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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 답변-25: 성경이 말하는 미국에 대한 예언을 아시나요?

질문과 답변-25
성경이 말하는 미국에 대한 예언을 아시나요?
늘날 인류 현대사에 가장 혁혁한 공헌을 하고 또한 하나님의 복음 사업을 하는 일에, 현대 이스라엘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국에 대하여 과연 성경은 잠잠하고 있을까?

 이 세상 역사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거의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이 시점에, 세계정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에 대하여 과연 하나님께서는 잠잠하고 계신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북미 합중국인 이 미국에 대하여 분명하고도 정확한 예언을 이미 성경에 기록해 두셨다.  미국이 어떻게 시작될 것이며, 또한 어떻게 변모해 갈지와 세상 끝에 가서 미국이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에 대하여 성경은 미리 예언하여 두었다.  미국의 출현과 미국이 장차 세계적인 초강대국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 해석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여 년 전에 처음 시작되었다.

 종교개혁자이며,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는 미국이 건국되기 전에 이미 두 번째 짐승의 출현을 정확하게 예고하였다.  1760년경, 그는 1260년간의 교황권의 권세가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두 번째 짐승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하였다.  새끼 양 같은 두 번째 짐승이 아직 이르지 아니했지만, 그러나 올 날이 결코 멀지 않았다. 그는 첫 번째 짐승의 42달 기간이 끝나는 시기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 17th ed., 704.

 이 얼마나 놀라운 예언 해석인가! 그는 미국이 건국되기 이전에 죽어서 자신의 예언 해석이 성취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해석은 지금까지 남아서 놀랍도록 정확하게 성취되고 있다.  요한 웨슬리의 예언 해석은 그 이후 더욱 발전되어서, 1890년경에는 J.N. 앤드루스 목사에 의하여 두 번째 짐승의 정체는 바로 미국이며, 미국은 장차 온 세상을 향하여 용처럼 말하는 존재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 해석이 세워지게 되었다. 
 기독교의 정신으로 건국되었던 미국은 예수께서 재강림하시기 직전에 용의 사상과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하나님의 참 백성을 핍박하는데 선봉을 서게 되리라는 것이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미국에 대한 예언이다. 이러한 예언 해석에 대한 신뢰는 지나간 역사를 통해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미국에 대한 예언을 정확하게 이해함으로 우리가 사는 지금 이 마지막 때에 필요한 영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독자 편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는 말씀을 따라 살고 싶습니다.

독자 편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는 말씀을 따라 살고 싶습니다.
인천 계양에서-H

"왜 진정한 안식이 없을까? 주님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는데 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으로 교회에 앉아 있는데도 말씀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돌아오면 TV나 영화를 보며 답답함을 달래곤 했습니다. 양심은 번민으로 가득 차고 시소게임 같은 신앙에 괴로워하던 어느 날, 교회 책상에 놓인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평소 궁금해하던 '참된 안식'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감명을 받았고, 월간지에 소개된 웹사이트 주소를 적어 와서 sostv.net에 올려진 강 목사님의 설교를 처음 들었을 때 온몸에 전율이 일어남을 느꼈습니다.  진리를 알고 싶어 몹시 찾아 헤매다가 드디어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새롭게 거듭난 삶을 살고 싶고, 성경을 체계적으로 다시 공부하고 싶어 성경 연구 자료를 신청했습니다.  받은 소책자를 한 권씩 읽어감에 따라 그동안 "왜?"라고 마음에 품었던 모든 의문이 풀리고 죄로부터의 해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아~ 23년간의 내 신앙이 얼마나 엉망이었던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예수님을 계속 십자가에 못 박고 있었던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충격과 환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한동안 눈물과 통회의 기도로 살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롯처럼 지체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 같고, 진리를 깨달았으면 속히 결정해야겠다는 마음의 부담이 와서 말씀 따라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내는 아직 이 복음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고 우리 부부는 뜻하지 않은 영적 갈라짐에 고통받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이 복음을 받을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묵묵히 침묵의 기도로 5개월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앞이 막막하기도 했고, 많은 눈물과 답답함으로 주님께 절규하며 매달렸습니다.  언제쯤 참된 안식을 누리며 진리 안에서 가족과 교통할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나기도 했는데,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아내도 참된 거듭남을 경험케 하고 한 진리로 연합하게 하셨습니다.

 이 복음이 가져온 제 삶의 변화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지금 우리 가정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서로 낮아지고 섬기면서, 참된 복음은 우리의 영생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 됨의 행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사랑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씀을 체험하고 있으며, 올바른 자녀교육을 하지 못함에 회개했습니다.  순간순간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한결같이 주님을 따라가는 양 같은 자가 되기를 소원하며 오늘도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합니다.

 욥의 인내를 본받아 주님의 가신 길을 끝까지 따를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신 예수님의 온유하심대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늦은 비 성령의 은혜를 기다립니다.  이 영원한 복음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고 예수님의 믿음대로 살아서 아버지의 형상을 반드시 회복하고, 주님의 새 언약과 능력을 바라며 한 걸음씩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리라 다짐합니다.  아버지께서 거룩하시니 저도 거룩하신 아버지를 본받아 거룩한 삶으로 영광을 드리면서 살기 원합니다.  승리의 개가를 부를 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받으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대장을 따라 어디든 따라가는 십자가군병으로 살고 싶습니다.

신앙 4부: 마태복음 24장 예수님의 예언 - 말세의 징조

신앙 4부
마태복음 24장 예수님의 예언 - 말세의 징조
1) 감람산 위에서
 예수님께서 제사장들과 관원들에게,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마 23:38)라고 하신 말씀은 그들의 마음을 큰 근심과 불안과 공포로 흔들어 놓았다.  민족의 영광이며 자랑인 이 장엄한 성전이 폐허의 무더기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하나님의 택하신 선민인 유대 민족이 멸망할 수 있다는 말인가? 
 유대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성전과 유대 나라를 떠나가시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실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성전을 나갈 때에,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 아름다운 성전의 견고함에 주의를 돌리시기를 바랐다. 서산으로 기울어지는 해가 그 마지막 눈부신 황금빛을 성전 벽의 순백색 대리석과 금으로 입힌 성전 기둥을 비추며 번쩍거리고 있었다. 성전의 돌들은 값비싼 흰 대리석이었으며, 그 중 어떤 돌들은 거의 믿을 수 없을 만큼 컸다.
 이 완전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한 성전은 마치 견고한 돌을 채석장에서 통째로 떼어내 온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이 견고한 벽들이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이 성전이 정말 황폐하게 되고 무너진다면 그것은 유대 민족의 종말을 고하는 사건이 아닌가? 제자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 앞에 전개된 광경은 참으로 아름다웠고, 건물들도 매우 훌륭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슬프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벽들이 결코 파괴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내 말을 들어라. 날이 오리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많은 백성이 듣는 가운데서 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그분이 감람산에 앉으셨을 때에, 그 말씀의 의미가 궁금해 견딜 수 없던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질문을 드렸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마 24:3)하고 물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의 세기 예언, 곧 유대와 예루살렘의 멸망과 아울러 이 세상의 끝 마지막 시대에 있을 징조에 대하여 말씀하신 유명한 예언의 설교, 마태복음 24장이 써지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의 뜻을 설명하실 때,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 끝에 있을 재림의 큰 날을 따로 분리하여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이 두 사건을 섞어서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언급해 놓으신 말세의 징조와 예언들은, 예루살렘 멸망의 사건을 넘어 그분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최후의 날에 있을 대 재화의 사건들까지 포함하고 있는 말씀이었다.  이 모든 말씀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장에 사는 우리를 위해서도 주어졌다.

2) 말세의 징조

 예수님께서는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태복음 24장 6~9절: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보다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들을 눈앞에 목도하고 있다. 
 마태복음 24장의 재림의 징조들이 실제로 다 이루어지고 있는 놀라운 시대에 우리는 사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분께서 말씀하신 재림과 말세의 징조가 우리 코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세상 욕심과 세속에 빠져서 영적인 잠을 자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밝은 빛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어두운 시대이다. 이 시대는 재림의 징조들이 가장 확실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가장 불신하는 시대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들을 연구해 보면서 깨어서 그분의 재림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되자. 

말세의 징조 1: 사람의 미혹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 24: 4~5)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마 24:11)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바로 전,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해야 할 말세의 징조 중 첫 번째는 사람의 미혹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는 온갖 종류의 가르침과 교리가 난무할 것이다. 즉, 성경의 진리와 맞지 않는 비 성서적인 가르침,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오류가 교회 안을 휩쓸 것이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인간의 신학과 지혜로 만든 거짓 그리스도상을 만들어 놓고 이런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할 것이며, 또한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는 방법이 이것이라고, 인간의 유전과 오류에 기초한 복음을 올바른 구원의 방법과 진리라고 주장할 것이다. 또한, 마지막에 사단이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나거나 예수님의 재림을 모방하여 나타나 "내가 그리스도라."라고 주장하게 될 때에, 복음으로 온전히 변화되어 있지 못하거나 진리에 굳게 서 있지 못한 사람은 사단의 기만에 다 넘어가게 될 것이다.

말세의 징조 2. 처처에 있는 기근과 지진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마 24:7)
 우리 역사 가운데 기근과 지진은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는 끊이지 않고 자주, 동시 다발적으로 지진과 화산의 폭발과 땅과 바다의 흔들림이 있을 것이다.   처처에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In divers places인데, 이 의미는 기근이나 지진이 십 년 만에, 혹은 몇 년 만에 간혹 한 번씩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 다발적으로 온 세계적으로 계속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요즈음처럼 땅이 흔들리면서 지진이 동시 다발적으로 계속 일어난 적이 있었는가?  지금처럼 지진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매달, 아니 매주일 자주 땅을 흔든 적이 과거에 있었는가?  또한, 바닷속의 땅이 흔들림으로 인해 오는 해일과 쓰나미, 화산 폭발 등이 이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 과거에 있었는가?  

 2010년을 들어서면서 일어난 대지진들은 사람들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었으며, 지구의 지축을 바꾸는 엄청난 일을 했다.  과학자들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지진을 보면서, 이렇게 지진이나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지는 일은 노아 홍수 이래 처음이라고 발표하였는데, 지구는 노아 홍수 때, 23.5도 기울었고, 2004년도 아시아 쓰나미 때에 8인치, 칠레 지진으로 3인치가 기울었다고 한다. 
 미 항공 우주국(NASA) 제트추진 연구소 지구물리 과학자 리처드 그로스(Richard Gross)씨는, 칠레 지진으로 지구의 자전축이 8cm 이동하였으며, 그 결과 하루의 길이가 더 줄었다고(1.26마이크로초)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지진이 더욱 빈번하게, 강하게 일어나리라고 경고하고 있는데, 2010년 6월까지 세계적으로 큰 규모의 지진이 벌써 7번 이상이나 일어났으며, 4월 한 달 동안에는 300번 이상 감지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지질연구소는 2010년 2월 27일부터 그 일주일 동안에 발생한 5.0 규모 이상의 강진이 총 157회라고 밝혔다. 어떤 곳은 하루에 1130번 흔들린 곳도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일어난 강도가 높은 지진을 기록하려면 지면이 모자라 다 기술할 수 없을 정도로 지진 발생이 빈번하게 일어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세 징조의 현저한 징조이다. 지금처럼 예수님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시기가 또 어디 있겠는가?

