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권두언

 

성경에는 마지막 남은 무리의 특징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예수 믿음은 신앙 생애에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증인으로 서야 할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믿는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능력이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여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것을 의탁하는 전적인 신뢰이며, 동시에 굴복을 의미합니다. 만일 우리가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께 굴복하고 순종하게 될 것이며, 그래서 모든 것을 바치고 굴복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경험을 통해 더 큰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계속 자라야 합니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일수록 점점 자라나는 성숙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순종을 낳습니다. 그런데 계속적인 굴복 없이는 계속적인 순종이 불가능하며, 계속적인 믿음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큰 믿음을 가진 용사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 큰 믿음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완전한 확신이며, 그 확신 속에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를 통해 믿음에 대해서 확실하게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강 병국 목사

Love Letter_내가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갔으면

 

 

강영은                                                                                                               

 

때때로 나는 구레네 시몬이고 싶습니다.
어깨 위에 지워진 세상 죄짐 너무 무거워
휘청이다 쓰러지신 당신 어깨 위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구레네 시몬이었다면 좋겠습니다.


옥에도 함께 가겠다던 베드로도 떠나고
어디든지 따르겠다던 제자들도 도망가고 없던
외롭고 슬펐던 그 날,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그 길에
나도 있었다면 좋았겠습니다.


어설픈 걸음, 머뭇거리는 모습이어도 좋습니다.
십자가 지고 가시는 당신 곁에 바짝 따라가
당신의 얼굴에 흐르는 피땀 닦아드리고
내 짐 때문에 더 무거워진 그 십자가를
성큼 건네받아 내가 졌다면 좋았겠습니다.


그 날 동정의 눈빛 던지다 얼떨결에 지게 된 십자가가
창피하고 부끄러웠지만,
후에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된 구레네 시몬은
몇 번이고 더 그의 어깨를 빌려드리고 싶었겠지요.

때때로 나는 내가 구레네 시몬이었으면 합니다.
그 길에 동행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그 아름다운 십자가를 지고 갔던 시몬이었으면…
자기 죄짐을 지고 가는 줄도 모르고 퍼붓는
무리의 조소와 멸시의 말이
당신의 외로운 어깨 위에 쌓이고
점점 더 무겁게 내리누르는 죄짐이
찢어져 피가 흐르던 당신의 어깨를 아프게 할 때
십자가를 건네받는 시몬을 보시고
낯선 친절에 고마워하며 던지시던 당신의 미소를
내가 받아보았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당신의 고귀한 보배 피가 옷자락에 튀고
당신의 소중한 땀방울이 손바닥에 묻었던 그 날,
저 죄인의 몫을 왜 대신 져야하나 의문하던 그는
말 없는 수난자,
털 깎는 자 앞의 양처럼
온유하고 조용한 당신을 보고 놀랐지요.
채찍으로 맞고 가시관을 써도
손에 못 박히고 옆구리를 찔려도
한마디 말도 없던 당신을 보고…

놀라던 그의 귀에 들린 당신의 기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는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졌던 그 십자가는
원래 그가 졌어야 할 십자가였다는 것을…

때때로 내가 구레네 시몬이었다면 하고 바라봅니다.
그에게만 주어졌던,
단 한번밖에 없던 행운의 기회,
메시아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행운의 기회를 가졌던 사람…


때때로 내가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
구레네 시몬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1부_믿음이란 무엇인가?

 

총제목: 말씀에 들어있는 참믿음

성경은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믿음이란 말을 많이 하고 또 많이 듣고 삽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믿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구원하는 믿음(엡 2:8), 의를 가져오는 믿음(롬 3:22, 5:1),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갈 5:6),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는 믿음(엡 3:17), 세상을 이기는 믿음(요일 5:4), 이런 믿음들은 무슨 믿음입니까?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진정한 믿음에 대해 연구해봅니다. 본 연구를 통해 믿음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믿음을 소유할 수 있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확실하게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실 -

제1부: 믿음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기도할 때에 믿음을 달라고 기도한다. ‘믿어야 한다’,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할 때에 그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믿음이 무엇인지를 지식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믿음을 강조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성경은 믿음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연구해 보면 확실하게 믿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단지 믿음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여 우리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지를 연구해보자.

1) 진짜 믿음을 보인 사람

먼저 예수님께 칭찬을 받은, 믿음을 가졌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보자. 한번은 로마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 8:6-10).
이 이야기를 보면, 여기에서 예수께서 믿음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이 있다. 예수님은 백부장을 보시고 이스라엘 어떤 사람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믿음을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믿음의 주”(히 12:2) 되신 예수께서 백부장이 보여준 것을 믿음이라고 하셨다면 그것은 아주 확실한 믿음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기에서 믿음은 어디에 있었는가? 믿음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백부장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했다. 그는 주님께서 그 일을 해 주시기를 원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백부장은 그것을 막으며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주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백부장은 무엇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는가? "다만 말씀으로만" 하셔도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그의 하인을 치료하기 위해 오직 무엇에만 의존했는가? 오직 “말씀”에만 의존했다. 그때 예수께서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믿음의 정의란 무엇인가?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그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 칭찬받은 백부장의 믿음이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실 것을 믿는 것이다. 말씀 속에 그것을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그 말씀이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대는 이러한 말씀의 능력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2) 말씀의 능력을 믿다

다음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그 말씀이 명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시 33:6~9).
하나님께서 만물을 무엇으로 창조하셨는가? 말씀으로 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는 없었지만 말씀하시니 이루었다. 단지 말씀만 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이루어지게 했는가? “오직 말씀”이 그것을 이룬 것이다.

