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하나님의 기대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교훈을 말씀하고자 하실 때에 종종 심판의 경고와 자비의 초청을 연결하여 설명해 주셨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누가복음 13장에 나오는 무화과 나무의 비유 또한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구원과 심판의 관계를 나타낸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수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눅 13:6,7.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할 수 없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온 포도나무에 비유해서 노래를 읊은 적이 있었으며, 이사야 선지자는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사 5:7). 즉,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주의 포도원과 무화과 나무”는 모두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과 보호의 울타리 안에 있는 유대 백성을 상징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생명수가 샘솟는 샘가에 아름다운 포도나무로 심으셨다. 그 분께서는 당신의 포도원을 “심히 기름진 산”에 만드시고,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셨던 것이다(사 5:1,2).

유대인의 실패

하나님께서는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으나 들포도를 맺혔도다” (사 5:2). 유대인들은 경건한 모양을 갖추려고 매우 노력했지만, 오히려 그들의 품성과 생애 속에는 하나님의 영이 매우 결핍되어 있었다. 요셉의 생애를 그처럼 향기롭고 아름답게 만들었던 품성의 열매가 유대 백성들 중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사 그 열매를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포도원에 정성스럽게 심어진 이스라엘 백성은 다만 땅을 황폐케하는 자들이었다. 유대 백성의 존재 자체가 땅에 저주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유대 백성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다른 나무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세상에 주고자 하는 축복을 빼앗아갔다. 그들 주변에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올바로 소개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단순히 쓸모없는 나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에 결정적인 방해물이 되었다. 유대인들의 종교는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대신에 멸망에 이르게 만들었다.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고, 포도원지기는 그리스도이시다. 포도원지기는 그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어 버리겠다는 주인의 선고에 대하여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포도원지기는 그 열매없는 나무에 대한 포도원 주인의 깊은 관심을 알고 있었으며, 포도원지기 자신 역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나무가 잘 자라서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것을 보는 것은 주인과 포도원지기 모두에게 더할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포도원지기는 나무를 찍어버리겠다는 주인의 말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를 맺으면 좋거니와” 눅 13:8,9.

실패 이유

포도원 주인과 포도원지기는 무화과 나무에 대하여 동일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같이 하늘 아버지와 그 아들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의 백성들에 대한 동일한 사랑을 갖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비유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셨다.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이 세상에 축복이 될만한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하여 주인과 포도원지기는 온갖 사랑의 방법을 동원해야만 하였다.

예수께서는 비유 속에서 과수원지기의 수고의 결과에 대하여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거기서 그 분의 이야기는 중단되었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그분의 말씀을 들은 그 당시의 세대에게 맡겨졌다. 즉, 그들은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어 버리라”는 경고를 받았다(눅 13:9). 다시는 철회할 수 없는 그 선고가 그대로 이루어지느냐의 여부는 그들에게 달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성품과 생애 속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했으며, 그 결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의 특권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대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

2000년 전에 발해진 경고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무관심한 자들이여, 그대들은 주의 포도원의 열매없는 나무가 아닌가? 운명을 결정하는 심판이 머지않아 그대들을 향하여 선고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그대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를 받아 왔는가? 또한 주께서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대의 사랑의 보답을 바라고 기다려 오셨는가? 하나님의 포도원에 심어지고 포도원지기의 주의 깊은 돌봄을 받아 온 그대의 특권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얼마나 자주 사랑의 복음이 그대의 마음과 양심에 감동을 주었던가! 그대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고 있으며, 예수의 몸된 교회의 일원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이 끊긴 채 오랜 세월을 보내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생명이 지금 그대의 삶 속을 통하여 흐르지 않고 있다. 그리스도의 품성과 생애를 반사할 수 있을만한 “성령의 열매”가 그대의 삶 가운데서 보이지 않는다.

열매 맺지 않는 나무도 비와 햇빛과 과수원지기의 돌봄을 받는다. 그 나무가 심어진 땅에도 빨아들이기에 충분한 양분이 뿌리 주변에 깔려 있다. 그러나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땅을 어둡게 하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도 그 그늘로 인하여 번성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그대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총도 그대를 통하여 세상에 나누어줄 수 있는 열매로 전환되지 못한다. 차라리 그대가 없었다면 다른 사람이 그대가 차지하고 있는 몫과 특권을 얻을 수 있었을텐데 ....

어쩌면 그대는 자신이 땅만 못쓰게 만드는 자 임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아직 그대를 포도원에서 찍어 내버리지 않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그대를 냉정한 눈으로 내려다 보지 않으신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은총을 무관심하게 버렸을지라도, 그분께서는 그대에게서 무관심하게 돌아서지 않으시며, 그대를 그대로 죽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대를 바라보시면서 오래 전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외치시던 말씀처럼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 임이라” 는 말씀을 외치고 계신다(호 11:8,9). 긍휼이 많으신 구세주께서는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나이다”라고 그대들을 위하여 중보하고 계신다.

그대에게 맡겨진 결정

이 연장된 은혜의 기간 중에 그칠 줄 모르는 사랑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위하여 어떠한 봉사를 하고 계신지를 생각해 보라. 그분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다(눅 23:34). 하늘로 승천하신 후, 교회에게 성령을 주셔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하늘의 권능을 나타내심으로 복음을 전파하셨다. 수많은 순교자들의 생애와 죽음을 통해서 하늘의 진리와 복음이 어떤 것인지를 나타내 보이셨다. 하늘이 인류를 위해서 줄 수 있는 것들이 모두 주어졌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고 말씀하셨다(사 5:4). 그대를 위한 그분의 사랑과 수고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분께서는 아직도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상해하지 못하게 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사 27:3). 운명은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좋겠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 성령의 역사에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은 점점 완고해져서 마침내는 성령의 감화를 전혀 감지할 수 없게 된다. 바로 그렇게 되었을 때에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는 선고가 내려진다.

주께서 오늘 그대를 부르신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 나는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처럼 뿌리가 박힐 것이라 ....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저희는 곡식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호 14:1~8.

가난을 극복하는 비결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라고 말씀 하셨다(눅 6:20). 물론, 이것은 마음의 가난함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나 마음이 아무리 가난하고 꽃잎처럼 고울지라도 깊은 산속에서 누더기를 걸치고 산다면 누가 그를 거들떠 볼 것인가? 세상에 괴로운 일이 많지만 가난처럼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도 없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대로 사는 자는 하나님께서 모든 복을 허락하실 것이므로 의인은 절대로 가난해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마태복음 6장 33절을 인용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이 모든 것”을 축복으로 허락하실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모든 것”이란 무엇인가? 대 저택과 다이아몬드와 멋진 자동차와 같은 것들인가?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설명이 바로 앞에 있는 성경절에 나와 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1,32. 예수께서 당신을 진실한 마음으로 따르는 자들에게 보장하신 것은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방인들처럼 불안한 마음으로 이러한 것들을 구하지 말고, 자식을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의연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십년치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한번에 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의 식탁을 펼쳐 놓으셨던 것처럼, 지금도 “이 모든 것”을 하루 하루 공급해 주신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 6:34.

필요가 하루를 단위로 공급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생애에는 궁핍과 가난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이 걸려서 넘어지고 있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그리스도인들만이 마지막 시대에 순결한 양심과 하나님의 자녀다운 기백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남게 될 것이다. 이제, 가난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실제적 아픔들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첫번째 아픔

가난에서 오는 고통 중에 첫번째는 친구에게 냉대를 받는 것이다. 잘 살 때는 친구들이 많이 모여들지만, 가난해지면 친구들이 떠나간다. 내가 궁하지 않을 때는 신용이 있었지만, 호주머니가 비니까 친구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친구를 찾아가도 나를 만나주기를 꺼려하고 어쩌다가 도움이라도 청하면 나를 한심한 인간으로 바라본다. 한 때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으며, 하나님과 진리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했던 교우도 가난이 싫어서 나를 멀리한다. 그러므로 옛 현인은 “가난에 쫓겨 눈물이 소매를 적실 때, 사람의 마음은 알려진다”라는 말을 남겼다.

가난은 가난해진 사람의 마음도 드러내지만, 가난해진 자의 친구의 마음도 드러낸다. 그러므로 가난해질 때까지는 친구를 믿지 말라. 이 세상의 친구는 그림자와 같다. 내가 햇볕 아래를 거닐 때에는 나와 함께 하지만, 가난이라는 그늘에 들어서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나의 곁을 떠나지 않는 친구가 한 분 계신데, 그분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오히려 내가 가난해지고 갈급해지면 가까이 오셔서 나의 온 마음과 생애를 당신의 영원한 진리로 배불리 채워 주신다.

두번째 아픔

두번째 아픔은 나로 인하여 가난해진 가족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 혼자라면 가난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내게 기대어 살아가는 늙으신 부모님과 연약한 아내, 그리고 어린 자식이 있기 때문에, 가난은 내 마음에 깊은 아픔과 상처를 남긴다. “어떻게 하면 나로 인하여 가난해진 부모와 처자의 슬픔과 딱한 사정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나의 신앙과 철학을 움추러 들게 만든다. 가난에 지친 어머니와 식솔들이 힘없는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을 보는 것, 이것이 가난이 가져다 주는 두번째 아픔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그리스도인 생애의 목적은 가난을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진리와 정직의 길을 걷고자 할 때에 가장 먼저 그대 눈 앞에 떠오르는 문제는 가난일 수 있다.

세번째 아픔

두번째 아픔은 세번째 아픔으로 나를 인도한다. 나는 가난과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빵을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를 기웃거려 보고, 저기를 찾아가서 직업을 구해야 한다. 내가 가난하고 궁하다는 사실을 안 주인은 적은 보수로 나를 고용하려고 한다. 나는 파는 사람이고 그는 사는 사람이니 값을 정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그에게 달려 있다. 내가 공정과 공평을 앞세우고 그의 요구를 물리치면 나는 부모 처자와 함께 또 한끼의 식사를 걸러야 한다. 만일 굶주리는 자가 나 하나라면, 내 뜻을 세워 무릎을 꿇지 않으련만, 지금의 나는 나 혼자만이 아니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마음과 몸을 바치는 아내를 위하여, 나는 내가 존경할 수 없는 사람 앞에서 복종의 예를 갖추어야 한다. 빵을 위하여 존경하지 않는 사람 앞에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안되는 것, 바로 이것이 가난이 가져오는 세번째 아픔이다.

그러므로 식생활을 위하여 비굴해 지지 않는 것, 이것이 진리를 위하여 세상을 버린 그리스도인들이 통과하게 되는 경험이다. 비굴한 방법으로 가족을 위하여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할 수는 있지만, 존경의 마음으로 그대를 바라보는 가족의 눈을 잃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육을 위하여 영을 포기하지 말라.

네번째 아픔

가난은 비루한 열등감을 내 마음 속에서 싹트도록 한다. 부자 이웃을 보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특별한 이유없이 부자 친구를 비웃는 자는 가난 때문에 비루해진 자이다. 가난한 자가 아무런 마음의 부담없이 부자 친구와 교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지만, 진리와 의를 위하여 살다가 가난해진 그리스도인은 비겁한 열등감에 빠질 이유가 없다.

현대는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돈이 사람을 세우고, 돈이 사람을 넘어뜨린다. 돈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사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이 되었다. 그래서 심지어는 “돈을 일만 악의 뿌리”로 믿는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가난의 아픔을 피하기 위하여 양심을 더럽히고 마음의 순결을 싼 값에 팔아치우고 있다. 그대 가난한 자여, 비루한 열등감이 그대 마음을 채우려고 할 때, 머리를 흔들면서 분연히 그것을 떨쳐 버려라.

다섯번째 아픔

가난은 남을 부러워하게 하고 자신을 비굴하게 만드는 동시에, 또한 자신을 염세주의자로 만든다. 가난해지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모임을 싫어하게 되고 사람들과의 교제를 피하게 된다. 마음은 점점 냉랭하고 완고해져서, 의연한 그리스도인의 자태를 잃어버리게 된다. 가난은 자신을 사회와 교제로부터 몰아낸다. 가난은 사람에게 깊은 외로움을 가져다 준다.

