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권두언


하나님께서 마지막 세대에 일으키실 증인들의 사명은 매우 놀라운 것입니다. 히브리 11장에는 믿음의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그들의 믿음의 사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맨 마지막 부분, 마지막 구절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이 나오는데, 그 구절은 바로 마지막 증인들의 사명의 중요성에 대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40절).

그렇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증인들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죄의 역사를 마치실 수가 없으며, 선과 악의 대 쟁투를 마치실 수도 없으십니다. 또한 마지막 증인들 없이는 승리도 없으며, 하나님의 공의를 옹호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수없는 믿음의 조상들이 그들의 사명을 마쳤어도, 마지막 주자인 마지막 세대의 증인들이 없으면 이 일은 끝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에 입각한 증인들의 믿음과 진리로 성화된 증인들의 성품과 삶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때에 그 일은 우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진리를 전할 뿐만 아니라 전하는 진리대로 사는 증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증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참된 증인이 되는 길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독자 여러분을, 우리가 아니면 온전히 이룰 수 없다는 사명에 불타게 하는 기사가 되기를 바라며, 증인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강 병국 목사                

                                    

Love Letter_주님 초대해 주십시오

 

강 영은                                                                                                                       

 

 

주님,

가을 숲으로 초대해 주십시오.
위대했지만 떠들썩했던 여름이 가고
조용히 마음 살피는 가을이 오는 길목,
겸손의 벤치에 당신과 함께 앉아
순례의 고단함을 풀고 싶습니다.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사 51:23) 고 하던 자들에게
허리를 땅같이 낮게 펴며,
“내 등에 갈아 고랑을 길게 지었”(시 129:3)던 자들에게
등을 내주던 괴로움도 잠시 잊은 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으나 악한 이름으로,
참되시나 잠깐 속이는 자처럼 대접 받으셨던(고후 6:8)
당신 곁에 앉아
따뜻한 위로를 느끼고 싶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로,
“죽은 자 같으나 산 자”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 6:9,10)로 사는 기쁨과 고난을
주님,
당신 외에는 누가 알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이 가을에는 정다이 함께 앉아
괜스레 당신의 칭찬의 말을 청해 듣고 싶습니다.


주님,
당신 곁으로 초대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면서”
아무리 많이 견디고 궁핍과 곤란을 당했다 해도,
아무리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으로
자지 못하고 먹지 못했다 해도(고후 6:4,5),
당신이 겪으신 큰 고난 앞에선
고개조차 들 수 없이 부끄러워
살며시 새끼손가락 내밀며
끝까지 이 길을 가겠다고 약속하고 싶습니다.


주님,
욕됨을 받아도 당신을 위하여 받고
돌림쟁이를 당해도 당신의 영광을 위해 당하며,
앞날에
오래 참음과 견딤의 시간들만 줄 서 있다 해도,
주님을 위해 산 날들이 너무 소중하고
주님을 위해 살 날들이 너무 감사해
이 가을 맞으며 당신을 노래합니다.


주님,
당신 곁으로 초대해 주십시오.
주님 곁에 머물면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불어 가슴 뻥 뚫리고
당신 곁에 머물면
지친 여정길에 샘물 마신 듯 기운을 얻습니다.

초대해 주십시오.
당신의 종입니다.
초대해 주십시오.
당신의 증인으로 살겠습니다.


이 가을
수확의 계절 맞아 마음 바빠도
씨 뿌리신 이는 주님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오늘 당신과 함께
조용히 가을 숲 벤치에 앉아 있고 싶습니다.
주님,
초대해 주십시오.

 

제1부_증인은 증거한다(I)

 

이 세상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증인들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죄악의 조류를 거슬러 홀로 서서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에 전파하는 진정한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참된 증인들은 각각 자신이 살던 시대에 온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해 증인의 사명을 다하며 세상에 진리의 빛을 비추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시대에 죄악의 역사를 마치시기 위해 증인들을 필요로 하고 계십니다. 각 시대마다 조금씩 가지고 계시던 증인들이 마지막 때에는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마지막 증인들을 통해 선과 악의 대쟁투를 마치실 것이며, 그 참된 증인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승리를 가져다 드릴 것입니다. 이번 호 신앙기사에서는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증인과 선교사가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빛을 이 세상에 비출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함께 연구해 봅니다. 하나님의 참된 증인들이 되시는 독자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편집실 –

신앙기사 1부: 증인은 증거한다( I )

하나님께서는 증인들을 소유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도 당신의 증인들을 가지고 계셨고, 현재도 가지고 계시며, 앞으로도 가지실 것이다. 증인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목격한 것을 증언하는 사람, 자신이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증거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증인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아는 예수님,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 더 나아가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살며,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전하는 선교사를 예수님의 증인이라고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증인들이다. 그리스도인이란 “크리스찬”(Christian), 곧 “Christ like”란 의미를 가진 단어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실화가 있다. 그 유명했던 명장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이름을 가진 병사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의 귀에 이 병사에 대한 나쁜 소문이 들렸다. 이 병사의 행동 때문에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이 수치스럽게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잘못할 때마다 “알렉산더, 자네는 정말 형편없군!”이라는 놀림을 받는 이 병사의 행동은 알렉산더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느 날 이 병사의 막사로 찾아갔다. 그때에도 아니나 다를까 이 병사는 술에 취했는지 바닥에 뻗어 누워서 말썽을 부리고 있었다. 대왕이 오셨다는 소리에 놀라서 벌떡 일어나 경례를 하는 병사에게 알렉산더 대왕은 이렇게 말했다. “병사, 자네 이름이 알렉산더인가? 나와 이름이 똑같군. 병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 네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네 인생을 바꾸어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은 이름에 맞는 값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전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선전하는 선전원들은 어떠해야 하겠는가? 이 세상과 사회에 하나님을 잘 소개하고 그분의 성품을 나타내며 예수 그리스도를 잘 선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증인이 시원치 않으면 그 이름을 바꿔야 한다. 아니면, 그 이름에 맞게 그 인생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참된 증인들이 등장한다. 자신들의 삶과 성품과 신앙으로 하나님을 잘 증거한 훌륭한 선배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하나님의 산 증인 에녹

성경에 나오는 증인의 대선배로 에녹을 꼽을 수가 있다. 에녹은 구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비록 그에 대한 기록이 짧은 몇 구절로 한정되어 있지만, 그 압축된 묘사 속에는 증인으로 사는 삶이 고스란히 나타나 우리에게 큰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1) 에녹 당시의 환경

에녹은 홍수가 오기 바로 전에 살았다. 그 당시는 물로 세상이 심판을 받을 만큼 사악하고 죄악이 만연하던 시대였다. 창조 받은 지 얼마 오래지 않은 시대여서 사람들의 신체적 지적 조건은 탁월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유리한 조건들을 이용하여 죄를 짓는 일에 점점 더 대담하게 되었다. 하늘의 빛을 거절하는 세상에 죄악의 조수는 점점 깊어가고 마침내 그들의 악은 극에 달하여 멸망이 다가오게 되었다. 하나님의 법과 원칙이 무시되고 세상이 영적 흑암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던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증인을 필요로 하셨다. 누군가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몸소 보여주고 진리를 전해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일이 시급했다.

