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편지: 아무 것도 아닌 것과 무엇인 것

 새롭게 되는 것은 변화를 수반합니다. 마음속에 비밀을 이룬 사람, 마음속에 영광의 소망(골 1:27)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에게 생기는 변화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 무엇이 되고, 그 무엇이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신비한 경험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변화의 경험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나서, 그분의 임재 속에서 살아가는 비밀을 터득한 사람들의 생애에 다가오는 신기한 변화들은 매일 매 순간 더 깊게, 더 신비하게, 더 놀랍게, 더 심오하게, 가슴 속에 그리고 삶 속에 자리 잡아 갑니다. 그리고 주님과의 동행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이 변화는 그치지 않고 계속되어, 마치 끊이지 않고 솟아나는 샘물처럼 생애를 물들이게 됩니다.  무엇이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이야기 e  이야기, 하나  네일 숍을 운영하던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대도시의 부자 동네에 있던 그녀의 가게는 손톱 손질을 하러 오는 돈 많은 유대인, 백인 사모님들로 늘 북적대었습니다. 손가락에 콩알보다 더 큰 다이아몬드 반지와, 때로는 손가락을 덮을 만큼 큰 보석 반지를 여러 손가락에 끼고 나타나는 여자들의 손톱을 손질해 주면서 그 자매는 늘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 여자들은 무슨 팔자가 좋아서 이렇게 비싼 보석 반지들을 손가락에 달고 사는 걸까? 난 언제나 저런 다이아 반지를 손에 끼어 볼까? 창문 밖에 비치는 햇살도 그녀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건네 받은 설교 테이프와 책자는 그녀의 삶을 온통 뒤바꿔 놓았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발견한 기쁨과 주님을 더 많이 닮으려는 열망이 삶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는 간증과 함께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두 마디로 표현해 들려주었습니다. 왜 갑자기 그 다이아몬드 반지가 내 눈에 하나도 쓸모없는 돌로 보이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내 맘 속에 무슨 일을 해 놓으신 거죠?  아침 일찍 숍에 나가 찬송을 틀어 놓고, 또 진리의 말씀을 테이프를 통해 들으며, 온종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며 사는 그녀의 입술에는 이제 한숨 대신 행복한 찬양이 넘칩니다. 아무리 큰 보석 반지를 끼고 나타나는 부자 사모님들의 손가락을 보아도, 그 쓸데없는 돌멩이들은 더 이상 그녀의 마음을 흔들지 않습니다. 창문을 노크하는 햇살을 바라보며 그녀는 미소 짓습니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그 변화를 알아차리고 질문하곤 한답니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하루 종일 싱글벙글 이야? 자신이 찾은 예수님에 대해서, 삶에 찾아온 행복한 변화에 대해서, 예수님을 발견한 후 달라진 생의 목표에 대해서 열심히 간증하다 보면, 그녀의 하루는 새털을 단 듯 빠르게 지나갑니다. 주님과 함께 시작하고 마치는 나날의 삶이 너무 행복한 그녀의 열 손가락에는 보석보다 더 큰 사랑의 열매들이 달려 있습니다. e  이야기, 둘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과 소독약 냄새가 풍기는 치료실과 늘 심각한 얼굴의 보호자들이 우왕좌왕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의 풍경은 오랫동안 간호사로 일한 그녀에게 삶의 한 부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나 교회에서나, 가정과 사회에서 그녀는 훌륭하고 존경받는 모범적인 사람이었고, 활발한 사회 활동과 봉사 활동, 그리고 열심 있는 교회 생활은 그녀의 평판을 완벽에 가깝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경험, 그리고 참된 신앙이 주는 변화와 승리의 경험을 가지지 못한 그녀의 삶은 무기력하였고,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던 주위의 칭찬과 인정도 점점 의미 없이 빛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승리하는 믿음에 대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된 그녀는 영적으로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고, 집회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보게 된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죽어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죽은 사람을 붙들고 울며 통곡하는 환자의 가족들을 보면서도 전혀 불쌍하거나 마음이 동하지 않는 저 자신을 보며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착하고 훌륭하다고 평생을 자부하며 살아오던 저는 사실 얼마나 악한 사람이었던지요! 영적으로 얼마나 차갑게 얼어 죽은 사람이었던지요! 마치 바리새인처럼 냉랭한 신앙이 마음속의 예수님을 얼어 죽게 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저는 엉엉 크게 소리 내 울었습니다.  회개의 눈물은 그녀의 차가운 가슴을 녹였습니다. 오랫동안 가슴 속에 쌓여 있던 빙하 같은 큰 얼음조각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너무 추워서 나가셨던 예수님이 큰 사랑을 가지고 그녀의 마음속으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껍데기뿐이던 옛날은 지나가고, 이제 돌아온 예수님을 다시 놓치지 않으려는 소망 속에서 사는 승리로 고무된 그녀의 삶은 정말 행복하기만 하답니다. 진정한 사랑과 동정으로 영혼을 향하여 마음을 연, 이제 진짜 하얀 가운의 천사가 된 그녀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세상이 던져 주던 존경과 인정은 늘 저를 무겁게 압박하는 사슬처럼 느껴졌는데, 예수님이 저를 인정해 주시며 살짝 던져 주시는 미소는 온종일 저를 솜사탕처럼 가볍고 달콤하게 만든답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그 무엇이 되는 것  변화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그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들이 존재해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갑자기 찾아온 변화를 한갓 감정적인 것으로만 치부하고, 그 변화가 수반해야 하는 인내의 과정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변화의 과정과 그 과정에 따르는 인내와 고통의 의미를 잘 터득했던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 좇아가노라(빌 3:12~14).  그리스도인 삶은 멈춤이 없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더 깊고, 더 심오하고, 더 새로운 변화를 위해 전진해야 합니다. 그 변화가 더 이상 변화가 아니게 될 때까지, 더 원숙하고 장성한 분량으로 열매 맺을 때까지, 예수님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완전히 꼴 지워질 때까지&.  바닷가재(lobster)는 성장하기 위해서 속살을 보호해 주던 단단한 옛 껍질을 스스로 벗어 버리고 더 커다란 새 껍질을 뒤집어씁니다. 바닷가재는 5년간의 성장기를 보내면서 무려 25번의 탈피 과정을 거치며, 다 자란 뒤에도 1년에 한 번씩 껍질을 벗는다고 합니다. 탈피는 아프고도 성가신 과정입니다. 낡고 단단한 외피가 압력을 받아 쪼개지면, 바닷가재는 모로 누운 채 근육을 꼼지락거려 벌어진 각질 사이를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낡은 껍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외피가 생길 때까지, 불과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외부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벌거벗은 상태에서 지내야 합니다.  성장을 불러오는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과정입니다. 그 무엇이던 것을 벗어 버리고, 아무것도 아니던 것이 그 무엇이 되는 경험이 지속되어야 하는 과정입니다. 낡고 단단한 껍질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변화로 우리를 데리고 가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리며, 주님의 손길을 의지한 채 조용히 누워 있어야 하는 과정입니다.  그 무엇이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경험이 당신에게도 일어났나요? 아무것도 아니던 것이 그 무엇이 되는 경험이 당신에게도 일어났습니까?

생애의 빛에서

 가까운 곳의 호수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가뭄에 시달려 물이 없어 앙상하던 호수가 많은 단비로 되살아났습니다. 앙상하게 드러내었던 볼썽사납던 흙 언저리들도 이제는 푸른 물들로 넘쳐나 참 보기가 좋습니다. 비가 없다면 이 지구가 금방 죽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비와 이슬은 하늘에서 내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소생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비가 와야 씨가 싹을 트고 말랐던 풀들과 나무들이 살아나 자라기를 계속합니다. 비는 목말랐던 대지를 적시어 생명이 자랄 수 있도록 그 근거를 마련하여 줍니다. 그리고 보기에 아름답도록 푸르게 만들어 줍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영적인 거듭남이나 성화의 성장이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영적인 경험과 성장을 농사짓는 일로 비유하였고 또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는 역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초대 교회의 오순절의 역사를 이른 비로 언급하였고 나중 추수 때의 역사를 늦은 비로 은유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삶과 성장에 있어서도 비가 필요하지만 교회의 단체적인 입장에서도 비가 필요합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성령의 역사를 설명하는 귀중한 재료입니다.

 잘못된 산성비나 원자 낙진 같은 해로운 비는 식물을 죽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오염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농부들은 비의 역할을 잘 이해해야 할 뿐더러 비가 내리는 시기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곡식이 익고 열매가 준비될 때에 마지막 추수를 위하여 비가 올 것입니다. 알곡들을 마지막으로 영글게 하여 상품으로 인 쳐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이 지구는 마지막 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쏟아 부어지는 성령의 비를 말입니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가정과 영성: 당신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 17:3).

