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일본 선교센터 소식

 

일본 선교센터 소식

 

SOSTV를 후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께 반가운 소식을 전합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복음사업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면을 통해서 세계 곳곳에서 수고하는 일꾼들의 아름다운 소식들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더 자세한 소식은 온라인 카페 킹스메신저의 <SOSTV WORLD 소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013년 5월 SOSTV 일본센터가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외에 미국, 중국, 캐나다, 뉴질랜드를 이어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를 깨우는 영원한 복음을 열도에 전하시고자 일어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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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일본 전역에 복음을 퍼뜨릴 도쿄에 위치하고 있는 “SOSTV 일본 선교센터”입니다. YAMAMOTO 히데키 목사님 가족들이 이 사역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진리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SOSTV 일본 선교센터 사역자들은 밤낮으로 기도하며 헌신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담긴 출판물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두 명의 통역자가 책을 번역하고, 히데키 목사님이 직접 책을 쓰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일본어로 된 4권의 책이 나왔고 곧 3권의 책이 이어서 나오게 되며, 일본 웹사이트가 곧 오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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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업에 종사하면서 자급사역으로 이 일들을 감당하기엔 때로 벅찰 때가 있으나,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소망으로, 또한 영혼들을 위한 사랑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참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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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래가 참으로 암담한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 때 맞춰 참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은혜가 참으로 크며, 이제 정말 주께서 재림하실 시간이 가까이 이르렀음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일본 역시 진리가 전해지는 곳에는 핍박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핍박은 우리에게 가장 큰 감사의 조건이 아닐런지요. 어떤 분은 속히 예수님 오셔야 한다고 이야기하시며, 틈만 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찬양을 올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 은근한 아카시아 향처럼, 향긋한 그리스도의 향기였습니다. 일상의 작은 것에서 친절과 도움을 베풂으로 주위에 햇빛과 같이 생명을 주는 사랑, 그 사랑을 받으며 영적 비타민D가 많이 생성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도쿄 교회 집회

지난 7월 OO 교회의 초청으로 손계문 목사님의 집회가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2~30대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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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나눠달라 요청하지만 그기름을 나눠 줄 수가 없습니다. 기름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성령입니다. 등잔은 성경입니다. 성경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말씀 속에서 불타오르면 우리 속에서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성품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성품변화, 그 성령의 역사는 남에게 빌려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개인의 경험입니다. 지금 이러한 경험을하지 않으면 문이 닫힙니다.”잠자는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집회가 끝난 다음날 교회의 성도분이 이렇게 연락해 왔습니다. “우리 교회는 집회 후에 사람들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없는데, 요번에는 너무 좋은 반응을 보였고, 설교를 통해 정말 자신들이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달았습니다.”“이번 집회를 통해 잊어버렸던 전도자의 꿈을 다시 불지폈습니다.” 성령께서 각 영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계심을 느꼈습니다. 몇 달 후 또 집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 교회 형제자매님들이 진리를 통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여, 마지막 복음 사역에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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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AMOTO 가족 사진입니다. 이 가정이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하게 된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을 시작으로 일본 전역을 복음으로 휩쓰실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께 마음을 바치고, 그 마음에 성령을 받는 주님의 종들이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2013년 9월에는 히로시마 10,11월에는 도쿄에서 집회가 이어서 있습니다. 최근 방사능 사고 때문에 일본 전역에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4,000권의 책들을 인쇄했고 4번의 집회를 통해 일본 영혼을 깨우는 일을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의 역사가 큽니다. 이 사역을 위해 기도와 헌신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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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꾸기

 

텃밭 가꾸기

 

