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마음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왜 믿으십니까?” 라고 물으면 아주 다양하고 서로 다른 대답들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의 공통적인 대답은 “구원”을 얻으려고, 혹은 “영생을 얻으려고” 이다.

만일 예수를 믿어도 결국에 아무 보상이나 영생이 보장되지 안는다면 정말 지금처럼 수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문턱을 드나들 수 있을까? 어떤 복음 성가 중에 이런 아름다운 가사가 있어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만일 그곳에 영광의 언덕 위에
날 위한 아름다운 저택이 없다 해도
만일 그곳에 정금거리가 없다 해도
보석으로 꾸민 성이나 문이 없어도
수정 같은 유리바다가 없다 해도
그래도 나는 그곳에 가기 원하네
나의 친구들이 거기 없다 해도
내가 쓸 황금 면류관이 없다 해도
다만 당신의 얼굴을 뵐 수만 있다면...
생명을 버리면서 까지 나를 사랑하신
당신의 얼굴만 뵐 수 있다면
나는 그래도 그곳에 가기 원하네

만일 보상을 바리지 않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면 그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고무적인 일일까 만은 혹 영생을 바라고 믿는다고 해서 이 세상을 나그네처럼 살며 하늘에 소망을 두고 가난하게 살아 가는 아름다운 교인들을 이기적인 믿음을 가졌다고 단언 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로 가득찬 이 악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비이기적인 그리스도인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얼굴을 뵈러 가기 원하든, 영원히 사는 천국의 행복을 바래서 가기 원하든, 그 아름다운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한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 것은 바로 ‘거듭남’, 곧, ‘중생’이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것이 바로 유대나라에서 책임 있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부와 명예와 많은 성경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듭남에 대해 전혀 알거나 경험하지 못하고 있던 니고데모에게 그가 예수님을 만나러 왔던 조용한 밤에 예수께서 첫번째로 하신 말씀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거듭남을 하나의 환희와 감격스러운 감정의 경험으로만 치부하고 있다. 말씀과 진리의 깊은 깨달음이 없이 또 진정한 죄의 자각이나 회개나 개혁이 없이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에만 치우쳐 마치 뜨거운 신앙의 감정이 거듭남인양 생각할 위험성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물론 처음으로 주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모두 회개하고 굴복한, 그래서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그 감격스럽고 눈물 쏟던 경험을 우리는 거듭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한 사람들은 자기 생애에 있었던 그 경험을 기억 속에 소중히 간직해 놓고 늘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나는 거듭났노라고. 그러나 항상 문제는 거듭난 그 다음이다.

어제 저녁 부르던 그 감동스러운 찬송 소리와 함께 울며 기도하던 동료 교인들이 사라지고 또 다시 지겨운 이 세상에 아직도 남아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그 다음날 아침, 그리고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올라 오는 육신의 본성의 모습을 내 자신 속에서 발견할 때, 우리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 어제 나는 분명히 거듭났었는데!...” 그렇다면 참된 거듭남은 무엇이며 거듭남의 경험을 지속하여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듭남이란?

거듭남이란 새 생명을 받는 것이다. 사람이 그리스도께 굴복할 때 (곧 자기 자신의 뜻과 고집을 포기하고 완전히 바칠 때) 새로운 능력이 마음을 점령한다. 사람이 스스로 성취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다. 인간의 본성에 초자연적인 요소를 가져다 주는 것은 초자연적인 역사이다.
마음의 냇물이 맑게 되려면 먼저 마음의 샘이 정결하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 거듭남이란 옛 것을 변경 하거나 개량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성령의 효과적인 역사에 의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 그리스도의 성령께서는 바람과 같이 사람의 마음에 끊임 없이 역사하고 계시다. 받는 사람은 아마 의식 하지 못 할른지는 모르나 조금씩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게 하는 감명을 받는다. 이러한 감명들은 그리스도를 명상 함으로 받을 수도 있고 성경을 읽거나 실지로 목사의 말을 들음으로써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돌연한 회개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꾸준하고도 오래 계속된 과정을 거쳐서 독촉하신 결과인 것이다.

바람 그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결과로 생기는 것을 우리가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듯이 영혼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활동도 그 구원하시는 능력을 체험한 사람의 모든 행위로 나타난다. 죄악을 품은 생각은 사라지고 악한 행위와는 인연을 끊게 된다. 사랑과 겸손과 화평이 분노와 시기와 분쟁을 대신한다. 기쁨이 슬픔을 대신하고 얼굴은 하늘의 빛을 반사한다. 이렇듯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거기에는 생애의 변화가 일어난다. 사람이 믿음으로 (즉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창조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는 믿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때 축복이 임하는데 곧 그 때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능력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로운 피조물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경험이 일생의 한 번 만으로 족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얼마나 편할까! 이 지점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혼란과 실망을 당한다. 거듭났다는 것은 마음이 거듭난 것이지 육체가 거듭난 것이 아니므로, 즉 우리의 육체가 영화로운 불멸의 몸으로 변한 것이 아니므로, 아직도 오랫동안 길들여온 죄악의 습관과 맛과 성질이 타락한 우리 육체 속에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시시 때때로 육신의 정욕이 다시 올라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거듭남은 매일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거듭남을 지속시킬 수 있을까?

거듭남을 지속시키는 비결

성경에는 포도나무의 비유가 나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포도나무에 붙지 않는 가지는 살 수 없다. 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살 수 없으리라고 하셨다. 어린 가지가 산 포도나무에 접붙여져서 섬유질과 섬유질이 엽맥과 엽맥이 연결되어 이 것이 포도나무 줄기로 자란다. 이와 같이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이 그리스도와의 연결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믿음으로 연합은 이루어진다. 죄인은 그의 결점을 그리스도의 장점에, 그의 텅 빈 것을 그리스도의 충만 하심에, 그의 연약함을 그리스도의 항구적인 능력에 연합 시킨다. 그 때에 그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진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우리의 인성에 감응되며 우리의 인성이 신성에 감응된다.

이렇게 이루어진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지속 되어야 한다. 가지가 나무에서 잠시라도 떨어져 살 수 없듯이 우리가 예수께로 부터 받은 생명은 계속적인 교통을 통해서만 유지 될 수 있다. 이 결합은 우연한 접촉이거나 또는 분리와 연결이 무상한 그런 결합이 아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그리스도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의 성령을 계속적으로 받아들여 그에게 무조건 복종하며 사는 생애를 말한다. 교통의 통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계속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포도나무 가지가 산 포도나무에서 수액을 계속적으로 빨아 올리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매달려서 믿음으로 능력과 그의 품성의 완전하심을 그에게서 받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없이는 너희는 단 하나의 죄도 이길 수 없고 조그마한 유혹이라도 물리 칠 수 없다.” 라고. 매 순간 마다 자신을 굴복 시킴으로 하나님과 산 연락을 가지지 않는다면 또 매일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친숙하고 지속적으로 교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아름다운 거듭남의 경험을 금방 아주 쉽게 잊어버릴 것이다.

혹자는 얘기 할런지 모른다. 그렇게 매일 자신과 싸우며 자신의 뜻을 끊임없이 하나님께 복종하며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정말 고달프고 또 힘들 다고... 정말 그럴까?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생각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아름답고 놀라운 영원한 하늘의 보상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을 매일 명상 한다 해도 그렇게 느껴질까? 아니, 만일 그런 보상이 없다고 해도 한 번만 시선이 마주쳐도 나의 모든 처지와 내 속의 모든 생각들과 감정과 나의 마음의 구석 구석을 다 아시고 이해하시는 예수님, 그 모습을 꼭 한 번 뵙기만 해도 좋을 사랑하는 그 분을 만날 수 있는 길 인데도...? 그런 예수님과 영원히 지낼 수 있는 하늘에 가는 길인데도 정말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싸움과 굴복이 그래도 그렇게 힘들게 느껴질까...?
우리가 정말 아무 보상도 바라지 않고 나를 구속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답 하기를 믿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말이다.

권두언


강병국 목사

인간의 역사에도 건망증이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잊어버리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똑같은 실수를 계속하여 범하는 이유는 과거의 교훈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일은 성경의 말씀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도 교인들과 학자들이 심각한 건망증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은 성경 속에 있는 아주 중요한 예언을 해석하는 일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북극성과 같은 예언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항상 변치 않고 우리의 좌표를 알려주고 있는 나침반과 같은 예언들 말입니다. 그 예언들은 우리가 현재 어디쯤 와 있고,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으며 또한 우리를 공격하는 사단의 술책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계 전반에 걸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의 앞길을 계속 비추어 오고 있는, 나침반과 같은 한 가지 중요한 예언에 대한 해석을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해석입니다. 누가 적그리스도인지 그 정체를 이해하는 일은 1900년도 초기까지는 종교 개혁자들과 성경 학자들 사이에 거의 일치하여 왔었습니다. 그런데 1900년도 초기 부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호는 여러분들에게 성경이 말하고 있는 적그리스도가 누구이며 또한 그 정통적인 해석이 왜 바꾸어 지기 시작했는지에 대하여 알려 드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른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여러분을 도와 드릴 것입니다. 위험한 시대를 지나고 있는 여러분들께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참된 예절


참된 예모의 정의

그리스도인 가정 안에는 참된 고상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진리를 위하여 힘있는 증거가 된다. 언어와 태도의 저속함은 그 것이 누구에게서 나타나든지 그들의 타락한 마음을 보여 준다.

하늘에 근원을 둔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은 결코 상스럽거나 거칠거나 사납지 않을 것이다. 진리는 부드럽고 고상한 감화를 끼친다. 진리가 마음속에 받아 들여지면 그것은 사람들을 공손하고 예모 있게 만든다. 그리스도인의 예절은 성령의 역사하심 아래서만 얻을 수 있다. 그것은 허식이나 인위적인 수련이나 굴복이나 아첨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세상 사람들이 가진 부류의 예절로써 참된 그리스도인의 예절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참된 수련과 참된 예절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에서만 얻을 수 있다. 참된 예절과 참된 예모는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수 있는 친절이다.

참된 예절의 진수(眞髓)는 남을 생각해 주는 마음에 있다. 실재적이고 영원한 교육은 동정심을 기르고 박애심을 키우는 데 있다. 부모를 공경하도록 이끌지 못하는 교양, 부모의 미덕을 높이 평가하지 않고 부모의 결점에 대하여 참지 못하며 부모의 필요를 돕도록 이끌지 못하는 교양, 또는 약한 자와 불행한 사람들에게 깊은 동정심을 갖고 부드럽고 관대하게 도와주도록 이끌지 못하는 교양, 계급과 계층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예의 바르지 못한 소위 그런 교양은 참된 예절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예절이야말로 가족을 사랑의 테두리 안에 연합 시키고 그들을 매일매일 더 밀접하게 하고 더 강하게 만드는 황금 고리이다.


