 뉴 에이지 운동(새 세대 운동)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이 뉴 에이지 사상은 이 세상의 종교 가운데서 가장 오래 된 종교로서 바벨론의 종교와 모든 이 세상의 이교 사상들의 그 유래를 거기에서 발견 할 수 있게 되는 사상입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뉴 에이지라고 불리우는 새 세대 운동이 현대 기독교회에도 깊숙하게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뉴 에이지는 동방의 종교들 즉, 힌두교, 불교 등과 신비주의, 그리고 기독교적 사상이 복잡하게 섞여져 있는 혼합 종교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명망있는 장로교 목사, 제임스 케네디 박사는 “뉴 에이지 운동을 설명하기란 뒤범벅된 스파게티를 정리하는 것과 비슷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뉴 에이지 사상이 과연 어떠한 것이며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또한 사람들을 어떻게 기만하여 어디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호는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요즈음 예수의 음성을 듣는다든가, 아니면 예수의 모습을 본다든가, 계시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부쩍 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보다는 명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자신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 속의 음성으로 직접 듣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뉴 에이지 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뉴 에이지 운동을 어떤 하나의 이교 철학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보다 더 깊은 기만이 담겨져 있는 사단의 매개체 입니다. 이것은 강신술과 또한 최면술과도 관계가 있으며 성경적인 교리와 진리의 강조점을 무산시키고, 기독교회의 특수성을 희석시키며, 무조건 감정적인 사랑과 연합만 강조하는 타협의 물결을 교회 안으로 들여 오고 있는 세력입니다. 지금, 뉴 에이지 사상은 가면을 쓰고 교회 안에 들어와 일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는 여러분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이 문제를 살펴 보도록 도와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


과학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양심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리스도인은 양심의 소리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어린아이가 들었던 큰 소리

개구장이 어린아이가 정원에서 놀고 있는데, 작은 거북이 한마리가 연못 밖에 나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돌을 들어서 내리 치려고 할 때, 갑자기 그 아이의 마음 속에서 “그러면 안돼!”라고 말하는 분명한 음성을 듣게 되었다. 한번도 그런 음성을 들었던 적이 없는 그 아이는 깜짝 놀라서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 내가 거북이를 돌로 치려고 하는데,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그러면 안돼’라는 커다란 말소리가 들렸어요. 그것이 누구의 음성이죠?”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양심이라고 부르지만, 엄마는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는단다. 네가 그 음성에 순종하면 그 음성은 점점 분명해지게 되고 너를 올바른 의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란다. 그러나 네가 그 음성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면 점점 그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될 것이고, 너는 어두움 속으로 빠지게 될 것이란다. 네 생애는 너의 마음 속에서 들리는 그 작은 소리를 듣는데 달려 있단다” 라고 대답해 주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양심의 소리이다.

양심의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자주 다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다루기를 꺼려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 양심의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은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양심의 소리는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많은 경우에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거나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양심

성경은 양심을 나타내는 말로 가득차 있다. 물론, 구약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양심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지만, 양심을 의미하는 말씀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잠시 그 실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창세기 3장에는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두려워서 숨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왜 숨었는가? 왜냐하면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다. 창세기 42장에는 요셉의 형들이 과거에 요셉에게 잘못한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라고 말하는 가책의 장면이 나온다. 이와 같이 구약 성경에는 양심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양심에 대한 은유적 표현은 많이 나온다. 잠언 28장 1절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주님 안에서 양심이 정결해진 자는 누가 무슨 말로 정죄한다고 할지라도 주안에서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불안해서 도망치게 된다. 왜 도망가는가? 바로 양심의 소리 때문에 그렇다.

신약성경에는 “양심”이라는 단어가 40번 이상이나 등장한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로마서 2:14,15.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 9:1.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 2:20. 이 말씀은 성령께서 온전하게 자신의 마음 속에 거하시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양심 속에서 속삭이시는 성령의 음성을 통하여 알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진리와 오류, 참과 거짓,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7.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쉽게 오류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들이 성령의 음성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거나, 다른 영의 음성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온갖 거짓 가르침이 섞인 바벨론의 포도주에 기독교회가 취하게 될 것이라고 요한계시록은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성령 안에서 양심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은 비록 성경 지식이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오류와 진리를 구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잘못된 교리를 접하게 될 때일지라도, 성령의 음성에 따라서 그 문제에 대하여 성경을 깊이 연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양심에 문제가 생긴 현대 기독교회

오늘날 현대 기독교회가 갖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질병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의 양심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죄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양심이 무디어져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너무나 엉뚱하고 파렴치한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정죄하면서, 자신은 동일한 죄에 빠져 있으면서도 양심 속에서 죄에 대한 책망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왜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들을 수 없는가? 양심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성경은 질병에 걸린 양심을 “약한 양심”과 “더럽혀진 양심”과 “화인 맞은 양심”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1. 약한 양심 :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고전 8:7. 그 당시, 시장에서 파는 고기들은 대부분 이방 신전에서 제사를 드렸던 제물들이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는 먹지 말라고 권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고기를 우상에게 바쳤다고 해서 변질되거나 부패되지는 않는다고 변명하면서 과거의 습관대로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의 양심을 약한 것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예민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이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어떻게 먹을 수 있냐고 말하면서 먹기를 거절했다. 물론, 고기를 먹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음으로써 양심을 약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 사도 바울의 충고였다. 어떤 것이 직접적인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성경의 교훈을 무시한 채 자신이 원하는대로 결정하고 즐기는 사람은 약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예민하게 다듬어 질 필요가 있다.

한번은 어머니가 시장에 가면서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주의를 주었다. “얘야, 엄마가 없는 동안에 부엌에 있는 과자를 먹으면 안된다!” 그러나 엄마가 나가자 아이는 과자를 하나씩 먹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먹어 버렸다. 엄마가 돌아와서 비어있는 과자 상자를 보고서 아이를 야단치자, 아이가 대답하기를 “엄마, 내가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았어요. 그러나 너무나 먹고 싶어서 울면서 먹었어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이 어린아이처럼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양심 속에서 “그것은 죄다”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죄를 범하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주님, 제가 알지만 연약하오니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라는 기도로서 양심의 소리를 잠재우고 평안을 찾으려고 애쓴다. 이러한 사람들은 영적 스태미너가 부족한 사람들이다. 영적 스태미너가 부족하다는 말은 양심의 소리를 들을 때에 그 음성의 요구에 순종하는 힘이 약하다는 의미이다. 바로 이것이 거듭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세이다.

2. 더러워진 양심 :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디도서 1:15. 똑같은 그림을 보고서, 어떤 사람은 “참 이 그림 정말 아름다운데!”라고 감탄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그림을 보면서 과거에 자신이 보았던 추한 장면을 연상한다. 죄의 습관들로 더럽혀진 마음을 지닌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피로 양심을 씻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더러워진 양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양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신뢰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육체의 죗된 욕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러워진 양심을 가진 사람은 양심의 소리와 육체의 요구를 구별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이 부족하다. 이러한 사람들의 양심은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씻어질 필요가 있다.

3. 화인 맞은 양심 :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4:2. 이 말씀은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거짓을 말하는 모습을 말한다. 마지막 시대에 짐승의 표가 내릴 때에는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대핍박의 사건이 생긴다. 예수께서도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경고를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겨 주셨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만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요 16:2. 마지막 시대의 대쟁투는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 사이의 전쟁이 아니다. 마지막 시대의 쟁투는 양쪽 다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고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쟁투이다. 한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하나님의 진리로 씻겨진 양심을 가진 진짜 그리스도인들이고, 다른 한쪽은 더럽고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내적 음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증해 보는 일 없이 죗된 육체의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이다.

마귀는 양심이 완전히 죽은 존재이다. 양심에 조용히 속삭이는 음성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기면,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된다. 양심은 참 이상한 것이어서, 그 소리는 자신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조용히 들려오는데, 그것을 오래 동안 듣지 않거나 거절하면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것이 내적 음성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양심이 아직도 살아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히 여겨야 한다.

거듭나야만 하는 양심

아무리 선하고 윤리적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진리 안에서 회개하고 거듭난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그는 올바른 양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착하거나 도덕적이라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성령에 의해서 거룩하게 변화된 양심을 가진 자만 하늘에 들어갈 수 있다. 바로 이 사실을 오해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타락한 육체와 양심을 가지고 이 땅에 살게 된다. 정직한 양심은 본성적으로 이어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양심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에 의해서 새롭게 태어나야만 신뢰할 수 있는 음성을 발할 수 있다.

양심은 심판관이고, 경찰관이며, 우리의 눈이고, 내 속의 음성이다.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양심이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양심에 병이 생기면 그리스도인 신앙과 삶에 심각한 문제가 초래된다. 우리가 양심 문제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면을 주의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1.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2. 양심 자체는 법이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이 법이고 판단의 기준이다. 3. 평화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지, 양심이 주는 것이 아니다.

1.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 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이사야 30:21. 바로 이것이 양심의 음성이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실 때, 어디에 역사하시는가? 성령은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여 양심 속에서 말씀하신다. 양심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관이다. 이 양심의 소리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책망을 듣지 않아도, 우리를 괴롭히는 죄책감이 생기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칠 때, 감정과 정욕의 소리를 듣는 대신에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거짓과 부정직으로 사업을 하고 장사하고 싶은 육체의 욕구가 치밀어 올라올 때, 마음 속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의인이 걷는 길이다.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진리에 대한 이해와 올바른 교리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죄를 범하는 경우, 그들이 진리나 교리를 모르기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그들이 진리를 알고 교리적으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양심 속에서 속삭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기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가끔 조용히 방에 혼자 있을 때가 있지만, 실제로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하루의 일을 끝마치고 조용히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오늘 낮에 했던 그러한 말과 행동은 “참 잘못된 것이다”라는 양심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오늘 네가 이런 계획을 세웠는데, 그것은 너의 지나친 욕심이란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한 쪽에서는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데, 다른 한 쪽에서 자신의 체면과 욕심이 올라와서 하나님의 음성과 치열하게 다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바로 그 장면에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양심의 소리를 선택한다. 만일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양심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면, 그대는 죄에 의해서 완전히 장악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이 양심의 소리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에 꽤 흥미있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어떤 정신분석 학자들이 귀신들렸다가 풀려난 사람들과 일련의 상담을 한 후, 그들은 대부분의 귀신들린 사람들이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악령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양심을 통하여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계속해서 거절하는 삶을 살면, 결국에는 마귀의 영에 의해서 지배받게 된다는 것이 그 연구 보고서의 결론이다. 그러나 거품을 입에서 흘리면서 괴성을 지르는 사람만이 귀신들렸다고 판정해서는 안된다. 악한 습관으로 인하여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귀신들린 사람들이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부절제에 빠져 있는 사람들, 마약에 빠져 있는 사람들, 도박에 빠져 있는 사람들, 알콜중독에 빠져 있는 사람들, 거짓과 위선에 빠져 있는 사람들, 돈과 명예의 탐욕에 빠져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마귀의 영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이런 사람들은 양심의 소리를 오랜 기간 동안 무시하는 삶을 산 결과로 인해서 그러한 죄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지력은 마귀의 요구에 도무지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다. 귀신들린 것을 입에서 거품을 흘리고, 괴성을 지르는 것과 같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귀신들렸다는 말은 마음과 양심이 마귀에게 점령당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2. 양심 자체는 율법이 아니다!

