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Part 1. 성령에 대한 연구

 

성령은 근심할 수 있음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은 심각한 일임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십자가는 너무 무겁고 자기 부정은 너무 커서, 스스로 일하기를 구하며 주의 사업에 참여하려 하지 않을 때 성령은 슬퍼하십니다. 성령은 각 영혼 속에 거하려고 구하십니다. 성령이 존귀한 손님으로 환영을 받는다면,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질 것이고 시작된 선한 일은 마쳐질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사상, 하늘의 사랑, 그리스도를 닮은 행동들이 불순한 사상, 비뚤어진 감정, 그리고 반항적인 행동들을 대신할 것입니다. 

 

성령은 신령한 교사입니다. 만약 그분의 교훈에 유의한다면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자주 우리는 받은 하늘의 가르침을 망각하고 불경건한 마음의 선천적 경향을 따르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각자는 자아에 대항해서 자신의 싸움을 싸워야만 합니다. 성령의 가르침에 유의하십시오. 만약 성령의 가르침에 유의한다면, 그 가르침들은 되풀이되어서 마치 바위에 영원히 새겨진 글씨처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주시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마음에 한 보좌를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은 그에게 복종되어져야만 합니다. 선천적 습관과 욕망은 영혼의 더 고상한 필요에 굴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에 있어서 자신을 전혀 의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인도를 따르면 절대로 안전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성화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에 중도 하차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아직도 자신의 선천적인 충동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다른 영혼을 잘못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8)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떠나심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 10:29).

하나님의 성령을 저항하여 떠나시도록 한 자들은 사단이 그들을 얼마나 극단으로 끌고 갈지 알지 못합니다. 성령이 그 사람을 떠났을 때 그는 한때 바른 빛에서 죄라고 여겼던 그것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행할 것입니다. 만약 그가 그 경고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그는 유다의 경우처럼 그를 배반자와 장님이 되게 한 속임수에 스스로 말려들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한 계단 한 계단씩 사단의 발자취를 따를 것입니다. 그러할 때 어느 누가 그를 설득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슬퍼하며 떠날 때, 주의 종들이 행한 모든 호소는 그들에게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들은 모든 말을 곡해할 것입니다. 만약 사단의 대리자들에게 미혹되지 않았다면 그들을 전율하게 했을 성경의 가장 엄숙한 경고의 말씀들을 그들은 비웃고 조롱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행해진 모든 호소는 헛것이 됩니다. 그들은 꾸짖음이나 조언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모든 간청을 경멸할 것이며, 그들이 한때 옹호하고 높였던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치 않을 것입니다. 진리를 순종치 않도록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라는 사도의 말은 그런 영혼들에게 얼마나 적절한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은 매우 긴요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옛 본성은 계속해서 자신을 다시 주장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서로 하나가 되게 하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영혼 안에서 진리의 구속하시는 은혜 되신 성령이십니다. 그는 감정 전체를 거룩케 하십니다. 그는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가고자 소망하는 영혼들을 회복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성령의 영향 아래서, 그대로 성령을 간직할 경우 영혼을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옛 습관과 관습, 행동에 변화가 반드시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성화의 일은 영혼 안에서 계속되어서 점점 진보하고 확장되게 됩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죄

 

그러므로…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마 12:31).

 

빛과 특권을 가지고 있으며, 경고와 간청을 들었으면서도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 길로 떠나서 도덕적 방탕에 빠져 다시는 용서를 얻지 못한다는 엄숙하고 두려운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왜 사단의 학교에서 오랜 시간 교육을 받으며, 회개와 개혁이 불가능한 행동 노선을 추구하도록 그들 자신을 내어놓습니까? 왜 자비의 제 안에 저항합니까? 그들이 하고자 하면 끝내는 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할 수 없이 그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지경에까지 왜 “나를 내버려두라”고 말합니까? 왜 우리는 이렇게 목이 곧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을 거역하는 우리들은, 개혁을 위해 결단을 내릴 준비가 갖추어질 미래의 어느 날 회개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때 회개는 우리의 권한 밖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주어진 빛과 특권들에 준한 어두움이, 빛에 있는 동안 빛 안에서 걷기를 거절한 자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신비스럽고 막연한 것으로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회개의 초청에 응답하기를 지속적으로 거절하는 죄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기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하는 것이고 첫 배교자를 둘러쌌던 분위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늘 아버지와 아들을 둘러싼 분위기보다 이 분위기를 선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택을 허용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그렇게 제시되었다고 하여 한 영혼도 낙심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주님의 뜻 행하기를 노력하는 한 영혼도 낙담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주 예수께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무한한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신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Part 2.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연구

 

