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질문과 답변: 성소의 중요성을 아시나요?

 복음이란 그저 구원의 복된 소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과 파워를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의 힘으로부터 실제로 구원해 주시는 파워입니다.하나 구원하시는 이 파워가 어떻게 실행되고 이루어지는지 실제적인 표상을 통해 보여 주신 것이 바로 성소 제도 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생을 잃어버리게 된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죄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악을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악이라고 말하면 마치 흉측스러운 일을 행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상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어기는 모든 생각이나 행동이 바로 악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며,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란 인간의 죄를 해결하시는 그 과정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소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주시는지를 보여 주는 유일한 청사진입니다.

 죄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문제입니다. 겉으로 나타난 행동들은 마음속에 숨어 있는 생각과 동기들이 외부로 표현된 것들에 불과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꼭꼭 숨어 있는 죄의 문제를 녹여 내시는 작업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먼저 과거에 이미 지은 죄들을 용서해 주셔야 하고, 그리고 현재 작용하는 죄의 힘에서 해방하셔서 하나님의 뜻과 법을 순종하기를 즐겨 하는 자로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구원이란 악인을 보자기로 덮어씌워서 그 죄가 당분간 보이지 않도록 해 주는 쇼가 아닙니다. 
구원이란 악인을 의롭게 만들어서 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의로운 생활을 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이 흥미로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성경의 유일하고 참된 복음의 청사진, 성소 제도를 통해 연구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신앙: 5부 - 마지막 시대의 엘리야들

다시 나타난 승천했던 엘리야
 엘리야는 살아서 하늘로 승천할 성도들의 대표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한 엘리야는 세상의 어느 누구도 누릴 수 없었던 특권, 곧 살아서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가 주님과 함께 영광의 시온 성에서 영원히 사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성경에는 승천한 엘리야가 다시 한 번 나타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사건은 다름 아닌, 산에서 예수께서 변화하셨을 때의 일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전,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하늘의 확실한 인증과 힘을 얻으시려는 목적과 또한 시험을 당할 제자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확고하게 고취해 주시려고, 산에 올라가셔서 세 제자 앞에서 신성을 쓰신 모습으로 변화되신 적이 있었다. 바로 야고보, 요한, 베드로 앞에서였다.

 산 위에서 피곤함에 졸고 있던 제자들이 눈을 뜨자, 산을 두루 비취는 찬란한 영광을 보았다. 두려움과 놀람으로 주님의 광채 나는 모습을 가만히 응시해 보니, 예수께서 홀로 계시지 않고 두 사람과 같이 얘기를 하고 계신 것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이야기했던 모세였고 다른 한 사람은 죽음의 권세에 굴복하지 않는 귀한 특권을 누린 엘리야였다.
 모세는 죽음의 지배 아래 들어갔으나 무덤 속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았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를 생명으로 불러내셨다. 사단은 모세가 죄를 범하였다는 이유로 그의 몸을 요구하였으나 구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다(유 9).

 변화 산에 나타난 모세는 죄와 사망을 이기실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증인이었다. 그는 의인의 부활 때 무덤에서 나올 자들을 표상한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변화되어 올라간 엘리야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지상에 살아남아 있을 자들, 곧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고전 15:51~53)게 될 무리를 상징한다.  곧, 모세는 부활한 성도들의 대표자요, 엘리야는 변화된 자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고난의 십자가가 있기 전, 슬픔과 죄 짐을 지시고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성취하실 예수님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천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세상에서 고통과 슬픔을 당한 사람들, 그래서 지상 생애에서 시련을 당하시는 구주를 동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그리스도의 동역자였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그분의 갈망에 동참한 사람들이었다. 엘리야는 삼 년 반의 기근 동안 민족의 증오와 그 재앙의 책임을 져야 했던 고통과 고독을 견딘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백성이 배도했을 때, 홀로 갈멜 산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섰다. 그리고 홀로 고뇌와 절망 속에서 광야로 도피하였다.그러나 모든 고난을 견디고 사명을 성취하고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움을 받은 은총의 사람이었다.  엘리야야말로 예수님의 고난과 고독을 이해하고, 영광스런 구속의 계획에 대한 성취를 함께 의논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살아서 승천한 엘리야만큼 영광스러운 승리와 승천을 상기시켜 주며 예수님을 격려하기에 합당한 사람은 없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엘리야는 그 귀중한 시기에 예수님을 격려하기 위해 곁에 잠깐 다시 보내심을 받았던 것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특권인가!

두 번째 엘리야
 
예수께서 초림하셨을 때, 그분 초림의 준비 작업을 위해 택함을 받은 침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을 가지고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선구자요, 개혁자였다.  침례 요한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은혜의 왕국을 선포하시고,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메시아의 사명을 이루기 전에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마음을 준비시켜야 하는 사명을 받은 두 번째 엘리야였다. 요한은 특별한 사업을 수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의 일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주님의 첩경을 평탄케 하는 것이었다(마 3:3).

 메시아가 강림하시기 전에 반드시 엘리야가 직접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약대 털 옷을 입고 광야에 나타나 능력 있게 외치는 요한을 보자, 엘리야가 다시 온 줄로 여기고 그의 기별을 들으려고 광야로 모여들었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을 엘리야로 칭하지 않고 다만 광야의 외치는 소리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후에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4)라고 하셨다. 요한은 엘리야가 행한 사업을 하려고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왔다.

 침례 요한은 주 앞에 길이 예비되기 위해서는 산과 언덕이 낮아지며 험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지가 되리라.라는 이사야의 예언 성취를 위해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메시아를, 그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시고,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분으로 가리키며 그분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침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갖고 나아가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백성을 주님의 오심과 예언에 주목하도록 외쳤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고, 그 길을 예비하기 위해 제시되어야 할 귀중한 진리를 전해야 할 사명을 받은 말세에 살고 있는 이들을 대표한다.

다시 나타날 세 번째 엘리야

 성경에는 마지막 시대에 엘리야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말 4:5,6) 
 예수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기 바로 직전인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큰 날에 설 백성을 준비시킬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계시다. 그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고 나아가 무너진 바벨론의 비밀과 바벨론의 오류의 포도주와 거짓 복음에 대하여 경고하고 사람들을 곧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시킬 것이다. 이 사람들이 성경이 언급하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보내어질 세 번째 엘리야들이다. 
 이 세 번째 엘리야들은 침례 요한이 행한 것과 같은 개혁 사업을 마지막 시대에 수행할 것인데, 그들이 외치는 기별은,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3)라는 경고와 호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 번째 엘리야들이 나가서 외치는 외침이 계시록 18장에 언급되어 있는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는 큰 소리 외침의 운동, 곧 종교 개혁 운동인 것이다. 
 침례 요한의 기별은 두려움 없는 경고와 권면의 말이었다. 그는 왕들의 죄를 책망하였다. 생명에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리는 그의 입에서 절대 약해지지 않았다.

 범세계적인 배도의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마지막 남은 무리인 세 번째 엘리야들도 담대한 경고와 견책의 기별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강한 기별을 선포하러 나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지닌 어린양의 성품을 닮은 마지막 엘리야들의 입에서 나오는 사랑과 자비의 경고는 성령의 능력과 은혜가 충만하므로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바른 결정을 하게 하여 하나님의 참 복음으로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당신도 세 번째 엘리야이다
 
머지않아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은, 하나님의 남은 자손들이자 증인들인 마지막 세대들이 큰 성령을 받고 나아가 바벨론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내는 큰 소리 외침이며, 종교 개혁 운동이다.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이 준비되어야,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마지막 결정을 내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무리가 생기는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이 세상의 끝이 오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수 있다. 성경에는 그 사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1~4)  바벨론의 죄악을 고하고 사람들을 죄악에서 불러낼 엘리야들이 지금 조용히 준비되고 있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바로 당신을 엘리야로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세 번째 엘리야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속에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죄를 승리하게 하시고, 당신이 알고 있는 복음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시며,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므로 그분의 임재 속에서 늘 살게 하실 뿐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을 주셔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나아가서 외치게 하실 것이다.  하늘은 지금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다. 마지막에 하나님과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나아가 담대하게 외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올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런 엘리야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완수하고 마친 충성스러운 엘리야들은, 첫 번째 엘리야가 그랬듯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여 살아서 승천할 사람들이다.  이 감격스러운 사건이 일어날 시간이 머지않았다. 우리 모두 깨어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 마치고, 살아서 공중으로 끌어 올려져서 구름 속에서 영광스러운 주님을 맞이하는 무리 가운데 들도록 노력하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 일은 가능한 것이며, 우리가 그 무리에 들어가는 일도 가능한 것이다!

