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님을 위해 치르는 값

예수님을 위해 치르는 값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잃어버린 지구를 되찾기 위해 하늘의 모든 보화-예수님의 고귀하신 생명, 희생, 고난, 수고, 관심, 시간, 구원을 이루시는 성령의 역사, 천사들의 섬김과 수고-가 바쳐졌습니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치르신 대가는 엄청났습니다. 더 이상 쏟아부을 수 없는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섬기기로 선택한 우리도 주님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습니다.
그 값은 무엇일까요?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대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치르는 적은 대가가 얼마나 큰 가치의 선물을 가져다 주는지 깨닫게 되고, 그래서 더욱 감사함으로 열심히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생애의 빛 편집실에서

비용을 계산하라

비용을 계산하라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
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 14: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오는 제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목숨과 가족과 형제들까지도 버리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 대가나 비용을 치를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대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그 놀라운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모든 비용을 치르고,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모든 결과를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사람은 주님을기꺼이 따르는 사람입니다.


하늘이 들인 비용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 3:16).
죄로 잃어버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이 들인 비용을 이 성경절처럼 잘 나타내는 구절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불멸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을 속전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인간을 구원하시는 무한한 사랑을 세상에 부어 주는 일에 자원하여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고후 5:19)셨습니다. 무한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의 고민과 갈보리의 죽음으로 우리의 구속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밖에는 아무도 우리의 구속을 완성시킬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품에 있는 자만이 능히 아버지를 나타낼 수 있었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아는 자라야 그것을 드러낼수 있었습니다.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그리스도께 서 드리신 무한한 희생이 아니고는 잃어버린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늘의 모든 보화가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갚으신 대가, 그 아들을 주사 우리를 위하여 죽게 하신 하늘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은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어떤 축복과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도 요한은 멸망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보았을 때에 찬탄과 존경의 마음이 충만해져서, 이 사랑의 위대함을 표현할 적당한 언어를 찾지 못하여 “보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
범죄로 인해 인류가 사탄의 백성이 되었지만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을 믿음으로 아담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체이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로 끊을 수 없는 줄로 그 자신을 인류에게 붙들어 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히 2:11)시고, 아버지의 보좌 앞에서 인성을 쓰신 우리의 맏형님이시요, 우리의 희생 제물이요, 우리의 중보자로서 서 계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인자되신 예수님! 하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치른 대가와 쏟아부은 비용은 이루 형용할 수 없고 계산이 불가능한 놀라운 것입니다.


비용을 계산함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 14:26).
그리고 이어서 당신을 따르기 전에 먼저 그 따르는 비용을 계산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눅 14:28).
예수님을 섬기기로 택하고 그분의 뒤를 따르기전에 주님은 우리들에게 그 값을 헤아려 보라고 요청하십니다.


여기서 먼저 “미워하다”라는 단어가 사용된 배경을 연구해 보자면, 이 말은 신명기 21장 15절에 사용되었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일부다처에 대한 것으로, 고전 번역은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는다”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말하려는 핵심은 남편이 다른 아내들보다 한 아내를 더 좋아할지라도, 그는 덜 사랑받는 아내들에게 공평하게 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현대적인 의미로 현대성경들은 사랑을 가장 사랑하는 ‘총애’로, 미움을 ‘마음에 안 드는’이라는 의미로 번역합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절이 분명하게 의도하는 것은 애정의 정도이지 진짜 미워하거나 증오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문맥에서 ‘미움’은 진짜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덜 사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관점은 단순하지만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 중에서 주님을 첫째로 하고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만약 가족이 우선이고 그리스도가 둘째라면, 만약 우리의 목숨과 안일과 평안이 먼저이고 예수님이 둘째라면, 만약 재물과 세상과 명예가 첫째이고 예수님이 둘째라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인이 되실수가 없는데, 그것은 우리가 여러 주인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그대는 나와 세상 중 무엇을 택하겠느냐고…. 내가 하늘의 모든 영광과 안일을 다 버리고 그대를 위해 사망과 고난과 슬픔을 택하였는데, 그대는 나를 위해 모든 것
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만일 그대가 친구나 형제자매나 부모나 가옥이나땅을 나보다도 더 사랑하고 그런 것들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대는 내게 무가치하다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남김없이 다 주셨으므로, 우리를 위해 다 바치셨으므로, 우리도 주님을 위해 남김없이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값으로 산 바되었으므로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것을 되돌려드리는 것은 마땅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마음 속으로 먼저 하늘이 우리를 위해 들인 비용을 명상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위해 드릴 비용의 계산이 너무도 손쉽게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입
니다.