 엄마, 나 교회 안 가면 안 되나요? 교회 가기 싫어요. 만날 가 봐야 배우는 것도 없는데 뭐. 어머니와 이런 식의 대화는 매주 교회에 가기 전에 한 번씩 치르는 실랑이였다. 나는 원치도 않는 교회당에 나가 매주 예배에 참석하였다. 어떤 때는 너무나 싫어서 얼른 주보 한 장만 집어 가지고 나와 근처에 있는 공원을 배회하다가 예배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 예배에 참석했던 증거로 주보를 어머니께 내밀었던 때도 있었다.
 부모님은 내 신앙을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하셨다. 나를 교회 학교에 보냈고 매주 교회에 데리고 가셨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언제나 냉랭했고 형식적이었다.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잘 믿는 사람의 흉내를 내는 일에 익숙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그리스도인 흉내를 낸다.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겉으로 보기에 잘 믿는 척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온 마음과 생애를 걸지 않는다. 교회에 안 가는 것보다는 낫다는 심정으로 교회를 나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부모의 간섭을 벗어날 나이가 되자 다른 친구들처럼 나도 교회를 포기했다. 왜냐하면, 교회에 다니는 척하는 생활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불신자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인 행세를 해야만 하는 내가 싫어졌다. 그래서 나는 내 길을 걷기로 했다. 내가 다니던 교회는 하나님보다 교회를 더 중요시하는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는 나를 보시면서 나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시고자 기다리셨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
 30살이 넘으면서 나는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을 거의 다 얻었다.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나는 보험을 파는 사업에 열정을 보였으며 그 결과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가구 등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럴 즈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다른 것을 보여 주고자 하셨다. 하루는 치과 의사에게 생명 보험을 팔려고 했는데 그는 생명 보험에 전혀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나는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어서 이렇게 물었다. 아니, 왜 생명 보험을 원치 않으십니까? 그러자 그는 너무나 이상한 대답을 하였다. 내가 죽기 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지요. 나는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보험을 팔면서 온갖 종류의 거절하는 말들을 들었지만 이건 정말 우스꽝스러운 핑계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런 말씀 마시고 진정한 이유가 뭔지 말해 주실 수 있어요? 그는 대답했다. 그것이 진정한 이유입니다.

 그날 그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우리 부부는 그곳에서 밤 11시 반까지 구약 성경에 있는 다니엘서 예언을 공부하였다. 그다음 주에도 우리 부부는 치과 의사와 함께 성경을 공부했다. 그는 성경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밤에 나는 왜 내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한 번도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 이후로 우리 부부는 치과 의사와 함께 18개월 동안 성경을 공부하였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마음과 생애가 변화된 그리스도인들만이 하늘 도성에 들어갈 것이라는 진리를 성경 속에서 확인하였다.

첫 열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으므로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였다. 나는 신실했으며 정직하게 말씀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불타는 열성 때문에 내가 깨달은 놀라운 진리를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전하려고 달려갔다. 그들이 믿는 교리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그러나 웬일인가? 항상 나보다 신앙이 좋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성경 말씀을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성경 말씀을 찾아가며 그들이 믿는 교리와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해 주었지만, 그들은 내 말을 듣기 싫어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바를 설명할 수도 없고 성경으로 입증할 수도 없었지만 무조건 내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였다. 나는 도저히 그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성경 말씀을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도 나처럼 진리에 대한 확신만 생긴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더 큰 열심을 가지고 계속 부모 형제들을 찾아갔다. 결국, 그들은 더 이상 내 이야기를 듣기 원하지 않았고 다시는 성경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제 나는 그들에게 더 이상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내 열성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처럼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진짜 문제
 세월은 흘러서 어느덧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수석 장로로 선출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선교에 열성이 많은 그리스도인처럼 보였다. 선교를 할 때나 교회에서 성경을 설명할 때는 기가 막히게 잘하지만, 집에 오면 아내에게 소리지르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습관은 고쳐지지가 않았다. 성경을 펼치고 거룩함을 설명했지만 내 마음과 생애 깊은 곳에는 이기심과 욕심이 숨어 있었다. 성경은 그러한 나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 이와 같이 한 샘이 단물도 내고 쓴 물도 낼 수는 없느니라(약 3:10~12).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 1:26).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성령께서 내 속에서 역사 하기 시작하자 나는 깊은 회의와 낙담에 빠져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 깨달았는가? 나는 정말 개심한 그리스도인인가?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계신가? 나는 항상 성경 말씀을 읽지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중에 거하시는 그 말씀의 품에 거하고 있는가? 약 2년 동안을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면서 고민하던 중, 어느 날 성령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정말 거듭났니? 나는 즉시로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거듭났느냐고요? 저는 교회의 수석 장로입니다. 제가 교회로 인도한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저더러 거듭났느냐고요? 내가 이런저런 말로 항의하고 변명하였지만, 성령의 음성은 점점 분명하게 들려왔다. 진리를 아는 것과 진리를 소유한 것은 다르단다.

 그리스도인 삶에서 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깨닫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인 삶의 시작일 뿐이며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성경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깨달음은 마지막 시대의 위기와 혼돈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거기서 끝나면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하고 교리로 인도하게 된다. 죽어 있던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일은 교리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는 데까지 나가야 한다. 성경 지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도구와 과정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께서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현대어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성경을 살펴보시오. 당신들은 그 속에 영생이 있는 줄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나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소. 그런데 왜 당신들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 나에게 오지 않소?(요 5:39,40). 알고 있는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유창하게 성경을 논할 수 있지만, 만일 살아있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정면으로 부닥친다면 내가 대단하게 생각했던 지식은 한낱 우스갯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진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던 막달라 마리아가 큰 교회의 성경 교사인 나보다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창녀가 수석 장로인 나보다 진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비록 그 여인의 성경 지식이 부족했지만, 그녀는 산 체험을 하고 있었다. 조직된 교단, 커다란 건물의 교회는 성경 지식을 전파하는 사역에 큰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커다란 위험이 숨겨져 있다.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를 받아들이고 매주 예배에 참석하면 그것을 구원으로 알고 살아가는 교인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교회에 입교하고 믿노라고 신앙 고백을 하면 그것이 마치 중생의 경험인 것으로 착각하는 위험에 그리스도인 대부분이 노출되어 있다. 교회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그 위험을 보지 못하고 좀 더 깊은 경험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 기독교회의 형편이다. 하나님은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경험할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살아있는 교제는 가정에서 우리를 진짜 신앙인으로 만든다. 가족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제적인 변화이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이 경험의 부재로 인하여 괴로워했다. 비록 내가 정확하게 깨닫지는 못했지만 내 영혼 깊은 곳에서 그런 경험을 갈망해 왔다. 그 갈망은 하나님께서 심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내게 그런 경험을 주고 싶어하셨다. 그러한 경험을 위해서는 먼저 내 생활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어야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교회의 틀이나 교만과 뻔뻔스런 허세와 세속화된 종교 속에서는 결코 당신을 깊이 발견하지 못할 것을 아셨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오래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것과 같은 메시지를 나에게 주셨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막 6:31).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아내와 의논해서 짐을 싸고 조용한 시골로 이사하기로 하였다. 무한정한 부를 추구하던 사업을 축소하고 생활을 가능한 한 간소하게 정리하였다. 나는 지금 시골에서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려고 살아가고 있다.

건강: 마늘 냄새를 좋아해야 하는 이유

마늘이 많이 나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장수 인구의 숫자가 보통 다른 지역보다 3배 이상 많다. 왜냐하면, 마늘 산지의 사람들은 다른 지역보다 마늘을 즐겨 먹게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서양 사람들은 마늘의 냄새를 싫어하지만 최근 10년 동안 미국에서만 마늘의 소비량이 무려 6배 이상 증가했다. 현대 과학이 발달하면서 마늘의 효능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마늘이 건강에 유익한 이유는 첫째로 마늘에 함유된 비타민 B1과 티아민 때문이다. 티아민은 항 피로비타민으로 불릴 정도로 피로를 이기는 데 도움을 준다. 시판되고 있는 대부분의 드링크류에도 꼭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티아민은 우리가 음식으로 섭취한 포도당이라는 연료를 세포 속에서 잘 연소시켜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얻도록 돕는 촉매 역할을 한다. 인체를 자동차에 비유할 때 티아민은 엔진의 출력 향상제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마늘에는 강한 냄새를 나게 하는 물질이 있는데 그것이 알리신이다. 마늘의 알리신은 인간의 건강에 유익을 주는 면에서 가장 핵심적이며 중요한 역할을 맡은 성분이다. 마늘은 으깨어지는 순간 설파이드라는 황화합물이 나오는데 바로 이것이 마늘 냄새의 주역이다. 통마늘에서는 냄새가 강하게 나지 않다가 입에 넣어 씹는 순간 마늘의 주성분인 알린이 효소와 결합해서 알리신이 되고, 알리신은 곧 설파이드가 된다. 냄새가 많이 날수록 알리신이 풍부하고 그에 비례하여 건강에 유익을 주는 효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알리신은 설파이드로 바뀔 뿐 아니라 마늘에 있던 티아민과 결합해서 알리티아민이라는 특유의 물질을 만드는데 이것은 우리 몸속에서 중금속을 제거하고 세포의 노화를 억제해 주며 세포의 신진대사를 돕는다. 마늘의 항산화 작용은 비타민 E보다 2천 배나 강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마늘"혈액 정화제
 마늘은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은 줄이고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을 높이며 혈압은 낮추기 때문에 혈액을 맑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동맥에서 혈전이라 불리는 혈관 부스러기의 발생도 줄이고 혈소판이 응집되는 것을 억제해서 피가 잘 엉기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마늘을 꾸준히 섭취하면 혈관을 깨끗하게 하고 혈액이 끈적거리지 않게 되어서 혈액의 순환이 좋아진다. 그 결과 심장마비나 뇌졸증의 예방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국립암연구소는 항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48가지 식품들을 대상으로 항암 효과를 비교해 정리한 항암 식품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는데 48가지 중에서 마늘이 최고로 뽑혔다. 마늘은 암의 부위를 가리지 않은 모든 종류의 암에 항암 효과를 나타낸다. 하루에 마늘 1~2쪽을 매일 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위암의 발병률이 50%나 적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마늘"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다른 식품들과 마찬가지로 마늘 역시 일단 가열하면 효과가 다소 저하된다. 가장 중요한 성분인 알리신과 설파이드 성분이 효과를 나타내려면 마늘의 껍질 바로 아래에 있는 알리나제라는 효소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알리나제가 가열하면 쉽게 파괴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마늘은 껍질째 가열해 조리하면 안 된다. 마늘의 껍질을 벗기고 다지고 나서 10분 정도 두어야 효소가 활성화되어 알리신과 설파이드 등 활성 성분과 항암 성분이 가장 많이 생긴다. 일단 알리신과 설파이드가 생기면 이들은 열에 강하므로 가열해도 효능이 유지된다. 그러나 건강의 유익 때문에 마늘을 섭취하려면 생마늘을 씹어서 먹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마늘장아찌와 생마늘, 구운 마늘, 김치 속의 마늘 같은 상태인 발효된 마늘에서 설파이드 성분을 비교해 보았더니 마늘장아찌, 생마늘과 발효 마늘 그리고 구운 마늘 순으로 나타났다.

