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권두언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살기를 매우 원했던 이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이전 어느 세대에도 하지 못한 특별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엄숙한 임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는 특별한 사명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전개될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능력을 변호하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속의 역사의 끝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보이셨던 온전한 순종을, 그분의 보혈의 능력으로 구속하시고 회복시키신 최후의 한 무리를 통해 재현시켜 보이실 것입니다. 그들은 첫 열매 되신 예수님이 가지셨던 아름다운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증인이 될 십사만 사천입니다. 온 우주는 바로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계명과 구속의 공의로움과 조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는 일, 죄를 승리하는 일은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지속해서 의지를 굴복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법을 배운 결과로 생기는 것입니다. 생명보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매일의 삶이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강 병국 목사                 

Love Letter_숨어있는 천국

강 영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천국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천국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찾다가 지쳐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눅 17:20).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도 열심히 천국을 찾기 위해 헤맵니다.
그러면서 오랜 시간 천국을 기다립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우리는 지쳐 묻습니다.
“천국은 어디 있을까요?”


그들은 천국을 찾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천국을 만들기 위해 이것을 하면 될 듯싶었고,
천국을 이루기 위해 저것을 안 하면 안 될 듯싶었습니다.
천국을 찾는 분주함에 삶은 수레바퀴처럼 시끄럽게 굴러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습니다.
천국을 찾는 소동이 오히려 천국을 잃게 한다는 사실을…

초조해진 그들은 예수님 앞에 물으러 나왔습니다.
천국이 어느 곳에 있는지, 있다면 어느 때에 나타날는지를…


우리도 천국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것에 치중합니다.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해볼까 바쁜 발걸음에,
여기 있을까, 저기 있을까 살피는 두리번거림에,
시간은 향방 없이 흘러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릅니다.
천국을 이룬다는 부산한 욕망이
천국을 저만치 달아나게 한다는 사실을…

초조해진 우리는
천국의 주소를 물으러 예수님 앞에 나옵니다.
어디쯤 얼마나 더 가야 천국에 다다를는지를…


그런데
방황과 실망 끝에
모든 것을 그쳤을 때,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주님의 발아래 앉았을 때 조용한 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천국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천국은 먼저 마음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우리는 잊어버립니다.


숱한 자아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깊어지는 내면의 침묵 속에 고요히 귀 기울일 때에야
천국이 시작되는 소리가 들립니다.

번거로운 자기 의의 겉옷을 벗고
번잡스런 자기 의의 발걸음을 멈출 때야
천국은 조용히 마음에 깃듭니다.

이일 저일 때문에 잃어버리던 천국…
이 사람 저 사람 때문에 달아나던 천국…


그러나
자아가 죽은 후
나비가 꽃에 살포시 날개를 접듯
사랑과 평화로 마음속에 세워지는 주님의 나라, 천국…


숨어있는 천국을 찾은 사람은 알 것입니다.
마음속에 천국을 이룬 사람은 알 것입니다.
밖에서 찾던 천국은 신기루 같이 사라지지만,
마음속에 심어진 천국은 영원하다는 것을…

제1부_두뇌에 새겨지는 길 - 뇌 회로

총 제목: 마음과 두뇌에 새기는 지도

세 천사의 현대진리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와 과제는 죄를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자의 남은 무리,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죄에 대한 승리를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죄와 유혹을 이기며 승리하는 사람들입니다. 죄의 승리와 어린 양 예수의 성품을 완성하는 일이 이들의 특징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특징은 또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믿음인 “예수 믿음”을 가진, 살아서 승천할 십사만 사천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6천여 년 동안 타락한 죄의 세상에 살면서 죄와 자아를 정복하고 승리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이 중요한 과제를 성취하기 위해 우리는 이 주제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두뇌와 마음의 작용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죄의 승리와 인간의 두뇌의 기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는 삶의 기적이 독자 여러분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 편집실 –


제 1부: 두뇌에 새겨지는 길 - 뇌 회로

아름답고 순결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루고 죄를 승리하는 사람이 되라는 임무를 맡은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그러나 인류의 첫 조상의 범죄로 선천적으로 죄로 기울기 쉬운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그리고 후천적으로 배양된 죄악적인 습관과 기질을 가진 우리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고 죄를 승리하며 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성경은 그 일이 가능하다고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다. 곧 하나님의 은혜와 보혈의 능력으로 인간이 죄를 이기며 의로운 생애를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과 점이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성경은 우리가 주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나쁜 성질과 유전자로부터 구속을 받고 새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의 말씀인가! 또 성경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여 정결함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죄의 도말까지도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행 3:19). 여기서 “죄 없이함”의 영어 본문은 “your sins may be blotted out”인데, 이 문장에는 죄의 도말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를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이나 경향, 그리고 그 죄에 대한 기억과 그것에 연관된 사람이나 사건에 대한 기억조차 깨끗하게 지워지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일이 과연 우리의 현실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

1) 두뇌가 만드는 지도

1. 뉴런과 시냅스

우리 두뇌 속에서는 매일 매 순간 지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중에 무늬가 새겨지듯 뿌리가 뻗어 나가고, 그 뻗어내린 뿌리로 두뇌 속에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뇌에는 수천억 개의 신경 세포 “뉴런”이 있다. 뉴런의 구조를 보면, 신경 세포의 중심이 되는 둥근 모양의 세포체와 잔가지가 뻗은 듯 사방으로 뻗어 있는 세포체에 난 가지돌기, 그리고 길게 하나로 뻗어있는 신경돌기로 이루어져 있다. 잔가지처럼 뻗어있는 가지돌기는 다른 신경 세포에서 보내는 신호를 수신하는 기능을 하며, 신경돌기는 가지돌기에서 받은 신호를 전달하는 작용을 한다. 그런데 이 뉴런들은 서로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서로 미세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 이 미세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던 신경 세포들은 자극을 전달할 때마다 서로 붙었다 떨어졌다 하기를 반복하는데, 뉴런과 뉴런 사이의 접합 부분을 “시냅스”라고 부른다.

뇌의 기능은 시냅스의 작용과 전달 때문에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자극이 뇌 신경 세포 뉴런에 전달되면 서로 떨어져 있던 뉴런과 뉴런이 그 자극을 전달하기 위해 서로 연결된다. 곧 가느다란 잔가지처럼 뻗어있는 신경 세포의 끝 부분과 다른 신경 세포의 끝 부분이 접합되고, 이 접합 부분 “시냅스”를 통해 다른 신경 세포로 자극과 흥분이 전달되는 것이다. 이 작용을 시냅스 연결이라고 한다. 이런 시냅스의 미묘한 작용과 전도를 통해 두뇌 신경계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 시냅스 연결을 위해서는 여러 신경전달물질 “아세틸콜린” 같은 화학물질 등이 요구되지만 여기서 그 부분은 다루지 않기로 한다).

2) 두뇌의 회로 - 시냅스 연결

인간의 뇌 속에서는 매일 수백조 개의 시냅스 연결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시냅스 연결은 뇌에 수많은 회로를 만들어낸다. 이 시냅스 연결을 통해 회로가 만들어지는 양상이 마치 뇌에 길이 새겨지는 것이나 뇌에 뿌리를 내리는 양상을 띠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논증한다. 시냅스 연결 회로에는 보기, 듣기, 느끼기, 생각하기, 위험에 반응하는 등등의 여러 기능은 물론, 어떤 자극을 받을 때 일어나는 감정적 반응, 느낌의 발생, 노선 결정, 행동을 취함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시냅스는 성격상 한 방향으로 흥분을 전달하는 “전방전도의 법칙”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어떤 순간에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그 자극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가에 따라 그 방향으로 회로가 만들어지는데, 다음 번에 자극을 받으면 한 번 만들어진 그 회로 쪽으로 쉽게 연결된다는 것이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한 번 흥분이 전달되어 반응이 일어나게 된 그 방향으로 시냅스의 연결은 계속되기 쉬우며, 이 연결이 마치 지도가 만들어지듯 뇌에 길을 새겨놓는다는 것이다. 쉬운 예로, 만일 우리가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그것에 대해 한 번 화를 내면 화를 내는 방향으로 회로가 생겨 다음 번에 자극이 올 때는 더 쉽게 화를 내게 된다는 것이다. 또 어떤 것이 감지되고 느껴졌을 때 그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비난하거나 미워하면, 그런 부정적인 쪽으로 회로가 만들어져 다음 번 자극을 받을 때는 더 쉽게 비난하고 미워하고 부정적이 된다.

