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세계 경제 위기와 다가오는 짐승의 표 환난

일본 방사능 문제의 심각성

일본 방사능은 참 심각한 문제입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방사능 오염수는 계속 유출되어 전 세계에 퍼지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문제는 2년 반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35년 이상 핵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해온 헬렌 칼디콧 박사는 앞으로 4년후부터 10년동안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를 보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큰 피해가 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지진이 한 번 더 후쿠시마 원전을 덮친다면 원전 4호기가 무너져 내릴 수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4호기 4층에는 사용이 끝난 연료 1300개가 냉각되고 있으며, 그 윗층에는 새 연료봉과 함께 무거운 기계류들이 보관되고 있습니다. 지진이 나서 이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면 새로운 멜트다운이 생길 것이고, 그것은 일본에게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대재앙이 될 것입니다. 일본의 지진 전문가는 4년 이내에 후쿠시마 원전 4호기를 붕괴시킬만한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75%라고 합니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이 세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방사능보다 심각한 경제위기 문제

그런데 일본 방사능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 국채 시장과 달러의 붕괴로 이어질 세계 경제 위기 문제입니다. 성경은 말세의 징조들 중 하나가 지진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지진으로 세상이 멸망한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은 말세에 모든 사람이 어려움을 겪게 될 짐승의 표 환난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 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 13:15~17)

이 짐승의 표 환난은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 환난의 때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죽임 당하고, 경제적인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될 것을 성경은 예언합니다.

이런 경제적인 제재는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선 일어나기 어렵고, 국가가 경제를 통제하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나 가능한 일들입니다. 이렇게 국가가 경제를 통제하기 위해선 먼저 현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몰락이 있어야 합니다. 현 경제 시스템의 몰락으로 인한 극심한 혼란과 어려움이 있을 때 국가가 상황을 수습하고 경제를 통제하게 되어야 짐승의 표를 강요할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입니다.

점점 커져가는 두 개의 버블 - 달러와 미국 정부 부채

현재 세계에서 진행되는 경제위기에 대해 몇몇 경제전문가들은 이 위기가 현 경제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미국 국채시장이 위험합니다. FRB(미국 연방준비은행)는 2008년 경제위기가 시작된 때부터 계속되는 QE(양적완화)를 통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인쇄하여 경기를 부양하고 있습니다. 2013년 1월 부터는 매달 850억달러를 인쇄하여 경기를 부양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2013년에만 인쇄되고 있는 돈을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쌓여있는 돈들은 전부 100달러짜리 지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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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B는 인쇄한 돈의 반 이상을 미국 국채 매입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발행되는 미국 국채의 약 70%를 FRB가 매입하고 있습니다. 아래 챠트는 미국 국채를 어떤 주체가 사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FRB가 아닌 주체(중국, 일본 등의 국가들, 기업들, 개인들)는 2011년부터 미국 국채 보유량을 늘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FRB(미국 연방준비은행)만 2011년부터 미국 국채 보유량을 급격히 늘리고 있습니다. FRB의 미국 국채 보유량은 미국 국채 세계 1, 2위 보유국인 중국과 일본을 추월하여 이제는 점점 그 격차를 벌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FRB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미국 국채 보유량이 높습니다. FRB가 돈을 인쇄하여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비율이 얼마까지 올라갈까요? CNBC는 최근 FRB의 시카고은행 찰스 에반스 총재에게 연준이 얼마까지 미국 국채를 매입할 수 있는지, 그 매입에 제한이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현 FRB 의장인 밴 버냉키와 차기 FRB의장인 자넷 옐런과 같은 의견을 가진 찰스 에반스 총재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나는 연준이 두 가지 위임 권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데 필요한 그 어떤 것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양의 용량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한계에 대해 실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필요한 만큼 갈 수 있다.” 한 마디로 FRB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 달러를 무제한 인쇄하여 한계 없이 미국 국채를 매입할 수 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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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 사태와 국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를 겪으며 월가 은행들은 미국 국채 투자금액을 50% 축소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신뢰를 잃은 미국 국채를 오직 FRB만 매입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시기에 월가의 비관론자 ‘닥터둠’ 마크 파버는 양적완화 축소가 아닌 양적완화 확대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현재 월 850억달러의 자산을 매입하고 있는 연준(FRB)이 언제쯤 월 1500억달러, 2000억달러, 1조달러로 늘릴 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며 파버는 연준의 양적완화 정책이 무한히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는 또한 미국 시장에 상당한 자산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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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와 정부부채 거품이 얼마나 어떻게 커지는지 우리는 지켜봐야 합니다. 달러는 2008년 이전까지 95년간 약 9천억 달러가 인쇄되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부터 단 5년간 2조 8천억 달러가 인쇄되어 그 전 95년간 인쇄된 달러보다 3배 이상 많이 인쇄되었습니다. 또한 정부 부채는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부터 조지 부시 대통령까지 약 220년간 쌓아온 부채보다 더 큰 액수의 부채를 오바마 대통령 임기 동안 쌓고 있습니다. 이런 무분별한 돈 인쇄와 미국 정부 부채 문제에 대해 스프랏자산 운용 회사의 회장인 에릭 스프랏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금융시스템과 은행시스템을 떠받치기 위한 정책들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QE1이나 QE2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으며 QE3나 일본의 머니 프린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심지어 중앙은행들은 주식까지 사들여서 경기를 떠받치고 있다. 얼마나 미친 짓인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짓들은 조만간 멈추게 되어 있다. 우리는 다음 둘 중 하나가 일어나도록 계속 가속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하나는 금융붕괴이며 다른 하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다. 만약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금융붕괴도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이자율이 치솟을 것이며, 이자에 대한 비용이 폭등하면서 정부는 끝장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든 것은 붕괴하게 된다. 해피엔딩은 아닐 것이다. 하이퍼인플레이션 아니면 금융붕괴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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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경제적인 환난