 

2010년 올해 6개월 동안의 세계 지진 발생 빈도
2010년 1월 10일 인도네시아 - 규모 5.1 지진 발생
2010년 1월 12일 아이티 - 규모 7.0 지진 발생
2010년 1월 17일 중국 - 규모 4.4 지진 발생
2010년 1월 30일 중국 - 규모 5.1 지진 발생
2010년 2월 27일 칠레 - 규모 8.8 지진 발생
2010년 2월 27일 아르헨티나 - 규모 6.3 지진 발생
2010년 2월 28일 파키스탄 - 규모 6.2 지진 발생
2010년 3월 02일 필리핀 - 규모 6.1 지진 발생
2010년 3월 04일 대만 - 규모 6.4 지진 발생
2010년 3월 06일 중국 헤베이성과 탕산시 - 규모 3.0 과 4.2 지진
2010년 3월 06일 일본 훗가이도 - 규모 5.2 지진 발생
2010년 3월 08일 터키 - 규모 6.1 지진 발생          
2010년 4월 05일 멕시코 - 규모 7.2 지진 발생
2010년 4월 07일 인도네시아 - 규모 7.7 지진 발생
2010년 4월 14일 중국 칭하이 위쑤 - 규모 7.1 지진 발생 
2010년 4월 20일 멕시코 남부 - 규모 5.0 지진 발생
2010년 4월 20일 호주 광산지대 - 규모 5.2 지진 발생
2010년 4월 22일 사모아 제도 - 규모 6.2 지진 발생
2010년 4월 23일 칠레 남부 - 규모 6.2 지진 발생
2010년 4월 24일 인도네시아 북부 - 규모 6.1 지진 발생
2010년 5월 04일 인도네시아 동부 - 규모 5.2 지진 발생
2010년 5월 03일 칠레 남부 해안 - 규모 6.4 지진 발생
2010년 5월 09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 규모 7.4 지진 발생
2010년 5월 15일 알제리 - 규모 5.2 지진 발생
2010년 5월 19일 미 캘리포니아 남부 - 규모 5.1 지진 발생
2010년 5월 24일 페루 남부 - 규모 5.9 지진 발생
2010년 5월 28일 남태평양 바누아투 섬 - 규모 7.2 지진 발생
2010년 6월 01일 일본 혼슈 - 규모 4.8 지진 발생
2010년 6월 03일 중국 칭하이 위쑤 - 규모 5.2 지진 발생 
2010년 6월 05일 중국 산시성 - 규모 4.6 지진 발생
2010년 6월 10일 중국 신장 - 규모 5.1 지진 발생
2010년 6월 13일 일본 후쿠시마 바다 - 규모 6.2 지진 발생
2010년 6월 13일 인도양 해저 - 규모 7.5 지진 발생
2010년 6월 13일 일본 아마미제도 - 규모 5.1 지진 발생
2010년 6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 규모 5.7 지진 발생

3) 시작되는 재난의 시기

 예수님께서는 말세의 징조들을 말씀하시며, 재난의 시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말세의 징조 중 하나로 슬프고 힘든 재난의 시기가 시작되는 것을 포함하셨다. 재난의 시작의 원어는 Beginning of sorrows로서, 슬픔이 시작되는 시기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 재난의 시기가 도래하면서 환란이 온다고 언급하셨다. 
 예언된 대로 지금 지구촌은 각종 재난과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요즈음처럼 재난들이 연속해서 일어난 적이 없다.  지진과 함께 기후의 변화와 바닷속의 지진으로 말미암아 사이클론, 태풍, 홍수, 화산폭발 등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서남아시아와 중동지역 일대에서는 사이클론, 미국 중"서부에서는 토네이도, 중유럽과 동유럽, 그리고 중국에서는 최악의 홍수가 발생해 사망자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그 중 2010년 4월 15일, 인도 벵골만에 사이클론이 강타하여 수십 채의 가옥과 마을을 파괴하고 100명이 사망한 것을 비롯하여 5월 15일에는 인도에서 이상고온으로 말미암은 불볕더위로 150명 이상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또 2010년 5월 31일 중남미 지역에 열대 폭풍우 '애거사'가 강타해 140여 명이 숨졌으며, 특히 과테말라의 산악 지역에서는 수십 곳의 마을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또 중"동유럽 일대에서는 수십 년 만의 폭우로 홍수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2010년 5월, 슬로바키아와 폴란드에서 폭우로 말미암은 홍수와 강의 범람으로 수많은 사망자와 이재민을 내었으며, 헝가리에서도 수천 명이 대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로베르토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이번 홍수는 슬로바키아 역사가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라고 밝혔는데, 5월 내내 중. 동유럽 일대에는 수십 년 만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홍수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2010년을 들어서면서 중국,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눈 폭풍과 토네이도, 홍수, 기상 이변들의 문제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어, 재난으로 인한 피해와 손실, 그로 말미암은 충격과 슬픔의 기사들이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화산의 폭발
   ;  세계 곳곳에 지진과 함께 화산의 폭발이 점점 심화하고 있다. 
2010년 4월 16일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2010년 5월 29일 과테말라 화산 폭발 
2010년 5월 29일 에콰도르 화산 폭발


아이슬란드 화산 대폭발의 심각성;
  2010년 4월14일에 발생한 아이슬란드의 화산폭발은,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이 189년 만에 재폭발한 것인데, 거대한 화산재를 분출하면서 유럽의 하늘에 퍼져 항공 길을 막는 사태가 발생하여 모든 유럽의 비행기들 수만 대가 항공을 취소하고 발이 묶이는 항공대란을 가져왔다. 
 민간항공기구(ICAO)는 이 항공대란으로 인한 항공업계의 타격을 9.11 동시 테러를 능가하는 악영향으로 발표했으며, 화산재는 유럽 전역과 일부는 러시아 상공까지 퍼져 지금까지 30여 개 국가에 공항폐쇄와 비행제한조치를 초래했다. 유럽 상공이 '비행금지구역'으로 전환되자, 이곳과 교통량이 가장 많은 북미 대륙도 일대 혼란에 빠졌었다.  이 화산재로 말미암은 항공기의 지연과 공항 대란 때문에 세계는 막대한 경제 손실을 보았으며, 경제공황, 파산과 부도를 내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더 악화하였다.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아이슬란드 지역의 화산 폭발은 새로운 주기에 들어선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지난번에 터진 아이슬란드 화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더 큰 화산이 곧 폭발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전망이다.  지금도 화산분출의 조짐이 농후한 실정인데, 이것이 이른 시일 내에 또 폭발되면 유럽 전역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큰 재난이 될 것이다.    
 또한, 세계 곳곳에 지반의 흔들림으로 갑자기 땅이 거대한 구멍을 내며 가라앉는 이상한 현상들이 속출하고 있다.  한 예로 중국 쓰촨성, 저장성 등지에 있는 도시에서는 최근 갑자기 지반이 무너져 큰 구멍이 생기는 현상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는데, 작게는 지름 1m, 크게는 60m에 달하는 거대한 구멍이 갑자기 생겨나고 있다.

미국의 기름 시추기 폭발

 뉴멕시코 만의 기름 시추기(Oil rig)가 폭발하여 큰 재난을 가져오고 있다.  대중매체에서는 적게 보고되고 있지만, 지금 이 시추기에서는 하루에 3백만 갤런의 기름이 바다 지하로부터 뿜어 올려지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이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바다는 이 기름 유출로 오염되고 생물들이 죽어서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으며, 이 거대한 기름띠가 곧 전 세계의 바다로 퍼져 나갈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바다와 물들의 근원에 문제가 생기는 마지막 일곱 재앙의 시작이 가까워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이 저지른 사고와 함께, 자연재해인 화산폭발,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 폭탄 홍수와 해일과 우박들과 이상기온으로 말미암은 기상 이변들은 이 세상에 갖가지 재난들을 가져오며, 세상 끝과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우리에게 경고해 주고 있다.

온역

 말세의 징조 중 또 하나는 온역(눅 21:11)이다.  통제할 수 없는 변종 바이러스들이 속속히 출현하여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두 가지 예를 보자.

 2010년 5월 31일 뉴욕 타임즈 인터넷 뉴스에, 동아프리카 지역의 주요 식량원인 카사바(Cassava; 고구마 비슷한 식물)에 최근 신종 바이러스가 번지기 시작, 이 지역에 1840년대 유럽 기근과 같은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뉴스가 실렸다.  아프리카에서는 1920년대도 카사바에 바이러스가 번져 대규모 기근을 불러온 적이 있지만, 2004년부터 아프리카에서 발견되는 이 바이러스는 기존 바이러스와는 다른 새로운 변종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미국 세인트루이스 도널드 댄포스 식물과학센터의 클로드 포켓 연구실장은, 2004년 이후 이 변종 바이러스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라면서 "확산속도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빨라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카사바는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남미와 아시아 지역에서  타피오카 ,  유카  등의 이름으로 대량 소비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카사바가 쌀과 밀에 이은 제3의 식량 원이어서 바이러스의 위협이 전 세계로 퍼질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베트남 남부의 뎅기열 창궐

 모기를 매개체로 하는 뎅기열 환자가 베트남 남부 메콩 강 유역에서 최근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영 베트남통신(VNA)은 6월 14일 남부의 한 예방의료센터 자료를 인용해, 지난 2개월 동안 이 지역에서 창궐한 뎅기열에 모두 1천180명이 감염되었고, 지금은 사망자가 열 명 이내지만 계속 더 늘어가리라고 보도했다.  동탑 성에서도 지금까지 800명 이상이 뎅기열에 걸려 2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됐다.  감염자 수는 작년보다 40% 이상 늘어났는데, 뎅기열은 4<5년 주기로 베트남에서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 1998년에는 전국적으로 23만 4천866명이 감염되었고 수백 명이 사망했으며, 지난해에도 7만 4천여 명의 뎅기열 환자가 발생했었다.  그 외에도 지금 세계에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범위에 들어선, 새로운 변종 균으로 인한 많은 전염병이 나돌고 있다. 구제역, 돼지독감이나 조류인플루엔자들은 아직도 세계 각 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계절이 추워지거나 환절기가 될 때에 또 다른 변이를 일으킨 신종 바이러스 균들이 나타날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 모든 온역의 징조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매우 가까움을 말해주고 있다.