1. 텃밭을 소개합니다!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시골생활을 하였습니다. 미국에 와서도 시골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시작했던 텃밭이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야채를 심다 보니 지금은 뒷마당 전체가 각종 채소로 뒤덮이게 되었습니다. 지금 자라고 있는 야채들은 열무, 고구마, 상추, 부추, 미나리, 아욱, 돌나물, 고추, 오이, 깻잎, 호박, 토마토, 가지, 치커리입니다. 뒷마당에서 방금 뜯어온 채소들로 소박한 밥상을 준비할 때, 가까운 이웃과 싱그러운 야채들을 나눌 때 느끼는 기쁨과 보람이 이 텃밭 가꾸기를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도시에 살고 있지만, 마음 한 켠 시골 생활을 그리워하시는 분들을 위해 텃밭 가꾸기의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직접 텃밭을 가꾸고 싶어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망설이는 분들께 저의 경험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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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호에서는 텃밭 가꾸기의 기본인 울타리 만들기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PART 5.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PART 5.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예수님의 재림은 인류가 창세로부터 기다려온 사건입니다. 하와는 그의 첫 아들 가인이 혹시 메시야가 아닌가 하였고,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생제사를 열심히 드리며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메시야인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로 그 분을 내몰았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요? 그로부터 2,000년이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과연 어떨까요. 예수님 초림 당시의 그들과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요? 성경을 통해 우리는 이 시대를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고 있는지, 세상의 징조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이해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안목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있는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신앙을 갖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과연 우리 모두는 어떤 입장에 놓이게 될까요! 이 심각한 사건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정확한 이해를 갖고 있습니까? 이 “다시 오실 사건”에 대해 어떠한 교훈이 성경에 나와 있는지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하늘의 경고

현 시대의 형편

현대는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자극적으로 흥분을 주고 정신 없이 빠른 과학기술로 압도적인 흥미를 주는 시대입니다. 책임 있는 지위와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통치자와 정치가들은 각 계층의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으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신중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계 각국의 모든 일의 관계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들을 관찰하고 있으며 크고도 결정적인 어떤 큰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는 사실, 즉 이 세상이 놀라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는 예언서의 중요성

구주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이 죽으신 후 무덤에서 부활하실 것을 그의 제자들에게 설명하셨으며 천사들도 나타나서 주의 말씀을 그들의 정신과 마음에 감명시키고자 힘썼습니다(막 8:31,32 ; 9:31 ; 10:32~34). 그러나 제자들은 유대나라가 로마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현세적 해방을 고대하였으므로 그들 소망의 중심인 예수께서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셔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기억할 필요가 있었던 말씀들은 그들의 마음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하여 시련의 때가 이르렀을 때에 그들은 아무런 준비도 갖추고 있지 못했습니다. 마치 주께서 미리 그들에게 알리시지 않은 것처럼 예수의 죽으심은 그들의 소망을 완전히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알려주셨던 것과 같이 우리 앞에는 예언을 통하여 미래가 분명하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은혜의 시기의 끝과 시련의 때를 위한 준비와 연관된 여러 가지 사건들이 밝히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이 중요한 진리들이 그들에게 전혀 제시되지 않은 것처럼 그것을 밝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 아래 두고 그분의 지도와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은 그분이 인류의 역사를 통해 허용하시고 지정하신 사건들이 차례차례 진행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언의 성취를 역사를 통해 살펴보고 거대한 개혁 운동들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의 작용을 연구해야 합니다. 또한 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하게 될 흑암의 세력에 대항하여 싸워야 할 마지막 투쟁을 위해 연합하고 준비하여야 하며 그와 관련된 사건들의 진행들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훨씬 더 깊이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전에 없이 구약의 예언서인 다니엘서와 신약에 마지막으로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주님의 계시로 쓴 요한계시록을 철저히 연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다니엘 12장을 읽고 연구하여 주님께서 내가 다시 꼭 오리라고 선포한 말씀을 상고하고 마지막 그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 모두가 그 경고를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은 곧 이루어질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예언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그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예언서들은 진리를 감추거나 모호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장차 일어날 일들을 말해줌으로써 분명하게 미리 경고를 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그 순서에 따라 주어진 엄숙한 기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첫 번째로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와 관련된 예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깨우침을 받아야 하며 모든 참 그리스도인들은 다같이 분명하고도 확실한 나팔소리(사58:1, 겔 33:3~6)를 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커다란 도로 표지들을 성경의 말씀들을 놓고 진지하게 연구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역사가 종결되기 전에 발생할 일들에 대해 성경 연구를 통해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행복과 관계되는 것이므로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이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바다와 육지의 재난들, 즉 천재지변들과 사회의 불안, 각 나라들의 전쟁에 대한 뉴스들은 사람들에게 불안함을 줍니다. 그것은 어떤 큰 사건들이 우리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흑암의 세력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일에 관심을 쏟고 혹 믿는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일에 분주하며 영적으로 졸고 있을 때 그들의 세력을 크게 하나로 모아 세계적으로 통합하려고 몰고 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큰 변화들이 있을 것이며 최후의 악의 세력의 운동은 신속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환난의 때가 매우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세속적인 것에 푹 빠져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온통 불신과 전쟁의 정신에 휩싸여 있습니다(다니엘 11장 참조). “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단 12:1)”2의 때가 바로 우리 앞에 다가왔으나 우리는 졸고 있는 처녀(마 25:1~13)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깨어야 하며 주 예수께서 당신의 영원한 팔로 우리를 안아 우리 앞에 놓인 시련의 때를 통과하게 해주시도록 간구 드려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점점 불법이 성행하고 있고 머지않아 큰 분쟁-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멈추지 않을 분쟁-이 민족과 민족 간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마태복음 24장 참조).

