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주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


하나님의 편지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세상에 보내신 편지이다.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고후 3:2. 우리는 예수께서 보내신 편지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 가족들과 이웃들과 친지들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가 담겨져 있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기별이 담겨져 있는 우리의 생각과 미소와 인내를 마을과 거리로 보내셔서 사람들이 그것을 정확하게 보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인은 하늘가는 길을 비추어 주는 빛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빛을 세상에 비추어 주어야 하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주신 빛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지겹고 지루하며 고통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 겉으로 즐거운 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 속에서 참된 행복과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불평하고, 원망하며, 기쁨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신앙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을 심어 주게 된다.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좋아하지 않으시거나 관심이 없는 것으로 오해하도록 이끈다.

사단의 목적

사단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보면서 의심과 불신을 갖게 될 때에 매우 좋아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오해를 갖게 되는 것이야말로 사단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사상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채워지게 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까다로운 율법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생애를 불행하게 만들며, 또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순종할 것을 강요함으로써, 사람들의 생애를 원망과 불평으로 채우는 분으로 그분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사단은 그리스도인의 생애가 어둡고 불행하며 고통스러운 것으로 보여지도록 노력한다.

오해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품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정하고 행복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분이 냉랭하고, 사귀기 어렵고, 기쁨이 없는 분이셨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관념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각한 상처를 주며 돌이킬 수 없는 오해를 낳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은 눈물은 흘리셨을 망정, 결코 미소는 짓지 않으셨을 거야.” 사실, 주님께서는 슬픔의 사람이셨다. 왜냐하면 그분의 마음은 항상 인간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향하여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분의 생애가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그분의 영은 결코 그러한 것들에 의하여 압도 당하지 않았다. 고통 속에서도 기쁨이 흘러 나왔으며, 억울함 속에서도 분명한 확신이 나타났다. 그분께서는 언제, 어디로 가시든지 안식과 평화, 환희와 기쁨을 가지고 다녔다. 예수께서는 깊이 생각하시는 분이셨지, 불행하게 보이는 분이 아니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 어리석거나 거칠고 야비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조잡한 농담을 하면서 깔깔거리는 모습을 나타내어서는 안된다. 항상 평화와 확신이 얼굴에 새겨져 있어야 한다.

인생이라는 정원

인생 길을 걸어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 종종 이야기 한다. 자신들이 어떻게 실패했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이 슬픔과 후회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토로한다. 그러나 인생을 후회와 슬픔으로 보내기에는 그것이 너무나 고귀하다. 인생은 여러가지 꽃이 피어 있는 정원과 같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가지 아름다운 꽃을 따면서 그 향기를 즐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꽃을 보면서, “아, 이 꽃은 왜 이렇게 가시가 많아서 걸어가기 힘들게 하지? 이 가시가 많은 꽃 때문에 정원 전체가 망가져 버리고 말았구나!”라고 불평한다. 우리는 인생 길에 나타나는 가시를 보면서 불평과 한탄으로 고귀한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정원 속에 피어 있는 백합과 패랭이꽃을 따서 그 진한 향기를 맡아 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불친절하거나 냉정하게 대했던 사실을 계속해서 생각하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또한 비열하거나 교만한 사람을 볼 때에도 동정적으로 대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의 결점과 잘못을 쉽게 잊어버리거나 인내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기심을 잃어버리는 경지까지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생애의 밝은 면들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마음에 함께 하실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의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있는가? 우리의 생애를 되볼아 봄으로써, 즐거웠던 추억을 다시 되씹어 보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당했을 커다란 위기의 상황을 회상해보라. 하나님의 약속들은 우리가 걷는 길가에서 자라나는 향기로운 꽃과 같다. 비록 우리의 눈으로 보는 상황이 어렵고 힘겨울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전진한다면, 우리는 인생을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채울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는 밝은 면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말들을 많이 해야 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들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 하고, 그것들을 모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자.

가시는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고 우리를 슬프게 만들 뿐이다. 만일 우리가 가시들을 모아서 다른 사람들을 찌르는데 사용한다면,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생명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된다. 우리는 과거로 지나가 버린 유쾌하지 못했던 시간과 사건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서는 안된다. 지나간 우리의 악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후회하면, 곧 그러한 것들에 압도되어 버리고 말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이러한 태도는 다른 사람들의 앞 길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에 대해서도 의심과 불신을 갖도록 만든다.

어머니의 보살핌과 사랑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은 결국 방탕하고 불순종하는 생애를 살아가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에 대해서는 적게 말하고, 인생 길에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과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는 사람들은 결국 의심과 불신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사를 받기에 충분한 자격을 가지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대하여 감사를 표현하지 않는 자녀를 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떨까?

신뢰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매일 그 날에 해당되는 걱정과 근심이 있다. 앞으로 올지 안올지 모르는 염려와 가난과 어려움 때문에 많은 시간을 슬픔과 걱정으로 보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처사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마치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고자 기다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염려와 걱정거리를 토해낸다. 우리는 어려울 때마다 그 분께서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 되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항상 우리 주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염려와 걱정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가 오면, 우리에게 유일한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께 돌아가기는 커녕 오히려 걱정과 염려에 압도되어 하나님과 분리되는 심각한 상황 속으로 흘러들어 가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하늘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두려워 말라!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걱정거리와 염려거리가 떨어질 날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걱정과 염려거리가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도록 막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 싸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우리의 영혼이 쉴 수 있는 피난처를 제공해 주신다. 걱정이 우리로 하여금 시련에 견디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오늘 하루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사히 여기는 겸손이다. 예수께서는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우리도 염려에 파묻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기를 원하신다.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천부께서” 새들을 기르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고 물으신다(마 6:26).

이기적인 행복은 쉽게 사라져 버린다. 이기적인 사람은 고독과 슬픔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진정하고 영속적인 기쁨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인도자가 없이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포기한 쾌락과 돈과 명예 때문에 아쉬움과 슬픔에 잠기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누릴 기쁨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씻어주신 눈물과 그분께서 견디도록 도와준 고통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사랑에 충동을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준 조그만 친절 때문에 쓰러져가는 죄인의 손을 잡아준 경험에 대해서 회상해 보라. 우리가 받았던 이러한 축복들이 우리의 남은 인생 여정을 지나는 동안 시련을 견딜 수 있도록 우리를 강하게 해 줄 것이다.