경제전문가들은 대공황과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현 경제시스템의 붕괴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경제대공황 시절엔 수많은 기업들과 은행들이 파산했습니다. 개인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은행에 예금한 돈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수많은 사람이 끼니도 잇지 못해 거리로 나와 시위 행렬에 참가했습니다. 특히 빚이 있던 사람들은 폭등하는 금리를 견디지 못해 파산했고, 모든 것을 잃고 거리로 쫓겨나야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에선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진행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모은 연금으로 겨우 빵 한 조각을 살 수 있었습니다. 돈의 가치가 떨어져 종잇조각 정도의 가치밖에 안되었던 것이죠.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될 것을 아니 더 극심한 경제적 환난이 올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현 경제 위기가 위와 같이 심각한 상황까지 이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이미 대공황 수준의 실업률을 겪고 있는 스페인과 그리스에서는 폭력적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3년 3, 4월에 국가 파산 위기를 겪은 사이프러스는 위기의 순간에 국민들의 예금을 압류했습니다.

세계 경제가 침체될수록 이런 일들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질 것입니다. 국가는 이런 혼란과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를 직접 통제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불환지폐로 전 세계의 경제가 연결된 시대는 역사상 없었습니다. 더 위험한 것은 세계인구의 대부분이 도시에 몰려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경제 시스템이 붕괴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1930년대 대공황 시절만 해도 전체 고용 인구의 20%는 농업에 종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1.7%에 불과합니다. 그 시절엔 경제가 붕괴해 직장을 잃어도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다릅니다.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먹거리와 경제가 통제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현 경제위기는 짐승의 표 환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의 인을 받을 사람들

이런 때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물론 실제적인 준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로 준비되는 영적인 준비가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이 쳐지고 있는 때입니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2,3)

하나님께서 사방 바람을 붙잡게 하시어 환난을 지체시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종들이 준비되면 인을 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인을 받는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승리하는 십사만 사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을 받는 십사만 사천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4:5,12)들입니다. 십사만 사천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고 생각하며 여전히 거짓말하고, 이기적이며, 교만하며, 죄를 계속 범하는 가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진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십사만 사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살아남는 이들 월간지 119호-마지막 날에 서는 사람들, 121호-십사만 사천 마지막 세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대는 성경적인 참 복음으로 변화된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까? 하나님의 인을 받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더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는 세상적인 꿈을 접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준비할 시간입니다. 엘리야를 환난의 때에 먹이셨던 동일한 하나님께서 다가오는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인을 받는 의인들을 먹이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 환난에 준비된 독자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되며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사 33:15,16)

 

 

PART 5.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막 13:4; 눅 21:7)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 22:20)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사오리이까