하나님께서는 항상 다가오는 심판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시대 시대마다 경고를 주셨습니다. 각 시대에 주신 하나님의 기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중에 믿음으로 행한 자들은 불순종하고 불신하는 자들에게 내린 심판을 면하였습니다. 노아에게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 7:1)”하는 말이 전하여졌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은 순종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롯에게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창 19:14)”9는 기별이 임하였습니다. 롯은 자신을 하늘에서 보내신 사자의 보호에 맡겨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경고를 받았습니다. 다가오는 멸망의 징조를 바라보고 그 도성을 피한 자들은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제 우리 시대에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세상에 임할 멸망에 대한 경고가 주어졌습니다. 이 경고에 유의하는 자들은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PART 4. 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알고 행해야 하는 교훈

 

PART 4. 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알고 행해야 하는 교훈

 

우리 모두를 감싸고 있는 우리 구세주의 사랑스러운 보살핌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느끼십니까?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선하심과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의 심령은 풀어지게 됩니다. 우리들은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전개될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들의 유일한 안전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손은 주님의 손을 붙잡고 우리의 심령은 완전한 진리로 채워져야만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사 27:5)하라고 호소하십니다. 우리 각 개인은 주님의 온유하신 품성을 마음에 품고 주님과 더불어 겸손히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우리 자신들을 숨겨야 할 것입니다.

교훈 1.

외식적 신앙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스스로 자랑하며 교만과 허영심을 마음에 품은 자들, 주님의 사업에 반드시 기울여야만 했을 시간과 관심을 의복과 외모를 단장하는 일에만 허비한 자들은 두려운 손실을 입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의복을 걸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매우 귀하게 보시는 속사람을 단장하는 일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저들의 아름다운 옷은 죄악에 젖고 병들었으며 허영심과 교만으로 가득 찬 심령을 가리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양자로 삼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하여 어떠한 고난을 겪으셨는지 그 광경을 바라볼 때 우리들은 세속적인 교만과 자신을 사랑하는 정신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숭배하는 일을 그칠 것입니다. 우리의 최고 관심의 대상은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능력을 다하여 주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자신을 사랑하는 정신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래서 자기를 단장하는 욕구로 가득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고 하셨습니다. 자아 만족의 사상은 우리들의 시야에서그리스도를 가리워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온유와 겸손의 정신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기를 바라지 않게 됩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게 됩니다. 결국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함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성경에 그러한 사람들의 상태는 평범한 옷을 입고 왕의 잔치에 나온 사람으로 상징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왕 앞에 나갈 때에 요구되는 준비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를 위하여 비싼 값으로 준비한 옷을 입는 것을 경멸하였습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마 22:12)는 임금의 호령에 그는 아무 답변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름만 가졌을 뿐입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만을 높이 받들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배우기 위하여 그분의 발 아래 앉은 것처럼 저들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생애에서 자기 자신이 언제나 첫째 관심이 되어왔으므로 구세주께서 오셨을 때 저들은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 체험적인 지식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알고 있지 못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불쌍하고 기만당하고 준비하지 못한 영혼들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습니까?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만족하고 안전하게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영혼들을 바라보실 때 주님은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이시겠습니까? 최후의 심판의 날에 쓰라린 실망을 맛보게 될 자들 중에는 외식적인 신앙을 유지하며 겉으로만 신앙 생애를 해온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들이 하는 모든 일에는 자아가 엮어져 있습니다. 저들은 자신의 덕행, 영향력,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지위에 설 수 있는 재능 및 진리에 대한 저희 지식이 그리스도의 칭찬을 받게 하는 줄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만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주여,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눅 13:26),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마 7:22)라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3,21)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분명하고 정확한 교훈에 온 마음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교훈 2.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에 대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자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자는 자기 자신이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의 앞에 아름다운 광경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인식하면서 일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고 자신의 생애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은혜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생애에 따르는 모든 환경 속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모본을 자신의 지침으로 삼을 것입니다. 모든 참되고 자아 희생적인 하나님의 교역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재물과 목숨을 기꺼이 바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 12:25)고 하셨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도움이 요구되는 곳에 열렬하고 사려 깊은 도움을 아끼지 않음으로 하나님과 동료들을 위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낼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봉사하다가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진주 보석들을 거두시기 위하여 오실 때에 그는 자신의 잃었던 생명을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애 가운데 빛과 소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이 올 때마다 그 기회들을 성실하게 계발시키는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사상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면 어떻게 이런 기회들을 계발시킬 수 있겠습니까?