건강: 토마토를 먹어야 하는 이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 붉은 단풍의 계절이 되면 나뭇잎이 노화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붉은색 색소를 지닌 카로티노이드를 합성해 내기 시작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토마토도 여름 내내 푸른색으로 여름 광선에 시달리고 뜨거운 태양 광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특별한 카로티노이드, 즉 진한 붉은색의 리코펜을 만든다. 토마토가 만들어 내는 리코펜은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항산화물질로 평가되며 이는 노화를 효과적으로 억제한다. 토마토의 리코펜은 사람의 세포에도 강력한 노화 억제 작용을 한다. 인간은 토마토처럼 스스로 리코펜을 합성해 내지 못하므로 음식의 형태로 섭취해야 한다. 하루 한두 개의 토마토 섭취로도 노화 방지와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토마토는 전립선암에도 유익을 준다.

 전립선암은 미국 남성에게 가장 흔히 발병되는 발생률 1위 암이며 사망률도 폐암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립선암 조직에 토마토에서 추출한 리코펜을 투여한 지 48시간 후 퍼져 있던 암세포가 상당 부분 줄어든 것으로 확인되었다. 토마토를 어떻게 가공해서 섭취하는가에 따라서 리코펜의 섭취량이 아래의 표시 같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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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랍게도 토마토는 다른 채소, 과일과 달리 신선한 것 그대로 먹는 것보다 익혀서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리코펜은 토마토의 단단한 섬유질 조직 안에 분포해 있는데 열이 가해지면 토마토 조직이 물러지면서 올리브기름이 쉽게 침투한다. 리코펜은 물보다 기름에 녹는 성질이 있어서 올리브기름에 쉽게 녹아 나온다. 따라서 토마토와 올리브기름을 함께 섭취하면 몸속으로 리코펜이 더 쉽게 흡수된다는 뜻이다.
 함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체내 흡수율이다. 함량이 아무리 높아도 흡수가 안 되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마토의 리코펜은 지방에 녹기 때문에 가열해서 으깨면 날 것보다 3배나 높아진다. 여기에다 올리브기름을 넣어 주면 흡수율이 다시 3배가량 높아진다. 결론적으로 토마토의 리코펜은 적은 양이라도 가열해서 으깨고 기름을 첨가하면 우리 몸에 9배나 더 흡수가 잘 된다는 뜻이다.

어떤 토마토가 좋은가?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의 제이스콧 박사는 토마토 종류 중에 크림슨 토마토는 일반 토마토보다 1.5배가량의 리코펜이 함유되어 있다고 발표하였다. 크림슨 토마토의 특징은 붉은색을 많이 띠고 있으며 즙이 많다는 것이다. 붉은색이 짙고 즙이 많을수록 리코펜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리코펜은 껍질보다도 내부에 집중되어 있다. 가장 좋은 토마토는 햇빛에 잘 익어서 짙은 붉은색을 띤 토마토이다.

창조 교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코와 전자 코

이름 모를 들꽃들이 달콤한 향기를 풍겨내며 우리를 푸른 들판으로 유혹하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함께 밖으로 나가 그 향기에 취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 사람의 코는 무려 1만 가지 냄새를 감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숨을 들이쉬면 주변의 냄새 분자가 콧마루 뒤의 비강으로 흘러들어가고, 거기에서 점액에 흡수됩니다. 이 점액은 500만 개의 신경 세포(뉴런)로 구성된 후각상피를 자극하게 되지요. 후각이 예민한 개는 후각상피가 약 2억 2000만 개의 신경 세포로 구성돼 있어 인간보다 44배나 많다고 하는군요.
 
 후각 뉴런의 한끝은 비강 쪽으로 나와 있고, 다른 끝은 뇌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비강 쪽으로 나온 끝에는 섬모라 불리는 솜털이 달려 있는데, 이 섬모의 표면에 냄새 수용기가 있습니다.공기와 직접 접촉하는 수용기 세포는 냄새 자극이 포착되면 전기 신호를 발생하며, 이 전기 신호는 후각 뉴런의 다른 끝을 통해 뇌의 후각피질로 전달, 냄새를 판별한다고 합니다.

 전자 코(electronic nose)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Science Daily 지(2008. 3. 12)를 통해 이런 기사를 개제했습니다. 25년 동안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냄새 탐지 능력에 도달해 보고자 하는 전자 코의 개발은 아직도 요원한 꿈이다.한계를 인식하고 특별한 화합물만을 탐지해 내도록 하는 것, 이것이 전자 코의 미래가 될 것이다. 몇몇 휘발성 물질을 탐지하는 능력을 넘어서서, 수많은 냄새들을 구별하는 능력은 아직도 무지개 너머의 일처럼 요원해 보인다.

 창조주에 의해 창조된 생물학적 코는 모든 냄새에 대한 식별력이 대단하여 과일 냄새, 풀 냄새, 흙냄새 등등 모든 것을 금방 감지할 수 있는 반면, 전자 코는 일산화탄소와 같은 특수한 화합물을 탐지해 내는 데에는 좋지만, 수천 가지의 냄새들의 특징을 쉽게 감별해 내는 인간 코의 능력을 따라오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는 과학자들의 말을 빌려 보면, 정말 미래의 코 공학자들의 전망은 전혀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향기로운 꽃의 향기를 맡거나 맛있는 과일의 달콤한 냄새를 맡으면서 당신은 코를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해 본 적이 있나요?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들판에 나가 꽃향기를 맡으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신앙: 1부 -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성서적인 고찰

예수 재림을 기다리며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하는 중요한 주제는 마지막 때에 있을 큰 성령의 역사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참 백성인 남은 무리가 늦은 비 성령을 받아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경고하며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러내고자 큰 소리 외침을 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재림 직전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역사와 기능과 역할과, 늦은 비 성령을 받도록 준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 다루어지는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대한 연구가 마지막 늦은 비 성령을 받도록 독자들을 준비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실-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큰 역사를 이루고 계신다. 죄인을 회개시키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성품으로 변하게 하시며, 타락한 인간들을 회복시키시어 하늘의 백성으로 준비시키신다. 성령의 역사 하심에 저항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고 겸손히 순종하는 자에게는 성령께서 끊임없이 역사하셔서 그 영혼의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하늘에서 살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성화 시키시는 것이다. 성경은 성령의 놀라운 역사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특별히 성령을 비로 표현하고 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모두 성령의 역사를 가리키는 표현이며 이 둘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다.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좀 생소한 주제일지 모른다. 과거 기독교계 내에서 성령에 대한 많은 연구와 논제들이 다루어지기는 했지만, 성경에 이른 비와 늦은 비로 표현된 성령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그 목적과 상호관계에 대한 정확한 성서적인 고찰은 전무하다.과연 이른 비와 늦은 비의 기능과 목적은 무엇이며, 그 상호 간의 관계가 왜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질문과 답 형식으로 공부해
보자.