예절에 관한 가장 완벽한 진리

예절에 관하여 모든 사람들이 명심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 34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고린도전서 13장 4절~8절)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절을 명할 뿐 아니라, 참된 예절의 특성인 무아의 정신과 유순한 미덕과 사람의 마음을 끄는 성품에 대한 많은 실례를 보여 준다. 이런 특성들은 다만 그리스도의 품성의 반영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특성들이 당신의 자녀들에게서 완전히 반영되기를 원하신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목적하시는 바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사람을 신사 숙녀로 만든다. 그리스도는 예의를 지키셨고 당신을 핍박하는 자에게 까지라도 그리하셨다. 따라서 참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와 동일한 정신을 나타내야 한다. 아그립바 앞에서 말한 바울의 변론은 참된 예의와 유창한 웅변의 실례가 된다. 복음은 이 세상에 유행하는 형식적 공손을 장려하지 않고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예의를 장려한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예절은 소위 이 세상에서 말하는 겉으로 보여지는 예절이 아니라 우리가 하늘나라까지 가지고 가야 할, 그 곳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그런 참된 예절이어야 한다.


참된 예의의 동기인 사랑

겉으로 드러나는 예절을 위한 수양은 온갖 성내는 일과 가혹한 판단과 부당한 언사를 삼가 하기에 역부족이다. 진정한 세련됨은 자기를 최고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한 결코 나타날 수 없다. 참된 예절은 자아가 살아있는 한 결코 나타날 수 없다. 마음속에 사랑을 품지 않으면 안된다. 진실된 그리스도인은 그의 행동의 동기를 주께 대한 충심 어린 사랑에서 끌어온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뿌리에서 그 형제에 대한 무아(無我)의 관심이 솟아 나온다.
힘써 찾고 가슴에 품고 배양해야 할 모든 것 중에서도 순결한 심령, 감사와 화평에 가득 찬 마음씨처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진리와 사랑의 거룩한 조화가 심령 가운데 있다면 그것은 언어와 행동 가운데 빛날 것이다. 참된 자선의 정신이 심령에 거해야 한다. 사랑은 사랑을 품은 사람에게 태도의 우아함과 예절과 사랑스러움을 갖도록 만든다. 그것은 표정을 빛나게 하며 목소리를 부드럽게 磯? 사랑은 사람 전체를 세련되게 하고 고상하게 한다. 그것은 사람으로 하나님과 조화되도록 이끈다. 그 이유는 사랑이 바로 하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참된 예절은 단순히 예절의 법칙들을 실행하는 것만으로 배워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호의를 거절 할 수가 없어서, 또는 상대방을 실망 시킬 수가 없어서 라는 이유로 진리의 원칙을 저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 그리고는 그들에게 예의를 지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예절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진리의 원칙을 보여주는 일에 실패 했기 때문이다. 참된 예절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평판을 생각지 않고 사랑으로 그들에게 진리를 조심스럽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예절은 세상의 관습을 따르기 위하여 원칙을 희생하도록 조금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는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바로 가정의 행복의 기초가 된다. 그리스도인은 예모로써 모든 가족을 다스려야 한다. 그것은 아무런 값 없이 베풀 수 있을 뿐 아니라, 굳어지고 거칠게 될 성질을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변하지 않는 예모, 곧 남이 우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우리가 남에게 자진하여 봉사하는 정신을 배양하는 것이 인생의 불행의 반을 제거해 준다.
우리의 자녀들이 친절과 예모와 사랑을 실행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린 그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부모는 극히 작은 일에 있어서도 피차에 예절을 지켜야 한다. 사랑과 희생이 가정의 규율이 되어야 한다. 어떠한 거친 말도 해서는 안되며 어떤 혹독한 말도 입에서 나와서는 안된다.
명랑한 얼굴, 부드러운 목소리, 예절 바른 태도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으로서 이런 것들은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 어린이들은 명랑하고 쾌활한 태도에 이끌린다. 어린이들에게 친절과 예모를 보이면 그들도 그 같은 정신을 다른 이들에게와 또 그들끼리 나타낼 것이다.
부모가 나타내는 예모와 자제는 자녀들의 품성 형성에 있어서 말로만 타이르는 것보다 훨씬 큰 감화를 끼친다.


금률을 가정의 규율로 삼으라

사회적, 가족적 교제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법칙들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에는 가장 선하고 순결한 도덕의 표준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귀중한 예법이 있다.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하신 말씀(마태복음 5~7장)에는 노인이나 어린이를 위한 지극히 귀중한 가치 있는 교훈이 포함되어 있다. 가정에서 자주 그것을 읽고 그 귀중한 교훈이 매일의 생활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는 사도의 명령과 함께 가족의 규율로 삼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들은 가정에서 예모를, 그리고 사소한 일에서 일지라도 박애의 정신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그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힘쓰게 될 것이며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친절히 돌보는 동안 자신을 잊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나무에서 자라는 열매이다.

황금률은 진정한 예의의 원칙인데 황금률에 대한 가장 분명한 예증은 예수의 생애와 품성 가운데서 볼 수 있다. 우리 구주의 매일 매일의 생애 가운데서 얼마나 부드럽고 아름다운 빛이 비치었던가! 예수께서 계심으로써 아름다운 향기가 얼마나 흘러 넘쳤던가! 그 같은 정신은 하나님의 자녀에게서도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거하시는 사람은 거룩한 분위기로 둘러싸일 것이며 그들의 순결한 흰 옷(성품)은 여호와의 동산에서 풍기는 향기를 드러낸다. 그들의 얼굴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빛을 반사할 것이며 피곤한 발로 절뚝거리면서 걸어가는 자들의 길을 비출 것이다.

사랑은 표정과 언어와 행동 가운데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부모는 자녀들을 즐거움과 예모와 그리고 사랑의 분위기로 둘러싸야 한다. 사랑이 거하며 또 그 사랑이 표정과 언어와 행동에 표현되는 가정이야말로 천사들이 거하기를 즐겨 하는 곳이다. 부모는 사랑과 기쁨과 행복스러운 만족감의 햇빛이 부모 자신의 심령 속에 비쳐 들어오게 하고 그것의 포근한 감화가 가정에 스며들어 오도록 해야 한다. 친절하게 참을성 있는 정신을 나타내며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그 같은 정신을 나타내도록 격려하여 가정 생활을 밝게 할 이 모든 미덕들을 길러 나가야 한다. 이렇게 하여 조성된 분위기는 공기와 햇빛이 식물계에 하듯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심령과 신체의 건강과 생명력을 증진시킬 것이다.
온화한 태도와 즐거운 대화, 사랑을 표현하는 행동은 자녀들의 마음을 애정의 비단줄로 그들의 부모에게 맬 것이며 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귀한 장신구보다도 가정을 더욱 매력적인 곳으로 만든다.

정을 낙원으로 만드는 친절 ?BR> 상호간의 친절과 이해와 용서는 가정을 낙원으로 만들 것이며 거룩한 천사들은 가정의 주위로 이끌린다. 그러나 불쾌한 말들과 성냄과 말다툼이 있는 집에서는 천사들이 달아날 것이다. 불 친절, 불평 그리고 성냄이 예수께서 계시지 못하도록 막는다. 매일의 생활의 예모와 가족들 각자 사이에 있어야 할 애정은 환경에 의해 지배 받지 말아야 한다. 유쾌한 목소리, 부드러운 태도, 모든 행동에 나타나는 참된 애정과 근면 그리고 검소함은 비록 오막살이 집일지라도 가장 행복한 가정으로 만든다. 창조주께서는 이러한 가정을 칭찬하시고 존중히 여기신다. 세상에는 외부 세상을 위해서는 좀 적게 살고 좀 더 그들 자신의 가족 사회를 위해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다. 겉치레로 보이는 예절이나 애정을 타인이나 방문객에게 좀 덜 나타내더라도 우리들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참된 사랑과 동정에서 우러나오는 예모를 좀 더 나타내야 한다.


아무 것도 예절의 결핍을 보충 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면서도 언어와 태도에 있어서 거칠고 불친절하고 예모가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난폭하고 거만하며 흠잡기를 일삼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어떤 이들의 행동은 너무나 친절과 예절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그들의 선의는 나쁜 평을 받는다. 아무도 그들의 성실함을 의심하거나 그들의 정직함을 의심하지 않을지는 모르나 성실이나 정직이 친절과 예의의 결핍을 대신하지는 못 한다. 그리스도인은 진실해야 할 것은 물론이요 동정심이 있어야 하며 고결함과 정직함 그리고 긍휼히 여기는 정신과 예모가 있어야 한다.
형제들 사이에서 예모와 부드러운 관심을 게을리하는 어떠한 행동이나 그리고 자녀들과 부모 사이에 친절하고 격려하는 말들을 태만히 하는 모든 것은 품성을 비 그리스도인적으로 만드는 습관들을 만든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작은 일들이 실행된다면 이 작은 일들은 큰 일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크게 자라날 것이다. 저들은 그 생애 가운데 향연(香煙)으로써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향기를 호흡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받기 바라는 이해와 관심

많은 사람들은 친절한 동정을 참으로 바라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잊어버려야 하며 언제나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호의에 대하여 감사함을 표시할 기회들을 찾아야 한다 또한 부드럽고 친절한 행동과 사랑의 작은 표현으로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의 슬픔과 짐을 가볍게 하며 도와 줄 기회들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가정 안에서 시작하여 가족 사회의 밖에까지 확대되는 이러한 사려 깊은 예모들은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며 이러한 사소한 일들을 게을리하는 것이 생애를 괴롭고 슬프게 만든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이 세상과 접촉하는 것은 사교적인 관계를 통해서 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보고 이미 그 마음에 거룩한 빛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더 나은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두운 길에 빛을 비추도록 요구하신다.

우리는 정다운 언어와 명랑한 표정으로 수많은 작은 관심들을 나타낼 수 있으며 이러한 관심들은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부주의한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경시함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불친절하고 그들의 권리를 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잘 계발된 사교적 능력은 구주께로 영혼을 이끄는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기적으로 우리 자신의 이익에만 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축복과 특권들을 나누어 주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으로 알게 해야 한다. 그들에게 우리의 종교가 우리로 동정심이 없거나 가혹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발견했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이익을 위하여 하셨던 것같이 봉사해야 한다.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인들은 침울하고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그릇된 인상을 세상에 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정에서 예모 있고 온순하다면 우리가 가정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유쾌한 품성의 향기를 지니고 다니게 된다. 우리가 가정에서 관용과 인내와 온순과 강직함을 나타낸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빛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주님께 더 가까이 인도하길 원한다면


서정희

사랑하는 이들을 주님께 더 가까이 인도하길 원한다면
먼저 주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세요.
그분과의 사랑을 이루고
그분과 하나되어
그분이 내 안에서 이루시는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세요.