“주님!
저를 위해 바치신 고귀한 희생이
너무도 크고 감당할 수 없어
저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7).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스승 되신 예수님의 생애를 똑같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이 당하셨던 동일한 고난을 겪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이 하셨던 똑같은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면 나처럼 그대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따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온 몸과 마음과 힘을 다해, 주님께 모든 것을 바치며 따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설명하신 십자가의 길
예수께서는 당신의 희생의 생애가 제자들이 따라야 할 생애의 모본이 됨을 설명하셨습니다.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사람들을 제자들과 함께 가까이 부르시고 그분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십자가는 로마의 세력을 연상시켰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잔인하고 굴욕적인 형태의 사형 기구였습니다. 당시의 흉악한 죄수는 사형 장소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도록 되어 있었고, 종종 그들의 어깨에 십자가를 메게 할 때에 광포하게 항거하다가 마침내 그 고문의 기구가 그들에게 메워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이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비록 희미하게 밖에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가장 치욕적인 수욕, 곧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까지 그들이 복종해야 할 것을 지적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보다 더 완전한 자아 포기를 묘사한 말씀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하여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분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상태에 있을 동안에는 하늘을 계실만한 곳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비난과 모욕의 생애를, 그리고 치욕의 죽음을 당하기 위하여 하늘 궁정을 떠나셨습니다. 값을 헤아릴 수 없는 하늘 보화로 부요하던 그분이 가난하게 되신 것은 당신의 가난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십자가 위에서까지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구원하러 오신 사람들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잊어버리셨습니다. 우리 구주께서 나타내신 사랑과 관심에 비교해 볼 때,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냉랭하며, 우리의 관심은 얼마나 나약합니까! 예수님은 우리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셨는데,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치지 않으려고 핑계 댈 것만 찾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의 구주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치욕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지만 위대한 구속사업에 종사하시는 동안 우리 주님은 배척과 멸시와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자기를 부인하는 것
십자가는 죽으러 가는 사람이 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못박힐 것을 지고 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철저한 자기 부정, 자아 부인의 길을 걸으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뜻, 자신의 감정, 자신의 기호, 욕심, 욕망을 포기하고 대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 하나님의 방법에 맞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왜 십자가는 못박는 일을 수반합니까? 그것도 스스로는 못박을 수 없고 타인이 못을 박아주어야 하는 일이 왜 수반되어야 합니까? 마치 로마 군인이 예수님을 못박았듯이…
십자가를 지는 일에는 자신이 스스로 죽는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죽도록 연단시키는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자아를 못박아 죽여주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통해 괴롭힘을 받게 되거나 자존심이 깎여지게 되고, 사람들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기도 하며, 사람들에 의해 따돌림을 받고 외로워지게 되는 일을 겪게 됩니다. 같지 않은 환경과 상황들 속에서 우리 자신들이 부딪히면서 깎이고 자아가 낮아지고 뿌리 뽑히는  일들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우리로 예수님의 형상을 더 닮도록 만들어주는 고마운 일들입니다.