신앙: 3부 엘리야는 어떻게 살아서 승천했는가?

 엘리야도 에녹처럼 살아서 하늘로 승천한 사람이다.
엘리야가 하늘로 올리움을 받은 이유를 살펴보기 위하여 그의 생애와 업적과 사명을 조명해 보자. 엘리야의 생애는 살아서 승천할 기회와 가능성을 가진 마지막 세대에게 좋은 모본이 되고 있다.

엘리야의 생애와 믿음

1) 엘리야는 시골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 17:1)  엘리야를 지칭할 때 붙여지는 이름은, 제사장 엘리야이거나, 선지자 엘리야가 아닌, 길르앗에 우거하는 디셉 사람 엘리야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아버지의 이름이나 그가 속한 지파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고 그냥 디셉 사람 엘리야라는 호칭으로만 성경에 6번이나 나온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엘리야는 어떤 유명한 호칭이나 알려진 뒷배경을 가진 사람이 아닌, 시골에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길르앗은 요단 동편에 있는 요단 계곡 사이의 땅으로, 길르앗 산이 있고 물이 흐르고 수목과 목초가 우거져 있는 시골이었으며, 디셉은 길르앗에 속해 있는 한 성읍으로 엘리야의 출신지였다.  이름 있는 도시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고 있던, 평생 높은 지위를 차지한 일이 없는 디셉 사람 엘리야는, 온 이스라엘에 퍼져 있는 배도와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서 참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조용히 고수하고 있던 충실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2)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1. 믿음으로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함
 
  엘리야의 믿음과 믿음의 기도에 대한 기술은 다음의 성경 절 하나면 충분하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 5:17,18)  조용한 산중 은신처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살고 있던 엘리야는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우상 숭배에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는 이스라엘의 배도를 바라볼 때 마음이 고통스럽고 슬픔을 억제할 수 없었으며 의분이 일어났다.

엘리야는 괴로운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한때 그분의 은총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악한 행위를 제지시키시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형벌이라도 내리셔서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난 것을 깨닫고 돌아올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오래 기도하고 간구하였다.  그는 자기의 동족이 완전한 심판과 멸망에 들어갈 정도로 악을 행하게 되기 전에 회개하는 것을 보기를 갈망하였던 것이다.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한 엘리야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여러 번 반복된 호소와 충고와 경고가 이스라엘을 회개시키는 데 실패했으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형벌을 통해서 말씀하실 수밖에 없는 때가 이르렀다.

2. 믿음으로 비가 오지 않으리라고 선언함

 그는 아합 왕 앞에 용감하게 나타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선언하였다. 그 당시는 아합이 바알 제사장의 딸 이세벨과 결혼함으로 인해 이스라엘 나라에 바알을 섬기는 우상 숭배가 만연하고 있었고, 바알 선지자들은 농사의 수확물을 위해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과 비가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자연을 지배하는 신, 땅을 비옥하게 하고 풍성한 수확을 가져오게 하는 태양신의 창조적인 능력에서 온다고 주장했다. 
 배도한 이스라엘 백성은 현세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의 능력을 의지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었다.  엘리야가 그의 기별을 전한 것은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굳게 믿는 믿음을 행사한 것에 불과했다. 그가 섬기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더라면 엘리야는 결코 아합 앞에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엘리야는 사마리아로 오는 도중에 흐르는 시내와 신록으로 덮인 산들과 가뭄이 미치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울창한 삼림을 지나면서, 한 번도 흐름이 끊어져 본 일이 없는 시냇물이 어떻게 마를 수 있으며, 어떻게 저 산과 계곡들이 가뭄으로 타게 될 수 있을지를 의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불신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배도한 이스라엘을 낮추실 것이며, 이스라엘은 형벌을 통하여 회개하리라는 것을 전적으로 믿었다.
 
 믿음으로 엘리야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담무쌍하게 그의 사명을 성취하였다.  그의 말은 즉시 효과를 나타냈다. 땅은 점점 이슬이나 비를 받지 못하여 건조해지고 식물은 시들었으며, 결코 줄어들 줄 모르던 시냇물이 줄기 시작했고 개울들도 마르기 시작했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 삼 년이 지나도 비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땅은 불에 탄 것처럼 바짝 말랐고 맹렬한 태양열은 남은 식물마저 태워 버려, 우는 양 떼와 소 떼들은 고통 중에 이리저리 방황하였다. 우상 예배를 위하여 구별된 숲은 잎이 다 떨어지고 마른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으며, 공기는 건조하여 질식할 것 같았다. 가뭄과 기근으로 온 나라는 황폐하게 되었다.

3. 생계를 하나님께 의존하는 믿음
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왕상 17:10,11)  그는 도피 생활과 가뭄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그의 생명과 양식을 책임지시는 분으로 믿고 의지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한 그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보존하시리라는 믿음으로 두려움 없이 행하였다.  그의 이런 믿음은 사르밧 과부에게 대담한 요구를 하게 만들었으며, 그녀의 믿음 있는 결정을 보상으로 받았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 17:14~16)  엘리야의 믿음과 과부의 믿음은, 불신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단순한 믿음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가르쳐 주고 있다.

4. 믿음의 기도로 비가 오게 함
 갈멜 산의 대 접전을 통해 엘리야는 백성 앞에 그들의 배도를 보여 주고 그들로 마음을 겸손히 하여 여호와께 돌아오도록 호소하였다. 마침내 백성은 죄를 자복하고 저희 조상의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인정하였고, 이제 하늘의 형벌은 물러가고 땅은 비로 다시 신선해지려고 하였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라고 말하였다. 그 후에 그는 기도하기 위하여 산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엘리야가 그처럼 확신을 가지고 비를 맞을 준비를 하라고 아합에게 말한 것은 비가 내리려는 어떤 외적인 증거가 있었던 까닭이 아니었다.  그는 하늘에 구름도 보지 못하였고 우렛소리도 듣지 못하였다. 엘리야는 단순히 자신의 굳은 신앙에 따라 주의 성령께서 그를 감동시켜 말하게 하신 것을 말했을 뿐이었다.

 그는 갈멜 산에서 하루 종일 하나님의 뜻을 확고하게 수행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절대적인 믿음을 나타냈다. 그리고 이제 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했기 때문에, 가뭄을 보내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의로운 행위에 대한 상급으로 약속하신 비를 풍족히 내려 주실 것을 믿고, 그 약속된 비를 기다렸다. 엘리야는 겸손한 태도로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회개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그리고 거듭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종을 보내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눈에 보이는 증거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였다. 그럴 때마다 종은 돌아와 아무것도 없나이다.라고 말하였지만, 엘리야는 조급해하지도, 믿음을 잃지도 않고, 오히려 더 열렬히 탄원하기를 계속하였다.

 종은 여섯 번이나 비가 올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불요불굴의 사람 엘리야는 일곱 번째 그 종을 보냈으며, 드디어 종이 돌아와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으로 넉넉했다. 엘리야는 하늘에 흑암이 모여들기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믿음으로 그 작은 구름에서 많은 비를 볼 수 있었고, 그의 믿음과 일치한 행동으로 급히 종을 아합에게 보내어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라는 기별을 전하였다.

5. 본받아야 할 믿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이러한 중대한 위기에 엘리야를 사용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믿음의 사람, 대 신앙가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도할 때 큰 증거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들으시고 도우신다는 가장 작은 증거에 만족하고 믿었고, 그 믿음의 기도에는 큰 성취가 따랐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엘리야와 같은 믿음, 곧 하나님 말씀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께서 들으실 때까지 그 약속을 놓지 않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신앙은 우리를 하늘의 능력의 근원과 밀접하게 연결시켜 주고, 또 어둠의 권세와 싸워 이길 힘을 준다.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히 11:33,34)였다.

