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통해서 보는 유전 공학, 그 실태와 또 그 결과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처음 창조하실 때에는 지금 세상 어느 곳에서나 쉽게 발견되는 독초나 인간에게 해를 주는 어떠한 식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모든 생물들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모든 생태계를 완전하게 창조하셨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 독초들이 이 땅에서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이러한 독초들이 생겨났을까? 예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어떻게 독초들이 이 땅에 자라나기 시작하였는지를 제자들에게 설명하셨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종들이 주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대답하기를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마태복음 13:27)

모든 가라지는 원수에 의하여 심어졌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원수는 사단을 가리킨다. 이 땅에 있는 고통과 슬픔들이 사단에 의하여 만들어졌던 것처럼, 독초나 병균, 해로운 곤충들은 바로 하나님을 트집잡기 위하여 조작된 사단의 작품들임을 이 비유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좋은 씨만을 심으셨다. 아름답지만 가시가 없는 꽃들, 귀엽고 신비스러운 쏘지 않는 벌레들, 푸르고 아름다우며 종기를 만들지 않는 잎사귀들, 넓은 들판을 덮고있는 곡식을 죽이지 않는 풀들, 빠르게 달리며 용맹을 떨치지만 어느 누구도 물지 않고 친구가 될 수 있는 동물들... 얼마나 평화스럽고 감동을 주는 세계였는가!

인간이 타락하고 난 후 땅은 저주를 받고 동물의 마음은 인간을 떠나갔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였다. 비록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만드셨다고 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손에 들어간 이 지구에 사단이 가라지를 심을 것을 아셨기 때문이었다.

사단은 창조의 능력이 없다. 창조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에서 다른 종류의 것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다. 사단은 피조물로서 창조의 능력이 없다. 그는 천사들과 사람의 마음을 도둑질하여 변하게 할 수는 있어도 천사들과 사람의 마음을 창조할 수 없다. 창조는 신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세상을 빚으신 것처럼 생각한다. 비록 그러한 생각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미 존재하는 물질들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창조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신만의 능력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단이 가라지를 만들 수 있었겠는가?

사단이 창조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바로 이러한 해로운 생물들이 이미 존재하는 생물들로부터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말하여 주고 있다. 이미 존재하는 생물체들을 섞어서 다른 기능을 가진 생물체를 얻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현대과학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어떠한 요소가 적당히 있으면 약이 되지만 너무 많아지면 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동물들과 식물들의 인위적 혼합을 이용하여 가시나무와 독초를 만들고 해로운 곤충들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라지가 사단에 의하여 심어졌으며, 가라지는 식물과 동물들의 반 자연적인 인위적 교접에 의하여 생겨났음을 성경과 과학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쥐 아기’가 만들어져서 화제를 일으켰다. 사람의 미성숙 정자를 쥐의 정소세포에 찔러 넣어 성숙~수정을 시킨 것이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21세기 생명과학은 사람이나 동물의 세포를 이용하여 사람이나 동물을 복제시키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2000년 1월 19일 조선일보에는 작년 여름 다국적 인간복제기업을 표방한 ‘클로나이드사’가 복제 희망자를 모집했으며 그 중에 한국인이 4명 포함되었다고 보고한바 있고, 복제 인간을 만들어 놓고 발표시기만 기다리고 있다느니, 이미 복제인간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이렇게 인간의 과학이 유전자 변형을 통하여 새로운 종을 만들 수 있는 사실은, 인간보다도 더 월등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단이 어떠한 조작을 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물들은 완전하였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창세기 1:31)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들이 완전하였다는 것은 창조된 모든 개체들이 각각 완전한 상태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 외에도 그 종류와 자연 생태계의 조직도 완전하였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에 관한 고고학적 발견들은 우리에게 홍수 전 세상에서 이미 비정상적인 인위적인 방법으로 동물들을 융합시켜서 새로운 종류의 동물들이 만들어졌던 것들에 관하여 말하여주고 있다.
홍수가 나기 전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하나님께서는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이라고 하셨다. 방주에 들어갈 생물들의 종류를 특별히 고르지 않으시고 모든 혈육 있는 생물을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씩, 부정한 동물은 두 쌍씩 보존하라고 하셨다. (창세기 7:19~20)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동물들 가운데서 노아 홍수로 인하여 완전히 없어져버린 동물의 종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여 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화석을 통하여 홍수 이전에는 존재하였었지만 홍수로 자취를 감추어버린 동물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공룡이 바로 그 예이다. 공룡이 존재하였다는 것은 고고학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러 공룡의 뼈와 발자국들이 발견되었고 드래곤 파리 등 공룡과 비슷한 새들의 화석들도 많이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동물들은 왜 방주에 보존되어지지 않았을까? 너무 커서였을까? 몸무게가 문제라면 새끼 공룡을 보존시키면 되었을 것이다. 맘모스와 같은 거대한 코끼리들이 홍수로 없어졌지만 코끼리 자체가 멸종되어지지는 않았다. 크기가 문제라면 맘모스와 같은 거대한 공룡을 없애고 작은 종류의 공룡을 보존시키면 되었을 것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공룡을 보존시키지 않으셨는가?