창조 전에는 흑암이 모든 깊음 위에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빛이 있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자, 빛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 빛을 창조한 것이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빛이)비취"었다(시 119:130) . "하나님이 가라사대 궁창이 있어 … 그대로 되니라." 무엇이 궁창을 있게 하였는가? 말씀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에 말씀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자체가 이것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의 하신 말씀 자체가 만물을 창조하였다. 구속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오로지 말씀으로 병자를 치료하셨고, 마귀를 쫓아내셨고, 태풍을 잔잔케 하셨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셨으며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죄를 용서하셨다. 이 모든 일에서도 역시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언제나 창조주이시며 언제나 말씀으로만 모든 일을 하신다. 그리고 언제나 그의 말씀으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특성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하신 일을 스스로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 근거하면,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말씀 그 자체가 그 말씀 한 일을 이룰 것을 기대하는 것이며, 말씀이 그 말씀 한 것을 이루게 하려고 그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에는 어떤 믿음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진리에서도 말해주고 있다(롬 10:17).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믿음을 알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의 특성과 능력에 대해 알아보았다. 믿음을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 한 일을 이루도록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고 그 말씀 자체만을 의존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스스로 그 말씀 하는 일을 이룰 것을 기대하고 그 말씀 하는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오직 그 말씀만 의존하는 것이 믿음이다.

3) 말씀과 창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에서 믿음은 창조와 관계가 있음을 알려 준다. 창조의 능력을 믿지 못하면 믿음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창조의 능력이 들어 있다. 그분의 말씀은 말씀하는 일의 실상을 창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말씀 자체가 그 말씀 하는 바를 이룰 것을 기대하고 그 말씀 하는 바를 이루게 하려고 오직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들을 창조하여 존재하도록 하고 볼 수 있도록 한다.

그렇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 일을 하도록 기대하고, 그 일을 이루게 하려고 다만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히 11:3). 믿음을 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창조의 능력이 있으며 그러므로 그 말씀 하신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그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고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며 믿는다.

사람은 말을 할 수는 있으나 그의 말에는 말한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만일 그가 말한 것을 이루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말을 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일을 해야 하며, 그의 말을 실행하기 위해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 말씀 하신 일이 실재로 존재한다. 단순히 그가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과의 차이가 있다. 주님은 사람과 같이 하신 말씀 외에 다른 어떤 일을 행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의 말씀에 어떤 능력을 더하여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다. 그는 "말씀"만을 하실 뿐이며 그러면 그 일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행사하는 우리의 속에 역사하고 있다.

이 사실은 역시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분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실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시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 하신 말씀 속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어서 다만 말씀만 하면 말씀하신 그대로 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시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사람은 말을 할 수는 있으나 실제는 그 말과 같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말에는 그 말대로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분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 왜냐하면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렇게 된다.

하나님께서 미래에 성취될 수백 년 간 예언하신 것들을 연구해보면, 우리는 그분께서 어떤 때에 해당하는 말씀을 하셨을 때에 그때가 실제로 이르러 오면 그 말씀이 성취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말씀이 그때에 성취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때를 위하여 말씀하셨기 때문이며, 그 말씀 속에 창조의 능력이 있어서 그때에 말씀하신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하다. 그 안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으며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 성취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이러한 말씀으로 신뢰하고 의존한다면 그것이 곧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제2부_우리 믿음의 활용

 

성경은 우리가 믿음을 가져야 할 것에 대해서 보다는 믿음을 길러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하고 있다. 아무도 이미 받은 믿음을 기르지 않고서는 그 받은 믿음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음이 더욱 자라고"라고 말씀한다(살후1:3).
다시 반복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스스로 그 말씀 하는 것을 이룰 것을 기대하고 그 말씀 하신 것을 이루게 하려고 오직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을 연습하고 그런 믿음을 활용하는 것이 곧 믿음을 기르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선물, 믿음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엡 2:8) 이 선물을 모든 사람에게 주신다는 말씀이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롬 12:3).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이 믿음의 분량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자본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 자본을 가지고 증가시키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이 자본은 사용하는 만큼 늘어나며 활용하기만 하면 매우 잘 자라나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롬 10:9). 이처럼 믿음 곧 믿음의 말씀이 바로 모든 사람에게 매우 가까이 있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에 그들은 사단에게 굴복하여 사단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는 죄로 기우는 성향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인간과 사단 사이에 연합과 평화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 이 연합을 부수고 이 평화를 깨뜨리셨다. 주님은 그의 말씀으로 이 일을 하시고 사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창 3:15). 하나님만이 여자의 후손과 사단의 후손 사이에 혐오감을 넣어줄 수 있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던들 인간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단과 연합하였을 것이다. 타락한 천사들과 타락한 인간 사이에는 본래부터 적의가 없었다. 둘 다 배도를 통해서 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악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항상 악이 선을 대적하며 연합을 이룬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 사단을 혐오하는 능력이 없어진다. 하나님의 개심시키는 능력이 날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역사하지 않는다면 신앙심이 없어지고 오히려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유인이 되는 것보다 사단의 포로가 되기를 선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죄와 사단에 대한 혐오감을 넣어 주신다. 그런데 이 일은 말씀의 능력이 마음에 역사할 때에만,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할 때에만 일어난다.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으로 각 사람의 마음 속에 넣어주시는 사단에 대한 혐오감과 악에 대한 증오심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을 갈망하게 한다. 이와 같이 각 사람의 마음 속에 사단에 대한 적의와 악에 대한 증오심을 심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주신 믿음의 선물이다. 이것은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이며 모든 사람들의 입과 마음 속에 있는 "믿음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으며 그 믿음을 키워나가는 것은 각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하나님이 다른 모든 세상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신 그 믿음을 행사하자. 이 믿음을 행사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복음의 과학이다.