가난은 가난을 낳는다. 부모가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하게 된 자는 그 마음에 한을 품는다. 가난은 사람을 한 맺힌 수전노로 만든다. 가난이 한이 되어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생애의 목적으로 삼은 자는 물욕에 찌든 수전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여, 조심하라. 그대의 마음에 파수꾼을 세워 수전노의 정신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라. 그대 자신을 위해서는 엄격한 절약 정신을 실천할지라도, 이웃을 위해서는 너그럽게 주머니를 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세상은 가진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는 이미 가진 것도 빼앗는다. 부자가 더 부해진다는 이야기는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진다는 뜻이다. 깊은 가난은 사람을 절망의 계곡으로 몰아 넣는다. 가난 때문에 그대가 수치스럽다면, 정직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부지런함에도 불구하고 가난이 그대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대는 가난 속에서 만족과 행복을 찾는 비결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다섯번째 아픔을 이기는 비결이다.


의를 위한 가난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존경을 받는 가난이 있다. 비록 흔하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정의와 진리를 위한 가난이라는 것도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말하기를 “하나의 방해물이 늘 내 몸에 붙어다니는데, 그것의 이름은 정직이다.”라고 하였다. 정직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은 부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영원한 축복이 되지도 못한다. 양심의 명령을 존중하면서 축적한 부가 아니면 그것은 하늘이 인정하는 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자들 중에도 가끔씩 의인들을 두심으로써, 당신께서 재물을 사용하시는 방법들을 계시해 주신다.

진리를 세우기 위하여 가난해지기로 작정한 위대한 사람들을 역사 속에서 간혹 찾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이 40년 간의 봉사 후에 그의 소유로 남은 것은 웃옷 한 벌과 몇 권의 고서 뿐이었다. 소크라테스는 하루에 두 근의 빵과 아테네 성뒤에서 솟아나는 샘물만 있으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을 생각해 보자. 우주의 왕이신 예수께서 스스로 선택하여 가난과 굴욕의 생애를 사셨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도 진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 선택하여 가난과 굴욕의 생애를 살아가게 된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가난에 대하여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다(눅 9:58).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갈채와 칭찬을 구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부자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지 않으셨다. 스스로 가난한 자들과 함께 거하시기로 선택하심으로써 진리가 가난한 자들의 것임을 선포하셨다. 진실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이시라면, 그분의 종이 되기로 결심한 우리도 주인보다 안락한 인생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 속에 계신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내게 행한 것이니라” 마 25:40.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이 듣지 않는 복음은 진리가 아니다. 침례 요한의 제자들이 “당신이 기다리던 메시아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증명하시기 위하여 가난한 자들이 당신께서 전하는 복음을 듣는다는 사실을 지적하셨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 11:5. 2천년 전에 유대 땅에서 육신의 가난함을 돌보아 주셨고, 마음의 가난함을 채워주셨던 예수께서는 지금도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대로 도울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막 14:7).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사이에 가난한 사람들을 두심으로써, 그들에게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진실성을 시험하고 계신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이사야 58장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 벗은 자를 입히며 ...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누어 주며.” 사 58:7.

가난은 반드시 경제적으로 가난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다. 마음이 가난한 이 진짜 가난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들 중에서도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있다. 비록 비단옷을 입고 기름진 음식으로 세 끼를 떼울지라도, 그 심령이 가난하고 곤고하면, 예수께서는 어김없이 그를 찾아 오신다. 예수께서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항상 직접 돌보아 주신다.

사도 바울은 의를 위하여 가난하게 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10. 바로 이것이 의를 위하여 가난해진 자들의 모습이다. 의를 위하여 가난해진 사람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살아간다.

그리스도인은 가난에 대하여 잘 이해해야만 한다. 굶주린 엘리야를 먹였던 까마귀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오천명을 먹이셨던 예수님의 기적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셨던 기적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기적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쫓는 자들은 크게 실망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할 때, 가난이 자신의 생애를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가난을 기대하고, 진리를 선택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책임지실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수천년 전에 유대 광야에서 날마다 펼쳐졌던 하늘 만나의 식탁이 오늘도 그대 가정에 기적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 6:34. 그대 그리스도인이여, 가난을 피하는 대신에 진리와 정직을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가난을 맞이하라. 왜냐하면 가난과 궁핍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백성들의 성품과 생애를 다듬질하시는 하나님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막힌 혈관을 뚫는 방법


심장전문의가 어두운 얼굴을 하고 검사실에서 나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생님의 앤지오그램을 검토해 본 결과, 아무래도 bypass 수술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환자는 두려운 얼굴로 “의사 선생님, 그게 정말 입니까? 지난 번의 수술도 너무나 고통스러웠는데, 또 한 번 받아야만 합니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의사는 동정적인 어조로 그러나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선생님이 수술을 두려워 하는 것은 알지만, 다른 방법은 없을 것같습니다.”

심장 수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근래에 들어서 위와 같은 대화가 점점 더 빈번해 지고 있다. 막힌 혈관을 인공 튜브로 대체하거나(bypass), 혈관을 막고 있는 지방 축적물을 강제로 혈관 벽면으로 밀어 붙혀서 납작하게 만들어서 더 많은 혈액이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같은 수술(angioplasty)이 미국에서만 매년 거의 백만 건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외에도 자주 혈관이 막히는 경우에는 angioplasty가 시술된 위치에 스텐레스 망으로 만들어진 튜브인 stent가 혈관 내에 삽입된다.

오늘날 이러한 종류의 심장 혈관 수술이 너무나 빈번하게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방의 축적물로 인하여 막혀 있는 혈관을 뚫거나 인공 튜브로 대체하는 수술을 매우 안전하고 효과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심장 전문의들은 이러한 수술이 임시적이며,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에 대한 치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근본 원인에 대한 치료 없이 막혀 있는 혈관을 수술로 뚫어서 환자가 안심하고 있는 사이에, 병의 원인은 깊어지고 온 몸으로 퍼져나가 결국에는 동맥경화(atherosclerosis)가 발병하게 되어서, 주요 혈관들이 서서히 막히게 되는 문제까지 도달하게 된다. bypass나 angioplasty와 같은 수술이 하이텍이긴 하지만, 병의 원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막혀 있는 곳을 임시 변통으로 뚫어줌으로써 시간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환자는 인지해야 한다. 수술이 아무리 성공적으로 되었다고 할지라도, 혈관이 서서히 막혀가는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수술로 뚫어 놓은 혈관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시 막히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러한 수술에 심각한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미국에서는 bypass 수술을 받은 환자들 중 2퍼센트가 뇌졸증을 일으켰으며, 57퍼센트는 신경계통의 복합적인 합병증으로 고통당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 부작용이 매우 미묘해서 “아버지가 이제는 늙으셨구나”라는 말을 듣게 되는 정도로 나타나기도 있다.

angioplasty 수술의 경우, 미국의 경우를 예로 볼 때, 하나의 혈관에 시술했을 경우에는 수술 후 6개월 안에 문제가 발생하는 확률이 35~45%이며, 둘 이상의 혈관에 시술했을 경우에는 동 기간 동안의 문제 발생률이 50~60%이다.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에는 다시 수술을 해야만 한다.

심장 혈관 수술의 3가지 문제점
1. 수술은 임시 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잠재되어 있는 원인은 해결되지 않는다.
2.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3. 비용이 매우 많이 든다.

원인을 치료해 주는 예방 의학

다행스럽게도 각종 수술이나 약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 의술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들과, 심지어는 의사들까지도 혈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예방 의학 전문가들은 환자의 라이프 스타일(생활 방식)을 바꾸어 줌으로써 혈관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예방 의학적 방법 즉, 스트레스 조절과 금연, 그리고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병을 치료할 경우에는 전혀 부작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환자가 자신의 욕구를 절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식욕과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는 환자들은 언젠가는 bypass나 angioplasty와 같은 수술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병원에서의 식이 요법, NCEP

어떤 병원에서는 심장 및 혈관성 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 영양에 대한 교육을 시켜준다. 이들 병원에서 강조하고 있는 두가지 점은 다음과 같다. 1) 불포화 지방의 섭취량을 낮춘다. 2) 콜레스테롤이 적게 포함된 음식을 섭취한다. 비만증이 있는 환자들에게는 좀더 복잡한 식이 프로그램이 제공되기도 한다. 이러한 식이 요법이 어느 정도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원하는 만큼의 확실한 결과를 가져다 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식이 요법은 NCEP(미국립 콜레스테롤 교육 프로그램)이나 이와 유사한 식이요법인데, 이 요법은 1단계에서 콜레스테롤 섭취량을 300mg으로 제한하고, 2단계에서는 200mg으로 제한하며, 지방의 섭취량은 두 단계에서 모두 전체 칼로리의 30% 이하로 규제하는데, 이 때 불포화 지방의 섭취량은 1단계에서는 8~9%, 2단계에서는 7% 이하이다.

이것을 보통 식사와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콜레스테롤에 대한 교육이 잘 이루어진 덕분에 미국 남자의 경우 하루에 평균 270~400mg의 콜레스테롤을 섭취하며, 여자의 경우에는 200~260mg을 섭취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NCEP에서 제한하고 있는 200~300mg 이하의 식사를 섭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해 수많은 사람들이 심장 질환으로 수술대 위에 오르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식이요법보다 우수한 방법이 도입되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콜레스테롤 뿐만 아니라 지방의 섭취량도 낮게 조절되어야만 한다.

실패로 끝나고 있는 NCEP 식이 요법의 결과

NCEP 식이요법보다 엄격한 식이 요법 즉, 콜레스테롤을 250mg 이하로, 그리고 전체 칼로리에 대비한 지방의 양을 26%로 규제하는 식이요법과 약물 치료로 4년 동안 치료받은 다음, 환자들의 혈관을 앤지오그램(혈관의 막힘을 측정하는 특별한 x레이)으로 재확인한 결과, 매우 실망스러운 검사치를 얻었다. 대부분의 경우에 4년 전보다 혈관이 더 막혀 있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단지, 혈중 콜레스테롤이 6% 감소되었지만, 이것은 전혀 만족할만한 결과라고 볼 수 없다. 이외에도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여러가지 실험이 이루어졌지만, 결과는 대동소이했다.

상상해보라. 만일 그대가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데, 의사가 지시한대로 수년 동안 식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혈관이 더 많이 막히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내려가지 않는다면, 그대의 낙담과 실망이 얼마나 크겠는가? 더구나 bypass 수술을 한다고 할지라도, 수년 뒤에는 다시 막혀서 재수술을 해야된다고 생각해보라. 우리는 지금보다 좀더 우수한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채식 요법의 효과에 대한 입증

딘 오니쉬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라이프 스타일과 심장질환”이라는 제목으로 실험을 하였다. 그들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식이요법을 환자들에게 제시했다. 1일 콜레스테롤 섭취량은 200mg에서 5mg으로, 지방의 양은 25%에서 10%로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면서도, 전체 칼로리의 양은 동일한 식단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식생활은 채식으로 이루어진 식생활을 의미한다. 환자들이 먹던 심장 질환의 약을 끊은 상태에서 동물성 식품을 완전히 근절시키고, 과일, 채소, 곡류, 그리고 적은 양의 너트와 씨앗류로만 이루어진 식사를 환자들에게 제공한 결과, 믿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다. 1년 후에 total 콜레스테롤이 24% 감소되었으며, LDL 콜레스테롤은 37% 감소되었다. 동맥경화증이 있는 환자들 중 82%에게 상당한 회복이 이루어졌으며, 14%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것은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룩한 가장 놀라운 결과이다. 불과 12달 사이에 50% 이상 막혀 있던 혈관 내부가 5.3% 더 넓어졌는데, 이것은 혈액의 흐름이 23% 향상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실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의사들은 짧은 기간 동안 라이프 스타일을 바꿈으로써 괄목할만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성공적인 채식 요법
1. 모든 종류의 동물성 식품을 중단
2. 75%의 복합 탄수화물
3. 15% 이하의 단백질
4. 5mg 이하의 콜레스테롤
5.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음
6. 전체 섭취 칼로리의 양은 제한하지 않음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은, 환자들에게 약을 복용시키면서 동일한 식단을 제공했을 경우에는, 혈관의 병세가 회복되는 기간이 더 많이 지연된다는 점이다. 딘 오니쉬 박사가 실험한 방법을 통해서, 채식으로 짧은 기간 동안에 혈관의 건강이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완전 채식 요법을 이용한 치료 방법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자.

식이요법 이외의 치료 방법
식이 요법을 포함하여 꼭 이루어져야 할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저지방, 채식 식사
2. 스트레스 해소
3. 술, 담배, 카페인을 금할 것
4. 적당한 운동
5. 건전하고 보람있는 사회 활동(교제)

이러한 방법으로 5년 이상 생활 양식을 바꾼 사람들의 혈액의 흐름을 검사하였더니, 일반 병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NCEP 식이 요법으로 5년 이상 동안 환자들보다 훨씬 양호한 결과가 나왔다. 혈관성 심장 질환은 가장 흔한 질병 가운데 하나 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환자들과 의사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병의 증세를 해결하는 데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먹는 것을 포함한 생활 양식 전체를 바꾸는 천연 치료 방법은 병의 뿌리를 치료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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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대용 식품이 무엇인가요?


