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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진주, 그 사랑의 무덤

아름다운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진주조개 속에 작은 벌레가 살을 파고 들어와 고통을 주면, 조개는 자기를 아프게 하는 벌레를 감싸 안기 위해 자신의 껍질을 매끄럽게 하는 데 쓰는 카로틴이란 물질을 몸에서 내어 벌레를 칭칭 감는답니다. 그렇게 적을 감싸기 위해 만들어진 카로틴 덩어리가 바로 진주입니다. 아름다운 진주는, 알고 보면 적을 감싸 안은 사랑의 무덤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연계의 실물들을 통해 그분의 사랑의 계명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인간 자신들 속에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자연계뿐만 아니라 우리 몸 속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교훈을 주는 것들이 있답니다. 백혈구와 적혈구의 사랑이라는 글을 짧게 요약해 봅니다.

우리 몸의 혈액이 가르쳐주는 사랑의 교훈
백혈구의 사랑" 우리 몸의 혈액에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혈장이라는 성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백혈구는 우리 몸에 어떤 이상한 침입자(병균)가 들어오면 얼른 그 침입자를 처리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백혈구가 그 침입자를 처치하는 모습을 보면 아주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백혈구는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침입자를 처치할까요? 얼른 생각하면 아주 강력한 어떤 방법을 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백혈구는 침입자를 향해 절대 무력을 쓰지 않습니다. 대포도 발사하지 않고, 기관총을 쏘아대지도 않습니다. 화학 약품을 쓰지도 않고, 그렇다고 심한 욕설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백혈구는 그저 그 침입자를 품에 푹 껴안아 버립니다. 그리고 아주 깊은 사랑으로 그 적을 감싸줍니다. 그러면 그 침입자는 백혈구의 사랑에 감동하여 그냥 녹아버립니다.  정말 백혈구의 사랑은 놀랍습니다. 보기 싫든, 지저분하든, 가리지 않고 모두 다 껴안아 줍니다. 우리 몸의 혈액 속의 백혈구는 이렇게 우리 인간 모두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이 마음속에 쓰여 있는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 같은 사람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요?

적혈구의 사랑" 적혈구도 백혈구처럼 아주 사랑이 넘칩니다. 적혈구는 골수에서 태어나, 폐에 가서 산소를 받아들여 자기 몸에 가집니다.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은 산소를 얻어야 생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산소는 생명과도 같은 것인데, 적혈구는 언제나 이런 생명의 산소를 풍성하게 가지고 혈액 속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산소가 필요한 곳이 있으면 아낌없이 다 주고 나옵니다. 자기 것도 조금 챙겨두면 좋을 텐데, 그러지 않고 100% 다 줘 버립니다. 그리고는 4일쯤 살아 있다가 비장에 가서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아마 우리 같으면 자기 것은 조금 남겨두고 남에게 나누어 주었을 텐데&. 우리 몸의 모든 것들은 (세포 하나까지도)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남을 위해 살지요. 남을 위해 100% 다 주고 봉사한다는 원리가 우리 몸에 있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건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백혈구의 사랑은 모든 것을 감싸주는 사랑인 반면, 적혈구의 사랑은 모든 것을 나누어 주는 그런 사랑입니다. 혈액은 바로 우리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데, 그런 사랑의 법칙을 따라 사는 훌륭한 혈액구들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의 생리 작용을 통하여 우리에게 사랑의 법칙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 자신도 몸소 그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여섯째 계명
십계명 중 여섯째 계명인 살인하지 말지니라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생명을 단축시키는 모든 행위와 생각 - 증오와 복수의 정신을 가지는 것,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다른 사람들이 해 받기를 바라는 마음과 감정을 가지는 것 - 도 포함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오의 정신은 사단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사단은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8:44)였으며, 인간을 지배할 권세를 얻자마자 그는 인간들이 서로 미워하고 죽이도록 선동했습니다. 적의나 몰인정한 마음을 품는 사람은 누구나 사단과 같은 정신을 품는 것이고, 그 결과는 죽음을 불러옵니다. 씨앗 속에 식물이 들어 있는 것같이, 미움과 복수의 생각 속에는 악한 행동과 죽음의 그림자가 들어 있습니다.

생명을 앗아가는 미움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마 5: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죽이는 심판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증오의 정신을 계속 품으면 감정이 격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 몸에서 아드레날린이라는 물질이 분비됩니다. 스트레스성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이 물질은 심장의 비정상적인 박동을 불러오고, 혈압을 높이며, 면역력을 약하게 하여 질병에 걸리게 합니다. 결국 남을 미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화를 내고 미워하는 정신은 생명의 활력을 갉아먹고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여, 결국 빠르거나 혹은 천천히 자신을 살인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세상과 인간들에게 생명을 나누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 - 이 지구에 죄를 범한 인간이 나 한 사람만 있었다 할지라도 목숨을 기꺼이 주셨을 만큼, 그리고 필요하다면 다시 한 번이라도 십자가의 죽음을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 - 의 마음과 곧잘 미움과 복수의 정신으로 불타 스스로의 생명과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해치는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미미하고 소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원칙이 되어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만일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또 사람들을 복되게 하기 위하여 항상 흘러나오는 살아 있는 샘물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거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에게 증오심을 품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퍼부어 주어 그 사랑으로 상대방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위를 두르신 실제적인 교훈들은 우리들도 그런 사랑을 배워서 그런 사랑으로 이 세상을 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프게 살을 파고드는 자신의 적인 벌레를 말없이 감싸 안는 진주조개의 사랑처럼, 그리고 외부의 침입자 병균을 푹 껴안아 녹여버리는 백혈구의 사랑처럼, 또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주고 조용히 사라져버리는 적혈구의 사랑처럼, 그런 아름다운 사랑이 언제나 당신의 마음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참, 한 가지 기억하십시오. 벌레를 더 많이 감싼 조개가 더 크고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듯이, 자기를 괴롭히는 원수를 더 많이 사랑하고 껴안은 사람이 진주처럼 영롱하고 아름다운 순백의 성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하늘의 진주 문을 통과할 것이라는 것을&.

생애의 빛에서

강병국 목사
신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기도합니다. 소리 내어 기도하거나 형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기도합니다. 적어도 마음속의 소원들을 말하기라도 하지요. 기도란 무엇일까요? 왜 기도하는 것일까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꼭 알려드린다든지 간구하고 요청하는 일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기도가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바꾸어서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일까요? 왜 성경은 기도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보다 더 나을뿐더러 더 옳지 않을까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시지 왜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기도란 보채거나 조르는 것 보다는 교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만일 기도가 하나님을 조르는 일이라면, 우리의 사정을 하소연하거나 상고하는 일이라면, 서낭당에서 물을 떠 놓고 비는 일과 별 다른 차이가 없지 않겠습니까?

기도란 무엇입니까? 왜 기도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는 기도가 응답받는 기도일까요? 한 교회에서 가뭄에 비가 오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교인들 중에서 우산을 가지고 온 사람은 8살짜리 소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기도에 대한 오용과 남용하는 일들 때문에 많은 믿는 자들이 기도의 참 의미를 상실하였습니다. 기도하면서도 기도하는 자체를 믿지 않는 경향들과, 또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드리는 감정적 기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 영혼의 호흡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귀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끌어내리는 일 보다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이끌려져 하나님이 어떠하심과 그분의 성품과 뜻을 알려고 하는 것이지요.
이번 호는 여러분들께서 기도에 대한 여러 가지 면들에 대하여 더 깊이 이해 하실 수 있도록 크게 도와 드릴 것입니다. 

가정과 영성: 예언을 성취하는 사람들

성경엔 많은 예언들이 있다. 그 예언들은 과거에도 성취되었고 지금도 성취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성취될 것이다. 예언의 성취 뒤엔 언제나 그 예언을 성취시킨 사람들이 있었다.

예언을 성취시키는 자들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일을 하실 수 없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전하며 그 말씀을 경험하고 말씀을 성취시킬 사람들을 찾으셨다.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의 집이 이것을 위해 내게 구하여 나로 하여금 자기들을 위해 이 일들을 행하게 하여야 하리라겔 36:37(KJV 그리스도예수안에 발행). 하나님께서 매우 귀중한 약속과 예언을 주셨다 하여도 우리가 그 약속과 예언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할 때에 그분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예레미야가 예언한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년 만에 마치리라(단 9:2)한 예언을 깨달았다. 그 예언을 깨닫고 다니엘은 그 예언의 성취를 위해 간구했다. 그는 혹 자기와 자기 백성의 죄가 이 예언의 성취를 막고 있는가 하여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올렸다(단 9:1-19). 다니엘이 그렇게 간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예언의 성취를 위해 역사하신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예언 뒤엔 언제나 그 예언을 성취시킨 사람들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 대한 예언
이사야서에 있는 한 예언에 대해 살펴보자. 사 40:3-4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이 말씀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백성들로 하여금 메시아를 맞도록 준비케 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누구를 통해 이 예언이 성취되었는가?

마 3:1-3 그때에 침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요 1:20-23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침례 요한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다. 그는 자신이 그 시대에 성취해야 할 예언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 대한 예언을 성취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왜 요한은 광야에서 살았는가? 그는 왜 예루살렘 성 안에서 외치지 않고 광야에서 외쳤는가? 그것은 이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요한의 부모는 요한이 바로 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에 대한 예언의 성취자가 되도록 그를 교육시켰다. 이렇게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해 준비하고 그 일을 이루는 자들이 있기에 예언이 성취되는 것이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
몇 성경 절들을 살펴보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어떻게 성취시키셨는지 알아보자.