그러나 어떤 일에 감사하고 기뻐하면 그것이 회로를 결정하고 습관을 만들어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의 회로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시냅스 연결 회로에 의해 뇌에 뿌리가 내려지고, 그 뿌리로 말미암아 우리 뇌에 길이 새겨진다. 그리고 이것이 곧 우리의 성격이 된다. 유명한 뇌신경학자 “조지프 루드”(Joseph LeDoux)는 그의 저서 “시냅스와 자아”에서 밝히기를, “인간의 뇌 속의 시냅스 연결이 변화하면 그 사람의 기질, 성격, 인격(personality)도 변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어떤 일을 21번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는 말이 있다. 생물학적으로 뇌에 새로운 습관이 형성되려면 어른은 보통 14일에서 21일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어떤 습관이 만들어졌다는 뜻은 우리의 뇌 속에 길, 곧 전달 회로가 확실하게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3) 유전인가? 습득인가?

우리의 성격과 기질은 유전으로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학습과 교육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일까? “조지프 루드” 박사는 본성 대 양육이라는 오래된 논쟁에서 어느 한 편을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지혜롭게 논증해 놓았다. “우리의 유전자들은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을 한쪽으로 기울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과 그 일의 방식을 책임지는 뇌의 시스템들은 학습에 의해 형성된다.”
이 말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성향이나 성질에 의해 성격이나 성품이 결정되지만, 후천적으로 얻은 지식의 습득과 학습에 의해서 그리고 뇌에서 이루어지는 기전과 시스템의 작용들을 통해 성질이나 성품이 다시 꼴지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경건하고 신실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더 좋은 성품과 인격을 타고나지만, 바람직하지 못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교육과 신앙과 진리의 학습과 습득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성품과 인격이 좌우될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다.

죄의 승리와 성품의 완성을 추구하는 마지막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 논제는 매우 중요하다. 뇌의 기전과 작용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이 사실을 뒷받침할 때에 우리들은 더 용기를 가지고 이 과제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뇌의 대부분 시스템들은 “가소성”(plasticity)을 가지고 있다. 가소성이란 말은 원래 물리학적인 용어인데, 외부의 힘으로 어떤 형체가 변형되면, 그 외력을 제거하여도 그 변형된 형체가 그대로 남는 성질을 가리킨다. 그런데 뇌신경 학계에서 말하는 뇌의 가소성이란, 기억이나 학습, 교육을 통해 생기는 뇌의 유연한 적응능력을 가리키는 말로, 짧은 기간에 가해진 자극에 의해 뇌에 장기적인 변화가 일어나, 자극이 제거된 후에도 그 변화가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두뇌는 좋은 교육과 자극을 통해 변화될 수 있으며, 경험과 습득에 의해 변형될 수 있다는 말이다. 습득과 학습에 의해, 들여보내고 주어지는 자극에 의해 두뇌가 변하고 그에 따라 인격과 성품도 변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두뇌의 시냅스 연결들은 자극과 경험 때문에 변형될 수 있다는 결론이 유추된다. 만일 학습과 기억이 없다면 사람들은 유전에 의해서만 물려받은 빈약한 인격(personality)을 가지고 평생을 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창조하신 두뇌는 학습과 교육을 통해 발전하게 되어 있다. 뇌 속에서 기능하는 네트워크들의 작용, 즉, 시냅스 연결 같은 작용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학습하고 저장할 수 있게 창조된 것이다. 이 학습된 성향들은 마음과 행동의 모든 측면들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신경학계에서는, 뇌의 가소성으로 인해 인간의 두뇌는 변하며, 지식이나 경험, 학습과 기억 등으로 인해 바뀔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 논리는 우리가 현재 믿고 있는 신념을 얼마나 든든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는가!

앞서 소개한 루드 박사도 주장하고 있는 뇌의 가소성, 즉 두뇌의 미세하고 부분적인 변화 가능성 속에는 놀라운 것이 잠재돼 있다. 루드 박사는 이러한 뇌의 가소성을 인간의 자아 형성과 연결시키고 있다. 그는 뉴런이 네트워크가 생길 때 가지고 있던 원래 초생의 특징과 결합되는 이 변화 가능성이 인간의 자아가 성립되는 기원이라고 주장한다. 뇌의 가소성 때문에 뉴런의 네트워크에는 셀 수 없는 수많은 연결을 위한 분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뉴런들이 늘 연결되어 있지 않고 미세한 간격의 틈을 갖고 있다는 과학적인 사실은, 뉴런이 항상 연결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에 있지만, 늘 연결된 상태를 유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늘 어떤 자극에 대해서 어떤 새로운 연결이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루드 박사는 "자아가 시냅스적인 것은 저주일 수도 있다…그러나 그것은 축복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언제나 새로운 연결들이 만들어지기 위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시냅스들이다. 그들이 당신의 정체성이다”라고 그의 책에 기술하고 있다.

시냅스의 연결, 곧 한번 만들어지면 또다시 똑같은 연결을 만들려는 시냅스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그 연결이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할 수 있다는 과학적인 뒷받침은,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닮고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성화될 수 있다는 진리의 가르침을 얼마나 넉넉하게 지지해 주고 있는가!

제2부_뇌의 기전과 죄의 승리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우리 뇌 속에는 길이 나 있다. 그런데 아마도 그것의 대부분이 좋지 않은 죄의 습관, 악한 성격, 부정적인 경향 등으로 다져진 시냅스 연결 회로일 것이다. 유전적으로 타고났기 때문에, 혹은 후천적으로 배양되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죄로 기울어지기 쉬운 성향과 자아의 특성이 깊숙이 뿌리박혀 있을 것이다. 앞서 우리는 시냅스의 연결이 자아를 형성한다는 과학적인 논증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뇌 속에 이미 새겨진 그 회로를 바꾸는 방법과 부정적으로 꼴 지워진 좋지 않은 성질의 회로를 바꾸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과학적으로 어떻게 증명될까? 성경이 말하는 새 마음, 새 성격, 새 생애는 가능한 것인가?

1) 뉴런과 자아 형성

앞서 우리는 두뇌의 신경 세포들이 만들어내는 천조 개에 가까운 수의 시냅스 연결과 자아 형성과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자아가 형성된다는 것은 두뇌에, 그리고 행동이나 사고에 일정한 패턴이 만들어짐을 뜻한다. 그 패턴에만 따라, 그 회로로만 시냅스의 연결이 오랫동안 이루어져 온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또 하나의 사실은, 시냅스는 그동안 이루어졌던 연결 가운데 쓰지 않는 것들은 다시 단절시키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던 잠재력이 이미 형성된 반복적인 패턴만 남겨진 채 축소되고 소멸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나’, 혹은 ‘자아’라고 부르는 어떤 패턴의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은, 엄청난 수의 시냅스의 연결과 그것이 만들어 내었던 수많은 잠재성의 축소와 소멸을 동반하는 것이다. 두뇌에서 시냅스가 만드는 연결 회로 중 어떤 패턴이 결정될 것인지는, 뉴런을 움직이게 하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 결정된다. 곧 우리의 신경 세포에 어떤 자극을 지속해서 공급할 것인지는 각 개인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즉 자아를 잘 형성하기 위한 유익한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의 자아란 외부조건과 자극에 의해 활동을 지속한 뉴런과 시냅스 연결망과 매우 깊은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측면에서 이 주제를 숙고해 본다면 누구나 이 과학적인 사실에서 큰 도움과 유익한 적용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가 뇌에 주는 자극, 곧 어떤 것을 공급하느냐에 따라 형성될 수 있다. 만일 두뇌가 세속적이고 부패한 외부조건 아래에서 거룩하지 못한 죄악적인 자극을 계속 받게 되면, 그 자아는 세속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비영적인 것으로 형성될 것이다. 다시 말해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감화 아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영적인 사물들을 보고 묵상한다면, 그 두뇌와 마음은 거룩하고 순결한 자극에 의해 계발되어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과 성품을 이루게 될 것이요, 그 반대로 거룩하지 못한 감화 아래 두뇌가 계속해서 자극을 받게 하고, 세속적인 것을 보고 듣게 하며 죄악적인 자극 속에 지속해서 노출되면, 그는 세속적이고 육적인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2) 회로의 변경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져 있다. 그것은 두뇌의 기전에는 “하향적 원인작용”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하나의 사고나 의지에 의해 뇌가 어떤 명령들을 내리는 과정인데, 이 작용은 시냅스 연결이 지금까지 만들어진 회로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그것에 제동을 걸어 새로운 회로를 만든다. 즉, 그동안 활동했던 뉴런의 네트워크에 변화를 가져와 새로운 다른 네트워크가 활동하도록 하는 작용이다. 인간이 어떤 의지를 수행할 때마다 두뇌에서는 “하향적 원인작용”이 일어난다. 아무리 두뇌의 회로가 결정되고 일정한 패턴이 정해졌다고 해도, 변화의 가능성이 닫히는 것이 아니고, 이 하향작용 때문에 새로운 변화가 시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두뇌에 회로가 정해진 후에도 뇌는 계속 생성될 수 있으며, 뇌 신경 세포(뉴런)들은 새로운 연결에 대해 열린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상, 새로운 관계, 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두뇌의 기전 중에 이 “하향적 원인작용” 기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 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의지의 힘과 죄에 대한 승리의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밑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무리 우리 뇌 속에 부정적인 회로가 만들어져 있어도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뇌에 역사하시면 새로운 의지가 생길 수 있으며, 이 새 의지에 따라 뇌에 새로운 회로도 만들어질 수 있음을 과학이 증명해 주고 있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죄로 기울어지는 본성을 고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고 성화되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죄의 승리는 가능한 것인가? 이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Yes, 그렇다!”이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성벽까지 새롭게 고칠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한 의지를 예수님께 바치면 주님께서 우리의 의지를 순결하게 변화시키시고 옳은 편을 택할 능력과 힘을 주신다. 그런데 여기에는 반드시 우리의 노력이 첨가되어야 한다. 매일 세속적인 스토리나 부패한 세상의 뉴스거리들로만 마음과 머리를 가득 채우면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우리의 성품이 거룩하게 변화되고 죄를 승리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두뇌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영적인 자극을 주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예수님의 순결하신 생애를 명상하고, 그 생애를 닮기 위해 온 힘을 다 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늘 구하며 주님의 뜻에 순복하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이다. 그럴 때에 우리의 두뇌 속에 이미 새겨진 회로로 가려는 성향에 제동이 걸리고, 그대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새로운 길, 새로운 성향으로 가려는 회로가 만들어진다. 새로운 거듭남이 새로운 의지를 가져와 새로운 길, 새로운 회로를 만드는 것이다!