질문: 의사 선생님이 저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채식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해주셨는데, 저는 평생 동안 고기를 먹어온 사람이기 때문에, 육식을 중단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저에게 육식에서 채식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식품(transitional food)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며, 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까?

대답: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미 의학협회 의장인 닐 버나드 박사께서 해주시겠습니다. “근래 들어서 육식을 끊고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증가됨에 따라, 육식에서 채식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환용 식품(transitional food)의 종류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 식품점에 가면 콩으로 만든 고기(vege-meat)와 다양한 동물성 단백질 대용 식품들을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미국에는 약 700여종의 전환용 식품이 일반 마켓에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전환용 식품은 대개 최신 기술을 사용하여 콩과 각종 곡류를 특별하게 가공하여 고기의 모양과 맛을 매우 흡사하게 모방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용 식품들은 대개 콜레스테롤을 전혀 함유하고 있지 않으며, 매우 낮은 지방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콜레스테롤이나 고혈압과 같은 각종 혈관성 질병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치 의사의 권고에 따라 채식으로 전향하시고, 육류를 대체하는 전환용 식품을 사용하심으로써, 다양하고 만족스런 최고의 건강식을 즐기세요.”

생선과 심장 질환


Proof Positive 에서 발췌

리차슨 의사는 매우 당황했다. 그의 환자인 제인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다시 상승하였기 때문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녀의 콜레스테롤은 성공적으로 조절되어 왔었다.

그러나 지난 3개월 동안, 제인의 LDL 콜레스테롤 수치는 50 이상이나 치솟았다. 리차슨 의사는 환자에게 갑작스런 악화에 대하여 설명해 주려고 했지만, 별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환자의 몸무게는 오히려 지난 번에 찾아 왔을 때보다 2kg 이상 줄어 있었다. 더구나 콜레스테롤 수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체 기관 즉, 갑상선이나 간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환자는 지난 몇 년 동안 채식을 해왔는데, 친구로부터 생선이 심장 질환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몇 달 전부터 식단에 생선을 추가하여 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심장 질환에 좋다는 생선을 꽤 많이 사서 먹었다고 한다. 리차슨 의사는 생선이 그녀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상승시킨 주범 임을 발견하였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꽤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왜냐하면 생선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많은 기사들이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건강에 좋은 생선을 먹은 사람의 콜레스테롤이 왜 올라갈까? 이 상반된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각종 신문과 방송 매체들은 생선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주고, 심장 질환의 확률을 낮추어 준다는 식의 정보를 대중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생선의 소비량이 날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1985년에 생선에 대하여 연구한 세가지 보고서가 권위 있는 뉴 잉글랜드 의학 학회지에 기고되었는데, 그 중에 한 보고서는 네덜란드에서 심장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고서로서, 날마다1온스의 생선을 섭취하는 사람들에게는 심장질환 발병률이 50% 이상 감소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두번째 보고서에는 생선의 기름은 콜레스테롤과 트라이글리세라이드 수치를 낮추어 준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으며, 세번째 보고서에는 생선의 기름과 백혈구의 기능에 대한 관계를 다루고 있었다.

이러한 종류의 연구 보고서 때문에 소고기나 돼지고기(red meat)를 먹던 많은 사람들이 생선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다량으로 섭취하던 선진국 사람들이 생선으로 방향을 전환한 다음, 콜레스테롤 수치가 어느 정도 낮아지고, 심장 질환에 유익을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소고기나 돼지고기에서 생선으로 전환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유익을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학지에는 생선과 생선 기름의 사용에 대한 경고의 글이 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생선이 가지고 있는 두가지 면

생선이 가지고 있는 잇점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예를 들었던 케이스처럼 생선을 섭취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콜레스테롤의 상승은 어떻게 된 것인가? 제인의 경우를 다시 살펴 보도록 하자. "제인은 지난 몇 년 동안 채식을 해왔는데, 친구로부터 생선이 심장 질환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몇 달 전부터 식단에 생선을 추가하여 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채식을 하던 사람 즉, 콜레스테롤이 매우 잘 조절되던 사람이 생선을 섭취할 경우, 그 사람의 콜레스테롤은 평상시 보다 상승하게 된다.

최근에 나온 보고서들은 생선의 기름을 섭취했을 경우,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도 LDL 콜레스테롤은 상승된다는 사실을 발표하고 있는데, 이러한 보고서들은 생선이 식품으로써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다음과 같은 두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번째 문제점


생선은 동물성 식품이기 때문에 콜레스테롤을 포함하고 있다. 콜레스테롤 자체를 놓고서 살펴볼 때, 생선에 포함되어 있는 콜레스테롤과 다른 동물들 즉,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등에 함유되어 있는 콜레스테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다음에 소개하는 표에는 각종 식품에 함유되어 있는 콜레스테롤의 양이 나타나 있다.

식품(3온스) 콜레스테롤 함량(mg)
과일 0
곡류 0
채소 0
너트류 0
우유-non fat (1컵) 4
우유-2% low fat (1컵) 18
일반 우유 (1컵) 33
계란 흰자위 0
계란 1개 213
마요네즈 8
아이스크림 (반컵) 29
버터 (1 숟가락) 31
참치 26
대합조개 57
게 64
닭고기 가슴부위(껍질 제외) 73
닭고기 가슴부위(껍질포함) 82
돼지고기 76
소고기 허리부위 80
굴 84
정어리 120
새우 165
소 간 410
철갑상어 알 500
소 뇌 1697

생선에 콜레스테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생선을 채소와 과일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식품으로 분류시킨다. 모든 식물성 식품에는 콜레스테롤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여러가지 생선류와 소고기에 함유된 콜레스테롤의 함량을 비교한 표를 살펴보자.

소의 T bone 스테이크 (3.5 온스) : 79 mg
청어 기름 (15g) : 115 mg
연어 기름 (15g) : 73 mg
정어리 기름 (15g) : 106 mg
대구 간 기름 (간유, 15g) : 86 mg

콜레스테롤 함량을 비교해 볼 때, 생선 기름과 소의 T bone 스테이크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생선 기름을 섭취한 사람들의 콜레스테롤이 상승되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점

두번째 문제점은 불포화 지방과 관련된 문제이다. 일반 고기와 비교해 볼 때, 생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불포화 지방에 대한 복합 포화지방의 비율(P/S ratoio)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식물성 식품에 비교하면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 소고기나 닭고기를 주로 먹는 사람들은 생선으로 대치함으로써, 콜레스테롤 수치를 어느 정도 낮출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식물성 식품의 우수성에 비교할 수는 없다.
몇 해 전에 네덜란드에서 생선이 심장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그러나 생선이 심장 질환에 유익하다는 언론사들의 발표를 듣는 사람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생선을 먹는 사람과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 사이에 있어서 콜레스테롤 수치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변화를 일으킬만큼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생선의 섭취가 어떻게 심장 질환의 사망률을 낮추어 줄 수 있다는 발표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메가-3 지방에서 찾아 보아야 한다.

오메가-3 지방산과 심장 질환

연어, 정어리, 고등어와 같은 몇몇 특정한 생선에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이들 생선에 들어 있는 오메가-3 지방산은 심장에 특이한 유익을 주는 EPA라는 산을 함유하고 있는 복합포화지방산이다. EPA라는 물질은 혈액의 끈적거리는 현상과 덩어리지는 현상을 감소시켜 준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혈액이 끈적거리거나 뭉치는 현상이 감소된다는 말은 혈관이 막히거나 심장 마비의 확률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오메가-3 지방산은 혈압을 조금 낮추어 주는 역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종류의 지방을 섭취함으로써, 트라이글리세라이드가 실제적으로 낮아지는 경험을 한다. 이러 저러한 이유 때문에 오메가-3 지방산은 동맥경화에도 유익을 준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심장마비가 일어났을 경우에도, 심장마비로부터 초래되는 근육 파괴(muscular damage)를 감소시켜 준다.

이러한 증거들을 근거로 해서 본다면, 우리는 심장 질환 발병률을 낮추기 위해서 생선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이 문제와 관련된 두 연구 보고서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이루어진 실험 결과에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끊고 생선을 먹는 사람들은 소고기나 돼지고기(red meat)를 먹는 사람들에 비해서 심장 질환 발병률이 50% 정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매우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한 채식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장 질환을 조사해 본 결과, 발병률이 육식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86% 이상 낮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 두가지 실험 결과에서는 당연한 결과이다. 몸에 해로운 육식을 하던 사람들이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끊고 생선을 먹었을 경우에는 심장질환의 발병률이 낮아질 수 있으며, 콜레스테롤도 어느 정도 낮아질 수 있다. 그러나 육류를 끊고 생선을 섭취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채식을 하는 사람들에 비교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자면, 육식을 하던 사람이 일반 육류를 끊고 생선만을 유일한 육류로 섭취할 경우에는 어느 정도의 유익을 얻을 수 있지만, 채식을 하던 사람이 생선을 식단에 추가했을 경우에는 건강에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건강을 위한 최적의 식사법은 채식 임에 틀림없다.

흡연과 오메가-3 지방산

흡연가가 생선을 많이 섭취했을 경우에는 오히려 해로운 결과가 나온다. 핀랜드에서 이루어진 흥미있는 실험 결과를 살펴보도록 하자. 혈관성 심장 질환을 가지고 있으면서 담배를 피는 중년 남자 22,000명에게 다량의 오메가-3 지방산(생선)을 섭취시켜 보았더니, 심장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담배를 피지 않으면서 생선을 매우 적게 먹는 사람들보다 30% 높은 실험 결과가 나왔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생선은 담배를 피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담배를 피우지 않고 생선을 먹으면 되지 않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계속해서 찾아 보기로 하자.

생선과 오메가-3 지방산의 나쁜 점


생선 기름을 추출해서 만든 캡슐이나 정제는 제조 과정이나 보관 과정에서 산화될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유익을 얻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 심장학회의 영양학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권고문을 발표하였다. "혈관성 심장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생선 기름 캡슐은 권장할만 하지 못하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신선한 생선을 먹는다고 할지라도, 생선 기름은 당뇨 환자들에게 있어서 혈당을 상승시킬 수 있다. 또한 다량의 생선 기름을 섭취할 경우, 혈액의 응혈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게 된다. 생선을 많이 섭취하는 에스키모인들은 심장질환의 발병률은 낮지만, 출혈성 스트로크(bleeding stroke)는 일반 미국인들보다 많다.

생선을 건강 식품으로 고집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해양이 오염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만 매해 113,000건의 해산물 오염으로 인한 식중독이 발병되고 있다. 이외에도 헤아릴 수 없는 오염 문제가 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보다 15배나 많은 오염 문제가 생선에게 발생되고 있다. 특히, 바다 밑바닥에 사는 어패류에서 놀라운 오염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2천만 미국인들이 어패류를 먹고 있지만, 그 중의 90%는 오염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패류는 바다의 쓰레기 청소부들이다. 어패류는 한 시간에 2~3 갤론의 바닷물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바다물 속에 돌아다니는 것은 무엇이든지 흡수하는 것이 어패류의 특성이다. 그러한 어패류를 통채로 먹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되는가?

더구나 대부분의 어패류는 해안가에서 채집되는데, 해안가에는 도시의 쓰레기와 오물이 집결되는 곳이다. 미국에서만 매해 15명 정도가 어패류의 악성 바이러스에 의해서 사망한다. 잘 요리된 어패류일지라도 종종 심각한 질병을 야기시킨다. 어패류 뿐만 아니라, 바다 밑바닥에 사는 생선류도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 생선의 몸 속에 흡수된 독성 물질들은 생선의 지방층에 축적된다. 오염된 해양이 오염된 생선을 키우고 있다.

오메가-3 지방산을 얻기 위해서는 꼭 생선을 먹어야 하는가?

심장 질환에 유익을 주는 오메가-3 지방산을 얻기 위해서 오염되었을 뿐만 아니라, 콜레스테롤의 상승 문제를 지니고 있는 생선류를 꼭 먹어야 하는가? 생선이나 생선 기름을 섭취하지 않고서도, 오메가-3 지방산의 유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생선이 함유하고 있는 동물성 오메가-3 지방산을 섭취할 때에 함께 따라오는 콜레스테롤과 오염된 독성 물질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매우 간단하고 효과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서 환영받고 있지 못한 길이 있다. 우리는 리노레닉 산(linolenic acid)으로 불리우는 식물성 오메가-3 지방산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수많은 종류의 식물에 식물성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다음의 표에는 식물에 포함된 오메가-3 지방산의 함량이 나타나 있다.

