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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내 안의 찌끼

 온 힘을 다해 열심히 뛰는 마라톤 선수를 본 적이 있습니까? 땀이 온몸에 흐르고 다리에 쥐가 나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 지점을 향해 끝까지 달려가는 선수의 모습을&. 
 
 마라톤 선수는 경주할 때에 가벼워야 합니다. 그래서 몸을 최대한으로 가볍게 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입니다.가장 가벼운 복장과 신발은 물론, 최소한의 바람의 저항을 받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합니다. 인생의 마라톤을 뛰는 당신은 어떠십니까? 바람을 역류해 사뿐히 걸음을 옮길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차림이신지요? 떼어놓는 생의 발자국이 그렇게 무거운 것은, 이어지는 삶이 그렇게 힘든 것은, 아직 다 놓지 못하고 비우지 못한 삶의 무게 때문이라는 것을, 아직 그 삶에 애착하고 연연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아직도 우리는 너무 무겁습니다. 새 마음을 입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을 버렸는데도, 하늘의 것으로 채우기 위해 그렇게 많이 비웠는데도&. 아직 우리의 기도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어 천장을 뚫지 못하고, 바램으로만 채워진 우리의 기도는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기에 너무 버겁습니다.

비워야 하는 찌끼들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여서 정결해지고 깨끗하게 비워져야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의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치 아니하였도다.(렘 48:11)

 하나님께서 그동안 우리를 많이 돌리시고 내치셨지만, 그래서 삶의 구비와 모퉁이들을 돌면서 눈물도 많이 흘리고, 애도 많이 쓰고, 한숨처럼 기도를 내뿜으며 살았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는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지지 않은 사람처럼, 처음의 냄새와 맛을 그대로 가진 변화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온전히 비우지 못하여 찌끼가 그대로 남아 있는&. 어쩌면 우리는 변하다 말고 찌끼처럼 가라앉아, 한때 뜨거웠던 신앙의 기억에만 의존하는 정체된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날마다, 아니 순간마다, 새롭게, 끊임없이 그리고 남김없이 바치고 버리고 비워야 하는 일을 쉬고 싶어하며&. 남아 있는 마지막 찌꺼기까지 다 버려야 하는 그 철저한 비움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기를 두려워하며&.   변화를 위하여 필요한 성령의 지도와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지기를 거절하는 것은, 자신의 옛 생활과 생각과 방법을 온전히 포기하는 지점까지 자신을 데려오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훈련의 방법에 순복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변화하시는 능력에 자신을 끝까지 맡기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변하다 말고 뒤로 물러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무릇 찌끼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스바냐 1:12)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곧 자비로운 초청이 덧붙여집니다.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사 1:25)

 혹시 찌끼를 흔들어 버리기 위한 정화 과정에 들어가셨나요?같지 않은 경험과 역경들을 통해 영혼의 찌끼들이 마구 휘저어져 나가는 것을 경험해 보셨나요?어지러울 정도로 소용돌이에 말려 들어가 본 적이 있으신가요? 영혼을 휘젓는 아픔은 유쾌한 것이 아닙니다만, 혼잡물이 제하여지고 순결한 빛으로 빛날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주곡은 고통 속에서도 잔잔한 기쁨으로 가슴을 울릴 것입니다. 

비워졌던
 마음을 비우는 경험을 하는 것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경험이지만, 그 경험이 지속적인 것이 되지 않을 때, 그것은 영혼에게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한때, 예수님과 진리에 굴복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며 마음을 비우는 경험을 했지만, 그 비워진 마음속에 성령께서 계속 내재하시도록 자신을 바치는 일을 게을리한 사람들은 종종 다음의 말씀과 같은 경험 속으로 빠져들어 가기가 쉽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마 12:43~45)
 때때로 우리는 그렇게 끝까지는 비우기 싫은 어떤 지점에 이릅니다. 과거의 영혼을 지배하던 어둠 속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와 빛 가운데서 기뻐하던 많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지점에 이르러서는 어느새 하나님의 임재 속에 지속적으로 거하는 일을 멈춥니다. 어느 정도의 굴복과 조금의 개혁에 만족하고는 예수께서 온 마음을 다 점령하시도록 자신을 끝까지 바치는 지점까지 가지 않습니다.

 다 바치지 않은, 찌꺼기를 다 비우지 않은 마음의 그릇은 더 쉽게 더러워집니다. 반만 비워진 마음이나, 비워진 다음 하늘의 영으로 채움을 받지 않은 마음은 똑같이 문제가 됩니다. 나중 형편이 더 심해지는 상황이 연출되고, 거의 포기했지만, 끝까지는 버리지 않은 어떤 우상이나 품고 있던 죄가 영혼을 더럽히고 영혼의 통로를 막아 버립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와 완전히 굴복하고 버리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 맡김으로 오는 결과를, 겪어야 할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 굴복을 거절한다면 우리는 결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음의 찌끼를 비우며

마음을 비우는 것은 
더 이상의 무언가로 채우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더는 기대하지 않으며,
기대 이상의 것도 바라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마음을 비우는 것은,
하늘의 것으로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하늘의 빛으로 감싸이고,
하늘의 생명으로 채움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마음속에 가라앉은 찌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가라앉아 있던 찌끼들을 휘저어 올라오게 하는 상황과
사건과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찌끼들을 나가게 하는 데 필요한 회전 연마기 속에
들어가는 일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픈 과정 속에서도 섭리를 이해하게 된
신비한 기쁨 속에서 환하게 웃는 것입니다.

오, 그러나 그러한 쓰레기들이
얼마나 영혼을 피곤하게 하고,
질식하게 하고 영혼의 활동을 저해하는지 안다면요!

그렇게 함부로 마음을 채우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십시오.
영혼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십시오.

바깥 것들을 쓸데없이 안으로 집어넣지 말고
당신의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고
그 내면이 밖으로 흘러나오게 하십시오.
영혼의 이야기를 들으십시오.

영혼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머리를 잔잔하게 하십시오.

마음을 비우고,
당신의 관심을 바깥을
향하는 것으로부터
안을 향하는 것으로
바꾸십시오.

 

생애의 빛에서

 희망이 없어지면 사람들은 절망하여 정신을 놓게 되든지 아니면 극도로 악랄해져 이웃이나 지구 자체를 파괴하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바라보는 현재 지구의 형편입니다.

 한번은 한 무신론자 학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진화론을 철저히 주장하는 것은 물론 우리가 이 지구 상에 사는 그 목적에 대하여서도 참으로 황당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인간에게 죽음 이후의 소망이 없고 이 짧고 허무한 이생에서 그치는 것이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사는 것이냐고요. 그의 대답은, 인간이 사는 것은 호기심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더 나은 세상과 지구의 발전 내지는 자기의 발전에 대한 욕구 그리고 새로운 것들과 더 나은 것들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 발동되어 그렇게 열심히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죽어 간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 재림에 대하여 큰 소리로, 아주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현재를 살게 하고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유일한 소망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필연적인 사건입니다. 그 사건이 아니라면 이 지구의 문제들이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두려움, 불공평함, 지구 자체의 파멸, 악해져만 가는 도덕의 문제들은 지구를 개선하려는 노력만으로 해결될 문제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큰 소망이 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감사하며 찬송 소리를 질러 댈 정도로 큰 희망입니다. 주의 다시 오심은 약속입니다. 하늘이 떠나가도 그 약속은 확실한 것입니다.  
 

 

가정과 영성: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방법

 나는 성경을 신화나 성자들의 기도문 정도로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배우게 되었을 때 나는 성경이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성경에 대해서 의심을 나타내는 대부분 사람은 성경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다. 만약 그들이 성경을 깊이 연구한다면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성경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부터 성경은 내 인생의 유일한 기준과 표준이 되었다. 그렇게 했을 때 내 삶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내 삶 전체가 하나님의 지배하로 들어가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 자신과 삶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으로 사신 몸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몸을 굴리면서 살 수 없었다. 그래서술과 담배를 끊고 운동하기 시작하였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면서 열심히 가족들에게 진리를 나누어 주려고 애를 썼지만, 나의 선한 의도와는 달리 가족과 거리가 생기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고자 하는 내 결심은 인생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스도를 믿고 첫 번째 생긴 전환점은 성경 말씀을 절대적 권위와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두 번째 전환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난 후 내가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입교할 때에 찾아왔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바꾸는 것을 때 묻은 셔츠 갈아입듯이 쉽게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내 인생의 축을 흔드는 발걸음이었다. 교회를 바꾸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결정이다. 그것은 친구 따라서 강남 가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드는 목사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진리가 내게 무엇이라고 말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당신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 다니는 교회는 성경 말씀에 의해서 확실하게 지지가 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분명한 답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공부하지 않은 것이다.

