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권두언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때에 깨어 기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날마다 기도하는 것은 은혜 중에 자라나기 위해 그리고 영적 생애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 불가결한 것으로, 그것은 마치 음식이 몸에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기도로써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올리는 습관을 길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은 영적 건강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하루 중 여러 번, 소중하고 황금 같은 순간들을 기도에 할애하는 사람은 영적 활력과 생명력을 지닐 것입니다. 주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나누어 받는 길도 기도를 통해서이고, 주님의 능력을 받는 길도 기도를 통해서이며, 매일 당면하는 유혹과 시험을 이기는 길도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죄를 승리하는 힘도 기도를 통해서 얻습니다. 열렬하게 드리는 우리의 기도는 휘장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동안 여러분의 진지한 기도를 하늘로 올려보내십시오! 이번 호 신앙기사에서는 기도에 대해 함께 연구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분향단의 향처럼 끊임없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강 병국 목사

Love Letter_나의 기도가 분향단의 향처럼

 

 

강 영은                                                                                                                      

 

주여,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분향단의 향처럼
나의 기도가 그치지 않고 피어오르게 하소서.
흐트러짐 없이 하늘로만 타오르는 향처럼 그렇게…
마음의 잔잔한 소망 애달픈 소원 담아
지상의 어두움과 타는 고통의 구름 뚫고
고요히 하늘로 오르게 하소서.


주여,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분향단의 향처럼
해돋는 아침이면 나의 기도가 피어오르게 하소서.
흔들림 없이 하늘로 소롯이 오르는 향처럼 그렇게 …
주어질 하루를 당신의 발 앞에 놓고
그 시간들이 당신의 의의 향기로 채워지도록,
목마른 이의 갈증 풀어주는 샘물처럼 되도록
아침이면 마음 열어 기도하게 하소서.


주여,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분향단의 향처럼
해 높은 낮이면 나의 기도가 피어오르게 하소서.
사라짐 없이 하늘로만 오롯이 솟아오르는 향처럼 그렇게…
삶의 소용돌이 몰아칠 때
연약한 걸음 유혹에 걸려 쓰러지지 않도록,
바쁜 생의 틈바구니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가시로 남을 찌르지 않도록
낮이면 당신의 옷자락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게 하소서.


주여,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분향단의 향처럼
해 저무는 저녁이면 나의 기도가 피어오르게 하소서.
하얀 향내 품고 하늘로만 살포시 피어나는 향처럼 그렇게…
힘들었던 하루
지친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당신의 부드런 손길에
무거운 짐 내려놓고,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감사의 찬양이
온 밤을 포근히 감싸도록,
용서받은 사랑에 겨워 흘러내리는 눈물 손등 적시며
고요한 저녁이면 당신께 기도하게 하소서.


주여,
기도의 향연 속에 보이는 당신의 모습은
세상의 짙은 어두움 밝히는 환한 등불,
기도의 향연 속에 들리는 당신의 음성은
혼탁한 소음 흩으며 울리는 맑은 새벽 종소리,
기도 속에 느끼는 당신의 손길은
잎새에 이는 고요한 미풍처럼
부드러운 사랑으로 영혼을 감싸는데,
오늘도
내 마음 피어오르는 향에 담아
당신께로 높이 높이 날아갑니다.


주여,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분향단의 향처럼
나의 기도가 매일 그렇게 피어오르게 하소서.
나의 기도가 매일 그렇게 그치지 않게 하소서.

제1부_분향단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그리스도인 삶에 있어서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기도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성소 제도에서 분향단과 향로에서 꺼지지 않고 끊임없이 피어오르던 향은 기도를 상징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쉬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가르쳐주는 교훈과 상징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모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상에 계실 때에 쉬지 않고 기도하시던 주님께서는, 지금도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중보 기도하고 계십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듯이, 기도가 없이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번 호 신앙기사에서는 기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쉬임없고 그침없는 진실된 기도로 능력과 힘을 얻으며 살아가는 독자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편집실 -

 

기도는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용서를 받고, 기도를 통해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얻으며, 기도를 통해 하늘의 능력을 받는다. 주님께 드리는 우리의 기도는 마치 성소의 분향단에서 쉬임없이 계속 피어오르던 향처럼 끊임없이 쉬지 않고 타올라야 한다. 성소 제도의 분향단은 기도를 상징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드리는 중보의 기도를 상징하며, 또한 성화의 길을 가는 성도들이 쉬임없이 드려야 할 기도의 필요성을 가르쳐주는 상징과 교훈이 되었다. 분향단에서 향이 끊임없이 하늘로 피어오르듯이, 우리의 기도는 그쳐지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호흡하지 않으면 잠깐이라도 살 수 없는 것처럼, 영적 생활에서도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로 하늘의 능력을 받고 주님과 교제하지 않으면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기도는 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어져야 하는 생명의 호흡과 같은 것이다. 이제 기도를 상징하는 분향단에 대해 함께 연구해 보자. 분향단의 의미에 대해 공부해 보면 우리는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된다.

1) 황금 분향단

성소에 대해 연구해 보면, 구약 시대의 성소에 있던 모든 기구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을 상징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소의 금 분향단도 다른 기구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다. 그리고 분향단에서 올라가는 향은 우리를 위하여 “항상 살아계셔서…중보하시는”(히 7:25, 킹제임스 역)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의 사역을 상징하고 있었다.

성소는 세 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성소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되어 있었다. 분향단은 성소 안에 놓여있었다. 분향단은 순금으로 입혀진 싯딤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성소에서 순금으로 입혀진 나무는 신성이 인성 위에 덮이고 연합된 것을 상징한다. 나무는 보잘것없는 인성을 뜻하고 그 위에 금이 쓰인 것은 신성을 뜻했다. 이 연합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도 가질 수 있는 연합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숨김을 받을 때에 신의 성품에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거룩한 연합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분향단은 정사각형이었고 각 모서리에 한 개씩의 뿔이 있어 모두 네 개의 뿔을 가지고 있었다(출 30:1~5절 참조). 분향단의 네 개의 뿔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또 뿔은 힘과 능력, 승리와 명예를 상징했다.

분향단의 뿔은 특히 기도의 능력을 표상했다. 기도는 죄를 정복하고 악한 성향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의 능력과 힘이 되지 않는가! 또한 기도는 응답받고 성취되는 역사를 이루고, 승리를 가져다주며, 지극히 높으신 분과 교제하도록 초청을 받는 명예를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분향단의 네 뿔은 기도의 이러한 특성을 나타내주는 것이었다. 정말 그렇다. 기도는 힘과 능력과 승리와 명예를 우리에게 준다. 간절한 기도는 하늘의 심금을 울리는 수단이 되고, 하늘 창고를 여는 열쇠가 되며, 하나님의 전능하신 팔을 움직이게 하는 놀라운 것이다.