종류- 단위- 오메가-3 지방산(mg)
플랙씨드/린씨드 오일 큰수저 1 7526
호도 컵 1/4 1703
카놀라 기름 큰수저 1 1094
밀눈 기름 큰수저 1 938
콩기름 큰수저 1 927
그린 콩 컵 1 637
시금치캔 컵 1 353
알몬드 컵 1/4 136
아보카도 컵 1/2 99
바나나 1개 38
사과 1개 25
구운 감자 1개 17
오이 썰은 조각 10조각 12

결론

자,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매우 단순하고, 평범한 식물성 식품들에서 우리는 충분한 오메가-3 지방산을 얻을 수 있다. 오메가-3 지방산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에는 단순한 지혜가 요구된다. 돼지고기와 비슷한 정도의 콜레스테롤을 포함하고 있으며, 오염된 독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으며, 발암물질에 대한 위험을 감수한 채 생선을 통하여 오메가-3 지방산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신선하고, 아무런 부작용도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질병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채소와 과일에서 오메가-3 지방산을 얻을 것인가? 선택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지성에 맡긴다.

힌트: 혹시, 어떤 필요에 의해서 농축되었으면서도 안전한 오메가-3 지방산을 원하십니까? 플랙씨드(아마씨)와 호도를 50 대 50으로 섞어서 갈면, 맛있고 땅콩 버터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플랙스-너트 버터"을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두뇌와 은행잎


사회가 복잡해지고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사회가 될 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적인 에너지를 극대화하고자 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약들이 “머리가 좋아진다”는 약속을 저마다 하고 있다.

그러나 화학 약품에 식상한 많은 현대인들은 천연적인 방법을 추구한다. 자연은 인간의 두뇌 문제를 위한 가장 적합한 솔루션을 가지고 있다. 정신을 맑게, 그리고 두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한 솔루션이 담겨져 있는 약초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자.

두뇌는 잠시도 휴식이나 수면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인체 에너지의 약 20%를 소모한다. 두뇌에는 계속적인 혈액의 공급과 함께 산소의 공급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흡입하는 전체 산소의 25%가 두뇌의 활동을 위하여 사용되어 지기 때문에, 충분한 산소의 공급은 두뇌의 활발한 기능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두뇌와 관련 있는 약초 중에서 은행잎은 특별히 기억력을 증진시켜주고, 기능을 활발하게 유지시켜주는 데 있어서 매우 효과적이다.

은행잎

은행잎은 가장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왔던 식물 중의 하나이다. 고대 중국의 서적을 살펴보면, 중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은행잎이 두뇌의 기능을 활발하게 해 준다는 사실을 믿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은행잎의 치료 효과는 어떤 한 가지 성분에 국한되지 않고, 은행잎 전체에 치료에 유익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실험 결과에 의하면, 은행잎에서는 GBE나 GBX라는 농축된 추출물을 얻을 수 있다. 현재 가장 많은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천연 약초 중의 하나인 은행잎은 구미 지역에서는 의사의 처방을 받는 약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 유럽에서 나온 보고서에 의하면, 은행잎에서 얻을 수 있는 추출물은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켜주며, 머리 속에 있는 정보들을 보다 짧은 시간에 기억나게 해주고, 머리를 맑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잎은 산소의 흡수와 대사 작용을 도와주기 때문에, 인체에 여러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준다.

은행잎은 두뇌에 산소 결핍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도와준다. 두뇌로 흘러 들어가는 혈액의 흐름을 자극해 줌으로써, 혈관 내에 쓰레기가 쌓이는 것을 감소시켜주며, 미세한 혈관까지 혈액이 흘러들어 갈 수 있도록 도와 준다. 혈액의 순환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은행잎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은행잎은 대사작용과 신경계와 두뇌의 전기 작용을 도와 줄 수 있다. 또한 노화의 진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현재, 유럽에서는 은행잎 추출물을 약국에서 직접 사거나 의사의 처방을 받은 사람들이 구입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건강 식품으로 분류되고 있다. 은행잎 추출물은 정제, 캡슐, 농축된 액체나 액기스 형태로 나오고 시판되고 있다. 은행잎 추출물에는 거의 부작용이 없지만, 복용 후에 배가 아프거나 두통이 오는 경우에는 복용을 중단해야만 한다.

생명 공학과 식품 재앙


Veggie LIfe 에서 발췌

얼마 전부터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에 대한 이야기가 연일 신문과 뉴스를 채우고 있다. 사람의 간 유전자를 쥐의 유전자에 이식하여 쥐의 몸에서 사람의 간을 키운 다음, 성장한 새 간을 다시 사람의 몸에 이식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공상 과학 소설에서만 읽을 수 있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첨단 생명 공학을 이용해서 전혀 별개의 생명체의 유전인자들을 필요에 따라서 자유롭게 교체하거나 옮겨 심는 일을 통하여 전혀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일에 성공하였으며, 이미 일반화 되어가고 있다. 과거의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실험실에서 조용히 이루어져서 일반 식품점이나 가게로 팔려나가고 있다. 전통적인 생물학에서 서로 교배가 불가능한 것으로 규정한 생물체 간의 벽을 뛰어 넘어서 이제는 거의 모든 종류의 생명체에서 유전자 교환과 이식이 실현되고 있다.

Mother for Natural Law(MNL)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실시한 조사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아이오와 주에서 거래되는 60~70% 식품들은 유전공학적으로 조작된 것들이라고 한다. 이러한 식품들 중에서는 콩, 옥수수, 카놀라, 파파야, 감자, 토마토, 호박, 솜, 그리고 우유제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조사에 참여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향후 5~10년 안에 우리가 먹는 모든 곡식과 과일과 야채 중에서 95%가 유전공학적으로 조작될 전망이다. 이미 이 일이 실제적으로 진행 중에 있다.”

유전자 조작이란, 서리에 약한 감자의 유전자에 서리에 강한 성향을 가진 물고기의 유전인자를 접목시켜서 새로운 종류의 강력한 감자를 생산하는 것과 같은 방법을 의미한다. 앞으로 우리의 식탁에 오를 감자와 소고기는 그 모양과 맛에 있어서는 감자와 소고기와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 내용과 유전인자는 종래의 감자와 소고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식량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유전인자 조작을 통한 식량의 증산 계획은 매우 거세게 추진 될 전망이다.

이러한 유전공학에 의한 식량 증산 계획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영양가가 저하되는 문제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생물 고유의 유전인자가 마구 훼손되고 변형되는 두려운 결과를 가져온다. 생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유전인자가 파괴됨으로써, 인류는 식품의 안전에 관하여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사실은 유전공학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식품들이 실험실에서는 안전도가 증명되었을지 모르지만, 오랜 시간을 거치는 동안에 인간의 몸과 생물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결과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완전하게 증명되지 못한 유전공학적 식품들이 가게와 식품점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1995년까지만 해도, 유전인자가 조작된 곡물들이 시장에 나오지 않았었다. 그러나 1998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7천 3백만 에이커에서 유전인자가 조작된 곡물이 길러졌는데, 그 중에 5천만 에이커는 미국의 농지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유전인자 조작 본산지 임에 틀림없다.

식품의 안전도에 대한 문제

식품이 공학적으로 특성이 변경되면, 식품점에서 그것을 구입하는 소비자는 더 이상 그것의 겉 모양, 즉 색깔이나 단단한 정도를 보고 식품의 신선도를 판단할 수 없으며, 기존에 식품이 가지고 있던 영양적 가치와 과일이나 야채의 고유한 냄새에 의존하여 좋고 나쁜 정도를 분별할 수 없게 된다. 유전공학적으로 변경된 식품이 가지고 있는 영양적 가치에 대한 실험과 지식이 너무나 부족한 상태에서 가게로 쏟아져 나오는 유전공학의 생산품들을 보면,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1998년 초, 스코틀랜드 로왯 연구소의 알패드 퍼즈타이 박사는 유전자 조작으로 생산된 감자를 먹은 쥐에게서 나타난 매우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보고를 발표하였다. 쥐의 면역체계(저항력)와 중요한 생명 장기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유전인자 조작에 대한 부정적 발표 이후에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연구 보고서를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의 결과가 인류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문제는 일반 대중들에게 충분하게 공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New English Journal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유전자 조작에 의하여 생산된 식품 중 90%는 충분한 안전도 검사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마켓의 진열대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가장 먼저 시정되어야 할 것은, 유전자가 조작된 식품에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표시가 붙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심지어는 FDA 조차도 유전자가 조작된 식품의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식품을 가공하는 과정에도 유전자가 조작된 첨가제들이 사용된다. 예를 들자면 설탕, 치즈, 비타민 등을 제조하는 과정에도 유전자가 조작된 첨가제들이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이들 성분이 상품 표시난에 정확하게 기입되어 있지 않다.

1999년 5월, 생태계에 대한 유전자 조작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FDA를 법적으로 고소했는데, 그 이유는 FDA가 확실하게 검증이 안된 식품들을 올바른 식품 상표(label)도 붙이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에 나오도록 허용했다는 것이었다. 미국 식품법은,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예상되는 새로운 식품이 나왔을 때에는 과학적 검증을 통하여 그것의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식품으로서의 허가를 주지 말아야 된다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FDA는 1992년에 유전자가 조작된 식품을 새로운 식품의 범주 안에 넣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유전자 조작 식품들이 시장으로 직접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 식품에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은 식품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매우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알러지성 식품으로 분류되는 브라질 너트와 유전자 교배를 한 콩을 섭취한 사람들에게 알러지 반응이 나타났다는 기사가 New English Journal에 발표되었다. 브라질 너트가 가지고 있는 알러지 원인이 유전자 교배를 통하여 콩의 유전자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또한 동일한 기사에서 유전자가 조작된 콩은 정상적인 식품보다 콜레스테롤을 낮추어주며, 항암작용을 하는 피토에스트로겐 성분이 14% 가량 낮다고 발표하였다.

생태계에 미치는 예측불허의 영향

생명공학이 비지니스에 이용된 가장 간단한 예는, 소위 ?erminator seed澾箚?불리우는 씨앗인데, 이 씨앗은 열매를 맺는 추수 때가 되면, 씨앗이 자동적으로 스스로를 파괴시키기 때문에, 농부들은 씨앗을 받지 못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농부들은 다음 해에 사용할 씨앗을 주문하기 위하여 종자 회사에 전화하게 된다.
이것보다 좀 더 심각한 예가 1994년, The Oregonian 지에 발표되었다. 그 기사를 쓴 저자는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전혀 새로운 생물들이 야생 생물계의 생태학적 고리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 실례로서, 에타놀 생산의 부산물을 처리하기 위하여 유전자가 조작된 어떤 박테리아는 본래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땅을 황폐화시키고, 식물들을 죽이며, 동물계에 해를 끼치고 있는 점을 들었다. 유전자가 조작된 꽃가루는 예상보다 훨씬 먼거리를 날아갈 수 있으며, 정상적인 꽃가루들과 섞여서 또 하나의 새로운 종자를 만들어 낼 수도 있으며, 결과적으로 예기치 못한 환경 재앙으로 번져 나갈 수 있다.
1999년 5월에 Nature 지에 발표된 연구 보고서는 유전자 조작으로 개발한 Bt 옥수수의 꽃가루는 모날크 나비에게 독성을 나타낸다고 발표하였다. 다른 정상 옥수수의 꽃가루를 먹은 나비들은 모두 생존한 데 반하여, Bt 옥수수를 먹은 반 이상의 나비가 4일만에 죽었다. 이러한 결과들은 유전자가 조작된 다른 종류의 생물에 대하여 깊은 염려를 하게 만든다.

가장 두려운 사실은, 모든 생태계는 서로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는데, 유전공학에 의하여 탄생한 수 많은 종류의 새로운 생물에 의하여 생태계의 고리에 심각한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변질된 유전자에 의하여 생태계에 변화가 일어날 때, 환경학적으로 언제, 어떤 문제가 나타나게 될지에 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항의 움직임들

유전자 조작에 의하여 발생될 수 있는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문제들 때문에 저항하고 일어서는 단체들이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웹사이트는 그들 단체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로서, 관심 있는 분들은 보다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기 바란다.
Mother For Natural Law: www.safe-food.org
Global Response Network: www.globalresponse.org
Pure Food Campaign : www.purefood.org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가장 획기적인 뉴스로 등장한 가장 중요한 사건을 하나 말하라면, 생명공학의 발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유전인자, 즉 DNA 에 대한 연구는 정말 놀라운 속도로 진전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인간 신체의 게놈의 형성지도가 완성되면서 이제는 각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려고 야단이며, 벌써부터 성급한 의학자들은, 이제 더 이상 불치의 병은 있을 수 없으며, 1000년 이상 살게 되는 일은 아주 손쉬운 일이 되었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생명 공학은 이제 더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 이미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인간의 복제와 우성인자( Super DNA)의 활성화로 인하여 지구의 미래가 아주 밝아졌다는 소리들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렇게 될까요?