1. 성경에는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대한 어떤 언급이 있는가?
답: 성경의 저자들 중 많은 선지자들이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대하여 언급을 하였는데, 그들은 성령이 임하시어 인간들을 위하여 특별한 일을 성취할 시기를 내다보았을 뿐 아니라 그때를 간절히 바라보며 살았다. 그 사실은 신"구약을 통해 잘 표현되어 있다. 성경에서 비와 물과 불 그리고 하늘로부터 부어 주신다.라는 표현들은 성령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소나기를 땅 위에 부어 주시는 것처럼 성령을 그분의 백성들 위에 부어 주시기를 약속하셨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비유된 성령의 역사가 우리 구원의 관건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구약과 신약에 나타나 있는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대한 성경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구약에 언급된 이른 비와 늦은 비
 
 요엘 2: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이사야 44:3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호세아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스가랴 10:1 봄비(늦은 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에스겔 34:26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맛비를 내리리라.
 요엘 2:28,29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신약에 언급된 이른 비와 늦은 비

 사도행전 1: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18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야고보서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2. 성령이 이른 비와 늦은 비로 표현된 이유는 무엇인가?
답: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농사와 연관된 단어로 성령의 역사를 쉽게 이해하게 하려고 비유로써 표현된 것이다. 옛날 유대 지방에서는 일 년에 두 차례의 우기 계절이 있었는데, 이른 비는 씨를 뿌리는 가을철(유대 땅의 농사 조건은 우리의 농번기 시즌과 반대임)에 내리고, 늦은 비는 수확의 시기인 봄철에 내렸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셔서 귀중한 성령의 역사를 설명하셨는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우리의 영적인 성장과 열매 맺는 과정에 비추어 상징적인 언어로 사용하셨던 것이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매우 중요한 비였는데, 유대 나라 전체의 농사 및 경제가 전적으로 이 두 비에 달렸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기능과 역할과 목적이 각각 다르며, 또 내리는 시기 또한 다르다. 이른 비는 적절하게 약간 오는 반면에 늦은 비는 많이 내린다.


 유대 나라는 가을에 씨를 뿌리고 봄에 추수했으므로 이른 비를 통하여 씨가 싹트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기까지 자라남이 없이는 늦은 비가 내려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늦은 비는, 이른 비가 해 놓은 결과가 없이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자연적인 작용을 이용하여 성령의 사업을 나타내시었다. 이슬과 비가 땅에서 먼저 씨앗을 싹트게 하고 그다음 추수할 수 있도록 여물게 하는 것처럼, 영적인 자라남의 성장 과정에서도 성령은 점차적으로 주어지는 바 되는 것이다.

이른 비의 시기(유대 나라의 계절에 따라): 이른 비는 1년 중 가을, 즉 씨 뿌릴 때 내린다.
늦은 비의 시기(유대 나라의 계절에 따라): 늦은 비는 추수기 전의 봄에 내린다.
이른 비의 목적: 이른 비는 메마른 땅을 촉촉하게 적셔서 씨를 뿌릴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다. 또한, 이른 비는 씨가 싹이 트도록 해 주고 땅에서 솟아나오게 해 주지만 완전히 익게 해 주지는 못한다.
늦은 비의 목적:
늦은 비는 곡식이 완전히 자라게 해 준다. 늦은 비가 없이는 곡식이 익을 수도 없고 따라서 수확도 있을 수 없다.

3.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영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답: 이른 비와 늦은 비로 표현된 성령의 역사는 교회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와 개인적인 영적 경험 두 가지에 모두 적용된다. 여기서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개인적인 영적 경험 측면에서 조명해 보기로 한다.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성령의 역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경험은 성령의 사명의 두 가지 측면, 즉 이른 비와 늦은 비 성령의 사역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영적인 적용을 도표를 그려서 공부해 보기로 하자.

1. 실체: 이른 비가 내리기 전 땅은 굳어 있고 말라 있다. 이러한 땅에는 씨를 뿌릴 수 없다. 씨를 뿌린다 해도 씨는 뿌리를 뻗거나 성장할 수 없다.
영적인 적용: 이 상태는 아직 성령의 역사에 의해 거듭나지 못한 상태이다. 영적인 사물에 흥미가 없고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세속적이고 세상에 빠져서 사는 상태이다. 
2. 실체: 이른 비가 내려서 땅을 부드럽게 한다. 물기로 인해 부드러워진 땅은 이른 비로 말미암아 기경되고 고러져 씨를 뿌릴 수 있게 된다.
영적인 적용: 사람의 마음속에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어 주님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되는 시기이다.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고 영적으로 깨어나게 된다. 하나님을 찾으려는 열망이 생겨나며 세상에 속한 삶에 회의를 느끼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
3. 실체: 씨가 뿌려진다.
영적인 적용: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말씀이 마음속에서 생동하는 능력으로 역사 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회개하고 처음으로 칭의의 경험을 하게 된다. 거듭나는 경험과 함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시작된다.
4. 실체: 씨가 발아되고 싹이 돋는다.
영적인 적용: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이 시작된다.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경험을 하며 자아는 날마다 죽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 살아가게 된다. 성화의 경험에 들어가게 된다.
5. 실체: 새로운 식물이 자라난다.
영적인 적용: 그리스도의 임재 속에서 주님과의 동행이 지속하며 영적으로 성장하며 자라나는 과정이다. 쓰러지고 실패하는 일이 있지만, 다시 회개하고 실패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더욱 높은 영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믿음이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나며,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하는 성령의 열매가 생애에 맺히게 된다. 더 밝은 빛을 깨닫게 되며, 빛에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성장의 단계마다 그 단계대로의 완전함에 이를 수 있게 된다.
6. 실체: 늦은 비가 내린다. 씨는 완전히 자란다. 완전히 성숙하며, 완전히 익는다.
영적인 적용: 성령의 역사로 완전히 장성한 분량에 이른 사람들에게 늦은 비 성령이 주어지고 그 사람을 완전히 인 쳐서 봉하는 일, 곧 하나님의 인을 치는 일이 생긴다.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들은 마지막 짐승의 표와 칠 재앙의 환난을 견디고 승리하게 되며, 다시는 죄를 짓고 쓰러지거나 실패하는 일이 없게 된다. 그런데 이른 비의 성령을 매일 받는 경험을 하며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하는 사람만이 늦은 비 성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제 늦은 비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과 승천을 위하여 준비된다.
7. 실체: 추수, 곡식을 수확한다.
영적인 적용: 은혜의 시간이 끝나고 구원 얻을 사람들이 정해졌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 받은 사람들은 재림 때에 구원을 받아 하늘로 승천하여 하늘 곳간에 드리워진다.

4.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개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가?
답: 이른 비와 늦은 비는 개개인에게 적용될 수 있다.

이른 비: 이른 비는 그리스도인이 회심할 당시에 성령이 적절하게 부어지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이른 비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매일의 생활에서 받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는 성령의 역사로,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이기고 예수님의 형상을 완전히 반사하도록 역사 한다. 그리스도인 경험이 시작될 때에 그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기다. 이른 비는 오직 회심 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통하여 계속되며 죄에 대하여 완전한 승리를 하게 해 주고 늦은 비를 받게 해 주며, 그리스도인 성숙을 완성하게 한다.

늦은 비: 늦은 비는, 이른 비 성령을 받아서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극복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짐승의 표 환난 직후에 큰 소리 외침을 위한 능력을 주고자 성령이 풍성하게 내리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인 경험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리스도인은 장성한 분량과 성숙함에 이르며 수확을 위한 준비를 갖추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도록, 곧 바벨론의 취하게 하는 오류들에 빠져 있는 영혼들을 진리와 올바른 영적 경험으로 불러내는 일을 하도록, 그리고 환난을 통과하게 하려고 늦은 비 성령이 주어지는 것이다.

신앙: 2부 - 교회 역사를 통해 본 이른 비와 늦은 비

1. 교회에 이른 비 성령이 임했던 역사가 있었는가?
 
답: 이른 비는 오순절 당시 교회 사업이 처음으로 시작될 때, 즉 초대 교회에 부어진 성령을 대표한다. 이른 비에 대한 구약의 약속은 초대 교회에 있었던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써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른 비가 오직 초대 교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교회사를 통하여 계속되며, 늦은 비와 수확을 위하여 교회를 준비시키기 위해 내리는 것을 대표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부활의 약속을 믿지 않고 잊어버린 채 실망과 낙담에 빠져 있던 제자들 앞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셨다. 놀란 그들은 주님께서 일어난 모든 일에 비추어 성경 말씀을 설명하시는 것을 듣고서야 하늘의 뜻과 사명을 깨달았다. 그들은 모든 나라와 방언과 백성들에게 구원의 복음 기별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졌던 것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주님을 슬프시게 했던 자신들의 지나간 생애를 돌아보며 제자들은 구주를 오해하고 몰라본 자신들을 책하였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를 명상할 때에, 만일 그들의 생애로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움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너무 힘들어서 하지 못할 수고와 너무 커서 못할 희생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과거의 삼 년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그들은 얼마나 다르게 행동할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그들은 주님께서 분부하신 복음을 세상에 전하기에 그들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자들은 이제 참된 회개로 마음을 겸비하게 낮추고 서로의 불신을 자복하며 주님의 분부대로 성령 강림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렸다. 제자들은 사람들을 만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고자, 그리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고 죄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매우 열렬히 기도하였다. 불화와 최상권을 잡으려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그들은 모두 친밀해졌다. 성령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날들은 깊이 마음을 살피는 날들이었다.
 제자들은 영적인 필요를 느끼고서 그들을 영혼 구원 사업에 적합하게 해 줄 거룩한 정열을 달라고 주께 부르짖었다. 그들은 영혼 구원에 대한 부담에 눌려 있었다. 그들은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능력을 간구하였다. 그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 2:1,2,4). 성령은 기다리며 기도하는 제자들에게 충만히 임했으며 모든 사람은 그것을 체험하였다. 성령의 감화로 참회와 자복의 기도가 용서에 대한 찬양의 노래와 뒤섞였다. 감사와 예언의 말씀이 들렸으며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복음을 전하려고 나아가는 그들은 성령의 기쁨으로 고무되었다.