2) 분향단의 향과 그 의미

분향단에서는 항상 끊임없이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분향단의 불과 향은 절대 꺼지면 안 되었다. 이 단 위의 불은 하나님께서 친히 붙이신 것으로서, 늘 신성하게 보존되었다. 향기롭고 거룩한 향은 밤낮없이 성막 전체와 성막의 주위는 물론 원방에까지 그 향기를 풍겼다. 분향단의 향은 네 가지 종류의 향품으로 구성되었다. 고급 향료인 소합향 (소합향 나무의 수지를 원료로 하여 만든 향), 조개 껍데기에서 생성된 나감향, 끈끈한 수지인 풍자향, 아라비아에서 자라는 향내 나는 수지의 유향이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향은 찧어서 만든다고 나온다. 향의 얼마를 “곱게 찧어” 향이 만들지 듯이,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찧어지고 부서지는 고난을 통하여 온전케 되시고 우리의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신다는 의미를 전해준다. 이 향들은 특히 태울 때에 매우 향기로운 향내를 발산하였다. 성소의 떡이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듯이, 향도 그리스도와 완전하신 그분의 의를 상징했다. 우리의 기도에는 매일 예수님의 공로가 향처럼 섞인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입은 사람들의 기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향연으로 섞여져 올라간다. 향이 날마다 하늘로 올라가듯이 그리스도의 중재는 우리에게 매일 계속 필요하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를 대신해 그분의 공로를 계속해서 드리시는 하늘 대제사장이시며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향으로 상달 된다. 우리의 기도와 함께 올라가는 향연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 곧 그분의 완전한 의를 표상하는 것이다. 그분의 의만이 죄 많은 인간의 기도가 하나님께 가납될 수 있게 한다.

3) 분향단의 위치

성소에서 금촛대와 떡상과 분향단은 성소 안에 함께 있는 기구들이었다. 그런데 분향단은 그리스도인 성장에 있어서 또 다른 단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데,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 바로 앞에 있던 분향단은 지성소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더 가까이 나가는 또 하나의 발걸음을 의미했다. 분향단은 성소의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법궤 가까이에 있었다. “그 단(분향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출 30:6). 분향단은 바로 보좌 앞에 놓여 있었다(계 8:3). 제사장이 향을 드릴 때에 그는 성소의 매일의 봉사 중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직접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하게 되어 있었다. 제사장은 분향할 때에 법궤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지성소의 휘장 앞에는 끊임없는 중보의 제단이 있었고, 성소 앞에는 끊임없는 속죄의 제단이 있었다. 이런 성소의 봉사들은 피와 향으로 하나님께 접근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것들은 모두 크신 중보자를 가리키는 상징들이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고, 그분을 통해서만 자비와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제2부_분향단의 향 같은 기도

 

신앙생활에서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고리이며 하늘로 연결된 다리와 같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고 그분의 임재를 느낄 수 있다. 죄를 승리하는 능력을 얻기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기 위해, 고난과 시련을 이기기 위해 우리는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분향단의 그치지 않는 향처럼 우리의 기도는 열렬하고 끊임없이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 기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

*기도는 특권이다

아무 가치 없고 허물이 많은 우리 인간이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것, 기도로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기도로 말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한갓 피조물인 사람이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 교제하는 일보다 더 위대하고 큰일이 어디 있겠는가? 무한하신 능력의 하나님과 연합하는 일보다 더 큰 능력을 어디서 바랄 수 있겠는가? 기도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축복의 샘에서 마음껏 마시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분께 나아오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풍성한 축복들을 부으시려고 기다리신다. 우리는 우주를 통치하시는 왕의 보좌에 기도로 우리의 사정을 상달할 수 있고, 대제사장이시며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께 우리의 사정을 호소할 수 있다. 우리는 기도 속에서 전능하신 자의 알현실로 들어가 그분을 뵐 수 있다. 기도하기 위해 항상 무릎을 꿇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예수님과 이야기할 수 있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으며, 일상생활의 직무를 행할 때도 마음의 소원을 조용히 아뢸 수 있다. 환난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 억울하게 학대를 받는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가!

기도의 특권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예수님께 가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알릴 수 있는데, 큰 어려움은 물론, 작은 염려와 걱정과 염려의 짐들까지도 그분께 가져갈 수 있다. 통회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그분께 나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거절당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라도 허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천사들의 찬양대의 우렁찬 찬미 소리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인간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다. 우리가 골방에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쏟아놓을 때나, 길을 가면서 묵묵히 기도할 때에도, 우리가 올리는 기도의 말이 우주의 왕의 보좌에 상달 된다. 그 기도가 비록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우주의 침묵 속에 사라져 버리지 않고 헛되게 되돌아오는 일도 없다. 이 세상의 아무것도 기도로 아뢰는 심령의 소원을 무시해버릴 수 없다. 우리는 이 특권을 늘 사용할 수 있는데, 특히 사단의 유혹과 시험이 닥칠 때, 기도가 필요하다. 시험을 받을 때 우리는 마음을 하늘로 향하고 열렬히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향내와 같이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상달하며, 그렇게 될 때 사단의 계획은 좌절된다. 마음에 항상 하나님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며, 사단의 어떤 악한 계교에도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귀중한 특권이다.


*기도는 친구에게 하듯 마음을 펴놓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고 말씀을 듣기도 하지만, 영적 생명과 힘을 얻기 위해서는 하늘 아버지와 실제적 교제가 있어야 한다. 때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모하기도 하고 그분의 업적과 자비와 축복에 대해 묵상하기도 하지만, 기도보다 직접적인 소통과 교통은 없다. 하나님과 교통하려면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실생활의 사정에 대해 모든 것을 털어놓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도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교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기도는 마치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펴놓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슬픔이나 기쁨, 또는 우리의 억울한 사정들을 친한 벗에게 털어놓는다. 심지어 비밀로 간직해야 하는 어떤 이야기까지도 연약한 인간에게 털어놓고 동정을 구한다. 그러나 연약한 동류 인간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고 오히려 그것으로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맏형님 되시고 친구 되시며, 우리를 동정하시는 주님은 마음 놓고 우리의 사정을 고하고 우리의 비밀을 털어놓아도 될 친구가 되신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뿐만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해답과 응답까지 해주신다. 세상의 친한 친구에게 당연히 받을 것을 믿으며 도움을 구하듯이, 우리는 기도로써 우리의 심정을 우리의 친구 되신 주님께 펼쳐놓으며 하늘의 도움을 받도록 하자!