갈라디아서 3:15~18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약속들은 여럿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자손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갈 3:16 참조) 이 자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구원의 방법 곧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구원받느냐 혹은 다른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에 의해서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구원은 그들에 의해서 다시 말하면 자신들을 선하게 만들어서 그들 스스로 구원 받으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노력을 도와주는 귀중한 보조자로 여깁니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의지하기를 즐겨는 하나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갈3:16절은 구원의 방법에 있어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위와 같은 모든 생각이나 주장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자손들이 아니고 그 자손인 것입니다.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아브라함의 영적인 자손과 육적인 자손 아브라함의 육적인 자손은 영적인 자손에 비교해서만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육적인 자손이란 성경에서 가리키는 실제적인 자손이 아니고 종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내쫓김을 받아야 하고 약속의 유업에는 결코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실제적으로 아브라함의 육적인 자손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자손은 그리스도께서 “살려주는 영”(고전 15:45)이며 더 나아가서 이것은 실제하므로 실제적인 자손입니다. 이 사실은 세상에서 육체를 가진 인간들이 완전히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또 그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직 한 계열의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실제적인 자녀들이 존재할 뿐인데 그 자녀들은 바로 믿음에 속한 자들 곧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저주가 없는 유업(기업) “그리스도께서…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하려 함이니라”. 이 “성령의 약속”은 새롭게 된 다시 말하면 저주에서 속량된 모든 땅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손에서 갓 나와 새롭고 모든 면에서 완전한 땅을 인간이 소유하도록 주셨습니다.(창 1:27,28,31 참조)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여 스스로 저주를 취하였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인간과 피조물의 저주를 몸소 담당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며 이 실제의 사건은 원래 계획하셨던 대로 영원한 소유가 되도록 땅을 저주에서 구속하시며 또한 인간도 저주에서 구속하시어 이러한 유업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도록 하여 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해 가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이 영생의 선물이 유업의 약속 안에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영원한 기업”(창 17:7,8)으로 이 땅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의의 기업입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는 약속은 믿음의 의에 의해서 되었기 때문입니다. 의와 영생과 그 가운데서 영원히 살 땅이 모든 것은 모두 약속 안에 들어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의, 영생, 영원한 땅) 우리가 소망하고 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속하는 능력은 창조의 능력, 하늘과 땅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십니다.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그때에는 “다시 저주가 없”(계 22:3)는 영원한 나라가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약속의 언약과 유업 자손이라는 말은 단수인 반면에 약속이라는 말은 복수로 나타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하신 약속은 어떤 하나의 약속이 아니라 약속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지 않은 것을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아브라함이 믿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하나님께서는 갈라디아서 3:17절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은 동일한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고 가나안 땅을 주며 그것과 함께 온 세계를 영원한 소유로 주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3:18절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 그것을 주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맺은 언약이 어떤 자들에게는 그저 약속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가치의 것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개념을 하나님에게도 적용시키는 잘못된 관습을 가지고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과는 어떤 거래도 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들의 몫을 이행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5,36).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땅의 모든 짐승과 새들과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에 답하여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다.(창 9:9~16 참조) 그것들은 단지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은혜를 받았을 뿐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것을 선물로 약속하십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이 주님을 완전히 시인하려고 할 때에라도 하나님과 동등하게 거래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 우리 모두는 겸허한 마음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에 대해 알려주시기를 간구 드려야 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과 거래하기를 원한다면 누구나 하나님 자신의 조건하에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약속을 받는 우리의 기초는 바로 우리들은 진흙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토기장이가 되신다는 그 사실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또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며 또 모든 것이시며 그리고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이며, 거래를 원하는 자들은 바로 이 사실에 기초하여 거래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은 하나님의 맹세로 확증되었습니다. 그 약속과 맹세는 우리의 소망의 근거이며 강력한 위로가 되며 맹세는 그리스도를 보증과 담보로 제시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맹세로 보증하”셨을 때에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 자신의 존재와 동시에 온 우주를 담보로 주신 것입니다. 이 맹세는 죄를 피하여 가는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과 언약의 관계 언약과 약속을 동일한 것이라고 말할 때에 그것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하신 땅, 곧 새롭게 창조된 모든 땅을 의미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오직 의만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하신 땅에 여전히 있을 것이므로 이 약속은 믿는 모든 사람들을 의롭게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며 그 안에서 이 약속이 확정됩니다.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갈 3:15)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언약으로 이루어진 이 일은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완전하신 영원한 의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으로 보장되었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맹세로 확정되었기 때문에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어떤 새로운 것을 소개할 수가 없습니다. 약속에 의하여 유업을 아브라함에게 주셨으므로 만일 430년 후에 어떤 다른 방법으로 유업을 얻어야 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 약속은 효력이 없을 것이며 언약을 무효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전복과 그의 존재의 끝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존재를 들어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유업과 그 유업에 필요한 의를 주시기로 맹세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롬 4:13). 복음은 과거와 미래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시대에도 완전하고 충만하였습니다. 그 조항이나 조건의 가감이나 변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 후에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참 복음에서 어느 하나를 더하거나 뺄 수도 없으며 아브라함에게 요구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어느 누구에도 요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백 삼십 년에 대한 이해>

