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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d you know?: 갑자기 사라진 조종사

 

제자들이 감람산 위에서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주님의 대답에 나타나 있는 분명한 암시는 주의 재림에 관한 잘못된 가르침들이 말세에 많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말세가 된 지금, 주의 재림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기독교계에 들어왔다. 오늘날, 수백만 그리스도인에게 아무런 검토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기독교계에 엄청난 교리적 혼동의 요인이 되고 있는 신학적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 질문은 세상 끝에 그리스도께서 어떤 방법으로 이 땅에 임하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수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비밀리에 공중 재림하실 것이라는 가르침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소위 비밀 휴거(The secret rapture)라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휴거설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환란 이전에 의인들만 비밀리에 살짝 들어 올려가셔서 그들이 환란을 통과하지 않게 해주신다고 말한다. 그래서 휴거설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 지구에 일어날 엄청난 충돌사고들을 예상하고 있다. 비행기 조종사와 버스와 자동차 운전기사들이 갑자기 들리어 올라가게(비밀 휴거) 되면 굉장한 사고들이 연발하여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공상 소설 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꽤 많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휴거론은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또는 미래주의를 지지하는 목사들에 의해서 전파되고 있는 예언 해석과 접목되어서 여러 가지 모양의 오해와 혼란을 빚어내고 있다. 이제, 먼저 비밀 휴거론자들이 만들어 놓은 종말론의 시나리오를 대략 살펴본 다음,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8가지 면으로 나누어서 하나씩 차례로 분석하여 볼 것이다.

 

비밀 휴거 시나리오는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전개된다:
다니엘서 9장 25절에 나오는 70주일에서 마지막 70번째 주일에 해당하는 1주일(7일) 즉, 7년을 사이에 두고 그리스도께서 각각 다른 모양으로 두 단계에 걸쳐서 재림하신다. 첫 번째는 7년 환란이 시작되기 직전에 비밀리에 공중에 강림하셔서 부활한 죽은 의인과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아무도 모르게 공중으로 끌어 올려가는 비밀 휴거가 있다.

그런 다음 곧이어서, 지상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제사 제도를 회복시키고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자처하는 가증한 일을 행하고, 7 재앙을 내리기 시작한다. 이에 자극을 받아서 아랍과 아프리카 동맹세력이 일어나고, 러시아와 그 동조세력들이 개입하여 대결한다. 이렇게 위기가 고조된 상황 속에서 드디어 유대인들이 회심하여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4만 4천은 복음전도자로서 세상에 나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방인들을 돌이키는 대역사가 전개되는 한편,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 위기가 고조에 달하게 된다.

이때에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지상에 재림하셔서 전쟁을 끝내시고 다시 유대인 위주의 천년 왕국을 이 땅 위에 세우신다는 것이 세대주의자들이 가르치는 종말론의 시나리오이다. 이러한 비밀 휴거론에는 8가지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

 

바이블맨에게 물어보세요: 공의와 자비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참사랑

 

Q. 마태복음 12장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제사보다 자비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뜻이 무엇인지 가장 쉽게 설명 좀 해주세요.

Answer. 그 구절을 알기 위해서는 앞뒤 전반적인 문맥을 통해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상황은 당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에서 이삭을 따 먹는 것을 보고 안식일을 범한다고 고소하는 장면입니다.
만일 다윗이 거룩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구별해 놓은 떡 덩이를 먹어서 자기의 허기를 채운 것이 정당하다면 제자들이 거룩한 안식일 시간에 곡식 이삭을 잘라 그들의 필요를 채운 것도 정당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성전 안의 제사장들은 다른 날보다도 안식일에 더 많은 일을 행하였습니다. 세속적인 사업에 그런 노동을 하면 그것은 죄가 될 것이 당연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의 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행사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속하시는 능력을 가리키는 의식을 집전하였으며 그들의 노동은 안식일의 목적과 일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업을 하던 제자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안식일에 이 사업의 성취에 필요한 일을 행하는 것은 옳은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원수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으뜸가는 일임을 가르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사업의 목적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었으므로 이 사업을 성취함에 있어서 안식일에 행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안식일의 율법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 모든 문제와 모든 율법 위에 계신 분이라고 선언하심으로 당신의 논증 마지막을 장식하셨습니다. 이 무한하신 심판관께서 제자들이 범하였다는 바로 그 율법에 호소하심으로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을 꾸짖는 일로 이 문제를 종결짓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눈이 멀어서 안식일의 목적을 오해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자비(긍휼)를 원하고 제사(희생예물)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다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마 12: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마음에도 없는 그들의 많은 의식은 하나님의 참된 경배자를 늘 특징지어줄 참된 고결함과 온유한 사랑의 결핍을 보충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물 그 자체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진리를 다시 반복하셨습니다. 그것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제사의 목적은 사람들을 구주께 이끌어서 하나님과 일치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중히 보시는 것은 사랑의 봉사입니다. 이것이 없는 의식의 단순한 반복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입니다. 안식일도 역시 그랬습니다. 안식일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려고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피곤한 의식에 골몰하여 있을 때에 안식일의 목적은 훼손되었습니다. 안식일을 단지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은 헛수고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질문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사악한 목적을 그들에게 지적해 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구하시며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시는 반면에 그들은 심한 증오심을 가지고 그분의 생명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고통당하는 자들을 고치는 것보다, 그들이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더 나았을까요?
하나님의 거룩한 성일에 인자한 행실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나타내는 것보다 마음에 살의를 품는 것이 더 의로웠을까요?
인간과 그 동료 인간 사이에서 나누어지는 진정한 동정심은 하나님의 법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들과 그 법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을 구별하는 표(Sign)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어가는 세상을 위한 희생 제물로 당신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나타내신 그 동정심은 얼마나 위대하신가요! 그분의 종교는 참된 의료 선교사업을 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치료하는 능력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책잡아 죽이려는 음모로 가득했으나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마 12:7)고 그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위대한 진리의 근원 되시는 분께서 참 종교와 거짓 종교를 구별하기 위하여 사용하신 시금석(試金石)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타인을 지적하고 올무를 놓고 심지어는 법의 제정자이신 주님을 책잡아 죽이려는 음모로 가득했으나, 예수님께서는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생명을 제공하기 위해 오신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깨닫게 하시는 지혜와 평안함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리며...

사랑의 편지: 어떻게 그럴 수 있으셨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으셨습니까?

                                                   강영은

 

주님!

어떻게 그럴 수 있으셨습니까?

영겁을 빛나도 스러지지 않을 그 아름다운 빛을

어떻게 그렇게 감추실 수 있으셨습니까?

