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편집실

현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나쁜 신앙 습관의 한 가지는 말씀으로 확인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믿는 신앙 습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믿는 바를 성경으로 확인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전혀 불가능하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성경 말씀으로 확인하고 믿는 신앙의 모본은 베뢰아 사람들의 태도로 신사적인 그리스도인은 결코 맹목적일 수 없습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 17:11).
특히 교회 안에 온갖 오류와 악한 영들이 난무하는 마지막 시대에는 더욱 더 베뢰아 사람처럼 성경을 상고하여 확인하고 믿는 신앙 습관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과 가족들이 주말마다 다니는 교회를 선택하는 일은 구원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베뢰아 사람들의 모본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교회를 다녀야 할지 고민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교회를 선택하는 확실한 방법을 알기 원합니다.

성경에는 시대마다 참 교회를 선택하는 방법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시대, 엘리야의 시대, 예수님 시대, 중세기의 종교 암흑시대, 그리고 오늘날까지 각 시대마다 진리를 붙잡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참 교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마지막 시대에는 어떤 교회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참 교회일까요? 그 교회를 찾아낼 수 있는 확실한 성경적 방법은 없을까요? 이번 신앙기사에서는 베뢰아 사람들의 모본을 따라서 성경으로 마지막 시대에 등장하는 참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SOSTV 선교센터 편집실-

제1부_사탄의 공격 목표가 되는 교회를 찾으세요!

여러분이 만약 참 교회를 찾는 사람이라면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참 교회의 조건과 특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참 교회의 조건과 특징에 맞는 교회가 진짜 하나님의 참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하나님의 참 교회와 그 특성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보호 속에서 마지막까지 보존될 것이며,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이룰 것입니다. 그 교회는 하나님의 마지막 산 증인이 될 것이며,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하나님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무리를 생산해 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교회는 지구상의 어떤 교회보다 가장 맹렬한 사탄의 공격 목표가 될 것입니다.

1.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성경에 기록된 참 교회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교회의 성경적인 정의를 확인해보겠습니다.
교회란 어떤 조직이나 교단이나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주셨던 진리, 곧 변하지 않는 영원한 복음을 간직하고 전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교회’라는 단어는 헬라어 ‘에클레시아(ecclesia)'를 번역한 것입니다. ’에클레시아‘의 문자적인 의미는 ’~으로부터 불러내 따로 있는 무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 기록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회중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고전 1: 2)
위 성경절에서 하나님의 교회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약시대에 성전은 어떤 건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을 뜻하는 것임이 다음의 성경절 들에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후 6: 16)


2. 참 교회는 무엇인가요?
성경 말씀으로 교회의 정의를 알아본 것처럼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나 교단이 아닙니다. 교회는 참 진리를 보존하고, 그 진리대로 살기 위해서 자신의 생애를 바치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역사와 초기 그리스도 교회사와 중세기의 역사를 살펴볼 때, 우리는 항상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전수하며 생애 하였던 하나님의 교회, 즉 남은 무리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참 교회인 소수의 남은 무리가 항상 존재해 왔듯이, 마지막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참 교회를 가지고 계시며,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그 교회는 진리를 사랑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는 여인으로 표상된 참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a woman)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계12:1).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상징적 표현 중의 하나는 교회를 여인으로 묘사하는 것인데,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의 참 백성인 교회를 정결한 처녀로 표현하였습니다.
“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고후 11:2). 또한 선지자 예레미야는 “아름답고 묘한 딸 시온”이라고 말하였으며(렘 6:2), 이사야는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라”고 말하였는데(사 51:16),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성경에서 시온은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딸(여인)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결한 처녀=시온=아름다운 딸=여인=하나님의 백성=참 교회)
참 교회란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여 예수님께 직접 진리를 받은 열두 제자들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보존하고 있는, 그리고 그들이 믿는 진리와 그들의 생애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하게 빛나며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반사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3. 참 교회의 역사
1) 여자와 아이
요한계시록 12장에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순결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참 교회가 어떠한 시련과 역사를 통과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놀라운 예언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중세기에 참 교회(여자)가 받았던 박해의 역사를 공부해 보면, 예언에 나오는 참 교회(여자)가 오늘날에는 어디에, 어떠한 모습으로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이 여자(woman)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계 12: 2-5)
만국을 다스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으로 올려간 이 아기는 누구일까요? 그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없습니다. 용은 누구이며, 누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나요? 예수님께서 마구간에 태어나셨을 때, 사탄(성경에서 용으로 표상된)은 헤롯왕을 통하여 2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학살함으로써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와 요셉을 애굽으로 피신하도록 하셨으며, 헤롯왕이 죽은 후에 어린 예수님과 함께 나사렛 마을로 돌아와 생애 하셨습니다. 사랑과 희생의 생애를 마치시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신 사실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2) 핍박받는 여자, 핍박받는 교회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계 12:13). 기독교 역사를 보면, 용으로 표현된 로마제국은 그리스도인을 극렬하게 핍박하였기에 초기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만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교 신을 믿었던 로마제국이 교황권의 세도에 굴복하여 정교연합을 한 후, 그리스도인에 대한 교황권의 박해는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계 12:14). 중세암흑기 교황권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 여자(참 교회, 남은 무리)는 알프스의 깊은 산 속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 1260년 동안의 종교 암흑시대
참 교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광야에서 피신하였는지 성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여자가 광야로 도망가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 12:6).
참 교회가 광야에 도피하여 피신한 기간을 1260일이라고 했는데, 다른 성경절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방왕은 돌아가서...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준비하였다”(단 11:13)고 하였는데, 여기서 때(time)란 성경 예언의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으로 1년을 의미하는 곧 해(year)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년+2년+반년=3년 반을 의미하는 예언적 기간인데, 이것은 정확하게 1260일이 됩니다(성경에서 1달은 30일로 계수됨).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원칙을 성경에 나오는 모든 날짜에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는 예언 해석 원칙은, 날짜가 기간적인 예언을 나타내는 상징어로 사용되었을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언 해석법이 올바로 적용되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이미 성취된 예언을 역사 속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예언 해석법의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서, 중세암흑 시대의 참 교회가 광야에서 1260년 동안 박해를 받았는가를 역사 속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역사는 이 예언의 시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A.D. 538년에 로마제국의 저스티니안 황제가 로마 교회(교황권)에게 절대적인 종교적 권위를 부여했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교황권은 종교적인 독재를 휘두르다가, 나중에는 유럽제국들의 왕이 취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황의 인가를 얻어야 할 정도로 그 세도가 하늘을 찌르게 되었으며, 종교 및 정치에 있어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종교 암흑시대가 되었습니다.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교황권의 박해가 극렬해지자, 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게 전수 받은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깊은 산과 계곡으로 숨어들어 갔습니다. 특히, 신실한 왈덴시안들과 위그노와 알비젠스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깊은 산 속에 숨어서 수 세기 동안 자신들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교황권의 압력과 박해에 대항하였던 사실을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4) 미국으로 피신하는 참 교회
126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하나님의 예언의 시계가 1798년을 가리킬 즈음,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프랑스 혁명군의 버티어 장군이 로마로부터 교황 피우스 6세를 잡아 감옥에 수감하여 교황을 죽게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해가 1260년이라는 예언 기간의 종점인 1798년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로마 교회의 교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교황권의 박해 시대였던 종교 암흑시대는 역사적인 종말을 고했습니다. 1260년간
의 종교 암흑시대가 끝나갈 무렵,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참 교회를 보존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한 땅을 준비하는 예언의 장면이 나옵니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계 12:15-16). 그 당시의 참 교회였던 유럽의 청교도들은 정치적, 종교적 박해를 피하여 신대륙인 미국으로 피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의 박해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대륙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미국의 출현에 대한 예언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길잡이] 제11호 ‘미국에 대한 예언’, 제21호 ‘공산권, 교황권, 미국’ 참조)