양심은 마치 판사나 경찰관 같은 역할을 하는 내적 음성이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양심 자체가 법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양심은 다만 법을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양심은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정확한 시간을 알기 위해서는 시계를 종종 표준 시간에 맞추어야만 하듯이, 우리의 양심도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에 의해서 교정되어야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되지 않는 어떤 일을 하면서도 “나는 양심에 꺼리낄 것이 전혀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이 모든 일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법이 된다고 착각한다. 자신이 어떤 것을 옳다고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진리이고 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리와 선은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에 의해서만 판단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양심의 나침판이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향하여 똑바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성서적 진리로 입증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양심적으로 가책을 느끼지 못할 경우에는 그것을 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이 성경 진리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의 양심은 반드시 진리에 의해서 훈련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잘못된 가르침을 가지고 너무나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이 믿는 오류와 거짓 가르침에 대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성서적 진리에 맞추어서 자신의 양심을 재교육, 재훈련시켜야만 한다. 한번은 어떤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진리를 소개한 후, “자, 이제는 지금까지 공부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서 생애의 방향을 바꾸시겠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목사님, 저는 지금까지 공부한 그것이 성서적 진리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그대로 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내 삶의 방향을 바꾸지 않더라도 저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죠.” 어떤 면에 있어서,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하나님의 진리를 거절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대답이다.
양심은 그것이 훈련받는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양심을 절대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절대적인 판단 기준은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 뿐이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독일 의회 앞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확신을 얻을 때까지는 내가 한 개혁에 대해서 참회하지 못한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묶여져 있다 ... 성경, 오직 성경만으로 나를 설득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들의 모든 생활과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아무리 양심의 가책이 없다고 할지라도, 나의 스타일과 개성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면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양심을 비추어봐서 무디어졌거나 둔해진 양심을 다시 소생시켜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과 죄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전 4:4.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 우리의 양심을 판단하실 분은 오직 주님 뿐이시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10. “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약 2:12. 여기서 말하는 “자유의 율법”은 바로 앞 성경절인 야고보 2:10,11절에 나온 것처럼 “십계명”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요구가 나의 양심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3. 평화는 양심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 가운데 죄책감(양심의 가책)이 생기면, 그것이 생기는 원인을 없애려고 하기 보다는, 죄책감을 잠재우려고 애쓰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다. 오직 진정한 회개만이 우리의 영혼에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 죄책감을 일으키지 않는 교리나 거짓 평안을 주는 교회나 목사를 찾아간다.

회개와 용서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 때문에 생기는 평안만이 하늘이 인정하는 평화이다. 우리는 양심의 소리를 잠재움으로 스스로를 기만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안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평안인지, 아니면 우리의 양심을 죽임으로써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평안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진짜 평안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요 14:27.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마귀(세상)가 주는 평안과 하나님께서 주는 평안을 혼돈하고 있다.

“이것이 정로니 이리로 가라’는 조용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게을리 했거나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은 양심을 통하여 역사하는 하나님의 음성과 마귀의 음성을 분별하지 못하는 혼돈에 빠지게 된다.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기도와 명상을 할 때에 들었던 음성, 자신이 꿈을 꾸었을 때 보고 느꼈던 감정, 그리고 자신의 눈으로 본 어떤 영들의 말을 무조건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무엇을 들었는가? 그대가 들은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를 확인해 보라. 무엇을 보았는가? 기도하는 마음과 성경으로 그대의 경험을 살펴보라. 그리고 그대의 양심이 그리스도의 보혈과 진리로 치료받을 필요가 있는지를 살펴 보라.

이런 사람은 위험한 사람

자기 생각이나 판단을 성경의 가르침보다 위에 놓는 사람
자기 느낌이나 감정을 성경의 가르침보다 위에 놓는 사람
자기 이론이나 사상을 성경의 가르침보다 위에 놓는 사람
기도 중에 떠오른 생각을 성경의 가르침보다 위에 놓는 사람
명상 중에 들었던 음성을 성경의 가르침보다 위에 놓는 사람
꿈에서 보았던 장면을 성경의 가르침보다 위에 놓는 사람
자신이 경험한 기적을 성경의 가르침보다 위에 놓는 사람
육체의 죗된 요구를 성경의 가르침보다 위에 놓는 사람
타락한 양심의 음성을 성경의 가르침보다 위에 놓는 사람

월경불순으로 고생하시나요?


심한 월경 불순으로 인하여 일생을 고통 중에 보내는 여인들의 숫자가 대폭 증가하고 있다. 각종 인스탄트 음식의 증가와 복잡한 현대 생활이 가져다 주는 스트레스는 증가하는 월경 불순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월경불순은 여성 생리시 고통을 수반하는 것으로서, 하복부에 심한 경련과 통증을 느끼게 된다. 피로, 오한, 두통, 설사, 구역질, 구토 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전체 여성의 50% 정도가 이 문제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는데, 그 결과 연간 1억 4천만 시간을 일하지 못하고 보내게 된다.

월경불순에는 1차적 월경불순과 2차적 월경불순 두가지 형태가 있다. 1차적 월경불순의 근본적인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초경이 있은지 몇 해가 지나서 일어난다. 고통은 혈액분비 한 두 시간 전에 시작되어 몇 시간 동안 혹은 1,2일 계속되기도 한다.

첫 날이 가장 심하며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약해진다. 고통이 가장 심할 때는 분비량이 가장 적고 고통이 적어짐에 따라서 점점 늘어난다. 1차적 월경불순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는, 운동부족, 자세불량, 위생상태 불량, 예민한 성격 등이며, 체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빈혈, 변비, 발을 차게하는 것 등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2차적 월경불순은 생리일 2,3일 전에 시작되는데 복부에 통증이 있으며, 심한 경우 등과 다리까지 확대된다. 통증이 심하지는 않으나 계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증세는 생리 기간 중 계속 나타나며 어떤 때는 생리가 끝난 후에도 한 동안 계속될 때도 있다. 2차적 생리불순은 자궁내막의 문제, 자궁의 위치 이상, 자궁의 염증 종양 그리고 골반 이상과 같은 문제들과 관련이 있다. 2차적 월경불순의 경우 이러한 요인들을 제거해 주면 치료되므로, 이 기사에서는 1차적 월경불순의 경우에 한해서 다루기로 하겠다.

1차적 월경불순의 천연치료법

1 뜨거운 패드와 물을 담은 병을 복부에 대고 있으면 고통이 경감된다. 한 두 시간 이런 조치를 취하면 환자는 정상 활동을 취할 수 있다.

2 자주 개나리, 나무딸기 잎, Chamomile 등을 뜨거운 차로 만들어 마시면 도움이 된다.

3 규칙적인 운동은 고통을 경감시켜 준다. 월경불순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들 중 30% 정도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되, 허리를 굽히는 운동은 무리하지 않는 것으로 선택해서 해야 한다.

4 어떤 경우에는 자세 불량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5 변비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6 생리 기간 전에 과로하면 증세가 악화된다. 일어나고 활동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지켜야 한다.

7 골반에 과도한 응혈이 있으면 생리불순이 생긴다. 생리불순에 대하여 연구한 어떤 의학자는 횡경막(복식) 호흡을 하는 여성들은 생리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꼭끼는 옷을 입으면 얕은 호흡을 하게 되고 이것은 흉식 호흡을 유도하는데, 그 결과 이것은 복부 근육과 횡경막의 운동을 감소시키므로 골반에 과도한 응혈이 생기게 만든다. 그 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운동을 제시하고 있다; 옷을 벗고, 평평한 바닥에 눕는다. 무릎을 굽히고 팔을 옆으로 두는데, 이 때 한 손은 배 위에 올려 놓아서 복근이 이완될 때에 복근의 운동량을 측정한다. 배 위에 올려 놓은 손이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숨을 들이 마신 다음, 손이 얼마나 낮게 내려갈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하여 숨을 내쉰다. 이러한 호흡을 아침과 밤에 환기가 잘 되는 방에서 10분 동안 실시해야 하며, 호흡을 할 때에는 부드럽게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한다. 처음에는 약간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지만, 반복하여 이 운동을 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8 생리가 시작되는 날에 깨끗한 욕조에서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면 자궁에 응혈된 혈액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9 꼭 조이는 옷을 입지 말아야 하며, 몸 뿐만 아니라 손발도 따뜻하게 보호함으로써, 혈액이 원활하게 순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10 요추의 1인치(2.54 센티미터) 오른쪽을 4분간 맛사지 해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11 화씨 105~115도의 좌욕과 함께 화씨 110~117도의 뜨거운 물에 두 발을 담그는 발찜질을 3~10분 동안 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화씨 55~75도의 찬 물에 2~10분동안 냉좌욕을 하면서 마찰을 함으로써 유익을 얻기도 한다.

12 항상 올바른 자세를 가져야 한다. L.J. Golub 박사는 몸을 뒤틀고 굽히는 운동을 통하여 치료에 성공한 사례를 발표하였다. 환자는 양 발을 평평하게 하고 발 사이를 15인치 가량 벌린 상태로 선다. 양 팔은 어깨 높이로 양 옆으로 곧게 뻗는다. 몸을 왼쪽으로 틀면서 굽혀서 오른 손이 왼쪽 발에 닿도록 한다. 다시 선 자세로 돌아와 반대 방향으로 운동을 한다. 첫 주에는 이 운동을 1일 4회 반복하며, 매 주마다 하루에 2회씩 운동량을 늘려서 하루에 10회씩 반복할 때까지 늘려 나간다. 이러한 운동을 3~4개월 동안 계속하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단, 생리 기간 동안에 이러한 운동을 하면, 고통이 오히려 심화되므로 삼가해야 한다.

13 월경불순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월경불순과 알러지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12명의 환자들에게 알러지성 식품을 근절시킨 결과 그 중 8명의 월경이 부드럽게 순화되었으며, 나머지 4명도 증세가 완화되었다. 다음과 같은 알러지성 식품을 근절시켜 봄으로서, 자신의 생리불순이 알러지성 식품과 관련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알러지성 식품군: 우유, 쵸코렛, 카페인, 커피, 차, 코코아, 소프트 드링크, 콘 시럽, 껌, 캔디, 각종 육류, 깡통 통조림, 아이스크림, 잴리, 잼, 맥주, 위스키, 계란, 콩, 컬리플라워, 양배추 등등.

14 과식을 하면 복부가 응혈되므로 삼가해야 한다.

15 성적인 흥분도 복부에 응혈을 가져온다.

16 염분이 적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우유와 그 외의 유제품들, 그리고 간장 등과 같은 염분이 많은 식품도 피해야 한다.

17 체중이 과다한 사람은 체중을 줄여야 한다. 과다한 체중을 가진 여성들은 정상 체중을 가진 여성들보다 생리불순이 될 비율이 높다.

18 금연하라. 흡연량이 많을수록 생리불순의 빈도가 높아진다.

19 생리 기간 중에 아침과 저녁으로 개박하(Catnip) 차를 끓여서 마시면 도움이 된다. Chamomile은 생리통을 완화시키는 효험이 있다.
 

 

카페인, 마셔도 될까요?


 카페인은 친구인가? 아니면 적인가? 이것이 정말로 신경을 안정시켜 주는가? 카페인이 기분을 전환시켜 주는가, 아니면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가? 정말로 해가 없을까? 카페인을 마시는 산모는 선천적 결손증을 지닌 신생아를 분만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 이제부터 카페인의 이모 저모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카페인이 들어 있는 음료들은 세계 어는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세계적인 음료수가 되었다. 그린랜드의 만년설 기슭에서도 카페인의 광고판을 볼 수 있으며, 남아프리카의 끝인 케이프 혼의 해변가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사막의 유목민이나 티벳 고원의 중국인들도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것을 매년 수백만 갤런 씩 소비하고 있다. 물론 북아메리카 전역에서 카페인 음료는 빼놓을 수 없는 기호 식품이다. 유럽의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그 향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카페인은 커피, 차 그리고 콜라 종류의 음료에 많이 들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수를 마시는데, 이유는 그것이 일시적으로 안정과 기분 전환을 주기 때문이다.

 이들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커피와 차이다. 서구에서는 12세기 이상의 거의 모든 사람이 커피를 마신다. 미국에서만 연간 250억 파운드가 소비된다. 전세계적으로 약 천억 파운드가 소비된다. 1000억 파운드의 카페인 음료수! 매년 소비되는 음료 57억 캘런 중에 65%가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 현대인들이 섭취하는 카페인 음료들이다.