 

하늘의 빛나는 천사들도 차마 응시하지 못했던 영광의 빛,

아무리 감추어도 숨길 수 없이 비쳐나던 그 엄청난 신성의 빛을

비천한 육신의 덮개로 가리시고

사람으로 우리와 함께 사셨던 사랑의 주님이시여!

 

흰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 씻기시던,

흙 먼지 길 걸으시며 영혼 위해 허리 굽히시던,

본체의 영광 비우시고 종으로 오신 주님,

 

빛도 없으면서 빛나려고 애쓰는 우리는

오늘 당신의 찬란한 빛을 생각하며 부끄러워합니다.

 

주님!

어떻게 그럴 수 있으셨습니까?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진주이신 당신의 가치를

어떻게 그렇게 숨기실 수 있으셨습니까?

 

평범한 미소로 비범한 빛을 가리시고

막을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진리를 한 벌 초라한 옷으로 가리시던,

모든 것을 다 팔아 사는 사람에게

감추인 보화가 되시는 하늘의 보석 주님이시여!

 

겸손한 영혼에게만 알려지고

순결한 자에게만 보여지는 진주,

알아보는 자 앞에만 살짝 드러나는

육체의 고난을 통해 더 빛나는 진주가 되신 주님,

 

가치도 없으면서 귀한 대접을 원하는 우리는

오늘 당신의 존귀한 가치를 생각하며 부끄러워합니다.

 

주님!

어떻게 그럴 수 있으셨습니까?

발하기만 하셔도 창조로 이어지는 놀라운 진동의 소리를

어떻게 그렇게 평범한 목소리에 감추실 수 있으셨습니까?

 

들을 수 있는 귀만 듣던 치유의 깊은 떨림의 소리,

죽은 자의 귀를 뚫고 들어가 호흡을 가져다주던 생명의 소리,

슬픈 마음에 하늘의 평화를 가져오고

노한 풍랑을 잠잠케 하시던 능력의 소리여!

 

좋은 목소리도 아니면서,

생명의 향기 대신 사망의 냄새를 풍기면서도,

입을 열어 떠들기 좋아하는 우리는

오늘 당신의 아름다운 소리를 생각하며 부끄러워합니다.

 

신앙 5부: 마지막 시험하는 진리 – 세 천사의 복음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계 18:1).

성경 요한계시록 18장 1절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놀라운 성령의 역사와 그 능력으로 온 땅에 진리가 큰 소리로 외쳐질 사건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다. 이 성경 절에 등장하는 힘센 천사가 그의 영광으로 땅을 환하게 하며 외치는 복음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 세상에 전해질 최후의 복음으로서, 온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진리이며, 온 지구 상에 있는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할 복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시대를 거쳐서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시고, 골라내시고, 보존하시고, 교육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시험하는 진리를 보내셨다. 그러나 마지막 때, 곧 이 세상에 은혜의 시간이 마치기 전에, 온 세상과 바벨론에 흩어져 있는 당신의 백성을 불러내시기 위하여 최후의 시험하는 진리를 보내실 것이다. 이 복음은 큰 소리로 온 세상에 외쳐질 것이다. 이때에 참 하나님의 백성은 그 소리를 알아듣고 하나님께로 나올 것이다. 이 외침이 누구를 통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그리고 누가 그 시험하는 진리에 반응하고 그 외침에 응할 것인가?

 

1) 바벨론이란 무엇인가?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 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계 18:2~5).

마지막에 세상에 외쳐질 큰 소리 외침은, 바벨론 가운데 남아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그 가운데서 나오라고 외쳐질 최후의 초청을 가리킨다. 교회들은 바벨론이 되었다. 왜 교회가 바벨론이 되었으며, 왜 바벨론이 무너졌는가?

“바벨”이란 단어는 노아 홍수 후에 인간이 하나님께 도전하여 쌓은 바벨탑에서 유래되었는데, 히브리어로 “바벨”의 뜻은 “혼돈”, “혼잡”이라는 의미가 있다. 실제로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였던 고대의 강국 바벨론에는 여러 가지 종교가 혼합된 형태의 거짓 종교들이 성행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바벨론으로 상징된 영적 바벨론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방 종교의 오류와 거짓 가르침이 섞인, 혼잡과 혼돈이 특징이 되어 있는 교황권과 그 조직이 세운 여러 가지의 교리를 가리키며(계 17장 5~6절 참조), 나아가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리지만, 영적으로 타락한 교회, 곧 교회에 들어온 이교의 잘못된 오류에 매여 있는 상태의 교회를 말한다. 즉, 오류와 진리가 뒤섞여서 혼돈된 타락한 마지막 시대 교회의 참상을 가리켜서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2) 무너진 바벨론의 타락과 삼중 연합

왜 바벨론이 무너졌는가? 바벨론이 무너진 것은 바벨론의 죄악의 잔이 가득 차고 그 죄가 하늘에 사무쳤기 때문이다. 즉 바벨론의 무너짐이란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온 바벨론의 타락을 말한다. 계시록 18장 초반에는 바벨론이 무너지고 타락한 이유가 밝혀져 있는데, 그것은 곧 바벨론의 삼중 연합 때문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 연합은 눈에 보이는 연합과 보이지 않는 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곧 그 연합은 종교의 연합, 정치의 연합, 경제의 연합이다.

* 삼중 연합
1. 종교의 연합: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2절).
천사가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친 이유는 바벨론이 종교적으로 타락하여 귀신과 더러운 영의 처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벨론의 종교적인 타락을 가리키는 것이다. 계시록 16장 13~14절은 종교 세력의 삼중 연합, 곧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의 연합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마지막 때에 용으로 표상된 사탄과 짐승으로 표상된 교황권과 거짓 선지자로 대표되는 타락한 기독교회, 이 세 종교 세력이 연합할 것이며, 이 종교의 연합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연합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지는 바벨론과 함께 몰락될 것이다.

2. 정치의 연합: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3절).
성경은 바벨론이 무너진 이유 중 하나가 정치적인 연합과 타락이라고 말하고 있다. 계시록 18장 3절은 정치와 나라를 상징하는 표현 “만국”과 “땅의 왕”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나라들과 정치가 바벨론의 세력과 연합하고, 또 바벨론의 포도주(잘못된 가르침과 교리와 복음)에 동의하고 후원하므로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타락하여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바벨론이 주는 음행의 포도주에 만국이 취하는 일은 바벨론과 정치적인 세력이 함께 연합하고 결탁하므로 생기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을 보면, 두 번째 짐승으로 표상된 미국이 첫 번째 짐승 교황권을 위해 짐승의 우상을 세우고, 짐승의 표를 강요할 것이라는 예언이 나온다. 그러므로 바벨론은 국가의 권력과 힘을 빌려 하나님의 참 백성을 핍박하고 짐승의 표를 강요할 것이다.