출 12:40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 삼십년이라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란을 떠나온 때로부터 215년 후에 야곱이 애굽에 들어갔으며 그의 자손들이 애굽에서 215년을 지낸 후에 애굽을 떠나는 출애굽 역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Part 3.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해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표

 

성소에 대한 이해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20) /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 17:2) /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 1:18) /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 19:8) /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계 19:14) / 그가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말 3:2) /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합 3:4)

 

2. 성막 뜰

하나님께서는 성막 뜰에 중요한 세 장소를 지정해 놓으셨습니다. 중앙에는 희생물을 태우는 항상 불이 붙어있는 장작이 있는 희생제단이 서있으며 이 제단과 성막 사이 약간의 남쪽에는 언제나 맑은 물이 채워져 있는 물두멍이 서있습니다. 반대편 북쪽에는 짐승을 죽이는 장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세장소가 제공하는 불과 물과 피로써 주님은 죄책감과 죄의 더러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마련해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양을 끌고 그의 천막을 나와 진영의 중심부에 있는 조용한 광장을 지나 성소 뜰로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하는 그 엄숙한 장면을 마음에 그려보십시오. 그는 머리를 숙이고 자신의 제물을 가지고 조용히, 떨리는 손으로 문휘장을 걷고 거룩한 성소뜰에 들어가 제사장을 만납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에게 앞으로 그가 행하여할 의식과 그 의식에 사용되어질 기구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 그가 스스로 준비되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성소 뜰로 들어가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로 준비해 놓으신 교훈들을 엄숙한 마음으로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A. 나의 모든 길은 그리스도의 것임을 상징하는 세 휘장문들

예배드리기 위하여 성소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는 제사장이거나 회개자이거나 모두 휘장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각 휘장들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지고 그 의미는 같을지라도 제일 바깥 쪽의 휘장은 좀 더 넓고 낮으며, 안쪽의 두 휘장은 좀 더 좁고 높게 만들어졌습니다. 이 사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가 제공된 성소뜰로 들어가는 입구는 가장 넓고, 성소에 있는 성화를 향하여 그리고 다음에는 지성소 안에 있는 영화를 향하여 갈때에, 즉 믿음의 길이 보좌에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좁아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휘장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어근은 울타리 혹은 칸막이 커튼을 의미하며 격리와 보호를 암시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a. 휘장은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오라는 초청

지성소 앞에 있는 휘장은 첫째칸에서 봉사한 제사장을 격려하여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도록 속죄소 위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쉐키나 영광의 빛을 가려주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그 영광의 빛을 휘장의 씨줄과 날줄의 틈사이로 하나님의 종들이 분간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휘장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둘러싸고, 격리시키며 또한 들어가는 문을 제공해주신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으로 우리들이 들어 오기를 원하십니다.

 

b. 예수님의 인성의 표상으로 주신 휘장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품성을 우주에 나타내시기 위하여 휘장으로서 인성을 취하셨습니다.(히 10:20 참조)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그의 위대하심과 위엄이 감추어진 것은 그분께서 슬픔과 시험에 싸인 인간에게 가까이 나아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치는 영광은 자아희생적 사랑의 영광으로 우리에게 드러날 것입니다. 이 드러난 영광은 휘장이 열리면 성소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모든 사람을 당신의 빛나는 임재로 이끌 것입니다.(요 12:32 참조) 이와 같이 자신의 신성을 인성으로 가리워 주신 것은 그분께서 사람들 사이를 다니실 때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그분의 인성과 접촉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옛날 모세가 쉐키나를 보여달라고 기도하였을 때(출 33:12~18 참조)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불같은 임재에서 그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를 “반석틈에”숨도록 하셨습니다.(출 33:19~23,34:5~8)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손으로 그 입구를 덮어 주셨습니다. 모세는 그 손을 통하여 “그분의 영광을 바라볼”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그리스도의 못박히신 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품성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한 “만세 반석”안에 숨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과 선지자들은 이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승리의 영광을 보고 믿는 믿음으로 살았다면 우리들은 십자가의 이편에서 그것을 뒤돌아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c. 아름다움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창조주께서는 이 지구를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색깔로 칠해 주셨습니다. 신비스런 빛깔과 색상, 변화무쌍한 대조 및 혼색의 조화를 이룬 땅과 바다와 하늘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아름다움을 조금 볼 수 있습니다. 변함없이 우뚝 솟아있는 산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소리없이 전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금과 은 기구들과 순백과 무지개 색깔로 된 무늬놓은 두꺼운 천들로 당신의 성소를 꾸미시는 주님의 목적은 우리의 눈과 감각을 즐겁게 하기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성소에 사용되어진 기구들과 휘장들의 색으로도 당신의 계획을 말씀해 주시고 하늘의 주제들에 대하여 다양하게 설명해 주시어 우리의 이해를 돕고 더 나아가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름다움-황금촛대에서 비치는 빛을 반사하는 순금으로 입혀진 벽들과 찬란한 천사들을 훌륭하게 수놓은 빛나는 휘장의 찬란한 색상, 금빛으로 빛나는 떡상과 향단, 지성소 휘장 너머의 거룩한 법궤와 신비한 그룹들, 그 위의 쉐키나 곧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의 가시적 현현-을 통하여 인류의 구속을 위한 사업의 중심이 되는 하늘성전의 영광으로 우리들을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구속의 계획을 살피고 배워 거룩한 사람으로 살기를 얼마나 바라고 계시는지요. 우리들은 “성소”를 통해서 달리는 알수 없는 신성의 여러 측면들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롬 1:19,20 참조)