2)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의 의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른다. 성경에 아브라함에 대하여 기록된 것은 믿음이 무엇이며, 믿음은 그 믿음을 가진 자에게 무엇을 행하는지를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무엇을 어떻게 믿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까? 아브라함은 80살이 넘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늙었으나 아이가 없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다(창 15:5).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 15:6).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에 의지하여 그 말씀 하신 일을 기대하였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러나 사라는 그의 기대를 하나님의 말씀에만 두지 않았다. 아이를 낳기 위하여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창 16:2). 그 순간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신뢰하는 믿음에서 빗나가기 시작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끝까지 바라고 의존하는 대신 사라의 말을 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아이가 태어나기는 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사라에게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서 생긴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도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후사를 삼으시지 않았다. 그런 후에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시고, 약속하신 후손을 통하여 그를 "열국의 아비"가 되도록 할 것이며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후손과 언약을 세우는 일에 관하여 계속 말씀하셨다. 또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바꾸셨다. 왜냐하면 사래도 약속하신 후손을 통하여 "열국의 어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영케 할찌라. 그가 열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창 17:15-21).

이 모든 일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사라는 약속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데에 있어서 오직 그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사라는 그의 계략은 단지 불화와 고통만을 가져오고 약속의 성취를 지연시킬 뿐이라는 것을 배웠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들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하게 붙잡지 못했으며 그러므로 이제 그 모든 계략을 버리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지금 아브라함은 아흔 아홉 살이 되었다. 그러므로 어쨌든 이것은 말씀의 성취가 어느 때보다도 더 요원한 것같이 보였으나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하고 보다 큰 믿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그대로 믿는 것 외에는 다른 무엇을 의존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그 말씀 하신 바를 이루시도록 완전히 그 말씀에 매달렸었다. 그들 자신들의 모든 행위와 책략과 계획과 노력을 버리고 그 말씀 하신 일을 이루시게 하려고 오직 믿음에 의지하고 오직 말씀에 매달리고 완전히 그 말씀에만 의존하였다. 드디어 그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여 약속해주신 자손이 태어났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다시 말하면 인간은 무력하지만 말씀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므로 기적이 일어났다.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히 11:11). "그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히 11: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성취되었다. 이것은 참된 믿음을 가르치는 성경의 교훈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아브라함에게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로 여기셨다. 그러나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3-25).

자신들의 모든 행위와 계획과 노력을 거부하고 인간적으로 완전히 무력한 가운데서 그 말씀 하신 일을 이루도록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사람들은 모두 믿음에 속한 자들이며 믿음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의로 복을 받을 자들이다. 믿음을 행사하는 법을 아는 것 이것이 복음의 과학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의 과학은 과학 중의 과학이다.

3) 시험을 통해 자라는 믿음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스마엘을 낳게 하였던 모든 불신의 계획을 완전히 청산하고, 오직 믿음 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했을 때에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 태어났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노선과 참된 믿음에서 벗어났었지만, 이제 오직 말씀과 참된 믿음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믿음은 시험을 통과하고 이겨야 비로소 의롭게 되는 믿음이라고 여겨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믿음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을통과하는 것은 믿음을 자라게 한다. 이제 이삭을 얻었으나 이삭까지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시험이 다가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아브라함은 오직 말씀만을 신뢰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삭을 받았다. 이삭만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약속하신 자손이었다. 이삭이 태어난 후에 하나님은 그 말씀을 확증하시면서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다(창 21:12). 그런데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이르러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할 것이며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고 하신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는데 지금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니 어떻게 된 일인가?
만일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면 그를 통해서 모든 민족을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은 어떻게 될 것인가?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무수하게 많을 것이라는 약속은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아브라함은 전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기로 하고 이스마엘을 내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정도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고 이삭을 버려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나 다름없이 느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면서 이삭을 드렸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이 말씀과 조화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이 말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그가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였다. 그는 그 말씀을 믿었고 그 말씀을 따랐으며 이런 말씀의 조화나 설명이 꼭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을 믿었다. 아브라함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리라! 전에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지만 내가 행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말씀으로만 돌아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약속의 자손 이삭을 주셨다. 그런데 이제 약속의 자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겠다! 하나님이 처음에 기적으로 이삭을 주셨으니 기적으로 그를 다시 살려주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를 번제로 바칠 때에 그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 그를 다시 돌려주실 수 있는 기적은 오직 그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는 기적인데,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하실 수 있으시므로 그렇게 행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할 것이며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자손이 될 것이라고 내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삭을 다시 살리는 일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행하신 일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나의 몸과 사라의 몸이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삭을 낳을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삭을 다시 살리실 수 있으시므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으로 믿고 여호와를 찬양하겠다!”

이제 그의 마음은 정하여졌다. 아브라함은 일어나서 종들과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을 향하여 사흘 길을 갔다. 사흘째 되던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4, 5). 누가 갈 것인가? "내가 아이와 함께 … 가서" 그러면 누가 다시 돌아올 것인가? "내가 아이와 함께 …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간 것처럼 꼭 그와 함께 돌아올 것을 기대하였다. 얼마나 큰 믿음인가!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고 그 다음에 이삭이 잿더미에서 살아나 함께 돌아올 것을 기대하였다. 왜냐하면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자손이라 칭하리라 또는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약 2:23). 더 나아가서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고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롬 4:23~24).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가져다주는 믿음이다. 이것이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며 이것이 복음의 과학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

제3부_믿음으로 얻는 의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성경은 사람이 의롭게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이렇게제시하고 있다. 먼저 자신이 경건치 아니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음에 하나님이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면 바로 하나님의 의로 의롭게 된다. 이상한 공식이 아닌가? 함께 연구해 보자.

