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권두언


산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엄숙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는 매우 소중합니다. 한 날의 기록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은혜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이 은혜의 시간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 안에서 우리의 준비할 바 모든 것을 철저히 준비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늘에서 살기에 적합한 성품과 다시는 하늘에 반역을 가져오지 않을, 모든 죄를 승리하고 이기는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오는 환난을 견딜 수 있는 오래 참음과 인내의 성품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의 시간이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시선을 하늘에 고정하며 하루하루를 존절하게 살 것입니다. 바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 바라보고 위엣것을 생각하며 말입니다.  믿음으로 하늘 성소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현주소를 찾은 사람만이 주어진 은혜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라 성소로 들어가는 사람만이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엄숙한 사업을 깨닫고 준비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이 엄숙한 준비가 독자 여러분의 매일의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강 병국 목사         

Love Letter_ 믿음에 대하여

 

                                                                                           강 영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처음으로 맞춘 렌즈를 눈에 끼던 날을…
달라진 눈에 희뿌옇던 세상은 환하게 빛났고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래비서 눈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새로운 세상이 열린 듯했습니다.

눈에 따라 세상은 달라 보입니다.
마음의 눈에 따라 서로 다른 상이 맺힙니다.
믿음의 눈에는 믿음의 상이 맺히고
절망의 눈에는 절망의 상이 맺힙니다.

마음의 눈에 믿음의 렌즈를 끼워야 하겠습니다.
마음의 창에 믿음의 덧유리를 씌워야 하겠습니다.
희망과 소망과 인내의 상이 잘 맺히도록…

믿음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희망을 피워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것을 봅니다.
믿음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읽어내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을 엽니다.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눈에서,
그 너머의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서
눈으로 읽을 수 없는 것을 읽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믿음은 나왔습니다.

지금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있고,
지금 느껴지지 않아도 확실히 깃들어 있고,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속에 가득 차있고,
겉에 나타나지 않아도 깊숙이 고여있는
그 어떤 것을 아는 믿음, 그 무엇을 보는 믿음…

믿음은
두꺼운 얼음장 밑에서 봄을 보고
겹겹이 쌓인 고치에서 나비의 날개를 봅니다.
작은 도토리에서 울창한 참나무 숲을 보고
가녀린 초생달에서 터질듯한 보름달을 봅니다.

믿음은
펼쳐진 들녘에서 무당벌레가 앉아 있는 작은 풀잎을 보고,
우거진 숲 속에서 숨어 흔들리는 나뭇잎새와 꽃봉오리를 봅니다.
동틀녘 어둠의 껍질 속에서 환한 아침 빛의 알갱이를 보고,
허공 속에서 노래하는 새와 구름 사이의 하늘 궁전을 봅니다.

믿음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치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잠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봅니다.

작은 겨자씨 땅에 묻혀
후일 비바람 견뎌내는 거목이 되듯,
가슴에 품은 작은 믿음의 씨앗
후일 화사한 믿음의 꽃밭 일구어낼 것을 알기에,
그 믿음의 꽃나무 아래 벌어질 향연 믿음의 눈으로 보기에,
우리는 오늘도
이 척박한 땅에 믿음 하나만을 가지고 걸어갑니다.
믿음 하나만을 믿고 살아갑니다.

 

제1부_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셨는가?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늘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현재 어디에 계시는지 그분의 현주소와 사역에 대한 확실한 개념을 가지지 못한 채 막연하게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에 대한 확고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지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때와 상황과 의무를 확실하게 밝혀주고 준비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한 해를 설계하는 이 시점에서, 예수님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또한 현재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업에 대해 명확한 조명을 해보는 것은 큰 유익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현주소 찾기 연구가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온전한 준비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편집실 –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할 때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 혹은 “하늘에 계신 예수님”이라고 부른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 하늘 생명 강가에 쉬고 계실까? 아니면 새 예루살렘의 황금 거리를 걷고 계실까? 그것도 아니면 우주의 타락하지 않은 거민들을 방문하고 계실까? 예수님께서 현재 어디에 계시는가, 예수님의 현주소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이나 그 답에 관심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다. 연구하기만 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하고 나가야 할 방향과 목적을 확고하게 고취시켜 주고, 신앙의 심지를 다시 불타게 만들 이 중요한 주제는, 마치 흙 속에 묻혀있는 보석처럼 오랜 시간 동안 기독교계가 인식하지 못하고 간과한 채 떠내려 보낸 중요한 주제이다. 피상적인 기복신앙에만 몰두하며 오류의 가르침 속에서 표류하는 현 기독교계가 마땅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현주소 찾기 연구는, 현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루어야 할 사명과 의무를 깨닫게 해주며, 때를 알고 영적 무기력에서 깨어나 철저한 준비를 하게 하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1) 예수님께서 승천 후 가신 곳은 어디인가?

갑자기 예수님의 발이 땅 위로 뜨기 시작하였다. 눈부신 찬란한 빛이 그분을 두르고, 세상의 어떤 인력보다 더 강한 힘에 이끌리듯 예수님께서는 천천히 하늘로 승천하셨다.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는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그들과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축복의 손을 펴신 채 공중으로 떠오르시는 주님! 놀라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은 점점 하늘 높이 오르시며 영광의 구름 속으로 사라져 가는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득히 공중에서 아름답고 신비한 천사들의 기쁨의 노래가 들려왔다.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을 전해준 천사의 말을 뒤로 하고 제자들은 기쁨이 넘쳐서 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옆에 계시기를 무척 갈망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하늘 보좌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이 땅에 남겨진 제자들과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대두되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는 하늘 어디로 가신 것일까?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을 하시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어디로 가셨는가? 하늘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우리는 그 답을 히브리서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히브리서가 말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주소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늘 성소에 계신다. 대제사장으로서 하늘의 참 성소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중보사업과 정결사업을 하고 계신다. 바울은 메시아를 거절한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성전이 곧 파괴되고 멸망될 것에 대해 경고하며,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곳이 어디이며, 주님께서 그곳에서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 히브리서를 통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즉, 이제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닌 하늘에 있는 참 성소와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에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히브리서를 기록한 것이다. 바울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설득하여 지상의 제사장들과 땅의 성소로부터 하늘의 제사장과 하늘 성소로 그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하늘 성소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전했다. 히브리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것은 없다. 히브리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사명과 의무에 대해 이렇게 세세하고 명확하게 알 수 없었을 것이다.


2) 하늘 성소에 들어가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시던 시각, 성전에서는 제사장이 예루살렘 성전 뜰에 서서 희생제물인 어린양을 드릴 준비를 하고 서 있었다. 그런데 제사장이 희생물을 죽이려고 칼을 들자 땅이 진동하였다. 그는 놀라서 칼을 떨어뜨리고 어린양은 도망을 친다. 지진과 천둥의 소음 속에서 성전예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성전 휘장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는 요란한 소리를 들었다. 그 바로 같은 시간,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시고 세상 죄를 위하여 운명하셨다. 드디어 표상은 실체를 만났다. 여러 세기를 통해 성전의 봉사가 가리켜온 바로 그 사건이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희생제물로서의 그분의 속죄를 완성하셨다. 이제 표상이 실체와 만났기 때문에 이 희생을 예표하는 의식들은 폐지되었다. 그래서 휘장은 찢어지고, 칼은 떨어지고, 어린양은 도망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이제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더 중요한 장이 열리게 되었다. 하늘 성소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 너머까지 미치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또 다른 구속의 역사의 장으로 들어서시는 일이었다. 이제 최종적이고 완전한 희생이 드려졌으므로, 이제는 예수님께서 희생제물인 어린양으로서 성소의 뜰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드리신 그분의 희생을 적용하는 제사장으로서 봉사하시기 위해 하늘 성소로 들어가셨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분이 이루신 속죄 희생의 효력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도록 성소 봉사를 시작하신 것이다.

3) 하늘에도 성소가 있는가?