 

권두언


이 세상에는 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글로된 말들, 음성으로된 말들, 비디오로 된 말들 등등 허다한 말들이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천년을 지나오면서도 변함없이 진리를 가르쳐 주고 한결같이 올바른 길만을 제시해 주고 있는 한 권의 말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좁은 길 대신에 넓은 길을 택합니다. 주로 흥미 본위의 책들과 소리들을 듣습니다. 소설, 잡지, 신문, 텔레비죤, 라디오 등,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며 인격과 품성을 고양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저하시키고 타락시키는 말들을 선호합니다.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바쁘게 만들어서 진리의 말씀을 연구하거나 감화를 받을 시간이 없게 만들고 또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정력을 다 바치게 함으로써 피곤하여 진리를 게을리 하도록 만듭니다. 마귀는 이러한 일에 명수 입니다. 뉴욕 타임스 지에 게재되고 있는 매주 베스트 셀러들의 목록들을 보십시요! 거의 다가 흥미 본위의 책들로서, 사실이나 진리와는 상관없는 것들이 항상 불티니게 팔려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실재적으로 말세 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항상 전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나의 관심과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나의 신앙 상태의 온도를 측정해 주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에 대한 첫사랑을 잃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살펴보고 다시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토하여 내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호는 계시록 중에 있는 일곱 나팔에 대한 예언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기사들은 여러분들 속에 말씀에 대한 흥미를 다시 돋구워 줄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대한 신뢰심을 더하여 줄 것은 물론이요, 우리가 서 있는 좌표를 알게 해 줄 것입니다. 이번 호를 정독하시는 여러분들께 하나님의 영감의 역사가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기독교회를 향한 요한 웨슬레의 호소


거룩함과 율법주의

이 기사는 감리 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의 글이다. 그는 자신의 형제 챨스 웨슬레와 함께 18세기 영국에서 종교 개혁 운동의 횃불을 높이 들었다.

이 글은 그리스도인 생애에 반드시 나타나야만 하는 거룩함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현대 기독교회 안에서 크게 곡해되고 있는 거룩함에 대한 문제를 올바로 조명하고, 잘못된 오해들을 바로 잡는데 이 기사가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실기로 하였다. 구원은 하늘의 생명책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생애 속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것이 이 글의 주제이다. 생애의 빛 편집실

서론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브리서 12:14. 오직 거룩한 자들만이 영광 중에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이다. 하늘 아래 어떤 것도 이것보다 분명한 진리는 없다. “비록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24:35.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생애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없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며 살지 못한 사람은 결코 하늘에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없다. 이 땅에서 죄로부터 해방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결코 지옥불의 형벌을 면하지 못한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자신 안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하늘에 있는 왕국을 보지 못한다. 하늘에서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이 땅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마음을 왕처럼 완전히 주관하시는 경험을 해야만 한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자들만이 그리스도께서 생애하셨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과거의 오해

거룩함, 그것은 성경 전체에 걸쳐서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진리 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 의해서 너무나 곡해되거나 무시당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방인들이나 로마제국의 이교도들일까지도 “거룩함”에 대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다. “신은 오직 덕성과 거룩한 마음, 그리고 정직을 기쁘게 받아들이신다”는 가르침이 거의 모든 철학과 이방 종교에 포함되어 있다. 비록 기독 교회가 거룩함에 대한 가르침을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중요한 진리가 교회 안에서 심하게 왜곡되거나 퇴색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로마 천주교회의 사람들도 거룩함과 경건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들은 내적 경건함 보다는 종교적 의식과 예식과 같은 외적 경건함을 중요시 여기는 위험에 빠져 있다. 외적 경건함을 중요시 하는 가르침 때문에 로마천주교회가 종교적, 정치적 주도권을 잡았던 중세기 종교암흑시대의 사람들은 선과 덕을 쌓으면 현세에서도 복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십자군으로 징병되어 국가를 위하여 싸우다 죽는 선을 쌓으면, 내세에 천국에서 큰 상을 받게 된다는 교리에 빠지게 되었다. 외적 경건과 인간적 공로와 의식을 강조하다 보니, 고행이나 험한 순례와 같은 것들이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오해

거룩함에 대한 오해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과거의 로마 천주교회는 외적 경건함을 중요시 함으로써 참된 거룩함에 오해를 갖게 되었다. 오늘날의 기독교회는 그러한 엉뚱한 가르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기독교회가 그러한 가르침을 부인한다고 할지라도, 오늘날의 기독교회는 거룩함이 없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신학적 길을 열어 놓았다. 로마 천주교회에서 만들어 놓은 고해 성사, 성지 순례, 죽은 성자와 천사들에게 드리는 기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사제들에 의한 죄의 용서와 같은 교리들은 진리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종교인들의 풍습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교리들이다.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비록 자신의 마음과 생애가 거룩하게 변화되지 않을지라도, 이러한 예식과 의식들을 통하여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단 한 점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다.

그렇다면, 개신교도들은 구교를 믿는 사람들과 좀 나은 것이 있는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모양만 조금 다를 뿐, 그 내용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개신교인들은, 천주교인들이 중요시 여기는 의식과 예식들은 사람을 구원하는 면에 있어서 아무런 효험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아무리 열성적으로 믿는다고 할지라도 성경으로 확증할 수 없는 잘못된 교리나 의식에 의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잘 이해한다. 그렇다면, 개신교인들은 구원과 거룩함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들은 나쁜 짓을 않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며, 주일마다 교회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기만 하면, 자신의 마음과 생애가 실제적으로 거룩하게 변화되는 경험을 체험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천주교인들이 의식와 예식에 의존하여 내적 거룩함이 없이 구원을 바라 보는 것처럼, 개신교인들도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주장하면서 내적 거룩함이 없이도 하늘에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수많은 개신교인들이 이와 같은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하늘을 향하여 나아가는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문제의 핵심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적지 않은 개신교인들이 구원에 대한 이러한 이해보다 더 나아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천주교인들보다 구원에 대한 진보된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비록 자신이 많은 선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실 생활에 있어서 악을 저항하고, 모든 시험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지 않는 한, 결코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그러한 신앙은 피상적인 신앙이며, 참된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마음 속에 있으며,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왕국이 마음 속에 건설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해 진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5.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사단은 어떤 방법을 통하여 개신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믿음을 무력화시키고 있는가? 에베소서 2장 8절에 있는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말씀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가? 은혜와 믿음을 통한 구원론을 받아들인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개신교인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유다서 1:8). 시몬 마거스 목사가 가르치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은 구원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조장하고 있다;

