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권두언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며 기다리는 사람은 더더구나 많지 않습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깨어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충성된 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게 되어있습니다. 영원한 본향,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이 땅을 영원히 둥지를 틀고 살 곳으로 생각하지 않고 깨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과 의무에 충성하면서 부지런히 주님의 사업을 합니다. 주인이 돌아오면 금방 문을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충실된 종같이 말입니다.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눅 12:36,37).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심히 가까웠습니다. 재림의 징조들이 온 세상에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깨어 기다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누가 과연 끝까지 충성되게 주님을 기다릴까요? 그리고 깨어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이번 호에서는 이 주제에 대해 함께 연구해 볼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에 우리 모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Love Letter_ 인생의 로뎀나무 아래서

 

강 영은                                                

 

아직 더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 줄 몰랐습니다.

아직 더 가야 할 길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큰일을 위해 잠깐 쉬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외로움과 낙심 속에서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로뎀나무는 잠깐 지나는 길의 쉼표였지 마침표는 아니었습니다.
앞을 향해 더 힘차게 내디뎌야 하는 발걸음을 위한
하늘 위로의 전주곡이 흐르는 쉼터였습니다.

 

누구에게나 로뎀나무가 있습니다.
누구나 가끔 인생의 로뎀나무 아래서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생의 무게 너끈히 지고 가다가도
믿음의 발걸음 가뿐히 떼며 가다가도
가끔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잠들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바람이 너무 거세게 느껴지고
앞으로 더 갈 수 없을 것같이 길이 험난해 보이고
가슴에 품은 소망 낱낱이 흩어질 때,
그때 로뎀나무 아래로 우리를 초청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나와 만나자고,
그래서 하늘에서 오는 빛줄기를 다시 보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위로를 다시 받고,
일어나 길을 계속 가라고…

 

우리는 가끔 로뎀나무 아래 쓰러집니다.
그리고 그 그늘 아래서 가쁜 숨을 고릅니다.
잘 압니다.
인생의 로뎀나무, 그곳은 편한 곳도 아름다운 곳도 아니라는 것을…
뜨거운 햇볕, 거센 소나기 피할 길 없는 삭막한 사막 같은 곳,
잠깐 머리를 묻고 죽기를 구하는 그런 곳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곳은 오래 머물 곳은 아닙니다.
여정길에 잠시 쉬어가는 쉼터일 뿐입니다.


우리는 가끔 로뎀나무 아래 엘리야가 됩니다.
마구 흔들려 허둥대며 로뎀나무 아래로 피하는…
힘 빠진 채 주저앉아 로뎀나무 아래 숨고 싶은…

 

그러나 우리는 잘 모릅니다. 

로뎀나무 그곳이 다시 희망을 품게 하는 곳인 것을…

로뎀나무 그곳에 숨어있는 새 날개를, 새로운 비상을…

우리는 모릅니다.
인생의 로뎀나무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그 나무 아래 흔들림이 얼마나 확고한 의지를 다시 솟게 하는지를…
아프다고 울 때는 잘 모릅니다.

로뎀나무는 새 엘리야를 태어나게 하는 요람이었습니다.
새 소망이 태어나기 위한 무덤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로뎀나무도 그렇습니다. 

그곳은 진정한 죽음 후에 시작되는 새 삶의 탄생지입니다.
다시 주님을 만나는 소망의 쉼터입니다.
또 다른 도약을 약속하는 희망의 벧엘입니다.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로뎀나무를 지나셨습니까?

얼마나 자주 로뎀나무 아래 쓰러지셨던가요?
그러나 오늘 로뎀나무에 다시 간다 해도,
내일 로뎀나무에 다시 간다 해도,
거기엔 우릴 위로하시는 주님의 환한 얼굴이 있기에,
새 소망으로 인도하실 주님의 따뜻한 손이 있기에,
우리는 이렇게 다시 힘찬 발걸음을 뗍니다.

제1부_ 깨어 기다리는 사람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준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 눈앞에서 성취되고 있는 재림의 징조를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 날을 위해 준비하며 깨어 기다리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림의 징조들에 관해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지만 예비하라고 하시며, 어떤 것이 깨어 기다리는 것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깨어 기다리는 사람은 한가하게 주인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하면서 맡겨진 직분을 완수하고, 주인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활용하여 이익을 남기는 사람입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깨어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와 삶에 대해 조명해 보았습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가 여러분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유익한 기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편집실 –


제1부: 깨어 기다리는 사람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준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 24:42-46).

 

얼마 전 구글 스트릿뷰에 실린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에서 찍힌 한 개의 사진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 개는 같은 장소에서 10년 동안 떠나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개가 주인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섭씨 38도나 되는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한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모르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1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잘 먹지 못해 건강이 나빠지고 늙어버린 이 개는 다리도 절뚝거리고 있었고 각종 질병을 앓고 있었지만, 한결같이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마침 한 동물 단체의 도움으로 구제를 받았지만, 1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기다린 그 개는 앞으로 살날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사연을 접한 사람들은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주인에게 보인 이 개의 충성심이 너무 놀랍다고 입을 모았다. 그것은 대단한 충성이었다.

 

마태복음 24장에는 예수님께서 재림과 세상 끝의 징조에 대해 하신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24장 후반부에는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과 시는 모르지만 생각지 않은 때에 갑자기 오실 그분의 재림을 맞기 위해 준비하며 깨어 기다리라는 분부가 나온다. 그런데 깨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 언급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예비하며 깨어 기다리는 사람들의 특성과 의무에 대해 동시에 언급된 이 구절을 보면, 그 사람들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사람들로서,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다.


깨어 기다리는 사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충성이다. 변함없는 충성만이 끝까지 충실하게 주인을 깨어 기다리게 한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 진리에 대한 충성, 동료들에 대한 충절, 맡겨진 의무와 사명에 대한 충성심이야말로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의 최후의 군사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우리는 귀중한 진리를 알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그 특권에 감사하면서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깨어 기다리는 충성스러운 사람에게는 중요한 특징이 한 가지 더 있다. 그 사람은 충성될 뿐만 아니라 지혜가 있는데, 그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는 지혜요, 때를 깨달아 아는 지혜이며, 지금 이때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지혜이다. 깨어 기다리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사람이 기다리는 동안 수행하는 중요한 임무가 있는데, 그것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는 일이다. 그 주제를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준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며 깨어 기다리는 사람은 양식을 나누어주는 사람이다. 성경에서 양식이나 음식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준비하면서 깨어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서 주인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린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요 6:35).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 참된 하늘의 양식이라고 소개하셨다. 그리고 그분의 살과 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속에는 얼마나 귀중한 교훈이 담겨있는가?

 

1. 자신이 먼저 먹어야 나누어 줄 수 있다.

자신에게 양식이 풍부하고 자신이 주리지 않고 있어야 남에게 양식을 나눠줄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진리의 말씀을 충분히 먹음으로 풍성한 영양을 공급받는 사람이다. 나 자신이 음식을 먹지 않는 한, 그것이 자신의 신체 일부가 되지 않는 한 아무 유익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깨닫고 소화하는 일은 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이다. 진리의 말씀 속에서 주님과 교제하는 일은 주님과 나만이 아는 은밀한 관계인 것이다. 음식이 우리 몸에 영향을 주듯이 그리스도께서 영혼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의 구세주가 아닌, 나 개인의 구주로 알지 않는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아무 상관이나 가치가 없다. 머리로 아는 것이나 이론적 지식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도 주지 못한다. 말씀과 묵상을 통해 마음에 받아들여진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어야 하며, 그분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의 삶이 예수님께 동화되고 그분처럼 변화되어야 그 양식으로 배부름을 얻는 것이다.