3. 경제의 연합: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3절).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기록에서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계 13:17). 바벨론은 국가의 힘과 권력을 빌려 인간의 계명과 거짓 교리를 지키게 압박하고, 짐승의 표를 강요하며, 이를 거절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에게 경제적인 압박을 가할 것이다. 매매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세계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배후에서 세계를 컨트롤하려는 세력은 재력과 부로 손을 뻗쳐 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예언이 성취되는 일환으로 세계 경제가 한 세력에 의하여 컨트롤 되는 경제 상황과 위기가 발생할 것인데,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세계의 재정 위기와 유로존의 경제 위기는 매우 의미심장하며 이 예언의 성취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없다.

 

3)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누가 외치는가?

계시록 18장에 힘센 음성으로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치는 천사는 누구인가? 계시록에 등장하는 하늘로부터 오는 복음을 전하는 세 천사와 다른 천사는, 진리를 먼저 받아들이고 깨달은, 성령이 충만해진 사람들이며, 큰 능력을 가지고 나아가 바벨론과 적그리스도의 비밀, 그리고 바벨론의 죄악을 폭로하고 경고하며,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고 외치는 하나님의 복음 전도자들을 가리킨다. 이 큰 외침은 특별히 마지막 시대에 외쳐지는 최후의 경고이다.

바벨론이 무너졌으니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 받을 재앙을 받지 말고 거기서 나오라는 복음 속에는 계시록 14장 6~12절에 기록된 세 천사의 복음이 다 포함되어 있다. 복음을 펼치는 천사,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복음의 의미를 체험해야 한다. 로마서 1장 16절은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복음의 능력은 그리스도인들을 죄와 바벨론의 습관과 사고방식과 생활에서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으므로, 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여 죄를 승리하고, 계명은 하나님의 은혜로 지킬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옳고 공의로우심을 증거할 수 있는 증인들만이 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외침은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의 복음을 믿고 체험한 주의 백성이, 마지막 짐승의 표 환란을 통과하면서 늦은 비 성령을 충만히 받고 나아가서 큰 소리를 발하는 것인데, 특히 마지막 남은 무리인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복음을 세상에 외칠 때에, 주의 영광으로, 즉 그들 속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과 빛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환하여지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바벨론에 남아 있던 하나님의 참 자녀들은 이 큰 소리 외침을 듣고, 무엇이 참된 복음이며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며, 또한 짐승에게 경배하지 말고 하나님의 편을 택하고 그분만을 섬기라고 호소할 때에, 바벨론에서 나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문을 닫으시기 전에 마지막 자비의 경고, 시험하는 진리의 복음을 세상에 보내실 것이며, 이 중요한 사명을 위하여 마지막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을 사용하실 것이다.

 

4) 세 천사의 복음

세상의 징조와 형편을 볼 때에, 그리고 이루어지는 예언의 성취를 볼 때에, 마지막 때가 매우 가까웠음을 알게 된다. 세상의 은혜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지성소에서 인간의 죄를 위해 중보 하시는 예수님의 중보 사업이 끝나기 전에,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임하기 전에, 이 세상에는 마지막 하나님의 자비의 초청이 전해져야 한다. 어떻게 해야 임박한 환란을 피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영원한 하늘과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세 천사의 복음에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을 방법과 길이 다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세 천사의 복음은 이 세상에 최후로 보내지는 시험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는 첫째 천사의 복음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렀으므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고 권고한다. 여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의미는, 우리의 생애와 품성이 완전히 변하여 온전하신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변화하여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함을 이 복음은 요구한다. 또한, 둘째 천사의 복음은 무너진 바벨론의 죄악에 참여하지 말고, 바벨론의 모든 죄악의 습관과 세상의 관습과 세속을 버리고 회개하고 개혁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특별히 셋째 천사의 복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성도의 인내와 예수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이루어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하나님께만 충성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 마지막 시대의 시험하는 진리는;
마지막 여자의 남은 무리를 모으는 최후의 복음이다

마지막 시대의 시험하는 진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복음을 체험한, 곧 셋째 천사의 복음을 경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자기들 속에 이룬 하나님의 종들에 의해서 외쳐질 것이다.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이 마지막 경고의 복음은 추수하는 복음이며, 누가 하나님의 참 백성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게 하는 복음이다. 이 복음은 누구를 섬길 것인지 선택하라고 결정을 촉구하는 복음인데,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 참 하나님의 표인 넷째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사탄과 세상을 선택하고 교회에 들어와 있는 바벨론의 포도주인 오류에 취해서 진리를 거절하고, 인간이 만든 계명과 인간의 전통과 가르침을 하나님의 계명보다 더 중요시하고 지켜서 짐승의 표를 받고 영원한 멸망에 들어갈 것인지 결정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벌써 세상에는 세 천사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온 땅을 환하게 하며 큰 경고의 복음, 시험하는 진리를 세상에 외칠 하나님의 종과 일꾼들을 모으는 때이다. 회개하고 거듭나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자아를 하나님께 매일 매 순간 굴복하여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진리를 머리로만 알고 깨닫는 것이 다가 아니고, 그 진리로 변화되고 성화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시간과 체험과 굴복과 성장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지막 복음을 외치는 사명을 감당할 온전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세 천사의 복음을 먼저 받아들인 사람들과 이 경고를 받고 바벨론에서 나온 사람들이 합쳐져서 하나님의 남은 무리 여자의 남은 자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의 시험하는 진리는 여자의 남은 무리를 모으는 복음이다.

 

** 마치면서
마지막 최후의 시험하는 진리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늦은 비 성령을 부어줄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늦은 비 성령은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변화된 성품을 고정하기 위해 내린다. 늦은 비는 큰 소리 외침에 능력을 주기 위하여, 복음을 빠른 시간에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하여 내려 주시는데, 이 늦은 비를 받은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하나님의 증인들이 나아가 하나님의 영원한 복음, 세 천사의 복음을 세상 끝까지 삽시간에 전할 것이다. 최후의 큰 외침과 시험하는 진리는 이 사람들에 의하여 전해지는 것이다.