거짓말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통당하시고 이루어 놓으신 것을 통하여,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옮겨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의는 전혀 필요 없습니다. 그분 안에 너무나 풍성한 의와 거룩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어떤 의가 없어도 됩니다. 그러므로 의를 필요로 하거나, 그것을 소원하거나, 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 모두가 나누어 갖기에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의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 집니다. 만일 이와 다른 것을 설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율법주의자임에 틀림없으며, 복음에 대해서 무지한 자입니다.”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참된 기독교 신앙이 가지고 있는 거룩함의 가르침을 그 뿌리부터 흔드는 가르침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그분을 사랑하며, 존중한다고 말하는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고통당하고 계신다(슥 13:6).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가장 큰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기 위함이었는데(요일 3:8),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는 십자가의 목적과 의미를 송두리채 왜곡시키는 가르침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이 어떤 교단, 어떤 교회에서 가르쳐지던지 간에 이 가르침은 성도의 거룩함에 대한 진리를 한쪽 구석으로 치워버리게 되며, 성서적 구원론을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바꾸어 놓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생활을 살고자 하는 강렬한 소원을 상실하게 된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진 의가 자신의 구원을 이미 보장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구원을 위한 완전한 의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의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야만 인류 전체에게 주신 구원이 개인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의에 대한 잘못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진리에 순종하기 위한 노력과 악에 대하여 저항하는 모든 종류의 투쟁도 율법주의로 돌리게 된다.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거절하지 않기 위하여 십계명에 순종하기를 두려워 하며,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에 순종하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노력하기를 두려워한다. 성경은 “선한 일에 열심”을 내라고 권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디도서 2:14), 진리대로 살기 위하여 애쓰는 노력을 율법주의로 오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사단의 거짓과 바울의 진리

사단은 하나님의 교회를 타락시키기 위하여 한가지 꾀를 생각해 내었다. 사단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사단이 고안해낸 기가막인 교리는 다음과 같다;

거짓말 2: “인간은 단 한줌의 거룩함이 자신 안에 없는 상태에서도 거룩하게 될 수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믿음을 통하여 거룩함을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 안에는 실제적인 거룩함이 존재하지 않아도 영광 중에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비록 그대들의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다고 할지라도,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그대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다. 비록 그대의 마음 속에 질투, 시기, 돈을 사랑하는 마음, 이기심, 경쟁하는 정신, 정욕과 같은 것들이 있을지라도, 그 상태 그대로 족하다. 왜냐하면 비록 그대들이 의롭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대신하여 그대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완전한 의를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들이 어리석음을 좋아하기를 언제까지 하겠느냐?” 잠언 12:22. 사단의 거짓을 따르는 사람들은 사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6:9. 사랑이 마음 속에 있는 자는 사랑이 겉으로 나타나게 되며, 의와 거룩함이 그 속에 있는 자는 그것이 또한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요일 3:1. 교회 안에 사단이 퍼트려 놓은 많은 거짓이 있을지라도 그것에 속임을 당해서는 않된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높이는 것처럼 들릴지라도, 요한일서 3:7에 기록된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라는 말씀과 어긋나는 것은 사단의 거짓말이다.

바울은 마음이 거룩하게 변화되지 못하여 악을 행하는 자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9,10. 이 말씀에 이어서 바로 연결되는 바울의 말을 주목해 보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 6:11. 과거에는 악에 빠졌었지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 마음과 생활이 악으로부터 돌아서고 거룩하게 변화되어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된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서 우리는 의에 대한 분명한 진리를 배워야 한다. 바울은 마음과 생애 속에서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진정한 변화를 말하고 있다.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의롭다 하심”(칭의)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마음과 생애가 거룩하고 의롭게 변화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못하는 분이시다. 속에는 더럽고 추한 것들이 가득 들어 있는데, 예수를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어떻게 의롭다고 선언할 수 있겠는가?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 잠 17:15.

자유에 대한 오해

바울은 죄인이 의롭게 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바로 이것이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 안에서 일어나는 참된 해방과 자유의 경험이다. 이 경험은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거나 폐지시킴으로써 얻는 자유(방종)의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불순종이고 반역이다. 참된 자유란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을 깨달은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다시는 악에 빠지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강렬한 생명력이 창조되고, 또한 성령의 호소와 인도하심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그 결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지는 자유란 막연하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나 실제적이며 구체적이어서 실제 생활에서 경험되는 자유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와 하나님의 법을 무거운 멍에라고 생각한다. 성경이 요구하는 원칙과 십계명이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마음이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명령)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바울은 인간을 얽매고 있는 진짜 멍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은 자는 종의 멍에, 즉 죄와 악의 멍에를 벗어버린 그리스도인을 말한다. 나는 분명하게 간증할 수 있다. 만일 그대가 여전히 죄를 고집하며 살아간다면, 그리스도의 피와 희생은 그대의 구원을 위하여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대가 붙잡혀 있는 죄로부터 그대를 구원해 주시지 못하고, 그대의 마음과 믿음을 정결하게 해주지도 못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그대의 개인적인 구세주가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피와 희생이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의 중심에는 거룩함이 존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유다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눅 22:48. 회개하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양쪽에 날이 선 검(말씀)에 의하여 그대의 심령이 쪼개어지지 않는다면, 그대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강림을 막고 있는 장본인이며,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어 달은 자이고,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자이다. 사단이 교회 안에 교묘하게 퍼뜨려 놓은 거짓 교리,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하고 거룩한 의를 온 인류를 위하여 이미 이루어 놓았기 때문에, 믿기만 하면, 그대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여서 거룩하게 변화된 마음과 생애를 소유하지 않아도 그리스도를 영광 중에 볼 수 있다”는 교리는 십자가 위에서 뿌려진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히 10:29). 깨어야 한다!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죄인들도 형벌을 받을진대, 하물며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자가 죄 가운데서 살다가 죽으면 그 받을 형벌이 얼마나 중하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이 어떻게 죄 가운데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 3:1.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 하노라” 고후 11:3. 의와 거룩함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고 단순하게 설명하였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 5:18. 형제 자매들이시여, 진리로 돌아오라! 제자들과 사도 바울이 믿고 가르쳤던 그 복음으로 돌아오라! 그대를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라!