 

그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영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친숙하고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분과 함께 그의 영광에 참여할 모든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타내기 위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의 비유를 사용하셨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흡수되어 몸에 힘과 건강을 주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일 때 그 말씀들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일부가 되고, 빛과 평화와 소망과 기쁨을 주며 영혼을 강하게 해준다. 성경 말씀을 알고 그 말씀을 존중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을 깊이 깨달아야 하고, 그 말씀을 열렬히 연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아들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이 법칙을 매일 실천해야 한다. 이 영적 건강 법칙의 준수에 따라 영의 사람의 강건한 정도가 결정된다. 우리는 우리 개인의 품성 형성에 말씀을 실제로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전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행하시며, 일하시고, 사실 수 있게 해야 한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이웃과 세상 앞에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는 삶을 살므로, 우리의 삶 자체가 살아있는 성경 해석이 되게 하여야 한다. 생명의 떡을 먹고, 구원의 물을 마시는 경험을 매일 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향해 점점 자라날 것이다. 우리의 품성은 마음이 먹고 마시는 것들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아들이는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육체적인 힘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영적 생명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할 힘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하늘에서 온 떡, 곧 그리스도가 필요하며, 우리의 심령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계속 교제를 나누고 그분께 완전히 의존해야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 앞에는 무한한 생수의 근원과 생명의 양식이 펼쳐져 있다. 누구든지 얕은 개울가에서 해갈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 앞에는 마르지 않고 한없이 솟아나는 큰 샘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샘이다. 그 생명의 샘 속에서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통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경험인데, 그럴 때에 갑자기 예전에 잘 알던 진리가 새로운 면으로 마음속에 제시되고, 성경의 구절들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섬광처럼 마음속에 떠오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런 복된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갈망을 갖게 되는데, 그럴 때에 비로소 그 사람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충성스러운 종의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양식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먹어야 한다. 자신이 깨닫지 않은 진리를 남에게 나누어 줄 수는 없다.

 

2. 때를 따라 나누어 주는 양식

깨어 기다리는 충성된 사람이 나누어 주는 양식은 그냥 양식이 아닌 특별한 양식이다. 그것은 “때를 따라” 나누어 주는 양식, 때에 맞는 양식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는 당신의 종들을 통해 이 세상에 전하고 싶으신 메시지를 가지고 계신다. 그 당시, 그때에 반드시 꼭 전해져야 할 그분의 특별한 메시지를 가지고 계신 것이다. 그분의 진리의 메시지를 받은 종들은, 그 시대와 그 상황에 맞는, 하나님께서 전하기를 원하시는 진리를 전해야 한다. 그것이 때를 따라, 때에 맞는 양식을 나눠주는 것이다. 그 현시대에 전해져야 할 진리, 그때에 맞는 메시지를 “현대진리”(Present Truth)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대진리는 시대마다 다르지만 그것은 모두 영원한 복음,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구속의 복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 성경의 역사를 통해 현대진리를 크게 나누어 보면, 노아 때의 현대진리는 “방주로 들어오라”는 메시지였고, 엘리야 시대에는 “참 하나님을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침례 요한 때의 현대진리는 “회개하고 성령의 침례를 주시려고 오는 메시아를 영접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들은 그 당대, 그때에 맞는 양식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노아는 순종하여 그때에 맞는 양식, 곧 방주로 들어오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엘리야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바알을 버리고 참 하나님을 섬기라는 현대진리를 전했다. 침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고 외치며 백성들에게 때에 맞는 양식을 나누어 주므로 메시아의 초림을 준비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종교개혁의 주자 마틴 루터에게 전하라고 주어진 현대진리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교황권이 왜곡시킨 인간의 행위에 의존하도록 만든 구원의 도를 전면적으로 공격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루터에게 주어진 사명 전부였으며, 그것은 그 당시에 맞는 현대진리였다. 그러나 루터에게서 얻은 적은 부분의 종교 개혁으로 사람들이 안주하거나 만족하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당대에 맞는 더 밝은 빛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어졌는데, 근대의 요한 웨슬리의 성화에 대한 메시지도 그 시대에 필요한 현대진리였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그 당대마다 필요한 현대진리를 허락하셔서 그 메시지로 미완성되었던 종교개혁 운동이 마쳐지게 하시는데, 결국 이 마지막 시대에도 때에 맞는 그 현대진리의 메시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복음의 완전한 회복 운동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리하여 이 세상의 오랜 죄의 역사를 마치게 될 것이다.

 

2) 이 시대의 현대진리

 

하나님께서는 항상 당시마다 그 시대에 적절한 메시지를 주셔서 그분의 자녀들을 구원하시려고 고안하셨다. 그렇다면 마지막이 가까운 우리 시대에 주어진 현대진리는 무엇인가? 짧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세 천사의 복음의 메시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의의 메시지, 그리고 짐승의 표를 받지 말고 하나님의 인을 받으라는 메시지이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여자의 남은 자손이 되라는 메시지이다.

 

세 천사의 복음은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이 반드시 깨닫고 알아야 할 현대진리로서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을 준비시키는 메시지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는 첫째 천사의 복음은, 심판의 날이 이르렀으므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며 영광을 돌리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고 창조의 기념일을 기억하여 지키므로 경배를 드리며, 우리의 생애와 품성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이 첫째 천사의 메시지이다. 둘째 천사의 복음은 무너진 바벨론의 죄악에 참여하지 말고, 바벨론의 모든 죄악의 습관과 세상의 관습과 세속을 버리고 회개하고 개혁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셋째 천사의 메시지는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려면 성도의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켜야 하며, 성도의 인내와 예수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이루어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하나님께만 충성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어린 양의 성품을 이룬 사람은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받게 되고 짐승의 표의 환난과 이 세상에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게 된다는 것이 이 시대의 현대진리의 요지이다. 그 동안 살아남는 이들(SOSTV 매거진) 월간지를 통해 재차 다루어졌던 이 중요한 핵심 메시지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설명하며 전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먼저 이 주제들을 연구하고 충분히 이해하자. 마지막 시대에 주어진 현대진리인 때에 맞는 이 양식이야말로 마지막 환난과 심판을 피하고 주님 재림의 날에 서도록 우리를 준비시켜주는 메시지이다.

제2부_ 깨어 기다리는 사람은 “장사를 한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눅 19:12,13).

 

재림과 세상 끝의 징조에 대해 경고하시며, 깨어 기다리는 자들의 태도와 자세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의 설교는 마태복음 24장에 이어 25장과 누가복음 19장에 비유의 이야기로 계속된다. 비유에 보면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한가하게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주인의 명령대로 장사하여 이윤을 남겨야 했다. 종말이 가깝든 가깝지 않든,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돌아오실 것이다. 다만 거기에는 오시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심판대 앞에서 결산해야 할 날을 생각하며 존절하게 살아야 한다. 예언의 성취와 사건들을 보아 예수님의 재림이 눈앞에 가까이 다가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든 언제 세상의 종말이 와도, 또 개인의 종말이 와도, 모든 것을 결산하시는 그분 앞에 서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주님의 명령대로 장사를 잘하여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1) 장사한다는 의미는?