재림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백성들이 듣는 가운데서 역사의 마지막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홀로 감람산에 계실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안드레가 그분께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막 13:4; 눅 21:7)하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당신의 재림의 큰 날을 따로 분리하여 제자들에게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주님께서는 이 두 사건(예루살렘의 멸망과 예수님의 재림)을 섞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당신께서 보신 대로 장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제자들에게 공개하셨다면 그들은 그 광경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님은 두 큰 위기를 섞어서 설명하시고 제자들이 스스로 그 뜻을 연구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이 두 사건을 바르게 연구하여 이 시대를 하나님의 안목으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재림 시간을 알리지 않으신 주님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시기를 정해서 말해 왔습니다. 계속해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시간을 정하였으나 실패만 거듭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분명한 시간은 인간의 지식 범위 밖에 있다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심지어 구원 얻을 후사들을 섬기는 천사들도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우리는 성령의 부어 주심이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분명한 시간을 알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으셨을까요? 그분께서 그 때를 알려 주신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올바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를 알게 된다면 다가올 큰 날에 한 백성을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사업이 크게 지연되는 사태가 생길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적 흥분에 의지해서 살아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께서 1년, 2년 혹은 5년 안에 오실 것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10년 혹은 20년 내에 주님이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재림을 결코 지연시킬 수도 없습니다. 연약하고 유한한 우리 인간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성경의 말씀에 일치한 실제적인 경건한 삶을 사는 것 외에는 안전한 다른 방법이 절대로 없습니다. 하나님의 큰 날이 인류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징조들은 성취되어 가고 있으나 우리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실 날짜와 시간에 대한 말씀은 전혀 없습니다. 지혜가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며 항상 준비하고 살도록 그 시기를 우리에게 숨기셨습니다. 인자의 재림의 정확한 시간은 하나님의 오묘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 역사가 5년, 10년 혹은 20년 후에 끝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를 지체한 것에 대한 변명을 아무에게서도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아무도 악한 종처럼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말하지 않기를 경고하셨습니다. 그런 태도는 우리에게 그 큰 날을 준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기회와 특권을 무모하게 등한히 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반복해서 정한 시기가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이전보다 더욱 심한 불신 상태에 빠져 있거나 또는 전혀 무관심한 가운데 자신의 삶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때를 정하는 자들의 실패를 조롱하며 혐오감으로 바라봅니다. 사람들은 너무도 속아 왔기 때문에 만물이 가까웠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입증된 진리로부터 그들의 마음을 닫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의해서 항상 거짓되고 광신적인 운동들이 일어나는 것은 그들이 보내심을 받기도 전에 달려간 자들이며 성취되지 않은 예언의 발생할 날짜와 시간을 예언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그들의 연속적인 실패와 오류가 혼란과 불신을 초래할 것이므로 그들이 그러한 일을 행하는 것을 볼 때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조심하며 살핌으로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으로 세워진 예언을 연구하여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의 죄로부터,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투쟁하며 지키고 정결케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체하시는 이유

어둡고 긴 밤은 괴롭지만 아침은 자비로 더디 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지금 오신다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준비되지 않은 채로 남겨져 멸망으로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방 바람을 붙잡으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은혜와 자비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깨어서 성령의 능력으로 영원한 복음의 기별을 세상에 선포하고 그들의 믿음을 굳게 지키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길이 열리는 대로 연합하여 전진하여 나아갔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에 크게 역사하셔서 이 세상 사업은 이미 마쳐지고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셔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상급을 주셨을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이처럼 지체된 것은 본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불신과 불평과 반역의 정신이 40년 동안 고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와 똑같은 죄들이 현대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늘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체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약속에는 전혀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죄악과 슬픔의 세상에 그리스도인들이 이처럼 오랫동안 머물게 하고 있는 것은 주님을 믿노라 공언하는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신과 불순종, 세속주의와 미지근한 상태와 분쟁인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 앞에 온 세상 만물이 고통 가운데 소리 지르고 있다는 것과 이 세상이 죄악으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현실에 놓였다는 것을 깨닫고 애통해하며 진정과 신령으로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죄악의 잔은 거의 찼고 하나님의 자비하심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조건적인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천사들은 인간에게 보내는 그들의 기별에서 시간이 매우 촉박하다는 것을 자주 증거하였습니다(롬 3:11; 고전 7:29; 살전 4:15,17; 히 10:25; 약 5:8,9; 벧전 4:7; 계 22:6,7). 그렇다면 지체된 듯한 주님의 재림의 약속에 어떤 잘못이 있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경고는 둘 다 조건적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기억해야 합니다(렘 18:7~10; 욘 3:4~10). 복종하지 않으므로 오랜 세월을 광야에서 보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가 지체해야 할지 모르는데 그러나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 자신의 잘못된 행동 노선의 결과를 하나님께 돌리므로 죄에다 죄를 첨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 22:20)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모든 자들의 잘못이며 우리 자신들은 각자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와 함께 주님의 명령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 안에 당신을 드러내시고자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의 백성에게서 완전히 재현될 그 때에 주님은 당신의 소유를 찾으시려고 강림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할 뿐 아니라 그것을 촉진시키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믿노라 하는 자들이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열매를 맺는다면 온 세상에 얼마나 속히 참 복음의 씨가 뿌려질지 모릅니다. 최후의 수확은 속히 익을 것이고 그리스도께서는 귀한 알곡을 거두시려고 강림하실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심판의 날

우리는 바로 우리 앞에 다가온 심판의 큰 장면들을 생각하며 자숙하도록 스스로 훈련시켜야 합니다. 모든 것이 드러날 하나님의 큰 날의 장면을 염두에 두고 있을 때 그것은 우리의 성품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신실한 하나님의 종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인 주님이 10년 내에 오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종 주님이 2년, 4년 혹은 10년 내에 오신다 하는 것이 당신에게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 물론이지요, 만약 주님께서 10년 이내에 오신다는 것을 안다면 나는 지금과는 다르게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 그럼, 당신은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그리스도인 글쎄요, 나는 내 재산을 처분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날 준비를 갖추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종 그러나 만약 당신이 앞으로 20년 이내에 주님이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그때도 그렇게 살 것입니까?