1) 믿음을 의로 여기심

여기서 "경건치 아니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닮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선하심, 품성)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고 있다(롬 3:24).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닮지 않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롬 3:9-18). 그러나 이 세상에는 경건한 사람이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을 의롭다고 해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 편에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온전히 값없이 그리고 확실하게 의롭게 만들어 주시고 의와 구원을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구원을 완전히 이루기 위하여 하여야 할 일은 오직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경건치 않은 우리 개개인을 의롭다고 해 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 22).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경건하지 않은 것을 알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신다. 그리하여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갖게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만일 하나님께서 의롭지 않은 사람을 의롭다고 해주시면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되신다. 하나님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경건하게 해주실 때에 진짜 경건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신다. 어떻게 거짓말하실 수 없고 불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그냥 의롭다고 칭해 주실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는 자들을 진짜 의롭게 해주신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있는 창조 능력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실 때, 의의 옷을 입혀주실 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의롭게 창조해주신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한 다윗의 기도처럼, 우리 마음속이 정결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새로운 마음을 창조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다.

사람이 자신 안에서 선함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미 선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곳에서 받을 필요가 없다. 만일 내가 경건하다면 나는 의로우므로 의롭게 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경건과 불경건 사이에는 중간 지대가 없다. 그러나 자신이 대단히 경건치 못하여 의롭다 함을 발견할 어떤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할 수 없을 때에 바로 거기에서 믿음이 필요하며, 믿음이 생긴다. 믿음이 들어올 수 있는 지점은 오직 그곳뿐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의존하거나 자신을 의존할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한 믿음이 있을 수 없다. 즉 그런 상태에 있는 한 믿음이 있을 자리가 없다. 자신을 의지할 만한 모든 근거가 없어지고 또 없어진 것을 인정할 때에, 눈에 보이는 모든 일이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을 때에, 바로 그때에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면서 오직 하나님의 약속 곧 말씀에 자신을 맡길 때에 믿음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 때에 경건치 않은 자를 경건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난다.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 세우셨으니 …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 말씀들은 영원한 진리이다. (롬 4:5; 3:22, 25) 이것이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믿음을 행사하고 있는가? 믿음을 행사하는 법을 깨닫는 것, 이것이 복음의 과학이다.

2) 하나님을 믿는 것과 용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아주 분명한 길과 완전한 칭의와 확실한 평강을 이루어 놓으셨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만을 의지하여 이 모든 것을 받기만 하라고 요청하신다. 그런데 왜 모든 사람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려고 하지 아니하는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롬 1:17).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의지하여 그 말씀에서 말하는 일을 그 말씀이 이루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말씀이 그 말씀 하는 바를 이루기에 충분하도록, 사람들이 그 말씀을 완전히 믿을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말씀 속에 의가 있는가? 그렇다. 그 의가 바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목적이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었다(롬 3:2-5.)
하나님께는 믿음으로 받을 수 있는 의가 있다. "용서"라는 말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배운다.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용서)하시며" ,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이다(요일 1:9; 시 103:4).
"용서"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용서"라는 말의 뜻은 "대신 준다"는 말이다. 주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대신 준다는 의미이다. 주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죄를 대신하여 무엇을 주는 것을 말한다. 죄 대신에 무엇을 주시는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를 주신다. 그러므로 주께서 죄를 용서하실 때에 죄 대신에 의를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죄의 용서를 구하는 모든 사람은 바로 죄 대신에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든 사람은 용서를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마 7:8). 우리는 주님께 여러 번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죄 대신에 무엇을 주시기를 구한 것이다. 무엇을 구한 것인가? 죄 대신에 주시는 유일한 것, 곧 의를 주시기를 구한 것이다.
우리가 구할 때에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 주님께서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는 우리를 용서하신다.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신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가 용서를 구할 때에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그분의 의를 주신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거저 주시는 의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여야 하겠는가?
참된 믿음이란, 우리가 용서를 구할 때에 우리의 죄 대신에 의를 주신다는 것을 믿고, 그 의를 하나님의 선물로 감사하게 받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자!

제4부_믿음으로 산다는 것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유일한 수단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에는 어떤 믿음도 있을 수 없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주심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준비해 두신 것들을 구하고, 그 말씀을 기초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구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믿음은 확실하고 강하게 될 것이며 날마다 능력이 더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이 기도한 것처럼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기도한다(눅 17:5).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므로 우리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서 말하는 일이 이루어지도록 주님께 기도할 뿐 아니라, 그 말씀을 완전히 믿고 그것을 이미 받은 것을 감사해야 한다. 그럴 때에 믿음이 더해진다. 이것이 믿음을 행사하는 방법이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행사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에는 어떤 믿음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1)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의인은 어떤 사람인가? 그들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 우리가 모두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믿음에 속한 자들이 믿음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들이며이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의인이다. 그런데 믿음은 말씀에서 말하는 것을, 그 말씀이 이루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의존하는 것이며, 이 사실을 믿는 것이다.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이 … 나의 뜻을 이루며"(사 55:11).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룬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의존하여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해주신다고 하셨으니 그냥 그 사실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의롭게 되는 방법이다. 이것이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이다.

또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하므로 의롭게 될 뿐만 아니라,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의로운 사람은 그가 의롭게 되는 것과 똑같이 믿음으로 산다. 우리가 의롭게 된 후에는 의롭게 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면서 대신 의를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의지하여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 의미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에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것은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표현이었다. 우리는 매일 우리를 의롭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의 능력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한다. 나를 의롭게 창조하시며 의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드실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믿으면서 그것을 구하며 살아야 한다. 태초에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매일 기억하자. 하나님의 말씀이 만물의 시작이요 생명이다. 왜냐하면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기 때문이다.