 

인간이 얻어야 할 구원과 천국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 이야기에서, 종들에게 달란트와 므나를 맡기고 떠나는 주인과 귀인으로 표상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렇다면 맡겨진 달란트와 므나를 가지고 장사를 하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또 그것으로 이윤을 남겨야 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달란트의 비유를 생각할 때에, 당연히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들을 헤아리게 된다. 주인이 종들에게 맡기듯,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맡겨주셨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재물, 재능, 우리에게 주신 진리, 은사, 우리에게 맡겨주신 가족, 몸, 생명 등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맡겨주셨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 주신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맡겨주신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취급하는가 하는 것이 장사하는 일이며, 그것을 얼마나 잘 사용하고 취급했는가 하는 것이 장사를 잘해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장사는 생계를 위해 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이윤을 얻어 그것으로 자신도 살고 남도 살게 하려고 장사를 한다. 장사하는 사람은 열심히 한다. 하나라도 팔아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장사이며 장사를 잘하는 것이다.

 

영적으로도 그렇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보화와 영적 생명도 그렇다. 우리가 하늘의 보화를 다른 사람에게 팔면 팔수록, 진리를 전하고 나누어 주면 줄수록, 우리의 영적 보화와 생명은 더 풍성해진다. 그것이 나눔의 법칙이며, 하나님 축복의 곱셈 공식이다. 우리에게 위탁된 진리의 보화는 나누면 나눌수록 충만해진다. 그러나 그것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을 때에 그것은 우리 속에서 쇠퇴하고 만다.

 

2) 자신이 먼저 사야 팔 수 있다.

 

성경에는 장사와 상인에 대한 비유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것은 마태복음 13장 44-46절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의 비유이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장사하는 사람은 물건이 있어야 판다. 장사할 사람은 자신이 팔 물품을 먼저 사서 구입을 해야 장사를 할 수 있다. 영적인 장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공들여 찾은 것이 아니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산 것이 아니면, 그 가치를 알지 못하면 장사를 잘하지 못한다.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 감추인 보화를 얻기 위해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놓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어떤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하늘 보화를 찾은 사람도 진리의 보화를 얻기 위해 어떤 값을 치르고, 어떤 큰 희생을 치른다 해도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진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쳐서 살 것이다. 사람들이 영적인 장사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늘의 진리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먼저 사본 사람만이 팔 수 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유는, 만일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이 소중히 간직했던 세상적인 처세법과 유전과 이기심과 욕망, 그리고 경건하지 못한 모든 죄악적인 습성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늘의 보화를 사는 일에는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는 희생,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쳐 그것을 사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바쳐 사기에 충분할 만큼 가치가 있다.

 

좋은 진주를 찾는 장사도 그랬다. 값진 진주를 찾은 그 상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그 진주를 샀다. 그리스도는 값진 진주이시다. 그의 안에 아버지의 모든 영광과 신성의 온갖 풍성하심이 충만해 있고,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주시는 구원과 의는 순백의 진주처럼 결함도 없고 흠도 없다. 예수님은 너무도 값진 진주가 되시므로 그분에 비해서 다른 모든 것은 해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비유 가운데 진주를 선물이라고 하지 않았다. 상인은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주고 그것을 샀다고 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를 선물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무슨 뜻인가? 물론 그분은 값없이 주신 선물이시다. 그러나 그분에게 아낌없이 자기 자신 곧 영과 혼과 몸을 바치는 자들에게만 그렇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을 즐겨 순종하는 생애를 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쳐야 한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모든 재능이 다 주님의 것이므로 그 모든 것을 그분을 섬기는 일에 바쳐야 한다. 구원은 거저 주시는 선물인 동시에 또한 매매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만민이 가질 수 있는 축복이다. 구원은 즐겨 순종하고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소유물로서 그분께 바치므로 얻을 수 있다.

제3부_ 깨어 기다리는 사람은 “기름을 준비한다”

 

예수님께서는 재림과 세상 끝에 있을 징조들에 대해 말씀하신 후,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의 자세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 첫 번째 비유,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예수님의 열 처녀의 비유 이야기는 흥미로운 전개 속에 깊고도 심오한 교훈을 담고 있는데, 특히 재림이 가까운 시간에 살고 있는 마지막 그리스도인들에게 강한 경종을 주고 있다.

 

1) 열 처녀와 깨어 기다리는 자

 

불이 켜진 등잔과 기름을 담은 작은 병을 가지고 신랑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이 지체하자 피곤해서 잠이 들고 말았다. 갑자기 한밤중에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은 황급히 깨어 일어났다. 열 처녀는 등을 들고 나갈 채비를 차렸다. 그런데 기름을 채우는 일을 등한히 했던 다섯 처녀의 등잔의 불이 꺼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신랑의 오심이 그렇게 오래 지체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비상사태를 위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절박해진 그들은 기름을 꾸어달라고 사정을 했으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등잔과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의 행렬과 함께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혼인 잔치의 문은 닫혀 버렸다. 돌아와 문을 두드리는 미련한 처녀들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주인의 말과 함께 문밖 캄캄한 거리에 버려지고 말았다.

 

신랑을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두 종류의 처녀는 주님을 기다리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들을 처녀라고 부른 것은 저희가 순결한 신앙을 지킨다고 공언하기 때문이다.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기름은 무엇을 표상하는가? 기름은 성령을 표상한다(행 10:38, 눅 4:18 참조).


비유 가운데 신랑을 맞기 위해 나갔던 열 처녀는 모두 다 등잔과 기름 담을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고,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화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을 기다리는 처음 얼마 동안은 그들 사이에 별다른 차이를 볼 수 없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이와 같다. 모든 사람이 다 성경의 지식을 가지 있고 그분이 오실 것을 확신하며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리는 시간 동안 마음은 시험을 받는다. 그리고 그 시험으로 인해 재림을 맞을 준비가 소홀해지고 잠에 빠지게 된다. 그 시험이란 무엇이며, 우리를 잠에 빠지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 재림의 지연과 감정의 고조

열 처녀의 비유는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라고 하여 신랑이 오는 일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지체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재림의 지연을 여기에 살짝 덧붙이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짧은 문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유추해 볼 수 있는가?
왜 신랑이 더디 오는가? 왜 기다리는 자들이 조는가? 혹자는 여기서 문장 앞뒤의 맥락을 보아 슬기로운 처녀들은 졸았고, 미련한 처녀들은 아주 깊은 잠에 빠져 잤다고 해석한다. 아무튼 신랑은 그들의 기대만큼 빠르게 오지 않았음이 분명하고 그들은 지쳐서 다 졸든지 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처음부터 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계속 그들의 옷매무새를 고치고 등잔의 불과 심지를 다듬으면서 신랑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신랑의 오심은 지체되었고, 그 지연되는 시간은 기다리는 사람들의 참된 동기와 상태를 드러내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 중에 종말론적인 사상에 치우치는 사람들이 있다. 종말론 사상에 빠진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은 감정의 흥분 상태와 충동적인 감정의 발로이다. 그들의 시각과 신앙의 동기는 자주 재림의 시기와 보상에만 맞춰져 있다. 그것은 시대의 어떤 징조나 현상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매우 불안정하고 얕은 감정적인 신앙이다. 그들은 마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오는 돌밭 같은 마음의 소유자들로서, 처음에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메시지와 징조를 볼 때에 흥분으로 감정이 고조되고 충동적으로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보여주고 버려야 할 것들을 지적할 때에, 진리의 메시지에 싫증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우상들을 버리고 굴복하는 일을 게을리하게 된다. 그리하여 참된 거듭남이나 성품 변화에 주력하기보다는 더 흥분적이고 더 자극적인 시대의 징조나 예언의 성취만을 요구하게 된다. 지금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때이다. 세상의 말세의 예언 성취가 우리에게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때와 징조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안 된다. 때의 멀고 가까움에 상관없이 주님을 향한 우리의 충성과 재림에 대한 준비는 변함없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2.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사람들이 재림을 기다리다가 피곤해지는 이유 중에 하나는 생활의 염려이다. 재림의 지연과 기다리는 동안에 겪게 되는 많은 시련 때문에 낙심하는 사람들은 눈을 세상에 돌리게 되고 깨어 있는 일을 중단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이생의 염려로 지치고 재물의 유혹에 기만당해 깨어 기다리는 위치에서 떠나 졸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염려에 취해 깨어 기다리는 일에서 이탈하거나 세상의 번영에 눈멀게 되는 일이 없도록 경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깨어 기다림으로 세상과 분리된 것을 나타내야 한다. 깨어 기다리는 것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서 참으로 순례자며 나그네라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보화를 얻기 위해 열성을 내고 야망을 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깨어 기다리는 열렬한 모습으로 그들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2) 미련한 처녀