하늘에 성소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과 함께 거하시기 위한 지상의 장소로서 성소를 지으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셨다. 그런데 지상 성소를 그냥 지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이시고 명령하신 “식양대로” 지어야 하였다. 시내산에서 모세는 하늘 성소의 식양, 사본, 축소판 모델을 보았다(출 25:9, 40). 그리하여 지상 성소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상세하게 지시하고 보이신 “식양대로”(히 8:5) 지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 성소는 “하늘에 있는 것들”(히 9:23)의 “모형”, 혹은 "참 것의 그림자"(히 9: 24)라고 불린다. 지상 성소는 하늘에 있는 위대한 원본의 사본으로서 그 의식들과 표상과 상징들은 하늘 성소의 역할에 대한 특별한 통찰을 우리에게 준다. 신약 성경은 새 언약에도 성소, 곧 하늘의 성소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거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신다. 이 성소는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히 8:1, 2)다. 우리는 성경 전편을 통하여 하늘 성소, 혹은 하늘 성전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시 11:4, 102:19; 미 1:2, 3 참조). 사도 요한도 이상 가운데 하늘 성소를 보지 않았는가? 그는 그것을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계 15:5), 혹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계 11:19)이라고 묘사한다. 거기서 그는 지상 성소의 성소 안에 있는 기구들의 원형들을 보았는데, 곧 일곱 금 촛대(계 1:12), "금단(분향단)"(계 8:3)과 같은 기구들을 보았으며, 또한 지상 성소의 지성소 안에 있는 것과 흡사한 언약궤를 보았다(계 11:19). 이런 사실로 미루어보아 우주의 통치자가 보좌에 앉아 계시고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으로서 봉사하는 하늘 성소의 존재에 대해 아무도 반박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늘 성소가 실제적인 곳이며, 비유나 추상적인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려준다.

그렇지만 하늘 성소의 규모나 정확한 형태, 또는 세세한 장치에 대해 추측하는 것은 무익하다. 그곳은 지상의 어떠한 건물을 가지고도 그 크기와 영광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해도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 본체의 형상”(히 1:3)이신 것처럼 말이다. 유한한 것은 무엇이든지 기껏해야 무한한 것을 그저 희미하게 닮았을 뿐이다. 모세는 하늘 성소 자체를 본 것이 아니라 그 형상을 보았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참고로 바울은 히브리서에서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을 “둘째 휘장”(히 9:3)이라고 특별히 묘사했다. 그러므로 바울이 “휘장”(히 6:19)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성소에 있는 휘장을 가리킨 것이 틀림없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히 6:19). 지상 성소에 있는 모든 것은 하늘 성소와 연관된 여러 봉사들을 예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그분은 하늘 봉사의 첫 번째 사업을 시작하기 위하여 성소 첫째 칸으로 들어가신 것을 알 수 있다.

제2부_ 때를 가르쳐주는 예언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단 8:14).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긴 기간의 예언인 2300주야 예언이 있다. 이 예언은 우리가 처한 현 상황과 때와 시간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예언이다. 우리가 이 예언의 핵심 골자를 정확하게 이해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현주소와 그분의 사역과 현시점의 엄숙한 긴박성을 깨닫고 그에 대처하여 준비를 철저히 갖추게 되므로 이 예언을 확실히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300주야 예언에 대한 연구는 이미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을 통해 몇 차례 소개되었으므로 간략하게 요지만 짚고 넘어가기로 하고, 이 예언이 시사해주는 성소와의 연관된 핵심 주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한다.

1) 2300주야 예언의 시작과 끝

다니엘이 처음으로 이 예언에 대한 이상을 보았을 때, 그는 이 세상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일어날 사건들과 선과 악의 대장정을 보고 감당하기 어려운 심적인 부담으로 수일을 혼절하고 앓아 드러누웠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이상을 깨닫게 하"도록 가브리엘 천사에게 명령하셨지만(단 8:16), 그러나 그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다니엘이 앓게 되자, 가브리엘은 설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장애 때문에 가브리엘은 그가 설명하려고 하던 이상에 관한 설명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고, 다니엘 9장은 가브리엘이 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다시 돌아온 것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 8장과 9장은 서로 연결되며, 9장은 2300주야의 비밀을 풀어주는 열쇠가 된다.

다니엘 9장 24절에 보면, 며칠 후 천사장 가브리엘이 나타나 이 예언에 대해 설명해주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2300주야의 이상을 구성하고 있는 기간과 시간적 요소들에 대한 가브리엘의 설명은 70주일의 예언에 대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가브리엘은 70주일(490년)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떼져 구분되고 정해질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70이레, 490년은 유대인과 예루살렘을 위하여 "정해졌다"(단 9:24). “정해지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하타크”(Chathak)인데, “게세니우스”(Gesenius)가 쓴 유명한 히브리어 영어 사전에 보면, 그 의미가 "끊어내다", "분리하다"는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가브리엘의 설명은 매우 뜻깊은 것이다. 그는 490년을 2300년의 기간에서 끊어내야 한다고 다니엘에게 말한다.

가브리엘은 490년의 기산점을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단 9:25)라고 말해주는데, 그때는 기원전 457년, 곧 아닥사스다(Artaxerxes)왕 제7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490년과 2300년은 시작점은 같으며 동시에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2300년은 언제 마쳐졌는가? 먼저, 490년은 주후 34년에 끝났다. 그리고 2300년은 주후 34년 이후 1810년이 지나야 하므로 1844년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2300주야 예언은 A.D. 1844년에 끝나게 된다. 천사 가브리엘은 그때(1844년)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고 가리켜 주면서 이 이상의 해석은 마친다.

2) 어느 성소가 정결케 될 것이었는가?

2300주야 이상의 끝 시점인 1844년에는 지상 성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2300주야 예언은 멀리 기독교 시대까지 미치므로 이 성소가 A.D. 70년에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킬 수는 없다. 그 시점은 지상 성소는 폐허 되어 거의 1800년간이나 존재하지 않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마 23:37,38)고 하신 말씀처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루살렘에 있는 성소에서는 초자연적으로 휘장이 찢어지는 일이 일어났고, A.D. 70년에 예루살렘과 성소는 로마인들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그러므로 다니엘 8장 14절에 언급된 성소는 하늘 성소를 언급한다. 새 언약의 성소는 분명히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닌 하늘 성소이다(히 8:2).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소에 들어가셔서 봉사를 시작하셨다. 그리스도는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닌” 하늘의 성소, 즉 “참 장막”(히 8:2, 6; 참조 출 25:8,9)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취임하신 것이다(히 4:14,15; 8:1).

3) 지성소로 가는 길이 열리다

그런데 지상 성소의 의식은 본래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구별되어 있었다. 성소에서 죄 때문에 행해지는 매일의 봉사와 지성소에서 심판의 날로 간주된 대속죄일에 행해지는 연례 봉사 두 부분이 그것이다. 지상 성소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 8:5)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지상 성소의 매일의 봉사와 연례 봉사는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에도 똑같이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즉 1844년에 성소가 정결하게 됨을 입으리라는 말은 1844년에 시작된 원형적이고 영적인 대속죄일에,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던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우리 죄의 중보와 정결사업을 위해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요한이 기록한 계시에도 나타나는데, 그는 그 사실을 하늘의 열린 문으로 묘사하였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계 4:1).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계 11:19).