 믿음은 응답받는 기도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우리는 엘리야의 불굴의 신앙과 굳센 인내력을 본받아, 하늘 아버지께 우리의 탄원을 드릴 수 있고 그분께서 약속하신 바를 모두 요구할 수 있다. 믿음의 기도를 들으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명예를 걸고 말씀의 약속을 성취하신다.

신앙: 2부 에녹은 어떻게 살아서 승천했는가?

에녹은 성경 역사에서 살아서 승천한 두 사람 중의 하나로 등장한다.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하늘에 승천하여 영원한 영생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는 마지막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에녹의 생애와 성품을 연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에녹은 예수 재림 직전에 살고 있는 성도들, 곧 살아서 하늘에 들어갈 사람들의 성품과 생애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에녹이 살던 시대
 
에녹이 살던 시대는 현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이 시대와 유사점이 있다. 에녹은 이 세상에 홍수로 인한 심판이 오기 바로 전에 살던 사람이었다.  마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마지막 불의 심판이 오기 바로 전의 시점인 것처럼, 에녹이 살던 시대도 이 세상의 물의 심판이 오기 전, 곧 그 당시 세상의 은혜의 시간이 마치기 직전의 시대였다. 에녹의 시대를 살펴보자.

에녹이 살던 시대는,
1. 진리의 빛이 충만한 시대였다 
  홍수가 오기 전인 에녹이 살던 세상은 악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듯이 무식하고 무지한 야만의 시대는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도덕적, 영적, 지적으로 높은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 풍부한 지식을 얻을 기회가 주어져 있었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 완전하게 창조받은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그 직계 후손들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구전으로 직접 듣고 전수받을 기회가 있어서 진리의 빛을 충만하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녹의 시대의 사람들처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 유리했던 때는 아마 결코 다시 없을 것이다. 그때는 종교적 암흑시대이기는커녕 대 광명의 시대였다. 온 세계는 아담에게서 교훈을 받을 기회가 있었으며, 사람들은 낙원의 문을 통해 하나님의 동산을 볼 수 있었다.

둘째, 그들은 인간이 타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있었으므로 아직 비상한 체력과 지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종교적, 과학적 지식 모두를 얻는 데 있어서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또 그들의 수명이 길었기 때문에, 그 긴 생애를 통하여 더 많은 지식과 정보들을 발전시키고 교환할 수 있었고, 직접 체험한 경험들과 목격한 지식과 교훈을 후손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는 수백 년 동안 7대의 사람들이 동시대에 살며 서로 의논할 기회를 얻었으며, 모든 사람의 지식과 경험으로 서로 유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빛과 진리를 쉽게 찾을 그 귀중한 기회와 특권들을 거절하고 악한 길을 고집하며 그 빛에 눈을 감았다.

2. 홍수의 심판이 올만큼 악한 시대였다
 영적으로 많은 빛과 하나님에 대한 산 증거들을 접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공공연하게 반역함으로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고, 점점 어두워져 가 심판의 구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 당시는 세상의 초기 시대였지만, 벌써 죄악은 매우 깊고 널리 퍼져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것을 참으실 수 없을 만큼 악하고 죄악이 편만 한 시대가 되었다. 그 당시 물의 심판이 이 땅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창 6:5,11)

 당시의 사람들이 신장과 체력이 탁월하고, 지혜가 뛰어났던 것에 비례하여 죄악을 도모하는 일에도 뛰어났다. 그들의 사회는, 무법 상태에서 악인들이 법 없이 날뛰듯, 하나님의 법은 물론 사회의 규범조차 무시하고 자신의 정욕이 이끄는 대로 사는 방식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 당시에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도와는 반대되는 일부다처가 성행하였는데, 가인의 후손인 라멕이 아내들에게 자신의 악한 행실을 자랑하는 장면에서 그 타락상을 엿볼 수 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창 4:23~24)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한 아내를 주심으로 그분의 규칙을 보이셨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악적인 욕망을 따르기로 선택하였고, 그 결과로 범죄와 비참하고 불행한 일이 신속하게 증가하였다.

 결혼 관계나 재산의 소유권도 존중되지 않았다. 이웃의 아내나 소유물이 탐이 났을 때 누구든지 폭력으로 빼앗았으며 사람들은 그들의 난폭한 행위를 으스대며 자랑했다. 그들은 동물을 죽이는 일을 낙으로 삼았고, 육식을 함으로 더욱더 잔인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인간의 생명을 놀랍도록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초기에 있었지만, 그때의 세상은 벌써 죄악이 널리 퍼져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으실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분은 마침내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창 6:7)겠다고 말씀하시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2) 에녹의 생애
 아담의 칠 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 14,15)
우리가 본받아야 할 에녹의 생애와 성품의 특징들을 생각해 보자.

에녹은,
1. 진리의 보존자였다
 에녹은 아담의 또 다른 아들 셋의 후손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으며, 참된 신앙과 진리의 보존자로서 약속된 여인의 후손 메시야의 조상 중의 한 사람이었다.  셋은 아벨 대신 아담에게 주어진 신실한 아들이었고 진리와 빛을 전수하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셋이 아들을 낳자 그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성경의 기록(창 4:26)과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아담의 족보 그리고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조상들의 족보를 보아, 셋과 에녹이 하나님의 신실한 자손들의 계보를 잇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믿음의 조상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이다.  에녹은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온 타락의 어두운 이야기와 타락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그 약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관한 이야기를 산 증인 아담에게서 직접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한 진리의 보존자가 되고자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생애를 살았다.

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었다

 성경은 에녹이 65세 때 아들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 후 3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창 5:21,22) 에녹은 65세에 아들 므두셀라를 얻게 되었는데, 아들이 태어나 아버지가 된 후, 그는 하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에녹이 경험한 높은 신앙의 경지와 깊은 영적인 경험에 대하여 성경은 그가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지만, 자기의 아들이 자신을 향해 가지는 단순한 신뢰와 의지함을 보았을 때, 또한 아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부드러움을 마음에 느꼈을 때, 독생자 아들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을 더 깊이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늘 아버지 품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신뢰의 귀중한 공과를 배웠으며, 그리하여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이끌려 들어갔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보다 더 완전히 깨달았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무한하고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 밤낮 그의 명상의 주제가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그는 전심전력을 다하여 그의 삶 속에서 그 사랑을 나타내려고 애썼다.

3. 거듭난 사람이었다

 에녹은 거듭난 사람이었다. 거듭난 사람은 늘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애를 산다. 그러므로 에녹이 하나님과 삼백 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동행한 것을 보면 그는 완전히 거듭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였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암 3:3)면 동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황홀경 속에서나 이상 중에서가 아니라, 그의 일상생활의 모든 의무를 행하는 가운데서였다.

 가정에서와 사회생활에서, 남편과 아버지와 친구로서, 시민으로서 그는 확실한 하나님의 종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살았다.  그 세대 사람들은 금은보석을 모으거나, 이 땅에서 소유물을 축적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 에녹의 생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에녹의 마음은 늘 영원한 보화에 있었다.

 그는 마음의 눈을 통하여 하늘을 바라보았고, 영광 중에 계신 왕을 바라보았다. 그의 생각과 마음은 하늘에 있었으며 그의 대화는 하늘에 관한 것이었다.  이 세상에 죄악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을 사모하는 그의 마음은 더욱 열렬하였고, 이 땅에 살면서도 에녹은 믿음으로 빛의 영역에서 살았다.

4. 전도자와 경고자였다

 유다서 14, 15절에 보면, 에녹이 사람들에게 경건하게 살 것을 설교하고 전도하면서, 그가 예언 중에 본 사실들을 이야기하며 다가올 심판에 대해 경고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계시 중에 머지않아 세상을 멸망시킬 심판으로 홍수가 올 것을 보았으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에 관계된 큰 사건들을 보았다.
 
 에녹은 의의 전도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하신 바를 백성들에게 알렸다. 그는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유 14, 15)라고 선언하였다. 