창조를 믿고, 곧 오시는 예수의 재강림을 기다리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생명공학의 발전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인간이 결코 침범해서는 않되는 하나님의 영역은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과학자들은, 마치 인간의 과학의 힘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죄의 결과를 모면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옛날 바벨탑의 준공을 막으시고, 심판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동일한 역사를 다시 한번 행사하실까요?

유전 공학이 내포하고 있는 진정한 위험을 여러분들은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번 호는 이 문제에 대하여 여러분들의 눈을 확실하게 밝혀드릴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현대판 바벨탑


과학의 발달과 세계적 연합

우리는 정말 놀라운 발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백여년 전에만 해도 인간들은 여전히 말과 마차를 타고 달리던 시대를 살았었는데, 지금은 달나라를 지나 화성을 점령하기 위해서 로켓트를 발사하고 있는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또한 엄청난 크기의 정보 망원경들을 장착시킨 인공위성들이 우주의 신비를 파악하기 위해서 지구 주변을 돌면서 사진을 찍고 있고, 이 지구는 물론이고 우주의 생성원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놀라운 작업들이 진행 중에 있다. 또한 동시에 대우주는 물론이고, 소우주를 향한, 다시 말해서 적은 우주의 신비를 파악하기 위한 놀라운 연구들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인간의 몸 속에 있는 DNA에 대한 연구이다.

또한 괄목할만한 사실은 현재 이 지구가 하나로 뭉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어는 물론이고 사회복지와 경제, 무역,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의 문화까지도 교류와 정보 교환을 통하여 하나로 뭉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각 나라들로 흩어져 있던 세계가 단 하나의 정부와 같은 하나의 세계로 합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가지 사실, 다시 말해서 1) 놀라운 과학의 발달과, 2) 지구가 하나로 합쳐지고 있는 두 가지 사실은 우리에게 놀라운 예언적 안목을 열어 준다.

세상이 나뉘어 짐

창세기 10장을 보면,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이 자녀들을 낳으면서 각 나라와 종족들로 분열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창세기 10장 5절에는 “이들로부터 여러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방언과 족속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6절에는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란과 붓과 가나안이요” 라고 기록되어 있고, 8절에는 “구스가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의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더라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에 바벨과 에렛과 악각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릴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에 네센을 건축하였으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함의 아들인 구스가 니므롯을 낳았고, 니므롯은 큰 영걸로서 바벨이라는 나라를 크게 건축하면서 세상을 정복해 나가고 있었던 모습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다.

또한 창세기 10장 19절과 20절에 말씀하시기를, “가나안의 지경은 시돈에서부터 그라를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소임을 지나 라사까지 였더라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 였더라.” 그 다음에 21절을 보면,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음이니”라고 기록되어 있고, 25절에는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으며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녹단이며”라고 해서 이제 셈은 셈대로 자식들을 낳아서 나라들로 분열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10장 31절에는 “ 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두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들이었더라 그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들이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라는 기록을 볼 때,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세상의 각 나라와 족속들이 나뉘어가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 창세기 10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바벨탑이 발명된 이유와 배경

이렇게 노아의 자손들이,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들로 갈라지고 있는 형편을 기록하다가, 창세기 11장 1절에 와서는 이상한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다. “온 땅에 구음이 하나요” 다시 말해서 입의 말이 하나 즉, “언어가 하나였더라” 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각 족속과 언어와 나라 별로 분리되고 있던 그 때에 니므롯이 나라와 족속과 방언들을 하나로 합쳐서 한 나라로 합쳐가고 있는 단일 정부의 모습을 처음으로 성경에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바벨탑의 등장을 보게 되는데, 창세기 11장 2절부터 9절에 기록된 모습을 읽어보도록 하자. “이에 그들은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인생들이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시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인간들이 하나님을 반역하면서 바벨탑을 쌓은 과정에서 우리가 유의해서 보아야 할 몇가지 점이 있다. 첫째는 그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서 한 나라로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그들이 어떤 것을 발명하여 서로 연합해서 일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은 지구의 안녕을 위해서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권위와 영역을 침범하는 일을 행한 것이라 하겠다. 성경에서 바벨탑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의 반역를 나타내는 표상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과 범죄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노아 시대에 홍수를 내리셨는데, 노아 후대의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다시 물로 세상을 심판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들이 그 심판에 의해서 다시는 멸망당하지 않기 위하여 인간적 노력과 반역의 정신으로 높은 탑을 발명해 내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11장 2절에 보면, 그들이 바벨탑을 쌓으면서 벽돌과 벽돌 사이에 진흙 대신에 역청을 발랐다고 했는데, 역청은 방주를 지었을 때에 나무 사이로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발랐던 물질이었다. 노아 홍수 때에 하나님의 지혜로 사용되었던 역청이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한 재료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방수 효과를 위해서 바벨탑의 벽돌 사이마다 역청을 발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벨탑의 발명과 개발은 하나님의 심판에 도전하는 인간의 반역적 행위였다.

반복되고 있는 세계의 뭉침과 바벨탑의 정신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마태복음 24장 37절 “노아 때와 같이 인자의 때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마지막 시대에도 노아 시대에 있었던 반역적이고 타락한 현상이 반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노아 홍수 직후에 있었던 두가지 특이한 현상은, 1) 지구상의 나라와 민족들이 하나로 연합하였으며, 2) 세상의 연합된 힘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권위와 심판을 대항하기 위한 바벨탑을 발명하여 쌓았던 사실이다.

현대에도 영적인 의미에서 그와 꼭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역력하게 보고 있지 않은가! 현재 온 세상이 하나로 합쳐지고 있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각 나라의 경계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제와 무역으로 온 세상은 한 나라로 합쳐져 있다. 이제는 빨리 교통하는 문명의 발달과 통신의 발달, 그리고 문화의 교류로 인하여 인간 세상은 하나의 나라로 합쳐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하나로 합쳐진 인간의 힘과 지혜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권위와 심판을 대항하여 현대인들의 반역을 나타내는 현대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이다.

바벨이라는 뜻은 성경에 기록된대로 “혼잡” 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지만, 원래 바벨탑의 바벨이라는 원어의 뜻은 히브리 방언으로 “Gate of God?하나님의 문)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다시 말해서 바벨은 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벨의 영적 의미는, 인간에게 속해 있지 않는, 즉 하나님께만 속해 있는 영역 속으로 인간이 함부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들도 하나님께만 속해 있는 영역 속으로 침범하는 대담한 현대 바벨탑을 쌓고 있는데, 그것은 요즘 한창 연구 중에 있는 생명 유전 공학이다. 유전 공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인간들이 천년동안 사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 참 이상한 것은 노아 홍수 시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약 천년이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이것은 예사스럽게 흘려보낼 수 있는 말이 아닌 것이다. 인간의 생명과 인간의 유전인자 조작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만 속해 있는 영역이다. 이것은 전혀 죄인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금세기에 와서 마치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유전인자의 연구가 폭발적으로 진행되면서 놀라운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대 바벨탑의 현주소

한국의 생명 공학 연구소 이철상 박사는 유전자 조작을 목공작업에 비유하였다. 그는 1999년도 1월, 주간 조선에 발표한 기사에서 말하기를 “마치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다시 못으로 박아서 이어붙이듯이 DNA 조각들을 효소로 잘라내고 다시 효소를 이용해서 망치로 못을 치듯이 뚝딱 뚝딱하면 새로운 유전 형질을 가진 생명체가 탄생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유전자 조작을 목공소에서 책상이나 의자들을 만드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

아들과 딸의 모습과 두뇌를 주문 생산해냄 : 이제는 딸, 아들을 가리는 것은 보통이고, 엄마와 아버지가 출생할 아이의 모습을 마치 식당에 가서 주문하듯이 선택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는 기사들이 보도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곱슬머리에 눈이 크고 피부가 흰 아이를 원한다든지, 아니면 키가 크고 코가 높고 입이 큰 아이를 원한다고 말하면, DNA 조작을 통하여 그러한 아이를 생산해 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난 해 12월,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어떤 불임치료 연구소에서 개발한 방법에 의하면, 딸 아들을 선택해 나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정밀한 레이저 측정기로 아들에 비해서 DNA양이 많은 딸을 낳는 정액을 분리해 내는 기법을 사용해서 아들과 딸을 선택해서 낳는다고 보고 하였고, 또한 같은 연구소에서 말하기를 천재의 머리카락 하나만 있으면, 그 DNA 속에 있는 지능 결정권을 복제해서 얼마든지 천재 아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얼마나 놀라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인가?

돼지 속에서 인간의 장기를 생산해냄 : 지금 현재 사람들은 인간의 심장을 가진 돼지가 뛰어다니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장기를 돼지 속에서 키우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인간의 위를 키우는 DNA를 돼지 속에 주입시키면, 돼지에서 인간의 위장이 자라나는 것이다. 또한 간과 콩팥, 창자 등과 같은 장기들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장기를 키우기에 가장 적합한 동물인 돼지 속에서 어떤 사람의 장기를 키우다가, 그 사람의 몸에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의 장기를 떼어내고 돼지에서 키워온 그 사람의 장기를 잘라내어 이식시킴으로서, 이식 수술로 인한 모든 부작용을 배제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얼마든지 장기를 바꿔 가면서 장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현실화 되었다. 왜 하필이면 돼지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생명과학 연구소 이경관 박사는 말하기를 돼지의 장기 크기가 인체의 장기 크기와 비슷하고, 가격도 싸서 가장 바람직한 장기 생산 동물로 꼽히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21세기의 암, 에이즈같은 불치의 병들이 완치되고, 더 나가서 진시왕 시대 이후로 인류가 꿈꾸워 왔던 불로장생을 위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유전자 수리 및 변경 : 고장나거나 결함이 있는 DNA 즉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교체해주는 기술도 현재 개발 완료 단계에 있고, 또한 미세한 DNA를 인간의 손 대신에 미세한 바이러스(미트로 바이러스)를 비정상적인 DNA의 내부로 침투시켜서 고장난 부위를 고치도록 유도하는 놀라운 기술이 개발 단계에 있다는 이야기들을 신문 지상에서 접하게 된다. 또한 인공 지능을 갖춘 DNA를 투입시켜 암세포와 접촉시키면, 암세포에게 자살하라고 명령하는 정보를 주입시킴으로써, 암세포를 말살시키는 공상 과학과 같은 첨단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가?

영생에 대한 도전 : 인류의 소원인 영생에 대한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죽지 않는 세포에 대한 연구가 지난 해에만 2 차례 걸쳐 성공하면서 무병 장수 시대를 활발하게 열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DNA 내부에 “텔로미어” 라는 생체 시계가 발견되어, 텔로미어가 점점 짧아지면서 세포가 점점 노화된다는 사실을 미국 텍사스주의 사우스 웨스턴 메디칼 센터의 제리 쇼어 박사는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텔로미어 생체시계를 정상 세포보다 3배 이상 더 오래 살도록 연장시키고 난 결과, 사람의 수명이 3배 이상 연장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연구의 결과로 인하여, 인간의 수명은 지금보다 최소한 3배 이상 연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최근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의 물리학 박사 스티븐 호킹은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전체주의가 지배하지 않는 한, 이천년대 초반에는 틀림없이 생명공학에 의해서 지금보다 더 기능적으로 뛰어난 새로운 인류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셔야만 할 이유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가 대를 이어서 존속하는 비밀이 게놈이라는 유전체 속에 들어 있는데, 이 게놈은 생물이 일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생명 현상의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 즉, gene을 포함하고 있다. 이 유전자의 핵심 구성 성분은 디옥시 리보 핵산이라고 불리우는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요즘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고 있는 DNA이다. 이 DNA 유전인자 연구야말로 금세기에 가장 뛰어난 발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처음에는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이 2010년 정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었는데, 다시 그것을 2006년까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앞당겨서 발표하였다. 그러나 2000년도 4월 셀텍 연구소에서 게놈 프로젝트를 완성했다고 발표함으로써, 이제 인간의 복제 및 영원한 생명에 대한 실현이 가능해진 시대가 도래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인간이 DNA 연구를 통해서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고, 인간의 복제는 물론이고, 수퍼 인간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져 있고, 적어도 천년 동안 살 수 있는 시대를 도래시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과학자들의 장담을 듣는 시대를 살게 된 것이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영역 속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 때문에 허락하신 심판 즉, 죄의 결과로 주어진 수명의 단축과 질병과 고통을 제거하고 영생을 향하여 도전하는 현대 바벨탑! 인류의 운명을 바꾸는 대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인간들이 스스로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으며,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어 영원히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인간이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영역이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의인들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다. 이것은 하나님께만 속한 영역이며,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연구는 실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창조의 영역과 하나님의 심판에 도전하는 인간들의 현대 바벨탑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21세기에는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어서, 의학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이제 감염으로 인해서 질병을 얻게 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인간이 앞으로 걸릴 병을 미리 알고 막을 수 있게 된다. 그러지만 인종 차별 못지 않는 유전자 차별 등과 같은 부작용도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연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취직을 하기 어렵게 되고, 수퍼 인간들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만이 좋은 직장과 사회적 위치를 점령하게 되는 이상한 사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러한 세상이 되도록 허용하실 것인가? 이것만 보아도 정말 말세가 다 되었고, 예수께서 곧 오실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된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주께서 속히 다시 오셔서 인간 세상의 질서를 다시 바로 잡으셔야 하는 때가 확실히 이르러 온 것 같다.