2) 증인 에녹의 모본

그 당시 만연하는 악과 죄악의 창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거룩한 증인들이 있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에녹이었다. 에녹은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하늘의 진리를 전하였으며,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간청하고 탄원하며 세상에 임할 심판을 멈추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아담의 칠대 손이었던 에녹은 아담으로부터 인간의 타락 이야기와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해 배웠다. 하나님의 약속에 나타난 사랑을 보면서 그는 믿음으로 장래에 오실 구세주를 의지했다. 성경은 에녹이 65세 때 아들을 낳은 후 3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남 므두셀라가 태어난 후 아들을 키우면서 에녹은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고 더 심오한 영적 경험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랑을 느끼면서 그는 독생자 아들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되었고, 아들을 속량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에녹의 명상 주제가 되었다. 그는 그 사랑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들어갔다. 얼마나 그 교제가 깊었으면 성경이 그가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묘사했겠는가!

3) 에녹의 실천적 신앙

에녹의 삶은 그 생활 자체가 하나님을 증거하는 실천의 삶이었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는데, 그 이름의 뜻은 “그가 죽을 때 온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곧 자기 아들 므두셀라가 죽을 때 이 세상에 심판, 홍수가 임할 것이니 준비하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아들의 이름을 작명하는 것에서마저도 그는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였다.

“아들 이름이 뭡니까?”
“네, 므두셀라입니다.”
“아니, 이 아이가 죽을 때 무엇이 온다는 말입니까?”
“네, 홍수가 옵니다. 심판을 위해 준비하십시오!”

그 당시 사람들과 달리 심판과 재림을 믿었던 에녹은 예언적 이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속량, 그리고 그분의 재림에 대해 보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께서 거룩한 천사들에 둘러싸여 영광 중에 재림하시는 광경과 그때의 세상의 부패한 상태, 그리고 사람들이 불경건하게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분의 율법을 짓밟고 불순종하는 것을 보았다. 또한 의인이 구원을 받아 영광을 누리는 것과 악인들이 불로 멸망 당하는 것을 보았다. “아담의 칠 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다서 14).

에녹은 세상에 악행이 증가 하는 것을 슬퍼하고, 그 악한 감화와 불신이 자신의 신앙에 감화를 끼치지는 않을까 염려해서 세상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피하고 한동안 한적한 곳에서 보내며 묵상과 기도에 전심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었으며 그는 매일 하늘의 분위기 가운데서 살았다. 그는 시골에 살면서 하나님의 진리에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데려와 권면하며 준비시켰다. 그는 두려움 없이 죄를 책망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설교하며, 악행을 버리고 회개하여 곧 세상에 임할 심판을 피하기를 사람들에게 간청하였다.

4) 에녹, 마지막 증인의 대표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온몸으로 생활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았다. 비록 이 땅에 살았지만 그의 생각과 마음과 대화는 하늘에 관한 것이 전부였다. 3백 년 동안 계속하던 하나님과의 동행은 점점 더 깊어졌고, 더 가까워졌으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로 데리고 가셨다. 그렇게 오래 지속하던 동행 끝에 이제 하늘 문이 열리고, 지상에서 오랫동안 이루어졌던 그 동행은 계속되게 된 것이다. 그는 거룩한 도성의 문을 통과하였고, 인간으로서 하늘에 들어간 첫째 사람이 되었다. 지상에서 그가 없어진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으므로 그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있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에녹 때문에, 비록 인간이 죄 많고 부패한 세대 가운데서 살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유혹을 물리치고 순결하고 거룩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에녹의 경건한 품성과 증인된 삶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강림하실 때에 구원함을 받을 마지막 증인들이 달성해야 할 거룩한 상태를 대표한다. 마지막 증인들은 에녹처럼 주님의 재림과 세상에 임할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경고해야 한다. 물로 세상이 멸망 당하기 전에 에녹이 하늘로 승천한 것처럼, 마지막 때의 의인들도 불로 세상이 멸망 당하기 전에 하늘로 승천할 것이다.

 

제2부_증인은 증거한다(II)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신실한 증인들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위대한 증인이 되기까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긴 훈련과 연단의 과정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증인에게는 늘 하나님의 부르심이 먼저 있다. 증인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부르심을 입고 그 진리를 전하는 사명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항상 당신을 섬기는 남은 무리를 보존하셔서 증인으로 삼으셨다. 아담, 셋, 에녹, 므두셀라, 노아, 셈의 계통을 이어가며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전수하고 있었다. 이제 그 유명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부르심이 왔다.

* 하나님의 신실한 증인 아브라함

1) 부르심과 이별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이 임했다.
원래 아브라함의 이름은 ‘아브람’(이름의 뜻: 존귀한 아비)이었는데, 나중에 ‘열국의 아비’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뀌었다. 그는 현재 이라크 지역인 “우르”에서 성장했다. 그가 살던 지방은 우상숭배의 본거지라고 할 만큼 우상숭배가 만연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부패한 가운데서도 신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만연하고 있는 배교에도 부패하지 않은 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가 속해있던 익숙한 사회적 환경과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그를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증인과 선교사로 삼으시기 원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하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아브라함은 그의 생애에 교제하던 모든 것들로부터 분리되어야 했다. 그의 주위 환경과 친족과 친구들의 감화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특별한 훈련에 방해되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주저 없이 의심 없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떠났다.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외적 증거가 조금도 없는데도 그 약속을 믿고서, 집과 친척과 고향을 버리고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기 위해 따라 나갔다. 아브라함에게 요구된 희생과 시험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약속의 땅에 관해 묻지 않았다. 토지가 비옥한지, 기후가 좋은지, 살기에 유쾌한 환경인지, 재물을 쌓기에 좋은 곳인지 묻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그는 순종하였고, 그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곳이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곧 이별을 뜻했다. 자신을 지탱해주든 부족과 소속감을 주든 사회와 자신이 의지하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는 경험이었다. 증인이 되기 위해 제일 먼저 치러야 하는 경험은 이별과 분리의 예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증인된 우리들에게 때때로 낯익은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 이별하라고 요구하신다.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지라도,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아픈 경험이 될지라도, 더 높은 부르심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을 깨달아야 한다. 아브라함이 그의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보장된 안일과 윤택한 삶과 안전한 미래와 즐거운 교제와 사교생활을 모두 버리는 것을 의미했다.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첫째 조건에는 믿음의 시험이 따랐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부르심을 받을지 모른다. 하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부와 명예가 보장된 직장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고, 가족과 떨어져야 할 수도 있다. 극기와 고난과 희생의 길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인간의 감화와 도움에서 벗어나게 해서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고 의지하며 살도록 섭리하신다.