그리스도인 아마 아닐 것입니다…….

주님께서 10년 이내에 오신다는 것을 알 때 다르게 살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얼마나 이기적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에녹은 300년 동안 주님과 동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매일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며 매일 깨어서 기다리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심판의 날을 맞이하는데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장차 구원받은 무리와 함께 유리바다 위에 서서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금 거문고를 타며 우리 앞에 영원한 시간이 펼쳐져 있음을 볼 때, 그때에야 우리는 기다리던 그 은혜의 시기가 얼마나 짧은 것이었는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PART 4. 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알고 행해야 하는 교훈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사58:4).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사 58:8).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3).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고전 3:9).

주님께서는 우리들 각자가 결정적으로 진지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영적 문제에 있어서 실수를 범할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앞에는 “내가 어떻게 함으로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나눠주시는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들 각자가 신중히 고려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임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교훈 7. 하나님께서 보시는 우리의 가치

사단은 사망의 권세 아래 영혼을 이끌기 위하여 대리자들을 사용하지만 하나님의 천사들은 시험에 빠진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천사들과 협력할 대리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활동할 자들, 곧 그리스도의 편에서 일할 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찾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 사람들은 높은 자이건 낮은 자이건 간에, 시험에 빠진 자신들에게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로 하다는 사실을 깊이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경멸히 여김을 받고 무시를 당하고 상처를 입으며 사단으로 말미암아 멍이 든 자신들을 그리스도께서 돌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들이며 완고한 인간들 곧 영혼을 순결케 하는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믿음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자들을 돌이키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사망에서 영혼을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어주는 일을 위하여 하늘의 대리자들과 협력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할 것이며 또한 저들을 통해서, 저들로 말미암아 일할 것입니다. 이런 일에 천사들과 협력하는 자들은 저들 자신을 매 순간 깊이 살피게 될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는 저들일지라도 미혹의 길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조수,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지도를 받으며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도와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수행하기 바라시는 모든 방법을 따라서 하나님과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고 있는지, 매일 그리스도의 정신을 갖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말과 행동에 있어서 주님의 뜻을 이행하려고 힘쓰고 있는지 조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폭동과 살인과 절도와 온갖 범죄로 말미암아 이렇게 혼란한 때를 과거의 역사에서 볼 수 있었습니까?

이러한 때에 우리는 개인적으로 어떠한 위치에 서 있어야 하겠습니까? 이사야 58장에서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자들에 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금식을 받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사 58:4)고 분명히 우리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5~7)

교훈 8. 영원에 속한 우리의 보상

“그리하면(저들이 자비로운 행동과 궁핍한 자를 도와주는 일을 한 연후에)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사 58:8). 우리는 율법의 교훈들을 실천에 옮겨야 하며 그리할 때에 우리의 의가 앞에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호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의 빛은 우리의 앞길을 비추실 것이며 여호와의 영광은 우리의 뒤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보증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위치에 꾸준히 서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련을 맺는다는 것, 그분의 조수가 되어 그 분의 일을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고상한 특권임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잃어버린 인류의 구속 사업을 위한 하나님의 크신 경륜 가운데 주님께서는 당신의 조수로써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에게 접근하시기 위하여 우리들의 도움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이웃들을 위하여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재빨리 식별하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활동적인 사람들의 협력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많은 인간들을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범죄의 생애에서 인류를 건져내시어 순종과 의의 생애로 인도하기를 바라시며 당신을 저들이 구원자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이 줄 수 있는 가

장 부요한 보상 곧 영원한 생명까지라도 제공하십니다. 아, 우리 각 사람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치르신 무한한 대가에 대해서 좀더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도 바울은 “너희는…값으로 산 것이 되었”(고전 6:19,20)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다름이 아닌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을 값으로 지불하시고 산 자들입니다. 우리 모두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초청을 거부할 수도 있으며 주님께서 주시는 용서와 화평을 등한히 여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하든지 간에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보혈로 사신 바 되었다는 엄연한 사실만은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3)는 교훈과 우리들을 위하여 치르신 희생의 값은 너무나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들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모두는 사실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소유물을 잘 보살펴야 하는 책임만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무한한 대가를 치르시고 우리들을 사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정신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게 속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우리의 몸, 혼, 영을 남용할 권리를 가진 자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겉으로 드러난 것이든 혹은 은밀히 행하는 것이든 그 어떤 형태의 이기적인 방종으로 체력과 정신력을 점차적으로 약화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두뇌를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 두뇌를 사용하기를 바라십니다. 멸망해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업에 있어서 인간은 그 두뇌를 가지고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꼭 알맞은 지력과 추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정신력과 체력을 교육하고 훈련해야 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르시고 사신 인체의 기능으로서 우리는 가능한 한 이 기능을 최선의 상태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존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신력과 체력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데 그 까닭은 하나님과 더불어 동역하는 더욱 유능한 일꾼들이 되기를 하나님께서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저희 본분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자들에 대하여 성경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고전 3:9)라고 말하였습니다. 인간은 신령한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은 봉사의 제단에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바친 모든 자를 통하여 일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영혼은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으며 그분께서 가납하실 만한 수고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이 대열에 참가하기를 바라십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인간에게 저희가 가진 여러 가지 재능에 따라 지정된 일을 주셨습니다.