언약궤는 성소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성전의 둘째 칸 지성소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이 계시 중에 보았던, 언약궤가 있는 성전은 지성소를 가리킨다.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친히 돌비에 새기신 십계명의 보관소였다. 십계명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체결된 언약의 기초였기 때문에 언약궤라고 불렸고, 법궤, 증거궤라고도 불렸다. 요한의 이상 중에 하늘에 열린 문 안에 보좌가 베풀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지상 성소에도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의 금으로 된 뚜껑으로 “시은좌”(속죄소)라고 불렸다. 정금으로 만들어진 속죄소 양쪽 끝에는 정금으로 만들어진 서 있는 그룹 천사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 속죄소 위에는 쉐키나 곧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현현인 영광의 광채가 있었다.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인 지상 성막의 봉사에 있어서, 지성소는 오직 대속죄일에만 성소를 정결하게 하려고 열렸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언약궤가 보였다는 것은, 1844년에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마지막 사업을 하시기 위하여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실 때에 그 지성소가 열린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성경 구절이 나오는데, 그것은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의 시대 중 “빌라델비아” (1833-1844) 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나 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 3:7,8). 이 말씀에 따라서 볼 때에 “닫힌 문”은 하늘 성소의 문이며, “열린 문”은 그리스도께서 원형적인 대속죄일의 봉사에 종사하고 있는 지성소의 문인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닫힌 문”은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의 첫째 사업이 종결되었음을 가리키고, “열린 문”은 둘째 사업의 시작인 지성소의 문이 열렸음을 시사한다.

제3부_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레 16:15,16,30).

우리는 앞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2300주야의 예언 기간의 끝인 1844년에, 그분의 속죄 봉사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시기 위해 지성소로 들어가신 사실을 배웠다. 대속죄일에 지상의 대제사장이 지상 성소의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1844년에 그리스도께서도 대제사장으로서 하늘 성소의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셨다. 지상 성소에서 지성소는 매일의 봉사와 달리 일 년에 한 번 정결케 되었다. 이 봉사는 대속죄일 봉사로 알려졌었고 이때는 심판의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는 이스라엘 진중으로부터 모든 죄의 기록이 떨쳐내어 버려졌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 질문이 생길 수 있다. 하늘에는 죄가 없는데, 왜 하늘 성소가 정결하게 됨을 입을 필요가 있는가?

1) 왜 하늘 성소가 정결해져야 하는가?

하늘에는 죄가 없다. 그러나 심판은 죄의 기록들과 관련해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하늘 성소의 정결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히브리서는,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지상의 성소)은 이런 것들(희생제물들의 피)로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것들(하늘의 성소)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히 9:22,23), 곧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 주석가들은 이 성경의 가르침을 간파했다. 그 중에, 런던 태생의 영국 성서신학자이며 켄터베리의 학장을 지낸, 목사와 시인, 음악가였던 헨리 알포드(Henry Alford:1810~1871)는 “하늘 그 자체가 정결이 필요했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말미암아 또한 그 정결을 얻었다”고 말했다. 신학자 “웨스트콧트(B. F. Westcott: 1825~1901)는 “하늘에 있는 것들일지라도 그것들이 인류의 미래의 생애의 상태를 구체화하는 한, 인류의 타락으로 무엇인가 오염되었으므로 정결케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지상 성소의 원형인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피”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신학자들의 의견을 배제하고 성경의 기록에만 근거하여서라도 하늘 성소의 정결에 대한 사실은 확인될 수 있는데, 그것은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천사가 성도의 죄의 고백과 기도를 상징하는 금향로를 가지고 보좌 앞의 금단에 드리는 기록들과(계 5:8, 8:3,4), 심판을 위해 하늘에 책들이 펼쳐져 있다는 요한 계시록과 다니엘서의 기록(계 20:12, 단 7:10)들을 보아도 그렇다. 죄인들이 믿음으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 고백한 모든 죄는, 기도를 통하여 마치 분향단에서 향이 하늘로 올라가듯이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로 올라간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고백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중보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가 하늘 성소에 놓여있으므로 하늘 성소도 정결하게 됨을 입어야 한다.

이 땅의 성소 제도에서, 백성들의 죄가 믿음으로 속죄 제물 위에 놓이고 상징적으로 성소로 옮겨졌던 것처럼, 새 언약 아래서는 회개한 자들이 고백한 죄가 믿음으로 단번에 희생제물 되신 그리스도 위에 놓인다. 표상적인 대속죄일 동안에 지상 성소에 축적되었던 죄가 정결하게 된 것처럼, 하늘의 성소에서도 죄의 기록을 최종적으로 도말함으로써 정결해진다. 그렇다면 죄의 용서와 죄의 도말은 어떻게 다른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자신의 속죄 제물로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책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 아래 “용서받았다”는 말이 기록된다. 그러나 아직 그들의 죄가 도말된 것은 아니다. 죄의 도말은 그 사람이 정말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품성이 하나님의 계명과 조화된다는 것이 나타날 때 도말되는 것이며 그 때에 그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죄의 기록은 하늘 성소에 상정되어 있다.

2) 심판과 하늘의 책들

많은 사람이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흔히 오해하고 있는 심판에 대한 묘사가 성경에 나온다. 그것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장면이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9,10).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심판의 장면이 언제 어느 장소에서 일어나는지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하고 이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니엘이 본 심판의 장면은 재림 전에 하늘 지성소에서 일어나는 장면이다. 보좌가 펼쳐지고 심판이 베풀어지는데 그 심판은 바로 펴 놓인 책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다음에는 이런 기록이 나온다.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여기서 그분의 오심은 이 세상에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보자로서의 봉사를 마치실 때, 그분께 주어질 나라와 영광과 권세를 받으시기 위해 옛적부터 항상 계신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시는 것에 대한 묘사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생애와 품성이 온 세계의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펼쳐지고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를 따라 보응을 받게 될, 지성소에서 일어나는 엄숙한 심판의 광경이 이렇게 선지자의 계시에 나타나지 않았는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는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시편 기자는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0:2)고 말했다. 심판을 주재하시는 분은 만물의 근원이시며, 모든 법칙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또한 “천천만만”의 거룩한 천사들이 수종하는 자와 증인들로서 그 큰 법정에 참석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2300주야 예언의 끝인 1844년에 일어나는 일로 예수님께서 영적인 대속죄일에 심판하시기 위해 지성소에 임하시는 것을 나타낸다. 대제사장 예수님께서는 하늘 천사들의 시위 아래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서 인류를 위한 마지막 봉사를 하시는데, 이때에 각 사람의 행위를 조사하는 심판을 하시고 속죄의 은사를 입을 자격이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속죄 사업을 하시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심판이 이루어지는가? 하늘에는 사람들의 이름과 그 행위를 기록한 책들이 있는데, 그것들에 의하여 심판의 판결이 결정된다. 다니엘은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고 했으며, 요한은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라고 기록했다. 생명책에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섬겨온 모든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그의 성실한 동역자들에 대하여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3)고 말했다. 다니엘은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의 때를 미리 내다보면서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고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에 대해 시사했다. 그리고 요한은 그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계 21:27)만이 하나님의 성에 들어갈 수 있다고 기록했다.

하나님 앞에는 또한 “기념책”이 있는데, 거기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말 3:16)들의 선한 행실이 기록되어 있다. 믿음에서 나온 그들의 말과 사랑의 행위가 다 하늘에 기록된다. 느헤미야는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느 13:14)라고 이 사실에 대해 언급했다. 하나님의 기념책에는 의로운 행위가 빠짐이 없이 영원히 기록된다. 거기에는 유혹을 물리친 것, 악을 이긴 것, 부드러운 사랑과 자비로 표현한 말이 모두 자세히 기록된다. 그리고 또 모든 희생적인 행동과 주님을 위해 받은 고난과 슬픔이 모두 기록된다. 시편 기자는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 56:8)라고 했다. 거기에는 또한 사람들의 죄악을 기록하는 책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구주께서는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 37)고 말씀하신다. 은밀한 목적과 동기도 이 기록에는 다 드러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고전 4:5)기 때문이다.

제4부_ 지금 우리는 영적 대속죄일을 살고 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2300주야가 끝나는 해인 1844년에 이 예언을 연구했던 사람들이, 성소가 정결하게 된다는 사실을 잘못 이해하고 해석하여 큰 실망을 당했던 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는 예언의 의미를 이 땅을 지상 성소로 생각하였고, 곧 이 땅이 정결케 된다고 오해하였다. 그리하여 1844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재림 운동이 각 교파를 초월하여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실은 예수님께서 하늘 성소인 지성소로 들어가신 것이지 이 땅에 임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이 예언은 1844년에 예수님께서 지성소에 임하시는 원형적인 대속죄일, 곧 영적인 대속죄일이 시작된 것을 가르쳐주는 예언이었다.