2) 가족과 왕들에게 증인이 된 아브라함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린 아브라함의 생애는 기도의 생애였다. 그는 장막을 치는 곳마다 근처에 제단을 세우고, 장막에 유하던 모든 사람들을 불러 조석으로 희생 제물을 드리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아브라함은 큰 재물과 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많은 수의 가족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가족을 포함하여 잘 훈련된 군사들과 종들을 포함하면 천명 이상이나 되는 대가족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은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교사가 되었는데, 그의 가르침에 힘이 있었던 것은 몸소 실천한 생활의 감화였다. 어떤 설교나 말보다도 아브라함의 성품과 인격과 생활에 드러나는 신앙이 가장 큰 전도였고, 그것이 그를 효과적인 선교사로 만들었다. 증인은 먼저 가정에서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신앙을 보여주는 것, 삶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여정길에 동행했던 친척이 있었는데 그는 조카 롯이었다. 그러나 후에 그들은 서로의 가족과 가축들의 수가 많으므로 질서를 위해 분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런데 소돔을 택해 살던 롯이 전쟁 포로로 잡혀가는 일이 생겼다. 아브라함은 집에서 양성한 318명의 군사를 데리고 전쟁 포로가 된 롯을 구하러 갔다. 여러 왕이 개입되어 있던 이 전투에서 아브라함은 승리하여 롯과 함께 포로들을 구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용기와 용맹은 정복한 왕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고 증거하였다. 적은 수의 군사로 많은 나라를 상대하여 용감하게 구출 작전을 벌였던 아브라함의 행위는 부근의 부족들과 왕들에게 널리 감화를 끼쳤고 인근의 모든 민족들이 아브라함이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 알고 놀라게 되었다. 그것은 매우 효과적인 선교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소돔 왕은 승리자 아브라함을 환영하려고 나와서, 그에게 전리품은 다 취하고 포로들은 놓아 주기를 간청하였다. 전쟁의 관습대로 한다면 전리품은 모두 승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모든 전리품과 포로들을 다 돌려주므로 하나님의 증인의 삶이 얼마나 청렴결백하고 너그러우며 깨끗한가를 증거하였다.

3) 증인이 되기 위한 마지막 시험

아브라함은 일찍이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아들을 주시리라는 약속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지체되자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과 방법대로 그 일이 성취되도록 기다리지 못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그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지체되는 일을 허락하셨으나 그는 그 시험을 견디는 데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신앙의 모본이 되어야 하였다. 아직 그의 믿음은 완전하지 못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사람이 견디도록 주어진 시험 가운데 가장 견디기 힘든 마지막 시험을 당하게 하셨다. 아브라함은 밤의 이상 중에, 모리아 땅으로 가서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명령을 받을 때에 아브라함의 나이는 120세였다. 젊은 시절에는 어려운 일도 견디고 위험한 일도 용감하게 밀고 나갈 만큼 굳센 사람이었지만, 이제 그는 노년에 이르렀고 그 시험은 엄청난 믿음과 희생을 요구하는 무서운 시험이었으므로 그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는 이제 번영과 명예를 누리며 브엘세바에서 살고 있었으며, 수백 명의 충성된 종들과 군속들이 있었고, 약속의 아들 이삭은 장성하여 성년이 되어 그의 곁에 있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의 고국을 버리고 선산과 친족이 사는 고향을 떠나왔다. 그는 나그네처럼 방황하였고 약속된 후사의 출생을 오래 기다렸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오랫동안 소망했던 아들이 성년이 되어가고 있었을 때, 그의 소망의 모든 결실을 이루는 것처럼 보였을 때, 다른 모든 시험보다도 훨씬 더 큰 시험이 이르러 온 것이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창 22:2)는 명령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고통으로 찢어지게 하였다. 정말 이 명령이 “살인하지 말지니라”는 거룩한 계명을 제정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일까? 만일 이삭이 죽어야 한다면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으리라던 약속은 어떻게 성취된다는 말인가? 그는 땅에 엎드려 하나님의 다른 명령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지만 그 명령은 확실하게 귀에 쟁쟁히 울리고 있었다.

4) 시험의 승리

아브라함은 깊은 단잠에 빠진 이삭을 깨워 먼 산에서 희생을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말하였다. 그들은 두 하인과 함께 출발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은 나란히 서서 여행하는 아브라함은 말할 마음이 없었다. 심한 고민에 빠져 그는 이삭과 하인들이 자고 있는 동안에 기도로 밤을 지새웠다. 혹시 어떤 하늘의 천사가 찾아와서 시험은 이것으로 넉넉하다고 말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역시 믿음의 조상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시고 진실하신 증거를 생각하며 이렇게 반문하였다. ‘이 아들은 기적으로 주어진 선물이니, 귀중한 선물을 주신 분께서 다시 취하실 권리가 없으시겠는가? 또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실 능력이 없으시겠는가?’ 아무도 아브라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님 밖에는 아무도 아들을 죽음에 내어 주는 아버지의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드디어 지정된 장소에 이르러 그들은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올려놓았다. 그 후에 아브라함은 떨리는 음성으로 하나님의 기별을 아들에게 알렸다. 이삭은 그 말을 듣고 두려워하고 놀랐지만 아무 저항을 하지 않았다. 만일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던 이삭이 마음만 먹었다면 연로한 아버지를 저항하고도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를 신뢰하고 순종하도록 훈련되어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명령에 자원해서 순종하였다. 그는 오히려 아버지를 도와 자신을 제단에 붙들어 매게 했다. 그들은 마지막 눈물을 흘리고 마지막 포옹을 했다. 그리고 아들을 죽이려고 칼을 들 때에, 갑자기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1~18 참고). 아브라함은 시험을 통과하였다!

5)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증인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무서운 시련과 고통은,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독생자 아들을 주신 위대한 사랑과 희생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허락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고통과 수치스러운 죽임을 당하도록 내주셨다. 그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그는 하나님 아버지만이 겪으실 수 있는 고통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고, 그리하여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죄지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신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이 증인들의 마음속에 있어야 한다. 한 명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 진리를 전하여 멸망에서 건지려는 열렬한 사랑이 마음속에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의 순종과 믿음은 마지막 시대의 증인들에게 위대한 모본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과 모든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만이 마지막에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수 있다.