왜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요셉에게 애굽으로 가게 하셨는가?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2:14-15). 만일 요셉이 그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다면 위의 예언이 성취될 수 있었을까?

왜 예수님은 나사렛 동네에서 사셨는가?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마 2:22-23).

왜 예수님께서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는가?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마 4:12-16).

 병을 고쳐주신 이유는?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6-17, 참고 마 12:15-21).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13:34-35).

 나귀 새끼를 타신 이유는?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마 21:2-5). 만일 예수님이 난 더 멋있고 건장한 말을 타고 가겠다고 하셨다면 위의 예언이 성취될 수 있었을까?

만일 예수님이 이 예언의 말씀에 따라 살지 않으셨다면 이 예언들은 결코 성취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메시아에 대한 모든 예언을 성취하시므로 그분의 삶을 통해 자신이 바로 메시아라는 사실을 입증하셨다. 예수님은 그분에 대한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드렸다. 그분의 삶은 예언을 이루는 삶이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예언을 성취시킬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성경에는 우리가 살펴본 침례 요한이나 예수님처럼 예언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아니면 그 예언은 성취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언은 그냥 저절로 자연히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그 예언의 성취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성취되는 것이다. 그 예언의 성취를 위해 기꺼이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의 삶을 불태우는 이들이 있기에 예언은 성취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의 활동
다니엘서 10장에 보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게 하기 위해 활동하면서 사단의 세력과 싸우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참 놀라운 말씀이지 않는가? 천사들이 예언의 성취를 방해하는 자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그 예언을 성취시킬 자들을 찾으시며 준비시키고 계시다. 온 하늘과 천사들은 큰 열성을 가지고 인간의 협력을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람과 교통하는 통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인간의 협력이 없으면 복음이 전해질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언을 성취시킬 즉,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인간이 없으면 예언은 성취될 수 없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럼 하나님이 인간에게 의존한단 말인가? 우리에게 예언을 이룰 능력이 있다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언을 성취하도록 준비시키고 그 능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뿐이다. 아무리 능력 있고 훌륭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도구가 없으면 어떻게 일을 하겠는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시 33:6). 그분의 말씀은 한 번도 실패로 돌아간 적이 없다(사 55:10,11). 그러나 그분은 그분의 예언을 이루기 위하여 언제나 인간 도구들을 사용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그 예언을 이어가고 그 예언을 성취시킬 사람들을 찾으셨으며, 각 시대마다 준비된 자들이 있었다.

아마 어떤 독자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럼 만일 예언을 성취시킬 사람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그 예언은 영원히 성취될 수 없는 것이란 말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분의 예언을 성취시킬 자들을 갖고 계셨으며 준비시키고 계신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만일 내가 준비되지 않는다면 나는 지나쳐지고 준비된 다른 사람이 그 부르심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예언
다니엘에게 그가 성취시켜야만 했던 예언이 있었던 것처럼, 침례 요한에게는 그가 이루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언이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께도 예수님이 이루지 않으면 성취될 수 없었던 예언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우리가 아니면 성취될 수 없는 예언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11:40.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예언이 있는가?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온 세상에 마지막 기별을 전하는 세 천사에 대한 예언이 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 말씀은 하늘의 천사가 실제로 공중에 날아다니면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 천사는 마지막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기별자들을 표상한다.
지금은 바로 이 세 천사의 기별이 세상에 전파되는 때이다. 이 기별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의 위치를 정하고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계시 가운데 이 세 천사가 그 기별을 전할 때에 또 다른 천사가 내려와 이 세 천사와 연합하여 마지막 복음 사업을 마치는 것을 보았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 지더라계 18:1.  우리는 지금 세 천사의 기별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서 이제 곧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 지게 할 다른 천사에 대한 예언이 성취될 때임을 알게 된다. 이 천사가 그의 일을 마칠 때에 무저갱의 열쇠를 가진 천사가 사단을 결박하여 가둘 것이며 그때에 수천 년간 계속되어온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는 끝날 것이다. 이 온 땅을 하나님의 성품의 빛으로 환하게 할 자들은 누구인가? 누가 이 예언을 성취시킬 것인가? 왜 아직 그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온 땅을 환하게 할 자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영광으로 빛나는 자들이다(출 33:18, 34:6,7). 즉, 하나님의 성품으로 빛나는 자들,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는 자들이며, 세상과 하늘과 온 우주에 하나님의 증인으로 설 자들이다.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14장 1-12절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 이마에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성품=사랑)이 있는 자들이다. 그들의 말 속에서, 행동 속에서, 모습 속에서 그들 자신은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나타나는 자들이다. 사람들이 그들을 볼 때에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는 자들이다.

그 입술에 거짓이 없는 자들. 입술에 거짓이 없다는 것은 마음에 거짓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들, 위선이 없는, 언행이 일치된 자들이다. 그 마음이 모든 죄에서 정결케 된 자들이다.

정절이 있는 자들. 그들의 영혼이 죄와 세상에서 분리된 자들, 그들의 사상이 인간의 의견과 섞이지 않은 자들. 진리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죽으면 죽었지 결코 타협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이들, 순결한 진리와 순결한 영혼을 가진 자들이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분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감사하며 따라가는 자들이다. 매일의 삶속에서 아주 작은 일에 있어서도 나의 길과 나의 뜻과 나의 계획을 버리고 예수님의 길을 가는 자들이다.

그대는 예수님을 따라가길 원하는가? 여기 이 땅에서 그분을 따른 자들만, 위에 있는 궁전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을 따르는 자들이 될 것이다. 하늘에서 그분을 따라가는 자가 되는 것은 지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에 좌우되는 것이다. 발작적으로 혹은 변덕스럽게 그를 따르는 자가 되어서도 안 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될 때만 따르는 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분을 따르기로 결단을 내려야 하며, 양이 목자를 믿고 따르는 것처럼 매일의 생활에서 그분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매 발자국마다 그가 나를 죽일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라고 말하면서 그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음으로써 그를 따라가야 한다. 그의 생활 습관은 나의 생활 습관이 되어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와 같이 되려고 노력하고 우리의 의지를 그의 의지와 일치시키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그분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예언을 성취시킬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다.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함으로 우리 주의 강림을 촉진시킬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오시는 날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날을 재촉해야 한다(벧후 3:12 상단 참조). 만일 그리스도의 교회가 주께서 명하신 바와 같이 맡겨진 사업을 이루었다면 온 세계는 벌써 경고를 받았을 것이며 우리 주 예수께서는 능력과 큰 영광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 것이다. 우리는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직접 우리의 삶으로 그 예언을 성취시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로서 예언된 대로 살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예언을 이루기 위해 말씀하시고 행동하시고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러한가? 우리는 예언을 성취시키는 일에 어떤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가?

사도 요한은 결론적으로 이들을 가리켜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말한다(계 14:12). 그대는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고 있는가? 그대의 매일의 삶에서 예수의 믿음을 실천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예언을 성취시킬 자들,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가진 자들을 부르고 계신다. 그대는 이 시대의 마지막 예언을 성취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지금 기도하지 않으려는가?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 10:12). 

건강: 비만의 원인을 알아야 비만을 해결한다!

한국이 어려웠던 시절인 1970년대만 해도 청소년의 비만은 매우 드물었다. 비만증의 아이들은 백 명 중의 한 명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거의 60%의 청소년들이 비만으로 고생하고 있다.

비만 문제는 단지 보기에 좋지 않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비만은 몸의 전체 상태가 당뇨병으로 매우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고혈압과 동맥경화증에 걸릴 확률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비만과 당뇨병과 고혈압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비만을 해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당뇨병이나 고혈압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비만에 대한 정확한 이해
억지를 부리듯 강제적으로 하는 다이어트 즉, 굶거나 살 빼는 약을 먹거나 한 가지 음식만을 계속해서 먹는 것과 같은 방법은 단지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다이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몸무게가 줄어들었는가가 아니라 어느 부분이 어떻게 줄어들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무조건 체중이 줄어든 양만을 가지고 말해서는 안 된다. 살이 빠져서 체중이 줄어든 것은 올바른 다이어트가 아니다. 가장 건강한 다이어트 법은 체중은 늘고 몸매는 날씬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비만증이란 뚱뚱해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뚱뚱해지는 것은 비만증의 한 증세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양을 충분하게 공급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체내에서는 그것을 에너지로 만들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있게 되는가 이다. 음식물은 2천 칼로리가 나올 만큼 섭취하였는데 실제 에너지는 1천 5백 칼로리밖에 나오지 않고 나머지 5백 칼로리는 지방으로 변하여 지방 세포에 축적하게 되면 이것이 비만증이다. 따라서 많이 먹은 것과 비만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많이 먹는다고 해서 비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마른 사람들 중에서 음식을 굉장히 많이 먹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의 경우에는 지방이 축적되지 않기 때문에 살이 찌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건강 음식이라도 그것이 에너지로 변화되지 못하고 체내에서 남아도는 것은 모두 지방으로 변하는데 그 일을 전담하는 것이 간의 역할이다. 남아도는 영양소가 너무 많으면 그것은 이미 영양소가 아니라 독소이다. 운동이나 다른 활동으로 소모되지 않아서 체내에서 남아돌게 되는 영양소는 인체에 해를 주는 독소로 존재하게 되는데 이때 간은 독소 중에서도 가장 저장하기 쉬운 지방으로 전환시킨다. 한국 사람들 중에 지방간이 많은 이유는 운동량이 적은 반면에 한번 먹을 때에 많이 먹기 때문이다. 과식이 매우 예외적으로 드물게 일어난다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씩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세포들은 여분의 영양소들을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며 그 스트레스로 인하여 세포들은 활력을 서서히 잃어가게 된다.