그 이유는 바로 앞에서 말한 가라지의 비유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공룡을 만드셨다면 공룡을 어찌 사랑하지 않으셨을까.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아니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라지의 비유는 공룡이 홍수로 멸종을 당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가라지도 생명을 갖고 있는 것처럼 공룡도 생명을 갖고 있었으나 이들은 원수가 뿌린 가라지였기 때문이다. 원수가 좋은 곡식에서 가라지를 조작해낸 것처럼 하나님께서 만드신 동물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공룡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룡은 방주에 보존되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혈육 있는 동물들을 방주에 보존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동물들의 종류를 보존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동물들은 종류대로 모두 방주에 보전되어 생명을 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홍수 이전의 사람들의 문화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들이 어떠한 과학 문명을 누렸는지, 얼마나 의학적인 지식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몇몇 고고학적 발견으로 그들이 수준 높은 도시문명을 누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홍수 이전의 사람들이 동물을 인위적으로 수정시켜서 새로운 종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식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성경과 고고학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지 않으신 종류의 동물들이 홍수 이전에 있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홍수로 인하여 멸종 당한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인위적으로 동물을 혼합시키는 지식이 홍수 이전의 사람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이 생명을 조작하여 다른 종류의 동물과 식물을 만드는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떠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가 언제나 반 과학적인 주장만을 하기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성경은 과학을 무시하지 않는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의학적 지식과 우주에 대한 설명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과학성을 지니고 있다. 17세기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를 천주교회에서 유죄판결을 내린 후 1992년까지 395년 동안이나 그 판결을 취소하지 않은 것은 무지와 권위주의의 발상이었지 성경적 결정이 아니었다. 성경이 과학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가야될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복제 기술과 우주인의 등장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소망과 무신론적 사상은 인간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자신을 복제시켜서 자신과 똑 같은 사람을 만들거나 늙지 않게 하는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영원히 살려고 애쓰고 있다. 어떤 과학자는 앞으로 자신과 똑같은 유전자를 지닌 사람을 만들어 그 사람에게 자신의 기억을 이식시키는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영원히 보존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발상이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동물의 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뇌 기억조직을 복사하여 나와 똑같은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는 복제품을 만드는 일이 멀지 않은 장래에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를 복제하여 탄생한 그 사람이 나와 같은 모양과 같은 유전자 조직과 같은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다고 하여 그 사람이 진정한 “나”가 될 수 있을까? 세상에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들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나”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복제품을 수 백 명 만들었어도 내가 죽는다면 “나”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하시고 “나”를 존재케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네가 온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 (욥 38:3~20)