2. 초대 교회의 오순절 성령 강림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답: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나아가 부활하신 구주와 죄인을 사하시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다. 성경은 이 놀라운 역사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37~41).

 복음은 이른 비 성령을 받은 소수의 무리에 의하여 땅끝까지 전파되었다. 제자들이 구속하시는 은혜의 기별을 선포하였을 때 사람들의 마음은 그 기별의 능력에 굴복하였다. 교회는 각처에서 모여 온 회심자들로 가득 찼다. 뒤로 물러갔던 사람들이 다시 회심하였다. 복음에 대해 가장 혹독하게 반대하던 어떤 이들이 복음의 옹호자들이 되었다. 약한 자가 그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슥 12:8)는 예언이 성취되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형제들에게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들 가운데는 한 가지 관심사만 있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나타내고 그분의 복음의 사업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수고하고자 하는 관심이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행 4:33)었다.

 그들의 수고로,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마음을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케 한 그 소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에 생애를 헌신한 사람들이 교회에 증가하였다. 그들을 위협으로 제지하거나 두렵게 할 수가 없었다. 주께서 그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으므로 그들이 가는 곳곳마다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거룩한 은혜의 기사가 나타났다. 하루에 수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이루어졌다.

3. 마지막 교회와 늦은 비 성령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답: 성경 요한계시록 18장 1절에는 마지막 늦은 비 성령 운동의 영광스러운 역사에 대하여 예언되어 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예수님의 은혜로 죄를 승리하며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함을 받은 마지막 남은 무리 하나님의 참 교회, 참 백성들은 늦은 비 성령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늦은 비 성령을 받고 큰 능력으로 나아가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 거기서 나오라고, 바벨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참 자녀들을 불러내는 큰 소리 외침을 하게 될 것이다.

늦은 비 성령의 역사는 이른 비 성령의 역사보다 더 강력하고 충만할 것이다. 늦은 비는 추수와 수확을 위해 내리는 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늦은 비 성령을 받고 나아가 하나님의 기별을 크게 외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교회, 하나님의 참 백성들,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남은 무리이다. 이 남은 무리가 늦은 비 성령을 받게 되고, 이 세상에 은혜의 시간이 마치고, 우리의 죄를 속하시고 도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이 마칠 때, 하나님의 증인인 이 사람들로 인해 이 세상의 복음 사업이 빠른 시간에 마쳐질 것이다.

신앙: 3부 - 이른 비

1. 이른 비는 언제 내리는가?
 
답: 이른 비는 늦은 비를 받기 전에 항상 역사 하며 내리고 있다. 초대 교회 당시 오순절 때 한 번 큰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그 일은 이른 비의 대표적인 역사이지만, 이른 비 성령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조용하게 역사하고 있다.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역사,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는 역사,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역사, 죄를 승리하게 하는 역사와 장성한 믿음의 분량으로 자라나 늦은 비를 받게 하는 역사 등은 이른 비 성령의 역사이며, 이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매일의 생활에서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2. 이른 비의 필요성과 목적은 무엇인가?

 답: 이른 비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른 비를 받은 자들만이 늦은 비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른 비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매일의 생애에서 영혼의 성전의 정결을 체험하고, 또 죄와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며, 성령의 은혜로 변화함을 받아 하나님의 성품으로 꼴 지워진 사람만이 마지막 추수와 수확을 하게 하는 늦은 비 성령을 받게 된다. 이른 비는 씨가 땅에 떨어져 썩어야 그 효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 십자가 밑에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거듭날 때에,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주님께 드릴 때에 이른 비의 성령의 역사가 우리 속에서 일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른 비 성령의 필요성과 목적에 대하여 살펴보며 이 문제에 대하여 더 연구해 보자.

1. 자신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갖기 위하여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참된 영적인 상태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약점, 우리의 과오, 성품의 결함,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알고 모르고 지은 죄들에 대하여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들, 무의식적인 죄까지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사람들에게 숨은 결함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은 주님의 자비이다. 주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속의 복잡한 정서와 동기들을 면밀하게 검토하시고 잘못된 것들을 찾아내어 수정하신다.
 성령께서는 죄를 깨닫게 하시고, 세상에 대한 애정을 버리고 거룩함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도록 그리하여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역사 하신다. 성령께서만이 우리에게 영적인 식별력을 주실 수 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 14:26).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빌 3:13~15).

2. 철저한 회개와 자복으로 이끌기 위하여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깨닫고 매일 점점 더 깊어지는 회개를 하도록 이른 비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 성령께서는 매일 우리의 죄를 보여 주시며, 죄의 악함과 결과를 체험하게 하셔서 죄를 미워하고 그 죄들을 버리게 이끄신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죄를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회개할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성령께서는 예수님 십자가의 보혈이 효력이 있도록 개개인에게 역사 하신다. 성령은 우리를 십자가 밑으로 데려가 우리의 죄 때문에 귀한 생명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게 하며, 자신의 지은 죄 때문에 애통하며 울게 하신다.

 죄에 대하여 슬퍼하는 마음, 죄를 미워하며, 죄의 악함과 죄의 결과를 보고 다시는 죄를 짓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갖게 하시는 것도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또한, 성령은 죄를 고백하고 자복하는 겸손한 심령을 갖게 하신다. 그리고 그 악한 죄를 버리게 하실 뿐 아니라 새 마음을 창조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시 139:23).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그러므로 철저한 회개와 자복을 위해서 이른 비가 필요하다.

3.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굴복하고 완전히 순종하기 위하여
 이른 비 성령은 인간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도록 마음속에 역사 하신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우리는 주님께 굴복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선과 악의 대쟁투의 갈림길에서 방황할 때, 우리의 의지에 역사 하셔서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도록 감화하신다. 우리가 이성과 지식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바른 진리를 알고 있다고 해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이 없고, 또 순종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감화하셔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행하고 싶은 마음을 주신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5).

4. 죄에 대한 승리를 얻기 위하여
 성령께서는 우리가 매일의 생활에서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승리하도록 역사 하신다. 죄의 힘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 방법 외에는 없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성령의 도우심으로 쓰러지기 쉬운 죄들과 죄의 유혹들을 이기는 경험을 해야만 한다. 유혹이 올 때, 주님께 빨리 도우심을 구하면, 주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시고 힘을 주셔서 죄를 승리하게 하신다,
 우리는 늘 우리의 뜻대로 하려고 하는 고집을 꺾고 의지를 주님께 바쳐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 하셔서 우리가 늘 올바른 편을 택하고 죄를 승리하도록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죄를 승리하는 경험이 습관적인 일이 되어야 한다.  매일 이른 비 성령을 충만히 받을 때, 성령께서는 우리가 죄를 넉넉히 이기고 예수님의 형상을 완전히 반사하도록 우리를 꼴 지우시며, 장성한 분량의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도록 이끄실 것이다. 모든 죄에 대하여 완전한 승리를 얻는 일은 늦은 비를 받기 전에 꼭 있어야만 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준비이다.

5. 늦은 비를 준비하기 위하여
 모든 죄를 회개하고 승리하고 버리는 자만이 늦은 비를 받을 수가 있다. 죄로부터 완전히 정결케 되는 것은 늦은 비를 받아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늦은 비는 육체와 정신의 모든 불결함에서 자신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도록 준비하는 자들에게만 내리는 것이다. 자신의 생애에 있는 모든 죄를 성령의 은혜로 발견하여 회개하고, 그것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하게 하는 이른 비의 경험을 하는 사람만이 늦은 비를 받게 된다.
 이 은혜를 온전히 생애에서 체험하는 사람들에게 늦은 비가 내리고, 바벨론의 오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불러내는 최후의 큰 외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 비 성령의 역사로 영혼의 성전을 정결케 한 사람, 그릇이 깨끗하게 비인 사람만이 늦은 비 성령을 받을 수 있다.        

신앙: 4부 - 늦은 비

1. 늦은 비는 언제 내리는가?
 
답: 짐승의 표가 강요될 때, 마지막 환난이 시작될 때 내리게 된다. 하나님의 진리와 계명을 무시하고 인간이 만든 계명과 유전을 지키라는 명령이 강요될 때, 바벨론은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계시록 18장의 예언을 보면 무너진 바벨론을 향하여 큰 소리로 외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1~4).


 바벨론의 죄악을 폭로하고 무너진 바벨론의 죄악에 참여하지 말라고 외치기 위해서는 큰 능력과 용기와 믿음이 필요하다. 앞 장인 계시록 16장에는 일곱째 천사가 일곱째 대접의 재앙을 붓는 장면과 마지막 사단과 또 그의 종들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벌어지는 아마겟돈 전쟁에 대하여, 그리고 17장에는 짐승과 어린양이 전쟁을 하며 싸우지만 어린양이 승리하는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단이 마지막 선악의 대쟁투에서 짐승을 통하여 역사 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하고 어린양을 대항하여 싸우려고 하는 최후의 시기에 늦은 비 성령이 내리는 것이다.

