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편지: 계시를 보는 믿음

 한 해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견디기 어렵던 순간들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생각해 보며 조용히 한 해의 장을 접어 봅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한 해 동안 일어난 모든 일이 결국 나를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섭리와 배려였음이 가슴 깊이 느껴지면서, 왜 그때는 하나님의 그 자비로운 섭리를 꿰뚫어볼 수 있는 지혜가 부족했을까 슬며시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한 해를 보내는 이 마감의 계절에 선 우리에게는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 너머 그 이상의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계시의 눈, 계시를 보는 믿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계시는 보는 것입니다. 계시를 보는 믿음이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것을 보는 믿음입니다.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소망과 희망을 보는 것이며, 고난과 시련 속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맛보는 것이며, 실망스럽고 의심스러운 인간관계에서 사랑과 신뢰로 회복된 아름다운 관계를 보는 믿음입니다. 현재는 없지만, 미래에 이루어질 일들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 계시를 보는 믿음입니다.

에스겔의 계시
 성경에 기록된 계시들은 대부분 가장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들입니다. 가장 암담할 때야말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계시가 필요하고, 가장 어두울 때야말로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이 계시를 본 때도, 그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고생하고 있던 암담한 때였습니다.

 하루는 에스겔이 슬픔과 절망에 싸여 그발 강가에 나와 있었습니다. 포로로 끌려와 비참하게 사는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그는 낙심에 싸여 하나님께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빛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보좌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 위에 하나님께서 좌정해 계셨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번쩍이는 구름 가운데 네 생물이 있고 그 곁에 바퀴가 있는데,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았고,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는 것이었습니다(겔 1:16,19).

바퀴 안의 바퀴
 에스겔이 본 계시 속의 바퀴는 영적으로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요? 우리의 삶은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같이 복잡하고 엉망으로 뒤엉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절망적이고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 자신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머리를 들고 일어납니다.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닥칠 때, 우리는 그 암담한 시기를 지나면서 의심에 빠지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하고 계시는 걸까?

 에스겔의 계시에서 하나님께서는 바퀴 속에 그분의 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유한한 인간의 눈에는 매우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의 손은 완전한 질서 속에 모든 것을 운행하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의 눈이 열릴 수만 있다면, 인간의 영향력보다 더 높은 힘이 역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바퀴 안에 바퀴가 일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손이 바퀴들 위에 놓여져 있고, 생은 완전한 조화 가운데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 곧 우리의 생애를 인도하는 손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뿐 아니라, 최선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는 믿음이 계시를 보는 믿음입니다.

마른 뼈의 환상

 한번은 또 다른 계시 가운데서 에스겔 선지자가 어떤 큰 계곡 속에 있게 되었는데, 그 골짜기는 온통 죽은 사람의 마른 뼈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당황해 하는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음성은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라는 여호와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겔 37:5,6) 에스겔이 이 계시를 보았을 때, 그는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에 몹시 낙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른 뼈와 같이 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였지요. 하나님의 훈련 도구인 바벨론에게 잡혀와서도 계속 하나님께 반역하는 형편없는 그들의 영적 모습을 보고 에스겔은 깊은 낙담에 빠지려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는 그 뼈들에 생명이 생길 가능성을 전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기 시작하였고, 그러자 흩어진 뼈들이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서로 연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이렇게 해서 생긴 몸에 여호와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시자 그들은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마른 뼈에 생기를
 이 마른 뼈들은 우리 자신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자신을 볼 때 우리는 마른 뼈처럼 보잘것없습니다. 머리로 알기는 알아도 영적으로 행할 힘과 능력이 없는, 즉 영적 근육과 힘줄이 없는 마른 뼈와 같습니다.

 그뿐이 아니지요. 주위 형제들의 모습을 바라볼 때, 어쩌면 우리는 골짜기의 마른 뼈처럼 형편없는 모습만을 볼지 모릅니다. 서로에게 실망하고, 서로 상처를 주는 그런 어그러진 관계들만 볼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우리는 에스겔처럼 불신 섞인 대답을 하지요! 하나님, 부족한 저를 보세요! 그리고 자꾸 쓰러져서 실망을 안겨 주는 저 형제를 보세요! 믿음 없이 실망에 잠겨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정신이 번쩍 나는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너희에게 생기를 주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계시를 보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비록 보잘것없고 부족한 나 자신이지만, 현재는 문제를 일으키고 상처를 주는 행동과 말만 하는 것 같은 형제들로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생기로 역사하실 때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은 얼마나 인간을 변화시키기에 넉넉한지 믿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계시를 보아야 합니다. 마른 뼈처럼만 보이는 내 모습에서, 형제들의 모습에서, 영적인 힘줄이 붙고 근육과 가죽이 붙은 모습, 그리고 영적인 생기가 철철 넘치는 변화된 미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계시를 보는 사람들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이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일들이 보이고,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해되고, 깨달을 수 없었던 일들이 깨달아지며, 이렇게 훌쩍 우리는 세모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야, 비로소 우리의 삶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를 깨닫는 자신을 어김없이 발견합니다. 계시를 보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계시를 보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보이지 않아도 보는 것처럼, 지금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이루어진 것처럼, 계시를 보듯이 미리 꿰뚫어 보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뛰어넘어 미래에 이루어질 기적에 대한 계시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 계시를 보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새로 시작되는 해에는 그렇게 어려워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미리 계시의 눈을 빌려 미래에 기적을 이루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었으면 합니다.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것 같은 우리의 삶의 바퀴를 능력 있는 손에 맡기며 기쁘게 살아가는&.

생애의 빛에서

 세상의 역사는 정말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놀라고 있으니 성경 예언을 아는 자들은 얼마나 놀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경험들을 하고 있겠습니까? 너무나 심한 표현이라고요? 성경 예언의 의미를 잘 모르시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영국의 Gordon Brown 총리는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언급을 하였습니다. "역사가들은 우리의 시대를 뒤돌아보며, 이 시기는 그저 평범한 시기가 아니라, 역사의 방향을 가늠하는 시기로서, 과거에 없었던 역사의 변화를 가져오는 시기요, 한 장면이 지나가고 다른 장면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평가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 역사의 시작과 끝을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예사로운 책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경전이 아닙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타락하여 집 떠난 인류를 사단과 악에서부터 구원해 주신다는 말씀은 성경에서만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역사의 흐름을 정확하게 예언하여 주고 있습니다.

 세상 역사의 마지막을 알리는 예언 중에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예언은 바로 미국의 장래에 대한 예언입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두 뿔 가진 새끼 양 같은 나라. 이 나라가 올라오는 시기, 이 나라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이 나라의 성격, 이 나라가 어떠한 세력과 손을 잡게 될 것이며 나중에 어떠한 세력으로 돌변하게 될 것인지가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예언은 우리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살고 있을지라도 직접적으로 개인들에게 적용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미국에 대한 예언은 짐승의 표의 환난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종말에 이 세상이 어떠한 모습이 될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언은 미래를 점치라고 주신 것보다는 그 예언이 성취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큰 것입니다. 예언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해 주고 현재와 다가오는 일들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더욱더 진지하고 절실할 수 있도록 동기 유발을 시켜 주는 것입니다. 성경 예언은 우리가 가는 길을 비추어 주는 빛이며 여행길의 이정표가 됩니다.

 자, 이제 이 예언에 대하여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셨습니까? 이번 호 월간지를 잘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빛을 가지고 있어야 어둠의 미혹을 받지 않게 됩니다. 이 책자가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가정에 빛이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드립니다.  

가정과 영성: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생애의 빛, 강병국 목사

나를 어렵게 만드는 궁지
 저는 세계 각지에 있는 수많은 우리 신실한 기독교인들과 사귈 기회를 가졌고, 여러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해 왔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많은 교인이 영적인 문제들로 투쟁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고, 제 마음은 그들을 향한 동정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시대를 위한 예언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 때문에 짐승의 표 환난에서 핍박을 받게 될 사람들입니다. 비록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의 교인들을 라오디게아 교인들이라고 부르면서 지구 역사의 모든 교회 중에서 가장 심한 책망을 하고 있지만, 지금 이 시대의 기독교회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존재하게 될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4-18)
 
 라오디게아 교회는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당신의 백성을 불러내실 때 사용하는 통로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사도 요한에 의해 아주 생생하게 묘사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특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다는 사실만을 말하면서 요한계시록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주는 경고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이상한 영적 혼돈 속에서 깊은 잠을 자게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설명하면서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이상하게 혼합된 교회라고 묘사했습니다. 영적 눈이 너무나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교회는 자신의 구역질 나고도 뜨뜻미지근한 상태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가장 가난하고 헐벗은 상태이지만 가장 부요하다고 생각하며, 차지도 덥지도 않고 뜨뜻미지근하여 하나님께서 토하여 내치고 싶은 그런 상태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의 교회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진단
 우리는 사도 요한을 통해서 미리 경고를 받아왔을 뿐 아니라 라오디게아 교회의 치명적인 상태를 치유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치료제 또한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먼 것을 보게 할 안약과 벌거벗은 것을 가릴 흰옷과 가난한 것을 부요하게 할 금을 제공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무도 뜨뜻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인으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는 기별의 끝 부분에 다음과 같이 말씀이 나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19,20) 이 성경 절에서 저를 가장 흥분케 하는 것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비록 자기기만에 빠지고 두 마음을 품은 봉사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모든 질병을 고쳐 줄 치료제를 받아들이라고 호소하십니다.

