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가장 좋은 친구 예수님


“가장 어려운 상황인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라. 그분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고 계시며, 당신의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것을 호전시키고 계신다.” Ministry of Healing,444

내 아이야, 난 오늘 네게 들려줄 말이 있단다. 내가 네 귀에 속삭이는 말을 네가 믿기만 한다면, 너에게 불어닥칠 폭풍우 구름을 아름다운 영광으로 도금할 수 있으며, 네가 다칠 수도 있는 거친 곳을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단다.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라는 짧막한 말을 네 심령의 가장 깊은 곳에 두고, 너의 지친 머리를 쉬게 하는 베개로서 사용되도록 하렴.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이 말은 너에게 닥쳐오는 모든 어려움들이 누구의 허락을 통하여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란다. 어떤 일이 너에게 고통을 줄 때, 그것은 나에게도 사무치는 아픔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다오. 왜냐하면“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나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고 기록했기 때문이란다(스가랴 2:8).

너는 내 눈에 참으로“보배”로운 존재란다(이사야 43:4). 네가 나에게“보배”가 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니?

시험이 네게 닥쳐오고,“원수가 홍수처럼 몰려올”때에, 연약한 네가 나의 강한 힘을 필요로 할 때에,“이 일이 네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너의 안전은 너를 위해서 싸우는 나의 능력에 대한 너의 전적인 의지에 달려 있음을 잊지말아라.

너를 무시하고, 너를 은근히 멸시하며, 너를 따돌리는 사람들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있지 않니?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나는 모든 상황을 처리하는 하나님 이란다. “네가 지금 처해 있는 그러한 형편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서 그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란다.” 너는 나에게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니? 너는 지금, 네가 원했던 겸손의 학교에 입학한 것이란다. 네가 처해 있는 환경과 너의 친구들은 단지 너를 향한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란다.

혹시 지금 너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지는 않니? 사업이 안되고 장사가 힘들어지니?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나는 너를 위하여 보물을 관리하는 하나님이란다. 너의 보물을 의지하지 말고, 보물을 관리하는 나를 의지해다오.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단다(빌립보서 4:19). 지금 네가 통과하고 있는 어려움을 통하여 내가 너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너는 보물을 의지할 것이니? 아니면 보물을 관리하는 나를 의지할 것이니? 너는 다음과 같은 선언을 듣지 않도록 조심해라.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신명기 1:32

온 밤을 걱정과 슬픔으로 지새우고 있지는 않니?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나는“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이사야 53:3. 세상에 있는 많은 위로하는 자들은 너를 위로하지 못할 것이야. 나는 네가 나에게 와서 영원한 위로를 얻게 되기를 얼마나 원하는지 몰라! (데살로니가후서 2:16,17)

어떤 친구가 너를 실망시키지는 않았니? 네가 네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 했던 그 친구가 너를 끝없는 실망의 절벽으로 밀어 버렸니?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그런 실망이 네게 임하는 것을 허락한 것은 바로 나란다. 나는 네 자신이 너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훨씬 많이 사랑하는 하나님이란다. 나는 너에게 다음과 같은 노래를 배워 주기를 원한단다.

“가장 좋은 친구, 그분은 예수님
내가 부를 때에 들으시며,
나의 모든 소원과 비밀을 귀담아 들으시는
가장 좋은 친구, 그분은 예수님”

나는 너의 확신과 신뢰의 근본이 되기를 원한단다. 누가 너에 대해서 사실이 아닌 말을 얘기한 적은 없었니? 그들을 나에게 맡기고, 너는 내게 좀 더 가까이 오렴. “악을 토하는 혀”에서 벗어나와 너의 방패인 내게 가까이 오렴. 내가“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편 37:6

계획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지는 않니? 그래서 지금 축 처지고 지쳐있지는 않니?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너는 네 스스로 계획을 세운 다음에, 나의 축복을 구하지 않았니? 그러나 너를 진정으로 위하는 계획은 내게 맡겨다오. 나는 모든 계획에 대한 책임을 지는 하나님이란다. “이 일이 그대에게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출애굽기 18:18. 너는 나의 도구일 뿐이지 일을 스스로 계획하고 성사시키는 능력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말아라.

너는 자신의 연약함을 보면서 자리에 누워있기 보다는, 나를 위해서 무언가 위대한 일을 하고 싶어하니? 너의 질병과 아픔이 내게서 왔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니? “이 일이 내게로 말마암아 난 것이라” 나는 네가 너무 분주히 일하기 때문에 네게 한마디 말도 붙여 볼 수 없었단다. 나는 너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고자 하였으나 그럴 수 없었단다. “단지 서서 기다리는 자들도 섬기는 자들이다.”라는 말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너는 다음과 같은 경험의 노래를 배워야해.

“지금 나는 열성이 넘치거나,
대담하거나, 강인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 과거의 일입니다.
마침내, 마침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나의 가장 위대한 일꾼들 중 어떤 이들은 자신의 활동적인 봉사를 완전히 그친 사람들이란다. 그들은 기도라는 무기의 사용법을 배우게 되었단다.

오늘, 나는 이 거룩한 기름의 잔을 네 손에 쥐어준다. 내 아이야, 아낌없이 이 성령의 기름을 사용하렴. 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모든 말을 들을 때, 너를 신경질나게 하고 조급하게 하는 모든 반대를 만날 때, 네 자신의 연약함이 드러나거든 이 기름으로 모든 것을 부드럽게 만들렴. “장애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교과서”라는 사실을 기억하렴. 모든 일에 있어서 나를 바라보는 법을 배울 때에만 세상과 네 자신을 정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단다. 그러므로“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라 ...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신명기 32:46-47

아이야, 너는 끝까지 살아남기를 소원하니? 그렇다면 이 말을 명심해다오. 네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게 될 것이다. 네 자신을 부인하기 위해서 죽기를 각오해라. 그러면 너는 살게 될 것이다. 네 자신이 죽지 않는 한, 너는 계속해서 시달림과 속상함과 분함과 원통함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란다. 네가 이러한 진리를 이해하게 될 때, 너는 너를 죽이기 위해서 달려들고 있는 주변 인물들과 사건들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이야, 이제,“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는 말을 이해하겠니? 이 말을 가슴과 뼈 속으로 이해하는 자들만이 최후까지 살아남는 이들이 될 것이란다.

“가장 어려운 상황인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라. 그분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고 계시며, 당신의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것을 호전시키고 계신다.”Ministry of Healing, 444

 

 

남편과 아내에게 보내는 글


나는 오늘 그리스도인의 가정과“살아있는 믿음”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살아있는 믿음”이란 우리를 죄와 세속과 이기심으로부터 지켜주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가정과 직장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생활이 세속적인 마음과 짜증과 불만으로 가득차 있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일 남편이나 아내가 서로 거칠고 온유하지 않은 태도로 말을 주고 받는다면, 그들은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참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으로 의롭게 된 의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가! 만일 우리의“믿음”이 남편이나 아내에게 부드럽고 친절한 말과 음성을 들려주는 것과 같은“행함”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3:18. 살아있는 믿음이 없이는, 어떤 사람도 하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남편들과 아내들이시여, 그대들은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영생을 결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닥쳐오는 모든 종류의 시험과 시련에 부딪힐 때마다,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으로 그것들을 대적하는가? 아니면 하루종일 그것들에 질질 끌려다님으로서 신경질과 분노와 원망 속에서 하루를 마치는가? 만일 남편과 아내로서, 우리가 살아있는 믿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교회에서 인정받는 장로(권사) 입니다. 나는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빠지지 않고 냅니다.” 물론, 그런 모든 희생과 헌신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그대들이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바울의 영감적인 말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리스도인은 모든 위기의 순간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아야 한다”라는 영감적인 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한번은 어떤 교회의 부흥회에 강사로 간 적이 있었다. 10분 후면 설교 단상에 올라가 설교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때에 아내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다. 그때 막 설교 단상으로 올라가려고 하였던 순간이었다. 나는 항상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설교 단상에 올라가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 받아왔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늦거나 정해진 시간이 너무 가까우면 불안해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던 때는 잠시 후에 전할 말씀을 명상하며 기도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고 굴복하는 것에 대해서 설교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내 마음 속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 하필이면 지금 이 시간에 전화를 해서 정신을 분산시킬게 뭐야!
- 설교 15분 전에는 항상 기도를 하면서 준비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왜 전화를 걸어서 문제를 일으켜!
- 전화할 일이 있으면 다른 시간에 걸어도 되잖아!
-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데, 목사 부인이 이렇게 부주의해서야 어떻게 해!