 그는 두려움 없이, 홍수를 불러올 세상의 죄악에 대하여 경고하며 하나님 사랑의 용서와 초청을 전하였다. 그는 그들의 악행을 버리라고 간청하면서 범죄자들에게 분명히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경고하였다.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에녹은 점점 더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였고, 그의 얼굴은 거룩한 빛, 예수님의 얼굴에서 비취는 빛으로 빛났다. 

 그가 하나님과 교통하고 나올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그의 얼굴에 찍힌 하늘의 인상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았으며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세상의 죄악의 조수는 점점 깊어졌고, 하나님의 심판의 구름은 점점 더 모여들었다. 그러나 신앙의 전도자 에녹은 그의 길에 굳게 서서 경고하고, 간청하고, 탄원하고, 죄악의 조수를 밀어내려고 노력하였다. 

 그의 경고가 대부분의 죄악과 쾌락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였을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기별을 전했으며, 그의 순결한 생애와 성품으로 죄악과 맞서서 싸우는 용감한 하나님의 증인이었다.

5. 살아서 하늘로 승천한 사람이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 5:24)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3백 년 동안 에녹은 하늘과 조화되기 위하여 영혼의 순결을 추구해 왔었다.

 그는 3세기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하나님을 사랑한 에녹은 날마다 더 하나님과의 밀접한 연합을 바랐었다. 죄악으로 멸망 받을 운명에 처한 세상 가운데서 에녹은 하나님과 매우 밀접한 교제의 생애를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음의 권세 아래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그와 하나님과의 교통은 점점 가까워졌으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그분 곁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는 영원한 세계의 문어 귀에 섰었고 그와 축복의 나라는 한 걸음 사이였다. 이제 그 문이 열리고 지상에서 그처럼 오랫동안 이루어졌던 하나님과의 동행은 계속되었다. 그는 거룩한 도성의 문을 통과하였다. 그는 인간으로서 살아서 승천하여 하늘에 들어간 첫 번째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6. 살아서 승천할 사람들의 모본이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아담의 죄가 초래한 무서운 결과들 때문에 낙담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었다.  세상과 인류에게 드리워진 저주와 죄의 영향으로 죽을 운명에 처한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법을 지킨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또한, 세상은 홍수의 심판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런 즈음에 에녹의 생애와 성품에 나타나고 실천된 신앙의 모본과 승천은, 아담을 통하여 죄와 죽음이 왔지만, 약속된 구세주를 통하여 영생이 이를 것이라는 소망을 사람들에게 주었다.  에녹은 하나님이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히 11:6) 분이시라는 것을 증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실지를 에녹을 통해 보여 주셨다.  사람들은, 에녹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가능하며, 죄 많고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 살 때에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유혹을 물리치고 순결하고 거룩하게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았으며, 신실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며 하늘로 데리고 가신다는 교훈을 받았다.

 에녹의 이 경건한 품성은 그리스도께서 재강림 하실 때에 땅에서 구속함을 얻을(계 14:3) 사람들이 이루어야 할 거룩한 상태를 대표한다. 홍수 전의 세상처럼 세상 끝에도 죄악이 넘칠 것이다.  말세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부패한 마음의 충동과 육신의 정욕과 세상의 거짓 가르침을 좇아 하나님께 대항하고 반역할 것이다. 그러나 에녹과 같이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마음의 순결과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기를 구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반사할 것이다. 

 에녹처럼 그들은 주님의 재림과 임할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경고할 것이다. 물로 세상이 멸망 당하기 전에 에녹이 하늘로 승천한 것처럼, 산 의인들도 불로 세상이 멸망 당하기 전에 하늘로 승천할 것이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고전 15:51, 살전 4:16~18)

신앙: 1부 - 살아서 승천할 사람들이 준비되고 있다!

 재림이 가까운 마지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큰 특권이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의 마지막 예언의 성취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여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마지막 시대야말로 많은 선지자와 믿음의 선조들이 사모하고 바라던 시대이며, 믿음의 노독들이 한번 살아보기를 소원하던 시대인데, 그 이유는 바로 마지막 세대가 가진 그 특권 때문이다.  그토록 그리던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기회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승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며 영광스러운 것인가!

살아서 승천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1. 큰 환난을 통과하는 자들이다
 성경에 마지막에 살아서 승천할 사람들이 있다는 언급을 찾아볼 수 있는가? 요한계시록 7장에는 마지막 하나님의 인을 맞은, 구원받는 무리 십사만 사천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고, 또 구원받은 무리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계 7:9~10)

 계시 가운데서, 사도 요한은 구원 얻은 많은 무리 -요한의 눈에는 능히 셀 수 없이 큰 무리로 보인 사람- 들이 흰옷을 입고, 손에는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를 들고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았다. 요한이 구원받은 그 무리들이 누구인가 궁금해하자, 천사들과 다른 장로들과 또 네 생물과 함께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하나님을 찬양하던 장로 중의 하나가 요한에게 그 구원받은 무리에 대하여 확인해 주는 장면이 연출된다. 

  장로 중의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3,14)  장로 중 하나가 말해 준 사실은, 그 구원 얻은 무리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큰 환난은 어느 환난을 가리키는 것인가? 

 다니엘서 12장 1절을 보면, 마지막 때에 있을 환난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그때에&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보아 계시록에 표현된 이 큰 환난은 다니엘이 가리킨 마지막 때, 즉 말세에 있을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을 가리키는 말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구원을 얻어 살아서 승천할 사람들은 큰 환난을 통과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 큰 환난을 통과하는 무리가 죽지 않고 살아서 승천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계속하여 연구하여 보자.

2.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이다

 마지막에 짐승의 표 환난과 재난이 임할 때, 하나님의 인을 받은 주님의 백성들은 해함을 받지 않고 보호함을 받는다.  환난에서 해함을 받지 않고 통과한다는 뜻은 죽지 않고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목격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또한 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살아서 하늘로 승천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성경 절을 하나 읽어 보자.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1~3) 

 이미 지나간 월간지들과 또 121호에 언급된 기사 십사만 사천에 대하여 구독한 독자들은 숙지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인이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물이라는 표로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정신을 가진 사람들, 즉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의 성품으로 온전히 변화한 사람들인 십사만 사천 인의 이마에 쳐지는 하나님의 인정 표이다.  그것은 사방 바람이 놓이기 직전, 곧 이 세상에 마지막 환난과 재난이 올 때 하나님의 백성에게 쳐지는 것으로서, 세상 종말에 사는 자들만 받게 되는 표이다.

 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회개하여 성령의 인을 받고 나서,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나 열매를 맺은 성도들에게 쳐지는 것이므로,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사는 마지막 성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해하는 사방 바람이 놓이는 시점에 쳐지는 하나님의 인은, 세상에 재난과 환난이 임할 때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든 해함의 권세에서 보호함을 받게 해 주며, 바벨론을 향한 큰 소리 외침을 더욱 능력 있게 해 준다.

3. 은혜의 시간이 끝나고 7 재앙을 지나는 사람들이다

 요한계시록 16장과 17장에는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짐승의 보좌에 일곱 재앙이 내리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계 16:1~2)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계 16:8~11)

 앞의 성경 절을 자세히 읽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7 재앙은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받는다.

4. 재림을 맞이하는 사람이다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계 16:17~20)  일곱째 재앙은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있을 큰 지진을 묘사한 것으로, 산과 섬이 자리를 옮기는 것은 재림 때에 온 천지가 뒤집히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환난을 통과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목격할 사람들이다.

