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진리를 아는 것과 진리를 소유한 것의 차이


감추어진 보화에 대한 비유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태복음 13:44

옛날에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보물을 땅 속에 감추는 일이 종종 있었다. 특별히 강도가 빈번하고 전쟁의 소문이 나도는 시대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땅 속에 감추어 두곤 하였다. 그러나 그 주인이 전쟁 중에 사망하거나 옥에 갇히거나 먼 곳으로 유배당하게 되면, 땅 속에 감추어둔 보물은 그것을 우연히 발견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주인없는 보화로 남아 있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도 묵은 밭에서 옛날에 숨겨둔 금, 은, 장식품들이 그 땅을 빌려서 농사짓던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발견되던 때가 종종 있었다.
사람들이 삯을 받고 밭을 갈 때에 그 속에 묻혔던 보화가 소의 쟁기에 부딪혀서 드러나게 된다. 큰 보화를 땅 속에서 발견한 사람은 그 보화를 원래 감추어졌던 곳에 도로 묻고 집에 돌아와 그 보화가 파묻힌 밭을 사기 위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서 사려고 결심한다. 그의 가족과 이웃들은 그를 보고 미쳤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는 그 묵은 밭은 그렇게 많은 돈을 주고 살만큼 중요하지 않았으며, 더우기 전 재산을 팔아서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밭을 사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안다. 그는 밭의 소유권을 얻은 다음에, 그 밭에 묻혀 있는 모든 보화를 찾기 위하여 밭의 구석 구석을 살핀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하늘 보화의 가치와 그것을 얻기 위하여 들여야 할 노력과 수고를 설명해주셨다. 성경은 보화를 값없는 선물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서 그것을 샀다고 하였다.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 보화의 진정한 가치를 알았다. 그래서 그는 감추어져 있는 보화를 얻기 위하여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샀으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는 야유와 조롱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의 보화를 얻기 위하여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희생도 너무 값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비유 중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밭은 성경을 표상하며, 보화는 복음을 의미한다.

값없는 선물에 대한 오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값없는 선물이라고 했는데, ‘보화를 사기 위하여 자기 소유를 다 팔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값없는 선물이다. 그러나 선물의 값을 값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고귀한 것이기 때문에 “값없는 선물”이라고 표현한 것이지, 선물이 무가치하고 싸기 때문에 값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생각해 보라. 어떻게 하늘 왕의 독생자의 죽음이 가치가 없는 선물이 될 수 있겠는가? 그 선물은 너무나 귀해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비싼 선물이다. 그것은 너무나 값비싼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공로나 행위로는 도저히 얻어낼 수 없는 것이다. 오직 그것을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만 거저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오직 선물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예수 그리스도는 값없이 나누어 질 수 있는 구원의 선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보화를 값없는 선물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사단이 다스리는 이 세상에서 보화 즉, 진리를 내 삶 속에서 소유하기 위해서는, 온갖 어려움과 시험과 고난이 뒤따른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대로 살려고 결심해보라. 그대에게 핍박이 올 것이다. 경건하고 거룩한 생애는 그대의 모든 것을 바치기 전까지 그대의 삶 속에서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께서는 보화를 사기 위해서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보화가 감추어지는 이유

복음의 보화는 감추어져 있다. 박식하며, 학식이 높고, 존경받는 철학으로 인하여 교만한 자들에게는 성경에 담겨져 있는 복음이 감추어진다. 많은 사람이 눈이 있으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되 듣지 못하고, 지능이 있으되 감추인 보화를 식별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화가 감추어진 곳을 밟고 지나가고, 그 곳 위에 앉아서 쉬고 있으면서도 보화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주어져 있으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교리와 성경 해석을 의지하기 때문에 모든 진리의 보화가 그들 앞에 열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숨기지 않으신다. 다만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진리가 그들에게는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는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생애와 마음에 전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할 것을 요구하셨다. 사람들은 그들이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자신의 경건하지 못한 습관과 이기적인 마음, 그리고 재물에 대한 탐욕을 결정적으로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하나님의 진리를 자신의 마음과 생애 속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희생과 포기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경 말씀을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다듬어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이 타락한 인간에 의해서 다듬어지고 깍아질 때, 타락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이 사라지게 된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계에 이토록 많은 세속적 교리와 가르침이 난무하며,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이 사라지게 된 근본적 이유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진리가 요구하는 희생이 두려워서 진리를 거절하게 된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러한 형편은 마찬가지 였다. “관원 중에 저(예수)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로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 함이라” 요 12:42. 그들은 진리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았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생애 속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세속적 야망을 포기해야 할 뿐 아니라,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의 보화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절하고 세속적 보화를 선택하기로 결심하였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부자 청년 이야기도 복음을 발견했지만, 복음이 요구하는 희생이 두려워서 복음을 버리고 떠난 이야기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하늘의 보화를 찾기 보다는 세상 보화를 찾는 일에 골몰한다. 그 결과 그들의 마음은 이기적이며 야심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세상 재물에 대한 욕심과 야심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자기 희생과 순종의 생애를 거절한 채, 마음에 거짓 평안을 주는 사람의 유전과 거짓 가르침을 쫓아간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보화는 감추어진바 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 분변함이니라.” 고전 2:14.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고후 4:3,4.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산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재물에만 열중하기 때문에, 복음 속에 담겨져 있는 영원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셨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마비시키는 미혹을 깨뜨리고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 16:26.
많은 사람들은 사람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진부한 구식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함부로 취급하며, 가치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성령으로 마음이 새롭게 변화된 사람은 성경 속에 어떤 가치로도 평가할 수 없는 놀라운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진리를 위하여 다 바친다. 슬프게도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속에서 진리의 보화를 발견하지만,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사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팔기로 결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감추어진 보화의 참된 가치를 정확히 아는 자들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모든 어려움과 희생을 감수한다. 보화를 발견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사지 않는 사람은 결국에는 잃어버린바 될 것이다.

보화를 찾는 방법

하나님의 말씀은 무진장한 보화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것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것을 얻을 때까지 탐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막연한 이해와 이론만으로 만족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스스로 보화를 열심히 찾는 대신에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노니”라는 말씀이 차지할 자리에 사람의 말을 올려 놓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열심있고 세밀한 성경 연구가 있어야 한다. 태만하거나 게으른 사람은 결코 진리를 예리하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 이 세상의 축복도 열심과 꾸준한 노력이 없이는 얻을 수 없지 않은가! 사람이 세상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일을 하려는 결심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일의 결과를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열심 있는 노력이 없이는 영적 지식을 기대할 수 없다. 진리의 보화를 찾기 원하는 자는 마치 광부가 땅 속에 감추인 금광맥을 찾기 위하여 파헤치는 것처럼, 진리를 찾기 위하여 파야 한다. 무성의하고 무관심한 성경 연구는 아무 소용이 없다. 젊은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뿐만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열심을 다하여 연구하는 자들에게는 감추인 보화가 열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는 반드시 보상이 주어지는데,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들의 지각력을 깨우쳐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교훈받기를 좋아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를 원하는 자는 성경 가운데 새겨져 있는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성경 안에 있는 진리를 아는데 달려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찾으라! 갈망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탐구하라. 학식이 있고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의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리워지기 때문이다. 감추인 보화를 찾는 일에 성공하고자 하는 자는 이 세상 사물보다 높은 것을 쳐다보아야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에 대한 고의적인 불순종은 성경에서 얻을 수 있는 더욱 풍성한 지식을 얻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 버린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 앞에 비추인 빛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큰 빛을 허락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을지 모른다. 성경을 연구하라. 그런데,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선입견과 인간적 사상을 버려야 한다. 만일 그대가 자신의 사상과 의견을 세우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한다면, 결코 그대는 진리의 보화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가를 알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라. 만일 성경을 읽다가 마음에 찔림을 받거나 자신의 의견과 다른 말씀을 발견할지라도, 성경 말씀을 자신의 의견에 맞추기 위하여 그릇 해석하지 말고, 진리의 빛에 맞추어서 자신의 의견을 바꾸어야 한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기이하신 뜻을 보기 위하여 그대의 마음과 생각의 문을 활짝 열라.

믿음은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과 분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리를 믿는다는 것은, 영생을 주는 복음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 복음이 요구하는 일체의 의무까지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사람이 거듭나기 전에는 성경에 감추어진 복음의 보화를 발견할 수 없다. 자기 멋대로 억측하거나 상상할 수는 있지만, 복음을 이해할 수는 없다.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참 의미를 보여 주신다. 영혼의 구원이 달려 있는 중요한 진리가 마음에 감명되고, 영생의 길이 오해될 여지없이 명백하게 깨달아질 수 있도록, 성경 말씀을 읽을 때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라.

 

하나님의 광야 학교


우리 모두 상상의 날개를 펴서 구약시대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한 목자가 양떼를 이끌고 먼지나는 광야를 걸어가고 있다.

양떼들 사이에 서서 초라한 모습으로 지팡이를 짚고 서있는 사람은 한 때 애굽 왕의 후계자로 지목받던 사람이었다. 이 목자는 누구일까? 그 사람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모세”이다. 그런데 모세가 왜 미디안 광야에서 초라한 생활을 하고 있을까? 하나님께서 그를 광야로 보내셨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께서 모세를 광야로 보내셨을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앞서, 먼저 모세를 구원하셔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모세의 구원과 훈련을 위한 하나님의 처방을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

성경은 미디안 광야의 목자로 서있는 모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에 능하였더라” 행 7:22. 그 당시 애굽은 세계적인 대제국이었다. 애굽의 학술과 과학은 뛰어났는데, 모세는 애굽의 모든 학문을 이수한 왕의 후계자였다. 과거에는 세계적인 대제국의 후계자였으며, 미래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해내야 할 모세가 왜 사막에서 양을 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앞 날에는 역사가요, 시인이요, 철학자요, 통치자요, 한 민족의 구원자로서 수행해야 할 놀라운 경험과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왜 말 안듣는 양들과 씨름하면서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광야에서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짧은 시간이 아닌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말이다.

가끔씩 모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광야까지 모세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모세여, 도데체 어찌된 일이요. 당신처럼 재능있고 똑똑한 사람이 왜 이런 곳에 와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소.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요. 당신은 특별한 일을 해야만 합니다.” 이 때 모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를 이 곳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랍니다. 그 분께서 나를 위해 세워 놓으신 계획은 가장 효과적일 뿐 아니라 가장 완전한 것이랍니다.”

사람의 생각

사도행전 7:20은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라고 기록하고 있다. 왜 “그 때”인가? 왜냐하면 그 때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구원자가 태어날 때이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특별한 섭리 하에 애굽 왕의 아들로 입적될 수 있었으며, 어린 시절을 경건한 어머니 요게벳의 교육 하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모세의 마음 속에는 이스라엘의 “씨”가 심어질 수 있었다. 12살이 되었을 때, 모세는 어머니를 떠나 왕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애굽 왕이 주는 높은 교육과 엄청난 권력을 얻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소유할 수 있었으며, 장차 애굽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특별한 훈련을 받았다. 그의 주변에는 애굽의 사제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에 대한 신앙을 모세에게 주입시키려고 서성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켰으며, 천사들에 의해서 계시된 자신의 거룩한 사명 즉,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가 되어야 한다는 목적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는 언제든지 왕이 될 운명을 박차고 히브리 노예들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결심을 거듭 거듭 하였다.

이러한 모세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분명 모세는 준비되었다. 그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높은 비젼을 가지고 있으며,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는 신앙인이다. 그는 교육과 훈련과 영향력을 갖춘 위대한 인물이다. 모든 것을 바쳐서 하나님의 사업에 투신할 준비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도와서 당신의 백성들을 해방시킬 준비가 되었다.” 모세에게서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세를 광야로 보내서 40년 동안 재교육을 받도록 인도하셨다.

드러난 부족함

이스라엘 노예들에 대하여 항상 연민의 정을 느끼던 모세에게 한번은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는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무언가 하고 싶었다. 어느날 한 애굽인이 이스라엘 노예를 구타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었다(출 2:12). 하나님을 향하여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처럼 보였던 모세가 살인을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돕고자 하였지만, 그는 자신이 애굽 학교에서 배운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약속하신 일을 자신의 손으로 해치우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모세의 생각처럼 전쟁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해방됨으로써,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로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살인자의 정신을 드러냈으며, 하나님의 자비와 동정을 나타내는데 부족함을 드러내었다. 비록 그가 가장 높은 세상 교육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교육은 그를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서 훈련시키기에는 부족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은 세상 교육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같은 온유함, 겸비한 마음, 자신을 부인하는 정신 등은 그리스도의 학교 외에는 어떤 곳에서도 배울 수 없는 교육이다. 양떼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동정심이 이스라엘의 목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자신에 대하여 깊은 부족과 연약함을 깨닫기를 원하셨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꾀와 무력함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한,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하였다.

하나님의 처방

모세는 하나님의 사업을 하기 앞서 먼저 애굽의 군관 학교에서 배웠던 무력 원칙을 버려야만 하였다. 하나님과 천연계로 더불어 나누는 교제를 통하여 그의 품성에 새로운 하늘의 법칙이 새겨짐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과 인내로 지도하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였다.

하늘의 지혜자인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치는 일에 종사하라는 처방을 내리셨다. 바로 그것이 모세를 위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교육이었다. 그는 다스리기 전에 먼저 순종하는 법을 훈련받아야만 하였다. 모세는 목자로서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양들을 보살피며, 병든 양을 돌보고, 길 잃은 양을 인내로 찾아다니며, 제멋대로 뛰는 양에 대하여 오래 참고, 젊은 양들이 원하는 것과 늙은 양들의 필요를 사랑스런 마음으로 채워주는 법을 배워야 하였다.

모세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하나님의 처방을 겸손히 따랐다. 장차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갖추어야 할 진정한 준비를 위하여 그는 고난의 길을 선택하였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히 11:24.

하나님의 광야 학교

모세의 광야 학교 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모세는 무엇이든지 신속하게 처리하는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주변에 있는 양들에게 무엇이든지 신속하게 하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아마 그의 명령을 전달해 줄 소대장과 선임하사를 찾을 수 없어서 답답하였을 것이다. 말 안듣고 고집센 양들을 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 “이 양들은 도무지 순종할 줄 모르는군.” 그러나 문제는 양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모세에게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어떻게 명령을 내릴지 모르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도 이것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명령해야 하는지를 모르면서도 자녀들이 순종하지 않음에 대해서 불평하곤 한다. 모세의 경우, 어떻게 명령하는지를 배우기까지 4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였다.