1) 모두 같은 사건

다니엘서 8장 14절 2300주야 예언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라는 요한 계시록 14장의 첫째 천사의 메시지는 다 지성소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와 심판을 가리키는 것이지,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시고 악인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이 땅에 재림하시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선지자 다니엘이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단 7:13) 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말라기 선지자 역시 이때의 임하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 3:1). 유다도 같은 사건에 대하여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유 14, 15)고 말했다. 그러므로 다니엘 8장 14절의 그리스도께서 성소를 정결하게 하려고 지성소에 들어가시는 것과 다니엘서 7장 13절에 묘사된 대로 인자 같은 이가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 앞에 나아가시는 것, 그리고 말라기가 예언한 것처럼 주님께서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시는 것 등의 세 가지는 모두 같은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것은 또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에서 신랑이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사건을 가리킨다.

비유에 의하면, 신랑이 올 때에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신랑이 오는 것은 잔치보다 먼저 있는 일임을 알려 준다. 그리고 혼인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나라를 받으시는 것을 의미한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라고 불린다. 천사는 요한에게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계 21:9)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신부란 거룩한 성을 대표하며,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처녀들은 분명히 교회를 상징한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손님들로 불리고 있다(계 19:9 참조). 그들은 하늘에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나라의 수도 새 예루살렘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 다니엘이 기록한 대로, 하늘에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께로부터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실 것인데,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단 7:14; 계 21:2)은 당신의 나라의 수도, 새 예루살렘을 받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 나라를 받으신 후에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그분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다.

2) 재림 전에 조사하는 심판(재판)이 있다

지상 성소의 의식에서, 대속죄일의 봉사는 죄를 회개하고 고백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 곧 그들의 죄가 속죄 제물의 피를 통하여 성소로 옮겨진 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봉사였다. 그것처럼 마지막 영적 대속죄일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사건만을 다루게 된다. (악인들의 심판은 완전히 구별되어 있으며 그것은 그 후에 집행된다) 하늘 지성소에서 죄의 기록들이 도말되기 전에, 누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결정하기 위하여 그 기록들이 검토된다. 그러므로 하늘 성소가 정결케 되리라는 성소 정결에는 조사하는 심판의 사업이 포함되어 있는데, 누가 구원을 받을 것이며 누가 잃어버린 바 될 것인가 결정짓는 이 심판은 재림 전에 있는 사건이다. 왜냐하면, 재림 때에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계 22:12)줄 상급을 가지고 오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죄의 최종적 처리에 해당하는 조사 심판은 지상 성소가 대속죄일에 정결케 되던 것과 같은 봉사이다. 지상 성소에서는 동물의 희생제물의 피로 말미암아 성소가 정결케 되었지만, 하늘 원형의 의식에서는 예수님의 피의 완전한 희생으로 정결케 된다. 조사 심판은 죽은 사람 중에 누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고 있다가 부활의 날에 일어나 구원을 받을 것이며, 또 살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고 있고, 누가 천국에 들어가도록 승천할 준비가 되어 구원을 받을지 분명히 구별해 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예복을 입지 않은 손님”이라는 비유(마 22:1-14)에 나타나 있듯이, 잔치 자리에서 임금이 손님을 심사하는 일은 조사심판을 표상한다. 복음 잔치에 참석하는 손님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참된 제자는 아니다. 최후의 상급을 주기 전에 먼저 누가 의인의 유업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누가 과연 하늘에 살기에 적합한 품성을 소유했는지 결정되어야 한다. 이런 결정은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기 전에 있는 심판으로 이것을 다른 말로 조사심판이라고 한다. (법원에서 재판할 때 형 집행 전에 재판을 열어 죄를 조사하듯) 이 조사심판에 따라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각 사람의 행위가 결정되고 각 사람의 상벌이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엄숙한 사실은,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는 조사심판은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지금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의 생애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다 심사를 받게 된다. 하늘 책에 기록된 그 기록대로 심사를 받고, 그리고 그 행위에 따라 각 사람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되는 것이다.

3) 지금은 영적 대속죄일

예수님께서 지성소에 들어가셨다는 사실은 매우 엄숙한 사실이다. 이것은 지금 현재 우리가 영적인 대속죄일 기간에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 언제 우리의 이름이 불리고 우리의 기록이 펼쳐져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될지 모르는 심각한 때에 우리는 사는 것이다. 지상 성소의 대속죄일 때에 백성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금식하며 죄를 회개하였다. 영적 대속죄일이 진행되는 동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그와 똑같이 행해야 한다. “스스로 괴롭게 한다”는 의미는 자신을 살피고 자신의 죄에 대해 슬퍼하고 통회하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는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살아야 할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직업도 없이 무위도식하며 재림을 기다리라는 의미가 아니고, 우리의 직업이나 일이 하나님을 섬기고 재림을 위해 준비하는 데에 방해된다면, 그것조차도 버리고 이 심판의 때에 진행되는 영혼 정결사업을 위해 온 주의를 다 기울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금식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에 해로운 것을 금하고 정결한 음식을 먹으며 절제하라는 말이다.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점점 더, 날마다 하늘의 책들에 쌓이는 기록의 양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엄숙한 사실인가! 천사들은 선악간의 행위를 다 기록한다. 세상의 가장 강한 정복자라 할지라도 하늘 책에 기록된 단 하루의 기록을 취소할 수 없다. 한 번 입에서 나온 말, 한 번 나타낸 행위는 결코 돌이킬 수 없다. 우리의 말과 행위, 심지어 가장 은밀한 동기까지도 모두 영생과 멸망을 결정하는 중대한 역할을 하며, 비록 우리 자신들은 그 행한 일들을 잊어버렸다 해도 그것들은 그대로 책에 기록되어 의롭다는 판결이나 정죄의 선고를 결정짓게 된다. 조각가의 판화에 새겨진 조각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처럼, 사람의 품성도 하늘의 모든 기록에 낱낱이 드러난다. 만일 우리가 영적 휘장을 젖히고 심판 날에 그대로 드러날 모든 말과 행동을 기록하고 있는 천사를 볼 수 있다면, 정말 많은 사람이 지금 하는 많은 말과 행동을 그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심판 때에는 각종 재능을 사용한 데 대한 세밀한 조사도 또한 받을 것이다. 우리에게 위탁된 능력을 손과 마음과 정신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세상을 복되게 하는 일에 이용하였는지, 그리고 우리의 시간, 우리의 지식, 우리의 음성, 우리의 돈, 우리의 감화력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조사가 될 것이다. 가난한 자와 병자와 고아와 과부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주어진 빛과 진리로써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그 날에는 다 드러날 것이다. 예수님을 믿노라고 말로 고백만 하는 것으로는 가치가 없다. 오직 삶과 행위에 나타나는 사랑과 의로움만이 참된 신앙을 가진 것으로 인정된다. 사람들의 감추어진 동기와 욕망과 이기주의가 하늘 책들에는 다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4) 우리에게 이러한 대제사장이 계시니

우리는 지구 역사상 가장 엄숙한 시간에 처해 있다. 하늘에서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마음을 살피고 죄들을 고백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이 봉사가 끝나면 재림 전에 미리 인간을 위한 은혜의 기간도 끝날 것이다. 지금 하늘에는 우리의 대언자 되시고 중보자 되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바울은 하늘 성소에 계시는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다(히 8:1). 예수님은 어떤 제사장이신가? “범사에 형제들(인간)과 같이 되신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구속의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인간의 경험을 모두 다 겪으셨기 때문에, 인간을 위하여 시험을 당하시고 또 이기셨기 때문에, 자기는 죄가 없었지만 죄와 수치와 죄의 무거운 짐을 지셨기 때문에, 그분은 인간의 대언자와 중보자가 되실 수 있다. 이것은 죄와 시험을 당해 몸부림치는 영혼들에게 얼마나 놀라운 보증인가! 인성을 쓰셔서 우리 인간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대표자일 뿐 아니라 대언자가 될 자격을 갖추신,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대제사장이시다.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죄인의 죄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다. 우리의 대언자는 손을 높이 들고 “아버지여 나의 피를 기억하옵소서! 내가 나의 손바닥에 저들을 새기었나이다!”라고 호소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의 호소를 사랑으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효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피는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슬퍼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의 모든 죄악을 씻기시고 용서하신다. 우리를 위해 드리는 그분의 중보의 기도를 들어보라! 그분은 유혹이 많은 세상에 처한 그분의 자녀들을 잊지 않으신다. 시험과 고통 중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낙심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보시고 위하여 기도하신다. 우리를 위해 지성소에서 중보 기도를 드리시는 그분의 기도를 들어보라! 우리 앞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애틋한 동정심과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피를 가지고 변호할 때에 회개하고 믿는 각 영혼의 이름을 그분의 마음에 지니신다. 시편 기자는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 40:17)신다고 기록했다. 우리 각 사람 하나하나를 기억하시는 중보자가 계심이 얼마나 감사한가!