2) 성령을 좇아 행하라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이 말씀은 정말 복된 약속이다!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사는 일은 모든 인간들에게 너무나 보편화 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삶을 경험한다. 그들은 원하는 선을 행하기를 갈망하나 미워하는 죄악을 행할 뿐이며, 선을 행할 마음을 가지고는 있으나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그들의 지체 속에 다른 법이 있어서 그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혀 오는 것을 보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외친다(롬 7:14-24).
그런데 여기에 구원의 길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길은 바로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받고 성령 안에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성령을 좇아 행한다는 말이 무엇인가? 말씀의 능력을 믿고 그것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따른다는 것이다. 매 순간 말씀의 능력 속에서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으며 산다는 것이다. 육체의 욕심이 역사하는 것들을 한번 열거해 보자.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부절제, 방탕하며 먹고 마시는 것 등등이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할 때에 이러한 일을 하나도 행하지 않고 오히려 승리할 수 있다고 말씀은 말한다. 이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의 능력이다. 창조의 능력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이 가능하다고 약속하셨다. 믿음으로 이 사실을 믿지 않겠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받아야 한다. 믿음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 된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창조의 능력이 역사하여 성령을 좇아 행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 속에서 참된 믿음은 점점 더 강하게 자라날 것이다.


** 마치면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사실을 통해 주님의 말씀은 능력이신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이라고 말씀을 하실 때에 그 말씀 자체에 바로 “그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말씀이 표현될 때에 바로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존재합니다. 그분이 어떤 것을 지명하여 부르거나 이룰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 그것은 말씀과 동시에 곧바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곧 능력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사용하셨던 그 똑같은 능력의 말씀이 지금의 우리를 매일 매일 새로운 생명으로 재창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그리스도는 거룩한 말씀이십니다. 그분께서는 그가 발하신 말씀 가운데 계십니다. 만물이 그의 안에 거한다고 하는 것은 세상이 그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유지된다는 것인데, 이 말씀은 바로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말씀 되신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인간들의 마음 속에 거하시며,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말씀 되신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받아들이면 그분의 능력, 말씀의 능력이 우리를 죄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참된 믿음이란 주님의 말씀이야말로 우주 안에서 가장 확실한 것이며, 모든 것들이 그것에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일지라도, 그것을 바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가운데 온 영혼이 쉼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참된 믿음이란 능력 있는 말씀 안에서 그 말씀이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을 믿고 그 안에서 쉼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말씀 속에 들어있는 창조의 능력을 얼마나 경험하며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실 뿐 아니라, 모든 죄와 문제를 이기도록 넉넉한 힘과 능력을 주실 것을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또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말씀으로 새로운 마음을 창조해 주실 것을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그런 참 믿음은 인간의 힘으로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말씀의 능력과 그 말씀이 내 속에서 이룰 역사를 굳게 믿음으로, 실제 그 일이 삶 속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말씀이 가르치는 참된 믿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믿음을 소유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계동향

 

1. 일본, 에콰도르 강진, ‘불의 고리’ 지진 지속

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지난 4월 14일 리히터 규모 6.5 강진이 발생한 후, 이틀 뒤인 16일에는 규모 7.3의 더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이어진 지진들로 약 50명이 사망했고 다친 사람도 약 1600명을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시설 피해액은 최대 4조 6000억 엔(약 49조 9800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에콰도르에서도 지난 4 16일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해 에콰도르의 페데르날레스 시에 있는 건물 80%가 무너지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약 660명 이상이며 피난민이 2만 명을 넘어서는 등 수많은 에콰도르 국민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의 고리에 속한 일본과 에콰도르에서 연이어 지진이 발생하자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불의 고리 안에 또 다른 대형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2. 캐나다 앨버타 주 초대형 산불, 주민 수만 명 대피

캐나다 앨버타 주 산림지대에서 지난 5월 1일 시작된 불은 고온 건조한 날씨와 강풍으로 역대 최악의 화재로 번졌다. 일주일 만에 1000km2 가 넘는 지역을 태웠는데 이는 홍콩 전체 면적과 비슷한 규모다. 빠르게 확산되는 산불로 주택 1600채가 불타면서 약 9만명에 육박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번 산불로 캐나다의 최대 석유도시, 포트맥머레이의 석유회사들이 조업을 중단하여 산유량이 4분의 1가량 급감했다. 캐나다 산불로 원유 재고가 감소했을 것이란 전망으로 지난 5 25일 국제유가가 오르는 등 캐나다 산불은 국제유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3. 하버드대 '인조 인간게놈' 비밀회의 "10년 내 전체 유전체 합성"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하버드대가 지난 9일 보스턴에 150명의 과학자를 극비리에 소집해 인간 DNA 전체를 합성하는 ‘제 2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논의했다”고 지난 5월 13일 보도했다. ‘제 2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2)’는 DNA 전체를 인공적으로 합성하여 생물학적 부모 없이 인간을 창조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한 사람은 조지 처치(62)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로 몇 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멸종한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 충분한 유전 정보를 얻어냈고, 언젠가는 복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의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지난 3 DNA 합성으로 53 1000개의 염기쌍을 가진 일종의 인공 미생물을 만드는데 성공했다30억 개의 DNA 염기쌍을 가진 인간은 미생물과는 달리 현재 기술로는 어렵다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연구비만 충분하다면 10년이 아니라 5년안에도 인간 DNA 전체를 합성할 수 있다고 내다보는 과학자들도 있다. 인간 창조 기술에 대해 과학자들 내에서도 윤리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나오고 있다. 창조의 영역에 손을 대는 것에 대해 수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있다.