큰 소리 외침의 복음은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선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 천사의 복음을 경험한 사람들, 즉 영원한 복음을 체험한 사람들이 그들의 성품과 생애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온 세상과 우주에 증거하는 사건도 포함되어 있다. 즉, 이것에는 하나님의 증인들이 늦은 비 성령을 받고,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과 이른 비 성령의 역사로 형성해 온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과 계명을 지키는 믿음을 온 세상에 증명하는 사건도 포함된 것이다. 또한, 늦은 비 성령은 짐승의 표 환난을 통과할 사람들, 개국 이래로 없던 환란과 재앙들을 통과할 사람들을 위하여 내린다. 늦은 비 성령은 의인들이 무사히 환란을 통과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덮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늦은 비 성령을 받기 위해 준비된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리고 엘리야처럼 두려움 없이, 시험하는 진리를 이 세상에 담대하게 전할 일꾼을 찾고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런 사람들이 되자! 꼭 늦은 비 성령을 받고 큰 외침에 참여하는 독자들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신앙 4부: 예수께서 전파하신 시험하는 진리

 

예수께서는 인간에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참모습과 품성을 보이시기 위해, 또 인간과 함께 사시면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 그리고 범죄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몸소 성육신하여 이 땅에 강림하셨다. 이 범죄한 지구가 직접 성육신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었던 사실은, 타락한 인간이 가질 수 있었던 특권 중에 가장 놀라운 것이었다.

 

1)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요구를 채워 주기 위하여 지칠 줄 모르는 종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하여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마 8:17). 그분께서는 인간의 질병과 불행과 죄의 짐을 제거하시려고 오셨다. 인간에게 완전한 회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봉사 기간에 설교하는 것보다 병자를 치료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바치신 듯이 보인다. 그 사실은 그분의 사명, 곧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사명을 잘 증명하는 것이다. 그분께서 지나가신 곳은 어디든지 그분의 동정과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분께로부터 치료하는 능력의 물결이 흘러나왔으며, 사람들은 몸과 마음과 영혼이 완전해졌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에 대하여 놀라울 정도로 무거운 책임을 지고 계셨다. 그분께서는 인간에게 어떤 결정적인 변화가 있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잃어버린 바 될 것을 아셨다. 그것이 주님의 심령을 누르는 부담이었고, 그리하여 그분의 모든 힘을 다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애쓰셨다.


2) 예수께서 던지신 시험하는 진리
하늘의 때가 차고 정확한 시각이 되었을 때,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오셨다. 각 시대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리고 영감의 계시와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양육하시고 진리의 빛을 보존해 오시던 하나님께서 이제 몸소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 강림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태초부터 세워졌던 구속의 비밀, 곧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워 놓으신 구원의 경륜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지만, 그리하여 누구든지 그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놀라운 계획을 베푸셨지만, 그러나 예수께서 펼쳐 보이신 진리는 인간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시는 시험하는 진리였다. 이 진리는 인간 위에 떨어져 모든 것을 부수고 가루로 만드는 위력을 갖춘 놀라운 능력의 복음이었다. 아니 예수님은 진리 자체이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임재는 모든 죄악을 다 드러나게 하였다.


1. 시험한 돌, 거치는 반석 예수 그리스도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인간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시험할 메시아의 복음과 사명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하였다.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 26:16). 예수님 자신도 당신의 사명에 대하여 이렇게 역설하셨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마 21:4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침례 요한은 메시아에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는...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마 3:11)라고 말하였다. 주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당신의 백성의 “죄악을 정결하게 하시리라.”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를 드러나게 했다. 주님께서는 성령의 불로 모든 죄악을 태우시고 정결하게 하실 것이었다. 그들이 즐겨 죄로부터 정결하게 되기를 원할 때에만 그들은 그분과의 교제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오직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그분의 임재 가운데 머무를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은혜의 왕국을 건설하러 오셨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 은혜의 나라가 건설되려면 흑암의 왕 사단의 세력이 나가야 했다. 예수께서 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성령께 굴복하고, 자신을 주님께 바치고 주님을 왕으로 택한 사람의 마음속에만 은혜의 왕국이 건설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선포하신 은혜의 나라가 마음속에 이루어지려면, 마음속에서 분쟁과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죄악의 세력이 깨져야 했으며, 자아가 만세 반석 되신 주님 위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경험을 해야만 한다.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하려면, 인간의 교만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인간의 인정과 칭찬을 갈구하는 욕망, 그리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과 재물을 사랑하는 탐욕과 세상 쾌락을 좇는 세속적인 정욕이 거치는 반석과 시험한 돌 위에 떨어져 다 깨어져야 한다. 선과 악의 쟁투가 마음속에서 일어나며, 그 중 한 세력이 꺾어져야만 하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 되신 예수님의 복음과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분쟁과 불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는 “내가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라고 하신 것이다.

2.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께서 가르치신 모든 가르침과 비유와 설교들 속에는 마음의 은밀한 동기를 다 드러내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과 동기를 시험하는 진리였다.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지, 혹시 그들의 종교와 신앙이 이기적인 목적, 곧 상급과 구원만을 얻으려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용서받고 사랑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놀랍고 고마워 주님을 기쁨으로 섬기는 것인지, 예수님의 진리 말씀은 모든 사람의 동기를 드러내었다. 또한, 그들의 신앙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경건성에 대한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겉으로 과시하는 신앙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순종하기 원하여 행하는 것인지를 드러내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단순하고 흥미로운 비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적인 깨달음을 얻고, 그 교훈이 그들의 동기를 드러내는 것을 느꼈으며, 그들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부드러운 책망과 견책을 받았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회개하며 예수께로부터 고침을 받기 원했다. 그렇게 진리의 말씀에 굴복한 사람들은 거듭났으며, 그들의 생애에는 변화가 생겼다. 그리하여 시험하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회개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은혜의 나라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유대 지도자들과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은 예수님의 진리의 복음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위선과 교만과 이기적인 동기를 시험하고 드러내는 능력 있는 하늘의 진리를 그들은 거절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구약의 예언이 가리켜 온 메시아가 도래했지만, 그분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예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같은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견책하셨다. 회칠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무덤이 그 속에 썩고 있는 유해를 감추고 있는 것처럼, 제사장들과 관원의 외관적인 성결 속에는 불의가 가득 감춰져 있었다. 이와 같은 분명한 말씀으로 구주께서는, 마음은 탐욕과 질투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거짓된 겸손을 나타내며, 지위와 권세를 얻으려는 그들의 이기적 야망을 드러내셨다. 예수께서는 하늘 왕국의 법칙을 설명하셨는데, 그것은 랍비들의 가르침이나 행위와는 대조적이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영적인 깊은 교훈을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며, 주님께서는 자아가 반석에 떨어져 죽는 경험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을 말씀하셨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 17:33). 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이나 평민들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들으면 그들의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 낱낱이 드러나는 것을 느꼈으며, 그 시험하는 진리는 드러난 죄악을 버리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 예수님의 시험하는 진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제자들과 무리를 모았다

예수님의 시험하는 진리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드러내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정말 마음으로 하나님을 순종하는지, 겉으로만 믿고 따르는 척하는지 가늠하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포도원의 비유는 그 사실을 잘 시사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지만” 그의 복음을 거절한 지도자들을 책망하시며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마 21:33).