** 마치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주소와 지금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업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결 사업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이제 얼마나 신속히 오늘날 살아 있는 우리들의 케이스가 취급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조사 심판의 사업이 마치게 되면 모든 사람의 운명은 생사간에 결정될 것입니다. 은혜의 시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기 조금 전에 마쳐집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때의 일을 미리 내다보시고 요한계시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1, 12).

의인들과 악인들은 그들의 생활 상태 그대로 여전히 세상에 살면서 하늘 성소에서 철회할 수 없는 마지막 결정이 내린 것도 모르고 일하고 돈 벌고 먹고 마실 것입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후, 7일 동안 사람들은 그들의 운명이 결정된 것을 모르고 경솔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생활을 계속하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깨어 있기를 소홀히 하고 세상의 매력을 향하여 마음을 돌리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사업가가 자신의 비즈니스에 몰두하여 마음을 빼앗기고, 향락을 즐기는 자가 방종에 탐닉하고 있을 때에, 유행을 따르는 자가 세상을 따르기에 정신을 다 쏟아부을 때, 온 세상의 심판관 되신 예수님께서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단 5:27)고 선고하실 것입니다.

이 심각하고 엄숙한 지성소 시대, 영적인 대속죄일에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제야말로 얽매이기 쉬운 모든 죄를 벗어버리고, 모든 저지르기 쉬운 죄를 끊어버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보사업을 마치시고 지성소에서 나오시기 전에, 죄를 온전히 승리하는 생애,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하게 반사하는 생애를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이 짧은 은혜의 시기 동안에 우리의 중보자 되신 예수님 앞에 나와 모든 죄를 고백하고, 형제와 이웃과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모든 사람과 화평하는 거룩한 사람이 되고, 이 귀중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진리를 속히 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예수님께서 오시고 슬픔과 고난이 많은 이 세상은 곧 끝날 것입니다. 이 엄숙한 때를 깨닫고 지성소에 계시는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며 온전한 준비를 이루시는 독자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월간 세계 동향 TOP NEWS

 

1. 국제 유가 폭락과 러시아 루블화 가치 폭락

2013년 연평균 105달러를 기록하던 두바이유는 2014년 7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하여 약 6개월만인 2015년 1월 15일 42.55달러를 기록하며 2009년 3월 16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갑작스러운 국제 유가 폭락으로 전체 수출의 70%, 재정 수입의 50%를 석유와 가스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2014년 1월에 1달러당 약 33루블이었지만 2015년 1월 14일 약 65루블을 기록하며 1년 만에 50% 급락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 폭락을 막기 위해 2014년 12월 15일 기준금리를 기존 10.5%에서 17%로 큰 폭으로 인상했다.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경제상황이 불안정해지자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이 투기등급 바로 윗 단계로 떨어졌으며, 러시아 국채를 사려는 투자자가 없어 2015년 1월 14일로 예정된 국채 발행 매각도 취소됐다. 하락하는 국제유가가 올해 러시아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

2. 프랑스, 호주 테러와 IS, 알카에다의 ‘외로운 늑대’ 테러 선동
2014년 12월에는 호주 시드니 카페에서 인질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난민 출신 이란인 만 하론 모니스로 ‘이슬람 국가(IS)’를 추종하는 외로운 늑대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1월 7일에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시사 주간지 샤를리 엡도 본사에 무장괴한들이 침입해 총격을 가해 12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하는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샤를리 엡도는 그동안 이슬람을 자극하는 풍자 만평을 게재해 이슬람 세력의 반발을 샀다. 예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는 1월 14일 인터넷을 통해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 테러가 알카에다 최고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IS)’와 알카에다는 그들의 홍보잡지 글들을 통해 세계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들에게 테러를 수행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어 이런 문제는 점점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3.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대두와 경제불안
2014년 12월 9일 그리스 증시는 12.8% 폭락하며 하루 낙폭으로는 1987년 이후 2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리스의 구제금융 조기졸업 실패와 정치적인 불안정이 시장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받으며 트로이카(ECB, IMF, EU)의 요구대로 긴축 정책을 펼쳐왔다. 집권 연립정부(신민당, 사회당)는 총선 전 구제금융 조기졸업을 주도했으나 무산됐고 조기총선을 실시하게 됐다. 긴축정책으로 고통을 받아 온 그리스 국민들은 긴축정책을 거부하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을 더 많이 지지하고 있다. 문제는 시리자가 집권할 경우 구제금융을 조건으로 긴축을 요구하는 트로이카와 충돌하여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1월 25일 치르는 그리스 총선과 그 결과가 그리스 경제와 유로존의 경제에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4. 스위스 중앙은행의 환율 방어 포기와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전망
스위스 중앙은행(SNB)이 지난 1월 16일 3년여 만에 환율 하한선을 철폐했다. 2011년 9월부터 ‘1유로 = 1.20스위스프랑’으로 묶어둔 하한선이 사라지자 이날 유로 대비 스위스프랑화 가치는 한때 30%넘게 폭등했다. 스위스 증시의 SMI지수는 이날 8.67% 폭락했으며, 유명 헤지펀드 회사가 파산하고,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거나 엄청난 돈을 벌기도 하는 등 큰 혼란이 있었다. SNB의 갑작스러운 환율 방어 포기는 유럽중앙은행(ECB)의 대대적인 양적완화 전망으로 유로화 가치가 떨어져 스위스프랑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ECB의 전면적인 양적완화 정책이 1월 22일 열리는 통화정책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5. 말레이시아 국적 항공기, 2014년에만 3번째 추락
162명의 탑승자를 태운 에어아시아 소속 QZ8501 여객기가 2014년 12월 28일 인도네시아에서 출발하여 싱가포르로 비행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자바 해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에어아시아는 말레이시아에 본사를 둔 아시아 최대 저가 항공사다. QZ8501기에 실렸던 블랙박스는 1월 13일 모두 회수되어 2주에서 1달 내에 정확한 추락원인이 밝혀질 예정이다. 만약 실종된 에어아시아 여객기 탑승객 전원(162명)이 숨진 것으로 결론 날 경우 2014년 3월 실종된 말레이시아 항공 MH370편의 탑승객 239명, 2014년 7월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미사일에 격추된 말레이시아 항공 MH17편의 탑승자 298명과 함께 2014년에 모두 699명이 말레이시아 국적 항공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 된다.