카페인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경로

 카페인이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경로는 다음과 같다. 이 이야기는 AD 8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칼디라는 아랍인 염소지기는 어느 날 평소에는 조용하던 짐승들이 갑자기 이상해진 것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이상하게도 날뛰었다. 그는 염소들이 부시 베리(bush berry)를 먹은 후에 그렇게 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직접 실험해 보았다. 이것이 커피 역사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를 동료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고, 이렇게 해서 17세기까지 아랍과 유럽지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엇이 만족감과 행복감을 주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만일 그들이 커피 열매를 분석할 수 있었더라면 여러 가지 화학 요소들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카페인인데, 그것은 체내에서 특히 신경 조직을 자극한다. 카페인은 크산틴(Xanthine) 계통의 약에 속한다. 차에서 발견 할 수 있는 테오필린(theophyline)이나 초콜렛에서 발견되는 테오브로마인(theobromine)등도 역시 크산틴이긴 하지만, 그 구조나 생물학적 기능에 있어서는 카페인과는 완전히 다르다. 화학적으로 이것들은 매우 유사하나 체내에서의 생리학적 반응은 현저히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양학자들은 커피, 차, 초콜렛 등이 상당량의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코란 경전의 기록에서 마호메트는 자극성 음료를 마시지 말 것을 경고했는데, 그 이후 회교 지도자들은 이것을 커피라고 못박았다. 그 당시에는 그것을 지지할 만한 아무런 과학적인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왜 그런 견해를 취했는지 알 수 없었다. 16세기에 교황 클레멘트 3세는 마호메트와는 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그는 커피를 ‘기독교인의 음료’로 선포했다. 그 이후부터 커피나 차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향과 자극성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기호 식품이 되었다.

그대의 기분을 속이는 카페인

 커피의 향은 기분을 달래 주고 식욕을 돋구어 준다. 그러나 카페인은 기분을 돋구어 주는 반면에 건강을 파괴한다. 그것은 건강에 물리적, 생리학적 손상을 일으킨다. 카페인은 가벼운 도취감, 기민함을 일으키고 피로를 풀어 주는 것처럼 느껴지며, 두통, 초조감, 신경과민의 해소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들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카페인에는 피로를 회복시킬 수 있는 성분이나 기능이 전혀 없다. 어쩌면 여러분 중의 어떤 분은 전에 자신이 커피를 마신 후에 경험했던 느낌들을 회상하며 반박할 것이다. 늦은 밤에 운전할 때 졸음을 물리치기 위해 커피를 마셨고, 그 덕택에 무사히 돌아와 심야 TV방송까지 볼 수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커피가 피로 회복을 위해 한 일은 하나도 없다. 다만, 몸은 커피를 마시기 전과 똑같이 피로 했지만,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이 기분을 상승시켰기 때문에 신체에 누적되어 있는 피로감을 느끼지 못한 것뿐이다. 반응시간과 반사 반응은 잠시 개선되는 듯 하지만 곧 처음 피로를 느꼈을 때보다 더한 피로가 엄습하게 된다.

 카페인의 영향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그것은 중추 신경 조직을 자극한다. 또 혈당량과 심장 박동률, 혈압을 올려 줌으로 스트레스를 유발시킨다. 소변을 자주 보게 되며 호흡도 빨라진다. 마약을 했을 때와 같은 증상을 나타낸다. 카페인에는 칼로리나 영양, 비타민은 전혀 없다. 피로 했을 때에 카페인을 먹는 것은 지쳐있는 말에게 채찍질하는 것과 똑 같은 이치이다. 피곤한 말이 채찍에 맞아 빨리 달린다고 해서 말의 피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힘을 더 빼는 것이며 그렇게 소모된 힘은 회복하기가 힘들다. 이러한 식으로 계속해서 자신의 몸을 혹사할 경우, 건강은 서서히 무너져 버리게 된다.

 카페인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마치 연극 배우와도 같다. 훌륭한 연극배우는 실제 인물같이 행동한다. 카페인은 건강 상태가 좋도록 느끼게 한다. 만약 우리가 그런 착각 속에서 산다면 언젠가는 우리의 건강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

 카페인은 중독증을 일으킨다. 커피를 마시던 사람이 잠시 끊으면 곧 두통이나, 신경질, 초조함 등이 나타난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들은 뒷목이 딱딱해지며, 갑자기 신경질을 내는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커피 속에 있는 카페인은 매우 강한 성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중앙 신경 시스템을 자극하고 심장 박동을 증가시키며,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위산을 만들어내고 신장과 대장을 자극시킨다. 또한 잠을 이룰 수 없도록 한다.”Executive Fitness newsletter, October 13, 1984.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긴장이 이완되는 듯한 느낌을 얻지만, 결국에는 더 깊은 초조감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한 피 속의 당분 함유량을 갑자기 늘렸다가 곧 줄임으로써 아드레날린을 만들어내어 신체의 섬유조직을 당과 지방으로 빨리 분해시킨다.
 
카페인은 독약?

 카페인이 독약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실을 아는가? 카페인 한 방울을 동물의 몸 속에 주입시키면 몇 분 안에 그 동물은 곧 죽는다. 적은 양의 카페인이 뇌에 투입되면 곧 그 사람은 발작을 일으킨다. 종양과 심장질환에 카페인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카페인을 계속적으로 먹게 한 동물들이 위 종양을 일으키고 심장질환을 일으켰다는 보고가 있다. 또한 “하루에 2컵의 커피나, 4컵의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나이가 듦에 따라 엉덩이 뼈가 쉽게 부러지는 경우가 많이 나타났다. Providence Journal, Oct. 1, 1990. 브라운 의과 대학의 Dr. Douglas P.Kiel 씨와 동료들이 연구한 보고에 의하면, 3170명의 사람들이 엉덩이 뼈가 깨어지는 고생을 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카페인이 뼈 속의 칼슘을 오줌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심각한 골다공증이 유발된 것이다.

카페인과 암

카페인이 암을 유발 시킬 수 있을까? 아무도 확실히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어떤 종류의 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카페인을 끊어야 한다. 한 과학자는 커피를 볶을 때 생기는 타르가 석탄에서 생기는 타르와 같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방광암은 사람의 환경의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방광암의 발생이 커피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캐나다에서 남자 480명과 152명의 여자 환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담배, 커피, 콜라의 섭취량을 조사하여 연구한 결과 그들이 어떤 것을 얼마만큼 섭취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종류의 암이 발생함을 알게 되었다. 이 연구 결과는 커피가 방광암을 일으킨다는 것과, 콜라도 똑 같은 결과를 나타냄을 알게 되었다.

커피와 심장마비

하비씨는 어느 고등학교의 교장이었다. 그는 원기 왕성해 보였으나 원래 건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고혈압, 불면증, 심장병으로 고통 당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하루에 20잔의 블랙 커피를 마셨다. 나는 그에게 그런 습관의 해로움을 설명했으나 커피를 마시지 않도록 설득할 수는 없었다. 담배는 피우지 않았고 술도 거의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커피는 나의 활력요소, 커피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소.” 그 당시 그는 40대 후반이었다. 그는 50세가 되기 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거미가 카페인을 마셨을 때

 로마린다 대학교 보건 대학원에서 하딩 박사는 흥미 있는 실험을 했다. 두 종류의 거미에게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다. 자기 집을 크고 둥글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드는 거미에게 두 잔의 커피에 해당하는 양의 카페인을 주사한 후에 거미줄을 조사했다. 모든 줄은 완전히 그 형태를 잃어 버렸다. 거미줄은 크기가 작았고, 줄이 듬성듬성 빠져 있었으며 볼품도 없었다. 카페인을 주사하기 전에 거미는 30~35개의 원을 만들었었다. 그러나 주사 후 48시간 동안에 만든 것은 그 형태가 찌그러졌고 원도 불과 12~13개에 지나지 않았다. 96시간이 지나서야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피로 회복에는 마약성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적절한 생활습관, 영양이 풍부한 음식, 그리고 휴식이 피로 회복을 위한 최적의 처방이다. 카페인은 신경 조직을 속임으로써, 그 일을 시작하지만, 그것은 단지 시초에 불과하다.

 카페인은 과다한 카테콜라민 때문에 스트레스를 유발시킨다. 이것은 고혈압 환자가 커피를 마셨을 경우에도 나타난다. 고혈압은 심장마비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카페인으로 인하여 받게 되는 인체의 스트레스의 영향은 내장까지 부분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소화와 음식을 흡수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결과적으로 음식물이 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로 인해 가스가 차고 소화 불량이 되며 대장염 발생률이 높아진다. 카페인은 무법자이다. 만약 당신이 카페인 사용자라면 커피나 차, 콜라 등을 마시지 않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단 당신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을 느끼기만 하면 왜 좀더 일찍 끊지 않았는지 아쉽게 생각할 것이다. 적당한 식사, 운동, 신선한 공기, 물 등과 같은 건강 원칙을 잘 준수하면 건강을 위하여 약이나 자극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건강의 비결은 항상 단순한 데에 있다. 당신은 착각이 아닌 맑은 정신에서 최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안전한 지방, 위험한 지방


사람의 몸은 저지방 상태에서 작동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므로 만약 필요한 양 이상의 지방이 체내에 들어오면 우리 몸의 여기 저기가 막히기 시작한다.

우리 주변에 풍부하게 있는 천연 식물성 지방은 견과류들과, 씨앗류, 아보카도, 야채, 곡류들을 통하여 섭취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순수한 채식만으로도 충분한 지방을 섭취할 수 있다.

오늘날 미국 사람들의 콜레스테롤은 150~300 mgm 사이인 반면에, 개발도상국에 사는 사람들은 90~120 mg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콜레스테롤 수치의 차이는 미국 사람들이 왜 높은 비율의 심장마비와, 발작, 그밖에 여러가지 다른 퇴행성 질병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간은 우리 몸에 필요한 모든 콜레스테롤을 생산해 내는데, 이 때 생산된 콜레스테롤은 우리 몸에 해로운 것이 아니다. 몸은 이것을 뇌, 피부 등과 같은 모든 조직 안에서 사용한다. 그러므로 만약 음식을 통해서 여분의 콜레스테롤이 추가되면 이것은 동맥의 벽에 축적되어서, 이것이 동맥경화증과 각종 문제들을 일으킨다.

가정에서 만든 기름

성경 시대에도 사람들은 필요한 양 이상의 기름을 먹었다. 그런데 그 때 먹었던 기름은 가정에서 만들어진 기름으로서, 지금과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은 기름이었다. 가끔씩 그 때마다 필요한 기름을 짜서 신선한 기름을 먹을 수 있었으며, 짜 놓은 기름을 여러 날 보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70~80년 전까지만 해도 기름을 짜는 것은 가정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신선한 기름은 감미롭고 고소한 맛을 내었다. 또한 기름을 짜는 과정은 서서히 이루어졌으며, 가열하는 작업은 없었다. 요즘에도 가끔 cold press oil(가열하지 않고 상온에서 재래식으로 짜는 기름)을 볼 수 있지만, 오늘날 마켓에서 파는 대부분의 기름은 실제에 있어서 크게 다른 기름이다.

핫도그

채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현대인들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육식이 각종 질병과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고기 안에는 섬유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장암을 비롯한 각종 암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기가 건강을 위한 식품이 아니라는 것은 현대 과학이 증명하고 있는 바이다.

특별히 동물계가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이 시대에 고기를 먹는 것은 여러가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암에 걸려 있는 가축들이 그대로 식용으로 포장되어 마켓에서 팔리고 있다. 매년 2백40만개의 소의 간이 질병에 걸린 것으로 판단되어 버려지고 있으나, 간 이외의 다른 부분들은 여전히 시중에 팔려나가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에서 시행하는 검사들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행해지는 연방정부의 검사는 수많은 가축들을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법적 효력이 각 주 간의 통상거래를 막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엄청난 규모로 도살되는 가축의 고기를 대부분 육안으로 검사하기 때문에 고기의 안전도와 위생도를 신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가장 안전한 지방과 단백질은 채식을 통하여 섭취할 수 있다는 과학적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고기는 해로운 화학요소들과 방부제, 호르몬 등으로 가득 차있다. 핫도그나 햄버거, 칠면조 고기들은 매우 건강에 해로운 음식들이다. 1994년에 발표된 보고에 의하면 한 달에 12개 이상의 핫도그를 먹은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에 비해 백혈병이 걸릴 확률이 9배 이상 높다.