4)환난에 넘겨주겠으며. . .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이러한 재난의 시기 바로 다음에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는 시기가 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환난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는 환란이다. 어떻게 몇몇 형제나 몇몇 이웃에게가 아니고,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는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그러므로 이 환란은 범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환란, 곧 짐승의 표의 환란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은 적은 과거에 없었다. 여러 나라와 지역들에서 핍박을 받고 쫓겨나는 경험들을 당하였으나,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들에게 미움을 당한 시대는 없었다. 그러한 때는 짐승의 표의 환란 시대밖에는 없다. 이 세상은 크게 두 무리로 나누어질 것이다. 짐승의 표를 받는 큰 무리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적은 무리로 나누이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참 백성이 짐승의 표를 받는 큰 무리, 즉 모든 민족의 증오 대상이 될 것이다. 그제야 마태복음 24장의 이 예언이 전적으로 성취되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 말세의 징조가 다 이루어지고, 예언이 다 성취되고, 알곡과 가라지가 다 헤아려지면, 하늘에서 중보 사업이 마쳐지고,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시간을 닫으시고 이 세상에 환란이 오는 것을 허용하실 것이다. 그날에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두 편 중에 한 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서 하나님의 진리의 편을 택하고, 죽도록 하나님과 그분의 계명에 충성하는 남은 무리가 되든지, 아니면 세상의 넓은 길을 택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가는 편안한 길인 사단의 무리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5)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리라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 24:33~34)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언제 오시리라는 것을 알려주셨는데, 그때는 바로 이 모든 일을, 곧 기근과 온역들과 지진들이 동시에 다발적으로 함께 일어나는 일을 눈으로 보는 때, 무서운 일들과 하늘의 놀라운 징조들을 보며, 모든 민족에게서 미움을 받고 핍박을 당하는 이 시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시 오신다는 것이다.  곧 마태복음 24장의 모든 말씀이 다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예언해 놓으신 마태복음 24장의 중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야말로 24장의 예언이 실제로, 전적으로 적용되는 시대이다. 우리 시대에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다. 많은 선지자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살고자 소원하였었다.  그런데 우리처럼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자들이 이 놀라운 마지막 세대에 살게 된 것이다.  마지막 징조로 일어나는 모든 징조를 눈으로 직접 목격하며, 또 그 모든 것을 견디며, 그리고 마지막 예언의 모든 성취를 눈앞에 보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분의 오심을 앞당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 시대의 하나님의 참 종들은 어떠한 자들인가? 예수님의 오심을 사모하며, 다른 사람들을 깨우고,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들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맞는(때를 따라) 현대 기별, 이 시대를 향하여 주신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을 전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착한 종들이다. 그러면 누가 악한 종들인가?  술 친구들과 어울려 취하며 (바벨론의 취하게 하는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며) 주인이 더디 오신다고 말하고 믿는 자들이다. 그리고 착한 종들을 때리며 핍박하는 자들이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예언의 성취들이 눈앞에 목격되고 있는 이 마지막 때에, 이 모든 것을 보며 깨어나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그분의 자녀를 찾고 계신다.  그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동료와 친구들을 깨우는 기별을 외칠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속히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위하여 그대는 준비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착한 종이 바로 그대인가?

신앙 3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여”( I I )

신앙 제3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여( I I )
 1) 복음전파와 전도에 대한 경고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바리새인들의 전도사업

 그 당시 이교의 미신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교리와 신앙에 염증을 느낀 적지 않은 이방인이 성경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진리에 끌리는 일들이 있었고, 또 지도자로 칭함을 받는 랍비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런 사람들과 백성을 위하여 성경을 가르치고, 율법을 강조하며, 바리새인식의 철저한 생활규범을 가르치며 전하는 전도사업에 열심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을 져버린 바리새인들의 형식적인 신앙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였으며, 그들을 오히려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지식적으로만 교리에 동의할 때, 의가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으며, 복음을 전하는 그들 자신 역시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찮은 의례와 구별들을 가지고 사람들의 심령을 점령하여, 사람들의 주의를 더 중요하고 긴요한 진리로부터 떠나게 하였는데, 곧, 율법의 더욱 중요한 일들, 공의와 자비와 진리는 무시되었다. 특히 그들은 그들의 유전과 의식, 그리고 희생제물을 드리는 행위에 그들의 구원을 의지했으며, 택하심을 받았다는 선민의식과 성전, 곧 교회가 구원을 준다는 사상에 깊이 젖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의 산 능력이 빠진 껍질 뿐의 신앙, 사람들에게 진정한 변화와 구원의 기쁨을 주지 못하는 형식적인 신앙을 강요하는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전도 사업을 통렬하게 견책하셨다.

진정한 전도와 그 목적은?
 진정한 전도, 그리고 진정한 복음 전파의 목적은 무엇일까? 요즈음 기독교에서 지향하고 있는 교회의 성장, 교세의 확장 내지는 대형 교회당의 건축인가? 아니면, 의료사업과 구호사업을 통하여 질병을 치료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인가? 복음 전파에는 이런 모든 요소가 포함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들은 진정한 복음 전파라고 말할 수 없다.
 성경 상의 의미로 복음 전파는 진리를 설교하는 것과 그리스도인 봉사 활동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죄인의 생애를 온전히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생애에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게 하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 새로운 생애를 사는 새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생애와 성품이 온전히 하나님의 형상과 성품으로 회복되고 사람들의 생애에 하나님의 의가 온전히 나타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재림을 준비하는 영혼들로 만들어지게 하는 것이다.

현시대 전도사업에 대한 고찰
 현 기독교에서 전해지고 있는 가르침과 복음은,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하고 그 거듭남을 유지하는, 죄에 대한 승리와 성화의 가르침이 빠진 반쪽 복음이다. 이 반쪽 복음은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와 온전한 복음에 일치되지 않으며, 예수님께서 대신 모든 것을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순종을 구원의 조건에서 완전히 분리하고, 오직 입혀 주시는 칭의의 공로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며 성화나 진정한 순종, 개혁과 변화를 촉구하지 않는다. 

 기독교 안에 잘못 자리 잡은 이 오류의 신학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다.라고 믿게 되며, 죄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그 자체이다.라고 믿게 된다. 그 결과 죄는 도저히 이길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것이 되어 버려서, 인간의 마음속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곧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마음을 변화시켜 죄를 미워하게 하고, 다시는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도록 새 마음으로 재창조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불신하게 한다. 
 그냥 믿기만 하고, 입으로 시인하기만 하면,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아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 덮어주시고 용서해 주셔서 구원해 주신다.라고 가르치는 것이 요즈음의 복음이다. 그러나 이 복음은 인간을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한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결국, 아무리 이런 복음을 전해도, 영생을 위해 사람을 온전하게 준비시키지 못하므로,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배나 지옥 자식을 만들 수밖에 없다.

2) 재물에 대한 경고
돈을 사랑한 바리새인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은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마 23:14, 영문 성경 참조)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재물 얻는 것을 하나님의 큰 축복이라고 여기게 하였다. 그리하여 백성은 돈과 명예를 얻으면 그것이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증거라고 생각하여, 재물과 명예를 얻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었다. 마치 현대 기독교가 기복신앙을 강조하듯이 말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백성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는데, 그들은 경건한 과부들의 신임을 얻은 다음, 과부들이 재산을 종교적 목적을 위하여 바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인 것처럼 종용하고, 그 돈을 장악하게 된 후에는, 교활하게 그 돈을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들은 부정직을 감추기 위하여 공중 앞에서 긴 기도를 드리고 경건한 모양을 크게 자랑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회칠한 무덤처럼, 안에는 죽은 뼈가 가득한 생명이 없는 신앙을 영위하면서도, 겉으로만 그들의 행위와 외양을 경건하게 꾸미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시며, 이것이 그들에게 더욱 큰 벌을 가져오리라고 선언하셨다. 이와 똑같은 책망이 오늘날 경건하다고 공언하는 많은 기독교인에게도 적용된다. 자신의 삶과 생애가 이기심과 탐욕으로 가득 차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순결한 것처럼 보이는 예복으로 가려서 다른 사람의 눈을 속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모든 목적을 아시고 모든 사람을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재물과 세상을 사랑하고, 영적인 생명에서 끊어진 채 겉으로만 경건하게 가장한 유대의 외식 적인 지도자들의 생활과 풍조는, 백성을 진리에서 멀어지게 만들었으며, 결국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하였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재물을 탐하고,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이 멸망할 때 세상과 함께 불에 타서 멸망하게 될 것이다. 

3) 시작되는 예수님의 설교 마태복음 24장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 23:37~38)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

 마태복음 23장의 예수님의 경고는 결국 유대 백성과 그들의 성전의 멸망을 예고하며 끝난다.  재림의 징조가 기록된 24장은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거절하는 교회를 정죄하시는 배경에서 시작된 말씀이다.  이러한 상황은, 마태복음 24장이 실제로 적용되고 있는 이 마지막 시대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형편은 옛날 유대 나라의 형편과 똑같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인류 역사에서 성경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고 가장 많은 목사와 성경 교사가 수많은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또한, 가장 많은 기독교 학교가 운영되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을 가장 엉뚱하게 해석하며, 성경에 대한 말씀들을 오해하고 잘못된 교리들을 가르치는 이상한 시대이다.  그래서 이 시대는 과거 마태복음 23장, 24장의 상황이 일어났던 그 시대의 역사를 너무나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시대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을 말씀하셨던 때는, 그 당시 반역의 길을 가고 있는 기성교회를 눈물을 머금고 할 수 없이 버리시는 시대였다.  또한, 예수님의 사역을 올바로 이해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있는 약 120명을 통해서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 결과로 새로운 운동, 초대교회 운동을 일으키시어 온 세상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려고 섭리하시는 시대였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복음의 결과를 마지막으로 추수하는 시대이다.  또한, 지금은 하나님께서 다시 그분의 참된 교회, 마지막 추수사업을 맡기실 수 있는 무리, 마지막 성령의 운동인 제2의 오순절 운동에 참여할 남은 교회를 준비시키시고 계신 시대이다. 
 초대교회 운동이 있었던 것처럼 여자의 남은 자손을 모아 들이는 역사가 일어나는 시대이다.  이 무리가 준비되면서 세상에는 주님께서 예언하신 말세의 징조가 나타날 것이며, 이 하나님의 남은 백성이 나가서 복음을 외친 후에 이 세상의 끝이 올 것이다.  지금 세상의 끝이 거의 이르러 왔다. 계속되는 말세의 징조들을 연구해 보면서 마지막을 위해 준비하는 우리가 되자!