인간이 인간을 복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죽은 세포에 생명을 부여할 수는 없다. 과학은 아직 살아있는 세포를 이용하여 복제를 시도할 수 있으나 흙으로 세포를 만들 수 없고 자아를 부여할 수는 더욱이 없다. 인간이 죽은 자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는 것처럼 죽어서 썩은 세포를 다시 재생시킬 수 없는 것이다. 현대 과학은 홍수이전의 생태계의 혼란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실험들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고 세포와 핵의 비밀이 드러나서 생명의 활동에 대하여 더 큰 이해를 하였다면, 이제 이러한 세포와 핵에 어떻게 생명이 존재케 되었는지 그 근원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1998년 1월 미국과 러시아의 과학자들이 지구의 생명체가 외계로부터 유입되었다는 설에 대한 증거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인간복제를 통하여 인간 스스로 영원한 삶을 누리기 위한 인간게놈 연구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고, 가축들이 세상 이곳 저곳에서 복제되고 있는 이 때에 인간의 생명의 원천이 우주인에 의한 복제였다는 사상을 만들고, 캐나다에서는 중등 생물학 교과서에 “우주인에 의한 생명 창조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비과학적 가설과 이론만으로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고 있었던 진화론이 우주인에 의한 생명 복제설로 바뀌어지려고 하는 것은 진화론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잘못을 숨기기 위하여 초인간적인 우주인을 등장시킴으로 새로운 신을 인간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얼마나 그럴듯한 사단의 작전인가! 진화론과 무신론의 메마른 이론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인간 복제 연구를 통하여 우주인을 등장시켜서 인간이 우주인의 복제품이라고 선전하며 새로운 신을 제시하는 것은 사단이 자신을~인간을 복제시켜 인간을 이 땅에 존재케 한 우주로부터 오는~신으로 가장하여 이 땅에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많은 사람들이 매년 4월 첫째 일요일을 인류 기원의 기념일이라고 믿고 있다. 이 날은 “엘로힘”이라는 하늘에서 온 우주인들이 최초의 인간을 실험실에서 창조한 날이라고 한다. 인간복제를 찬성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엘로힘”(오래 전 지구보다 2만 5천년 진보한 우주인 혹성 과학자 그룹으로 지구에 와서 모든 생명체를 실험실에서 유전공학에 의하여 창조하였다는 우주인)의 존재를 믿고 있다. 이들은 엘로힘을 외치며 지금은 우리가 생명을 창조할 때라고 주장한다. 과학과 이성을 추구한다는 사람들이 엘로힘을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정신이 진화론과 같은 가설과 공상적 믿음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생명의 창조자 없이 생명 복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상상을 동원해서라도 세포와 핵에 생명을 부여하는 생명의 원천을 엉뚱하게 꾸며보려는 것이다. 이러한 가상 뒤에서 극을 연출하고 있는 사단을 그들이 볼 수만 있다면..

자연적인 법칙으로는 종의 유전적 장벽을 넘어서 다른 종과의 잡종을 만들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체의 유전적 특성으로, 자기 보전을 위한 본능을 갖게 함으로 다른 종의 유전자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여 이종간의 잡종을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유전공학은 이러한 자연 법칙을 무시하고 이종간의 잡종을 만들고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복제해 내려고 한다. 감자와 토마토를 섞은 포마토, 해바라기 콩, 슈퍼생쥐 등 신종 생물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홍수이전의 상황을 다시 전개하는 것이며 이러한 일들이 지구에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자연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류의 생물들만이 자손을 번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진화론의 허구를 증명하여왔다. 이 원칙은 양서류가 원숭이가 되고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생태학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화론은 돌연변이라는 말을 만들어내어 양서류에서 돌연변이들이 생겨서 마침내 원숭이가 탄생하는 이야기를 꾸며낸다. 그렇지만 이러한 허상은 많은 과학자들의 회의를 일으켜 왔으며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의 집중적 공격의 대상이 되어왔다. “돌연변이”란 단순히 증명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초자연적인 ‘우연’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추세에 밀려있던 진화론이 새로운 돌파구를 만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전공학이다. 유전공학이 다른 종의 생물을 합성시키는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돌연변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돌연변이가 자연발생적으로는 불가능하며, 인위적으로 합성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진화론이 맞는다면, 누군가가 이 땅에 내려와 인위적으로 유전공학적 합성을 했다는 것이다. 순수과학으로만 여겨져 오던 진화론이 드디어 그 진상을 밝히기 시작한 것이다. 진화론의 가장 큰 헛점이었던 “돌연변이”문제가 신의 개입으로 종결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인으로 생각되어지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이 땅에 내려와 돌연변이, 즉 유전 공학적 창조를 했다는 것은 이제 무신론과 종교와의 문제가 아니라 참 신과 거짓 신의 싸움이 곧 시작 될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요한계시록 13:12~14)