공중 과학센터에서 일하는 Michael F. Jabcobson 씨는 말하기를 “핫도그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그것을 만드는 공장을 직접 방문해 보라”고 하였다. 버지니아 주에 있는 어떤 핫도그 공장을 방문했을 때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핫도그 안에 들어가는 고기는 전부 고기에 붙어 있는 지방 뿐이었다. 실제 고기(Red Meat)가 들어가는 경우는 오직 지방이 들어가는 데에 가끔씩 붙어서 따라 들어가는 것 뿐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핫도그의 단백질 성분을 늘리기 위해서 우유가루나 콩가루를 섞는다. 이렇게 배합된 지방(기름)과 우유나 콩가루, 물, 방부제의 혼합물은 빵 반죽과 같은 색깔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혼합물을 굽기 전에 빨간 염료를 넣어서 핫도그가 빨갛게 되도록 만든다. 이러한 과정을 직접 본다면 핫도그를 먹는 습관을 쉽게 끊을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핫도그는 가축의 근육질과 지방으로 만들어진다. 워싱턴 D.C.에서 2마일 떨어진 어느 핫도그 공장에서 사용하는 재료를 알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거기에서는 소고기, 돼지 위장, 껍질을 벗기지 않은 돼지의 턱, 돼지의 침 분비선, 임파선, 돼지의 비장 등 버리는 것 없이 아무 것이나 다 섞어서 핫도그를 생산하고 있다.

햄버거

정상적인 햄버거는 오직 소나 돼지고기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햄버거 고기에는 말고기나, 캉가루 고기들이 들어있다. 또한 가축들의 두개골 근육이나, 허파, 혀, 췌장, 코, 귀 등이 무분별하게 혼합된다. 비록 멸균 공정을 통과한다고 할지라도, 곰팡이, 쥐의 털, 벌레, 가축들의 대변 등과 같은 더러운 물질들이 포함된 상태로 가공되어 포장된다.

햄버거 고기를 불에 그을리거나 팬에 튀길 경우 암을 유발시키는 발암물질이 생성된다. 고기를 화씨 300도 이상에서 구우면 Mutagens 라는 화학요소가 발생하는데 이것은 우리 몸의 유전자를 변질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것을 동물에게 주입시킨 결과 실험실 동물들의 90%에 암이 발생되었다.

칠면조 요리

많은 사람들은 칠면조 고기가 다른 고기들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미국 사람들은 매년 추수 감사절이 되면 전통적으로 칠면조 요리를 먹는다. 또한 명절이 아니라도 칠면조 고기를 넣고 만든 샌드위치는 가장 많이 팔리는 음식들 중의 하나이다.

칠면조는 가공 처리되어 창고에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반출을 한다. 특별히 추수 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때에 가장 많이 팔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것들이 신선한 고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오래 전에 가공되어서 얼려놓은 냉동 고기이다. 그러나 가공 방법이 발달되었기 때문에, 막 잡은 칠면조 고기나 오래 동안 저장된 칠면조 고기의 겉모습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겉 모양이 그럴 듯 하게 보존되었다고 해서, 고기의 신선도가 유지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이렇게 가공된 고기를 녹였다가 다시 얼릴 경우 고기의 질이 떨어질 뿐 아니라 음식으로서 안전성이 떨어진다.

요즈음 나오는 칠면조 고기는 가공되는 과정에서 고기의 맛을 내는 주사를 투여한다. 또한 가축들이 병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매년 미국에서 생산되는 항생제의 40%를 가축에 사용하고 있다. 매일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가축에 사용하는 항생제를 간접적으로 섭취하게 된다.

핫도그나 햄버거 같이 지방이 과다한 칼로리를 얻는 경우는 유방암, 결장암, 전립선암 등과 같은 특정한 유형의 암이 심각하게 촉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세기 이상 계속된 동물 실험과 역학적인 연구 보고들이 이 관계를 입증하고 있다. 첫번째 연구 중 하나는 왓슨과 멜란비 두 사람에 의해 1930년에 이루어졌다. 그들은 콜타르를 피부에 바른 실험용 쥐의 기본 식단에 12.5퍼센트의 버터를 첨가해서 먹인 결과 피부 종양이 34퍼센트에서 57퍼센트로 상승했다. 그 이후로 나온 수백 편의 연구 논문들은 고지방 식사가 암 발생률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지배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과다한 지방의 섭취는 암 발생 요인이라기보다 암의 촉진제 구실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지방은 암의 촉진제가 될 수 있는 인체 호르몬의 양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어떤 유형의 지방을 섭취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버터나 다른 동물성 지방과 같은 포화 지방이 세포막을 딱딱하게 함으로써 암을 촉진하지만, 식물성 식용유와 같이 불포화 지방도 역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계속해서 햇빛에 피부를 태울 때 발생하는 것처럼 과다한 불포화 지방의 산화 작용으로 인하여 발암 요인이 되는 자유 지방산기가 생산될 수 있다.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은 음식물 속의 불포화 과지방이 산화된 결과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썩은 냄새가 나는 견과류나 식용유, 또는 쩔은 냄새가 나는 기름성 식품을 먹으면 안된다. 과다한 콜레스테롤이 암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요인은 아닐지 모르지만, 결장암에 있어서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방이 위에 도착하면 더 많은 담즙을 보내 달라는 화학적 신호가 간에 보내지는데, 이 때 생성되는 담즙의 주요성분은 콜레스테롤로 구성되어 있다.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의 장에는 콜레스테롤을 발암 물질로 변형시키는 박테리아가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섬유질이 없는 음식물을 섭취하는 사람의 장 이동시간은 증가하게 되며, 발암 물질은 몇 분 동안이 아니라 몇 시간 동안이나 장벽에 붙어 있게 된다. 이런 현상은 육식을 주로 하는 식생활 습관과 결장암의 관계를 잘 설명해 준다.

공원에서, 바닷가에서, 놀이터에서, 백화점에서 .... 어느 곳에서나 쉽게 살 수 있고 누구나 다 좋아하는 핫도그나 햄버거, 고기 샌드위치 등이 이처럼 더럽고 먹지 못할 고기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 가족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동물의 기름, 즉 지방은 동물의 모든 질병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동물의 몸에 들어온 모든 독성들이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모여 있는 곳이 바로 고기의 기름덩어리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름 덩어리만을 사용하여 만들어지는 핫도그를 먹는 것과, 먹을 수 있는 부분과 먹지 못할 부분을 가리지 않고 섞어서 만드는 햄버거 등을 먹는 것은 병 자체를 먹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안전한 지방과 단백질의 공급원은 무엇인가? 인체에 가장 유익을 주는 천연적인 지방과 단백질은 각종 과일과 채소와 곡류에 알맞게 포함되어 있다. 가장 안전하고 질이 좋은 식품으로 꾸며진 그대의 식단이 그대의 가정을 건강과 행복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다.

1부 - 나는 이렇게 뉴 에이지에 입문하였다


빗나간 그리스도인 신앙

나는 영국 소도시에 있는 크리스챤 가정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작은 교회의 목사였지만, 나는 성경 진리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성장하면서 성경 말씀에 대한 회의와 냉담함이 마음을 채우게 되었다.

또한 중 고등학교 시절, 학교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이 내가 믿는 종교를 우습게 여기고, 농담거리로 조롱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의 생애를 부담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좌절과 스트레스는 청소년기의 나에게 매우 견디기 힘든 짐이 되었다. 16세가 되던 어느 날 아침, 나는 학교 강당에서 심한 공포감 속에서 호흡이 곤란해 지고 가슴이 조여드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딴 사람이 되기 시작하였다. 의사는 안정제를 주면서 쉴 것을 권했지만, 내 병의 근원을 대답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실망하였다. 나는 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나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대학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술과 록 음악에 몰두하게 되었다. 비록 나의 몸은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갔지만,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 나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완전히 끝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좋은 직업과 풍부한 경제적 여유 속에서 인생의 쾌락을 즐겼고, 결국에는 일주일에 한 번 나가던 교회도 더 이상 나가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시작은 정신 심리학에서부터

나는 모든 종교로부터 잠시 동안 해방되기로 생각하였다. 차라리 종교가 없는 생활이 형식적인 종교 생활보다 낫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오늘은 먹고 마시자, 내일이면 죽으리” 라는 것이 내 생애의 목적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생애에는 진정한 행복과 보람이 없었다. 그리스도 종교가 나를 얽매는 멍에인줄 알았지만, 종교를 버리고 난 후에도 진정한 평화는 맛볼 수 없었다. 불안과 우울함은 점점 더 깊어만 갔으며, 십대에 느꼈던 공포와 긴장이 다시 나를 엄습해 왔다. 평화와 행복을 얻기 위해서, 나는 또 다시 정신 심리학에 대한 책들을 읽어보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다가 도서관 서고에 꽂혀 있는 작은 책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 책은 정신치료사인 피터 브라이디가 기록한 “긴장 질환”이라는 책인데, 그 책에서 그는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하여 논하면서 뉴 에이지 사상을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몸과 마음과 정신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므로,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먼저 치료해야 된다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전체적인 균형, 전체적인 건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에너지, 균형, 전체”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뉴 에이지의 치료 개념을 설명하였다. 나는 그가 제시하는 이러한 개념을 매우 좋은 개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책의 끝부분에서 그는 일반 의학에서 거의 취급하지 않는 침술 요법, 요가 요법, 명상 요법, 영매 수술, 환생, 그리고 수정점과 같은 신비로운 치료법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나는 그 책에서 뉴 에이지 운동(새 세대 운동)이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했으며, 그러한 신비적인 마술과 같은 것에는 마음을 빼앗기지 않은 채 건강의 회복에 필요한 정보만을 취하기로 결심하였다.

건강 요법을 통한 뉴 에이지 입문

“긴장 질환”이라는 책의 끝에서 나는 “뉴 에이지 건강 협회”라는 단체가 런던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건강법에 대하여 좀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하여 그 단체의 창시자를 만나보기로 하였다. 그 단체의 지도자인 마르커스 맥코스런드 대령은 매우 친절하고 사려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영국으로 도입된 새로운 심리학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방면은 정신적인 치료를 통해서 육체의 암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의 심리적 우울증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확신하는 바는 당신은 지금 당신이 전생에서 얻은 것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아니, 전생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그렇구 말구요. 나는 전생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여러번 환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어리둥절 하였다. 환생의 개념에 대해서 전에 들은 적은 있지만, 이 처럼 확신있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가 이 방면에 대해서 전문가였기 때문에 그의 말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의 집을 떠날 때에 나는 전생에 대하여 많은 흥미를 갖게 되었다. 전생에 대한 연구는 현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게 되었고, 이 때부터 나는 뉴 에이지 운동에 서서히 말려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 이후부터 나는 뉴 에이지에 관한 수많은 책들을 독파하였으며, 뉴 에이지 운동에 깊이 참여한 사람들의 신비적 경험을 동경하게 되었다. 뉴 에이지 운동가들은 나처럼 심한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건강요법을 소개해준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사상과 철학을 환자들에게 주입시킨다. 환자들은 현세에서의 건강과 성공을 약속해 주는 듯한 뉴 에이지의 개념과 신비적인 기적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심리학에서 신비주의로

심리적 공포와 영혼의 불안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던 나는 뉴 에이지를 통하여 심령의 내적 평화를 얻고자 하였다. 그리고 뉴 에이지 철학이 약속하는 잠재능력의 계발을 통하여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고자 하였다. 나는 여러가지 모임과 세미나에 참가하는 동안, 뉴 에이지에 관한 진보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로 이사가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나는 뉴 에이지 사상을 전하는 잡지를 구독하면서, 점점 더 깊숙히 뉴 에이지의 중심 사상으로 끌려들어가게 되었다. 전생에 관한 흥미와 더불어 나의 운명에 대하여 통찰력 있는 충고를 해줄 수 있는 특별한 영력을 가진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 나의 심령 깊숙이를 꿰뚫어 보면서 지혜와 지식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과 만나고 싶었다. 내 영혼을 괴롭히는 고통의 이유와 원인에 대하여 설명해 줄 수 있는 특별한 사람과 상담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뉴 에이지 잡지에 실린 광고에서 심령집회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모임의 이름은 “빛이 비추는 길”이었는데, 그 곳에서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체험하는 곳이었다. 나는 영매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기만과 사기가 많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임의 진실성 여부를 잘 관찰하고자 하였다. 나는 싸구려 점장이와 만나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 원했기 때문이다.