자기 부인이란 감정이 앞설 때 이성으로 정신을 다스리고 주님께 도움을 구하여 온유함과 차분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이란 비난하고 흠 잡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고, 말을 잘 듣지 않는 거친 아이에 대하여 인내하는 것이며, 자신을 상냥하게 대하지 않는 가족들이나 사람들에게 친절한 것입니다.
자아를 부인하는 것이란, 다른 사람들이 실패할 때 의무의 자리에 서고, 할 수 있을 때는 언제 어디서나 책임을 지되, 칭찬이나 사람들의 눈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불굴의 충성심으로 이루어야 할 사업을 하는 것이며, 주님을 위하여 모든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 자신을 찬양하고 싶을 때 침묵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의 입술이 그대를 찬양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아 부정은 우리 자신을 섬기고 기쁘게 하고자 하는 성향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비록 동료들이 그대의 노력을 결코 알아주지 않거나 신임을 주지 않을지라도 계속해서 충실하게 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받아들인 진리가 삶의 확고한 원칙이 되어 있는지 주의 깊이 살펴보고 확인하십니까? 기도의 골방을 떠날 때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함께 모시고 나갑니까? 여러분의 신앙이 여러분의 입술의 문을 지키고 있습니까? 마음은 여러분의 가정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동정과 사랑으로 이끌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성경의 진리를 더욱 분명히 깨달아서 그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비취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말은 은혜로 고르게 되고, 행실은 그리스도인의 고결함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이 질문들에 대한 좋은 답이 여러분의 영혼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아 부인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고난을 견디는 것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고난과 핍박을 견디는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십자가와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 영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명은 오직 고난을 통하여서만 성취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앞에는 슬픔, 고난, 투쟁의 생애와 수치스러운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온 세상의 죄를 지시고 아버지의 사랑에서 끊기는 일을 견디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자신을 범죄한 인류를 위한 대속물로 바치시겠다고 결정하셨을 때에 그분은 앞으로 당하셔야 할 고난을 다 아셨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받으실 고난을 기꺼이 받으시겠다고 결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 받을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 곧 그분의 앞에 있을 구원 얻을 자들을 볼 그 즐거움을 인하여 모든 괴로움과 고난을 견디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세상의 모든 인류의 죄의 짐을 지시고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짐이 그분의 어깨를 누르자, 고통 속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 전에도 벌써 그분 앞에 있을 고난을 생각하시고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음성을 발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헬라인 몇명이 주님을 뵈러 성전뜰로 찾아왔을 때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의 때를 기다리는 가운데 이미 쓴 잔을 마시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인성은, 하나님에게서조차 완전히 버림받은 것으로 보일 고난의 때, 곧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모두가 생각할 그 고통의 순간에 대한 생각으로 움츠러들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극악한 죄수 취급을 받으며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죽음을 당할 일 때문에 위축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그분은 곧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서만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오직 이 방법으로써만 구속받을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뇌에 동의하셨으며 그 희생을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늘의 임금께서 죄짐을 지는 자로서 고통을 받기로 동의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주님의 고난과 고통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를 때에 친구나 친척들,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불평이나 후회 없이 인내와 겸손으로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해 사람들의 손에 들려진 핍박의 칼도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를 때에 그분의 고난을 함께 당하도록 초청을 받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도록 부르심을 받는 사람은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가장 높은 특권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함께 진다는 것보다 더 큰 영예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
우리는 자아를 부인하고 주님을 시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아를 위하여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 욕을 돌리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혹 그들이 주님을 매우 열심히 섬길지 모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모든 일에다 자아라는 실을 섞어 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기심이라는 씨앗을 뿌리기 때문에 마침내 썩어질 것을 거둘 것입니다. 자아를 섬기는 봉사는 그 모습이 다양합니다. 그 모습 중 어떤 것은 별 해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표면적으로 착한 척 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지만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는 못합니다. 그들의 봉사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업은 방해를 받습니다. 하는 일에다 자아를 개입시키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자아를 부인하고 주님을 시인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대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그대를 시인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대는 세상에서 나의 증인이며 나의 은혜가 세상을 치유하기 위하여 흐를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나도 하늘에서 그대의 대표자가 될 것이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대의 결함 있는 품성을 보지 않고 나의 온전함으로 옷 입은 그대를 보신다. 잃어버린 자를 위하여 바친 나의 희생에 참여함으로써 나를 시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받은 자의 영광과 기쁨에 참여하는 자라는 시인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시인하고자 하려면 우리 속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지 않은 것을 전해줄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교리를 유창하게 말하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반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온유함과 사랑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그분을 시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에 배치되는 정신은 그 말하는 바가  어떠하든지 그분을 부인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험담을 하거나 어리석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진실되지 못하고 불친절한 말로써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있습니다. 생애의 의무를 회피하고 죄된 향락을 추구함으로써 그분을 부인할 수 있고, 세상을 본받음으로써, 무례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사랑함으로써, 자아를 정당화시킴으로써, 의심을 품고 부질없이 걱정하고 흑암 중에 거함으로써 그분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방식으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계시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그분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것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결점과 실수와 약점을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모든 인간이 넘어지기 쉽고 타고난 악한 본성 때문에 초래되는 실수가 드러나도 관용을 베풀고 참습니다. 사랑이란 단어는 압제받고 억울하게 고소당하며 핍박받을 때 조용히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랑은 항상 모든 관계에서 올바르고 적절하고 조화로운 것을 만드는데, 그것은 사랑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의 행복과 기쁨을 해치거나 방해하는 모든 것을 피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심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사람은 자아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완전히 몰두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 마음 속에 임재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하늘의 사랑의 근원과 연결되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버리셨습니다. 비천한 구유에서부터 십자가까지 우리도 그분을 따라갑시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나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멸시 받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그 잔을 마실 수 있습니까? 그 침례를 받을 수 있습니까?