마지막 시대 이슈_ 예수회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와 마지막 예언의 성취


많은 사람이 단순히 성경을 교훈과 격언으로 가득 찬 지혜서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성경은 단순히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게 해주는 교양서 수준의 책이 아니다. 성경은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지혜를 인류에게 제공해 주고 있는데 성경은 이 세상이 누구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으며 그 지배 세력은 결국 세상 사람들을 어떠한 운명으로 끌고 가게 될 것인가를 폭로해 주는 아주 놀랍고도 경이로운 책인 것이다. 잃어버리고 멸망할 위기에 처할 인류를 일깨워서 그들을 묶고 있는 흑암의 세력을 폭로해 주고 거기서 벗어나 다시 창조주 하나님의 낙원에서의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차원 높은 지혜의 책이 바로 성경이다(잠 2:1-9).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줄곧 이 세상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한 세력을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창세기 첫 장에서는 에덴에 침투하여 하나님의 불변의 법을 전복시키는 세력으로 묘사되고 있고 또한 계시록 끝 부분에서도 하나님의 불변의 법을 자신의 법으로 대체하고 자신의 권위(법령)를 온 세상에 강요하는 세력으로 묘사되고 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계 13:16,17).

사탄은 에덴에서부터 줄곧 자신의 대리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법을 공격해 왔고 또한 인류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 자신의 법을 따르도록 교묘히 강요해 왔다. 그 목적은 이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온 우주에 공표하려는 것이다. 사탄은 에덴에서는 뱀을 통하여, 구약 이스라엘 시대에는 여러 이교의 거짓 신들을 통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을 떠나 배도하도록 유도하였다. 영적 전쟁은 신약시대로 이어져 오면서 더 정교하고 치열해졌는데 사탄은 자신의 운명이 십자가에서 끝난 것을 깨닫고는 이제는 교묘히 기독교회에 침투해 들어와 하나님의 대리자인 척하면서 자신의 대리자를 세워서 하나님의 법을 짓밟고 교회와 세상을 유린해 왔다. 그 대리자가 바로 지난 2,000 역사 동안 세상의 통치권을 놓고 줄기차게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온 로마카톨릭의 교황권인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리자 인척 교회에 들어와 앉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자처하고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불변의 권위의 법을 자신들의 유전과 전통으로 바꾸고 자신들의 권위를 온 세상에 강요하는 마지막 사탄의 대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그들이 역사의 중간에서 세력을 잠깐 잃게 되지만(16세기 종교개혁세력의 태동으로 교황권은 역사에서 잠시 주춤하게 됨) 마지막 날에 다시 한 번 그 권위를 회복하여 온 세상의 절대 정치종교 군주세력으로 재차 등극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교황권)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교황권)을 따르고…” (계 13:3).

그 교황권이 회복되어가는 역사의 중심에 바로 로마카톨릭의 예수회가 있다(제수잇). 이 예수회는 쇠락해 가는 로마교황권을 다시 일으키기 위하여 조직된 로마교의 비밀군대로써 그들의 정신이 담긴 서약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또 나는 다음을 서약합니다. 송장과 시체처럼 나는 나 자신의 의견이나 정신적 유보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갖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황군대의 상관으로부터 받는 모든 명령은 일일이 지체없이 복종할 것입니다. 또 나는 다음을 서약합니다. 기회가 올 때마다 나는 모든 이단자, 개신교도, 및 자유주의자들을 상대로 은밀히 또는 공개적으로 줄기찬 전쟁을 감행할 것이며, 지시에 따라 그들을 온 지면에서 근절, 박멸할 것이며, 연령, 성별, 인종을 막론하고 이 악독한 이단자들을 목매달고, 불에 태우고…. 생매장하여 죽일 것이며…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없을 때에는 은밀히 독약, 목 조르는 줄, 비수, 또는 탄환을 사용하여…교황의 대리자나 거룩한 제수잇(예수회) 형제단 상관의 지시를 받는 대로 이행할 것입니다.

로마교황권은 자신들의 세력을 회복하고 전 세계를 통치하기 위한 첫 단계로 미국을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 미국은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한 최초의 국가로서 세상을 종교적으로 통치할 로마교회의 입장에선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미국을 손에 넣기 위하여 먼저 금융 장악(연방은행 설립)을 시도하였는데 현재 FRB(연방은행)가 미국 시민의 목에다 빚의 사슬을 걸고 있는 것을 보면 로마교회 예수회의 목적이 그동안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행됐는가를 깨달을 수가 있다. 미국을 금권으로 장악한 뒤 예수회가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추진한 전략은 FRB의 금줄을 사용하여 전 세계에서 전쟁을 도모한 것이다. 세계 여러 지역에 분쟁의 씨앗을 심어놓고 결과적으로 전 세계가 교황의 중재를 바라보도록 계획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 간 중동지역에서는 분쟁과 전쟁에 관한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어 세상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데 이 지역의 끊임없는 분쟁은 결국 요즘에 와서 교황의 통치를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작년 5월 예수회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재한 중동의 평화화해 분위기를 보아도 그렇다. 전 세계 언론은 미국 대통령도 할 수 없는 일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냈다고 극찬하면서 교황을 전 세계 분쟁의 유일한 해결사, 전 세계를 리더할 유일한 영도자로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처럼 작년에 일어난 예수회의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만을 보더라도 지금 우리는 전 세계가 누구를 갈망하고 누구를 자신들의 영도자로 추대하게 될지 불 보듯 뻔한 일들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지난 세월, 세상을 통치하다가 세력을 잠시 잃게 되었고 다시 자신의 세력을 전 세계의 통치 권력 위에 부상시키기 위한 로마교회와 그의 비밀 군대 예수회의 작품인 것이다. 이제 세상은 곧 로마교회의 전 세계 통치를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두에서 미리 언급하였다시피 이들은 왜 이러한 일들을 추진하고 있는가? 그들은 왜 세상을 하나의 정부로 통합하여 교황이 통치하는 지상 국가를 세우려고 하는가? 그것은 사탄이 오랜 세월 계획해온 음모인바 사탄은 자신의 대리자를 통하여 이 세상에 자신의 권위를 대변하는 법령을 세우고 온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그 법을 따르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지구의 주인 됨이 사탄 자신임을 입증하려고 말이다.

성경은 그것을 폭로하고 그 기만의 사슬에서 벗어나도록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창세기 첫 부분 에덴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의 법(먹으면 죽으리라)과 사탄의 변개된 법(먹어도 죽지 않는다)이 대치되어 사람들에게 누구의 권위를 따를 것인가의 테스트가 주어졌듯이 요한 계시록이 예언한 세상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위의 법과 사탄의 변개된 법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그 시험은 특히 누가 이 세상의 진짜 주인인가? 하는 하나님과 사탄의 권위의 표를 사이에 두고 진행될 것인데 성경을 편견 없이 연구하는 사람들은 성경 창세기 첫 부분에서부터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의 표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 2:1,2).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8,11).

성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진리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 당신이라는 것을 확증하시기 위하여 안식일을 제정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안식일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이 세상의 창조주로 가리키는 그분의 권위의 표징인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구약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안식일을 공격해 왔고 급기야 신약 시대에 와서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변장하여 기독교회에 들어와 하나님의 권위의 법을 변개하는 일까지 자행해온 것이다.

아래 로마카톨릭 교회의 자체 증언을 살펴보자.
▶ "카톨릭 교회는 안식일을 주일 중 일곱째 날인 토요일에서 첫째 날인 일요일로 변경시킨 후, 십계명의 넷째 계명을 고쳐서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라고 명하였다. (Catholic Encyclopedia, Vol, IV, p.153)
▶ "카톨릭교회는 주의 날을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변경시켰는가? 그렇다. 그리스도께서 교황에게 주신 묶거나 푸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교회는 주의 날을 일요일로 변경시켰다." (Life in Christ, 천주교회의 1958년도 판 교리문답 p.243)
▶ "천주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제 칠일 안식일 준수에서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에 쉬도록 바꾸어 놓았다. 그러므로 개신교회들이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천주교회에 대한 그들의 충성을 보이는 표가 된다. " (1868년 Catholic Press, 225)