물론, 모세는 명령을 내리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애굽에 있을 때, 그는 다스리는 일에 종사하였고, 모두들 그가 잘 다스린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상 사업과 하나님의 사업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세상 사업은 명령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업은 보살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야, 양떼를 가지고 한번 실습해 보아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왜 4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야만 했을까? 왜냐하면 그는 애굽에서의 교육과 부와 권력의 영향에 너무나 오래 동안 노출되었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 학교에서 버려야 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애굽에서 배운 철학과 사상이었다. 그에게는 앞뒤를 계산해 본 다음,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만을 믿고 실행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의 해방 사업에 투입시키기 전에 그의 이러한 점을 변화시키셔야만 하셨다. 모세는 자신을 의지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명령이 옳게 보이든지 옳지 않게 보이든지를 불문하고 항상 믿음으로 순종하는 신앙을 배워야 했다.

바로 이러한 훈련만이 모세로 하여금 홍해를 건널 수 있도록 준비시킬 수 있었다. 광야에서 백만명 이상의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식량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광야 학교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백성들과 양떼들이 주리고 목말랐을 때, 물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백성들을 바짝 말라 있는 반석으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도 광야에서 배운 믿음 때문이었다. 그 결과, 광야 생활 40년 동안 모세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 대신에 하나님의 명령과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었다.
모세가 광야에서 배웠던 것은 믿음이었다. 믿음이란, 모든 위기의 순간에 손을 뻗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는 것을 말한다.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의 보호와 지배를 받아들이는 영혼의 행위이다. 하나님의 사업은 시끄러운 논쟁이나 풍부한 자금이나 방대한 시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골방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그의 전능하신 팔을 의지함으로 전진된다. 믿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방법을 택하고 그분의 섭리를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준다.

40년간의 광야 학교를 졸업하던 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의 바로왕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명하셨을 때, 모세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깊이 인정하는 겸손한 그리스도인의 열매를 나타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드디어, 모세는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될 준비를 갖추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광야 학교에서 배운 교훈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임종 설교에서 조차 백발이 성성한 노인 모세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순종할 것을 간곡히 당부했던 것이다. 신명기 전체를 통하여, 순종의 뒤를 따라오는 축복과 불순종의 뒤를 따라오는 저주를 반복하여 강조하는 모세의 마음을 이해하는가?
사단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순종하는 것은 율법주의이며 사랑이 부족한 행위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만일 사단의 말이 사실이라면, 모든 잘못은 법을 만드신 하나님께 돌아가게 된다. 사단의 시도는 모든 죄의 원인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무시하는 불순종의 생애를 살므로서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잃어버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와 광야 학교

모세는 자신이 배웠던 것을 잊어버리는데 40년을 소요하였다. 우리 역시 우리가 배운 잘못된 것들을 잊어버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주님의 사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세처럼 온유와 동정을 배울 때까지 비천한 일에 종사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양떼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지금보다 훨씬 효과적인 목자가 될 것이다. 자신의 재간과 설교와 지식을 뽐내는 일없이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봉사할 수 있기 위하여 하나님의 광야 학교에 입학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는가? 조용한 시골로 가라.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면서 천연계 속에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배우라. 마지막 시대에는 그대 자신과 가족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처방이 광야 학교일 수 있다. 그대와 자녀들을 위하여 광야에 펼쳐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 위하여 기도하라.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5:3에서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종들인 십사만 사천명에 대하여 기록하면서, 그들이 부를 경험의 노래를 가리켜서 “모세와 어린 양의 노래”라고 표현했다. 모세가 불렀던 경험의 노래는 무엇인가? 모세가 광야에서 배웠던 노래가 아닐까? 그가 광야 학교에서 배웠던 교훈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구출해낸 승리의 경험이 아닐까? 세속과 방탕과 탐욕이 난무하는 도시에서 그물에 걸린 꽁치처럼 몰려 사는 것보다, 차라리 조용하고 한적한 천연계가 펼쳐져 있는 시골에서 온 가족이 “모세의 노래”를 배워 보라!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모세의 광야 학교, 침례 요한의 광야 학교, 사도 바울의 아라비안 광야 학교의 경험을 소홀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통풍의 천연 치료법


통풍은 비정상적인 푸린(purine)의 대사작용으로 생기는 관절염의 일종이다. 푸린 화합물의 최종 산물은 요산이므로, 통풍의 치료는 푸린(요산)을 정상적으로 배출시킴으로서 관절의 염증을 가라앉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통풍은 대개의 경우 엄지 발가락에 오지만, 발목, 무릎, 팔꿈치, 손이나 손목에 생기는 경우도 있다. 첫번째 통증은 한 밤중에 갑자기 엄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증세로는 염증이 생긴 관절에 심하면서도 계속적인 통증이 있다. 관절이 부어오르고 민감해지며, 관절부위가 빨갛거나 보라색으로 변한다. 관절을 움직이거나 누르면 굉장한 통증이 유발되며, 가장 아픈 고비가 지나서 통증이 가라앉으면 피부가 가렵고 벗어지는 경향이 있다. 통증이 엄습할 때는 일반적으로 고열, 식욕을 잃어버림, 위와 장에 문제가 생김, 소변량의 감소와 같은 증세를 동반한다.

통풍의 발생 빈도는 증가 추세에 있는데, 일반적으로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많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35세 이후에 발병되며, 여자는 폐경기 이후에 발병된다. 또한 통풍은 가족들 간에 유전적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유전적으로 요산을 효율적으로 배출하지 못하는 사람이 푸린(요산)이 많이 함유된 식품을 과다하게 섭취할 경우, 통풍이 나타날 수 있는 확률은 높아진다. 요산의 양이 증가되면, 관절주위의 근섬유, 피부, 콩팥 섬유질에 요산이 고체 상태로 침전되어 쌓이는데, 이 고체 덩어리들을 통풍 결절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천연 치료법

1. 통풍 치료에는 체중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중년 나이의 통풍 환자들 중 다수가 체중 초과이다. 체중이 늘어감에 따라서 혈중 요산량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풍 환자들은 체중을 정상보다 10~15% 이하로 낮추어야 한다. 체중 감량은 서서히 이루어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체중을 갑자기 줄일 경우, 오히려 통증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2. 비록 단기간이라고 할지라도, 통풍 환자는 금식을 하면 안된다. 금식은 혈중 요산염의 양을 현저하게 증가시키는 문제를 가져온다.

3. 수분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좋다. 수분을 많이 섭취하면, 요산의 배출이 원활해지며 신장에 주는 부담도 줄어든다. 통증이 심할 때는 하루에 2리터의 수분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매일 생기는 요산의 2/3는 신장을 통해 배출되고, 나머지 1/3은 분해된다. 통풍 환자의 20%는 신장 결석을 가지고 있는데, 결석의 발생 빈도는 요산의 양에 따라서 증가된다.

4. 정제되지 않은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고, 저단백질과 저지방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탄수화물이 많이 함유된 음식은 요산이 몸밖으로 배출되는 양을 증가시키며, 이와 반대로 고지방 음식물은 요산의 배출량을 낮출 뿐 아니라, 통증을 유발한다. 일본에서는 단백질의 섭취량이 높아짐에 따라 통풍의 발생 빈도도 높아진다는 통계 결과가 발표되었다. 특히, 동물성 단백질은 통풍 환자에게 매우 해롭다. 유명한 넬슨 제독이 채식요법으로 통풍을 고친 이야기는 유명하다.

5. 요산은 푸린계 염류의 최종 산물이다. 그러므로 푸린이 적은 음식물로 구성된 식이 요법으로 통풍을 치료하는 방법이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져 왔다.

푸린 함량이 많은 음식물: 동물의 간, 신장, 뇌, 심장, 조개, 멸치, 정어리, 그레이비, 물고기알, 청어
푸린 함량이 보통인 음식물: 위에 언급한 생선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생선류, 해산물, 육류, 조류, 이스트, 렌틸콩, 통밀로 만든 씨리얼, 콩, 완두콩, 아스파라가스, 컬리플라워, 버섯, 시금치, 오트밀
푸린 함량이 적은 음식물: 채소, 과일, 우유, 치즈, 계란

6. 통풍 치료에는 숯가루가 효과적이다. 환부에 숯가루 찜질을 하면 효과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숯가루를 복용해도 인체내의 요산의 양을 줄일 수 있다. 하루에 12~16 알을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7. 매 3시간마다 15분 동안 뜨거운 물로 찜질하면 통증을 가라앉힐 수 있다. 어떤 환자들의 경우에는 냉찜질로 효과를 보기도 하므로, 환자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8. 통증이 심할 때에는 환부를 가능한 오래 동안 들어 올려보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환부 위에 침대시트의 무게도 올려 놓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

9. 어떤 종류의 알콜 음료도 삼가해야 한다. 알콜은 체내 요산의 양을 증가시킨다. 어떤 그룹의 환자들에게 푸린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섭취시켰더니, 요산의 양이 1.3~3.3 mg/dl로 증가되었는데, 동일한 음식물과 함께 술을 섭취시켰더니 요산의 양이 2~6.1 mg/dl로 배가되었다.

10. 흔히 colchicine 이 통풍의 치료제로 사용되는데, 이 약은 구역질, 구토, 설사, 탈모증, 경련, 빈혈, 백혈구 감소, 간질환과 같은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가능하면 어떤 약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화학 약품을 사용할 경우, 문제의 범위는 더욱 확대된다.

11. 과도한 이스트의 사용을 삼가하라. 빵에 사용되거나 조미료로 사용되는 이스트는 혈중 요산의 양을 증가시킨다.

12. 피부에 진흙을 바르는 요법을 써서 많은 양의 요산을 제거할 수 있다. 때때로 땀에 포함된 요산의 양은 혈액 내의 요산의 양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기도 하는데, 이것은 피부를 통하여 요산이 배출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13. 날마다 파라핀(양초)로 목욕을 하는 것은 좋은 효과를 가져다 준다. 환부의 관절을 완전히 가릴 정도 크기의 냄비에 파라핀을 녹인 다음에 그 곳에 환부를 담그는 요법이다.

먼저 냄비에 파라핀을 2/3정도 채우는데, 이 때 파라핀 5파운드 당 1파인트 정도의 광물성 기름을 섞는다. 파라핀을 화씨 125~135도 가열하여 녹인 다음, 환부인 관절을 파라핀에 담그었다가 재빨리 빼낸다. 매번 담글 때마다 파라핀을 식혀서 굳게 함으로써, 환부에 두꺼운 파라핀 층을 형성시킨 후에, 파라핀 냄비에 환부를 담그고 30분 동안 찜질한다. 환부에 있던 파라핀 층이 녹아서 다시 냄비로 돌아가면, 동일한 방법으로 파라핀 찜질을 되풀이 할 수 있다.

14. 버찌(cherry)를 사용해서 통풍을 치료한 연구 사례가 있다. 12명의 통풍 환자들에게 1/2 파운드의 버찌를 매일 섭취시켰더니, 혈액 내의 요산양이 감소되었으며, 통증도 재발되지 않았다. 버찌 즙을 사용해도 좋다.

15. 어떤 특정 식품에 대한 알러지 반응이 통풍과 유사한 증세를 나타낼 수도 있다. 우유를 많이 마심으로써 통풍성 알러지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은 우유를 제거함으로써 모든 증세를 제거할 수 있다. 토마도와 오이를 많이 먹은 어떤 여성도 통풍의 증세를 나타내었다.

16. 과식도 통풍을 유발시킬 수 있다. 전쟁 중과 같이 식량이 부족한 때에는 항상 통풍의 발병률이 매우 많이 저하된다.

17. 관절에 직접적인 상처가 생길 경우, 심한 통풍이 생길 우려가 있다. 관절부위에 깊은 외상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18. 캄푸리 뿌리나 잎을 갈아서 환부에 찜질을 하면 통증을 덜 수 있다. 면으로 된 천 위에 갈은 캄푸리를 펴서 환부에 붙인 다음, 밤새 또는 2시간 이상 있으면 된다.

서론 - 성경은 과연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나요?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3:15-17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더니 성경은 능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성경은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또한 가장 범위가 넓은 역사책입니다. 평범한 역사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쓰여진 역사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위인들이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이 편견 없이 정확하고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기록한 역사책이라면, 사람을 높이기 위하여 많은 과장과 미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과장이나 미화가 없습니다. 인간의 모습과 역사가 있는 그대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들을 나열한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의 역사를 특별하게 본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어떻게 다루시며, 죄를 범한 죄인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를 설명하는 역사입니다.

또한 성경은, 바울이 말씀한 것처럼, 인간이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를 알려주는 교훈의 책입니다. 이 책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의 책입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훌륭한 책들이 우리들에게 좋은 지식을 제공하여 줍니다. 그러나 성경만이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과학적인 책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무지하여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지구는 둥글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사야 40:22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땅위 궁창(circle of the earth, 둥근 지구)에 앉으시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cultain, 천막-그 당시 유목민들이 살았던 천막은 둥근 모양이었음)같이 폈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고” 옛날 인간들이 태양은 하늘에 고정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는 자 없도다” (시편 19:5,6) 성경은 수천 년 전부터 어떻게 비가 내린다는 과학적인 설명을 욥기 36:27-29에 수증기와 구름을 언급하여 말씀해 놓았으며, 망원경이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성경은 지구를 온 우주에 있는 적은 항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씀하였습니다. 성경은 보통 책이 아닙니다.

또한 성경은 옛날부터 미래를 예언하여 줌으로써 그 예언들이 정확하게 성취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언의 책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수백 가지 예언들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그 문자적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곧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99가지 예언이 정확하게 성취되었다면 그 나머지 한가지 예언도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보통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을 과학을 통해서만 증명하려고 하는 것은 합리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과학과 실험으로 증명되는 것만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러한 생각은 합리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왜냐구요? 잠시 그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과학과 실험으로 성경의 영감성을 증명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만약 성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예수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부활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 과학 문명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거나 그의 부활을 믿기 어려워 하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과 성경의 신빙성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종종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라는 도전을 받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글쎄… 그것은 꽤 어려운 요구이군요. 그런데, 철학이나 역사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랍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러한 나의 답변에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면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설득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을 무턱대고 믿을 수 있습니까?”라는 항의를 하곤 합니다.