 

4. 베네수엘라 폭동, 도시는 몰락 직전

베네수엘라에서는 올해 1분기에 벌어진 약탈만 107건이며, 올해만 2000건이 넘는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 5월 13일에도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던 군중이 베네수엘라 곳곳에서 약탈을 벌였고, 결국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IMF는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을 700%, 내년엔 2200%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극심해져 햄버거 한 개의 가격이 약 20만 원에 달할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개와 고양이, 비둘기까지 잡아먹고 있다사회 분석에 대한 문서화 센터 책임자인 오스카 메자(Oscar Meza)씨는 노티시아스 베네수엘라(Noticias Venezuela) 웹사이트에 "우리는 5월을 광범위한 굶주림이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달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있다"고 썼다세계 경제가 침체하고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베네수엘라의 경제와 사회가 붕괴되고 있다.

 

5. 파나마 페이퍼스 공개, 세계 최대의 금융 스캔들

사상 최대 조세회피 폭로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가 지난 4월 3일 공개되었다. 미국의 국책기관인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주도하여 파나마 최대 로펌인 모색 폰세카에서 유출된 2.7테라바이트(TB) 분량의 1150만 건에 이르는 내부 자료를 폭로했다. 이 자료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나 연예인, 세계의 지도자와 전 지도자(12), 세계의 정치가와 관료(128명 이상)가 얽혀 있어 각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한 전문가는 "파나마 문서"를 공개한 진짜 목적은, 미국 이외의 조세피난처를 파괴하여 미국의 조세 피난처로 세계 부유층의 자금을 집중시켜 침체되는 미국 경제를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기독교회사_초기 기독교에 예언된 배도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사도들 생존 때부터 시작된 거짓 선생들에 의해 부추겨졌기에 사도서신들 중 대부분은 오류를 바로 잡고 없애기 위해 기록되었다. “불법의 신비가 이미 활동하고 있음이라. 오직 지금은 막는 자가 있어 그가 길에서 옮겨질 때까지 그를 막을 것이요 그리고 나서 저 사악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님께서 자기 입의 영으로 그를 소멸하시고 그분께서 오실 때의 그 광채로 그를 멸하시리라”(살후2:7-8) 이 “불법의 신비”는 마귀의 프로그램이며, 그에 따라서 마귀는 독초(가라지)와 배도를 뿌림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부패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계시록 17장에서 “비밀, 큰 바벨론”과 연합한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이런 편지를 보내야 했다. “너희를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그분을 이렇게 속히 떠나 너희가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음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갈1:6). “오 어리석은 갈라디아인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너희 중에서 너희의 눈앞에 밝히 보이셨는데 누가 너희를 미혹하여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였느냐”(갈3:1).
고린도 교회에게는 그들이 사탄의 책략 아래 일하는 거짓 선생들에 의해 잘못 인도되는 위험에 처해있음을 편지 했다. “그러나 뱀이 그의 간계로 이와를 속인 것같이 너희의 생각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변질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와서 우리가 선포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선포하거나 혹은 만일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또는 너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그를 잘 용납하는도다... 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들이요 속이는 일꾼들이요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느니라. 그러므로 사탄의 사역자들이 의의 사역자들로 가장한다 하여도 결코 큰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3,4,13-15).

초기 교회의 시대에 이미 이러한 배도의 씨앗들이 존재했으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로마 카톨릭주의와 동방 정교회의 형성으로 아래와 같은 독초의 꽃을 피웠다.
(1) 어떤 기독교인들은 처음 사랑을 버렸으며, 그것이 배도로 향하는 첫 걸음이었다(계2:4,5).
(2) 어떤 이들은 우상숭배와 연합되었다(고전10:14-21; 요일5:21).
(3) 어떤 이들은 성경 진리들을 영지주의적(알레고리) 의의로 해석하였다(딤후2:17-18).
(4) 어떤 이들은 교회들에서 불법적인 권위들을 행사하고자 했는데, 이는 성직 교계제도를 향한 첫걸음이었다(요삼 9-10; 계2:6,15).
(5) 어떤 이들은 율법과 은혜, 믿음과 행위를 혼합시켜 복음을 변질시켰다(갈1장; 딤전1:3-11).
(6) 어떤 이들은 금욕주의를 실천했다(골2:4, 8, 20-23).

사도 시대 끝 무렵 몇몇 교회들은 이미 깊이 부패하였다. 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 중 세 교회는 심각하게 오류의 영향을 받았고, 또 다른 교회는 거의 전적으로 배도했다. 그리고 그 다음 몇 세기 동안에 이런 초기 오류의 씨앗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여,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 “교회들”의 성립으로 오류의 열매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미 사도 바울을 통해 경고를 받은 갈라디아의 교회들은 자신들의 동족이요 형제인 멀리 바다 건너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친척들에게 올바른 진리를 전하여 로마 카톨릭이 들어가기 수 세기 전에 이미 넘치는 바닷물처럼 그 땅들에 복음을 넘치게 하여 참다운 교회의 줄기를 이루었다. 또한 알프스를 중심으로 한 깊고 험난한 산중에 자리 잡은 광야 교회는 로마 카톨릭의 이교사상을 저항하며 산중으로 도피하여 그들의 피난처와 안식처로 삼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동방의 교회는 로마 카톨릭의 악한 영향권을 멀리 벗어나 시리아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복음의 능력의 역사를 이루며 이교에 대항하여 진리의 깃발을 더 높이 들었다.

진리탐구_마태복음 23-25장을 통한 “세상 심판 순서”의 교훈

 

마태복음 23장⋅24장⋅25장을 깊이 연구해보시면 하나님께서 세상 마지막 역사를 어떻게 계획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성경 속에서 세상 역사의 장래사를 알고자 할 때, 과거의 기록된 말씀 속에 반드시 그와 같은 역사가 반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장래 역사는 지엽적인 것이 아닌 온 세상을 대상으로 발생된다는 것을 이해하시고, 전체 장들을 개괄적인 주제로 보시면 심판의 말씀들을 이해하시는 지혜가 생기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은 그 당시 유대교회의 율법적이고, 형식적인 예배와 잘못된 신앙을 예수님께서 책망하십니다. 2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임박할 재앙이 있으며 그러한 재앙들을 통해서라도 유대교회가 진심으로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25장에서는 드디어 세상 민족과 나라들을 심판을 통해 분리하시는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 장별로 마태복음 23장 교회의 책망, 24장 환란과 핍박, 25장 심판으로서 추수와 분리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요한계시록에서도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도표를 참조하겠습니다.