돌리가 만든 세기의 탄생

진화론에서 우주인에 의한 유전 공학적 창조라는 설이 만들어지기까지 돌리의 탄생은 중요한 역사적 시발점을 이루었다. 1996년 7월 5일, 영국 스코틀랜드 로슬린 연구소에서 ‘세기의 탄생’이 이뤄졌다. 6년 생 암양의 냉동 유방세포에서 복제된 돌리가 암수를 통한 자손번식이라는 신의 법칙을 무시하고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하등동물이나 영양생식을 하는 식물은 무성적 번식을 많이 한다. 삽복이나 근경을 통하여 영양증식하는 식물을 ‘클론 식물’이라 부르며 실제로 원예작물 증시재배에 흔히 이용되어 왔다. 고등동물이나 식물은 암수 교접에 의해서 증식하는 유성생식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돌리의 탄생은 세기적인 것이었다. 암수의 교접 없이 무성적으로 양을 탄생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1997년 2월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이언 월머트와 키스 켐벨 박사의 논문이 공개되었는데, 이 논문은 사상 유례없는 혼란을 일으켰다. 그 이유는 돌리를 복제시킨 그 논리를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론적으로 이 복제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할 경우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복제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남자 없이 여자만으로도 자손을 증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제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의 난자와 신체 세포하나만 있으면 된다. 신체 세포 하나를 추출하여 영양분 공급을 중단시켜 가사상태로 만든 다음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그 세포에서 나온 핵을 난자에 전기충격으로 결합시켜서 자궁에 이식시키면 된다.
미국 하와이대학에 야나기마치 류조 연구원과 와타야마 테루히코 연구원이 다 자란 수컷 생쥐의 꼬리에서 떼어낸 체세포를 이용해 수컷 생쥐 ‘피브로’를 복제하였다고 자연과학전문지 ‘네이처 제네틱스’가 보도하였다. 이 실험의 성공으로 동물 신체중 어느 부분의 세포든지 복제에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유전자 조작 동물들의 수명이 짧다는 것이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도 ‘생명공학의 미래’라는 기사에서 중장년의 부부가 복제기술을 이용 아이를 낳았을 경우 태어난 아이와 부모가 신체적으로 늙는 정도가 비슷하게 되는 비극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전망하였다.

그런데 유럽 종양 연구소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쥐 수명을 35% 연장시키는데 성공함으로 포유동믈의 수명이 유전자 조작에 의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벌레나 파리는 유전자 조작으로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으나 포유동물에서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번 실험을 주도한 펠리치 박사는 말하기를 p66shc 단백질은 손상된 세포를 수리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단백질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없애면, 손상된 세포를 수리하는 통로가 영구히 열려있게 되어 손상된 세포가 언제나 늙어 소멸하지 않고 언제나 회복된다고 한다. 또한 미국과 캐나다 과학자들이 정상보다 젊은 세포를 가진 송아지를 복제하는데 성공, 사람의 수명을 지금보다 50% 정도 연장시킬 수도 있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첫 복제 양 돌리는 태어날 때부터 6살 된 양과 같았지만, 이 복제기술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한 획기적인 발견으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영생을 얻기 위하여 쌓고있는 바벨탑들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보겠다는 노력은 200년 전 벤저민 프랭클린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는 생명을 살아 있는 상태로 중지시켜서 일정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내었다. 병들어 죽은 사람을 후에 치료할 목적으로 사람을 보관하는 아이디어는 1930년 닐 존슨의 공상 과학소설에 등장한다. 현대 냉동기술은 Cryonics (냉동보관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남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어 사람의 몸을 거의 완전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을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보관된 사람을 어떻게 깨우느냐 하는 것이었다. 몸을 보관할 수는 있으나 생명은 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복제품을 만들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나의 세포핵을 이용하여 나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만들었어도 그 사람이 나의 생명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생명과 그 사람의 자아를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방법으로 자손을 이어나가는 방법을 발견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노화를 방지하고 영원히 청년으로서 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원히 살수 있다는 설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의지에 상관없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사단의 첫 번째 속임수였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진 후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었다. 인간이 영생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은 죗된 세상에 사는 인간들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이었다. 죄를 짓고 그 죄지은 생각과 몸을 갖고 영생한다는 것은 인간과 모든 우주의 가족들에게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것이 진정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아 홍수이후 사람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려고 하였다. 바로 그것이 바벨탑이었다. 그들은 산보다 더 높고 하늘에 닿을 수 있는 성을 쌓아서 다시 멸망되기를 피하려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창세기 11:6~9)
현재 전세계 과학자들이 인간 게놈프로젝트 배열 작업을 하고 있다. ‘게놈’ 또는 ‘지놈’이라고 불리는 기능유전체연구(functional genomics)는 한 생물체가 지닌 모든 유전자 정보의 지도를 그리는 작업을 말한다. 인간의 경우 세포핵에 ‘이중 나선형’으로 꼬여 있는 23쌍, 46개의 염색체에 모든 유전정보가 담겨있는데 이 안에 포함된 30억개에 이르는 인간의 염기배열 구조를 밝히는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를 연구함으로 ‘유전자 진단 법’이라는 의학이 나타날 것이며, 결함이 있는 유전자 기능을 정상으로 복원시키거나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 기능을 억제하고, 인간세포의 노화과정을 억제함으로 노화억제법도 나올 전망이다. 이렇게 쌓고 있는 현대의 바벨탑이 과연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다시는 홍수로 멸망 받지 않으려고 신에 대항하여 쌓았던 바벨탑은 언어의 혼잡으로 무너지게 되었는데, 현대의 바벨탑은 어떻게 될까? 바벨탑은 인간을 멸종시킬 수 있는 또 다른 홍수를 두려워하는 그 때 사람들에게 희망적이며 건설적인 계획이었으나, 그 계획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생겨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고 계시며 그 구원에 이르는 길을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신다. 우리는 이 영생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야 한다. 바벨탑을 쌓을 당시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구원과 영원한 삶의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영원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고 인간 스스로 쌓고 있는 현대인의 바벨탑이 어찌 고대의 바벨탑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는가?