지방 세포가 뚱뚱해지면 몸이 뚱뚱해진다
비만의 원인이 되는 지방 세포의 변화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남아도는 지방은 혈관을 통하여 지방 세포로 들어가게 된다. 여분의 지방이 지방 세포로 몰려들면 지방 세포의 내부가 꽉 차면서 지방 세포 자체가 뚱뚱해지게 되는데 그 결과 사람의 몸도 그 만큼 뚱뚱해지게 된다. 이와는 달리 지방 세포의 숫자가 늘어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은 성인들에게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지만 10대의 청소년들에게는 자주 나타나는 문제이다.
지방 세포의 숫자가 일단 늘어나게 되면 성인이 되어서 더 골치 아픈 악성 비만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10대 청소년들 중 많은 아이들의 식습관은 지방 세포의 숫자를 늘어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소시지, 햄, 튀김 닭, 인스턴트식품 그리고 각종 보약을 먹는 청소년들의 지방 세포의 숫자는 놀랄 정도로 많이 증가하게 된다. 어린 시절에 비만 문제에 시달리지 않고 성장한 성인들에게 나타나는 중년의 비만은 대부분 간단한 비만증이다. 왜냐하면 지방 세포의 숫자가 늘어났기 때문에 생긴 비만이 아니라 지방 세포 자체가 비대해졌기 때문에 생긴 증세이기 때문이다.

비만을 결정하는 세포의 미토콘드리아
대부분의 식품들은 섭취 후에 당분으로 변한다. 무엇을 먹든지 일단은 체내에서 당분으로 전화되는데 이것은 곧바로 몸의 활동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된다. 에너지로 사용되지 못한 여분의 당분은 간으로 가서 지방으로 변환된다. 물론, 과다한 양의 지방을 섭취할 경우에는 지방 상태로 지방 세포로 들어간다. 중요한 점은 섭취한 당분이나 지방이 얼마나 빨리 에너지를 만드는 데에 사용되는가이다.

비만증은 세포들이 얼마나 빨리 당분을 사용하여 에너지를 생산해 내는가는 운동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곳은 세포 속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이다. 여기서 당분을 비롯한 영양소들을 태워서 에너지로 만든다.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의 세포에는 미토콘드리아가 많다. 예를 들어서 마라톤 선수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거의 5배 정도의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이 말은 먹는 것마다 에너지가 되어서 방출된다는 뜻이므로 마라톤 선수는 살이 찔 수가 없다. 마라톤 선수는 음식물을 많이 섭취한다고 할지라도 지방으로 체내에 남아 있을 여분이 전혀 없게 된다. 결국 비만증의 근본적인 치료는 미토콘드리아의 숫자와 기능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키는 데서 출발되어야 한다. 아무리 금식하고 식욕을 떨어뜨리는 주사를 맞는다고 할지라도 미토콘드리아는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과 세포의 활성화
같은 숫자의 미토콘드리아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에너지를 비교적 효과적으로 생산하는 사람이 있고 이와 반대로 매우 비효율적인 사람이 있는데, 미토콘드리아의 숫자가 정상이고 효율적으로 활동하는 경우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피로감이 매우 낮아진다는 것이다. 피로감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세포 내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라이프스타일과 운동, 이것에 의해서 미토콘드리아의 상태가 결정되고 이것은 곧바로 피로감으로 연결된다. 미토콘드리아의 활력이 떨어져 있을 경우, 퇴근을 하면 곧장 드러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게 된다. 만사가 귀찮아지게 되는 것이다. 신선한 음식물 섭취와 적당한 운동은 세포를 활성화시키는데 이러한 세포의 활성화는 T 임파구에 활력을 주어서 인체의 저항력이 매우 강해지게 된다. 운동이 세포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운동은 에너지를 소모시킬 뿐 아니라 세포의 건강과 활력에 놀라운 영향력을 행사한다. 운동을 통하여 세포들을 활성화시킬수록 사람은 건강해지고 젊어진다. 세포가 늙었다는 말은 미토콘드리아가 늙었다는 말과 통한다. 원래에 4개 있던 미토콘드리아가 3개로 줄었으면 그 만큼 노화가 진행되었음을 뜻한다. 운동하지 않는 40세 남자의 뼈는 운동하는 70세 남자의 뼈보다 더 노화된다. 또한 운동을 꾸준히 해 온 70세 노인의 근육과 운동을 하지 않는 30대의 근육을 비교하면 근육의 질이 비슷하게 나온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은 나이에 비해서 신체적으로 훨씬 더 젊다. 운동은 노화 현상뿐 아니라 호르몬의 생산, 성장력, 면역성과도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운동을 지나치게 심하게 하는 경우와 전혀 하지 않는 경우, 여성 호르몬이 점차적으로 저하되지만, 규칙적으로 적당하게 운동을 할 경우 호르몬의 밸런스는 매우 좋은 상태를 유지된다. 특별한 이유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한 부부가 생명의 원칙에 따라서 규칙적으로 열심히 운동한 결과 자녀를 갖게 된 케이스도 있다.

몸의 상태나 호르몬의 밸런스에 따라서 세포가 얼마나 에너지를 생산해 낼 것인가가 결정된다. 비만증은 단순히 몸이 뚱뚱해지는 것이 아니다. 몸속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는데 그 중 하나가 비만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비만증을 해결하기 방법으로 단순히 살을 빼려고 하는 것은 무지한 생각일 뿐 아니라 불가능한 방법이다. 몸 속에 지방 세포가 쌓이게 된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일 없이 복부 지방 제거 수술을 받는다든지 과도하게 음식의 섭취량만을 줄이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세포가 좋아하는 음식물을 섭취하고 깨끗한 물을 충분하게 마셔주면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세포의 활동은 살아나게 되고 그 결과로 몸 안에 있는 노폐물과 불필요한 지방 축적물들은 제거되거나 배출되게 된다. 혈색은 좋아지게 되고 몸무게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마음이 즐거워야 살이 빠진다
대부분의 비만증은 섭취된 영양분을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병이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미토콘드리아를 치료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모든 세포는 뇌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곳으로부터 명령을 전달받는다. 비만증의 원인 세포인 지방 세포 역시 뇌로부터 연락을 받고 그 명령을 그대로 수행한다. 그러므로 체중을 줄이기 위한 모든 시도와 노력이 즐거운 마음과 정신으로 이루어져야만 지방 세포가 뇌의 지시를 받아 제대로 지방을 배출시키게 되는 것이다.

지방 세포의 표면에는 베타 초인종과 알파 초인종이라는 두 개의 초인종이 있다. 특정한 호르몬이 지방 세포의 표면에 접근해 와서 베타 초인종을 누르면 지방 세포는 세포 안에 있는 지방을 내보내서 태우라는 뇌의 명령을 인식하고 그 명령을 수행한다. 세포의 문을 열고 부지런히 지방을 내보내게 된다. 그러나 또 다른 호르몬에 의하여 알파 초인종이 눌러지면 세포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을 굳게 닫아버린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지방을 내놓지 않는 것이다. 특히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체중을 줄이기 위하여 먹는 것을 참고 사우나에 가서 억지로 살을 빼기 위하여 애쓰는 사람의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자.
운동과 식이 요법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체중 감량을 시도하는데 몸무게가 잘 줄어들지 않는다면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가 생기고 심한 좌절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특수한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때 지방 세포는 문을 단단히 잠그고 지방을 내놓지 않게 되어 지방을 태워서 없앨 수 없게 된다. 이와 반대로 낮은 산을 기분 좋게 오르거나 기분이 좋은 상태로 운동을 열심히 하면 특정한 호르몬이 찾아와서 베타 초인종을 눌러서 세포 안의 지방을 불어내어 태워 없애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체중을 감량하는 모든 노력이나 시도가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인간의 생각과 마음은 각각의 세포들에게 매우 긴밀한 영향을 미친다. 다음과 같은 실험도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A그룹의 쥐들에게는 똑같은 양의 음식물을 매일 규칙적으로 공급하여 주었다. 그리고 일정 시간 후에 체중을 측정하였다. B그룹의 쥐들에게는 똑같은 양의 음식을 먹인 후에 3일을 완전히 금식시켰다. 그러다가 똑같은 양의 음식을 주었고 다시 금식시켰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을 반복한 다음 몇 개월이 지난 후에 체중을 측정하였다. 금식을 한 쥐들은 위장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음식을 많이 먹지 못했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굶기를 반복한 쥐들이 정상적으로 음식물을 섭취한 쥐들보다 오히려 더 뚱뚱해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까? 살을 빼려고 살인적인 다이어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을 빼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자주 금식하는 방식의 다이어트를 하면 그러한 다이어트 법에 익숙해진 세포의 미토콘드리아는 영양소가 들어오면 바로 태워서 없애는 대신에 다음 번에 올 금식 기간을 위하여 얼마간의 지방을 여분으로 비축하게 된다. 인체 내에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살은 빠지지 않고 오히려 체중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날씬하게 만드는 유전자, 렙틴 생산 유전자
최근에 발표된 연구 결과는 지방 세포 속에 존재하는 여러 유전자들 중에 몸을 날씬하게 하는 유전자도 있다는 사실을 밝혀 주었다. 비만증에 걸린 사람들과 날씬한 사람들의 세포를 수없이 관찰한 노력 끝에 발견한 유전자이다. 그 유전자는 렙틴이라는 물질을 생산해 내는데 이 물질이 하는 임무가 바로 지방 세포에 저장되어 있는 지방을 에너지로 바꾸기 위하여 혈액으로 내보내어 간세포로 하여금 그것을 이용하여 지방을 에너지로 만들게 유도한다.