두 성경의 말씀은 동일하게 개국 이래 환란과 핍박 후에 주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그리스도인들을 추수와 혼인 잔치의 말씀들이 순서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동안 궁금하였던 144,000인의 말씀으로 들어가기 전에 앞서 말씀드렸던 글들을 정리하여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심판 전에 말씀을 전할 “예표(증인)의 사람들”이 있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예는 성경의 기록된 역사가, 하나님의 모든 심판 전에 그러한 일이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추수에 앞서 반드시 “첫 열매”가 있어야 함을 알았습니다. 셋째로,  세상 심판 전에 교회의 책망이 있고 다음에 환란과 핍박이 오고, 주님의 재림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요한계시록 환란과 핍박의 장인 4장~13장의 사이 “7장”과 15장~18장의 사이 “14장”에 우리가 궁금해하는 “144,000인”이 등장하게 됨을 잘 주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들을 이해하신다면 앞으로 전개될 ❶144,000인이 등장할 시기와 ❷144,000인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그리고 ❸144,000인이 해야 할 사명, ❹144,000인의 신앙관, ❺ 진정한 144,000인은 누구인가? 에 대해서 좀 더 쉽게 말씀드릴 수가 있고 또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 호에는 좀 더 자세히 144,000인에 대해서 연구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간증_참된 진리를 전하는 전도여행

 

하나님은 우리의 성향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우리 가족은 먼저 소통을 하고 정이 들어야 공동체에 마음을 연다는 것을 잘 아시고 우리 가정이 진리를 따르는 삶을 사는 가운데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믿음의 형제들을 붙여주셨습니다. 매주 이루어지는 형제자매님들과의 교제는 풍성하고 감격스러우며 은혜가 넘칩니다. 그 교제를 통해 그동안 엄마에게 받았던 상처와 아픔을 이제는 이해하고 지난 일들은 다 잊어버렸다고 말씀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생겨 엄마에게 내 마음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기도했습니다. 그즈음 엄마가 많이 아프시다는 연락을 받고 서울 친정으로 갔습니다. 엄마와 웃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 ‘엄마가 왜 그렇게 계속해서 불평, 불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는지’, 또 나 역시도 ‘왜 계속해서 넘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니 엄마가 예전과 같이 톡 쏘는 험한 말이나 선하지 않은 언어습관들이 가시가 되어 나를 찔리기는 하나, 상처로 남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주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강이 생겼습니다. 그 후에도 통화할 때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말들을 여전히 하셔도 나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며 참게 되었고 내가 받은 진리를 위해서라도 더 꾹꾹 인내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12월 22일 익산 우리 집에서 5km가량 진원지였던 곳에 진도 3.9의 지진이 났습니다. 자다가 새벽에 처음 겪은 지진에 우리 식구들은 무척 놀라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그 순간 오직 "하나님"만 외칠 수밖에 없었고 두려운 마음보다는 참된 진리를 완강히 거부하며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 가족들과 아직 진리를 접해보지 않은 지인들과 또한 수많은 이름 모를 영혼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더욱 강하게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성경적으로 키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잘 알지만 아직 온전하지 못한 성품과 완전히 치료받지 못한 지난 상처들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지 못한 것을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서울로 직장을 다니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설교 말씀 들으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계속해서 깨닫게 되니까 눈물이 나." 그랬더니 남편은 살짝 미소를 띠며 "나는 기차 안에서 창문 밖을 보면서 설교 말씀 계속 몇 편씩 듣는데 내내 울고 있어. 옆에 앉은 사람은 아마 내가 무슨 큰 슬픈 일을 당한 줄 알거야." 남편과 제가 진리의 말씀에 이렇게 반응하고 변화된 것은 정말이지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의 모든 죄를 구속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죄의 결과 때문에 얻게 된 모든 상처까지도 치료해주심에 너무나 감사하였습니다.

어느 날 진리를 접해보지 못해서 멸망 받게 될 저 수많은 영혼들에게 빛을 전해야 한다는 전도에 대한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는 분들, 게다가 유튜브를 통해 설교 말씀을 찾아보지 않는 분들이 실제로 많이 있기 때문에 가장 미련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이유와 우리가 해야 할 사명에 대해 교제하며 문서 전도에 초점을 맞춰 남편의 심령에 동기부여를 일으켰고 불을 지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익산 문서전도 바이블 카페를 스스로 결심하였고, 우리는 함께 거리 전도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집 창고를 개조하여 모임이나 예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틈틈이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공간을 "엘림홀"이라고 이름 지었답니다.

전도하면서 겪게 될 어려움에 대하여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그동안 힘든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진리를 전해 오셨던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전도하게 되면서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세밀한 부분들과 또 그분들의 실제적인 경험들을 배우면서 노방 전도를 하면 할수록 전도를 하는 자와 전도를 받게 되는 자 모두를 성장시키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와 깊은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따르는 삶은 정말 단순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은 하지 않으면 되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게 될수록, 진리를 따르는 길은 고된 길이 아니라 즐거운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지체들이 진리를 전하는 방법을 보면서 진리를 전할 때는 지혜로워야 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 후 시부모님과 시댁 식구들에게 진리를 전할 때 남편에게서 이전보다는 한층 더 성숙한 모습과 내면의 변화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각자 전도했던 일에 대해 나누는 우리 부부의 교제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영적이고 더 친밀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으로 성장해가는 가정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드렸습니다.