인간의 이기심과 상업적, 전쟁적 목적이 생명공학의 기술을 이용할 때에 그 결과는 두려운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멸종위기에 몰아넣은 핵폭탄들을 만들어 냈으며, 생물학의 발전도 세균전쟁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위기를 만들고 말았다. 만약 생명공학이 무기로 쓰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명공학기술이 만든 생물학적 폭탄이 한 나라에 터져 그 전 인구를 동물과 같은 인간으로 만들 수도 있고, 하루아침에 아무 것도 모르는 노예로 탈바꿈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생명공학의 실수로 만들어진 복제인간들이 번식하여 전 인류가 그 인간적인 정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며, 홍수로 사라졌던 공룡이나 거대한 동물들이 다시 인류를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인류가 스스로의 꾀에 멸망당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실 것을 기도하자. 스스로 높아지려고 쌓고 있는 바벨탑을 보며 ‘절대 죽지 않으리라’는 인류를 향한 사단의 첫 거짓말에 스스로 기만당할 때 구원이 그들 앞에서 사라져 가는 것을 깨닫지도 못할 것이다.


생명공학, 축복인가 저주인가? 스핑크스의 침묵이 마칠 때...

생명공학이 인류에게 커다란 공헌을 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생명공학이 만들어낸 몇몇 희망적인 결과 때문이다. 2000년 3월에 기존 품종들에 비해 병충해가 적으면서도 50% 이상의 수확량을 낼 수 있는 신품종 ‘슈퍼 벼’가 나왔고,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는 유전자 조작 기술로 혈중 콜레스테롤을 억제하는 ‘성인병 예방 쌀’과 철분을 보통 쌀보다 2~3배 많이 함유하고 있는 ‘빈혈 예방 쌀’이 개발되었다. 또한 인공 배양할 수 없었던 간세포를 대량으로 증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으며, 유전자 조작으로 기억력이 보통 쥐보다 뛰어난 쥐가 만들어져 사람의 지능도 유전자 조작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공학의 희망적인 한 쪽 면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독일 정부는 유전자 조작을 한 곡물들이 살충효과가 없을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보건 전문가들은 유전자 조작을 한 특정 곡물들이 인체에 대한 의약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 백 종류의 새로운 균들이 나타나는 이 시대에 의약효과가 감소된다는 것은 치명적인 사건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나는 동물은 자연 출생하는 동물에 비해 태아 때 사망하거나 기형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미국 매사추세츠대 연구팀에 의하여 보고되었다. 이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복제한 송아지가 정상으로 태어나는 송아지보다 기형과 종기 등이 많고 면역체계가 약한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영국의 더 타임즈가 보고했다. 자연적으로 수정될 때에는 정자가 경쟁을 벌여 우월한 것이 수정된다. 또한 태아 신체 장기의 각 부분이 만들어질 때마다 좀 더 우세하고 적합한 유전정보가 채택되어진다. 그러나 복제에서는 인위적으로 융합을 시키기 때문에 경쟁 없이 수정을 이루어 조기 사망과 기형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만약, 유전자 조작으로 신 인류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세계는 다시 히틀러의 나찌즘 사상으로 휩싸일 것이다. 인류는 어떠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가에 의하여 계급이 형성될 것이며 이러한 신 인류를 만든 지금의 과학자들이 노예로 전락되거나 인종청소라는 명목 하에 전멸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전쟁은 누가 더 잘났느냐 하는 이유로 시작되었다. 유고슬라비아에 일어난 인종전쟁, 히틀러의 나찌즘, 기독교 국가와 회교국가간의 전쟁, 미국에서의 인종 차별, 신이 선택한 인종이라고 믿고 있는 유대인들, 천황의 역사를 유지하고자 하는 일본인들, 김일성 사상을 고수하려는 북한 사람들, 백인 우월 정치를 고수하려 했던 오스트렐리아 사람들과 남 아프리카 공화국, KKK... 등 모든 전쟁은 누가 우월한 생각과 사상과 유전을 갖고 있는가 하는데서 시작되었다. 생명공학으로 만약 ‘슈퍼 인간’들이 태어나 번식한다면 그들은 어떠한 전쟁을 벌이겠는가?