 세 번째 전환점은 하나님께서 나와 내 가족에게 광야로 나가야 할 것을 말씀하시고 온전한 개심을 하도록 호소하셨을 때이다. 우리 가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시골로 이사하였다. 도시의 소음과 공해를 떠나서 빚이 없고 생활비가 적게 필요한 삶을 살면서 우리 가족은 단순함에 익숙해졌다. 생각과 계획이 단순해졌다. 성경 말씀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뜻이 좀 더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하였고 양심을 통해서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이 좀 더 뚜렷하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오래되어서 자녀들이 있었지만 정작 결혼이 가져다주는 참된 행복은 시골에 가서 누리기 시작하였다. 나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 앞에서 부복한 상태로 성령의 음성을 듣는 훈련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네 번째 전환점은 드디어 나는 꿈을 이루었다!라는 생각을 했을 때 찾아왔다. 시골에 와서 경제적 안정과 영적 회복을 이루었다. 내 마음속에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는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고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서 일하라. 나는 하나님께 저는 못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앞날에 대해서 다른 계획을 세워 놓았으며 지금 가진 경제적 안정이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렇게 평화스럽고 안정되게 사는 것이 좋은데 주님은 내게 너무나 큰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얼마 전부터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와서 설교했지만, 설교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은 내 삶에서 부차적인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부르심을 받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씨름을 하였다. 모세를 생각해 보았다. 바로의 왕위를 이으면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라고 요구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부르셨던 베드로와 다른 어부들 역시 이름 없는 한 랍비를 따르라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때의 결정은 그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역시 내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에게도 전환점이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자 여러분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알고 있는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우리의 문제는 주저주저하면서 결정을 미루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심각한 문제에 빠지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식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죽어 버린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은 누구나 나와 유사한 전환점을 갖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그러한 전환점을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확신한다.

 전환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갖고 있는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분과 좀 더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원하신다. 확실하고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신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마음의 평화와 쉼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나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결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었다. 성경에 나오는 젊은 부자 법관은 하나님 앞에서 주저주저하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찾은 안정된 삶에 코를 처박고 그것으로 만족할 것인지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내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뛰어들면 내 가족의 생계비는 누가 대줄 것인가? 누가 우리 가족을 부양할 것인가?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책임지신 일들이 가득 차 있지만 정말 내 가족에게도 그렇게 해 주실 것인가?

네가 정말 믿느냐?
 그리스도인은 가끔 내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포도나무고 우리는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정말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인가? 가지는 포도나무가 나의 필요를 정말 공급해 줄까? 하는 따위의 걱정을 하지 않는다. 가지는 자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은 포도나무의 가지라고 생각하면서 늘 걱정하고 염려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을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우리는 정말로 이 말씀을 믿는가?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런 믿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가정과 교회들이 믿음을 잃어버린 채 나약하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꾀로 해결책을 찾느라고 바빠서 우주의 하나님께 나아가 지혜를 구하지 않는 것이다. 주님! 저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한 걸음씩 저를 인도해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끔 우리에게 앞이 캄캄해지는 경험을 허락하신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되고, 우주의 크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일에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면 우리를 지켜 주시는 그분의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그분의 능력을 받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그들의 모든 역경, 시련, 혼동 가운데서 구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기 원하신다. 이사야는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할 것이라고 기록하였다(사 58:11). 당신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과 그 속에 있는 문제들을 다스리시고 해결하기 원하신다.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인도해 주셨다!라는 우리의 말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응답
 하나님께서 나를 주의 사업에 부르시는 음성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아니면 나 혼자의 상상인가? 나와 가족의 생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확신 없이 그냥 뛰어들 수는 없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양털 뭉치를 사용했던 것처럼, 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무엇을 양털 뭉치로 사용할지를 몰랐다. 그러던 중에 어떤 여집사님이 나를 자신의 교회로 초청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작은 교회이기 때문에 20명 정도밖에 참석하지 못할 것입니다.

 너무 사람이 적어서 오실 마음이 없으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이 말을 듣고 있는데 주님의 음성이 다가왔다. 네가 원하면 이것을 너의 양털 뭉치로 해도 좋다. 나는 그 주말 집회에 강사로 가기로 하면서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 주님, 주님께서 정말 저를 당신의 일꾼으로 부르신다면 그 주말 집회에 사람들이 50명 이상 올 수 있도록 역사 하여 주시옵소서. 50명은 나에게 전화를 한 여집사님이 올 수 있다고 말한 숫자의 2배 반이었다.

 집회 날짜가 되어 나는 그 교회를 찾아가서 제일 앞 자리에 앉은 다음 말씀을 들으려고 오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었다. 설교 시작 시간이 되었는데 교회 안에 모두 8명이 앉아 있었다.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주님, 알겠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군요. 그때 문이 열리면서 한 가족 4명이 들어왔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봐야 12명입니다. 주님. 그런데 그 뒤를 이어서 계속해서 3명이 들어왔고, 다시 4명이 들어왔다. 나는 속으로 계산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와 28명이 되더니 34명으로 늘어났고, 40명이 되더니 곧 48명이 되었다. 설교가 시작되어 정신을 집중하고 말씀을 전하려고 했지만, 마음이 혼란하였다. 사람 수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51명, 60명, 73명, 78명. 드디어 나는 숫자 세기를 중단하였다. 주님, 이제 숫자를 그만 세겠습니다. 답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들어왔고 그 작은 예배당에 더 앉을 자리가 없게 되었다. 내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였고 혀가 자유롭게 되면서 강력한 진리를 설파하였다.

 설교가 끝나고 사람들과 인사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와! 우리 하나님은 정말 멋진 분이시다! 주님, 제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란 말씀이시죠? 말씀만 하옵소서.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는 신학 공부를 못했지만, 주님의 은혜로 광야 신학을 했습니다. 주님, 제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기 원하십니까?

 나의 이런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실제로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어라. 너의 설교는 오늘날 교회 속에서 흔히 듣는 그런 설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너의 개인적 간증을 네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권능과 연결해서 설교하되 기회 있을 때마다 재림의 소망을 강조하여라. 너는 이 산중에서 나와 함께 보내며 발견한 삶에 애착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다른 영혼들을 위하여 너의 행복을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 간증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도록 시골 은신처로부터 너를 가끔 불러낼 것이다. 단순하고 실제적인 복음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그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성경을 무릎 위에 펼쳐놓았을 때, 나는 떨고 있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을 때는 놀라운 감정과 흥분이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현실에 부딪혀야 한다. 행동은 항상 믿음에서 나온다. 복음을 생활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 글을 통하여 받게 되는 도전을 여러분의 삶 속에 실현하는 것이 믿음이다. 말씀을 삶 속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면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선택해야 할 시간이다. 다시는 성령의 음성이 지금보다 더 뚜렷하게 들리는 일이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건강: 갑상선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몸에 일어난 문제가 마음과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을 지적한다면 많은 의사가 갑상선 기능항진증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질병에 걸리면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신경질적으로 변해서 사소한 스트레스에도 짜증을 내기 일쑤이고 충동적으로 말을 함부로 내뱉거나 일을 저질러 놓고 수습하느라 허둥댄다.

갑상선 질환이란?
 갑상선은 갑상선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 기관이다. 목 중앙에 튀어나와 있으며 무게는 15~20g 정도이고, 이곳에서 하루에 분비하는 갑상선 호르몬의 양은 3,000분의 1g 정도이다. 갑상선 호르몬은 음식물을 세포 속에서 대사시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갑상선 질환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갑상선 호르몬이 지나치게 왕성하게 작용해 생기는 항진증이 있고, 기능이 떨어져서 생기는 저하증이 있다. 항진증이나 저하증 모두 갑상선이 붓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목이 볼록하게 붓는다고 해서 모두 갑상선 질환은 아니다. 갑상선 질환은 남자보다 여성에게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난다. 여성 8명 중에서 1명은 갑상선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나타난다. 남성보다 5~8배 높은 비율이다.

갑상선 기능항진증, 스트레스가 문제다!
 집안에 갑상선 질환을 앓은 사람이 많다면 자신에게도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유전적 요인이 있는 질병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유전적 요인을 가진 사람이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면 다른 사람보다 갑상선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고부간의 심한 갈등, 배우자의 사별, 자녀의 사망이나 입시 실패, 불의의 사고, 경제적 파탄 등으로 말미암아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갑상선 질환에 걸리는 여성들이 많다. 남자들은 까다로운 기준을 만족시켜야만 하는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 중에서 많이 나타난다.
 
천연 치료법
 마음의 평화를 갖는 것이 진정한 치료법이 될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 쉬는 경험을 하는 사람은 놀라운 치료를 경험하게 된다. 나를 악하게 대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가 가진 것에 자족하는 정신이 갑상선 기능에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쉼을 얻는 사람은 갑상선 문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감사는 마음에 행복을 가져다준다.
 행복은 소유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고 감사의 크기와 비례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감사와 함께 시작되고 불행은 감사가 사라질 때 시작된다. 작고 평범한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고난과 비애를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다. 행복은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환경보다도 엄마의 존재 때문에 감사한다. 어린아이는 엄마만 곁에 있으면 행복한데, 커가면서 장난감이 있어야 행복하고, 예쁜 옷이 있어야 행복하고, 돈이 있어야 행복하고, 좋은 집이 있어야 행복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말 잘 듣고 신앙 좋은 자녀가 있어야 행복을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엄마라는 존재만 있으면 만족했지만, 커가면서 자신의 소유와 환경 속에 행복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하는 것과 원하는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감사가 사라져 버린 슬픈 삶을 살아가게 된다.
 