교훈 9. 열렬하고 꾸준하게 활동해야 할 필요성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아무 선한 일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두고 그분의 도움을 힘입어 이 구속 사업에서 맡은 분야의 일을 수행하고 그 일을 더욱 잘 해보리라는 결심을 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겸손하면서도 꿋꿋한 정신으로 이 결심을 추진해 나가는 자들의 생애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에게 속한 단 한 가닥의 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력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께 꼭 붙잡아 매어 두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두도록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관습과 유행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기 위하여 애쓰는 생활에서 어떤 만족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에게는 꼭 이루어야 할 더 큰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품성을 예수님의 품성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재능, 모든 관심과 생각, 모든 행동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들은 과거에 전혀 본 일이 없는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들을 앞서 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며 값으로 사신 바 되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으로 여겨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동료 인간의 복리를 위하여 사용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열렬하고 끈기 있는 충성으로 잃은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PART 3.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해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표

성소에 대한 이해

사 66: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시 68:24 하나님이여 저희가 주의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에 행차하시는 것이라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C. 하늘 성소에 대한 이해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오늘날 예수께서 하고 계시는 하늘 성소에서의 봉사에 대한 이해는 이 시대의 우리가 정확히 알고 깨달아야 하는 이 시대를 위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제사장과 대제사장으로 봉사하고 계시며, 거기에서 당신의 속죄의 희생의 공로를 당신의 백성들의 필요에 적용시키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 같은 하늘 성소의 봉사는 구약의 성막을 통하여 분명하게 예증되어 있으며 예수님은 거기에 나타난 모든 상징과 표상의 성취이십니다. 우리는 이제 이 하늘에 있는 성소의 존재에 대한 성경의 증거를 살펴볼 것입니다.

a. 하나님의 처소인 하늘 성소

구약과 신약 기자들의 일치된 증거는 하나님의 처소는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홍수 직후에 “번제”(창 8:20~22)를 드렸습니다. 이 번제의 히브리 이름은 그들의 선물이 마치 탄원과 찬양 중에 여호와께 도달되는 것처럼 연기가 되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한 바벨탑 건축자들의 영적 상태를 조사하기 위하여 하늘 높은 곳에서 “강림”하셨다고 창세기 11장 5~7절에 나와 있으며 소돔과 고모라의 상태를 조사하실 때도 그분께서 친히 살펴보고자 “내려”오셨다고 창세기 18장 16~22절에 나와 있습니다. 야곱의 꿈 이야기에서도(창 28:12~15) 높이 들린 어떤 곳에 좌정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감을 받은 시인들은 종종 “하늘의 하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늘의 하늘”은 가장 높은 곳, 바울이 “이끌려”갔던(고후 12:4) “삼층 하늘”이나 “낙원”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처소는 그곳에 위치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곳으로부터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계심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실제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b. 하늘 보좌에서 통치하고 계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20장 22절을 통해 주님께서는 친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친히 보았으니”,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이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욥 22:12)고 물었으며, 이사야는 “하늘은 나(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사 66:1 비교 행 7:48,49)이라는 사상을 확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 중에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마 5:34)라고 확언하셨으며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 6:9)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구주께서는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계 3:12)와 새롭게 만들어진 세상의 수도가 될 것(계 21:10)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세상 역사 마지막에 대한 묘사에서 요한은 “큰 음성이(하늘) 성전에서 나서”(계 16:17) 은혜의 시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요한은 마지막 날의 징조들 가운데 하나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려 지성소 안에 있는 증거궤를 모든 사람이 보게 되는 광경을 묘사하였습니다(계 11:19). 이것은 성령께서 마지막 때에 요한계시록을 읽은 독자들의 마음을 의도적으로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로 인도하고 계심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c. “거룩하다”는 히브리어의 의미

히브리서의 연구나 다양한 영어 번역서들을 통해 우리는 “거룩하다”라는 히브리어는 지금 히브리어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 “성소”로 번역되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20:2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시편 20: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이러한 표현은 항상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연결되어 사용되어졌으며 율법에 기초된 보좌는 그분의 하늘 성소 안에 있고 그곳에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궁핍한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서 경배”하라는 말씀에는 이 사상을 계시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시 29:2,9,10,….). 성경 난외주에 “거룩함”은 성소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믿음의 선배의 조언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편 기자들은 자주 찬양하는 자들의 마음을 위로 향하게 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보좌에서 통치하시는 여호와께 초점을 맞추게 하는 언어들을 사용하였습니다.