그분은 아주 평범하고 단순한 언어로 회개하라. 내가 그대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완전한 회복을 가져올 모든 처방을 얻는 길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그분께서 의와 믿음과 성령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비참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우리를 당신의 보좌에 아버지와 나란히 함께 앉도록 하는 승리의 경험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문제의 핵심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을 받아들이는 것은   회개하는 것과 예수님께 문을 여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요? 깊은 마비 상태에 빠진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죄를 짓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부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미지근한 온도는 사람을 이완시켰다가 나중에는 무력하게 만듭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자신의 처절하고 잃어버려진 상태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네 곤고한 것과 &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 바로 그것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진짜 문제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알지 못합니다. 날마다 세속과 이기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교인들이 내는 헌금과 봉사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보다, 다수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이런 지긋지긋한 죄들을 회개할 필요에 대해서 역설한 책과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더 악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회개의 기별이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눈이 멀었기 때문에 회개의 호소들도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그들은 죄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죄가 무엇인지 정의되고 설명되어서, 죄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갖게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범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식의 설명으로는 그들을 더욱 깊이 잠자게 할 뿐입니다. 단순히 죄를 버리라고 설교하거나 글을 쓰면, 나머지 세밀한 것들은 성령께서 그들의 양심 속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해서 알려줄 것이라고 막연한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과 개혁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죄를 담대하게 지적하였으며 지도자와 백성의 죄를 분명하게 질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파수꾼들에게 분명한 경고의 나팔을 불도록 명하고 계십니다. 눈멀고 꾸벅꾸벅 조는 라오디게아 교인일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진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차리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곧 재림하시는 이 시대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분명한 소리로 나팔을 불어서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크게 흔들어대며 깨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곧바른 설교에 반대하는 사람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자신의 죄를 지적받을 때 반대하여 일어섭니다. 간음과 거짓말은 십계명을 범하는 죄입니다.라는 말씀에 대항하여 일어설 교인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설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반대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에 대항하여 사람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죄를 지적하는 회개의 호소가 교회 안에 있는 어떤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단순히 기쁜 소식으로 전하는 설교에는 어떤 사람도 일어나서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설교에는 아무런 저항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부드러운 설교를 듣기 원합니다. 사람들의 그러한 요구에 굴복한 목사들은 성도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 봐, 예의 바르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워서 진리의 표준을 낮추고 죄를 죄로 지적하지 않게 됩니다. 침례 요한은 비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죄를 견책하였습니다. 그는 왕들과 귀족들이 기별을 듣든지 거부하든지 간에 진리를 선포하였습니다.

 죄를 지적할 때에 개인적으로 말하였으며 노골적으로 말하였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의 신앙이 외식으로 가득 차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헤롯 왕이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에 관하여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였습니다(마 14:4).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설교와 가르침도 침례 요한의 기별처럼 단도직입적이어야 합니다.

분열을 일으키는 기별
 어떤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면서 불평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기별이 아닙니다. 만일 사람들이 설교와 말씀을 편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게 될 때까지 설교를 깎고 다듬는다면 그 말씀은 더 이상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참된 기별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의 특징은 기별을 듣는 사람 중 어떤 사람들이 분노하여 일어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참 기별은 때로는 교회의 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골라서 분리해 내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기별을 주셔서 교회를 향하여 외치도록 하는데, 그때 탐욕과 이기심과 잘못된 복음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하여 일어서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죄에 대하여 곧바르게 경고하지만, 교회를 공격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오랫동안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투쟁하고 기도해 왔습니다.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확신은 나 자신의 평판과 인기를 포기하고, 진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뜨뜻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완전히 세상으로 빠져들었거나 차가워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 있거나 뜨거운 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 찬 것과 뜨거운 것이 반반씩 섞인 상태로 있는 것이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가장 큰 염려
 저는 현대 기독교회가 세상과 타협한 모습과 그 타협의 진정한 원인을 밝히는 말씀을 전해 왔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비참하게 살아가게 한 신학적 이유는 자유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복음입니다. 죄를 죄로 지적하지 않는 값싼 복음입니다.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이 섞인 복음 때문에 일반 성도들과 목회자 모두에게 엄청난 영적 재난이 닥쳐왔습니다. 가장 큰 염려는 제가 전하는 기별이 동료 목회자들을 향한 공격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기도는, 깊은 잠에 빠진 교회들을 흔들어서 깨울 수 있는 강력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제 동기와 목적을 오해하지 않게 되기를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생애의 빛에서 나오는 모든 책자와 말씀들을 접하실 때,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 주신 교회의 문제에서 저와 같은 공감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 교파에 속한 교회와 지도자들 그리고 성도들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 재림을 통하여 하늘 왕국에 올라갈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눈동자이며, 이 세상에 있는 그분의 가장 큰 관심과 사랑의 대상입니다. 여러분이 생애의 빛에서 발간하는 책자들과 설교들을 읽고 들으신 후에 이전보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며, 우리를 사랑하는 구세주에게서 분리시키는 죄들을 미워하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모두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사단은 교회에 역사하여 교회 전체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큰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의 목적은 교회를 교리와 영적 경험 면에서 바벨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채가 되어야 할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사단이 개발해 온 전략들은 무엇일까요? 사단은 자신의 목적을 이룩하고자 어떤 때는 사람들을 멋지게 홀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람들 마음속에 두려움을 심어 주기도 합니다.
  
 사단이 이미 여러 곳에 잠식해 들어갔고, 진리를 얼마만큼 흐려놓는 데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가진 모든 지옥의 힘을 다하여 대항할지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람들이 정통이라고 인정하는 특정 종파가 아니고, 조직이나 건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를 온 마음을 다하여 따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두세 사람이 신령과 진정으로 모여서 기도하며 말씀을 읽으면 그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교회를 결코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수많은 교회가 타락하고 사단의 편에 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참 교회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참 교회는 땅에 떨어진 진리를 회복시키는 자들이고, 쓰러질 수도, 쓰러지지도 않을 교회입니다. 사단의 최후 발악 때문에 교회가 마치 소멸할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참 교회는 쓰러지지 않습니다. 참 교회는 살아남을 것이며 승리할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의 경험을 통과하면서 충실하게 진리 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참 교회와 함께 승리할 것입니다.

바이블 맨: 영원한 지옥불은 하나님의 공의 아닌가요?

 수많은 동포를 굶겨 죽인 김정일과 같은 극악한 사람들이 일반 죄인들의 죽음과 같다면 너무 불공평한 심판이 아닙니까? 영원토록 지옥불에서 지글지글 태우는 형벌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 아닌가요?

 수백만 명의 동포를 굶겨 죽인 김정일이나 수백만의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죽인 히틀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과정과 방법은 동일합니다.

 모든 사람은 죽은 후에 무덤 속에서 잠들어 있다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생명의 부활로 일어나든지 아니면 심판의 부활로 일어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지옥불은 마귀와 죄를 태워 없애려고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유황불로 마귀와 죄를 태워서 없애실 때에 함께 소멸할 것입니다. 지옥불의 목적은 이 우주에서 마귀와 죄를 없애는 것이지 죄를 범한 죄인들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옥의 유황불을 통하여 김정일이나 히틀러에게 복수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공평한 심판과 형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경은 악인들의 죄질과 행한 바에 따라서 형벌을 다르게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어주며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한 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 20:12~14) 각 사람이 자기의 행한 대로 심판을 받고. 라는 말씀 속에서 악인의 죄질에 따라서 지옥 형벌의 강도가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지옥불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지글지글 불타게 된다는 잘못된 오해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훼손시킬 뿐 아니라, 그분의 공의를 왜곡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무섭고 잔인한 분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내게 됩니다. 죽음의 순간에,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유황불 속에서 불탄다는 가르침 속에는 어떤 위험이 포함되어 있을까요?  5,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 있는데, 그는 자신이 지은 어떤 죄를 회개하지 않고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죽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믿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의 영혼은 즉시로 영원히 고통당할 유황불 가운데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김정일이나 히틀러의 영혼 역시 영원한 고통이 있는 지옥불 속으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경우를 비교해 볼 때, 어떤 평범한 죄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했던 사람은 히틀러보다 5,000년이나 더 오래 유황불 속에서 고통당해 왔을 것입니다.
 
 자신보다 엄청나게 많은 죄를 범하고 방금 지옥불로 들어온 히틀러나 김정일을 본 그 사람은 억울한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런 심판을 어떻게 정당하고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과연 그러한 방법으로 인간들을 취급하실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 중년기에 찾아오는 간질환

 간은 생명의 장기이며 우리 몸에서 가장 크고 가장 무거우며 그 일부를 떼어 내도 비교적 쉽게 재생되기 때문에 생명에 지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질환은 중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이 매우 조심해야 하는 위험한 질환이다.