행함에 대한 오해

죄와 악을 버리고 거룩한 생애를 살기 위하여 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일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믿음도 헛된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약 2:20.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더라도, 원수와 그대의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과 그에 따른 행실이 없다면, 그대가 공언하는 믿음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과 생애 속에서 그리스도의 피의 권세가 죄를 몰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저(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일 2:6. 이러한 자들은 그들이 오히려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안다고 하니 그것으로 인하여 그 받을 형벌이 증가될 뿐이다. “누구든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함에 대한 교리와 일치하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 언쟁만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 딤전 6:3~5.

부디, 내적 거룩함과 외적 거룩함이 동시에 강조되는 가르침을 받아 들이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 완전한 진리가 성도들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야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상에서 높이 들려질 수 있다. 거룩함에 대한 가르침을 무분별하게 율법주의로 몰아부치지 말라. 죄의 법에 종으로 살기를 두려워 하되, 하나님의 법에 종으로 살기를 즐거워 하라! 성경의 표준과 원칙을 높이 들어 올리는 설교를 사랑하라! 자신의 마음과 생활을 살피게 하고,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닮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설교를 피하지 말라! 그대의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의 깊이를 깨닫게 이끄는 설교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라!

어떤 사람들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이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빌 4:13).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고, 또 그분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그분이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된다. 주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드리도록 하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나를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요 14:14,21.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분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말자!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의 모본을 따르며, 그분이 행하셨던 일들을 우리도 행함으로써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자! 우리 마음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신뢰하도록 하자. 그분께서 우리 마음과 생애 속에서 이미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끝마치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따라가도록 하자. 자존심, 분노, 악한 소원과 같은 것들이 그리스도의 피에 의하여 정결하게 될 때까지 그분께 붙어 있도록 하자.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을 우리 속에서 끝마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드리자.

그리스도를 단지 죄의 책에서 죄의 기록을 지우는 분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회개의 심령을 가져다 주시며, 우리 안에 올바른 정신과 마음을 창조해 주시는 분으로 소개하도록 하자. 바로 이것이 진짜 복음이며, 오류에 물들지 않은 순결한 복음이다. 이것은 새로 발견된 복음이 아니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복음으로서, 아담과 하와가 믿었고, 아브라함이 믿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셨고, 제자들과 사도들이 믿었던 복음이다.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복음이며, 시몬 마거스 목사가 가르치는 복음과는 전혀 다른 복음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3:16~19

Q & A

문: 사단은 한때 하늘에서 천사였었나요?

답: 요한계시록 12:7-9에는 선과 악의 대쟁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면이 나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선과 악의 대쟁투는 하늘에서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이 지구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14:12-17에는 좀더 자세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절에는 사단이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보좌를 넘보았던 사실이 나옵니다. 에스겔 28:12-19에는 사단이 두로왕으로 표상되어 나오는데, 여기에는 사단이 한때 완전한 아름다움과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그룹 천사였으나, 나중에는 무서운 악의 시조로 변모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도 누가복음 10:18에서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상과 같은 성경절들로부터 우리는 사단이 한 때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고도 아름다운 존재로 지음을 받은 천사였지만, 시기와 이기심을 품음으로써, 마귀가 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부 - 이민과 암의 관계


암과 영양의 관계가 현대 과학에 의해서 입증되기 시작하며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암을 예방하는 방법으로서 음식을 조절하고 있다. 어떤 음식들은 암을 유발시키는 반면, 어떤 음식들은 오히려 암의 성장을 지연시키거나 막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어떤 식사를 하느냐에 따라서 암의 발병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고 낮출 수도 있다.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들 중 35~60%는 건강에 해로운 식생활 습관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떻게 음식물이 암의 발병과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있는가? 날마다 섭취하는 음식물을 건강에 유익을 주는 종류로 바꿀 경우, 암의 발병률이 현저하게 저하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제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살펴 보도록 하자.

일본인 이민자들과 암 발병률의 관계

미국에서 발표된 이민자들의 영양 변화와 암의 관계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암 발병률이 낮은 나라에서 이민온 사람들일지라도 미국에서 살아가는 동안 미국의 암 발병률을 따라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본의 경우를 살펴 보도록 하자. 일본은 식도암과 위장암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암의 발병률이 낮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일단 일본을 떠나서 하와이로 이민 온 일본인들의 경우에는 하와이에 사는 백인들과 유사한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나타낸다. 일본에 거주하는 일본인 10만명과 하와이로 이민한 일본인 10만명을 대상으로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암 종류 일본인 백인
일본 거주 하와이 거주 하와이 거주
장암 78명 371명 368명
직장암 95명 297명 204명
전립선암 14명 154명 343명
유방암 335명 1221명 1869명
자궁암 32명 407명 714명
난소암 51명 160명 274명
폐암 237명 379명 962명
위장암 1331명 397명 217명
식도암 150명 46명 75명

위 도표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9종류의 암 중에서 7종류가 미국으로 이민 온 일본인들의 사망률에 있어서 매우 놀랄 정도로 크게 상승되었다. 예를 들어서 장암의 경우, 일본 본국인 10만명 중에서 오직 78명에게 장암이 발병되었지만, 미국으로 이민온 일본인 10만명 중에서 371명이나 발병되었다. 이것은 일본 본국인에 비해서 거의 5배에 이르는 숫자이며, 또한 하와이에 사는 백인들의 발병률과 유사한 숫자이다. 직장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하와이로 이민 온 이후에 그 발병률이 3개나 증대되었다.