d. 경배의 중심이며 또한 심판의 중심인 하늘 성소

다윗은 시편에서 지상 성소의 목적에 대한 그의 이해는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그분의 사업에까지 다다른다는 사실을 기쁘게 증거하였습니다(시편 18편 참조). 또한 시편 9편에서는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조사 절차에 대하여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시편 9:7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시편 9: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선지자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보좌는 하늘 성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영화로우신 보좌여 원시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렘 17:10~12 참조)이라고 선언하였고, 미가 선지자는 “주께서 당신의 하늘 성전에서 악인에 대해 증거하시며, 당신의 심판을 실행하기 위하여 세상에 내려오시는”(미 7:7~9 참조)것으로 말함으로써 구속의 과정을 강조하였습니다.

e. 하늘 성소의 표상인 지상 성소

솔로몬 왕은 그의 성전 봉헌 기도에서 주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그곳으로부터 도움을 베푸실 하늘 성소로 그와 백성들의 생각을 높였습니다(왕상 8장 참조). 그리하여 솔로몬 왕은 그의 백성들의 마음을 지상 성전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에 집중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하늘 성전의 “문”으로부터 흘러나와 이 세상의 사막으로 흘러 들어가는 치료하는 은혜의 강에 대한 이상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습니다(겔 47장 참조). 이 생명을 주는 시내는 회복과 풍부한 결실을 가져다주었으며 마침내는 달마다 열두 가지의 다양한 과실을 맺는 생명나무에 물을 대주고 있음을 에스겔 47장, 요한계시록 22장의 이상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이상은 또한 성소에서 예시된 대로 메시야의 봉사를 묘사하였습니다. 지상 성전의 상징적 희생 제물과 표상적 제사장 기능은 하늘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실체를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f.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 처음 일곱 장에서 모세의 성막의 교훈과 그 제사장 직분을 주의 깊이 회고하였으며 8장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성소에 대한 더 풍성한 이해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과 그분께서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닌 참 장막”(히 8:1,2)에서 행사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우리들에게 옛 언약에도 지상 성소가 있었음을 상기시키며(히 9:1) 그 성소의 제사장들은 단지 대표자, 곧 하늘에 있는 실체의 “모형과 그림자”(히 8:5)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모세의 성막의 상징들은 희생제물이요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봉사에 대한 직접적인 예증이라고 설명하며 그분이 바로 죽어가는 각 희생물과 중보하는 제사장의 모든 행위에 의해 묘사된 실체이심을 강조하였습니다. 스가랴는 오래 전에 왕이신 메시야께서 하나님의 하늘 성전에서 제사장일 뿐 아니라 재판장으로 세움을 입으실 것을 예언하였으며(슥 6:12~15) 구주께서도 자신이 친히 왕위에 앉을 것을(마 19:28)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노래한 것도 이것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이여 저희가 주의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에 행차하시는 것이라”(시 68:24) 다니엘 또한 “인자”께서 당신의 하늘 심판자리로 옮겨가시는 동일한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단 7:9~11).

사도 요한도 당신의 희생과 승리의 보혈을 하나님께 제시하면서 이 보좌에 앉아 계신 사자이며 동시에 어린 양이신 분을 목격하지 않았습니까(계 5:6,7). 그는 또한 하늘의 지성소에서 봉사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에 대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늘 성전의 성소에서 일곱 금촛대를 돌보시는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목격하였으며(계 1:12~18) 나중에는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계 4:5)을 보았습니다. 그는 “금단”을 보았으며, “금향로와 많은 향”(계 8:3)을 가진 하늘의 봉사를 목격하였으며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려서 그곳에 서 거룩한 십계명이 보관되어 있는 “언약궤”를 보았다고 진술하였습니다(계 11:19 참조). 지금도 이 놀라운 하늘 성소의 봉사를 이해한 그리스도인은 지성소에 있는 전능한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와 필요할 때마다 온갖 은혜와 자비와 도움을 얻으라는 초청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히 4:14~16). 이 얼마나 놀랍고 크신 사랑과 은혜입니까? 놀라우신 구속의 경륜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려 드리는 거룩한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

▶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PART 2.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연구

갈라디아서 3:8~12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이방인을 위한 복음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갈 3:8).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이방이 곧 아브라함을 뜻하며 복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뜻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일찍이 아브라함의 시대에도 전파되었으며 그 복음을 전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복음은 참되고 유일한 복음인 것입니다. 바울이 전하였던 복음도 같은 복음이며 우리가 가진 복음 또한 아브라함이 가진 복음과 똑같은 복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시대에도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신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전까지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베드로나 바울의 시대에도 전혀 새로운 전도가 아니었습니다. 유대 백성을 이방인 중에서 취하여 내셨으며 이스라엘이 세워지고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됨으로써 이루어진 일이 었습니다(행 15:14~18; 롬 11:25,26 참조). 이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존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 이방인 중에서 한 백성을 구원하는 것임을 알려주는 불변의 증거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러한 뜻을 성취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어떠한 이방인도 아브라함이 구원을 받은 복음이 아니고는 달리 구원 받기를 바랄 수 없다는 사도 바울의 설교를 잘 새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2,33).