요즘 기도 중 우리 예수님은 환난을 겪기 위해 이 땅에 오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처럼 환난을 겪을 때 기꺼이 순종하며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환난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다가 당하게 되는 어려움이며 고난입니다. 그러나 환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복음을 위해 기꺼이 환난 당하는 한가운데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는 것 같아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언제든지 우리도 가방 한 개만 들고 이 집을 떠날 준비를 하자! 우리가 갈 곳은 하늘 본향이니까."

하나님은 참 진리이고 생명이십니다. 그리고 참 따뜻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그 어떤 피조물보다도 우리를 존귀하게 대해 주십니다. 이제 봄이 왔습니다. 씨앗대로 꽃을 피우고, 씨앗대로 열매를 맺는 것이 창조주 우리 하나님의 섭리대로 사는 삶입니다. 우리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설계하여 놓으신 씨앗이 있습니다. 그 씨앗대로 아름답고 향기롭고 거룩하고 순전한 꽃을 피워야 하겠습니다. 봄은 전도하기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 다른 계절이 되어도 전도 여행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늘까지....환난이 온다고 해도......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이제 곧 그리스도인의 봄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속히 오실 것이기 때문에....

Healing Story_밤의 호르몬, 멜라토닌

 

안타깝게도 최근 CDC(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000만~7000만 명의 미국 성인이 만성적인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불면증으로 인해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가 12년 사이에 7배나 많아졌다고 합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숙면은 건강한 생활을 위한 기본이 되며 자는 동안 우리 몸은 회복되고 치료됩니다. 창조주께서 수면을 위해 우리에게 심어주신 작은 선물, 멜라토닌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멜라토닌이란?
멜라토닌은 뇌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송과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수면을 유도하는 작용을 합니다. 주로 어두워진 밤 시간에 많이 분비되며 낮에도 생기기는 하지만 밤에 비해 아주 적은 양이 나옵니다. 또한 5 ~ 6세에 분비량이 가장 많고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밤에 분비되는 멜라토닌이 급격히 감소하다가 노인이 되면 밤과 낮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현저히 줄어듭니다.

* 멜라토닌은 어떤 작용을 할까요?
-수면을 유도해 육체와 정신의 휴식을 가져올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빠른 시차 적응에 도움이 됩니다.
장거리 비행 후 낮과 밤 시간이 바뀌어 며칠 동안은 밤이 되어도 낮으로 잘못 알고 멜라토닌을 분비하지 않기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같은 시차병(제트래그)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햇빛을 바라보며 산책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은은한 햇살이 눈의 동공을 통과해 들어와 송과체를 자극하게 되면, 송과체는 지금 있는 곳이 위도상 어디인지, 시간은 언제인지 알고 우리 생리시계를 그에 맞추어 바꿔 놓습니다. 대부분 시차 적응에 3일 정도 걸리는 반면, 1-2일이 지나면 적응이 된다고 합니다.
-암을 방지합니다.
-항산화 작용을 합니다.
시험관이나 쥐 실험에서 멜라토닌은 강한 항산화 작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유해산소를 전부 중화시켜서 체외로 배설시켜 줍니다.
-면역력이 증가됩니다.
-스트레스를 잘 조절함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골다공증 예방에 좋습니다.

* 멜라토닌의 생성과 분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해보세요.
-저녁 식사는 일찍
취침 4시간 전까지는 반드시 저녁 식사를 끝내는 것이 좋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음식을 먹게 되면 수면 중에도 계속 음식물을 소화하기 위해 장이 운동하게 되고, 장운동이 계속되면 멜라토닌 분비에 방해가 됩니다.
-자는 곳은 어둡게
스마트폰 불빛이나 형광등, TV 화면, 창 밖에서 비춰오는 환한 네온사인 등의 빛은 수면을 방해하는 주범이 됩니다. 아무리 송과체가 활성화 되는 밤이 되어도 이러한 불빛이 눈으로 들어가 시신경을 타고 전달되면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쩔 수 없는 환경이라면 안대나 암막 커튼을 활용하도록 합니다.
-이른 아침 산책을
이른 아침, 동편 하늘에 떠오르는 은은한 햇살을 바라보며 산책을 하도록 합니다. 송과체는 눈의 동공을 통하여 들어오는 천연 햇살에 반응하여 멜라토닌을 만들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실외 활동
유리는 치료 효과가 있는 자외선을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따라서 실내보다는 실외에서 직접 햇빛을 받아야 합니다. 실제로 미국 미시간대학교 연구진들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외부에서 햇빛에 많이 노출되는 사람은 실내의 인공조명 아래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 비해 더 일찍 잠들고 오래 수면을 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멜라토닌은 옥수수, 쌀, 생강, 토마토, 바나나, 보리, 귀리에 함유되어 있습니다.
-스트레스나 커피, 알콜, 담배는 멜라토닌 생성을 방해합니다.

* 동물에서 추출한 것이나 합성한 멜라토닌
사람은 멜라토닌이 활발히 분비되는 밤이 되면 활동이 적어지는 반면, 쥐는 오히려 활발히 활동을 합니다. 즉 사람과 쥐는 멜라토닌에 관해서는 정반대의 작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멜라토닌 효과에 대한 연구는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이기 때문에 이 효과를 사람에게 직접 확대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들도 있습니다.

조물주께서 만들어 주신 규칙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잘 자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수면제나 합성된 멜라토닌을 복용하기 전에 기도하는 맘으로 어느 부분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먼저 자가 진단을 해본 후에 아는 만큼 하나씩 순종해 가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_나는 데카르트를 용서할 수 없다

204-2

채식요리_연근 돗나물 물김치

2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