 

d. 성소에 사용된 색상의 의미

성소에 사용된 색깔인 빨강(심홍, 주홍색), 노랑(황금색), 청색은 여러번 언급되어 집니다. 이 원색소들은 여러가지 비율의 혼합으로서 눈이 식별할 수 있는 모든 색채와 색조가 생성 될 수 있습니다. 이 색상들은 성막의 모든 부분의 상징적 봉사를 높여주며 우리가 이 색들이 보여주는 바를 깨달을 때 우리의 통찰력은 깊어지고 넓어질 것입니다.

흰색 빛의 본질인 흰색은 모든 색깔의 연합으로 이루어 집니다. 성경에서 흰색은 덕과 의, 순결, 고결함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됩니다. 흰색은 인간적 노력이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순결로 빛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지신 예수님의 완전한 성품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당신의 세 제자에게 축소된 그분의 영광의 왕국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구주께서는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되어희어졌”다(마 17:2)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영감은 여기서 흰옷을 빛과 연결시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옷은 외형적이고 가시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슥 3:3~5; 사 64:6 참조) 예수님께서는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의 착한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주홍”같은 죄를 정결케하여 그들의 품성을 “양털같이”(사 1:18) 희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또 다니엘에게 “마지막 때”에 은혜로 “정결케”된 자들은 “희게 될”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이것은 또한 아들의 혼인잔치에 온 손님들이며, 신부를 위하여 아버지가 제공한 흰옷을 입은 승리자들을 나타냈습니다.(마 22:11~14;계 3:5,18; 4:4; 6:11; 7:9,13; 15:6) 이 옷의 근원은 예수님 자신의 품성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계 19:8,14) “표백하는 자의 잿물”(말 3:2)로서의 그리스도의 봉사는 극심한 시련의 연단을 말해주는 한편 “어린양의 피”는 죄악적인 기질을 씻는 귀한 보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생애의 죄악들을 씻기 위하여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의 밝은 광선을 받아들임으로써 희게 되어질 것입니다.

청색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나라가 하늘색의 기초위에 놓여있음을 묘사하셨습니다.(출 24:10) 이 상징적인 색깔은 하나님의 보좌가 남보석이라는(겔 1:26) 에스겔의 글과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쓰신 판이 남보석 판이라는 히브리인들의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의 율법은 하늘왕국의 기초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백성들의 손목에 둘려있던 푸른 색과 그들의 발가를 두르고 있던 푸른색은 그들의 손이 하는 일과 그들의 발검음들이 언제나 하나님의 영원한 율법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색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우리들도 하늘나라로 향해가는 우리의 손과 벌걸음을 그분의 뜻안에 조율시켜야 하겠습니다.

홍색 주님께서는 홍색, 주홍 혹은 붉은색을 피의 색으로 죽음을 초래하는 죄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깨우치기 위하여 사용하십니다. 피는 바로 용서과정의 기초이며 희생 제물에 의하여 예시된 정결의 기초입니다. 이 색깔은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음만 이 칭의와 받으심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예시합니다.

자색 자색은 붉은색과 푸른색을 여러가지 비율로 혼합시킴으로 만들어지며 자색옷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왕들의 옷의 색이었습니다. 자색은 우리의 충성된 대제사장에 대해서 말해주는데, 그분께서는 당신의 봉사에서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삼으신 그 순종의 청색과 희생을 통하여 흘려진 그분의 인성의 피의 심홍색과 연합으로(자색) 우리의 구속을 위해 하늘성소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십니다.

노란색(황금) 노란색은 성소에서 참으로 넓게 사용된 황금의 색깔입니다. 이 황금빛은 힘있게 떠오르는 태양광선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지상의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애를 밝혀주는 의의 태양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황금은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세상의 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왔지만 하늘에서의 가치는 이와는 반대로 그 금 자체가 아니라 금이 상징하는 믿음에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시대의 교회인 라오디게아인들에게 그처럼 절실하게 필요했던 금은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순결케하는 정금같은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상인께서는 이것을 “돈없이 값없이”팔고자 열망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높고, 깊은 의미를 담고있는 색상들인지요!