 

제3부_증인은 진정한 믿음을 가진다

 


마지막 시대에 부르심을 받는 증인들은 현시대에 주어진 하나님의 메시지를 알아야 한다. 현대진리란 그 시대에 해당되고 전해져야 할 진리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 시대 사람이 반드시 듣고 구원을 위해 결정하도록 촉구하는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전해져야 할 현대진리를 가지고 계셨고 그 진리가 선포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시대의 상황과 때에 맞는 현대진리는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엄숙한 메시지로서, 이 진리를 개인이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영생과 운명이 결정된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 시대에 주어진 현대진리는 무엇인지, 증인된 우리들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함께 공부해 보자.

1) 세 천사의 복음 - 첫째 천사의 메시지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 꼭 전해져야 할 현대진리는 요한 계시록 14장에 등장하는 세 천사의 복음이다. 요한계시록 14장 6절에서부터 12절에 나오는 이 세 천사의 복음 속에는 모든 진리가 포함되어 있는데, “영원한 복음”인 창세 전부터 세우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6~7).

첫째 천사가 공중을 날아가면서 무엇이라고 외치는가?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며,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외친다. 무슨 심판의 때가 어떻게 이르렀다는 말인가? 다니엘 8장 14절에 나오는 2300 주야의 예언은 그 해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그동안 월간지를 구독한 독자들은 이 예언이 끝나는 시기가 1844년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다가 1844년에 지성소로 들어가셨다. 왜 지성소에 들어가셨는가? 이 답을 얻기 위해 성소와 관련된 영적 경험에 대해 잠깐 살펴본다. 성소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는 지성소의 진리라고 할 수 있는데, 사단은 지성소의 진리를 이해하고 지성소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생길 때에, 하나님의 증인들이 준비될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성소 진리를 묻어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1. 지성소 경험

성소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청사진, 교과서로서, 그 속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과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해야 할 영적 경험이 예표되어 있다.
성소 뜰의 경험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경험에서 “칭의”를 예표하며, 성소는 “성화”의 경험을 상징한다. 그다음 가장 중요한 것이 지성소의 경험이다. 지성소의 경험은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이 가져야 할 경험이다.

지성소 안에는 돌비에 새겨진 십계명을 보관하는 법궤가 있고 법궤 위에는 시은좌가 있는데,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의 빛인 쉐키나가 빛나고 있었다. 그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는데, 죄인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면 즉시로 죽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지성소는 인간이 이르러야 하는 최종 목적지와 그곳까지 이르기 위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표상적으로 가르쳐준다. 우리는 누구나 다 한 번은 하나님 앞에,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만일 우리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정결하게 되는 경험이 없이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선다면, 우리는 소멸하시는 불이시며 죄를 태우시는 하나님 앞에 죽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정결하게 함을 입어야 하며, 결국 모든 죄가 해결되어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앞에서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사는 사람들은 죄의 정결함을 받는 지성소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2. 심판의 때가 이르렀다

성소 제도에 나타난 예표와 상징을 통해서 우리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상황과 현재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업에 대해 알게 된다. 지금은 바로 예수님께서 지성소로 임하셔서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시는 때이다. 그러므로 첫째 천사는 “그의 심판 하실 시간이 이르렀”다고 외치고 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지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계시는데, 곧 지성소에서 우리의 회개와 죄의 고백을 받고 계시며 각 영혼을 정결하게 하시는 사업하고 계시다. 그러나 현재 기독교에서는 다만 성소 뜰의 경험만 가르치고 십자가만 강조하며 성소 뜰에만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이후 하늘 성소로 들어가시고, 2300 주야의 예언이 가리키듯이 성소를 정결하게 하시기 위해 1844년에 지성소로 들어가셨으므로, 예수님을 따라 지성소로 들어가는 경험을 해야 한다.

지금은 지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영혼 정결 사업에 참여해야 하는 매우 엄숙한 때이다. 지금은 지성소에서 어린 양의 혼인이 이루어지고 있다. 누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조사하는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조사심판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무서운 심판이 아니다. 그것은 누가 죄를 회개하였는가 누가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미리 조사하는 심판으로서, 우리 속에 고쳐야 할 것,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보여주시고 드러나게 하셔서 그것을 해결하게 하시는 자비로운 심판이다. 만일 우리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의 부족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보충해주셔서 구원을 얻도록 하시는 역사라는 것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이 심판의 때에 죄를 회개하는 경험, 죄를 버리는 경험,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빨리해야 한다.

조사심판은 인을 치는 것과 같이 단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과정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한 계단씩 계속해서 인도하시는데, 매 단계마다 여러 다른 과정들을 거치게 하셔서 회개하고 버려야 할 것들을 보여주신다. 그런데 어떤 과정에서 마음에 품고 있는 우상이 보일 때 그것을 버릴 것인지 아닌지는 우리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이나 진리보다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가 드러내 준다. 그러므로 조사심판이란 어떤 면에서 우리의 부족을 보여주시며 보충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자비의 심판이 되는 것이다.

2) 둘째와 셋째 천사의 메시지

세 천사의 복음에서 둘째 천사의 메시지는 바벨론이 무너졌으니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복음이다. 바벨론에서 나온다는 의미는, 먼저 현 기독교의 가르침 속에 들어있는 모든 오류의 교리들을 벗어나 바른 복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오류들을 걷어낸 진짜 복음 속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과 사랑을 깨닫고 진리 안에서 변화되는 것이다. 또한 바벨론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속의 바벨론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바벨론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또 다른 자녀들을 불러낼 수 있으며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칠 수 있다.

셋째 천사의 메시지에서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의미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은 짐승의 우상이 세워지고 있는 때이다. 점점 높이 올라가고 있는 짐승의 우상이 다 완성될 때에 그것을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으라는 강요와 압력이 이를 것이다. 짐승의 우상이란 종교가 국가와 정치의 힘을 빌려 압력을 행사하고 탄압하며 핍박하는 것을 말한다. 요한 계시록 13장에 첫 번째 짐승으로 묘사된 교황권이 과거에 행했던 일, 곧 정치와 종교가 연합하여 국권의 힘을 가지고 종교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했던 것과 같은 일이 마지막 시대에 행해질 것이다. 곧, 마지막 시대에 형성되는 짐승의 우상도 짐승의 모습(Image)을 닮아서, 정치적 힘을 이용하여 인간이 만든 교리나 가르침을 강요할 것이다. 짐승의 표의 이슈 가운데는 매우 중요한 것이 들어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불변하는 법인 십계명에 대한 이슈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반면, 이를 위해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인데,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인간이 만든 교리와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며,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는 일로 나타날 것이다. 짐승의 우상과 짐승의 표는 “경배”나 “예배”와 관련이 있는 단어로서, 첫째 천사는 경배할 때에 짐승을 경배하지 말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 곧,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십계명 중에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는 계명은 몇째 계명인가? 바로 넷째 계명이다. 이 계명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내용과 창조를 기념하시기 위해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창조의 기념일 일곱째 날 참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는 올바른 안식일 회복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날짜만 지키는 안식일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이것은 진정한 안식을 경험하는 것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먼저 거룩하게 되지 않으면 진정한 안식일을 지킬 수 없다. 히브리 4장 1~10절에 언급된 진정한 안식을 경험해야 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인데, 그것은 육체의 모든 일(갈 5:19), 곧 죄악적인 일을 도모하는 모든 일을 그치는 것,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죄를 승리하고, 죄를 이기고 그친 기쁨 속에서 지키고 경험하는 것이 진정한 안식의 경험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참 안식일을 지키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짐승의 표가 강요될 때에 하나님의 계명과 참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을 받고 짐승의 표의 환난을 견디고 승리할 것이다.