제3부_마음의 법칙과 작용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흔히 마음 하면 가슴을 가리키지만, 사실 우리의 마음은 우리 머릿속에 있다. 성품 변화의 필요성과 죄의 승리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마음의 작용을 잘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마음의 법칙을 잘 알고 있어야 성화의 길을 가기가 쉽기 때문이다.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고 말하고 있다. 또한 자신을 복종시키고 마음을 다스려야 함에 대해 “마음에 할례”를 받고 “마음 가죽”을 베라는 말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물론 마음의 할례를 받는다는 뜻은 거듭남을 의미하지만, 이 의미를 앞서 공부한 과학적인 뇌의 기전으로 해석해 보면, 육적이고 죄악적인 자극을 두뇌로 계속해서 들여보내어 육신의 생각대로 마구 흐르는 부정적 회로를 만들지 말고, 뜻을 정하고 생각을 순결한 영적 사물과 하나님께 붙들어 매므로 영적인 자극과 감화 속에서 긍정적인 회로를 만들라는 의미로 풀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의 법칙과 그 작용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

1) 마음은 가장 친밀한 것과 동화된다

인간의 마음은 가장 친숙하고 가까운 것에 따라서 동화되며 같은 특징을 나타낸다. 가장 자주 접하는 어떤 것, 가장 자주 보고 집중하는 어떤 사물, 가장 친밀하게 접하는 사상, 가장 친숙하게 지내는 어떤 것을 닮을 뿐 아니라 같은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의 법칙이며 작용이다. 오래 산 부부나 친한 친구들이 서로 닮았다는 말을 듣는 것도 이런 작용의 결과이며, 어른들의 훈계 속에 늘 등장하는 좋은 친구를 사귀고 좋은 책을 읽어야 사람이 좋아진다는 말도 이러한 마음의 작용 때문이다. 시편의 기자는 이런 마음의 법칙을 잘 알았기 때문에 이런 간증을 기술해 놓았다.
“나는 비루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시 101:3). 이것이 무슨 뜻인가? 이 말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한다면,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자주 미디어, 영화나 드라마, 쇼와 책들을 통해 세속적이고 죄악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나 사건에 노출된다. 이런 것들을 쉽게 접하게 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된다. 만일 마음이나 생각을 붙잡지 않은 채, 세속적이고 정욕적인 사상이나 분위기나 환경에 계속 자신을 노출시키고 집중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우리가 친밀하게 접하는 것들과 똑같이 동화된다. 하도 자주 그런 것들에 접하다보니 이제는 판단이 흐려져 어떤 악한 것을 보거나 들어도 그것이 악하다고 느껴지지 않으며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두뇌에 들여보내는 자극이 된다. 이 자극들에 의해 뇌신경 세포인 뉴런과 시냅스의 연결이 이루어지며, 이것은 성품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것을 안 시편 기자는 그런 비루한 일들, 곧 저속하고 정욕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을 눈으로 보지 않겠다고 서원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자극들이 자기의 성품을 형성하여 배도자들의 악한 행위가 자신에게 나타나지 않게 하겠노라고 결심한 것이다.

“비루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않겠다는 구절에서, 왜 제일 먼저 눈을 언급했을까? 우리의 오감은 우리의 두뇌로 자극을 들여보내는 마음의 통로이다. 그 중 시각은 자극을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받는 통로가 되는데, 눈으로 보는 것이 가장 큰 자극을 주며 마음에 강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눈뿐 아니라 귀로 들여보내는 자극도 매우 중요하다. 성경에는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표현도 나온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행 7:51).
우리는 듣는 것도 가려서 들어야 한다. 악한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마음으로 들어가는 통로 오감에 파수꾼을 세워주시기를 주님께 간구하며 악한 감화에서 우리 자신과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할 것이다. 좋은 것들을 보고 듣고, 아름답고 순결한 것들에 친숙하게 되어 그렇게 동화되도록 하자.

2) 마음은 명상하는 것을 닮는다

그 마음의 생각은 곧 그 위인이다. 인격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대로 꼴지어진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제일 많이 명상하는 것에 의해 형성된다. 만일 마음이 평범한 것들과 사소한 것들로만 차 있다면 마음과 사상은 위축되고 평범해지고 연약해질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다만 육신적인 평범한 일에만 집중을 하고, 더 높고 더 원대한 사상 속에서 영적으로 고양되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마음과 사상은 축소되며,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하고 높은 부르심의 사명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시인은 거룩한 하나님과 그분의 놀라우심에 대하여 명상하면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라고 읊었다. 우리의 묵상과 명상이 하나님께 가납할 만한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매일 영혼을 약화시키고 부정하게 하는 것들로 마음이 혼란해지지 않도록 우리의 생각을 묶어서 제한시켜야 한다. 만일 우리 입술의 말이 하늘에 열납될 만한 것이 되고, 이웃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이 되게 하려면, 생각이 깨끗해야 하고 마음의 명상이 정결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하나님의 계명의 광범위한 원칙을 제시하시면서, 악한 욕망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생각으로도 율법을 범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율법은 생각으로 지키는 것이다. 마음으로 먼저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다스려 언제나 유익한 것들을 명상하여 마음을 살찌워야 한다. 우리가 골똘히 생각하고 명상하는 그 주제대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꼴지어지고 곧 우리는 그런 위인이 된다. 주님께서는 의지의 힘과 마음의 고상한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 이유는 그 능력을 하늘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영적 사물을 묵상하는 데에 쓰라고 하심이었다. 천박하고 세속적이며, 육신적인 것들을 생각하는 데에 우리의 마음을 쓰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시간과 생각을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에다 쏟고 영생에 속한 중대한 일은 등한히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만일 우리가 사도 베드로의 말처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마음의 악한 상상과 생각을 대항하려는 열렬하고도 지속적인 영혼의 투쟁을 시작해야만 한다. 항상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생각과 행동으로 죄를 지으려는 유혹을 굳세게 저항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지키사 넘어지지 않게 하실 분”을 믿으며 부정적인 것에 우리의 영혼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잘 보존해야 한다.

영원한 하늘에 속한 사물들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성품과 생애를 명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명상이다. 예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 우리를 위해서 치르신 크신 희생, 순결하고 죄 없으셨던 생애, 이런 주제는 우리가 매일 시간을 내어 명상할 필요가 있는 주제들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구주의 품성을 매일 깊이 명상하며 그분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주님의 순결하신 생애가 드러나고, 반면에 우리의 죄와 허물이 더 두드러지게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허물을 깨닫게 되고 순결하신 주님을 닮고 싶어질 것이다. 하늘에 속한 주제들을 계속 명상하면,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더욱 강해지고 우리의 기도는 점점 더 하나님께 가납될 만한 기도가 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 마음속에 더 충만하게 역사하시고 우리의 생각은 점점 주님의 능력 안에서 순결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변화해 갈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가 하는 명상대로 우리의 마음은 꼴지어질 것이다.