남편들과 아내들이시여! 살아있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모든 위기의 순간마다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기로 선택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참된 믿음은 선택이라는 행함을 생산해 낸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라는 사도 야고보의 말처럼....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살아있는 믿음을 통하여 나의 영혼을 순결하게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육체 속에서 올라오는 짜증과 신경질을 토해 냄으로써, 나의 영혼을 더럽혀야 하는가? 지난 주일, 그대들은 성가시게 하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어느 쪽을 선택하였는가? 그대들의 자녀가 불순종하며 고집부렸을 때, 어느 쪽을 선택하였는가? 바로 이러한 상황들이 가정에서 그대들이 맞는 위기의 순간들이다. 가정에서 위기에 접했을 때, 그대는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음으로써 살아있는 믿음을 행사하는가? 아니면 육체가 이끄는대로 짜증내고, 화를 내며, 소리를 높이는가?

아내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의 마음 속에서는 무서운 투쟁이 벌어졌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양심을 통해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라고 호소하셨고, 나의 육체적 본능은 아내의 잘못을 계속해서 지적하면서 따끔하게 한마디 하라고 충동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계속적이고 지칠줄 모르는 기도와 노력에 의해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육체 저 아래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어떤 것과 싸워야만 하였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브리서 12:3-4. 나는 내 자신의 잘못된 감정과 생각을 부인해야만 하였다. 그렇게 해야만 자아를 정복하고 승리의 경험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즉시로, 나의 잘못된 생각과 감정을 변화시켜 줄 것을 간구하는 기도를 마음 속으로 드렸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조용히 내게 부어졌다.

나는, 하나님께서“나의 은혜가 네게 족하다. 너의 육체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짜증스런 정신을 버려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을 통하여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였다. 나는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들어 와서 감정과 느낌을 바꾸어 주실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했다. 내 마음의 한쪽 구석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가 뿜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나는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솟구치는 죗된 욕구를 정복할 수 있었다. 나는 부드럽고 온유한 음성으로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여보,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내가 도와줄 일이 있는가 보군.” 나는 그 무서운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나는 살아있는 믿음을 통하여 승리할 수 있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아내로부터“여보, 고마워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설교하는 동안, 당신을 위해서 기도할께요”라는 말을 듣고서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나는 정각에 설교 단상에 올라가서 설교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의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믿음에 대한 경험을 신자들에게 강력하게 설교할 수 있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 것이라.”야고보서 1:26. “헛 것”이라는 말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교회 안에서 아무리 경건하게 보일지라도, 가정 안에서 살아있는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 그 사람의 경건은 무가치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남편들과 아내들이시여, 그대들의 혀를 잘못 사용함으로써, 그대의 신앙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겠는가? 오랜 세월동안, 나는 나의 혀를 잘못 사용함으로써, 나의 그리스도인 생활을 무가치하고 헛된 것으로 만들었다. 비록 내가 매 주말마다 교회에 참석하고, 성경을 내 인생의 원칙으로 인정하며, 열심을 다하여 교회 행사에 헌신적으로 참여했을지라도, 나는 가정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위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다. 그분의 음성이 마음 속에서 들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생각과 감정과 느낌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나의 믿음(?)은 짜증과 불만과 분노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이는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5. 이제, 나는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배웠다. 예수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수를 마신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드디어 이해하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다(누가복음 18:8). 만일 예수께서 지금 이 세상에 오신다면, 그분께서는 우리 안에서 자신을 부인하는 살아있는 믿음을 볼 수 있을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태복음 17:24. 그대는 세속과 정욕과 이기심과 짜증과 분노와 미움에 대해서“No”(아니요)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부인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만일 그대가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대는 그리스도인으로 소유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경험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있는 믿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승리의 경험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죄와 세속과 이기심으로부터 날마다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경험이 너무도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죄와 세상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없다면,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날마다 계속되는 생활에서 유혹이 다가올 때, 성령께서는 우리의 양심 속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신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이사야 55:3. 그분의 음성을 들을 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부인하고, 그분의 말씀에 동의함으로써, 그분의 뜻을 행하기로 선택하라. 바로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 그것은 마음 속에 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신뢰하고 믿음으로써, 자신의 뜻과 생각을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 겨울이었다. 나의 큰 아들이 공항까지 차를 몰겠다고 말해서 자동차 키를 주었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았다. 커브 길을 돌아갈 때, 갑자기 차가 미끄러지면서 돌면서 길 옆 구덩이에 빠지게 되었다. “믿음은 모든 위기의 순간에 그리스도의 손을 잡는 것이다.” 나의 육체는 즉시로 발동하기 시작하였다. 짜증과 불쾌한 감정이 나를 사로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나에게 순간적인 감정과 느낌을 버리고 그리스도께 의지하라고 속삭여 주셨다. 나는 누구의 음성을 붙잡아야 하는가? 육체의 소리에 굴복해야 하는가? 아니면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순종해야 하는가? 믿음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손을 붙잡음으로써 자신을 부인하라는 소리를 들려준다. 그러나 육체는“네가 원하는대로 해버려!”라는 소리를 외친다. 내 마음 속에서는 무서운 선과 악의 대쟁투가 벌어졌다. 그날, 나는 조용히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기로 선택하였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서 아들의 어깨에 손을 두루며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얘야, 오늘 아침의 이 사고는 네게 매우 유익한 경험이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은게 다행이다. 자, 차를 꺼집어 내서 서둘러 공항에 가자.” 감미로운 그리스도의 영이 나의 말을 부드럽고 동정적으로 다듬어 주셨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아들에게 살아있는 믿음에 대해서 설명줄 수 있었다.

사랑하는 부모들이시여, 우리의 자녀들은 살아있는 믿음을 부모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배우고 있는가? 살아있는 믿음은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간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믿음이란 성경절을 외우거나 교리를 연구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있는 믿음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가정이다. 가정에서 실천되지 않는 믿음과 신앙을 보면서 성장한 수많은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교회를 등지고 세상으로 나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자녀들에게“살아있는 믿음”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만일 그대가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대도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 위기의 순간마다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놓치지 말아라. 위기의 순간마다, 그리스도께 손을 뻗음으로써 구조를 청하라. 그대 자신에게는 육체의 정욕과 감정과 느낌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믿음의 손을 뻗어서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아라. 믿음으로 뻗은 손을 통하여 그대는 하늘로부터 한 능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분께서 주시는 변화시키는 능력을 통하여 그대는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대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변화를 받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 가져오는 변화이다! 믿음은 마음 속에 사랑을 가져오며, 영혼을 순결하게 보존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17

아직도 인슐린 주사를 맞고 계십니까?

캘빈 트레쉬 의사

미국 당뇨병 협회의 발표에 의하면, 현재 미국에 1천4백만명의 당뇨병 환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그 중에 절반 이상은 자신이 당뇨병 환자인지도 모른채 지내고 있다. 적어도 60초에 한명씩 당뇨병이라는 진단을 받고서 병원을 나서는 것으로 통계 자료는 말하고 있다.

당뇨병은 현대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질병 중에서 랭킹 3-4위에 속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당뇨병은 나이에 제한받지 않는 질병이다. 그것은 어린 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 까지 모든 나이의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질병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생활 환경이 바뀜에 따라서 당뇨병이 발병될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이 증가된다. 당뇨병의 발병률이 가장 높은 그룹은 45세 이상의 남녀들이며, 여성이 남성보다 발병률이 약간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 더욱 높은 경향을 나타낸다. 당뇨병이라는 이름은 혈당이 180 이상일 경우, 소변으로 당이 빠져 나오기 때문에 부쳐진 이름이다. 당뇨병의 증세는 심한 갈증, 과도한 소변량, 체중 감소와 함께 힘이 빠지는 현상 등이 생기며, 혈액 중의 당의 양이 높기 때문에 피부나 음부와 같은 점막 부위가 곰팡이에 의해서 감염되기 쉽다.

당뇨병에는 두종류가 있는데, 유아 당뇨(Type I)와 성인 당뇨(Type II)로 나누어 진다.