사랑하는 이들을 주님께 더 가까이 인도하길 원한다면
먼저 주님을 따라가세요.
주님께서 이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순종과 인내와 침묵과 기쁨의 발걸음을 내 딛으세요.
그들에게 보이기 위한 발걸음이 아닌
주님께 향한 당신의 진실된 마음과
그들을 사랑하기에
주님만 의지하려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주님께 더 가까이 인도하길 원한다면
온 마음으로
먼저 사랑을 나눠 주세요.
그들의 말을 먼저 들어주고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 슬픔과 기쁨을
마음으로, 진정한 이해로, 따뜻한 눈망울로, 평안한 미소로
두 팔 넓게 벌리어 안아주세요.
그들 그대로의 모습을
?BR> 사랑하는 이들을 주님께 더 가까이 인도하길 원한다면
주님께서 당신에게 보여주셨던
그 사랑의 침묵으로 그들을 사랑하세요.
그리하여
여전히 그들이 같은 말과 행동을 보일 때
지금까지 당신이 해 온 일을 생각하며
왜 여전하냐고 묻지 말고
사람을 이끌고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것을 되 새기며
한결같은 사랑으로 기도하세요.
말없이....
그들을 위해 주님께서 일하시도록

이러한 사랑을 보일 때
당신이 사랑하는 자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의 말 한마디 없어도
당신의 매 삶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볼 것이고
주님께 가까이 가는 길을 볼 것이고
주님께 가는 그 길의 빛과 행복을 볼 것이며
기꺼이 주님 만나기를 더 속히 준비 할 거예요.
당신의 소리 나지 않는 진실된 삶과
말없는 사랑을 통해서......

콜레스테롤 때문에 걱정하시나요?


현대인들의 건강을 측정하는 기준치 중의 하나로서 사용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늘날, 혈관이나 심장에 관련된 질병(고혈압, 동맥 경화 등)이나, 신진대사의 장애로 인한 질병(당뇨, 저혈당 등)은 어떤 사람의 전체적인 건강도를 판단하는 기준치(?)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질병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다.

산업이 발달한 선진 사회에 사는 사람의 경우, 섭취하는 전체 칼로리 가운데 40-50%가 지방(fat)이며, 매우 많은 양의 정제된 탄수화물(refined carbohydrates)을 섭취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러한 사회를 산업과 의학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선진 사회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들 사회에서 발병되는 질병들을 살펴보면, 후진국보다도 낙후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국가나 사회가 산업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보하게 될 때, 질병의 종류는 오히려 심각하게 증가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산업이 발전된 선진국가일수록, 국민의 식생활이 균형을 잃어버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제된 지방과 정제된 설탕, 정제된 가공식품 등이 식탁을 점령함으로써, 사람들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산업 후진국의 경우, 섭취하는 전체 칼로리 가운데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20% 정도이며, 정제되지 않은 탄수화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는 것으로 조사 보고 되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선진국민들을 위협하는 각종 질병들이 후진국에서는 찾아 보기조차 힘들다. 지방과 정제된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면 할수록, 더 많은 종류의 성인병들이 찾아오게 된다. 지방의 총 섭취량을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는한, 현대 산업 사회에 찾아온 각종 질병들을 정복할 수 없다.
동물의 근육(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조개류), 특히 동물의 기관(간, 뇌, 콩팥 등)과 계란은 매우 해로운 물질을 우리 몸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데, 바로 이것이“콜레스테롤”이다. 우리 몸은 일정량의 콜레스테롤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양은 체내에서 자체 생산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 몸은 고기나 생선의 섭취와 함께 따라서 들어오는 어느 정도의 콜레스테롤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분의 콜레스테롤은 혈액과 조직에 저장된다. 체내에 저장된 콜레스테롤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서 위궤양을 일으키거나, 혈관 내벽에 찌꺼기(plaque)가 쌓이는 각종 농양(abscess)을 유발시키는데, 이것을 동맥경화라고 부른다.

고지방의 식생활을 계속해서 할 때, 젊은 사람들의 혈관에도 이러한 찌꺼기가 쌓이게 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찌꺼기가 점차적으로 누적되어서 결국에는 혈관이 좁아지는 현상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혈관 내면적의 축소 현상은 조직으로 흘러들어가는 혈액의 양을 감소시킨다. 이러한 경우, 심장은 일정한 양의 혈액을 조직에 공급하기 위해서 혈압을 올리게 되며, 결국에는 고혈압이라는 질병이 체내에서 자리잡게 된다.
심장과 연결되어 있는 혈관이 찌꺼기에 의해서 좁아지게 될 때, 심장 근육에 산소가 충분하게 공급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심장에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환자의 경우, 단거리를 뛰거나, 감정적으로 격해지거나, 단 한번의 과식이나 기름진 음식의 섭취에도 갑작스럽게 심한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지방이 어떻게 이러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방이 소화 흡수된 이후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알아야 한다. 지방은 작은 지방 알갱이의 형태로 혈액 속으로 들어간다. 이 알갱이들은 적혈구 세포에 달라 붙게 되는데, 이것에 의해서 매우 미세한 혈관에서는 혈액의 흐름이 지장을 받게 된다. 적혈구 세포들은 줄로 연결한 동전 꾸러미처럼 서로 뭉치게 된다. 그리하여 산소를 실어나르는 능력과 효율이 크게 저하된다.
산소가 혈관 내에서 효율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서, 콜레스테롤은 찌꺼기로 남게 되며, 이러한 찌꺼기는 동맥경화를 일으키게 된다. 혈액 중의 산소가 부족하게 되면,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점점 더 쉽게 혈관벽을 뚫고 침투하게 되기 때문에 찌꺼기가 점점 더 많이 혈관 내벽에 쌓이게 된다. 이러한 찌꺼기는 청력, 시력, 관절, 소화 기능을 약화시키며, 결국에는 극도로 쇠약하게 만든다.

식사를 올바로 개선하면, 찌꺼기는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며, 거의 정상에 가까운 혈액의 순환을 회복할 수 있다. 지방의 전체 섭취량을 최소화 할 뿐 아니라 체내에 들어가서 트라이글리세라이드(혈중 지방의 한종류)로 전환되는 정제된 탄수화물(설탕, 꿀, 당밀 등)의 섭취량을 낮춤으로써, 혈중 지방을 낮출 수 있고, 당뇨병도 치료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관절염은 혈중 지방을 낮춤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운동: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한 방법 중에서 가장 간단하고 쉬운 것은 운동일 것이다.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고 햇빛을 받으면서 하는 운동은 매우 효과적인 치료를 가져온다.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줄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다른 유익을 신체의 전체적으로 가져다 준다.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는 식이 요법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는 식이 요법은 매우 단순하다. 아래에 나열한 식품들을 마음 껏 즐기면 된다.

1. 과일: 아보카도와 올리브를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과일. 신선한 과일을 통채로 먹으면 과일 쥬스를 마시는 것보다 6-10배의 섬유질을 더 많이 섭취할 수 있다. 섬유질은 콜레스테롤을 흡착하여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2. 채소: 모든 종류의 채소들, 특히 녹색과 노란색 채소류
3. 콩 종류: 완두콩, 편두콩, 갈반조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콩
4. 고구마, 감자
5. 곡식:
정제되지 않은 모든 종류의 곡식(현미, 현미 찹쌀, 통밀 등)
6. 넛(nut)과 씨앗: 월넛, 알몬드, 캐슈, 피칸, 그리고 씨앗 종류는 소량만 섭취해야 됨.

조심해야 할 식품들
1. 설탕, 시럽, 꿀, 당밀(molasses)
2. 각종 식용유, 마가린, 쇼트닝, 피넛 버터를 비롯한 각종 넛 버터
3. 고기와 생선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동물성 식품은 절대 금해야 함
4. 술과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수
5. 강한 자극성 양념, 소금

치료의 효과가 있는 식픔
1. 호도(walnuts):
하루에 두 수저의 호도를 섭취함으로써, 콜레스테롤을 조절하는데 있어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도가 함유하고 있는 오메가 3지방산이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는 역할을 한다.
2. 말린 자두(prunes): 미네소타 대학의 연구팀은 하루에 12개의 말린 자두를 먹음으로써,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3. 씰리움 씨앗(psyllium seed): 한번에 1-3 티스푼씩, 하루에 2-3번 물에 타서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대장암도 예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천연적인 장청소제로 사용되고 있다. 약에 비해서 가격이 매우 싸고 부작용도 전혀 없으며, 효과도 매우 좋다.
4. 포도: 자주색 포도와 포도즙을 쥐에게 먹인 결과, 콜레스테롤이 낮아지는 실험 결과를 얻게 되었다. 건도포 역시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한순간에 큰 효과는 없을지 모르지만, 서서히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5. 숯가루: 활성화된 숯가루는 지질(lipid), 콜레스테롤, 트라이글리세라이드를 낮추어 준다. 영국의 저명한 의학지 LANCET 에 기재된 연구 보고에 의하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매우 높은 환자에게 숯가루를 물에 타서 일정 기간 동안 먹였더니, 전체 콜레스테롤이 25%나 감소 되었으며, LDL은 41%가 낮아졌다. 하루에 3번씩 활성화된 숯가루(1큰수저)를 환자에게 섭취시킨 결과,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6. 마늘: 지난 수십년에 걸쳐서, 수천가지의 실험을 한 결과, 마늘이 콜레스테롤을 낮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또한 당뇨병이나 심장 질환에도 매우 효과적인 치료 기능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늘을 섭취하면, 콜레스테롤과 트라이글리세라이드의 수치가 낮아지고,“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의 수치는 증가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된다.
7. 약초: 호톤 베리, 튜머릭과 같은 약초는 콜레스테롤을 낮추는데 있어서 도움을 줄 수 있다. 가루로 만들어진 약초를 뜨거운 물에 10분 동안 담그어 둔 후 마시면 좋다(하루에 두번씩)

통밀 최고!


Vegi Life 에서 발췌

국수, 수제비, 야채지짐, 만두피, 과자류, 씨리얼, 케익 - 밀가루를 이용한 다양한 식품들이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다. 밀가루는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중요한 식품이다. 밀가루는 어떤 곡물이며, 그것의 역사는 어떤 것인가?