 참된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시기 때문에 생기는 감사이다. 이러한 감사가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한 생애를 살아갈 수 있다. 감사와 행복은 갑상선을 치료하기에 넉넉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채식으로 준비된 깨끗한 음식을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하면서 살아보라. 그리고 갑상선 문제가 어떻게 사라지는가를 지켜보라. 이것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하나님의 처방이다.

창조 교실: 사람의 얼굴은 창조를 증명한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창조를 믿을 수 있습니다. 인간 모두는 독특한 표정들을 지을 수 있게 창조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독특한 피하 근육(subcutaneous muscles)들의 조합을 얼굴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유일하게 표정을 만드는 16가지의 공통된 근육들을 가지고 있다고 Nature News(2008. 6. 16.)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분노, 행복, 놀람, 두려움, 슬픔, 혐오를 나타낼 수 있는 5개의 피하 근육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11개의 다른 근육들과 다른 조합을 하고 있어서, 각자 자신만의 특유한 표정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18구의 카프카스인의 시신을 조사했던 연구자들에 의해서 발표된 내용입니다.
 
 이것을 보면, 모든 사람이 표정을 통해서 사회적 의사전달(social communication)을 위해 중요한 감정들을 표현하며, 그것도 각자 자신만의 미묘한 감정 차이를 덧붙여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진화론자들은, 사회적 그룹 내에서 서로 관계를 이루어가기 위해 이것이 형성되고 진화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면, 왜 이런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 사회적 그룹을 이루는 벌, 개미, 떼 짓는 물고기, 새들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표정은 사람만이 가지는 많은 독특한 특성 중 하나입니다. 표정은 동물들과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만이 가지는 지성, 감정, 의지, 사랑, 인격, 신앙 등의 내부의 영적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부여된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외에 복잡한 안면 표정을 가진 동물들이 있습니까? 혹, 침팬지들도 재미난 방법으로 그들의 입술을 비틀 수 있고, 이빨을 드러내고 비명을 지를 수는 있지만, 이타적 사랑, 신념, 고뇌, 엄숙, 감사, 내면의 기쁨 등을 표정을 통해 표현하는 침팬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만이 각자 독특한 얼굴들과 안면 근육의 조합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이 이 세계에서 특별한 역할을 가진 독특한 존재로 창조 받았다는 성경의 기록과 일치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동물들과는 다르게 영혼을 가지고 창조되었음을 의미하지요. 만약 이러한 표정들이 진화된 것이라면, 다른 동물들에서도 얼굴들의 다양성과 표현성이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요? 얼굴을 보라. 우리는 모두 다르다.라고 Nature News의 기사는 말했습니다.

 거울 앞에 달려가 한번 당신의 얼굴을 보세요. 얼굴 근육들을 사용해서 얼마나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증명할 수 있는지 발견해 보세요! 그리고 당신의 근육들을 아름다운 표정을 짓는 데 사용해 보십시오! 오늘도 많은 사람이 당신의 표정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신앙: 1부 - 예수님 재림의 필연성

 요즈음 기독교는 신앙의 근본적인 목적을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많은 숫자의 교인들을 양산해 내는 양적인 성장과 팽창은 있지만, 변질하지 않은 순수한 복음과 가르침의 부재로 질적인 신실한 교인들의 숫자는 감소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가 이렇게 표류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이유는 재림에 관한 강조나 가르침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림은 그리스도인들 최대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나는 재림의 사건이야말로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번 신앙 기사는 재림에 대하여 조명해 보았습니다. 이 기사가 재림을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큰 유익이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연안에 사고로 S-4 잠수함이 가라앉게 되었다. 그 잠수함에 타고 있던 해군 장병 전원은 그만 그 속에 갇히고 말았다. 정부에서 그들을 구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허사였고 그들의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잠수부가 깊은 바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심해 잠수부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바로 가라앉은 잠수함에서 쇠 벽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그 잠수함에 자신의 귀를 바싹 갖다 댄 잠수부는 잠수함 속에서 모스 부호로 이렇게 묻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희망이 있습니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안 가운데 떨고 있다. 점점 더 빈번하게 지구 상에는 천연 재해와 재난들이 일어나고, 통제하기 어려운 질병들이 전염병처럼 범세계적으로 번져나가고 있으며, 테러의 위험과 경제적인 파산과 공황, 또한 대형 사고들과 전쟁과 폭동들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지구의 자원은 점점 고갈되어 식량난과 물의 부족까지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도덕적인 타락과 범죄와 사회현상은 마지막 때가 된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이런 지구에 희망이 있는가?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대답은 물론 있다!이다.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과 희망은 예수님의 재림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셔야만 이 지구 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1) 예수께서 말씀하신 재림의 징조들
 우리의 최대 희망인 예수님의 재림이 매우 가깝다. 성경에는 세상 끝의 징조에 관하여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대답하신 재림의 징조와 사건이 언급되어 있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3~8)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눅 21:10~11)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재난의 시작과 세상의 끝이 가까움을 알리는 천연 재해들이 우리 주위에 속출하는 것을 보면 재림이 아주 아까웠음을 확연하 게 느낄 수 있다. 천연 재해와 재난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사방 바람을 붙잡고 있는 네 천사의 손에서 바람이 서서히 놓이고 있다는 신호이며, 인 맞은 자의 숫자가 점점 차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단은 재난을 통해 준비되지 않은 백성을 무더기로 멸망으로 몰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구원 얻을 그분의 자녀들을 잊지 않고 보호하실 것이다. 우리는 깨어서 재림의 징조들을 살피며 주님의 재림을 맞고자 준비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1.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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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지진이 일어나는 빈도가 최근에 들어 더욱 잦아졌다. 인류 역사상 1900년도 이전까지 릭터 스케일 6.0 이상의 강진은 10번 미만으로 일어났으나, 1900년도 이후에만 6.0 이상 강진이 수십 번 일어났고, 2000년대에 와서는 천 명에서부터 수십만의 사망자를 낸 대지진들이 자주 발생했다. 지진의 잦은 발생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세상의 마지막 징조 중의 하나로서 지축의 흔들림과 함께 지구의 표면과 땅속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구 상에 일어났던 큰 지진들을 살펴보자(오른쪽 하단 도표 참조). 2009년에 들어서도 세계에서 여러 차례의 지진이 일어났다. 
 
 4월에는 이탈리아 중부 라퀼라에서 6.3도의 지진이 일어났는데, 이 지진은 1월부터 시작된 백여 번의 미진 끝에 온 것으로 235명의 사망자를 냈고, 많은 유적이 소실되었다.
7월에는 중국 남부의 윈난성에서 규모 6.0의 강진이 발생하여 126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규모 5.2의 여진을 비롯해 426차례의 여진이 잇따라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으며 386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2. 기근
 성경에 예수께서 언급하신 기근은 현재 지구촌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기근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기상으로 꼽을 수 있지만, 많은 경우의 기상 이변은 인간의 문명이 불러온 재앙인 것을 식자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인류는 산업 혁명 이후 공업의 발전으로 지구의 환경을 파괴해 왔다. 무분별한 개발과 부족한 환경 보호 의식이 환경 파괴와 오염을 가속화했는데, 전체 지구 산림 면적의 1/3을 차지하는 아마존 열대 우림은 무분별한 개발로 절반가량이 파괴되었고, 중국 내륙의 삼림 훼손으로 동아시아 상공은 1만 톤의 먼지인  황사 현상 이 발생하여 각종 질병과 중금속의 피해를 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지진이 일어나는 빈도가 최근에 들어 더욱 잦아졌다. 인류 역사상 1900년도 이전까지 릭터 스케일 6.0 이상의 강진은 10번 미만으로 일어났으나, 1900년도 이후에만 6.0 이상 강진이 수십 번 일어났고, 2000년대에 와서는 천 명에서부터 수십만의 사망자를 낸 대지진들이 자주 발생했다. 지진의 잦은 발생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세상의 마지막 징조 중의 하나로서 지축의 흔들림과 함께 지구의 표면과 땅속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구 상에 일어났던 큰 지진들을 살펴보자(오른쪽 하단 도표 참조).
 2009년에 들어서도 세계에서 여러 차례의 지진이 일어났다.     4월에는 이탈리아 중부 라퀼라에서 6.3도의 지진이 일어났는데, 이 지진은 1월부터 시작된 백여 번의 미진 끝에 온 것으로 235명의 사망자를 냈고, 많은 유적이 소실되었다. 7월에는 중국 남부의 윈난성에서 규모 6.0의 강진이 발생하여 126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규모 5.2의 여진을 비롯해 426차례의 여진이 잇따라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으며 386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이러한 지구 환경의 훼손은 가뭄과 기근을 가져오는데, 그로 말미암은 생태계의 파괴와 동식물의 멸종으로 식량난이 증가하고 있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 FAO는 로마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 기아 인구가 10억 2,000만 명이라고 밝혔다. 이 중 6억 4,200만 명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2억 6,500만 명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등 대부분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다.