2. 늦은 비의 필요성과 목적은 무엇인가?
❶ 늦은 비는 지상의 곡식을 완전히 익게 하여 낫을 대어 추수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막 4:28~29).추수기에 가까워 내리는 늦은 비는 곡식을 익게 하여 낫을 대어 추수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이슬과 비가 처음에는 싹이 트게 하고 그다음에 늦은 비가 내려 수확할 수 있도록 익게 하는 것처럼, 성령도 한 계단 한 계단씩 영적 성장에 단계에 따라 전진하게 하려고 내려주신다곡식이 익는 것은 영혼 속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완성되는 것을 나타낸다.

❷ 죄에 대하여 승리하는 이른 비의 경험을 영구화시킴으로써 인을 친다

 늦은 비는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변화되어 있는 성품을 고정시킨다. 이른 비로 다 자라난 식물이 마지막 추수의 완성을 위하여 늦은 비를 필요로 하듯 늦은 비 성령도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 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딤 후 2:19). 인 침을 받을 자들은 불의에서 떠나 거룩한 삶을 사는 경험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은, 지적으로 영적으로 진리 안에 확고하게 서서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을 뜻한다. 마치 밀초에 도장을 찍는 것처럼, 하나님이 형상과 성품을 이룬 사람들에게(믿음과 성장의 분량은 서로 다르고 단계도 다르다) 늦은 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이 찍혀지는 것이다.

❸ 큰 외침을 하도록 능력을 준다
 늦은 비는 큰 소리 외침에 능력을 주기 위하여, 복음을 빠른 시간에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하여 내려 주신다. 마지막 때에는 오순절 때의 이른 비 성령의 역사보다 더 강하고 크고 풍성한 성령의 축복이 내려질 것인데,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하나님의 증인들이 나아가 하나님이 영원한 복음을 세상 끝까지 삽시간에 전할 것이다. 최후의 큰 외침(계 14:6~12, 18:1~4)은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선포인데, 지금 바벨론은 거의 무너졌으며 더러운 영의 처소가 되었다. 늦은 비는 바벨론이 완전히 무너지는 때, 곧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법령을 내릴 때 임하는 것이다.
 
 덧붙여, 큰 소리 외침의 기별은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선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한 사람들, 즉 영원한 복음을 체험한 사람들이 그들의 성품과 생애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온 세상과 우주에 드러내는 사건도 포함되어 있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증인들이 늦은 비 성령을 받고,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과 이른 비 성령의 역사로 형성해 온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과 계명을 지키는 믿음을 온 세상에 증명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인데, 늦은 비 성령은 승리하는 믿음을 길러온 사람들이 다시는 쓰러지지 않도록 봉함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❹ 환난의 때를 위하여 내린다
 짐승의 표 환난을 통과할 사람들,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과 재앙들을 통과할 사람들을 위하여 늦은 비 성령이 내린다. 늦은 비는 성도들이 최후의 박해와 위기를 잘 견디고 환난을 잘 통과하게 하려고 주어지는 것이다. 악인들에게 내리는 마지막 일곱 재앙은 매우 극심할 것이다. 그 재앙이 의인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하지만, 같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늦은 비 성령은 의인들이 무사히 환난을 통과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덮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신앙: 5부 - 이른 비를 위한 준비

 이른 비가 내리는 때는 바로 지금이다. 우리는 늦은 비가 내리기 바로 직전에 살고 있다. 주님께서 곧 그분의 성품을 닮은 사람들을 데리러 재림하실 것이다. 그 영광스러운 주님의 재림 순간에 사랑하는 주님을 반가이 맞도록 우리는 지금 온전히 변화함을 받는 경험을 해야 한다.  

세상에 주의를 빼앗길 시간이 없다. 우리를 위하여 역사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자신을 살피며, 어떤 회개하지 않은 죄들이 남아 있는지, 어떤 죄에 쉽게 쓰러지고 실패하는지 자신을 면밀하게 살피고 검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현재 매일의 생활에서 조용하고 잔잔하게 이른 비 성령을 받는 경험을 해야 한다. 이른 비를 받기 위한 준비는 네 계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철저하고 전적인 회개를 간구함
 모든 죄를 회개하고 죄에서부터 돌이키는 철저한 개심의 경험을 위해 간구해야 한다. 영적인 사물이나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대하여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철저한 개심이 필요하다. 성령께서 진정한 영적인 상태를 보여 주실 때, 그리고 자신도 모르고 있던 마음속의 죄를 지적해 보여 주실 때, 우리는 겸손하게 회개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늘 자신을 살펴야 하며, 세미한 성령의 음성을 듣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한 번 회개하였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며 한 번의 회심으로 만족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회심은 그리스도인 생애의 시초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전진의 생애이다. 주님을 알고 그분과 같이 닮아가기를 계속해야만 하며, 지식, 믿음, 사랑도 계속 자라나야 한다. 그리고 매일의 회개는 더욱 깊어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더 많이 깨닫게 되며, 더 많이 회개하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는 알면서도 죄를 그대로 품고 있는 사람 안에는 거하실 수가 없다. 환난이 오기 전에 온전한 정결함을 받는 일이 이른 비를 받는 동안에 일어나야 한다.

더 많은 빛을 간구함
 이른 비 성령을 받으려면 매일 간절한 기도와 성경 연구를 통해 점점 밝은 빛을 깨달아야 한다. 그뿐 아니라 깨달은 빛대로 살아야 한다. 주님과 교통하며 주님의 뜻을 알고자 간절히 기도하고, 또한 진리의 말씀을 연구하므로, 더 밝은 빛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이미 받은 빛에 순종하며 생애 해야 한다. 가장 사소한 문제에 있어서까지라도 주어진 빛에 따라 결정하며, 이미 가진 모든 빛과 진리에 전적으로 굴복하고 헌신하는 생활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빛을 비춰 주시는 즉시, 그 모든 새로운 빛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완전히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깨달은 모든 빛대로 살고, 더욱 새로운 빛을 간절히 구하며, 이르러오는 새 빛을 받아들여 그대로 살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리스도인 생애에서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계시된 빛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빛을 주시지 않을 것이다. 빛을 거절하는 것은 성령을 거절하는 것이다. 곧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빛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더 풍성한 성령의 역사와 빛이 더해질 것이다. 

얽매이기 쉬운 죄들에 대한 계속적인 승리를 간구함

 회심하는 즉시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를 한꺼번에 극복할 수는 없다. 그것은 길고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그러나 영광스러운 과정이다. 그리스도인 생애는 완전한 승리를 얻기까지 계속해서 승리와 행진, 승리와 행진을 거듭해야 하는 전진의 길이다. 지속적인 승리를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매일 성령께 굴복해야 한다. 우리가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기쁘신 뜻을 따라 소원을 두고 행하도록 능력을 주실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해 범하기 쉬운, 쓰러지기 쉬운 모든 죄들에 대해 승리하도록 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임재가 늘 마음속에 있으며 그리하여 주님과 매 순간 동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모든 죄의 습관들을 미워하게 되고 그 사소한 죄들을 버리게 될 것이며, 충만한 이른 비의 경험으로 죄와 세상과 자신을 이기는 승리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복음을 증거함
 더 풍성한 성령의 축복을 받으려면 복음이 생애를 변화시킨 증거들을 간증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다른 영혼들을 살리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변화시키는 주님의 능력을 증명할 때에 성령은 더 풍성하게 임하신다. 활동하지 않는 사람은 더 많은 성령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활동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내려 주시지 않는다. 성령은 봉사를 위하여, 그리스도인 생애와 복음 증거를 위하여 내려 주시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명하기를 게을리한다면 우리는 성령을 잃을 것이다. 사실 활동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란 있을 수 없다. 활동적이어야 할 사람이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화, 의복으로 주님을 나타낼 수 있으며 소책자 빌려주기, 편지 쓰기, 성경 연구회에 사람들을 초청하는 일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주님을 증거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 자체가 복음의 능력, 변화시키시는 은혜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신앙 6부 - 늦은 비를 위한 준비

이른 비 때에 모든 죄를 극복한 사람들만이 늦은 비를 받을 것이다. 늦은 비를 받기 위한 준비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1. 늦은 비는 보충해 주는 것이 아님

 늦은 비를 받기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이른 비 때에 완전히 회개하고, 죄에 대하여 승리하며, 성품의 변화를 입어야 한다. 자신의 부족함과 결함들을 보충하려고 늦은 비 성령의 큰 능력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큰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내리는 늦은 비 성령은 죄악을 시정해 주지도, 죄악적인 결함을 보충해 주지도 않을 것이며, 보충해 줄 수도 없다. 늦은 비 성령이 내리는 시기는, 하늘에서 우리의 죄를 속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와 속죄 사업이 다 마치고, 은혜의 시간이 마친 후에 세상에 환난과 재난이 시작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피를 가지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시는 중보 사업을 하시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중보와 속죄 사업이 끝나기 전에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며 주님의 능력과 은혜 안에서 온전해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매일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하며 주님께서 주신 모본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회개 기도를 받으시고 용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죄를 고백하는 자복과 회개의 기도를 지금 하늘로 올려 보내야 한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 8:3,4).
머지않아 예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던 금 향로를 던지시며 이렇게 선언하실 것이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 마지막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 헤아려진 자들만이 환난을 위해 늦은 비 성령으로 인 쳐질 것이다. 그러므로 준비할 때는 지금이다.