간경변
 한국 40대의 여러 가지 사망 원인 중에서 1위는 단연 간질환이다. 평소에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간경변이나 간암 판정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흔히 간경화라고 불리는 간경변은 간염이나 다른 원인으로 간이 섬유화되어 굳어지면서 간 기능이 저하되는 질병인데, 간경변의 70~80%는 B형 감염 바이러스에 의해서 발병되고 10~15%는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원인이 된다. 알코올에 의한 간경변은 술을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마실 때 나타나게 된다.

미국의 간염 재단에서 제시하는 생활 수칙
 단순한 혈액 검사만으로도 간의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으므로 정기적으로 검진한다. 간을 손상시키는 술과 담배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 B형 간염이 있는 임산부는 분만 직후 반드시 신생아에게 B형 간염 백신과 면역 글로블린을 투여해 아기를 감염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지방 섭취를 삼가고, 신선한 야채 중심의 균형잡힌 식사를 한다.

간질환을 의심할 수 있는 증세들
가족 중에서 간질환 환자가 있거나 간질환으로 숨진 사람이 있다.
수혈받은 적이 있다(특히 1990년 이전)
휴식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많이 피곤하다.
배에 가스가 자주 차고 소화가 안된다.
입에서 역한 냄새가 계속 난다.
담배맛와 입맛이 떨어진다.
피부가 거칠어지고 나이에 맞지 않게 여드름이 난다.
생리가 불규칙하고 양이 준다.
오른쪽 어깨가 불편해 돌아누워 잔다.
쉽게 감기에 걸리고 배탈이 자주 난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서 신문을 읽기도 힘들다.
이유없이 잇몸에 피가 자주 난다.

지방간
 지방 간염에서 간경변으로, 심한 경우에는 간암으로까지 악화될 수도 있는 지방간을 어떻게 하면 치료할 수 있을까? 지방간에는 알코올성 지방간과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있다. 알코올성 지방간은 반드시 술을 끊어야 한다. 알코올성 지방간 단계에서 금주를 한다면 100% 회복이 가능하다. 술의 80~90%는 간에서 처리되기 때문에 술을 마신 횟수와 양에 비례하여 간에 쌓이는 지방의 양 또한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알코올성 지방간의 경우 무엇보다도 술을 끊는 것이 중요하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의 경우에는 당뇨와 비만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비만으로 인한 지방간의 경우에는 반드시 체중을 서서히 줄여 나가야 한다. 이 경우에도 술과 담배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 최근 서구화된 식생활과 운동 부족으로 비만 인구가 급증하면서 지방간 환자도 증가 추세에 있다. 비만으로 인한 지방간의 경우에는 하루 2,000kcal 이상의 열량을 소비하고 지방과 당질의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

간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
 간을 가장 빨리 회복시키는 방법은 한마디로 간을 쉬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간을 쉬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간의 산화를 방지해 주고 영양 과잉을 피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생활을 통하여 치료해야 비로소 간이 건강해질 수 있다.
 
 현대 의학자들은, 간염 환자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환자의 운동량을 자연스럽게 제한하기 때문에 피로를 피하는 선에서 운동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장기간 동안, 침대에서 휴식만을 취하는 것은 그 자체가 오히려 신체를 쇠약하게 만든다. 매우 신선한 영양이 담긴 식사를 섭취해야 한다.
 
 과다한 지방이 함유된 식품을 피하고, 술과 담배를 절대 삼가야 한다. 지방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식이 요법(oil-free diet)이 간염 환자에게 권장할 만하다. 과식을 절대 삼가고 고단백, 고지방의 식품은 영양 과잉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 그 대신에 소식하거나 짧은 기간 과일식만을 하면서 금식하는 것이 피로에 지친 간에 휴식을 줄 수 있는 매우 좋은 방법이다.

 암에 대한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영양 과잉의 문제가 더욱 크게 부각되고 있다. 암도 결국에는 영양 과잉에서 오기 때문이다. 과식으로 인하여 영양 과잉이 초래되거나 보약이나 보양식처럼 과량의 영양이 장복될 때 암이 발생되기 쉽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장 내의 대변이 원활하게 빠져나가지 못하여 축적되면, 혈액 속으로 암모니아와 같은 폐기물들이 더 많이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간이 처리해야 할 독소들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변비는 방지되어야만 한다. 환자는 콩팥 내의 독소들을 씻어 내도록 충분한 양의 물을 마셔야만 한다.

 간염 환자는 세척용 약품이나 용액에서 나오는 독한 증기를 피해야 한다. 간에 부담을 주는 화학 의약품들을 최소한으로 삼가야 한다.

 환자를 편히 눕힌 자세에서, 간이 있는 부위를 뜨거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15분 동안 대 주었다가, 곧이어서 찬물에 적신 스펀지나 수건으로 닦아 주고, 다시 뜨거운 물로 간이 있는 위치를 찜질하는 것을 날마다 4회 반복할 것. 수 치료를 끝마치고 나서는 샤워로 몸을 씻어 주고 신선한 옥외 공기가 통하는 조용한 곳에서 잠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해야 치료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최적의 건강 생활이란 산화 과정을 가능한 한 줄여 주고 산화 방지제를 많이 섭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구마에는 비타민 C뿐 아니라 강력한 산화 방지제인 베타카로틴이라는 물질이 매우 많이 함유되어 있다. 노란 색깔을 가진 식물에는 베타카로틴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당근에 많은 양의 베타카로틴이 함유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고구마에 더 많이 함유되어 있고 그다음으로는 호박과 멜론이다. 거의 모든 종류의 과일이나 채소에는 베타카로틴이 들어 있다. 가장 강력한 산화 방지제는 비타민 C이고 두 번째는 베타카로틴이다. 그러므로 과일과 채소를 충분하게 섭취할 수 있는 채식을 한다면 언제나 매우 강력한 산화 방지제로 몸을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창조 교실: 신기한 벌새

 벌처럼 작으면서 꽃의 꿀을 먹고 산다고 벌새로 불리는 이 작은 새는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물입니다.

 벌새의 특징은 빠른 날갯짓과 비행능력인데, 1초에 50~80번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날개를 저으며, 또 항상 벌새가 날 때면 윙윙하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이 새를 영어로 hummingbird(윙윙대는 새)라고 부른답니다.

 이 작은 새는 시속 90km로 날아다니며, 특별히 밑으로 낙하할 때는 시속 100km의 엄청난 속도로 비행합니다. 이렇게 매우 빠른 속도로 날갯짓하기 때문에 벌새는 날다가 후진, 전진, 수직 상승 및 강하를 하는 것이 가능하지요.
 
 벌새는 시속 50~100km로 날다가도 갑자기 정지할 수 있는데, 그 비밀은 튼튼하게 앞가슴뼈에 붙어 있는 근육으로서 무게가 전체 몸무게의 25~30%나 됩니다. (벌새의 몸무게는 3g정도)
 
 벌새의 날개는 어깨부터 날개 끝까지 뻣뻣하여 위아래로 날갯짓할 때 모두 힘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특수한 어깨와 날개 형태로 한자리에 있어도 쉽게 떠 있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지구력도 좋아서 멕시코에서 알래스카(3,000km 이상의 거리)를 이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조류 대부분은 날개를 아래로 저을 때만 추진력을 얻는데, 벌새는 아래위 두 날갯짓 모두 추진력을 내며, 정지해 있을 때도 앞뒤 날갯짓 모두 추진력을 갖고 있습니다.
 
 벌새의 날개는 어깨로부터 모든 방향으로 회전할 수 있고, 날개의 중간이 활처럼 휘어져 있는 다른 새들과는 달리 날개가 똑바르게 되어 있어 훨씬 자유로운 비행 기술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벌새가 이렇게 빨리 날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런 왕성한 활동 때문에 하루에 7,000칼로리를 소비한답니다.
 
  벌새는 하루 12시간이라는 긴 잠을 통해 활동하는 시간을 줄여 체내에 필요한 에너지를 조절하며, 체내의 노폐물을 제거합니다.  또 에너지원으로 가장 효율적인 꽃의 꿀을 이용합니다.
 꿀을 효과적으로 채취하기 위해 바늘처럼 생긴 긴 부리로 꽃의 깊숙한 화관의 밑 부분을 뚫고 들어가 꿀을 빨아내는데, 벌새의 혀 또한 부리 못지않게 특별하게 설계되어 있어 꿀을 효과적으로 입속으로 먹게 되어 있습니다.
 길고 가는 혀는 자유롭게 구부렸다 폈다 할 수 있으며, 끝은 둘로 갈라져 양쪽 끝에 꿀을 담을 수 있는 작은 홈통이 있어 조금도 흘리는 것 없이 꿀을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혀는 1초에 13번을 핥아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꿀을 섭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벌새의 긴 잠, 긴 부리와 특별한 혀, 신비한 비행능력과 근육과 날개의 구조는 벌새의 특별한 생활 방식을 위해 하나님이 태초부터 설계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벌새는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창조물이지요?