3. 기근의 원인
파괴되어 가는 열대 우림

  생태계의 보고 라고 불리는 아마존 강 유역의 열대 우림에서 배출되는 산소는 지구의 혼탁한 공기를 정화하여 이 지역을  지구의 허파 라고 부른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무분별한 개발로 지구 상 열대 우림의 반이 사라졌고, 이 때문에 기상에 변화가 오게 되었다.

지구 온난화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꼽아지는 지구 온난화는 지구의 온도를 높여 태풍, 홍수, 가뭄, 질병, 농사의 어려움, 사막화, 엘리뇨, 라니냐 등의 이상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 가스가 주원인이다. 21세기 안에 지구의 온도는 2~4 상승할 것으로 보이며, 이로 말미암아 기상 이변인, 폭염, 가뭄, 홍수, 농사의 어려움, 질병, 해수면 상승 등이 뒤따를 전망이다. 벌써 바닷물 온도의 상승 때문에 일어난 태풍, 홍수, 가뭄 등의 기상 이변으로 지구촌 곳곳에 심각한 재난이 발생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온실가스가 지금처럼 증가할 경우, 2010년에는 지구 평균 기온이 3.5가량 상승하고 해수면도 50~95㎝ 정도 높아질 것으로 경고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 태국 방콕, 이탈리아 베네치아 등 세계 대다수 저지대가 물에 잠길 뿐만 아니라 해안을 낀 농경지 등이 침수돼 더 많은 기아 인구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그린랜드와 남극의 얼음이 녹고 있으며, 이 때문인 환경 대참사를 우려하고 있다.

사막화 현상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수분이 증발하고 강수량이 감소함에 따라 사막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여기에 삼림 벌채까지 겹치면서 사막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도 기근의 원인이 되고 있다.

부족 현상
 현재 전 세계 국가 3분의 1이 물 부족 국가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경제 성장, 인구 증가 등에 따른 물 소비량이 증가한 것이 물 부족의 큰 원인이지만, 그보다 산림의 훼손 등 환경오염도 큰 원인을 차지한다. 현재와 같은 물소비 추세가 계속될 경우, 2025년경에는 세계의 3분의 2에 이르는 지역에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1990년에는 28개국, 3억 3천5백만 명이 물 기근 내지는 물 부족 국가에 포함되었으나, 2025년이 되면 물 기근 국가의 인구는 24억~32억 정도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즉, 세계의 3분의 2에 이르는 지역에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여 10년 내에 물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4. 온역
 예수께서 말씀하신 온역은 현시대에 발생하는 질병에 적용시키기에 가장 알맞다.요즈음 신종 플루로 세계가 떠들썩하다. 이것은 사람, 돼지,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 물질이 혼합된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로서, 2009년 4월 멕시코와 미국 등지에서 발생하고 나서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대륙의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다. 2009년 6월 국제보건기구 WHO에서는 인플루엔자 A(Influenza H1N1)를 대유행(Pandemic) 전염병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기존의 신종 플루 경보 단계를 5단계에서 6단계로 격상시켰다고 공식 발표했으며, 2009년 7월 WHO는 신종 플루 감염자의 수가 9만 명에 근접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이 질병은 아프리카를 제외한 5대륙에 다 퍼져 있으며, 세계적인 사망자 수는 2,0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이 신종 플루는 개체마다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치료제인 타미플루가 별 효과가 없으며, 또 벌써 이 약에 대한 내성이 나타나고 있어 치료의 전망이 어둡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이 신종 플루는 면역력을 떨어뜨려 폐구균이나 세균 질환으로 인한 2차 감염, 폐렴이나 전신 폐혈증 등을 유발하여 사망을 초래하기 때문에 위험한 전염병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WHO는 2009년 가을과 겨울철 독감 시즌에 잠복기를 걸쳐 이 신종 플루가 기승을 떨칠 것을 예견하여 긴장하고 있다.

2) 재림의 필연성
 현재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은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가 있는 것들이 아니다. 기후의 변화를 어떻게 고칠 수 있겠는가? 사람의 인간성이 악해짐으로 생긴 이 기절할 것 같은 타락한 상태를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겠는가? 증가해 가는 전쟁과 테러와 산처럼 쌓아 놓은 전쟁 무기들과 지구를 자멸시킬 가공할 만한 무기들을 어떻게 치울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점점 더 심해만 가는 천연 재해들은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겠는가? 인구의 폭등과 식량의 부족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지금 대면하는 경제 침체와 공황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가? 또한, 낡아 가는 지구와 심각한 자원의 고갈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만 해도 난감한 문제들이 우리 앞에 산재해 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그것도 속히 오셔서, 이 지구를 원래의 아름답던 상태로 되돌려 놓아 주셔야 한다. 그 방법 이외에는 우리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 예수님의 재림은 하나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이 지구 문제의 필연적인 해결 방법이요, 믿는 자들의 유일한 소망이다. 지구에 사는 온 세상 사람들과 우주의 거민들과 천사들이 죄에 대하여 지칠 대로 지쳐서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참아 오셨다.
 
 이제 우리는 정말 두 손을 들고 굴복하며 "하나님! 이제는 속히 오셔서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옵소서!"라고 외칠 때가 되었다. 이제는 드디어 죄의 장본인인 사단이 완전히 없어져 버릴 때가 왔다. 그리고 그 사단에게 붙은 죄들과 그와 함께 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죄인들이 사라져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 재림에 대해 계속하여 연구해 보자.

신앙: 2부 - 하늘 아버지가 오고 계신다!

 어린 소년이 강가에 서 있었다. 그 소년은 무엇인가 한참 열심히 기다리는 듯이 보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물었다.

 얘야! 무엇을 기다리고 있니? 네, 저를 태우러 오는 배를 기다리고 있어요. 얘야! 여기는 배가 서는 선착장이 아니란다. 배는 여기에 오지 않을 거야. 아녜요. 우리 아빠가 꼭 나를 태우러 온다고 약속하셨어요. 사람들의 만류에도 어린 소년은 계속 강가에서 기다렸다. 그러자 얼마 후 고동 소리가 들리더니 큰 배가 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소년은, 아빠! 여기예요. 여기!라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소년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 아빠는 꼭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분이에요. 선장이시거든요? 성경에는 신실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놓으신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다시 오시겠다는 재림의 약속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복스러운 소망이며 위대한 복음의 결정이다.

1) 재림, 그 놀라운 사건

 재림, 그토록 사랑하며 기다리던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시는 날, 그리던 주님의 얼굴을 친히 대면하여 보는 날! 재림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감격에 떨게 하는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세상의 죄 역사가 드디어 끝나고, 모든 고통과 고난과 슬픔이 끝나며, 이 지구가 드디어 구속함을 받게 되는 재림의 날, 우리를 사랑하사 목숨을 버리신 주님을 만나 하늘 본향으로 돌아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재림의 날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격스러울 것인가! 또 안식 중에 잠들어 있는 사랑하는 자들이 부활하여 영원히 기쁨을 함께 나누게 될 그 재림의 날은 얼마나 놀라운 일이 될 것인가!

 머지않아 예수께서 오실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분의 오심은 너무도 놀랄 만한 일이 될 것이다. 밤중, 곧 지상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 능력을 나타내실 것이다. 성경은 그 사건을,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계 16:17)온다고 묘사한다. 그 큰 음성은 지구를 흔들고,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계 16:18)던 그런 큰 지진을 일으킨다. 산들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온 땅은 대양의 파도처럼 부풀어 오른다. 지구의 표면은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며,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계 16:19,20)어질 것이다.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계 6:14)운다.

 땅과 자연계가 흔들리고 혼돈이 생기지만, 재림을 기다리던 하나님의 백성은, 인자의 징조(마 24:30)를 보고 알아차릴 것이다. 그분께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실 때, 모든 눈이 생명의 왕을 본다. 그분은 이때에 슬픔의 사람으로서가 아니고 승리자요, 정복자로서 그분의 소유된 백성을 되찾으려고 오신다. 그분은 가시관 대신에 영광의 면류관을 쓰신다.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 19:16)
 
 예수님께서 오실 때 그분을 자신의 개인의 구주로 인정하지 않고, 또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고 그 뜻을 생애에 실천하지 않았던 자들은 큰 실망에 사로잡혀서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계 6:15~17)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오랫동안 기다려 온 자들은 기쁨에 가득 차 즐거운 함성을 외칠 것이다.

 재림의 날은 영광스러운 절정의 날이 될 것이다. 공중으로부터 점점 지상으로 가까이 오시는 예수님은 자는 성도들을 무덤에서 일어나라고 부르시고 천사들에게,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마 15:51)라고 명령하실 것이다. 그때 죽은 의인들이 그분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의인들은 순식간에 홀연히(고전 15:51) 변화되어, 영화로운 불멸의 몸을 입고 부활한 의인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토록 그분과 함께 살기 위하여 하늘로 끌려 올라갈 것이다.  재림, 얼마나 놀랍고 기쁜 사건인가! 얼마나 사모할 만한 날인가!