3) 바라봄으로 변화된다

무엇을 계속 바라보면 그것처럼 변화된다. 바라봄으로 변화되는 것은 지성적 본성의 법칙일 뿐 아니라 영적 본성의 법칙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은 바라보도록 허락된 사물에 점차 적응된다. 좋아서 바라보고 흠모하는 것에 동화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이상보다 더 높아질 수가 없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순결과 지고의 선과 진실의 표준 이상으로 향상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자아나 같은 인간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다면 그 이상의 표준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거룩하신 모본이신 예수님의 완전하심을 바라본다면, 그분의 순결한 형상으로 온전히 변화함을 입고 새롭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우리의 사모하는 주님처럼 되고자 하는 영혼의 목마름이 솟아날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예수님께 더 오래 머무르면 머물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예수님에 관해 많이 말하게 될 것이고, 세상에 그분과 닮은 모습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사도 요한의 생애 가운데 나타난 품성의 변화는 바라봄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산 실례가 된다. 요한은 예수님을 끊임없이 바라보았다. 우레의 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화를 잘 내고 다른 사람에게 분노와 증오를 잘 표출하던 불같은 성격의 제자가, 온유하고 친절하고 사려 깊고 사랑이 충만한 성격의 사람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주님을 닮기 원해서 항상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과 교제한 결과이다. 그는 품성에 결점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주님을 늘 바라보았을 때에 거룩한 은혜의 능력이 그를 변화시키고 성화시켰다. 그의 말처럼, “거울을 보는 것처럼” 주의 영광을 바라봄으로 그는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하여 마침내 그가 사모하던 그분과 같아진 것이다. 성화의 모본이 된 요한은 그의 편지 속에 이 마음의 법칙을 이렇게 제시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성화의 길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그분을 늘 바라보게 하며 그것은 자연스러운 성화의 길을 걷게 한다. 성화란 한순간, 한 시간, 하루의 일이 아니라 필생의 사업이다. 이것은 매일 매 순간 끊임없이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사는 일의 결과이다. 때때로 중단되는 나약한 노력으로는 성화의 길을 걸을 수 없고 마음과 품성에 변화가 올 수 없다. 오로지 오랜 끈기 있는 노력, 쓰라린 투쟁에 의해서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으며 그래야 우리는 죄를 승리할 수 있다. 죄된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는 늘 복종시켜야 할 자아가 있고 극복해야 하고 얽매이게 하는 죄악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이 계속하는 한 멈추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며 성화의 길을 가야 한다.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변화된다. 아무리 창조주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 해도 정신과 마음을 어떻게 수양하는가에 따라서 변화가 오든지 퇴보가 온다. 예전에 미워했던 죄를 좋아하게도 되고 옛 생애로 돌아갈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기를 그칠 때에, 마음의 성채를 지키는 일에 실패할 때에 우리는 죄와 유혹에 빠지게 되고 타락하게 된다. 육적인 것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싸우며, 하나님의 은혜의 순화시키는 감화에 순복하며, 매일 주님을 바라보자! 바라봄으로써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다.

제4부_마음과 죄의 승리의 함수관계

마지막 세대! 6천여 년 동안 가장 나쁜 유전자의 영향을 받고 태어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가장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그리고 죄의 결과로 인해 가장 퇴보되고 연약한 상태로 태어난 마지막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는 십사만 사천이 되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 성경은 마지막 세대의 하나님의 자녀들, 곧 여자의 남은 무리가 죄를 승리해야 하며 온전한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어야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이 완성되고 이 세상에 끝이 온다고 말하고 있다.

1) 죄의 승리가 필요한 이유

우주에는 한번 대단한 모험과 전쟁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의지와 그 의지의 오용과 선택이 초래한 결과로 우주에 일어난 죄의 시작과 전쟁이었다. 하나님의 정부와 우주의 법칙과 조화를 깬 것은 죄였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의 면전에서, 순진무구하고 아무런 죄악의 형태나 그림자조차 없던 곳에서 죄가 시작되었다. 죄의 기원은 신비이기 때문에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죄가 시작된 곳은 마음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유추할 수 있다. 하늘은 죄로 인해 야기된 비극과 고통과 슬픔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죄로 인해 생긴 부조화와 불협화음으로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겪으셨다. 다시는 죄와 반역이 일어나면 안 된다. 회복된 하늘과 땅에는 결코 죄가 다시 존재할 수 없으며 존재해서도 안 된다. 회복된 지구,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예전의 기억, 죄의 비극의 기억이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구속된 자들이 영원히 안전하게 거하는 곳이 될 것이다.

죄를 승리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하늘이다. 하늘은 특정한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 하늘에 들어와도 안전한 사람, 다시는 죄의 반역을 일으키지 않을 사람, 죄의 싹이 마음에서 제거된 사람, 거룩한 천사들의 사회에 살기에 적합하게 된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서 베푸신 구속의 계획에 참여하여 완전한 변화를 얻은 사람이다. 죄를 회개할 뿐만 아니라, 그 죄의 악함을 익히 잘 알므로 그 죄를 철저히 미워하는 사람, 죄의 뿌리가 끊기고 죄를 승리하며, 마음의 동기조차 정결하게 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주장하는 논리, 곧 하나님의 법은 불공평한 법이며 인간은 그 계명을 지킬 수 없으므로 하나님은 지킬 수 없는 계명을 강요하는 독재자라는 논리를 논박하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증명해 줄 증인이 필요하시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 생겨나야 한다. 하나님의 구속 사업은 이 일을 가능하게 한다. 다시는 하늘과 우주에 죄의 반역과 배도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구속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한 백성을 탄생시킬 것이며, 그리하여 그 사람들 때문에 우주는 영원히 안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죄를 미워하고 그 죄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소원을 일으켜 주신다. 이 구원의 경험을 맛보는 사람들은 매일 깊어지는 회개와 주님을 닮고 싶은 욕망으로 죄를 멀리하고 죄의 뿌리까지 뽑히게 하며, 자신의 죄가 사랑하는 주님을 짓밟고 슬프시게 한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느끼므로 자아를 주님께 온전히 굴복하는 체험 속에 살게 된다. 그들은 죄를 지을 유혹과 시험을 받을 때, 마치 자신의 눈이나 손을 찍어버리듯, 자기 뜻대로 하고 싶은 욕망과 자아를 잘라버리고 굴복하며 성령께서 매 순간 자신을 다스려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이렇게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완전한 구원의 경험에 들어간 사람들만이 죄를 승리할 것이며, 하늘의 순결하고 거룩한 사회에 가서 살기에 적합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구원의 경험이 죄를 승리하는 십사만 사천의 품성의 특징이고, 이런 사람들이 마지막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하나님을 변호하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2) 마음과 죄의 승리와 시냅스

우리의 마음과 두뇌의 신경 세포 뉴런과 시냅스의 작용은 죄의 승리와 함수관계에 있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 지속해서 우리의 의지를 바치고, 매 순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올바른 편을 선택한다면, 그리고 죄의 유혹이 올 때 재빨리 그 죄를 승리하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여 그것을 물리친다면, 우리는 죄를 승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것은 가능한 것이며, 이런 경험을 지속해서 하게 될 때에 이것은 우리의 습관이 될 것이다. 이런 습관은 우리의 두뇌에 긍정적인 회로를 만든다. 한번 죄를 승리하면 다음에는 그 유혹을 견디는 일이 더 쉬워지고, 한번 유혹과 시험에 지면 그다음에 그 유혹에 넘어가는 일이 더 쉬워진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죄의 유혹을 저항하고 거절한다면, 우리의 두뇌에는 과거에 죄와 유혹에 번번이 실패하여 쓰러지므로 생긴 두뇌의 회로와 뻗어내린 길이 정정되고 새로운 회로가 생성될 것이다. 우리가 구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유혹과 죄를 이길 힘을 즉각적으로 공급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두뇌가 그동안 받아오던 자극과 반대되는 새로운 자극이 되어 두뇌에 새로운 회로를 생성하는 데에 놀라운 기여를 할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 두뇌에 회로를 만들고 있다. 우리의 한 번의 반응, 우리의 한 번의 감정의 발로, 우리의 한 번의 말과 생각들이 모여서 회로를 만들고 그 회로는 품성을 만들어 낸다. 마치 미술가나 조각가가 판에 그림을 그리고 새기듯이 날마다 우리의 품성은 우리 두뇌에 새겨지고 있다. 어떤 유혹을 이긴 한 번의 승리는 또 다른 승리를 예고하며, 그 한 번의 승리는 미래의 승리를 보장한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매 순간 주님께 바쳐서 옳은 편을 택하고 있는가? 우리의 두뇌의 회로는 성령의 역사로 인도되고 있는가? 우리 마음과 두뇌에 새겨지는 지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것이 되고 있는가? 매일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는 습관을 들이자!