신앙: 1부 - 참 교회의 역사와 그들의 현 주소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얼마 전에 바티칸에서 성경의 예언을 성취시키는 놀라운 문서를 발표하였다. 마지막 시대의 예언과 징조에 관심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서신이 마지막 시대의 예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교황은 이번에 발표한 서신을 통해서 경제 위기와 테러의 위협 속에서 떠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온 세상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스스로 정치적, 영적 지도자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2장과 13장 예언을 연구해 보면 마지막 시대를 위한 성경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될 것이고, 짐승의 환난이 어떤 과정과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지를 알 수 있는데, 얼마 전에 바티칸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이름으로 발표한 서신의 내용은 계시록 13장 예언이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보여 준다.

 이번 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3 가지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공부하게 될 것이다.
1. 마지막 시대에 누가 사단이 인도하는 핍박의 주체 세력이고, 누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참 백성인가?
2.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두 짐승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둘은 어떤 과정과 모습으로 짐승의 표 환난을 주도하게 될 것인가?
3.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서신은 계시록 13장 예언 성취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요한계시록 12장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참 교회의 역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제자들과 사도들에 의해서 세워진 초대 기독교회가 중세기에 천 년 이상의 핍박과 순교의 역사를 통과하고 나서 땅의 도움을 통해서 마지막 시대의 여자의 남은 자손(참 교회)으로 나타나는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12장을 공부하면 마지막 시대에 누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동하는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이 기사에서 우리는 계시록 12장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참 교회가 걸어온 고난의 역사와 그들의 현주소를 배우게 될 것이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닷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3-17)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이후에 하나님의 참 교회가 중세기의 핍박과 종교 암흑시대를 통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을 통과한 참 교회가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찾으려고 새로운 대륙으로 피난하여 갈 것에 대한 예언을 보게 된다. 그들은 그곳에서 마지막 시대에 예수 재강림과 심판의 기별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여자의 남은 자손으로 형성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복음 사업을 끝마치신다. 이제부터 이 놀라운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쫓겨 다니는 여자: 요한계시록 12장 6절은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성경에서 여자는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한다(호 2:19,20; 사 54:1-8; 겔 16:8-14; 렘 6:2; 고후 11:2; 엡 5:21-23, 교회가 하나님의 아내 혹은 여인으로 상징되어 있음). 그러므로 계시록 12장에서 여인이 광야로 쫓겨 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된 예언은 하나님의 교회가 1,260일이라는 기간 동안 핍박을 받고 광야로 쫓겨 다니는 것을 상징한다.

용과 남자: 요한계시록 12장 13절에서는 하나님의 교회가 핍박당하는 장면에 대한 구체적 모습이 나오는데, 핍박이 누구에 의해서 있게 될 것인가를 밝혀 준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이 말씀에 나오는 용은 무엇이며, 남자는 누구인가? 먼저 용에 대해서 살펴보자. 여기서 용은 사단을 뜻한다.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계 12:9) 그렇다면 남자는 누구인가? 계시록 12장 4, 5절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볼 때, 남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가더라. 이 장면은 메시아를 죽이려고 감행된 핍박과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장면임이 틀림없다. (참조-시편 2:7-9,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러므로 계시록 12장 13절(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은 사단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분의 복음을 전파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예언이다.

핍박의 장소와 기간: 14절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교회가 사단의 핍박을 피하려고 깊은 계곡과 산으로 피신하는 장면을 나타내며,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게 되는 핍박의 기간을 나타내고 있다.
 성경에서 한 때란 1년을 상징한다. 영어로 one time(한 때)이란 말도 옛날 영어로 1년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니엘 11장 13절은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대군을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라고 말씀한 것으로 보아 분명히 한 때란 1년을 가리키는 용어인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한 때 두 때 반, 즉 1년+2년+반년, 다시 말해서 3년 반 동안 핍박을 피하며 도망 다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 예언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광야라는 장소를 마련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도 포함되어 있다.

핍박이 일어나게 되는 이유: 기독교 역사는 하나님의 참 교회가 핍박당하게 되는 이유와 과정에 대해서 분명하게 설명해 준다. 순수했던 초대 교회는 제자들과 사도들이 죽고 난 후부터 배도와 타협의 길을 걸으면서 교회 안에 용(사단)의 세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초대 교회의 순결한 정신과 진리가 변질됨에 따라서 이방 종교의 교리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로마 제국의 권력과 손을 잡음으로써 교황권이 큰 세력으로 확립되었다. 타락한 교회가 정치적 권력과 손잡을 때 거기에는 항상 핍박이 일어나게 된다(타락한 교회+정치권력=핍박). 마지막 시대에도 중세기에 있었던 이러한 핍박의 공식에 의하여 짐승의 표 환난이 일어나게 된다.
 중세기 종교 암흑시대 동안, 교황권은 유럽의 여러 제국의 권위를 압도하는 놀라운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교황권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군사력을 동원하여 자신들이 주장하는 교리와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죽였다.

교황권은 수많은 오류와 잘못된 가르침을 교회 속으로 가지고 들어왔는데, 대다수의 신도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멸망의 길을 걸어갔다. 그러나 여자로 상징된 소수의 하나님 백성들은 광야로 피신하여 신앙을 지켰다. 중세기에 이러한 핍박이 마지막 시대에 다시 한 번 크게 재현될 것이라는 것이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이다.
 
 천주교회는 중세기에 존재했던 유일한 교단이었다. 유럽의 대도시마다 엄청난 규모의 로마 천주교회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참 교회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서 깊은 계곡과 산속으로 피신하였고 그들이 왈덴스 인들과 알비젠스 인들이었다.
 중세기에 교황권은 엄청난 규모의 교회 건물과 조직 그리고 대중들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인정했던 참 교회는 초대 교회의 순수한 신앙과 진리를 지키려고 광야로 피신하였던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었다.

1,260년 예언의 시작과 끝
 요한계시록은 참 교회(여자)를 핍박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중세기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지목하고 있는데, 계시록 13장은 계시록 12장에 기록된 핍박의 세력에 대한 예언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계 13:5,6,7) 여기에도 하나님의 성도들이 핍박당하는 기간으로 42개월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기간은 3년 반의 기간과 같은 기간이며, 또한 12장 6절에 교회가 광야로 도망하여 거하는 1,260일의 기간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대력으로 한 달은 30일이기 때문에, 한 때 두 때 반 때(3년 반)의 기간과 마흔두 달의 기간과 일천이백육십 일의 기간은 모두 동일한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서 성도들이 핍박을 피하려고 쫓겨 다니는 기간을 나타낸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3년 반=42달=1,260일)

 성경에서 기간적인 예언을 말씀할 때는 1일은 1년을 상징하는데, 민수기 14:34과 에스겔 4:6, 욥기 10:5 등에서 그와 같은 예를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3년 반=42달=1,260일)는 모두 중세기의 1,26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있었던 종교 암흑시대를 뜻한다.

 1,260일에 대한 종교 개혁자들의 해석: 중세기에 일어난 적그리스도 세력에 대해서 종교 개혁자들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위대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중세기의 종교 박해 기간이 바로 이 1,260년의 예언 기간이라고 해석하였다.

 루터가 태어나기 이전 시대인 서기 1200년도에 플로라에 살던 수도승 요아킴도 요한계시록 12장과 13장에 나타나는 3년 반의 기간은 교황권의 압제 속에서 성도들이 핍박당하는 1,260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1639년도에 미국 동북부의 뉴 잉글랜드 지역을 개척한 요한 캇튼 목사도 똑같이 적용하였으며, 1708년도에는 한때 하버드 대학 초기의 총장이었던 인크리즈 매더즈 목사도 같은 해석을 하였으며, 1739년도에 프린스톤 대학의 총장이었던 죠나단 에드워드 박사도 3년 반의 예언이란 성도들의 핍박 기간으로서 일천이백육십 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17 계시록 12장과 13장에 나오는 1,260년 기간의 시작점에는 핍박의 세력인 교황권이 형성되었고, 이 기간이 끝나는 해에는 핍박의 세력이 힘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을 역사가 증명해 준다. 교황권은 로마 제국의 정권과 손을 잡음으로써 강력한 핍박의 세력이 되었는데 나중에는 유럽의 제국들에게 명령하고 왕을 교체시키는 권력까지 행사하였다. 그러나 교황권의 부패와 잘못된 교리에 저항해서 일어난 종교개혁 운동이 온 유럽으로 번져나가면서 1,260년 예언의 종점을 가리키는 1798년에 이르자 교황권을 결정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1798년, 나폴레옹의 지휘하에 있던 버티어 장군이 로마의 바티칸으로부터 교황 피우스 6세를 잡아다가 파리의 감옥에 수감하여 교황을 감옥에서 죽게 하고, 프랑스 혁명을 통하여 종교가 개인의 자유를 압제하는 일을 타파하는 정신이 세상에 퍼지게 되고, 독재 군주들이나 영주들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운동이 태동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종교 개혁자들과 성경 예언 연구가들은 드디어 1,260년의 핍박의 기간이 끝났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성경 예언은 마치 지도와 같아서 그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면서 지구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조심스럽게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황권 아래서 겪은 중세기의 핍박 기간이 요한계시록 12장과 13장에 나오는 1,260년이라는 해석은 개신교회를 세운 종교 개혁자들의 공통된 해석이 되었다.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교회
 계시록 12장 후반부에는 1,260년의 예언이 끝나면서 주의를 집중하여 살펴보아야 할 말씀이 나온다. 왜냐하면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교회가 언제, 어디서 나타나게 되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중세기가 지나면 지구 역사의 마지막 부분이 시작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2장 15, 16절에는 중세기에 광야로 피신해 있던 하나님의 교회가 1,260년 예언이 끝나갈 무렵에 다시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찾고자 땅으로 옮겨가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계 12:15,16) 15절에는 용이 입에서 물을 토해 내어 하나님의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고 애쓰는 장면이 나온다. 예언에서 물은 사람들과 백성들을 뜻한다(계 17:15).
 