2) 약속된 재림의 확실성

 예수께서는 다시 오시겠다고 분명한 약속을 성경에 해 놓으셨다. 재림의 약속은 성경에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은 마치 재림에 관한 성경 절을 읽어본 적이 없는 듯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고 있다. 또한, 주님이 나타나는 때에 그분과 똑같이 변화되어 있어야 함에도 세상과 짝하여 정신없이 살고 있다.

 요즈음은 성경에 있는 재림의 약속에 대하여 관심을 표하거나 재림을 강조하는 설교는 교회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사도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재림의 약속을 굳게 믿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복스러운 소망(딛 2:13; 히 9:28)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성경의 모든 예언들과 약속들이 재림 때에 성취될 것으로 기대했다(벧후 3:13; 사 65:17).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생애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그분과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과 천사들과 대면하여 교제를 나눌 그날을 사모하며 열정적으로 기다린다.

 재림의 확실성은 믿을 수 있는 성경의 보증에 근거한다. 예수님께서는 죽음 직전에 제자들을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당신의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내가 다시 오(요 14:3)겠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의 재림 약속을 믿고 기뻐하였다. 그들은 모든 난관을 꿋꿋하게 견뎌 냈고, 이 약속이 가져다주는 보증은 그들의 용기와 힘을 새롭게 해주었다. 그들의 주님은 그들을 아버지 집으로 데려가려고 다시 오실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초림하실 것이 예언되었던 것처럼, 그분의 재림도 모든 성경을 통하여 예언되어 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홍수 전에도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대하여 에녹에게 말씀하셨다.

 에녹은,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유 14,15)고 예언하였다.심문받으실 때, 그리스도는 그분께서 재림하실 것에 대하여 확실하게 말씀하셨다.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 26:64)
 
 사도 바울은 재림을 기다리면서 길이 참고 인내할 것을 강조하면서,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히 10:37)고 했다. 요한의 영감적인 계시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속히 오실 것을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7,12,20)

신앙: 3부 - 비밀휴거인가요?

 휴거에 대한 문제는 독자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받는 질문이다. 현 기독교 안에는 비밀 휴거와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에 관한 각각 다른 의견과 해석들이 혼란스럽게 난립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재림이 가까움을 알려 주는 징조들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특별히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에 속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다. 그분은 재림 전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재림의 방법에 관한 가장 성서적인 해석은 무엇인지 질문과 답으로 연구해 보자.

질문 1.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보게 될 것인가?
답: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 그리스도는 어떤 특별 부류의 사람들, 곧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 거하는 모든 살아있는 자들에게 나타나신다. 주께서 하늘 공간을 통하여 서서히 강림해 오실 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의 눈이 그를 볼 것이다. 지구 상 모든 나라의 악인들이 다 같이 고개를 들고, 온 하늘을 가득히 채우면서 오시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것이다.

질문 2.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양상에 관하여 예수님 승천 때에 두 천사는 무슨 증언을 하였는가?
답: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9~11) 이 성경 절에 나오는  저희 보는 데서, 보이지 않게,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쳐다보느냐?, 본 그대로와 같은 다섯 가지 표현들은 예수님의 승천은 실제적 사건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어떠한 신비적인 꿈이나 환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주님께서 먼 하늘로 올리워 가서 사라지는 모습을 육신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천사는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주의 오심은 그분께서 승천하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것이다.

질문 3. 의인들과 악인들, 두 무리 모두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 그분을 보게 될 것인가?

답: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성경은 의인들과 악인들이 동시에 그분의 오심을 목격할 것을 분명히 알려 준다. 그리스도가 비밀리에 오시며, 의인들의 부재중에 남아 있는 인류에게만 주님의 오심이 알려지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은 옳지 않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비밀스러운 것이거나, 혹은 불가시적(不可視的)인 경험이 아니고 가시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즉,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며, 실제적이며, 직접적이요, 세계적인 것이 될 것이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27) 살아있는 악인들은 그분의 오심을 보고 통곡할 것이며, 살아있는 의인들은 주의 재림을 보고 기쁨으로 소리질러 찬양할 것이다. 또한, 죽었던 의인들은 부활하여 재림을 목격할 것이며, 그리하여 부활한 의인들은 살아있는 의인들과 함께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하늘로 승천할 것이다.

질문 4. 그리스도는 조용하게 오실 것인가?
답: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그리스도의 재림은 눈으로는 물론이요, 소리에 의해서도 알려진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큰 나팔 소리(마 24:31)가 그분의 백성을 모으는 일에 수반된다. 비밀리에 오시는 일이란 없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은 능력과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마 16:27) 오신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 재림의 영광을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묘사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백마를 타고 무수한 하늘 군대들을 거느리고 오신다고 묘사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천천만만의 천사와 함께 영광스러운 모습과 큰 소리로 오실 것이다(계 19:11~16). 그런데 놀라운 광경과 소리는 죽은 자들이 깨어 무덤에서 일어날 정도로 굉장한 일일 것이다. 그 외치는 음성과 나팔 소리는 해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 다 들릴 것이다. 나팔은 조용한 악기가 아니며, 나팔은 불어서 많은 사람에게 들리게 하려고 만들어진 악기이므로 재림 시에는 천지가 진동할 만큼의 엄청난 소리가 동반될 것이다.

질문 5. 휴거는 어떤 가르침인가?
답: 매우 인기 있는 가르침인 휴거는, 예수께서 세상의 종말이 오기 7년 전에 오셔서 선한 사람들을 비밀리에 살짝 데려가신다는 가르침이다. 이 휴거의 관념은 아무런 성서적 뒷받침이 없으며, 의인들의 신비한 휴거 이후에 7년 동안 악인들이 지상에서 계속해서 생존한다는 가르침은 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 가상 이야기다. 바울은 말하기를 예수께서 강림하셔서 그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얻으실 때 악인들은 죽임을 당한다고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되지 못한 자들의 최후 운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살후 1:7~10) 그러므로 성경은 의인들이 영화롭게 되는 동시에 주의 은혜를 거절한 자들은 그분 임재의 빛에 의하여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곧, 의인들이 영원불멸의 몸을 받는 그 같은 시간에 악인도 심판받는다고 성경은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승천은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며, 비밀 휴거는 성서에 따른 진리가 아닌 하나의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

질문 6. 휴거설에 사용되는 주님께서 밤중에 도적같이 임하실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답: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2~44) 이 말씀의 의미는 사람들이 밤중에 오는 도적을 예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갑자기 맞이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도둑처럼 아무도 모르게, 살짝 비밀스럽게 우리에게 오실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주의 재림은 거의 모든 사람이 기대하지 않을 때에 이루어질 것이며, 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는 말이다. 주의 오심은 이 땅의 사람들이 가장 적게 기대하고 있을 때에 나타날 것이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때에 올 것이다. 베드로도 그리스도의 오심을 묘사하면서 똑같은 말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벧후 3:10)

질문 7. 휴거에서 자주 인용되는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함의 의미는 무엇인가?
답: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눅 17:34) 문제의 성경 절인 누가복음 17장 34절부터 37절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 문맥의 전후를 읽어 보며 연구해 보자. 먼저, 같은 장 26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그분이 오실 때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홍수가 나기 전에 어떤 이들은 데려감을 받았고, 어떤 이들은 버려둠을 받았다. 데려감을 받은 자들은 방주로 들어가 구원을 받았고, 남아 있는 자들(버려둠을 당한 자들)은 흉융한 물결에 의해 다 멸망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또 다른 예화를 가지고 설명하시었는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28~30절)라는 말씀 또한 같은 의미로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다. 롯의 때에 어떤 이들은 도시로부터 안전하게 데려감을 받았고, 어떤 이들은 버려둠을 당했다. 남아 있는 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모두 불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그러므로 이 성경 절들을 해석할 때에, 그 전에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던 예증들과의 일치성을 꼭 마음에 두어야 한다. 매 경우 의인을 악인으로부터 골라내는 일이 있고 나서 악인이 죽임을 당한 것을 알 수 있다. 노아와 롯의 때에 버려둠을 당한 자들이 죽음을 당했던 것처럼, 버려둠을 당하는 자들은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계속되는 성경 절을 읽으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를 더욱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죽음)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37절)

 예수께서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그들이 어디에 버려둠을 당할 것인지를 물었다. 주님의 대답은 명확하게 버려둠을 당할 자들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곧, 버려둠을 당하는 자들의 시체는 독수리들이 뜯는 먹이가 될 것, 즉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성경 절에는 마지막에 구원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들이 갈라지는 일이 어떤 비밀스러운 휴거의 방법을 통해서 될 것이라는 암시가 전혀 없다.
 