유아 당뇨(Type I, 인슐린 의존형)

일반적으로 유아 당뇨는 15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에게 생기지만, 모든 나이의 사람들에게 발병될 수 있다. 유아 당뇨는 유전적인 요인과, 바이러스의 침입에 의해서 기인될 수 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유아 당뇨가 바이러스의 감염에 의해서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몸 안에 들어온 바이러스가 베타 세포(췌장에서 인슐린을 생산하는 세포)를 파괴함으로서 유아 당뇨가 발병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의 당뇨병 증세도 어른들과 거의 유사하지만,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체중이 정상보다 부족한 상태에서 발병되는 경향이 있다. 유아 당뇨에 걸린 아이들은 식욕이 매우 왕성함에도 불구하고 키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유아 당뇨에 걸린 아이들의 키는 당뇨병을 잘 조절하는 정도에 따라서 결정된다.

체내에서 인슐린을 전혀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에 혈당치를 조절하기 위해서, 하루에 몇차례씩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유아 당뇨는 매우 불안정하며, 혈당치의 변화폭이 매우 크기 때문에 조절하는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유아 당뇨의 경우, 인슐린 주사량은 몸의 크기에 따라서 결정되기 때문에,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몸이 성장함에 따라서 주사량이 증가되게 된다. 이러한 경우 어린 아이와 부모는 당뇨병이 악화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유아 당뇨는 반드시 세심한 조절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초기에는 반드시 전문가의 지도하에 치료받아야 한다.

성인 당뇨(Type II, 인슐린 비의존형)

성인 당뇨는 타입 II 라고도 불리우는데, 주로 40세 이상의 성인들에게 발병된다. 성인 당뇨는 대체적으로 체중이 정상보다 많으며, 비활동적인 사람들과 정제되거나 가공된 식품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찾아 온다. 성인 당뇨의 경우, 유아 당뇨병과는 달리 체내에서 인슐린을 부분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비만형의 성인들 가운데 80%에게 당뇨병이 발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형의 당뇨 환자들의 경우, 적당한 영양을 공급하는 상태에서 체중을 줄이는 것에 치료의 목표가 맞추어 진다. 체중이 정상으로 조절될 경우, 이러한 환자들은 인슐린 주사량을 크게 줄이거나 전혀 맞지 않을 수 있다. 신체에서의 인슐린 요구량은 몸의 크기에 근거하여 정해지기 때문에, 몸무게를 정상보다 5-10% 정도 낮게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뇨병 환자들은 심장질환이나 혈관에 생기는 질환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매우 많이 있다. 미국의 경우, 당뇨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75%가 혈관에 관련된 질병들과의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뇨병은 간의 경화 현상, 췌장염, 췌장에 생기는 종양, 뇌하수체나 갑상선의 장애 등으로도 발전될 수 있다.

당뇨병에 먹는 약들의 안전도에 대한 의문이 제시되고 있다. 심한 빈혈, 황달, 저혈당으로 인한 혼수 상태, 호흡이 짧아짐,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짐 등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다음에 나오는 치료법은 주로 성인 당뇨를 위한 치료법이지만, 유아 당뇨에도 이와 유사한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치료법

1. 당뇨병을 정복하기 원하는가? 먼저 식탁에서 지방을 제거하라: 60명의 당뇨 환자들에게 지방이 전혀 포함되지 않는 식사(fat-free diet)를 공급하였더니 혈당치와 소변으로 빠져 나오는 당의 양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식단에서 지방을 완전히 제거한 후 3-4일만에 급격한 저하가 이루어졌다. 식물성 기름일지라도 철저하게 제한해야 한다. 지방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천연적인 상태의 너트류(호두, 알몬드, 잣 등)도 너무 많이 섭취하지 말아야 한다.
2. 규칙적으로 운동을 할 것: 운동은 당뇨병 환자에게 매우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 줄 뿐 아니라, 합병증으로 올 수 있는 심장 질환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3. 고섬유질의 식사를 할 것: 고섬유질의 식사는 식사 후의 혈당치를 낮추어 주고, 인슐린의 요구량을 저하시켜 주며, 세포 조직이 인슐린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들어 준다. 정제되지 않은 천연 섬유질은 당뇨병의 정복에 있어서 필수적인 무기이다.
4. 과식을 조심할 것: 특히, 비만형의 환자나 비활동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과식은 매우 해로운 결과를 가지고 온다.
5. 복합 탄수화물(전분과 섬유질이 합성된 상태의 탄수화물)과 콩과식물의 섬유질을 많이 섭취할 것: 복합 탄수화물은 인슐린의 요구량을 낮추어 준다. 또한 섬유질은 탄수화물의 흡수를 지연시켜 주므로 식사 후에 당이 올라가는 것을 막아 준다. 한 실험 집단에게 8종류의 마른 콩으로 마련된 식사를 제공한 결과, 일반적인 식사를 하였던 사람들보다 혈당의 최고치가 45% 가량 저하되었다.
6. 설탕과 설탕이 함유되어 있는 식품을 경계할 것.
7. 우유와 설탕의 혼합물을 경계할 것.
8. 커피를 금할 것: 커피는 혈당을 비정상적으로 높인다.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는 모든 종류를 금해야 한다. 당뇨병에 걸린 쥐에게 카페인을 주입하고 6시간 후에 혈당을 검사하였더니 평상시보다 2배나 높은 혈당치가 나왔다. 그러나 건강한 쥐에게 카페인을 주입하였더니 혈당치가 저하되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9. 질산염이나 아질산염으로 처리된 가공식품을 경계할 것: 고기를 장기 보존하기 위해서 처리하는 화학물질인 질산염(아질산염)은 암이나 당뇨병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10. 당뇨병 환자에게 있어서 식사 시간은 매우 중요한 문제임: 규칙적인 시간에 식사를 하게 되면, 인슐린 제조 공장인 췌장은 규칙적인 스케쥴에 따라서 기능을 수행하게 되고, 휴식시간에는 스스로 고장난 부위를 치료하게 된다. 또한 식사를 급히 하면, 혈당의 고저폭이 불안정하게 증대된다.
11. 마늘은 소변으로 빠져 나오는 당의 양을 줄여준다.
12. 먹는 피임약은 혈당의 조절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13. 당뇨병은 염증에 약하며, 염증의 치료를 지연시키기 때문에, 신체를 항상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면에 있어서, 충분한 휴식과 수면은 매우 필요하다.
14. 흡연을 금할 것: 흡연가는 비흡연가보다 인슐린의 요구량이 증대된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의 경우에는 최고 30%까지 인슐린의 요구량이 증가한다.
15. 비만형의 당뇨환자의 경우, 1-5일의 금식은 매우 유익한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음: 단, 금식은 전문가의 지도하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일반적으로 유아 당뇨 환자의 경우에는 금식을 해서는 안됨.
16. 요리하지 않은 신선한 채소의 섭취률을 증가시킬 것: 요리하지 않은 신선한 채소 섭취량을 증가시켰더니, 인슐린 요구량이 저하되었다.

당뇨병에 유익한 식물과 약초

식물:부루쉘 스프라웃(일명, 새끼 양배추)
꼬투리를 먹는 콩(깍지 강남콩, 깍지 완두)
알파파
양파

약초:페드라휴메카
포디알코(타히보)

설탕과 에스키모인

에가타 트레쉬 의사(예방 의학 전문가)

컬럼부스가 미국을 발견한 이후, 설탕은 매우 중요한 대중 식품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수세기 동안, 설탕은 부엌에서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19세기 말옆, 설탕이 각종 식품에 첨가되는 중요한 감미제로 등장하게 된 후부터, 몇몇 특정한 종류의 질병들이 만연되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충수염(appendicitis), 편도선염, 심장병, 위궤양, 당뇨, 정신 질환(특히, 우울증과 기괴한 상상에 빠지는 현상),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질서와 조직력을 잃어버리는 현상 등이 있다.

심장병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만연되고 있는 질병 중의 하나로서, 부절제하고 불규칙적인 생활로 인해서 발병된다. 라이프 스타일과 식생활 습관을 바꿈으로써 심장과 혈관에 관련된 질병들을 쉽게 예방할 수 있다. 설탕이 심장병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설탕을 섭취함으로써, 심장병과 관련있는 두개의 중요한 혈중 지방치가 상승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트라이글리세라이드(triglyceride)는 설탕을 많이 섭취함으로써 상승되는 혈중 지방이다. 트라이글리세라이드의 수치는 심장마비의 위험도를 알려주는 기준치가 된다. 트라이글리세라이드는 나이에 비례하여 증가되지만, 설탕이나 정련된 탄수화물(흰쌀, 흰밀가루) 등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기준치의 수배 이상으로 뛰어 오르게 된다. 콜레스테롤 역시 혈중 지방의 한 종류로서, 설탕의 섭취량에 영향을 받는다.