*결론
 위의 사실들을 상고해 본 결과, 살아서 승천할 사람들은 죄의 역사가 드디어 마쳐지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인을 받고, 큰 환난을 통과하고, 모든 시험을 이긴 후,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마지막 세대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만일 주님의 은혜로 재림을 위해 잘 준비된다면, 우리가 바로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목격하고 살아서 승천할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멋진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옮김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있는가? 물론 있다. 그들은 에녹과 엘리야이다.  어떻게 그들은 살아서 승천했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은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곧 마지막 사건과 영광스러운 주님의 재림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계속되는 기사를 함께 공부해 보자.
  •  그들은 무서운 7 재앙을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다. 이 사실로 보아 그들의 은혜의 시간과 이 세상의 은혜의 시간이 끝난 것을 알 수 있다.
  • 은혜의 시간이 끝난 후에는 순교자가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순교는 순교자들의 피로 진리의 씨를 뿌려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고 싹을 트게 하는 데 필요하지만, 은혜의 시간이 끝난 후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순교가 더는 진리를 전파하는 일에 사용되지 않을 것이므로 필요가 없게 된다.
  • 7 재앙을 지나는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을 받겠지만, 생명에는 해함을 받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
 계시록 7장 16절에 나오는 구원받은 성도들에 대한 기록을 보면,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라고 되어 있다.

 이로 보아, 그들은 셋째 재앙 물이 피가 되는 재앙을 통과할 때 목마른 경험을 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넷째 재앙, 해가 권세를 받아 사람들을 태우는 재앙을 무사히 통과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 이러라. (계 7:13~17) 

  이 세상에 내리는 7 재앙은 악인들이 받지만, 의인들도 같이 세상에 있으므로 그 영향을 받아 죽지는 않아도 주리고 목마르고 뜨거운 기운에 상하는 고생을 하게 된다.

창조교실: 해바라기는 왜 해를 따라 갈까요?

 까마득히 펼쳐져 있는 해바라기 꽃밭을 보신 적이 있나요? 일제히 해를 향하여 얼굴을 돌리는 황금색 해바라기 꽃들이 무척 신기하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해바라기 꽃이 해를 쫓아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줄기와 잎의 끝 부분만 해를 향하고 있답니다.  빛을 향하는 성질 때문이지요. 이 꽃의 줄기와 잎은 아침에는 동쪽, 낮에는 남쪽, 저녁에는 서쪽을 향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꽃이 피기 전, 녹색 꽃봉오리에서도 볼 수 있지요. 이렇게 해바라기 줄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태양을 쫓아가지만, 저녁에 해가 지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동쪽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완전히 동쪽을 향하고 태양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지요.
 
 도대체 해바라기는 무엇 때문에 태양을 쫓아가는 습성을 갖게 된 것일까요?
식물들은 영양소를 합성하기 위해서 광합성을 하게 되는데,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는 태양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어느 식물보다 생장이 빠른 해바라기는 광합성을 통해 많은 양분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답니다. 그래서 해바라기는 항상 태양을 향해 잎을 돌려 광합성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꽃봉오리가 아직 녹색일 때에는 광합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녹색 꽃봉오리마저도 태양을 쫓아갑니다.

 비단 해바라기의 꽃망울뿐이 아니고, 대부분의 식물은 태양을 좋아해서 그쪽을 쳐다보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 식물의 '향일성'이라고 부릅니다.   주광성 이라고도 하고요.  향일성은 식물 생장 호르몬의 작용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식물의 생장은 줄기 끝의 생장점에서 만들어지는 옥신 등의 생장 호르몬에 달렸습니다. 생장 호르몬이 많아지면 생장이 빨라지고, 적어지면 생장이 더디게 되는 것이지요.

 태양을 향하는 해바라기와 식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려고 하시는 걸까요 우리도 늘 일편단심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바라보라고 해바라기 꽃 같은 식물을 만드시지 않았을까요? 태양을 향하는 해바라기가 빼곡하게 가득히 씨를 맺듯이,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과 입술에는 늘 하나님의 씨앗인 생명의 말씀이 가득히 담겨져 있지 않을까요?

바이블맨: 고린도 후서 12장 1~16절에서 그는 누구이며, 셋째 하늘은 어디이고, 말할 수 없는 말은 무엇입니까?

1. 나의 신이 영원히 &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고후 12:2-6)

그에 대하여
 이 말씀에서 그는 바울 자신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이러한 은유적 표현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았던 환상과 계시를 자랑으로 말하고 싶지 않는 바울의 겸손을 느낄 수 있습니다.

 1절에서는 내가 &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한다고 했다가 2절에서는 그라고 표현했지만 뒷부분에 가서는 그를 다시 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셋째하늘에 대하여

 바울은 자신이 계시 중에 셋째 하늘에 올라간 특별한 초자연적인 계시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늘은 지구의 대기권을 말하며, 둘째 하늘은 해, 달, 별들이 있는 우주 공간을 말하며, 셋째 하늘은 하나님께서 계시고 천사들이 거하고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라는 말씀 속에서도 셋째 하늘의 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 어떤 영이나 혼이 육체를 빠져나간다고 암시하는 말씀이 전혀 없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말씀은 선지자 다니엘이 그러했던 것처럼, 바울 역시 살아 있는 동안에 계시를 통하여 하늘을 보았던 사실을 은유적인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문 성경에서는 하늘을 복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계 12:12) Therefore rejoice, ye heavens(복수), and ye that dwell in them(복수). 

 계시록이 하늘을 복수로 묘사하고 있는 사실은 사도 바울이 계시를 통하여 셋째 하늘을 갔다는 사실과 서로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다니엘 선지자가 계시를 받는 장면을 통해서, 계시는 뇌(brain)로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단 7:1) 그러므로 다니엘이 그의 뇌 속에서 계시를 보았던 것처럼, 바울 역시 그의 뇌 속에서 하늘의 장면을 보았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죽지도 않은 바울의 혼이 육체를 빠져나가서 하늘로 날아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만 하실 수 있는 기적적인 역사를 통하여 바울의 뇌 속에 하늘의 모습을 펼쳐서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 자신이 스스로 표현했던 다음과 같은 말 속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바울 자신 역시 이러한 신비스러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말이란 천사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듯합니다.  하늘의 언어라고 불러야겠죠. 셋째 하늘에 가서 보고 들었던 것들이 히브리 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자신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을지라도 지구의 언어는 아니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하늘의 언어는 요즘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방언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 소통하고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건강: 류머티스성 관절염, 너무 힘드시죠?

 관절염과 기타 골격 관절 질환들은 현대인들에게 매우 심각한 장애의 원인이다.

 관절염 중에서도 류머티스성 관절염은 매우 파괴적인 관절염이다. 이 질병은 인체가 자신의 관절과 다른 조직들을 실제로 공격함으로써 발생한다. 그 이유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병에 걸린 사람 면역계가 비정상으로 활동하여 관절을 공격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종종 이런 일로 영구적으로 불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북유럽의 어떤 연구원들은 심각한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앓는 환자에게 일 년 동안 완전 채식을 하게 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실행한지 한 달 후에 환자를 분석한 결과, 관절이 아프고 붓는 횟수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침에 관절이 심하게 굳어지는 증상도 호전되었다. 완전 채식을 일 년 동안 실시한 결과 다음과 같은 효과가 있었다.

È 관절 통증 감소
È 관절 부종 감소
È 아침에 관절이 굳어지는 시간 감소
È 전 신체의 염증 감소
È 약력 증가


 중요한 점은, 채식을 한 환자들은 관절뿐 아니라 몸 전체적으로 건강이 호전되었다는 것이다.물론 이러한 결과만으로 모든 류머티스성 관절염 환자가 완전 채식만으로 치료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연구에 의하면 채식이 건강 상태를 상당히 호전시킬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류머티스성 관절염 환자들은 올바른 식사와 영양으로 삶의 질과 혈액 검사 결과를 호전시킬 수 있으며, 관절염 약물 복용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모든 의약품에는 항상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에 복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좋은 점이다. 