 먼저 비밀 휴거가 있고, 7년 후에 다시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비성서적인 두 단계 재림의 가르침은 사람들을 재림을 위해 준비하는 일에 게으르도록 유도하므로 매우 위험스러운 가르침이다. 악인들은 예수 재림 시에 버림받아 멸망하는 것이지, 비밀 휴거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7년 환난기를 통과하면서 회개하고 구원받을 또 다른 두 번째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공중 재림 이후에 이 지상 어디에도 살아있는 사람이란 없을 것이며, 소위 7년 대환난이라는 것도 전혀 성서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신앙: 4부 - 재림의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왜 재림하시는가? 재림의 목적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자. 우리 인간들도 재림을 고대하지만, 재림의 순간을 가장 기다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이 땅에 그분의 백성을 찾으려 다시 오실 재림의 순간을, 그 순간의 감격을 마음 졸이시며 기다리고 계신다. 재림의 목적과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죄의 역사 종결을 위하여
 예수께서는 재림하셔서 죄의 역사를 끝내실 것이다.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지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시 104:35 상단),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말 4:1)

1. 하나님의 몫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죄는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고통과 슬픔과 부조화를 가져왔다. 범죄한 이 지구는 하나님의 우주의 질서를 망쳐 놓았으며, 범죄한 인간은 사랑의 하나님 가슴에 너무나 큰 슬픔과 비극을 가져왔다. 아담과 하와로 인해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을 때, 죄 때문에 세상이 멸망하게 된 것도 하나님께 고통이었지만, 더 큰 고통은 사랑으로 창조한 하나님의 자녀인 인간과 헤어져 분리되어 사시게 된 것이었다. 소멸하시는 불이신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과 함께 거할 수 없었으며, 죄를 해결하시지 않고는 지구가 안전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인간과의 사이를 분리시킨 죄를 해결하시고 헤어진 인간과 다시 함께 거하시기 위해 구속의 경륜을 세우셨다.

 구속의 계획은 하나님께는 너무나 큰 모험이며 고통이었지만, 죄로 말미암아 파멸로 달려가는 지구의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크신 사랑으로 자신의 몸 일부와 같은, 삼위일체 중 하나이신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제일 처음 루스벨이었던 사단이 하늘에서 추방되었을 때, 그는 이 지구를 그의 나라로 삼으려고 단호히 결심하였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그들을 지배하게 되었고 이 세상의 통치권을 찬탈하였다. 그는, 죄의 삯은 사망이고 죄인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타락한 인류는 그의 합법적 백성이며 이 세상은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였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경륜을 통해 죄의 값을 치르시고, 인간이 그분의 은총을 회복하고 다시 에덴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던 것이다. 또 그뿐만 아니라, 구속 받은 자들이 살 처소인 하늘 본향과 성도들이 받을 놀라운 상급까지 마련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제는 이 세상 죄의 역사를 종결시킬 길이 다 준비되었다. 죄의 종식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몫을 다 하신 것이다.
 
2. 인간의 몫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11:40)  죄의 역사는 빨리 끝나야 한다. 재난과 재해와 부조리와 죄의 결과로 빚어지는 비극 속에서 이 세상은 구원을 받아야 한다. 죄의 종결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실 몫은 다 담당하셨다. 그러나 이제 죄를 종식하기 위해 인간이 담당해야만 하는 몫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의 역사를 인간 각 개인이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것이다.  곧, 예수님 보혈의 공로를 받아들이고, 그 은혜로 죄를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마음과 생애에서 죄를 승리하고, 죄가 종식되도록 성령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보혈과 구원은 누구에게나 베풀어졌다. 그러나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개인적으로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는 사람만이, 주님 보혈의 피를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는 것이다.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완전한 속죄와 회복이 각 사람의 마음속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역사를 자기 속에서 온전히 이루는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귀한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의 사랑과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하나님의 참 자녀로서, 다시는 자신의 죄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겠다는 결심과 각오를 한 자들이며, 또한 주님께 대한 충성과 사랑이 충만하여 예수께서 보여 주신 모범의 길을 걸어가며,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아 죄를 미워하고 회개하며 승리하는 사람들이다.  곧, 자신의 뜻과 의지를 주님께 온전히 굴복하고, 마음속에 예수님의 임재를 끊임없이 소유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이유 중 또 하나의 아주 중요한 이유는,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고 미워하며 정결한 생애를 산 사람들을 다시는 죄의 유혹이 없는 세계, 다시는 속죄할 필요가 없는 하늘로 데려가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준비되고, 구속의 역사에 있어서의 인간이 자신의 몫을 다할 때, 예수께서는 재림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때에 완전한 구속의 계획이 끝나게 될 것이다.  죄의 역사는 곧 종결될 것이다. 지금, 인 맞은 자의 숫자가 거의 다 차가는 신호로 세상에는 많은 재난과 재해들이 일어나고 있다.  재림이 가까웠다.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자!

2) 심판하시기 위하여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살후 1:7,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님 재림의 이유가 심판을 위해서 오시는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정한 기한이 다 차면 심판하러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이다.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의 기간, 곧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시간과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이룰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준 다음, 은혜의 시간이 마치고 하늘에서 예수님의 중보 역사가 마쳐지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구원받을 백성과 멸망 받을 사람들을 나누실 것이다. 성경에 언급된 재림 시에 있을 일들과 일어날 사건들에 대하여 차례대로 살펴보자.  재림 때에는 심판과 함께 죽음과 부활의 사건들이 일어나 희비가 교차할 것이다.

1. 죽은 의인들의 부활 - 첫째 부활 : 생명의 부활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2)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무덤 속에 있던 의인들이 부활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세상을 진동시키는 큰 주의 나팔 소리가 나고, 세상 역사에 결코 있어 보지 못한 큰 지진이 나며, 무덤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그 가운데서 깨어 살아 나오는 죽었던 의인들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기쁨 속에서 헤어졌던 그들의 친지들을 만나 찬양을 부르며 주님을 맞이하러 공중으로 끌어올려 갈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 언급된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첫째 부활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5,6)  의인들, 곧 무덤 속에서 잠자던복이 있고 거룩한 자들이 영원한 생명과 불멸의 몸을 입고 깨어나는 것을 성경은 첫째 부활이라고 부른다.
 죽은 의인들의 부활은 장엄한 광경을 연출할 것이다. 수 세기 동안 자고 있던 수많은 의인이 마치 하룻밤을 자고 난 것처럼 깨어날 것이다. 얼마나 경이로운 일일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신을 괴롭혀 온 통증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그저 만지거나 소리를 들어야만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던 소경들의 눈이 열리게 될 것이다.

2. 의인들의 승천

 죽은 의인들이 부활한 후, 그들과 산 성도들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도록 끌어올려진다(살전 4:17). 죽었다가 살아난 의인들과 살아서 주님을 맞이한 성도들은 함께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갈 것이다. 부활한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일어날 때에 그들은 불멸의 몸을 입고 일어나며, 그때에 모든 살아있는 성도들도 순식간에 불멸의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예수님의 발은 그때 땅을 밟지 않을 것이며, 모든 구원받은 자들은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서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된다.
 
 그 우주적인 재회는 기나긴 지구의 역사 가운데 가장 황홀하고 감동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구원받은 자들을 데려갈 장소를, 내 아버지 집, 혹은 처소라는 말로 묘사하셨다(요 14:1~3).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처소는 천년기가 끝나기 전에는 이 땅에 내려오지 않을 새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 시에 의인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될 때, 그들의 목적지는 하늘이지, 그들이 방금 떠난 이 지구가 아니다.

3. 재림 때에 악인들이 죽임을 당함
 재림의 때에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천천만만의 천사와 함께 오시는 모습을 백마를 타고 오시는 것으로 묘사한 계시록의 말씀처럼, 예수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와서 세상의 반역한 나라들을 심판하여 치실 것이다. 그리하여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죽임을 당하고, 사단을 따르던 남은 악인들이 다 죽을 것이며, 살아남은 자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악인들은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계 19:21)게 될 것이다. 또한, 재림의 광경과 재림 때에 죽임을 당할 악인들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계 6:12~16)

4. 땅이 황폐해짐
 의인들이 주님과 함께 지내려고 승천하고 악인들은 그분이 나타나실 때에 죽임을 당하고 나면 지구는 한동안 거민들이 없이 지내게 된다. 성경은 그런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렘 4:23~25) 혼돈하고 공허하며라고 한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용어를 예레미야가 사용한 사실은 지구가 창조의 시작 때처럼 혼돈해질 것을 가리킨다.

5. 사단이 결박됨
 예수께서 재림하여 의인을 데려가신 후, 사단은 결박되어 황폐된 지구에 갇혀 있을 것이다. 의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 승천하였으며 악인들은 진멸되었다. 재림 때에 일어난 지진과 뒤집힌 땅의 표면들과 파괴로 말미암아 폐허로 변해 버린 아무도 살지 않는 지구, 이제 자기가 유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무도 없는 황폐된 지구에 갇힌 채 사단은 자신이 거둔 결과를 적나라하게 목격할 것이다. 성경은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계 20:1~3)

 이제 우주는, 사단이 이 지구를 통치한 결과, 곧 하나님의 법은 공평하지 못하므로 자기가 더 자유롭고 훌륭하게 다스릴 수 있다고 장담하며 지구를 다스린 결과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저주와 혼란과 황폐만 남은 광경을 성경은 무저갱이라고 불렀는데, 이 단어는 헬라어 아뷔소스에서 온 것으로 모든 것이 혼돈된 상태를 말한다. 바로 이때에 일어나는 사건이 이스라엘의 성소 봉사에서 있던 대속죄일의 아사셀 의식에 예표되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여호와의 염소의 속죄 피로써 성소를 정결케 한다. 이 속죄가 완전히 이루어지고 나서 아사셀, 곧 사단을 표상한 염소에 관한 의식이 시작된다.
 