작년에 여러 나라를 행보하면서 예수회 프란치스코 교황이 살짝 씩 비쳤던 언급을 살펴보면 일요일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먼저 그가 제시한 행복 십계명을 살펴보면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라”는 조항을 볼 수가 있으며, 작년 이탈리아 남부의 어느 지역 미사에서 그는 “일요일에 일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지 우리에게 물어볼 때이다”라고 언급하면서 일요일을 전 세계 사람들이 준수해야 하는 자신들의 권위의 표로 은근슬쩍 내비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사회의 통합과 평화, 안녕과 질서를 이룩하자는 차원에서 일요일을 제시하고 있어 사람들이 그 안에 담겨있는 진정한 의도를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의 권위인 안식일을 짓밟고 자신이 세운 자신의 권위의 표인 일요일을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평화적으로 준수하도록 유도하면서 자신을 이 세상의 주인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온 세상은 두 부류의 사람들로 갈리게 될 것이다. 한쪽은 인류의 대다수로써 로마바티칸과 그 예수회 세력과 하나가 되어서 그들의 권위의 표를 따르며 하나님의 권위를 대적하는 무리이고 또 다른 한쪽은 극히 적은 소수로써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권위의 표인 하나님의 계명을 높이는 무리가 될 것이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인류의 첫 사건 에덴동산 선악과 아래의 아담과 하와처럼 마지막 시대 인류 역시 누구를 선택하여 따를 것인가? 하는 긴박하고도 절실한 테스트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그날에 시험을 통과하고 영생을 얻을 자들은 바로 예수님이 가지셨던 믿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라는 이 진실된 신앙고백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진리 탐구_ 이면적 유대인?

 

이번 호에는 “7년 환란”을 전파하는 교단에서 주장하는 “영적 이스라엘”에 대한 교리를 살펴보고 옳고 그름을 분별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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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환란을 믿는 교단의 주장
“영적 이스라엘”이 교회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롬 2:28,29).

이 구절을 가지고 “이면적 유대인”이 거듭난 무리인 교회, 곧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락이 시작되는 로마서 2장 17절의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유대인이라고 자랑하나 실상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킨다고 자랑하나 실상은 죄인인 유대인들을 향해서 한 말이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롬 2:17).

그러므로 로마서 2장 28,29절 말씀은 육신적으로 유대인이라고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 아니고, 거듭나야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말씀이며, “이면적 유대인”이란 “거듭난 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 당시 이방인들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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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위와 같이 가르치는 교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해가 되시나요? 아마 그럴 듯하지만, 양심적으로는 마음에 불편하셨을 것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시대와 민족적으로 구분하시며 차별을 하시는 분인가에 대한 의문의 소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주님의 십자가 이후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성경적으로 합당할 수 없으며 더욱이 이방인의 사도로 직분을 맡은 사도 바울의 말씀을 보면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을 읽어보면 로마서의 전체적인 배경과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 1:5-7).

사도 바울은 우선 모든 이방인이 믿게 되어 순종함을 말씀하시면서 이방인의 사도된 직분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너희도”는 로마서를 받는 수신자들, 즉 로마교회 교인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교회 성도” 들도 이방인들 중에 있었음(로마에 있는 너희도 한때는 이방인이었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로마서를 받아 읽는 성도 중에는 육신으로나 혈통적인 유대인 성도도 많이 있었지만, 주 안에서 믿음과 순종이 없던 때에는 너희도 “이방인과 다름이 없었다”라는 의미의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주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도”라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이방인의 의미는 유대민족이 아닌 타민족이 이방인이었지만, 신약시대 와서는 영적 의미의 이방인은 “모든 믿지 않는 자”들이 이방인이 되었음을 바울 사도께서 명확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 이방인 = 불신앙 이방인+불신앙 유대인 

● 성도 =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로 거듭나지 아니한 자들은 육신과 혈통에 관계없이 모두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그 이방인이었던 자들이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허물어졌으며, 새사람이 되었고, 한 성령 안에서 한 아버지를 얻게 되었고, 동일한 하늘 시민이 되었고, 권속(한 집에 거느리고 사는 가족)이 되었고, 더욱 은혜스러운 말씀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나라 안의 사람으로 약속의 언약들을 받은 소망이 있는 자가 되었으며, 그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바울 사도는 “성도”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 2:11,12).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 2:19).

특별히 에베소서 2장 11,12절 말씀을 받은 성도들은 그 당시 육체로나 혈통으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이스라엘 나라 안의 사람이 되었으며, 또한 언약을 받은 자가 되었음을 말씀하셨고, 히브리서 8장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새 언약을 받는 대상이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빌립보서 3장 3절에는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할례당”이라 기록하셨습니다. 이러한 할례당이 진정한 “이면적 유대인”이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면적 유대인들의 당사자들이라고 한다면 바울 사도가 잘못 가르친 것일까요? 아니면 오늘날 설교자들이 잘못 전달하는 것일까요?

오늘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서 다음의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나라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지금도 밖에 있습니까?

기독교회사_ 구교(왈덴시안) VS 신교(로마 카톨릭)


알프스 계곡의 초기 왈덴시안들(Waldenses)의 광야교회, 그리고 새로운 종교 로마 카톨릭(Roman Catholic)

알프스 계곡의 초기 왈덴시스들은?
A.D. 553년 이후 여러 해 동안 북부 이탈리아와 그 인근의 9 지방의 주교들은 로마 교회(로마 주교를 주교들 중의 머리라고 하여 로마 교황을 교회의 머리로 삼은 로마 중심의 교회)와 로마와의 관계를 끊고 독립을 선언하여 광범위한 분열이 일어났다. 그들은 로마 교황 종교가 주장하는 교회의 무오성을 믿지 않았으며, 로마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교회와 관계가 끊어지는 것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800년까지 남아있던 롬바르드족 왕들로 인해 그 지역은 종교자유를 보장받았다! 그들은 로마교회가 도입한 새로운 제도들을 거부하여 교황권 주교들이 자신들의 입법부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로마교회는 그들을 향해 즉시로 아리우스주의자들이라고 붙여 불렀다! 로마교회는 항상 이런 식으로 자신들을 동조하지 않는 이들을 효과적인 이름을 붙여서 그들에 합당한 이름이 아닐지라도 이단으로 모함하였다. 사도들의 초기 믿음을 그대로 전수하고 지켜온 교회는 단 한 번도 로마교회에 속한 적이 없으며, 더구나 로마교회에서 떨어져 나온 교회가 아니다. 사실은 이교 철학사상을 중심으로 기독교 옷을 걸친 로마교회가 새로운 이교 기독교를 창설한 것이다.

로마 카톨릭?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거나 수정하며 인간의 전통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보다 위에 두는 이 새로운 이교 기독교는 사실상 새로운 종교(신교)이다. 왈덴시안 그리스도인들은 1160년 경 피터 왈도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그들의 주장은 그 이전에는 왈덴시안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로마 카톨릭의 명제들을 충족하기 위한 조작이다. Waldensian은 왈도파가 아닌 왈덴시안(왈덴스인들)이다. 이 뜻은 ‘왈도의 사람들(왈도파)’이 아닌 ‘골짜기의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사도들이 전해준 순수한 복음을 가지고 사는 참 그리스도인들은 줄곧 존재해 왔다. 그들이 바로 알프스 계곡의 초기 왈덴시안 그리스도인들이다! 왈덴시안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인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고 성경을 보존하였으며, 하나님의 법을 생명처럼 순종하며 지켜왔다. 요한계시록 12장은 이들이 광야로 도피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에서 1260일(1260년)을 부양받을 것을 예언하였다. 이 교회는 광야교회이다.

반면 로마 카톨릭은 온갖 이교적인 가르침들과 형상들을 들여와서는 기독교에 이교를 섞은 새로운 이교 종교를 만들어 기독교로 모방해 왔다. 요한계시록 13장에 그 짐승이 42달(1260년)을 하나님을 대적하며 신성모독하며 성도들을 괴롭히는 활동을 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 교회는 음녀교회이며 큰 바벨론이다.

사도들의 시대로부터 이어온 그리스도인들인 왈덴스인들, 그리고 이교를 끌어들여 새로운 유사종교를 창설한 로마 카톨릭...

누가 Old Church(구교)이며 누가 New Church(신교)인가?