* 기도는 이렇게…

기도에는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항상 깨어서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은 냉랭해지고 영적 무관심과 냉담과 부주의함에 빠지게 된다. 기도를 등한히 하면 영혼이 번영할 수 없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과 진실된 기도를 방해하지 않게 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가족 기도와 공중 기도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홀로 은밀한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데, 혼자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앞에 우리의 심령을 내어놓고 기도해야 한다. 은밀한 기도를 통해 우리는 조용히 그리고 열렬하게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주님과 나누게 되는 교제로 영혼이 고무되며 충만한 은혜 속에 잠기게 된다. 매일 골방에서 기도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마음을 자주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자. 에녹도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기에 부적당한 시간이나 장소는 없다. 아무것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아무 일로든지 기도가 방해를 받도록 하지 말고, 예수님과 우리의 심령 사이에 교통이 막히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하자. 개인적인 기도의 장소를 정해놓고 습관적으로 늘 그 기도의 장소로 가서 기도하면 좋다. 항상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께서 하늘의 손님으로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계시기를 초청하도록 하면, 비록 우리의 주위가 부패된 분위기로 둘려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 더러운 공기를 호흡하지 않고 하늘의 깨끗한 공기 가운데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기도로써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께로 올릴 때에 불순한 망상이나 불신성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진실되고 형식에 매이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화려하게 꾸민다 해도, 아무리 막히지 않는 유창한 기도라 할지라도, 겸손하게 마음의 진정한 뜻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익한 말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격식을 차린 찬양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상하고 억눌린 마음으로 자신이 죄가 많고 더없이 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부르짖는 겸손한 무언의 절규는 무한히 자비하신 하나님께로 상달될 것이다. 우리가 겸비하게 우리의 소원과 기쁨과 슬픔과 염려와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내어놓을 때, 우리들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기뻐 들으시고 우리의 간구를 이루어주실 것이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약 5:11)분이시다. 주님의 사랑의 마음은 우리의 슬픈 일을 보거나 그 슬픈 일에 대한 말만 들어도 마음 아파하시고 동정하신다. 우리는 마음을 번뇌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 내어놓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주님께는 감당하시기에 너무 과대한 것이나, 주님께서 해결하시기에 그렇게 어려운 것은 세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세계들을 붙드시고 우주의 모든 것을 관리하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태산을 옮기듯이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것이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그분께서 주목하지 않으시는 것은 없다. 우리가 아뢰는 우리의 사정과 경험 중에 어떤 사건이 너무 추하다고 하여 외면하시는 일도 없고,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주님께서 풀기에 너무 어려운 것도 없다. 하나님의 자녀 중에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이 당하는 어떤 재난이나, 그 심령을 괴롭게 하는 어떤 근심이나, 기분을 좋게 하는 어떤 기쁨이나,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어떤 기도라도 하늘 아버지께서 못 본 체하시거나 직접 관심을 두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도 없다. 주는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 147:3). 하나님과 각 사람과의 관계는, 그 한 사람만이 세상에 존재하며, 그 한 사람만을 위해서라도 독생자 아들을 줄 만큼 귀중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6:26, 27, 15:16)고 하셨다.

우리가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의 돌보시는 증거를 보면서 날마다 주님을 생각할 것 같으면 우리 마음속에 그분이 항상 계실 것이며, 우리는 그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그분을 찬송하기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현세의 사물에 대하여만 말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기에만 흥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친구들에게만 마음을 열고 얘기하는 것은 그 친구를 좋아해서 우리의 기쁨이나 슬픔을 더불어 나누기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 친구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마음과 사정을 이해하시는 예수님이 계신다.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라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을 우리의 모든 생각과 애정의 대상의 첫째로 삼고 그분께 매일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시 107:8) 매일 그분을 찬송하고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들과 당신을 사랑과 감사의 줄로 묶으신다. 우리는 이 세상의 낮은 땅에만 붙어 너무 가까이 살고 있다. 눈을 들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간구하시는 하늘 성소의 예수님을 바라보자! 우리의 기도를 언제든지 들어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 하늘에 계시다는 사실은 얼마나 우리를 든든하게 하는가! 지상의 성소에서 매일 그치지 않고 하늘로 피어오르던 분향단의 향처럼 우리의 기도가 하늘 성소로 매일 올라가도록 하자!

제3부_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드리는 기도의 응답을 바라면서 기도한다. 그러나 기도가 다 응답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보좌로 상달되어 응답을 받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도 있다. 응답받는 기도와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에 대해 살펴보자.

*응답받는 기도, 받지 못하는 기도

1. 믿음은 응답을 부르고 불신은 응답을 방해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가 아니면 불신하는가에 따라 기도의 응답의 여하가 크게 달라진다. 우리는 기도할 때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만일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다면, 성경의 기록대로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약 1:7)야 한다. 기도할 때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행사할 특권이자 의무인 믿음을 활용하지 않고 믿음이 가져다주는 느낌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느낌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우리가 활용하는 것이며, 유쾌한 느낌과 축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은 약속된 축복이 실현되고 느껴지기 전에 그것을 붙잡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께 간구한 후, 그 축복을 틀림없이 받는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 그것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의 말씀의 약속이 우리의 것이 된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우리가 기도의 응답과 그 축복을 실감하기 전에 이미 그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참 믿음이다. 믿음을 활용해야 할 때는 바로 자신이 믿음이 없음을 느끼게 되는 때, 성령의 결핍을 느낄 때이다. 짙은 검은 구름이 우리의 마음을 뒤덮을 때 산 믿음이 흑암을 꿰뚫고 구름을 흩어버리게 해야 할 때이다. 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된 약속들을 의지하는 것이며,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만이 그 영광스러운 약속들을 주장할 수 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

많은 사람들이 탄원을 하늘의 보좌에 올린 후에 굳센 믿음으로 그 약속을 붙들어야 하지만 너무도 빨리 주님의 팔에서 떠난다. 주님의 약속들은 확실하므로 우리는 우리가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어야 하며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응답을 받는다.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열렬히 기도하였고 그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그는 일곱 번 비를 위해 주님 앞에 기도드렸고 드디어 구름이 나타났다. 엘리야의 믿음의 기도는 우리의 모본이 된다. 우리는 신실하고 미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그분께서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을 굳게 믿으며 우리의 믿음을 행사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응답을 받는다

우리는 구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분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응답받는 조건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 번이나 되풀이하여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기도는 “그의 뜻대로”(요일 5:14) 응답을 받았다. 그 잔이 거두어지지 않은 것은 우리를 위해서였다. 우리 또한 그렇게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므로 응답을 받을 수가 있으셨다. 우리는 구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분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해야 하며, 자신의 뜻이나 욕망을 버리고 복종하는 마음으로 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시기 전에 그 모든 내용의 완전한 계획이 그 앞에 제시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실 때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한 걸음 한 걸음씩 계획대로 인도함을 받으셨으며 자신의 뜻대로 한 가지라도 계획에 옮기지 않으셨다. 그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정한 시기에 행동하셨으며, 순복하심으로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셨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그 뜻대로만 행동하시며 사셨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주시기를 세 번 기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것이었다. 바울이 이 응답에 만족하였을까? 바울은 자신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 크게 기뻐하고 자랑하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순종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이루셨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응답을 받는다.


3. 이기심은 응답을 방해한다

이타심은 응답받는 기도의 첫 조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성소에서 배울 수 있다. 분향단의 향은 그리스도의 의의 순결하고 거룩한 특성을 표상하기 때문에 이기적인 목적으로 향을 사용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벌을 받았다. “네가 만들 향은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것이니, 그 방법대로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 무릇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출 30:37,38). 이 구절의 말씀처럼, 향의 이기적인 사용은 이기적인 기도를 나타낸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이기적인 욕심으로 구하는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분에게서 단절시킨다. 욥이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자기를 반대하는 자들을 위한 이타적인 기도를 드렸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의 속박을 풀어주셨다. 그가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간절히 열망하였을 때에 그 자신이 오히려 도움을 입었다. 우리는 이기적인 목적과 동기로 기도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사람의 동기와 의도를 다 간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이기적인 목적으로 드리는 기도는 응답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내 뜻과 내 이기심대로 구하는 기도는 응답을 받지 못할 것이다.