녹색 순종을 상징하는 청색과 사랑을 상징하는 황금색이 배합되어 생기는 녹색은 하나님께서 창조시 지상을 옷입힌 색깔입니다. 곡식의 선녹색 싹이 겨울잠 후에 태양을 향하여 터져나올때 농부의 희망이 살아나는 것처럼 녹색은 성장과 희망, 불멸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검은색 성막에서 검은색을 사용한 유일의 경우는 지붕의 제일 바깥 덮개인 해달의 가죽에서 입니다. 검은색은 죄에 대한 심한 비통은 물론 빛의 부재, 영원한 영광에서 분리된 흑암을 시사합니다. 부정한 동물에서 취한 이 가죽들은 성막이 대표한 분의 지상 생애의 호감이 가지 않는 외모를 가리킵니다. 그분은 “죄를 알지 못하셨지만”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시고”“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타락하고 죄된 육신을 쓰시고 사람의 생애를 사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 바로 이것이 경건의 비밀이 아닙니까!

 

e. 이 시대에 휘장이 갖고 있는 의미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신 순간에 성전의 둘째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이제 우리에게는 휘장이 걸려있지 않은 “새롭고 산 길”이 열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의 보좌, 휘장이 찢어져 열린, 앞으로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 4:16 참조)

곧, 결국에 하늘성소의 대속죄일이 절정에 이르게 되면 마지막 심홍색의 기록들은 깨끗하게 다 지워질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육체에 있는 상처의 흔적들만이 영원히 남아 “그 권능의 비결”(합 3:4 참조), 광명과 흑암 사이의 대쟁투에서의 승리의 증거를 온 우주에 선포하실 것입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Amen.

히 4:16합 3:4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합 3:4

 

 

Part 4. 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알고 행해야 하는 교훈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행 16:30) /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요 11:25) /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골3:17) /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벧전 1:3,4)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행 16:30)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가 먼저 심판 앞에 나가게 하여 죄없이 함을 받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 교만을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영적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되지 않으며 우리들의 신앙 고백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우리들은 모두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 우리는 은혜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나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은 천국을 위하여 준비할 때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완전히 순종하는 생애를 살아야 할 때입니다.

 

교훈13.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는 우리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을 위한 위대하신 의료 선교사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진리의 씨를 뿌리는 위대한 사업에 당신과 협력할 자원하는 이들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다가갈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진리의 기틀을 굳게 세워야 합니다. 이 세상은 회복을 필요로 합니다. 이 세상은 죄악 가운데 빠져 있으며 가장 두려운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않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업은 널리 보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당신을 위하여 열심히 일함으로 신앙적인 능률을 널리 보급하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끝까지 넓혀져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위한 사업은 완성되어야만 하는 구속의 계획을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호소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곧 주님의 포도원을 경작하는 일입니다. 이 포도원에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할당하신 부지와 일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성공은 거룩하신 주님과 개인적으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주님의 사업은 더욱 발전할 것이며 많은 곳에 진리가 전파되게 될 것입니다. 진리와 의에 대한 하늘나라의 원칙들은 더욱 더 분명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생애 가운데 분명히 나타나야만 합니다. 오순절 날 성령의 강림이 있은 이래로 교회들이 보여준 것보다 더 이타적이며 청빈한 사상이 모든 일의 관계에 나타나 보여야 합니다. 비할 수 없는 큰 권세와 영광으로 나타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하여 살피고 일하며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기적이며 세속적인 독점권의 영향이 감명을 주는 흔적이 추호도 없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주님의 재림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세상으로 향한 영혼의 창문을 닫아버리고 하늘로 향하여 열린 창문을 연다면 이 세상에 세워진 우리의 교회들은 이 세상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빛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시대를 위한 위대하고 고상하며 성결케 하는 진리를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 역시 그 빛을 반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가득히 충만되어 있지 않는 이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상호간에 순결하고 참된 태도를 보이며 말과 애정과 품성으로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있음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우리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징조와 기사가 되어야 하며 모든 분야의 사업을 지혜롭게 추진시켜야 합니다. 각기 다른 분야의 사업들이 서로 원만한 조화를 이루어 모두가 잘 조절된 기계처럼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기쁨이 무엇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오면 서로의 교제에서 진리의 원칙을 나타내지 않는 자들과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으로 주님의 사업을 이행하지 않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진리의 빛을 전파해야 될 자들이 현재 나타내고 있는 이상한 정신들은 전혀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 무덤을 향하여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선포하셨습니다. 부활하신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한 영혼의 생명이 되실 때에 변화가 일어나며 그 변화를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품성으로부터 나오는 향기가 없는 지식과 영향력과 권세에 대한 모든 주장은 전혀 가치가 없습니다. 마치 피가 몸의 생명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영혼의 생명이 되셔야 합니다.