우리가 섭취하는 영양 성분들은 그 종류에 따라서 에너지로 쉽게 변하는 정도가 각각 다르다. 예를 들어서 탄수화물이 에너지로 변하기 가장 쉬우며, 두 번째는 단백질이고 세 번째는 지방 순으로 이어진다. 여러 가지 영양 성분을 섭취할 경우 먼저 탄수화물이 태워져서 에너지로 변환되고, 탄수화물이 모두 에너지로 변하면 그 다음에는 단백질이 에너지로 변하고 그 다음은 지방의 순이다. 살을 빼기 위하여 식사를 거르고 굶을 경우 곧바로 지방이 빠져 나가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굶으면 먼저 근육부터 빠진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탄수화물과 단백질 순으로 태워지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 뼈를 제외하고 제일 무거운 것은 근육이며 체중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또한 근육이다. 물론 비만 상태의 사람인 경우에는 근육보다 지방의 무게 비율이 높아진다. 근육 1킬로그램과 지방 1킬로그램을 비교하면 근육 쪽의 부피가 훨씬 크다. 그러므로 근육이 조금만 줄어들어도 체중은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금식을 하면 빠르게 체중이 저하되긴 하지만 그것은 지방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근육이 줄어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이어트의 근본 목적은 지방을 빼는 것인데 근육을 빼게 되는 것이다. 비만증의 사람들은 지방의 비율이 근육의 비율보다 높아서 문제인데 금식을 통하여 근육을 빼어버리게 되면 지방과 근육의 비율 차이는 더욱 많이 벌어지게 된다.

렙틴 생산 유전자가 활발해질수록 렙틴이 많이 생산되고 결국에는 비만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렙틴 생산 유전자를 활발하게 만들 수 있을까? 건강에 대한 모든 근본적인 답은 오직 하나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체에 새겨 놓으신 생명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신선한 야채로 꾸며진 채식을 섭취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다. 모든 세포들이 깊은 잠과 무활동으로부터 깨어나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건강이 회복되며 비만이 해결되는 길이 보이게 될 것이다. 

배만 나오는 비만증이 더 위험하다
비만증이 심해지면 지방 세포 속에 지방이 가득 차서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어지게 되는데 이 상태에 이르면 지방 세포는 문을 꼭 잠가 버린다. 그렇게 되면 지방은 혈액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결과 혈액 속에 지방 수치가 높아지게 되고 콜레스테롤도 증가하게 되며 산소 공급도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지방이 낀 세포들은 많은 경우에 당뇨병의 원인을 제공한다. 혈액 속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고 당 수치가 올라가게 되면 당뇨병에 이어서 동맥경화증까지 유발되게 된다.  비만의 유형은 여러 가지인데 팔 다리에는 별로 살이 없는데 배만 나오는 비만형은 매우 위험한 유형이다. 이런 유형의 비만은 남성 호르몬의 분비가 많고 심장마비나 당뇨병과 같은 합병증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무척 높기 때문이다. 

신앙: 1부 - 기도하고 계십니까?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계와 성경을 통하여, 또한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감화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만으로는 우리의 영적 신앙 생활이 충분하지 못합니다. 영적 생명과 힘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모하여 그분에 대하여 명상합니다. 그리고 또 그분의 행하신 일들과 우리를 위하여 베푸신 구속 사업과 자비와 축복들에 대하여 묵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통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통하려면, 우리의 심정과 마음과 사정을 말로 하늘 아버지 앞에 토로(吐露)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그분의 뜻과 마음을 알리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마치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심정을 펴 놓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어떠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알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내려오시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분께로 올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가장 거룩한 영혼의 활동입니다. 기도는 진실하고, 겸손하고, 열렬해야 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발한 새 마음의 욕망이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탄원자가 거룩한 임재 앞에 있음을 느낄 때 자아는 잊어버린 바 될 것입니다. 또 기도는 죄악과의 투쟁과 그리스도인적 품성의 계발에 있어서 하늘이 정하신 성공의 방법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오는 거룩한 감화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에 그가 탄원하는 모든 것을 성취시킬 것입니다.

1. 기도 - 우리의 특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것, 즉 아무 가치가 없는 유한한 존재이며 피조물인 인간이, 기도를 통하여 지존자의 알현실에 들어가 조물주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사람이 무한하신 하나님과 기도로 하나가 되어 연합하는 일보다 더 경이로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약하고 죄 많은 인간이 자신의 조물주 하나님과 말하고 자신의 사정을 아뢰는 기도, 그것은 정말 놀라운 특권인 것입니다.

귀중한 기도의 특권을 올바르게 깨닫고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그분께 기도로 아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가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그분께 알려야 합니다. 큰 어려움은 물론, 우리의 생애의 작은 염려와 걱정까지도 우리는 그분께 가져갈 수 있습니다. 우리를 곤란하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기도로써 그것을 주님께 가져갈 수 있습니다. 어떤 비밀도 누설함이 없으시고, 어떤 어려움도 해결하실 수 있는 구세주 예수님께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안심하고 알릴 수 있는 것은 매우 귀중한 특권입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풍성한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의 샘에서 마음껏 마시는 것은 얼마나 귀한 축복입니까! 그리고 이렇게 소중한 기도를 우리가 그렇듯 적게 하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 중에 아무리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진정으로 하는 기도를 들으시려고 고대하시며, 그 기도를 들으실 때 기뻐하시며, 소원과 간구를 하나님께 아뢸 때 만족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사랑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그리워하시고 저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주시려고 하시지만, 인간들은 그렇듯 기도를 적게 하고, 그렇듯 믿음이 적어서 주시려고 하는 풍성한 축복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소원과 기쁨과 슬픔과 염려와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나 우리의 요구는 하나님을 괴롭게 하거나 피곤하시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요구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약 5:11)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은 우리의 슬픈 일을 보거나 그 슬픈 일에 대한 말만 들어도 민망히 여기시며 동정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번뇌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 내어 놓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 감당하시기에 과한 것은 하나도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세계를 붙드시고 우주의 모든 사건을 관리하시는 능력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건 큰 일이건, 우리의 평강에 관계되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목하지 않으시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경험 중에 어떠한 사건이 너무 흉하다고 하여 그것을 보지 않으시는 것이 없고,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그분께서 풀기에 너무 어려운 것도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 중에 지극히 작은 자가 당하는 어떤 재난이나,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하는 어떤 근심이나, 기분을 좋게 하는 어떤 기쁨이나,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어떠한 진정한 기도라도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못 본체 하시거나 거기에 직접으로 관심을 두시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시 147:3)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각 사람과의 관계는, 그분께서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우리 각 한 사람을 위하여서라도 주실 수 있으실 만큼 그렇게 개인적이고, 명료하고도 완전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많으시고 자상하신 하늘의 아버지께 매일 가까이 나아가 대화하며 교통하는 기도의 특권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2. 기도-신앙의 핵심
기도는 신앙 생활의 핵심이며 생명입니다. 음식물이 몸의 건강을 위해서 필요한 것처럼,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날마다 기도하는 것은 영적으로 은혜 중에 자라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어떤 위대한 은사라도 기도를 대신하지 못하며 영혼의 건강을 유지하게 하지 못합니다. 거룩한 생애에서 향상하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보다 높은 그리스도인의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 영혼의 순결을 위해, 우리는 진실하고 열렬하게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들과 가정 안에서 기도할 것이지만, 무엇보다 은밀한 기도를 등한히 해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기도는 심령의 생명인 까닭입니다. 기도를 등한히 하면서 영혼이 번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가족 기도와 공중 기도만으로는 우리의 신앙 생활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혼자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앞에 기도로 우리의 심령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은밀히 기도할 때에, 그 은밀한 것을 보시고 마음의 중심에서 나오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축복과 감화는 매우 강렬하고 감동적입니다. 비록 우리의 주위가 부패된 분위기로 둘려 있을지라도 우리는 기도함으로 그 더러운 공기를 호흡하지 않고 하늘의 깨끗한 공기 가운데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기도로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께로 올림으로 불순한 망상이나 불신성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통로를 막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붙들어 주심과 그분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마음 문을 열어 놓는 사람들은, 이 땅의 분위기보다 더 거룩한 분위기 가운데서 매일 살고 행할 수 있을 것이며 하늘과 간단없는 교통을 지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마치 우리의 생명이 위기에 놓인 것처럼 간절하고 열렬하게 기도하는 생활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구원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소원이 생길 때까지, 또한 죄의 용서를 받은 귀중한 증거를 얻을 때까지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의 핵심이 되는 기도를 게을리 하는 사람은 믿음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3. 기도-영적 힘을 얻는 비결
기도는 영적 힘을 얻는 비결입니다. 기도는 인간의 마음을 생명의 샘이신 예수님과 즉각적으로 접촉하게 하며 영적인 경험을 더욱 튼튼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승리할 수 있는 영적인 힘과 능력을 얻는 비결과 신앙 생활의 성공의 비결은 당신의 이름으로 하늘의 힘과 은혜를 구하는 기도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자주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이 지니신 힘은 기도에 있었습니다. 새벽 미명이면, 구주께서는 하루의 의무와 시련을 위하여 굳세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늘의 아버지께 새로운 능력의 공급을 구하는 탄원자와 간구자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기도로 교통하며 영적인 힘을 얻으셨습니다. 어느 날은 기도로 온 밤을 새우시는 일도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지상 생애 동안 날마다 필요 되는 은혜를 새롭게 공급받기 위하여 하늘 아버지께 간구하셨다는 사실과, 또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굳세게 하며 축복하시고자 나가셨음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귀중한 위안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기도로써 당신의 믿음을 굳게 하셨으며, 또한 하늘과 교통하심으로 악을 저항하시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능력을 친히 얻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범사에 우리의 모본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연약한 한 형제로서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히 4:15)으신 분이셨지만, 우리처럼 죄악 세상에서 심령의 투쟁과 고민을 당하셨습니다. 그의 인성(人性)은 그분에게 기도가 필요하게 하고 기도가 특권이 되게 하였습니다. 인류의 구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기도의 필요를 그렇게 느끼셨다면, 연약하고 죄가 많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은 얼마나 더 열심히 기도할 필요를 느껴야 할까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의 매일의 필요를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우리의 모든 염려를 맡겨 버리고, 죄와 세상을 승리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영적인 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쌓아 둔 하늘 창고를 여는, 믿는 자의 수중에 있는 열쇠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은혜의 보좌로 매일 나아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영적인 힘과 은혜와 능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의 신앙 생애가 충만한 축복 속에서 지속적인 승리의 생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 2부 - 언제, 왜 기도해야 합니까?