아브라함과 함께 받는 복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이 축복은 우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행 3:25,26)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의의 축복을 뜻합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4). 죄의 용서는 동시에 의의 축복을 가져다 준다고 성경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축복과 저주

누가 저주 아래에 있다고 합니까?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지 않은 것에 주목하여 보십시요. 성경은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시 119:1),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그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 KJV)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라는 말씀이 명백히 선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속한 자들은 믿음으로 계명을 행하며 아브라함이 받은 그 복을 함께 받는 자들입니다. 복음은 인간의 본성과는 정반대이므로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되는 것은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의를 얻기 위하여 노력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본성을 행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오히려 의로부터 더 멀리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벧후 1:4)을 믿으면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벧후 1:4)며 모든 우리의 행위는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저주는 율법에 기록된 모든 일을 계속 행하지 않는 데에 달려 있으며 축복은 율법을 완전히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되게 믿는다면 정죄를 받지 않고 오직 믿음이 율법에 일치되게 해주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만이 있을 뿐입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5). 그러면 성경이 선한 일을 무시한다고 가르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선한 일을 높이 삽니다.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딛 3:8). 또한 불신하는 자들을 책망하여 말씀하기를 그들은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 1:16)고 하였으며 디모데에게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고 권면하였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골 1:10)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은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몸소 우리를 위하여 이 일을 예비하시고 이루셨으며 그를 신뢰하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쌓아 두셨습니다(시편 31:19 참조).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 이와 같이 선한 일은 행하여야 할 일이지만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행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오직 선하신 분만이 실행할 수 있으며 그분은 곧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 안에 어떤 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신 큰 은혜인 것입니다(히 13:20,21 참조).

그러면 누가 의인이며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은 믿음을 통해서 바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불의가 죄로되”(요일 5:17) 또한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그러므로 모든 불의는 불법 곧 율법을 범하는 것이며 모든 의는 율법에 순종하는 것임을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의는 우리가 얻어야 할 목적이며 하나님의 율법은 바로 그 의의 표준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 진노와 저주를 피할 수 있게 될까요? 그 답으로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말씀 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고 행위로는 전혀 그렇게 될 수 없음을 깨달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롬 10:10)기에 여하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의인에 대한 이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롬 11:6),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4,5). 예외는 있을 수 없으며 중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의인은 믿음으로 살고 다른 의인은 믿음과 행위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지 않고 단순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고 말씀하였습니다. 모든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만 이루어지고 지탱됩니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일보다 위대한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만이 이 일을 이룰 수 있음을 성경은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기에 그러합니다(롬 7:12 참조).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주 예수를 영접하면 그분께서는 우리 안에 사시면서 완전히 율법을 이루어 주십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것은 책에 쓰여져 있건 돌비에 새겨져 있건 간에 글자로 쓰여진 율법이며 이것을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율법은 단순히 “이것을 행하라” 또는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이 말씀은 글자로 쓰여진 율법이 생명을 제시하는 조건이며 율법은 행위, 오직 행위만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어떻게 얻느냐 하는 것은 제시된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살펴본바 지금까지 율법의 요구를 이룬 사람은 전혀 없으며 율법을 행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 자신의 생애에 완전한 순종의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생명은 움직이는 행위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갈 3:12)”

그러나 행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살아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죽은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허물과 죄로 죽(엡 2:1)”은 사람은 의를 행할 수 없기에 그러합니다. 그리스도만이 그 안에 생명을 지닌 유일한 분이시며 그분만이 의를 행하였고 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을 시인하고 영접할 때, 그때는 더 이상 우리가 산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며 우리 안에 있는 그의 순종이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이러한 우리의 믿음이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가 되게 하기에 우리의 믿음이 의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바치며, 살아 계신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게 되면 그 마음은 하나님의 보좌가 됩니다. 이렇게 하여 살아 있는 율법이 우리의 생명이 되며 이 생명의 근원은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이 폐지되었다 혹은 변경되었다, 효력이 줄었다라고 주장하는 단 한 절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어떻게 율법을 지킬 것인가, 어떻게 의롭게 되는 것인가(칭의)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지켜야 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거룩한 율법을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에 대해 갈라디아 형제들에게 가르치기를 자신의 노력으로 의롭게 된다는 거짓 가르침은 죄인에게 더욱 저주를 가져다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저없이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각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유일한 참된 의로 제시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신앙의 기초이며 주제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율법을 자랑하였지만 그 율법을 범하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대신 바울은 그리스도를 자랑으로 삼았으며 그가 이와 같이 가르친 율법의 의로 하나님의 이름이 바울을 통해서 영광을 받게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갈라디아서의 연구를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이해가 분명히 마음에 새겨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PART 1. 성령에 대한 연구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7)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4:13)