 

교훈 14. 모든 이기심에서 정결케 되어야 할 필요

하나님의 사업에 관련된 자들은 털끝만큼의 이기심이라도 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골 3:17)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명령을 따라 행하여야 합니다. 의롭고 공정한 하나님의 율법은 이웃들과 형제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모든 관계에서 엄격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품성을 따라 완전한 질서와 완전한 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오직 이러한 기초 위에서만 우리들의 사업이 심판의 시련을 견디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상호간에 가장 부드러운 애정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생애란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특권으로 빚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지혜로써 교회 역사의 초기에 희생 제물과 헌물의 제도를 주셨는데 그 제도 자체가 당신 자신을 기초로 한 것이었고 당신의 죽음을 예표하는 것으로 된 제도였습니다. 모든 희생 제물은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를 가리켰으며 모든 영혼에게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주님 안에는 죄가 없었으나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의식의 상징적인 제도는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하기 위한 한가지 목적으로 꾸며진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

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엡 4:13)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재능들을 활동시킬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요구를 수행하는 일에 연합해야 하며 모든 발전 단계에서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순결케 하는 믿음을 나타내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부터 최고의 사랑을 받으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사람이 자기 동료를 위하여 신성한 관심을 가지도록 요구하십니다. 구원받은 모든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사랑을 통해서 구원받을 것입니다. 참된 회개란 이기심을 떠나 하나님과 인간 동료를 위한 성화된 애정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든 영혼에게 진리를 말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빛을 받은 자들은 결단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간과하거나 묵인하실 것이라는 인상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은 죄는 불법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교훈 15.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 나타나야 할 정신

때로 하나님의 일꾼들은 이유를 모른 채 어렵고 일하기 힘든 곳에 놓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어려운 난관에 부딪혔다고 해서 손을 놓고 포기해야 할까요? 흑암으로 둘러싸여 나아갈 길을 볼 수 없다고 해서 뒤로 물러나 신앙을 저버려야 할까요? 결코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은 우리 사업의 근간이 되는 하나님의 능력을 계속적으로 의식하며 신뢰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지도를 따르며 그분의 율법을 떠받들기 위하여 노력한다면 우리들은 멸망하지 않으며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음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훈 16.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

기도는 가정, 교회, 선교 생활에 필요한 중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렬한 기도의 능력에 대하여 너무나도 모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하는 일에 성실하면 그처럼 많은 일에 무기력함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성실하게 간구하는 생애는 풍성한 보상을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가 자신의 거룩한 소명감을 깨닫게 될 때에 성령께서 사업을 지적하시고 영혼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백성의 의무를 가르쳐 주시도록 더욱 많은 열렬하고 힘 있는 기도들이 하늘로 올려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간구하는 영혼에게 가까이 하시리라는 변함없는 허락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벧전 1:3,4)는 산 소망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반드시 성취해야 될 사업에 대한 사명감을 깊이 깨닫게 될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영적 무지로 말미암아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이해할 수 없는 자들을 위하여 우리의 영혼이 고뇌하게 될 것입니다. 극기와 자아 희생의 정신을 우리들의 모든 체험 가운데 엮어 넣어야 합니다.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함으로 우리의 생애 가운데 모순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한다는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생애를 살기에 그 기도들을 응답해 주시는 것임을 절실히 깨닫는 것으로 우리는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은혜의 보좌로부터 도움을 구하여 멸망의 문턱에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큰 사업에 협력하는 한, 하나님의 사업은 퇴보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살아 있고 활동적인 주님의 백성들은 저들이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있으며 주님과 함께 힘을 합하여 끌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온 우주 세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과 세상에 기별을 전달할 수 있는 헌신적인 통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헌신적이고 극기하는 주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가 주님과 협력한다면 하나님께서그 옛날 당신의 제자들과 같이 하셨던 것처럼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들과 같이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책임에 대하여 깊이 깨닫고 깨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극기와 자아 희생의 헌신적 정신으로 일할 자들에게 세상이 전에 알지 못했던 가장 위대하신 선교사의 영을 부어주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성령을 받게 될 때에 능력이 저들에게서 나가게 될 것입니다.

 

Part 5.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14:6-12)

 