설탕은 백혈구 세포 중에서 식세포의 활동을 저하시킨다. 식세포의 식작용에 의해서, 백혈구는 몸안에 들어온 균들을 잡아 먹게 된다. 설탕을 전혀 섭취하지 않았을 경우, 백혈구는 30분 동안에 약 14세균을 잡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6티스푼의 설탕을 섭취하였을 경우, 식작용은 크게 저하되어서 30분 동안에 오직 10세균을 죽이게 된다. 6티스푼 설탕의 양은 가게에서 파는 음료수 한병에 들어 있는 양이다. 12티스푼 설탕을 먹었을 경우(음료수 한병과 도우넛 한개), 식작용은 30분 동안에 5.5세균을 죽이는 것으로 저하된다. 24티스푼의 설탕을 섭취하게 될 경우, 백혈구는 30분 동안에 오직 1세균을 죽일 수 있을 뿐이다. 혈액 중의 당분(설탕)의 수준은 신체의 저항력에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설탕을 적게 섭취하는 사람일수록 세균에 대해서 좀 더 강력한 저항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종류의 피부병, 특별히 여드름의 경우, 설탕의 섭취량이 증가됨에 따라서 악화될 수 있다. 지금부터 10여년 전에 알라스카의 알칸 고속도로가 완공되었다. 그 고속도로가 완공된 이후부터, 알라스카의 에스키모인들에게 코카콜라, 펩시콜라, 그리고 각종 가공 식품들과 정련된 곡물들이 계속해서 공급되기 시작하였다. 부드럽고 윤기있는 피부를 가지고 있던 에스키모인들의 얼굴에 여드름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에스키모인들 가운데 첫번째 쓸개 질환이 생기게 되었고, 에스키모인의 첫번째 췌장 수술이 알라스카에서 시술되었다. 또한 심장 질환이 에스키모인들에게서 나타나게 되었으며, 에스키모인들의 치아에 심각한 훼손이 일어나게 되었다. 설탕이 그들의 식생활에 도입되기 이전에는 있을 수 없었던 일들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정제된 탄수화물(흰쌀, 흰밀가루)과 우유를 섭취하는 사람들은 장(colon)에 여러가지 장애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식품들은 장에 변비를 가져옴으로써, 장의 질병을 가속화 시킨다. 장의 내부가 원할하게 소통되지 못하면, 복부에 가하는 압력이 증가 된다. 또한 위장의 윗부분이 가슴 쪽으로 밀려 올라 가게 되어서, 가슴이 불편하고 가슴앓이를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설탕이 여러가지의 질병과 관련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기까지에는 수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그런데 클리브 박사와 버킷 박사는 지금까지 언급한 질병들과 설탕의 섭취량의 관계를 밝히게 되었다. 우리의 혀를 즐겁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설탕이 인류에게 가져온 질병의 재앙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각종 과일 통조림, 대부분의 가공된 과일쥬스(용기 겉면에 당분이 없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을지라도, 미국 보사부는 탄수화물의 특정 함유량까지는 설탕의 추가를 허용하고 있음)에는 상당량의 설탕이 숨겨져 있다. 심지어는 핫도그에도 설탕이 포함되어 있다. 자신은 설탕을 많이 섭취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하루에 15-20 티스푼의 설탕을 쉽게 먹게 되는데, 이러한 정도의 설탕으로도 백혈구의 활동이 크게 저하되며, 트라이글리세라이드의 수치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설탕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의 경우, 하루에 40-50 티스푼 이상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탕을 사용하지 않고 음식의 맛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 설탕 대신에 꿀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꿀에도 상당량의 설탕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설탕을 적게 섭취할 뿐만 아니라, 그대의 혀도 변화되어야 한다.

설탕을 삼가하는 방법 4가지

1. 설탕 대신에 말린 과일, 특히 대추나 말린 감을 믹서에 갈거나 잘게 썰어서 설탕 대신에 사용하라.
2. 각종 화학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의 자연이 주는 신선한 맛을 즐기는 법을 배우라.
3. 각종 식품에 포함되어 있는 설탕을 경계하라.
4. 입맛을 바꾸기 위하여 자기 자신과 투쟁하라. 잘못된 습관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댓가를 지불해야 하지만, 그 결과는 건강의 회복으로 보상받게 될 것이다.

설탕의 섭취량과 백혈구의 세균 박멸 숫자 비교표

설탕 섭취량(티스푼) 백혈구가 파괴하는 세균 숫자 백혈구의 저항력 감소율(%)
0 14 0
6 10 25
12 5.5 60
18 2 85
24 1 92

가공 식품 속에 숨겨져 있는 설탕

가공식품 설탕 함유량(티스푼)
쵸코렛(보통 크기) 7
껌(1개) 0.5
쵸코렛 케익(1조각) 15
도우넛(1개) 8
아이스크림(반컵) 5-6
애플파이(1/6조각) 12
쵸코렛 우유(1컵) 6
코코아(1컵) 4
잼(1큰수저) 3
꿀(1큰수저) 3
젤리(1큰수저) 2.5
복숭아 통조림(2조각) 3.5

 


 

믿음으로 병을 고친 여인의 이야기


이 글은 The Pathway to The Health & Happiness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마태복음 9:21. 이 말은 한 불쌍한 여자, 곧 12년 동안 질병으로 고생한 한 여인의 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치료를 위한 비용으로 사용했지만, 다만 고칠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을 뿐이다(마가복음 5:25-26). 그러나 어느날, 그녀는 위대한 치료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완전한 좌절 가운데서 방황하던 그녀에게 새로운 희망이 소생되었다. 그 여자는“만일 내가 그분께 이야기를 할 수 있을만큼 가까이 갈 수만 있다면,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한 유대의 랍비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는 중이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마가복음 5:23. 이 간절한 탄원은 부드럽고 동정심 깊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즉시 그 회당장과 함께 그의 집을 향하여 떠나셨다.

그리스도의 주위로 너무도 많은 군중들이 몰려 왔기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천천히 걸어갈 수 밖에 없었다. 군중을 뚫고 나가시는 중에 구주께서는 앓는 여자가 서 있는 곳 가까이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여자는 주님께 접근하기 위해서 가진 애를 써 보았지만 헛수고에 불과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가 그 여자에게 찾아 왔지만,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서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들이 그분의 겉옷을 만짐으로써 치료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녀는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까 염려하면서,“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여자의 마음을 이미 아시고, 그 여자가 서 있는 곳으로 발을 옮기셨다. 그분께서는 그 여자가 자신에 대해서 큰 필요를 느낌으로서, 믿음을 행사하도록 도와주고 계셨다. 그분께서 지나가시자 그 여자는 예수님의 뒤에서 그분의 겉옷 자락을 간신히 만지는데 성공하였다. 그 순간 그녀는 고침을 받은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그 단 한번의 접촉에 그녀는 자신의 모든 믿음을 집중시켰다. 즉시로 그의 고통과 질병은 사라졌다. 그 여자는 그 순간에 온 몸을 통하여 흐르는 전류와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에게 완전한 건강이 주어졌다는 느낌이 왔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마가복음 5:29.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해진 그 여자는 12년의 오랜 세월을 통하여 의사들이 자신에게 했던 것보다 더 큰 일을 단 한번의 접촉을 통하여 이루어 주신 위대하신 치료자 예수님께 온 마음을 다하여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하였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시고 주위를 둘러보면서,“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질문하셨다. 베드로는 놀란 표정으로 주님을 바라보면서“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누가복음 8:45).