3) 계명을 지키는 특별한 믿음

이 세 천사 복음은 마지막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출현할 것이라고 말하며 끝을 마치고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굳세게 견디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남은 자손으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인데, 특히 이 계명을 지키는 일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특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믿음이 무엇인가? 이것은 “예수 믿음”인데, 이것을 엄밀히 분리하여 말하면 두 가지 종류의 믿음이다. 곧 예수님이 가지셨던 믿음,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이렇게 두 가지이다.

1. 예수 믿음

예수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가지고 사셨던 믿음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오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입으시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모든 시험에 승리하셨다. 예수님은 시험과 유혹에 승리하시기 위해 한 번도 신성의 힘을 사용하시지 않았다.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실을 상기해 보라! 그분께서는 세 가지 맹렬한 시험을 인성으로 이기시고 기진맥진하여 쓰러지셨고, 천사들이 나와서 수종 들었던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쓰시고 피흘리기까지 죄와 대항하시고 죄를 이기심으로 우리에게 모본이 되셔서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다(벧전 2:21). 예수님께는 오히려 시험을 당할 때마다 매번 신성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큰 유혹이었다. 그분은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노라”고 하시며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시는 가운데 계명을 지키는 삶, 성품으로 영광을 돌리시는 삶, 승리의 생애를 사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의 부분에서는 하나님이셨으나, 인성의 부분에서는 완전하신 인간,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신 분이셨고, 또 아담이 죄짓기 전의 완전하신 인성이 아닌 범죄 이후의 인성을 쓰시고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 없으신 생애를 사셨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을 붙들므로, 하나님 안에서 자신은 온전히 없어지고 하나님 안에서의 온전한 연합을 보여주셨다. 이 연합은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우리 자신도 온전히 없어지고 하나님 안에 거할 때에 죄를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짐승의 표의 환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사람들이다.

2. 예수님을 믿는 믿음

하나님을 계명을 지키는 남은 무리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예수님을 믿는 특별한 믿음을 가진 것인데, 이 믿음이야말로 죄를 이기게 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매우 특별한 믿음이다.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과 유전적인 연약성을 타고난 인간이 예수님께서 사셨던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특별한 믿음을 통해서인데,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능력을 가지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말씀, 곧 복음에는 창조의 능력이 들어 있어서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실 수 있으며 이루신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로마서 1:16). 무엇을 믿는가? 말씀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는 것,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복음”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두나미스”이고, 영어로 “다이나마이트”라는 뜻으로, 이것은 죄의 파워를 다 깨뜨려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말씀과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가지신 창조의 능력도 받아들이게 되어 죄를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의롭게 되는 일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진정한 믿음을 가질 때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믿음의 의”의 경험을 하게 되고, 또한 이 믿음으로 거룩하게 되는 성화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믿음은 대단한 공식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에, 우리의 죄는 예수님의 계정으로 들어가고 그 대신 우리의 계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들어와 우리가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때에, 죄를 미워하고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시는 것이다. 얼마나 고마우신 하나님이신가! 마지막 증인들은 이 특별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제4부_증인은 독립과 승리를 이룬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증인들은 독특한 백성이다. 무엇이 독특한가? 성격이 강하고 기개가 세서 독특한 것인가? 아니면 음식을 특별하게 먹고 옷을 이상하게 입어서 독특한 것인가? 물론 하나님의 마지막 증인들은 세상과는 다른 독특한 생활방식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독특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들의 믿는바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는 대로 살아가는 삶과 성품이 그들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다.

1) 증인의 홀로 서기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은 세상과 세태를 거슬러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홀로서기를 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단적인 사고방식에 젖어있다. 인간은 어떤 단체나 그룹에 속해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며, 특히 현대 사회와 교육은 사람이 집단사고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서적인 불안감을 느끼도록 유도하고 있다. 집단적인 사고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홀로 서는 법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혼자 생각하거나 결정을 내리는 일이 쉽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남은 자손들은 시대의 사조, 곧 집단적인 사상의 거대한 조류와 사조를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홀로서기를 배운 사람만이 짐승의 표의 강요와 핍박이 올 때에 홀로 설 수 있다. 그래야 모든 세상과 수억의 사람들이 우리의 믿는 바 신앙과 진리가 다른 것이라고 핍박할 때에도 굳은 확신과 신앙 속에서 홀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적그리스도와 바벨론의 비밀을 드러내는 담대한 일을 하기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으며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 대중을 따르지 않고 홀로 설 수 있는 믿음은 너무나 필요한 것이다.

2) 증인의 승리

성경에는 하나님의 증인들의 결정체가 나온다. 그들은 바로 14만 4천인이다.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똑같이 닮았다는 말이다. 즉, 그들의 앞이마, 이성과 판단과 의지를 관장하는 뇌의 전두엽이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 하에 바쳐졌으므로, 생각과 의도와 마음이 정결하며, 하나님의 뜻대로만 행하고 죄를 승리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다. 그런데 십사만 사천은 어느 시대에 탄생하는 사람들인가? 역사의 제일 마지막,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바로 직전인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장 나쁜 유전자를 가진 세대들로서, 죄악이 편만하고 인간의 도모하는 것이 가장 악한 시대에 가장 형편없는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증인들이 된다.

그렇다면 십사만 사천은 한 번도 죄를 지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죄의 악함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고,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슬프게 하고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가를 통렬하게 깨달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시는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매일 성령의 지배 속에 자신의 의지를 굴복하며 사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들, 주님의 은혜와 능력 속에서 습관적으로 죄를 승리하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계명은 지킬 수 있는 것이며, 죄를 승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할 것이다.

죄를 짓기보다는, 하나님께 불명예를 드리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기 원하는 신실한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증인이 될 자격을 갖출 것이며, 그런 사람들의 매일의 소원은 죄를 그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피곤하거나 영적인 낙담 속에 처할 때에 연약하여 쓰러질 때도 있겠지만, 진정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의도적인 죄나 고범죄를 짓지 않을 것이며, 죄를 미워하고 이기는 순간들이 연속될 때에 죄를 승리하는 성품이 꼴지어지고, 그 성품은 늦은 비 성령을 받을 때에 고정될 것이다. 그리고 늦은 비 성령을 받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이 된다. 만일 우리가 만일 매 순간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서 거한다면 죄를 싫어하게 될 것이며, 또 죄지을 시간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애를 사는 것이 소원인 사람이 어떻게 죄를 사랑하겠는가? 죄를 승리하는 것이 마지막 증인들의 특징이 됨을 생각하고 우리의 힘과 열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죄를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자!