이민자들은 그들이 고향 땅을 떠나서 미국으로 올 경우,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전체적으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일본인 이민자들의 암 발병률을 급격하게 상승시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라이프 스타일 중에서도 가장 현격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그들의 식생활 습관이다. 하와이로 이민 온 일본인들은 그들이 본국에 살 때에 비교해서 2배 이상의 동물성 지방을 섭취하였으며, 비교적 적은 양의 탄수화물을 섭취하였다. 많은 양의 버터와 치즈, 마아가린, 그리고 고기를 섭취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쌀과 두부의 섭취량은 저하되었다. 일본에서는 오직 섭취하는 지방 중에서 40%만이 포화성 지방이었는데, 하와이로 이민 온 이후에는 섭취하는 지방 중의 70%가 포화성 지방이었다. 또한 하와이로 이민 온 이후에 설탕의 섭취량도 대폭 증가되어서 일반 미국인들의 식사와 유사한 형태를 이루었다. 이민 1세대의 경우에는 그런대로 일본에서의 식습관을 유지하였지만, 2,3세대로 넘어가면서 식생활이 전형적인 백인의 식생활 패턴을 따라갔다. 이러한 식생활 습관의 변화가 미국 백인들의 암 발병률을 따라가도록 만든 주요 원인이다.

일본인 이민자들에게 두 종류의 암, 즉 위장암과 식도암의 발병률이 저하되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하와이로 이민 온 이후에 발효시킨 채소의 섭취량과 소금에 절인듯한 짠 생선의 섭취가 감소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의 조리 방법과 종류가 바뀌었을 때에 암의 발병률이 낮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입증되었다. 음식물은 암을 발병시키는 면에 있어서나 암을 예방하는 면에 있어서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4부 - 지방과 암의 관계


지방이 거의 모든 종류의 암에 모종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대부분의 영양학자들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방의 섭취량을 전체 섭취 칼로리의 30% 이하로 제한해야 하는데, 섭취하는 지방은 동물성이 아니라 식물성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동감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각 종류의 암에 대해서 지방이나 육류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지방과 유방암

39지방의 섭취량이 많은 나라들, 미국, 카나다, 호주, 스웨덴, 그리고 독일과 같은 나라들에 있어서, 유방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거의 유사한 양상을 나타낸다.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국민들일수록 유방암의 발병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프랑스에서도 지방과 유방암의 발병 관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여성들의 경우 유방암의 발병률이 60% 이상 증가하였다. 특히, 폐경기 이후의 여성이 동물성 지방을 섭취했을 경우, 유방암의 발병률은 3배 이상이나 현저하게 상승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서, 1964~1978년 사이에 일본인의 지방 섭취량이 2배로 증가되었는데, 이와 함께 유방암의 발병률도 크게 증가되었다. 전 세계가 미국식 식생활을 따라감에 맞추어서, 그들에게 사망을 가져오는 질병의 유형도 미국인들의 양상을 쫓아가고 있다. 특이한 사실은, 임신 동안에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할 경우, 유방암의 발병률이 매우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이루어진 조사 결과에 의하면, 마아가린을 많이 섭취하는 여성들에게는 유방암의 발병률이 높지만, 마가린 대신에 올리브 기름(불포화 지방)을 사용하는 여성들에게는 유방암의 발병률이 상대적으로 25%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암에 걸린 환자들에게도 지방의 섭취량은 영향을 주는가? 스웨덴의 한 연구팀은 식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암 종양의 성장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연구팀은 폐경기를 지난 240명의 유방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4년간 조사한 결과, 지방의 섭취량이 암 치료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섭취하는 지방의 전체 칼로리가 1% 증가될 때마다 유방암 치료의 실패율(재발율)이 13%씩 증대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한 유방암 환자가 45% 지방으로 구성된 식사를 할 경우, 그녀는 35% 지방으로 식사하는 환자보다 130% 이상이나 암 치료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이다. 포화 지방(동물성)에 대한 통계를 보면, 이보다 훨씬 심각한 사실이 나타난다. 섭취하는 포화 지방의 칼로리가 1% 증가될 때마다, 유방암 치료의 실패율은 23%나 높아진다. 지방의 섭취량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은 유방암의 치료 뿐만 아니라 예방에도 매우 효과적인 도움을 준다.

미국 건강 기구(AHF)와 로스 박사가 공동으로 세계 30여 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방의 섭취량이 높은 국가일수록 유방암의 발병률이 높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더 확인되었다. 특히, 폐경기의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지방의 섭취량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 재확인 되었다. 그러나 식물성 불포화 지방의 섭취와 유방암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 지방과 전립선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게는 폐암이 가장 많이 발병되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립선암이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 전립선암 역시 지방의 섭취량과 관련 있다. 전립선암 역시 유사한 양상을 나타낸다. 1950년대 일본은 매우 낮은 전립선암 사망률을 나타냈었다. 그러나 산업의 발달과 함께 식생활이 바뀌면서 55세 이후의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전립선암의 발병률이 10배 이상 증가하였다. 1950년에는 10만명 당 전립선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가 2명에 불과하였는데, 1985년에는 10만명 당 22명이 전립선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전립선암으로 인한 사망률의 증가는 일본인들의 지방 섭취량의 증가와 비례한다.

로스 박사와 미국 건강 기구가 공동으로 30여 국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동물성 지방의 섭취는 전립선암의 발병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식물성 불포화 지방은 여러 민족과 문화권을 불문하고 전립선암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중에서도 동물성 포화 지방이 전립선암에 나쁜 영향을 미치며, 불포화 지방 중에서는 mono 불포화 지방이 약간 영향을 미치며, 복합(poly) 불포화 지방은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식품에는 각각 10그램의 불포화 지방이 함유되어 있다 : 밀크 2컵, 더블 햄버거 1개, 치즈 햄버거 2/3개, 바닐라 아이스크림 1컵,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2컵, 아메리카 치즈 2조각

3. 지방과 피부암

피부암도 지방의 양을 제한함으로써, 그 발병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동물성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들의 경우, 태양빛에 과도하게 노출되었을 때에 피부암에 걸리는 확률이 높아진다. 1994년, Bayor 대학 연구팀은 38명의 피부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2년 동안 그들이 섭취하는 지방을 전체 칼로리에서 20% 이하로 제한한 결과, 지방 섭취량을 제한하지 않는 환자들보다 30% 이상 치료 효과를 얻었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5부 - 육식과 암의 관계