예수님께서는“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46절). 예수께서는 부주의한 자들과의 우연한 접촉과 간절한 믿음의 접촉을 정확하게 분별하셨다. 한 여인이 생애의 심각한 목적을 가지고 그분을 만졌을 때, 즉시로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여인의 마음을 몰라서 질문하였던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과 제자들과 또한 그 여자에게 주고자 하시는 교훈이 있었다. 그분께서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시기를 원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치료의 능력을 가져온 것은 구세주께 대한 그녀 자신의 믿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여자가 감사한 마음으로 나타내는 신앙 고백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셔야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그녀의 믿음을 인정하셨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이해시키기를 원하셨다. 그녀는 주님께서 이미 자신의 고통을 알고 계셨다는 사실과 그녀의 믿음을 예수께서 인정하셨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깨달아야만 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바라보시면서, 누가 당신을 만졌는지를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것을 깨닫고, 그 여인은 떨면서 앞으로 나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렸다. 그녀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이 그분의 겉옷을 만진 이유와 즉시로 고침을 받게 된 내력을 이야기 하였다. 그 여인은 자신이 그분의 옷을 만진 것이 참람된 행위가 아니였는가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입에서는 한마디의 책망의 말씀도 나오지 않았다. 인류의 불행에 대한 동정으로 충만한 사랑의 마음이 그분의 입에서 표현되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누가복음 8:48. 그 말씀은 그녀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을까! 이제 그녀는 완전한 기쁨과 평안을 가지고 그 자리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 주위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몰려들어 온 수많은 군중들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옷깃을 스쳤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력이 나누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참된 믿음으로 그분을 만진 병든 그 여인은 고침을 받았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는, 우연하고 부주의한 접촉과 믿음의 접촉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스도를 단순히 세상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믿음은 결코 영혼에게 치료를 가져올 수 없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단순히 복음의 가르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므로, 각 개인이 그분을 믿음으로써“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되는 것이다(요한복음 3:16). 그분께서 약속하신 말씀에 따라서, 내가 그리스도께 나올 때, 나는 그분의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부터 사는 생애는“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되어야 한다(갈라디아 2:20).

많은 사람들은 믿음을 일종의 견해나 진리에 대한 동의라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을 구원하는 믿음은 일종의 계약 관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을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로 연결하게 된다. 살아 있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신앙의 활력을 얻으며,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하늘 높이 향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사람에게 승리하는 능력이 된다. 그러한 믿음은 질병을 정복할 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죄와 세속을 정복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은 죽음보다도 강력한 정복자이다. 만일 병자들로 하여금 믿음의 눈으로 강력한 치료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놀라운 결과를 목격할 것이다. 그것은 육체 뿐만 아니라 심령에도 생명을 줄 것이다. 부절제와 방종으로 꼴지워진 잘못된 습관과 생활의 결과로 얻은 질병의 희생자들에게, 그들이 달려가고 있는 파멸과 절망의 늪을 지적해 주는 대신, 그들의 눈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도와주라. 환자들로 하여금 하늘의 영광을 주목하게 하라. 속절없고 절망적인 환자들이 이러한 도움을 받게 되면, 그들은 자신들 앞에 놓여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초월하여 놀라운 위로와 평화를 육신과 영혼에서 얻게 될 것이다.

 


 

Life Line


당뇨병을 고칠 수 있는 6가지 비결

1. 동물성 지방을 제거하라
2. 식물성 지방을 제한하라
3. 설탕을 경계하라
4. 채식을 하라
5.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과로를 피하라
6. 하나님께 나아가 그대의 모든 부담과 짐을 벗고, 평화와 치료의 선물을 받아라. Light For Life 제공

수도물에 납성분이 있습니까?

수도물에 납성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수도물에 섞에 나오는 납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미국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의하면, 수도물 속에 포함된 납성분으로 인하여 241,000명의 혈액이 위험한 수준까지 오염되었다. 미국에서 1940년 이전에 지어진 집들의 상수도 파이트는 납이나 납이 포함된 합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파이프의 연결부위가 납으로 땜질되어 있기 때문에 수도물에 납성분이 섞여 나온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오래된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수도 파이프를 확인해서 바꾸는 것이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사용하기 전에 5분 동안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 좋다. 밤이나 여러시간 동안 수도물을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수도물 속으로 납성분이 용해 될 수 있다. 보일러에서 데워진 뜨거운 물을 식수로 사용하지 말라. 뜨거운 물은 찬 물보다 빨리 납성분을 분해시킨다. Berkley Wellness Letter

부엌에서 어떤 식용유를 사용하십니까?

최근, 미국에서 카놀라 기름(canola oil)의 사용량이 거의 두배로 증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카놀라 오일에는 심장과 혈관에 해로운 포화 지방(saturated fat)의 함유량이 가장 적으며, 단기 포화 지방(mono-saturated fat)의 함유량도 올리브 기름 다음으로 적기 때문이다. Health & Healing

청소년 흡연 문제

날마다 3000명 이상의 청소년들과 어린아이들이 담배를 피기 시작하는 것으로 밝혀 졌다. 흡연을 시작하는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Last Generation

옻이 올랐습니까?

포이즌 아이비, 포이즌 오우크과 같은 옻나무에는 캐슈나 망고에 있는 성분과 같은 종류의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캐슈 껍질이나 망고의 껍질에는 민감한 사람들의 피부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먼저 비누로 잘 닦은 다음에, 흐르는 물로 잘 씻고, 베이킹 소다나 오우트 밀을 물에 풀어서 접촉 부위를 계속 씻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Emphasis Your Health

전기 담뇨가 위험합니까?

고주파의 위험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각종 가전 제품에서 발산되는 저주파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전기 담뇨에 대해서는 여러가지의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버클리 대학에서 나오는 Berkeley Wellness Letter에 발표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일반적인 전기 제품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전기 담뇨의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별히 임신부의 경우에는 위험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 담뇨를 사용할 경우,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전기 담뇨를 미리 켜놓아서 따뜻하게 만든 다음, 잠자리에 들 때에는 전기 담뇨의 전원을 끔으로써 전기 자장의 영향을 피할 수 있다.
전기 담뇨를 선택하는 요령: 전기 자장의 발산률을 75-94%까지 낮춘 전기 담뇨가 나오고 있다. 두개의 분리된 전선이 담뇨 안에 삽입된 담뇨는 가장 낮은 전기 자장을 형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American Consumer? Report

 

물의 능력을 아십니까?

몸과 마음과 영혼을 위한 창조주의 치료제

이 기사는 Last Generation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혹시 엄청나게 많은 접시들을 설겆이 해본 일이 있습니까?

설겆이를 해본 사람들은 더러운 찌꺼기를 깨끗하게 씻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한지 아실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뜨거운 물이나 비눗물도 필요하지만, 마지막 헹구는 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깨끗한 물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도 설겆이나 물청소를 할 때에 물이 없이 청결하게 일을 끝마칠 수 없습니다.

하루의 생활을 마칠 때, 우리의 신체 내에는 씻어내야 할 많은 양의 접시들이 쌓이게 됩니다. 여러가지 찌꺼기들이 남겨져 있는 더러운 접시들은 반드시 청결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신체가 전체적으로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날마다 약 40,000컵의 물이 사용되어 집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40,000컵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물을 날마다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매우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디자인해 놓으셨습니다. 몸안에 있는 액체는 재순환 시스템에 의해서 체내에 잘 보존됩니다. 만일 이러한 시스템이 없다면, 우리는 항상 물병을 입에 물고 살든지 또는 탈수현상으로 인하여 고통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토록 효율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날마다 체내에 적당한 양의 물을 공급함으로써, 숨을 쉬고 땀을 흘리며 배설되는 수분을 반드시 보충해야만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물

생명을 유지하는 모든 기능들은 물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활동적으로 일하게 된다. 만일 눈물샘이 계속적으로 눈동자를 적셔주시 않는다면, 우리는 눈을 제대로 깜박이지도 못하게 된다. 수분의 얇은 막이 없으면, 눈동자의 표면은 건조하게 되어서 붓게 되며, 눈을 감고 뜰 때마다 끔직한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각 세포에서 영양분을 받아들이는데에도 물이 사용되며, 세포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씻어내는데에도 물이 사용된다. 물이 부족할 때에 우리 몸 안에 축적되는 쓰레기를 제대로 청소해 낼 수 없다. 믿지 어렵겠지만, 70평방미터의 표면적을 가지고 있는 폐는 항상 수분에 의해서 촉촉하게 적셔져 있어야 한다. 폐에 있는 수분은 폐로부터 나온 산소를 혈액 속으로 실어 나름으로써, 신체의 각 부분에서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게 한다. 수분이 없다면, 우리는 산소 부족으로 곧 질식하게 될 것이다.