1. 하루의 승리를 위하여 - 아침에 드리는 기도
아침에 잠을 깨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주님의 임재를 간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분의 빛과 생명과 영이 계속해서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태양이 대지를 비추면서 세상을 환하게 하는 아침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이 우리 마음의 구석 구석을 비추어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분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단 한순간도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아침마다 그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아침에 일어날 때 침대 곁에서 무릎을 꿇고 그날의 의무를 이행하고 유혹을 대항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그리고 죄를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오늘 하루 그대가 하는 모든 일에 예수님의 사랑스러운 성품이 나타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로 요청하십시오.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을 하고, 그들을 예수님께로 이끌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이 일을 하루의 첫 번째 할 일로 삼으십시오.

또 하루의 계획을 주님 앞에 내놓으며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오 주여! 나를 받으사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삼으소서. 나는 나의 모든 계획을 당신의 발 앞에 놓나이다. 오늘 나를 당신의 일에 써 주시옵소서. 나와 같이하여 주시고 나의 모든 일이 당신 안에서 성취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아침마다 그날을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며, 또 모든 계획을 하나님께 맡겨 그분의 섭리에 따라 그것을 행하기도 하고 그만두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날마다의 생애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우리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모방하는 삶이 될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의 나날의 삶은 승리의 나날들이 될 것입니다.

2.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시 32: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우리의 죄와 허물로 마음이 상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죄짐을 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병자들을 고쳐주실 때에, 어떤 경우에 있어서 구하는 축복을 즉시로 허락하지 않으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은 호소하자마자 그 요청이 즉시 수락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영적 문둥병인 죄로부터의 구원을 간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즉시 용서해 주십니다.  어떤 악한 죄일지라도, 어떤 종류의 허물과 실수와 부족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수 없는 죄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죄의 사유를 받기 위하여 어떤 괴로운 일을 행하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은총을 받기 위하여, 또는 우리의 죄과를 속하기 위하여 멀고 지루한 순례나 또는 고통스러운 고행(苦行)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기도로 진정으로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사람은 불쌍히 여기심을 받을 것입니다. 사도는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 5:16)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죄를 사유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또 서로 피차간에 잘못을 자복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친구나 이웃에게 우리가 잘못했을 때에는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그 잘못을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충심으로 형제의 잘못을 용서할 때에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쾌히 사유하여 주실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자복함으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겸비하게 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첫째 조건도 이행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다시 회개할 것 없는 회개를 경험하지 않고, 죄를 미워하는 가운데서 심령의 참된 겸비와 통회하는 정신으로 우리의 죄를 자복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 진정으로 죄의 사유를 구한 것이 아니며, 그리하여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평강을 얻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지은 죄의 사유함을 받지 못하는 오직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기도로 우리 마음을 겸비하게 하기를 즐거워하지 않고, 또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마음속 깊은 데서 솟아나오는 자복은 무한히 자비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길을 찾을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자복은 언제든지 명백하게 하고 또한 지은 죄를 꼭 지적하여 자백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와 개선이 없는 자복은 하나님께 받으시는 바 되지 못합니다. 반드시 생애에 확실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와 겸비의 실례는 죄에 대한 핑계나 자기 합리화가 섞이지 않은 자복의 정신을 말합니다. 진정한 회개로 부드러워진 겸손하고 상한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갈바리에서 지불된 대가를 희미하게나마 이해하게 만들 것이며, 예수님을 죽게 한 그 죄를 미워하여 다시는 같은 죄에 빠지기를 원하지 않게 되며, 그 진정한 참회의 기도는 그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3. 시험과 유혹을 이길 힘을 얻기 위하여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 7).

우리는 매일 시험과 유혹을 당면하기 때문에 기도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에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를 간구하며 닥쳐오는 시험과 유혹을 극복할 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강력한 유혹과 시험이라도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면, 그리고 그분 앞에 나아가 기도로 씨름하면, 그분은 우리를 무력하게 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악의 세력을 극복하고 깨뜨릴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기도와 경계를 통하여서만 보다 높은 그리스도인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고 그것을 우리의 전쟁 무기로 삼을 때, 모든 죄악의 유혹을 물리치기에 적합한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사단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는 내적 능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도로 늘 주 안에 거하십시오.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초청하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 14:38)고 하셨습니다. 은밀하게 접근해 오는 사단의 유혹을 막기 위해, 그리고 옛 습관과 자연적인 성향들이 마음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또 귀에 들려진 말들과 주위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마음속에 쓴 뿌리를 내리게 하여 죄악으로 잉태되지 않도록, 유혹과 시험의 조짐들을 알아차리도록, 우리는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4.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마음의 변화를 새로 나는 것으로 말하였습니다. 또는 그것을 농부가 뿌린 좋은 종자가 싹이 나는 것으로 비유되기도 했습니다. 회개하고 새로 그리스도께로 나아간 사람들은 갓난아이가 자라듯이 점점 자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장성한 남녀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 밭에 심은 좋은 종자가 자라서 열매를 맺음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학적인 용어로 성화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자라나는 성화의 과정에 필수적인 것은 기도입니다. 사람의 온갖 지혜와 재주를 다 가지고라도 천연계 가운데 있는 작은 물체에 생명을 만들어서 넣어 줄 수 없듯이, 또 식물의 씨가 발아되게 하여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막 4:28)으로 자라나게 할 수 없듯이,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나는 데 있어서 신령적 생명이 마음 가운데 생기는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생명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고, 영적으로 자라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능력과 생명을 받아 자라나는 길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이 능력을 나누어 받을 수 있습니다.

꽃과 초목이 태양을 향함으로 그 밝은 햇빛이 초목과 꽃들을 자라나게 하듯이, 우리가 기도로 의로운 해이신 예수께로 향할 때에 하늘의 광선이 우리에게 비치게 되고 우리의 품성은 계발되어 그리스도와 같이 되며, 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장성한 남녀가 되기까지 자라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혼자서 무슨 일을 좀 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의지하였으니 이제는 저희 자신의 힘으로 옳은 생애를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실패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은혜 가운데 영적으로 자라나며 성화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여부에 달렸으며, 날마다 시간마다 주님과 더불어 기도로 교통하며 그분 안에 거함으로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다음의 말씀은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 5). 우리가 거룩한 생애를 살려고 하면 가지가 자라고 열매를 맺기 위하여 원체에 붙어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 의존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떠나서는 아무 생명도 없는 것입니다. 곧, 시험을 대항하며 은혜 가운데서 영적으로 자라나는 성화의 생애를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의 안에 거함으로 품성이 자라날 수 있으며, 그분의 생명을 받음으로 시들지도 않고 열매 맺는 생애를 살게 될 것인데, 이 모든 일은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위로부터 능력을 받았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앞으로 받을 많은 유혹과 시련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능력을 가지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도달하기 위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완전을 향하여 더 높이 도달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더욱 더 자라날 수 있도록 새로운 은혜를 공급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고, 기도의 응답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그들에게 맡겨진 능력을 증진시키는 법과, 성화되고, 거룩하고 고상하게 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기도하며 겸손히 성령의 변화시키는 감화에 복종하였을 때, 그들은 신성의 충만함을 받고 거룩한 형상으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5. 도움과 위로를 받기 위하여
어떤 환경이나 어떤 상태, 곧 곤란에 싸이고 어려움에 압도되고 위험을 당할 때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해로와 육로로 여행하다가 어떤 큰 위험을 당했을 때에, 또는 돌연한 사고나 위험한 순간을 만날 때 우리는 하늘의 보호를 탄원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충실한 자녀들이 하나님을 부를 때에 언제든지 도우러 오겠다고 친히 약속하신 하나님께 마음으로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슬픔이나 근심, 또는 맹렬히 엄습해 오는 시험으로 억눌릴 때, 원하지 않는 질병으로 쓰러졌을 때, 우리는 언약과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능력 안에서 확신과 지지와 구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사경을 헤맬 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그들을 돌보시고 감찰하시는 분께서는 해안에서 겁에 질려 태풍과 싸우고 있는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한순간도 당신의 제자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긍휼이 많으신 주님의 눈은 깊은 우수를 띠고 폭풍에 시달리는 귀한 배를 좇으시며, 마치 어머니가 부드러운 사랑으로 자녀를 보살피는 것처럼 당신의 제자들을 지켜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진정되고 거룩하지 못한 야심이 가라앉고 겸손히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렸을 때 그들은 구조를 받았습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어떤 슬픔과 고통 중에서나, 앞길이 캄캄하고 장래가 암담하게 보일 때에 또 우리가 무기력하고 외로움을 느낄 때에 믿음의 기도의 응답으로써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시는 보혜사가 보내지실 것입니다. 상황들은 우리를 지상의 모든 친구와 도움으로부터 분리시킬는지 모르지만, 어떤 상황도 어떤 먼 거리도 우리들을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분리시키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디 있든지 어디를 가든지 언제나 그분은 우리를 지지하고 붙들고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하여 우리의 오른편에 계십니다. 위태할 때 도우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평안과 위로를 줍니까?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이 닥칠 때에도 마음의 안정이 깨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억울한 취급을 받을지라도 격분해서는 안 됩니다. 복수의 정신을 가지면 우리는 자신을 해하게 되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심이 소멸되고 성령을 근심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더욱 악해지고 있는 이때에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앞으로 고난이 없으리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는데, 이러한 고난이야말로 우리를 지극히 높으신 자의 밀실로 들어가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분에게 지혜를 구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복잡한 문제와 곤궁한 사정과 영적 도움의 필요를 당신께 아뢰라고 권유하십니다. 신앙 때문에 박해와 모욕을 당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자기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대신해서 고생하시고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지신 주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홀로 아무런 방비도 없이 버림받지 않습니다. 기도는 전능자의 팔을 움직입니다. 기도는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히 11:33, 34)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애를 주님을 섬기는 일에 바친다면, 하나님께서 섭리하지 않으신 처지에 빠지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놓일지라도 우리의 길을 지도하시는 분이 있으며 우리가 어떠한 번민 가운데 빠질지라도 우리에게는 확실한 조언자가 있습니다. 어떠한 슬픔과 사별과 외로움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을지라도 우리에게는 동정이 많으신 친구가 계시며, 우리가 알지 못하여 실족하는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시 72:12)라고 하시는 그분의 분명하고 똑똑한 음성을 들으십시오!