마지막 증인인 십사만 사천은 짐승의 표의 환난을 이기고 일곱 재앙의 해를 벗어나 살아서 구속함을 입는 사람들이다. 굶주림과 해의 태우는 재앙과 목마름과 온갖 핍박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끝까지 싸운 십사만 사천이 구속함을 받은 후에 누리는 특권은 놀라운 것이 될 것이다.

십사만 사천은 제사장의 무리이며, 구속받아 하늘에 가서 하나님의 보좌 곁에서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할 찬양대이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의 노래를 부른다. 또한 우주에 다니면서 죄를 승리한 경험과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에 나타난 사랑과 놀라우심과 하나님의 법의 공의로움을 영원히 증거하는 증인으로서 살 것이다. 하늘에는 십사만 사천이 사는 성이 따로 있으며 그들의 이름도 그곳에 쓰여 있다(계 21:12).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가? 하나님의 증인들은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살아야 한다. 이기는 자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될 것이다.


* 마치면서

우리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빛과 진리의 전수자로서, 우리 전에 있던 믿음의 조상들과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증인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같이 인내하며 길이 참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며, 어느 곳에 있든지 굳센 믿음으로 홀로 서서 진리를 옹호하며 가야 합니다. 머지않아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충성된 증인들의 머리에 찬란한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증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은혜와 능력과 힘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을 때 모든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어린양의 성품을 이루고 진리의 빛을 삶 속에서 드러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증인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독자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_스피노자

195-2

마지막 시대 이슈_교황의 미국방문과 짐승의 표

 

근래에 들어 성경 예언이 성취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으며, 민족과 민족이,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전쟁을 벌이고 있다. 또한 약으로도 쉽게 고칠 수 없는 온갖 질병들이 곳곳에서 창궐하고 있으며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다. 이런 일들이 오늘날 너무 즐비하다 보니 현대인의 마음은 말세의 징조들에 너무나 무뎌져 버렸다. 그러나 얼마 전 성경에 예언된 예수님 재림의 징조들을 주목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과거 종교개혁자들이 모두 입을 모아 적그리스도로서 지목한 로마 천주교 교황권의 움직임이 정말 심상치 않음을 입증하는 교황의 회칙이었다.

지난 6월 18일에 공개된 5월 24일로 날짜가 찍힌 교황의 회칙이 쓰이기 며칠 전인 5월 19일 웨스턴 저널리즘 닷컴에는 “미국 건국 문서들은 구시대적이라고 바티칸 고문은 말하며 세계 전략을 밝혔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는 앞으로 9월 교황 프란치스코의 미국 방문에서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 윤곽을 밝혔는데, 기사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바티칸 고위 고문 제프리 삭스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9월에 미국을 방문할 때 독립선언문에 담겨있는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믿는 “미국민이 가진 사상”에 직접 도전할 것이라 밝혔다.…그는 소득 불평등, 담보노동 같은 주제에 있어서 교황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미디어 슈퍼스타다. …

삭스는 미국 예수회 출판물 ‘아메리카’에 미국이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 추구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들이라는 사상의 “노예 사회”라고 썼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의 긴급한 메시지의 중심인 “행복으로 향하는 길은 주로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지 않으며, 선을 행하고, 특별히 공의와 자선에 있다고 선포”하며 “미국인의 사상”에 도전할 것이라 하였다. 삭스는 UN 같은 세계적인 기관이 국가들의 행보를 주관해야 하며 개인의 권리들은 다수의 유익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미국 건국 문서에 담긴 미국민의 권리에 직접 공격하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으로 UN 사무총장 반기문은 5월 12일 로마에서 열린 천주교 카리타스 국제회의에서 기후 변화는 “우리 시대의 명백한 문제”이며 해답은 “인류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과 분리될 수 없고 자연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 있다고 말했다.

7월에는 다양한 국제 세금 제안을 위해 ‘개발을 위한 자금’ 컨퍼런스가 있을 것이고, 기후 변화에 대한 새로운 협정이 완성되기 위해 12월 파리에서 또 다른 컨퍼런스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12월 컨퍼런스 전에 교황이 UN에서 전 세계에게 신세계질서를 향한 운동에 참여할 것을 외칠 것이라고 삭스는 말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뉴욕에 있는 UN에 와서, UN 7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참석하여, 193개국의 정부와 함께 더 낫은 세상을 향한 결속의 첫걸음을 하게 될 것이다. 9월 25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세계 지도자들에게 연설할 것인데 – 아마도 역사상 가장 큰 숫자의 국가 수장들이 모인 자리가 될 것…”이라고 삭스는 말했다. 정부가 도를 넘어선 힘을 발휘하는 상황에 대비해 개인 권리들을 지켜야 하는 필요성을 확고하게 강조하기보다는 복음의 가르침들인 겸손과 사랑 그리고 공의 즉 “아리스토텔레스와 부처 그리고 공자의 가르침 같은” 가르침들이 우리를 “연민을 통해 행복의 길”로 인도할 것이고 “안전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삭스는 썼다. 계획은 제법 간단하다. 종교적 얼굴을 가지고 국제 세금을 통해 세계 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바티칸 고위 고문에 의하면 교황권은 미국 건국이념에 담겨있는 개신교 사상에 기초한 개개인의 자유가 잘못된 것이라고 공격하고 있는데, 개인의 권리들은 다수의 유익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 주장은 교황권이 대놓고 과거 중세기 암흑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정부가 도를 넘어선 힘을 발휘하며 개인의 자유, 특별히 종교의 자유를 다수의 유익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순간, 과거 정치와 종교가 하나였던 교황권이 왕으로서 군림하던 중세 종교 암흑시대로 되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기사는 9월 교황이 UN 총회에서 종교와 정치가 연합된 세계 정부 즉 신세계질서의 필요성을 외칠 것이라고 언급하며 미국 건국이념이 기초하고 있는 개신교 사상을 폐하기 위해 특별히 ‘기후 변화’라는 카드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기사가 나온 지 약 한 달 뒤 교황이 천주교도들만이 아닌 전 세계 사람들을 향해 반포한 ‘지구, 우리 공동의 집’이란 주제를 가진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는 바로 ‘기후 변화’ 문제를 중점에 두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집 지구는 점점 더 엄청난 쓰레기 더미로 변모해가고 있다.”, “지난 200년만큼 인류가 우리 공동의 집에 상처를 입히고 잘못 취급한 적이 없다.”, “무한하게 성장한다는 사상은 경제학자들, 자본가들, 기술 전문가들에게는 너무나 매력적이겠지만 …지구에 물질의 무한 공급이 있다는 거짓말에 기초한 것이며 모든 면에서 이 행성을 메마르게 쥐어짜도록 만들고 있다.”, 등등 수많은 발언을 담은 184쪽의 회칙은 실은 “진정한 세계적인 정치적 권위(교황권이 머리인 신세계질서)를 세워 부를 더 잘 분배해야 한다.”는 굉장히 오래된 교황권의 사상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훨씬 더 무한하게 사악한 계획이 숨겨있다. 제칠일 안식일을 언급한 출애굽기 23장 12절의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를 언급하며 다른 창조물을 인간 중심적 폭정으로 다스리지 말 것을 주장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또한 다음과 같은 중요한 발언들을 하였다.