자아 중심의 사상을 가진 자는 다른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게 많은 축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상실하게 됩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기 자신에게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하고 묻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한 후에 결과들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느낄 수 있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즐거움 곧 순결한 생각, 동정어린 말과 친절하고 이타적인 행동에서 오는 즐거움을 각자가 맛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한 봉사의 생애를 사는 자들로부터 많은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진 생애를 사는 사람들을 빛나게 해주는 그리스도의 빛이 비칠 것입니다. 우리들이 서로의 생애에서 진리를 밝히 증거하지 못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굴욕을 당하시게 됩니다. 자기 자신만을 즐겁게 하고 만족시키는 생애를 사는 자들은 주님께 욕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모르는 자들 앞에서 하나님을 그릇되게 나타낸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해서 일하실 수 없으십니다. 구속의 경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강한 것일지라도 모든 죄의 습성을 정복하고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백성들이 심령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진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극기의 정신으로 철저한 열성을 나타내 보인다면, 이 세상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사업은 지금보다 훨씬 큰 성공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교훈 3.

믿음의 부족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능력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더욱 큰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을 행사하기 위하여 극도의 흥분 상태에 이르러야만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란 사람들끼리 상호간의 말을 믿는 것과 꼭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자신의 길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믿음은 우리의 무지 대신에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의 약한 것 대신에 하나님의 힘을, 우리의 죄된 것 대신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우리 생명, 우리 자신은 이미 하나님의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축복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진실, 성실, 순결은 인생의 성공 비결입니다. 이런 원칙들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선한 의욕과 포부는 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생명만이 참된 성장과 실력을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꼭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분의 허락을 잠잠히 의뢰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주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모든 약속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확고히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십니다. 우리들의 하늘 아버지께서 미쁘신 분인 것처럼 믿음직스럽게 행동해야 합니다. 믿음은 무한한 능력을 가져다주므로 의혹에 대하여 말하지 말고 믿음에 대하여 말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이 능력을 붙잡고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능력을 의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믿음을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실제적으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허락에는 어디에나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자원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행한다면, 하나님의 모든 힘은 우리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허락 자체에는 무엇이거나 허락하신다는 선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눅 8:11). 씨 안에는 실제적으로 그 씨를 자라게 하는 맹아력이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선물은 그 허락 가운데 확실히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허락을 받아들일 때, 그 선물은 우리의 소유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믿음은 그 자체가 선물로서, 모든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이것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소유로 하기 위하여 믿음을 행사할 때 그 믿음은 자라나게 됩니다. 믿음을 강하게 하려면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말씀에 접촉해야 합니다. 믿음은 생애의 작은 일에 있어서도 큰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요긴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의 이해관계에서 하나님을 영속적으로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힘은 실제로 우리의 힘이 됩니다.