4. 의도적인 불순종은 응답을 방해한다

제사장이 여호와 앞에 향을 드릴 때에, 그는 법궤 쪽을 바라보았다. 법궤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었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은 응답받는 기도의 조건이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기도는 결코 의무를 대신할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1)고 말씀하셨다. 조건은 이행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약속만을 내세우고 간구하는 자들은 응답을 받지 못한다. 그들은 약속의 성취와 축복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을 권위로 사용하지만 그리스도께 대한 그들의 믿음과 사랑의 표시가 될만한 일들은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 아버지께서 받아들이실 수 있는 조건을 상실한 채 기도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한다면 그것은 마치 우리가 환전 조건에 맞지 않는 어음을 가지고 주님께 가는 것과 같다. 우리가 그분의 약속을 제시하고 그 약속을 이루시도록 구할 때에 만일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있다면, 그런 상태에서 주님께서 그런 못마땅한 요구를 들어주신다면 그분 스스로가 당신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5. 악한 마음은 응답을 방해한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죄를 품는다는 말의 의미는 그것을 포기하기 위하여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은밀한 죄는 그분께 나아가는 길에 장벽이 된다. 우리가 진심으로 기도하려면 죄악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악의적인 태도, 은밀한 죄악, 고질적인 성향, 교만, 욕심, 불결, 나태, 중상, 분노, 미움 등 모든 악의 잡동사니들을 포기하도록 결심하고 기꺼이 그렇게 해야 한다. 악한 마음과 의도로 드리는 기도는 응답을 받을 수 없다.


6. 용서해야 응답을 받는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 중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구절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확실한 명령을 하셨는데,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6:23,24)고 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친구나 이웃에게 허물이 있으면 우리는 그 잘못을 사과해야 한다. 그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구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손해를 입힌 그 형제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우리가 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므로 그의 창조주와 구속자에게 죄를 범한 까닭이다.

그런데 우리가 상대방에게 잘못한 것보다 상대방이 우리에게 더 크게 잘못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라고 묻는 베드로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일만 달란트의 빚을 용서한 주인과 용서하지 않는 종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형제가 우리에게 죄를 범하거든 우리는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 형제가 우리에게 와서 죄를 자복할 때에 그의 겸비가 너무 부족하다거나 그가 진정으로 자복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일곱 번만 용서할 것이 아니고 일흔 번씩 일곱 번,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하여 주신 숫자만큼 용서해 주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말로 다할 수 없는 빚을 용서받은 자로서 얼마나 큰 수치를 범하는 것인가! 우리가 용서할 때에 우리도 용서를 받고 우리의 기도는 응답을 받을 것이다.


*응답이 지체될 때에

믿음으로 열렬하게 드린 모든 기도는 응답을 받는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자신의 진정한 소원을 아뢴 모든 성도들은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도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응답을 받지 못할 때가 있다. 만일 우리가 기도에 즉시 응답을 받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약속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믿음을 굳게 붙들고 불신이 들어오도록 허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면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확신은 강해야 한다. 어떤 기도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똑같이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고안하지 않았던 방식과 기대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우리에게 그것이 가장 필요로 되는 때에 이르러 올 것이다. 응답이 지체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어디 있는지 살피며 겸손하게 기다려야 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요 16:24)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신뢰하면서 말이다. 하나님은 너무도 지혜로우시므로 실수하지 않으시며, 너무도 선하시므로 정직하게 행하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고 남겨 두지 않으신다. 사람은 실수가 많고 연약하기 때문에 비록 정직한 마음으로 소원을 아뢰었다 해도 언제나 자신에게 유익한 것만 구하거나, 또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만을 구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 지혜롭고 선하신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자신의 유익과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의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만일, 우리가 영적 눈을 떠서 하나님의 계획을 살펴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것을 아시고 우리가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염원대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손해가 될 것은 아무것도 주시지 않으며, 우리가 구했어도 유익이 되지 않는 것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축복만을 주신다. 때때로 어린 자녀들은 부모에게 자기에게 해가 될 어떤 것을 달라고 조른다. 그럴 때 부모들은 자녀가 원하는 그 해로운 것 대신에 유익하고 건전한 것을 준다. 육신의 부모가 그러한데, 그보다 더한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늘 아버지는 어떠하시겠는가? 그분께서는 진정한 믿음으로 드리는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되, 가장 유익한 것을, 그 기도를 드린 자가 가장 필요로 할 때, 기대를 훨씬 초월한 축복으로 퍼부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많은 약속을 지키시는 데 성실하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하는 꼭 그것을, 우리가 구하는 바로 그 때에 받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비록 기도하는 당시에는 주님께서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증거를 현저하게 느끼거나 볼 수 없을지라도 그분께서는 항상 우리를 그렇게 보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록 주님께서 우리를 만지시는 것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분의 손은 사랑과 긍휼로서 항상 우리를 안찰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이다. 연약한 인간은 모든 기도가 응답이 된 후에야 그 사실을 느끼는 때가 종종 있다. 믿음의 눈을 떠서 신실하고 미쁘신 주님을 바라보자! 믿음의 기도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응답될 것이다.

제4부_금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 8:3,4).

요한 계시록 8장에는 천사가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아 성도들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바치는 장면이 나온다. 요한이 그의 계시 가운데서 본 이 천사는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장면 속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께서 하늘 지성소에서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고 계시는 모습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인 향을 받고 계신다.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 5:8). 이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향을 받으시며 모으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위해 중보하시려면 향, 곧 그 사람의 기도가 필요하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성소에서 우리의 고백과 회개와 기도를 받고 계신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겸손하게 회개하며 죄를 고백하고 통회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받아 그 사람들을 위해 중보하시는 것이다. 지금은 매우 엄숙한 때이다. 하늘 성소에서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엄숙한 사역에 시선을 고정하고 지성소에서 행해지는 영혼의 정결 사업에 함께 참여하는 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이 일에 무관심한 자들은 멸망당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죄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고 열렬하게 기도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기도하지 않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중보하실 수가 없다. 기도를 향연처럼 올려보내는 자에게만 중보의 기도가 드려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동안, 곧 우리의 은혜의 시기가 끝나기 전에 모든 죄를 고백하고 승리하며 완전한 성품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혼신의 노력을 다 하여야 한다.