 중세기에 사단(용)은 교황권을 지지하는 사람들(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참된 교회(여자)를 핍박하고 없애려고 집요하게 노력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이어지는 16절은 그러한 상황에서 땅이 여자(참 교회)를 도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땅이 물을 삼켰다는 것은 용이 물로 교회를 떠내려가게 하려는 의도를 무효화시켰다는 의미이다. 교황권이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참 백성(교회)을 핍박하자, 하나님께서는 땅을 통해서 당신의 참 백성들을 핍박으로부터 건져 주셨다.

 그렇다면 땅은 무엇을 상징하는 말인가?
 1,260년 동안 계속된 마귀의 공격과 핍박 때문에 거의 멸망 직전에 이르게 된 하나님의 교회를 도와서 소생케하는 것이 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의 정체를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중요한 예언을 계시록 13장에서 다시 반복하여 기록해 두셨다.

 계시록 13:11은 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이 짐승은 바다(물)가 아닌 땅에서 올라 왔다(짐승은 나라를 상징-다니엘 7:17 참고). 다시 말해서, 사람들(물)이 많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별로 없는 땅, 즉 새끼 양 같은 짐승(국가)은 물과 정반대되는 형편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바벨론과 그리스와 로마처럼 인구가 많은 유럽 지역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을 상징하는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이 장면은 세계 역사에서 일반적으로 국가들이 나타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말하고 있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나라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그래서 다니엘 7장은 새롭게 등장하는 제국들을 묘사하면서 한결같이 물이나 바다에 바람이 불 때에 나타나는 것으로 예언하였다.

 성경에서 물은 계시록 17:15에 나오는 해석에 근거해서 사람들 혹은 백성들을 상징하고, 바람은 예레미야 25:32,33; 49:36을 근거로 볼 때 전쟁을 상징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 7장에서 바다에 바람이 불고 짐승이 하나씩 올라오는 것으로 상징된 예언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면서 나라가 하나씩 일어나게 되고 멸망되어 가는 세상 역사를 가리키지만, 새끼 양 같은 짐승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땅에서 올라왔다고 하였다. 이제 계시록 12장과 13장에 나오는 땅의 정체를 정리해 보자.

땅은 1,260년의 예언이 끝날 무렵에 나타난다(계 12:14,15).
땅은 유럽에서 교황권의 핍박으로부터 피신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받아 준다(계 12:16).
땅은 물과 대조되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을 뜻한다(계12:15, 17:15).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국가)은 새끼 양같은 정신, 즉 기독교 정신을 가진 나라이다(계 13:11, 단 7:17).


 위에 언급한 4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세계 역사 속에 등장한 국가가 있는가? 미국 이외에는 어떤 나라도 위의 4가지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미국은 로마 교황권의 핍박으로부터 하나님의 교회를 피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 중세기에 시작된 유럽의 종교 박해를 피하여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이주해 온 청교도들과 수많은 개신교도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여 주었고, 다시는 종교의 핍박 없이 예배와 신앙의 자유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땅을 제공하여 준 나라이다. 사람들이 많은 지역에서 전쟁을 통하여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인구가 별로 없는 황무지 같은 땅 인 신대륙이었다. 미국은 1,260년의 예언이 끝날 무렵에 세워진 나라이다. 1776년에 독립된 국가로 존재하게 된 나라이다.

마지막 시대 용의 공격 목표: 땅으로 상징된 미국이 유럽에서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여 오는 참 교회(여자)를 받아주자, 용(사단)이 크게 분노하는 모습이 나온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닷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6-17)

 용이 왜 분노하는가? 왜냐하면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여자의 남은 자손)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대의 여자의 남은 자손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증거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이 어떤 교파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증거를 가진 자들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교회이고, 바로 그들이 짐승의 표 환난에서 용의 세력으로부터 핍박과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될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편에 서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단의 편에 서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거나 예수 증거를 거절하면 된다. 그래서 계시록 21:14에는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은 생명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하늘 성문으로 들어갈 수 있나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한글 킹 제임스 번역).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은 짐승의 표 환난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진리를 지키는 자들은 생명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하늘 성문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계시록 13장은 마지막 시대에 미국이 적그리스도의 세력의 앞잡이가 되고 놀라운 핍박의 세력으로 돌변하여 용처럼 말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계 13:11-18)

신앙: 2부 - 핍박의 패턴과 공식

하나님의 심판과 핍박의 차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있고, 핍박에 대한 예언이 있다.  예언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은 교회가 타락하고 진리를 타협했을 때 하나님께서 바벨론이나 로마 제국처럼 주변 이방 국가들을 사용하여 교회를 채찍질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전쟁에서 패배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노예로 끌려가거나 성소가 파괴되는 고난을 당하게 된다.
 일곱 나팔 예언 속에는 배도하고 타락한 교회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잘 나타나 있다.그러나 예언 속에 나타나 있는 핍박은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과 죽음을 강요하는 것인데, 교회가 타락하였을 때에 정치권력과 손을 잡고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잘못된 교리와 복음을 강요함으로써 일어나게 된다.

 타락한 유대교가 로마 제국의 군대와 경찰력을 빌릴 수 있게 되자,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에 대한 핍박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게 되었다.  초대 기독교회는 시작하자마자 순교와 고난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기독교회가 부패하면서 로마 제국의 권력과 손을 잡게 되었고, 그 결과 참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었으며 수천만 명의 순교자가 중세기에 생겼다. 이러한 핍박의 패턴이 마지막 시대에 오는 짐승의 표 환난 때에도 그대로 반복될 것이라는 것이 요한계시록 13장이 주는 경고이다.

핍박의 패턴

 하나님의 예언 중에서 핍박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는 데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성경 시대에 타락한 유대 교회를 통하여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예언을 살펴보면, 그 속에서 중세기 핍박의 역사를 볼 수 있고, 중세기에 성취된 핍박의 예언을 보면 그 속에서 마지막 시대를 위하여 기록된 짐승의 표 핍박의 예언이 어떤 모습으로 성취될 것인가를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시대에 성취되는 예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인 짐승의 표 환난에 대한 예언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될까? 역사 속에서 핍박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었던 패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참 백성에 대한 핍박은 일정한 공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타락한 교회와 막강한 정치 세력의 연합이다. 교리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타락한 교회가 정치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과 교리를 강요하게 될 때 참된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핍박이 가해지게 되는데, 이것이 핍박의 역사이다.

성경 시대의 핍박 
 성경 시대에도 믿는 자가 믿는 자를 핍박하였는데, 형식적인 신앙을 가진 유대 교회가 정치적 권력을 이용하여 참 신앙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였다. 서두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도 타락한 교회와 정치권력의 동맹이라는 핍박의 공식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엘리야 시대에도 유대 교회의 거짓 선지자들이 아합 왕이리는 권력자와 결탁함으로 참 신앙을 가진 엘리야를 핍박하였다.  핍박의 예언에는 두 주체가 있는데, 하나는 핍박하는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핍박을 받는 하나님의 참 백성들이다. 성경 시대에 핍박하는 자는 교회와 국가의 연합 형태로 존재하였던 타락한 유대 교회였고, 핍박받는 자는 진리와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기로 선택했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었다.

중세기의 핍박
 중세기의 암흑시대에는 핍박의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성경 시대에 이루어졌던 패턴 그대로 반복되었다. 중세기에도 타락한 교회(교황권)가 로마 제국과 결탁함으로 진리를 보존하고 전수하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핍박이 일어나게 되었다.
 
 성경 시대에는 진리를 가지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이 중동 지방에 몰려 있었지만, 중세기에는 진리를 전수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유럽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핍박도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되었으며,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핍박의 세력, 교황권도 유럽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종교 암흑시대 동안 5천만에서 1억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황권에 의해서 순교 당한 역사는 지금도 분명하게 남아 있다.