 

깨어 기다리는 사람은 기름을 준비한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을 가졌지만 기름 그릇에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씀을 알고 있었지만 성령이 결핍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은 말씀을 머리로 알기는 하지만 성령의 부재로 말씀을 행하거나 말씀대로 순종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성령의 감화가 없는 진리의 이론만으로는 사람의 심령을 깨우치고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가 비록 성경의 말씀과 약속들에 정통하다 해도 하나님의 영이 진리를 깊이 깨닫게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의 품성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차이는 그것이었다. 똑같이 말씀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 무리는 성령의 역사 속에서 그 말씀으로 변화되었고, 한 무리는 말씀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을 뿐 그 말씀대로 변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등잔은 불을 밝힐 수 없었다. 미련한 처녀들은 진리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며 또 진리를 믿는 사람들에게 매혹되었지만, 진리가 요구하는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들은 반석 되시는 예수님 위에 떨어져 저희의 옛 성질을 깨뜨리지 않았다. 처음에 말씀이 좋아서 주저하지 않고 받았지만 그 말씀의 원칙을 실천하지 않았다. 그 말씀의 감화력은 순간적일 뿐이었다.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사람들은 단지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행위만으로 만족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품성을 깊이 연구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지도 않으므로 그들의 신앙은 외적인 신앙에 그치고 그 신앙은 점점 형식화되었다. 그들이 자신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그들의 부족을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가서 그것을 채워 달라고 간청할 때는 너무 늦을 것이다. 영적인 은혜와 성령의 역사에 있어서는 아무도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충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품성은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믿을 수 없고 아무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성령을 받을 수 없으며, 더욱이 성령 역사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품성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 품성은 위기의 때에 나타난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리고 졸던 처녀들이 잠을 깨었을 때에 누가 준비되었는지 알게 된 것처럼, 심판이 갑자기 임할 때에, 뜻밖의 재난이나 죽음에 직면하게 될 때에, 어떤 위급한 사태가 생길 때에 과연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준비되었는가 드러날 것이다. 머지않아 은혜의 시기가 끝나고 최후의 큰 시련이 임하게 될 것인데 그때 가서 심령의 부족을 채우기에는 너무 늦게 될 것이다.

 

3) 먼저 기름을 받아야 빛을 비춘다.

 

열 처녀로 표상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재림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중 다섯은 준비되지 않았다. 우리는 “보라 신랑이로다”라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깨어나 텅 빈 기름병에 기름을 넣으려고 하는 방법으로는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할 수 없다. 그 기름은 지금 준비해야 한다. 비유를 보면 슬기 있는 처녀들은 등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릇에 기름을 담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등불은 기다리던 그 밤 동안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환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신랑이 온 때는 가장 캄캄한 때, 한밤중이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재림도 이 지상 역사의 가장 캄캄한 시대에 있을 것이다. 깨어서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은 성령을 통해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을 비춰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며 그것을 받는 자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된다. 그분의 영광의 빛, 그분의 품성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서 비쳐 나오게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는 성령이 필요하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출 수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도 자기가 받지 못한 것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 누구도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위한 빛의 전달자가 될 수 없다. 스가랴 4장의 상징에 나오듯이, 등대가 끊임없이 밝은 빛을 내는 것은 하늘의 사자들이 금 그릇에 있는 금 기름을 금관을 통해 성소의 등잔에 넣어 주기 때문이다. 빛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의 성령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합된 모든 사람 속에는 사랑의 금 기름이 끊임없이 부어져서 그 사랑의 빛이 진실된 행동을 통해 반사하게 된다.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증거는 하나님의 사랑의 빛이 우리에게서 흘러나오는 사실로 증명될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기름을 공급해주실 때, 우리는 완전한 평화와 사랑의 빛을 반영하게 된다. 생활 속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움과 향기로 우리는 하나님을 증거하게 된다. 성령의 금 기름을 매일 공급받는 경험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등잔을 불타게 하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 비치게 하는 성령의 기름이 매일 우리 속에 부어지도록 하자. 그것이 깨어 기다리는 사람들의 할 일이다.

제4부_ 깨어 기다리는 사람은 “맡겨진 것을 잘 관리한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마 25:16-18).

그리스도께서는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 주셨는데, 그것은 무료하게 기다리는 일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일하면서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교훈을 달란트의 비유로써 가르쳐 주셨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주인은 먼 나라로 떠나가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자기의 소유를 관리하라고 맡겼다. 종들은 주인의 것을 맡은 자들이었고, 그 맡겨진 것들은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주인이 맡긴 것을 관리하는 관리자, 요즈음 말로 말하면 매니저에 불과했다. 좀 더 고대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청지기였다. “청지기”(steward)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서 생소하게까지 느껴지는 말로, 현대 용어로는 그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다른 단어를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청지기의 사명은 무엇일까?

 

1) 신실한 청지기가 되기 위해

 

성경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고전 3:9, 벧전 4:10)라고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청지기들이다. 우리는 모두 값으로 사신 바 된 하나님의 소유물이며,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구속의 값으로 치러진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주신 은사와 선물들을 잘 활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달란트는 성령의 선물이기도 하지만, 선천적이고 후천적인 것, 또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과 관계없이 모든 선물과 재능을 다 포함하여 달란트라고 한다. 이 달란트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나누어 주셨다. 달란트는 아무렇게나 나누어 주시는 것이 아니다. 다섯 달란트를 사용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받게 되고 두 달란트만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달란트를 받게 된다. 한 달란트만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는다. 그러나 아무도 자기가 더 큰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각 사람에게 달란트를 나누어 주신 하나님은 그것이 크거나 작거나 간에 각자가 그 맡은 달란트를 잘 활용할 때 모든 사람으로부터 똑같은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사용해야 하고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고후 8:12)신다.

 

우리는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에 청지기로서 모든 달란트를 정직하고 성실하게 관리하여 주인이 돌아와서 우리를 볼 때에 만족할 만한 결과를 드려야 한다. 모든 사람은 주님을 위해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 요구에 어떻게 응했느냐에 따라 심판 날에 그것에 대해 회계해야 할 것이다. 달란트는 아무리 적을지라도 사용하고 활용해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크게 관계되는 문제는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가 아니고, 받은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모든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대의 선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각 기능을 최대한 완전하게 계발해야 한다.