밀은 수천년 전부터 식품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고대로부터 두가지 종류(wild einkorn, wild emmer)의 밀이 사용되어 왔다. 오래된 기록 가운데서 스위스에서 밀을 멧돌에 갈아서 사용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으며, 성경에는“밀의 가장 아름다운 것(the finest of the wheat) 으로 저희에게 먹이며”라는 영감적인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시편 81:16). 밀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하다. 예를 들면, 해발 3000m의 고지에서도 재배할 수 있으며, 북극지방 근처부터 미국의 남부지방까지 어느 곳에서나 재배할 수 있다.


통밀에 담겨 있는 놀라운 유익

통밀은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밀을“3중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에너지원이라고 부른다. 밀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분(녹말)은 소화과정에서 글루코스로 전환되는데, 이것은 우리 몸의 신체적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연료로 사용된다.
그러나 글루코스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있어야 탄수화물이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밀에는 생명의 필수요소인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심장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타민 E의 도움이 필요하며, 좋은 혈액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철분이 필요한데, 밀에는 이러한 것들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밀은 놀라운 보물이 담겨 있는 곡식이다. 아무리 많은 금과 은을 가지고도 이러한 영양을 창조해 낼 수 없다. 오직 천연계에 숨겨있는 하나님의 손만이 이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밀이 우리의 몸에 매우 유익한 성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는 한 알의 밀을 놓고서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밀의 표피는 매우 강력한 7층으로 덮여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밀의 표피부위는 소나 말 그리고 특정한 환자들만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유익을 독차지 했었다: 밀이 함유하고 있는 전체 니아신의 86%, 피리독사민(비타민 B6) 73%, 판토텐 산 50%, 비타민 B2 42%, 티아민 33%, 그리고 단백질 19%가 밀의 표피부위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또한 밀알의 14.5%에 해당하는 이 작은 부분에 풍부한 섬유질이 포함되어 있다.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영양이 담겨 있는 밀의 표피층을 소나 말에게 주고서 남은 찌꺼기를 사람들이 섭취하여 왔던 것이다. 진한 갈색의 밀의 표피를 먹는 소나 말은 건강한데, 흰밀가루를 먹는 많은 사람들의 체질이 병약해 지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밀알의 싹이 트는 부분을 밀눈이라고 부른다. 밀눈은 전체 낟알의 2.5%에 불과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티아민 64%, 비타민 B2 26%, 비타민 B6 21%, 단백질 8%, 판토텐 산 7%, 니아신 2%가 이곳에 밀집되어 있다. 이 귀중한 부위에는 극도의 고품질 지방이 함유되어 있으며, 비타민 E가 다양한 형태로 숨겨져 있다.

미네랄의 경우는 어떤가? 전체 칼슘 함유량의 60%, 인 71%, 마그네슘 85%, 포타슘 77%가 밀의 표피층과 밀눈에 분포되어 있다.
밀의 표피층을 제외한 밀의 내부는 밀알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부위는 낟알의 83%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흰밀가루는 바로 이 부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밀의 내부에는 비타민 B2 42%, 니아신 12%, 비타민 B6 6%, 그리고 티아민 3%만이 있을 뿐이다.

표피를 깍아내는 작업

많은 사람들은 흰밀가루의 예쁜 하얀 색과 입에서 부드러운 감촉을 좋아한다. 또한 밀을 제분하여 파는 사람들은 밀의 표피층에 있는 지방을 제거함으로써, 밀이 짧은 시간 내에 쩔지 않도록 만든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밀알로부터 표피층과 밀눈이 제거된다. 그리하여 건강과 치료를 위하여 창조주께서 밀알에 넣어두신 놀라운 영양소들이 말이나 소의 먹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식생활에서 밀이 차지하는 비율이 급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식생활에서 밀이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하면 할수록 현대인들은 생명력 있는 영양분들의 심각한 손해를 보게 되며, 그 결과 신체에 각종 문제들이 야기된다. 통밀 대신에 흰밀가루를 섭취함으로써, 전분과 설탕을 체내에서 전환시키는 기능이 저하되며 신경이 과민하게 된다. 왜냐하면 밀의 표피층에 들어 있는 비타민들은 전환과 대사의 기능을 도와 주며, 특히 비타민 B는 신경을 안정되게 유지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정제한 흰밀가루를 섭취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미네랄과 비타민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밀알의 섬유질 속에 영양분들을 세밀하게 심어 놓으셨다. 이러한 영양분들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마다 당뇨병과 같은 현대 질병의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섬유질이 비록 소화 흡수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매우 가치있는 미네랄이다. 밀이나 곡식류, 채소 과일, 콩 종류에서 얻을 수 있는 섬유질은 다음과 같은 질병들을 예방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변비, 다발성게실증(diverticulosis), 장암, 관상동맥성 심장병, 탄수화물의 비효과적인 에너지 전환, 등등.
그러므로 부적당한 제분 및 정제 작업은 생명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영양을 제거하는 심각한 결과를 가지고 온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정제 후의 흰밀가루에 비타민과 미네랄을 인공적으로 첨가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 어느정도는 가능하다. 미국의 식품법에 의해서, 티아민, 비타민 B2, 니아신 및 철분, 칼슘은 어느 정도의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외의 비타민과 미네랄은 어떤가? 인간의 꾀를 하나님의 지혜와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밀 안에 들어있는 단백질

이제, 밀이 가지고 있는 단백질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단백질은 몸을 이루는 중요한 성분으로써, 아미노 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백질을 객차를 연결한 긴 기차라고 한다면, 아미노 산은 기차를 연결하는 각 객차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몸에는 20가지 이상의 아미노 산들이 있다. 20여가지의 단백질이 모두 필요한 것들이지만, 그 중에서 어떤 것들은 매우“필수”적인 것으로 구분되는데 왜냐하면 우리 몸에서 그것들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음식물을 통하여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밀의 섭취를 소홀히 하면, 라이신(lysine)이라는 필수 아미노산이 결핍될 수 있다. 또한 주로 콩만을 섭취하게 될 경우, 메티오닌이라는 필수 아미노산이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곡식류에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으므로 곡류와 콩류를 골고루 섭취함으로써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모든 필수 아미노산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다.

밀과 알러지

밀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성분들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밀에 대해서 알러지 반응을 나타낸다. 그런 사람들은 밀의 섭취를 완전히 중단하거나 섭취량을 소량으로 줄여야만 한다.

 

 

병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치료법


성경은 “항상 기도하며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이라고 말한다(누가복음 18:1). 사람들이 기도의 필요를 느낄 때가 있다면, 그것은 기운이 쇠약해 지고 생명 자체가 커다란 위험에 처하게 될 때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건강한 사람들은 날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를 잊어버리고, 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부주의 하다. 그러나 질병이 닥쳐오면, 그들의 머리 속에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떠오르며 그분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진정으로 도움을 구하는 자들을 결코 외면치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병든 자나 건강한 자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의 피난처가 되신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급함에서 건지시느니라.”시편 107:17-18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병자들의 고통과 질병을 치료해 주시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이 땅에서 봉사하시던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자비로운 의사시다. 그분께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향유와 모든 약한 것들을 고쳐주시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나아가 병 낫기를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지정된 사람을 통하여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 구주께서는 병든 자, 희망이 없는 자,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붙잡을 것을 호소하신다. 믿음과 기도를 통하여 병실이 벧엘로 바뀔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병자의 기도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들어주신다. 사람은 그분의 긍휼하심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마음 전체를 그분께 바치면서 믿음을 행사할 때, 그분께서는 당신께 나아오는 자들을 받아 주신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그분의 약속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의 약속은 당신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성취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내 마음에 죄를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편 66:18.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죄를 그대로 품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약속과 축복을 요구하고 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를 통하여서 이다.


많은 사람들은 방종과 무절제로 인하여 스스로 질병을 초래한다. 어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옷입고, 일하는 습관에 있어서 건강의 법칙을 무시하였다.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부도덕하고 죗된 생활이 영혼과 몸을 쇠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의 기도를 응답하셔서 건강을 축복으로 회복시켜 주신다면, 그들은 전과 동일한 부절제와 방종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의 회복을 위해서 기적을 행하신다면, 그분께서는 그들의 죄와 부절제를 조장하시는 것이 된다.


병자들은 믿음으로 치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버려야 할 부절제와 잘못된 생활 습관을 결정적으로 포기해야 한다.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기 위해서, 병자들은 모든 죄를 버리는 진정한 회개를 해야 하며, 동시에 위생적이고 올바른 생활 습관을 가져야 한다. 병자들은 건강법칙과 영적법칙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철저하게 일치하는 마음과 생활을 소유해야 한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간구하라.”야고보 5:16
먼저, 과거에 하나님께 범한 죄와 사람들에게 범한 죄를 고백하고, 피해를 보상하며, 화해하고,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라. 모든 잘못과 죄가 하나님의 어린 양을 통하여 사함을 받고 양심이 정결하게 된 이후에, 성령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병자 자신의 필요를 겸손하게 간구하라. 마음과 정신에서 이루어지는 하늘의 평화는 병자에게 놀라운 치료의 기적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병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는“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로마서 8:26).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축복이 최선의 것이 될 것인지, 그렇지 못할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에는 다음과 같은 사상이 담겨있어야 한다. “주님, 주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비밀을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병자를 가장 잘 아십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이 병자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병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당신께서 이 영혼을 사랑하는 크기와 깊이가 훨씬 위대하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이 병자의 건강을 회복해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만일 이 병자가 회복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그를 위로해 주시고 고통 중에 있는 그에게 오셔서 그들을 끝까지 지켜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작과 끝을 아시는 분이시다. 그 병자가 죽음의 병에서 다시 살아나면 그들에게 닥쳐올 시험들을 견딜 수 있을 것인지, 견디지 못할 것인지 아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생애가 그들 자신과 세상에게 축복이 될 것인지 저주가 될 것인지를 아신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병낫기를 열렬하게 탄원함과 동시에“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누가복음 22:42).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신 후,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이러한 기도가 흘러나왔는데, 하물며 유한하고 실수가 많은 인간들의 입술에서는 어떠한 기도가 흘러나와야 하겠는가!