 식이요법은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예방하는 데에 중요하다. 류머티스성 관절염 중에서 어떤 것은 감염성 질환에 의해 시작된다는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 음식으로 인한 살모넬라 감염과 류머티스성 관절염 사이에는 명백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관절염에는 류머티스성 관절염 외에도 인체가 스스로 공격해서 일어나는 다른 형태의 관절염들이 있다. 이런 형태의 관절염에는 루푸스(Lupus) 관절염과 척추관절염 군이 있는데, 후자에는 강직성 척주염과 리이터(Reiters) 증후군이 포함된다. 왜냐하면 이런 질병들은 유사한 과정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영양학적 치료에도 비슷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발표된 연구 보고는 척주 관절염과 식사의 관련성을 많이 지적하고 있다. 환자 25명이 6주 동안 유제품을 뺀 음식을 섭취했더니 그들 중 반 이상에서 관절 부종과 경직, 통증의 감소를 나타냄으로써 극적인 호전을 나타냈다. 그리고 약물 사용도 줄일 수 있었다.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어떤 환자들은 다시 유제품을 섭취했을 때 이전 증상으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류머티스성 관절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운동
 운동은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의사들은 관절염 환자에게 침대에 누워서 쉬라는 처방을 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운동을 할수록 관절염이 호전된다는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부적합한 운동은 관절 상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환자의 필요에 꼭 맞도록 짜인 운동 프로그램은 종종 그들의 관절염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류머티스성 관절염 환자들이 높은 강도의 운동 프로그램(기술적으로 높은 강도의 점진적인 내성 운동 프로그램)에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최근에 이루어진 연구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운동이 통증과 피로를 감소시킨다고 발표했다.  좋아진 조정 능력으로 눈에 띄게 잘 걸을 수 있고. 더 빨리 걸을 수 있었고, 질병을 악화시키거나 관절 통증을 심화시키지는 않았다. 잘 짜인 운동이 주는 유익 중의 한 가지는 성장 호르몬(GH)과 관련된다.

 이 중요한 호르몬은 어린이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장 호르몬이 성인들의 뼈와 연골 조직 재생을 자극한다고 할 수 있으며 닳아서 낡은 관절의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성장 호르몬의 수치는 활기찬 운동 후에 급격히 증가한다.  운동은 비만과 관절염이 있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류머티스성 관절염, 퇴행성 관절염 혹은 다른 형태의 관절염이 있는지에 상관없이 마찬가지다.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그 체중을 받는 넓적다리관절과 무릎, 발목 같은 관절은 더욱 압박을 받는다.  운동과 적당한 음식 섭취는 최적의 체중에 도달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두 개의 모퉁잇돌과 같다. 보스턴 의과대학 교수인 데비드 펠슨(David Felson) 박사는 무릎의 퇴행성 관절염을 연구했다. 그는 체중을 줄이는 것이 무릎 관절염을 매우 좋아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과체중인 사람은 관절염에 걸릴 위험률이 더 높다. 질병관리센터(Center for Disease Control)의 채드 헬믹(Chad Helmick) 박사는 의학적으로 비만이라고 판정받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과체중인 사람은 정상 체중인 성인보다 관절염에 걸릴 확률이 30%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의학적으로 비만 판정을 받은 경우 위험성은 더 커진다.  비만 여성의 관절염 위험이 50% 증가한 반면, 비만 남성은 위험률이 70% 증가했다.

 운동으로 체중을 조절하는 것이 운동 때문에 관절이 소모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보인다.  최근 연구는 과체중인 여성은 류머티스성 관절염이 발생할 위험률이 더 높다고 발표했다. 키에 비해 체중이 상위 25%에 속해 있는 여성은 류머티스성 관절염에 걸릴 위험이 40% 증가한다.

 류머티스성 관절염과 혼돈됐던 형태의 관절염이 있는데, 그것은 라임(lyme) 관절염이다. 라임 관절염은 대개 감염된 사슴 진드기(tic)가 물어서 전달되는 박테리아 때문에 발병된다.  라임 관절염은 미 동북부에서 가장 심각하며, 미국 전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관절염은 고열 치료 로 호전될 수 있다는 증거가 있다. 결과는 임시적이지만, 이것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천연적인 치료법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충분한 양의 물을 마시는 것은 뼈와 근육 그리고 관절과 관련된 질병에 도움을 준다.  물은 혈액의 순환을 원활하게 해 주고 그 결과 요통을 치료하고 관절과 인체 조직 치유에 도움이 된다. 빈약한 혈액 순환이 류머티스성 관절염에서 흔하게 일어나며, 관절에 필요한 최상의 혈액 순환이 되지 않는다.

휴식
 휴식은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최상으로 회복하는 데 필수이다.  하루 동안 힘들고 지쳤던 신체를 회복하는 중요한 호르몬들이 잠자는 동안 분비된다. 밤에 생성되는 호르몬 중에는 류머티스성 관절염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밤에 수면을 잘 취할 때 가장 잘 만들어진다.

가정과 영성: 이런 아버지가 되라! 이런 남편이 되지 마라!

1. 이런 아버지가 되라!
자녀와 더불어 시간을 보내라
 많은 아버지가 자녀의 마음을 자신에게 이끌어서 붙들어 맬 귀중한 기회들을 낭비하고 있다. 하루 일을 마치고 귀가했을 때 시간을 내서 자녀와 더불어 보내는 것이 매우 즐겁고 행복하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는 자녀와 더불어 놀아 주고, 그들의 입장으로 내려와서 어려움을 위로하고, 그들을 강한 사랑의 줄로 아버지의 마음에 붙들어 매어서 아버지의 충고가 신성하게 여겨지도록 해야 한다.

아들에게는 특별한 관심을 두어라

 아버지는 남자로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아들에게 들려 줌으로써 아들을 아버지의 마음에 붙들어 맬 수 있다. 단순함과 부드러움을 가지고 아들과 이야기하면서 밀접히 교제해야 한다.  아버지는 나의 가장 큰 유익과 행복을 위하여 언제나 깊은 관심이 있는 분이다.라는 생각이 아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아들을 가진 아버지는 자기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기가 하나님께 위탁받은 자녀를 결코 등한히 하면 안 된다. 아들과 행복한 대화를 나누는 일을 소홀히 하는 아버지는 자녀가 가정과 교회를 떠나는 슬픔을 맛보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자녀가 성결하지 못한 친구들, 악한 친구들을 사귀지 않도록 보호할 책임을 하나님께 부여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아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활동적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어머니의 보호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아들은 여인인 어머니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녀의 최선의 유익을 위하여 영적인 일과 육적인 일을 책임져야 한다. 남자아이들을 자제시키고 훈련하는 일이 어머니에게는 몹시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으므로 아버지는 더욱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 아버지는 자녀를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가장으로서 결정적인 노력을 하고자 하는 굳은 결의가 있어야 한다. 

 아버지는 세상의 유혹보다 강한 감화를 자녀들에게 끼칠 수 있다. 그는 자기 가정의 어린 자녀가 가진 경향과 성격들을 연구하여 그들의 필요와 위험을 알아서 나쁜 것을 억누르고 옳은 것을 장려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들이여,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그대들의 자녀와 함께 보내라.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되도록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서 자녀의 개성과 성향을 알아내려고 힘쓰라. 한마디의 낙담시키는 말도 하지 말라. 어둠을 집에 가져오지 말라. 그대의 자녀들에게 쾌활하고 친절하며 애정을 지속적으로 보내라. 그러나 자녀 멋대로 하도록 허용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라.

일하고 운동하는 중에 그들로 더불어 사귀라
 아버지로서의 권위에 사랑을 섞고, 확고한 원칙 속에 친절과 동정을 섞어서 교육하면 아이들은 아버지의 말에 최고의 존경을 표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여가의 시간을 내서 자녀와 친해질 수 있도록 함께 놀아 주고 그들의 운동에 동참하여 그들의 신임을 얻어라. 
자녀의 친구가 되어야 하는데 특별히 아버지는 아들과 친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버지는 아들의 신앙과 영성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자녀에게 교훈을 가르쳐라
 아버지는 어린 자녀에게 아름다운 꽃과 높은 나무들을 보여 주면서 그들의 영혼 속에 창조주를 심어야 한다.  자녀는 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면서 꽃과 나무로부터 하나님이 하신 일과 사랑을 더듬어 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들의 백합화와 공중의 새들을 가리키시면서 새나 꽃보다 중요한 존재로 창조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특별하게 보호하신다는 설명을 들려 주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셨던 것처럼 아버지는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


2. 이런 남편이 되지 말라!
아내가 이중의 짐을 지기를 기대하는 남편
 자녀에게는 어머니의 관심과 지혜로운 훈육이 필요할 뿐 아니라 아버지의 엄하면서도 사랑 깊은 감화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필요성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아버지는 매우 드물다. 