참 교회는 요한이 계시록에 기록해 준,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교회의 위험과 오류들의 함정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교회, 그래서 선지자의 증거들을 잘 순종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예언의 증거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고 보호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교회는 진리의 배도에서 순결하게 보호함을 받는 교회입니다.

제2부_영원한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를 찾으세요!

어떤 교회를 원하십니까? 귀에는 듣기 좋고 부드럽지만, 영생으로 인도하지 않는 가짜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를 원합니까? 아니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지만, 성경이 제시하는 영생을 가져오는 영원한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를 원합니까? 마지막 짐승의 표의 환란과 아마겟돈 전쟁에 승리하여 영생을 얻게 하는 영원한 복음, 인간의 유전의 가르침을 떠난 성경적인 참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를 찾는 것과 그 참된 복음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1. 성경이 말하는 영원한 복음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 14: 6).

영원한 복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영원한 복음이란, 아담이 타락하자마자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시겠다는 구속의 방법에 대해 계시하셨던 바로 그 복음을 가리키며, 아브라함이 이해하고 믿었던 그 구원의 복음, 사도 바울이 깨닫고 설명한 바로 그 똑같은 복음이며,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영원히 동일하며 변치 않는 바로 그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이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유일한 구속의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 방법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시종 일관하는 복음을 의미합니다. 

2. 짐승의 표를 이기는 참 교회 

1) 십사만 사천으로 묘사된 하나님의 참 교회  

요한 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으로 상징된 세력이 전 세계적으로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중요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1절) ...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11절) ...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15,16절).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계시록 14장에는 짐승의 표를 이기고 승리하는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의 모습이 하늘 시온산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서있는 십사만 사천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계 14:1). 요한 계시록 14장 1절부터 5절까지는 십사만 사천의 정체와 품성에 대한 묘사가 기록되어 있고, 6절부터는 십사만 사천, 즉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가 전하는 현대진리를 세 천사가 전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2) 셋째 천사가 전하는 복음의 요지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9-11, 12).

세 천사의 메시지 중, 마지막 짐승의 표의 환란에 대하여 언급된 셋째 천사의 복음의 요지를 보면,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 짐승의 표를 받으면 멸망할 것이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인내로 견디는 무리가 있는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뿐이다!”라는 것입니다.

3. 참 교회 참 백성을 만들어내는 복음 

짐승의 표를 이기고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하고 승리하는 마지막 백성이 되려면 어떤 복음을 믿고 알아야 합니까? 어떤 복음이 마지막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고, 예수님의 믿음으로 승리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양산해 낼까요? 현재 기독교에서 전해지고 있는 대부분의 복음은 변질된 반쪽 복음입니다. (기독교의 반쪽 복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길잡이] 8호 ‘사탄이 만들어 놓은 구원의 위조지폐’, 18호 ‘참된 복음과 변질된 복음’ 참조) 변질된 복음은 우리로 온전한 영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도록 인도하기 때문에, 마지막 시대에 짐승의 표의 환란을 이기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기 어려우며, 결국 우리로 영생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1) 영원한 복음, 참 복음 

이 세상에 은혜의 시기가 마치기 전에 짐승의 우상이 서게 될 것이고 또한 짐승의 표가 강요될 것인데, 하나님의 참 교회인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짐승의 표 대신 하나님의 인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순종하고 품성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에게만 쳐질 것인데 영원한 복음을 믿음으로 체험한 사람만이 그들의 생애에 하나님의 온전하신 품성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짐승의 표의 환란과 선과 악의 마지막 대쟁투의 초점인 아마겟돈 전쟁의 기본적인 투쟁은 하나님의 계명을 전적으로 순종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투쟁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수 있을까요? 타락한 죄의 성향을 타고난 사람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순종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 그리고 예수님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믿고 있던 영원한 복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복음이란 단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복된 소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복음 속에 있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힘, 다시 말해서, 타락하기 이전 상태로 죄인들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 곧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파워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메시지나 진리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죄인을 변화시켜 에덴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재창조의 기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복음, 영원한 복음은 짐승의 표의 환란을 이기게 하고, 죄를 승리하게 하여, 불순종하고 악해진 죄인들을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의인들로 변화시켜서, 죄가 없는 하늘에서 타락하지 않은 자들과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믿음

마지막 성도들이 가져야 할 예수님의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성을 입으시고 이 땅에 사셨지만, 그분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원한 복음의 능력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시므로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재창조하시고 온전히 변화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의를 얻게 되며, 이것은 믿음으로 얻는 의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충분하게, 완전하게, 전적으로 구원하실 수 있다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예수님의 믿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회복시키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믿을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는 복음

죄인이 회개할 때,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복음은 칭의에서 끝나지 않고 구원의 시작일 뿐입니다. 죄인이 거듭날 때에 그는 죄를 용서받을 뿐 아니라, 새 마음을 받았으므로 죄를 미워하게 되며 다시는 그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혹 다시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육신에서 올라올지라도 그는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부인하고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치며, 자아가 날마다 죽는 경험을 하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화의 열매는 죄를 승리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게 하는 품성을 이루게 합니다.(성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SOSTV에서 발행한 단행본 ‘거룩’을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은, 구세주를 믿고 용서받은 경험이 충만한 죄인이 사랑에 감동되어 이루어지는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자기가 매일 죽고 그리스도께서 자기 속에 사시는 경험을 통하여, 항상 내재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계명들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온전히 반사하는 사람들, 곧 죄를 승리하는 사람들만이 짐승의 표의 환란을 이기고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됩니다. 그러한 자들이 바로 믿음으로 의로워진 사람들입니다.