기도로 병고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연계 속에 넣어두신 치료의 방법들을 이용하는 것은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협력하고, 회복을 위해서 스스로를 가장 적합한 상태에 두는 것은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모든 유익을 취해야 하며, 또한 천연계의 법칙과 조화되도록 활동해야 한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치료 방법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기도의 응답으로써 가장 쓴 잔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손이 그 잔을 우리의 입술에 대어주시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병자들이시여, 그대들이 어떤 인간으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는가? 염려하지 말라. 그대들의 생명은 그대들이 태어날 때에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것처럼, 돌아갈 때에도 그대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병낫기를 위해서 간구하라. 그러나 그대는 육체의 병만을 위해서 기도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육체 뿐만 아니라 심령의 병도 고치시기를 원하신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라. 이 우주에서 그대를 가장 사랑하시는 분이 그대의 최선을 위해서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이다.


질병은 원인이 없이는 결코 생기지 않는다. 건강을 보존하는 생명의 법칙을 무시함으로써 질병이 들어오는 길이 마련된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부모의 부절제와 부도덕의 결과로 고통을 받는다. 그들은 부모들이 범하였던 잘못된 습관을 피하고 올바른 생활을 통하여 자신을 보다 좋은 환경 아래에 놓아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옷입고, 일하는데에 있어서 건강의 원칙을 무시한다. 하나님께서 이 자연계와 신체 안에 새겨놓으신 자연법칙을 범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 그리하여 질병이 그들을 엄습하면, 많은 사람들은 고통의 참 원인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한다. 자신들이 자연법칙을 무시함으로써 초래된 고통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양의 생명력을 우리에게 주셨다. 만일 우리 스스로가 부절제하고 생명의 법칙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먹고 마시고 생활하면, 생명력이 빨리 소모되게 된다. 쇠약해진 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신체에 가해진 과중한 부담을 제거해 주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가장 좋은 치료법은 환자를 한두끼 굶김으로써 지쳐 있는 위장에게 쉴 기회를 주는 것이다.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2-3일 간 과일만의 음식을 섭취하면 때때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여러 차례 짧은 기간에 걸쳐서 완전한 금식(물만 마심)을 한 후에 간단하고 적당한 식사를 하면, 하나님께서 몸 안에 만들어 놓으신 생명력의 자체 노력을 통하여 몸이 회복될 수 있다. 한 두달 동안, 절제 있는 식생활을 해보면 절제의 길이 건강의 길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Pathway to Health and Happyness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에스키모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컬럼부스가 미국을 발견한 이후, 설탕은 매우 중요한 대중 식품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수세기 동안, 설탕은 부엌에서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19세기 말옆, 설탕이 각종 식품에 첨가되는 중요한 감미제로 등장하게 된 후부터, 몇몇 특정한 종류의 질병들이 만연되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충수염(appendicitis), 편도선염, 심장병, 위궤양, 당뇨, 정신 질환(특히, 우울증과 기괴한 상상에 빠지는 현상),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질서와 조직력을 잃어버리는 현상 등이 있다.


심장병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만연되고 있는 질병 중의 하나로서, 부절제하고 불규칙적인 생활로 인해서 발병된다. 라이프 스타일과 식생활 습관을 바꿈으로써 심장과 혈관에 관련된 질병들을 쉽게 예방할 수 있다. 설탕이 심장병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설탕을 섭취함으로써, 심장병과 관련있는 두개의 중요한 혈중 지방치가 상승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트라이글리세라이드(triglyceride)는 설탕을 많이 섭취함으로써 상승되는 혈중 지방이다. 트라이글리세라이드의 수치는 심장마비의 위험도를 알려주는 기준치가 된다. 트라이글리세라이드는 나이에 비례하여 증가되지만, 설탕이나 정련된 탄수화물(흰쌀, 흰밀가루) 등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기준치의 수배 이상으로 뛰어 오르게 된다. 콜레스테롤 역시 혈중 지방의 한 종류로서, 설탕의 섭취량에 영향을 받는다.


설탕은 백혈구 세포 중에서 식세포의 활동을 저하시킨다. 식세포의 식작용에 의해서, 백혈구는 몸안에 들어온 균들을 잡아 먹게 된다. 설탕을 전혀 섭취하지 않았을 경우, 백혈구는 30분 동안에 약 14세균을 잡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6티스푼의 설탕을 섭취하였을 경우, 식작용은 크게 저하되어서 30분 동안에 오직 10세균을 죽이게 된다. 6티스푼 설탕의 양은 가게에서 파는 음료수 한병에 들어 있는 양이다. 12티스푼 설탕을 먹었을 경우(음료수 한병과 도우넛 한개), 식작용은 30분 동안에 5.5세균을 죽이는 것으로 저하된다. 24티스푼의 설탕을 섭취하게 될 경우, 백혈구는 30분 동안에 오직 1세균을 죽일 수 있을 뿐이다. 혈액 중의 당분(설탕)의 수준은 신체의 저항력에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설탕을 적게 섭취하는 사람일수록 세균에 대해서 좀 더 강력한 저항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종류의 피부병, 특별히 여드름의 경우, 설탕의 섭취량이 증가됨에 따라서 악화될 수 있다. 지금부터 10여년 전에 알라스카의 알칸 고속도로가 완공되었다. 그 고속도로가 완공된 이후부터, 알라스카의 에스키모인들에게 코카콜라, 펩시콜라, 그리고 각종 가공 식품들과 정련된 곡물들이 계속해서 공급되기 시작하였다. 부드럽고 윤기있는 피부를 가지고 있던 에스키모인들의 얼굴에 여드름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에스키모인들 가운데 첫번째 쓸개 질환이 생기게 되었고, 에스키모인의 첫번째 췌장 수술이 알라스카에서 시술되었다. 또한 심장 질환이 에스키모인들에게서 나타나게 되었으며, 에스키모인들의 치아에 심각한 훼손이 일어나게 되었다. 설탕이 그들의 식생활에 도입되기 이전에는 있을 수 없었던 일들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정제된 탄수화물(흰쌀, 흰밀가루)과 우유를 섭취하는 사람들은 장(colon)에 여러가지 장애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식품들은 장에 변비를 가져옴으로써, 장의 질병을 가속화 시킨다. 장의 내부가 원할하게 소통되지 못하면, 복부에 가하는 압력이 증가 된다. 또한 위장의 윗부분이 가슴 쪽으로 밀려 올라 가게 되어서, 가슴이 불편하고 가슴앓이를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설탕이 여러가지의 질병과 관련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기까지에는 수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그런데 클리브 박사와 버킷 박사는 지금까지 언급한 질병들과 설탕의 섭취량의 관계를 밝히게 되었다. 우리의 혀를 즐겁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설탕이 인류에게 가져온 질병의 재앙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각종 과일 통조림, 대부분의 가공된 과일쥬스(용기 겉면에 당분이 없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을지라도, 미국 보사부는 탄수화물의 특정 함유량까지는 설탕의 추가를 허용하고 있음)에는 상당량의 설탕이 숨겨져 있다. 심지어는 핫도그에도 설탕이 포함되어 있다. 자신은 설탕을 많이 섭취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하루에 15-20 티스푼의 설탕을 쉽게 먹게 되는데, 이러한 정도의 설탕으로도 백혈구의 활동이 크게 저하되며, 트라이글리세라이드의 수치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설탕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의 경우, 하루에 40-50 티스푼 이상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탕을 사용하지 않고 음식의 맛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 설탕 대신에 꿀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꿀에도 상당량의 설탕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설탕을 적게 섭취할 뿐만 아니라, 그대의 혀도 변화되어야 한다.


가공 식품 속에 숨겨져 있는 설탕

가공식품 설탕 함유량(티스푼)

쵸코렛(보통 크기) 7
껌(1개) 0.5
쵸코렛 케익(1조각) 15
도우넛(1개) 8
아이스크림(반컵) 5-6
애플파이(1/6조각) 12
쵸코렛 우유(1컵) 6
코코아(1컵) 4
잼(1큰수저) 3
꿀(1큰수저) 3
젤리(1큰수저) 2.5
복숭아 통조림(2조각) 3.5

설탕을 절제하는 방법 4가지

1. 말린 과일, 특히 대추나 말린 감을 믹서에 갈아 잘게 썰어서 설탕 대신에 사용한다.
2. 각종 화학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음식물이 주는 자연 그대로의 신선한 맛을 즐기는 법을 배운다.
3. 각종 식품이나 통조림에 포함되어 있는 설탕의 함량을 확인한다.
4. 입맛을 바꾸기 위해서 자신과 투쟁한다. 잘못된 입맛을 고치기 위해서는 고통이 수반되지만, 그 결과는 건강의 회복으로 보상받게 된다.
설탕의 섭취량과 백혈구의 저항력 감소 비교표

설탕 섭취량(티스푼)     백혈구가 파괴하는 세균 숫자      백혈구의 저항력 감소율(%)          

            0                                        14                                                0
            6                                        10                                                25
           12                                       5.5                                               60
           18                                        2                                                 85
           24                                        1                                                 92

서론 - 적그리스도에 대한 성서적인 이해


왜 이 문제가 중요할까? 누가 적그리스도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 일일까? 그러한 문제는 자세히 몰라도 구원만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흔히들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는 마당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고 지나가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알고 배우게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가 아닌가? 그래서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7:17에 다음과 같은 중요한 말씀을 기록하여 놓으셨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또한 요한복음 5:39,40을 읽어 보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다시 말해서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우리의 구원에 절대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야에 대한 성경 예언을 잘못 이해함으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기는 커녕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렸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그 정체를 잘못 이해하게 되면 마귀의 미혹과 기만에 빠져 진리를 배반하고 멸망에 빠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호에 다루고 있는 적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한 연구는 결코 가볍게 넘겨버릴 주제가 아니다.

또 한 가지 알고 지나가야 할 사실은, 신약 성경이 적그리스도를 벌써부터 교회 안에 들어 와 있는 세력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은 적그리스도가, 미래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일어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어떤 정치적인 세력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짓밟고 성도들을 괴롭히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고 있는 종교적인 세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요즈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적그리스도를 마치 미래에 올 어떤 폭군 같은 세력으로 해석하고 그러한 존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요한 일서 2:18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 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적그리스도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반대하고 핍박하며 오류를 높이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적그리스도”의 존재를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데살로니가 후서 2:3-12)

얼마나 확실한 말씀인가? 위의 사도 바울의 말씀에 의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힌트들을 얻을 수가 있게 된다.

1.적그리스도의 정신과 움직임은 벌써 바울이 살던 당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2.그 세력은 결국 크게 성장하여 교회 안에서 하나님처럼 숭배 받는 자로 군림하게 된다.
3.적그리스도의 존재는 불법의 존재이다. 즉, 진리에서 떠나게 하는, 다시 말해서 배도하게 하는 세력이다.
4.그는 진리를 모르는 자들을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거짓된 가르침 등으로 속이고 미혹한다.
5.그의 세력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예수의 능력 앞에서 결국 멸망 당하게 된다.