정해진 날짜가 되자, 나는 산타모니카의 깊은 골짜기로 차를 몰았다. 그 심령집회 장소는 티벳 사람들이 사용하는 동양식 챠임벨의 소리로 인하여 신비감이 깃들어 있었다. 실내에 들어서자, 은은한 향내가 흘렀으며, 매우 거룩한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중년 부인이 미소로 나를 맞이하자, 나는 그녀에게 “안녕하십니까? 나는 이곳의 지도자를 만나고 싶어서 왔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녀는 말하기를 “내가 이곳의 지도자입니다. 나의 이름은 뮤리얼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라고 말하면서, 나를 작은 탁자가 있는 방으로 안내하였다. 그녀가 앉은 의자 뒤에 걸려 있는 페퍼 대학교의 석사학위증과 개인 상담 및 가정 상담 자격증을 보면서, 그녀에 대한 학문적 신뢰감이 생겼다.

나는 뮤리얼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보았다. “나는 심오한 영매와 상담을 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종교단체 입니까?” 뮤리얼은 대답했다. “아니요, 우리는 종교인이 아니라, 영적인 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나는 나의 궁금한 점들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삶의 방향을 알고 싶으며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그녀는 곧 한 벌의 프럼프를 꺼냈는데, 나는 그것이 점치는 카드임을 알았다. 나는 “뮤리얼, 나는 우주계에서 직접 오는 영매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그런 카드 점 따위는 원치 않습니다.” 뮤리얼은 대답했다. “나는 하늘의 영기를 열어서 아카쉬 기록을 열람하기 위하여 단지 카드를 사용할 뿐입니다. 하늘에는 영원히 보관되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것은 우주의 거대한 컴퓨터와 같은 것입니다. 나는 단지 카드를 사용해서 매스터들과 교통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카드를 원치 않는다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뮤리얼은 곧 눈을 감더니 깊은 명상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녀는 온 마음을 기울여 자신의 내적 세계에서 들려오는 어떤 음성을 들으려고 정신을 집중하였다. 얼마 후,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이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나의 부모들과 형제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개성들을 묘사하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영국에 있는 나의 친구들의 모습과 관계를 상세하게 말했다. 그녀는 대백과사전을 읽어내려가듯 신비스런 정보들을 말했다. 나는 나만이 알고 있는 어떤 사건들에 대해서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그러한 사건들의 경위와 원인을 소상하게 말해 주었다. 나는 이마에서 땀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영지 능력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뮤리얼의 영매 독경은 약 한 시간쯤 계속되었다. 명상을 통한 영매 독경을 끝 맺으면서, 뮤리얼은 예쁜 팜프렛을 건네 주면서 내주 수요일에 있는 저녁 집회에 참석하라고 권했다. 나는 명상을 통하여 우주의 거대한 컴퓨터인 “아카쉬 기록”을 자유롭게 열람하는 뮤리얼의 능력에 매료되었다. 또한 그녀가 말한 환생과 전생에 대하여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만일 나도 뮤리얼처럼 그러한 능력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인생의 본질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왜 어떤 사람은 비참한 질병과 가난 속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건강과 행복 속에서 일생을 살다가 가는가?” 이러한 불공평에 대한 해답이 뉴 에이지 속에 감추어져 있다고 믿게 되었다. 사람은 여러번의 환생을 통하여 그 때마다 새로운 운명을 가지고 살게 되므로,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행복과 고통을 맛보는 가운데 환생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라는 뮤리얼의 설명에서 인생의 불공평함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뉴 에이지의 명상을 통하여 신비한 능력을 얻게 되기를 원했으며, 그 것을 통하여 내 자신의 생애를 변화시키고, 인간의 이상적 운명을 이룩하게 되기를 소원하게 되었다. 나는 영매의 마력에 깊이 빠져 들게 되었다.

명상 속에 숨겨진 치명적 기만

나는 뮤리얼이 교통하는 매스터(Master)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그 매스터와 교통함으로써 나도 뮤리얼처럼 영매의 능력을 소유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마다 저녁집회에 참석하기로 하였다. 수요일 저녁 집회에는 12명 가량이 모였는데, 25세부터 50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석했으며,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 사무직, 노무자, 가정주부 등으로 구성되었다. 첫 강의에서 뮤리얼은 “사랑과 빛과 환희의 황금 시기인 수병자 별자리 시대 즉, 뉴 에이지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천년기는 새 세대 운동가들의 시대가 될 것이다. 아니 사실은, 이미 그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로부터 오는 힘을 받아서 인류의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뉴 에이지의 핵심 이론 중의 하나인 명상 기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는 낮은 자아와 높은 자아가 있다. 낮은 자아는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거나 쾌락에 열중하기를 원한다. 고독을 메꾸기 위해서 친구를 찾게 만들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미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뉴 에이지는 이러한 낮은 수준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으로 여러분을 인도해 줄 수 있다. 하나님은 낮은 자아가 아니라 높은 자아(고등 자아, higher self)를 통하여 우리와 교통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다 높은 자아를 계발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우주의 의식 세계와 연결될 수 없다. 보통 인간의 지능보다 훨씬 더 높은 이 우주 세계의 의식과 접촉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낮은 자아와 고등 자아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뉴 에이지는 그것을 대표하는 표로서 아치형 무지개를 사용하고 있다. 낮은 자아로부터 고등 자아로 올라가는 이 아치를 받기 위해서 여러분은 날마다 명상을 실천해야만 한다.

“우주에 있는 지적 존재들은 어떤 힘을 지구로 보내고 있는데, 그 힘은 매우 민감하고 강력한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영성을 자극하고 챠크라스를 통하여 우리의 신체의 기능에 영향을 준다” 여기서 나는 “챠크라스”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뮤리얼은 곧 이어서 ‘챠크라스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챠크라스는 신체 신경의 중심이다. 다섯개의 신경 센터가 척추에 자리 잡고 있으며, 여섯번째 챠크라스는 우리의 앞 이마 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여섯번째의 챠크라스는 매우 중요한 것인데, 뉴 에이지 지망생들은 이것을 통하여 우주의 힘을 받게 된다. 우주의 힘이 명상을 통하여 여섯번째 챠크라스를 통하여 들어올 때마다 민감한 변화가 인간의 생리와 세포에서 일어나고, 그 때마다 여섯번째 챠크라스는 더욱 더 큰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그리하여 반복되는 명상을 통하여 우리는 전에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기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정신없이 그녀의 강의에 몰두하였다. 동양의 수도승들이 그토록 어려운 고행을 해가면서 명상에 매달렸던 이유를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명상을 통하여 우주로부터 오는 힘을 받고자 했던 것이다.

뮤리얼의 차원 높은 강의는 계속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온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낮은 자아를 초월해야만 한다. 자신의 목적이 우주에 계시는 하나님을 찾는 열망으로 채워지고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복종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나는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뮤리얼에게 던졌다. 뮤리얼은 대답하였다. “우리는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은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성이 아니다. 하나님은 매스터들을 통하여 고등 자아에게 말씀하신다. 매스터는 우리의 낮은 자아가 원하지 않는 일을 시킬 수도 있다. 옛 개성, 이기적인 자아는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고등 자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뜻을 버려야 한다.”

뮤리얼의 이러한 강의는 기독교회의 배경을 갖고 있는 나에게 매우 그럴 듯하게 들렸다. 기독교회에서는 육체의 소욕과 양심에 들리는 성령의 음성 사이에서의 갈등이, 새 세대 운동에서는 낮은 자아와 매스터를 통하여 고등 자아에 들려지는 하나님의 뜻 사이의 갈등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이 둘 사이에 너무나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명상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고 그것을 음미함으로써,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임에 반하여, 뉴 에이지의 명상은 마음을 완전히 비운 다음, 그 비워진 마음에서 들려오는 매스터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사단은 인간의 비워진 마음에 들어가서 자신이 원하는 멧세지를 마음대로 말해준다. 이 때 사람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그 음성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와 어긋나는 것일지라도 아무런 의심없이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기적을 추구하며 감정적 신앙을 가진 어떤 기독교인들이 기도와 명상 중에, 그리고 꿈을 꿀 때에 보거나 들은 모든 것을 성경 말씀으로 검증하는 일없이 무조건 하나님의 계시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뉴 에이지인들도 매스터가 고등 자아에게 속삭이는 모든 말을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그 결과, 뉴 에이지의 명상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은 사단의 음성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놀라운 기만 가운데 빠지게 된다. 나는 뉴 에이지에서 배운 명상을 통하여 비워진 내 마음을 완전히 사단의 손에 내어주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 이번 호 6페이지에 있는 명상에 관한 기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힌두교에서 도입한 뉴 에이지 명상

뮤리얼은 명상의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앉은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힘을 풀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라.” 나는 내가 어떤 사교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해서 불안했지만, 내가 아직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겠지 라고 자위하였다. 상황이 의심스러워지면 언제든지 오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뮤리얼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태양에서 오는 황금 광선을 상상하라. 그것이 당신에게 비친다고 상상하라. 천천히 숨을 깊이 들이키면서, 빛의 소나기처럼 당신의 머리 위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빛을 그려보라. 이 광선의 빛이 마음의 챠크라스의 꽃잎 세개를 열어 줄 것이다.” 이러한 명상 기법은 힌두교도들의 명상에서 도입된 것이다. 힌두교도들은 이 마음의 꽃잎을 연꽃으로 표현한다. 뮤리얼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포착하기 위하여 숨쉬는 법을 단계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뮤리얼은 말했다. “긴장을 푸세요.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것이 떠오를 때 그것을 말해 보세요. 명상 중에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음성이 들려지면, 그것을 여러분의 고등 자아에 주는 하나님의 기별로 받아들이세요. 자, 이제는 래리 씨부터 말해 보세요.” 나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무안을 당할까봐 겁이 났다. 그러나 뮤리얼은 조용히 주문을 외우면서 각 사람들의 명상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하였다. 뮤리얼은 래리 씨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래리가 황금 빛에 싸여 있는 것을 내가 본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의 고등 자아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랑하는 매스터 예수의 능력에 의지하여 요청하노니 래리를 통하여 우리에게 당신의 기별을 전해 주소서.” 곧 이어서 래리 씨는 입을 벌려서 매스터가 전하는 기별을 우리에게 대변해 주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 씩 돌아가다가 마침내 내 순서가 되자, 갑자기 나의 앞 이마 내부에서 밝은 빛이 켜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누군가가 방의 불을 켰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눈을 살짝 떠서 보았더니 방은 어두운 상태 그대로 였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그 밝은 빛을 마음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나의 긴장감은 풀리고 평안한 기분이 전신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이 신비로운 현상이야말로 우주의 힘이 지금 나에게 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 때 내 마음 속에 분명한 한 음성이 들렸는데,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기별이었다. 그래서 나는 입을 벌려서 그 음성이 말하는 기별을 반복하였다. 이렇게 해서 모든 회원들이 한 사람씩 매스터의 기별을 대변하였고, “음~”을 세번 제창하고 주문을 외우는 것으로 저녁 집회를 끝마쳤다.

2부 - 나는 이렇게 뉴 에이지에 속았다!


뉴 에이지 하에서 하나로 연합될 수 있는 이유

어느 수요일 저녁 집회 때, 뮤리얼은 자신과 교통하는 매스터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다. 뉴 에이지는 유일신이 아니라 여러가지 신을 믿는데, 이것 역시 힌두교의 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 계시지만, 그 밑에 여러 신 즉, 매스터들이 존재해서 인간들과 교통한다는 것이다. 뮤리얼과 교통하는 매스터의 이름은 졸콜이었다. 그 날 뮤리얼은 명상에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졸콜의 멧세지를 우리 모두에게 대변해 주었다. “사랑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오늘 나의 기별을 듣는 너희들의 마음 속에 나의 친구인 매스터 예수의 가르침을 간직하라. 그가 2천년 전에 이 땅을 거닐었을 때에 그가 가르쳤던 것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기억하라. 뉴 에이지의 힘이 온 세상에 내려지고 있으므로 모든 인류는 형제애를 가지고 사랑을 실천하라.”