의인은 의롭게 사는 사람이며, 그 의의 척도는 하나님의 계명으로 의롭게 사는 자는 순종하는 자이며, 순종하지 않는 자는 그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탄은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형상을 취하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의 완전한 순종을 하심으로써, 신성과 인성이 연합될 때에 하나님의 모든 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에,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 수 있는 능력도 받아들이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명은 그분의 품성의 사본인 동시에 모든 품성의 표준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신 지상 생애는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치면서 성화나 순종을 강조하지 않는 복음,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온전한 순종을 가르치지 않는 복음, 온전한 거듭남을 통해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품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 복음, 이런 것들은 영원한 복음이 아닙니다.

오늘날 온전한 복음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교회들도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의 온전한 모본이 될 수 없다고 말하거나 우리는 죄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죄를 범할 수밖에 없기에 죄를 승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며 하나님의 계명은 순종할 수 없고 단지 죄를 깨닫게 하려고 존재하는 것일 뿐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만으로 구원을 받으면 순종이 없어도 구원에는 영양이 없다는 잘못된 가르침으로 사탄의 주장을 답습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가르침을 가르치는 교회들의 교리는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본래부터 지킬 수도 없고 그것을 지키려는 것은 율법주의자이며, 단지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 믿기만 하면 생애가 어떻든지 구원을 받는다는 것 즉, 죄로부터의 구원이 아닌 죄 가운데서 구원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복음은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죄 용서뿐만 아니라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케 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해 주어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믿음을 지키는 자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게 하는 초 자연적인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표현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이 희생으로 나타나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복음을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이룬 사람들에게 쳐지는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것이고,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영원한 복음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이런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를 찾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제3부_바벨론의 포도주에 취하지 않은 교회를 찾으세요!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으로 상징된 세력이 전 세계적으로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장면이 나오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짐승의 표를 이기고 승리하는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 즉 십사만 사천의 모습이 나옵니다.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그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니라”(계 14:3~5).
십사만 사천인, 그들은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 진리를 붙들고 사는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부터 5절까지는 십사만 사천의 정체와 품성에 대한 묘사가 기록되어 있고, 6절부터는 십사만 사천 즉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가 전하는 복음이 세 명의 천사가 전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6절과 7절에는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가 전하는 첫 번째 복음이 나오며, 요한계시록 8절에는 두 번째 복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계 14:8). 여기에 나오는 천사는 헬라어로 앙겔로스 인데 사자, 천사, 파송된 자 라는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 즉 참 교회를 상징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는 바벨론과 바벨론이 사람들에게 먹이는 진노의 포도주의 정체를 드러내는 설교와 가르침을 전합니다.

요한계시록 18장에도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나오는데, 그들은 바벨론에 속해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그곳으로부터 불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1~4).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 때문에 바벨론은 그 정체가 폭로되어 무너지게 되는데, 참 교회는 사람들에게 바벨론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는 간곡한 호소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은 무엇이며, 그들이 사람들에게 먹여서 취하게 만드는 음행의 포도주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말씀들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해야만 참 교회를 구별할 수 있으며 또한 참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바벨론에서 나와 그 죄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 바벨론이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7장에는 바벨론의 모습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 17:5). 여기서 사도 요한은 바벨론에 대한 또 다른 호칭을 음녀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음녀는 또한 자신을 따르는 자녀들의 어미로 묘사되었습니다. 바벨론의 또 다른 호칭인 음녀는 무엇입니까? 음녀와 반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정결한 처녀(여자)의 성서적 의미를 이해하면, 음녀가 가지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됩니다. 성경에서 여자 또는 정결한 처녀는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있는 참 교회를 상징합니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고후 11:2).

그러므로 정결한 처녀(참 교회)와 반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음녀는 거짓 가르침과 교리를 가지고 있는 바벨론 교회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음녀는 간음을 행하는 창녀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오류와 간음을 범하는 교회를 음녀라고 성경은 지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사의 서두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요한계시록 14장 앞부분에는 음행을 범하는 바벨론 교회와 완전히 대조되는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가 나오는데 그들이 바로 십사만 사천인입니다. 그들은 음녀(바벨론 교회)가 가르치는 음행한 교리들에 의하여 더럽혀지지 않았으며 순결한 진리를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 14:4). 그들에 의하여 바벨론의 정체가 폭로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으로부터 빠져 나오게 됩니다.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바벨론은 영적인 세력이라는 점입니다. 구약시대의 바벨론 제국은 무너진 후 다시는 건국되지 못할 것이 성경에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말하기를 바벨론이 나의 재앙 내림을 인하여 이같이 침륜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니 그들이 쇠패하리라 하라 하니라 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마치니라”(렘 51:64).
예레미야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 즉 구약시대의 고대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고 다시는 건국되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볼 때,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바벨론은 실제적인 바벨론 국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력, 즉 타락한 교회(음녀)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또 다른 이름인 음녀는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세력이라고 요한계시록은 말하고 있습니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 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계 17:1,2,6). 요한계시록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참 교회를 상징하는 정결한여자 이고, 다른 하나는 바벨론 교회들을 상징하는음녀입니다. 바벨이라는 단어는 혼잡을 뜻하는 말로서 진리에다 오류를 뒤섞어 놓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미 구약에 설명해 놓은 말씀들을 영적인 세력에 인용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우상 숭배의 이교 가르침에 취해 있는 상태에서 나와야 한다고 구약에 이미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대저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거역하므로 죄과가 땅에 가득하나 그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에게 버림을 입지 아니하였나니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끊침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바벨론이 졸지에 넘어져 파멸되니 이로 인하여 울라 그 창상을 인하여 유향을 구하라 혹 나으리로다”(렘 51:5-8).