신앙 2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여”( I )

 
신앙 제2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여( I )
  화있을진저로 표현된 예수님의 책망과 경고는 그 당시의 종교계에 상당한 반응을 일으켰으며, 첨단의 개혁을 촉구하는 날카로운 책망의 말씀이 되었다.  예수님의 이 경고와 책망의 말씀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현시대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열렬한 회개와 철저한 개혁을 촉구하는 시대적인 교훈이 되고 있다.   주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라고 하시며,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는 자들이라고 지적하셨는데(마 23:1~3), 그 당시 유대인들의 전반적인 모든 측면, 즉 교육사업, 전도사업재정적인 측면 등을 총망라하시어 책망하시고 개혁을 요구하셨다.  이 모든 면에 대한 경고와 책망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교육에 대한 경고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마 23:5~10)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마23:5)라는 말씀에는 바리새인들의 모든 행위의 동기가 드러나 있다.  그들이 사는 방식과 하는 모든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외식" 그 자체였다. 또한, 그들은 그들의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고, 사람들로부터 지식과 명망이 있다는 인정을 받으며, 명예와 칭송을 얻고,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올라 존경을 받으며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고 압제하며 사는 것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그런 사고방식과 생활 태도는,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에 앉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지적하신 예수님의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들이 랍비나 제사장이 되기 위해 치르는 대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 당시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직을 얻는 것은 유대 나라의 정치나 사회적으로 상당한 세력을 얻고, 또 유대 민족을 사실상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의미했으므로, 그 시대에 그런 지위를 쟁탈하기 위한 음모는 실로 놀라웠다.  역사가의 문헌에 따르면,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은 그들의 제사장직을 얻기 위하여 돈과 뇌물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는 일까지 주저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1. 그 당시의 교육제도
 그 당시, 유대의 교육제도는 헬라 문화의 영향을 받아 거의 헬레니즘에 물들어 있었다.  헬라 문화는, 주전 334년경에 이루어진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 정복으로 말미암아 유대 나라에도 자리 잡게 되었다.  알렉산더는 온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고자 하여, 그가 정복하는 곳마다 도시를 세워 헬레니즘 문화(정치, 경제 포함)를 심어놓았고, 헬라 문화를 통한 동서문화의 융합과 민족 융합정책을 꾀하였다.  그리하여 특히 언어, 학문, 교육, 예술의 분야에서 헬레니즘이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그리스어(헬라어)는 알렉산더 대왕이 점령한 전 영역의 공통어로서 동방 세계 전역에 널리 보급되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헬라 사상에는 이교의 사상과 오류의 가르침들이 한껏 녹아 들어가서 그 사상이 유대 민족의 사상을 꼴 짓는 교육과 신앙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하나님의 올바른 진리를 전수하는 일을 저해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의 통치자로 있을 때 태어나셨는데, 그 당시 헤롯 왕의 보호자격이었던 가이사 아구스도(영어로는 카이자르 아우구스투스로서 옥타비아누스를 가리킴)도 알렉산더 대왕처럼 헬라 문화를 확산시킴으로 로마를 융합시키려고 하였다. 그러자 헤롯도 재빨리 그의 본을 좇아서 유대 민족에게 그 일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이교의 문화가 예루살렘을 휩쓸게 되었다. 헬라식의 경주와 운동경기가 도입되었고, 이를 위해 운동 경기장과 이방의 신전들이 곳곳에 세워지게 되었으며, 헬라식으로 교육하는 학교들이 세워졌다. 

 유대인들은 제사장들을 선두로 하여, 하나님의 뜻과 길을 따르기보다는 세상의 오락과 이교의 풍습의 급류에 휩쓸려 가게 되었다.  역사가의 말을 따르면, 그 당시 제사장들은 항상 긴 옷을 착용하여 몸을 가려야 했으나, 헬라식의 경기를 하기 위하여 벌거벗고 운동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청년들은 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잊어버림으로 히브리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줄 모르게 되어 영적인 지식과 진리에 몹시 어두워져 있었다. 
 물론, 학교에서 제사장들과 랍비들에 의해 성경과 율법들이 가르쳐지기는 했지만, 그 당시 헬라 사상으로 물들어 있는 교육제도는 청년들을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하거나 영적인 나라를 위한 일꾼들로 만들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그런 과정에서 학교의 교과 과정과 가르침과 신학들은 참된 진리에서 점점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과 침례 요한은 랍비 학교에 다니지 않았으며, 성령을 교사로 모시고 스스로 깨우치며 공부했던 것이다.

2. 예수님의 경고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바리새인들의 마음과 사상은 이방 사상과 생활 풍조에 물들어 있었고, 하나님의 진리와 지식에서 멀었다.  그들은 신앙생활을 엄격한 통제와 율법적인 규례 하에 겉으로만 영위하는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외식 주의자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몸에 경문을 넓게 차고 다녔다. 경문이란 양이나 물개 가죽으로 만든 작은 상자였는데, 그것은 성경 말씀을 작은 글씨로 양피에 적은 것을 넣어두는 상자였으며, 주로 기도할 때 차고 다녔다. 이 상자를 차는 것은 경건하다는 표시였다.  그들은 더욱 경건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 상자를 일부러 더 크게 해서 차고 다녔다.

"옷 술을 크게 하며"
 유대인들은 겉옷에 푸른 술을 달게 되어 있었다.  이것도 그들이 율법을 사랑하고 지킨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율법을 사랑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는지 과시하기 위해 더 큰 술을 달고 다녔다.  그들은 인간의 명예와 존경과 세상의 야망을 너무나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지식과 행위를 이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외양으로 나타내기를 원했던 것이다.

경고의 요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명에 관하여 모세에게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신 6:8)으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이 말씀에는 깊은 의미가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고 실행할 때에 모든 사람은 고상하게 될 것이며, 삶 속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원칙과 성품이 드러날 것이다.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처럼 의롭고 자비롭게 거래하며, 뇌물과 부패하고 기만적인 모든 일로부터 깨끗함을 유지할 것이다.  또한, 사랑과 동정의 정신을 나타낼 것이며, 세속에 물들지 않은 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것을 흠 없는 품성을 통해 입증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들은 분간하지 못하였다. 모세에게 주어진 명령은 다만 표면적으로, 성경의 교훈을 몸에 부착해야 한다는 지시로 해석되었다.

 이 명령은 양피지 조각에 기록되었으며 머리와 손목과 눈에 잘 띄도록 묶여 있었지만, 이런 일이 그들의 정신과 마음과 성품을 하나님의 계명과 정신에 맞는 것으로 이끌어주지는 못했다.  이 양피지는 다만 시선을 끌기 위한 휘장으로 차고 있는 것에 불과하였다. 그것들은 착용자들에게 백성의 존경을 일으키도록 하는 헌신 된 모습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이 헛된 가장(假裝)에 일침을 놓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말씀으로 마음은 탐욕과 질투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거짓된 겸손을 나타내며 지위와 권세를 얻으려는 그들의 이기적 야망을 드러내셨다.

 그 당시 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때에 손님들은 신분에 따라 좌석에 앉았으며, 가장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첫째로 주목되고 특별한 은총을 받았다.  바리새인들은 항상 이러한 명예를 얻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행습을 견책하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랍비나 선생이라는 이름을 탐내는 허영심을 책망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은 칭호는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오늘날 지도자의 칭호를 받은 자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성호와 성품을 잘못 전하고 있는가! 얼마나 자주 세속적 야망과 독재와 죄악들이 높은 성직자들의 과장된 예복 아래 감추어져 있는가!
3. 현 시대의 교육제도에 관한 고찰
 하나님의 원칙에 맞는 방법으로 교육을 받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참교육을 통해서만 마지막 날에 하나님을 위해 충성 되게 서서 짐승의 표와 그 세력에 굴복하지 않는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영혼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교육의 변천사를 잠깐 고찰해 보기로 하자.

종교 개혁과 교육사업
 중세기의 종교 핍박 암흑시대의 어둠을 몰아내면서 나타난 루터의 종교 개혁을 선두로 하여 각 나라에서 시작된 종교 개혁은 주 기둥이 되는 신학적인 오류를 대항하는 일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교육제도를 개혁하는 일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영국의 개혁자들과 종교의 핍박을 피하여 아메리카 신대륙을 찾은 청교도들은 정치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고 개신교 국가를 세웠으나, 법왕권이 세운 교육제도의 그늘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들이 로마교의 교리에는 동조하지 않았지만 로마 교회의 여러 형태는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다.  청교도들의 가장 큰 실수는, 그들을 신대륙으로 피신하게 했던 로마 법왕권의 교육제도를 그들의 본토에서 폐지하는 데 실패한 것이었다.

 16세기의 위대한 종교 개혁자 루터와 그의 동역자 멜란히톤은 그리스도인 교육 없이 영구적인 종교 개혁을 이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1525년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해내기 위하여 참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개신교 학교를 많이 세웠다. 그러나 루터와 멜란히톤의 사망 후, 그들이 하던 개혁사업을 이어받은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인 학교를 증가시키는 대신 단지 신학적인 기교에만 몰두하여 당대에 이루어졌어야 할 위대한 사업을 지나쳐 버렸다.  후기의 개혁자들이 해이해져 가는 틈을 타서, 겉으로 신실한 개신교도로 보였던 존 스텀(John Sturm)이라는 학자가 스트라스버그(Strasburg)에 있던 개신교 학교에 법왕교의 교육제도를 실제로 도입하였다.  그는 중세기 고전문학에 약간의 성경을 첨가하고 조금의 교리와 함께 샌드위치 식의 교육을 했다.

 루터의 뒤를 이은 개혁자들은 그가 채택한 모든 교육 제도를 좋게 생각하였고, 그리하여 그 학교는 독일에 있는 개신교 학교의 모델로서 개신교도들 가운데 아주 유명해졌으며, 그의 영향력은 영국에서 미국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한 역사가는, 현대 그리스도인 문화에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재현시키는 것이 스텀이 가진 야망이었다.라고 말했다. (Painter p.163)  스텀이 세운 학교는, 절반은 루터와 멜란히톤이 세운 그리스도인 학교요, 절반은 법왕교의 학교였다. 이튼, 윈체스터와 웨스트민스터 같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에, 그들이 졸업한 학교의 교과 과정이 스텀에 의해 도입된 법왕권의 교육과정을 모방한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 미국의 하버드나 예일, 스탠퍼드 대학 등은 스텀의 교육과정을 도입한 학교들이며, 유명한 학교는 모두 법왕권의 정신과 교육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재림을 위해 준비시키지 못하는 현 교육제도
 예수님께서는 계급제도와 차별을 타파하셨다. 오늘날 학위제도나 박사학위 과정 등은 다 로마교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자나 교수들이 입는 가운에 드리워진 학위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색깔의 줄과 금줄과 띠들은 그들의 세상 지식과 교만을 드러내기에 알맞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영혼 안에 이루는 일을 가장 위대한 교육이라고 가르치신 위대한 교육자이셨으며, 누구에게도 랍비라 칭함을 받거나 다른 사람 위에서 세력으로 군림하는 지도자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오늘날의 교육을 보라! 모두 세상적인 지식만 추구하는 나머지, 올바른 인성 교육은 없어지고, 교육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점점 인간성이 황폐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계의 유명 대학을 나온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지식을 의지하고 자랑하며,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무신론자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현대의 교육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시작된 것으로서, 많은 경우에 주입식 교육이나, 세뇌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주관적이거나 창의적으로 무엇을 사고하거나, 독자적이거나 개인적인 사고를 하기가 어렵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은 단체사고(Group thinking)에 길들게 되고, 사회의 틀이나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은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본주의의 사고방식으로 인간을 꼴 짓는 현대의 교육은, 진리를 고수하고 참된 복음을 전파하는 하나님의 독특하고 특별한 백성을 만들어내는 일을 방해한다.  지금은 우리의 자녀를 참된 하나님의 방법으로 교육해야 할 때이다. 옛날 유대 민족에 멸망을 가져온 것과 똑같이, 오늘날의 교육제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청년들을 멀어지게 하고, 세상에 다가올 영적인 크나큰 사건, 재림과 심판의 날을 위해 준비하지 못하게 하며, 세속적인 성공과 부와 명예만을 추구하게 하고 있다.  이런 교육제도의 부패가 무엇보다도 가장 뚜렷한 말세의 징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신앙 1부: 예고된 유대의 멸망