(71항) “성경의 유전은 분명하게 부흥에는 창조주께서 직접 손으로 자연에 기록하신 리듬을 회복하고 존중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실례를 안식일 법에서 볼 수 있다. 제 칠 일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서 쉬셨고, 이스라엘도 매주 제 칠 일을 안식일로서 구별할 것을 명하셨다. …” (모두 한 날에 쉬어야 부흥이 있을 것이란 뜻인가?)
(205항) “그러나 아직 희망이 있다. 인류는 최악도 가능하지만… 다시금 선을 택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 …” (어떤 선택을 하라는 뜻일까?)
(206항)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건강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이것은 소비자 운동이 특정 제품의 구매 거부를 통해 이루는 것과 같다. …이것은 소비자들이 가져야 하는 위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나타낸다. ‘구매는 경제뿐 아니라 언제나 도덕이 담겨있다.’ 한 마디로 오늘날 ‘환경 파괴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라이프 스타일을 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어떤 압력을 정치계, 경제계, 사회에 가하라고 사람들에게 외치는 것일까?)
(237항)“… 일요일은 유대인의 안식일처럼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와 서로 간의 관계를 치유하는 날이다. 일요일은 부활의 날이며 창조의 첫날이다. … 이것은 인류의 행동이 무가치한 것이 됨으로부터 보호하며, 또한 탐욕과 모든 것을 헤치면서도 사욕을 충족시키도록 부추기는 개인주의로부터 보호한다. …쉼은 우리의 눈으로 더 큰 그림을 보도록 하며 다른 사람의 권리에 대해 민감성을 가지게 한다. … 우리로 하여금 자연과 빈민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흥미롭게도 교황권의 앞으로의 의도를 잘 표현한 회칙이 반포된 당일 미국의 대통령은 백악관 공식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거룩한 아버지 교황 프란치스코의 회칙을 환영한다. 세계 기후 변화를 위해 행동하라는 완전한 도덕적 권위를 가진 분명하고 강력한 주장을 한 교황의 결정을 깊이 존경한다. 그가 말했듯이 우리에게는 우리 자녀들과 그 후손들을 기후 변화의 파괴적인 영향으로부터 보호할 책임이 있다. 나는 미국이 이 일에 있어서 리더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서와 세계에서 과감한 행동을 취하기로 헌신한 것이다. … 9월 교황 프란치스코가 화이트 하우스에 방문할 때 나는 이런 이슈들을 논의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12월 파리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를 위해 우리가 준비할 때,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세계 모든 지도자들이 교황 프란치스코의 우리 공동의 집을 위한 외침에 하나가 되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2015년 6월 18일 오바마 대통령

환경 문제를 통해 도덕을 거론하며 정치가 종교와 연합하려는 지금 우리는 문자 그대로 온 세상이 1798년에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계시록 13장의 첫 번째 짐승인 교황권에게 온 세상이 경배하도록 하는 일에 계시록 13장의 두 번째 짐승인 미국이 리더로서 앞장서는 예언의 성취를 보고 있다.

계 13:12 “저(미국)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교황권)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현재 과거 종교개혁자들이 적그리스도로서 지목한 교황권은 환경 문제에 도덕적 차원을 더하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전 세계적인 도덕적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앞으로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는 “교황권과 어떤 입장을 가지는가?”가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며, 오바마의 임기가 끝나면 교황권이 주도하는 혁명은 오히려 더 가속화되어 온 세상에게 교황권을 다시금 도덕적 리더로서 따르도록 강요할 “짐승의 표”의 환란으로 이어질 것으로 현시점에서는 보인다. 지금은 정말 깨어있어 환란을 통과하는 성도의 인내와 믿음을 준비해야 하는 때이다.

 

진리 탐구_사도 베드로의 "영적 이스라엘" 탄생 선언 3

 

“오직 너희는 ①택하신 족속이요 ②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③거룩한 나라요 그의 ④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가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벧전 2:9)

 

③ 거룩한 나라 :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백성
세 번째는 거룩한 나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살 자격이 있는 거룩한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

④ 하나님의 백성 : 새로운 선민 영적 이스라엘 선언
네 번째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 기록되었는데 이 말씀은 이제 구약의 이스라엘 시대는 끝났음을 알리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또한 바울 사도께서도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과 예수님을 받아들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이스라엘 나라 안(內)사람이 되었다고 에베소 교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1-13)

그리스도인 = 거룩한 나라 백성 = 이스라엘 나라 안(內) 사람

그러나 우리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다”“교회를 다닌다”라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믿음의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아닌 것은 여러분들께서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백성”,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성화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 “거듭남으로 변화함을 받은 사람”들이 참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구약시대 유대인들도 순종치 않고 열매를 맺지 않았을 때 버림을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으며 그 교훈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유대인들도 버림받았는데 하물며 우리는 얼마나 더 신실한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께서는 신약시대에 시작한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기우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롬 11:20)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1장 4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무슨 열매를 말씀하셨습니까? 이것은 바로 성령의 열매와 의의 열매로서 주의 말씀을 따라 삶을 살아가는 순종의 열매를 말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에 순복하며, 주님과 늘 동행하고, 마음속에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 그리스도의 의의 옷,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러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참다운 그리스도인, 참 이스라엘, 하나님의 참 교회로 부르심을 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 제사장 = 구별된 무리 = 거룩한 나라 백성 = 이스라엘 나라 안(內)사람

 

채식요리_도토리 묵밥

195-1

Healing Story_물, 건강의 시작

 