동물들의 복제는 이미 현실화 되었고, 이제 인간 복제만이 남아 있는데, 이미 이태리와 같은 나라에서는 인간 복제 시험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 나오고 있다. 과연 이 세상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 옛날 바벨탑을 쌓을 때에 하나님께서 할 수 없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그것을 더 이상 쌓지 못하게 막으시고,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심으로서 인간들을 다 흩으셨던 것처럼, 예수께서 이 땅에 속히 오셔서 하나님의 영역에 대한 인간의 무모한 도전인 현대 바벨탑을 중단시키셔야만 할 때가 되었다. 인간의 운명을 인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주께서 속히 오실 것이다. 우리는 실로 준비해야 할 때인 심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번 호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현대 바벨탑 이야기가 예수께서 속히 오셔서 하나님만의 권위와 영역을 확고히 바로 잡으셔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경각심을 일으키게 되기를 바란다. 인간이 병없이 살 수 있는 길은 인간의 의학과 과학의 발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변화된 삶을 사는 일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믿고 영생을 얻는 길 이외에는 인간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 현대인들은 죄를 회개하고 버리며 의롭게 되는 일이 없이도,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 없이도, 인간 스스로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바벨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 정말 예수께서 속히 오실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성경을 통해서 보는 유전 공학, 그 실태와 또 그 결과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처음 창조하실 때에는 지금 세상 어느 곳에서나 쉽게 발견되는 독초나 인간에게 해를 주는 어떠한 식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모든 생물들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모든 생태계를 완전하게 창조하셨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 독초들이 이 땅에서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이러한 독초들이 생겨났을까? 예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어떻게 독초들이 이 땅에 자라나기 시작하였는지를 제자들에게 설명하셨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종들이 주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대답하기를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마태복음 13:27)

모든 가라지는 원수에 의하여 심어졌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원수는 사단을 가리킨다. 이 땅에 있는 고통과 슬픔들이 사단에 의하여 만들어졌던 것처럼, 독초나 병균, 해로운 곤충들은 바로 하나님을 트집잡기 위하여 조작된 사단의 작품들임을 이 비유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좋은 씨만을 심으셨다. 아름답지만 가시가 없는 꽃들, 귀엽고 신비스러운 쏘지 않는 벌레들, 푸르고 아름다우며 종기를 만들지 않는 잎사귀들, 넓은 들판을 덮고있는 곡식을 죽이지 않는 풀들, 빠르게 달리며 용맹을 떨치지만 어느 누구도 물지 않고 친구가 될 수 있는 동물들... 얼마나 평화스럽고 감동을 주는 세계였는가!

인간이 타락하고 난 후 땅은 저주를 받고 동물의 마음은 인간을 떠나갔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였다. 비록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만드셨다고 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손에 들어간 이 지구에 사단이 가라지를 심을 것을 아셨기 때문이었다.

사단은 창조의 능력이 없다. 창조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에서 다른 종류의 것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다. 사단은 피조물로서 창조의 능력이 없다. 그는 천사들과 사람의 마음을 도둑질하여 변하게 할 수는 있어도 천사들과 사람의 마음을 창조할 수 없다. 창조는 신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세상을 빚으신 것처럼 생각한다. 비록 그러한 생각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미 존재하는 물질들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창조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신만의 능력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단이 가라지를 만들 수 있었겠는가?

사단이 창조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바로 이러한 해로운 생물들이 이미 존재하는 생물들로부터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말하여 주고 있다. 이미 존재하는 생물체들을 섞어서 다른 기능을 가진 생물체를 얻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현대과학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어떠한 요소가 적당히 있으면 약이 되지만 너무 많아지면 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동물들과 식물들의 인위적 혼합을 이용하여 가시나무와 독초를 만들고 해로운 곤충들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라지가 사단에 의하여 심어졌으며, 가라지는 식물과 동물들의 반 자연적인 인위적 교접에 의하여 생겨났음을 성경과 과학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쥐 아기’가 만들어져서 화제를 일으켰다. 사람의 미성숙 정자를 쥐의 정소세포에 찔러 넣어 성숙~수정을 시킨 것이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21세기 생명과학은 사람이나 동물의 세포를 이용하여 사람이나 동물을 복제시키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2000년 1월 19일 조선일보에는 작년 여름 다국적 인간복제기업을 표방한 ‘클로나이드사’가 복제 희망자를 모집했으며 그 중에 한국인이 4명 포함되었다고 보고한바 있고, 복제 인간을 만들어 놓고 발표시기만 기다리고 있다느니, 이미 복제인간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이렇게 인간의 과학이 유전자 변형을 통하여 새로운 종을 만들 수 있는 사실은, 인간보다도 더 월등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단이 어떠한 조작을 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물들은 완전하였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창세기 1:31)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들이 완전하였다는 것은 창조된 모든 개체들이 각각 완전한 상태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 외에도 그 종류와 자연 생태계의 조직도 완전하였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에 관한 고고학적 발견들은 우리에게 홍수 전 세상에서 이미 비정상적인 인위적인 방법으로 동물들을 융합시켜서 새로운 종류의 동물들이 만들어졌던 것들에 관하여 말하여주고 있다.
홍수가 나기 전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하나님께서는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이라고 하셨다. 방주에 들어갈 생물들의 종류를 특별히 고르지 않으시고 모든 혈육 있는 생물을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씩, 부정한 동물은 두 쌍씩 보존하라고 하셨다. (창세기 7:19~20)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동물들 가운데서 노아 홍수로 인하여 완전히 없어져버린 동물의 종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여 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화석을 통하여 홍수 이전에는 존재하였었지만 홍수로 자취를 감추어버린 동물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공룡이 바로 그 예이다. 공룡이 존재하였다는 것은 고고학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러 공룡의 뼈와 발자국들이 발견되었고 드래곤 파리 등 공룡과 비슷한 새들의 화석들도 많이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동물들은 왜 방주에 보존되어지지 않았을까? 너무 커서였을까? 몸무게가 문제라면 새끼 공룡을 보존시키면 되었을 것이다. 맘모스와 같은 거대한 코끼리들이 홍수로 없어졌지만 코끼리 자체가 멸종되어지지는 않았다. 크기가 문제라면 맘모스와 같은 거대한 공룡을 없애고 작은 종류의 공룡을 보존시키면 되었을 것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공룡을 보존시키지 않으셨는가?

그 이유는 바로 앞에서 말한 가라지의 비유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공룡을 만드셨다면 공룡을 어찌 사랑하지 않으셨을까.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아니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라지의 비유는 공룡이 홍수로 멸종을 당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가라지도 생명을 갖고 있는 것처럼 공룡도 생명을 갖고 있었으나 이들은 원수가 뿌린 가라지였기 때문이다. 원수가 좋은 곡식에서 가라지를 조작해낸 것처럼 하나님께서 만드신 동물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공룡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룡은 방주에 보존되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혈육 있는 동물들을 방주에 보존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동물들의 종류를 보존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동물들은 종류대로 모두 방주에 보전되어 생명을 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홍수 이전의 사람들의 문화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들이 어떠한 과학 문명을 누렸는지, 얼마나 의학적인 지식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몇몇 고고학적 발견으로 그들이 수준 높은 도시문명을 누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홍수 이전의 사람들이 동물을 인위적으로 수정시켜서 새로운 종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식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성경과 고고학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지 않으신 종류의 동물들이 홍수 이전에 있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홍수로 인하여 멸종 당한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인위적으로 동물을 혼합시키는 지식이 홍수 이전의 사람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이 생명을 조작하여 다른 종류의 동물과 식물을 만드는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떠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가 언제나 반 과학적인 주장만을 하기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성경은 과학을 무시하지 않는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의학적 지식과 우주에 대한 설명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과학성을 지니고 있다. 17세기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를 천주교회에서 유죄판결을 내린 후 1992년까지 395년 동안이나 그 판결을 취소하지 않은 것은 무지와 권위주의의 발상이었지 성경적 결정이 아니었다. 성경이 과학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가야될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복제 기술과 우주인의 등장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소망과 무신론적 사상은 인간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자신을 복제시켜서 자신과 똑 같은 사람을 만들거나 늙지 않게 하는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영원히 살려고 애쓰고 있다. 어떤 과학자는 앞으로 자신과 똑같은 유전자를 지닌 사람을 만들어 그 사람에게 자신의 기억을 이식시키는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영원히 보존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발상이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동물의 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뇌 기억조직을 복사하여 나와 똑같은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는 복제품을 만드는 일이 멀지 않은 장래에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를 복제하여 탄생한 그 사람이 나와 같은 모양과 같은 유전자 조직과 같은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다고 하여 그 사람이 진정한 “나”가 될 수 있을까? 세상에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들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나”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복제품을 수 백 명 만들었어도 내가 죽는다면 “나”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하시고 “나”를 존재케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네가 온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 (욥 38:3~20)

인간이 인간을 복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죽은 세포에 생명을 부여할 수는 없다. 과학은 아직 살아있는 세포를 이용하여 복제를 시도할 수 있으나 흙으로 세포를 만들 수 없고 자아를 부여할 수는 더욱이 없다. 인간이 죽은 자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는 것처럼 죽어서 썩은 세포를 다시 재생시킬 수 없는 것이다. 현대 과학은 홍수이전의 생태계의 혼란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실험들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고 세포와 핵의 비밀이 드러나서 생명의 활동에 대하여 더 큰 이해를 하였다면, 이제 이러한 세포와 핵에 어떻게 생명이 존재케 되었는지 그 근원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1998년 1월 미국과 러시아의 과학자들이 지구의 생명체가 외계로부터 유입되었다는 설에 대한 증거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인간복제를 통하여 인간 스스로 영원한 삶을 누리기 위한 인간게놈 연구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고, 가축들이 세상 이곳 저곳에서 복제되고 있는 이 때에 인간의 생명의 원천이 우주인에 의한 복제였다는 사상을 만들고, 캐나다에서는 중등 생물학 교과서에 “우주인에 의한 생명 창조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비과학적 가설과 이론만으로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고 있었던 진화론이 우주인에 의한 생명 복제설로 바뀌어지려고 하는 것은 진화론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잘못을 숨기기 위하여 초인간적인 우주인을 등장시킴으로 새로운 신을 인간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얼마나 그럴듯한 사단의 작전인가! 진화론과 무신론의 메마른 이론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인간 복제 연구를 통하여 우주인을 등장시켜서 인간이 우주인의 복제품이라고 선전하며 새로운 신을 제시하는 것은 사단이 자신을~인간을 복제시켜 인간을 이 땅에 존재케 한 우주로부터 오는~신으로 가장하여 이 땅에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많은 사람들이 매년 4월 첫째 일요일을 인류 기원의 기념일이라고 믿고 있다. 이 날은 “엘로힘”이라는 하늘에서 온 우주인들이 최초의 인간을 실험실에서 창조한 날이라고 한다. 인간복제를 찬성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엘로힘”(오래 전 지구보다 2만 5천년 진보한 우주인 혹성 과학자 그룹으로 지구에 와서 모든 생명체를 실험실에서 유전공학에 의하여 창조하였다는 우주인)의 존재를 믿고 있다. 이들은 엘로힘을 외치며 지금은 우리가 생명을 창조할 때라고 주장한다. 과학과 이성을 추구한다는 사람들이 엘로힘을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정신이 진화론과 같은 가설과 공상적 믿음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생명의 창조자 없이 생명 복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상상을 동원해서라도 세포와 핵에 생명을 부여하는 생명의 원천을 엉뚱하게 꾸며보려는 것이다. 이러한 가상 뒤에서 극을 연출하고 있는 사단을 그들이 볼 수만 있다면..