1) 우리 기도에 섞으시는 예수님의 의의 향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우리의 대속물과 담보물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하늘 지성소에서 그분의 흘리신 피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으시고 그 앞에서 중보자로서 일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 나아가셔서 사람들의 회개와 믿음을 보여 주시며 그들이 용서받은 것을 주장하신다. 진실한 사람들의 기도와 통회하는 사람들의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을 때, 그리스도는 당신의 상한 손을 하나님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 드시고 “아버지여, 내가 저희 이름을 압니다. 내 손바닥에 저희 이름을 새겼습니다. 내가 그들의 죄를 담당하겠습니다. 그들을 당신 앞에 죄없는 사람으로 서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구하신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기도에 당신의 의와 향연을 섞으신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로 바치신다. 예배와 기도와 찬양, 그리고 회개하는 사람의 죄의 자복이 향연처럼 하늘 성소에 올라가지만,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입술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불결해서 보혈로 정결하게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 아무 가치가 없다. 지상에서 올라가는 모든 기도의 향연은 정결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핏방울로 적셔져야 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로를 담은 금 향로를 갖고 계신다. 그분은 이 향로에다 그의 백성들의 기도와 찬양과 죄의 자복을 모아들이시고, 그 위에다 그분 자신의 흠없는 의를 첨부하신다. 그 향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로 향기롭게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온전히 받으실 만한 향으로 가납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중보하실 때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대신하여 마치 자기 자신의 소망인 것처럼 간절한 탄원자의 기도를 드리신다.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어 흘리신 피와 고통을 제시하면서 그의 공로가 우리의 것이 되도록 간구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드리는 진실된 기도는 어떤 것이나 하늘에서 들으시는 바 된다. 비록 기도가 유창하게 표현되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나왔다면 이것은 예수님께서 봉사하시는 지성소에 올라갈 것이며, 예수님께서는 귀찮게 여기시거나 더듬으시는 말씀은 한마디도 없이 완전하신 자신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향과 함께 이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실 것이다.

2) 우리의 중보자

우리의 중보자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이시다. 그분은 당신의 인성의 팔로는 우리를 안으시고, 당신의 신성의 팔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보좌를 붙드셔서 우리 타락한 인류를 하늘과 연결시키셨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흠없는 생애와 순종과 갈보리 십자가의 죽음으로 잃어버린 인류를 위하여 중보하신다. 그는 자기 백성들의 기도와 자복과 회개를 담은 향로에 자신의 흠없는 공로와 기도를 담아서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 그 향은 그리스도의 의의 향기로 향기로워졌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제물은 온전히 가납함을 받고, 모든 죄가 다 용서를 받는다. 예수님의 피는 효력과 능력으로, 그분의 큰 빛과 사랑을 거슬려 범죄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탄원하고 있다. 사단은 우리를 참소하기 위하여 우리의 오른편에 서 있고, 우리의 대언자는 우리를 변호하기 위해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다. 그분은 자기에게 위탁된 소송의 변호에 결코 실패하는 일이 없으시다. 우리는 우리의 대언자를 신뢰할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시며 중보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믿음으로 그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가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맡기기만 하면 그분은 우리를 모든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지 않고 그것에 집착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의는 회개하지 않은 죄를 가리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들, 위험들, 우리의 어려움들을 아신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중보하실 때 우리의 사정을 변명할 말을 그 입에 채우시고 각 영혼의 필요를 따라 적합한 중보를 하신다. 성소 제도에서 향연이 하나님 앞에 올라가고 있는 동안에 대제사장이 피를 시은소에다 뿌리는 것과 같이,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의 효험을 호소할 때 우리의 기도는 하늘로 올라갈 것이며, 구주의 의와 공로로 우리의 기도는 향기로워진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쉬지 않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의 중보기도에 우리의 기도를 합세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무가치한 존재라 할지라도 우리는 죄를 져주시는 분, 죄인을 기꺼이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열렬히 중보해 주시는 분이 하늘에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자! 그리고 지금 통회하는 마음으로 모든 죄를 고백하도록 하자!

3) 금 향로가 던져질 때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머지않아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가 끝나고 은혜의 시간이 마칠 것이다. 때가 오면 예수님께서는 중보의 사역을 끝내시고 금 향로를 내던지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손을 치켜들고 “다 이루었다”라고 큰소리로 말씀하실 것이다. 그 때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는 엄숙한 선포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발하여질 것이다. 그 때는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생사 간에 결정된다. 예수님께서 성소에서 봉사하고 계시는 동안 죽은 의인들과 살아있는 의인들에 대한 심판이 행하여졌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대속하시고 그들의 죄를 도말하심으로 그의 왕국을 받으신다. 이제 그 왕국에 살 거민들이 결정된 것이다. 어린양의 혼인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왕국과 온 하늘의 왕권이 예수님과 구원을 상속받은 자들에게 주어지게 되며,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다스리시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머지않아 중보를 마치시고 지성소에서 나오실 것이다.이제 더 이상 금 향로에서 중보의 향이 피어오르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인간의 자백과 회개의 기도를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 때에는 죄인과 진노하신 하나님 사이에 더 이상 중보자가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 계시는 동안에는 세상을 제어하는 능력이 있었으나, 그분의 사역이 끝나면 그 억제하던 능력이 사라지고 마지막까지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완전히 사단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소에서 봉사하고 계시는 동안에는 진노가 내릴 수 없었지만, 그분의 사업이 마쳐지고 그분의 중재가 끝나면 구원을 무시하고 견책을 싫어한 죄인들의 피난처 없는 머리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맹렬히 부어질 것이다. 예수님의 중보 사업이 끝난 후 그 두려운 시간에 성도들은 잠깐 동안 중보자 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 엄숙한 때에 살 수 있도록 지금 죄를 승리하는 법을 연습해야 하며, 주님의 임재 안에 거하고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상을 사랑함과 교만과 이기심과 옳지 못한 모든 말과 행동을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는 늦은비 성령을 받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한 채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중보 사업을 마치는 그때는 모든 상황이 결정되고 모든 보석은 헤아려진다. 예수님께서는 지성소에 계실 때 고백된 죄악들을 죄의 창시자요 죄의 형벌을 받아야 마땅할 사단에게로 옮기시려 나오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때 제사장 예복을 벗으시고 당신의 최고의 왕권을 표시하는 옷을 입으실 것이다. 이제는 심판자와 정복자와 왕으로서 이 땅에 임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성소를 나오시기 전에 영적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도말하시고 용서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소를 떠나실 때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로울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모든 죄가 도말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들은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울 것인데 이는 그들의 희생과 고백과 기도를 하나님의 보좌 앞에 드려 줄 대제사장이 더 이상 성소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바로 지금, 지성소에서 우리의 희생과 기도와 잘못과 죄에 대한 고백을 받고 계신 지금, 우리는 회개하고 정결하게 함을 입어야 한다.