환난을 당하는 사람이나 억울하게 학대를 받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마음이 강철같이 냉혹한 인간들에게서 돌아서서 도움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진정한 기도는 하나도 허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찬양대의 우렁찬 찬미 소리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인간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골방에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쏟아놓을 때나, 길을 가면서 묵묵히 기도할 때에도, 우리가 올리는 기도의 말이 우주의 왕의 보좌에 상달됩니다. 이런 기도가 비록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우주의 침묵 속에 사라져 버리지 않으며,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 때문에 허지로 돌아가는 일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심령의 소원을 묵살시킬 수 없습니다. 심령의 소원은 거리의 소음과 군중의 소요를 벗어나 하늘 조정에 상달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고 도우시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 성경을 연구할 때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기 전에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지도가 없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성경을 왜곡하거나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있고, 또한 성경을 많이 읽지만 유익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 없이 펴면, 우리의 사상과 애정이 하나님께 집중되지 않거나 그분의 뜻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마음이 의심으로 흐려지고 성경 연구 자체가 회의를 줄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은 진리를 마치 자기 의견을 중심으로 하여 맴돌게 하는 것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즉, 자기의 이론을 해석할 수 있는 재료로서 성경을 탐구하여서는 안 되는데 바로 이러한 방법은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모든 편견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비워야 하며, 연구실의 문턱에 자기 개인의 생각을 놓아 두고 겸손하고 굴복하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 숨길 것이며, 열렬한 기도로써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영생의 길을 배우게 하는 지도서입니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겔 36:26) 준다는 말씀은 새로운 정신을 주신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변화는 항상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진리의 깨달음에 대하여 밝은 개념을 가질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우리들의 견해가 얼마나 명료한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력이 얼마나 깊은가에 비교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에 대하여 명료한 이해력과 확고한 판단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신앙: 3부 - 응답받는 기도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간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응답을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를 기대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응답받는 기도의 조건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간절히 필요를 느끼라
응답받는 기도의 조건들 중 첫 번째는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도움을 받을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우리의 필요는 하나님께 무시함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느끼며 간절히 탄원하는 기도는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시기를,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사 44:3)게 하리라고 하셨고, 또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 7:7)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라는 약속의 말씀도 있습니다. 필요를 느끼는 사람의 기도는 간절하고 절실할 것입니다.

2. 믿음으로 구하라
응답받는 기도의 중요한 요소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나가는 첫 단계는 그분께서 우리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사랑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요일 4:16). 또한 성경에 말씀하신 그분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이미 받은 줄로 믿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믿음의 기도는 세상의 어떤 능력이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믿음은 무한한 것을 만질 수 있는 영적인 손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무한하신 분의 사랑의 능력을 붙드는 두 팔과 같습니다. 참된 믿음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과 성경에 나타난 진리 위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진정한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무한하신 자의 마음과 연락됩니다. 혹시 기도하는 그 당시에 우리 구주의 얼굴이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를 보고 계시는 현저한 증거는 볼 수 없을지라도, 혹시 우리의 간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의심이 생길지라도, 우리는 무력한 그대로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성경에 모든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스럽게 보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우리를 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그분의 손은 사랑과 긍휼로서 우리를 안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하며, 동시에 받은 줄로 믿어야 하며, 또한 그것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구하는 것을 구하는 바로 그때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지혜가 없어서 앞에 있는 것을 잘 보지 못함으로 어떤 때에는 우리에게 축복이 되지 못하는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 우리가 영적으로 밝아진 눈을 가지고 사실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우리 자신도 원하게 될 것 - 을 주심으로 우리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듯한 때라도 우리는 그 허락을 굳게 붙잡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응답의 시기가 가장 알맞은 때에 그것을 확실히 이루어 주실 것이며, 또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방법으로 그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꼭 그 방식으로 응답되고 또한 우리가 원하는 꼭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지혜로우시므로 잘못하실 리가 없으시고, 지극히 선하심으로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기도가 즉시 응답되지 않을지라도 그분을 의지하기를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다려야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제 우리가 느꼈던 것과 같은 그런 평화와 기쁨을 오늘에 느끼지 못할지라도,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고 흑암 가운데서도 마치 빛 가운데서와 같이 온전히 주님을 믿고 신뢰하여야 하며, 이런 믿음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받게 하는 것입니다.

3. 죄를 버리라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죄를 품든지, 알고 지은 죄를 버리지 않으면서 욕심으로 기도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사 57:15).

모든 기도하는 사람들은 아는 죄를 바로잡고 회개한 후에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예수님의 공로이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보혈입니다. 그러나 우리로서 주님께서 받으시는 조건에 응하기 위하여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우상을 품고 거짓된 입술로 드리는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답받는 기도는 알고 있는 죄를 모두 회개하고 버리고 생애를 하나님 앞에 올바로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께 긍휼과 축복을 구하려고 할 때에 우리는 우리 마음 가운데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고 기도를 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 대하여 용서성이 없는 정신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우리가 용서함을 받고자 하는 그대로 남을 용서하여야 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라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중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바를 먼저 구하고, 또 무엇이나 받을 때에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받는 이 기도의 조건들이 이행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신 것을 틀림없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닌, 자신의 뜻대로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쓰는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발람은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하나님께 억지를 부린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길을 선택한 후에 여호와의 재가를 얻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은 노선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욕망과 기호와 일치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따라가는 일에 별 어려움이 없지만, 하나님의 뜻과 의무가 성경에 분명히 증거로 드러나 있는데도 그 증거들이 자신의 욕망과 기호에 반대될 때에는 사람들은 흔히 그것들을 제쳐 두고 하나님의 뜻과 그들의 의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곧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뜻에 맞는 것이 될 때가지 하나님께 떼를 쓰려고 하는 것입니다. 표면상으로 그들은 크게 양심적인 것처럼 빛을 구하기 위하여 오래 열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욕망을 따르도록 허락하시고 그 결과를 당하게 하십니다.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시 81:11, 12).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을 핑계를 찾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 보겠다고 생각하지 말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겸손하고 순종하는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과 그 요구를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의 기도가 즉시, 그리고 우리의 소원대로 응답되기를 바라며, 혹시 응답이 늦어지거나 우리가 바라지 않은 형태로 응답되면 용기가 꺾이는 시험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로 현명하시고 선량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언제나 우리가 바라는 바로 그 시간에, 바라는 그대로의 형태로 응답해 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지혜와 사랑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뜻에 양보해 달라고 그분께 요구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분의 목적에 흡수되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욕망과 흥미는 그분의 뜻 가운데 잃어버린 바 되어야 합니다.

5. 꾸준히 기도하라
꾸준히 하는 기도는 응답을 받는 조건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끈기 있게 기도해야 할 것을 비유를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 18:1~8).