뮤리얼의 매스터인 졸콜은 예수 그리스도를 매스터 중의 하나로서 소개하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뉴 에이지 사상 하에서는 어떤 종교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불교의 윤회, 힌두교의 명상 및 환생, 기독교회의 매스터 예수, 그리고 온갖 기적과 계시를 통하여 주어지는 매스터의 멧세지를 통하여 모든 종교는 하나로 묶여질 수 있는 것이다. 뉴 에이지는 모든 종교는 결국 하나이며, 모든 종교에서 믿는 신도 결국에는 동일한 매스터들이라고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도 매스터 중의 하나이며, 마호멧도 매스터 중의 하나이고, 힌두교에서 믿는 신도 매스터 중의 하나라는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 속에서 미국 인디언들의 토속 신앙과 기독교회가 하나로 연합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뉴 에이지인들의 사상이다.

고등 자아를 통해서 들려오는 매스터의 요구에 굴복하는 생애를 여러번 되풀이 하는 환생을 하면 인간도 매스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뉴 에이지의 매력 중의 하나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뉴 에이지인들은 “당신도 신이 될 수 있다”라고 가르친다.

나를 사로 잡은 명상의 능력

그 날, 우리는 명상을 통하여 주시는 매스터의 기별을 서로 말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뮤리얼은 다음과 같이 우리를 인도하였다. “오늘은 세 명씩 나누어서 명상에 들어가겠습니다. 여러분의 고등 자아를 통해 오는 영적 기별을 서로에게 전해 주십시요.” 회원들은 뮤리얼의 지시대로 3인조 씩으로 나누어졌다. 나는 두 여인과 같은 조에 속하게 되었다. 그 중 한 여인의 이름은 로지인데, 20대 중반의 아름다운 숙녀였다. 우리 셋은 카펫트에 앉은 다음, 로지로부터 시작하여 나에 관한 기별을 전해 주기로 했다. 우리 모두는 눈을 감고 명상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다른 여인이 말했다. “나는 로지가 황금빛 속에 들어섰음을 본다. 매스터 예수의 빛이 로지의 고등 자아에 비추어지고 있다. 로지는 이제 윌 베론에게 지혜의 기별을 전해 줄 수 있다.”

그 여인의 말이 끝난 후 조금 있다가 로지가 나에 대한 기별을 전해 주기 시작했다. “당신은 요새 어떤 여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과거에 당신의 생애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제니입니다.” 나는 거의 기절할뻔 하였다. 제니는 내가 영국에 있을 때 알았던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로지는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그녀는 긴 검은 머리칼을 가졌습니다. 그녀와의 관계는 로맨스가 아니라 우정적인 것이었지만, 그녀가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강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기가 질리고 말았다. 나는 과거 3년 동안 제니와 연락이 끊어진 상태였다. 나는 그녀를 내 생애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뉴 에이지의 신봉자였고, 나에게 점성술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로지가 무슨 기별을 더 전해줄지에 대해서 기대했다. “당신은 그녀를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로서 기별을 마쳤다.

그 모임이 끝난 후, 나는 고등 자아를 통해서 우주 영역에 속해 있는 어떤 신비도 캐어낼 수가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명상할 때에 머리 속에 환한 불이 들어오는 현상과 로지가 나에게 들려준 기별 전수는 나로 하여금 뉴 에이지를 더욱 더 깊이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고등 자아의 노예 생활

나는 내가 사랑하던 여자 친구인 캐디에게 슬픈 이별의 소식을 전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어제 저녁 시간에 가진 명상에서 나의 고등 자아는 내가 캐디와 이별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깊은 고민 가운데 빠졌다. 그러나 그녀에게 절교하자고 말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유를 물었지만, 나는 “그것이 운명이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하루는 갑자기 내 차의 엔진이 망가졌다. 나는 엔진 피스톤이 손상되었음을 알고, 피스톤을 교환하려고 했지만, 나의 고등 자아는 내게 새 차를 사라고 말했다. 아침 명상 시간에 고등 자아인 내적 음성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낡은 차를 고치느라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새 승용차를 사야만 한다. 그래야 너는 시간을 명상과 뉴 에이지 서적에 바칠 수 있다. 너는 네 자신의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나는 내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지 않고서는, 고등 자아인 내적 음성에 굴복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고등 자아의 음성에 굴복하지 않으면, 내 생애에 있어서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며칠 후 명상 시간에 고등 자아는 내게 심지어 어떤 차를 사야 한다는 것까지도 지적해 주었다. “플리머스 챔프를 사라. 매스터는 네가 챔프를 갖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오래 전부터 갖고 싶었던 씨로코를 사고자 하였다. 그러나 고등 자아는 내가 자동차 딜러의 세일즈 맨과 이야기 하고 있는 동안에도 내게 “왜 순종하지 않는가? 우리가 너에게 이미 챔프를 사라고 지시하지 않았는가? 너는 왜 쓸데 없는 시간을 소모하고 있니? 플리머스 챔프를 사라.” 나는 놀랐다. 나는 내적 음성의 집요함에 놀랐다. 그 음성에 굴복할 때까지 나는 평안을 누릴 수 없었다. 몇달 동안 꾸준히 명상을 실천한 결과, 나는 조용한 내적 음성을 더욱 더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 때 이후부터 내가 하나님의 참 진리를 발견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할 때까지, 나는 이사가는 장소와 시기, 뉴 에이지 기관에 헌금하는 날짜와 금액, 그리고 심지어는 직장을 옮기는 일에까지 나의 고등 자아가 지시하는 요구대로 움직이는 삶을 살아야만 했는데, 어떤 때는 고등 자아에서 들리는 말이 부도덕하고 잘못된 것일지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여야만 하였다. 때때로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게 들려오는 매스터의 뜻을 거절하고 순종하지 않을 경우, 나는 심한 불안감과 우울증으로 시달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우 불안과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억지로 고등 자아를 통하여 들려오는 매스터의 요구에 굴복해야만 하였다. 고등 자아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때마다 “너는 내 제자로서 좁은 길을 걸어야 한다. 네 자신을 부인하라” 라는 말로 나를 설득하였다. 내 생활은 과다한 헌금과 무리한 생활 계획으로 인하여 엉망이 되었고, 이것은 내게 견디기 힘든 물질적, 정신적 부담을 가져다 주었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나는 내가 체험하는 초자연적 경험에 이끌려 뉴 에이지의 기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내 앞에 나타난 매스터

만일 당신이 방에 혼자 있는데, 갑자기 찬란한 황금빛의 광채를 지닌 어떤 존재가 당신 앞에 나타나는 장면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1981년 10월 30일 아침, 명상을 하려고 앉았다. 힌두교나 불교에서 하는 식으로 나는 척추를 곧바로 세우고 가부좌를 틀었지만, 어렸을 때에 다친 허리의 아픔 때문에 명상을 길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명상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영계와 교통할 수 없다”는 뉴 에이지의 가르침 때문에, 나는 명상을 지속하려고 애를 썼다. 허리의 통증은 심해만 갔으며, 더 이상 앉아있기가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이전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어떤 물리적 힘이 내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마치 나의 온 몸 세포 전체에 찬란한 광선이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나의 뇌는 일천 와트짜리 전등을 켜놓은 것처럼 환한 빛으로 충전되었다. 나의 척추와 허리는 전혀 체중을 느끼지 못했으며, 따라서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모든 불안은 사라졌고, 어떤 강한 힘이 나의 온 몸을 떠받쳐 주는 듯 하였다. 나는 체중을 잃고 공중에 떠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의 마음과 이성은 정상이었으며,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내 앞에 찬란히 빛나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의 고등 자아는 이분은 매스터 졸콜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졸콜에게서 나오는 빛이 너무나 찬란하였기 때문에 나는 주변에 있는 다른 사물들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나를 보면서 “안녕하십니까?” 라고 말을 건네왔다. 그의 입술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지만, 정신적 감응을 통하여 그의 의사가 분명하게 내게 전달되었다. 나도 대답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나의 영적 투쟁을 위하여 분투하고 있습니다” 나 역시 입술이나 목청을 사용하지 않고, 나의 고등 자아를 통하여 그에게 말하였다. 졸콜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나도 알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른 후에 그는 사라졌다. 나의 온 몸은 매우 지쳤으며 나른해졌다.

그 날 아침의 경험을 통하여, 나는 엘리스 베일의 저서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명상의 연구에 헌신한 지망생들은 그 노력의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고등 자아를 통해서 들려오는 매스터의 요구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뉴 에이지인들은 마침내 매스터의 제자로 부름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매스터 졸콜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사실을 특권으로 생각하였다. 며칠 전 명상 시간에 나는 자신을 매스터에게 완전히 헌신하는 의미로, 모든 성행위를 금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매스터의 제자의 길을 걷겠다고 서약하였는데,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매스터 졸콜이 내게 자신의 모습을 친히 드러낸 것이다.

다음 수요일 저녁 집회에서 뮤리얼은 명상 중에 졸콜에게 받은 기별을 내게 전해 주었다. “너는 졸콜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명상을 통하여 너에게 지시를 내리며 잠자는 동안에 너의 마음 속에 생각을 심어준다. 전생에 너는 티벳에 있는 졸콜의 사원에서 수도하는 수도승이었다. 네가 이 세상에 환생하기 전에 영계에서 너는 졸콜을 만났다. 거기서 협약이 이루어졌는데, 너는 그의 제자가 되는 특별한 목적을 띠고 환생하기로 동의하였다. 너는 이제부터 엄격한 훈련을 거쳐서 뉴 에이지의 특별한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졸콜의 제자가 되기로 서약했다.”

매스터 졸콜의 제자가 된 후, 나는 엘리스 베일리의 책을 더욱 깊이 연구하다가, 매우 놀라운 구절을 발견하게 되었다. “뉴 에이지의 최종 목적은 모든 매스터들을 다스리는 매스터이신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출현하시는 그의 재림을 위하여 세상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모든 매스터들의 의무는 이 재림 사건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무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출현할 때, 그분을 영접하여 그의 가르침과 권면에 순종하는 것이다.” 뉴 에이지는 성경에 기록된대로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이 땅에 출현할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 세워진 사단의 전위부대 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천주교회의 교황과 뉴 에이지 운동의 세계적 지도자이며 티벳의 고승인 딜라이라마는 서로 존경하는 사이이다”, “교황은 회교 지도층인 이란 대통령을 만나서 서로의 종교에 공통점이 있다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교황은 진화론에도 영감이 있다고 진술하였다”라는 기사들이 신문에 공공연히 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광대한 뉴 에이지의 영역과 그 기만

나는 신비주의에 관한 책들에 심취하였다. 특히, 뮤리얼이 소개해준 엘리스 베일리가 저작한 “천사의 마법”이란 책은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그 책의 서문에는 그 책의 저자는 매스터 졸콜이며, 엘리스 베일리는 졸콜의 기별을 대변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뉴 에이지인들의 탐독서인 엘리스 베일리의 책에서, 매스터 졸콜은 약 350년 전에 티벳에서 출생한 자로서 한 때 티벳 사원의 수도원장이었는데, 명상과 엄격한 수도를 통하여 하늘 영계의 도움을 얻어 불멸의 몸으로 변화되어서 다시는 환생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뉴 에이지는 기독교에 동양 종교인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심지어는 아메리칸 인디언 토속종교를 가미해서 만들어진 복합 종교이다. 뉴 에이지 사상은 질병의 원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정신병, 귀신들림, 지능의 계발, 문화, 경제분야, 그리고 음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뉴 에이지 성향의 책들을 읽으면서 자신의 사상과 생애를 꼴지워가고 있다. 내 자신 역시 그러한 책들의 영향을 받아서 매스터들을 위대한 성자로 존경하게 되었으며, 그들과 같은 생애를 살기 위하여 온 생애를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뉴 에이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치료의 능력과 초자연적인 능력을 통하여 성공하는 방법 등을 통하여 현세에서의 행복을 약속해 주는 달콤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

뉴 에이지 크리스챤으로 개종

어느 날 매스터는 명상 중에 내가 철저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메세지를 주었다. 나는 너무나 깜짝 놀라서, 여러번 그 사실을 확인했지만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고등 자아의 음성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주었는데, 그 것은 그리스도 교회에 들어가서 “크리스챤 명상 그룹”을 활성화 시키라는 것이었다. 매스터는 나에게 모든 구체적인 성서적 가르침을 무시한 상태에서 사랑과 연합을 강조하며, 명상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직접적인 메세지를 받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그리스도이들에 나누어 주라고 하였다. 나처럼 뉴 에이지의 사상을 가지고 기독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을 뉴 에이지 크리스챤이라고 부른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교회에 나갔으며, 그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였다. 물론, 성경 말씀을 뉴 에이지 사상에 입각하여 해석하였지만, 어찌되었든지 간에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담임 목사에게 명상의 유익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 그는 나에게 명상 그룹을 지도해 보라고 권유하였다. 내가 기독교회에 들어와 보니 거기에는 이미 뉴 에이지에 물들은 목사들과 지도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리를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성령 운동이라는 이름 하에 초자연적인 기적을 강조하면서 영계와의 접촉을 시도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었다. 성경 말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그 가르침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뉴 에이지의 사상을 주입시키기란 매우 쉬운 일이었다.