3) 신앙과 품성은 비례한다

우리의 매 순간의 선택은 두뇌에 좋은 길을 만들고 그것은 곧 좋은 인격을 형성한다. 좋은 인격 속에는 좋은 신앙이 깃들고, 좋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온유한 품성을 소유한다. 신앙은 매우 균형 있고 조화로운 사람을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균형진 마음과 건전한 정신과 원만한 품격을 가진 예모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필요로 하신다. 신앙이 열렬하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영적으로 매우 연약하고 병약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혹은 편협되거나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시련이나 마찰에도 흔들리지 않는 깊고 안정적이고 균형을 잘 갖춘 신앙이다. 마음이나 인품이 좁고 까다로운 사람에게 좋은 신앙이 안착하기가 쉽지 않고, 변덕스럽고 인색하거나 괴벽한 사람에게 너그러운 신앙이 수립되기가 쉽지 않다. 왜곡된 성격을 가졌거나 삐뚤어진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신앙 생활에 정착을 하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은 안정적이고 침착하게 마음과 정신의 영적 계발과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어떤 흥분적인 이슈나 현상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때와 시기에 관한 메시지와 징조들은 우리를 분기시켜서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게 하는 동기유발을 일으키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경험을 차근차근히 해나가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신앙은 어떤 요동이나 시련에도 흔들려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이다. 신앙은 평소에 어떤 선택을 하고 사는가에 달렸다.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 품성이 변화되지 않는 사람은 참된 신앙인이 아니다. 신앙과 품성은 서로 비례하는 것이다.

4) 마음의 의지와 변화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겔 3: 26)라는 성경 구절은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를 의미한다. 마음의 변화는 새로운 사람을 만든다. 마음의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이 가지고 있는 선택의 능력을 활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의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고,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애정을 지배할 수 없다. 또 우리 자신을 순결하게 하여 하나님께 적합한 상태로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 있고, 우리의 의지를 그분께 드릴 수는 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것이고, 우리의 본성 전체가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우리 마음에는 변화가 생긴다.
사단은 악을 행하도록 결코 우리를 강요하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이 사단의 지배에 굴복당하지 않는 한 그는 우리를 지배할 수 없다. 먼저 우리 마음의 의지가 사단의 유혹을 승낙하고 믿음이 그리스도를 붙잡은 손을 놓은 후에야 사단은 자기의 세력을 우리에게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품고 있는 모든 죄된 욕망은 사단에게 발판을 제공하고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역사하도록 문을 열어준다. 우리가 하나님의 표준에 이르지 못한 모든 점마다 사단이 들어와서 우리를 시험하고 멸망시킬 수 있는 기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매 순간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 의지를 주님께 굴복하고 바치는 경험을 지속해야 한다. 오랫동안 배양되어 온 죄를 승리하는 믿음은 매일의 선택에서 형성된다. 우리의 현재는 미래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미래 전체는 우리가 지금 선택하는 것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죄에 대한 승리는 마음의 원칙이 바뀔 때에 가능해진다. 마음의 변화는 하늘에서 오신 교사인 예수님에게서 배울 때 가능해진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쳐다보고,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의 원칙이 우리 마음에 심어져야 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그렇게 하여 예수님의 사랑이 마음에 충만하게 될 때, 우리의 마음과 품성은 그리스도의 품성과 같이 변할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8).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랑의 특성들이 그분의 자녀들의 품성에 완전히 반영되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품성의 미를 통하여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바치고 주님께 매일 굴복할 때에 우리 생애에는 자연히 변화가 따르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품성이 그리스도를 닮게 될 때에 주님께서는 당신과 닮은 사람들을 데리러 이 땅에 오실 것이다. 우리는 이기심 없는 순결한 마음과 품성을 준비하고 있는가? 천사들의 사회에 함께 살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준비되고 있는가? 죄를 태우시고 소멸하시는 불이 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지내기에 안전한 회개한 사람인가? 우리의 의지를 매일 주님께 굴복하고 있는가? 마음의 변화가 온 사람만이 새 하늘에 들어갈 자격을 얻을 것이다.


**마치면서

오늘도 우리는 우리 두뇌 속에 수만 가지의 길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 결정한 것들이 회로를 생성하고 뿌리를 내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든 그 회로는 우리의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은 우리의 품성을 만들며, 그 품성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두뇌에 어떤 회로를 만드셨습니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셨나요?
두뇌에 어떤 자극을 들여보내셨습니까?
어떤 것을 바라보고 어떤 것을 생각하고 명상하셨습니까?
우리의 순간순간은 죄를 승리하는 품성을 연마하는 귀중한 것입니다. 우리의 오늘은 내세를 위한 품성을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의지를 주님께 바치고 주님의 은혜의 역사를 따라서 두뇌의 길을 만든다면,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과 두뇌에 주님의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서 회로와 지도가 만들어지고 새겨진다면, 우리는 죄를 승리할 수 있을 것이며, 죄를 승리하는 그 품성은 우리를 하늘에 가서 살기에 적합한 자격을 갖추게 할 것입니다.
매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여러분의 두뇌에 아름다운 지도가 새겨지기를 기도합니다.

신앙 간증_43명의 거듭남 예식, 침례

<2015년 SOSTV 봄 집회에서 43명의 영혼들이 침례를 받고 새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짧은 여운을 이곳에 남겨봅니다. 지면상 모든 분들을 소개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네요>

1. 이명애--라합이 시대의 흐름을 알고 ‘이것이 진리다’ 깨달았을 때 그녀는 목숨을 걸고 정탐꾼을 숨겨 주었습니다. 제가 이 진리를 깨닫고 시대의 흐름도 깨닫고 지금 어느 때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영광의 반열에 서 있는 것이 주님의 자비요 은혜입니다. 아버지께서 가슴 졸이시고 영원히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인가? 사탄의 자녀로 살다가 영원히 멸망 받을 것인가? 가슴 아프게 애달파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이곳에서, 아버지께 영광 돌릴 기회가 주어진 이 땅에서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온 맘 다해 아버지께 영광 돌리다가 요한처럼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그리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아버지 다 표현 할 수는 없을 만큼 온 맘 다해 아버지께 흐르는 눈물과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모습으로 내면에서 외면에서 풍겨 나오는 딸이 되게 만들어 주옵소서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2. 임병선--“지금 잠겨있는 이곳은 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입니다.” 손계문 목사님의 귓속말이 지금도 메아리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 안에서 죽겠다고 또 예수로만 살겠다고 생명의 서약을 했습니다. 이젠 변명의 여지없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항상 친절하며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대접하기를 좋아하고 형제와 함께 수고하는 것을 기뻐하겠습니다. 잘못을 신속히 인정하고 정직하게 말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늘 어린양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 수 있도록 깨어 있겠습니다. 깨닫게 해주시는 진리 말씀대로 늦추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그대로 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삶을 우선하며 살겠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형제자매님들과 주님 만나는 그 순간까지 길동무로서 이번 침례를 새사람, 새 성품으로 살겠다는 분명한 전환점으로 삼겠습니다. 이끄소서 주님!

3. 배애경--마음의 만족과 평화를 얻기 위해 50년 넘게 미친 짓도 많이 하고 여러 곳을 기웃거리다가 나름 기독교신앙을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과 상관없는 마귀 편이었습니다. 주님 편에 서서 주님 발자취를 좇고 주님 뜻을 따라 매일 죄와 싸워 이길 마음의 준비가 된 증표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육신의 나는 죽고, 옛 자아는 지나가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심경으로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갔지만 뜨거운 주님의 피에 담기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보혈의 피가 나를 깨끗하게 씻어주고 죄와 싸울 힘을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하루하루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나를 완전히 내려놓고 유일한 소망으로서 하나님 아버지만 바라보며 주님 오실 날만 기다립니다.

4. 최용수--저는 진리를 접하고 침례를 너무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정상 침례식은 미루어졌고 저는 그때부터 침례 받은 것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일에 온 마음을 던졌습니다. 저의 기도는 응답 되었고 주님은 간구하는 저를 품어 주셨습니다. 성경을 깨닫게 해주셨고 오류를 버리게 해주셨고 죄에서 승리하게 해주셨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무에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킬 수 있도록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침례를 잊고 있던 어느 날 침례식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어떤 마음으로 침례를 받아야 할지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저에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참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침례식이 있기 바로 전날에는 이 말씀이 가슴 깊은 곳까지 전해져 왔습니다. 하나님을 목숨과 같이 사랑한다고 여기는 저에게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여기는 마음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맞습니다. 주님! 이번 침례를 통하여 새롭게 거듭나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기도했습니다. 침례식이 끝나고 저의 마음은 변화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 마음이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자라날 것을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기쁨으로 순종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드립니다.