총 제목 : 마태복음 24장을 재조명한다
제1부: 예고된 유대의 멸망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곧 다가올 심판과 재림을 위하여 준비할 수 있도록 세상 마지막에 있을 징조와 사건들에 대하여 자세하게 예언해주신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설교는, 성경의 어느 장보다 놀랍고 뛰어난 예언과 경고의 장으로 알려졌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이 없었다면, 마치 표지판 없는 사막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지계표가 없는 들판을 더듬어 가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지막을 위해 준비하는 일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뛰어난 기치와 예언의 안목으로 주님의 백성을 준비시키시기 위하여 말씀해 놓으신 마태복음 24장 설교의 배경에는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요?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마태복음 24장 설교와 마지막 징조에 대하여 재조명해 보았습니다. 재림을 위해 준비하시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기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   - 편집실-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경고의 설교가 선포된 때는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곧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의 계획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려고 했던 시기였다. 이제 곧 메시아를 거절하는 유대민족과 예루살렘 성전에 무서운 멸망이 다가올 것이다. 예수님께서 감람산 위에서 예언의 안목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내려다보시며, 유대의 멸망과 세상에 임할 심판에 대하여 강한 경고의 성격을 띤 말씀을 발하지 않으실 수 없었던 배경에는 중요한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

 예루살렘과 세상 끝에 있을 멸망에 대하여 기록된 마태복음 24장의 전장인 23장에는, 예수님의 화 있을진저로 시작되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책망과 경고의 말씀이 나온다. 이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마태복음 23장의 말씀은 매우 중요한데, 이는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바리새인들의 죄악이 바로 예루살렘과 유대에 심판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대 교회를 더는 사용하실 수 없고, 성령께서 유대 교회에 더는 역사 하실 수 없게 되어 그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 현상은 또한 우리가 사는 현시대의 기독교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며, 이 일이 세상의 멸망과 심판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먼저 마태복음 23장에 말씀하신 예수님의 경고를 함께 연구해 보면서 그 원인을 살펴보도록 하자. 

유대의 멸망과 심판을 불러온 원인
1. 유대 교회의 타락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택함 받은 선민이었고 하나님의 진리를 간직하고 있던 지상의 유일한 교회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빛의 전수자들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유대민족을 사용하셔서 진리와 복음의 빛이 널리 퍼져 나가도록 계획하셨다.  그들은 온 세상에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여 줄 사명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유대인들의 후손에서 약속의 자손 메시아가 태어나 온 세상의 죄를 속하게 되어 있었으며, 그들은 구속의 경륜의 한 몫을 차지하는 놀라운 특권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귀한 특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귀한 하늘의 선물을 거절하였으며, 결국에는 보내주신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구속의 경륜이 기록된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 구속의 경이로운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있는 하나님의 택하신 교회였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는 방법과 하나님을 대면하여 살 수 있는 구속의 계획이 밝히 드러나 있는 놀라운 성소 제도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교회였다.  그러나 그들은 성소 제도의 의식 속에 나타나 있는 상징과 표징들을 통하여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일에 실패하였고, 다만 형식과 표면적인 의례와 의식에만 치우치는 위선적인 신앙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긴 복음과 사명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또한 중요한 예언을 오해하였다.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진리의 보존자로서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사명을 오해한 나머지, 진리를 독차지하고 다른 민족과 높은 장벽을 쌓으므로 말미암아 오히려 진리가 전해지는 일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위대한 선지자, 곧 메시아의 오심과 길을 예비하며, 교회의 불의를 탄핵하는 침례 요한의 곧바른 증언과 기별을 거절하였다.  선지자의 기별과 경고를 무시하므로 인해 유대 교회는 하나님께서 복음전파를 위해 필요로 하시는 정결한 교회가 되는 일에 실패하였다.  그들의 영적인 타락과 잘못 이해된 복음 때문에 그들의 영적인 수준은 너무나 낮아졌고, 올바른 영적인 체험은 전혀 없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그 교회는 성령께서 사용하실 수 없는 교회가 되고 말았다. 

2. 지도자들의 잘못된 인도와 그릇된 메시아관
 그런데 유대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특권을 박탈당하게 하며, 이렇게 메시아를 거절하게 하고, 유대 민족 종교의 상징이자 정치 사회의 구심점이던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유대 나라의 은혜의 시간을 마치게 한 가장 중요한 원인 대부분은 지도자들에게 있었다.  지도자들은 영적인 어둠에 빠져 한낱 껍데기뿐인 종교의식에 매달려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고안하신 원래의 참 복음을 이해하지 못했음은 물론, 메시아의 초림과 이 세상 역사의 종말과 유대인들을 위한 때에 대한 구약성경의 예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그 예언을 백성에게 가르치지 못했다.

 지도자들은 영적인 혼미함에 빠진 채, 그들의 생명이 없는 영적 생활을 위장하기 위해 쓸데없는 의식과 규례들을 만들어 지킴으로 위선적인 신앙을 덮고 있었으며, 백성에게 죽은 의식과 규례들을 지키도록 강요하고 그것들을 까다롭게 적용하여 짐을 가중시키며 그들을 영적으로 잘못 인도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유대민족의 멸망과 하나님께 버림받는 일을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은, 당시 지도자층에 만연하던 잘못된 영적 사조, 올바르지 않은 복음, 진리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지도자들의 죄악이었다.  특별히 지도자들의 신학과 성경 해석은 유대 민족에게 그릇된 메시아 관을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백성이 예수님의 초림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하도록 잘못 인도되었을 뿐 아니라, 메시아를 거절할 길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유대민족은 4천 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려왔다. 그러나 정작 성소 제도의 모든 제물의 원형이신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오셨을 때, 그들은 그분을 거절하고 말았다. 그 당시 유대 백성 중에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메시아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통한 유대 나라의 독립과 현세의 영광과 영화로운 세상의 통치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 세상의 왕국을 세우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인간의 마음속에 은혜의 왕국, 곧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며, 타락한 인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신 메시아의 사명을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무지와 몰이해는 그들의 이상과 맞지 않는 그리스도 예수를 배척하게 한 것이다. 

 그들은 성경에 메시아에 대하여 기록된 예언의 장들을 잘못 해석하는 우를 범하였는데, 특히 메시아의 고난과 대속의 죽음을 가리키는 예언들을 잘못 해석하므로, 그들의 죄를 대신해 고난받는 메시아를 이해할 수 없었으며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한, 미래에 있을 예수님의 재강림을 메시아의 초림으로 인해 이르러 올 현세의 영광과 권세 있는 통치로 오해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메시아가 오면 그들 민족의 세력이 다시 회복되어 만국을 다스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이 문제들을 바로잡아 알리시고 곧 다가올 예루살렘의 멸망을 경고하시기 위하여 지도자들에게 마태복음 23장에 기록된 책망의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지도자들을 책망하신 또 하나의 이유는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어리석고 연약한 백성을 지도자층의 잘못된 가르침과 기만으로부터 구하시기 위함이었다.  백성은 바르게 인도함을 받아야 했다.  유대 백성은 모두 예수님의 가르침에 매혹되었으나 한편으로는 크게 당혹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식과 겉모양의 경건을 보고 제사장들과 랍비들을 존경하였으며, 모든 종교적 문제와 전반적인 분야에서 제사장들과 랍비의 권위에 맹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성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매우 쉽고 단순한데도 불구하고 관원들이 예수님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그들 스스로 어떤 노선을 취해야 할지 알지 못하였다.  백성은 그들이 항상 권면을 따르던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의 동정을 살펴보며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런 백성을 깨우쳐, 영적인 눈을 떠서 다가오는 은혜의 왕국을 바라보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날카롭게 책망하셨던 것이다.

창조 교실: 신기한 불가사리

 
하나님의 창조 교실
신기한 불가사리
 "Starfish, 또는 Seastar로 불리는 불가사리는 색깔과 모양이 특이합니다. 불가사리의 몸은 별 모양, 또는 오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스타라는 이름처럼 대부분 불가사리는 방사대칭형으로 뻗어 있는 5개 정도의 팔을 가지고 있습니다. 편편한 별 모양과 비슷하지요.  배가 고프면, 불가사리는 긴 팔로 조개를 감싸고 조개의 껍데기를 잡아당겨 연후, 자기의 소화기관을 열린 조개의 껍데기 안으로 넣어 조개의 연한 조직을 소화시키는데, 조개껍데기가 조금만 벌어져도 잡아먹는 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자기 위를 뒤집어 밖으로 내어 먹이를 싸서 먹는 것입니다. 정말 신기하지요? 어떤 종류는 입 주위에 있는 강한 가시를 사용하여 끌어넣는 방법도 쓰고 있답니다.

 불가사리가 해로운 생물이라고 말들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거미불가사리와 빨강불가사리류는 해양환경개선에 도움을 주는 불가사리라고 합니다. 한국 제주도 해양수산자원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이들은 조개류를 전혀 공격하지 않고 물속에서 부패한 고기와 유기물만을 먹이로 섭취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마치 육지에서 중금속으로 오염된 토양을 옥토로 만드는 지렁이에 비유될 정도로 해양환경에 유익한 종류들이지요.

 불가사리라는 이름은 죽일 수 없다는 불가살이(不可殺伊)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름 그대로 쉽게 죽일 수 없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쉽게 죽일 수 없다기보다는, 극피동물의 특성상 강력한 재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지요.
 불가사리는 만약 팔이나 신체 일부가 잘리어 나가면, 팔이 잘린 원래의 몸에는 새로운 팔이 생겨나고, 잘려나간 팔은 또 하나의 독립된 개체가 되는 신기한 생물입니다. 한 마리가 두 마리로 늘어나는 셈이지요.  불가사리 팔이 잘렸을 때 절단 부위가 감염되지 않고 새로운 팔이 재생되는 점에 착안하여 과학자들이 감염 저항 박테리아를 분리해내기도 했는데요, 이를 이용하여 감염 저항 박테리아 균을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는 중이라네요. 팔이 잘려나가면 또 다른 팔이 생기는 신기한 불가사리!  쉽게 죽지 않는 불가사리를 보면서 무엇을 배우라고 하나님께서는 불가사리를 만드셨을까요? 각자 한번 생각해 볼까요?