하나님께서는 한 백성을 세상에서 택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을 훈련하고 교육하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백성에게 큰 특권과 넘치는 축복을 나누어 주시고, 이 백성을 통하여 세상에 풍성한 축복을 나누어 주시며, 진리의 빛을 온 세상에 비추도록 계획하셨다. 그분은 그들이 열매를 맺음으로써 당신을 영화롭게 하기를 기대하셨다. 그들은 타락하고 사악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칙과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냈어야 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열매였다. 그러나 유대 백성과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대표자로서의 고상한 특권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이 받은 은총은 세상에 축복이 되지 못했고, 특히 지도자들은 신앙적 지도와 거룩한 모본으로써 백성을 인도하지 않았으며, 주어진 모든 특권을 그들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데만 사용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험하시는 진리에 의해, 주의 포도원을 맡은 농부들이 맡은 일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들은 열매가 없었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복음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종들을 죽였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까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유대 국가의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특권과 은혜의 시간은 지나가 버렸다. 이제 복음은 이방 나라들에게, 이 세상 땅끝까지 전해져야 했다.

침례 요한의 복음을 듣고 마음을 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였으며,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분의 복음을 받아들였다. 예수께서는 지상 봉사 사업과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 사업의 기초인 십자가의 죽음을 마치신 후, 부활하셔서 하늘로 승천하셨다. 제자들을 포함하여 예수께서 전하신 진리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후에 선두에 나아와 위대한 복음 사업을 전파하는 거룩한 사명을 성취하였다. 그들은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고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시험하는 진리는 누가 하나님의 참 백성인지를 드러내었고, 그 백성을 골라내어 하나님의 진리의 빛과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 퍼지게 하는 도구로 삼으셨던 것이다.

 

신앙 3부: 침례 요한 –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 40:3).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광야에서가 아니면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이 세상은 영적 흑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상은 물론,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세계에 전하기 위하여 선민으로 택함을 받은 유대 국가까지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리고 하나님을 오해하는 어두운 구름이 짙게 덮여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하늘의 왕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몸소 육신을 쓰시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참모습과 성품을 드러내시고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때였다. 옛날에는 왕이 오기 전에 먼저 대사를 파견하였다. 대사는 왕이 행차하는 길이 평탄하도록, 그리고 왕이 가기에 아무 어려움이 없도록 앞서 가서 길을 예비하는 일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속 사업을 하게 하시기에 앞서, 대사를 보내셔서 세상을 깨우고 준비 작업을 하게 하셨다.
백성을 영적 암흑에서 깨우고 메시아의 사업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택함을 받은 사람은 침례 요한이었다. 요한은 예수께서 그분의 사업에 착수하시기 전에, 예수의 초림을 선포하고 메시아의 구속 사업을 소개하며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해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으로 왔다.

 

1) 그 당시 유대의 형편
그 당시에는 수많은 제사장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율법사들과 관원들이 있었고, 마을마다 회당과 학교가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이 가르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표면상으로 철저해 보이는 종교 생활에 젖은 유대 나라였지만, 그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영적으로 타락하고 퇴보한 영적 어둠의 시대였다. 유대인들은 머리로 동의만 하면 의를 얻는 줄로 생각하였고, 종교와 신앙은 책의 겉표지나 장식품처럼 과시하는 문화에 불과했으며, 또한 귀중한 진리는 입으로만 회자되는 문자적인 것에 그쳤고, 인간의 유전과 전통으로 참된 하나님의 복음을 가린 채, 인간의 보잘것없는 행위와 의식과 의로써 구원을 얻으려는 헛된 시도만 하고 있던 때였다. 특히 인간이 만들어 놓은 유전에 대한 유대 백성의 존경심과 타락한 제사장에 대한 그들의 맹목적 신앙을 통하여 백성은 형식적인 종교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유대인들은 경건함을 과시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가 되어,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대신, 인간의 칭찬을 갈구하고 종교를 통해 자신의 권력과 인정과 명예욕을 충족시키려고 하는 생활을 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이라는 사실로 영적 교만에 빠져 있었으며, 빛을 전해주어야 할 이방인들을 경멸하고 장벽을 높게 쌓아 그들을 하나님의 지식과 말씀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있었다.


2) 침례 요한의 복음
“그때에 침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침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 3:1, 7~10).

침례 요한의 복음은 회개하라는 복음이었다. 진리 자체이신 메시아가 오셔서 하늘 구원의 복음을 전하시고 사람들의 마음에 은혜의 왕국을 건설하기 전에,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켜 그들이 참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마음 밭을 기경해 놓는 사명을 받은 것이었다. 침례 요한의 복음은 하나님의 백성을 흔들고 시험하는 진리였다. 그들은 예언된 메시아의 초림을 맞이하기 위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유대 백성은 메시아가 건설할 은혜의 왕국의 백성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예언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선지서들과 율법을 가지고 있는 선택 받은 백성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전할 참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캄캄한 영적 어둠에 사로잡혀 있었다. 누군가 그들의 마음과 사상을 덮고 있는 두꺼운 흑암의 구름을 벗기고 그들을 깨우고 각성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을 위해 침례 요한은 택함을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회개하고 메시아로부터 이르러 올 구원과 심판을 위해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1~12) 고 하였다. 구원과 심판이 세상에 곧 이르러 올 것이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의 왕국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건설하실 것이었다. 그리고 그 왕국에 참여하는 사람만이 이 세상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는 선택된 하나님의 참 제자가 될 것이었다.


3) 다시 나타난 엘리야?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마 3:4).

요한의 태도와 의복은 엘리야 선지자와 비슷하였다. 그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국가적인 부패를 비난하고 널리 퍼진 죄들을 견책하였다. 그의 말은 직설적이고 날카로우며 또한 확신시키는 힘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가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난 선지자 중 한 사람일 것이라고 믿었다. 나라 전체가 들끓었고 많은 무리가 광야로 모여들었다. 요한은 메시아의 강림을 전파하며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외쳤다. 죄에서 정결함을 받는 상징으로서 그는 요단 강 물에서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었다. 이처럼 그는 뜻깊은 실물 교훈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다는 것과 또한 마음과 생애의 정결함이 없이는 메시아의 왕국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의미를 잘 전달하고 선언하였다.