 대제사장은 그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아사셀 염소의 머리에 두(레 16:21)었다. 그리고 그 염소는 광야, 곧 무인지경(레 16:22)으로 쫓겨났다. 하늘 성소에서 당신 백성의 완전한 속죄를 위하여 봉사해 오신 그분께서는 이 구속 사업과 하늘 성소의 정결을 완성하시면, 그분 백성의 죄를 악의 창시자인 사단에 전가하실 것이다. 사단은 그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범하게 한 모든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미리 정한 사람"이 아사셀을 무인지경으로 끌고 간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거민이 없는 황폐한 지상으로 추방하시는 것이다.

신앙: 5부 - 천년기

 예수님께서 인간의 형상으로 처음 이 땅에 오신 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눈에 보이도록 이 땅에 임하시는 일이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성경에 약속된 예수님의 두 번째로 임하시는 재림의 사건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세 번째 오시는 삼림의 사건도 있을 것이다. 삼림과 천년기에 대하여 공부해 보자.

 성경에는 천년기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요한은 영감의 계시에서 1,000년이 시작될 때, 용,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계 20:2)이 결박되어 무저갱(계 20:3)에 갇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핍박하고 기만하는 사단의 활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어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될 것을 알려 준다(계 20:3). 기독교 내에는 천년기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들이 많이 존재한다. 성경이 말하는 천년기에 관한 정확한 해석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지상에서 평화와 번영의 복천년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인 가르침이 아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예수께서 그분의 백성을 영접하시기 위해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천년기가 절대 시작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재림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는 성경 요한계시록 19장과 20장은 함께 연결된다. 이 두 장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 이 두 장은 그리스도의 재림(계 19:11~21)과 재림 후에 바로 계속되는 천년기를 묘사한다. 그리고 그 일련의 묘사는 천년기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시작됨을 알려 준다. 질문과 답의 형식으로 이해를 도와 본다. 

1) 천년기가 시작할 때에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
1.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 .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살전 4:16)

2. 죽은 의인들이 첫째 부활에 참여한다 . -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6)

3. 살아있는 악인들이 진멸한다 . -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살후 1:7,8),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 2:8), 요란한 소리가 땅끝까지 이름은 여호와께서 열국과 다투시며 모든 육체를 심판하시며 악인을 칼에 붙이심을 인함이라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대풍이 땅끝에서 일어날 것이라. 그날에 나 여호와에게 살육을 당한 자가 땅 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그들이 슬퍼함을 받지 못하며 염습함을 입지 못하며 매장함을 얻지 못하고 지면에서 분토가 되리로다.(렘 25:31~33; 사 11:4 참조)

4. 모든 의인이 하늘로 올리어진다 .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5. 사단이 결박됨 . -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계 20:1~3)  천년기 동안에 사단은 심히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의 사자들과 함께 황폐한 지구에 갇힌 그는 그가 일생 동안 끊임없이 수행해 온 기만을 더는 할 수 없다.  그에게는 하나님과 그분의 계명에 반역한 결과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는 선악의 대쟁투에서 그가 담당했던 역할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사단은 그에게 책임이 있는 모든 죄악 때문에 당할 무서운 형벌에 대한 공포를 안고 미래를 바라볼 뿐이다.

2) 천년기 동안의 사건들 
  1. 지구는 황폐된다 . -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 이는 여호와의 말씀에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렘 4:23,27) 땅은 황폐되고 폐허가 된 지구 땅덩어리 속에 사단이 갇혀서 1,000년을 지낼 것이다.

2. 의인은 하늘에서 심판하는 일을 한다 . -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계 20:4)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고전 6:2~3)

 예수께서는 재림하실 때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하늘, 곧 그분께서 마련해 두신 처소로 데려가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기는 자들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계 2:26)를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천년기 동안 이루신다.  다니엘은 계시에서 주의 원수들과 반역하는 세력이 멸망한 후에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바 되(단 7:27)는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께서 첫째 부활 때 일으키신 의인들과 살아서 구원을 받은 의인들은 하늘에서 예수님과 함께 1,000년 동안 다스릴 것이다(계 20:4).  다스린다는 의미 속에는 악인들에 대한 심판이 포함되어 있다.  요한은 성도들이 천년기 동안에 심판에 참여할 것을 보았다. 그는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계 20:4)라고 한다.  그런데 천년기의 심판은 누가 구원받을 것인지, 잃어버린 바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심판이 아니다. 그 심판은 재림 전에 다 결정되었다.

 재림 때에 부활하거나 승천하지 못한 모든 자는 영원히 구원받지 못한다. 의인들이 참여하는 심판은 악인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의인들의 의문을 풀어 주는 데 목적이 있다.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하늘에 없음을 발견할 때에, 성도들은 기록들을 조사함으로써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악인들을 심판하는 시간으로서 1,000년을 할당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한 그의 사역에 대하여 그 어느 한 사람의 마음 가운데도 의혹이 남지 않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악인들이 형벌을 받게 될 때에, 모든 성도가 그 형벌은 마땅한 것이며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의인들이 심판에 종사하는 천년기 동안 그들은 각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르신 하나님의 눈물겨운 노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죄인들을 위해서도 참으로 열렬하고 꾸준한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신 것에 대하여 영원히 만족할 것이다.  그들은 죄인이 얼마나 무관심하고 완고하게 그분의 사랑을 배척하고 거절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의심은 죄의 기초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의심을 품을 어떤 기회도 영원히 종식하므로 죄가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이 천년기의 심판의 시간에 이런 의문들에 대하여 대답을 하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의 행사가 온 천하에 계시될 것이다.
 

신앙: 6부 - 예수님의 세 번째 강림(삼림)

 천년기가 끝나고 예수님께서 성도들과 이 땅으로 내려오시는 삼림의 사건이 있게 된다.

 천 년 동안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한 성도들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예수님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의 보좌에 둘러서서 찬양하고 경배도 하며, 또 영적으로 그리고 모든 면에서 서로 통하는 성도들과 함께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기쁨과 즐거움을 나눌 것이다. 또한, 우주를 여행하고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죄를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죄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구원받은 죄인들의 간증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죄의 고통과 죄로부터의 해방의 기쁨과 자유에 대하여 들으며 온 우주의 거민들은 함께 기뻐할 것이다. 또한, 천 년 동안 의인들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악인들을 심판할 때에 하나님의 계명에 비추어 그들의 행위를 조사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건을 결정할 때에 육신의 행위를 따라 악한 자가 받아야 할 형벌이 정해져서 사망책에 있는 그들의 이름 아래 기록될 것이다. 1,000년이 지난 후에 "그 나머지 죽은 자들"-악인들-이 부활하게 되고, 사단은 갇혔던 무활동 상태에서 놓여날 것이다(계 20:5,7). 천년기 끝에 있을 사건들에 대하여 연구해 보자.

1) 둘째 부활
 천년이 끝나면 악인들이 살아나는 둘째 부활이 있을 것이다. 이 둘째 부활은 악인들이 사망에서 일어나 하나님 앞에 나타나서 기록된 판결대로 형벌을 받도록 부활하는 것을 가리킨다.그러므로 요한은 계시록에서 의인의 부활에 대한 기록을 마친 후, 그 나머지 죽은 자(악인)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계 20:5)라고 말한다. 재림 시에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의인들이 무덤에서 첫째 부활, 곧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하시고, 그다음에 또 다른 부활, 심판의 부활(요 5:29)이 있게 하신다. 그것이 악인들의 부활인 둘째 부활, 심판의 부활이다.

2) 그리스도의 삼림
 천년기 끝에 삼림의 사건이 있게 되는데, 그때 그리스도와 성도들과 새 예루살렘 성이 함께 내려오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하여 이 땅에 삼림하신다. 첫째 목적은 천년기 심판의 결정을 집행하심으로 선악의 대쟁투를 영원히 끝내시기 위해, 또한 지구를 정결하게 하시고 새롭게 재창조하시고 그분의 영원한 나라를 그 위에 세우시기 위하여 오신다.

3) 사단의 감금이 끝나고 잠깐 놓임
 1,000년기 끝에 악인들이 부활하면 사단은 감금 상태에서 잠깐(계 20:3) 놓이게 된다.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계 20:7). 마귀는 자유롭게 되어 살아난 악인들 사이에서 교묘하고 악한 기만적인 사업을 계속할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정부에 도전하기 위한 최후의 시도로 땅의 사방 백성을 미혹(계 20:8)하기 위하여 나갈 것이다.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닷모래 같으리라.(계 20:7~8) 악인들은 죽을 때에 소유했던 동일한 반역 정신을 가지고 일어나기 때문에 사단의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4) 하늘로부터 새 예루살렘이 내려옴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천 년이 지나고, 하늘로부터 화려 찬란한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그 성은 영접할 준비가 된 성결한 곳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백성과 천사들과 함께 그 거룩한 성으로 들어가신다. 그 광경에 대하여 구약에는 이렇게 예언되어 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슥 14:5,4)
 
5) 사단과 그 부하들이 성을 공격함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닷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계 20:8,9) 하늘에서 아름다운 성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면, 사단은 그 성을 빼앗으려는 전쟁을 하려고 악인들을 성 주위로 모은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것은 사단이 지구의 최상권을 얻기 위한 마지막 큰 싸움이 될 것이다. 천년기 동안 황폐한 지구에 갇혀서 세력을 빼앗기고 사람들을 기만하지 못하게 되자 사단은 비참해지고 기가 꺾였지만, 이제 악인들이 부활하여 그 수많은 무리가 그의 편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자 그의 야심은 되살아난다.
 