제4부에서는 지방과 암의 관계를 살펴보았으므로, 여기서는 육식과 암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육식와 림프선 암

아이오와 대학 의과대학의 교수인 제임스 컬한 박사와 그의 연구팀은 림프선 암과 육류의 관계에 대한 일련의 연구를 마친 다음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육류와 포화성 지방의 섭취를 줄여야만 한다. 그리고 채소를 더 많이 먹어야 한다!” 림프선 암은 매해마다 미국에서만 2만 3천명의 목숨을 빼앗아 가고 있다. 이 연구팀은 여성 3만 5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육식을 많이 하는 사람은 적게하는 사람보다 림프선 암에 걸릴 확률이 2배 이상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일주일에 4번 이상 햄버거를 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2배 이상 넌 허즈킨 림포마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사실과 함께, 하루에 과일을 3개 이상 먹는 여성은 넌 허즈킨 림포마의 발병률이 36%나 감소된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육식과 장암

장암 역시 육류의 섭취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버드 대학 연구팀은 8만 8천명의 간호사(여성)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고기를 정기적으로 먹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장 암의 발병률이 심각하게 증가한다고 경고하였다. 그리고 고기를 자주 먹으면 먹을수록, 장 암의 발병률도 증대된다는 사실과 함께 다음과 같은 통계 결과를 발표하였다.

소,돼지,양고기를 먹는 횟수 장암의 발병률 증가률
1달에 한 번 이하 0%
1달에 한 번~1주일에 한 번 39%
일주일에 2~4번 50%
일주일에 5~6번 84%
매일 1번 이상 149%

날마다 고기를 먹는 여성의 경우, 고기를 전혀 먹지 않거나 거의 먹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 장암에 걸릴 위험성이 2배 반이나 높다. 여기서 고기라 함은 스테이크, 햄, 샌드위치, 스튜, 햄버거, 핫도그, 소세지, 살라미 등을 포함한다. 여기서 생선이나 닭고기가 빠진 이유는 그것이 장암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소나 돼지 보다는 조금 덜 해롭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 생선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의 경우, 생선을 전혀 먹지 않고 채식을 하는 사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장암의 발병률이 높다.

포화 지방에서 살펴보았던 것보다 고기를 섭취하는 사람의 장암 발병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육류에는 장암을 유발시키는 다른 요소들이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하버드 대학 연구팀의 조사 결과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이루어진 연구에서도 고기를 먹는 사람은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 장암의 발병률이 2배 이상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호주의 한 연구팀은 여러가지 동물성 식품들(고기, 생선, 간, 우유, 계란 등등)과 장암의 관계를 연구하였는데, 그 중에서 장암에 가장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계란”으로 나타났다. 계란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의 경우, 장암의 발병률이 6배 이상이나 상승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비슷한 방법으로 남성 5만명을 대상으로 장암과 육류의 관계를 연구 하였다. 그 결과, 일주일에 5번 이상 육류를 섭취하는 남성은 한달에 한 번 이하 고기를 먹는 사람에 비해서 장암의 발병 가능성이 3.5배나 높다는 사실을 밝혀 내었다. 소나 돼지나 닭의 지방분을 저하시키는 사육 방법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장암의 발병률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숯불에 구운 고기의 위험성

육류에는 벤조프린(benzopyrene)이라고 불리우는 발암물질이 있는데, 이것은 고기의 조리 방법과 관련있다. 제2부에서 살펴보았던 바와 같이, 벤조프린은 담배에 함유되어 있는 4000가지 화학물질 중의 하나인데, 고기를 숯불에 구울 때에 이 화학물질이 고기의 표면으로 다량 나오게 된다. 이것을 담배와 비교하면 다음 도표와 같다.

숯불에 구운 고기 2파운드(약 1Kg)에 함유되어 있는 벤조프린의 양은 담배 600개피에 함유되어 있는 벤조프린의 양과 같다.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숯불 고기를 2파운드 먹었을 경우에는 엄청난 양의 담배 연기에 노출되었을 때와 마찬가지 결과가 인체 내에 생긴다.

육류와 과도한 철분

현대 영양학계는 날로 증가되는 육류의 섭취량과 함께 증가하고 있는 과도한 철분에 대해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고기에 함유되어 있는 풍부한 양의 철분이 한 때는 육류의 장점으로 떠오른 적도 있지만, 지금은 지나치게 많은 함량 때문에 문제거리로 변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체 내에 저장된 철분의 양이 지나치게 많거나, 지나치게 적을 경우, 장암의 발병 가능성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UCLA 대학에서 있었던 세미나에서 인체 내의 철분 저장량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을 경우에는 장암의 확률이 증대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육류를 전혀 섭취하지 않고 완전한 채식을 할 경우, 충분한 양의 철분을 공급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육류를 섭취했을 때처럼 과도한 철분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1996년에 발표된 와인버그 박사의 논문에는 지나친 철분이 암에 미치는 문제가 다음과 같이 요약되었다.

1. 지나친 철분은 세포의 DNA에 상처를 입힐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
2. 지나친 철분은 면역 세포의 활동을 억제한다.
3. 지나친 철분은 암세포의 분열과 성장을 촉진한다.

와인버그 박사는 자신의 논문의 결론에서 “철분의 섭취를 줄일 경우, 암을 예방하고, 이미 발생된 암세포를 조절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육식과 유방암

수많은 연구 논문들이 육식과 유방암의 관련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약 20년 전에 마케시 히라야마 박사는 10년 동안 14만 여성을 대상으로 유방암을 조사하여 다음과 같은 놀라운 결과를 발표하였다.

육식의 빈도 유방암 발병률
육식을 가끔 또는 전혀 하지 않는 경우 1
육식을 매일 하는 경우 8.5

두 그룹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일본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노르웨이에서 14,000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일주일에 5번 이상 육식하는 여성은 일주일에 두번 이하 육식하는 여성에 비해서 두배 이상의 발병률을 나타냈다.
모든 암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이지만, 유방암의 경우에도 육식이 유방암 발병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다. 고기를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임신한 숫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첫번째 임신을 한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아기에게 모유를 적게 먹이면 먹일수록, 유방암 발병률은 증가된다. 대개 이러한 현상은 전문직이나 관리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문직과 관리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서 유방암의 발병 빈도가 많은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임신한 횟수가 적으며, 모유를 먹인 적이 없고, 나이가 들어서 첫번째 임신을 한 여성들의 경우에는 특별히 그들의 식단에서 육류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 좋다.