최근에도 이와 비슷한 도전에 부딪힌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내가 왜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믿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현대 사회는 사람들의 마음을 놀랍게 변화시켰습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의 문제점은 실제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와 역사에 관하여 증명하는 그들의 방법에 있습니다. 성경의 신빙성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에 한가지 분명하게 알아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것을 증명하는 방법에는 2종류 즉, 과학/실험적 증명법과 법률/역사적 증명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학적 증명 방법과 법률/역사적 증명법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올바로 이해해야만 합니다.

과학적/실험적 증명법

과학적인 증명 방법은 어떠한 일이 계속적으로 반복될 경우에만 그것을 진리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정해진 환경을 만들어 놓고 어떠한 현상이 계속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기록하여 그 대상이 갖고 있는 특성을 발견하는 것이 과학적 증명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적 증명은 어떤 현상의 기록과 반복적인 관찰로만 얻어집니다.

어떤 가설을 계획된 실험을 통해서 증명해 가는 작업이 현대 과학적 증명 방법에 있어서 가장 일반적인 절차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비누는 물에 뜨지 않는다.”라고 하였다면 그 사람과 함께 부엌에서 아이보리 비누를 물에 넣어 두고 충분히 관찰을 하여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는지 관찰하는 것이 과학적 증명 방법입니다. 그러나 만약 과학적 증명 방법만이 유일한 증명 방법이라면, 당신이 오늘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먹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들은 실험실의 정해진 환경에서 계속 반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률적/역사적 증명법

과학적 실험 방법에 의하여 증명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서는 법률적,역사적 증명 방법을 사용하여 그 진실성을 판단합니다. 이것은 어떠한 사건에 관한 충분한 증인들에 의존하여 참과 거짓을 밝히는 방법인데, 이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증명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말로 증언하는 것. 둘째, 글로 써서 증거 하는 것, 셋째, 증거로 쓰일 수 있는 물품들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법률적/역사적 증명방법을 통해서는 당신이 오늘 첫 수업에 참석했다는 것과, 점심을 먹었다는 것을 쉽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함께 있었던 친구들이 증언할 수 있고, 그 수업을 가리켰던 교수의 기록을 제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법률적/역사적 증명법으로 증명해야 한다!

과학적 증명 방법은 오직 반복되어질 수 있는 일들만 증명할 수 있으며, 이 증명 방법은 어떠한 사람이나 역사에 관하여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세종 대왕이 살았었다는 것이나, 이순신 장군이 조선시대의 해군 장군이었다는 것이나, 나사렛 예수가 누구였나라는 사실들은 과학적 증명 방법으로 증명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과학과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신앙은 좁은 실험실 안에서 증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러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오직 법률적/역사적 증명 방법을 써야만 합니다.

다른 말로 말해서, 관찰, 데이터, 가설, 추론, 실험에 의존하여 자연의 반복성을 연구하는 과학적 증명 방법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답을 줄 수 있는 적당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들에 관한 답변은 믿을 수 있는 증인들과 증거를 제시하는 법률적/역사적 증명 방법을 써야만 합니다. 물론, 성경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지구가 둥글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 과학적 사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인물은 과학적/실험적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의 믿음은 눈먼, 무지의 믿음이 아니라 지혜로운 믿음이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가 믿는 신앙의 이유를 물어 볼 때, 우리는 신앙은 무지의 결과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참된 믿음의 결과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는 진리에 대한 빛을 받고 진리를 분명하게 이해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진리를 무시하는 사람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진정한 문제는 그들이 충분한 증거를 얻지 못해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수에 관한 충분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증거가 그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지지 못합니다. 역사적 증거와 성령의 감동하심,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연계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그들에게 날마다 성경 말씀의 확실성을 말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리스도를 선택하기 싫어합니다. 바로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입니다.

증명은 필요하며, 법적 증명 방법을 통하여 성경과 그리스도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문제는 충분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증거는 충분히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들의 마음에 있습니다. 증거는 제시되어질 수 있으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8가지 분야로 나누어서 성경의 정확성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진리의 영께서 독자 여러분의 마음 속에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신뢰심을 심어 놓으시길 기도드립니다.

1. 1000년 전에 공개된 예수 그리스도의 호적 등본
2. 수학으로 증명하는 예수 그리스도
3. 고고학으로 증명하는 성경의 신뢰도
4. 현대 과학으로 입증하는 창세기
5. 예언 성취를 통하여 증명하는 성경의 정확성
6. 역사적 지리학이 증명된 성경
7. 부활에 대한 합리적 논리와 그 증거들
8. 의학이 설명하는 그리스도의 죽음
9. 역사가 증명하는 십자가와 부활
10. 성경을 뒤쫓아 온 과학

1부 - 천년 전에 공개된 예수 그리스도의 호적등본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누가복음 24:28.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기 전까지,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야 임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구약 성경을 사용하여“자세히 설명”하셨다.

예수께서는 천년 전에 자신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리 기록해 놓은 출생신고서와 사망신고서가 정확하게 성취되었음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심으로써, 그들에게 확신과 믿음을 주시고자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예언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부족한 사람이 있는가? 예수께서 탄생하기 천년 전에 기록된 호적등본(예언)을 보면서 의심과 회의를 내쫓기를 바란다.

천년 전에 작성된 출생신고서와 사망신고서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그 아이에 대한 출생 신고를 한다. 그러나 유일하게도, 자신이 태어나기 1000년 전에 출생신고를 스스로 했던 사람이 있다. 그는 출생신고 뿐만 아니라 사망신고 또한 자신이 사망하기 1000년 전에 스스로 작성하였다. 그는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 예언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탄생하기 천년 전에, 이미 그분의 출생날짜, 주소, 가족 관계, 죽는 모습과 방법, 사망일자 등에 관한 등록을 마쳤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000년 전에 미리 자신의 호적등본을 만드셨을까?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후세의 사람들이 그분의 초림을 위해서 잘 준비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탄생 1000년 전에 만들어진 그분의 호적등본이 정확하게 이루어 지는 장면을 보면서, 성경을 연구하는 학도들은 예언의 확실성과 성경의 영감성을 더욱 더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자서전을 구약 성경에 미리 기록해 놓으셨다. 신약시대가 시작되기 수세기 이전에 쓰여진 예수 그리스도의 자서전이 신약시대에 과연 정확하게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성경의 기초 위에 세울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예언된 내용이 신약 성경에서 정확하게 성취

1. 베들레헴에서 출생함 미가서 5:2 마태복음 2:1
2. 동정녀에게서 태어남 이사야 7:14 마태복음 1:18-23
3. 다윗의 혈통을 타고남 예레미야 23:5 사도행전 13:22-23
4. 헤롯의 살해 명령 예레미야 31:15 마태복음 2:16-18
5. 한 친구의 배반 시편 41:9 요한복음 13:18,19,26
6. 은 30냥에 팔리심 스가랴 11:12 마태복음 26:14-16
7. 십자가에 못박히심 스가랴 12:10 요한복음 19:16-18,37
8. 그분의 옷을 제비뽑아 나눔 시편 22:18 마태복음 27:35
9. 뼈 하나도 상하지 않음 시편 34:20 요한복음 19:31-36
10. 부자의 무덤에 묻히심 이사야 53:9 마태복음 27:57-60
11. 그분의 사망 년도, 날짜, 시간 다니엘 9:26-27 마태복음 27:45-50
12. 3일만에 부활하심 호세아 6:2 사도행전 10:38-40

 

2부 - 수학으로 증명하는 예수 그리스도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증거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구약에 있는 예언이 신약시대에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우연하게 이루어졌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좋은 질문이다. 가능성은 항상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그러한 가능성에 대한 수학적 확률을 계산하여 보자.

성경에는 메시야에 대한 300개 이상의 예언이 나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파사데나 대학의 수학과/천문학과의 학장으로 재임하였던 피터 스토너 박사는 여러해 동안, 600여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서“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예언이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수학적 확률”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들은 300여개의 예언 중에서 단지 8개를 고른 다음, 그 예언들이 한 사람의 생애 동안에 정확하게 성취될 수 있는 수학적 확률을 계산하였는데, 그들의 계산치는1\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이었다. 만일 그들이 메시야에 대한 300여개의 예언이 한 사람에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하였다면, 어떤 확률의 숫자가 나왔을까? 이런 경우의 확률을“0”라고 대답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도 그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2000년 전에 나사렛에서 태어났던 예수는 틀림없는 메시야였다. 이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천년 이전에 만들어졌던 호적등본이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바로 이러한 수학적 증거가 수많은 현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예언의 정확성을 확신하게 만들고 있다.

3부 - 고고학이 증명하는 성경의 신뢰도


고고학이 성경의 신성성을 증명할 수는 없으나 성경에 나타나는 사건들과 이야기들을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는 있다. 고고학이 성경 비판론자들의 이론들에 대하여 큰 공헌을 세웠으나, 성경이 영감 받은 책이라는 것을 완전히 증명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사건들이 실제적이고 논리적이었다는 것을 고고학을 통하여 알게 됨으로 성경 말씀의 정확성을 판단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위를 통하여 성경의 영감 성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을 열게되는 것이다. 다음에 나열하는 고고학적 발견들은 구약 및 신약 성서에 기록된 모든 지명 및 인물들이 실재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준다.


고고학자들의 증언

1. 고고학자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F. Albright : “고고학이 실제적으로 구약성서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 Yale 대학의 Millar Burrows : “고고학은 여러 케이스를 통하여 근대 비평가들의 논리가 가상적이고 실제적이 아니며, 역사적 발전단계를 인위적으로 적용했음을 증거 하였다...”
3. Merrill Unger : “구약성서 고고학은 모든 나라들을 다시 발견했으며, 중요한 인물들을 다시 소생시켰다...””
4. Frederic Kenyon : “지난 19세기 후반기를 휩쓸었던 성경 회의론 자들의 비판에 관하여 고고학이 그 허구성을 증명함으로서 고고학은 그 권위를 확립하였다.”


구약을 증명하고 있는 고고학적 증거들

1. “Black Stele” : “모세 오경을 정말로 모세가 기록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구약 비평가들이 갖고 있었던 가장 큰 이슈들 중 하나였다. 모세 당시에 글씨가 존재하지 않았었으며, 만약 있었다고 할지라도 거의 이용되지 않았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세 오경은 모세가 쓴 것이 아니고 그 이후에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Black Stele”이 발견되어짐으로 이러한 논리가 무너지게 되었다. 이 비석에는 쐐기 모양의 글자들로 함무라비의 법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으며, 이것은 적어도 모세가 태어나기 3세기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측정되었다.

2. 헷 족속 (Hittites) :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창 15:18-20). 성경비평가들은 아브라함 당시에는 헷 족속이 존재하지 않았었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구약 성서 외에는 이 족속에 관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여 지금은 1200년의 헷 족속의 역사가 밝혀지게 되었다.

3. Ebla : 로마 대학의 Paolo Matthiae와 Giovanni Petinato에 의하여 시리아 북쪽 지역에서 Ebla라고 불리는 서판을 발견하였다. Tell Mardikh 라고 불리는 이 지역에서 1964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1968년 Ibbit-Lim 왕조의 상이 발견되었다. Ebla는 B.C. 2300년경에 세력을 펼치던 나라로서 약 260,000명의 인구를 갖고 있었으며, B.C. 2250년에 Nara-Sim에 의하여 멸망되었다. 1974년 이래로 17,000개의 Ebla와 관련된 서판들이 발견되었다.

Ebla 서판이 성경학적으로 갖고 있는 의미는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모세 시대에는 쓸 수 있는 글씨가 제정되기 전이라고 성경 비판론자들이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세가 썼다는 모세 오경이 실제로 모세의 글이 아니었다고 주장되었다. 그러나 모세가 살았었던 그 지역에 존재하였던 Ebla 나라의 서판은 모세가 나기 1000여년 전의 법과 풍습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단순한 가상이었음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특별히 이 서판에 기록된 법률들은 신명기에 기록된 규율들과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법률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구약의 신명기가 다른 책들보다도 더 늦게 기록되었었다는 주장이 틀렸음이 밝혀졌다.

또한 Ebla 서판이 밝힌 중요한 또 하나의 사실은 창세기 14장을 증거한 것이다. “당시에 시날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과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이 소돔왕 베라와 고모라왕 비르사와 아드마왕 시납과 스보임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왕과 싸우니라” (창 14:1,2). 창세기 14장은 최근까지만 해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주장되어졌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5 도시의 왕들과 싸워서 이긴 이야기를 하나의 소설처럼 여겼었다. 그런데 Ebla 서판은 위에 기술된 5나라의 이름을 창세기에 기록된 그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나라들이 있었던 지역의 풍습과 연대들도 기록하고 있어서 창세기 14장의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 것이었는지를 증거 하였다.

4. Mari 서판 : 마리 서판의 발굴이 Andre Parrot의 지도아래 1933년에 시작되었다. 유프라테스 중부에 위치한 마리는 북서쪽지방의 셈족 부조들의 생활 중심지였다. 1936년 M. Parrot은 B.C.1700년경의 것으로 확인되는 수 천 개의 설형문자 서판들을 발견하였으며, 이 서판들은 창세기에 나온 부조들의 생활문화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창세기 24장 10절에 나오는 나홀성의 이야기가 하란과 같이 마리 서판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마리의 왕이었던 Arriyuk은 실제로 창세기 14장의 아리옥과 같은 사람이었으며, 벤쟈민도 마리의 한 족속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William F. Albright)

5. Nuzi 서판 : Nuzi는 이라크 북동쪽에 위치한 작은 지역인데, 이 곳에서 발견된 서판들은 부조시대의 사회적, 법적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부조의 이야기들 중에는 임신을 하지 못하는 부인이 시종을 남편에게 주어 아이를 낳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그렇게 하였으며, 후에 야곱의 두 아내도 그렇게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부조시대 때에 행하던 이러한 풍습이 흔한 일이 아니었다고 몇 학자들에 의하여 주장되어졌다. 그러나 Nuzi 서판의 기록은 이러한 결혼 풍습에 관한 법이 그 때 당시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Nuzi 서판에 기록된 신랑 Shennima와 신부인 Kelim-ninu의 결혼 서약에서 아내가 임신에 실패하게되면 시녀가 남편의 둘째 부인이 될 것이라는 계약을 한 기록이 나온다. 이러한 풍습은 다른 시대에는 찾아 볼 수 없는, 오직 부조시대에만 존재하였던 풍습이었다.