 
많은 아버지가 가정에서 져야 할 무거운 짐을 어머니의 어깨 위에 놓으면서 어머니가 혹시라도 실수하면 그들을 비난하고 정죄한다.  남편이 넘긴 무거운 책임감 하에서 어머니들은 온 힘을 다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행한 실수들과 잘못으로 말미암아 깊은 죄책감과 후회를 느끼게 된다.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의무들을 아내에게 넘기고 난 후, 아내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무책임한 남편들 때문에 가정의 질서가 깨지고 아이들은 빗나가게 되어서 어두운 그림자가 가정 위에 드리워지게 된다.

 아내에게 가장인 남편의 의무를 넘겨 버리고 전혀 감사한 정신 없이 아내를 대하는 남편들이여, 그대들의 그러한 태도 때문에 아내는 슬픔의 구름 밑을 말없이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많은 남편은 아내들이 흔히 온종일 끊임없는 집안 살림살이에 얽매여서 겪는 염려와 난처한 일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며 감사치 않는다.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 시간에 남편들이 근심 어린 얼굴로 집에 들어오면 온 가족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덮이게 된다. 아내는 주부, 간호사, 선생 그리고 하녀의 일을 혼자서 맡아 하면서 피로에 지치게 된다.  그러한 아내들에게 남편들은 따뜻한 말로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 아내의 지속적인 희생과 수고에 대해서 감사하는 남편의 말 한마디가 온 가정에 밝은 햇빛을 가져다준다.

 남편은 귀찮게 구는 아이를 아내의 지친 팔에서 받아서 아내로 하여금 가족을 위하여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서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자녀로부터 성가심을 받으며 인내했는지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참을성 없이 여보, 빨리 얘들 좀 조용히 시켜요! 하고 소리치는 남편들은 아직 그리스도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독재적이고 지배적인 남편에게 보내는 조언

 만일 자신이 가정의 가장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한 가정을 꾸렸을 부부들이 매우 많다. 영어에서 Husband(남편)이라는 말은 house(가정)와 band(묶는 끈)라는 단어가 만나서 생긴 복합어이다.  남편은 가정을 하나로 묶는 끈이 되어야 한다. 아내와 자녀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흔히 독재적인 남편들은 자신이 가진 판단력의 결함을 신경질과 큰소리로 감추는 경향이 있다.  어떤 때는 사랑과 친절을 나타내다가 상황이 달라지면 신경질과 짜증을 나타내는 아버지와 남편을 대하면서 아내와 자녀는 당황해 하고 혼돈 가운데 빠진다. 
 
 그리스도인 남편들이여, 더 많은 사랑과 더 많은 인내심으로 가족을 하나로 묶는 끈이 되어 사단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가정을 굳건한 성채로 만드는 것이 남편들에게 놓인 엄중한 책임임을 깨달으라!  가족들에게 자유를 허락지 않고 독재자로 군림하는 남편과 아버지 밑에서 아내와 자녀는 영적으로 병들어 간다.

 마치 기계가 직공의 손에 의해서 자동으로 움직여지듯이 자신의 뜻에 따라서 모든 가족이 항상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원하는 남편과 아버지가 있는 가정에는 늘 보이지 않는 불만과 반항의 정신이 흐르게 된다. 

 언제가 때가 되면 그러한 정신이 폭발하여 아이들은 부모의 신앙을 버리고 집을 나가게 되며, 아내는 억압과 슬픔의 생애를 견디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게 된다. 남편이 가진 독재적인 태도가 온 가족의 생애를 파탄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초조하고 성미가 급한 남편들
 남편들이여, 아내들에게 영적 생활을 할 기회를 주라. 아내들이 편안한 안락의자에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라.  남편의 급한 성질에 맞추려고 아내가 종일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하는 남편이 있는 가정에서는 행복이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남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가서 자신의 급한 성벽을 고쳐달라고 탄원해야 한다. 

 어렸을 때 고쳐야 했던 잘못된 성벽이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후에도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에 온 가족이 고통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남편들이여, 안달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태도를 가정에서 절대 나타내지 말라. 그러한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은 아내와 자녀로부터 모든 존경심을 빼앗아 가게 된다.

이기적이고 무뚝뚝한 남편
 태어나면서부터 어둡고 무뚝뚝한 기질을 가진 남자들이 있다. 그런 남자들은 자신의 가정에 밝은 햇빛을 가져오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예수님께 매달려야 한다. 그러한 기질이 변화되지 않으면 남편은 가정의 햇빛이 되기보다는 어두운 구름과 같은 존재가 된다.  그런 남편은 가족에게 인정과 사랑의 말을 할 줄 모른다.

 자신의 어두운 감정과 기질을 핑계 대면서 늘 다른 가족이 자신에게 맞추어 줄 것을 요구한다. 가족들에게 따뜻한 말, 위로의 말을 주기보다는 늘 받아야 할 것을 생각한다. 그러한 남편은 대개 무뚝뚝하고 자기 중심적이다. 그러한 남편의 말들은 흔히 날카로워 가족에게 상처를 준다.

 자신의 정신을 부드럽게 하고 다른 가족의 허물을 인정하며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잘못과 죄를 하나님과 가족들에게 고백함으로 아내와 가족의 상처를 치료해 주어야 한다.  부드러운 남편이 되어야 한다. 고상함과 따뜻한 예의를 가족들에게 항상 나타내도록 하나님께 성령의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날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사랑과 부드러운 정신을 받아서 자신의 성질 가운데 있는 거칠고 칼칼하고 무정하며 비열한 특성들을 극복해야 한다.  얼굴을 찡그린 채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남편과 아버지는 자신이 불행해질 뿐만 아니라 가정 안에 있는 모든 식구에게 어두운 그늘을 던지게 된다. 그는 자기의 냉랭한 기질 때문에 아내가 낙담하고 지치게 되며, 자녀가 망가지는 것을 목격하는 결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편협하고 이기적인 남편
 이러한 남편은 아내와 자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  가정에서 너무 많이 책망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남편과 아버지 역시 가정으로부터 모든 햇빛을 거두어 낸다.  이런 남편들은 가정에 음울과 슬픔과 불행을 가져온다. 자신의 의견을 너무 많이 말하고 아주 사소한 것까지 잔소리함으로써 가정에서 그대의 아내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여유를 전혀 인정하지 않게 된다. 

 자녀들에게 어머니의 판단을 존경하도록 가르치지도 않는 남편이 이끄는 가정은 결국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아내를 배려하고 동정하는 기질을 갖고 있지 않은 남편들 때문에 수많은 아내가 병들어 간다.  이런 남편들은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경험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된 정신을 이기고 극복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가정은 점점 더 어둠 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

 남편이 자기 아내의 행동에 대하여 가혹하고 비판적이면, 그는 아내의 존경과 애정을 받을 수 없으며, 그러한 결혼 관계는 아내에게 증오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인데, 이는 남편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조심성 있고 정중하며, 변함이 없고 충실하며, 인정이 깊어야 한다. 늘 가족들에게 사랑과 동정을 표시해야 한다. 남편이 십자가 아래서 참된 거듭남을 경험하면 고상한 품성과 순결한 마음과 부드러운 정신이 자연스럽게 가정 안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 남편은 아내를 건강이 넘치는 에너지의 소유자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인 예의를 무시하는 남편에게
 어떤 남자는 친절하고 동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자신이 약해지는 것으로 생각하며, 아내에게 부드럽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위엄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남편들은 참으로 남자답고 품위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이다. 