유대 나라의 귀족, 랍비, 군인, 세리, 농부들이 이 선지자의 말을 듣기 위해 왔다. 한동안 하나님께로부터 온 그 엄숙한 경고는 그들을 놀라게 했고 많은 사람이 회개에 이르고 침례를 받았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요한이 선포한 왕국에 참여하기 위하여 침례 요한의 요구에 순복하였다. 서기관과 바리새인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이 와서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침례 받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어떤 기회주의자들이 표면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을 볼 때에 요한은 통렬한 견책의 음성을 발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유대인들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할 권리가 있으며, 구원은 자신들에게만 있는 특권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하여 길을 예비함으로, 주의 재림을 위하여 백성을 준비시킬 자들의 한 표상이 되었다. 요한은 마지막 때에 말세의 진노의 날과 예수의 재림을 선포하기 위하여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나타날 마지막 하나님의 남은 자손들을 대표했다.

 

** 침례 요한의 시험하는 진리는;
메시아를 영접하고 그분의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켰다

침례 요한의 복음은 강력한 회개를 촉구하는 복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지 못한 자들을 치명적인 안전 속에 빠뜨리려고 평화의 복음을 주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회개시키시기 위하여 그 심령을 깨우는 날카로운 화살로 찌르신다. 침례 요한의 복음은 그러한 단호한 견책의 복음이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요한은 말하였다. 나무의 가치는 그 나무의 이름보다도 그 나무의 열매로 결정된다. 만일 열매가 무가치하다면 그 이름이 그 나무를 멸망에서 구할 수 없다. 구원은 그들의 품성과 생애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라고 요한은 선언하였다. 믿음을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무가치하였다. 그들의 생애와 품성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철저한 회개를 요구한 침례 요한의 복음은 메시아의 구속 사업을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사람들이 침례 요한의 복음을 듣고 마음 밭이 준비되어, 메시아가 나타날 때에 그분과 그 구원의 복음을 알아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구원을 받도록, 또한 유대 나라에 임박한 심판을 피하고, 예수께서 선포할 은혜의 왕국의 일원이 되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백성이 생겨나도록 준비시키는 복음이었던 것이다. 요한의 복음은 사람들을 시험하였다. 사람들이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회개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을 생애에 드러내므로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을 갖추든지, 아니면 그의 복음을 거절하고 그대로 죄악에 빠져 살므로 멸망을 받게 되든 지를 결정하게 하는 시험의 복음이었다.
침례 요한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예수께서 그분의 사역을 시작하시고 복음을 선포하실 때에, 모두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을 따랐다. 그러므로 침례 요한의 복음은 메시아를 영접할 백성, 하나님의 복음 왕국의 진정한 대표자들이 될 사람들을 골라내는 시험하는 진리였던 것이다.

 

신앙 2부: 하나님의 백성을 시험한 진리 - 엘리야의 복음

 

하나님의 백성이 시험하는 진리로 크게 동요되고, 그들의 결정을 촉구받았던 때가 구약 시대에 또 있었다. 그 시험하는 진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엘리야를 통해 이스라엘에 전해졌다. 엘리야 당시, 하나님의 진리를 전수하기 위해 택함을 받은 백성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거의 완전하게 잊어버리고,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깊은 우상숭배에 빠져서, 바알 신을 하늘에 계신 참 신으로 알고 섬기고 있었다. 영적인 배도와 타락은 점점 깊어 갔다.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들의 부르심과 사명을 깨닫기 위해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야 했다.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였고, 다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지식이 가르쳐져야 했으며, 그러기 위해 진리의 복음이 그들의 귀에 들려져야 했다. 이 일을 위해 엘리야가 부르심을 받았다.

 

1) 아합 왕의 통치와 이스라엘의 형편
아합이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할 시초부터, 그의 통치는 무서운 배도로 얼룩졌다. 아합은 여호와께 드리는 예배를 버리고 바알을 숭배하는 예배를 선택함으로 대담하게 백성을 우상숭배로 인도하였다. 아합은 바알의 대제사장인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이스라엘의 수도에 바알 숭배를 끌어들였고, 이세벨과 불경한 이방신의 사제들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들이 신들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우상숭배의 호화스러운 허식과 매혹적인 의식에 사로잡힌 백성은, 왕의 본을 따라 흥분시키고 타락시키는 음탕한 예배의 쾌락에 빠져들었다. 농사와 비를 주관하고 풍성한 수확을 주는 신이라고 추앙을 받고 있는 바알 신 숭배로 이스라엘은 영적 흑암 속에 빠졌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2) 부름을 받은 엘리야
아합의 시대에 요단 강 동편 길르앗 산중 디셉에 신앙과 기도의 사람 엘리야가 살고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사랑하는 경건한 사람 엘리야는 이스라엘 중에 신속히 퍼지고 있는 배도를 보며 탄식하고 있었으며,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들어가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고통과 의분을 느꼈다. 괴로운 마음으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께서 한때 은총을 받았던 백성의 악한 행위를 제지해 주시고, 필요하다면 그들에게 형벌을 내리사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난 사실을 깨닫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완전히 멸하실 정도로 악을 행하기 전에 회개하기를 갈망하였다.
엘리야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여러 번 반복된 호소와 경고가 이스라엘을 회개시키는 데 실패했으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형벌을 통해서 말씀하실 수밖에 없는 때가 이르렀다. 이제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모든 축복의 근원으로 인정하기까지는 땅에 이슬이나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었다. 심판과 형벌에 대한 하나님의 복음을 아합에게 전달하는 사명이 엘리야에게 맡겨졌다. 엘리야는 왕궁에 이르러 아합 왕 앞에 불쑥 나타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선언하였다.

3) 경고가 이루어짐
엘리야의 말은 곧 효과를 나타냈다. 몇 달 후에 땅은 이슬이나 비를 받지 못하여 건조해지고 식물은 시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결코 줄어들 줄 모르던 시냇물이 줄기 시작했고 개울들도 마르기 시작했다. 일 년이 지났으나 비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한때 번영하던 성읍과 촌락은 비탄의 장소가 되었으며, 주림과 목마름으로 인간과 짐승의 목숨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여호와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져 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증거에도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려고 하는 교훈을 배우지 않았다. 배도한 이스라엘은 회개하라는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난에 직면하고서도 우상숭배를 고집했다.