 

2) 달란트와 계발

 

1. 품성 계발
품성 계발은 우리에게 활용하고 노력하여 이루라고 맡겨주신 가장 중요한 달란트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일꾼으로 사용하시기 위해 사람들을 훈련하시며 그 훈련과 연단을 통해 품성이 계발되도록 섭리하신다. 완전한 품성을 얻는 일은 쉽지 않다. 고상하고 원만한 품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우연히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고상한 품성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를 통하여 개인이 노력함으로써 얻는다. 품성은 자아와 맹렬하게 싸움으로써 형성된다. 타고난 성벽을 끊어 버리기 위하여 계속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영생을 얻기 위해 필요한 좋은 품성을 계발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과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 누구든지 자신이 세운 표준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다. 그러므로 표준을 높이 세우고 모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한 계단씩 극기와 희생으로 그리스도인의 사다리를 올라가도록 하자. 주의 영광을 위하여, 또한 품성의 아름다움을 닦기 위하여 대망을 품고 전진하는 사람들을 위한 하늘의 풍성한 은혜가 준비되어 있다.

 

2. 지식과 언어

지식을 습득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사용하는 것 또한 달란트를 활용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 많은 재능과 더 명석한 식별력을 갖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영의 지배 속에 있다면 우리의 지능이 계발되면 될수록 그것은 더욱 효과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될 것이다.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이 원만한 교육을 받았을 것 같으면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훨씬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지적 자격을 갖출 기회를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달란트 가운데 언어 또한 부지런히 수련해야 할 달란트 가운데 하나이다. 언어의 달란트는 큰 축복인데,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각성시키기도 하고, 설득시키기도 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을 올릴 수 있으며, 언어로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구주의 사랑을 이야기해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우리의 언어를 수련하고 계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은 듣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소개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진리를 전하는 자의 말하는 방법에 따라 사람들은 그 진리를 받아들이게도 되고 거절하게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을 할 때에는 듣는 사람이 그 말을 잘 이해하고 마음에 감화를 받을 수 있도록 명확하고 똑똑하게 해야 한다.


언어를 바르게 사용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분야와 관계가 있다. 우리는 말할 때 쾌활하고 정확하게 말할 뿐 아니라 친절하고 예절 있게 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부드럽고 친절한 말은 사람의 심령에 내리는 이슬이나 가랑비와 같다. 성경은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골 4:6) 고 권면하고 있다.

 

3. 시간과 건강

가장 공평하게 주어진 달란트는 시간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져 있다. 우리의 시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매 순간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청지기인 우리는 모든 시간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시간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 인생은 헛되이 보내기에는 너무도 짧다. 우리가 영생을 위하여 준비할 은혜의 기간은 불과 얼마밖에 없다. 우리는 낭비할 시간도 없고, 이기적 오락을 위하여 쓸 시간도 없고, 죄에 방종할 여가도 없다. 내세 즉 영생을 위하여 시간을 활용하여 준비할 때는 지금이다.

 

건강은 사람들이 별로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축복 가운데 하나인데 우리의 정신적•육체적 능률이 건강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인은 육체를 가장 양호한 상태로 보존하여 영적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체력이 약해지면 정신력도 약해져 선과 악을 구별하는 판단력도 감소하고, 선을 택할 힘과 의지력도 약해진다. 우리의 체력을 잘못 소모하게 되어 건강을 잃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우리의 삶의 기간이 단축되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업을 완수하지 못하게 되므로 육체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을 잘 지켜 건강을 보존하여야 한다.

 

4. 재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재물을 맡겨 주시고 사람들에게 재산을 얻을 능력을 주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돈을 주신 것은 우리 자신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는 신실한 청지기로써 이 재물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다 주님의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사용한 사용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돈을 사용하는 일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최상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지 아닌지가 나타날 것이다. 재물은 선을 위하여 쓰일 때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큰 날에는 사용하지 않고 사장해 둔 달란트와 그것을 활용하기를 등한히 한 일에 대해서 결산해야 할 것이다.

 


3) 한 달란트 받은 사람

 

달란트의 비유에서 문제되는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이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었다.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은 사람은 가장 적은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었다. 자기가 타고난 재질이 적다고 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봉사할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님께서는 선물을 나누어 주심으로써 사람을 시험하신다. 자기가 가진 어떤 작은 달란트라도 그것을 활용하는 데 등한히 한 사람은 비록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 한 달란트를 감추었던 것처럼 역시 땅에 감추었을 것이다. 그가 한 달란트를 잘 활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가 불충실한 종임을 증명하며 그가 하늘의 선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눅 16:10)되다. 작은 일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우리는 영생을 위한 준비에 소홀할 수 있다.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 지극히 작은 의무에 불충실함으로써 창조주께 마땅히 돌려야 할 봉사를 하지 않게 되며, 작은 일에 바른 원칙을 따라 살지 않으므로 큰일에서도 하나님을 순종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생애의 사소한 일을 취급하는 데 나타나는 결점은 훨씬 중요한 일에까지 미친다. 작은 행동이 반복되어 습관이 되고, 습관은 품성을 이루게 되어 그 품성이 현세와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을 보면, 작은 일에 충실한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마치면서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이 세상 역사의 해도 저물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들은 지난 생애 동안에 하나님께 드린 우리의 섬김과 봉사와 사명에 대해 반추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활용하며 살았는지를 뒤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주어진 삶은 하루하루가 하늘 시민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귀중한 수업시간입니다. 이 땅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하늘의 시민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둥지를 틀고 살 곳이 아닙니다. 이 땅의 삶은 잠깐 빌려 온 것, 잠깐 우리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지고 주어진 것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취급하며,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 우리가 영원한 삶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지 아닌지 판가름이 납니다. 주어진 달란트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달란트를 계발하면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들에게 약속된 아름답고 풍성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가서 살 날이 가까워져 옵니다. 머지않아 예수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그 날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는 독자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계 동향 Top News

 

1. 벨기에, 2차대전 후 최대규모 시위

벨기에 브뤼셀에서 지난 11월 6일 새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대해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벨기에 정부가 최근 유럽연합의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맞추기 위해 연금 지급 나이를 현행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하는 등의 조치를 발표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 약 12만 명이 시위에 나선 것이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며 최소 14명이 다치고 수십 명이 연행됐다. 노동단체들은 정부가 연금 개혁을 철회하지 않으면 다음 달(12월) 15일 전국적인 규모의 총파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도 긴축반대 시위가 있었다.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빠른 고령화로 재정 고갈 우려가 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정부와 국민들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2. 일본, 2차 양적 완화 발표

일본은행은 지난해 4월 1차 양적 완화에 이은 2차 양적 완화를 진행하기로 지난 10월 31일 발표했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4월부터 연 60~70조 엔 늘리는 1차 양적 완화를 실시해왔다. 양적 완화 발표 직전인 지난해 3월 말 146조 엔이던 통화량은 올해 9월 말 252조 엔으로 18개월 만에 106조 엔이나 늘었다. 일본은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연 60~70조 엔이던 통화 공급량을 연 80조 엔으로 늘리는 2차 양적 완화를 발표한 것이다. 일본 은행은 이미 일본 국채의 최대 보유자이며 이렇게 양적 완화를 늘리면 정부 발행 채권을 일본은행이 모두 사게 될 전망이다. 이것은 화폐를 인쇄하여 일본 정부의 부채를 부양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결국 일본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돌이킬 수 없는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3. 멕시코 대학생 43명 실종 사건과 항의 시위

지난 9월 멕시코 게레로 주의 이괄라 시에서 교사임용 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던 43명의 대학생이 실종됐다. 이들은 인근 야산에서 불태워진 채 발견됐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 11월 7일 멕시코 검찰은 실종된 대학생 43명이 경찰과 유착된 갱단에 끌려가 살해된 뒤 시신이 모두 불태워졌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11월 초에 체포된 이괄라시 호세 루이스 아바르카 전 시장은 시위 학생들이 부인의 연설을 방해하는 것을 막으려고 경찰에 진압을 지시했고, 경찰은 체포된 학생들을 갱단에 넘겨 살해하게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1월 12일 이번 사건에 분노한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면서 현지 여당 당사 건물에 방화하는 등 과격 시위를 벌였다. 사건이 발생한 게레로 주와 수도 멕시코시티 등지에서는 시위대의 방화와 정부 관리 감금, 공항 점거 등이 이어지며 혼란을 겪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멕시코 국민들의 분노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로 불붙어 확산되고 있다.