예수께서 제자들을 택하실 때에 유대인 제사장들이나, 박사들, 학자들을 선택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의 대부분은 배우지 못하고 학교도 다니지 못했던 고기잡이 선원들이었다.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셨고 아무도 정죄 하지 않으셨다. 병들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며 희망과 구원의 말씀을 하셨다. 유대인들로부터 버림받고 천대받고 있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셨으며, 죄인 취급받아 식사도 같이하기 꺼려하던 세리 삭개오의 집에 머물기를 청하셨다. 전과기록 한 번으로 더 이상 직장 얻기가 힘들어지며 모든 신임을 잃어버리는 이 때에 각 개인의 유전자가 연구되어져 기록되어지면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겠는가? 죄인을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의 정신은 완전히 없어지고 우성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만이 인간 행세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게놈프로젝트가 끝나고 유전자의 비밀이 밝혀지기까지의 기간을 과학자들은 ‘스핑크스의 침묵’이라고 부른다. ‘스핑크스의 침묵’이 끝나면 유전자치료와 유전자백신 등이 보편화되어 질병을 예방하는 DNA 예방법이 나타날 것이지만, 이에 따르는 의료 보험이나 취업규제는 어떻게 달라지겠는가? 실제로 미국의 일부 보험회사는 임신한 피보험자에게 태아의 유전자를 검사토록 압력을 넣고 있는 것처럼, 더 많은 병에 걸릴 확률이 있는 사람은 더 많은 보험금을 내야 할 것이며, 사원 채용 시 유전적으로 특정한 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나 특정한 도덕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지 않을 것이며 강도의 위험이 있는 사람들은 미리 사회로부터 격리를 당할 것이다. 정신병자가 아니라도 정신병의 유전자가 있는 사람들은 미리 정신병원에 격리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 인류를 정신적 파멸의 상태로 이끌 것이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그 여인을 죄 있다고 정죄 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삶의 기회를 허락하신 그리스도의 정신은 유전공학으로 무색케 될 것이며 누가 더 잘났느냐하는 논쟁이 세상을 휩쓸 것이다. 우성유전자 인간과 열성유전자 인간이 분리되어지고 우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이르게 될 것이다. 마음의 아름다움보다는 유전자적 우성이 결혼 배우자 선택을 좌우할 것이다. 사랑에 의한 회개와 믿음의 성화를 통하여 얻어지는 구원의 길은 잊혀지게 될 것이며, 죄인을 위한 사랑은 우성 유전자의 번식을 위하여 금지될 것이고, 친구의 아름다움과 영혼을 향한 기독교 정신은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어떤 신문기자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결과는 희망인가 공포인가”라는 기사로 유전자 연구가 사회에 미칠 문제들을 우려하였다.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으며 DNA 이중나선구조를 처음 발견하여 1988년 인간게놈프로젝트 총책임자로 선정된 제임스 왓슨씨는 활동 초기부터 이 프로젝트의 부정적 영향을 크게 우려하여 왔다. 미국 에너지부와 국립보건원이 지원하는 윤리~법~사회관계(ELSI)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초래할 사회적인 문제들을 연구하고 있으며, 1997년 11월 11일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29차 총회는 ‘인간 게놈과 인권에 대한 보편적 선언’을 186개 회원국 전원의 찬성으로 채택했다. 이 선언문은 “유전연구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명시하였다. 그러나 선언과 연구만으로 인류를 최악의 상태로 몰고 갈 수 있는 이 프로젝트의 부정적 파장을 멈추거나 해소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블레어는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발명품에 대해서는 여전히 특허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생명공학회사들이 유전자에 대한 국내적, 국제적 특허를 요청해 왔었으며, 그 주장을 인정하는 입장을 클린턴 대통령이 취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유전자 연구는 과학 선진국들의 손에 묶일 것이고, 특허를 갖고 있지 않는 나라에서는 유전자공학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난치병치료 등을 위하여 매번 특허료를 내야만 하며, 그렇게 될 경우 중요한 유정공학기술들이 몇 핵심 과학자들에게만 한정되어질 것이다.