4) 도전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죄악을 돌아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줬다. 다시 아합 앞에 나타난 엘리야는 온 이스라엘을 갈멜산 위에 모이도록 해서 자신과 바알과 아스다롯의 선지자들을 함께 만나게 하여 달라고 요구하였다. 예정된 날 아침 일찍부터 배도한 이스라엘 백성은 무리를 지어 고조된 기대를 하고 산꼭대기 가까이에 모여들었다. 이세벨의 선지자들과 왕은 당당한 행렬을 지어 행진해 올라왔다. 수많은 이스라엘 군중에 둘러싸여 아합 왕과 수백 명의 거짓 선지자들과 마주 선 엘리야는 혼자였다.
엘리야는 먼저 허물어진 여호와의 제단을 바라본 다음에, 군중을 향하여 나팔 소리 같은 분명한 목소리로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라고 외쳤다. 엘리야는 각각 송아지를 제단 위에 가져와 불을 놓지 말고, 기도할 때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하나님이 될 것을 제안하였다. 거짓 선지자들은 제단을 준비하고 그 위에 나무와 제물을 놓은 후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사제들은 그들의 제단 주위에 모여 서서 뛰고 몸부림치고 비명을 지르고 머리털을 뜯고 살을 베면서 저희 신에게 도움을 간청하였다. 아침이 지나고 정오가 되고 저녁이 되었으나 그들의 광란의 기도에 대한 응답도 없고,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사르지도 않았다.

5) 승리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이 되자 엘리야는 백성에게 “내게로 가까이 오라”고 명하였다. 백성이 떨면서 가까이 나아 왔을 때에 엘리야는 한때 하늘의 하나님을 예배하던 허물어진 제단으로 가서 그것을 보수하였다. 제단을 다 쌓은 후 선지자는 그 주위에 도랑을 파고 나무를 얹어 놓은 후, 송아지를 잡아 제단 위에 올려놓은 다음 백성에게 제물과 제단 위에 물을 부으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경건히 무릎을 꿇고 양손을 하늘을 향하여 든 다음 간단하게 기도를 드렸다. 엘리야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번갯불의 빛나는 섬광과 같은 불꽃이 하늘로부터 쌓아 올린 제단 위에 내려와 제물을 사르고 도랑의 물을 핥고 제단의 돌까지 태웠다. 타오르는 불길의 화광이 산을 비추고 군중의 눈을 부시게 하였다. 모든 사람은 그 광경을 보고 놀랐다. 산 위의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부복했다. 그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부르짖었다.

 

** 엘리야 시대의 시험하는 진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개혁하고 거룩하게 변화되도록 촉구하였다

엘리야 시대에 주어진 시험하는 진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택하느냐 우상을 택하느냐 선택하게 하는 복음이었다. 또한, 그 복음은 개혁을 촉구하는 복음이었다. 하나님께로부터 엘리야에게 하달된 시험하는 진리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 알고 있던 신에 대한 개념과 지식, 예배방식, 신을 섬기는 방법 등 모든 종교에 대한 개념과 잘못 교육받은 지식과 가르침, 또 당시 그들이 찌들어 있었던 이교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개념과 지식, 올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의 방식으로 개혁하고 돌아오기를 요구하였다. 그 복음은 온 가족이 신앙의 개혁과 부흥 속으로 들어오라는 도전이었다. 각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회개하고 우상을 버리면, 이스라엘에는 국가적으로 큰 신앙의 부흥이 도래할 것이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전하는 대사로서의 국가적인 사명을 완수하게 될 것이었다.

말라기 4장 5~6절에는 세상에 심판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 시대에 있었던 개혁과 부흥의 복음이 다시 일어나야 할 것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엘리야가 행했던 일,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한다는 의미는, 각 가정의 신앙 부흥을 가리킨다. 가정에 신앙 부흥이 일어나려면, 제사장인 아버지가 먼저 회개하고 거듭나는 경험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부모가 변하면 자녀가 변하게 되어 있다. 사회의 가장 작은 기본 단위인 가정이 영적으로 부흥할 때 세상은 변하게 될 것이다.
엘리야의 복음은 각 개인의 신앙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복음이었다. 그 당시에 주어졌던 시험하는 진리는, 그들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와 부흥과 개혁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보내신 진리의 시험에 의해 의롭다는 판결을 받으라는 복음이었으며, 범국가적인 영적 개혁과 부흥을 이루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라는 복음이었다. 엘리야의 복음은 누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진리를 받아들여 그대로 순종하고 사는지 시험하였다. 그 복음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을 신실하게 보존하고 교육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명, 곧 이방에 하나님의 복음의 빛을 전하는 사명을 다하게 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신앙 1부: 첫 번째 시험하는 진리 – 노아의 복음

 

진리는 시험한다. 진리는 드러낸다. 진리는 심판을 가져온다. 진리는 하나님과 맞지 않는 모든 것을 잘라낸다. 성경의 진리는 인간의 생각과 마음과 동기와 본바탕을 남김 없이 드러내어 수술을 받게 하고 고침을 받게 한다. 진리의 능력에 굴복한 사람은 진리가 목적하는 거룩함과 성화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 받는 성과를 이루지만, 진리에 굴복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죄 가운데 남게 되어, 그 거절로 결국 스스로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시대마다 다른 복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분께서는 그 시대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필요한, 그 당대에 꼭 전해져야 할 복음을 가지고 계셨다. 또한, 그 진리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시대마다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그 복음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시대마다 전해진 그 진리의 복음은 사람들을 시험하였으며, 결정을 촉구하였고, 그 진리는 사람들에게 심판을 가져오는 복음이 되었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진리를 들을 시간을 충분하게 주셨고, 그 진리를 이해하고 결정하기까지 넉넉한 은혜의 시간을 허락하셨다.
이 세상에 첫 번째 시험하는 진리가 주어졌다. 그 복음을 위탁받은 첫 번째 사람은 노아였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

 

1) 세상에 이른 첫 번째 심판 – 홍수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덮었다. 나지막한 천둥소리와 번갯불이 뒤따랐다. 얼마 안 가서 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노아 때의 사람들은 이런 것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공포에 휩싸였다. “정말 노아가 옳았던 것일까?” 사람들은 문이 굳게 닫힌 방주로 달려갔다.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비가 내리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그때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창 7:11)렸다. 강물은 넘쳐 범람하였고, 물은 구름 가운데서 큰 폭포들을 이루어 쏟아지는 것처럼 쏟아져 내렸다. 거세어지는 폭풍우와 함께 세상의 모든 것은 소용돌이치는 파도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물은 계속 더 높이 불어올라 높은 산까지 찼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복음대로 홍수가 이르러 왔던 것이다!