바이블맨-8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8
바이블맨에게 물어보세요!
 \ 질문: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인간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요? 란 글을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교회 장로님에게 인간이 죽으면 재림 때까지 무덤에 잠들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장로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말씀하셨습니다.  무덤에 있지 않고 낙원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면서요. 여기서 말하는 낙원은 천국이 아닌 천국 아래 단계쯤인가요? 구원을 받은 인간이면 정말 어디로 가는 건가요?
\ 답변: 많은 사람이 예수님과 강도 사이에 오갔던 마지막 대화를 말하면서, 사람이 죽으면 즉시로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 하늘로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2~43)  이 말씀은 마치 예수님과 강도가 십자가에서 죽는 그날에 함께 하늘나라에 갈 것이라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부터,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말씀이, 정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부터 부활하실 때까지의 기간인 사흘 동안 하늘에 가 계셨다는 사실을 의미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요한복음 20장에서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하게 된다.

1. 부활하신 후에 밝히신 사흘 동안의 소재지
 예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그로부터 3일 후인 일요일 이른 아침에 부활하셨는데, 그분의 무덤을 찾아가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앞에 나타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를 만지지 마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요 20:17) 
 예수께서 하셨던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이상한 수수께끼를 남겨 놓았다. 만일 부활하신 일요일 아침까지 하늘에 올라가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3일 전에 그 강도에게 바로 그날 함께 낙원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가?  누가복음 23장에 나오는 낙원과 요한복음 20장에 나오는 하나님이 계신 장소가 같은 장소라는 사실을 요한계시록 2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도 요한은 생명나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데(계 2:7), 그 말씀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과 낙원이 같은 장소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해 준다.  분명한 사실은, 예수께서 돌아가신 지 3일 후까지 하늘에 올라가지 않으셨다면, 물론 3일 전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역시 하늘에 가지 않으셨다.

2. 헬라어 성경 원문의 의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부활하실 때까지 사흘 동안 의미는 무엇인가? 성경의 헬라어 두루마리 사본에는 성경 말씀이 한 줄로 길게 써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거기에는 마침표나 쉼표 같은 부호가 없으며, 성경 절과 장을 나누어 놓은 것이 없다.  
 이제, 헬라어 원문의 의미를 살펴보자. 아멘(진실로) 소이(네게) 레고(내가 말하노니) 세메론(오늘) 메트에무(나와 함께) 에세(네가 있을 것이다) 엔 토 파라이데이소(그 낙원 안에) 헬라어의 단어별 의미를 살펴보더라도,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 경우에, 영혼에 대하여 편견을 가진 번역자들이 번역할 때에 쉼표를 오늘이라는 낱말 뒤에 붙이는 대신에 앞에 붙임으로써, 번역상의 혼란이 야기되었다. 쉼표를 오늘이라는 말의 뒤에 붙여야만, 다음과 같이 올바르게 번역될 수 있다. 

 내가 진실로 오늘 네게 이르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헬라어 원문을 이렇게 해석해야만, 예수께서 강도에게 하셨던 말씀이 다른 모든 성경 절과 완전한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는 그날(오늘)에 하늘에 강도와 함께 올라가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오늘이라는 낱말의 뒤에 쉼표를 붙이는 것이 성경의 원문에도 일치할 뿐만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 전체에 나타나 있는 사상과도 일치한다.

3. 강도가 부탁했던 말의 의미
 이제, 강도가 예수께 부탁했던 말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또 하나의 열쇠는, 그 강도가 했던 부탁은 세상의 종말에 하나님의 나라에 임할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사실이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 23:42)
 그는 자신이 죽기 바로 직전인 그 오늘 당장에 어떤 보상을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그는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날에 의의 면류관을 쓸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바울이 자신의 믿음과 봉사에 대한 보상을 언제, 어떻게 받으리라고 기대했는지를 살펴본다면, 십자가에서 강도가 예수께 드렸던 부탁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건강: 원숭이가 가르쳐 주는 교훈

건강
원숭이가 가르쳐 주는 교훈
. 원숭이들의 변화  

  아프리카의 한 국립 자연 보호 지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관광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자연 보호 지역 안에 호텔과 몇몇 편의 시설을 세우기로 하였다.  호텔이 세워지고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많은 음식 찌꺼기가 날마다 쓰레기통을 채우게 되었다. 그때까지 밀림 속에서 나무타기를 하면서 이곳저곳을 다니던 원숭이들이 음식 냄새를 맡고 한 마리 두 마리씩 호텔 뒤에 세워 놓은 쓰레기통으로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다가와서 조금씩 맛을 보았지만, 아무도 그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꽤 많은 원숭이가 몰려들어서 쓰레기통 안에 들어 있는 빵, 초콜릿, 우유, 사탕, 치즈 조각 등의 음식물을 마음껏 꺼내 먹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조미료와 인공 감미료가 들어 있는 음식물 찌꺼기를 많이 먹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그 맛에 중독되면서 더 많은 양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원숭이들은 이제 더는 음식물을 얻기 위해서 높은 나무를 올라갈 필요도 없게 되었다. 과식 때문에 커진 배를 두드리면서 그늘에 누워서 잠을 자거나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것이 그들이 하는 유일한 운동이었다. 몇 달이 지나서 원숭이들의 몸은 비대해져서 나뭇가지들을 이리저리 타고 다니기는커녕 기어오는 데에도 매우 힘들어했다.  좀 더 시간이 흘러가면서 원숭이들의 몸에 여러 가지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다리를 저는 원숭이가 생기게 되었고, 과체중으로 뒤뚱거리면서 걷는 원숭이가 생기게 되었다.  그 모습과 행동에서 원숭이 같지 않은 원숭이가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눈치챈 국립 공원의 직원들은 과학자들과 의사들을 초청하여 원숭이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변화의 원인을 조사케 하였다.  조사에 참여한 연구원들은 호텔의 쓰레기통에 뚜껑을 만들어서 굳게 닫아 놓기로 하였다. 원숭이들은 쓰레기통을 흔들고 밀치면서 뚜껑을 열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굳게 닫힌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서 원숭이들은 쓰레기통에 있는 인간의 음식을 포기하였다.
 원숭이들이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밀림 속을 달려야만 했다.  다시 원래 그들이 먹던 신선한 바나나와 각종 나무 열매들을 먹기 시작했다. 다시 나무를 기어오르고 가지를 잡아당기면서 뛰어내리고 걷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원숭이들은 서서히 원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모습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에게 신선한 과일과 야채와 곡물을 식품으로 허락하셨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고 사람의 식욕이 비정상적으로 바뀌어서 이제는 사람의 건강에 해가 되는 것들까지 식단에 오르게 되었다. 다시 에덴의 건강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
한 길이다. 
 아담과 하와가 먹던 단순한 채소와 곡물로 이루어진 음식물을 먹으면서, 자연계 속을 자유롭게 거닐면서 운동하는 삶, 이것이 오늘날 현대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수많은 성인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 것은 진정한 치료가 아니다.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먼저 생활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올바로 식사하고, 올바로 운동하며, 올바로 휴식을 취하는 일에서부터 건강의 길을 찾아야 한다. 아프리카의 병든 원숭이들에게는 올바른 처방을 내린 의사와 과학자들이 왜 성인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인간에게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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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습관의 중요성
 
 
건강은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인에 의존한다.
 
1. 우리가 무엇을 먹는가?

2.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

 이 두 가지는 생활 습관에 관한 것이다. 태어날 때 우리가 가지고 태어날 유전인자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생활 습관을 바꾸면 유전적으로 걸리기 쉬운 질병들을 예방할 수 있다.  레이몬 머독 박사는 생활 습관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결함이 있는 유전은 총알을 장전하고, 생활 습관은 방아쇠를 당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몸보다 자기 자동차를 더 잘 돌본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자동차가 언제 폐차될지 결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나는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휘발유가 남아 있는지, 엔진 오일을 정기적으로 바꾸어야 하는지 점검할 필요도 없고 바꿀 필요도 없다. 타이어에 문제가 없는지, 엔진 소리가 정상적인지 살펴볼 필요가 없다. 이 말의 의미는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만, 정작 내 몸이 가지고 있어야 할 최적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너무나 많다.

 죽음의 원인은 무엇일까? 만일 어떤 사람이 암이나 뇌졸중 또는 심장마비로 사망한다면, 그 사람의 생애에서 무엇이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한 치명적인 원인이었을까?  미국 의학 협회에서는 그 협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에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9가지 원인의 순서를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1. 잘못된 식사와 불충분한 운동 
2. 흡연  
3. 음주  
4. 감염성 질병              
5. 독극물  
6. 총기류  
7. 잘못된 성행위  
8. 자동차 사고  
9. 마약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가장 중요한 원인 1,2,3위 모두 생활 습관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미국에서 매년 사망하는 숫자가 약 125만 명인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이 세 가지 원인 때문에 사망하고 있다. 생활 습관과 건강에 대해 연구를 하면 할수록 생활 습관의 중요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공중 위생국 장관이었던 에버렛 쿠프 박사는 그의 장관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연구 결론을 내렸다. 과다하고 균형 잡히지 않은 음식 섭취가 미국의 10대 질병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오래 사는 데 도움을 주는 생활 습관들은 무엇일까? 캘리포니아의 거주자 7천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장수에 영향을 미치는 일곱 가지 생활 습관 요인들을 발견하였다.                                                                       
            

               
1. 7~8시간씩 잠을 잔다.  
2. 간식하지 않는다.  
3. 아침 식사를 규칙적으로 한다.  
4. 적절한 체중을 유지한다.     
5.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6. 술을 매우 절제하거나 마시지 않는다.   
7.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위에 기술한 7가지 생활 습관을 지키면서 산 사람들은 자신의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매우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다시 말하면, 건강한 생활 습관을 얼마나 실천하는가에 따라서 건강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최소한 10년 이상 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노화 방지법이 아닌가!  요즘 이렇게 말하는 노인들이 많다. 나는 80세까지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 나이 사람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사느니 차라리 그 이전에 죽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건강의 원칙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생기게 된다. 