 

우리를 위한 성령의 기도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하나의 통로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단 하나의 이름, 우리의 대언자 주 예수의 이름을 통해서만 그에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의 성령은 우리의 기도에 영감을 불어넣으십니다. 어떤 다른 불도 성소에서 하나님 앞에서 흔들었던 향로에 사용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의 기도가 그분께 받아들여질 만하려면, 주님께서 친히 우리 마음에 그 불붙는 갈망을 불러일으키셔야 합니다. 우리 속에서 성령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우리의 필요에 대한 깊은 의식, 우리가 간구하는 것들에 대한 강한 열망이 우리의 기도를 특징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기도들은 응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즉시 응답되지 않는다고 하여 지치거나 간청을 중단해서도 안 됩니다.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여기서 침노가 의미하는 것은 야곱이 나타낸 것과 같은, 거룩한 열심입니다. 우리는 격렬한 감정을 일으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줄기차게 우리는 은혜의 보좌에 우리의 간청을 열렬히 내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서, 우리 영혼을 하나님께 겸손히 낮추는 것입니다. 그분의 섭리와 은혜 가운데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우리 기도의 목적은 우리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참 모습의 상태인, 연약하고, 무지하고 속절없는 자신을 볼 때, 우리는 겸손한 간구자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교만하거나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확실한 표시와 증거는 자신이 위대하거나 선하다고 느끼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심령의 자만은 항상 심령의 빈곤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7).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함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모든 소망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리고 하나님과 친족이 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 있어서 우리의 믿음을 확고하게 해주는 강력한 말씀들을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고,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거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6,17).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해 세상에서 나와서 분리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심령을 하나님께 계속해서 가까이하고, 삶 속에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임재하시게 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진실로 그리스도를 믿는 각 사람은 그분의 사랑의 은혜가 그의 마음속에 있음을 드러낼 것입니다. 한때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던 곳에 그분과의 협동이 있음이 드러날 것이며, 한때 육적 본성이 나타났던 곳에, 하나님의 속성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의 백성은 의의 일꾼이요,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는 자요, 그분의 뜻을 계속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케 할 것입니다. 천사와 사람들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에, 우리는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고, 그의 나라의 원칙을 충실하게 따르는 자들이라는 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및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로 이끌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룩함이라는 귀한 열매들이 맺혀질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사이에 운행하심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4:13).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볼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죄로 죽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 아래 죄를 깨닫고 회심하게 되는 것을 압니다. 경솔하고 고집불통의 사람들이 진지해집니다. 강퍅한 사람들이 죄를 뉘우칩니다. 믿음 없는 자들이 믿게 됩니다. 도박을 일삼는 자, 술주정뱅이, 부도덕한 자들이 차분해지고 말쑥해지고 정결해집니다. 반항적이고 고집 센 자들이 온유해지고 그리스도를 닮게 됩니다. 이러한 품성의 변화를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회심시키는 능력이 그 사람 전체를 탈바꿈시켰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을 보지 못했지만, 완고하고 냉혹한 죄인들의 품성이 변화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그분의 역사의 증거는 볼 수 있습니다. 강한 바람이 우뚝솟은 나무들을 쓰러뜨리는 것처럼, 성령은 인간의 마음에 역사할 수 있으시며, 유한한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에 한계를 그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사람들에게 마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나타나십니다. 이 능력의 감동 아래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떨 것입니다. 그의 확신은 너무나도 깊어서 감정의 격동은 심령을 격발하게 하고, 몸과 마음은 진리의 확신케 하는 능력 아래 부복할 것입니다. 주께서 회개하는 영혼에게 용서를 말씀하실 때, 그는 열심에 충만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차게 되고 원기 왕성하게 되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억제할 수 없게 됩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거하시므로 그의 사랑의 감정은 과거의 비탄과 고민에 비례해서 깊고 열렬하게 됩니다. 그의 영혼은 터져 버린, 큰 깊음의 샘과 같게 됩니다. 그는 하늘의 거문고가 기쁨의 음조를 울릴 때까지, 감사와 찬송, 기쁨을 쏟아 부을 것입니다. 그는 간증 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꽉 짜여진 보통의 형식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속량함을 받은 영혼이며, 그의 전 존재는 하나님의 구원을 깨달음으로 감격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