뉴 에이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나는 또 하나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명상 시간에 방안이 갑자기 보라색으로 채워지더니 온 몸에 환희가 넘쳤다.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러더니 너무나 분명한 모습으로 매스터가 나타났는데, 그 매스터는 그 때까지 나를 인도해왔던 매스터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는데, 그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너는 이제부터 나의 가르침을 직접 받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나는 너무나 놀랐지만,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기 때문에 나의 매스터가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게 된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잘못된 사상을 받아들인 나는 완전한 기만 속에서 악의 영들이 이끄는대로 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다. 진리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나는 악령들의 기만을 분간할 수도 없었으며, 저항할 수도 없었다.

뉴 에이지의 사상 중에서 가장 기만적인 것은 성경에 대한 왜곡된 가르침이다. 뉴 에이지는 거의 모든 종교들을 판단하고 분석할 뿐만 아니라, 선악간의 대쟁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악의 세력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상상에 의해서 꾸며낸 악마나 적그리스도, 불의한 자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높으신 자와 대적하는 악의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고통 가운데 신음하면서 죄를 짓는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뉴 에이지 사상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단의 세력과 그들의 기만에 대하여 완전히 마음문을 열어 놓게 되는 것이다.

나는 매스터가 나의 고등 자아에 속삭이는 음성대로 복종하는 삶을 살았다. 그 댓가로 현세에서 건강과 행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윤회와 환생을 통하여 마침내는 불사의 몸을 받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과거의 나처럼, 지금도 수많은 뉴 에이지인들이 명상 중에 매스터들(사단의 천사들)이 말해주는 대로 결정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고등 자아를 통해서 귀신(악마)의 영과 접할 문을 열어 놓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이 영계의 세력이 사도 바울이 경고했던 그 세력인지 모른 채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뉴 에이지에 바쳤던 것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 엡 6:12

뉴 에이지에서 기적적으로 구출된 지금, 내가 깨달은 것은 매스터들과 뉴 에이지를 주도하는 신들은 악한 천사들이며, 그들의 대장은 루스벨 즉 사단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사도 바울이 남긴 다음과 같은 경고를 누구보다도 실감할 수 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후 11:14

결론 - 뉴 에이지 운동의 방향과 목적


뉴 에이지를 중심으로 모이고 있는 세계 종교

이번 호가 “새 세대 운동”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데에는 그 이유가 있다. 한국어로 “새 세대 운동”으로 번역된 “뉴 에이지 운동”은 에덴 동산에 살던 인류의 시조를 기만하기 위하여 사단이 처음으로 들여왔던 범신론 사상에 새로운 옷을 입힌 것에 불과한 것이다.

사단은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를 먹으면 그들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말했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도, 다시 말해서 죄를 지어도 죽지 않는다고 유혹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사단의 속삭임이 뉴 에이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교묘한 가면을 쓰고 기독교 안에 깊숙히 스며 들어 오고 있으며, 또한 21세기에 들어 서면서 온 세상의 모든 종교들을 하나로 묶으려고 하는 범 세계적인 종교 연합운동의 중심 사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로마 천주교회의 교황이 개신교회와의 연합은 물론이요, 불교, 회회교, 이슬람교, 심지어는 인디안들의 토속 신앙의 지도자들과 만나서 회의 하면서 세계적인 종교 연합을 꾀하고 있으며, 모든 종교는 그 중심에 있어서 실은 같은 신을 섬기고 있다는 식의 뉴 에이지 사상을 말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뉴 에이지 운동의 사상은 범신론 사상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일하시고 절대적인 하나님을 부인하며 또한 그 절대적인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칙과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 대신 신의 기운이 이 우주 만상 어느 곳에나 퍼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상으로서, 결국에는 인간도 계속 향상하며 발전하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메리칸 인디안의 종교가 뉴 에이지 사상과 일맥 상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만물 가운데 스며 있다는 것이 그들의 가르침이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보다 만물 자체를 신격화 한다. 그래서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자는 운동은 좋은 의미에서 해석되지마는 아메리칸 인디안들이나 뉴 에이지 운동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주장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죄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없다. 또한 심판의 개념도 없다. 그러나 이 뉴 에이지 운동에도 기도가 있고 명상이 있다. 그들은 사랑과 연합을 무척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경적인 사랑은 진리 안에서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연합을 말하는 것이지, 무 원칙적이고 감정적인 사랑과 연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안에서의 사랑과 연합을 이루어 나가야 하며 진리를 제쳐 놓고 인간적인 제도나 감정을 가지고 연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제쳐 놓고 연합을 강조하고 있는 종교 연합 운동이 세계적으로 일어날 때, 진리를 위하여 온 생애를 바치는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성경의 진리는 제쳐 놓고, 서로의 다른 점들을 간과 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연합하여야 한다는 사상이 괄목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중심으로 연합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하나님 안에서의 연합이지 인간적인 야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갱들도 연합할 수 있고, 마피아도 연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에 무가치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치는 연합된 무리가 되는 것이다. 진리가 빠진 연합이 진정한 연합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진리가 빠진 사랑도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다. 마귀와 악한 천사들도 하나님을 대항하여 연합하고 있지 않는가? 몇 해 전에 천주교회 지도자들과 개신교회 지도자들이 만나서 서로의 신학적이며 교리적인 차이들은 무시하고, 또한 서로의 양들을 빼앗아 가는 전도를 금지하며, 오직 사랑으로 연합하자는 ECT 문서에 공동 싸인한 것은 진정한 연합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타협이다.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구원에 대한 사상은 하늘과 땅처럼 거리가 멀다. 미사와 고해성사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마틴 루터나, 쯔윙글리, 허쓰, 요한 웨슬레 같은 개혁자들이 부활하여 이러한 모습들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놀라며 기절하겠는가?

기독교회 안으로 들어온 뉴 에이지

뉴 에이지 사상은 요즈음에 기독교의 옷을 입고 살며시 교회 안으로 스며 들고 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성경 진리를 강조하지 않고 사랑과 연합을 강조하는 사상들을 우리는 매우 조심해야만 한다. 원래 뉴 에이지 사상은 진화론과 환생(Reincarnation), 점성학, 초월 명상 등등을 포함하는 이교 사상이지만, 요즈음은 이 새세대 운동이 가면을 쓰고 기독교회에 들어와 그들의 가르침이 기독교회식으로 탈바꿈되어 가르쳐 지고 있다. 실제에 있어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신비한 계시들을 보고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경험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뉴 에이지 운동의 기만적인 영향권 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해 보라.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들은 성경 진리들을 확실하게 모르고 있으며, 또한 죄와 심판, 그리고 의의 표준 등에 대하여 막연한 이해를 갖고 있거나 아니면 엉뚱한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성령께서 그렇게 특별하게 역사 하실 수가 있다는 말인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세상의 종말의 시간으로서 마귀가 인류를 기만하기 위하여 온갖 술수를 다하고 있는 위기의 시대이다. 우리가 이러한 속임으로부터 보호 받기 위한 유일한 갑옷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뉴 에이지에 대한 성경의 경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다음과 같이 우리를 경고하고 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9-12. 또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딤전 4:1. 사도 요한도 이렇게 우리를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요일 4:6. 다시 말해서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잘못된 영의 역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성경만이 모든 진리와 가르침의 표준인 것이다. 갈라디아서 1:8,9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혹 하늘로 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복음 이외의 다른 복음인 자유주의적 복음, 세속적인 복음 즉, 죄를 버리고 성화되지 않아도 무조건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통속적인 가르침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이러한 가르침들도 기독교회 안에 들어온 뉴 에이지 사상과 보조를 맞추는 가르침이다.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교황권과 뉴 에이지

계 17:13은 놀라운 말씀을 예언해 주고 있다.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계시록 17장은 바벨론의 정체를 폭로해 주는 장으로서, 이 세상의 나라들과 종교들이 한 뜻을 가지고 짐승 곧 교황권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교황권은 지금 온 세상의 모든 종교들을 끌어 안기 위하여 기독교회의 종교 연합운동은 물론이요, 모든 이교도들까지도 연합하려고 하는 범 세계 종교 연합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전에 뉴 에이지 사상이 중심적인 역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모든 사람들을 새로운 술로 마취시켜 진리와 오류를 분간하지 못하도록 두뇌의 힘을 마비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계 17:2~4절은 바벨론의 특징을 온 세상 사람들을 잘못된 가르침으로 취하게 만드는 단체로 묘사하고 있다.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세계적인 통합의 움직임

이제 곧 온 세계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합되려고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세계는 이제 하나가 아닌가! 또한 통신과 교통 그리고 문화적인 교류에서도 하나가 되고 있지 않은가! 종교 연합 운동을 보라! 세계 무역 협정을 보라! 세계를 단일 정부로 만들겠다는 세계 부호들의 계략은 여러 세기 전부터 역사해 왔다는 사실을 식자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곧 다가올 Y2K 컴퓨터 문제는 이들에게 세계를 제압하기 위하여 새로운 법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위기의 때에는 민심이 지도자들의 독재를 허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엄청난 환란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누가 과연 깨어 기도하는 자들이 될 것인가!

범람하는 신비주의가 초래한 결과들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신비주의가 급속하게 대중화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와서 유난히 점성술, 손금보는 일들, 다른 영계와 접촉하는 심령술, 귀신과 대화한다는 강신술, 그리고 외계인과 만났다는 UFO 현상들이 점점 더 범람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이러한 초자연적 현상들이 일반인들에게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할리웃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중에서 신비주의에 속한 유령, 우주 전쟁, 그리고 외계인과 UFO 에 대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가장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사실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스타워즈를 만든 영화 감독 죠지 루카스는 환생과 윤회를 가르치는 뉴 에이지 사상에 깊이 심취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다 알고 있다. 이제는 범람하는 신비주의 영화를 통하여 어린 아이들까지 무의식적으로 뉴 에이지 사상을 받아 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모르고 교회 청년회에서는 청소년들을 데리고 단체로 이러한 영화들을 관람하기 위하여 몰려가고 있지 아니한가! 지금 이 세상은 하나님과 진리와 참된 성도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을 위하여 질주해 가고 있다. 누가 과연 이 사실들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사람들을 깨울 것인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친구들을 총으로 난사하여 죽이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요즈음 유행하는 폭력 비디오 게임들이 그 원인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오고 있다. 사단의 오류들이 담겨져 있는 영화들을 본 자녀들의 영혼에 남겨질 깊은 상처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인을, 품성이 담겨져 있는 이마에 받아야 할 청소년들이 과연 앞으로 어떠한 무리에 속하게 될까?