 

4. 이스라엘 예루살렘 유대교 회당 테러

지난 8월 50일간의 교전 끝에 휴전을 선언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사이가 다시 악화되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예루살렘의 한 유대교 예배당에 칼과 도끼, 권총으로 무장한 팔레스타인인 괴한 2명이 침입해 기도 중이던 유대인을 무차별 공격하여 유대교 랍비 4명이 죽고 8명이 다쳤다. 이 외에도 최근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단독 테러가 계속 일어나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테러가 계속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정착촌 추가 건설을 강행하고 유대교와 이슬람교 공통 성지인 템플 마운트 입장을 제한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불만이 심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부 소셜미디어에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런 외톨이 늑대형(단독) 테러를 부추기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어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5. 홍콩 민주화 시위 52일 만에 해산 위기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52일간 이어진 홍콩 민주화 시위가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이 홍콩 행정 수반 선거에 나올 수 있는 후보를 친중국계로 제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촉발된 홍콩 민주화 시위는 10월 초만 하더라도 애드미럴티 광장에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리며 당국을 긴장시켰다. 최루탄 공격을 막아낸 우산이 평화 시위의 상징으로 떠오르며 ‘우산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10월 20일 홍콩 고등법원의 점거 금지 명령과 경제악화를 우려하는 반대 여론에 부딪힌 시위대는 지난 11월 18일 시위대가 설치한 철제 바리케이드와 텐트 등을 철거하는 경찰들에게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위대한 신앙인들_ 보헤미아의 진리의 옹호자 얀 후스

 

얀 후스는 1370년 보헤미안 후시네크 지방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사제의 길에 들어서서 프라하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연구하였다. 그가 사제가 되고자 했던 동기는 그 당시 농부의 아들들이 그랬듯이 안정된 생활기반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신학수업 과정에서 철저한 변화를 경험하고 열정적인 진리의 탐구자요 신학자로 거듭났다. 결정적으로 후스에게 영향을 미친 사상가는 존 위클리프였다.

위클리프는 성경에 입각해 기존 교회질서에 준엄한 비판을 가하고 철저한 교회개혁을 부르짖었던 종교개혁의 선구자였다. 위클리프는 개혁에 불을 붙여서 교황권의 가장 어두운 부분과 무지에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제롬에 의해 소개된 그의 교리는 보헤미아까지 퍼졌으며 당시 겸손하게 나귀를 탄 예수님의 모습과 삼 층 면류관을 쓰고 화려한 장식을 한 교황의 행렬을 비교하는 두 그림을 통하여 프라하에는 큰 동요가 생겼다. 그러자 프라하의 대주교는 교황으로 하여금 위클리프의 저술을 읽지 말도록 하는 교황 칙령을 받아내고 아울러 보헤미아어로 설교하는 것도 금지하였다. 이때 후스는 교황의 칙령에 순종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유롭게 학교나 강의실에서 설교하였다.

교황은 1410년 후스가 교황의 명령에 불복종한다는 혐의로 로마로 소환 명령을 내렸다. 후스는 교황의 소환에도 응하지 않자 교황은 1411년에 파문을 선포한다. 오히려 후스는 교황이 교회를 위해 일하지 않고 자기의 사익을 위해 행동하는 교황이 과연 교황으로서의 권위가 계속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성경이야말로 교황을 포함한 모든 기독교 신자들을 포함하는 궁극적 권위라고 주장하였다. 즉 성경에 순종하지 않는 교황에게는 순종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또 교황 요한 23세가 전쟁 비용에 쓸 목적으로 면죄부를 판매하는 행위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죄의 용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인데, 면죄에 관한 신성한 것을 매매하는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같은 후스의 반대 주장에 따라 많은 보헤미아인은 교황청의 착취행위에 대하여 공개 시위를 벌였다. 이때 그는 자기로 인하여 자기 조국 전체가 복잡한 신학 논쟁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프라하와 강단을 떠나 친구의 성채에 은거하면서 '교회론'(De Ecclesia)을 저술한다. 이 논거는 주로 위클리프 사상과 비슷하였다.


이 무렵 콘스탄스에서 종교대회가 소집된다. 당시 콘스탄스 회의는 전 유럽에서 5천여 명이나 참석하는 새 시대의 개혁을 열망하고 교회의 내분을 화해시키고 이단을 뿌리 뽑는 대대적인 회의였다. 이에 그는 이설을 퍼뜨리는 자로 대회에 소환되었지만, 황제의 통행허락으로 자유로운 몸이었다. 그런데 후스가 1414년 콘스탄스에 도착하자마자 죄수 취급을 받고 독방으로 감금되면서 이단 사상 철회를 요구당했다. 그는 만약 누구든지 자기가 이단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만 하면 기꺼이 응하겠다고 하며 자기가 이단 사상을 철회한다면 자기가 과거에 이단이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결과가 되므로 이를 거부하였다. 그리고 회의자들 앞에서 공정한 판결을 받을 길이 없음을 알고 담담하게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완전히 공의로우시며 유일한 심판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항소하리라. 나는 그분의 손에 처분을 맡긴다. 왜냐하면, 그는 거짓 증인들이나 오류에 가득 찬 회의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진리와 공의 위에서 모든 개인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후스는 다시 감옥으로 보내졌다. 많은 이들은 후스에게 회의의 권위만 인정하면 방면될 것이므로 그렇게 하도록 권면하였다. 그러나 “그렇다면 내가 하늘과 순결한 복음을 전한 이들을 무슨 면목으로 쳐다볼 수 있겠는가? 나는 그들의 구원을 나의 목숨보다 더 귀중히 여긴다”며 거절하였다. 마침내 그는 악마가 그려 있고 이단자라는 글자가 쓰인 고깔을 뒤집어쓰고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마지막으로 오류를 취소하라는 권고에 “무슨 오류를 취소하라고 하는가? 나는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저술한 것과 전파한 것은 모두 사람을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증거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저술하고 전파한 진리를 나의 피로써 확인하기를 매우 기뻐한다” 그리고 "주 예수님, 바로 당신을 위하여 이처럼 잔인한 죽음을 아무런 불평 없이 감당합니다. 부디 나의 적들에게 자비를 내려주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을 본 원수들까지도 그의 태도에 감동을 하였다.

후스의 몸이 다 타버린 다음에 그 재와 흙을 모아서 라인 강에 던져 이단의 흔적을 남기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몇몇 체코인들은 후스가 사망했던 자리의 훍을 파서 체코로 돌아가 콘스탄스 종교회의가 행한 죄악을 기념했다. 그리고 보헤미아 모든 사람은 만장일치로 콘스탄스 종교회의를 거부하고 자격이 없는 교황에게는 복종할 필요가 없음을 선포하여 후스의 신앙에 동조할 것을 엄숙하게 맹세했다.