두 국면의 삶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기 직전인 이 시대에 초림시 침례 요한이 행했던 그 사업이 바로 지금 이 시대에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여호와의 큰 날(큰 환란의 날)에 설 수 있도록 준비시킬 남녀 일꾼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요한이 전했던 그런 기별을 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요한과 같은 영적인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와 동일한 일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며,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하고 그분을 바라보는 가운데 자아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우리의 품성과 생애를 고상하게 해 줄 것이며,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최초의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느끼며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느 것도 줄 수 없는 능력을 줄 것입니다. 이 능력이 그 자신에게서 상실되도록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기에 늘 주님과의 교통을 등한시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두 국면의 삶, 즉 생각하고 행동하는 생활, 조용히 기도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기도와 노력, 노력과 기도가 우리 그리스도인들 생애의 일상 업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능률과 찬양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으로 믿어야 하며 또한 의무는 모두 우리 자신의 것으로 알고 노력여야만 할 것입니다. 아무도 기도가 없이는 하루 혹은 한 시간도 안전하지 못 할 것이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곧 기도하는 일조차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확고하게 뿌리를 내릴 것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환란은 다가오고 있으며 그 어려움은 각자가 어떤 종류의 믿음을 가졌는지를 드러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깨어서 그리스도 안에 굳게 뿌리가 박혀있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온갖 종류의 오류에 휩쓸려 길을 잃게 될 것 입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깊이 묵상 하는 일에 매일 한 시간 이상 바치는 것은 우리들에게 아주 유익한 일이 될 것이며 또 그의 생애를 한 조목 한 조목씩 연구하고 각 장면 특히 주님의 생애의 마지막 사건들을 확실히 머리 속에 그려 보면 우리의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고 주님과의 교통에 더욱 친밀감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에 대한 유일한 방어책은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마음속에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산 연결을 맺지 아니하면 우리는 결코 자신을 사랑함과 자아방종과 죄에 대한 유혹의 부정한 영향에 대항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악한 습관을 어느 정도는 버릴 수 있는 듯 할 것이며 얼마 동안은 사단과의 관계를 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간마다 자신을 굴복시킴으로 매일매일 하나님과 산 연결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종래에는 사단에게 정복 당하고 말 것입니다. 주님과 개인적으로 친숙하고 계속적으로 교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원수의 마음대로 되어 결국 그의 뜻을 쫓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도우실 것임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께서 꼴 지우시도록 굴복되기까지는 진정한 행복을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새롭게 된 영혼이 그들의 모본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도록 도우실 것입니다.성령의 감화로 하나님께 대한 증오가 믿음과 사랑으로 변화하며 교만이 겸손으로 바뀌어집니다. 그러한 영혼은 진리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며 그리스도께서는 품성의 탁월함과 완전함으로 인하여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위해 필요되는 것은 우리의 본성적 충동이나 정신적 능력이나 거듭나지 않은 선천적 마음의 경향이 아니요 오직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는 거듭난 마음인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무지를 깨우쳐 주시며 우리의 다양한 필요들을 채우는 일을 도와 주십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부단히 쉬지 말고 하나님을 추구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만약 세속적인 정신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 오는 것을 허용한다면 우리에게는 기도할 의욕이 없어지고 능력과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교제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어질 것입니다. 결국에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실 수 없는 처지에 우리 자신들이 놓여지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필요한 성경 연구

비록 새롭게 된 심령이라 할지라도 매일 말씀의 소금을 적용하지 않으면 그 아름다운 마음의 상태를 계속 유지 할 수가 없습니다. 매일 하늘의 은혜를 공급받아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아무도 거듭난 상태를 지속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활용함으로 실체화 되어야 하며 진리의 살아있는 말씀(산증언)을 굳게 붙들고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까지도 그러하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언제나 우리의 만세반석이 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곧 일어날 놀라운 일을 위하여 영적인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이 준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그 계명에 저희 생애를 일치시키려고 노력함으로써만 되어질 수 있습니다. 성경의 진리로 그 마음을 견고히 한 자들 밖에는 최후의 흑암의 대 전쟁(쟁투)을 견딜 자가 없을 것입니다. 오직 성경을 열심으로 연구하고 진리에 대한 사랑을 가진 자들만이 온 세계를 미혹시키는 사단의 속임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님께서 우리를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을 깊이 이해하여야 하는 중대한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계시된 진리의 원칙을 조직적으로 알아야만 합니다. 이 진리의 원칙은 세상에 다가올 사건에 대처 할 수 있게 해주며 그들이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다니지 않도록 방어해 줄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을 말씀의 벽으로 보호벽을 쌓으면 세상이 그것을 절대로 허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곧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말씀의 연구와 암송을 통해 사단의 유혹이 다가올 때 “기록하였으되”라는 말로 곧바로 대항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 시험에 대처하시고 그 시험과 유혹을 물리치신 방법이 아니었습니까! 우리들의 기억의 창고에 귀중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걸어 놓도록 합시다. 이 일은 은이나 금 보다 훨씬 더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할 것이며 일 할 때에도 주머니에 작은 성경을 지니고 다니며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그 귀한 약속들을 암송해야 할 것입니다. 곧 많은 사람들이 기록된 말씀을 빼앗길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우리의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면 아무도 그것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합시다. 그 귀한 약속들을 암송하고 그리하여 성경을 빼앗긴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은 이 시대 하나님의 백성의 닻

마지막 때에 사는 우리들은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와있는 첫째와 둘째, 셋째 천사의 기별을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 세 천사의 기별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과 의무입니다. 첫째와 둘째, 셋째 천사의 기별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내용은 요한계시록 14장 6절부터 12절에 나와있습니다. 셋째 천사의 기별 만을 받아들인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전에 전했던 두 천사의 기별을 체험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단은 이것을 노려 그의 악한 눈을 그들에게 려 그들을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그들의 눈을 하늘 지성소로 향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 하에 많은 사람들은 세 천사 기별 가운데 있는 진리의 완전한 연결사슬을 보고 그 순서대로 즐거이 받아들여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하늘성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기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닻이라고 제시되었고 영원한 복음(첫째 천사의 기별) 안에서 받아들여진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 즉 현대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자들은 사단의 수많은 미혹에 빠지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입니다.