5. 예현주--하나님의 은혜로운 이끄심으로 진리를 알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저에게 침례 받을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손계문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침례예식은 주님과 결혼하는 것이고 그 후의 삶은 그분을 따라서 그분이 원하시고 이끄시는 데로 살아야 한다고, 또 그분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알게 된 후에, 지난날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그 후 결혼 생활이 어떠했는지 잠시 생각이 났습니다. 육신의 남편에게도 저의 뜻을 굽히지 못하는 삶을 살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남편의 뜻을 어찌 다 따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기도하며 아버지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물에 들어가는 순간 '이전에 예현주는 죽고 주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게 하소서' 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물속에 잠길 때는 잠깐이었지만 무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새롭게 다시 출발하는 삶을 축복하듯 햇살이 따뜻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침례 이후의 삶에 대해서 저는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신랑 되신 그분을 신뢰하며 묵묵히 따라가면 그것이 곧 기쁨이고 평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씨앗이 땅에 떨어져서 열매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시간이 전혀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저의 삶에 귀한 열매가 열릴 때까지 묵묵히 어린양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길 원합니다.

6. 전상희--침례 예식 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침례의 의미를 생각하고 기도하며 한 주를 보냈지요. ‘나의 연약하고 부족함을 생각할 때 내가 과연 세상을 버릴 수 있을까? 정말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영에 따라 주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새 생명 가운데 행할 수 있을까?’ 하는 많은 고민과 근심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저를 보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나의 더러운 죄를 용서해주시고 죄를 이길 수 있게 중보해주시는 주님!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하겠다는 강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 비장한 마음으로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물에 발을 담그고 걸어가는데 마음이 떨렸습니다. 목사님이 손을 잡아주시고 기도해주시고…. 눈감은 얼굴에 너무도 밝은 햇살이 주님과 함께하는 것 같아 너무 좋았습니다. 물에 잠기고 아주 잠깐이지만 죽는 것이 이런 거구나 몇 초간 느꼈습니다. 아! 그래서 침례는 누어서 물에 잠기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기억하며 다시는 사랑하는 주님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님을 볼 때까지 주님과 함께하며 강한 군사로 주의 일하기를 고백합니다.

7. 유종목--마지막 때의 용사로서 우뚝 서게 될 43인에게 침례를 베풀게 되어 큰 영광이라 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에 왠지 어깨가 무거워지네요. ‘어떠한 고난이나 시험이 있다 하여도 주님 편에 설 것이며 기쁨으로 믿음으로 헤쳐나가리라’ 다짐합니다. 마지막 시대 환란에 굴복하지 않을 믿음을 구합니다. 복음의 참 경험을 몸소 이룸으로 주님 편에 담대히 설 수 있는 자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섬기며 살 것을 맹세합니다.

8. 신애연--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께 알고 지었던 모르고 지었던 모든 죄의 기록들이 예수님의 보혈로 말갛게 씻음 받으며 진정한 거듭남이 매일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간절한 고백으로 침례를 받습니다. 예전에 사소한 오해로 멀어진 친우나 잊어버렸던 작은 일까지도 생각나게 하셔서 연락하여 모두 만나서 풀 수 있는 마음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매일 주님을 신뢰하며 온전한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율법을 온전히 이루도록 나의 자신을 굴복합니다.

9. 남형주--‘침례 때 어떤 느낌일까? 예수님처럼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막상 침례 당일 그 장소는 장례식 같은 느낌이 저에게는 들었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물속으로 나아가는 것이 마치 죽으러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엄숙히 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목사님이 저를 붙들고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진리를 위해 전진해 온 자매님의 삶을 아십니다.”고 말씀하실 때 주의 가납과 사랑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그러면서 “주여! 저를 받아주옵소서”라는 마음으로 물에 들어가라 하셨기에 진심을 담아 그렇게 기도하며 물속에 잠겼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는 너무나 잔잔한 기쁨이 샘솟듯 쏟아짐을 느꼈습니다. 늘 변함없이 예수님 의지하며 마음을 살피고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이 되도록 날마다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10. 김규명— 최근 가정에 극심한 혼란과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믿음이 방향을 잃어버리고 표류했습니다. 기도가 되지 않고 말씀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시금 저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너무도 추했습니다. 믿음 없는 저 자신이, 사랑 없는 제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한 번 저의 신앙을 점검했습니다. 세상에서 버려야 할 것과 죽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지 아니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침례를 받기 위해서 옷을 갈아입고 기다리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엄숙한 침례예식을 위하여 물에 들어가면서 ‘주님! 과거에 죗된 육체의 삶을 죽여 주옵시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저도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침례를 마치고 벤치에 앉아서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하늘을 보면서 제 마음에 알 수 없는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주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육신이 살고자 아등바등 몸부림칠 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는데 죽으면 이렇게 평안한 것을. 물론 앞으로 제가 가야 할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감사함으로 갈 수 있겠습니다.

11. 안철수--주님 말씀대로 살아가길 진정 원합니다. 이번에 침례에 대한 참 의미를 알았습니다. 침례 전에 로마서를 읽으라 하여 계속 읽었습니다. 마른 죄인이 젖은 죄인이 되어 올라오지는 않을까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꿈틀거리는 자아를 물속에 던져버리고 새사람이 되어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가자는 굳은 마음을 먹고 침례를 받기로 했습니다. 맘을 다잡고 침례를 받는 것으로 결정하고 나니 오히려 맘이 편해지더군요. 세미나 기간 동안 말씀을 들으며 연신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주님께 집중합니다. 불안한 현실 속에서 헤매던 영혼을 침례 후 이렇게 붙잡아 주시고 편안한 안식을 주심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난이 따르는 삶이 오더라도 변치 않는 믿음으로 끝까지 주님을 위해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12. 김순옥--정말이지 죽고 싶었습니다. 시퍼렇게 살아 날뛰는 자아, 자존심, 성냄, 조급함, 허풍, 거짓말 셀 수도 없는 저의 죗됨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앞에서 드러날 때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흔적도 없이 죽어버리고 다시 태어나고 싶었습니다. 침례식이 있다는 말에 생각할 것도 없이 받고 싶었습니다. 침례 날짜가 다가올수록 제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성령님께서는 더 확실히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태로 침례를 받아도 될까 고민도 했지만 혈루병을 앓던 여인의 순수하고 단순한 믿음이 제 마음에 전해져 왔습니다. 믿음은 내가 어떠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 맡기면 되는 것을 그동안 머리로는 알았지만 이렇게 가슴으로 와 닿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나의 아픔의 근원을 고치시고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깊은 절망에서 날 자유케 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란 걸 알았습니다. 침례를 받으러 걸어갈 때 주님께 드린 기도를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습니다. 사도바울이 말씀하신 것처럼 매일 매 순간 죽고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이 보잘것없는 죄인에게 가까이 다가오신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13. 김차남--SOSTV를 통하여 우리 부부는 대박이 났습니다. 참 진리를 알게 되었고 주님 참사랑을 알게 되었기에 이제 남은 삶은 주님께 헌신하고 싶어 침례 받기를 원했습니다. 전에도 신앙생활을 하고 열심히 교회생활을 했지만 죄인 중에 괴수로서의 삶을 살아왔던 저입니다. 이제 지난날의 죄악 된 삶은 물속에 수장시키고 새 영과 새 마음을 받아 새롭게 되었으니 나의 마음과 뜻이 주님과 하나 되고, 정신이 주님과 일치하며, 내 생각이 주님께 사로잡혀서 주님의 품성과 생애를 살며 주님과 거룩한 동행하기 원합니다.