마지막 시대의 핍박
 제1부에서 공부했던 것처럼, 종교 암흑시대가 끝나갈 무렵 신대륙 미국이 발견되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살지 않는 그 땅을 참 교회(여자의 남은 자손)의 피난처로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언의 시간에 맞추어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섭리였다. 청교도 정신을 근간으로 세워진 미국은 복음 전파 사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초강대국일 뿐 아니라, 선교사를 파송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서도 지난 2백 년의 역사 속에서 아무도 미국의 역할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 사업을 하는 일에 있어서, 미국은 현대 이스라엘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성경은 미국의 장래에 대해서는 무엇을 예언하고 있을까? 이 세상 역사가 거의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이 시점에, 성경은 미국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예언하고 있을까? 성경은 미국의 장래에 대해서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데, 미국이 장차 짐승의 표 환난에서 하나님의 참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요한계시록 12장 끝 부분에는 마지막 시대에 미국에서 태동한 참 교회를 사단이 공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참 교회의 정체와 그들이 강조하는 복음이 소개되어 있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닷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6-17) 

두 짐승의 동맹과 짐승의 표 환난
 짐승의 표 환난도 하나님의 참 교회에 대한 핍박의 예언이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 핍박의 패턴을 그대로 반복하게 된다.타락한 교회와 막강한 정치 세력의 동맹이라는 핍박의 공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참 교회를 전멸시키기 위해서 나타나는 두 핍박의 세력을 두 짐승으로 상징하여 예언하였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 12장에서 참 교회의 역사와 미국으로 도피하는 여자의 남은 자손의 정체를 밝히고 13장에서는 세상 끝에서 참 교회를 핍박하는 두 세력을 소개한다.

계시록 13장의 첫 번째 짐승:
 요한계시록 13장은 짐승의 표 장이다. 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이 나오는데, 첫 번째 나타나는 짐승은 중세기에 출현하여 1,260년 동안 참 교회를 핍박한 세력으로서, 세상 끝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참 백성을 크게 핍박하는 세력이다. 성경은 바로 이 세력을 적그리스도로 지목하고 있다. 이 짐승은 물(바다)에서 올라오는데 계시록 12장에서 중세기의 종교 암흑시대 동안 하나님의 참 교회(여자의 남은 자손)를 핍박하였던 세력이다.

계시록 13장의 둘째 짐승:
 둘째 짐승은 계시록 12장에서 하나님의 참 백성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인데, 새끼 양과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미국을 뜻한다. 그러나 이 짐승은 처음에는 어린양으로 표상된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시작되지만, 세상 끝에 이르면서 용처럼 말하는 성질로 변질하여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참 백성에게 엄청난 핍박을 가하는 주도 세력이 된다. 둘째 짐승은 세상 끝에 온 세상 사람들을 첫 번째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무대를 조성하는 강력한 역할을 맡는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중반 이후부터 끝까지는 마지막 시대에 이 두 짐승이 서로 협력하여 참 교회를 핍박하고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사건이 전개된다. 저(두 번째 짐승, 미국)가 먼저 나온 짐승(첫 번째 짐승, 교황권)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첫 번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12,15,17절) 이 두 짐승은 누구이며, 그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먼저 첫 번째 짐승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첫 번째 짐승을 알면, 두 번째 짐승의 정체가 보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짐승의 정체
 종교 개혁자들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첫 번째 짐승이 교황권이고 적그리스도 세력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예언 해석이 개신교회의 출범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종교 개혁자들의 견해를 살펴보도록 하자.

마틴 루터 : 바울이 데살로니가후서 2장 3, 4절에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라고 기록하였던 그 존재가 여기에 있다.  적그리스도인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 이 있는데, &  그는 하나님의 법을 변경하였으며, 하나님의 계명 위에 자신이 만든 계명을 높였다. &  우리는 여기서 교황권이 진짜 적그리스도의 권좌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바이다. 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vol.2, P. 291,256
요한 칼빈 : 나는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  그는 적그리스도이다. 나는 그가 교회의 머리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엡 5:23. John Calvin Tracts, vol. 1, p. 219,220
요한 낙스 : 수 세대에 걸쳐서 교회 위에 군림해 온 교황권이 바로 바울이 말한 적그리스도요, 멸망의 아들이다. The Zurich Letter, p. 199
필립 멜랑톤 : 로마 교황권이 거대한 조직과 왕국을 가지고 있는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진리이다. &  데살로니가후서 2장 2절에서, 바울은 죄의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임으로써 교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였다.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vol. 2, pp. 296
아이작 뉴턴(과학자) : 교황권은 나머지 열 뿔과는 다른 종류의 왕국이었다. &  로마교회는 선지자 노릇을 하였으며, 동시에 왕이었다. 아이작 뉴턴, Observation  "V", p. 75
요한 웨슬리 : 로마 교황권이 바로 죄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바이다. 요한 웨슬리, Ten Kingdoms, 110
사무엘 리(17세기의 유명한 성직자) : 로마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영국에 있는 모든 주요 교단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르침이다. 사무엘 리, The Cutting Off of Antichrist, p. 1
 
 한 가지 깜짝 놀랄 만한 놀라운 사실은, 서기 1세기경에 사도 요한이 기록한 첫 번째 짐승에 대한 계시가 구약 성경의 다니엘 선지자가 기록한 작은 뿔에 대한 계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의 위대한 두 선지자가 목소리를 같이하여 지목하는 첫 번째 짐승은 누구인가? 다니엘 7장에는 작은 뿔로 상징된 세력이,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무서운 모습을 지닌 짐승으로 등장한다.

 다음의 비교표는 다니엘 7장의 작은 뿔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첫 번째 짐승의 배경, 연대, 활동 상황에 대한 특징들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작은 뿔과 첫 번째 짐승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이미 살아남는 이들 16호와 33호에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한 비교표를 제시하도록 하겠다.

 아래의 비교표에 언급된 11가지 특징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세력은 지구 역사에 오직 하나뿐인데, 그것은 교황권이다. 계시록 13장에서 첫 번째 짐승으로 나타나는 교황권과 두 번째 짐승으로 나타나는 미국이 세상 끝에 연합하여 짐승의 표 환난을 일으킨다는 것이 사도 요한이 말세를 당한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기별이다. 그렇다면 짐승의 표 환난은 어떤 과정을 통하여 일어나게 될까?
 미국과 교황권은 짐승의 표 환난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다음 기사에서 이 중요한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2

신앙: 3부 - 짐승은 핍박의 교리를 포기했는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지막 시대에 일어나는 짐승의 표 환난에서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핍박하는 두 주체는 교황권과 미국이다. 
 
 그런데 과연 현대와 같은 문명사회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요한계시록 13장은 첫 번째 짐승(교황권)이 역사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4단계를 통과하게 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1. 중세기 1,260년간 성도들을 핍박하는 세력으로 군림한다.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계 13:5,7)

2. 1,260년 예언이 끝나는 시점에 죽게 되는 상처를 입는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계 13:3,10)

3. 상처가 나으면서 다시 부활한다.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계 13:3)

4. 마지막 시대에 온 세상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핍박의 세력이 된다.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계 13:14-18)

 우리는 지금은 마지막 4번째 단계 직전에 살고 있다. 핍박의 세력으로 시작한 교황권은 마지막 단계에서 중세기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핍박의 세력으로 군림하게 될 것을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왜 교황권은 핍박을 할 수밖에 없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핍박의 교리를 믿기 때문이다.

교황권은 핍박의 교리를 포기했는가?
 성경은 교황권은 말세에 다시 핍박의 세력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반면, 사람들은 교황권은 변했다.라고 말하면서 중세기에는 무지했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고 종교적으로 핍박하는 일들이 가능했지만, 현대와 같은 민주, 정보 사회에서는 그런 일들이 생길 수 없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그들은 핍박에 대한 그들의 교리를 포기했는가? 우리는 교황권이 가지고 있는 두 얼굴을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한 얼굴은 매우 매력적인 모습으로 온 세상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이끌기에 충분하며, 다른 얼굴은 매우 무서운 얼굴로서 중세기 핍박의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중세기에 교황권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 이유는 그렇게 하는 길이, 자신이 정설이라고 생각하는  교리 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으며, 그들을 이단과 이설에서 보호하여 구원받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교황권은 어거스틴이 세운 그 유명한 핍박의 신학을 기초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였다.
 