6. 소돔성의 문 : 창세기 19장 7-8절에 보면 악한 사람들이 롯의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문이 닫힘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야기가 나온다. Keil과 Albright의 조사에 의하면 B.C. 2200-1600년경 사이에는 무겁고 강한 문을 집집마다 설치했다고 한다. B.C. 900-600년경에는 대부분의 개인집들이 커튼이나 문이 없는 둥근 게이트를 썼었으나, 롯의 시대에는 경찰의 힘이 충분하지 않아서 강한 문을 사용했었다고 한다.

7. 요셉의 역사 : 창세기 37장 28절에 보면 요셉이 은 20개를 받고 팔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은 20개가 그 때 당시 노예를 파는 적절한 값이었을까? K. A. Kitchen의 연구에 의하면 은 20개는 B.C. 18세기 때 노예를 파는 평균값이었다고 하며, 그 전에는 주로 은 10-15개 정도로 노예 값을 매겼다고 한다. 그러므로 은 20개에 요셉이 팔렸다고 하는 기록은 시대적 정확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흉년이 들어 요셉의 가족들이 이집트로 이사갔다는 성경의 기록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Beni Hasa의 무덤에 셈 족속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그림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가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요셉이 노예에서 수상으로 올라가는 사건은 그 때 당시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으나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여 나일 지방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가나안 사람 Meri-Ra는 왕의 갑옷 드는 사람이 되었고, 또 다른 가나안 사람 Ben-Mat-Ana는 통역관의 높은 직위를 얻었으며, 셈 족속의 Yanhamu는 Amenhotep의 부수상 직위를 얻어 삼각주 지역의 곡창지대를 관리하는, 흉년 때에 요셉에게 부여된 비슷한 일을 하게 되었다.” (Howard Vos)

8. 낙타 : 어떤 학자들은 창세기 시대에 낙타를 썼다고 기록한 것은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여 B.C. 2000년경부터 이미 낙타가 사용되고 있었음이 발견되었다. 구 바벨론 시대에 있었던 페소포타미아의 기록을 보면 낙타의 사육과 사용에 관한 기록이 발견되며, Nuppur에서 발견된 수메르의 기록에도 낙타의 사육에 관하여 말하고 있고, B.C. 25-24세기에 있었던 나라 Mari의 옛 집터에서 낙타 뼈가 발견되었으며, 그 외에도 B.C. 2000-1200년경의 것으로 판정되는 팔레스타인 집터에서도 발견되었다.

9. 라기스 문서 : 예레미야 34:6,7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 모든 말씀을 예루살렘에서 유다왕 시드기야에게 고하니라. 때에 바벨론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을 쳤으니 곧 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 이스라엘은 느브갓네살에게 쓸데없는 반역을 저질렀다. 유대는 이 반역에 가담하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계속 싸우기만을 고집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항복하라는 경고를 보냈다. 이 반역의 마지막날이 왔다. 히브리 백성의 독립의 가능성은 예루살렘에서 35마일 떨어진 두 전초기지인 라기스와 아세가의 방어에 달려있었다. 이때 라기스에서는 그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자세히 적은 편지를 발송했다. 이 편지를 라기스 문서라고 부르며, 이 편지의 발견은 구약을 연구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되었다. “라기스 문서에 적힌 언어는 완전한 고대 히브리어였다. 이 문서를 통하여 예레미야의 정확한 시대를 발견했으며, 이 안에 기술된 사회적, 정치적 상황들이 예레미야가 기술한 것과 완전히 어울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Albright)


고고학이 증명하는 신약 성경

1. 누가복음 : 누가복음 2장 1-3절에 보면 예수님의 탄생 시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를 다 호적 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비평학자들은 그 때 당시 호적은 없었으며, 구레뇨도 수리아의 총독이 아니었고, 모든 사람들이 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적을 하지도 않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첫째로,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로마는 정규적으로 세금 등록을 실시하였고 또한 매 14년마다 호적을 실시하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정말로 아구스도의 영으로서 시작된 것이며, 첫 번째로 시행된 때는 B.C. 23-22, 또는 B.C. 9-8 년경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둘째로, 구레뇨는 B.C. 7년과 A.D. 6년경, 모두 2번 총독의 자리에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안디옥에서 발견된 비문과 조세푸스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셋째로, 이집트에서 발견된 파피루스에 보면 호적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호적 할 시기가 다가옴에 따라서 어떠한 이유로든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서 살고 있는 자들은, 호적에 상관된 가족 등록을 하고,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는 땅들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 가야할 필요가 있다.”

2. 빌라도 : 1961년까지는 빌라도에 대한 역사적인 자료들이 충분하지 못하여 단지 성경에 나와있다는 것 외에는 별 다른 기록이 없었다. 그런데 두 이태리 고고학자들이 지중해의 항구도시 가이사랴를 발굴하여 가로 2피트, 세로 3피트 정도 되는 라틴어로 된 비석을 발견하였다. Antonio Frova가 처음 이 비석을 읽었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유다 총독 빌라도가 티베리움을 가이사랴의 시민들에게 선사하다.” 이 비석은 빌라도가 실제로 살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첫 번째 고고학적 기록이었다.

3. 나사렛 : 여호수아 19장 10-15절에는 스블론 자손들이 거할 땅들의 이름들이 나온다. 그런데 나사렛은 이 이름들 중에 없다. 조세푸스는 갈릴리 지역의 45개 마을들의 이름을 기록하였지만 거기에도 나사렛은 없다. 탈무드에도 62개의 마을들이 나오지만 여기에도 나사렛은 빠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나사렛이라고 하는 동네가 실존하였는가?” 하고 비평가들이 질문을 한다.

1962년 Michael Avi-Yonah가 가이사랴에서 행한 발굴 작업에서 3개의 조각난 비석들 중 2개를 발견하였는데, 이 비석을 나사렛 비석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나사렛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는 첫 비문이다. 이것을 통하여 나사렛이라는 동네가 A.D. 1세기에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근대 나사렛의 발굴은 나사렛에 로마시대 훨씬 이전부터 정착 자들이 있었다는 것과 또한 나사렛이 아주 작은 동네였다고 밝히고 있다.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여왕은 그 자리에 교회를 지었고 그곳이 예수의 가족들의 거주지였다고 여겼다.

4. 가버나움 :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마 2:1) 그 곳에서 예수께서는 지붕을 뜯고 내려온 중풍병자를 고치셨다. 위의 말씀과 마가복음 1:29-34절을 같이 볼 때 예수님의 집은 베드로의 장모의 집에 딸려있는 집 (Insulus : 여러 개의 방이 있는 바깥채)인 것처럼 보인다. 베드로의 어업이 번영하였다면 베드로의 집은 다른 보통 집들보다 조금 커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살 수 있었을 것이지만, 성경에 나온 이러한 집의 구조가 실제로 그 때 당시 존재하였을까?
고고학자들이 가버나움의 자리를 발굴하였을 때 이렇게 생긴 Insulus가 발견되었다. 비잔티움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거룩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곳 위에 팔각 교회당을 지었는데 이렇게 지어진 교회가 가버나움에서 발견되었고 그 교회 아래서 Insulus라고 불리는 바깥채의 잔여가 발굴되어져 마가복음에 기술된 집의 형태가 실제였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5. 베데스다 연못 : A.D. 1세기경, 구 예루살렘 북동쪽 4분의 1지점에 베데스다 (“새 도시”)라는 도시가 있었다.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던 곳이라고 생각되어지는 St. Annes 교회 근처를 발굴하는 작업이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F.F. Bruce는 이 발굴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발굴을 통하여 베데스다 연못이 발견되었는데, 이 연못은 쌍둥이 연못으로 남-북쪽을 향하여 자리잡고 있으며, 두 연못 사이를 바위가 막고 있고, 그 주위를 “포르티고”라고 불리는 네 현관이 둘러싸고 있다. A.D. 333년경에 이곳을 방문하였던 보르도 순례자들은 그곳에서 쌍둥이 연못을 보았다고 적고 있다. 쿠무란에서 발견된 청동 두루마기에도 히브리말로 “Beth-esh-dathain” (두 개의 샘터)라고 베데스다 연못을 설명하고 있다.

6. 맷돌 : 가버나움은 화산지역으로 화산암을 이용한 생활 기구들이 많이 쓰였다. 한 좋은 예는 가버나움 발굴 시 발견된 맷돌이다. 가버나움에서는 화산암으로 맷돌을 만들었으며 다른 지역으로도 수출을 하였는데 이 맷돌은 두 사람이 같이 돌리게 되어있다. 이 사실은 누가복음 17장 35절에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7. 갈릴리 배 : 1986년 1월 아마추어 고고학자 Moshe와 Yuval 형제는 Kibbutz Ginosar과 Moshava Migdal 사이 갈릴리 해변에서 B.C. 1세기부터 A.D. 1세기경에 쓰였던 갈릴리 사람의 배를 발견하였다. 이 배는 고기잡이와 사람, 화물 운송용 등 다목적으로 쓰였던 배인데, 길이가 27 피트, 넓이가 7-1/2 피트로서 13명을 태울 수 있는 배였다. 이 배의 구조를 통하여 그 당시 가뭄으로 갈릴리 호수가 깊이가 낮았었음을 알 수 있었다.

8. 성전 :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마가복음 13:1) 예수님의 제자들만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찬탄한 것은 아니다. 탈무드는 “헤롯의 성전을 보지 못한 사람은 아름다운 건물을 아직 보지 못했다..”라고 어느 랍비의 말을 적고 있다. 이 성전이 있었던 곳은 25-30개의 풋볼 경기장을 합친 크기의 지역으로 고대 시대에 있었던 것 중에서 가장 크며, 벽의 높이는 주변 건물들 보다 10층 이상 더 높았다. 벽을 쌓을 때 사용된 돌들 중 가장 작은 것들만 해도 2-5톤이나 되며, 큰 것들은 고대 어느 시대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큰데 그 길이가 40피트, 넓이가 10피트, 무게가 400톤이나 된다. 이러한 크기의 돌들로 만들어진 웅장한 성전을 보며 “네가 이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 지리라”고 하시며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마지막을 비교 설명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주변 환경과 잘 융합되어 있다.

9. 빈 무덤 : “여자들이 갈세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마태복음 28:11-15)

실제로 이 소문은 총독의 귀에 들어갔다. 로마 황제는 이 소문을 듣고 팔레스타인에 법령을 발표하였는데 이 포고는 라틴어로 쓰여진 후 헬라어로 번역되어 유대의 모든 도시들에 붙여졌다. 1878년에 나사렛에서 흰 대리석판에 다음과 같이 쓰여진 글귀가 발견되었다. “시저의 법령이라. 모든 무덤들과 묘지들은 그들의 조상들과 어린이들, 또한 가족들의 제사를 위하여, 또한 그것들을 만든 사람들의 의지를 존중하여 어떠한 장애 없이 영원히 보존되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어떤 자가 그것들을 무너뜨리거나 매장된 것을 빼내거나, 악의를 품고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또는 무덤의 문을 바꾸면, 우리의 신들과 제사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법정이 세워져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죽은 자를 존중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방해는 절대적으로 금지되어야 하며, 만약 이 법을 범하면 중형에 처할 것이다.”

이 비석은 1세기초의 글씨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비석이 A.D. 50년 전에 쓰여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로마 중앙 정부가 아그립바가 죽기 전까지는 갈릴리 정부를 관할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포고는 A.D.44년 이후의 것으로 판정되어진다. 글라디우스가 A.D. 41년부터 54년까지 총독으로 있었으므로 그가 이 글을 쓴 것이 확실하다. A.D. 49년, 글라디우스는 로마로부터 모든 유대인들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몰아내었다. 지금도 현존하는 A.D. 41년경에 쓰여진 글라디우스의 편지를 보면 그가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시리아로부터 바다를 통하여 오는 모든 유대인들의 방문을 금지 시켰다. 만약 이 법을 어기면 “나는 그러한 자들을 세상에 퍼지고 있는 질병을 퍼뜨리는 자로서 취급하겠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세상에 퍼지고 있는 질병”은 바로 로마 제국 전체에 자라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Blaiklock에 제공한 다른 여러 증거들을 통하여 글라디우스가 유대나 시리아의 지도자들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의 증가에 관한 경고의 편지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 유대 지도자들은 이 문제들을 예수의 시체가 없어진 그 날부터 염려해 왔으며, 이에 영향을 받은 글라디우스가 후에 위와 같이 작은 일에 전에 없는 중형을 부과하는 포고를 내리게 된 것이다.

10. 요한복음 : 복음서들 중에서 성경 비판론자들에게 가장 믿을 수 없는 책으로 비판받는 복음서가 바로 요한 복음이다. 비판론자들은 요한이 쓴 글들과 복음서는 헬라의 철학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 출간된 Atlantic Monthly에는 “적당히 적힌 일대기와 피상적으로 씌어진 헬레니즘 철학”이라고 요한 복음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사해사본은 이 문제에 관하여 다른 빛을 제공한다.