이것만 보아도,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마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교적인 독재자의 세력으로 생각하여, 앞으로 미래에 갑자기 출현하여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존재로 해석하는 것은 참으로 황당한 해석이 아닐 수가 없다.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네 번째 짐승의 머리에 있는 10뿔 사이에서 올라오는 작은 뿔의 세력이 바로 이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것이다.(살아남는 이들 제 16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음). 요한 계시록 17장에 나오는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의 심판에 대한 예언은 이 다니엘서의 예언을 더 확실하게 뒷받침하여 주고 있다. 말틴 루터, 요한 칼빈, 허쓰, 제롬, 죤 낙스, 요한 웨슬레 등 많은 기라성 같은 종교 개혁자들이 이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이미 교회 안에 존재해 오고 있으며 진리를 타락 시키고 성도들을 중세기에 핍박하고 많이 죽인 교황권의 세력으로 해석하는 의견의 일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성경적인 해석이 종교 개혁을 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날 왜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과 전혀 다른 입장의 해석들을 듣거나 읽게 되는 것일까? 갑자기 성경의 내용이 바뀌었는가? 아니면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의 성경 해석이 잘못되었던지 아니면 그들의 머리가 우리보다 좀 모자라는 우둔한 사람들이었단 말인가?

성경에는 북극성 같은 예언들이 있다. 어두운 밤에 항해하는 배들을 위하여 정확한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별 말이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와 있으며 어디를 향하여 항해하고 있는지 그 좌표를 분명히 알려 주기 위하여 존재하는 이 중요한 예언을 우리가 잘못 이해하여 가르친다면 교회 안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게 된다. 진리가 오해 되고, 또한 교인들이 사단이 사용하고 있는 세력을 마치 진리의 기수인양 미혹 당하여 따르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러한 글을 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이것은 종교 개혁의 일환이다. 이번 호의 기사들을 읽으면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더 밝게 터득하게 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인도 하심에 대하여 더 확실한 개념을 갖게 되시기를 바란다. 진리의 사랑을 받아, 다시 말해서 진리를 사모하여 찾아 애쓰는 태도로 성경을 상고하게 됨으로 적그리스도의 미혹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 드린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적그리스도를 향하여 총뿌리를 겨누고 있다.

 

1부 - 잘못된 적그리스도를 겨냥함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 셀러이며, 영화로 제작되어 많은 돈을 벌어 들인 ‘남겨진 자들’ (Left behind)이라는 책은 세상 종말에 있을 사건들을 허구적으로 꾸며내어 쓰여진 소설이다.

이 책은 비밀 휴거라는 잘못된 교리를 토대로 쓰여진 책으로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 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비밀스럽게 공중으로 사라져 버린 후, 지상에 남겨진 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책에 의하면, 지구에 남겨진 자들은 그로부터 7년 동안 있을 적그리스도의 압제적인 통치를 겪어야 한다. 니콜라 칼파디아라는 이름의 영리한 로마사람이 적그리스도로 등장한다. 그는 강력한 힘과 카리스마적인 개성을 갖춘 교활한 정치가로 묘사되었다. 비밀 휴거가 일어나자, 칼파디아는 신속하게 유엔을 통솔하여 강력한 힘을 소유한다. 거기서부터 그는 세계 단일 정부를 설립한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 세계가 그를 숭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읽는 독자들이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이것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말 이 사건들이 이렇게 전개 될 것인가라는 사실에는 의문을 갖게 된다.

과연 누가 진짜 적그리스도인가? 그는 가시적인 예수님의 재림이전에 7년 동안 세상을 지배할 니콜라 칼파디아와 같은 잔인한 한 독재적인 인물일 것인가? 성경은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실제로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성경이 말하는 적그리스도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단지 5번 사용되었으며, 그 5번 모두 요한 일서와 이서에 기록되어 있다.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 요한 일서 2:18,19

이 말씀을 비추어 볼 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적그리스도가 올 것이라는 것에 대하여 듣고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미래의 사건으로 보게 한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명백하게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을 미루어 보아, 적그리스도 혹은 적그리스도들을 단지 세상 마지막 때에 나타 날 것으로만 적용할 수 없다. 적그리스도의 기간은 많은 세기를 거치게 된다. 게다가 한 명의 개인이 아닌 많은 적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그리스도를 어떠한 악마적인 한 개인으로 적용시켜서는 안된다. 사도 요한은 이 적그리스도들이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라고 묘사한다. 다시 말해서, 적그리스도나 적그리스도들, 또는 적그리스도의 정신은 참 그리스도 정신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무신론자나 어떤 세속적인 인도주의자가 아니다. 적그리스도는 한 때 참 교회에 속해 있었던 자이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 요한 일서 2:22-26

적그리스도는 아들 되신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를 부인한다. 그러나 어떻게 부인 하는가? 그는 아주 교묘하고 매혹적으로 그 일을 행한다. 사도 요한은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라고 기록했다. 이 성경절은 적그리스도가 아버지와 아들에 관하여 말하지 않는다고 기록하지 않았다. 이 성경절이 말하고 있는 것은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는 방법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계시는가?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라고 말하였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부인하는가? 확실히 그렇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 한다면, 당신은 또한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하면서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공언 할 수 있는가? 그들은 그렇게 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얼마나 교활한 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이 성경절 -요한일서 2:18,19 - 은 적그리스도를 먼 미래의 것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실제로 사도 요한은 그의 동료들인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적그리스도에 의해서 미혹 당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요한 일서 4:3,4 요한 이서 7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를 미래에 나타날 것으로만 제쳐 놓았는가? 그렇지 않다. 요한은 "이제 벌써 (적그리스도의 사상이) 세상에 있느니라" 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거듭 언급하지만,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의 개념을 한 개인으로 국한시키지 않았다. 요한은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적그리스도들)를 이기었나니" 라고 기록하고 있다.

“남겨진 자들”(Left behind) 이라는 책을 읽는 독자들이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오기 전에 휴거의 경험을 할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방금 읽은 성경절에서 그리스도인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이 적그리스도들을 이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진정으로 적그리스도에 대항하여 싸울 것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다.

요한 일서와 이서에 기록된 이 말씀들은 적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셨다는 것을 부인한다는 것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말씀은 적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 역사상의 인물이나,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인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가 부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다는 사실이다.


적그리스도를 분별하는 기준들

자 그렇다면, 과연 누가 성경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인가? 루터로 부터 밀러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교 개혁자들은 "일반적인 카톨릭"이 아닌 바로 교황권이 적그리스도 세력이라는 통일된 견해를 저술하고 설교하였다.

웨스민스터 신앙 고백(1647년): "교회의 머리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교회에 앉아 자신을 높이는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 적그리스도인 로마 교황은 어떤 의미에서도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

H.그라타 기네스 : "종교 개혁운동을 시작했을 때 부터 줄곧 이 운동은 예언의 말씀으로 인도되었고 힘을 얻었다. 루터는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인식하기 전까지 교황권의 배교에 대항해야만 한다는 강력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안 후에 루터는 교황의 칙서를 불태워 버렸다. 요한 낙스로 하여금 종교 개혁자로서의 길을 걷게 만든 그의 첫 설교는 교황권에 관한 예언 연구의 말씀이었다"

교황권은 성경이 적그리스도의 특징으로 기록하고 있는 모든 조건들을 충족시키는가? 그렇다! 적그리스도의 정신은 이미 초대 교회 시대에 활동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 다른 교인들을 지배하려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사도 요한은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요한 삼서 1:9,10

이 성경 말씀은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사도 요한에 의해서 환영 받지 못한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 당시에 누군가가 교회 안에서 사도 요한을 대항하여 일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디오드레베는 심지어 다른 교인들을 교회에서 내어 쫓는 왕 같은 압제적인 힘을 행사했다.

사도 바울은 적그리스도의 정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사도행전 20:29,30

초대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잘못된 교리들을 가르치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런 장로와 감독들 중 어떤 이들은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는 흉악한 이리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완전히 정체가 드러나는 적그리스도

46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초대 교회 당시에 이미 적그리스도 사상이 존재한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미래에 적그리스도의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게 될 것임을 지적하였다. 사도 요한은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데살로니가후서 2:1-8

이 성경말씀의 주제는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모으실 때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1 절 )에 관한 것이다. 그 당시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즉시로 (아마도 몇 주 안에)오실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어떤 즉각적인 예수님의 강림하심에 대하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2절.) 먼저 배도 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영광스럽고 복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3절)

46대부분의 성경 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말한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을 성경에서 예언된 적그리스도의 세력으로 인정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이 바로 그 예이다. 남겨진 자들 (Left behind) 의 저자는 데살로니가 후서 2:1-8절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그리스도인들을 지구로부터 "비밀리에 훔쳐" 가실 비밀 휴거의 가정된 시기로 적용한다. 또한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비밀 휴거 사건 이후에 일어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먼저 올 것이라고 분명히 명시하였다. "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 주의 재림이 ... 이르지 아니하리니 " 데살로니가후서 2:3

이 말씀에 나오는 "배도하는 일" 이라는 용어는 헬라어의 "아파스타시아" 영어로 배도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교회 안에서 큰 배도의 세력이 나타난 이후에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이 배도하는 일로 인해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출현하게 된다.

과연 누가 이 불법의 사람인가? 사도 바울은 그에 대해서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자기를 보여 하나님” 이라고 주장하는 자라고 기록하였다. 교황권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는가? 그렇다. 교황권은 하나님의 율법을 바꿀 수 있는 권위가 그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참람된 과오를 범해 오고 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라고 말한다(3,4 절). 이 말씀은 "남겨진 자들" 이라는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에 또 다른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첫째로 "앉아" 라는 단어는 실제적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를 묘사하는 의미로 쓰여진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으셨다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실제로 계속해서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계속적인 총애와 축복이 함께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성전"이라는 단어의 원어인 "나오스" 라는 그리스 단어는 실제적인 의미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쓰인다. 예를 들어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했다(고린도전서 3:16) 여기에 사도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 단어 “나오스” 는 교회의 교인들에게 적용된다. 그러므로 "불법의 사람이 성전(기독교 단체)에 앉아 있는 것은 그가 교인들에게 하나님과 같은 권위를 갖는다는 표현인 것이다. 그렇다면 교황권이 바로 그와 같은 권위를 가졌다고 주장하는가? 참람 되게도 그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이런 일들" 을 이미 그들에게 말했다고 말하고 있다(5절). 바울은 어떠한 힘이 그 불법의 사람이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기 위하여 그를 막고 있다는 사실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6절). 적그리스도의 사상인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고 있지만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7절). 그 막는 자란 바로 교황이 잠시동안 황제의 왕좌에 오르지 못하게 하여 세상을 지배하지 못하게 한 로마의 황제들을 말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 불법한 자" (Lawless one - 실제 의미로는 법을 지키지 않는 자 )와 예수님의 재림으로 결말을 맺는다. "남겨진 자들" 의 이야기는 적그리스도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 힘을 얻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반대로 예수님의 재림 때에 적그리스도가 멸망할 것이라고 기록한다.