** 마치면서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예수님의 중보가 끝이 날 때가 이를 것입니다. 우리는 중보자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시는 동안 우리의 기도의 향을 하늘로 올려보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함을 받기 위해, 우리의 죄의 고백과 통회와 회개를 하늘로 올려 보내야 합니다. 이제 곧 더 이상 기도해도 소용이 없을 때가 올 것입니다. 더 이상 죄의 용서나 도말을 받을 수 없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구원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때인 지금, 우리의 기도를 하늘 성소로 올려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분향단의 향처럼 꺼지지 않고 계속 지속되게 해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우리의 자복과 기도는 하늘 성소에 계신 중보자 예수님께 상달될 것이며, 주님께서는 우리의 고백을 받으시고 그분의 의의 향을 섞어서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실 것입니다. 이 엄숙한 시기, 하늘에서 중보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이 때에 어느 때보다도 열렬하게 기도하며, 모든 죄를 회개하고 정결하게 함을 입는 독자 여러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세계 동향 Top News

 

1. 그리스 자본통제와 구제금융협상 타결

그리스는 지난 6월 30일까지 국제 채권단과의 구제금융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해 IMF에 상환하기로 한 15억 3천만 유로(약 1조 9천억 원)를 갚지 못했다. 그리스는 서방 선진국 중 최초로 IMF 채무를 갚지 않은 나라가 되면서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 6월 29일부터 예금 대량인출(뱅크런) 우려로 자본통제 조치를 시행하고 은행영업을 중단했다. 그리스 국민들은 ATM에서 하루 60유로(약 7만5천원)만 찾을 수 있도록 제한되었으며, 해외송금도 전면 금지됐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지난 7월 13일 유로존 국가들과 860억 유로의 3차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강력한 긴축정책을 이행하기로 협상하며 3주간 영업을 중지했던 은행들은 7월 20일부터 영업을 재개했다. 그리스 국민들은 여전히 자본통제로 불편을 겪고 있으며, 구제금융협상에 따른 긴축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 7월 5일 진행된 국민투표에 국민의 61%가 긴축정책을 동반한 구제금융협상에 반대표를 썼으며, 7월 15일에는 산티그마 광장에 분노한 시민 1만 5천 명이 모여 폭력시위를 벌였다. 구제금융협상은 타결됐지만 합의 내용을 실행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우며 합의 내용 중 하나라도 제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그리스는 결국 유로존에서 쫓겨날 위험성이 있다. 긴축정책으로 그리스 경제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은 누구든지 예상할 수 있으며, 그래서 그리스 국민들의 분노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2. 인도, 중국, 유럽, 북미 폭염 비상, 지구온난화 때문

지난 5월에는 47℃에 육박하는 폭염으로 인도에서 약 2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지난 6월에는 45℃에 육박하는 폭염으로 파키스탄에서 약 1200명이 사망했다. 지난 7월에는 유럽도 40℃가 넘는 폭염으로 포르투갈에서만 약 100명이 숨졌다. 독일 기상청은 지난 7월 5일 바이에른주에서 40.3℃를 측정했다며 1881년 기온 측정을 시작한 이래 독일 최고 기온 기록을 세웠다고 밝혔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미국이 1933년에 이어 최근 121년 사이 두 번째로 더운 6월을 보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13일 중국은 42.2℃를 기록했으며, 일본도 38℃가 넘는 무더위가 이어지는 등 아시아도 폭염이 진행 중이다. 세계가 무더위에 시달리는 이유는 지구온난화 현상 때문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고위도 공기를 감싸고 도는 제트 기류가 약해졌고 중위도에 비구름을 몰고 오는 이동성 저기압의 활동성이 지난 30여 년 동안 최대 15% 떨어졌다는 것이다. 중위도의 폭염과 가뭄 현상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점점 더 악화될 전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3. 미국, 동성 결혼 합법화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 26일 미 전역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텍사스 주를 비롯해 그동안 동성결혼이 금지돼 온 미국의 14개 주에서도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되고, 동성 커플이 전통적 부부가 받는 것과 같은 혜택을 받게 됐다. 최근 15년간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국가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미국의 이번 결정으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국가는 21개국이 되었다.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결정으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국가는 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4. 대한민국을 덮친 메르스(MERS : 중동 호흡기증후군) 공포

중동국가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다가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60대 남성이 지난 5월 20일 한국에서 최초로 메르스 확진을 받았다. 그 후로 메르스 확진자 수가 늘어나다가 6월 7일에는 하루 메르스 확진자가 23명이나 발생하는 등 2015년 6월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메르스로 인한 충격과 공포의 한 달이 되었다. 총 메르스 확진자는 186명, 사망자는 36명이며, 지난 6월 18일에는 메르스 의심 격리자가 6,729명을 기록했다. 다행히 7월 20일 현재 15일간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으며 진정되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3년 사스와 2009년 신종 플루를 경험한 바 있지만 이번 2015년 메르스 사태는 국민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충격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만큼 경제적 손실도 컸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로 4조원 가량의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마지막 시대 이슈_동성결혼, 국가적인 법령

 

기독교의 이념을 가지고 건국된 세계의 리더국가 미국에서, 그것도 미국의 법을 결정하는 최고기구인 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이 합법이라는 가공할만한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오바마는 “평등을 향한 큰 발걸음, 미국의 승리”라 축하했고, 또 오랫동안 동성결혼을 지지해 온 반기문 UN사무총장도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참으로 암담한 현실입니다.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국은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21번째 국가라고 합니다. 미국의 결정은 한국을 비록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동성결혼의 허용은 죄를 합법화한 것이고 죄를 합법화하게 되면 도덕적 가치의 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무엇이 옳은 것이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그 기준은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사회는 극도로 혼란해질 것입니다.

유치원부터 초, 중, 고 학교에 이르기까지 동성애는 정상이라고 배우게 됩니다. 실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죠. 법적으로 동성애를 정상이라고 인정하게 되면,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표현의 자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동성애는 죄악이다”라고 말하면, 명예훼손과 차별금지법으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던 미국의 여러 주에서 동성결혼식 케이크 제작을 거부한 제과점에 2억의 벌금을 내린 일이 있었고(오레곤 주), 동성결혼 주례를 거절한 목사에게 180일 감옥형과 벌금형(아이다호), 동성결혼식 거부한 웨딩홀에 벌금형(아이오와)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 웨딩홀은 계속된 협박과 지역 사회로부터의 고립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동성연애(결혼)를 합법화하게 된 배경엔 차별금지법이 있습니다. 누구나 평등하다는 이념에 따라 인종, 남녀, 장애, 성적지향, 신분, 종교, 사상 등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을 금지한다는 법안이죠. 동성결혼을 평등의 문제 혹은 보호받아야 할 소수의 권리문제로 받아들인다면 죄에 대한 개념이 흐려지게 됩니다. 모든 자유에는 한계가 있는 것인데, 윤리 도덕적 기준이 사라지는 것이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것을 허용하면, 헌법에서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다고 명시하면 그 대상이 누구든지 목소리 크기에 따라 근친상간 및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및 수간까지도 허용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실제로 이미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 중 어떤 나라는 근친상간이 합법화된 나라도 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의 타협은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타락(소돔과 고모라)을 가져오게 되는 결과를 목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차별금지법은 마지막 시대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지 못하도록 이미 법적으로 제도화해 놓은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를 반대하면 차별금지 조항에 따라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즉 이슬람, 불교, 각종 토속신앙 등 모든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반대하거나 타 종교의 구원론에 반대 및 고립적이고 독자적인 신앙 자세는 차별금지법에 저촉됩니다. 성경의 진리대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르려는 순수한 신앙에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밝히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야 한다고 바르게 말하면 차별금지 조항을 어김으로 불법자 리스트에 올라가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지구는 지금 영적 소송문제가 걸려있습니다. 이 지구의 소유주가 누구인가 하는 소송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이 지구를 창조하실 때 당신 권위의 표징으로써 2가지 제도를 세우셨습니다. 바로 안식일 제도(창2:3)와 결혼 제도(창2:24)입니다. 이 두 가지 제도는 하나님의 창조의 권위로 세워진 제도로써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모든 인류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시고 계획하신 창조질서였습니다. 이 두 가지 제도로 말미암아 이 지구는 하나님의 항구적이고 영원한 소유라는 것이 입증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쫓겨난 사탄은 이 지구의 사람들을 선동하여 하나님의 2가지 제도를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동성애를 조장하며 하나님의 결혼제도를 파괴하려 하였고 또한 끊임없이 안식일을 공격하여 하나님의 권위가 이 땅에서 서서히 사라지길 도모해 왔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 있는 2가지 제도가 인류에게 부인되고 거절될 때 이 지구의 소유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 자신의 것임이 입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지구 역사 6000년간 끊임없이 이어져 온 하나님과 사탄의 영적 전쟁, 영적 소송 문제였습니다.