2. 이른 비로 정결케 되어야 늦은 비를 받음
 늦은 비를 받는 데 가장 필요한 준비는, 이른 비를 받아 모든 죄에서 정결케 되는 것이다.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 교만, 이기심, 세상을 사랑함과, 모든 그릇된 말과 행동에 대하여 승리하지 않는 한, 그 모든 것을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기고 버리며 정결케 함을 입지 않는 한, 늦은 비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품성 가운데 있는 결함을 보충하고 영혼의 성전을 모든 불결함에서부터 정결케 하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다. 아무런 노력이나 극기 없이 늦은 비가 임할 때 변화함을 받으려는 사람은 너무 때가 늦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성령의 역사를 구하고 그 도우심을 힘입어 모든 죄를 극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분의 공로와 희생을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죄를 버리기 쉬울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보다 더 귀한 보물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원하는 소원이 없기 때문이며, 또한 세상에 붙어 있는 욕심이 더 이상 없고, 정함이 없는 이 세상에 사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하늘에서 사는 것을 더 열망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른 비 성령을 받는 사람은 매일의 생활에서 죄를 회개하고 버리는 경험을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주님과 밀접하게 교제하며, 주님의 말씀이 꿀 송이보다 단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모든 삶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주님의 임재가 마음속에 늘 함께 하시므로 악한 생각이나 의도가 싫어지고 죄악적인 일과는 인연을 끊게 되며, 늘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일이 습관처럼 될 것이다. 이렇게 이른 비의 정결케 하는 경험을 하는 자만이 늦은 비를 받게 되는 것이다.

3. 승리한 자들만이 늦은 비를 받을 것임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만이 늦은 비를 받고 환난을 통과하여 변화 승천하기에 적합해질 것이다. 이른 비 아래에서 성령의 은혜로 죄를 극복하는 경험을 해 온 자들에게만 늦은 비가 임할 것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예수를 믿었어도 변화가 없고, 거듭나 새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 수년 동안 뜨뜻미지근한 상태로 졸고 있는 사람들, 그 마음에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에 순종하므로 성화 되지 않은 신자들은 늦은 비를 받기에 적합하지 못할 것이다.
 
 늦은 비는 그동안 형성되어온 품성을 다시는 죄에 쓰러지거나 실패하지 않게 인봉하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께서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을 구원하시지 않기로 작정하시고 일방적으로 멸망을 선언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분께서는 그저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참사랑의 부족, 무관심, 세속적이고 경박한 품성의 당연한 결과를 그대로 드러나게 하시는 것일 뿐이다. 진리에 대한 그들 자신의 태도가 그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그들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기에 전혀 부적합해지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고 나서도 죄를 계속해서 범한 자연적인 결과와 형벌은 마음이 굳어지는 것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성령을 슬프시게 한다. 많은 빛을 받고도 그것을 거부하여 죄를 범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지만 않는다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이 품성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 넉넉히 승리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피할 길을 마련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모든 죄를 이기고 주님과 더불어 보좌에 앉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의 믿음(계 14:12)을 소유한다면 죄를 정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것이며, 그 일이 우리의 경험 속에 이루어질 것이다.

 일찍이 있었던 싸움 중에 가장 큰 싸움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데, 그것은 자아와의 싸움이다. 자아를 굴복시키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 입고 순결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갖는 것, 온유함과 선한 열매가 가득한 사랑을 소유하는 일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주님께 순복하여 드리며 주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사는 일을 기쁨으로 삼을 것이다.
 
 자아와의 전쟁이 매우 힘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완전한 승리자로서 생애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바로 그러한 경험 가운데서 사는 자들이 제2의 오순절의 경험을 맞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모든 죄와 모든 시험을 이기고 또한 모든 유전적이고 배양되어온 죄의 기질들에 대해서 완전한 승리자가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생애와 품성은 우리에게 믿음직한 본보기가 된다. 하늘 아버지께 대한 예수님의 믿음과 확신은 제한이 없었다.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믿었으며 그 능력을 받으려고 쉬지 않고 기도하셨고, 또 그 능력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셨다. 그의 순종과 굴복은 전적이면서도 완전하였다. 우리도 예수님이 가지셨던 믿음을 소유해야 하며 그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에 늦은 비 성령을 받을 사람들은 남은 무리,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

신앙: 7부 - 승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그리스도인이 정말 죄를 승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성경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생에서 죄를 완전히 이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아를 온전히 주님께 굴복하는 영혼들을 붙드시고 힘주셔서 승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여러 번 성경을 통해 약속해 놓으셨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격스러운 약속이며 소망인가! 성경의 약속들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하여 한번 살펴보자.

죄에 대한 승리는 가능한 것인가?
 많은 그리스도인이 죄에 대한 승리나 완전해짐과 같은 단어나 주제에 대하여 얘기하면 마치 광신주의나, 율법주의자, 완전주의자 같은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하고 과민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마가복음 4장 28절에 있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의 성장에는 단계가 있다. 그 상태가 싹이든, 이삭이든,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든,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신 빛대로 순종하며 자라나는 과정의 그 단계 단계마다 완전한 것이다.
 완전함이란, 온전한 승리란,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너무 감사하고,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죄와 반역이 너무 싫고 미워져서, 모든 알고 있는 죄를 버리고 완전히 회개하며, 다시는 죄를 지을 마음이 없는 상태, 다시는 죄를 지어서 사랑하는 주님을 슬프시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생애의 빛에서 가리키는 완전함의 의미는 이런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지 율법주의의 완전과 다른 의미라는 것을 독자들이 주지하기 바란다.

 예수를 믿고 사랑한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거듭 지을 때에 그것은 주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고, 그것은 사단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만일 우리가 죄는 극복할 수 없는, 승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을 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되며, 그분의 재창조의 능력과 복음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이 되며, 죄를 지을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성경에는승리에 대한 약속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서 받아들일 때, 우리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며,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의 사유를 믿을 때, 이 믿음을 행사하자마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에게 주셔서 그분의 공로가 우리의 것이 된다. 분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마치 우리가 전혀 죄를 짓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를 보시고 의롭다고 칭해 주신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친히 죽으신 자신의 공로를 우리에게 입혀 주시며, 우리의 과거의 죄들로 인한 모든 정죄와 처벌에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 외에 다른 어떤 수단에 의해서도 구원과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성경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5)라고 말한다.  그러나 의롭다고 칭의를 받는 것과 똑같이 중요한 것은 성화이다. 복음의 능력은 우리를 죄책에서 구원해 줄 뿐만 아니라, 죄 그 자체에서도 우리를 구원해 준다.
 구원은 단지 우리를 죄의 결과로부터 부분적으로 구원받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죄의 힘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는 성화의 과정, 곧 주님께서 우리의 생애를 온전하게 다스리셔서 죄가 미워지고 죄를 짓는 것이 너무나 싫어지게 되어 죄를 버리고 승리하게 되는 과정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의를 믿는 자에게 나눠주시며, 유전으로 물려받거나 배양된 모든 연약함을 온전히 극복하고 승리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신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승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죄에 대하여 죽음과 죄로부터의 자유-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1,2).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롬 6:11,12).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6,7).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8).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
죄가 주관치 못함-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요 8:11). * 예수께서 간음 중에 잡힌 여인에게 가서 안심하고 그대로 살라.고 하시지 않고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한 것을 주목하라.
온전하라. 죄에서 자유케 됨-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이 그분 안에서 온전하게 됨으로써 세상에 그분의 성품의 온전함을 나타내도록 하시려고 계획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신다.
완전히 거룩하게-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2,23).
흠이 없이 서게 하심-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유 24).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7).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5).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음-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유 24).
넘치도록 하심-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 3:20).
넉넉히 이김-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불의에서 정결케 하심-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죄를 범치 않는 것-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1).
그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치 않음-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일 3:6).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죄를 범치 않음-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죄를 극복할 수 있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이렇게 성경에는 죄에 대한 승리를 약속한 수많은 성경 절들이 있다. 더 많이 있지만, 지면상 생략하기로 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분께서 우리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다시 죄를 범하지 않을 능력도 주실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 보혈의 피는 능력이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모든 죄를 승리하게 하신다.

신앙: 8부 - 나는 이른 비 성령의 역사 속에 있는가?

 지금은 이른 비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죄를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때이다. 성령의 역사 속에 사는 사람들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나는 현재 이른 비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는가? 성령의 역사 속에 있는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며 자신을 스스로 점검해 보자.