16. 최원환--먼저 침례를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침례 받기 전 침례의 의미와 그리고 말씀을 보며 이날을 기다렸습니다. 침례예식 전 ‘죄의 종에서 완전히 죽고 싶습니다.’ 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침례를 받기 위하여 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는 소리를 손 목사님께서 “쾅 쾅 쾅”하고 들려주셨습니다. 저를 위하여 이 낮은 곳에 오신 주님을 생각하니 목이 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물에서 장사가 되어 육신의 모든 정욕이 죽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몇 초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죽고 싶은 심정에서 물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올리시더라구요^^
이번 침례가 저에게 세 가지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첫째는 이제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는 것
- 로마서 6장의 말씀처럼 이제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고 죄에서 벗어나 주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기를 갈망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자아와 투쟁하며 사소하지만 죄를 짓는 나의 모습을 볼 때 너무나 나 자신이 싫고 미워지며 어찌할 바를 몰라 주님을 찾아 눈물의 기도를 했습니다. 내 속에 주님만이 살아계시옵소서.
둘째는 하나님의 군병으로 다시 태어남
- 이번 침례예식은 나에게 하나님께 대한 나의 충성 서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은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맹세를 충심으로 한 군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침례는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주님의 오심을 촉진하는 십자가 군병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다시 태어났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소원
- 저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소원이 생겼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자식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것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조금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직 믿음의 분량이 적어 많은 것은 모르지만 이제 한 살이니 이해해 주세요^^

14. 김판준--저에게 침례의 의미는 감정적, 감성적인 신앙에서 이성적 신앙으로 굳혀지기를 바라는 의미가 큽니다. 과거의 죄와 그 습성과 싸울 때 주님께서 부어주신 그 은혜가 너무 크고 나 자신이 너무 작아 보일 때 하염없이 흘렸던 그 눈물..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또다시 반복되는 그 습성들을 잠시 흘렸던 눈물의 시간에만 회개하고 반성하는 감성적 신앙에서 이제는 벗어나 실제 생활 속에서 매일 매일 삶 속에서 그 습성들을 이성적으로 이겨나가야 하는 과정들을 다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물 침례로 인해 죄와 죄의 습성들을 씻어내고 성령으로 다시 침례를 받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자 다시 한 번 다짐해봅니다. 자아란 못된 놈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저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삶이 되도록 다짐하고 또 다짐해봅니다. 주여~ 도와주소서.

15. 최동호--개신교회에서 다니면서 세례를 받고 그 의미를 전혀 몰랐던 저는 침례의 중요성을 뒤늦게 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죽을 준비가 되었는가?’ 많은 신실한 형제자매들이 침례식을 기다리고 간절히 원했지만 아직 저는 온전히 바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이 침례식은 많은 사람들 앞과 우주 거민들 앞에 새로운 삶을 살 것이라는 서약 공포하는 것인데 내가 과연 이 마지막 시대에 인내로써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증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마지막 증인으로 과연 설 수 있는가? 그리고 내 삶에 정말 극한 상황 속에서 의와 하나님의 품성을 이룰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고민과 두려움이 걱정 근심으로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저를 힘들게 하며 예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침례식 당일 침례식을 거행하는 모습은 너무 거룩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제 차례가 오고 손 목사님의 축복의 말씀이 있고 물에 담갔을 때 저는 순간적으로 생각하기를 죽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고, 물에서 올라왔을 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으며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때 마침 햇볕이 물에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지금, 그 순간, 그 감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제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다시 살았습니다. 그리고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 거룩한 침례를 묵상하며 주님 오시는 날까지 증인되기를 결심합니다.

17. 김영희--주님께서도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 강림하셨던 것처럼 침례를 받을 수 있음에 기뻤습니다. 매일매일 삶 속에 저의 못된 옛 습성 자아, 교만, 나를 섬기던 우상들을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갈보리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피 흘리심과 찢기시고 벌거벗으신 수치는 저의 죄인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주님! 내가 거룩하니 너도 거룩하라는 명령을 지키겠습니다. 정욕을 위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하나님에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흠도 점도 없이 주님 앞에 서길 기도합니다. 은혜 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세계 동향 Top News

1. 미국 볼티모어 폭동 : 메릴랜드 주 비상사태 선포
2014년 8월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발생한 흑인 주민 소요가 미국 전역의 주요 도시로 번지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25살의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의 장례식이 끝난 직후 흑인들의 시위는 방화, 약탈, 폭력으로 얼룩진 폭동으로 변했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 100여 곳을 포함하여 수백 곳의 상점들이 불타고 약탈당했다. 메릴랜드 주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일시 휴교령과 야간 통행금지 조치를 단행했으며 주 방위군 및 경찰 약 5000여 명을 동원했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흑인들의 불만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빈곤 문제는 1960년대 수준을 하회하고 있다. 경제가 침체할수록 미국 전역으로 이런 사태는 확산될 전망이다.

2. 제이드 헬름 15 : 미국 남서부의 7개 주에서 계획된 대규모 군사훈련
미국 남서부 7개 주에서 실시하는 군사훈련인 ‘제이드 헬름 15 작전(Operation Jade Helm 15)’이 오는 7월 15일부터 9월 15일까지 진행된다. 제이드 헬름이 발표된 후 인터넷상엔 갖가지 음모론이 퍼졌고, 정치인들까지 반응하여 이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미 국방성은 리먼 위기 이후 2009년 3월, 워싱턴 DC의 존스 홉킨스 대학의 연구소(APL)에 금융 전문가들을 모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재발할 것인지 아닌지, 위기가 재발하면 미국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시뮬레이션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위기는 재발하고, 국채 금리의 급등, 기축통화 달러의 붕괴, 초인플레이션이 예측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국방성은 동시에, 미국 전역의 대학에 연구비를 대고, 중동 등의 사례를 참고로 사회가 극한의 상태가 되면 반란 • 폭동 • 내전이 어떤 시점에서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를 모델링하는 "미네르바 연구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리먼 위기 이후에, 미 국내의 정세가 전체적으로 불안정화되는 경향이 있다. 퍼거슨과 볼티모어에서의 경찰과 주민들의 충돌에 의한 폭동, 디트로이트 등에서의 지방정부의 재정파탄, 행정기관의 부패 등이 그것이다. 정부나 국방성은 제이드 헬름이 단순한 군사 훈련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위와 같은 정황들 때문에 사람들은 그와 같은 설명들에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3. 네팔 대지진과 2차 지진 발생 그리고 불의 고리
지난 4월 25일 오후 네팔 중부지역에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대지진 발생 이후 60차례 이상의 크고 작은 여진이 이어졌고 지난 5월 12일에는 규모 7.3의 강진이 또다시 발생했다. 로이터통신은 81년 만의 최악의 지진인 두 차례의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지난 5월 17일까지 8583명으로 집계되어 지난 1934년 네팔에서 발생한 강진 사망자 수인 8519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국제적십자사연맹 회원인 빅토리아 스토다트는 "지난달 25일 지진으로 약 60%의 지역 주택이 피해를 보았다"며 "이번 지진까지 더해져 피해를 본 주택은 100%에 달한다"고 말했다. 네팔은 6월부터 9월 사이에 연중 강수량의 80% 이상이 집중되는 우기를 앞두고 있어 산사태, 홍수, 전염병 등으로 인한 현지 주민들의 피해가 더 커질 전망이다. 한편 네팔 대지진 이후 타이완,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캐나다, 일본 등지에서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잇따라 발생했다. 이 지역들은 이른바 ‘불의 고리’라고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하는데 이곳에서 이어지는 지진들은 앞으로 있을 대지진의 전조로 여겨져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4. 흔들리는 그리스 경제, 파산 또는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되는가
그리스 경제가 한계상황에 도달한듯한 징조가 계속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리스 정부는 지난 4월 연금과 급여 지급에 4억 유로가 부족하다고 카티메리니 보도를 인용하였다. 지난 4월 30일, 주요 국영 사회 보장 기금인 IKA는 거의 8시간 동안 연금 지급을 미루었다. 과하게 손실을 보고 있는 그 기금은 그 채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예산에서 오는 보조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의 현금 입장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한 관료는 말하기를 “국가 연금 기금이 화요일 아침에 여전히 수억 유로 부족하여 지급이 연기되었다”고 했다. 또한 지난 5월 12일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올해 들어 최대 규모인 7억5000만 유로(약 9200억 원)를 갚았지만 그 대부분을 IMF에서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6억5000만 유로를 IMF의 특별인출권(SDR)에서 충당한 것인데 이는 그리스가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또는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 탈퇴(그렉시트)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기독교회사_앵글로색슨족의 사도 아이단(Aidan)

잉글랜드의 야만족들에게 기독교 문화의 복음을 처음으로 전해준 것은 켄터베리의 어거스틴이 아닌 일곱 왕국의 골짜기마다 흩어져 살고 있던 신실한 아일랜드의 켈트 사람들이었다. 여기에는 아이단, 피난, 콜만, 맬둡, 디우마 같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켈트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보내진 사도들은 아일랜드의 패트릭, 스코틀랜드의 콜룸바, 웨일스의 디누트였다.

앵글로색슨족에게 보내진 사도는 콜룸바의 켈트 학교 생도였던 아이단이었다. 앵글로색슨족이 점령한 후 약 200년 후 아이단과 사도적 교회는 그 이교도들의 ⅔를 복음으로 정복했다. 아이단이 그의 사역을 시작한 곳은 북동쪽을 차지하고 있던 노섬브리아였다.