 육식과 전립선 암

식사와 전립선 암으로 사망하는 비율의 관계를 조사한 연구 결과가 있다. 그 연구보고서의 결론은, 고기와 우유와 계란과 치즈를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전립선 암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동물성 식품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전립선 암에 걸릴 확률이 3.6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비슷한 연구 결과가 하버드 대학 연구팀에서도 나왔다. 남자 5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주일에 5번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번 이하 육식을 하는 사람과 비교해 볼 때, 전립선 암의 발병 가능성이 2배 반 이상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육식과 난소암

난소암 역시 육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다. 난소암은 암세포가 다른 중요 장기로 퍼진 다음에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육식과 난소암의 관계는 다음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다.

소,돼지, 닭고기 및 생선은 난소암 발병률을 상승시킨다

인구 10만명을 기준으로 난소암 발병률 비교

동물성 식품 중에서는 계란과 우유만 먹는 사람 : 15.9명
육식을 일주일에 1~3번 하는 사람 : 18.0명
육식을 일주일에 4번 이상 하는 사람 ; 26.4명

 
질문에 대한 답변은 미국 헬레나 병원의 책임 의사인 멕도걸 박사께서 해주셨습니다.

문: 육식을 전혀 하지 않고 저지방식을 하면 위험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답: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나쁜 습관을 지적하는 말을 듣기 보다는 칭찬을 듣기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가끔씩 신문이나 잡지에 고기를 먹어야 건강할 수 있다는 기사가 나올 때마다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이 고집해온 잘못된 식생활과 라이프 스타일 때문에 고혈압이나 당뇨나 심장 질환 그리고 암과 같은 질병에 걸린 후에는 무엇이 진실이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질병에 걸리면 일단 의사는 환자에게 육식을 삼가하고 금연, 금주할 것을 권하기 때문이죠. 아무리 좋은 약을 복용한다고 할지라도 육식과 고지방을 고집하는 성인병 환자들은 근원적으로 회복될 수 없습니다. 순수한 채식과 금연, 금주, 적당한 운동이야말로 쓰러져가는 현대인들의 건강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수많은 연구 결과와 실험 보고서들이 이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은 육식에 비해 채식의 우월성을 분명하게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6부 - 모유와 암의 관계


1970년대,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것으로 알려진 살충제 DDT가 육식을 하는 산모의 모유 속에서 발견되어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육식을 하는 산모의 모유 99%에서 DDT 성분이 검출되는 반면, 채식을 하는 산모의 모유에서는 오직 8%만이 DDT 성분이 검출되었다. DDT와 DDT로부터 파생된 DDE는 모두 유방암을 일으키는 심각한 물질로 여겨지며, 미국의 환경청에서도 이 두 물질을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미국 국립 환경 및 건강 협회에서는 여성의 혈액 내에 DDE 농도가 상승할 경우, 유방암의 발병 위험성이 증대된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외에도 여러나라에서 발간되는 연구 논문에도 동물성 식품을 통하여 인체 내에 들어오는 살충제에 대해서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스페인에서의 한 연구팀은 스페인 국민의 85%가 육식과 우유제품으로 인하여 인체가 DDT에 노출되었다고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85%라는 수치는 매우 정확한 통계 자료이며, 동물의 지방 속에 축적된 DDT 살충제가 식품을 통하여 인체 내에 유입되게 되었다.”

육식과 DDT로 인한 인체의 오염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비록 채식을 하는 산모가 DDT를 뿌려서 재배한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했다고 할지라도, 검사 결과 채식주의자들의 혈중 DDT 수치는 육식을 하는 사람에 비해서 매우 낮다. 지금 현재 미국에서는 DDT의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아직도 여러가지 독성 살충제가 사용되고 있다.

DDT와 같은 살충제 뿐 아니라, 소나 돼지나 닭이 사육되는 동안에 먹는 사료와 주사를 통하여 각종 성장 촉진 홀몬제, 여러가지 항생제 및 중금속 물질들이 가축의 지방과 근육질 안에 축적된다. 이러한 물질들은 가축의 몸으로부터 쉽게 배출되지 않는다. 가축이 외부로부터 여러가지 독성 물질을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일평생을 사는 동안에 섭취하게 되는 육류와 채소와 과일을 통하여 각종 독성물질들이 인체 내에 들어와 축적된다.

육식을 하던 사람이 육류가 식품으로서 갖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알게 될 때에 매우 당황하게 된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양의 고기를 먹었는데, 이제와서 그것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말과 함께 자포자기 한다. 그러나 한 연구팀은 육식을 아무리 오랫동안 했을지라도, 육식을 중단하고 채식으로 전환하였을 때에는 항상 그에 상응하는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식사를 채식으로 전환할 때, 인체 각 기관의 조직과 기능은 다시 정상으로 복귀하는 쪽으로 그 방향을 서서히 전환한다.