2. 취하게 하는 음행의 포도주
바벨(babel)이란 말의 어원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혼잡함 또는 섞임(confused)입니다. 바벨론이란 단어 자체에서도 우리는 성서적 진리와 거짓 가르침이 섞여 있는 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 특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렘 51:7). 포도주는 포도즙이 발효된 것이기 때문에 냄새가 나고 취하게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활력을 주는 포도즙이 발효되어 취하게 하는 술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진리가 오류와 섞이면 우리는 취하게 만드는 바벨론의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속한 교회들이 전하는 거짓 교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영적으로 취하게 되어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거짓 복음과 거짓 교리에 취한 사람마다 하나님이 구원의 역사와 진리를 분명하게 식별하지 못하여 결국에는 재앙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는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강력한 호소를 하는 것입니다(계 18:4).

옛날 고대 바벨론 시대에 시작된 이방 종교의 가르침들은 중세기에 1200여 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서 교황권에 서서히 흘러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회는 초대 그리스도 교회가 가지고 있던 순결한 진리에 이방 종교의 가르침들을 섞은 혼합된 교리를 가짐으로 바벨론 즉 음녀의 어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중세기가 끝나갈 무렵에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 천주교회가 이방종교로부터 받아들인 많은 가르침을 개혁하였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오류와 이설들이 개신교회들 속에 남아 흘러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바벨론을 음녀와 그를 따르는 자식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 17:5). 비록 개신교회가 교황권으로부터 빠져 나왔지만, 여전히 그 어미인 교황권의 취하게 하는 포도주(거짓 교리)를 전하고 있다면 그러한 개신교회는 음녀의 딸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음행의 포도주가 마지막 시대까지 전하여져서 수많은 교회를 취하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일곱 교회의 예언(계 2장과 3장)을 통하여 분명하게 경고해 주셨습니다(더 자세한 내용은 SOSTV 월간지 제14호, 54호 참조).

그러므로 마틴 루터와 같은 위대한 종교 개혁자들이 시작한 진리의 회복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들이 전했던 진리가 완전하게 회복될 때까지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 바벨론의 포도주는 사람들로 하여금 취하여 이성을 잃게 만들어서 참 하나님과 그 분의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비틀거리게 만드는 거짓 교리들입니다. 교황권이 중세기 동안에 몰래 들여온 취하게 하는 음행의 포도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원죄설
2) 성체들-Sacraments
3) 우상 숭배 (성모, 성자들 숭배)
4) 고해 성사 (신부 제도)
5) 영혼 불멸설 (성경으로 돌아가는 길잡이 29호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참조)
6) 연옥설
7) 영원 지옥설 (성경으로 돌아가는 길잡이 28호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 참조)
8) 경외서들
9) 거짓 복음 (성경으로 돌아가는 길잡이 5호 한 번 얻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나요?, 8호 ‘사탄이 만들어 놓은 구원의 위조지폐’, 18호 ‘참된 복음과 변질된 복음’ 참조)

(바벨론과 포도주에 대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을 공부하기 원하는 분들은 SOSTV 월간지 90호 ‘바벨론이란 무엇인가?’, 제163호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의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참 교회를 찾고 계십니까? 바벨론의 포도주가 섞이지 않은 성서적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를 찾는 것이 바로 참 교회를 찾는 방법입니다. 그 교회는 지금도 진리의 터전 위에 굳게 서서 바벨론과 그 포도주의 정체를 폭로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이성과 양심을 동원하여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며 마지막 시대에 제시되는 진리의 말씀 위에 우리의 기초를 든든히 세워야 할 것입니다.

제4부_참 교회를 찾는 방법

1. 참 교회와 진리의 관계

많은 기독교인은 교회의 프로그램, 목사님의 인품, 집과의 거리,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지의 여부, 교인이 많은지의 여부 등을 기준으로 자신이 다닐 교회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기준들은 참 교회를 선택하는 진정한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자신과 가족이 다녀야 할 교회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매우 분명한 지침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딤전 3:15

또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써, “참 교회”의 모습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라는 인간 위에 교회를 세우지 않고 “반석 위에 내(예수님) 교회”를 세우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반석”은 예수님 자신과 그분께서 가르치셨던 진리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참 교회란 “반석”(예수님이 가르치셨던 진리) 위에 세워진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진리의 터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어떤 특정 교회에 참석하는 유일의 이유는 부모님이 그 교회의 교인이시기 때문도 아니요, 우리 가족들이 다니기 때문도 아니요, 집 근처에 교회가 있기 때문도 아니요. 우리가 평생 다녔기 때문도 아니요, 그 곳에 다니는 사람들이 좋기 때문도 아니요, 그 교회 목사님의 인격이 좋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성경의 교훈과 진리에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만약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가 성경이 가르치는 바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고 참된 진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를 찾아야만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계에 수백 개의 교단과 교파가 있고 저마다 수많은 가르침과 교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도 성경은 진실된 마음으로 진리를 찾는 사람들은 참 교회를 찾을 수 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doctrine, 교리)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l7).

이것이 참 교회를 찾는 방법입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행하기 원한다면, 그는 "교훈", 즉 성경의 교리(doctrine)를 먼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진실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주님, 나는 지금 주님께 내 마음을 완전히 열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따르겠습니다. 혹시 내 생애에 변화를 원하신다면 나는 즐겨 그 변화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또한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은 약속과 보장의 말씀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 여러분이 진리를 알기 원하고, 진심으로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께서 진리를 보여주실 때에 기꺼이 여러분의 생각과 사상과 생애를 고치기 원한다면, 여러분은 진리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는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가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spirit, 성령)과 진정(truth, 진리)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2. 참 교회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특성

교회란, 어떤 조직이나 교단이나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담과 하와에게 가르쳐 주셨던 진리, 곧 변하지 않는 영원한 복음을 이해하고 믿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참 자녀들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노아가 전파하였던 진리, 아브라함이 믿었던 진리, 엘리야가 경고하였던 진리, 다니엘과 사도 요한에게 계시되었던 예언,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가르쳤던 가르침을 정확하게 보존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즉 남은 무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참 교회란 참 진리를 보존하고, 그 진리대로 살기 위해서 자신의 생애를 바치는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각 시대를 통해서 하나님의 참 교회를 통해서 진리가 전수되어 내려왔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참된 증인이 없었던 시대는 결코 없었습니다. 참 교회란 비록 각각 다른 신조와 교파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에 마음과 생애를 바친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교회를 뜻합니다. 모든 교회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충성된 남녀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의 눈에 교단이나 조직 또는 단체로 드러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교회의 정직하고 충성된 남녀들을 하나님의 진리 속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1) 교회는 남은 자손이다