 

생각과 상상력을 통제하는 훈련의 필요성

우리의 믿음에 대한 이유를 설명 할 수 있는 능력은 훌륭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이해가 이보다 더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 영혼은 결코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심령은 모든 도덕적인 부패로부터 정결함을 입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 생각과 상상력을 통제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의무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훈련되지 않은 마음을 유익한 사물에 고정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나, 생각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면 그 영혼의 신앙은 깊어 질 수 없습니다. 거룩하고 영원한 사물들로 마음이 먼저 채워지지 않을 때 그것은 하찮고 피상적인 것들로 결국은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지적인 능력과 도덕적인 힘은 훈련을 받아야만 하며 연습을 통해 그것들은 강화되고 개선되어져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순수하고 고상한 사고를 계발시키고 고양시키며 저속하고 육적인 힘 대신에 도덕적인 능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우리들의 믿음의 선배인 에녹은 승천하기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 당시의 세상형편은 그리스도인이 완전한 성품을 갖기에 오늘날보다 더 좋은 조건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에녹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 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자신이 항상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마음과 생각을 훈련 시켰으며 난관에 봉착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시도록 기도드렸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 여하한 행동도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제가 범죄치 않도록 주의 길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하나님,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요?”이와 같이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길과 방법을 하나님의 계명과 일치시켰으며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시리라고 그의 하늘 아버지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대로 하지 않고 하늘 아버지의 뜻에 모든 것을 굴복시켰습니다.

그는 그 당시 편만해 있던 죄로 인해 더럽혀지지 않았습니다. 에녹처럼 우리도 역시 순결하고 타락하지 않는 생애를 살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역사를 통하여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에녹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 땅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할 사람들을 대표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입니다.지금은 회개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각 사람이 진지하게 반성해 보아야 할 때가 있다면 개인의 헌신의 삶이 절실이 요구되는 바로 지금입니다. 우리 각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아야 합니다. 나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이 시대의 나의 사명과 직분은 무엇인가? 나는 사단과 그리스도 중에서 어느 편에서 일하고 있는가? 모든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도록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지금 대속죄일에 살고 있음이기 때문입니다.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알지 못한 채 하나님 앞에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날에는 신앙에 대한 우리의 공언이 아닌, 우리의 실질적인 마음의 상태만이 우리의 보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성전은 그 더러움에서 정결해져 있는가? 우리의 죄악들이 도말 되도록 죄들은 낱낱이 고백되었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것들에 대해 회개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고상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고 있는가? 그리고 매 순간 나 자신은 내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것과 그러하므로 나의 봉사는 우리 주인이신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엄숙한 마음으로 자신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며 살고 있는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 인가?” 라고 말입니다.

 

심판의 날과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때

우리 모든 사람은 심판의 날과 상관없이 살 수 없습니다. 비록 그날이 오래 지체되는듯하나 그시기가 이제 문 앞에 이르렀으며 또한 급속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곧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살아있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며 무덤 속에 잠자는 자들을 깨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하늘의 사물들을 명상하는 데서 기쁨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지식을 탐구하는데 흥미가 없고 그리스도의 품성을 바라보는데 기쁨이 없다면, 그리고 거룩함이 우리에게 아무런 매력을 주지 못한다면, 하늘에 대한 우리의 소망은 헛된 것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인 앞에 끊임없이 제시되어야 할 높은 목표입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으신 복되고 아름다운 본향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즐겨 할 것입니다.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명상, 복스러운 하나님의 약속들을 맛볼 때, 사도는 그것을 “내세의 능력”(히 6:5)을 맛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오늘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여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오늘 오신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독자로부터 온 편지

현재 저는 알아갈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는지... 하는 의문들에 대해

정말 희미한 안개처럼 생각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말씀을 펴면 조금씩 보이는 것 같고 그러할 때 믿음이 생기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말씀을 다시 잊고 등한히 하면 안개와 같이

내 믿음이 사라져 갑니다. 솔직히 이러한 작은 믿음,

희미한 믿음 또한 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나의 신앙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결과적으로 또 다시 반복되지만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말씀 가운데서 그리고 나의 삶 속에서

주님을 개인적으로 알아 갈 것입니다.

제가 꼭 하늘에 가고 싶은 이유는 이 세상에서의 사랑의 개념이 아닌

진짜 진짜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서…….

미주 독자로부터

생애의 빛을 후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세계 곳곳에 많습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복음 사업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면을 통해서 수고하는 일꾼들의 아름다운 소식들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이번 호에는 미주 독자의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