최면술은 악한 일이요, 뉴 에이지 사상의 분파이다. 그런데 요즈음 최면술을 시범하여 보이는 프로들이 텔레비죤의 화면에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웃기거나 놀라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고등학교들을 돌아 다니면서 학생들을 즐기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면술은 인간의 잠재의식에다 멧세지를 전달하여 판단 기능과 의지력을 무산시키는데 사용하는 심리술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와는 전혀 어긋나는 사단의 수법이다. 한번 최면에 걸렸던 사람들은 그 다음 기회에 최면이 올 때에 무방비 상태로 최면에 쉽게 빠지고 만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이제는 하나의 오락처럼 시행되고 있지 아니한가! 그리스도인들은 잠에서 깨어나 교회 안에 있는 위험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거짓 성령 운동과 뉴 에이지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신유의 역사들을 자세히 살펴 보라. 거짓 성령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성경의 진리를 가르쳐서 올바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이끌기 보다는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고, 또한 그들의 이기적인 욕구에 호소하여 병을 치료받고 하나님께 복을 받는 일에 그 중점을 두고 강조하고 있지 아니한가! 남 가주 지역에서 Bible Answer Man 으로 잘 알려져 있는 라디오 토크 쇼 사회자 Hank Hanegraff 씨는 Benny Hinn 목사를 포함하여 이러한 거짓 성령운동에 대하여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그의 저서인 “거짓 부흥운동”(Counterfeit Revival)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들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현재 미국 남자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Promise Keepers (프라머스 키퍼즈,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뜻) 운동은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는데, 타임지는 이 운동을 미국 기독교 교회사에서 가장 성공적이며 가장 많은 사람들을 운집시킨 운동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런데 이 프라머스 키퍼즈 운동에서 가장 강조하는 가르침이 바로 성경의 가르침이나 교리들의 차이들은 집어 던져 버리고 사랑으로 연합하자는 것이다. 이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전 콜로라도 주립대학 풋볼 코치였던 Bill McCartney씨 인데 그는 천주교인들 중에서 특히 개신교회에 파고 들어 역 종교개혁사업을 추진함으로써 개신교회를 다시 구 교회인 천주교회로 이끌어 오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서약한 사람들 중 하나이다. 이 老조窄擔?키퍼즈” 운동에 대하여 여러 보수적인 개신교 목사들이 드디어 그 위험성을 알아 차리고 경고하는 일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텍사스 휴스톤에 있는 침례교회의 유명한 성직자인 Phil Arms 목사이다. 그는 이 운동의 바탕은 뉴 에이지 사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프라머스 키퍼 운동을 마치 군인들을 거대한 목마 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적군을 함락쳐榴?트로이의 목마( Trojan Horse)로 비유하였으며, 개신교회의 성경 중심 사상을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기만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를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호소하고 있다. 바벨의 뜻은 혼잡하다는 뜻이다. 진리와 오류가 섞여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러한 혼잡한 가르침들에서 나와야 구원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역사 이래로 계속되어 온 뉴 에이지

에덴동산에서 사단이 시작한 뉴 에이지 사상은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를 떠나 타락 시킴으로서 노아 홍수를 불러왔으며, 홍수 후에도 니므롯과 그의 아내 세미라무스를 통하여 바벨탑을 쌓고 바벨론의 이교 종교 사상을 구축하였다. 바벨탑이 무너지고 민족들이 흩어진 후에는 여러가지 이교 사상으로 나뉘어져 각 나라들에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퍼져 나간 이교 종교들이 바로 페르샤의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타교가 되었고, 거기에서 파생되어 나간 종교들이 회회교와 불교가 된 것이다. 애급으로 건너간 뉴 에이지 사상은 오시리스 종교를 이루었고 아랍으로 건너가서는 알라 신을 섬기는 이슬람의 종교가 되었고, 헬라로 가서는 그리스의 신화들을 낳았으며 로마의 박카스신과 디오니시우스 신화를 낳았다. 또한 페니기아 지방으로 가서 생성된 종교가 바로 성경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바알 신의 이교 신앙인 것이다. 이러한 이교 종교의 사상들은 다 범신론적인 사상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옛날 고대 베벨론에 있었던 태양신을 숭배하는 이교의 상징이었던 길고 높게 올라간 뾰족한 탑인 오벨리스크가 애급의 신전들에도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와 꼭같은 형태의 오벨리스크가 바로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 중앙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와 꼭 같은 오벨리스크가 어떻게 미국 와싱톤 디씨의 중심에 높은 탑으로 세워져 있느냐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로만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사단의 출현을 준비시키는 뉴 에이지

뉴 에이지 사상은 이 세상 모든 가르침과 모든 제도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사단에게서 출발한 것이며, 중심 사상은 하나님 없이 세상을 하나로 묶으려고 하는 것이다. 뉴 에이지 사상은, 현재의 인류 보다 더 나은 어떤 외계의 인물이 와서 지구를 위기에서 구출하여 준다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놀라운 기만이요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사단의 최후의 강신술이다. 이 지구가 경제적인 파탄을 맞이하고 천연재해로 도처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테러리스트들의 횡포가 심해지고 범죄가 급증하며 Y2K 문제로 도시들이 혼란하게 되고 폭동들이 생겨나며, 중동지방의 문제가 더 심화되어 갈 때에 마귀는 인류를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한 구세주처럼 이 세상에 갑자기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가 외계인의 모습을 하고 올 것인지 아니면 빛나는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뉴 에이지의 가르침을 통하여 기독교인들이나 이교도인들이나 무신론자들 모두가 다 하나로 연합하여 그를 재림하신 예수나 아니면 석가모니, 혹은 모하멧, 아니면 새로운 뉴 에이지의 메시야라고 크게 열광하며 환영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마귀는 오래 전부터 이 지구에서 실제적인 자기의 정부를 세우려고 노력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여전히 하나님께서 이 지구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살후 2:8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이 세상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 강림으로 끝마쳐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졸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사랑하사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정도로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께서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그 분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연구하며 그 분의 말씀을 순종하고 주님의 약속 안에 거하는 것이다. 진리와 오류를 구분하는 유일한 길은 성경, 성경 밖에는 없다. 그래서 개신교회의 종교개혁의 모토가 ?ola Scriptula? 寗별? 성경 만으로...” 였던 것이다. 로마서 13:11~14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때가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뉴 에이지 사상은 현대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천사들의 출현에 대한 갑작스러운 관심들, 마리아의 출현들, 외계인들이나 영들의 세계에 대한 깊은 호기심들,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유주의 사상들, 온 마음과 생애를 진리에 굴복하는 경험이 없이도 쉽게 믿기만 하면 구원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거짓 가르침들, 성경의 진리는 배제하고 사랑과 연합만 강조하는 가르침들, 심지어는 예배 형식에 도입되는 세속적인 음악들, 최면술들 등등, 이 세상은 혼란에 빠져 있다. 이제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고 살아야 할 시기이다. 예수께서 속히 임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참되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마지막 때를 안전하게 통과 하도록 간절하게 기도하여야 겠다. 유일한 무기인 성경을 손에 들고서...

강신술에 걸려들기 쉬운 6가지 유형의 사람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공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이는 세계는 인간 세계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사단의 악령들의 세계이다.

어떤 사람들은 천사와 악령은 죽은 사람의 혼백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저(사람)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라고 기록함으로써, 천사와 인간은 처음 창조될 때부터 완전히 다른 부류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시 8:5). 사단과 그의 악령들도 처음에는 하늘에서 봉사하는 천사들이었으나, 하나님께 대적하는 반역을 꾀함으로써 선과 악의 대쟁투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단과 그를 추종하는 천사들은 하늘로부터 쫓겨나서 지구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에덴 동산에서 사단은 아담과 하와가 받아들일만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서 인류의 시조를 범죄케 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이 강신술의 시초이며 죄가 들어오게 된 경위이다. 그 이후부터 지구는 사단과 악령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다.

사단과 악령들은 이 마지막 시대에도 사람들이 받아들일 만한 아름다운 천사나 사람의 모습으로 출현하는 강신술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강신술에 걸려들기 쉬울까? 다음과 같은 6가지 유형의 사람들은 사단과 그의 악령들이 강신술을 사용해서 나타날 때, 도무지 그 미혹에 저항할 수 없다.

1. 경건의 모습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

사단은 겉으로 경건한 척하지만, 진리를 연구하지 않고 이기적이며 세속적인 마음을 가진 자들을 쉽게 공략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실제로는 탐욕과 세욕에 젖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의 오른팔과 같은 조수로서 교회 안에서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단의 일꾼들이다. 하나님의 진짜 종들이 부흥과 개혁을 위하여 일할 때, 이들은 사단의 인도함을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악령들은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그들이 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2. 오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사단은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하여 여러가지 오류를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여온다. 각 사람의 느낌과 감정을 만족시켜 주는 온갖 이단설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한다. 비록 한 가지 이단설을 거절하였다고 할지라도, 자기 마음에 맞는 다른 이단설을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믿듣지 그것은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의 가르침은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가르침이다. 진리가 심령에 심어지면, 그 사람의 마음과 생애가 순결하게 변화될 것을 사단은 알기 때문에 거짓 복음과 거짓 교리들을 교회 안에 퍼트리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사단은 오류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기적과 능력을 주어서 무엇을 어떻게 믿든지 간에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나타내려고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3. 고의로 진리를 거절하는 사람들

단순하고도 단도직입적인 성경의 진리를 의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양심의 부르짖음을 잠잠케 하기에 적당한 교리를 찾게 된다. 그리하여 극기와 인내를 요구하지 않는 자유주의적인 “쉬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깊이 연구하지 않는 사람마다 악령들의 미혹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크다. 진리 위에 올바로 서 있는 사람에게서 사단은 미혹할 수 있는 구멍을 발견할 수 없다.

4. 성경 말씀을 의심하는 사람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증거들을 주셨지만, 불신의 구실을 찾아내기 원하면 얼마든지 불신의 증거들을 찾아낼 수 있다. 성경 말씀의 요구에 순종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는 자들로 변질된다. 그들은 성경에서 의심할만한 것들을 찾아낸 다음, 그것을 자신의 불순종과 나태함에 대한 구실로 삼는다. 진리를 따라가는 데 있어서 마땅히 자신이 바쳐야 할 희생과 헌신을 소홀히 여기고, 도리어 성경을 비판함으로서 불신과 회의주의로 빠져들어 가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사단은 나타나서 그들의 견해와 판단을 격려해 줌으로써, 그들을 더 깊은 기만 가운데로 끌어간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 가운데 있는 중요한 빛을 이해할 수 없다.

5. 죽은 자도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

사람이 죽으면, 몸은 죽지만 그 혼백은 살아서 이 세상 어딘가를 떠돌아 다니다가 살았는 가족과 친지들을 돕기 위하여 때때로 나타난다고 믿는 사람들 앞에 사단과 그의 악령들은 죽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온갖 미혹을 행한다. 이 사상을 근거로 사단은 성황당 귀신과 삼신 할머니와 같은 미신을 만들어 내었다. 성경은 사람은 죽으면, 의인과 악인이 모두 완전한 무의식의 상태로 무덤 속에 있다가 예수 재림 시에 부활하여 각자가 행한 바에 따라서 영생을 얻거나 유황불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살아남는 이들 제20,21,22호 참조)

6. 감정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

교회가 세속화 됨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거듭나지 못한 자신의 마음을 만족시켜 주는 감정적 교리를 선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감정적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엄숙하고 중요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하여 관심이 없으며 무지하다. 사랑을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믿지만, 그 사랑을 한낱 감상적인 감정으로 이해하며, 선과 악에 대한 분명한 구분을 모르고, 하나님의 의와 죄의 결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며, 하나님의 율법은 어떠한 경우에도 영원불변한다는 진리에 대하여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사단의 접근에 대하여 마음 문을 열어 놓은 그리스도인들이다.

자신의 악한 습관과 알고 있는 죄를 그대로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더 큰 사단의 미혹을 불러들이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천사들의 보호를 스스로 거절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악령들의 공격에 대하여 아무런 방비를 세울 수 없다. 사단은 이런 사람들에게 능력과 권능을 주어서 자신의 효과적인 대리인으로 만든다. 진리보다 기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사단은 기적을 통하여 접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