성경은 마지막에 사탄의 공격 목표가 될 하나님의 참 교회, 즉 참 백성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성경은 마지막에 사탄이 하나님의 남은 자손과 최후의 전쟁을 벌리려고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역사와 초기 그리스도 교회사와 중세기의 역사를 살펴볼 때, 우리는 항상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전수하며 생애 하였던 하나님의 교회, 즉 남은 무리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각 가정에 족보가 있듯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엄연히 족보가 존재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남은 자손들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성경은 남은 자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남은 자손과 그 역사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후에, 그들이 이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선고를 내리신 즉시부터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자손과 뱀의 자손들이 서로 원수가 될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원수가 될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들 사이에 적개심을 두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 역사는 항상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 사이에 끊임없는 전쟁이 있어 온 사실을 여실하게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사탄은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차리고 하나님의 참 백성을 죽이려고 사력을 다하여 싸워 왔습니다.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그 사실을 금방 알게 됩니다. 먼저 사탄이 가인을 통하여 아벨을 죽인 역사를 봅시다. 사탄은 여인의 후손, 즉 하와의 아들인 가인을 자기의 자손으로 삼아, 하나님께 충성하며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는 동생 아벨을 미워하여 죽이게 하는 일에 성공하였습니다. 가인은 여인의 자손이었으나 실상은 뱀의 후손 즉, 마귀의 후손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렇듯이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 사이에는 전쟁이 항상 있어왔습니다.

그 후에 아담은 셋을 낳고 기뻐하였으며 셋은 아벨을 대신하여 여인의 후손 즉, 참 하나님의 교회가 됩니다. 그 후로 셋의 후손들과 가인의 후손들은 서로 떨어져서 살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인의 후손들로부터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6장에 가서 슬픈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마귀가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들이 서로 섞이게 만드는 일에 성공했다는 사실입니다.

마귀는 여자의 남은 자손들 즉, 하나님의 참 백성을 다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간구해낸 묘책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 속에 들어와 그들을 타락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딸들과 결혼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타락시키는 일에 성공하였습니다. 그 결과 비참한 노아 홍수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노아 홍수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참 백성을 구별하여 놓으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로 삼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창 18:19). 그것은 곧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는 의로운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이것이 여자의 후손 곧 하나님의 참 백성을 구별하여 두시는 이유입니다.

노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도 확인해봅시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보았음이니라”(창 6:22-7:1).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남겨 두시는 이유가 얼마나 같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즉 계명을 순종하는 한 백성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선과 악의 대 쟁투에서 하나님의 의로움을 변호하고 증인이 될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한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필요로 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요한계시록 12장이 여자의 남은 자손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3) 남은 자손의 특징

성경은 마지막에 사탄이 싸우려고 하는 남은 자손의 특징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마지막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강요될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무리들에게도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14:11,12).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이 바로 여자의 남은 무리, 하나님의 참된 남은 자손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저 머리로만 믿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게 삼는 사람들이며, 또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만 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자기의 목숨을 잃어버리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될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더 높이는 자들, 하나님의 명령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 먹고 사는 일보다 주님의 명령이 더 중요한 자들, 그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참된 하나님의 남은 자손들입니다.

4) 바벨론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

요한계시록에는 참 교회의 정체도 드러내지만, 가짜 교회(바벨론)의 모습도 폭로하고 있습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계 14:8). 성경에서 바벨론은 진리를 버리고 오류를 받아들인 교회를 상징하는데, 이 성경절에서도 바벨론은 모든 나라의 사람들에게 음행(진리와 오류를 섞는 영적 간음을 뜻함)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오해시키고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취하게 하는 가르침들인 바벨론의 잘못된 가르침들, 즉 바벨론이 먹이는 바벨론의 포도주를 받아먹은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 성경절이 전하는 경고입니다.

비록 잘못된 교리와 비성서적인 가르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벨론이 되어 버린 교회 속에도 그들이 받은 빛 안에서 진리를 굳게 붙잡고 양심에서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참 백성이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을 바벨론 교회들로부터 불러내어 하나님의 참 교회와 연합하기를 촉구하시는 모습이 요한계시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하늘로서 다른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계 18:2,4).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증거를 가진" 여자의 남은 무리가 진리를 전파하고 참된 복음을 전하면서 바벨론의 교회들이 무너졌음을 경고할 때, 바벨론에 속해 있던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자신들이 속해 있던 바벨론 교회로부터 나와 하나님의 참 교회와 연합하게 된다는 것이 요한계시록이 예언하고 있는 바입니다.

마치면서

과거의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참 교회인 소수의 남은 무리가 항상 존재해 왔듯이, 마지막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참 교회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신실한 무리를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애에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드러내고 반사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그 사람들은 선과 악의 대 전쟁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산 증인들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마지막에 구원받을 하나님의 남은 자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롬 9:27).

남은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다.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남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사 10:21, 표준 성경).

여러분은 어떤 교회를 나가기 원하십니까? 집에서 가까운 교회입니까? 사랑의 교제가 풍성한 교회입니까? 청소년 프로그램이 좋은 교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믿음”에 대한 성서적 신앙 고백을 가지고 있는 교회입니까?

여러분도 하나님의 참 교회, 남은 무리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고 진리를 따르므로 하나님의 참 교회가 되는 독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간증_고통은 제 속의 죄들을 녹여내 주었습니다

25년간을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애써 살아왔지만 불교신자나 저와의 사이에 특별한 차이가 없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었지요. 갈5:22~23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에 말씀하신 성령의 9가지 열매들이 저에게 보이지 않아 저의 믿음에 큰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다니던 교회에서 부르짖던 복음은 사람들을 변화시킬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고 오랫동안 예수님과 동행했지만 경건의 모양만 있을 뿐 교우 간에는 그 열매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했지만 그렇게 되길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아닌 저의 모습에 한탄하고 있을 즈음 강병국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말씀을 듣게 되었고 세천사의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숨과 같이 지키던 일요일이 하나님의 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또한 히4:4 “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말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토요일이 진짜 하나님의 날임을 깨닫게 되면서 오랫동안 지켜왔던 일요일의 예배를 접고 제7일 토요일을 진정한 안식일로 여기며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마음으로 하루 정해서 드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원죄론과 영혼불멸설이 사단이 뿌려놓은 가짜 오류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제가 경험한 구원은 십자가에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 진리를 발견하기 전까지 구원받은 자로서 천국에 갈 것이 약속된 것처럼 살아왔지만 그것은 사단의 기만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고 제가 얼마나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었는지 놀라고 또 놀랐답니다. 제가 그동안 존경하고 따르던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모두 사단의 기만 속에 알맹이 없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제라도 참 진리를 발견하고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드렸습니다. 오랜 세월 잘못된 기만 속에서 진실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며 살던 저에게 이르러온 새로운 진실들은 매일 매일 저를 새롭게 변화시켰으며 참 기쁨을 주었습니다. 지금은 대 속죄일 기간이며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믿음을 조사 심판하는 마지막 세대라는 것과 2300주야, 일요일 휴업령, 죄의 도말, 늦은비의 경험, 7재앙....
이 모든 사실은 너무나 경이롭고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 속에 모든 역사가 진행되어 오고 이제 인류역사는 마지막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들은 지금의 현 세계가 얼마나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어렵게 만난 진리를 서로 나눌 수 있는 형제자매님들과의 진실한 관계들은 저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채워주었습니다.