Allegro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쿰람 도서관은 요한의 글들에 관한 연구와 그에 관하여 오랫동안 지속되던 잘못된 관념들이 갖고 있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교정하는데 큰 역활을 하였다. 요한은 더 이상 헬레니즘에 가장 많이 물들었었던 전도자로서 여겨지지 않으며 그의 모든 생각들은 유대 종파주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지극히 팔레스타인적인 사상이며 그가 쓴 모든 자료들은 복음주의 전통의 기본을 이루는 것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학자들은 이제 요한을 헬레니즘 철학이나 그노시스주의에 영항을 받지 않았던 순수 유대적인 사람으로서 인정하게 되었고, 요한이 자세히 기술한 예루살렘의 지리학적 배치나 예루살렘의 멸망 전의 상황을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요한은 요한복음 3:23절에 침례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고 적고 있는데 애논의 의미는 “샘터”이고 이곳은 실제로 살렘(Salim)에서 1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요한은 또한 2장 1절에 “갈릴리 가나”라고 하여 시돈 옆 가나와 확실히 분리하였고, 4장 5-6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사마리아를 통해서 가셨다고 간단히 기록하지 않고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고 놀랍도록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해사본이 증명하는 성경의 정확성

프레더릭 케뇬은 다음과 같이 구약 성경의 신빙성에 관하여 질문을 던졌다. “A.D. 10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추측되어지는, 마소레틱이라고 부르는 히브리 사본이 정말로 구약성서의 저자들이 지은 그 히브리 성경 원본의 내용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해사본이 발견되어지기 전에는 현존하는 성경 사본들의 정확성에 관하여 이와 같은 많은 의혹들이 끊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사해사본은 이러한 질문들에 관하여 정확한 답변을 주고 있다.


사해사본의 가치

우리가 갖고 있는 히브리어 성경 사본은 주후 900년부터 복사되어진 것인데, 이 사본들이 예수님 당시인 A.D. 32년경에 쓰였던 성경과 같은 것이라고 증명하기는 어려웠었다. 그러나 사해사본을 발견한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우리가 보아왔던 구약성서가 그 원본과 같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특별히 이 사해 사본들 가운데는 이사야서 전권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B.C. 125년경에 쓰여진 것으로서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지금까지 우리가 읽고 있었던 마소레틱 사본에 의한 이사야서와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사해 사본으로 인하여,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과 예수께서 지상에서 봉사하시면서 사용하시던 성경이 동일하다는 증거를 확보하게 되었다.


사해사본이란 무엇인가?

사해사본은 약 4만개의 작은 단편들로서 이루어져 있다. 이 조각들로부터 500개 이상의 책들을 엮을 수 있었다. 이 사본들에서 성경에 포함된 책들 외에 다른 성서들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것을 통하여 옛 쿰란 문화에 관한 새로운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서류들은 “자도카이트 문서”, “사회 규율”, “훈련 법칙”등을 포함하고 있어서 쿰란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일상 생활 문화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성경 주석에 도움을 주는 여러 중요한 문서들도 발견되었다.

 

4부 - 현대 과학으로 입증하는 창세기


성경은 지구의 나이가 현재 약 6000년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연대기를 계산해 보면 지구의 나이가 약 6000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성경 학자들도 지구의 나이가 매우 젊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이 지구의 나이를 수십억년이라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현대 과학은 지구의 나이가 매우 젊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드는 수많은 증거들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줌으로써, 창조론과 함께 성경이 말하는 지구의 나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지구의 나이를 수십억년으로 추측하는 진화론자들에게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을 제시하는 방법이 없을까? 생애의 빛은 독자들로 하여금 지구의 젊음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8가지 과학적 증거들을 모아 보았다.

1) 지구의 자기장에 의하여 확인된 지구의 나이

지구 자기장의 세기는 백년 이상 동안 주의 깊게 잘 측정되어 왔다. 지난 백여년 간의 자기장의 측정 결과를 토대로 이루어진 토마스 G. 반스 박사의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지구 자기장의 세기는 1400년을 주기로 반으로 감소된다(이것을 지구 자기장의 반감기라고 부름). 다시 말하자면,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에는 지구 자기장의 세기가 지금보다 약 2배 이상 강하였다는 뜻이다.

지구의 자기장이란, 지구 중심에서 발생되는 전류에 의해서 형성되는 원형의 전기장을 말하는데, 우리는 지구의 자기장 세기와 그것에서 발산되는 열을 계산해 낼 수 있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2만년 전의 지구 자기장의 세기와 그것에서 발산되는 열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보면, 그것은 지구 전체를 녹여버리고도 남는 엄청난 열과 자기장의 세기가 된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동식물 뿐만 아니라 지구 자체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구 자기장의 반감기를 근거로해서 볼 때, 지구의 나이는 결코 만년을 넘을 수 없다는 과학적 결론을 얻게 된다. 지구의 자기장은 지구가 만년이 안되는 젊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2) 우주 먼지를 통해서 확인된 지구의 나이

거의 모든 과학자들은 우주로부터 지구의 대기권으로 들어오는 우주 먼지의 양이 항상 일정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동의해 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대기권 내로 들어온 우주의 먼지들은 궁극적으로 지구 표면에 쌓이게 된다. 한스 피터슨 박사는 지구로 유입되는 우주 먼지의 양을 정확하게 측정한 결과, 지구는 일년에 약 1천 4백만 톤의 우주 먼지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내었다.

만일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구의 나이가 5십억년 이상 되었다는 가정이 사실이라면, 지금 현재 지구의 표면에는 182피트(약 55미터) 이상의 우주 먼지가 덮혀 있어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지구의 어느 곳에도 이러한 우주 먼지층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 뿐만 아니라, 달의 표면에도 이처럼 엄청난 두께의 우주 먼지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역사 최초로 달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에 얽혀 있는 매우 흥미있는 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는 지금도 지구의 나이를 정하는 일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증거 자료가 되고 있다. 아폴로 우주선의 설계를 맡은 미국 우주 항공국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달착륙선의 다리 길이는 매우 치열한 논쟁점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나이가 적어도 수십억년 이상 되었다고 믿는 진화론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착륙선의 안정성이 다소 저하되는 한이 있더라도, 달착륙선의 다리를 가능한한 길게 만들어서 착륙선이 우주 먼지층의 깊은 수렁에 빠지는 위험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아폴로 11호 달착륙선의 삼각다리가 그렇게 길게 설계되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달표면 중에서 가장 높고 평탄한 지역에 착륙선을 안착시켜야 우주 먼지 수렁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드디어 착륙선이 달표면에 착륙하고 아폴로 11호의 선장인 닐 암스토롱이 최초로 달표면에 발을 내딛는 순간, 우주항공국에서 텔레비젼을 통하여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과학자들은 숨을 죽이고 긴장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닐 암스트롱 선장의 발이 우주 먼지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닐 암스트롱 선장은 달표면에 발을 대는 순간 “It? solid!?(표면이 단단한데!)라는 탄성을 울렸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 한마디가 지구의 나이에 대한 미우주항공 과학자들의 생각에 커다란 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은 달표면에 착륙하여 처음으로 달표면에 내려 앉은 우주 먼지층의 두께를 측정하였는데, 그들은 약 0.8인치(약 2cm) 라는 매우 낮은 수치를 얻었다. 달표면의 우주 먼지층이 엄청나게 깊을 것을 염려하여 달착륙선의 다리를 길게 만들었었던 미우주항공국의 과학자들은 약 0.8인치라는 매우 얇은 우주먼지층으로 인하여 지구의 나이가 매우 젊다는 충격적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태초로부터 지구와 달표면에 쌓인 우주 먼지의 두께는 지구의 나이가 만년 이하라는 사실을 외치고 있다.

3) 석유와 천연 개스가 말하는 지구의 나이

일반적으로, 석유와 천연 개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4300년 전에 있었던 노아 홍수에 의해서 생성되었다. 그 당시에 엄청난 규모로 함몰된 산림의 퇴적암층에서 발견되는 석유와 천연 개스는 매우 높은 압력하에서도 누출되거나 스며나가지 않게 주변에 있는 지하 바위들에 의해서 잘 밀봉된 상태로 저장되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석유와 천연개스에 가해지는 압력은 매우 높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이 압력은 1만년 이상 지속될 수 없다고 지질학자들은 말한다.

최근에 이루어진 실험을 통해서, 해저 생물과 식물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석유와 천연개스로 바뀔 수 있다는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식물성 물질들에게 적당한 온도와 압력을 20분동안 가하는 실험을 한 결과, 양질의 석유를 얻었다는 특별한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나무와 섬유성 물질을 사용하여 동일한 실험을 한 결과, 몇 시간만에 석탄 또는 석탄과 유사한 물질을 얻을 수 있었다.

진화론자들은, 석탄은 사람이 진화되기 이전 수백만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수억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지하 석탄층의 이곳 저곳에서 사람의 뼈와 금으로 만든 각종 귀금속들이 발견되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석유와 천연개스의 존재는 노아 홍수의 사실성과 함께 지구의 나이가 만년 이하로 매우 짧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4) 지구의 자전이 입증하는 지구의 나이

현대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자전 속도가 매우 서서히 늦추어 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지구의 자전 속도가 서서히 늦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태양, 달, 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요소들이 지구를 향하여 끌어 당기는 힘(인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년이라면, 지구는 이미 오래 전에 자전을 멈춘채 정지했어야만 한다. 또한 만일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살이라면, 지금으로부터 수십억년 전에는 지구의 자전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에 엄청난 원심력에 의해서 모든 대륙들이 지구의 적도 근방에 집결하게 되고, 그 결과 지구의 모양은 납작한 팬케익처럼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대로 지구의 모양은 둥그스럼한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서 지구의 나이는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십억년이 된 것이 아니라, 매우 젊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5) 혜성이 말하는 지구의 나이

천문학자들은 태양의 중심을 도는 혜성의 나이와 태양계의 나이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들은 또한 혜성이 태양을 한바퀴 돌 때마다, 혜성이 조금씩 타서 없어지기 때문에 그 무게가 조금씩 감소된다는 사실을 밝혀 내었다. 그래서 비교적 짧은 주기를 가진 혜성들은 1만년이 지나기 전에 완전히 타서 없어지게 된다. 새로운 혜성이 중간에 추가로 나타날 수 있는 이유와 가능성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많은 혜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해서 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의 나이는 만년을 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견해이다.

 6) 대기권의 헬륨이 증거하는 지구의 나이

진화론자들은 우라늄과 같은 방사성 물질의 붕괴가 지구의 표면에서 지난 수십억년 동안 끊임없이 있어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방사성 물질이 붕괴될 때는 항상 헬륨이 그 부산물로 생성되게 된다. 그러므로 지구의 대기권 내에 있는 헬륨의 양을 조사해 보면, 방사성 물질이 얼마나 오랫동안 붕괴되어 왔는지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으며, 그 계산 치는 곧 지구의 나이임을 알 수 있다. 만일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방사성 물질의 붕괴가 수십억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면, 지구의 대기권은 현재 대기권 내에 있는 헬륨의 양보다 훨씬 많아야만 한다.

진화론자들은 대기권 내에 헬륨의 양이 원래 있어야 할 양보다 적은 이유는 헬륨이 대기권 밖으로 빠져 나갔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헬륨이 대기권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그들의 가설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를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헬륨은 수소와는 달리 대기권 밖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최근의 실험 통계가 발표되었다.

실제에 있어서, 헬륨은 대기권을 빠져나가기 보다는 태양의 코로나로로부터 대기권 안으로 진입하여 들어오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지구의 대기권 안에 존재하는 헬륨의 양은 지구의 나이가 만년을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여 주고 있다.

 7) Poynting-Roberston 효과를 통해서 확인하는 지구의 나이

태양은 태양계에서 마치 거대한 진공 청소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매일 10만톤에 달하는 미세한 먼지와 같은 운석 입자들을 청소해 낸다. 또한 태양 방사선의 압력에 의해서 혹성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작은 먼지 입자들이 우주 공간으로 밀려 나가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과학 용어로 Poynting-Roberston 현상이라고 부른다.

만일 태양계가 정말로 수십억년이 되었다면, 이러한 우주 먼지 입자들은 태양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태양계 안에 남아 있는 우주 먼지의 비율을 계산해 보면, 지구의 나이가 만년을 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태양계에는 미소 운석 입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근거로해서 이 태양계의 나이가 상당히 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8) 대양의 침전물과 록키 산맥의 높이로 확인하는 지구의 나이

지질학계의 보고에 의하면, 매년마다 약 275억톤 가량의 침전물이 강으로부터, 토양의 침식작용으로 인하여, 그리고 홍수로 인하여 바다로 옮겨져서 쌓인다고 한다. 만일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년이라고 한다면, 지금쯤은 바다 밑에 쌓인 침전물들의 높이가 가장 높은 산보다도 높게 올라가서 모든 산들과 계곡을 메꾸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대양의 바닥에 쌓인 침전물의 높이를 측정해 보면, 지구의 나이가 1만년 미만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해저면에 쌓인 침전물들은 지구의 나이가 매우 젊다는 사실을 외치고 있다.

또한 지질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록키 산맥의 높이가 매년 약 1피트 가량 낮아지고 있는데, 만약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년이 아니라 몇 만년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지금 현재 록키 산맥은 그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야만 할 것이다. 바다와 산이 공히 지구의 나이가 젊다는 사실을 외치고 있다.

 9)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서 살펴본 지구의 나이

우주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그리고 에너지가 감소하는 경향으로 퇴화되어 나가는 자연 법칙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데, 이러한 법칙을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진화론의 창시자인 다아윈은 이와는 반대로 생물계가 무질서에서 질서로, 하등 동물에서 고등 동물로 발전되어 나왔다는 가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이 우주는 다아윈의 진화론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퇴화되어 왔다.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형태의 발전된 생물이 나타나기는 커녕 오히려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수백종의 생물들이 멸종되어 왔으며, 지금도 수많은 생물들이 멸종의 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광물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라늄은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서 라디움으로 퇴화되고, 또 그것이 다시 납으로 퇴화됨으로써, 물질은 그것이 전환될 때마다 그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낮아진다는 열역학 제2법칙에 순응하고 있다.