이 비유에 나타난 법관은 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남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도 눈꼽만큼의 동정심도 없었습니다. 과부가 누차 그를 찾아갔으나 그때마다 멸시를 당했고 재판정에서 쫓겨나곤 했습니다. 법관은 그 과부의 호소가 정당하다는 것을 알았고 즉시 그의 호소를 해결해 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해주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과부는 그 일을 중지하지도 않았고 낙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법관이 몹시 냉담하고 완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부는 그 법관이 자기의 사정을 들어줄 때까지 계속 호소하자, 마침내 법관은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고 하며 그 끈기 있게 조르는 과부의 원한을 갚아 주었습니다.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이 말씀 가운데서 예수께서는 불의한 법관과 하나님 사이의 차이점을 뚜렷하게 대조하셨습니다. 그 법관은 과부가 조르는 것이 귀찮아서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이기적 목적으로 그 요청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그 과부에 대해 아무런 동정심이나 측은한 생각도 갖고 있지 않았으며,
또 그 과부의 불행한 사정이 그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지만 그 과부의 끈질긴 호소가 귀찮아서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그녀의 요구를 들어 주고 원수를 갚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당신을 찾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법관의 태도와 얼마나 다릅니까! 하나님께서는 궁핍하고 곤궁한 자들의 호소를 무한한 동정심을 가지고 돌아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민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자 꾸준하고 열렬하게 기도하지 않는 자들은 자기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기도로 씨름하는 것이 무엇임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적습니까! 모든 힘이 다할 때까지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온 심령을 다 기울여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적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한 번만 구하면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구하라고 명하시고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의 물결이 밀려올 때 확고한 믿음으로 끈질기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은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6. 순종하라
기도는 결코 의무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기도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은 하늘 아버지께서 받아들이실 수 있는 조건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얼마만한 신뢰심을 갖고 있는지를 자신을 엄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한다면 그것은 마치 우리가 환전(換錢) 조건에 맞지 않는 어음을 가지고 주님께 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약속을 제시하고 그 약속을 이루시도록 구할 때에, 만일 하나님께서 그런 거짓된 요구를 들어 주신다면 그분 스스로가 당신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또 요한은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 2:3~5)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건은 이행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약속만을 내세우고 간구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약속의 성취를 받기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을 권위로 사용하지만 그리스도께 대한 그들의 믿음과 사랑의 표시가 될 만한 일들은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로 무엇을 간구할 때에는 회개와 함께 순종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을 지키지 않은 죄를 회개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 것을 결심하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분부 속에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지요!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괴롭혔거나 상심시켰다면, 그 사람에게 우리의 잘못을 자백하고 화목을 구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그의 축복을 구하기 전에 반드시 하여야 할 필요 불가결한 준비입니다. 기도로써 주님을 찾는 사람들 중에 흔히 등한히 하는 일이 더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권고, 즉 하나님의 것을 드리는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 3:8).
온갖 축복을 다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유 중의 얼마를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복음 사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친히 제정하신 제도로서, 우리의 이기심을 버리게 하는 좋은 제도이며, 우리의 얻은 것 중 십 분의 일을 하나님께 돌림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선물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에게 속한 것을 돌려드리지 않고 있다면 어떻게 그분의 축복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세상 재물에 대해 신실한 청지기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분이 하늘의 것을 우리에게 맡겨 주시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원인이 이 점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자녀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신실히 행한 후에야 자녀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간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다 한 후에, 우리가 할 수 없는 일, 곧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일을 하여 주시기를 믿음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자녀들에게 먼저 모본을 보이고, 자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으면 용서를 구하고, 또한 제일 먼저 자녀들을 하나님의 제단 위에 바치면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위하여 드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기도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오래지 않아 기도를 그치든지 또는 그의 기도가 일종의 형식적인 일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이 사회생활에서 떠나서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십자가를 지는 일의 범위를 벗어날 때에 또는 사람이 저희를 위하여 열성으로 일하신 구주를 위하여 열심으로 일하기를 그치는 때에 그 사람은 기도의 제목을 잃어버리게 되고 기도할 자극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의 기도는 개인적이요 이기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들은 인류의 궁핍이나 영적인 필요에 대해서, 또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일하기 위한 힘을 간구하는 기도를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영혼들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고 구원하는 일에 우리의 생애를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는 기도를 마칠 때, 항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기도 속에서 언제나 그 말을 반복하는 나머지 우리는 그 문장에 담긴 깊은 의미를 간과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다만 기도의 시작과 끝에 그 이름을 부르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품성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마음과 정신을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내며, 그분의 사업과 일을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허락하신 바를 믿고, 그분의 주시는 능력과 은혜를 의지하여 승리하는 생애를 살 수 있다는 것을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대리자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대사가 된 우리들은 그러므로 생활 하나하나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야 합니다. 만일, 생활과 품성으로 하나님의 생애와 품성을 나타내지 않으면, 우리가 기도할 때 사용하는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없고 그분을 이 세상에 올바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과 똑같은 삶을 살겠다는 결심의 표현인 것을&.  기도는 짧게 하세요!

예배 집회나 기도회에서 기도를 드릴 때, 지루하지 않고 요점을 바로잡은 기도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긴 기도를 드려야 기도를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치 하나님께 설교하듯이 자신의 의견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마치 우주의 창조주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문제들에 관한 보고를 드리는 듯이 기도의 형식으로 주님께 강연을 합니다. 이러한 모든 기도들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하고 겸손하고 단순하게 드리는 요점이 정확한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만일 길게 드릴 기도가 있으면 그런 기도는 골방에서 혼자 해야 할 것입니다. 긴 기도로 회중들과 주님께 설교하지 마십시오. 단순함과 진실된 믿음으로 구하는 아름다운 기도는 하나님 앞에 향기가 되어 올라 갈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기도하세요!
기도를 하는 일에 있어서 부지런한 습관을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든지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며, 아무 일이 우리의 기도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심령 사이에 오가는 교통이 어떤 일이 있어도 막히지 않도록&. 기도를 습관적으로 늘 하는 곳으로 가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골방에서 하는 기도도 중요하고 매일의 업무를 행하는 곳에서 하는 기도도 아름답습니다. 아무 때나 어디서든지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십시오.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기에 부적당한 시간이나 장소는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열성 있는 기도의 정신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항상 마음 문을 열어 놓고 예수께서 하늘의 손님으로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시기를 초청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런 초청을 한 번도 거절하는 적이 없으시니까요!  

신앙: 4부 - 에녹의 지속적인 기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기도한 에녹
우리는 매일의 일상생활의 업무에 종사할 때에 마음을 늘 하늘로 향하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묵묵히 드리는 기도는 향내와 같이 은혜의 보좌에 상달하여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사단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게 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함도 바로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그와 함께 계셔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그를 도우셨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황홀경 속에서나 이상 중에서가 아니라 그의 일상생활의 모든 의무를 행하는 가운데서였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에녹은 이 세상을 완전히 등진 은둔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가정에서와 사교 생활에서, 남편과 아버지로서, 친구로서, 또 시민으로서 살면서 그는 확고부동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에녹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암 3:3)면 동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한 동행은 3백 년간 계속되었습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예수의 재림이 가까움을 안다면, 훨씬 더 열렬하고 헌신적이 되지 않을 그리스도인들이 거의 없을 것이지만, 그러나 오래 전에 살았던 에녹의 믿음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강해지고 하나님께 대한 그의 사랑은 더 열렬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얻은 후,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깨달은 에녹은 변함이 없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묵상하는 것이 그의 명상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이 긴밀하게 되면 될수록 자신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더욱 깊이 느낀 에녹은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이 행하는 악이 세상에 증가하는 것을 슬퍼하고 그들의 불신행위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존경심을 감소시키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그들과의 지속적 교제를 피하고 많은 시간을 한적한 곳에서 보내며 묵상과 기도에 전력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었으며 그는 바로 하늘의 분위기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하늘을 호흡하며 산 에녹
경건했던 에녹은 예언적 이상(異像)으로 하나님의 기별을 받았으며, 의의 전도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하신 바를 백성들에게 알렸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 자들은 이 거룩한 사람을 찾아와 그의 교훈을 받고 그와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경고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 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유 14, 15)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시대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설교하며 그들의 악행을 버리라고 간청하면서 도처에 횡행하는 죄악을 책망하고 범죄하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심판에 대하여 경고하였습니다.