양수리 모임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오랫동안 형식과 절차 중심으로 드려졌던 다른 교회들의 예배와는 달리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온전히 드려지는 감사의 예배이며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이 느껴지는 진한 감동을 주는 신령과 진정이 담긴 예배였습니다. 첫 예배를 잊을 수가 없네요. 방황하고 돌아온 탕자를 받아준 아버지의 평안함 속에 드려진 감사의 예배였습니다.
바울사도가 너희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 했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고 그런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산제사로 온전히 드리는 예배에 두려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참예배의 거룩함과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예배가 어떤 예배인지 깨달은 다음부터는 저를 산 제사로 드리고 싶은 참 예배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잘못된 모습을 보면서 쉽게 판단하거나 정죄하던 모습들이 없어지고 다른 사람들의 눈 속의 티보다 제 눈 속의 들보를 먼저 보고 회개하는 삶의 습관이 자리 잡히면서 마음속의 원망이나 불평, 비판하는 마음들이 제거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전적인 순종은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모습은 철저히 자신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의 본을 보여주셨지만 그분의 삶을 좇아가기에 제 마음은 너무 높아 있었고 여전히 이기심과 사랑이 부족하다고 여겼습니다. 낮아지기를 원했고 가난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렇게 잘 안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며 저의 죄를 자복하고 더욱 정결하게 되기를 소망하고 예수님처럼 살고 싶은 저에게 어려운 질병의 고통이 찾아 왔습니다.

어느 날 건강검진을 통해 유방암 2기 말 진단을 받고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세 천사의 현대복음과 함께 제가 받아들인 음식물의 개혁으로 가정 식단도 건강한 음식들로 변화를 이루어 저의 건강도 나날이 좋게 변화되고 있다고 생각해 왔었기 때문에 유방암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내게 이런 고통이 왜 왔을까? 물음표를 마음속에 단 채로 한 달을 기다려 수술을 받았고 회복되자 항암 치료를 8차, 방사선 치료를 33회 받아야 했습니다. 항암 치료는 정말 받기 힘들었습니다. 전 과정이 고문받는 것과 같은 고통이 있었습니다. 항암 주사 후 다음 날부터는 극심한 구토증과 구역감이 3일간 지속되며 증상완화를 시키기 위해 하루 한 번의 복용 약을 주지만 그것의 힘은 미약했습니다. 4일째부터는 모든 점막 세포들이 파괴되기 시작하여 물을 먹어도 속이 따갑고 아픕니다. 그러나 파괴된 세포들이 빨리 회복되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했기에 먹는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서서히 면역세포들과 골수세포들이 파괴되면서 빈혈증상과 온갖 감염 위험에 노출되어 외부출입을 하기가 곤란해집니다. 가벼운 산책을 하더라도 잘못하면 감기가 올 수도 있고 혹시 열감기로 체온이 38도 상승이 된다면 shock 상태가 올 수 있으므로 바로 응급실로 가야 했습니다. 한번은 대상포진이 심하게 번져서 2주간 항암을 중단하고 대상포진 치료만 해야 했습니다.

고통은 유익이라고 했지만 제 마음은 그 고통을 잘 견딜 만큼 준비되지 않았었습니다.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며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었지만 말씀은 항상 제 곁에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위로가 되었고, 외로울 때 유일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던 것은 같은 믿음의 형제자매님들의 격려와 위로였습니다. 어둠과 낙담 속에 있을 때 함께 기도해 주시는 형제자매님들의 기도가 더할 수 없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6개월이란 시간이 흘러 항암이 끝나고 방사선 치료는 매일 병원에 가서 10초 정도 방사선을 쪼이는 치료였습니다. 매일 병원에 가야한다는 번거로움 외에 큰 고통은 없었지만 다른 세포들을 파괴하기도 하는 치료라서 여전히 두려움 속에 33회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내적으로 많은 고민과 고통 속에 1년 동안의 치료를 끝내고 주변에서 지켜보던 가족들과 저는 고통의 긴 터널을 안도의 마음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점차 회복되며 2주, 3주 만에 나가던 모임에 다시 전처럼 매주 출석을 하면서 다시 마음과 정성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항암 후유증으로 눈도 침침했고 약간의 우울증에 기억력도 많이 손상되었습니다. 관절 마디마디에 통증이 생겼습니다. 항암을 무사히 끝냈지만 암에 대한 두려움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운동과 철저한 식이요법이 저에게 남겨진 큰 과제였습니다. 저에게 허락된 고통의 시간을 받아들이기 힘겨웠습니다. 제가 그 고통의 의미를 알았다면 그 과정들을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마음의 숙제를 남겼지만 하루하루 말씀을 가까이하며 마음의 상처들이 빨리 치료되고 고통의 시간들이 잊혀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얼마 동안 고통의 흔적들이 제 안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이 흘러 저에게 일어난 변화들을 보게 되면서 제가 겪은 고통의 의미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마음, 하나님께 어떤 댓가를 바라지 않는 온전한 헌신의 마음, 저의 마음은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온전한 굴복과 가난한 마음이 제 안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조용히 묵묵히 따라갈 수 있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이라 했고 가시밭길이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의 발걸음을 제 발걸음인 것처럼 따라갈 수 있는 마음,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할 마음이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제 세 천사의 기별과 영원한 복음을 경험한 자로서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새겨주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믿음을 저의 삶에 실현 시키며 매일 매일 자아의 굴복과 죄를 철저히 버리는 삶, 또한 아직 기별을 받지 못한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영원한 복음이 전해지는 일에 저의 모든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온전히 헌신할 마음이 제 안에 어느덧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저에게 허락된 고통들은 제 안에 아직도 버려지지 않았던 죄들을 녹여내 주었었습니다. 병으로 고통받았던 시간은 하나님과 합하지 않았던 마음들이 제거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일은 아직도 제 안에서 매일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신 모든 과정들을 더듬어 생각해보면 감사의 눈물이 복받쳐 옵니다.