후스의 순교는 전 보헤미아 국민들을 똘똘 뭉쳐 저항케 하고 커다란 개혁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는 이미 가고 없으나 그가 생명을 바쳐서까지 옹호한 그 진리는 결코 멸절될 수 없었다. 그의 신앙과 충성의 모본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문과 사망을 당하면서도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후스의 생애와 사상은 한마디로 진리에 대한 탐구와 열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가 화형되기 전 남긴 글은 그가 전 생애를 통해 추구했던 진리가 무엇인지를 증언하고 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여, 진리를 찾으라! 진리를 들으라! 진리를 배우라! 진리를 사랑하라! 진리를 말하라! 진리를 지키라! 죽기까지 진리를 수호하라! 그것은 진리가 너를 죄와 악마와 영혼의 죽음과 마침내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후스의 처형 뒤 보헤미아인들은 그 후에도 많은 박해를 받았으나 이들의 정신적 유산은 종교개혁의 꽃을 피우고 후스의 사상과 뜻을 이어받은 강력한 신앙공동체인 ‘모라비안 형제단’이 형성돼 이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의 복음이 체코 민중의 가슴에 심어졌다. 모라비안 형제단은 경건주의의 모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선교의 아방가르드 역할을 했다.

진리 탐구_ “영적 이스라엘” 그 믿음의 시작 2

 

믿음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대상(영적 대상)이 있으며, 믿음의 생활에는 영적인 분별이 있어야 함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2-14).

 

성경의 말씀이나 예언들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문자적으로 보이는 대상으로서 육신적인 적용이 될 수가 있으며, 두 번째로는 장래의 사람들에게 영적인 교훈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영광스러운 약속들이 첫 번째로 구약시대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셨으나 그 백성은 반역과 불순종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순종”이라는 조건에서만 성취될 수 있는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은 유대 민족에게 성취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유대 민족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언약이 구약시대의 유대 민족에게 성취되지 못했을지라도 그 언약들은 결코 무효가 되거나 헛되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 언약들은 신약시대에 탄생하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을 대상으로 더 넓은 온 세상에 영적인 교훈으로 적용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유대 민족의 반역과 불순종으로 성취되지 못한 하나님의 언약은 세상 곳곳에 있는 신약시대의 영적 아브라함 자손들을 통하여 오늘날 영광스럽게 성취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재건한다는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의 그리스도 교회가 세워지는 것에 영적인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부터, 즉 신약 성경에 기록된 성전은 눈에 보이는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들로 구성된 영적인 교회를 의미하며 지어져 가는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여러분은 구약시대 당시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과 오늘날 영적인 예루살렘 성전인 그리스도인을 영적인 분별을 통해 진리를 옳게 구별하는 길에 한 걸음 더 내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아십니까? 지금 중동의 이스라엘 땅에 가시(可視)적인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기도하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어떻게 보며, 성경을 어떻게 분별하며, 주님의 재림에 대해 어떻게 기도하고 계십니까?

기독교회사_ 예수회와 인도의 성 도마 그리스도인들

 

제수이트들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지배하고 있을 때 그들은 주로 성 도마 그리스도인들을 카톨릭으로 개종시키려는 목적으로 정복자들과 동행했다. 그렇게 오만한 수도사들의 압도적인 탄압을 경험하게 된 것은 인도의 불행한 운명이었다. 왜냐하면, 예수회 교도들은 고상한 것처럼 보이는 배반 행위에 능숙했고, 민첩한 토론 기술을 오랫동안 훈련받아서 모호한 용어들을 교묘하게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단순하고 사람을 의심치 않는 성 도마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예수회교도들은 모든 학교와 대학을 지배하기로 계획했다. 예수회는 비(非)카톨릭계 학교들 속에서는 제수이트로서가 아니라, 그 학교가 소속된 개신교회들을 지지한다고 공언하는 자들로서 잠입해 설교단과 교수들의 책상들을 점령함으로써 그 일을 성취하려고 마음먹었다. 1582년경의 그들의 성공사례로서 48년이 지난 후에야 그 지령이 발견되었는데, 예수회는 유럽에 있는 287개 대학과 대학교들을 지배했으며, 어떤 학교들은 그들이 직접 창설한 것이었다.

 

그들의 깊은 연구 목표는 친선을 가장해서 정부의 봉사직이나 고관들의 고문으로 높이 올라가 취업을 하고, 직무에 영향을 주어 그들을 로마 카롤릭의 활동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기만술의 노련한 대가들이었다. 그들은 소문난 참사를 은밀하게 끌어들이고, 동시에 그 과거의 참혹한 사건에 대한 공포로부터 구조해 주는 수단을 제공하는 정책에 숙련되어 있어서, 다른 이들은 재난의 원인 제공자로 비난을 받지만, 자기들은 재난의 궁지에서 구원해 준 자들로 신임을 얻곤 했다.

 

제수이트들과 함께 종교 재판소가 인도에 들어왔다. “1560년 고아에 세워진 종교 재판소는 한층 더 단호한 형태의 강박적인 강요였는데, 이윽고 그 끔찍하고도 신비한 형벌들을 통하여 두각을 나타냈다.” 인도의 성 도마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해진 고문 기구들은 아시아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 유럽인이 만든 것이었다. 그 고문 기구 중에서 바퀴, 물, 선반, 그리고 화형 주에서 불태우는 형벌을 가하는 것이 있다.

 

물론 최고의 형벌은 화형 주에서 산채로 불태우는 것이었다. 만일 신약의 그리스도교를 믿던 신자가 자기의 단순한 신앙을 포기하기를 거절하여 교황권 로마카롤릭의 모든 새로운 제도들, 의식들, 성찬식 등을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 검은 가운을 입고 머리에는 두건을 쓴 채 공설 광장으로 끌려가 최후의 희생을 치러야 하는 불행의 날을 맞아야만 했다. 화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골고다에 도착하면 장작더미 위에 높게 마련된 화형 주에 묶였다. 그러면 두 명의 제수이트가 구슬픈 어조로 회개의 권유를 외친다. 마침내 예수회 종교재판관의 승낙이 떨어지면 긴 막대기 끝에 달아 만든 불타는 횃불을 괴로워하는 순교자들의 얼굴에 대고 태우는 고문을 순교자들의 얼굴이 까맣게 탈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런 다음 그 불꽃은 아랫부분에 적용되고, 밑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점점 높이 올라가면서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는 그리스도인 희생자들을 태워버렸다.

 

성 도마 그리스도교인들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일 중 일곱째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준수했기 때문에 제수이트들의 분노가 얼마나 강하게 나타났는지 레이의 글을 더 인용하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주교 관구 가운데서 남쪽과 북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 중에 관목이 무성하게 자라는 지역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과 거룩한 날들, 특히 그런 날들 저녁에 일하고 물건을 사고파는 죄를 범한다.”

 

그때에 제수이트들은 성 도마 그리스도인들을 말살할 목적으로 조직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들은 자기들이 흔히 사용하는 수단들을 의지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다.

(1) 아시리아인들의 공동체들이나 성 도마 그리스도인 중에서 청년들을 선발하여 카톨릭교회 성직자가 되도록 시리아 언어로 훈련할 제수이트 대학을 세우는 사업.
(2) 아시리아인 지도자들을 선발하여 이용하는 효율적인 사업.
(3) 자기들이 유리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사전에 확인한 종교 회의를 소집하는 일.