 친절을 베풀지 않는 성질이 품성의 명백한 약점이요, 결함이다. 아내와 자녀들에게 부드럽게 말하고 힘들어하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따뜻한 동정을 나타내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정에서 실행해야 할 참된 그리스도인의 예의로 여기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나타내셨던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생애의 빛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죽는 방법은 다르지만 죽는다는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장사가 없습니다. 재물이나 지식이나 아무리 높은 지위라도 우리에게 죽음을 피하게 해 줄 수는 없습니다. 참 그렇게 보면 우리 인생들은 정말로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죽음 이후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죽음이란 정말로 무서운 일입니다. 사망은 죽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중지되고 갑자기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는 무서운 저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십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임을 말입니다.우리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최고의 원수요,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을 정복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직접 올라가 버린 사람들에 대한 경험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고 나서 부활한 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죽음 자체를 경험하지 않고 직접 영원한 곳으로 가버린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정복한 자들!!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은 그러한 자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장면을 살게 될 마지막 세대일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 의인들을 말하는 것이지요 왜 그들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승천하게 될까요?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떠한 경험이 그들을 그렇게 되도록 준비시킨 것일까요?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었습니다. 엘리야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그러한 자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재림하실 시기에 사는 우리는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될 후보들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엉뚱한 이야기처럼 들린다고요? 이번 호를 읽으시면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죽지 않을 자들!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편지: 아름다운 비상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날아오르려는 소망으로 점철된 삶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모든 행위는 비상(飛上)을 위한 몸짓이라 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목적지는 하늘이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주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이 분주히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르는 듯이 보이지만, 한 번도 진정으로 날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아직 진정한 날개를 가지지 못했거나, 날아오르기엔 아직도 지닌 것이 너무 무겁기 때문입니다.

날아오른 애벌레

 강둑 위에 있는 수풀에 애벌레 세 마리가 모여 있었습니다. 아주 먼 곳에서부터 기어온 애벌레들은 강 건너에 있는 꽃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애벌레가 말했습니다. "일단 다리를 찾아야 해. 그런 다음 다리 위로 건너가자. 그래야 다른 애벌레들보다 먼저 도착해서, 꿀이 가장 많은 꽃을 차지할 거 아니니?"  그러자 두 번째 애벌레가 말했습니다. "아니, 여기 다리가 어디 있겠어? 차라리 배를 만들어서 물 위로 건너가는 게 어때? 그러면 훨씬 빨리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 테고, 꿀도 더 많이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러자 세 번째 애벌레가 말했습니다. "우린 지금 너무 오래 걸어왔어. 꿀을 더 많이 먹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좀 쉬어야 하지 않을까?"

 세 번째 애벌레의 말에 찬성할 수 없는 다른 애벌레들은 고개를 흔들며 떠났습니다.  두 번째 애벌레는 벌써 나무에 올라가 나뭇잎으로 강을 건널 배를 만들기 시작했고, 첫 번째 애벌레도 강둑 위로 난 작은 길로 기어올라가 강을 건널 다리를 찾아 떠났습니다.  혼자 남은 애벌레는 나뭇잎 아래에 가만히 누웠습니다. 강 건너 꽃밭의 꿀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솔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향기로운 꽃향기와 부드러운 풀밭에서 쉬는 것이 좋았습니다.

 걱정과 욕심을 내려놓은 애벌레는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어둠의 순간이 지나고 잠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아름다운 나비로 변해 있었습니다.  날갯짓을 몇 번 하자 몸이 솜털처럼 가볍게 날아올랐습니다. 애벌레(나비)는 강 건너편 꽃밭까지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꿀을 쫓던 친구 애벌레들은 끝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날개를 받아야 했습니다. 날아올라야 했습니다. 그 먼 강 건너편 꽃밭에 가는 것은 나비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날아오르는 연습

 애벌레가 묵은 껍질을 벗고 부활하여 찬란한 날개로 날아가듯이, 그리고 나비에게는 땅에 놓인 나뭇가지가 더 이상 넘어야 할 장애물이 되지 않듯이, 옛것을 버리고 새롭게 부활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문제가 되는 것은 없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애벌레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는 진정한 날개를 받아 아름다운 비상을 시작했기 때문에&.  잘못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욕심스러운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구원받아 하늘에 가려는 욕심은, 세상의 어떤 욕심보다 가장 무게가 나가는 것이니까요.

 가장 종교적인 사람, 가장 열심 있는 교인은 종종 옆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종교와 신앙으로 가장한 욕심의 날은 사람을 상하게 할 만큼 날카롭고, 종교적인 열심만 클 뿐, 아직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겸손의 빛으로 색칠되지 못한, 생기다 만 날개의 서투른 날갯짓으로 많은 사람을 휘둘러대기 일쑤입니다.  부화하기 위한 진정한 몸부림보다는 종교와 교회라는 틀 속에서 인정받음의 둥지를 트는 일이 중요하고, 날아오르기보다는 온갖 욕망으로 가득 차 땅에 것(골 3:2)에만 신경을 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것은 문제가 됩니다. 

  옛것을 잊어버리고 위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땅 위의 모든 일은 다 큰일입니다. 온전히 거듭나지 못하고, 온전히 버리지 않은 사람에게 공중을 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사 40:31) 피곤을 모르고 날개 치는 독수리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기를 원하십니까?  낮은 차원의 일들에 매이지 않고, 육체의 일을 도모하지 않고, 땅에 것들이 더 이상 주관하지 못하는, 온통 하늘에 속한 일들로만 마음과 영혼이 채워진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날개를 받아야 합니다. 

 날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씨앗을 마음에 받고 새롭게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 곧 하늘에 소망을 둔 새 창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날개가 있다고 다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 태어난 새끼 새들이 나는 연습을 해야 날 수 있는 것처럼, 날아오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새가 날려면 바람을 타야 합니다. 새의 비행 원리는 무게를 이기고 날아오르는 양력(揚力)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새의 날개는 유선형으로 되어 있어서, 이 날개의 면을 공기 중에서 일정한 속도로 운동시켜 양력을 얻습니다. 새 날개 뒤의 부드러운 깃털은 공중을 날 때, 넓고 길게 펼쳐지면서 날개의 면적을 넓혀 바람을 더 잘 받게 합니다. 새의 날개는 추력을 만들고, 날개를 크게 펼쳐서 양력도 만들고, 필요하면 항력도 만들고 자유자재지요. 

 우리도 날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인 바람을 받아야 합니다. 새가 깃털로 날개의 면적을 넓혀 바람을 더 많이 받듯이, 우리의 마음도 깃털처럼 부드러워야 성령의 역사에 감응하게 되며, 매 순간 성령을 받기 위한 감응체인 마음의 문을 넓혀야 성령의 충만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리고 매일 자신의 의지를 주님의 뜻에 바치고 성령의 바람의 역사에 온전히 맡기며 사는 것이 날아오르는 연습, 날개를 받아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새처럼 날기 위하여

 새는 날기에 매우 적합한 가벼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필요하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곳은 모두 없거나 비어 있는데, 심지어 뼈 밀도가 낮아 뼈 속까지 비어 있어 가볍습니다.  조류는 폐 주위에 5개의 기낭(氣囊)을 가지고 있어서 공기를 많이 들이마실 수 있고, 들이마신 공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폐에 늘 신선하고 넉넉한 공기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신선한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가 늘 우리의 가슴을 가득 채우게 해야 합니다. 날아오름이 공중에서 계속 지속될 수 있도록&.  또 새는 소화 기관이 짧고 배설기관이 하나라서 먹으면 금방 배출을 합니다.  몸에 배설물을 오래 지니지 않아서 몸이 가벼운 것이지요. 우리도 날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합니다. 육체의 것을 많이 비우고 지니지 않을수록 더 높이 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던 바울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날 수 없고, 또 부활이나 승천과도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42,48, 51~53)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날아올라야 합니다. 땅에 살고 있지만 땅에 속하지 않은 사람, 하늘에 속한 듯이 사는 사람만 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세상에 속한 일들이 더 이상 마음을 휘젓지 않게 될 때, 그리고 시시로 우리를 얽어매는 세상의 모든 저항을 가볍게 뿌리칠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잘 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비상을 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오늘도 성령의 바람이 입니다.  이 바람을 탈 줄 아는 사람만이 계속 비상할 수 있는 능력도 받습니다. 그리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모든 것을 실어 보내는 경험, 바람을 타며 시원하게 공중을 날아오르는 경험, 날개를 번뜩이며 창공을 가로지르는 경험을 하는 사람만이 후에 공중을 날아올라 그리운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