요 약

결론적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연구하였다.

1. 적그리스도의 사상은 이미 초대 교회 시대에 활동하고 있었다. 그 사상은 바로 지배하려는 욕망인 우월주의인 것이다. 더욱이 이 거만한 사상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것처럼 성전에 앉아서 스스로를 하나님보다 높인다.
2.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것은 종교적인 세력으로서 진리로부터 배교한 세력인 것이다.
3. 적그리스도는 초기 교회 시대로 부터 예수님의 재림 때 까지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한다.
4. 적그리스도는 오랜 세월동안 예수님 대신 자신들이 중보자의 역할을 수행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서만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분 되심을 부인하므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을 부인한다. 최근에 교황권은 우리가 성자들과 마리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다며 그 참람된 주장을 더하고 있다. 이 잘못된 가르침은 옛 성자들에 대한 이상한 견해를 갖게 하는 동시에 더불어 죽은 자들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인 영혼 불멸설을 옹호하는 것이다.
5. 적그리스도 세력은 성경의 가르침인 예수님께서 인간과 같은 육신의 본성으로 이 땅에 오신 사실을 부인한다. 천주교회는 마리아 자신도 죄 없이 수태되어 태어났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 없는 본성을 가진 어머니로부터 태어 나셨다는 잘못된 가르침으로 발전된다(무염시태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 형제들과 같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고 가르친다(롬 8:3과 히2:14-18절 참조). 예수님께서는 죄 있는 육신을 성령을 통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마리아를 통해서 받으셨다. 천주교회는 마리아의 본성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이 진리를 부인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개신 교회들이 적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사상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 결과, 적그리스도는 더 쉽게 그 세력을 확장할 것이다. 그러나 더 비극적인 사실은 개신 교회들이 오늘날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손을 잡고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 교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많은 이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지만, "남겨진 자들"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더 연구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진리이고 거짓인지 분별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혼란과 기만이 편만한 세상에 진리를 찾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참된 진리를 전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부 - 꺼져가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진리


중세기에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천주교회가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 것은 그 당시에 큰 개혁과 부흥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 사실이 거의 감추어지고 말았다.

수 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종교 개혁운동에 참여하였다. 로마 천주교회는 종교 개혁자들을 이단자라고 지명하였고 그들을 없애기 위하여 천 여년 이상 동안 성공적 이라고 증명된 계략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깊은 자연의 요새 속에 숨어서 격리되어 있던 몇 몇의 충실한 그리스도인 단체들을 제외하고는 로마 천주 교회의 핍박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이 성공은 국가의 강력한 군대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로마 천주교회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은 수 백만의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역사 학자들은 순수한 성경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고문을 당하거나 순교를 당한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략 5천만명에서 1억명으로 추정된다. 교황권이 지배하던 중세기 시대에 남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여자들과 어린아이들까지도 성경을 따른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였다. 이 일은 거의 모두가 교황권을 추종하는 세속적인 국가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16 세기에 들어와서는 그 판도가 달라졌다. 교황권의 부패와 만행에 질려버린 많은 군주들과 왕들은 종교 개혁자들의 선언을 받아 들였고, 더 이상 교황권의 모든 명령에 복종치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로마 천주교회의 절대권을 수행 할 유럽 국가의 군대들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런 상황들은 자연히 로마 천주교회를 놀라게 하였다. 교황권은 이런 상황들에 익숙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유럽을 휩쓸고 있었던 종교 개혁의 빠른 확산에 대항하기 위하여 새로운 계책이 고안되어야 하였다.

이 새로운 계책의 발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4세기의 사건들을 살펴 보아야만 한다. 그 때에는 사방에 종교적인 투쟁이 있었다. 새로운 교황, 얼반 6세가 프랑스의 아비뇽에서 7년 동안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교황의 위치를 회복하여 로마로 돌아왔다. 그러나 추기경들 중 많은 이들이 얼반의 완고한 통치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아비뇽으로 되돌아 가서 제네바의 주교인 켄바레이의 로버트를 교황 크레멘트 7세로 추대했다. 이리하여 그 당시에 두 교황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 때가 1378년 이었다. 그 후 31년 동안 로마와 아비뇽에서 서로 자기들의 교황이 절대무오이며, 베드로의 계승자이고,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주장하며 상대방의 교황이 적그리스도라고 선언 하였다. 영국 루터월트 교구의 목사이며 유력한 성직자인 존 위클립은 그들 서로의 주장에 동의하였다.

"사단은 더 이상 한 교황 안에서 군림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 두 명의 교황 안에서 역사하므로 사람들이 더 쉽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이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적 그리스도는 나누어 졌고, 한 교황이 다른 교황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 (Emma H. Adams, John Wycliffe, Pacific Publishing Association, Oakland, 1890)

교황권의 과세에 반대한다는 이유 때문에 위클립은 위험에 처할 뻔 하였지만 그의 친구들과 영국 왕가와의 특별한 친분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40여년 후, 보헤미야의 위대한 개혁자인 존 허스와 프라하의 제롬은 교황권에 대항하다가 결국 화형을 당하였다. 그들은 위클립에게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의 입증은 종교 개혁의 변함없는 주제가 되었다. 마틴 루터는 교황 개인에 한한 것이 아니라 교황권 전체가 적그리스도라고 믿었다. 쯔윙글리, 칼빈, 낙스, 그리고 다른 종교 개혁자들도 마틴 루터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은 몇 몇의 종교 개혁자들의 언급이다. 그들의 의견들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적그리스도에 대한 종교 개혁자들의 입장

1) 마틴 루터
"바울이 데살로니가 후서 2장 3,4절에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고 기록하였던 그 존재가 여기에 있다. 적그리스도인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있는데, ... 그는 하나님의 법을 폐지하였으며, 하나님의 계명 위에 자신이 만든 계명을 높였다. 우리는 여기서 교황권이 진짜 적그리스도의 권좌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바이다." (LeRoy Froom, 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Volume 2, page 281)

2) 요한 칼빈
"나는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 됨을 부인한다. ... 그는 적그리스도이다. - 나는 그가 교회의 머리 됨을 부인한다" (John Calvin Tracts, Volume 1, pages 219, 220).

3) 요한 낙스
"수 세대에 걸쳐서 교회 위에 군림해 온 교황권이 바로 바울이 말한 적그리스도요 멸망의 아들이다." (The Zurich Letters, page 199)

4) 필립 멜란톤
"로마 교황권이 거대한 조직과 왕국을 가지고 있는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진리이다. ...데살로니가 후서 2장 2절에서, 바울은 죄의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임으로써 교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였다." (LeRoy Froom, 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Volume 2 page 296-299)

5) 이삭 뉴턴 경
"교황권은 나머지 열 뿔과는 다른 종류의 왕국이었다. ...로마 교회는 선지자 노릇을 하였으며, 동시에 왕이었다." (Sir Isaac Newton, Observations of the Prophecies, page 75)

6) 요한 웨슬리
"로마 교황권이 바로 죄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바이다." (John Wesley, Antichrist and His Ten Kingdoms, page 110)

7) 사무엘 리 (17세기의 유명한 성직자)
"로마 교황권이 적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영국에 있는 모든 주요 교단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르침이다." (Samuel Lee, The Cutting Off of Antichrist, page 1)

장로교회에서도 채택되었던, 영국교회의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에서 인용한 다음의 내용은 참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사람이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 특히 로마의 교황은 어떤 면에서든지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 교황은 바로 그 불법의 사람이고 멸망의 아들로서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자기 자신을 높이는 적그리스도이다." (The Westminister Confession of Fatih, Section 6, Chapter 24)

스위스의 헬베트 회의에서 교황권이 바로 성경에서 예언된 적그리스도라고 언급하였다. 스말칼드(Smalcald) 조항에 있는 루터 교회의 성명서에 교황은 자신을 스스로 높이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바로 그 적그리스도라고 언급하고 있다. 1680년의 "뉴 잉글랜드 신앙의 고백"은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지, 멸망의 아들이며 적그리스도인 로마의 교황이 아니라고 말한다.

"교황권을 적그리스도와 동일시 하는 것은 종교 개혁의 중심을 이루는 사상이었다. 이러한 견해는 루터와 다른 종교 개혁자들에게 교황권을 대항할 수 있게 하였던 큰 원동력이 되었다. " (Encyclopedia Brittanica, 1962 edition, Volume 2, page 61)

초창기에 힘있게 밀고 나가던 종교 개혁운동 이 점차적으로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적어도 19세기말까지는 거의 모든 개신교 교단들이 여전히 교황권과 적그리스도를 동일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는 교회(종교) 연합운동에 의해서 조성된 분위기 속에서는 교황권과 적그리스도를 동일시 하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 되어 버렸다. 몇몇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별로 중요시 할 문제가 아니라며 이 문제를 무시해왔다.