만일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물질이 수십억년 전부터 존재하기 시작하였다면, 아마도 지금쯤은 모든 것이 퇴화하여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모든 것은 퇴화하여 결국에는 죽음과 혼돈만이 남게 된다는 것인데, 이러한 자연 법칙을 근거로 해서 생각해보면, 지구의 나이는 결코 수십억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지구에 생명력과 넘치는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지구의 나이가 매우 젊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5부 - 예언 성취를 통하여 증명된 성경의 정확성


에스겔서 26장의 예언의 성취

에스겔서 26장은 두로의 멸망에 관한 예언으로 B.C. 592-570년 사이에 주어졌다. “두로야 내가 저를 대적하여... 열국으로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3절), 그들이 두로의 성벽을 훼파하며 그 망대를 헐 것이요... 말간 반석이 되게 하며(4절), 바다 가운데 그물 치는 곳이 되게 하리니(5절),

내가 열 왕의 왕 곧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로 북방에서 말과 병거와 기병과 군대와 백성의 큰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두로를 치게 할 때에(7절), ...네 돌들과 네 재목과 네 흙을 다 물 가운데 던질 것이라(12절), 너로 말간 반석이 되게 한즉 네가 그물 말리는 곳이 되고 다시는 건축되지 못하리니(14절), 내가 너를 패망케 하여 다시 있지 못하게 하리니 사람이 비록 너를 찾으나 다시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21절).
두로의 멸망이 예언되어진 후 3년이 지난 후 정말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두로를 포위하였다. 영국 대 백과사전은 “느브갓네살에 의하여 13년 동안(585-573B.C.) 포위되었던 두로는 마침내 침몰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느브갓네살의 침공 이후로 알렉산더의 공격이(332B.C.) 이어졌음은 “열국으로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3절)”의 예언을 성취시켰다. 역사가 Philip Myers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알렉산더 대제의 공격은 두로가 멸망되기까지 계속되었다. 이 공격 후 폐허가 된 두로는 조금 그 상태를 회복할 수 있었으나 다시는 그 전과 같은 나라로 재건되지는 못했다. 한 때 크게 번창하였던 그 땅은 이제 바위의 표면처럼 썰렁하게 되었고, 지금과 같이 어부들이 그물을 펼쳐서 말리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알렉산더가 파괴된 잔해들을 물 속에 던져서 둑길을 만든 사건은 26장 12절의 예언을 성취하였다. “’네 돌들과 네 재목과 네 흙을 다 물 가운데 던질 것이라’(12절)는 에스겔의 예언은 알렉산더의 기술자들이 두로의 부서진 파편들을 물 가운데로 던져서 방파제를 만든 사건으로 성취되었다.”라고 역사가 Joseph Free는 말하였다.


시돈에 관한 예언의 성취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시돈아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가운데서 내 영광이 나타나리라 하셨다 하라.... 내가 그에게 염병을 보내며 그의 거리에 피가 흐르게 하리니 사방에서 오는 칼에 상한 자가 그 가운데 엎드러질 것인즉..”(에스겔 28:22-23)
Floyd Hamilton은 주전 4세기에 일어난 사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페르시아의 가신으로 있었던 시돈은 B.C. 351년에 페르시아 왕을 반역하고 그들의 도시를 페르시아의 침공에서 방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시돈 왕은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시돈을 배반하였다. 시돈 사람들은 페르시아의 왕의 보복이 얼마나 끔직한 것인 줄 알았기에 40,000명의 시민들이 자신의 집들에 불을 질러 자살을 하였다. 정말로 그의 거리에는 피가 흐르게 되었다.”
George Davis는 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십자군 당시 시돈은 적들에 의하여 여러 번 공격당하였다. 십자군에 의하여 3번 사로 잡혔으며, 3번은 무슬람 군대에 의하여 공격당하였다.... 시돈의 역경은 현대까지 계속되어 1840년 영국과 프랑스, 터어키의 연합 군대에 의하여 폭격 당하였다.”


사마리아에 관한 예언의 성취

“사마리아가 그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아이는 부숴뜨리우며 그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리우리라.”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로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 내리고 그 지대를 드러내며”(호세아 13:16, 미가 1:6)
선지자 호세아는 사마리아 성이 형벌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미가는 사마리아가 들의 무더기 같이 되어 포도밭으로 변할 것이며, 성을 쌓았던 돌들은 골짜기에 던져질 것이고 “그 지대를 드러”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국제 표준 성경백과에 따르면 사르곤이 B.C.722년과 331년에 사마리아를 정복한 사실을 볼 수 있다. 또한 알렉산더 대제와, B.C. 120년에는 하이르카누스에 의하여 정복당했는데 이 때에도 수많은 사마리아 시민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John Urquhart는 Henry Maundrell이 1697년에 목격한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을 남기고 있다. “사바스테는 다윗의 집으로부터 반란을 일으킨 열 지파를 따라서 세워진 옛 사마리아 왕국이다. 이 훌륭했던 도시가 지금은 들의 밭으로 변하였으며,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오직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 북쪽의 사각 광장과 동쪽에 흩어져 있는 큰 교회의 잔해뿐이다.”

또한 Van de Velde의 기록은 미가서의 기록을 다음과 같이 입증하고 있다. “약탈자들의 소굴이 되었던 누추한 집들로 이루어진 비참한 촌락, 몇 기둥만이 남아있어 옛 시절의 자리만 알리고 있는 곳, 사마리아는 지금 단지 커다란 돌들의 무덤이다. 도시의 토대는 발견되었으나 거리는 쟁기에 갈렸고 옥수수 밭과 올리브 농장으로 변한 사마리아! 도시는 파괴당하였고 쓰레기들은 골짜기에 던져졌으며 도시의 초석이었던 오므리와 아합의 사각기둥들은 골짜기 비탈에 흩어 버려졌도다.”


가사와 아스돗에 관한 예언의 성취

“내가 또 아스돗에서 그 거민과 아스클론에서 홀 잡은 자를 끊고 또 손을 돌이켜 에그론을 치리니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다 멸망하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1:8) “가사가 삭발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멸망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예레미야 47:5) “가사가 버리우며 아스글론이 황폐되며 아스돗이 백주에 쫓겨나며 에그론이 뽑히우리라. 해변은 초장이 되어 목자의 움과 양떼의 우리가 거기 있을 것이며 그 지경은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갈지라 그들이 거기서 양떼를 먹이고 저녁에는 아스글론 집들에 누우리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권고하여 그 사로잡힘을 돌이킬 것임이니라.” (스바냐 2:4,6-7)

위 성경절은 블레셋 나라가 끊어질 것이고, 가사가 불모로 변하며, 멸망이 아스글론에 이르러 유대의 양과 양치기들만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George Davis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에스겔이 2,500년 전에 예언한 대로 아스글론만이 멸망되었던 것이 아니고 블레셋이 모두 끊어짐을 당하였다. 블레셋이 완전히 멸망당하여 현재 블레셋 사람들은 한 명도 살아있지 않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로 유대인들은 화려한 옛 도시, 아스글론이 서 있던 그 자리를 그들의 영토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이곳에 아름다운 이스라엘의 새 주를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예루살렘-포스트 신문은 새 아스글론이 ‘가든 시티”로서 디자인되었다고 보도하였다.”

가사에 대하여는 Peter Stoner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가사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사에 관한 성경의 예언이 틀렸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옛 가사의 자리를 정밀하게 조사한 결과 지금의 새 가사가 옛 가사의 자리에 자리잡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조사를 통하여 옛 가사가 다른 지역의 모래 언덕 아래 묻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옛 가사는 불모지로 삭발이 되어 있었다.”


에돔에 관한 예언의 성취

성경은 6명의 선지자들 -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아모스, 오바댜 -를 통하여 에돔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선지자 이사야는 에돔이 피의 역사를 거쳐서 무역이 끊어지고 완전히 멸망당할 것이며, 야생 동물들만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라고 하였다. (이사야 34:6-7,10,13-15) 예레미야는 에돔에 다시는 사람이 살게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고, 또한 놀라운 곳이 되리라고 예언하였다. (예레미야 49:17-18) 에스겔은 에돔이 이스라엘과 또한 이교도들에 의하여 정복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앗시리아 제국의 멸망은 에돔의 멸망에 관한 성경 예언의 종결을 표시하고 있다. Nabeans 사람들이 바로 에스겔 25:4절에 말한 “동방의 사람” 사람들일 것이며 주전 6세기에 그들이 에돔의 공격을 저지하고 에돔의 수도 페트라를 정복하였다. 이스라엘이 에돔을 정복한 사실에 대하여 Bernard Ramm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에돔을 정복한 사실은 I Maccabees 5:3과 Josephus’ Antiquities 가 증명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John Hyrcanus와 게레사의 시몬의 지휘 아래 에돔을 공격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에돔을 정복할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예수님 탄생 당시 에돔의 수도 페트라는 번성된 도시였다. 그 당시에 살고 있었던 Citing Strabo는 “페트라는 크게 번영된 도시였으며 아시아로 통하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또한 아랍인들이 그들의 향신료와 유향을 파는 상업지역이었다”라고 기록하였다. 로마제국 시절의 에돔은 유대인들과 합병한 상태였었다. 그 당시 에돔은 그리이스와 로마 사람들에 의하여 이두메아(Idumaea)라고 불렸으며 에돔 사람들은 로마 장군 타이터스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바로 직전에 예루살렘에 들어가 강도질와 도둑질로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렸다. 이때로부터 에돔 사람들은 분산된 민족으로서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Unger’s Bible Dictionary)

Davis는 다음과 같이 에돔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다. “에돔의 수도 페트라는 고대도시의 놀라움을 갖고 있었다. 이 도시는 산 바위 위에 건설되어졌으며, 대부분의 건물들은 단단한 바위를 갈라 만들어졌다. 아름다운 장미 빛 색깔의 바위를 갈라 세운 건물들과 산 전체를 깎아서 만든 도시 페트라는 놀라운 경이를 나타내고 있다. 페트라는 정복될 수 없는 도시였다. 도시로 들어가는 길은 단지 좁은 벼랑길 하나밖에 없었기에 적은 수의 병사들로도 어떠한 적의 침략을 무찌르기에 충분하였다.”

오늘날 에돔의 모습은 어떠한가? 성경에 나타난 에돔에 관한 모든 예언들은 정확한 성취를 보았다. 에돔을 방문하였던 Mangles 장군은 현대 에돔의 광경을 보고 기록하기를 “독수리들의 울부짖음과 매, 부엉이들만이 공중을 나르며 외로운 자신들의 둥지를 지키고 있었다”고 하였다.

이방인들이 에돔을 정복하리라는 성경의 예언은 A.D. 6세기에 무슬람 군대가 에돔을 침으로 성취되었다. 앗시리아가 에돔을 쳐서 종속시켰으며 그 후 느브갓네살이 공격하였다. Nabateans의 이주민들도 에돔을 약하게 하였으며 Judas Maccabeus에 의하여 수천의 에돔인들이 몰살당하였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손을 에돔 위에 펴서 사람과 짐승을 그 가운데서 끊어 데만에서부터 황무하게 하리니 드단까지 칼에 엎드러지리라”고 한 에스겔 25장 13절의 예언에 관하여 Floyd Hamilton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데만, 현대의 Maan,은 아직도 번성하는 타운으로 에돔의 동쪽 경계를 타고 자리잡고 있다. 데만 만이 오로지 이 지역에서 사막이 아닌 곳이다. 얼마나 놀라운 성경의 예언인가! 역사적으로 주변 국가들로부터 계속적인 침략을 받아 왔던 이 지역에서 오로지 데만 만이 아직까지 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결과이다. 하나님만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 수 있으며, 성경에 나온 모든 예언서는 하나님의 책인 것이 확실하다.”


신약에 나온 잘 알려지지 않은 예언 성취의 몇 가지 예들

대부분의 성경독자들은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성경 예언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예언은 A.D.70년에 성취되었다. 그런데 성경에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예언들이 있다. 신약 성경에는 갈릴리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던 옛 도시들-가버나움, 고라신, 벳새다-의 멸망에 관한 예언이 나온다.
마태복음 11장 20-24절에 예수께서 고라신과 벳새다가 두로와 시돈보다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성경에는 이 도시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멸망할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주어지지 않았으나, 역사적으로 이 도시들이 성경 예언대로 멸망되었음을 정확히 증명할 수가 있다.

George Davis는 그의 책 Bible Prophecies Fulfilled Today에서 가버나움이 A.D. 400년경에 지진으로 멸망 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고라신과 벳새다도 그 때 멸망되었다.

“고대 벳새다는 갈릴리 바닷가 기슭에 위치하였던 아름다운 도시였으며, A.D. 700년경 Albalid 1세가 겨울 왕궁을 지으려고 했던 곳이다. 15년간 그의 일꾼들이 성을 쌓았지만 왕이 죽음으로 인해서 완성되지 못하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자리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오늘날에는 몇 기초석들과 미완성된 모자이크 바닥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Davis는 가버나움의 상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오랜 세월 동안 회당은 폐허가 된 도시의 잔여물들과 같이 땅속에 매장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이 고대 회당을 다시 재현시키려 하여 몇 개의 벽들이 다시 세워지고 기둥들이 원래 있던 곳에 다시 건설되었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다시 폐허가 되어버렸다.”


노아 홍수의 4가지 증거

첫 번째 증거
 대규모의 퇴적암층. 지구의 모든 대륙에 존재하는 엄청난 크기의 퇴적암층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구에 엄청난 규모의 세계적인 홍수가 있었다는, 성경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두 번째 증거
 대규모의 화석군. 엄청난 규모의 동물과 식물이 일시에 떼죽음 당한 화석군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화석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급격한 변화와 갑작스런 매몰 사건이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그 과정에서 산소에 노출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산소에 노출될 상태에서 서서히 이루어지면, 화석으로 굳기 전에 썩어져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방대한 양의 화석이 지구의 지하에 묻히게 되었을까? 오늘날 산 꼭대기에서도 물고기의 화석이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로 다른 기후대에 사는 동물들과 곤충의 화석이 같은 장소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든 증거들은 오래 전에 세계적으로 대홍수가 있었다는 성경의 기록을 분명하게 증명해준다.

세 번째 증거
 동물의 입과 위장에서 발견되는 풀, 시베리아의 빙하지역에서 지금도 발견되고 있는 맘모스의 위장 속에는 미처 소화되지 못한 풀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오늘날에 존재하는 보통 동물보다도 2~3배 이상이 큰 맘모스가 어떻게 갑자기 멸종되었을까?

네 번째 증거
 대규모의 석탄광과 유전층. 석탄이나 유전은 대규모의 생물이 파묻힌 무덤이다. 어떻게 이러한 대규모의 식물들이 함몰되게 되었을까? 세계적으로 엄청난 양의 석탄광과 유전층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직 노아 홍수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문제이다.