신체 내에 있는 물의 약 50%는 근육 안에 저장되어 있다. 만일 우리 몸에서 탈수 현상이 생기면, 우리는 곧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오래 전에, 유럽에 있는 두개의 산악 등반팀이 서로 먼저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을 탈환하고자 경쟁하였다. 그들은 스위스 팀과 영국 팀이었는데, 스위스 팀은 이미 여러번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한 전적을 가지고 있었다. 스위스 팀의 문제는 그들이 너무도 쉽게 기력을 잃고 지치는데에 있었다. 그래서 영국 팀의 팀닥터는 스위스 팀의 의료 진찰 카드를 검토한 결과, 그들이 하루에 오직 2잔의 물을 마셨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산악인들은 매우 심한 운동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쉽게 지치고 탈수된다. 영국팀의 의사는 영국 산악팀원들에게 하루에 12잔의 물을 마실 것을 권고하였다. 이러한 단순하면서도 치밀한 권고에 의해서, 영국팀은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안과 밖으로 필요한 물

신체 생리학적 연구 결과, 하루에 적어도 5잔 반의 물이 대체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하루에 6-8잔의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한꺼번에 많은 물을 마시는 것보다는 하루에 여러번에 걸쳐서 적당량의 물을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장 아이디얼한 계획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2잔의 물을 마시고, 오전에 2잔, 오후에 2잔, 그리고 저녁에 다시 2잔을 마시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각 개인의 운동량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따라서 하루에 마셔야 할 물의 양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물은 체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몸 밖의 피부에 적당하게 사용함으로써 놀라운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우선 물은 피부를 청결하게 씻어내는 역할을 하며, 차거나 뜨거운 물을 피부에 적당하게 적용함으로써 인체의 내부 기관에도 매우 유익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뜨거운 물과 찬 물을 적당하게 사용함으로써, 감기를 치료하며 두통을 없애고 몸 전체를 안정시킬 뿐만 아니라 진통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몸에 활력을 주고 면역 시스템을 자극함으로써, 놀라운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침 마다, 냉온수의 샤워를 하는 것은 몸의 저항력을 강화시키는데 도움을 주며 각종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켜준다. 심한 두통이 올 때, 발을 매우 뜨거운 물에 담그고 머리에 얼음을 댄 상태에서 휴식을 취하면, 두통이 사라지는 경험을 종종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은 머리 부분의 충혈된 혈관 속의 피가 뜨거워진 발의 이완된 혈관으로 순환되는 원리를 이용하여 얻게 되는 유익이다.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뇌는 체내의 수분의 양에 의해서 쉽게 영향을 받는다. 탈수 상태에 있는 뇌는 사물을 정확하고 분별력 있게 생각할 수 없다. 우리의 두뇌가 효과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육체와 영혼을 위한 생명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긴밀하게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몸과 마음을 잘 보존하여야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성령의 음성을 잘 듣고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깨끗하고 예민한 채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과 양심을 이렇게 유지하는데에 필요한 것들 중의 하나가 날마다 적당 양의 물을 마시는 것이다. 깨끗한 물을 적당량 마심으로써, 우리의 뇌는 원활하게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물의 분자식은 H2O라는 간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놀라운 보화들을 담아 놓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므로서 그분께서 주고자 하시는 유익을 얻게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서 물을 창조하셨고, 인간에게는 그것을 지혜롭게 사용할 책임이 주어져 있다.

우리가 물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살아있고 영적인 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곳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4

날마다 그리스도께 가서 생명의 물을 마셔야 한다. 기도와 성경 말씀의 연구를 통하여, 영적인 탈수 현상을 피할 수 있다. 물과 같은 자연의 단순한 요소들이 우리의 건강에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가 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에 협력함으로써, 우리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능력을 우리의 몸 안에서 경험할 수 있다. 건강을 복잡하고 어려운 화학 구조식에서 찾으려고 애쓰지 말라. 건강은 매우 단순한 것이며 천연계 속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어떻게 믿는 것이 진실로 믿는 것인가?


길거리나 지하철 역에서, 그리고 상점들 앞에서 열심히 전도하는 분들이 쉽게 눈에 뜨인다. “예수 믿으세요?” “하나님 믿으십니까?” “믿고 천당 가세요!”

미국에서는 큰 길이나 하이웨이를 달려가다 보면 다음과 같은 간판의 글씨들을 종종 보게 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저 믿기만 하시오! 오늘 예수를 개인의 구세주로 받아 드리시오! 그리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렇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이 있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으리라고 성경에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지나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성경이 말하는 대로 믿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믿으라는 성경의 말씀을 받아 드렸으면, 같은 성경이 어떻게 믿으라는 말씀까지도 받아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 보기로 하자.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또 그 교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하면서 주위의 이웃들과 친구들에게 여전히 좋지못한 감화를 변함없이 끼치며 살고 있는가? 우리 주위에서 교회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가 수많은 십자가의 야광들이 밤거리들을 밝혀 주고 있지만, 정말 우리 주위의 삶이 더 깨끗하게 달라져 있는가? 더 정직하며 진실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는지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교인이라고 믿었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말을 간혹 접하게 된다. “저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겠습니다!”라고 내뱉는 말들을 가끔 듣게 된다. 그것은 많은 경우에 정말로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신자들에게서 비롯되는 일들이다. 믿을 때는 우리 마음에 어떠한 일이 일어 나게 되는 것이며, 어떠한 변화가 수반되게 되는 것인지를 제대로 가르침 받지 못한 신자들의 경우에, 자신의 생활에 진정한 변화없이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는 모순에서 발생되는 일들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지마는 행함의 열매가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그 믿음을 참된 믿음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분명한 말씀을 제시하고 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한번은 가장 순수했던 초대 교회에 신학적인 위기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듣고 일부 교인들 가운데 오해가 발생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개념에 차질이 생기게 된 것이다. 사도 베드로께서 베드로 후서 3장 14절에 점도 흠도 없이 깨끗하게 되기를 힘쓰라고 강조한 다음에 그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르침-필자 주)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베드로후서 3:15,16,17

오해된 사도 바울의 말씀들을 예로 들어 보자면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20.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하시는 이를 믿는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로마서 4:5.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라디아서 5:4. 위의 말씀들은 사도 바울이 특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거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니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책망하는 의미에서 기록한 말씀들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의 말씀 때문에 잘못된 오해가 빚어질까봐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섞어가면서 기록하신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31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6:15, 16.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갈라디아 5:5,6,13. 초대 사도 교회 당시에 위와 같은 가르침의 위기가 왔을 때에 예루살렘 총회의 지도자로서 위치하고 있던 예수님의 형제였던 야고보는 각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써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하여 야고보서를 기록하게 되었고, 그는 자기의 편지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교회 안에 존재하게 된 오해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책망하고 격려 하기에 이른 것이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야고보서 2:14, 17-24

야고보의 말씀은 그 당시 교회 안에 오해된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가르침에 대하여 균형지게 설명을 해 주고 있다. 그는 마귀도 하나님을 믿고 떨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므로 믿음이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진리를 알고 인정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마귀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정도의 믿음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는 말씀이다. 참된 믿음이란 우리의 인정과 동의를 지나서 우리의 마음과 사상과 생활을 바꾸어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 하는데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이라고 야고보는 우리에게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믿음과 행함과 구원의 삼각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말씀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이미 아들 이삭을 낳기 이전에 자신과 자기의 아내 사라가 너무 늙어서 아이를 전혀 가질 수 없는 형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듬해에 다른 여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늙은 자기의 본처 사라를 통하여서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의 아들을 통하여서 택함 받은 한 나라를 이루시고 그를 통하여서 메시야를 이 땅에 탄생하게 하시겠다는 약속, 자기의 자손들이 큰 민족을 이루어 그 수가 하늘의 별 처럼 바다의 모래 처럼 많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그는 굳게 믿었다. 그것을 믿는 일은 엄청난 믿음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게 여기어 주셨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사실을 그저 머리로만 인정하고 동의한 것이 아니다. 믿음은 머리로 어떠한 사실이나 가르침을 인정하거나 동의하는 수준 이상을 의미한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인정하고 받아 드린 후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그 말씀대로 따라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었을 때에 자기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었다. 아브람이란 이름은 “높아진 자”라는 뜻이었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자식이 하나도 없던 아브라함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이름을 “열국의 아버지”라고 소개하고 다닌 사실은 굉장한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삭이 태어나고 그가 20세가 되었을 때에 청천 벽력같은 말씀이 다시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다. 자기의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죽여 제사로 바치라는 것이었다. 살인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과연 그러한 명령을 하실 수가 있을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몹시 고민하여 떨었다. 그러나 성경은 아브라함이 그 말씀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하여 이삭을 아침 일찍 깨워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간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말씀이 아무리 이치에 맞지 않는 것 처럼 들릴 때에라도 믿고 순종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최선을 다 아시고 당신의 사랑과 뜻을 따라 행하신다는 그 분의 권위를 인정한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드릴 때에는 그 분을 우리는 우리의 왕과 주인으로 받아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구세주로 믿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과 그 말씀과 진리와 그 분의 모든 계명을 다 받아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칼을 들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멈추도록 명하시고 그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알았다고 말씀하여 주셨다. 그 감동적인 이야기는 창세기 22장에 잘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셨던 것이다. 아울러 후 세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하여 주시기 위하여 그러한 시험을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것이었고,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러 주셨던 것이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의 바로 이 경험을 실례로 들어서 믿음이란 무었인가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는 아브라함이 믿음만 가지고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도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까지 강조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구원에 있어서 믿음과 행함은 떼어 놓을래야 떼어 놓을 수가 없는 삼각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배를 저을 때에 한 쪽 노만 저으면 배가 제자리를 맴돌게 되는 것 처럼 믿음과 행함이 함께 병행하여야 구원의 배가 하늘 포구까지 무사히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행함으로가 아니지마는 동시에 성경은 다음과 같이 행함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값아 주리라.” 마태복음 16:27.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로마서 2:6.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린도 후서 5:10)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리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요한계시록 2:23