사탄은 이 지구 역사 마지막 끝에서 하나님의 2가지 제도를 이제는 더욱 대범하고 도발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동성결혼 합법화]라는 이슈로 각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권위인 남녀 결혼제도를 공격하고 있으며 그리고 나머지 하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안식일제도 역시 [국가적인 법령]으로 무참히 짓밟을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만과 위장으로 사탄은 동시에 비기독교인들과 기독교인들 양자 모두에게 말일에 연속적으로 하나님의 권위인 2가지 제도를 공식적으로 짓밟는 일을 자행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앙의 근본을 인간적인 법의 틀로 획일화하여 새로운 질서를 강요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동성결혼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면 처벌받듯이, 적그리스도를 경배하고 그가 지정한 일요일 경배가 잘못이라고 말하면 처벌을 받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대항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이 가깝습니다. 주님 오실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에덴에서 세우신 창조의 질서를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진리 탐구_사도 베드로의 "영적 이스라엘" 탄생 선언 2

 

“오직 너희는 ①택하신 족속이요 ②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③거룩한 나라요 그의 ④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가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벧전 2:9)

우리는 여기서 제사장이란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좀 더 명확히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이 들었을 때는 다른 말씀도 반감을 보일 수밖에 없는 말씀이지만 특히 “제사장”이란 용어를 이방인들에게 적용한 것은 이방인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겁니다. “제사장”의 의미와 직분이 무엇입니까? 의미 그대로 하나님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제사를 드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특별하게 구별된 직분입니다. 출애굽기 25장부터 성막의 제사법을 기록하시면서 제사장 직분을 맡을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줄 영원한 규례를 기록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12지파를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는데 그 명령은 아론과 그 아들만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그 제사장 직분을 맡아야 할 것이며 그 직무를 외인이 하면 죽음의 형벌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 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 ”(출 29:9)

“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맡기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온전히 맡겨진 자들이니라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무를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레 3:9-10)

여기서 우리는 왜 베드로 사도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은 자로 선포하셨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선민인 “이스라엘”이 될 수 없다면 하나님의 영원하신 제사장 직분의 규례 말씀을 베드로 사도는 불순종한 것이 되며 또한 베드로전서 2장 말씀은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으며 베드로 사도께서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사장”이라는 명칭을 부르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교회)가 새로운 선민 “이스라엘”이 되었으므로, 제사장의 규례 말씀에 위배되지 않으므로 사도께서도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도 그것도 특별히 거룩하게 구별되어야만 하는 제사장의 직분을 그리스도인에게 지칭하셨고, 또한 그 제사장의 직분에 맞게 모든 행실에 거룩히 하라고 교훈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대제사장”의 직분은 맡을 수가 없는데 우리에게 대제사장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엄연히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직분은 차이가 있으며 이러한 대제사장과 성소제도에 관하여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SOSTV 선교센터”에 자료들을 요청하시면 많은 도움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성소제도와 대제사장의 직분을 이해하시면 하나님께서 주신 “죄사함의 제사법”과 “영원한 속죄”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 = 선택된 백성= 제사장 = 영적 이스라엘

기독교회사_노섬브리아의 휘트비의 선교센터

 

아이단에게 복음의 씨앗을 성공적으로 파종할 수 있게 한 양성 학교들은 진리로 우뚝 선 복음의 일꾼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계속해서 훌륭한 양성 센터들이 세워지고 수많은 복음 선교사들이 배출되었다.

훈련 센터로서의 휘트비를 세운 힐다
노섬브리아 왕국에 세워진 잉글랜드 안에 있던 가장 널리 알려진 영적 센터는 휘트비였다. 이곳의 여자 대수도원장은 왕족으로 태어나 기독교 신앙에 대한 경건심과 헌신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힐다였다. 그녀는 아이단과 다른 경건한 사람들과 가까이 지냈으며, 그녀의 타고난 지혜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성향 때문에 그녀를 자주 방문하여 그녀에게 교리를 부지런히 가르쳤으며, 그들은 그녀가 하는 일을 존중하였고 심지어 왕들까지 때로는 그녀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베더는 기록한다.
Bede, Ecclesiastical History of England, b. 4, ch. 27.

휘트비(WHITBY)의 훈련센터의 특징
- 남자를 위한 구역과 여자를 위한 구역으로 나누어진 큰 시설을 갖춘 학교였다.
- 모든 학생은 의무적으로 성경을 많이 읽고 영적 진리를 가르치는 법을 배웠다.
- 성경 연구와 필사는 필수 과목이었다.
- 학생들은 농사와 다른 일들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 여학생들은 그들의 미래의 삶에 적합한 교육을 받았다.
- 저명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으며, 졸업생 중 다섯 명은 지역 훈련센터의 원장이 되었고, 캐드몬은 잉글랜드 최초의 종교 시인이 되었다.

덕데일은 힐다를 “이 나라에서 교황권의 영토 확장을 막은 공공연한 원수였으며, 또한 사제들의 삭발과 부활절을 로마의 관습에 따라 지키는 것을 온 힘을 다해 반대한 인물”이라 했다.
Quoted in M’Clintock and Strong, Cyclopedia, art. “Hilda.”

잉글랜드 최초의 종교 시인 캐드몬(CAEDMON)
학생들의 은사를 찾기 위해 항상 애쓰던 힐다에 의해 캐드몬의 은사가 발견되었고, 학생들은 캐드몬에게서 발견된 은사를 활용하는 것을 매우 즐거워하였다.

“그는 이 세상을 창조한 일에 관하여, 사람의 기원에 관하여, 그리고 창세기의 모든 역사에 관하여 노래하였다. 그는 또한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애굽)를 떠난 일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일과 관련된 수많은 가사를 만들었다. 그 외에도 그는 우리 주님의 성육신과 고난과 부활, 그분의 승천, 성령의 임재, 사도들에 의한 복음전파, 장차 올 심판에 대한 공포, 지옥에서 당할 고통에 대한 두려움, 하늘나라에서의 즐거움 등 성경에 나오는 역사적 사건들을 가지고 많은 가사를 만들었다. 그는 이 외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심판에 관한 가사를 많이 만들었는데, 이는 그가 그것들을 통해서 악행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이 그 생각을 돌이켜서 선행을 사랑하고 또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Bede, Ecclesiastical History of England, b. 4, ch. 24.