자연적인 법칙으로는 종의 유전적 장벽을 넘어서 다른 종과의 잡종을 만들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체의 유전적 특성으로, 자기 보전을 위한 본능을 갖게 함으로 다른 종의 유전자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여 이종간의 잡종을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유전공학은 이러한 자연 법칙을 무시하고 이종간의 잡종을 만들고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복제해 내려고 한다. 감자와 토마토를 섞은 포마토, 해바라기 콩, 슈퍼생쥐 등 신종 생물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홍수이전의 상황을 다시 전개하는 것이며 이러한 일들이 지구에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자연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류의 생물들만이 자손을 번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진화론의 허구를 증명하여왔다. 이 원칙은 양서류가 원숭이가 되고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생태학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화론은 돌연변이라는 말을 만들어내어 양서류에서 돌연변이들이 생겨서 마침내 원숭이가 탄생하는 이야기를 꾸며낸다. 그렇지만 이러한 허상은 많은 과학자들의 회의를 일으켜 왔으며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의 집중적 공격의 대상이 되어왔다. “돌연변이”란 단순히 증명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초자연적인 ‘우연’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추세에 밀려있던 진화론이 새로운 돌파구를 만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전공학이다. 유전공학이 다른 종의 생물을 합성시키는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돌연변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돌연변이가 자연발생적으로는 불가능하며, 인위적으로 합성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진화론이 맞는다면, 누군가가 이 땅에 내려와 인위적으로 유전공학적 합성을 했다는 것이다. 순수과학으로만 여겨져 오던 진화론이 드디어 그 진상을 밝히기 시작한 것이다. 진화론의 가장 큰 헛점이었던 “돌연변이”문제가 신의 개입으로 종결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인으로 생각되어지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이 땅에 내려와 돌연변이, 즉 유전 공학적 창조를 했다는 것은 이제 무신론과 종교와의 문제가 아니라 참 신과 거짓 신의 싸움이 곧 시작 될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요한계시록 13:12~14)

돌리가 만든 세기의 탄생

진화론에서 우주인에 의한 유전 공학적 창조라는 설이 만들어지기까지 돌리의 탄생은 중요한 역사적 시발점을 이루었다. 1996년 7월 5일, 영국 스코틀랜드 로슬린 연구소에서 ‘세기의 탄생’이 이뤄졌다. 6년 생 암양의 냉동 유방세포에서 복제된 돌리가 암수를 통한 자손번식이라는 신의 법칙을 무시하고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하등동물이나 영양생식을 하는 식물은 무성적 번식을 많이 한다. 삽복이나 근경을 통하여 영양증식하는 식물을 ‘클론 식물’이라 부르며 실제로 원예작물 증시재배에 흔히 이용되어 왔다. 고등동물이나 식물은 암수 교접에 의해서 증식하는 유성생식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돌리의 탄생은 세기적인 것이었다. 암수의 교접 없이 무성적으로 양을 탄생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1997년 2월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이언 월머트와 키스 켐벨 박사의 논문이 공개되었는데, 이 논문은 사상 유례없는 혼란을 일으켰다. 그 이유는 돌리를 복제시킨 그 논리를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론적으로 이 복제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할 경우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복제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남자 없이 여자만으로도 자손을 증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제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의 난자와 신체 세포하나만 있으면 된다. 신체 세포 하나를 추출하여 영양분 공급을 중단시켜 가사상태로 만든 다음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그 세포에서 나온 핵을 난자에 전기충격으로 결합시켜서 자궁에 이식시키면 된다.
미국 하와이대학에 야나기마치 류조 연구원과 와타야마 테루히코 연구원이 다 자란 수컷 생쥐의 꼬리에서 떼어낸 체세포를 이용해 수컷 생쥐 ‘피브로’를 복제하였다고 자연과학전문지 ‘네이처 제네틱스’가 보도하였다. 이 실험의 성공으로 동물 신체중 어느 부분의 세포든지 복제에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유전자 조작 동물들의 수명이 짧다는 것이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도 ‘생명공학의 미래’라는 기사에서 중장년의 부부가 복제기술을 이용 아이를 낳았을 경우 태어난 아이와 부모가 신체적으로 늙는 정도가 비슷하게 되는 비극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전망하였다.

그런데 유럽 종양 연구소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쥐 수명을 35% 연장시키는데 성공함으로 포유동믈의 수명이 유전자 조작에 의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벌레나 파리는 유전자 조작으로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으나 포유동물에서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번 실험을 주도한 펠리치 박사는 말하기를 p66shc 단백질은 손상된 세포를 수리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단백질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없애면, 손상된 세포를 수리하는 통로가 영구히 열려있게 되어 손상된 세포가 언제나 늙어 소멸하지 않고 언제나 회복된다고 한다. 또한 미국과 캐나다 과학자들이 정상보다 젊은 세포를 가진 송아지를 복제하는데 성공, 사람의 수명을 지금보다 50% 정도 연장시킬 수도 있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첫 복제 양 돌리는 태어날 때부터 6살 된 양과 같았지만, 이 복제기술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한 획기적인 발견으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영생을 얻기 위하여 쌓고있는 바벨탑들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보겠다는 노력은 200년 전 벤저민 프랭클린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는 생명을 살아 있는 상태로 중지시켜서 일정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내었다. 병들어 죽은 사람을 후에 치료할 목적으로 사람을 보관하는 아이디어는 1930년 닐 존슨의 공상 과학소설에 등장한다. 현대 냉동기술은 Cryonics (냉동보관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남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어 사람의 몸을 거의 완전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을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보관된 사람을 어떻게 깨우느냐 하는 것이었다. 몸을 보관할 수는 있으나 생명은 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복제품을 만들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나의 세포핵을 이용하여 나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만들었어도 그 사람이 나의 생명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생명과 그 사람의 자아를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방법으로 자손을 이어나가는 방법을 발견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노화를 방지하고 영원히 청년으로서 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원히 살수 있다는 설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의지에 상관없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사단의 첫 번째 속임수였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진 후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었다. 인간이 영생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은 죗된 세상에 사는 인간들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이었다. 죄를 짓고 그 죄지은 생각과 몸을 갖고 영생한다는 것은 인간과 모든 우주의 가족들에게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것이 진정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아 홍수이후 사람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려고 하였다. 바로 그것이 바벨탑이었다. 그들은 산보다 더 높고 하늘에 닿을 수 있는 성을 쌓아서 다시 멸망되기를 피하려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창세기 11:6~9)
현재 전세계 과학자들이 인간 게놈프로젝트 배열 작업을 하고 있다. ‘게놈’ 또는 ‘지놈’이라고 불리는 기능유전체연구(functional genomics)는 한 생물체가 지닌 모든 유전자 정보의 지도를 그리는 작업을 말한다. 인간의 경우 세포핵에 ‘이중 나선형’으로 꼬여 있는 23쌍, 46개의 염색체에 모든 유전정보가 담겨있는데 이 안에 포함된 30억개에 이르는 인간의 염기배열 구조를 밝히는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를 연구함으로 ‘유전자 진단 법’이라는 의학이 나타날 것이며, 결함이 있는 유전자 기능을 정상으로 복원시키거나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 기능을 억제하고, 인간세포의 노화과정을 억제함으로 노화억제법도 나올 전망이다. 이렇게 쌓고 있는 현대의 바벨탑이 과연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다시는 홍수로 멸망 받지 않으려고 신에 대항하여 쌓았던 바벨탑은 언어의 혼잡으로 무너지게 되었는데, 현대의 바벨탑은 어떻게 될까? 바벨탑은 인간을 멸종시킬 수 있는 또 다른 홍수를 두려워하는 그 때 사람들에게 희망적이며 건설적인 계획이었으나, 그 계획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생겨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고 계시며 그 구원에 이르는 길을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신다. 우리는 이 영생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야 한다. 바벨탑을 쌓을 당시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구원과 영원한 삶의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영원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고 인간 스스로 쌓고 있는 현대인의 바벨탑이 어찌 고대의 바벨탑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는가?

인간의 이기심과 상업적, 전쟁적 목적이 생명공학의 기술을 이용할 때에 그 결과는 두려운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멸종위기에 몰아넣은 핵폭탄들을 만들어 냈으며, 생물학의 발전도 세균전쟁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위기를 만들고 말았다. 만약 생명공학이 무기로 쓰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명공학기술이 만든 생물학적 폭탄이 한 나라에 터져 그 전 인구를 동물과 같은 인간으로 만들 수도 있고, 하루아침에 아무 것도 모르는 노예로 탈바꿈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생명공학의 실수로 만들어진 복제인간들이 번식하여 전 인류가 그 인간적인 정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며, 홍수로 사라졌던 공룡이나 거대한 동물들이 다시 인류를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인류가 스스로의 꾀에 멸망당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실 것을 기도하자. 스스로 높아지려고 쌓고 있는 바벨탑을 보며 ‘절대 죽지 않으리라’는 인류를 향한 사단의 첫 거짓말에 스스로 기만당할 때 구원이 그들 앞에서 사라져 가는 것을 깨닫지도 못할 것이다.


생명공학, 축복인가 저주인가? 스핑크스의 침묵이 마칠 때...

생명공학이 인류에게 커다란 공헌을 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생명공학이 만들어낸 몇몇 희망적인 결과 때문이다. 2000년 3월에 기존 품종들에 비해 병충해가 적으면서도 50% 이상의 수확량을 낼 수 있는 신품종 ‘슈퍼 벼’가 나왔고,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는 유전자 조작 기술로 혈중 콜레스테롤을 억제하는 ‘성인병 예방 쌀’과 철분을 보통 쌀보다 2~3배 많이 함유하고 있는 ‘빈혈 예방 쌀’이 개발되었다. 또한 인공 배양할 수 없었던 간세포를 대량으로 증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으며, 유전자 조작으로 기억력이 보통 쥐보다 뛰어난 쥐가 만들어져 사람의 지능도 유전자 조작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공학의 희망적인 한 쪽 면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독일 정부는 유전자 조작을 한 곡물들이 살충효과가 없을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보건 전문가들은 유전자 조작을 한 특정 곡물들이 인체에 대한 의약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 백 종류의 새로운 균들이 나타나는 이 시대에 의약효과가 감소된다는 것은 치명적인 사건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나는 동물은 자연 출생하는 동물에 비해 태아 때 사망하거나 기형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미국 매사추세츠대 연구팀에 의하여 보고되었다. 이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복제한 송아지가 정상으로 태어나는 송아지보다 기형과 종기 등이 많고 면역체계가 약한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영국의 더 타임즈가 보고했다. 자연적으로 수정될 때에는 정자가 경쟁을 벌여 우월한 것이 수정된다. 또한 태아 신체 장기의 각 부분이 만들어질 때마다 좀 더 우세하고 적합한 유전정보가 채택되어진다. 그러나 복제에서는 인위적으로 융합을 시키기 때문에 경쟁 없이 수정을 이루어 조기 사망과 기형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만약, 유전자 조작으로 신 인류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세계는 다시 히틀러의 나찌즘 사상으로 휩싸일 것이다. 인류는 어떠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가에 의하여 계급이 형성될 것이며 이러한 신 인류를 만든 지금의 과학자들이 노예로 전락되거나 인종청소라는 명목 하에 전멸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전쟁은 누가 더 잘났느냐 하는 이유로 시작되었다. 유고슬라비아에 일어난 인종전쟁, 히틀러의 나찌즘, 기독교 국가와 회교국가간의 전쟁, 미국에서의 인종 차별, 신이 선택한 인종이라고 믿고 있는 유대인들, 천황의 역사를 유지하고자 하는 일본인들, 김일성 사상을 고수하려는 북한 사람들, 백인 우월 정치를 고수하려 했던 오스트렐리아 사람들과 남 아프리카 공화국, KKK... 등 모든 전쟁은 누가 우월한 생각과 사상과 유전을 갖고 있는가 하는데서 시작되었다. 생명공학으로 만약 ‘슈퍼 인간’들이 태어나 번식한다면 그들은 어떠한 전쟁을 벌이겠는가?