 

 

PART 3.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해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표

 

PART 3.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해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표

 

성소에 대한 이해

 

시 77:13, KJV “하나님이여 주의 길이 성소에 있사오니 우리 하나님 같이 위대하신 하나님이 누구오니이까.”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출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출 15: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계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성소에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길이 열려 있음을 시편은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길이 성소에 있사오니 우리 하나님 같이 위대하신 하나님이 누구오니이까”(시 77:13, KJV). 또한 그 길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바로 그 분이십니다. 이 길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신 그 길입니다. 창세전에 시작되어 지금도 온 인류를 위해 준비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이 놀라운 구원의 가르침인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20)고 하신 그 길입니다. 이 가르침은 우리 모두가 정확하게 배우고 깨달아야 하는 진리입니다. 속히 오라는 주님의 초청을 깊이 마음에 새기시기를 바라며 함께 성경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A. 제사와 성소 봉사

제사 드리는 일은 에덴에서 인간이 타락한 이후로 계속되어온 일입니다. 제단의 뿔들에 바르거나 휘장 앞에 뿌리거나 지성소의 법궤 앞에 뿌린 피는 계속적이고 상징적인 봉사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죄와 제사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절실히 느끼게 합니다. 희생 제물을 드리는 자가 죄를 고백하면서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매일의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봉사하는 제사장 직분의 제도를 통하여, 특별히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씩 드리는 대속죄일의 의식을 통하여 죄의 용서와 중보, 화목과 구속의 원칙들이 전수되어 왔습니다. 이 모든 의식과 교훈들을 통해 우리들은 우리의 죄를 친히 지시고 위하여 돌아가셨으며 그분의 매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에 대하여 깨닫게 됩니다.

성소 봉사는 분명히 상징적이었고 일시적이었음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수송아지나 염소의 피와 죄의 용서 사이에는 아무런 필연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희생제물들은 모두 표상적이었으며 그 희생 제물 자체에는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장차 올 더 좋고 나은 것의 예표와 그림자가 되었으며 중요한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죄의 심각성, 자복의 필요성, 율법의 위대함, 하나님의 거룩함,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필요한 준비, 이렇게 중요한 실제적인 교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게 될 때 이 깨달음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것입니다.

a. 성소를 세우신 목적 -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해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출 25:8).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넌 후 부른 그의 노래에서 말하기를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출 15:17)라고 했습니다. 이로 보아 모세는 이 성소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사셨던 예수님의 이름 또한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마 1:23)이 아니셨습니까!

지상 성소의 원형인 하늘 성소(히 8장 참조)에서 인류를 위하여 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은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십자가 사건과 함께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분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여 하늘에서 완성하실 일도 그분의 죽으심으로 시작되었기에 그러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히 6:20)신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곳에는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나온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비치는 이 빛, 칭의는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깨달음으로 성화를 이루게 합니다. 우리는 그곳을 통해 구속의 신비를 더욱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하루의 삶을 성소와 더불어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이 성소를 중심으로 살도록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소를 무엇으로 어떻게 지으며, 어느 때에 어떻게 섬겨야 할 지를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이 성소에 대한 이해를 갖는 것이 이 시대의 우리에게 얼마나 유익한 일인지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이 빛은 예수님을 통해 더 크고 환한 정오의 빛으로 지금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이 빛을 통해 우리는 현재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고 계시는 기도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귀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b. 이스라엘의 진과 함께 계신 예수 그리스도

성막 주위로 질서 있게 배치된 백성들의 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각 시대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당신의 백성들로 살아가게 되기를 바라는 모본으로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단 하나의 예배로 결속되어 있었으며 단 한 분 하나님과 하나의 위대한 희생 제물과 죄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모두를 위한 한 가지 목적과 모두가 바라고 있는 약속의 땅이라는 유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생활했던 광야는 시선을 끌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이었으며 그들의 주위에는 늘 그들을 위협하는 다른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 둘러싸인 조용한 곳이 있었으며 그 중앙에 예배하는 장소와 하나님의 보좌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의 삶의 중심에 계신 그리스도(성소)로 말미암아 그들은 주위의 환경, 즉 죄의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계획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사면이 둘러싸인 성소의 뜰과 상징적인 기구들, 희생제물과 절기들을 통하여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리를 계시하는 도구로 성소를 위한 모든 설계도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계시의 중심은 구주의 중보와 봉사를 친히 대표하는 대제사장의 역할이었습니다. 히브리서를 통해 바울은 성소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리스도께서 때가 되면 하늘 성소에서 인류를 위하여 탄원하는 중보자와 심판자로서 서게 되실 것과 또한 당신의 생명을 주는 보혈을 통한 전능하심이 모든 회개하는 영혼을 사단의 속박과 영원한 사망에서 놓여나게 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당신의 백성들 앞에 계속적으로 제시하기 위하여 계획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c.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의 매일의 삶의 중심