텃밭을 가꾼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 있고, 반대로 심어만 놓아도 잘 자라는 작물이 있습니다. 그중 고구마와 옥수수는 잡초를 뽑아주는 것 외에는 별로 손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뭄이 심해 흙먼지가 풀풀 날리던 올해는 고구마와 옥수수에도 처음으로 아침, 저녁 물을 줘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옥수수 잎이 뾰족이 말려 들어가고, 고구마 모종이 노랗게 시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가뭄으로 말라가는 논밭을 보면서 우리 인체의 건강에도 물은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피와 탄산음료로 물을 대신하는 현대인들이 과연 깨끗한 생수를 얼마나 마시며 하루를 지낼까요? 지금 물 한 잔과 함께 이 글을 읽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물>
인체의 70%는 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뇌 75%, 심장 75%, 폐 86%, 간 86%, 신장 83%, 근육 75%, 혈액 83%가 수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체내에 물이 부족하면 근육이 굳어지고 뇌 기능이 저하되며, 뼈가 약해지고 독소배출이 잘되지 않아서 여러 가지 질병이 생기게 됩니다. 몸에서 수분이 1~2%만 빠져나가도 심한 갈증과 고통이 느껴지고, 5%가 빠져나가면 혼수상태가 오며 12%를 잃게 되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어떻게 물을 마셔야 할까요?>
*호흡과 땀, 대소변으로 배출되는 수분의 양을 생각해 볼 때에 성인의 경우 하루 6-8컵이 좋습니다. (1컵=200cc)
*너무 차가운 물이나 뜨거운 물보다는 체온과 비슷한 미온수가 가장 좋습니다.
*아침 식사 30분-1시간 전에 2컵을 마십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2컵의 물을 한 번에 다 마시지 않고 조금씩 네 번에 걸쳐서 마시도록 합니다.
  (한 번에 많은 물을 마시면 갑자기 위가 확장되어 위하수가 있는 분들에게 특히 좋지 않습니다. 또한 혈액이나 체액이 희석되므로 뇌에 있는 시상하체에서는 수분 조절을 위해 수분을 빨리 배출시키게 됩니다.)
*식간(식후 2시간)에 2-3컵을 마십니다. 역시 천천히 한 모금씩 마시도록 합니다.
*취침 1시간 전까지는 물 마시는 일을 끝내도록 합니다.
  (대개 수분 섭취 후 1시간이 지나면 방광을 비우게 됩니다. 따라서 숙면을 위하여 취침 1시간 전까지는 물 마시는 일을 끝내는 것이 좋습니다.)
*식사 중에는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과 함께 물을 마시면 소화효소가 희석되며, 물을 먼저 흡수한 뒤 소화를 시작하기 때문에 소화력을 감소시킵니다.​
 
<물의 효능>
*체온 조절 : 우리 몸의 정상온도를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열 생산과 열 방출의 균형이 잘 맞아야 하는데 물은 그것을 잘 조절해 줍니다.
*혈액 순환 : 혈액을 희석시켜서 그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고 백혈구, 적혈구, 세포 등의 활동이 좋아지게 해줍니다. 또한 혈액순환이 좋아지므로 냉증 예방에도 좋습니다.
*면역력 향상 : 체내 감기 바이러스와 분비물 등을 희석하고, 땀과 소변 등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시켜 줍니다.
*정화 작용 : 모든 장기, 조직, 세포를 정화시킵니다. 특별히 근육조직 사이사이에 껴있는 죽은 광물질과 노폐물을 다 용해시켜서 내보내는 작용을 합니다.
*독소 제거, 노폐물 운반 : 탄산가스, 암모니아, 전해질 등을 운반하여 폐, 피부, 신장을 통해 체외로 배출합니다.
*배변 활동과 변비 해소 : 물이 장을 자극해서 배변 활동을 촉진시켜 주고, 장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주므로 변비가 있으신 분들은 아침마다 정기적으로 물을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발암물질 희석 : 체내 수분을 순환시키면서 노폐물을 몸 밖으로 보낼 뿐만 아니라 몸속 발암물질을 희석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숙취 해소 : 물을 많이 마시면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소변으로 배출돼 숙취해소에 도움이 됩니다.
*각종 영양소를 용해, 운반, 배출하는 일을 합니다.
*신경을 안정시키고 튼튼하게 해줍니다.

<목욕과 샤워> 
1. 더운물 목욕
너무 뜨거운 물에서 오랫동안 목욕을 하면 반대로 땀이 너무 많이 나서 탈수 증세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40도 이하의 온도에서 15분 정도 목욕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혈액순환 : 신진대사가 활성화 되고 혈액순환이 촉진됩니다. 따라서 혈액순환이 잘 안 되어서 손발이 차갑거나 저린 증상이 있는 경우, 따뜻한 물에 입욕하는 것이 도움됩니다. 목욕이 힘들다면 족욕도 좋습니다. 
*노폐물청소 : 몸에서 배출된 노폐물과 오염물질들을 깨끗이 청소하는 작용을 합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집에 들어오면 온몸에 땀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달라붙어 있는데 이걸 말끔하게 씻어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름철에는 땀을 많이 흘리게 되는데, 땀을 씻어내지 않으면 재흡수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숙면 :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며 마음을 진정시켜 주므로 숙면에 도움이 됩니다.
*수중운동 : 물에는 부력이 있어서 관절의 부담을 줄여줍니다. 무릎이나 허리에 통증이 있는 분들에게 수중 운동을 권해 드립니다.
*그 외 : 호흡기 질환, 면역력 증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됩니다.
2. 찬물 목욕
온몸을 찬물에 1-2분간 담그는 방법과 끼얹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20℃, 겨울에는 12∼13℃의 수온이 적합하며 발부터 시작하여 천천히 심부에 물이 닿도록 합니다. 특히 날씨가 추울 때는 목욕 전에 준비운동으로 몸에 열을 내주어야 하며, 목욕 후에는 옷이나 마사지, 가벼운 활동 등으로 몸에 온기가 흐르도록 해줍니다. 건강과 상황을 잘 살피어서 해야 하며 배가 고프거나 부를 때, 심혈관 질환, 고혈압, 동맥경화가 있는 분들은 하지 않습니다.
*심혈관기능 강화 : 찬물에 자극을 받으면 피부의 혈관이 수축되므로 혈액은 심부로 급격히 모이게 됩니다. 이로 인해 뇌나 복부의 내장은 충혈되고 혈압이 상승되며 피부에 소름이 돋는 등 열을 발생시키기 위한 1차 반응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곧이어 2차 반응으로 수축한 피부의 혈관이 확장되어 혈액순환이 좋아지며 피부가 붉어집니다. 그래서 찬물 목욕을 혈관 체조라고 부르며 고혈압, 동맥경화 예방에 좋습니다.
*감기 예방 : 찬물이 닿으면 근육은 신속하게 긴장하여 수축하게 됩니다. 또한 체내 온도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강화되고 면역력도 증진됩니다.
*건강한 피부 : 피부와 피하조직에 영양을 공급해 주며 건강한 혈색과 탄력을 유지해 줍니다.
*정신력 강화
3. 아침샤워
아침에는 간단한 샤워를 하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시간이 없는 경우, 젖은 타월로 온몸을 닦은 후, 마른 타월로 닦아 줍니다. 그러면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정신이 개운하고 활력이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