그 세대 사람들은 금 은 보석을 모으거나, 이 땅에서 소유물을 축적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 에녹의 어리석음을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녹의 마음은 영원한 보화에 있었습니다. 그는 하늘 도성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시온의 영광 중에 계신 왕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생각과 마음은 하늘에 있었으며 그의 대화는 하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사악함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는 그의 마음은 더욱 열렬하였고, 지상에 살면서도 에녹은 믿음으로 빛의 영역에서 살았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3백 년 동안 하늘과 조화되기 위하여 영혼의 순결을 추구했던 에녹은 3세기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었습니다. 날마다 그는 하나님과 더 밀접한 연합을 바랐고, 그 교통은 점점 가까워졌으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당신 곁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는 영원한 세계의 문어귀에 섰었고 그와 축복의 나라는 한 걸음 사이였습니다. 이제 그 문이 열리고 지상에서 그처럼 오랫동안 이루어졌던 하나님과의 동행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거룩한 도성의 문을 통과하여 인간으로서 하늘에 들어간 첫째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신앙: 5부 - 모세의 중보 기도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여러 번 중보의 기도를 드렸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온유함이 승 했던 (민 12:3) 모세가 드린 중보의 기도 중 몇 가지 예를 연구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시내 산의 우상 숭배와 중보의 기도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라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의 군대를 무찌르시고 그들을 구원해내신 하나님의 권능과 확실한 능력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방 하나님을 버리고 시내 광야에서 우상 숭배에 빠지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버리셨다는 것을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산에서 십계명을 받으며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야기하고 있던 모세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일어난 배도에 관한 경고와 지체 없이 하산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산으로 올라 간 모세의 모습이 40일 동안 보이지 않게 되자, 조급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방 예전의 습관대로 돌아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방신을 섬기는 예식을 거행하며 하나님을 불쾌하게 했습니다. 얼마 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벌써 잊어버린 바 되었고 그들은 전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처럼우상 숭배에 빠졌던 것입니다. 우상 숭배를 말리던 신실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더불어 세우신 그분의 언약이 무효가 되었으므로 그분은 모세에게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에 일부러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특별히 섞인 무리가 자주 하나님께 대해 반역하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그들의 지도자 모세에 대하여 불평하고 그들의 불신과 고집으로 그를 슬프게 하기 일쑤였습니다.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것은 몹시 힘이 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멸망시키고 그 대신 모세로 하여금 큰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고 제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만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제안하실 때, 안락하고 명예로운 지위를, 배은망덕과 불평으로 보답 받는 희생의 운명과 기꺼이 맞바꾸려고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당하는 것을 개인의 이익이나 안일보다 사랑하였습니다. 나대로 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금지하는 뜻이 아니고 중재하도록 격려하는 말이며, 자기의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없다는 암시로서, 만일 그와 같이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용서하시리라는 뜻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모세는 겸손히 이스라엘에 대한 자기의 지도권을 부인하며, 그들은 그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이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인도해 주시기를 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중재할 때에, 모세는 이제까지 하나님의 인도 하에서 그가 여러모로 정력을 쏟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 때문에 그의 소심함은 없어졌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자복하는 가운데,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한 나머지 그는 그들이 멸망하게 버려두기보다는 차라리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모든 위험을 감수한 모세에게 돌아오는 것은 불평뿐이었고, 모든 고난과 저들이 상상하는 고통의 모든 책임을 그에게 씌우는 그들의 사악한 불평은 그가 지고 비틀거리던 염려와 책임의 짐을 두 배나 무겁게 하였지만, 그는 자신의 생명이 동포들의 생명과 분리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하나님의 은총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다시 회복되도록, 그리고 그분의 임재의 표적이 계속 그들의 여행을 지도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중보의 기도입니까?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간청을 들으시고 그의 이기심 없는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실성과 범죄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들에 대한 그의 사랑을 시험하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 시련을 고상하게 잘 견디어 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의 번영은 자기 개인의 명예나 큰 나라의 조상되는 특권보다도 더 귀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실함과 단순한 마음과 그의 진실된 증보의 기도를 기뻐하시고 그에게 신실한 목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중대한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그의 아름다운 중보의 기도에 대한 놀라운 응답으로 바위 틈에 숨어서 하나님의 선한 형상을 뵙는 영광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2. 열 두 정탐꾼의 보고와 중보의 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대한 보고를 가지고 온 열 두 정탐꾼의 말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그들 중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했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 땅의 아름다움과 비옥함을 묘사한 후,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두 정탐꾼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 놓인 고난과 위험을 과장하여 말했으며, 그 도시들은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고 매우 클 뿐 아니라 그 속에 거하는 백성들은 강하고 거인들이어서 자기들이 그들을 정복하기는 전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열 정탐꾼들이 사단의 충동을 받아 절망에 빠진 자신들의 불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감상을 말할 때에, 백성들의 희망과 용기는 겁에 질려 절망으로 변했습니다. 그들의 불신은 회중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그들을 위하여 그처럼 자주 나타났던 강한 하나님의 능력을 잊어버리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여기까지 인도해 내신 하나님께서 그 땅을 그들에게 분명히 주시리라는 것을 믿지 않고 그들을 안전하게 인도하신 손길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던 그들의 잘못을 다시 범하며 말하기를, 자 이것이 우리들의 소망의 끝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소유하려고 애굽에서 여행하여 온 땅이로구나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이 백성을 기만하고 이스라엘에게 어려움을 준다고 비난하며, 실망과 낙담으로 자포자기하였습니다.

고민의 통곡 소리가 어지러운 불평의 소리와 뒤섞여 퍼져 나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릇된 길로 접어들어 갈렙과 여호수아는 물론, 모세와 하나님께 대하여 고집스럽게 반대하였고,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습니다. 폭동과 공공연한 반항이 신속히 뒤따라 일어났습니다. 사단의 지배를 받은 백성들은 이성을 잃은 것같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구름기둥 속에 계셔서 그들의 악한 말을 듣고 계신다는 것과 그들이 폭발시키는 무서운 분노를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모세와 아론을 저주하였습니다.

그들은 비통 중에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하고 부르짖으며,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 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하며, 차지할 수 없는 땅을 약속함으로 그들을 기만하였다고 모세뿐 아니라 하나님을 비난하였습니다. 미친 듯한 폭도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으로 그들의 살인 계획을 막으셨습니다.

이제 모세는 일어나 성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가 전염병으로 저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또 그의 백성을 위하여 탄원하였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멸하고 그를 더 강한 나라로 만드시겠다는 제안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호소하여 말하였습니다.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가 많아&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같이 사하옵소서.

또 다시 드려진 중보의 기도는 너무나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무서운 위기의 때에 자기의 보호 아래 있는 양 무리에 대한 충실한 목자의 정신을 발휘하여 그들을 위하여 또 다시 중보의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분노가 그분의 선택하신 백성 모두를 멸하지 않기를 간청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재로 불순종하고 배반하는 이스라엘을 전멸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가 드린 중보의 기도는 이 외에도 더 많은 기록을 성경에 남기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린 모세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고 있으며, 그의 중보의 기도는 우리에게 감동적인 믿음의 모본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신앙: 6부 - 느헤미야의 묵상

성경 구약에 나오는 선지자 느헤미야는 묵상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 유랑인의 한 사람이었던 느헤미야는 바사 궁정에서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으로서 권세와 자유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전에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었고, 그의 직분의 덕택과 그의 능력과 성실성 때문에 그는 왕의 친구요 고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은총을 받은 자인 느헤미야는 비록 화려한 궁전에 있었을지라도 그의 하나님과 자기의 동족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국 유대를 위하여 늘 애통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의 가장 깊은 관심은 고국의 성전과 예루살렘의 회복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유다에서 온 사자들에게서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에 어려운 고난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느 1:3~5). 고국의 동족들의 고난의 소식을 듣고 슬픔에 억눌린 느헤미야는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하였습니다. 슬픔 중에 그는 그들을 도우시는 거룩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진실하게 자신의 죄와 자기 백성의 죄를 자복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시고 도와주셔서 유다의 황폐된 곳들을 건축하게 해 주시도록 탄원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며, 너희가 만일 나에게 돌아와 내 계명을 지키고 그를 행하면 비록 너희가 하늘 저 끝에서 추방당하였다 할지라도 나는 그들을 거기서 모아 내 이름을 거기 두려고 택한 곳으로 그를 데려오리라(신 4:29~31 참조)는 언약을 성취시켜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시시때때로 그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그의 심령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가 기도할 때에 한 거룩한 목적이 그 마음 가운데 형성되었습니다. 그는 만일 왕의 허락을 받고 기구와 재료를 구하는 일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자기가 직접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이스라엘의 국력을 회복하는 과업에 착수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계획이 수행될 수 있도록 왕의 목전에서 그가 은총을 얻게 해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넉 달 동안이나 왕에게 그의 요구를 제시할 좋은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이 기간에 비록 그의 마음은 슬픔으로 무거웠으나 그는 어전에서 자신의 명랑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 호화스럽고 찬란한 왕궁의 넓은 방에서는 누구나 명랑하고 행복함을 나타내어야 하였고, 그래야 왕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왕의 어떤 신하의 얼굴에도 고통의 그림자가 있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노력을 많이 했지만, 느헤미야의 마음을 번뇌케 하는 슬픔은 더 이상 감출 수 없었습니다.

잠못 이루는 밤들을 지나면서 그의 얼굴에는 슬픔의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왕은 묻기를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고 하였습니다. 그 질문을 들은 느헤미야는 불안감에 떨었습니다. 겉으로는 왕을 섬기는 일에 종사하면서, 온통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고국 유대와 그의 고통당하는 백성에게 쏠렸었다는 것을 듣고 왕이 분노하지나 않을까? 그의 생명을 빼앗지나 않을까? 예루살렘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그의 마음의 계획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그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 하였다고 그는 기록했습니다.

그는 떨리는 입술과 눈물이 어린 눈으로 자기의 슬픔의 원인을 고하였습니다. 그는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느헤미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 안에서, 예루살렘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편견을 일으키지 않고 왕의 동정심을 일깨웠습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이 질문은 느헤미야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그 순간에 인간의 지혜나 욕심대로 말하지 않고 인간의 왕보다 더 높으신 하늘의 왕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왜냐하면 왕의 도움과 승인을 얻는 데에는 그가 말하는 내용과 방법과 태도가 많은 것을 죄우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느헤미야는 짧은 묵상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 필요한 찰나에 드린 짧은 기도에서 느헤미야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마치 강물을 돌리는 것처럼 이방 왕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한 능력을 얻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그 짧은 순간의 묵상 기도를 드린 느헤미야는 용기를 내어 한동안 왕궁의 임무에서 놓임을 얻고 싶다는 자기의 소원을 왕에게 고하고, 또한 예루살렘의 황폐된 곳들을 재건하여 다시 한 번 예루살렘을 강하고 방비된 성읍으로 만들 수 있게 권위를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 전혀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기적적으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기꺼이 그 일을 허락하고 그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느혜미야는 자신이 처한 곤란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고, 그의 묵상과 간구는 응답되어 이방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기적같이 느헤미야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고, 그의 소원은 그렇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필요한 때에 느헤미야가 기도한 것처럼 짧게 묵상하는 것은 기도하기가 불가능한 환경 아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지혜로운 기도 방법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기에 부적당한 시간이나 장소는 없습니다.

특별히 지혜나 도우심이 필요한 중요한 순간에, 옛날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 앞에 자기의 소원을 말하기 바로 전 하나님께 묵상 기도하였듯이 우리는 하나님께 하늘의 지혜와 지도를 구할 수 있습니다. 짧은 순간에 드리는 마음의 묵상은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상달되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즉시 얻게 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으로만 드린 묵상은 무릎을 꿇고 정식으로 드린 기도와 마찬가지로 우리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여 적절하고 요긴한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항상 하늘로 향하며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가까이 사는 사람은 뜻하지 않은 시험과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자연적으로 즉시 하나님을 찾아 도움과 지혜를 구하므로 늘 평안함을 유지하며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기도를 우리의 호흡으로 삼으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독자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