광야에 머무는 동안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장막이 어느 곳에 설치되든지 바로 그들의 진영 중앙에 성막을 세우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성막의 경내는 그들의 모든 세속적인 활동과는 분리되어야 하였으며 성막을 거룩한 울타리로 둘러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장막은 넓은 공간의 주변에 치도록 하셨으며 이곳에서는 아무런 세속적인 일을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이 광장 안에 훨씬 더 작은 지역이 성막의 “뜰”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계획은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은 성막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곳은 그분의 정부의 중심임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행군시에그들은 언약궤로부터 일정한 간격(2,000규빗)을 두고 행진하도록 규정되었습니다(수3:4). 중앙에 있는 성막과 더불어 백성들은 죽지 않도록 “성막 주위로부터 떨어져 있어야”(민 2:2 참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능한 한 당신의 백성들과 가까이 있기를 갈망하실지라도 그분께서는 오직 당신의 거룩한 위엄과 그들의 연약한 죄된 본성이 허락하는 만큼만 가까이 있을 수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의 계획이, 인간과 친밀하게 되기를 구하실지라도 그분은 여전히 영원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백성들 앞에 항상 제시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셨습니다.

d. 죄의 환경으로부터 분리

여호와께서는 당신께서 에덴동산에서 하셨던 것처럼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창 3:8)가 진중에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이 거룩한 구역은 진영 전체와 마찬가지로 철저히 정결하게 보존되어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기에 그들 모두는 그 자신과 주변을 정결하게 보존할 신성한 책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의무에 부주의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안 되며 모든 생활면에서 청결을 유지하여야 했습니다. 단정치 못한 것이나 건전치 못한 것 곧 순결한 분위기를 더럽힐 그 어떤 것도 그들과 그들의 주변에 허락지 말아야 하였습니다.

e. 성막의 뜰과 오직 하나의 문

뜰을 두르고 있는 것은 세마포로 만든 세마포 휘장입니다(출 27:9). 성경에서 세마포는 구주의 “의”를 상징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 19:8). 성막을 두르고 있는 이 세마포 휘장을 통해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간곡한 초청의 음성이셨습니다. 이 뜰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막 동쪽 편에 나있는 하나의 휘장뿐이었습니다. 이 문은 “천하 인간”(행 4:12)에게 주신 구원을 위한 단 하나의 문 그리고 거룩함에 이르는 오직 하나의 문이며(요 10:7~9), 우리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히 12:2) 바로 그분이십니다. 백성들의 뜰로 불리워진 뜰의 동쪽에서는 세 가지 중요한 의식들이 행하여졌습니다. 번제단의 불은 희생 제물을 살랐으며, 대야의 물은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였고, 희생의 피는 잃어버린 자를 구속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 의식들은 죄를 제거하고 칭의를 얻기 위하여 행하여지고 있었습니다.

f. 성소와 지성소

성막은 네 개의 황금 기둥에 매달린 휘장에 의하여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성막의 바닥은 마른 땅이었습니다. 주께서는 당신의 겸비하심에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기 위하여 땅 가까이에 당신의 성소를 세우셨습니다.

g. 성막의 운반

성막은 쉽게 해체하고 다시 세울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40년 광야 생활 동안 성막은 50여 곳에서 해체되고 세워졌습니다. 낮에는 서늘한 구름과 밤에는 따뜻한 불로써 하나님께서는 언제 출발하고 어디서 멈추어야 할지를 백성들에게 지시하셨습니다. 어떻게 누가 성막의 기구들을 운반하는지에 관해서와 열두 지파가 행진하는 정확한 순서도 직접 정해 주셨습니다. 구름이나 불기둥이 멈추는 곳은 어디든지, 언제든지 간에 그곳에 정지하여야 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을 바라보면서 성막을 세우고 뜰을 측량하고 거룩한 광장을 정하고 끝으로 레위인들과 열두 지파의 위치를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움직이고 행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 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이 시대의 우리의 삶에 세워진 모든 계획들도 그리스도의 계획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PART 2.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연구

 

PART 2.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연구

 

갈라디아서 2:18~21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을 통해 참 그리스도인은 죄 없는 삶 이외에는 다른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고백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믿음 안에서 살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하고 겸비한 마음과 태도로 성경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8절에서 무엇을 헐고 무엇을 세우면 범법한 자가 된다고 했습니까?