인쇄기가 없던 당시에 캐드몬은 노래를 통해 아이단과 그의 제자들이 선포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였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_기독교의 이상

194-1

Healing Story_포도 금식의 적용

 

얼마 전 일입니다. 딸아이에게 필요하리라 생각되는 몇 가지 준비물을 마련해 두었다가 아침 등교길에 가져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엄마, 나에게 이것들이 필요한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문득 하늘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시는 하나님! 무엇을 구하기도 전에 이미 각 사람의 필요대로 준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태풍과 무더위가 절정인 8월, 송이송이 봉지에 싸여서 검붉게 익어가고 있는 하나님의 선물인 포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포도씨-프로안토시아니딘(Proanthocyanidin)
포도씨 속에 존재하는 떫은 맛 성분으로 비타민 E의 40배, 비타민 C의 20배나 되는 강력한 항산화력을 가지고 있어서 슈퍼항산화제로 불리고 있습니다.
-암은 세포막이 손상을 입어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핵이 손상을 입어 암 바이러스가 침범하여 시작되는데 프로안토시아니딘은 이러한 변이와 침범을 막아줍니다. 빗자루질하듯이 유해산소를 흩어버리고, 암세포를 녹이고 분해합니다.
-동맥경화 및 심장병을 예방, 치료하며 위궤양, 백내장, 당뇨병 등과 그 합병증에 대한 억제작용이 있습니다.
-뇌에는 3겹의 보호막이 있는데, 이 보호막을 바로 지나서 뇌세포를 손상시키는 유해산소를 쓸어버립니다. 따라서 기억력과 지력이 좋아질 뿐 아니라 과도하게 만들어져 뇌세포를 손상시키는 베타 아밀로이드를 녹여서 순환계를 통해 배설시키므로 알츠하이머병에도 도움이 됩니다.
2. 포도껍질-레스베라트롤(Resveratrol)
-포도껍질 속에 들어있는 성분으로 암의 발생 3단계인 개시, 촉진 및 진행단계 모두를 차단하는 강력한 항암작용이 있음이 발견되었습니다.
-레스베라트롤은 곰팡이 같은 감염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물질로, 오디나 땅콩에도 있지만 자줏빛이 나는 포도에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에 그린버거 교수는 레스베라트롤이 방사선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한다는 연구결과를 보고한 바 있습니다.
-이 밖에도 치매를 예방하고 강력한 항산화 작용으로 노화를 억제합니다.
3. 포도당분과 과분
-포도의 당분은 소화과정 없이 바로 흡수되어 에너지를 발생하고, 이 과정에 필요한 비타민들 또한 포도에는 충분히, 균형지게 들어 있습니다.
-포도 표면에 묻어있는 하얀색 가루는 과분이라고 부르는 천연 왁스 성분입니다. 이 성분은 물에 녹지 않으며 물이 묻으면 튀겨내는 성질이 있는데 구성 성분의 80%가 항산화작용, 항균작용을 하는 올레아놀산입니다. 과분이 포도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므로 먹기 직전까지는 씻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4. 유기산과 비타민
포도에는 여러 가지 유기산(능금산, 구연산, 주석산 등)이 듬뿍 들어 있는데, 이 유기산은 산성화 되어 있는 몸을 알칼리화 시켜 줍니다. 체중과다인 경우, 지방과 함께 독성물질을 보유하게 되는데, 포도는 쓸모없는 세포나 조직, 지방세포를 파괴, 합성, 배설시키므로 우리 몸의 독소를 배출해 줍니다.
5. 포도요법
남아공의 요한나 브란트 박사는 9년간 위암 투병을 하다가 6주간의 포도요법으로 완치된 후, 포도로 암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였습니다. 1928년『포도요법-암과 기타의 병 치료를 위해』라는 책을 출간하였고 이를 계기로 포도요법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포도는 발효가 쉽게 일어나는 과일로 체내에 들어온 다른 식품과 반응해 발효하면서 독소나 알콜을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따라서 포도를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포도요법은 환자의 병과 그 깊이, 몸 상태에 따라서 방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다이어트나 치료를 위해 무작정 시작하는 것보다는 관련 서적을 꼼꼼히 읽어 이 요법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갖추고 자신의 상태에 맞게 적용하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 포도요법과 보식
<1단계>
1. 레몬(1개)즙+물(1~2컵)을 30분~1시간마다 마십니다. (소화기가 약한 사람은 온수 사용)
2. 몸속 독소를 완전히 배출하기 위해서 레몬관장을 해줍니다. 레몬(2개)즙+온수(7컵)를 섞어서 5컵은 관장을 하고, 2컵은 관장 20분 전에 마십니다.
3. 다음 날 아침, 기상하자마자 숯가루 1T를 물에 타서 마십니다.
4.한 끼에 포도 250g 정도를 3시간마다(5회/일) 먹습니다. 포도껍질과 씨앗을 같이 먹되, 씨앗은 어금니로 으깨어 알맹이와 함께 삼키고 껍질은 단물이 다 빠질 정도로 꼭꼭 씹은 후에 뱉어냅니다.
5. 포도를 먹은 뒤 1시간~1시간 반 정도 지나서 생수 1/2~1컵을 마십니다.
6. 포도를 먹고 2시간 후에 취침하도록 하며, 취침 전에 숯가루 1T를 물에 타서 마십니다.
7. 이 과정을 3일~5일 하되 1주일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두통이나 허약감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이는 해독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며칠이 지나면 없어집니다.
<2단계>
보식은 대단히 중요하며, 시간에 맞추어 규칙적으로, 계획한 음식들만 먹도록 합니다. 과일은 과즙이 많고 부드러운 것 중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종류들로 준비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은 포도를 먹고 그 사이 두 번은 다른 과일을 먹되 한 번에 여러 과일을 섞어서 먹지 않습니다. 입안에서 즙이 될 때까지 오래 씹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을 7~10일 동안 합니다.
<3단계>
아침은 포도나 과일 주스를 먹고, 다음 식사로는 신선한 생야채 중 한 가지를 먹습니다. 샐러리, 토마토, 오이, 상추, 양배추, 당근, 시금치 등의 야채를 준비하시면 됩니다. 치아가 좋지 않으신 분들은 당근과 함께 즙을 내어 반 컵 정도 마시는데,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음식을 씹듯이 10번 이상 충분히 씹어서 삼키도록 합니다. 저녁에는 생야채를 샐러드처럼 먹습니다. 처음에는 한 가지 야채부터 시작하여 점차 그 종류를 늘여줍니다.
<4단계>
아침은 과일 한두 가지를 충분히 먹습니다. 3시간 후, 점심으로 현미밥 1/4공기와 데친 야채를 곁들여 먹습니다. 현미밥의 단맛이 느껴질 때까지 잘 씹어주며 밥의 양은 상태에 맞게 조금씩 늘이도록 합니다. 저녁 식사는 신선한 야채샐러드와 두유를 먹습니다.
 
포도요법에 대한 강의가 sostv.net 라이프 토크에 있으니 참고하시고, 이에 대한 질문은 월간지에 있는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여러분, 건강한 생활의 기본은 감사하는 마음, 올바른 식생활, 규칙적인 생활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 제일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