1. 진리를 알고 있다
 성령이 역사 하는 사람의 특징 중 첫 번째는, 밝은 진리를 알고 깨달은 사람이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올바른 진리를 똑바로 알고 있으며, 인간의 유전과 오류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며, 진리대로 실천하고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다. 매일 하나님 아들의 살과 피를 먹는 경험을 하며, 말씀을 통해 주님과 교제하고 그분의 말씀이 생애에 스며들어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간다. 시험과 유혹이 닥칠 때, 예수께서 사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방향으로 선택하며 따르는 삶, 곧 가라사대가 그들의 생애의 목표가 된다.말씀과 진리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손해와 어려움이 온다 해도 타협하지 않고, 감정에 바탕을 둔 신앙을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충성하는 삶을 살아간다. 진리의 사랑을 받는 것, 그것은 성령의 역사 속에 있다는 큰 증거이다.    

2. 승리하는 사람이다
 이른 비 성령의 역사 속에 있는 사람, 성령의 충만함 속에 사는 사람은 죄를 승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마음에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죄의 유혹을 예수 그리스도의 힘과 능력으로 이기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동행이 끊어지지 않고 매 순간 연속적인 것이 되며, 늘 자신의 뜻보다는 예수님의 뜻을, 자신의 기호보다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 마음의 보좌에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군림하고 계시므로 죄에 대한 승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예민한 영적 식별력을 가지고 시험이 올 때 재빨리 알아차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므로, 하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임하여 죄를 이기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아울러 의지의 굴복과 자신을 주님께 바치는 일이 매 순간 이루어지며, 주님을 사랑하므로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이 마냥 즐거운 사람이다. 

3. 사랑하는 사람이다

 마음속에 샘물처럼 솟아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간직한 사람이야말로 이른 비 성령의 역사 속에 있는 사람이다. 하늘의 이기심 없는 순결한 사랑이 삶의 원칙이 되어 마음속에 항구적인 평안과 쉼과 안식이 있는 사람, 마음에 불평이나 원망이나 시비가 없이 모든 영혼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품고 수용하는 사람,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여 원수를 갚으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사람,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원수 같은 사람을향하여서도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 속에 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한 영혼, 한 영혼의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공로로 사신 것으로 평가하므로 모든 사람이 눈에 소중하다. 거듭난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새 계명이 새겨진다. 동기와 의도와 욕망이 사랑 안에서 순화되고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게 된다.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생애의 원칙이 되는 것이다. 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로 충만하고, 친절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며, 자아가 주님 안에서 완전히 죽는 경험을 하므로 교만이나 자존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입에 비평과 험담이 오르내리는 사람 속에는 성령이 거하실 수 없다. 시기, 질투, 악한 비방, 험담 등은 모두 사단에게서 나온 것이며, 그것들은 성령이 역사 하는 길을 효과적으로 방해한다. 성령이 역사 하는 사람은 악한 생각을 하지 않으며 악한 의도를 주님 안에서 쉬는 사람이다.

 사랑으로만 행하며, 술수나 꾀를 써서 이용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사귄다. 다른 사람을 상해하지 않고, 손해를 입히지 않으며, 늘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긴다. 비판하지 않고 모든 심판을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고 잠잠히 있다. 동정과 이해와 부드러움으로 가득 찬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가는 곳마다 기쁨과 화평과 행복을 준다. 갈바리의 십자가를 늘 명상하고 예수님이 지니셨던 사랑의 성품을 지니기를 원하여 주님의 사랑의 모본을 따르는 것이 소원이 된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속에 부어져서 사랑으로 행하고 사랑으로 살아가므로 많은 사람이 그 사랑 안에서 치유와 생명을 얻는다.

4. 기도하는 사람이다

 성령이 역사 하는 사람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안테나는 항상 하늘로 향해 있어서 어느 곳, 어느 시간에 있든지 주님과의 교제가 그치지 않는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처럼 매 순간 이어진다.믿음의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팔을 움직인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으므로 어떤 경우에든지 주님께 기도하고 응답받는 경험을 한다. 사단의 유혹이나 죄의 유혹이 뚫고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쉬지 않고 기도가 이어지므로 죄를 승리하는 경험이 점점 풍성해진다. 혹시 응답을 받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최선을 아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신뢰하므로 늘 평안함 속에 거한다. 악한 분위기나 경박한 장소에 둘러싸여 있어도 기도하는 이 사람은 하늘의 맑고 순결한 분위기와 하늘의 향기로 둘러싸여 있다.

5. 일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자신을 변화시킨 간증을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님 복음의 능력에 대한 산 간증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로 제시하며 전도한다. 영혼에 대한 부담이 늘 심령을 가득 채워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힘을 다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세상의 존재 목적이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된다. 영혼에 대한 사랑과 애타는 심정이 하나님의 사업에 끊임없이 헌신하게 하며, 아무런 대가나 인정이나 칭찬을 바라지 않고 하나님께 충성한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주님의 진리를 전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굽힐 줄 모르는 신념과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전도 사업에 앞장선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전심전력으로 헌신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한없이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그 사실을 인정해 주실 것이다. 자아 봉사의 법칙은 자멸의 법칙이며, 자기희생의 법칙이 곧 자기 보존의 법칙인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남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자신이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므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기쁨을 최상의 기쁨으로 여긴다.

6. 절제하는 사람이다

 진리는 반드시 전 인간, 즉 마음과 생각과 힘을 모두 성화 시켜야 한다. 건강과 절제와 품성은 직접 관련되어 있고, 서로 불가분해의 관계에 있다. 거룩한 품성을 가지기 원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 먹는 일, 마시는 일, 입는 일, 사는 방식, 읽는 일, 보는 일 등 매일의 삶에서 절제하는 사람이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이다. 몸은 마음과 영혼이 품성 건설을 위하여 계발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이다. 만일 우리의 몸과 지각 기관이 어떤 종류의 부절제 때문에 마비된다면 영원한 사물을 분별하지 못할 것이다.
 
 성령이 역사 하는 사람은 절제한다. 식욕에서, 말에서, 시간의 사용에서, 모든 일에 절제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마치면서

 이 세상의 역사는 저물어 가고 있다. 세상의 사방 바람을 잡고 네 천사가 막 바람을 놓으려는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인 치는 천사는 이 세상에 환난이 오기 전에 준비된 하나님 종들의 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치려고 사람들을 찾고 있다. 지금은 늦은 비의 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때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존절히 깨어 개인적으로 매일의 생애에서 이른 비 성령을 받는 경험을 해야 하며 그리하여 늦은 비가 내릴 때에 그 영광스러운 역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죄를 이길 수 있는 승리의 생애를 살도록 우리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우리 인간들을 죄짓기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키시고, 하늘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하시는 것, 이 얼마나 놀라운 구원의 경륜인가?
 
 타락한 인간, 곧 죄악을 사랑하며, 이기적이고, 미워하고, 원수를 맺고, 속이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악하게 지배하고, 문제를 일으키던 타락한 인류가, 온전한 사람, 곧 죄를 미워하며, 남을 사랑하며, 순결하고 정직하며, 이타적이고 자아 희생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니, 그리하여 하늘의 거룩한 백성들과 함께 살게 하신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의 능력이며, 은혜의 역사인가!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 속에 이루시고자 하신다.

 지금은 깨어나야 할 시기이다. 지금은 승리의 경험을 할 때이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 지금은 이른 비의 경험을 충만히 해야 할 때이다. 이제 곧 머지않아 늦은 비가 내릴 것이다. 마지막 환난이 오기 전, 바벨론을 향하여 큰 소리로 외칠 하나님의 증인들 위에 영광스럽게 내릴 늦은 비 성령을 받고자 열심히 준비하는 독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질문과 답변: 교회 안에 있는 두 가지 복음

 오늘날 교회 안에는 구원에 대한 두 가지 복음이 있다. 한 무리는 진리를 발견하고 생애에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는 가운데 승리의 삶을 살고 있으며, 또 다른 한 무리는 복음을 오해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여전히 죄와 세속의 노예 상태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고 있는 가르침과 신앙의 방향이 정확하게 성경과 일치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수많은 목사들의 설교와 신학자들의 가르침이 있는데, 그중에서 어떤 것이 진리이고 어떤 것이 오류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물론, 이것을 구별하기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그것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목사들이나 성직자들일 경우, 평신도의 입장에서 그들의 설교와 가르침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란 용이하지 않다. 각종 가르침과 설교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에 대한 진리를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매우 열렬한 신앙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진리에 대한 지식은 크게 결핍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진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큰 교단에 속한 교회에 다님으로써, 자신의 영적 안전을 도모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비록 정통이라고 불리는 교단에 속한 교회라고 할지라도, 각 단일 교회의 사역자들이 개인적으로 믿는 바가 하나님의 진리와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분들이 어떠한 신학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느냐에 따라서 구원을 설명하는 그들의 설교와 가르침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교회의 이름에 자신의 영생을 맡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각 성직자들의 개인적인 영성과 신앙 체험에 따라서, 그들이 교인들에게 전달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 들어온 각종 가르침과 설교들을 성경을 통하여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지적 판단 능력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거나, 인간 지도자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을 팔자나 운에 맡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이사야 8:20).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영생에 깊은 관계가 있는 구원에 대한 가르침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어떤 조직이나 직분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함으로써,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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