이 질문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자들에게 하였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에 관한 성경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 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또 그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골 2:10,11).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신의 육신으로 “원수된 것”곧 육적인 마음을 폐지하셨습니다. 그 자신의 것을 폐지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것인 죄와 연약함을 폐지하셨습니다. 이로 보건데 헐어지고 멸하여진 것은 죄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지 못한 육적 몸 곧 육적인 마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멸하여진 죄의 몸을 다시 세우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승리를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이미 이루어진 하나의 실제적인 현실입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를 믿는 우리의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믿음이 또한 그 승리를 우리에게 현실이 되게 합니다. 이 믿음을 잃어버린 자들은 그 현실 밖에 놓이게 되고 옛 사람의 죄의 몸(육적인 마음)이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이 죄의 몸을 멸하셨지만 각 개인에게는 현재의 개인적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9절에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율법이 죽었다는 의미로 하신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율법은 완전한 효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어떤 사람도 율법에 의해서 죽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율법을 향하여 죽게 됩니까? 그 율법이 선고하는 형벌인 사망을 받음으로 율법을 향하여 죽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은 그 이유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죄 때문에 율법에 의해서 당한 죽음에서 그리스도의 생명 가운데서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새 생명 가운데서”행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각 개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롬4:25)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죽지 아니하면 그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타락하고 죄로 상한 불쌍한 인간이 존재하는 곳 어디에서나 그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가 계십니다. 앞서 살펴 본 바에 따라 죄는 개인적인 문제이며 인간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7:21~23).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죄는 우리가 나면서부터 우리의 모든 체질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났으므로 우리의 생명은 죄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을 가져가지 않고는 우리로부터 죄를 가져 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내 자신의 개인적인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개인적으로 지은 죄 뿐만 아니라 마음 가운데 있는 죄 곧 내 모든 생명 속에 있는 죄, 그 얽매어 있는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악인은 “죄의 줄”에 매어 있고(잠 5:22참조) 스스로 그 죄를 씻을 수도 없다고(렘 2:22 참조)알려 줍니다. 내 죄는 내 자신이 범한 것이며 내 자신 안에 있으므로 그 죄를 나로부터 분리시킬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우리 자신이 이 분리할 수 없는 죄를 떼어서 그리스도께 지울 수 있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나의 어떠한 노력으로도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님께서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십자가로 지셨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불신과 무지 때문에 자신들이 무거운 죄 짐을 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상은 그리스도께서 그죄의 짐을 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모든 세상의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내 안, 내 마음 안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라고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시인할 것입니까?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계셔서 바로 우리 입에 계시며 마음에 계시다는 사실을 시인하며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거기에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구세주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세주이십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죄인의 마음속에 계시므로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도 마음속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오직 이 진리를 믿고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실제로 있는 것같이 보고 시인하며 믿고 사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진리입니까! 그는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죄가 모든 육신 안에 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만민에게 전해져야할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예수의 믿음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실제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 안에 계신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그분의 의를 삶 가운데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불의로 진리를 막”(롬 1:18)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하기를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며…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6~19)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죄인과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이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 안에 계시지만 죄인에게서는 시인을 받지 못하고 무시를 당하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으로 그 안에 거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죄인인 그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 자신의 죽음이 되도록 하여 예수의 생명이 그의 죽을 육신에 나타나게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은 곧 바로 살기 시작하며 이것은 자기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만이 요구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에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셨습니다(요 6:57 참조).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말씀을 믿는 예수의 믿음은 그가 죽을 때에 삼일 만에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거듭거듭 확신있게 주장하게 한 그러한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시고 “아버지여 내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죽으셨습니다. 그에게 죄를 완전히 이기게 하고 그 결과 사망을 이기는 이김을 주었던(히 5:7 참조) 그 믿음은 예수께서 믿음에 의해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는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히 13:8)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는 것은 우리가 아니고 우리안에 살아계셔서 우리를 사단의 권세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그 자신의 믿음을 사용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로 하여금 그자신의 길을 좇아 우리 안에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그저 우리는 단순히 그를 받아들이고 시인함으로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살게 하시는 것 그 일만을 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이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만일 의가 율법에 의해서 왔다면 그때에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의 할 의무를 지적하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온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행위나 각자의 노력에 의해서 온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말씀은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과 같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얻어야 할 유일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 안에서만 구원이 있으며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은 온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선포되어 있습니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0,11). 원하는 자는 누구나 그 구원의 은혜 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고후 6:1)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경계하고 매일의 삶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PART 1. 성령에 대한 연구