진리탐구_144,000인의 하나님의 목적과 사명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14:7)

1) 영원한 복음이란?
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나.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다.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
하나님의 심판의 교훈은 침례 요한의 외침을 상고해 보면 그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침례 요한은 그 당시 유대 백성들에게 “회개하라!” 외쳤는데 이것은 천국이 가까워졌으므로 타작 마당을 정하고 추수하시겠다는 말씀을 전하는 내용으로 이는 흥미롭게도 마지막 세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진실로 현실적으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입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마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

이와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라는 교훈의 말씀이 바로 144,000인들이 세상을 향해 다시 전할 “영원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쉽게 말씀드린다면 이 모든 교훈은 회개와 구원과 심판에 대한 내용이며 “영원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세상에 다시 전해질 변질되지 않고 참 복음인 “영원한 복음”의 외침의 소리를 통해 하나님께 경건하였던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널리 전해지고 있는 바벨론의 교리와 음행의 가르침과 우상숭배에서 깨닫고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시기가 끝나기 전 하나님의 마지막 사랑과 자비의 시간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 4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아모스 8장 11절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예레미야 8장 20절
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오늘날 세상의 바벨론인 땅의 짐승과 바다의 짐승은 몇이든 다 죽이는 참혹한 핍박과 만행을 자행할 것입니다.

이런 환란과 핍박을 견딜 수 있는 믿음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자신을 주 앞에 굴복하고, 주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죄에 대한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 나올 수 있는 각자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국에는 이런 사람들만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습니다. 경건하게 사셔야 합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세상이 주는 평안하고 안전한 영생의 길에 안주하지 마시고, 계속해서 순례의 길을 가시라는 것입니다.

144,000인은 마지막 시대에 영원한 복음을 다시 전할 자들이며 또한 그것이 그들의 사명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144,000인의 목적과 사명을 이해하셨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다음 호에는 144,000인의 신앙관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Healing Story_도토리와 밤

■ 도토리
가을 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도토리는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등과 같은 참나무 종류의 열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성분은 녹말이며 특수 성분으로 타닌이 들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대표적인 구황식품으로 묵이나 수제비를 만들어 먹곤 했지만, 요즘은 별식으로 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조금씩 주워 와서 도토리묵을 만들어 볼까 생각해 봅니다. 가을을 먹는 기분이겠지요?
   
* 효능
1. 해독 작용
도​토리 속에 함유되어 있는 아콘산은 인체 내부의 중금속 및 여러 유해물질을 흡수해 배출시키는데 탁월한 효능을 보입니다.
2. 항산화 성분인 타닌
도토리의 떪은 맛은 항산화 성분 가운데 하나인 타닌이라는 성분 때문입니다. 타닌은 체내에서 지방 흡수를 억제해 주고 중성지방 분해를 촉진하여 혈관 건강을 유지해 준다고 합니다.
3. 지혈 작용
도토리는 하혈과 혈통을 멎게 해주는 효능이 있어서 이유 없이 자주 코피를 흘리거나 잇몸에서 피가 나는 경우에 좋다고 합니다.
4. 생리통 완화
도토리는 따뜻한 성질을 가진 음식 중에 하나로 평소 생리통이 심한 분이나 몸이 차가워 냉증으로 고생하시는 여성분들에게 권해드립니다. 
5. 피로 회복 및 입맛 개선
도토리는 피곤에 지친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고 떨어진 입맛을 돋워줍니다.
6. 위장기능을 촉진
도토리는 위와 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설사를 멈추는 데 도움을 줍니다.
7. 항암 효과
도토리는 암세포의 생성을 막거나 암세포를 제거하는 건 물론,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 항암 작용을 합니다. 실제 이런 도토리의 항암 효과는 과학 기술처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가 있습니다.

* 도토리 가루로 도토리묵 만드는 방법
도토리가루는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분말 형태이기 때문에 편식이 심한 아이들이나 도토리의 떫은맛을 싫어하는 사람들 역시 부담 없이 드실 수 있습니다. 도토리가루를 이용하여 간편하게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어보면 어떨까요?
1. 도토리가루와 물을 1:6 비율로 섞어준 뒤, 반나절 정도 가라앉혀줍니다.
2. 위에 뜬 물은 버리고 냄비에 옮겨줍니다.
3. 센 불에서 한 방향으로만 묵을 휘저어줍니다.
4. 묵이 어느 정도 뻑뻑해지려고 하면 소금을 약간 넣고 중불로 줄여줍니다.
5. 묵의 형태가 보이면 참기름과 식용유를 약간 넣고 좀 더 저어줍니다.
6. 완성된 묵은 그릇에 담고 뚜껑을 살짝 열어둔 체 식혀줍니다.


■밤
한 번씩 찬바람이 부는 날이면 군밤 생각이 절로 납니다. 모닥불 위에 밤을 올려놓으면 밤이 구워지는 달달한 냄새와 톡톡 튀며 갈라지는 소리에 혹시 밤이 튀어 올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익어가는 밤을 기다렸습니다. 올해도 집 앞에 있는 밤나무에는 밤송이가 탐스럽게 달렸습니다. 셀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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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성성분
밤은 당질이 35% 내외로 많고 그중 약 50%가 전분입니다.
당질- 포도당과 자당, 펜토산과 덱스트린
무기질로- 칼륨이 많고 칼슘, 인, 철분 등도 적절히 들어 있습니다.
비타민- 비타민A, B1, C 등이 함유되어 있는데 특히 견과류에서 부족한 비타민C가 풍부하여 피로회복, 감기 예방, 피부미용 등에 좋습니다. 특히 비타민 C는 70~100mg 정도로 포도, 토마토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견과류 중에선 가장 풍부하다고 합니다. 또한 껍질이 두꺼워서 구워도 좀처럼 손실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타- 밤의 속껍질에는 소량의 타닌이 있어 떫은맛이 나는 원인이 됩니다.