예수께서 제자들을 택하실 때에 유대인 제사장들이나, 박사들, 학자들을 선택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의 대부분은 배우지 못하고 학교도 다니지 못했던 고기잡이 선원들이었다.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셨고 아무도 정죄 하지 않으셨다. 병들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며 희망과 구원의 말씀을 하셨다. 유대인들로부터 버림받고 천대받고 있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셨으며, 죄인 취급받아 식사도 같이하기 꺼려하던 세리 삭개오의 집에 머물기를 청하셨다. 전과기록 한 번으로 더 이상 직장 얻기가 힘들어지며 모든 신임을 잃어버리는 이 때에 각 개인의 유전자가 연구되어져 기록되어지면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겠는가? 죄인을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의 정신은 완전히 없어지고 우성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만이 인간 행세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게놈프로젝트가 끝나고 유전자의 비밀이 밝혀지기까지의 기간을 과학자들은 ‘스핑크스의 침묵’이라고 부른다. ‘스핑크스의 침묵’이 끝나면 유전자치료와 유전자백신 등이 보편화되어 질병을 예방하는 DNA 예방법이 나타날 것이지만, 이에 따르는 의료 보험이나 취업규제는 어떻게 달라지겠는가? 실제로 미국의 일부 보험회사는 임신한 피보험자에게 태아의 유전자를 검사토록 압력을 넣고 있는 것처럼, 더 많은 병에 걸릴 확률이 있는 사람은 더 많은 보험금을 내야 할 것이며, 사원 채용 시 유전적으로 특정한 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나 특정한 도덕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지 않을 것이며 강도의 위험이 있는 사람들은 미리 사회로부터 격리를 당할 것이다. 정신병자가 아니라도 정신병의 유전자가 있는 사람들은 미리 정신병원에 격리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 인류를 정신적 파멸의 상태로 이끌 것이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그 여인을 죄 있다고 정죄 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삶의 기회를 허락하신 그리스도의 정신은 유전공학으로 무색케 될 것이며 누가 더 잘났느냐하는 논쟁이 세상을 휩쓸 것이다. 우성유전자 인간과 열성유전자 인간이 분리되어지고 우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이르게 될 것이다. 마음의 아름다움보다는 유전자적 우성이 결혼 배우자 선택을 좌우할 것이다. 사랑에 의한 회개와 믿음의 성화를 통하여 얻어지는 구원의 길은 잊혀지게 될 것이며, 죄인을 위한 사랑은 우성 유전자의 번식을 위하여 금지될 것이고, 친구의 아름다움과 영혼을 향한 기독교 정신은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어떤 신문기자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결과는 희망인가 공포인가”라는 기사로 유전자 연구가 사회에 미칠 문제들을 우려하였다.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으며 DNA 이중나선구조를 처음 발견하여 1988년 인간게놈프로젝트 총책임자로 선정된 제임스 왓슨씨는 활동 초기부터 이 프로젝트의 부정적 영향을 크게 우려하여 왔다. 미국 에너지부와 국립보건원이 지원하는 윤리~법~사회관계(ELSI)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초래할 사회적인 문제들을 연구하고 있으며, 1997년 11월 11일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29차 총회는 ‘인간 게놈과 인권에 대한 보편적 선언’을 186개 회원국 전원의 찬성으로 채택했다. 이 선언문은 “유전연구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명시하였다. 그러나 선언과 연구만으로 인류를 최악의 상태로 몰고 갈 수 있는 이 프로젝트의 부정적 파장을 멈추거나 해소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블레어는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발명품에 대해서는 여전히 특허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생명공학회사들이 유전자에 대한 국내적, 국제적 특허를 요청해 왔었으며, 그 주장을 인정하는 입장을 클린턴 대통령이 취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유전자 연구는 과학 선진국들의 손에 묶일 것이고, 특허를 갖고 있지 않는 나라에서는 유전자공학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난치병치료 등을 위하여 매번 특허료를 내야만 하며, 그렇게 될 경우 중요한 유정공학기술들이 몇 핵심 과학자들에게만 한정되어질 것이다.

게놈프로젝트가 아직 끝나서 완결되기도 전에 특허권의 요청과 상업적으로 유전공학을 쓰려는 논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인간의 역사는 바로 전쟁의 역사이었기 때문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고 지배하며 우성인들이 열성인들의 생명을 좌우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죽인 것처럼 죄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죗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죗된 본성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여지지 않으면 유전공학은 이렇게 치열한 상업적 쟁탈전속에서 고가를 이룰 것이며 병들고 가난한 자를 위하여 쓰여지기보다는 정치적 상업적 목적을 위하여,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원자폭탄을 만든 것처럼, 인류를 억압하는데 쓰여질 것이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이사야 55:1~2)

키메라 인간

희랍신화에는 양의 몸체에 사자 머리와 뱀 꼬리를 가진 동물이 등장하는데 이것을 ‘키메라’라고 부른다. 이 말을 따서 다른 종류의 유전형질을 한 몸에 지닌 잡종 생물을 ‘키메라 생물’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실제로 만든 키메라 동물로는 흰 생쥐와 갈색 생쥐의 분활란을 융합시켜 만든 ‘얼룩 생쥐’와 염소 머리와 양의 몸체를 가진 ‘염소양’이 있다고 한다. 즉 ‘키메라’라는 말은 한 생명체가 같은 종이 아닌 다른 종의 유전자를 받아서 그 형질을 발현시켜 만든 새로운 잡종체를 뜻한다. 이러한 잡종체는 자연교접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없으며 오직 유전 공학적 기법으로만 개발이 가능하다. 이러한 잡종체를 만드는 것도 자연법칙을 어기는 일이지만 만약 사람이 ‘키메라’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미국에서는 사람과 소의 잡종체를 만들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이 시점에서 미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농장에서 2000년 3월 14일에 공개된 복제 돼지 다섯 마리는 중요한 논쟁점을 제시한다. 복제 돼지를 만들려는 노력은 복제 소나 양을 만드는 일과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돼지의 장기는 인간의 장기와 유사해 이식에 적합하기 때문에 장기 부족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복제 돼지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사람인데 장기는 돼지 것이라면 이 사람은 인간인가 아니면 돼지인가? 이것은 바로 돼지와 인간의 혼합체인 ‘키메라 인간’일 것이다. 지금까지 돼지세포 이식 시에 걸릴 수 있는 바이러스 감염 문제로 많은 의학자들이 이를 반대해 왔었다. 그런데 영국의 생물공학회사인 이뮤트란의 수석 연구원 카잘 파라디스 박사는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최신호에 돼지의 장기나 세포를 인간에게 이식해도 돼지가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가 감염될 위험은 없다고 발표함으로 돼지 장기를 이용한 사람의 장기이식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파라디스 박사는 8개국에서 돼지의 세포를 이식하거나 장기를 이용한 환자 160명을 대상으로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정밀검사를 실시한 결과 돼지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증거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하였다. 이들은 인슐린을 만드는 돼지의 췌장세포를 이식 받은 당뇨병 환자, 일시적으로 돼지의 피부를 이식 받은 화상 환자, 인간의 장기를 기다리는 동안 잠정적으로 돼지의 간이나 신장을 이식한 환자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모든 돼지의 유전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될 수 있음이 시험관 실험을 통하여 밝혀지면서 이종이식에 대한 또 다른 우려를 일으키고 있으며, 다른 이종이식 실험에서는 이식된 동물의 세포를 즉각 인간의 면역체가 공격해서 죽이는 것으로 밝혀져서 면역체계의 이러한 거부반응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바이러스의 감염이나 면역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돼지의 장기를 갖고 살게 되는 인간의 정신적인 변화에 관한 문제이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것은 인간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의지와 감정과 영혼이 있다는 것이다. 이식할 수 있는 장기를 찾지 못하여 잠정적으로 돼지의 장기를 이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돼지를 유전공학적으로 복제시키면서 돼지 안에 인간의 장기를 키워서 그것을 영구적으로 인간에게 이식한다는 것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정신적 세계의 혼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몇 년 전 미국 어느 텔레비전 토크쇼에서는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 받은 사람들이 어떠한 성격적 변화가 그들에게 나타났는지에 대하여 방영한 적이 있다. 한 예로,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후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어 알아본 결과 그 심장의 원래 주인이 스포츠 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몸은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과학자는 설탕 섭취량을 줄임으로 많은 범죄를 막을 수 있음을 연구하였고, 특정 영양소의 부족으로 생기는 우울증과 정신착란증 등이 있음이 알려졌다. 간단한 운동으로 마음의 갈등을 해소할 수도 있는 것처럼 몸과 마음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돼지의 음식과 본능과 행동에 적응되어진 돼지의 장기가 인간에게 이식되어짐으로 인하여 생길 가능성이 있는 인간의 본능과 성격적 변화는 인간 존엄성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돼지의 심장을 갖고 인간처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마음은 몸을 주관하고 몸은 마음에 영향을 준다. 몸을 떠나 존재하는 영혼과 윤회와 환생의 사상이 만연한 지금 돼지의 장기를 갖던 돼지의 위를 갖던 인간의 마음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돼지가 먹는 음식에 길들여진 돼지의 위가 인간에게 들어와서 어떠한 음식을 달라고 하겠는가? 부모가 갖고 있는, 술, 담배, 마약에 대한 연약함이 유전자를 통하여 자손에게 전달되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이 시대에 돼지의 세포와 인간의 세포를 섞어버리는 돼지의 장기 이식을 어떻게 인간을 위한 과학이라고 하겠는가?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마음은 몸의 상태를 만들고, 그 몸의 상태가 마음을 꼴지운다는 의학적 상관관계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들 수 있는 것이며 정상적인 몸에 정상적인 마음이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예비하고 깨어 있으라”

인간은 혈연 가족 공동체를 갖고 있다. 아버지의 복제된 인간이 나온다면 그는 누구인가? 형제인가, 작은아버지인가, 혹은 아무 것도 아닌가? 혼인을 하여 가족을 이루는 것은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복제인간은 바로 창조 때 제정하신 가족제도를 깨뜨릴 것이다. 인간복제가 가능해진다면 인류의 결혼과 가족제도는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다. 친족관계가 혼란에 빠질 것이며, 결혼을 하지 않고도, 남녀가 결합하지 않고도 아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동성애자들도 아이를 가질 수 있게될 것이며 이것은 이 땅을 신속히 소돔과 고모라의 상태로 만들 것이다. 더 이상 남녀의 성 역할은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며 보통인간과 복제인간이란 두 부류로 사회가 분열될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생명공학이라는 방법을 이용하여 바벨탑을 쌓으려 한다.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는 수명의 기간을 조작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긴 삶이나 영구적인 생명을 쟁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노아 시대에 이미 시작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물들을 원상태로 복귀하기 위하여 홍수를 보내신 것처럼 이 땅을 청소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이다. 미국에서 DNA의 인공합성 연구가 성공한 것을 “생명체 인위적 창조 길 열었다”고 보도된바 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 등은 2000년 1월 23일에 “생명체의 기본 구성분자인 유전자(DNA)를 인공으로 다량 합성하는 데 성공해 최초의 합성 유기체(생명체)를 인위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이번 연구의 성공은 드디어 바벨탑의 마지막 돌을 올려놓은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날에 주가 임할는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24:36~42 참고)

지구 역사의 최대의 클라이막스는 돌연변이라는 진화론적 가상이 우주인에 의한 유전공학적 창조라고 바뀌어지면서 우리에게 나타난 새로운 가상적 신(우주인)을 사단이 현실화하면서 시작될 것이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23~26)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요한계시록 21:6)

고고학이 진화론을 지지하는 동시에 노아 홍수와 창조에 관련된 많은 증거들을 제시하여준 것과, 현대 과학기술이 인간의 생활을 메마르고 기계적인 사회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 세계 곳곳에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통신과 운송의 기회를 제공한 것처럼, 생명공학도 남자 없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예수님의 탄생의 신비의 한 비밀을 밝혀낼 수도 있을 것이며, 성경과 구원에 관한 많은 의미 있는 자료들을 제시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은 과학을 무시하지 않으며 반대하지도 않는다. 과학과, 의학과, 모든 학문의 발전은 성경을 더욱더 체계적으로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약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인간의 욕심과 야망을 채워나가기 위하여 인간이 넘어서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자연 생태계의 법칙을 혼란스럽게 만들며, 마음의 변화 없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바벨탑을 쌓으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흩으실 것이며,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홍수로 이 땅을 정결케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종말은 홀연히 이르러올 것이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마태복음 24:44, 잠언 3:1~3,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