 

6부 - 역사적 지리학으로 증명하는 성경


다신교나 미신들이 갖고 있는 증명할 수 없는 신화들과는 달리 성경에 나온 복음서는 예수님을 실제로 피와 육체를 갖고 있는 인간으로서,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람들과 접촉했으며 실제로 존재했던 지역들을 거닐었던 인물로서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특정 지역에서 특정 시간대에 실제적 공간 안에 살았던 인물이었다는 것을 예수님 당시의 역사를 연구함으로서 알 수 있다. 복음서에 기술된 역사에 일치하는 자세한 기록들과 지역적 설명들은 성경이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32만약, 어떤 지역에서 어떤 특정 종류의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그곳에 가게 된다면 그 사람은 그 사건과 관계된 태도와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역사적 지리학은 이렇게 사건과 지역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재난으로 가족을 다 잃은 친구 집을 방문하게 된다면 그곳에서 자기 가족의 자랑 같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만약 어떤 지역에서 어떤 특정 사건이 과거에 일어났다는 것을 안다면 그곳에 가셨을 때 그 사건과 어울리는 말씀을 하실 것이며, 그렇게 하셨다면 그 기록은 실제로 예수께서 그 지역에 갔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인성에서 예수께서는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 나인성은 남 갈릴리의 북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그 북쪽 언덕을 넘어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지역이 나온다. 이곳 사람들은 엘리사가 베푼 기적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그와 비슷한 기적을 행하심으로 메시야로서의 권위를 입증할 수 있었다. 나인성의 사람들은 “선지자가 우리 중에 다시 일어났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방문하셨도다”라고 화답하였다.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난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 85%이상이 이스라엘 바깥에 살고 있었으며,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에도 많은 수의 옛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이집트에 친구와 친척들을 두고 있었다.

예수님의 고향이 나사렛이었다는 사실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이곳은 20-30 가구만이 살고 있었던 미천한 동네였다. 이 사실은 이곳에서, 1세기 때 형성된, 묘지에 23개의 묘를 발견함으로 확인되고 있다. 나사렛은 조세푸스나 구약, 또는 탈무드에도 나오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으며, 요한복음 1장 46절에 “나사렛에서 어찌 좋은 것이 나올 수 있으랴”라고 한 나다나엘의 반응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둘째로, 나사렛은 제즈릴 언덕이 보이는 높은 산등성이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지역적 특징은 누가가 나사렛에 관하여 쓴 내용과 어울리고 있다.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누가복음 4:29).

셋째로, “나사렛의 앞마당”이라는 뜻을 가진 제즈릴 언덕은 므깃도 평지 또는 아마겟돈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250번 이상이나 전쟁을 치렀던 곳이며, 비록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지구 역사의 마지막 영적 전쟁도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곳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되어졌다. 이곳은 적들이 접근할 수 있는 7개의 길이 있어서 전투를 벌이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예수님께서 자라나시면서 이 계곡 사이를 여러 차례 걸으셨을 것이며, 이러한 경험이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마태복음 26:52) 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게 하였을 것이다.

성경 기자들은 그들이 얼마나 그들이 살고있던 환경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예수께서도 당시 살고 계셨던 환경과 연관된 말씀을 하심으로 듣는 자로 하여금 생생한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하셨다. 예를 들어서, 9000 피트나 되는 큰 바위산 헤르몬 산 앞에서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헬라어로 Petros, 돌] 내가 이 반석 [헬라어로 Petra, 큰 바위]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8)고 말씀하셨다. “음부의 권세”란 랍비들의 언어로 이방인의 도시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주어진 선교의 사명이 이방인의 힘을 앞지를 것이라는 예언을 그리이스-로마의 판테온 (만신전)에 제사 드리기 위하여 절벽을 파내어 만든 헤르몬산 등벽 아래서 하신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후에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은 예수께서 헤르몬산 앞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였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한복음 7:38) 대부분의 강은 작은 샘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요단강은 그렇지 않다. 헤르몬산의 눈이 녹아 내리면서 막대한 양의 물이 헤르몬산 아래로 쓸며 내려간다. 그곳에 직접 갔을 때에 이렇게 만들어진 샘들이 10피트가 넘는 양의 물을 내려보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은 그 계셨던 환경과 어울려 힘있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언덕위로 자리잡은 여러 도시들을 바라볼 수 있다. 이곳은 물길을 따라서 산 아래 자리잡은 대부분의 도시들과는 달리 갈릴리 바다를 내다 볼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동쪽의 강한 성 가말라의 불빛을 볼 수 있고, 이러한 광경은 “너는 세상의 빛이니 산 위에 있는 집이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신 마태복음 5장 14절의 말씀을 제자들의 마음에 깊숙이 새기기에 적절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주변에서 여러 신비한 기적을 행하셨다. 이 곳에는 Cichlidae 종에 속하는 물고기가 살고 있는데 “피나는 입”이라고도 불린다. 이 물고기는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와 나일강, 갈릴리 바다에서만 발견되는 희귀종이다.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고 있는 Jim Fleming 박사는 다음과 같이 이 물고기의 특성을 설명한다.

“이 물고기의 암컷은 알들이 부화되기까지 알들을 입안에서 보호한다. 알들이 조금씩 자라남에 따라서 가끔 알들을 밖으로 내보내는데, 위험이 다가오면 빨리 다시 입안으로 빨아들인다. 이 암컷은 굶주려 죽기 바로 전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는데 그 이유는 먹이를 먹을 때 알들이 같이 빨려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능 때문에 이 고기를 히브리어로 ‘어머니 고기’라고 부른다. 알들이 다 부화되어 나간 후에도 이 고기는 본능적으로 어떤 다른 대용 물을 입안에 넣고 다닌다. 오늘날 조약돌이나 콜라 병 뚜껑을 입에 넣고 있는 고기들이 잡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고기의 가장 대중적인 이름은 바로 ‘베드로의 고기’이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 17장 24-27절에 기술된, 베드로가 낚은 한 세겔 동전을 머금고 있었던 바로 그 물고기 이야기 때문이다.”

갈릴리는 화산지역이었다. 화산암들이 이 지역 전체에 널려있었기 때문에 여름이면 가시나무들이 쉽게 자랄 수 있었다. 예수께서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였을 때 화산암으로 대조를 이룬 이 지역적 환경은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벳바게(Bethphage)는 올리브산 옆 예루살렘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의 이름은 이른 철에 열리는 무화과나무 열매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다. 이 과일은 히브리어로 phage (fah-gay)라고 하며, 이른 봄 첫 잎들이 나오는 때에 열린다. 여러분은 마가복음 11장 12-14절에 나온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야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 때는 무화과를 따는 시기가 아니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 무화과는 헬라어로 sukon이라고 하여 다 익은 무화과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그 나무는 잎이 무성하였으므로 분명히 철 이른 무화과(phage라고 불리는, 먹을 수 있는 과일)가 열려있었어야만 하였다. 그러나 열매 없는 이 나무를 보시고 예수께서는 겉과 속이 다른 외식주의자에 관한 실물교훈을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7부 - 부활에 대한 합리적 논리와 증거와 증인


예수께서는 자신이 돌아가신 후 3일만에 부활하시겠다고 예언하셨다. 이러한 선언은 4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12제자들 모두를 데리고 가셨으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간다. 그곳에서 인자가 죽임을 당하리라. 그들이 인자를 이방인들에게 넘겨 모욕을 주고 십자가에 못박으리라. 그리고 3째 날에 부활하리라.”(마 16: 21 참고)고 하셨다. 부활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부활과 기독교 신앙 자체는 같이 살던지 같이 죽는다는 것이다. 둘 중 어느 하나만 간직 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예수의 부활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 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린도전서 15:13-17).

우리는 지혜로운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구세주 예수를 믿음으로 일부러 자신을 무식과 무심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우리의 신앙에 대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예수의 부활에 관한 문제를, 고대 역사를 연구하듯, 공부해야 한다. 초대 교회는 사실을 기초로 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강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도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자신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심으로 그들에게 실제적인 부활에 대한 증거를 주셨다. 누가는 tekmerion라는 단어를 썼는데 “제시할 수 있는 증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Wolfhart Pennenberg는 독일에 있는 Munich 대학의 조직신학 교수이다. 그는 믿음과 역사의 관계에 관한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수께서 정말로 부활 하셨는지 아닌지는 피할 수 없는 역사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에 관한 대답은 역사적인 증언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한 모든 증거들은 모든 선입견이 제거된 정직하고 역사적으로 공평한 방법으로 제시되어져야 한다.”

부활의 증거와 증인들

어떤 사건의 기록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것이 기록될 당시에 그 안에 기록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살아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처음 사람들에게 나타나심을 고린도전서 15장에 바울이 기록하고 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고전 15:3-6) 위 바울의 기록을 보면 예수의 부활 후 그를 본 사람들의 대부분이 위 글이 쓰여질 당시 살아있었다고 하였으므로 이 기록은 역사적 사실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예수께서 여러 곳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Wheaton 대학의 교수 Merrill C. Tenney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렇게 나타나심이 평범한 일이 아니다. 이들 중 어느 두 명도 비슷하지 않다.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이른 아침에 나타나셨고, 엠마오로 가는 여행자에게는 오후에, 제자들에게는 저녁에 나타나셨다. 마리아에게는 밖에서 나타나셨으나 그 때 마리아는 혼자 있었으며,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는 제자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또한 바울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오백여명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시기도 하였다. 그 반응도 각각 달랐다. 마리아는 감정에 휩싸였으며, 제자들은 놀라움에 두려웠고, 도마는 처음에 믿지 않았으나 직접 본 후에 그를 경배하였다. 모든 경우가 각각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으며 예수의 부활에 대한 다른 성격의 반응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사실은 부활 후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사실이 단지 평범한 전설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예수께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적의를 품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부활 후 그의 제자들과 그를 믿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만 자신을 나타내셨다고 말한다. 이러한 말을 함으로 그들은 예수의 부활에 관한 증인들의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한다.
어느 누구도 사울이 예수를 믿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에게 나타나심으로 그는 인생을 바꾸는 일이 일어났다. 바울은 그 때 예수의 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의 부활에 관한 힘있는 증인이 될 수 있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의 처음 나타나심이 여인들에게라는 사실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한 여인에게 먼저 나타나신 것은 아마 예수의 제자들에게 질투심를 일으켰을 것이며, 또한 유대 법으로 여인들은 법정에서 증인도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여인들에게 먼저 나타나신 것은 이 나타나심이 부활을 꾸미기 위하여 일부러 조작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증거

부활을 증거 하는 가장 큰 증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그들의 생활을 변화시킨 초기 기독교인들일 것이다. 그들이 어떠한 의도를 갖고, 어떠한 생각과 힘을 갖고 그토록 머나먼 지역까지 여행을 하며 그리스도를 전파하려고 하였을까? 그들에게 이렇게 함으로서 어떠한 이익이 있었을까? 그들의 노력이 그들에게 어떠한 부나 사회적 지위도 주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섭고 혹독한 핍박뿐이었다. 대부분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매서운 환난과 고난을 매일 통과하여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전에 경험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생각하고 죽음의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의 가족들은 예수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 그의 형제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믿지도 않았으며, 도리어 창피하게 생각하였다.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바리세인들의 친구였다. 그와 그의 형제들은 예수를 우습게 생각하고 조롱하였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의 가족에게 망신을 주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난 후 어떠한 일이 그의 가족에게 생겨났는가? 우리는 그들을, 사도행전 1:13-14절에 기록한대로, 성령을 기다리며 모여있던 다락방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야고보는 초기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그의 글이 신약 성경의 한 편을 이루고 있는데 (야고보서) 그는 이렇게 그의 글을 시작한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야고보서 1:1) 후에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돌에 맞아 순교 당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야고보에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고린도전서 15장 7절에 있다.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겁많은 제자들에게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 예수께서 겟세마네 뜰에서 군병들에게 붙잡히셨을 때 그의 모든 제자들은 도망가 버렸다. (마태복음 26:56 참고) 예수께서 재판 받으실 때에 베드로는 3번이나 그를 부인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제자들은 다락방에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 이렇게 겁 많은 제자들의 모든 성격을 변화시키는 일이 일었났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위한 담대함을 갖게 되었다. 예수를 3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을 만큼 그의 인생은 변화되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후에 열두 제자에게...보이셨나니.” (고린도전서 15:5-6)

기독교인들을 심하게 핍박하던 바울은 유대의 광신자요 그리스도인들을 혹독히 미워하던 자였다. 그는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잡고자 허가서를 발급 받았다. 그는 기독교회들을 참혹하게 파괴하였다. 그러나 그는 살인자에서 선교사로 변화함을 받았다. 그는 가장 혹독한 핍박자에서 가장 큰 그리스도 교회의 포교자로 바뀌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초기교회의 신자들처럼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믿음은 단지 신화와 전래되는 이야기들 위에 쌓여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증명되는 빈 무덤과 죽음에서 부활하사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8부 - 의학이 설명하는 그리스도의 죽음


성경은 로마 군인이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는 순간,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나의 전설이나 옛날 이야기로 돌리려고 한다.

우리는 일반적인 십자가형과 함께 예수의 심적 고통을 의학적인 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십자가형 집행 시에는 일반적으로 죄인의 무릎 뼈를 꺽었다. 군인들은 먼저 죄인의 손목 바로 앞 조금 들어간 자리에 못을 박는다. 그리고 다리를 같이 포개서 큰 못을 그 위에 박는다. 무릎을 조금 굽히고 sedecul라고 부르는 의자를 십자가 뒤에 붙여서 조금 기대어 앉을 수 있도록 한다.

Truman Davis 의사는 십자가형을 받는 사람의 몸이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팔에 힘이 빠지면서 온 몸의 근육에는 큰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 고통은 몸을 위로 올릴 수 없을 만큼 깊고 잔혹하다. 팔에 으지하여 매달려 있으므로 흉근은 완전히 마비되고 늑간 근육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공기가 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으나 내쉬지는 못한다. 예수는 몸을 들어올려 조금의 호흡을 해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결국에는 이산화탄소가 폐와 혈관을 가득 채우고, 고통은 부분적으로 가라앉는다. 가끔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위로 밀어서 숨을 내쉬고 조금의 산소를 들여마신다."