“우리는 한때 칼레도니아 지방의 조명등이었던 바로 그 유명한 섬을 걷고 있었다. 그곳은 야만적이고 미개한 종족들에게 지식의 혜택과 종교의 복을 나누어 준 곳이었다.”
Boswell, The Life of Samuel Johnson, vol. 3, p. 147, note.

아이단의 성품과 그가 받은 교육

1. 아이단이 교육받은 이오나 대학은 설비를 잘 갖춘 곳으로 발전하였고 당시 그 대학의 강사들은 모두 저명한 학자들이었다.
2. 이곳의 게스트 룸은 북쪽의 섬과 남쪽의 성지와 세상의 먼 곳에서 온 항해자들로 채워졌는데 그들부터 열심히 지식을 습득했다.
3. 당시에 그는 이교도 땅인 잉글랜드의 일곱 왕국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Fitzpatrick, Ireland and the Foundations of Europe, pp. 26, 154.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 아이단
첫 번째 사건 – 아이단이 부름 받은 배경
복음 전도자를 한 사람 보내달라는 노섬브리아의 왕 오스왈드의 요구에 이오나의 위원회는 생도 중 출중한 한 명을 선택해 보냈는데, 이 생도는 열 정탐꾼처럼 그 흉포한 민족과 장애물들에 관해 불평하면서 즉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위원회는 다른 한 학생을 선택했는데, 그는 앵글로색슨족을 구원하는 일에는 사랑과 온순함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인물인 젊은 아이단이었다.

두 번째 사건 – 노섬브리아 왕 오스왈드의 이력
오스왈드는 청년 시절 초기에 자기 백성이 브리튼인들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게 되었다. 로마교의 폴리누스에 의한 외형뿐인 기독교(천주교)로 자기 아버지가 개종하는 것을 목격했다. 아버지가 죽고 노섬브리아인들이 우상숭배로 빠져든 후 오스왈드는 이오나로 피난하여 살았다. 그 후 백성들이 원하여 다시 돌아가 왕좌에 앉자, 자기 백성들이 콜룸바의 방식을 따르기를 바랐다.

아이단의 선교사역에 관한 교황권 옹호자 린가르트의 기록
“그는 감독의 직분을 받자마자 오스왈드의 왕궁으로 갔다. 모든 사람이 기쁘게 그를 맞이하였으며, 왕은 기꺼운 마음으로 그 선교사가 자신의 모국어로 가르치는 모든 것을 색슨어로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단의 성공은 그의 설교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의 덕행 또한 설교 못지않게 그의 성공의 큰 요인이 되었다. 그는 혹독한 고행, 부에 대한 뿌리 깊은 경멸, 그리고 자신의 의무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한편, 논증들을 통해서는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매일매일 개종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였다. 이렇게 해서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노섬브리아 교회가 불변의 견고한 기초 위에 서게 되었다.”
Lingard, The Antiquities of the Anglo-Saxon Church, vol. 1, pp. 27, 28.

균형 잡힌 품성을 소유한 아이단
“그의 가르침에 있어서 가장 칭찬할만한 부분은 그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가 가르치는 바대로 생활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얻으려고 노력하거나 사랑하지 않고, 세상의 왕들이나 부유한 사람들에게서 무엇이든지 받으면 그것들을 즉시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즐겨 행하였다. 그는 급한 용무가 있지 않은 한 도회지나 시골을 막론하고 말을 타지 않고 늘 걸어서 다녔다. 그는 이같이 걸어 다니면서 누구를 만나든지,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들이 불신자일 경우에는 그들에게 믿음의 비밀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하였다. 만난 사람이 신자면 그는 그들에게 더욱 강한 믿음을 소유할 것과 말과 행동을 통하여 구제와 선행에 더욱 힘쓸 것을 권유하였다.”
베더(Bede), Ecclesiastical History of England, b. 3, ch. 5.

Healing Story_상추와 열무

얼마 전, 3형제를 두신 한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들의 면역력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200mL에 2만원이 넘는 좋은 꿀을 사서 먹인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특별히 아픈 것은 아니지만 자주 감기에 걸리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더 아이들을 먹게 하려고 정작 본인은 맛도 보지 못했다며 계속 먹이기에는 너무 부담 된다고 한숨지으셨습니다. 자식을 향한 그 어머님의 마음이 전해져 저도 함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께서 비싼 꿀 외에도 몸에 좋은 것들로 우리 주변을 가득 채워 주셨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철마다 산과 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야채와 과일들입니다. 그저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매끼 '몸에 좋은 것'들로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습니다. 쑥을 뜯어서 된장국에 넣어 먹고, 민들레로 비빔밥을 하고, 머위쌈에 미나리 무침을 먹는다면 우린 최고로 면역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와 기쁨으로 먹으며 자족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번 호에는 여름 반찬으로 자주 올라오는 상추와 열무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상추
​우리는 상추를 주로 쌈을 싸 먹거나 겉절이, 무침으로 먹지만 서양에서는 샐러드나 샌드위치 등에도 사용합니다. 식용으로는 꽃줄기가 나오기 전에 잎을 따서 먹는데, 상추 잎을 잘랐을 때 우유 색깔 유액이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약재로는 혈뇨와 산모의 젖이 부족할 때 사용하고, 종자는 고혈압과 산모의 젖이 부족할 때 물을 넣고 달여서 복용합니다.  
 
* 숙면과 진통 효과 : 상추를 딸 때 나오는 하얀색 유액에는 락투세린과 락투신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심신을 안정시켜주고 긴장을 풀어주므로 불면증 개선과 스트레스 해소에 좋습니다.   
* 피로 회복 :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여 천연 강장제 역할을 하는 상추는 신진대사를 돕고 몸의 긴장을 완화해 주어서 피로 회복에 좋습니다.
* 변비 해소 : 상추는 많은 양의 섬유소를 함유하고 있어 변의 양을 늘려주고, 약 95%가 수분이기 때문에 변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막아 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어서 장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변비 해소에 좋습니다.
* 숙취 해소 : 상추를 꾸준히 먹으면 피가 맑아지며, 간 기능을 도와서 숙취 해소에도 좋다고 합니다. 특히, 숙취로 인한 두통에 좋습니다.
* 눈의 건강 : 상추에 있는 루테인 성분이 안구와 망막을 보호해주고, 망막의 노화로 인한 시각장애를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 빈혈 개선 : 상추는 필수아미노산과 철분이 풍부해서 빈혈에 좋습니다.
* 뼈 건강 : 칼슘이 풍부하고 인체에 잘 흡수되도록 도와주기에 뼈를 튼튼하게 해줍니다.
 
2. 열무
열무란 이름은 '어린 무'를 뜻하는데 '여린 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재배하기가 간단하고 생육 기간도 짧습니다. 그래서 제철인 여름에는 25일 전·후면 수확하므로 1년에 여러 번 재배할 수 있습니다. 열무는 잎이 연하고 맛이 있어서 뿌리보다 잎을 이용하는 채소입니다. 열량이 적고 섬유질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주로 김치를 담가 먹습니다.
 
* 면역력 향상 : 비타민 C 성분이 풍부하여 피부의 탄력을 유지해 주며,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주어 감기와 같은 질병을 예방해 줍니다. 또한 해독작용이 있어서 체내 노폐물을 제거해 줍니다.
* 시력저하 방지 : 비타민 A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서 눈의 점막을 튼튼하게 하고 시력저하 방지에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피부와 모발 건강유지에도 좋습니다.
* 피로 회복 : 열무에는 인체에 꼭 필요한 필수 무기질 성분이 알맞게 들어 있으므로 더운 여름철에 땀과 함께 빠져나오는 무기질 성분을 보충해 줍니다. 또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혈액의 산성화를 방지해 줍니다. 
* 혈압조절과 항암 : 열무에는 인삼과 산삼에 함유된 사포닌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사포닌은 씁쓸한 맛을 내는데, 혈관의 탄력성을 조절해 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따라서 혈압이 높은 사람은 낮춰주고, 낮은 사람은 높여주는 효능이 있어서 고혈압, 저혈압 모두에게 좋습니다.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인삼 대신 열무를 권장하기도 합니다.  특히 유황 처리된 토양에서 자란 열무는 인삼의 유효성분인 사포닌 함량이 높고, 항암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 소화기능 향상 : 열무에는 전분을 분해하는 효소가 함유되어 있어서 소화력을 높여줍니다.
* 변비 예방 :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변비 예방에 좋습니다.
* 기억력 향상 : 각종 무기질과 비타민은 기억력 향상에 좋습니다.
* 다이어트 : 열무는 칼로리가 매우 낮아서 비만인 사람에게 좋습니다.
 
건강에는 큰 도움이 안 되는 흔한 반찬거리 중 하나로만 여겼던 상추와 열무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상추쌈과 열무김치를 대할 때마다 감사와 기쁨으로 먹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