2) 홍수를 부른 세상의 죄악
아담의 범죄 이후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소수의 사람이 있었지만, 죄악의 길에 깊이 빠진 가인의 후손들이 세상에 점점 넘쳐나게 되었다. 죄는 문둥병처럼 세상에 널리 퍼졌다. 아담이 범죄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당시의 사람들은 탁월한 육체적, 지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힘을 죄악을 저지르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일에 사용하였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5~6). 온 세상에는 강포가 충만하였고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었다. 강한 자는 약한 자에게서 무엇이나 완력으로 빼앗았으며, 부도덕한 일들과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일들이 성행하였다. 악하고 힘센 자들의 생명을 파괴하는 일과 땅을 파멸시키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일들이 서슴없이 저질러졌으며, 창조 이후 범죄와 타락의 수위가 극에 달하였다. 이제 세상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죄악으로 가득 차고 무고한 자들의 생명이 해를 받고 땅이 파괴되도록 내버려 두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3) 주어진 은혜의 시간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6:3).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보내어 이 세상에 관영한 죄악을 없애려고 하셨다. 그러나 자비로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그냥 멸하시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세상에 임할 멸망에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진리의 복음을 보내셨다. 그 시험하는 진리를 전하기 위해 노아가 택함을 받았다. 그리고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간은 120년이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노아 자신도 비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노아는 이 세상이 홍수로 멸망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는 모본을 세상에 보여 주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시고 보여주신 방식 그대로 방주를 지었으며,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을 방주를 짓는 데 바쳤다. 

노아가 마른 땅 위에 엄청나게 큰 배를 짓기 시작하였을 때, 많은 군중은 사방에서 그 이상스러운 광경을 보려고 모여들었다. 노아는 배를 짓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진리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회개를 촉구하였으며 세상과 죄를 버리고 방주로 들어오라고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호소하였다. 사람들이 처음에 노아의 경고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들은 참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기 죄를 버릴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조금 관심을 보이던 얼마의 사람들도, 세상에 널리 퍼진 불신에 압도되어 마침내 다른 사람들과 합세하여 엄숙한 경고를 거절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빛을 거절함으로 말미암아 너무도 어두워져 나중에는 진정으로 노아의 복음이 기만이라고 믿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공의와 그분의 계명에 일제히 반대하였으며, 노아를 광신자로 간주하였다.

4) 심각한 징조
대중의 조롱과 멸시에도 흔들리지 않고 노아는 반석같이 굳게 섰다. 120년간 그의 엄숙한 음성이 세상에 들려졌다. 이제 세상의 은혜의 기간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방주가 완성되었으며 사람과 짐승을 위한 양식도 저장되었다. 이제 하나님의 종은 백성에게 마지막으로 엄숙한 호소를 하였다. 그러나 또다시 그들은 그의 말을 배척하고 농담과 조소의 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조롱하던 군중이 침묵에 휩싸였다. 각종 짐승이 산과 숲에서 나와 조용히 방주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었다. 또 급한 바람 같은 소리가 공중에 들리면서 사방에서 새들도 날아 들어왔다. 그들의 수효는 하늘이 어두워질 정도였으며 질서 정연하게 방주로 들어갔다. 세상 사람들은 놀라움으로, 어떤 사람들은 무서움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그들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였다. 이제 죄 많은 인류에 대한 자비의 간청은 그쳐졌다. 들의 짐승들과 공중의 새들은 피난처로 들어갔고,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 안에 있었다. 방주의 육중한 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천천히 닫혔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자들은 방주 안에 들어가 있었고, 하나님의 긍휼을 거절한 자들은 닫힌 방주 밖에 있었다. 그리고 홍수가 왔던 것이다.

 

** 노아 시대의 시험하는 진리는;
진리의 빛을 전수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탄생시키고 보존하였다

노아 시대에 주어진 시험하는 진리는, ‘방주로 들어오라’는 복음이었다.
또한,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하는 믿음의 여부를 드러내었다. 세상의 모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야 했다. 그들은 세상을 버리고 방주로 들어가야 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노아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방주로 들어오면 구원을 받아 살 것이었고, 거절하고 방주로 들어오지 않으면 멸망을 받을 것이었다. 홍수가 이르기 전, 120년 동안 그들의 믿음은 시험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진리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진리의 시험을 견디지 못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영원한 것에 있지 않았음이 판명되었다. 그들은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너무나 사랑하였다.
그 당대에 주어진 시험하는 진리의 복음은 그 시대에 심판을 가져오는 복음이었다. 노아의 복음에 의해 참 하나님의 백성과 사탄의 백성이 판가름이 났으며, 그 복음에 의해 구원을 받거나 멸망 받는 일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또한, 노아 시대에 주어졌던 그 시험하는 진리는 큰일을 이루었는데, 그것은 당대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전수했던 사람들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이 탄생한 것이다. 그들의 후손 중에서 믿음의 조상이 나왔으며, 하나님의 복음의 빛을 만방에 전할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생겨났다.

 

권두언

시험하는 진리가 필요한 마지막 시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그저 두루두루, 그냥 그냥, 쉽게 쉽게 구원하시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심판하시고, 시험하시고 엄밀하게 조사하신 다음에 영원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시는 것일까요? 이렇게 질문을 하니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는 정말 하나님께서 그렇게 까다로운 분이신가 하는 문제와 두 번째는 구원받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주님의 마음과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왜 심판이 필요할까요? 사단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짜와 거짓을 구분하여 내고 진실하고 깨끗한 알곡을 골라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라지와 잡초를 함께 거두어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을 의인들과 함께 취급하여 영원히 같이 살도록 하는 것은 의인들에게 너무나도 불공평하고 불행한 일입니다.

하늘에서도 사단과 그의 악한 천사들이 쫓겨났습니다. 선하고 거룩한 천사들의 동의와 선택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을 것입니다. 악과 선이 함께 어우러질 수가 없습니다. 이교의 음양 법칙이 말하는 것처럼 선신과 악신이, 빛과 어둠이 처음부터 함께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평화와 행복과 질서를 파괴하려고 들어온 죄와 그 죄의 조정자들을 걸러 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그 죄의 창시자 마귀와 전쟁 중에 계십니다. 그 와중에 생기는 모든 불의의 사고를 살피시면서도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해서라도 알곡으로 나타나게 하시려고 애쓰고 계시는 중입니다. 그래서 시험하는 진리, 시험하는 진리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마지막 시대에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발행인 강병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