 사단은 그의 부하들과 의논하고, 그다음에는 왕들과 정복자들, 강력한 사람들과 상의하여 새 예루살렘의 부와 영광을 빼앗고자 계획을 세운다. 그는 악인들과 그들의 모든 군대를 그의 군기 아래 모으고, 자신이 그들을 부활시키고 그들을 잔인한 횡포에서 구해 내려고 하는 구주라고 속인다. 그는 자기의 악한 능력과 정신과 힘을 모든 자에게 준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지휘하고 성도들의 진을 공격하여 하나님의 성을 빼앗으려고 계획한다. 그 부활한 악인들의 큰 군중 가운데는 여러 나라를 정복한 왕과 장군들이 있을 것이고, 싸움터에서 결코 패배해 본 일이 없는 용사들과 야망적인 전사(戰士)들이 있을 것이다. 악인들의 성품은 사망을 통해서도 변화되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은 죽을 때와 똑같은 정복욕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악한 욕망에 의하여 행동할 것이다.

 그리스도 희생의 속죄 공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에 들어가기를 완고하게 거절했던 악한 자들이 이제는 그 성을 보고 탐이나 전쟁을 통해 그 성에 들어가 그것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다. 드디어 사단의 진군 명령이 내리면 셀 수 없이 많은 대군이 행진을 시작할 것이다. 가장 강한 전사인 사단이 그 군대를 진두지휘하고, 악한 천사들과 왕들과 전사들이 그를 쫓고, 큰 무리가 각 지휘관의 명령 아래 그를 따를 것이다. 그들은 울퉁불퉁한 지상을 행진하여 하나님의 성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의 문은 예수님의 명령으로 닫힌다. 그러자 사단의 군대는 그 성을 둘러싸고 공격을 준비한다. 성경은 그 전쟁을 곡과 마곡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6) 흰 보좌가 펼쳐짐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계 20:11) 요한은, 하나님의 원수들이 성을 둘러싸고 공격할 준비를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크고 흰 보좌를 설치하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로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흰 보좌 위에 앉으시고 원수들 앞에 다시 나타나실 것이다. 성보다 훨씬 높은 곳, 찬란한 황금 기초 위에 높이 들린 희고 빛나는 보좌가 있다. 그 보좌에 하나님의 아들이 좌정하시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 주위를 둘러싼다. 그때의 그리스도 권능과 위엄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붓으로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빛이 하나님의 성을 충만케 하고, 그 빛이 성문 밖으로 흘러나와 온 세상을 그 빛으로 넘치게 한다. 하나님의 아들, 만왕의 왕께서는 최고의 위엄과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법을 범하고 그분의 백성을 박해한 자들에게 판결을 집행하신다.

 모든 인류는 이 보좌 주위에서 만나는데, 어떤 사람들은 성안에서 안전하게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성 밖에서 심판자의 임재 앞에 두려워할 것이다. 성안에는 속량함을 받은 무리, 그리스도의 사도들, 신실한 성도들 그리고 많은 순교자의 큰 무리가 있다. 그러나 성 밖에는 성도들을 박해하고, 투옥하고, 살해한 자들이 각종 악하고 가증한 자들과 함께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마지막 단계를 집행하실 것이다.

 이 심판을 집행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기록책들이 펼쳐질 것이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기록책들이 펼쳐지자마자 예수님의 눈은 악인들을 주목하신다. 그때 그들은 그들이 지금껏 범한 모든 죄를 깨닫는다. 그들은 그들의 교만과 반역이 얼마나 심하게 하나님의 법을 범하게 하였는지, 그리고 그들의 무관심이 얼마나 오랫동안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를 거절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보좌 위에 십자가가 나타나고, 죄지은 인류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드려진 위대한 구속의 경륜에 대한 장면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에 대한 사단의 비난은 이제 잠잠해진다. 이제 사단도 엎드려 자기에게 내리는 판결의 공의로움을 고백한다. 그러나 비록 사단이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최상권에 대하여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지라도 그의 품성은 변화되지 않는다. 반역의 정신이 강한 급류와 같이 다시 밀려올 때, 사단은 분노로 충만해져 하늘 왕에 대한 마지막 결사적 쟁투를 전개할 것이다. 그는 분노에 사로잡혀 부하들 가운데 뛰어들어가서 그들을 충동시켜 즉시 일대 결전을 하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그가 반역하도록 유혹한 무수한 무리 가운데 이제 그의 최상권을 인정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운명의 선고를 하신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가 다시 죽게 하시는가? 구속함을 받아 하늘에서 천년기 동안에 왕 노릇 하고 심판한 성도들은,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를 심판하고 취급하시는 일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를 살피고 알 기회를 얻었다. 이제는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포함하여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인정해야 할 것이었다. 드디어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를 총망라한 모든 자,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을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심을 고백한다. 그때에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의문은 영원히 해결될 것이다. 죄가 다시는 우주를 훼손하지 않을 것이며 그 거민들을 황폐케 하지 않을 것이다.

7)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악인들을 멸망시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9,10) 이제 악인들에게는 영원한 사망의 선고가 내려진다. 갑자기 불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땅이 깨어지고 그 깨어진 모든 틈에서 맹렬한 화염이 터져 나온다. 모든 바위가 불이 되고, 이 땅이 풀무 불처럼 불타는 날이 마침내 온 것이다.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것들이 타며(말 4:1; 벧후 3:10), 땅의 표면은 마치 용해된 하나의 덩어리, 곧 하나의 거대한 끓는 큰 불못처럼 된다. 이것이 경건치 않은 자들이 받는 형벌과 멸망이다. 그들은 영원한 죽음을 당한다. 요한은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5)라고 말했다.

8) 재창조 - 새 하늘과 새 땅
  땅이 멸망의 불에 싸여 있는 동안 의인들은 거룩한 성안에서 안전하게 있을 것이다. 악인을 태우는 불은 땅을 정결케 하고 모든 저주의 흔적은 일소될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죄의 무서운 결과를 언제나 생각나게 해 줄 영원히 불타는 지옥은 없다(본 월간지 62호 참조할 것).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사단과 악인들을 다 태운 후, 하나님께서 이 땅을 새롭게 재창조하실 것이다. 그때, 새로 창조함을 받은 이 땅이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 것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2)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 회복된 지구는 성경에 예언된 대로, 하나님의 보좌와 장막이 거하시는 곳이 되므로 온 우주의 중심이 될 것이다. 또한, 죄와 자신과 세상을 이기고 승리한 성도들은, 온 우주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속하신 것을 증명하고 기념하는 특별한 증인들이 되어 하나님 보좌 주위에서 특별한 찬양,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 경험의 노래를 부르는 찬양대가 될 것이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마치면서
 재림이 가까워지고 있다. 하늘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재림의 징조들을 보며 깨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세상에 붙어 있는 모든 욕심과 세속적인 야망을 버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바치고 굴복하자! 죄를 버리고 회개하며,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살고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고자 우리의 온 힘을 기울이자! 머지않아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주님께서 마련하신 그 아름다운 하늘 본향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독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질문과 답변: 외계에서 온 두 가지 영을 아시나요?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인기리에 가르쳐지고 있는 거짓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악의 영(악한 천사)들이 만들어 내는 각종 기적과 초자연적인 현상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어서, 결국에는 사단의 함정에 깊이 빠지게 된다. 죽은 사람과 대화했다고 하는 이야기, 죽었던 성자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이야기, 마리아상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는 이야기 등등.  이러한 기적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인지, 아니면 사단의 농간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죽은 자의 상태에 대한 진리를 분명하게 이해해야만 한다(살아남는 이들 제20호 참조).
 오늘날, 사단은 죽은 자가 그 혼백을 통하여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거짓을 퍼뜨려 놓는데 성공하였다. 그래서 사단과 그의 악한 천사들이 죽은 가족이나 친지의 모습을 가장하여 사람들 앞에 나타날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죽은 사람의 영혼이나 혼이 나타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죽은 자의 상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1) 죽은 자는 일체의 감정과 의식과 계획이 없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전 9:5)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계획)가 소멸하리로다.(시 146:4)
2) 죽은 자는 일, 지식 그리고 지혜가 없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전 9:10)
3) 죽은 자는 주님을 기억치 못하고 찬양도 못한다.
 사망 중에서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무덤)에서 주께 감사할 자가 누구리이까?(시 6:5)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시 115:17)
4) 사람의 죽음은 잠과 같은 것이다.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마 9:24)
5) 죽은 자는 부활의 순간까지 잠을 잔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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