여기에서 한가지 살피고 지나가야 할 문제가 한가지 있다. 우리 인간들은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수가 없다. 우리는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이땅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악하고 불순종하는 마음이 우리의 본 마음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새 마음을 받아야 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 전서 5:17. 우리는 매일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죽고 매일 그리스도의 성령의 지배를 받아서 사는 경험을 통해서 만이 하나님의 뜻과 율법을 지켜 순종하는 생애를 살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힘으로 가능케 되는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나를 위해 속죄의 피를 흘리며 돌아가신 주님을 사랑하게 될 때에 우리는 그 사랑이 강권하는 힘이 되어서 주님의 말씀을 다 순종하며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14:15).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순종이나 행함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공로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우리의 죄의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이지 우리의 행함의 쌓은 공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을 순종하며, 진리를 따라 깨끗하고 진실된 변화받은 생활을 살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여 주는 것이다. 참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순종을 낳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모를 순종하고 존경한다고 해서 그 부모의 자식이 되는 것은 아니지마는 순종과 존경이 없는 사람은 그 부모의 자식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은 우리가 흔히 믿음장이라고 부른다. 거기에서 사도 바울은 역대 믿음의 조상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그들의 믿음과 함께 그들의 믿음을 증거하는 행함도 동시에 적고 있는데 예를 들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다고 하였다. 비를 본적이 없던 시대에,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홍수가 온다는 사실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예비하기 위하여 그 분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방주를 지었다고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노아는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많은 조롱과 손가락질을 당하였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어디로 갈지를 몰랐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그 우상의 땅을 떠나 나갔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 했다고 믿음 장은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가르침이 말틴 루터나 요한 웨슬레나 롸저 윌리암스, 리챠드 백스터, 요한 칼빈, 진센돌프 같은 훌륭한 종교 개혁자들이 살고 가르쳐 온 기별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믿기만하면 된다는 이상한 가르침이 기독교 안에 들어 와 꽤 판을 치고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상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믿음과 행함의 함수 관계


믿음과 행함의 노를 함께 젓지 못하면, 우리가 타고 있는 신앙의 배는 균형을 잃고 제자리를 맴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행함은 중요한 것이 아니죠. 믿음만이 구원을 위한 필수 요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명될 수 있는 진리입니까? 다음과 같은 야고보의 말은 우리 모두에게 믿음과 행함의 균형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3:18. 하나님의 말씀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말씀을 행(순종)하기를 거절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조건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뜻을 행하고, 진리 안에서 그분과 함께 동행할 때에만, 우리는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그분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분의 말씀을 진지하게 행(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불신하고 불순종하는데, 어떻게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며, 우리의 간구에 대해서 응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고 있으면서,“믿음, 믿음, 오직 믿음만을 가져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그러나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 허탄한 사람들아,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 것인줄 알고자 하느냐?”야고보서 2:19-20.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생명력을 잃어버린“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우리 자신의 몫을 신실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참된 회개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게으름 속에 눌러 앉아 있어서는 안되며, 어떤 굉장한 기적을 막연하게 기다려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 가운데 분명하게 놓여 있는 의무와 책임들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투쟁, 노력, 그리고 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디모데전서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일을 위해서, 투쟁하고 노력하며 수고해야 하며, 영생으로 향하여 있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는 깨끗한 생활과 순결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강하신 손을 뻗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성경의 원칙과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행하는 자들에게 깨끗한 마음과 순결한 동기를 주실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제자들과 사도들의 믿음을 볼 때에, 우리는 죽음의 순간까지 계속되는 그들의 투쟁과 노력과 수고를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간증을 최후의 순간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7-8. 믿음을 고수하기 위해서 싸워야 할 싸움이 있고, 기울여야 할 노력과 수고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을 사용하여 싸워야 할 투쟁의 심각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브리서 12:3-4. 우리의 믿음은 죄와 더불어 피를 흘리기까지 싸우도록 우리 자신을 격려해 주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있어서, 믿음과 행함은 서로 손과 손을 마주 잡고 함께 가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애 속에는 이 둘이 반드시 조화를 이루면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행함이 죽은 것인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어떠한 종류의 행함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선한 행위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의해서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우리의 말과 행동과 생활에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믿음은 사랑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행함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행)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15.

진리 밖에 있는 믿음의 위험성

우리의 믿음은 성경의 원칙과 진리 위에 세워져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진리 말씀의 토대 위에 올바로 세워지지 못했다면, 우리의 믿음은 인간적인 감정에 불과한 것이 될 것입니다. 믿음이 진리 위에 세워져 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교훈적인 이야기가 성경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간증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으니”사도행전 26:9. 바울은 자신이 잘못된 믿음을 근거로 해서 열심을 내어 일을 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일에까지 동조하게 되었던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기 전의 바울의 믿음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습니다. 바울의 믿음과 소신은 성경으로 증명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강력한 소신과 열심을 다하여 행하였지만, 그의 그러한 믿음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향한 핍박으로 나타났습니다.

바울은 잔인한 박해 행위에 앞장서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하여 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는 알지 못하고 행하였더니”디모데전서 1:13. 믿음이 진리 밖에 있을 때에는“알지 못하고 행하”게 된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해야만 합니다. 어떤 것을 믿음으로 행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믿음이 진리 위에 올바로 세워져 있는가를 성경으로 확인해야만 합니다. 믿음이 진리 위에 세워져 있는가 또는 진리 밖에 세워져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자신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믿음을 진리 위에 세우게 되었는데, 그때에야 비로서 그의 생애는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는 핍박자에서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로 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믿음을 진리 위에 세움으로써, 이 세상이나 죽음이라도 흔들 수 없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믿음과 행함의 완전한 균형

그리스도인의 신앙 속에는 믿음과 행함이 반드시 균형지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나타나는 선한 행위와 그분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우리의 성품과 생애를 완전하게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하늘 아버지의 뜻(성경 말씀)과 그것에 대한 순종(행함)에 대한 설명없이,“믿으라, 믿으라,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라고 외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가르침 입니다. 믿음에 대한 오해가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라는 가르침 속에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생활 속에서 편히 안주하게 만드는 위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동의하기만 하면 자신에게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사도 바울의 지적을 경시해서는 않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로마서 2:12.

믿음을 설명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성경절 가운데 하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찌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30. 많은 사람들은 이 성경절을 말하면서“믿으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복음 3:36. 이 말씀은 믿음과 행함에 대한 균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써 영생을 얻지만, 그분의 말씀을 순종(행함)치 않을 때,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는 말씀이 오해할 수 없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입술로만 진리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믿는다고 공언하는 진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진리를 믿는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생활과 성품을 통해서 증거될 만큼 활동적인 것이어야만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영생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어쩌면 여러분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예수께서 그대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라”라는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2000년 전에 예수께서 동일한 질문을 받으셨는데, 그분께서는,“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라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때 예수께 질문 했던 사람은“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하셨습니다(누가복음10:25-28). 믿음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행함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마음과 정신의 법칙 입니다.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우리의 애정의 표현을 어떻게 막을 수 있습니까? 믿음과 행함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선한 행실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가져 옵니다. 참된 믿음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성경의 진리에 대한 동의 뿐만 아니라 순종을 동반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참된 믿음의 결과로서 따라오는 행함과 순종에 대해서 말해 왔습니다. 행함을 통해서 영생을 얻을 수는 없지만, 참된 믿음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경건한 행실과 순종을 열매로 맺는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 행함의 함수 관계 입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한복음 15:14.