Healing Story_ 동맥경화증

 

수영을 하던 38세 된 남성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재빠르게 응급조치가 들어갔지만 안타깝게도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심혈관 질환을 앓는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장에 영향 주는 관상동맥이 점점 막히면 처음에는 협심증에서 궁극적으로는 심장마비가 옵니다. 이 모든 시작은 동맥경화증입니다. 오늘은 이같이 생명에 위협을 주는 동맥경화증의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어떤 지방이 동맥경화증을 가져오는가?
동맥경화증 하면 지방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과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지방을 많이 먹는 사람들 중에도 동맥경화증이 별로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방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방의 종류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방 ↗ 동물성 지방인 포화지방-나쁜 콜레스테롤(LDL)수치를 높임.
쇠기름, 돼지기름 등 모든 동물성 기름과 버터, 쇼트닝, 식물성기름 중 코코넛 기름과 팜유
↘ 식물성 지방인 불포화지방-좋은 콜레스테롤(HDL)수치를 높임. 오메가-3, 오메가-6 지방산
(+)
수소원자⇒트랜스 지방-LDL수치를 높일 뿐 아니라 HDL 수치를 낮추므로 포화지방보다 더 유해함

*트랜스 지방산
액체 상태의 불포화지방은 산소를 만나면 산패됩니다. 이를 방지하고 보관상의 편리함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수소를 첨가하여 불포화지방을 고체 상태로 가공합니다. 대표적으로 마가린과 쇼트닝이 있는데, 이것들로 만든 마요네즈, 케이크, 빵류, 가공 초콜릿, 감자튀김, 팝콘 등의 음식에는 다량의 트랜스 지방이 들어있습니다. 트랜스 지방은 우리 몸에 들어오면 수소와 쉽게 분리되는데, 이로 인해 세포를 파괴하는 작용이 강력한 유해산소가 만들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동맥벽을 파괴시키는 작용을 하고 결국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혈관 질환, 뇌 질환, 말초동맥질환의 원인이 됩니다.

*산화된 지방산

우리가 요리에 사용하는 대부분 기름은 포도씨유, 카놀라유, 대두유 등 식물에서 추출해 낸 것을 고온으로 정제한 기름입니다. 그리고 이 기름으로 튀김, 부침하고 공기 중에 그대로 두면 가장자리에 끈끈하게 엉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 산화되는 것입니다. 기름을 저장할 때에는 작은 병을 사용하는 것이 좋고 햇빛이나 열, 공기에 적게 노출되어 산화가 적게 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산화 콜레스테롤
콜레스테롤만 해도 나쁜데 이것이 산화되면 대단히 나쁜 것입니다. 혈관 내벽에 손상을 입히고 그 손상된 자리에 동맥경화증이 자리를 잡아 병변을 일으키게 됩니다. 붉은 고기, 우유, 계란, 버터 등을 고열에 처리하면 산화 콜레스테롤이 됩니다. 오븐이나 석쇠 등에 저온으로 천천히 요리하는 것이 피해가 작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계란 노른자는 콜레스테롤 덩어리입니다. 껍질째 삶아 먹거나 노른자가 흐트러지지 않게 후라이를 해서 먹는 것을 추천합니다. 동맥경화증이 생겼다고 하여 바로 심장마비나 뇌졸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동맥경화증이 늘어날수록 그 위험도는 높아지는 것입니다.

◆ ‘호모시스테인’ 농도가 높아질수록 우리 몸은 위험하다
호모시스테인(homocysteine)은 메티오닌(methionine)이라는 필수아미노산이 분해되면서 나오는 중간대사산물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으로는 엽산과 비타민 B12•B6 등의 도움으로 시스테인(cysteine)이나 다시 메티오닌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시스테인과 메티오닌은 전혀 해롭지 않은 아미노산이지만, 호모시스테인은 강력한 산화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대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혈액 속의 호모시스테인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해 버려서 심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 및 말초혈관 질환의 위험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난로의 연통을 막듯이 혈관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콜레스테롤만 혈관을 막는 게 아닙니다. 미국의학협회지는 호모시스테인의 체내 농도가 5mol/L씩 증가할 때마다 말초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등 관상동맥 증상 발생 위험도가 각각 7.8배, 2.3배, 1.8배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결국, 건강해지려면 호모시스테인 대사가 잘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 ‘호모시스테인’을 낮추는 방법
호모시스테인 수치를 떨어뜨리는 방법은 엽산과 비타민 B6, B12 등을 듬뿍 섭취하는 것인데, 이는 오렌지 주스와 현미, 통밀 등 정제하지 않은 통곡류, 말린 콩, 브로콜리 등 녹황색 채소, 과일 등에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비타민B군은 특히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들에게 빠르게 고갈되는데, 이것이 부족하면 무기력증, 만성 피로 등 결핍증상까지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고기, 인스턴트 위주의 식단을 바꾸어 비타민B군을 매일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동맥경화증의 예방과 치료

*오메가-3 지방산 - 혈소판이 엉겨붙어 덩어리가 되는 것을 예방해 주며 중성 지방산을 낮춰줍니다. 중성 지방산이란 흰쌀, 흰밀가루, 설탕 같은 것을 많이 먹었을 때, 그에 비해 당처리가 원활하게 되지 못하여 처리할 것이 많이 밀려있을 때에 몸에서는 그것들을 일단 중성 지방산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런데 이 중성 지방산 또한 동맥경화증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익한 오메가-3 지방산은 아보카도, 호두, 아마씨, 들깨, 귤, 다시마, 시금치, 등 푸른 생선류에 등에 있습니다.

*통곡류 - 정제된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면 동맥경화증 같은 병은 없었을 것입니다. 마그네슘이 결핍되면, 좋은 콜레스테롤은 낮아지고 나쁜 콜레스테롤은 높아지며 심근은 무력해집니다. 또한, 혈압은 높아지며 혈소판은 서로 엉겨붙게 됩니다. 하지만 마그네슘이 충분히 섭취되면 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심근은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되며, 혈소판은 엉겨붙지 않게 되어 혈관 내벽 직경이 넓어지고 혈액순환이 잘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마그네슘이 통밀에는 흰밀보다 6배가 많습니다. 그 다음 과실, 야채, 견과류, 콩류, 씨앗류 등이 동맥경화증의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도심에 사는 분들은 염소로 소독된 물을 마시는데 염소는 우리 몸에 들어가면 혈관 내벽에 손상을 입힙니다. 혈관 내벽이 건강하면 동맥경화증이 시작을 못합니다. 그러기에 이 염소를 제거한 물을 마셔야 합니다. 먼저, 압축한 활성화된 숯덩어리가 중간에 들어가 있는 정수기를 사용하는 게 좋고, 두 번째로 뚜껑을 덮지 말고 5~10분 정도 물을 끓여주면 날아갑니다. 또 비타민C를 조금 넣어 희석하면 중화되어 없어집니다.

*규칙적인 운동과 생활, 매일 30분 이상 걷는 것이 매우 좋습니다.

신앙 칼럼_ 항상 기도한다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깨어있는 동안 내내 눈을 감고 기도를 해야 한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무슨 일에나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엎드려 간구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어떤 이는 이 말씀을 우리가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듯이 우리의 영이 살려면 ‘기도’로 숨을 쉬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이것은 끊임없이 내 삶을 반성하고 회개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기도 합니다.


모두가 맞는 말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은 어떤 형식을 갖춘 종교의식을 행하라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마음의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추상적인 개념은 더욱 아닙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이런 것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의식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고 계심을 믿고 그분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길을 걸을 때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기쁜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슬픈 일이나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께 의뢰하는 기도를 하십시오. 불의한 것을 보거든 하나님께서 바로 잡아주시기를 기도하며, 불신앙을 가진 자들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끌어 주고 나 자신이 하나님의 증인이 되도록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이 계속해서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취할 때 우리는 언제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교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골로새서 3장 2절 말씀대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않을 때’ 우리는 삶 가운데 임재하시며 역사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느끼고 모든 것을 의뢰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아버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 때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됩니다.

이현맘의 채식요리_ 통밀 또띠아 롤 샌드위치와 갈릭 딥 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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