* 효능
1. 위장 기능 개선
밤의 과당에는 위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성분이 들어 있어서 장기간 복용하면 위장 기능이 활발해져 소화력이 강화된다고 합니다.
2. 설사, 배탈 치료
배탈이나 설사가 심할 때 군밤을 씹어 먹으면 냉한 속이 따뜻해지면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비가 있거나 몸에 열이 많은 경우에는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오히려 건강이 좋지 않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3. 천연 영양제
"밤 세 톨만 먹으면 보약이 따로 없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밤은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함유한 '천연 영양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9월 초순부터 10월께에 수확하는 햇밤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 5대 영양소를 고루 갖춘 완전식품입니다. 밤 100g에 들어 있는 비타민 B1의 함량은 쌀의 4배나 되며, 인체의 성장발육을 촉진하는 비타민 D의 함유량도 많습니다. 더구나 밤은 껍질이 두껍고 전분이 영양분을 둘러싸고 있어서 가열해도 영양 손실이 적으므로 겨울철 영양 간식으로 적합한 식품입니다. 그러나 밤에는 전분이 많아서 열량이 생밤 100g당 162kcal에 이를 정도로 높으므로 살이 찌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근력 강화 
밤에 함유되어 있는 양질의 단백질과 탄수화물은 근력을 키우고 근육을 생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성장기 아이들의 신체 발육에 좋으며 운동선수 등 근육을 많이 쓰는 사람들의 근육통이나 사지 무력감을 치료하는 데도 효과적입니다.
5. 항산화제
밤의 속살이 노란색을 띠는 것은 카로티노이드라는 색소 때문입니다. 카로티노이드 성분은 우리 몸의 면역력을 향상시켜 주기 때문에 여러 질병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또한 항산화 물질인 카로티노이드는 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노화를 저지시켜준다고 합니다.
6. 피부 미용
밤에는 비타민C, B1 성분이 다량 들어있어서 피부를 매끄럽고 윤기 있게 만들어주어 피부 노화 방지에 좋습니다. 또한 밤의 속껍질을 잘 말려서 곱게 가루를 낸 후에 꿀과 함께 섞어서 팩을 하듯 얼굴에 발라주면 노폐물 및 각질 제거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7. 기타
밤은 생활 속에서 구급약 역할도 합니다. 차멀미가 심할 때 생밤을 씹어 먹으면 증상이 완화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칼처럼 날카로운 도구로 상처를 입거나, 피부병 및 벌레에게 물렸을 경우에는 생밤을 씹어서 상처에 붙이면 해독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밤에는 지혈성분과 함께 독소를 완화시켜주는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회사_왈덴시안 한 그리스도인의 순교 조지 와그너

에메리치(Emmerich) 사람인 조오지 형제는 바바리아(Bavaria)의 뮈니치(Munich)에서 네 가지의 신앙문제로 체포되었다. 첫째, 성직자는 죄를 용서할 수 없다. 둘째, 사람은 하나님을 하늘에서 내려오게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셋째,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는 성직자가 제단 위에 얹어 놓은 빵이 아니라 그것은 단지 주님의 빵에 불과하다. 넷째, 물세례는 아무런 구원의 능력이 없다. 조오지는 이 항목들을 철회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그는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왕은 그를 불쌍히 여겨 개별적으로 찾아가 간절히 훈계하면서, 평생 자신을 친구로 불러도 좋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래서 왕의 신하는 그에게 철회할 것을 촉구하면서 그렇게 하면 그에게 많은 것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감옥에 찾아와서 그가 철회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아내와 자식이 내게 참으로 중요하지만, 또한 왕이 그의 영토를 다 준다고 해도 나는 결코 이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하였다. 많은 성직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설득하였으나, 그는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려주신 것을 고수했다. 그러므로 결국 그는 화형을 선고받았다.

처형관의 손에 넘어가 도시 광장을 통과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늘, 나는 온 천하에 나의 하나님을 고백할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얼굴은 결코 창백해지지 않고 그의 눈은 결코 두려움의 흔적도 없이 당당하게 웃으면서 불을 향해 걸어갔다. 처형관은 그의 몸을 사다리에 묶고 목에는 작은 화약 봉지를 매달았다. 그러자 그는 말하기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질지어다.” 그리고 그는 웃으면서 그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사를 고하고는 처형관의 손에 의해 그의 몸은 불 속에 던져졌다.
이 일은 1527년 2월 8일 일어난 일로서 그의 영혼은 행복하게 주님의 손에 드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센리치(Eisenreich von Landsberg)라는 이름의 주 장관은 말을 타고 처형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른 형제들을 체포하려다가, 그 날 밤 갑작스런 죽게 되어 그다음 날 아침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진노로 보였다.

또 한 사람의 왈덴시안 벨사살(Balthasar Pacimontanus)은 유아 세례를 반대한 이유로 1527년 비엔나에서 화형을 당했다.
그리고 멜카이어는 조오지(George Blaurock)의 동료로서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복음 안에서 그를 섬기는 자였다. 그는 드레흐(Drache)에서 믿음과 거룩한 진리를 고백한 것 때문에 화형선고를 받았다.

채식요리_견과 쟁반 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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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Letter_그리스도의 대사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명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멸망해 가는 영혼들을 파멸에서 구원하기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와 의를 얻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영혼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바르게 평가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서 동정을 받으려고 하는 대신에,
우리는 자아를 완전히 잊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하지 못한다면,
영적인 식별력과 살아 있는 경건의 부족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수고했어야 할 사람들의 영혼들을
우리의 손에서 요구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사역을 하는 모든 일꾼들이
은혜와 지혜를 갖게 하기 위한 준비와,
일꾼들이 모든 이들에게 알려지고 읽히는
살아있는 편지가 되게 하기 위한 준비를 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도록 주님께서 계획하신 바로 그것을
경계와 기도 가운데 성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의무를 신실하고 정성 들여 행하고,
마땅히 할 만큼 영혼들을 돌아보며,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로 가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열심 있는 경고와 간청,
멸망 받을 사람들을 위한 부드러운 영혼의 관심을 가지고
우리는 그리스도께로 영혼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형제자매들이
혹여 성령님을 슬프게 하는 것은 심각한 일이며,
인간 대리자가 자신의 힘으로 일하고자 하고,
십자가가 너무 무겁고 자아 부인은 하기에 너무 큰 것이어서
주님의 봉사 사역에 들어가기를 거부할 때,
성령님께서는 슬퍼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각 영혼에 거하려고 애쓰고 계십니다.

만일 성령님께서 영광스러운 분으로 환영받으신다면,
그분을 모신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작된 선한 사역은 완수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