게놈프로젝트가 아직 끝나서 완결되기도 전에 특허권의 요청과 상업적으로 유전공학을 쓰려는 논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인간의 역사는 바로 전쟁의 역사이었기 때문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고 지배하며 우성인들이 열성인들의 생명을 좌우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죽인 것처럼 죄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죗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죗된 본성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여지지 않으면 유전공학은 이렇게 치열한 상업적 쟁탈전속에서 고가를 이룰 것이며 병들고 가난한 자를 위하여 쓰여지기보다는 정치적 상업적 목적을 위하여,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원자폭탄을 만든 것처럼, 인류를 억압하는데 쓰여질 것이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이사야 55:1~2)

키메라 인간

희랍신화에는 양의 몸체에 사자 머리와 뱀 꼬리를 가진 동물이 등장하는데 이것을 ‘키메라’라고 부른다. 이 말을 따서 다른 종류의 유전형질을 한 몸에 지닌 잡종 생물을 ‘키메라 생물’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실제로 만든 키메라 동물로는 흰 생쥐와 갈색 생쥐의 분활란을 융합시켜 만든 ‘얼룩 생쥐’와 염소 머리와 양의 몸체를 가진 ‘염소양’이 있다고 한다. 즉 ‘키메라’라는 말은 한 생명체가 같은 종이 아닌 다른 종의 유전자를 받아서 그 형질을 발현시켜 만든 새로운 잡종체를 뜻한다. 이러한 잡종체는 자연교접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없으며 오직 유전 공학적 기법으로만 개발이 가능하다. 이러한 잡종체를 만드는 것도 자연법칙을 어기는 일이지만 만약 사람이 ‘키메라’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미국에서는 사람과 소의 잡종체를 만들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이 시점에서 미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농장에서 2000년 3월 14일에 공개된 복제 돼지 다섯 마리는 중요한 논쟁점을 제시한다. 복제 돼지를 만들려는 노력은 복제 소나 양을 만드는 일과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돼지의 장기는 인간의 장기와 유사해 이식에 적합하기 때문에 장기 부족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복제 돼지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사람인데 장기는 돼지 것이라면 이 사람은 인간인가 아니면 돼지인가? 이것은 바로 돼지와 인간의 혼합체인 ‘키메라 인간’일 것이다. 지금까지 돼지세포 이식 시에 걸릴 수 있는 바이러스 감염 문제로 많은 의학자들이 이를 반대해 왔었다. 그런데 영국의 생물공학회사인 이뮤트란의 수석 연구원 카잘 파라디스 박사는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최신호에 돼지의 장기나 세포를 인간에게 이식해도 돼지가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가 감염될 위험은 없다고 발표함으로 돼지 장기를 이용한 사람의 장기이식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파라디스 박사는 8개국에서 돼지의 세포를 이식하거나 장기를 이용한 환자 160명을 대상으로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정밀검사를 실시한 결과 돼지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증거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하였다. 이들은 인슐린을 만드는 돼지의 췌장세포를 이식 받은 당뇨병 환자, 일시적으로 돼지의 피부를 이식 받은 화상 환자, 인간의 장기를 기다리는 동안 잠정적으로 돼지의 간이나 신장을 이식한 환자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모든 돼지의 유전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될 수 있음이 시험관 실험을 통하여 밝혀지면서 이종이식에 대한 또 다른 우려를 일으키고 있으며, 다른 이종이식 실험에서는 이식된 동물의 세포를 즉각 인간의 면역체가 공격해서 죽이는 것으로 밝혀져서 면역체계의 이러한 거부반응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바이러스의 감염이나 면역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돼지의 장기를 갖고 살게 되는 인간의 정신적인 변화에 관한 문제이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것은 인간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의지와 감정과 영혼이 있다는 것이다. 이식할 수 있는 장기를 찾지 못하여 잠정적으로 돼지의 장기를 이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돼지를 유전공학적으로 복제시키면서 돼지 안에 인간의 장기를 키워서 그것을 영구적으로 인간에게 이식한다는 것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정신적 세계의 혼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몇 년 전 미국 어느 텔레비전 토크쇼에서는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 받은 사람들이 어떠한 성격적 변화가 그들에게 나타났는지에 대하여 방영한 적이 있다. 한 예로,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후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어 알아본 결과 그 심장의 원래 주인이 스포츠 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몸은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과학자는 설탕 섭취량을 줄임으로 많은 범죄를 막을 수 있음을 연구하였고, 특정 영양소의 부족으로 생기는 우울증과 정신착란증 등이 있음이 알려졌다. 간단한 운동으로 마음의 갈등을 해소할 수도 있는 것처럼 몸과 마음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돼지의 음식과 본능과 행동에 적응되어진 돼지의 장기가 인간에게 이식되어짐으로 인하여 생길 가능성이 있는 인간의 본능과 성격적 변화는 인간 존엄성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돼지의 심장을 갖고 인간처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마음은 몸을 주관하고 몸은 마음에 영향을 준다. 몸을 떠나 존재하는 영혼과 윤회와 환생의 사상이 만연한 지금 돼지의 장기를 갖던 돼지의 위를 갖던 인간의 마음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돼지가 먹는 음식에 길들여진 돼지의 위가 인간에게 들어와서 어떠한 음식을 달라고 하겠는가? 부모가 갖고 있는, 술, 담배, 마약에 대한 연약함이 유전자를 통하여 자손에게 전달되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이 시대에 돼지의 세포와 인간의 세포를 섞어버리는 돼지의 장기 이식을 어떻게 인간을 위한 과학이라고 하겠는가?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마음은 몸의 상태를 만들고, 그 몸의 상태가 마음을 꼴지운다는 의학적 상관관계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들 수 있는 것이며 정상적인 몸에 정상적인 마음이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예비하고 깨어 있으라”