 

PART 1. 성령에 대한 연구

마가복음 2: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고린도전서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왕국의 새 포도주

우리는 계속적으로 예수님을 마음 가운데 모심으로, 이기심과 죄를 마음에서 지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인 지도자들의 마음은 바리새인의 사상으로 가득차 있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새 포도주를 담기에 적합하지 않은 낡은 가죽 부대들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분은 그의 왕국의 새 포도주를 넣을 새 부대를 찾으셔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바리새인들에게서 돌아서서 갈릴리의 비천한 어부들을 선택하신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일찍이 알고 있었던 가장 위대한 교사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가 교육시킬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셨는데, 그들은 그분의 입술로부터 나온 말씀들을 받아서 취하여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전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그의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를 그분의 사업을 위해 교육시키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서 허망한 것과 경박한 것들을 비우는 그만큼 확실하게, 그 빈 곳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성령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마음에 쌓은 선한 것으로부터 선한 것들, 풍부한 사상의 보석들을 낼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그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더 이상 자아에 집중되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아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사상과 애정은 그리스도에게 머물 것입니다. 우리는 의의 태양이 우리에게 비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반사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샘을 고 갈시켰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고갈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필요를 느끼자마자,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실 수 있습니다. 그 샘은 언제나 가득차 있습니다.

타오르는 불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렘 20:9).

하나님께서는 비천한 직위에 있는 사람들을 감동시키셔서 현대 진리의 기별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많은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강권하심을 받아 여기저기로 급히 다니면서 어둠 속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는 붙는 불과 같아서 골수에 사무쳐,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비추려는 불타는 열망으로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많은 사람들, 심지어 학식 있는 사람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러 나가도록 독려될 것입니다.

미래에, 일상적인 삶을 살아오던 사람들이 여호와의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그들의 일상적인 직업을 버리고 자비의 마지막 기별을 선포하러 나갈 것입니다. 가능한 한 신속하게 그들은 일을 위해 준비될 것이며, 하늘의 대리자들과 협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과 시간을 주의 사업에 헌신하고 또 헌신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일꾼들을 방해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들이 위대한 사명을 성취하러 나갈 때 그들의 성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지상의 험한 곳에 복음의 씨를 뿌릴 때에 어떤 조소하는 말도 그들에게 해서는 안 됩니다.

생애의 최선의 것들인 단순성, 정직성, 진실성, 정결, 결백한 고귀함은 매매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항상 신뢰하면서, 단순하게 수고하는 겸손한 사람들은 우리 구주의 즐거움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들의 끈기 있는 기도는 영혼들을 십자가로 데려올 것입니다. 그들의 자아 희생적인 노력에 협력해서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심령을 감동시키셔서 영혼을 회심시키는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일꾼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면서 기쁨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불의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3,4).

우리가 온유하고, 가르침 받고자 하는 정신으로 성경을 살핀다면, 우리의 노력은 부요하게 보상될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성경은 기도와 함께 연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도 성령의 조명(照明)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위치에 있기만 하다면, 그분의 빛은 부요하고, 명확한 빛줄기로 우리를 비춰 줄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제자들의 경험이었습니다. 성경은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행 2:1~3)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열심히 구할 때, 그와 유사한 축복을 기꺼이 주고자 하십니다.

주께서는 초대교회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후에 하늘의 저수지를 잠그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또한 그의 축복을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늘은 그분의 보화로 가득차 있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자들은 그분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능력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영적 권태와 무관심, 나태 때문입니다. 이 형식성과 무감각에서 벗어나도록 합시다. 이 시대에 해야 할 위대한 사업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하고자 하시는 것을 절반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