  80세 이상의 나이에서도 여전히 높은 삶의 질을 즐기면서 사는 행복한 노인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오랜 세월 건강한 생활 습관을 지키면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젊어서도 건강을 유지하였을 뿐 아니라 늙어서도 꾸준하게 건강한 삶을 영위하였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건강한 몸과 정신이 있어야 신앙 역시 힘차게 솟구칠 수 있다.  이 글의 서두에 소개한 원숭이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왜 건강하였고, 왜 건강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중년 이후에 찾아오는 수많은 성인병에 대한 확실한 예방책이고 건강한 삶에 대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시골생활: 첫 번째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시골 생활
  바쁜 현대인들에게 가슴 깊이 전하는 시골생활 이야기, 단순한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시작하면서
 시골 생활을 하기 전 저의 아버지께서는 작은 도시에서 한 교회를 맡아서 자급사역자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때에 형과 저는 무엇이든지 보고 듣는 대로 배우고 깨닫기 시작하는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던 곳은 우리 교육상 안전한 곳이 아니어서 형과 저는 그 도시의 질이 좋지 않은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배우고 있었습니다.  형과 저를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준비시키길 원하셨던 부모님께서는 저희의 교육 문제 때문에 고심하며 많은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서 유명한 사람으로가 아니요, 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으로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엘리야와 모세, 침례 요한처럼 복음 전달자로 준비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기인 유년 시절에 우리의 순진한 마음과 깨끗한 머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과 하늘의 품성으로 채워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하나님을 닮는 것이 교육의 목표요, 모든 재능을 최고로 개발시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봉사하게 하는 것이 참교육이라는 것을 부모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몸과 마음과 지식이 균형 지게 발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는 바로 한적한 시골임을 알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매일 품을 팔아서 벌어오시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성경의 귀한 허락들을 믿고 우리 가정의 앞길을 열어달라고 간절히 주님께 매달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르고자 선택하고 믿음으로 구하며 전진할 때 길을 열어 주십니다.  서울에서 아버지의 설교를 들으신 어느 분이 깊은 감동을 하고 또 저희가 시골 생활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조그만 땅을 살 수 있는 자금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후 1톤 화물차에 이삿짐을 싣고서 먹을 양식이라곤 쌀 다섯 말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충북 단양의 깊은 산골에서 우리의 시골 생활은 시작된 것입니다. 

\  가정 학교가 시작됨
 우리 최고의 교과서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었고 문만 열면 보이는 산과 들도 우리의 교과서였습니다. 선생님은 부모님이었고 교장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형과 제가 한글을 처음으로 배운 곳은 이곳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누런 종이에 글씨를 크게 써 놓으시고 이것이 "하나님"이라는 글자다.라고 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이란 말을 계속 되풀이하면서 글씨연습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성령님,천사등등 각 단어의 뜻을 잘 배웠습니다. 특히 천사란 말의 뜻을 알려 주실 때 하신 말씀은 어린 형과 제가 산속의 오솔길을 다닐 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형과 저는 넓고 자유로운, 인공적이거나 죄악적인 것이 없는 천연계 속에서, 부모님께서 농사짓는 것을 도우면서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숙제로 내주신 성경 절을 외우고, 목청을 높여 찬송도 부르면서 지냈습니다. 비 올 때는 물이 흐르는 넓은 냇가의 바위틈에서 작은 돌멩이와 솔방울을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았습니다.  성경 이야기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멀리서 밭매시는 부모님께 가서 물어보기도 많이 했죠.  또한, 천연계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맑고 푸른 하늘과 즐겁게 노래하는 새들, 낮은 곳으로 졸졸졸 흘러가는 물, 저 산마루 키 큰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 밭둑과 길옆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르는 작고 예쁜 꽃들, 귀여운 다람쥐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창조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해주었습니다. 그것들은 무엇하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저희에게 진실과 순결, 참된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심어 주었고 봉사의 정신을 길러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할 때에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마쳤습니다. 일을 시작할 때나, 마칠 때에나 또한 숲 속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고 이른 아침이면 그곳으로 기도하러 다녔습니다.  기도를 다 마치고 떠오르는 해를 보며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골짜기가 울리도록 찬송을 부르는 시간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침을 준비하시면서 형과 제가 각각의 기도 장소에서 찬송을 부르는 것을 들으면 기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르고자 선택하고 믿음으로 구하며 전진할 때 길을 열어 주십니다. 서울에서 아버지의 설교를 들으신 어느 분이 깊은 감동을 하고 또 저희가 시골 생활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조그만 땅을 살 수 있는 자금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후 1톤 화물차에 이삿짐을 싣고서 먹을 양식이라곤 쌀 다섯 말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부모님의 신앙 모습, 경건한 대화, 말씀과 기도를 통해 힘과 기쁨과 위로를 얻는 그 생활은 우리의 마음을 하늘의 영원한 것들로 향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추수할 때는 아직 멀었고 가지고 온 쌀 다섯 말은 바닥났습니다. (다음 호에)

가정과 영성: 그리스도인 귀농, 왜 그리고 어떻게?

가정과 영성
그리스도인 귀농, 왜 그리고 어떻게?

 1970년대에 무작정 상경이라는 말이 유행되었던 적이 있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먹고 살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오는 현상을 지적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귀농이라는 말이 점점 더 들려오고 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시골로 돌아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귀농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정부와 사회단체에서도 그들을 돕고 보조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경쟁과 공해가 심한 도시의 피곤한 삶을 떠나서 한적한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의 귀농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며 그 필요성이 어떤 이유로 대두하고 있는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복음은 인생의 문제들을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게 만들어 준다. 성경이 주는 교훈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 땅에 있는 가정은 하늘에 있는 가정의 표상이요, 하늘을 위하여 준비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주거지를 정할 때에는 가정이 이 땅에서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은 구원받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도시의 삶은 구원이 아니라 멸망으로, 행복이 아니라 불행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우리 삶의 단순, 순결, 건강, 진정한 풍요로움을 얻기 위해서 가정이 어디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도시를 떠나야 하는 이유    
도시들은 점점 혼란과 폭력과 범죄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며, 이러한 현상은 이 세상 끝날까지 증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귀농은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마태복음 24장에는 예수님께서 오시는 징조로서 지진과 홍수 그리고 온역과 같은 재난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온갖 재난과 죄의 잔이 가득 채워지고 있는 사악한 도시에 언제까지 우리의 가정을 둘 것인가? 말세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한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인 귀농의 목적은 부모와 자녀를 죄로 오염시키고 부도덕한 영향이 지배하지 못하는 곳에서 살기 위한 것이 될 것이다.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이 푸른 들, 수목과 언덕과 개울, 맑은 하늘과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 등으로 이루어진 어떤 농촌 지역으로 옮겨 간다면, 그곳에서 천국과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귀농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을 의지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가게 될 것이며, 천연계에 새겨진 하나님의 창조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귀농하여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실제적인 경험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들은 천연계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마음과 영혼과 몸은 생명을 주시는 치유의 능력에 반응하게 될 것이다.

 대도시에 사는 가정들이 신체적, 정신적, 또는 영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는 가정이 있을까? 믿음, 소망, 사랑, 행복은 들과 언덕과 나무들이 있는 한적한 곳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 사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생각하고 기도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도시의 죄악이 계속해서 그 잔을 채워가고 있는 이 시대에 도시에 남아 있기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돈과 명예와 자녀의 세속적인 성공 때문이 아닌가?  나와 가족들의 구원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리스도인의 귀농은 점점 그 중요성이 크게 인식될 것이다.

 도시의 생활은 허위적이요 인공적이다. 돈을 벌고자 하는 열망, 흥분과 쾌락을 구하는 소용돌이, 자랑과 사치와 낭비에 대한 욕구 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의 진정한 목적에 마음을 집중시키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도시의 삶은 온갖 악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한다. 
 인간의 업적과 교만을 드러내는 빌딩숲, 보고 듣는 거의 모든 것이 죄 된 생각과 충동을 일으키는 곳에 거주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업적과 위대하심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가라.  아름답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천연계 가운데서 마음의 안식을 찾아라. 도시의 먼지와 연기로 흐려지지 않은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생기를 주는 하늘의 공기를 마시라. 도시 생활의 오락과 방탕에서 벗어나 자연계 속에서 자녀의 친구가 되어 주고,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가라.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위대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인생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생활 방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하여 오셨다.  지혜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위하여 택해 주신 삶의 조건들은 어떤 것이었는가? 
 갈릴리 언덕의 한적한 가정, 자신의 힘으로 정직하게 노동함으로 살아가는 가정, 단순한 생활, 어려움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매일의 노력, 자아 희생, 절약, 인내,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봉사, 어머니 곁에서 성경을 펼쳐서 공부하는 시간, 푸른 산골짜기의 고요한 새벽과 황혼, 천연계의 신비함, 창조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연구, 하나님과의 신령적 교제,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주어진 조건과 환경이었다.

귀농과 자녀 교육
 멸망에 이를 만큼 무르익은 도시의 유혹에 더는 자녀를 버려두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도시에 투자하고 재산을 늘려나가는 대신에 줄이고 정리하여 조용한 광야로 떠나야 할 때이다.  부모들이여,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녀를 하늘까지 데려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있는가? 안일, 안락, 편리함을 자녀의 영혼의 가치와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계명과 진리를 무시하고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자들로부터 자녀를 보호해야 한다.
 자녀들에게 모든 교육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  혼잡한 도시 대신에 그대들의 자녀를 유혹으로부터 보호하고 유용한 일을 교육하고 훈련할 수 있는 한적한 장소를 찾아라.  도시에 사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공격하는 가장 교활하고 위험한 유혹 중의 하나는 쾌락을 사랑하는 일이다.

 휴일은 많고, 스포츠 경기와 연예오락은 수많은 사람을 사로잡고 청소년들로 하여금 인생의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 많은 돈이 오락을 위하여 함부로 사용된다.  점점 도시를 떠나야 할 이유는 많아지고 있다.  부모가 세속적 만족과 돈을 위해서 대도시의 한복판에 살고 있으면서 자녀를 죄와 유혹으로부터 구원해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자녀를 보호해 주실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가족이 단순성과 순결성에 대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는 시골에 거주지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 귀농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간이 갈수록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더 도시를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귀농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시를 떠날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해야 하며 사전에 계획을 세워야 한다. 도시에 머물러 있는 동안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온 힘을 다하여 유혹과 싸우며 선교 활동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분별력을 주셔서 당신의 방법과 시간표에 따라서 시골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이다.  귀농 지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며, 산을 끼고 있는 곳이 좋다. 사람이 거할 목적으로 짓는 모든 건물은 지대가 높고 배수가 잘되는 땅에 세우는 것이 좋다.

 주택을 건축할 때는 환기가 잘 되고 충분히 햇빛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집에 있는 모든 방에 공기가 잘 유통되고 햇빛이 충분히 들어 올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최소한 이웃의 지붕이 안 보일 정도의 독립성을 유지해야 신앙과 취향이 다른 이웃과 불필요한 투쟁을 피하고, 그리스도인 자녀 교육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적절하면서도 지혜로운 경작을 통해 땅은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보물을 낳게 될 것이다. 광야에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식탁을 마련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결코 그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 광야에서 밀접한 관계를 가지려고 귀농하여 땅을 사서 과목과 채소를 재배하면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녀는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 신앙에 친숙하게 될 것이다.