믿음과 행함의 함수 관계를 증명하는 성경절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디도서 1:16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야고보서 3:14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야고보서 3:21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한일서 2:3-4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서 1:22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요한계시록 22:14(영어성경 번역)

 

진짜 믿음을 가진 자들


마지막 세대

이 글은 Peace Above The Storm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어떤 사람은 자신의 회개한 과정에 대하여 정확한 시간이나 장소나 그 경로를 정확하게 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그가 회개하지 않은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가 그리스도께로 나온 단계를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신으로 난 사람은 다 그러하니라.”요한복음 3:8.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그 영향은 분명히 볼 수 있고, 감촉할 수도 있는 바람과 같이, 사람의 마음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신도 또한 그러한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이 거듭나게 하는 능력은 사람의 마음 안에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하며, 또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 사람을 만들어 낸다. 비록 성령의 역사가 소리가 없고, 감각할 수 없을지라도 그 영향과 결과는 현저하게 드러난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새로와졌다면, 우리의 실제 생활이 그것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고,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을 수는 없다. 또한 우리 자신이 행하였던 선한 행위를 통해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의 날마다의 생애는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하고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다른 사람들이 과거의 우리와 현재의 우리 사이에 있는 차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새로 태어나는 변화의 경험은 우리의 품성과 습관과 직장 생활에서 분명하고 확실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품성은 한 순간의 선행이나 일시적인 악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인 말과 행실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이 없이도 어느 정도까지는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자신의 덕망을 넓히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의 생애의 겉 모습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자존심이 우리로 하여금 누추하고 옹졸한 모습을 피하게 만들 수도 있다. 또는 우리의 친구들의 눈에 선한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악을 피할 수도 있다. 이기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도 너그럽고 선하게 행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어느 편에 속해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누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가? 우리의 생각이 누구에게 가 있는가? 우리가 누구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는가? 우리의 가장 열정적인 애정과 최대의 정력을 누구에게 쏟고 있는가?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면, 우리의 생각은 그분께 가 있을 것이요, 그분과 그분의 사업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소유와 몸을 다 그분께 바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성품을 닮을 것이며, 그분의 정신을 나타내고, 그분의 뜻을 행하여 범사에 그를 기쁘시게 하기를 소원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사람에게는 성령의 열매인“사랑과 희락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맺힐 것이다(갈라디아서 5:22).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행하던 것처럼 정욕을 따라서 행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될 것이며, 그분의 품성을 반사하며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전에 미워하던 것을 사랑하게 될 것이며, 전에 사랑하던 것을 미워하게 될 것이다. 교만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던 자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게 될 것이다. 허영심이 많고 거만하던 자가 침착하여지고, 근신하게 될 것이다. 술을 마시던 자가 절제하고, 방탕하던 자가 순결한 사람이 될 것이다. 세상의 허영적인 습관과 유행을 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외모와 의복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자 하지 않을 것이며,“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게 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마음을 단장할 것이다(베드로전서 3:3).

참된 회개는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변화시켜 준다. 우리는 도적질한 것들을 되돌려 줄 것이며,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워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가서 그분의 용서와 은혜를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에는 사랑이 싹트게 된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모든 의무와 책임이 어렵게 보이지 않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메워주시는 멍에는 쉽고 가볍기 때문이다. 드디어, 의무는 즐거움이 되고, 희생은 기쁨이 된다. 전에는 흑암으로 어두웠던 길이 이제는 의로운 태양에 의해서 환하게 밝아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운 특징들이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서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께 가장 큰 즐거움이 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열성이 그리스도의 생애를 이끌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지 않은 자들은 스스로 사랑을 조작하여 만들어 낼 수 없다. 사랑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마음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한일서 4:19.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새롭게 된 마음에는 사랑이 모든 행위의 원칙이 된다. 사랑은 품성을 변화시키고, 감정을 지배하며, 정욕을 제어하고, 증오심을 사라지게 하며, 정신을 고상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자신의 마음에 품으면, 우리의 생애는 즐겁고 유쾌한 것이 될 것이며,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감화를 끼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매우 조심해야 할 두가지 위험이 있다. 그 하나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한 방법으로서, 자신의 행위와 힘을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지키는 일을 자신의 힘으로 행함으로써, 경건하고 거룩하여지려고 하는 자는 전혀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것이다. 먼저, 성령께서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 자신의 열심으로 행하는 모든 일은 이기적이고 더러운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를 마음에 받아들일 때에만,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행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 행하는 모든 행위마다 이기심과 불순한 죄로 더럽혀지게 된다.

두번째는 위에서 말했던 위험과 정반대되는 것으로서, 오늘날 기독교계에 매우 편만한 믿음인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벗어난다고 믿는 믿음을 말한다. 즉,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가 되는 것이요, 우리의 행하는 바는 우리 자신의 구원 문제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든지 지키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사상이다.

이 문제를 말하는데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순종”이라는 것은 단지 외모적으로 행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행하는 봉사과 충성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품성의 표현이며, 사랑의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가 된다.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져서 하나님의 마음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심령에 심어진다면,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의 생애 가운데서 실천되지 않겠는가? 사랑의 원칙이 우리의 마음에 심어져서, 우리가 창조주의 형상대로 새로워지면,“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고 하신 새 언약이 성취될 것이다(히브리서 10:16). 그리하여 율법이 마음에 새겨지면, 그것이 생애 가운데서 실천되고, 또한 생애를 꼴지워가지 않겠는가? 순종 - 사랑으로 하는 봉사와 충성 - 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는 참된 증거이다. 그러므로 성경에는“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라는 말씀과,“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한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요한일서 5:3, 요한일서 2:4). 믿음은 사람을 순종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서 순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순종하므로 구원받는다고 말해서는 않된다. 왜냐하면 구원은 믿음을 통하여 받게 되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종은 믿음의 열매이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느니라.”요한일서 3:5-6. 이것이 참된 증거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의 감정과 사상과 목적과 행동이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표현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된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요한일서 3:7. 의(righteousness)는 십계명에 표현된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표준에 따라 판정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는 그러한 신앙은 신앙이 아니고 참람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니”에베소서 2:8. 그러나“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7. 우리는 이 두 성경절에서 은혜, 믿음, 행함, 그리고 구원에 관한 균형있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오래 전에 말씀하시기를“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라고 하였다(시편 40:8). 그리고 그분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시고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한다”고 하셨다(요한복음 15:10). 또한 성경은 믿음과 행함에 대한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라고 다음과 같이 촉구하고 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한일서 2:3-6

 

그대는 오직 그대의 일을 하라!

그분께서는 돈을 벌어 오라고 그대를 이 땅에 보내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그대에게 명예를 구하라고 명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그대 자신을 위해서 보호의 담과 변명의 성을 쌓으라고 부탁하지 않으셨다.

마귀는 그대 앞에 그대의 온 생애를 사로잡을 수 있는 덫을 던져 놓을 것이다.
그러나 말없이 그리고 꾸준히 그대가 맡은 일을 밀고 나아가라.
그대의 목표가 별처럼 확고한 것이 되게 하라.

거짓말쟁이들이 교묘한 거짓말을 할지라도
경건의 모양을 뒤집어 쓰고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의를 가르칠지라도
세상이 그대에게 장밋빛 유혹을 던질지라도
유다와 같은 자들이 그대를 팔기 위해서 따라다닐지라도
글 잘 쓰는 자들이 글로 그대를 칠지라고
말 잘 하는 자들이 말로 그대를 때릴지라도
믿었던 친구에게 버림받고 거절당할지라도

그대는 오직 그대의 일만을 하라.
그대에게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가를 의아하게 생각지 말라.
그대의 앞뒤로 나타나는 마귀의 개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려고 몸을 굽히지 말라.
마귀가 보낸 토끼들을 쫓느라고 그대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그대는 오직 그대에게 맡겨진 일을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