 어거스틴이 가르치고 확립한 두 가지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기독교회를 혼돈과 오류의 어려움 속에서 허덕이게 하고 있다. 그가 가르친 오류들 가운데 하나는 원죄설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회의 핍박을 가능케 한 가르침이다. 어거스틴은 중세기 교인들에게 천주교회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단(?)들은 육신적으로 고통을 가해서라도 다시 교회 안으로 불러들여야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단들의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방법이라고 가르쳤다. 그의 사상에 의한 영향은 온 교회를 물들게 하였고 드디어 천주교회는 공식적으로 이단을 박멸하기 위하여 또한 심지어는 그 이단들의 영혼을 정결케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들의 육신을 괴롭히는 잔인한 핍박의 방법들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종교 암흑시대 핍박 초기에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화형에 처하는 일이 많지 않았으나 후기로 갈수록 불에 태워 죽이는 일이 널리 퍼져서,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믿는 셀 수 없이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귀중한 목숨이 화형대에서 불살라졌다. 교황권은 요한복음 15장 6절의 말씀, 곧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라는 구절 중에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을 만일 사람이 교황권을 거절하면으로 해석하여 천주교회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화형시키는 일을 합리화하였다.
  종교 암흑시대 동안에 교황권은 자신들과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그러한 사상이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교황권의 신학은 만일 그들에게 다시 중세기와 같은 군대와 경찰력이 주어진다면, 그들은 또다시 성경이 예언하는 대로 핍박을 재개할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영적인 검과 물질적인 검 모두가 교회의 권한 안에 있기 때문에 물질적인 검도 교회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하며 영적인 검도 교회에 의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비록 물질적인 검은 왕들과 병정들에 의하여 사용되지만, 그것 역시 사제의 뜻과 승낙에 의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공공연히 이단임을 공언하고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그릇되게 인도하려고 시도하는 자들은 반드시 출교뿐만 아니라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할 것이다." Lepicier, De Stailitate et Progressu Ddogmatis, 211, 213 

 원하든지 않든지, 준비가 되었던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우리는 모두 전면적이고도 무제한의 방법을 통한 3자 간의 세계적 정권 다툼에 휩싸여 있다. &  이 경쟁은 누가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를 한 정부 아래로 통합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에게는 숨겨져 있지만, 요한 바오로 교황이 선택한 정책과 매일, 매년 분투하고 있는 그의 싸움 목표는, 바로 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 
 
 이 경쟁은 지구 인구 60억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인데, 모든 개인과 모든 집단을 지배하고 조종할 수 있는 강력한 세력을 누가 확보하여 휘두를 것인가에 관한 경쟁이다. &  또한 이 경쟁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제한의 경쟁이다. 일단 경쟁이 끝나면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즉 개인과 국민의 생활 방식, 가족 관계와 직업, 무역과 상업과 화폐단위, 교육과 종교와 문화 그리고 이제까지는 누구나가 자동적으로 받았던 시민권(주민등록증)과 같은 제도들이 크게 바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어느 사람도, 민주주의도, 다른 어느 것도,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행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요한 바오로 교황의 기본적 사상이다. 또한, 성스러운 감화 아래 토대를 둔 모든 종교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을 가르칠 수 없으며, 그렇게 살 권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 중세기에 그랬었던 것처럼, 그리고 요한 바오로 교황의 지도 아래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로마 천주교회는 인간 세상의 도덕적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단 하나의 기관이라고 주장한다. 말라카이 말틴, 피의 열쇠, 3, 15페이지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천주교회가 주장하는 모든 교리와 신조를 받아들이면 별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엄청난 종교적 핍박을 가져올 수 있는 문제이다. 교황권은 변하지 않았다. 만일 요한계시록 13장이 예언하는 것처럼 마지막 시대에 그들에게 다시 온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정치적 권력이 주어진다면, 반드시 핍박은 재현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마지막 시대에 교황권이 다시 한 번 정치적 권세를 부여받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교황권)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교황권)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2,14,15)

 1998년 5월 2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앙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제하의 사도 서신을 발표하였는데, 이 사도 서신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법전에 추가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새롭게 추가된 법조문 1,436항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No.1: 진리, 곧 거룩한 가톨릭 신앙을 부인하거나, 의심하거나, 그리스도인 신앙을 완전히 거부하거나, 법에 의하여 경고받은 다음에도 본인의 입장을 바꾸지 않는 자는 출교시킴으로써 이단자 또는 배도자로 처벌해야 한다. 성직자의 경우에도 예외 없이 기타 다른 벌금형에 처한다.

No.2: 부가적으로, 로마 천주교회의 권위 있는 대주교 및 주교의 가르침을 고집스럽게 거부하거나, 잘못된 것으로 정죄 받은 것을 지지하거나, 법에 따라 경고받고 나서도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지 않는 자들은 적당한 방법으로 처벌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핍박하는 세력은 항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들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적 핍박은 대부분 자신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나 종교인들이 자신과 같지 않은 사람들을 올바로 교정하기 위하여 사용하던 수단이었다.
 
 중세기 종교 암흑시대 때에도 핍박을 한 사람들(교황권)도 그들 스스로 의로운 일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것을 바라보는 대부분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교황권의 가르침과 명령을 거부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면서도, 그것이 교회를 정결케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요 16:2)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4,15)

 교황권과 정치 세력의 연합에 의해서 짐승의 우상이 세워지는데, 그들의 요구하는 교리와 법에 따르지 않는 자들은 모두 죽게 될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참 백성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짐승의 표 환난의 실체이다. 교황권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세계 경제의 위기, 도덕의 심각한 타락, 지구의 온난화로 인한 환경 재앙 등은 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누군가가 나타나서 세상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끌어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게 하고 있다.

 지금, 세상은 요한계시록 13장에 기록되어 있는 짐승의 표 환난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 예수께서 재강림하실 수 있는 조건들이 하나씩 성취되어 가고 있다. 지금은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이다!

신앙: 4부 - 놀라운 예언의 성취

 9.11 테러 이후에 온 세상은 긴장의 상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2008년 가을에 시작된 세계 경제의 심각한 위기 이후에 온 세상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다.

 세계 경제의 몰락은 예수께서 오실 때가 매우 가까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어디 예수께서 오시기 직전에 세계 경제가 파탄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 세계 경제의 몰락은 예수께서 곧 오신다는 징조가 될 수 있는가? 성경은 세상 끝에 경제적 파탄이 올 것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가?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온 세상이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을 분명하게 예언하고 있다. 잠시 그 사실을 확인해 보도록 하자.

성경이 말하는 말세의 경제와 재림의 징조
  오호라! 그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생축이 탄식하고 소떼가 민망해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떼도 피곤하도다.,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및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인간의 희락이 말랐도다.(욜 1:15-18,12)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약 5:1-3) 요한계시록은 바벨론이 무너지는 모습 속에서 세상의 경제가 무너지는 장면을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merchants,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계 18:2-3).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지는데, 제일 먼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곳이 되어버린 타락한 교회가 무너진다. 어떻게 해서 무너지는가? 바벨론 교회들의 음행과 거짓을 정확하게 폭로하기 때문에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바벨론의 포도주에 취한 땅의 왕들과 나라들이 무너지고 그들과 더불어 음행한 상고들, 즉 경제 세력들이 무너진다. 이것이 바벨론이 무너지는 과정이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매우 짧은 시간, 신속하게)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땅의 상고들(merchants,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계 18:10-11)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계 18:15-19)

 세상 종말에 바벨론이 무너질 때에 그것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상고들, 즉 경제가 무너지기 때문에 짐승의 표 환난은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는 방법으로 내려지게 된다. 현재와 같은 경제 상황에서 온난화로 인한 환경 재앙이 지구를 강타하면 온 세상은 사회주의로 급변하면서 다음과 같은 경제적 방법으로 짐승의 표를 강요하게 될 것이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 13:16-17)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위기의 시간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목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마지막 시대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기를 거절하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9-12)

 지금은 짐승의 표가 내려지기 위한 조건들이 눈에 보이게 하나씩 마련되어 가고 있는 때이다. 휘장 뒤에 감추어져 있던 예언의 장면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가 지금이다. 영국의 총리는 최근에 이러한 현재 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역사가들은 우리의 시대를 뒤돌아보며, 이 시기는 그저 평범한 시기가 아니라, 역사의 방향을 가늠하는 시기로서, 과거에 없었던 역사의 변화를 가져오는 시기요, 한 장면이 지나가고 다른 장면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평가할 것입니다." 영국의 Gordon Brown 총리. 세상은 지금 새로운 체재를 고대하고 있다!

예언을 성취시키고 있는 교황권의 움직임
 오바마 미국 대통령 정책의 근간은 사회주의적인 재물의 재분배(Redistribution of Wealth)이다.  현재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의료보험 개혁도 그의 사상과 추구하는 사회 체제로부터 나온 것이다.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예언이 강력한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미국의 정치적 움직임에 시선을 돌리게 한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 1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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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대통령이 사회주의적인 제도와 체재를 위하여 강력하게 나아가고 있는 때, 바티칸의 교황청에서 놀라운 발표를 하였다. 2009년 7월 8-10일 3일간 이탈리아에서 열렸던 세계 경제 8개국 정상 회의의 시점을 맞추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제 자본주의는 실패했다고 전제하면서, 파탄의 벼랑에 서 있는 세계 경제를 해결하기 위한 바티칸의 계획표를 교황이 제시하였는데, 그의 계획 속에는 교회와 정치의 연합을 통한 새롭고 강력한 체제가 나타나 있다.
 
 교회와 정치의 연합, 그것은 역사 속에서 항상 이루어져 왔던 핍박의 공식이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또한, 7월 10일 오바마 대통령이 바티칸을 예방한 자리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 계획표를 그에게 주었는데, 이 바티칸의 경제 계획표는 그의 세 번째 교황 서신으로서, "Charity in Truth"(진리 안에서의 진정한 자선)이라는 제목으로 쓰인 권위 있는 문서이다.

 교황의 세 번째 서신은 계시록 13장에 기록된 핍박의 예언 성취를 알리는 서막이 될 것이다. 144 페이지나 되는 이 서신은 왼쪽과 같은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교황의 서신에 대해서 미국의 유력 신문들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는데, 어떤 신문이나 미디어 매체도 교황의 서신에 대한 비평을 싣지 않았다.