얼마 후, 피 순환의 결핍으로 뇌와 심장의 기능이 마비된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발을 밀어서 몸을 위로 들어올려 피가 몸 위쪽으로 순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형 집행자가 이러한 고통의 시간을 줄이려 할 경우에는 형을 받는 사람의 무릎을 곤봉으로 쳐서 꺽어 빨리 숨이 끊어지도록 하는데, 그 이유는 무릎을 꺽어서 몸을 들어올려 흉근을 피지 못하게 함으로 질식시키기 위함이다. 예수 옆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은 모두 다리를 꺾였지만, 예수의 경우는 다리를 꺽기 전에 이미 숨지셨다. 

피와 물이 나온 이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한복음 19:34) Davis 의사는 이 현상을 심장 부근의 물 같은 액체가 터져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사실은 예수께서 십자가형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심낭에 있는 액이 심장을 압박함으로 심장이 파열되어 숨지셨다는 것을 의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신 영혼의 고통으로 인하여 심장이 파열되어 돌아가셨던 것이다.

9부 - 역사가 증명하는 십자가와 부활


우리는 지혜로운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구세주 예수를 믿음으로 일부러 자신을 무식과 무심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우리의 신앙에 대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예수의 부활에 관한 문제를, 고대 역사를 연구하듯, 공부해야 한다. 초대 교회는 사실을 기초로 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강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재판 과정과 십자가는 전설에 불과하며 실제적인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재판 과정과 십자가형은 그 사건과 내용에 있어서 다음에 소개하는 그 당시 로마제국의 법률과 처형 방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6번의 재판에 대한 증거 

예수께서는 총독 빌라도 앞에 재판 당하기 위하여 불려 나오셨다. 역사적인 증거를 통하여 총독 빌라도는 매우 잔인하고 무정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Philo는 기록하기를 “빌라도는 예심도 없이 행한 셀 수도 없는 포악한 행동과 사형집행에 책임이 있다”라고 하였다.

예수께서 당하신 중요한 재판은 6번이었다. 대 제사장 안나스 앞에서 한번, 가이사 앞에서, 산헤드린 앞에서, 빌라도 앞에서, 헤롯 앞에서, 마지막으로 다시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으셨다. 산헤드린 회는 둘로 나뉘어져 있었다. 23명으로 구성된 회는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는 최고의 권한이 있었고, 71명으로 구성된 다른 회는 정부 단체와, 대 제사장, 성전과 관련된 재판을 하는 기관이며, 중범 죄들은 다루지 않았다. 예수의 재판을 다룬 산헤드린 회는 유대 각 도시에 제정된 23명으로 구성된 그 회였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유대 법정에서 3번, 로마 법정에서 3번 재판 받으시고 유대 지도자들에 의하여 십자가형을 선언 받으셨으며, 특별 보호법을 적용, 돌아가신 후에 그의 무덤을 지켜 시체가 도둑맞지 못하도록 계획되었다.

존재하였던 십자가형

십자가형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알렉산더 대제이며, 지중해 연한 지방, 특별히 이집트와 카르타고에서 사용되었다. 로마 사람들이 십자가형을 도입한 것은 카르타고 사람들의 영향일 것이라고 여러 자료들이 제시하고 있다. 십자가에 의한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비참한 고문이다. 예루살렘 포위 때 티누스의 고문이었던 역사가 조세푸스는 십자가형을 직접 목격한 후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무참한 죽음이다”라고 적고 있다.

역사적인 유물인 채찍

그 당시 십자가형이 선고된 후 피고인은 법정에서 결박당하게 된다. 그리고 옷이 벗겨지고, 채찍 때리는 자에 의하여 심한 채찍을 맞게된다. 플래그룸이라고 불리는 채찍은 억센 손잡이와 가죽끈으로 되어있는데, 그 가죽끈에는 날카롭고 울퉁불퉁한 뼈들과 납덩이들이 달려있다. 유대인들은 법적으로 40번 이상 채찍질을 할 수 없게 하였다. 40번 이상은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바리세인들은 그들의 엄격한 규율준수 정신에 입각하여 39번 채찍질을 하게 하였는데, 그 이유는 혹시 실수로 한번 더 때릴 수 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제한됨 없이 마음대로 채찍질을 하였다. 이 채찍질은 단순히 살을 때리는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가죽에 달려있는 뼈들과 납덩이들이 살을 가르고 근육을 갈라서 등 전체가 그 형태를 잃어버리게 되며, 뼈가 보이게 되는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 역사적 기록이 말하고 있는 이러한 로마제국의 형벌 방법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일치한다.

발굴된 십자가의 못 

많은 사람들이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신약 성서의 기록에 대하여 의문을 표명하였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Harvard Theological Review에 J. W, Hewitt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십자가형을 집행 할 때에 죄인의 발에 못을 박았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팔과 발을 십자가에 끈으로 매었을 뿐이다.... 신약 성경에 기록한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옳지 않은 기록이다. 그 때 당시 십자가형에 못을 썼다는 것은 전설적인 이야기다. 만약 못을 썼다면, 이 못이 살과 뼈를 갈라서 몸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8년 개혁적인 고고학적 발굴이 있었다. 고고학자 V. Tzaferis는 이스라엘 정부의 지원아래 예루살렘 북쪽 스코프스 산 가까이 있는 Giv’at ha-mivtar에서 네 개의 동굴 무덤을 발견하였다. 그곳 한 무덤에서 십자가형을 받아 죽은 것이라고 믿어지는 한 시신을 발견하였는데, 그 발 뼈는 7인치의 철 뼈로 뚫린 자국이 있으며, 무릎 뼈는 부서져 있었다. 이 발견으로 십자가형에 못이 쓰였다는 신약 성경의 기록이 단순한 전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큰 돌

마태복음 27장 60절에 마태는 예수께서 장사된 무덤 입구를 큰돌을 굴려 막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가는 마가복음 16장 1-4절에 이 돌이 아주 큰 것이었다고 기록하였다. 영국 캠브리지 도서실에 소장되어 있는 Bezae 비문에 적힌 마가복음 16장 4절에 관한 삽입구에는 “예수가 무덤에 누여지니, 요셉이 무덤의 문을 20명의 남자도 굴릴 수 없는 큰돌로 막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미국 조지아 공업 대학 교수들이 이스라엘에 가서 직접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예수님 당시 쓰였던 무덤의 문의 크기는 4-1/2에서 5피트 정도이고 이 정도의 입구를 막으려면 적어도 1-1/2이나 2톤 무게의 바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큰돌을 어떻게 요셉 혼자서 옮겼을까? 이 질문의 답변은 간단하다. 요셉은 단지 돌을 한번 밀어 굴러 내려가게 했던 것이다. 이 돌은 무덤 입구를 바라보는 조금 경사진 곳에 쐐기를 써서 고정시켜놓았기 때문에, 단지 쐐기를 빼면 저절로 무덤입구로 굴러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예언대로 부자의 무덤에 묻히셨는데, 그 당시 부자들의 돌무덤 구조는 엄청난 크기의 무덤 문을 한 사람의 힘으로 닫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사실은 지금도 유대 지방에 있는 돌 무덤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로마 군인들의 경계

유대 지도자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는 것을 보고 공포에 빠지게 되었다. 정치적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유대 지도자들과 로마 행정자들 모두가 예수를 영원히 무덤에 있게 하고자 하였다. “주여 저 휴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숫군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저희가 파숫군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마태복음 27:63-65)

만약 이 파숫군들이 성전 호위병들이었다면 이들은 모두 270명이었다. 성전 호위군은 10명으로 구성된 27개의 소대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앉아 있거나 기대어 있을 수도 없었고, 만약 근무 중 조는 경우에 발각되면 심하게 매맞고 옷에 불을 지르는 형을 받을 정도로 성전 호위군의 규율은 엄격하였다.

헬라 학자 A.T. Robertson의 의하면 “너희에게 파숫군이 있으면”이라고 빌라도가 한 말은 오직 로마 군병들을 가리키며 성전 호위병들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라틴어 형태를 갖고 있는 koustodia는 Oxyrhynchus 파피루스에 기록된 대로 로마 군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로마군병들은 우리가 보통 성경이야기 책에서 볼 수 있는 사진에서처럼 무덤 옆에 한 두 명의 군인들이 치마를 입고 서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로마 호위병들은 4명에서 16명 단위의 소대를 이루고 있으며 한 명이 6피트 지역을 방어하도록 훈련받았다. 16명 소대원이 한 쪽에 4명씩 사방을 지켜 총 36야드를 지키게 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그것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제사장들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사실이다. 만일 제사장들의 주장대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시체를 훔쳐간 것이라면,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시체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로마제국의 정예 군사들과 전투를 벌여서 군사들을 모두 처치한 다음에 시체를 가져가든지, 아니면 수십명이나 되는 로마군사들 모두가 눈치채지 않게 그 거대한 무덤의 돌 문을 움직인 다음에 시체를 가져가야만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합리적 사고와 이성으로 판단해 보라.

인봉의 의미

“저희가 파숫군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마태복음 27:66) 이 기록은 다니엘 6장 17절의 기록과 비슷하다.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함이었더라.” (다니엘 6:17)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였으며 인도 최고위원회 회원인 Henry Sumner은 “인봉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법적 권위를 제정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인봉하는 작업이 갖고 있는 또 다른 중요성은, 이 인봉하는 일이 로마 정부가 그 안에 있는 시체를 확인했다는 증거를 표시하기 때문이다.

빈 무덤에 대한 역사적 기록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는 한 사실은 바로 빈 무덤이다. 유대와 로마, 모두 빈 무덤에 관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 기록들은 역사가 조세푸스의 글에서와, 15세기 Toledoth Jeshu라고 불리는 유대문학에서도 발견되어진다. Justin Martyr의 Dialogue With Trypho에는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지중해 연한의 곳곳에 사람들을 보내어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소문을 퍼뜨려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왜곡시키려 했었다고 적고 있다. 역사가 Ron Sider은 결론을 내리기를 “만약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 모두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그 빈 무덤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일요일 아침에 여인들이 향품을 갖고 무덤으로 갔다고 마가복음 16장에 기록하였다. 만약 이 여인들이 예수의 무덤을 로마 병정들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왜 그곳에 갔을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이 여인들은 금요일에 예수의 시체가 십자가에서 내려져 매장지로 옮겨진 것을 보았지만, 로마 군인들이 시체를 확인하고 무덤을 지키기 시작한 것은 토요일 오후부터이기 때문에 베다니 외각에 살았던 이 여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10부 - 성경을 뒤쫓아 온 과학


성경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성경은 한번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비평 학자들은 요한계시록 7:1절에 나온 “네 모퉁이”를 보고 성경이 지구를 사각형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이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요한계시록 7:1)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성경절에 나오는 “네 모퉁이”는 동, 서, 남, 북을 의미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어휘가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다. 우리가 흔히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태양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 성경 기자들도 우리처럼 “상황적 언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단순한 언어로 기술하지 않았다면 그 의미가 모든 사람들에게 확실히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오늘 아침에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아서 태양을 뜨게 하였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천년 전에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말하였다. 욥기 26:7절에는 지구가 우주의 공간 안에 매달려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지구가 우주의 공간 안에 매달려 있으려면 이 지구를 붙잡고 있는 어떠한 힘이 존재해야만 한다. 성경에는 “매달려”있다고 함으로 어떠한 끈이 이 지구를 잡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지만 이 말씀은 바로 모든 항성들을 그 궤도에 잡고 있는 힘이 우주에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26:10절에는 “그가 수면에 둥근 경계(circular horizon)를 그으셨으며..”(영문직역)라고 말씀하심으로 지구가 둥글다고 말하고 있고, 이사야 40:22에는 “둥근 지구 (circle of the earth)”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잠언 8:27절에도 “궁창(circle)으로 해면을 두르실 때에”라고 말씀하고 있다.

누가복음 17장 31, 34절은 둥근 지구의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눅17:31,34) “그 날”과 “그 밤”이 똑같은 사건을 설명하기 위하여 쓰여졌다. 이 의미는 인자의 나타나는 시기가 어느 지방에서는 밤이고, 다른 지방에서는 낮이 될 것이라는 것이며, 이것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낮과 밤이 동시에 지구에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지구가 네모지고 평평하다면 어찌 낮과 밤이 동시에 있을 수 있겠는가!

이사야 55:9절에는 끝없는 우주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우주와 비교하고 있는 이 말씀은 셀 수 없는 은하계로 수놓은 우주의 끝없음을 말하고 있다. 베드로후서 3장 7절에는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라고 하였다. 간수한다는 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없어지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즉 다른 말로 말하면 이 성경절은 땅과 하늘에 있는 모든 물질들과 에너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없어지지 않고 계속 순화되어 그 근본 상태를 유지한다는 질량보존의 법칙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어떻게 비가 형성되는지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시대에 성경은 물이 어떻게 순환하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전도서 1:7) 한국어 성경의 번역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그러나 영어 성경에는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흐르지만 바다는 완전히 채워지지 않고, 이 물은 다시 그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라고 쓰였다. 즉, 이 말씀은 바다로 흘러 들어간 물이 다시 증발되고 비가 되어 다시 강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 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시편 102:25-27) 성경은 모든 물질과 에너지의 보존법칙을 말함과 동시에 그 혼란의 상태가 증가한다는 혼란증가의 법칙도 말하고 있다. 이 법칙은 과학적으로 이미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으로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 혼란의 상태를 증가시키고 있어서 이대로 지속될 경우에는 언젠가 완전 붕괴의 상태로 도달한다는 것이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피가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의학이 발달되지 못하던 고대나 중세사회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레위기 17:15~16을 통하여 피를 통하여 병균이 옮긴다는 사실도 말하고 있다. 세상에 병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된 때는 겨우 몇 백년 전이다. 중세시대에 의사들은 사람을 수술할 때에 손에 묻었던 피를 하나의 영광스러운 상징으로서 생각하였고, 그 피를 씻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수술함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숨지게 되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성경은 이미 오래 전에, 피를 묻히거나 죽은 짐승들을 만졌을 때에는 그 부위를 깨끗이 씻고 저녁까지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말씀은 태양광선이 균을 죽인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으며, 병균이 접촉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의학적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