사회와 국가에 법이 있고, 천연계에 그것이 운영되는 법칙이 있으며, 각 별과 항성이 운행하는 정확한 궤도와 그 운행의 중심을 가지고 있듯이, 사람의 세포와 조직에도 정확한 법칙 하에서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 생명의 법칙이 있다. 육류는 세포에게 신선한 생명력을 줄 수 없는 식품이다. 그것은 오히려 세포에게 부담을 주며, 온갖 장애를 가져오는 식품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하신 야채와 채소와 곡류야말로 인류의 건강을 위한 가장 완전하고 안전한 식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에베소서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엡4:26 에베소서 4장 26절에 나오는 위와 같은 말씀을 지적하면서 “화를 내는 것도 죄가 되나요?”라고 질문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화를 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기 때문이죠. 화를 내고 있을 때, 우리의 마음 속에 사랑이 있습니까? 인내와 온유가 있습니까? 성령의 열매는 화, 격노, 신경질과 같은 감정과 함께 맺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분’(righteous indignation)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우리는 모세의 생애에서 이기적인 분노(화)와 의로운 분노에 관한 좋은 예증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라는 우상을 만들어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모세의 마음 속에는 의로운 분노가 솟구쳤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배도로 인하여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파기 되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두 돌비(십계명)를 땅에 내던졌습니다. 그 분노는 자신을 위한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모세에게 광야에 물이 없음을 불평했을 때, 모세는 화를 냈습니다. 모세의 죄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반석에게 명하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친 것만 이 아닙니다.(민 20:8).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말했던 것 역시 모세의 죄였습니다(민 20:10). 성경은 모세의 죄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자기 입술로 경솔하게 말하였도다”(시 106:33). 그들의 불평은 하나님께 대한 불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그들의 불평을 자기 자신에 대한 것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불평에 대하여 짜증과 화를 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인간적인 분노로 인하여 모세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세의 인간적 분노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처사가 너무 지나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내뱉는 분노의 표현에 담겨져 있는 모세의 자존심을 보셨으며, 죽지 않은 자아를 보셨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는 마음이며, 사단에게 속한 정신입니다. 자존심과 자아를 보호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항상 분노, 짜증, 안절부절, 미워하는 정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성전 안에서 돈으로 예물을 매매하고, 성전이 시끄러운 장터로 변한 모습을 보면서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전혀 자신을 위한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화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집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거룩한 사랑의 표출이었습니다.

의로운 분노와 불의한 분노 사이의 차이는 그것을 야기시키는 마음의 동기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와 사랑을 옹호하기 위한 의분과 자신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분노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Q & A

문: 단 하나의 죄라도 우리를 하나님과 분리시키나요?

답: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사 59:1) 죄란 하나님의 법과 뜻을 거절하는 정신입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누구든지 하나님의 진리와 뜻을 의도적으로 거절하고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자신을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조용히 죄를 지적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그 음성을 눌러버리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로부터 스스로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죄인이 죄를 끝까지 고집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거절할 때, 그것은 스스로가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으로부터 분리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무리 감정적으로 황홀한 경험을 한다고 할지라도, 예수께서는 진리와 율법을 무시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거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과 진리를 존중히 여기는 자들을 존중히 여기십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분노, 정욕, 탐심, 이기심을 품으면 우리는 그와 같은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므로, 만일 우리가 죄를 섬기면 그리스도를 섬기지 못하게 되므로 그리스도와 분리되는 것입니다.

만일 진리가 영혼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면,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피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불결하고 더러운 생각은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과 분리시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의도적으로 죄와 정욕을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 그분의 의의 옷을 입혀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했기 때문에 우리를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끝까지 거절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물러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범하고 그분의 영을 슬프게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회개하는 정직한 심령으로 그분께 돌아오는 한, 그분은 우리에게서 결코 돌아서지 않으십니다.

서론 - 일곱 나팔 예언의 의미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가 통과 해야할 미래의 사건들을 간단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예언들은 교회를 안내하고 위로하며 힘을 주시기 위하여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지침서이다.

그 중에서도 일곱 교회와 일곱 인과 일곱 나팔에 관한 예언은, 예수께서 승천 하신 이후 부터 시작해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각 세대에 걸쳐서 교회가 겪어야 할 사건들과 경험들을 미리 보여 주신 놀라운 계시들이다. 계시는 신자들에게 두가지 축복을 가져다 준다. 미래의 사건들을 위하여 미리 준비케 도와주는 동시에 성취되어 가는 예언들을 보면서 성경에 대한 신뢰심과 믿음을 더하여 주는 것이다.

일곱 교회, 인, 나팔들은 모두 일곱 시대에 걸쳐서 교회 안과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한 특정한 시대의 경험들과 교훈들도 동시에 다른 모든 시대들에게 같은 교훈과 경고를 함께 주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일곱 교회에서 보여지는 각 시대에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위험들과 투쟁들은 다른 세대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까지도 중요한 교훈이 되고 있다. 에베소 교회의 교훈은 사도시대의 초대교회에 해당하는 예언이지만 그 예언들의 의미는 모든 세대를 초월하여 같은 교훈과 책망들을 신자들에게 말씀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일곱 나팔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이 일곱 나팔에 관한 예언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연구하기를 꺼려 하거나 어려워 하는 대목이며, 그 해석들 또한 여러가지다. 그러나 우리가 이 부분을 이번 호에서 다루기로 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성경 예언을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고 또한 이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놀라운 진리를 설명해 드리고자 함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알려 주시려고 크신 사랑으로 기록하여 놓으신 예언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리는 것은 얼마나 큰 손실인가? 그러면 이제부터 일곱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 예언의 의미와 개요를 간단하게 살펴 보기로 하자;

일곱 교회 예언 : 초대 교회 시대부터 예수 재림때 까지 교회 안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 말씀하여 두신 계시이다. 교회의 부흥과 타락, 진리의 변질과 타협, 그리고 개혁과 부흥에 대한 역사가 그려져 있다.

일곱 인 : 초대교회 시대부터 세상의 종말 때까지 하나님의 교회가 경험하여 나가는 과정들, 즉 핍박과 타락과 타협들, 그리고 결국에 이르러 오는 교회를 중심으로한 세계적인 사건들을 예언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있는 책을(계 7장 참조) 펼 때마다 일어나는 세상의 사건들은 주께서 이 세상을 마귀의 통치로부터 도로 찾으시기 위하여 투쟁하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일곱 인으로 계시하신 것이다.

일곱 나팔 : 나팔은 전쟁이나 싸움을 경고할 때에 사용되어지는 상징으로서 교회를 괴롭히는 나라들이나 단체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들을 예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곱 나팔 예언들은 주로 교회 밖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투쟁들과 전쟁들을 예언하여 주고 있다. 이 예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국면과 그러한 세력들이 당하게 될 운명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는 말이다.

계 1:3은 여전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시록의 예언들은 우리가 이해 할 수 있고 또한 마땅히 이해 하여야 한다. 이번 호에 다루어지고 있는 일곱 나팔에 대한 예언을 읽으시면서 하나님과 또한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신뢰가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서 용솟음 치게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드린다. 다음에 나오는 일곱 교회와 인곱 인 그리고 일곱 나팔에 대한 비교 도표는 여러분의 이해를 돕는데 기여할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