적그리스도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들

적그리스도의 개념은 선지자 다니엘이 "작은 뿔" 이라고 불렀던 배교의 세력에 대하여 예언했을 때인 기원전 6 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다니엘서7:8-11, 24-26; 8:9-12, 23-25). 그리스도께서 탄생하기 전 시대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이 세력을 적메시야의 출현으로 적용하였다.
기원전 2세기에는 세레시드의 왕, 안티커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강제로 재 봉헌하게 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신성을 모독한 사건이 있었다. 그 시대에 강력한 유대 족속의 한 부류였던 마카비 집안은 이 사건에 의해 이 작은 뿔(적메시야)의 예언이 이루어 졌다고 오해하였다.
또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에 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네로 황제(A.D 68에 죽음)가 이 다니엘의 예언을 성취시킨 작은 뿔이였을 것이라고 오해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의 말씀을 볼 때, 안티커스 에피파네스나, 또는 네로 황제를 적그리스도로 보기에 부적합 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A.D 1세기가 거의 마쳐갈 즈음에 쓴 사도 요한의 말씀은 적그리스도가 한 사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고, 또 그 중 어떤 이들은 사도 요한의 시대에 존재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요한 일서 2:18)

적그리스도의 이름이 성경에서 단지 다섯 번만 언급되었고, 게다가 오로지 사도요한에 의해서만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원과 진리에 가장 강력한 원수는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부인하게 하지 못한다. 그 동안 각 시대를 거쳐 오면서 적그리스도를 다른 것으로 적용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왔었다. 참혹했던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어떤 이들은 아돌프 히틀러가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 다른 이들은 강력한 무슬람 세력이, 또 그 후에는 무신론의 공산주의가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하였다. "적그리스도"라는 말은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지 않은 반면에, "배교의 세력"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폭 넓게 사용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불법의 사람" 과 "멸망의 아들"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있을 것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3-4)

요한 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정결하지 못한 여자인 (음녀) 바벨론은 짐승을 타고 있는 존재로 설명하면서 적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데 여러 가지 다른 상징들을 사용한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계 13:12)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계 16:19)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 17:3-5)

먼저 언급한 것처럼, 구약의 선지자 다니엘은 적그리스도를 작은 뿔이라는 상징으로 묘사한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5)

과연 적그리스도는 누구이며 또 무엇일까 라는 질문은 세기에 걸친 의문이다. 이것은 한 개인일 것인가? 혹은 계승되는 것인가? 아니면 한 국가나 어떠한 세력인가? 과연 적그리스도는 이미 과거에 나타났는가? 지금 현재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미래에 나타날 것인가? 복음주의 교회의 많은 사람들은 세상 마지막 바로 직전에 나타나 예루살렘에 다시 지어진 성전에 앉아서 참람되이 성전을 모독하며 무자비한 핍박을 자행할 악마와 같은 한 사람으로의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은 종교 개혁주의의 전체적인 복음의 이해를 무시하는 것이다. 1841년에 장로교회 협의회 출판소에서 출판된 "The Church of Rome, The Apostasy"라는 책에서 윌리웜 커닝햄은 로마 교황권을 불법의 사람과 적그리스도로 특별히 명시한다. 그는 로마 천주교회가 사단과 신상 숭배와 마리아의 숭상과 우상숭배의 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한 로마 천주교회에 의해서 이루어진 수 없이 많은 신성모독의 실례들을 지적한다. 그는 바벨론에서부터 나오라는 외침(계시록 18:4-5)을 로마 천주교회에서 나오는 외침과 동일시 한다.
버지니아의 놀폴크의 장로교회 목사이었던 사무엘 제이 카설스는 1846년에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로마 천주교회가 적그리스도임을 이해하기 쉽게 증명한 책들 중 하나이다. 이 책은 그 당시 장로교회, 감독교회, 감리교회와 침례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완전히 인증되었다.



빗나가기 시작한 과녁

그러나 19세기 말이 되어서,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이 간과되기 시작하였다. 사무엘 앤드류는 그의 책 "Christianity and Anti-Christianity in Their Final Conflict"에서 요한 계시록 13장에 묘사된 짐승을 압제하는 세속적인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20세기 전의 신교도들이 이 짐승을 교황권으로 증명한 것과는 반대로 그는 이 짐승을 교황권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20세기 초반에 와서 미래주의적 예언 해석이 거의 모든 신교도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몇몇 소수의 신교도들은 여전히 정확하게 교황권과 적그리스도를 동일시했다. 1920년 경에 "The Present Antichrist"라는 책을 쓴 프레드 제이 피터스가 바로 그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왈덴스인들과 허스, 제롬, 루터, 칼빈, 아이작 뉴튼 경, 라티머, 번얀, 무디, 스펄젼과 같은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불법의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인 교황이라는 사실에 의견을 같이한다고 언급했다. 피터스는 다니엘서 9장에 있는 70주일 예언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으로 유대인들에게 남겨진 490년의 기간이라는 것과 그 기간이 A.D 34년에 끝났다는 것을 정확하게 해석했다.

바로 로마 교황권이 성경에 예언된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입증하며 드러내는 일이 더 이상없기 때문에 심지어 보수적인 개신교도들까지도 천주교도들과 감히 손을 잡고 연합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만일 종교 개혁자들이 이런 일들을 본다면 큰 슬픔에 빠질 것이다. "역사적인 선언"이라고 불리어 지는 가운데 팻 로버트슨과 척 콜슨을 포함한 개신교의 복음주의자들이 로마 천주교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크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종교단체를 만들어 연합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들은 카톨릭교도들과 개신교의 복음주의교도들에게 낙태와 포르노를 금지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며, 가치 있는 교육을 양성하는데 힘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였다. 반면에 서로에게 교리적인 대립을 피하고 서로의 교인들에게 적극적인 개종의 권유를 금하라고 촉구하였다. 미국, 동유럽과 남미에 있는 카톨릭교도들과 개신교의 복음주의교도들사이에 있는 긴장관계의 주된 원인을 언급하면서, 그 선언문은 서로 다른 그리스도 종교 단체의 현 교인들을 자신의 단체로 개종 시키려는 것은 교리적으로 합법적인 것이 아니요, 지혜로운 재원의 사용이 아니라고 명시하였다. (The San Bernardino Sun, March 30, 1994, p 42)



예언의 미래주의로 성공한 천주교회의 시도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황권이 적그리스도 세력이라는 명백한 성경적인 증거를 없애 버리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는 단지 세상 마지막 때에 나타날 한 개인이며, 그는 실제적 기간인 3년 반이라는 기간동안 기독교회에 재난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에는 로마 천주교회의 예수회(Jesuit)에 의해서 만들어진 미래주의의 사상이 개신교도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다. "His Apocalypse" (1924)라는 책에서 쟌 퀸시 아담은 적그리스도가 세상 마지막 때에 나타날 악마적인 세력이라고 하는 미래주의의 견해를 제시했다. 이 잘못된 개념은 또한 "The Coming Superman" (1928)이라는 책을 쓴 F.M. 메신저에 의해 지지 되었다. 최근에 이 미래주의 견해가 무디 출판사에서 1969년에 나온 헤르만 홀트의 책 "The End Time"에 의해서 지지 되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에 대한 사도 요한의 묘사는 적그리스도가 한 개인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한다.
시간은 걸렸지만, 예수회(Jesuit)는 성공적으로 일을 성취시켰다. 1545년에서 1563년 동안 열린 트랜트 회의에서 로마 천주교회의 주교들이 가졌던 가장 무거운 부담 중에 하나가 바로 적그리스도를 교황권과 동일시 하는 개신교도들의 영향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 일은 정선된 지식인들로 새롭게 구성된 예수회 (The Jesuits)에게 주어졌다. 프랜시스코 리베라는 미래주의 예언해석을 1585년에 고안해 내었다. 적그리스도는 미래에 있을 한 사람으로써 세상 마지막에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핍박을 주는 개인이라는 것이 그의 이론이었다.
영국 국교회 안에서 카톨릭 부흥 운동이 19세기 초기에 일어났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인 S.R 마이트랜드, 제임스 토드, 그리고 윌리암 벌은 로마 천주교회와의 재연합을 반대하는 충실한 영국 국교회원들의 항의를 무마하기 위해서 리베라의 미래주의의 사상을 들여와 가르쳤다.

종교 개혁의 선구자들은 단지 보복을 위해서 로마 교황권을 성경 예언의 큰 적그리스도의 세력으로 지적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영감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분별하였던 것이다. 왜 적그리스도의 신분을 입증하는 것이 마지막 시대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렇게 중요한지 다음에 몇 가지 이유들을 지적한다.

 

적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지적해야만 하는 3가지 이유

1. 적그리스도의 신분을 입증하므로 이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자기의 깃발 아래로 온 세계를 연합 시키려 할 때에 그 기만에 우리가 속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계시록 13:8)

2. 계시록 18장 4,5절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배교의 세력에서 나와 하나님의 충만한 진리 가운데로 나오라는 그 부르심의 기별을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이다. 진정한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은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을 증오와 복수심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 진리를 전한다. 위탁된 복음 선포의 중요한 사명은 남녀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죄의 기만과 속박에서 그들을 자유케 하는 일에 있다. 지구 역사의 어느 시대보다도 바로 이 시대에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과 바벨론에서 사람들을 나오라고 초청의 기별을 전하는 일이 꼭 이루어 져야 한다.

3. 요한 계시록 14장 8-12절에 있는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은 이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그 것을 따르는 자들에게 다가올 멸망과 몰락에 그 초첨을 맞추고 있다. 온 세상에 경고하기 위해서 이 세력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사람들에게 중요한 경고의 기별을 전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지난 수 십년 동안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밝히는 일에 태만히 했던 태도를 바꿔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로마 교황권인 적그리스도와 그의 만행에 대해서 경고하기를 요구하신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복음주의 개신 교도들이 추구하는 현 정책을 완전히 개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지금 걷고 있는 길에서 돌아선다면, 그들은 루터와 16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서 이루어 졌던 본래의 복음주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알려 주는 성경절 모음

다니엘 7:1~7
바람이 바다로 몰려 불면서 네 짐승이 출현

요한계시록 17:15
예언에서 물은 백성(많은 사람들)을 의미하며, 또한 렘 49:36,37에 의거하여
바다 : 큰 무리
바람 : 싸움과 전쟁

다니엘 7:17,23
네 짐슴 : 네 나라, 네 왕(바벨론, 메데 바사, 헬라, 로마)

다니엘 7:7,8
네째 짐승에 달린 열뿔 사이에서 하나의 작은 뿔(적그리스도 세력)이 나옴

다니엘 7:24
열뿔 : 네째 나라(로마)에서 일어날 열 왕(열 나라)
작은 뿔 : 열국 시대에 강력한 세력으로 나타난 로마 교황권

다니엘 7:8,20,24
작은뿔이 먼저 나온 열뿔 중에서 세뿔을 뽑아버림. 교황권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세나라(헤룰리, 반달, 동고트)가 제거됨

다니엘 7:25
작은뿔의 역할
1. 하나님을 대적하며 자칭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주장함
2. 성도를 괴롭힘: 수많은 성도들을 죽임
3. 때와 법을 변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십계명을 변경시킴

데살로니가후서 2:3,4
사도 바울이 때와 법을 변경시키는 불법의 사람(교황권)의 출현을 예언

다니엘 7:25 하단
겔 4:6에 의거하여
작은 뿔의 활동 기간인 한때와 두때와 반때 즉, 3년 반(1260일) 이라는 예언적 기간은 1260년으로 환산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13:3
중세기 종교암흑시대의 끝에 죽었던 교황권의 세력이 다시 회복되는 예언. 현재 거의 완전히 회복되어 있다.

다니엘 7:27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를 하게 된다.

마태복음 7:22,23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모두 멸망할 것임

살아남는 이들 16호와 33호를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