인간은 혈연 가족 공동체를 갖고 있다. 아버지의 복제된 인간이 나온다면 그는 누구인가? 형제인가, 작은아버지인가, 혹은 아무 것도 아닌가? 혼인을 하여 가족을 이루는 것은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복제인간은 바로 창조 때 제정하신 가족제도를 깨뜨릴 것이다. 인간복제가 가능해진다면 인류의 결혼과 가족제도는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다. 친족관계가 혼란에 빠질 것이며, 결혼을 하지 않고도, 남녀가 결합하지 않고도 아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동성애자들도 아이를 가질 수 있게될 것이며 이것은 이 땅을 신속히 소돔과 고모라의 상태로 만들 것이다. 더 이상 남녀의 성 역할은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며 보통인간과 복제인간이란 두 부류로 사회가 분열될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생명공학이라는 방법을 이용하여 바벨탑을 쌓으려 한다.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는 수명의 기간을 조작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긴 삶이나 영구적인 생명을 쟁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노아 시대에 이미 시작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물들을 원상태로 복귀하기 위하여 홍수를 보내신 것처럼 이 땅을 청소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이다. 미국에서 DNA의 인공합성 연구가 성공한 것을 “생명체 인위적 창조 길 열었다”고 보도된바 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 등은 2000년 1월 23일에 “생명체의 기본 구성분자인 유전자(DNA)를 인공으로 다량 합성하는 데 성공해 최초의 합성 유기체(생명체)를 인위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이번 연구의 성공은 드디어 바벨탑의 마지막 돌을 올려놓은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날에 주가 임할는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24:36~42 참고)

지구 역사의 최대의 클라이막스는 돌연변이라는 진화론적 가상이 우주인에 의한 유전공학적 창조라고 바뀌어지면서 우리에게 나타난 새로운 가상적 신(우주인)을 사단이 현실화하면서 시작될 것이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23~26)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요한계시록 21:6)

고고학이 진화론을 지지하는 동시에 노아 홍수와 창조에 관련된 많은 증거들을 제시하여준 것과, 현대 과학기술이 인간의 생활을 메마르고 기계적인 사회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 세계 곳곳에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통신과 운송의 기회를 제공한 것처럼, 생명공학도 남자 없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예수님의 탄생의 신비의 한 비밀을 밝혀낼 수도 있을 것이며, 성경과 구원에 관한 많은 의미 있는 자료들을 제시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은 과학을 무시하지 않으며 반대하지도 않는다. 과학과, 의학과, 모든 학문의 발전은 성경을 더욱더 체계적으로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약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인간의 욕심과 야망을 채워나가기 위하여 인간이 넘어서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자연 생태계의 법칙을 혼란스럽게 만들며, 마음의 변화 없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바벨탑을 쌓으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흩으실 것이며,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홍수로 이 땅을 정결케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종말은 홀연히 이르러올 것이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마태복음 24:44, 잠언 3:1~3,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