Healing Story_안구 건조증

얼마 전, 어머니께서 눈에 이물감이 느껴지고 불편하시다며 안과에 다녀오셨습니다. 혹시 많이 안 좋은 것이 아닌가 염려하였는데, 의사의 진단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안구 건조증이라며 인공눈물을 처방받아 오셨습니다. 춥고 건조한 겨울철, 실제로 안과를 찾아오는 환자분들이 가장 많이 진단받아 가는 것이 안구 건조증이라고 합니다. 한 대학병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도시 인구의 90% 이상이 안구건조증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제 안구건조증은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증상이 되었습니다. 

1. 눈물
눈물은 그냥 물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성분이 들어있으며 세 가지 층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 점액층 : 제일 안쪽에서 각막과 결막을 부드럽게 싸고 있는 얇은 막으로 주로 결막의 술잔세표에서 분비되는 점액 성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눈물막이 눈 표면에 고정되게 해줍니다.
* 수성층 : 눈물막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98%가 수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눈동자를 깨끗하고 촉촉하게 유지해주며 각막과 결막의 영양을 공급하고, 눈의 감염을 막기 위한 항체나 다른 면역반응 물질을 운반합니다.
* 지방층 : 제일 바깥쪽에 있는 매우 얇은 층으로 윗눈꺼풀과 아래 눈꺼풀 테두리에 있는 지방선(마이봄선)에서 분비되는 지방질로 되어 있습니다. 눈물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성 층이 빨리 증발하지 않도록 보호해 줍니다.

2. 눈물의 생산과 소실과정
* 눈물샘에서 눈물 생산-> 눈물의 일부가 눈표면에서 증발-> 코눈물관을 통한 배출

3. 안구 건조증의 원인
* 눈물 분비량 감소 : 노화, 류머티스성 관절염이나 쇼그렌증후군 등의 질병, 방사선이나 염증으로 인한 눈물샘의 손상, 갱년기에 의한 여성호르몬 감소로 인해 눈물 생산과 분비가 감소됩니다.* 과도한 눈물의 증발 : 지방선(마이봄선)의 염증이나 막힘으로 지방질 분비가 적어지고 그로 인해 수성층 눈물이 쉽게 증발해 버립니다. 
* 약물복용 : 눈물생성을 감소시키는 약물에 의해 눈물이 마를 수 있습니다. 즉 항생제, 항히스타민제, 이뇨제, 지사제, 스코포라민 같은 부교감 신경차단제, 고혈압 치료를 위한 베타 차단제, 수면제, 피임약, 일부 여드름 치료제, 일부 항우울제, 일부 마취제 등이 있습니다.
* 환경요인 : 건조하거나, 연기나 먼지가 많으며 햇볕, 바람 등으로 눈이 자극되거나, 독서나 컴퓨터를 하면서 무의식중에 눈 깜박임의 횟수가 줄어들면 안구 건조증이 생기기 쉽습니다.
* 눈꺼풀 문제 : 눈꺼풀 속말림, 눈꺼풀 겉말림, 눈꺼풀염 

4. 안구 건조증의 증상
* 눈에 모래알이 들어간 것처럼 이물감이 있습니다.
* 눈꺼풀이 무겁고 피곤하며 두통이 있습니다.
* 눈이 뻑뻑하고 뭔가 막힌 듯 시야가 맑지 못합니다.
* 바람이 불면 눈물이 나고 특별한 이유 없이 자주 충혈됩니다.
* 눈부심이 있고 빛에 전보다 예민해집니다.
* 긁히는 것처럼 눈이 따끔거립니다.
* 발열감이 있습니다.
* 건조하거나 대기오염이 심한 경우 증상이 더 심해집니다. 

5. 치료
* 생활 환경과 습관의 개선사무실이나 집에서 하루 8시간 이상 컴퓨터를 보면서 작업을 해야 한다면, 실내를 자주 환기하고 가습기를 설치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 휴식 시간을 두어서 40~50분 정도 컴퓨터 작업을 했다면 잠시 바깥 공기를 쐰다든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 약물 치료자신의 눈물 층을 잘 유지하기 위해 인공눈물을 수시로 점안합니다. 대부분의 인공누액은 장기간 자주 점안해도 별 부작용이 없으며 물약, 젤리, 연고 등의 형태로 상품화된 많은 종류의 인공누액 가운데 자기에게 편한 것을 선택합니다. 단, 병으로 되어있어서 보존제를 포함하고 있는 인공 누액은 하루 10회 미만의 횟수만큼 사용하시고, 그 이상의 횟수를 사용하셔야 할 때에는 방부제가 첨가되어 있지 않은 일회용 점안인공누액 등을 사용하시는 게 좋습니다. 인공 눈물에 포함된 보존제 성분의 자극성이 있는 사람 역시 일회용 점안인공누액을 사용하시는 편이 좋으며 가급적 다른 성분이 포함된 인공눈물의 사용은 자제해야 합니다.

* 온찜질
 따뜻한 물수건으로 5~10분 정도 온찜질을 하는 것입니다. 귀찮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많은 분이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음식
 갱년기 전후로 안구 건조 증상이 있는 분들은 식물성 여성호르몬이 많이 있는 음식을 선택하여 먹거나 여성호르몬이 많은 약초로 만든 약을 잠깐 복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오메가-3 지방산이 효과가 있다고 입증되었습니다. 오메가-3 지방산은 체내에서 만들어지지 않고 음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데, 호두나 아마씨, 콩 등에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오메가-3 지방산 섭취가 안구건조증에 예방효과가 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또한 신선한 제철 과실과 야채에 눈에 좋은 성분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세포를 손상시키는 유해산소를 막아주는 항산화제로써 노화와 갱년기 여성의 안구 건조증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눈에 좋은 베타카로틴이 많은 음식에는 늙은 호박, 감, 당근, 푸른 잎사귀 야채 등이 있습니다. 

6. 예방
먼저 건조증을 악화시키는 요인을 피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자극성이 있는 염색약을 이용한 머리염색, 자극성이 있는 눈화장품이나 세면용품 사용,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오래 사용하거나, 자동차 히터나 온풍기를 너무 높은 온도로 사용할 경우, 겨울철 아파트와 같이 건조하고 밀폐된 공간에 오래 있으면서 환기 등을 소홀히 할 경우, 장기간 소프트 콘택트렌즈를 착용할 경우 등입니다. 많은 사람은 인공누액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언젠가는 안구건조증이 없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염증으로 인한 건조증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약물치료만으로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안구건조증에서 중요한 것은 생활환경과 생활습관개선을 통한 예방입니다.

신앙 칼럼_ ‘은혜’란 무엇일까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은혜 받으세요’ 교회에서 흔히 듣는 말입니다. 마치 인사말처럼 ‘은혜’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요. 특히 부흥회나 바이블 스터디, 혹은 기도회 모임이 있은 후 마음이 뜨거워졌다거나 감동을 받았을 때 ‘은혜 받았다’는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은혜를 단순한 인사말이나 감정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은혜란 무엇일까요?

성경은 항상 은혜를 복음의 능력과 관련짓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증언을 사도행전 20장 24절 말씀과 함께 살펴보면 ‘은혜’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시다시피 은혜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능력이며 선물입니다. (엡 2:8) 우리의 힘으로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은혜는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저주받은 죄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찾아오셔서 구원의 능력을 행하신 하나님의 거룩하고 자비로운 감화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한 번의 경험이나 체험이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서 있어야 합니다. (롬 5:2) 사형수가 사면을 받고 풀려났다면 다시 죄를 지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의 법 아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율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더욱 굳게 세우는 것입니다. (롬 3:31)

그렇다면 ‘은혜’란 무엇일까요?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은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고 ‘은혜 받았다’는 말은 ‘자격이 없는 내가 하나님의 사랑 덕분에 구원받았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마음이 뜨거워졌다든지 재물의 축복을 받았다거나 명예를 얻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은 오직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과 관련하여 은혜를 말합니다. 은혜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경건치 않은 것과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복된 소망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광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딛 2:11-13)

이현맘의 채식요리_ 호두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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