귀농을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시골과 산으로 가는 것을 커다란 손실로 생각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과 홀로 있을 수 있고, 그분의 뜻과 길을 배울 수 있는 한적한 곳을 찾는 것으로 생각하라.  영성 회복은 우리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지금은 구원과 영성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결정을 해야 할 때이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것을 손실이라고 생각지 마라.  거기에는 얻으려고 팔을 벌리는 자들을 위한 풍성한 축복들이 기다리고 있다. 
 창조주의 솜씨인 자연의 광경들을 바라봄으로, 하나님의 솜씨를 세밀히 연구함으로, 그들은 그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다.  고된 일, 적은 임금, 어려운 경제 사정, 가끔 찾아오는 역경과 궁핍 등이 귀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악에 대한 유혹, 환락과 범죄, 불행과 불결 등이 있는 도시를 떠나 시골의 정적과 평안과 순결을 찾아가는 일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 될 것인가!

그리스도인 귀농과 예언
 예언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이 귀농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장차 물건을 사고파는 문제가 매우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진리의 말씀을 유의해야 할 때이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  (계 13:15~18)

 요즘 세계적인 환경 재앙과 경제의 파국을 보면서 엄숙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성경에 기록된 예언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이 경제적으로 무너지자, 유럽은 그것보다 훨씬 심각한 파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구 세계 전체가 경제적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 경제에 대한 성경의 예언이 이처럼 적나라하게 이루어졌던 적이 과거에 있었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성경 예언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경제가 심하게 흔들리는 이런 상황에서 환경 재앙이 겹치게 되면 경제는 완전히 몰락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말세에 경제의 몰락과 환경 재앙이 함께 일어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특별히 세계 경제가 무너지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매우 짧은 시간, 신속하게)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땅의 상고들(Merchants-경제)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계 18:10~11)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경제인)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계 18:15-19)

 세상 종말에 바벨론이 무너질 때에 그것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상고들, 즉 경제가 무너지기 때문에 짐승의 표 환란은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는 방법으로 내려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온갖 재난과 재앙이 세상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게 됨으로써 경제는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이러한 세상 형편은 온 세상을 짐승의 표를 강요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몰고 가게 된다.
 짐승의 표 환란이 일어나면 재난과 재앙은 심해질 것이며, 성경에 기록된 7재앙이 현실화될 것이다. 그리고 7재앙의 끝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가서 땅을 경작하며 직접 소산물을 재배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주거지를 마련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짐승의 환란의 때에 피난처가 될 것이다.

맺음말
 마지막 사건들과 예수님의 재림은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임하는 것처럼 임하게 될 것이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 5:3) 임신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할 때, 처음에는 약하게 시작되다가 강해지면서 고통의 주기 또한 점점 더 짧아진다.
 
 지난 10년의 세월을 되돌아볼 때 우리는 해산하는 고통처럼 재난의 주기가 매우 짧아졌고 규모가 커져 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거의 해마다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재난이 지구를 덮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앞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재난과 고통의 규모를 생각할 때마다 두려움을 숨길 수 없다.

 지구 역사의 끝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아의 가족이 하나님께서 주신 정확한 설계도대로 방주를 만드는 일에 그들의 삶을 바쳤고 결국 그 방주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다.

 마지막 시대에 품성 변화, 자녀교육, 건강을 위해서, 도시의 죄악을 피하고자 그리고 짐승의 표 환란과 7재앙 때에 임할 재난을 피하기 위해, 우리에게 말씀하신 방주는 귀농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매우 권장할만한 하나님의 지혜이다.

생애의 빛에서

From the Pastor's Desk

 경에서 마태복음 24장은 재림의 징조를 기록한 장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유명한 장입니다. 만일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아직도 잘 모르는 분이 있다면 아마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큰 관심이 없는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시기와 그 사건들에 대하여 단계적이면서도 분명하게 예언하여 주신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하는 말씀들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4장 예언의 말씀은 하나님 교회의 타락과 어두워진 상태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마태복음 23장의 토대 위에서 기록된 내용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의 예언의 말씀은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워지고 더 깊은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말씀이며 오늘날 우리 시대에 확실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재림의 징조들로 기록된 이 내용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어느 때 어느 세대에서나 그 말씀이 자기가 사는 그 시대에 적용될 수 있도록 느끼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00년 전이나, 500년 전에도, 예수님께서 마치 그 시대에 곧 오실 것처럼 느끼며 감동하여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읽는 많은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벌써 몇 년째인가? 100년 전이나, 10년 전에도 항상 예수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해왔는데, 정말 오시긴 하는 건가?  언제 오시는 건가? 마지막을 알리는 징조들은 계속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4장을 잘 살펴보면 그 내용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바로 그 마지막 세대에 적용되도록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예언들이 과거 많은 세대 동안 적용됐었으나, 그 말씀과 징조들의 중점 내용은 바로 마지막 세대, 예수님께서 다시 임하시는 바로 그 시기에 적용되어야 하는 힌트들이 여러 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속히 오실 수밖에 없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 속히 오실 것입니다! 준비하십시오!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영원을 위하여 준비하십시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이제 곧 다 사라져 없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 옵니다!  이번 호는 마태복음 24장을 재조명해 보는 말씀들로 채웠습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그 소중한 깨달음을 가지고 지금 이 어두워진 세상에서 때를 분별하여 주님의 속히 오심을 준비하는 큰 열성을 가지시길 바라고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편지: 마음속의 신기루

편지
마음속의 신기루
 길옆으로 메마른 사막의 전경이 널려져 있는 끝없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오래전 그 신기루를 보았던 때는...  짙은 회색빛의 아스팔트가 계속 펼쳐지는 고속도로 저만치 앞에 갑자기 수정 같이 파란 호수가 나타났습니다. 햇빛을 받아 푸른 보석처럼 빛나는 눈부신 작은 호수는, 마치 청량제처럼 장거리 여행의 지루함을 깨기에 충분했습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비가 갑자기 많이 와서 생긴 듯한 저 물웅덩이를 어떻게 지나갈까 걱정하는 순간 차는 이미 그 지점을 통과하게 되었고, 가까이 가보니 놀랍게도 고속도로는 여전히 뜨거운 태양 아래 회색빛으로 말라 있는 것이었습니다. 신기루였습니다. 그 물웅덩이, 마치 오아시스같이 빛나던 그 파란 호수는...   신기루는 그렇게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찬란하게 빛나던 신기루의 파란 물 빛깔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신기루
 신기루는 대기 중에 생기는 빛의 이상굴절 때문에 물체가 실제의 위치가 아닌 다른 위치에 있는 것 같이 보이는 현상입니다.  땅 지표면의 공기가 너무 차갑고 그 위가 너무 따뜻할 경우, 뚜렷한 기온역전이 생겨 대기 중에 빛의 굴절이 생기고, 이렇게 생긴 빛의 굴절이 지평선 너머에 있는 아주 먼 곳의 장면을 확대하거나, 먼 곳의 실물이 가까이 떠올라 보이게 하거나 거꾸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지요. 
 
 사막의 신기루 오아시스는 이와는 반대로 지표 온도가 대기의 온도보다 뜨거워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이런 신기루 현상은 극지방이나 사막에 많이 나타나는데, 북극해 같은 곳에서는 어떤 때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얼음 덩어리가 거대한 빙산으로, 또는 자그마한 어장(漁場)이 크고 화려한 궁전으로 변모하여 나타나 항해하는 사람들이나 탐험가들을 황홀한 신비감에 이끌리게 합니다. 
 
 또 이탈리아반도와 시칠리아 섬 사이의 메시나 해협에서는 공기 온도가 높아지고 물이 잔잔해지면, 구름 위에 아름답고 웅장한 항구도시의 모습이 반영되고, 다시 그 위에 또 다른 제2, 제3의 도시가 솟아올라 현란한 탑이나 궁전으로 보인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신기루이지요? 그런데 아십니까? 매일 하나님도, 우리도 모두 신기루를 본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속에 그 신기루 현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신기루를 보는 사람들
 성경에는 신기루를 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번 신기루를 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놀라운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서 살 때에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며(히 11:13),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으며 살았습니다.(히 11:27) 
  
 한 번 신기루를 본 사람은 그것을 계속 찾게 되어 있습니다. 한 번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안 사람은 그 경험을 계속 동경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 속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되고 새 언약에 들어가는 경험을 한 사람들, 마음속에 찾아 헤매던 그 샘을 발견한 사람들, 그리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내 백성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사람들은, 믿음의 눈으로 지금 없는 것을 보고, 믿음의 마음으로 지금 없는 것을 느끼며 소망과 기쁨 속에서 삽니다.

 지금은 비록 신기루처럼 잠깐의 순간만 볼 수 있고, 오아시스처럼 잠깐 다가가 갈증을 풀 수밖에 없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그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던 것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확실한 것이 되며, 부분적으로알던 것이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아는 것이 될 것이기에...  그리고 그분을 만나 뵈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알기에...  그것은 신기루를 보는 경험입니다. 괴로운 이 세상에 살지만 오아시스 속에서 해갈하며 사는 경험입니다.    

하나님의 신기루
 어린 장미꽃봉오리는 머지않아 만개할 아름다운 장미꽃을 약속합니다.  도토리 속에서 단단한 참나무를 보듯이, 눈썹처럼 가느다란 초승달 속에서 환하고 둥근 보름달의 모습을 보듯이, 아직 채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 미완성의 모습 속에서 성숙한 성도의 모습과 완숙의 열매를 보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신기루입니다.  아직은 없지만 언젠가 있을 어떤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믿음, 지금은 아니지만,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바라시는 하나님의 소망,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우리에 대한 신기루입니다. 
 
 어린이들이 부르는 영어 복음 성가 중에 He still working on me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만히 뜻을 생각해 보면 가사가 마음을 울리는 노래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신기루를 표현한 듯이 말입니다. 

He's still working on me, to make me what I ought to be.
It took Him just a week to make the moon and stars,
The sun and the earth and Jupiter and Mars.
How loving and patient He must be, He's still working on me.
There really ought to be a sign upon the heart,
Don't judge her yet, there's an unfinished part.
But I'll be perfect just according to His plan
Fashioned by the Master's loving hands.
Remember He's the Potter, I'm the clay.

 

 


한국어로 의역해 본다면 이런 내용입니다.

 

 

주님은 내가 꼭 되어야 할 그런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아직도 일하고 계십니다.
해, 달, 별과 지구를 만드시는 데는 단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지만,
진짜 나를 만드시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참으시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인내
주님은 아직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곧 마음속에 진정한 변화가 나타날 겁니다.
그때까지는 아직 판단하지 말아주세요.
가끔은 미완성 부분이 드러나더라도. 
주님의 계획에 따라 나는 곧 완성품이 될 거니까요.
나의 주인의 사랑스러운 손길에 의해...
그분은 토기장이, 우리는 그분 손 안에 있는 진흙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기초만 조금 지어진 초라한 건물 같은 우리의 모습에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을 보십니다.  마치 먼 곳에 있는 어떤 물체가 신기루 현상으로 가까이 나타나 보이듯이,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완결판으로 단장될 우리의 모습을 간절한 소망의 눈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신기루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마음속에 아무도 모르는 신기루를 간직하고 있습니까?  모자란 나 자신의 모습에서, 미완성된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완성을 보는 믿음의 신기루를 가지고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믿게 하는 믿음과 환희의 신기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