U.S. News & World Report, 7-10, 2009  교황의 서신은, 백악관이 오바마 대통령과 교황의 만남에 대하여 열렬한 반응을 보이게 만들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교황의 서신이 이 두 지도자가 현시점의 경제적인 문제에 대하여 똑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백악관의 가톨릭교회 고문은 말했다. & 경제의 중심에는 사람이 자리하고 있다고 교황이 강조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 운동을 할 때에 말했던 바와 같이 앞으로 시행하려고 하는 주된 정책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Times, 7-7-2009  하나님이 현재의 세계 경제 위기를 어떻게 다루시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물론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로마 천주교회의 사람, 전능자의 수장인 교황은 마침내 그의 견해를 발표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그의 세 번째 서신인 Charity in Truth  (진리 안에서의 진정한 자선)라는 문서를 통하여, 우리의 경제적인 재난의 문제들의 근본 이유를 말하면서, 한 때 강력했던 달러화의 회복에 대한 해결책보다 훨씬 더 큰 거룩한 계획표를 제시하여 주었다.

짐승의 우상이란?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4,15) 영문 킹 제임스 성경에는 요한계시록 13:14,15에 기록된 우상이란 단어가 Image, 곧 형상(모습)이라는 뜻으로 기록되었는데, 이것은 어떤 것을 매우 흡사하게 닮았음을 의미한다.

 짐승의 표 환난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방법으로 첫 번째 짐승을 위하여 우상(image)이 만들어지는데, 그 모습은 첫 번째 짐승의 형상(image)을 따라서 만들어지게 된다.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는 짐승의 우상(모습, image)은 중세기에 나타났던 첫 번째 짐승의 특성과 행적을 닮게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중세기에 이루어졌던 핍박의 공식에 따라서 짐승의 우상이 세워지고 그것에 경배하도록 강요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중세기에 하나님의 참 백성을 핍박하기 위해서 교황권과 로마 제국의 정치권력이 손잡는 연합체가 형성되었고, 교황권은 그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들이 믿는 교리와 신조를 강요하는 핍박의 세력이 되었다.

 이와 유사한 일이 마지막 시대에 생기는데, 그것이 바로 계시록 13장 14, 15절에 나오는 짐승의 우상을 세우는 일이다.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첫 번째 짐승인 교황권은 두 번째 짐승인 미국과 손을 잡아 짐승의 우상을 세운 다음에 온 세계를 향하여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핍박을 시작하게 된다. 교황권과 미국이 전 세계를 향하여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있는 개신교인들과 천주교인들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사단이 짐승의 우상을 세우는 방법과 과정
1) 종교 연합 운동
  개신교회와 교황권의 연합 운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추진되어 왔다. 벌써 오래전에 주요 신문에 실렸던 기사를 보자. 교황권의 요구에 따라, 200여 종파의 개신교회 지도자들은 각기 다른 전통을 가지고 분리되어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교황과 함께 기도하고자 트리니티 대학의 예배실에 모였다. 
  
 국제 교회 협의회의 총무인 클레이너 랜달 씨는  거기서 교황이 개신교도들과 함께 칼빈파의 찬미가와 찰스 웨슬러의 찬미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볼 때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라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이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잘 보여 주는 증거이다.(1979년 10월 8일 자 워싱턴 포스트 지)라고 덧붙였다. 대부분 종파가 가입되어 있다. 믿는 신조와 교리가 다수의 종교 연합 세력이 주장하는 교리를 따르지 않는 그리스도인에게 핍박이 가해질 수 있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2) 교회와 국가의 연합 
 종교 연합 운동의 정신에 깊이 젖어 있는 사람들은 강력한 기독교 정치 단체를 구성하여, 도덕적으로 피폐해진 사회와 국가에 다시 기독교적 정신을 불어넣고, 미국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축복하실 수 있는 국가로 만들려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단체들이 미국의 기독교 극우 보수파 단체들이다. 그들이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성향을 띤 법안을 입법화하거나 교회와 정치에 대한 분리의 벽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헌법의 재해석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지지하는 특정한 정치인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국회의원들에게 강력한 로비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개신교가 미 정부의 권력과 손을 잡고 자신들이 믿는 특정 신조와 교리를 일반 사람들에게 강요할 때, 신앙적 양심 때문에 그것을 거절하는 사람들에게는 핍박이 가해지게 될 것이다.사단은 미국을 강력한 기독교적 헌법을 가진 용 같은 짐승으로 변신시키기 위하여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미국에 있는 개신교회 정치 단체들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움직이고 있는가를 주목해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3) 미국의 독재적 사회주의 가능성
 
다음과 같은 예언은 장차 사회주의적 독재 세력이 형성될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 13:16-17) 현재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들의 중심에 사회주의가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맺는 말씀
 물론, 짐승의 우상을 세우려고 사단이 사용하는 세 가지 방법들이 평화로운 때에는 실현되기 어렵다. 그러나 일단 미국과 선진 경제 대국들이 경제적으로 파탄 지경에 이르고, 지구 환경에 커다란 재난이 이르러 오며, 9.11 테러와 같은 대형 테러들이 이곳저곳에서 생기면, 순식간에 미국 내의 교회와 정치는 손을 잡고 법을 변경시키게 될 것이고, 교황권과 깊은 연합의 관계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짐승의 표 환난은 매우 빠른 속도로 실현될 것이다. 대부분 사람이 미국과 교황권의 연합만이 경제와 환경과 도덕과 평화 유지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살피고 준비해야 할 때이다.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오직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짐승의 표 환난 때에 하나님만 사랑하고 진리를 고수할 사람들은, 지금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하심만을 바라며 혼자 묵묵히 진리를 고수하며 살아야 한다. 그들은 주위 모든 사람의 신앙이 식어갈 때, 모든 사람의 신앙이 형식적이고 냉랭해질 때, 진실하고 열렬한 신자가 되어 주위의 영적인 기근에 아랑곳없이 늘 하나님과 산 연결을 맺어 활력 있는 신앙 생애를 사는 사람들이다! 이제 앞으로 시련의 날이 이르면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생애의 법칙으로 삼은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여름에는 상록수와 다른 나무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다. 그러나 겨울바람이 불어오면 상록수는 변함없이 남아 있지만 다른 나무들은 잎이 떨어져 그 가지가 벌거숭이가 된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마음이 거짓된 신앙 고백자들을 진정한 그리스도인과 구별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구별이 분명히 지어질 때가 절박해 오고 있다.

 만일 반대와 핍박이 우리의 신앙을 향해 일어난다면, 완고와 억압이 다시 기세를 떨친다면, 박해의 불길이 다시 일어난다면, 분명히 반신반의의 위선적인 신자들은 흔들리고 믿음을 버릴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반석과 같이 굳게 설 것이며, 그들의 믿음과 소망은 번영의 때보다 더욱 강하고 더욱 밝아질 것이다.

당신은 다가오는 핍박을 위해 믿음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인가?

질문과 답변: 세상 끝을 알려주는 예언

 다니엘서를 인봉된 책이라 하여 그 속에 있는 내용이나 예언에 대하여 연구를 하거나 공부하려는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현실이다. 그러나 다니엘서는 인봉된 책이 아니요, 그 속에는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확고히 할 귀중한 예언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 중에서도 다니엘 11장 40절로부터 45절에는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와 마지막 최종으로 성취될, 즉 바로 우리 눈 앞에서 성취될 아주 의미심장한 예언이 나와 있다.  이 예언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과연 세상 끝에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이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떤 때이며, 어떻게 영적으로 깨어나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지의 비밀을 알려 주고 있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거의 모든 예언들은 이미 과거에 정확히 성취되었다. 앞으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 이루어질 예언은 불과 몇 가지 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이 다니엘 11장 40~45절은 특별히 최근 우리 눈 앞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세상 역사와 사건에 대한 예언을 다루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펼쳐지고 있는 예언에 대한 분명한 이해는 예수님의 두 번째 오심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안목과 시야를 보다 넓고 깊게 만들어 줄 것이며, 항상 깨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이 중요한 예언을 함께 연구하여 우리가 사는 때가 어떤 때인가를 깨달아 알므로 독자들의 신앙 생활에 큰 활력소를 얻으며, 마지막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온전히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를 찌르리니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리 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들어가며 물이 넘침 같이 지나갈 것이요(단 11:40)
 성경 다니엘서에 나타나 있는 모든 예언의 대부분은 과거에 성취되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연구하려고 하는 다니엘 11장 40절부터 45절, 여섯 개의 성경절에 나타나 있는 예언은 우리 시대를 위하여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우리는 이 성경절들에 나타나 있는 예언들이 성취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이 성경절에 나타나 있는 예언들은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순간에 일어날 사건들을 다루고 있으므로, 장래의 사건들에 대하여 진지한 열심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 연구는 불투명한 미래의 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연구에 앞서서 한가지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은 이 예언은 마지막 시대를 위하여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예언이 참으로 중요한 이유는, 이 예언을 이해하고 나면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사건을 알게 되고, 신앙의 부흥이 일어날 것이며, 과연 어떤 사람이 참된 하나님의 마지막 성도인가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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