훈련을 받으라

훈련을 받으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전 9:25).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로서의 중요한 과정이 있는데, 그것은 훈련입니다. 제자가 되는 대가는 훈련을 포함합니다. 모든 충동, 생각, 야망, 욕망은 예수님께 굴복되어야 합니다. 또 모든 소유, 재물, 육체적이거나 비가시적인 모든 재능과 능력, 가치 있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굴복시키지 않고 성령님의 통제 아래 바쳐지지 않은 것들은 불가피하게 우리의 우상이 되거나, 우리를 배도로 이끌 가능성이 있습니다. 모든 감정과 정서, 정신적이고 지적인 경향, 그리고 식욕과 정욕 등은 성령의 지도 아래서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성격적인 결함과 성품의 결점들, 일상생활에서의 전반적인 삶에 나타나는 연약성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영적 훈련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 9:24).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 12:1).

바울은 예수님을 섬기고 따르는 일에 필요되는 자제와 절제와 지치지 않는 열심의 중요성을 생생하게 감명시켜 주기 위해 이것을 유명한 경주에 비교하였습니다. 이 경주는 당시 헬라인들과 로마인들 사이에 성행하던 달리는 경기였습니다. 사람들이 이 경주에 참여하려면 먼저 엄격한 준비 훈련을 갖춰야 했습니다. 해로운 식욕의 방종이나 지적 혹은 육체적 활력을 저하시킬 어떤 것들이라도 엄격히 금지되었고 엄격하고 힘든 훈련을 받았습니다. 체력을 저하시키는 모든 방종은 금지되었고 훈련 과정에 돌입한 자들에게는 술이나 사치한 음식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힘과 건강한 활력과 견인 불발 및 단호함을 증진시키는 대신에 쇠약하게 만들기 때문이었습니다. 힘과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근육의 강인함과 유연성이 필요하고 신경들이 잘 통제되어야 했으므로 그들은 체력을 최고의 수준에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연마했습니다. 이 훈련은 혹독하고 힘들었고 경주에는 큰 위험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경주에 참여하기 위해 극한 훈련에 몰두했습니다. 이 경주에 많은 목격자들과 왕들과 귀인들이 참석했고 수많은 군중들이 승리한 한 사람에게 박수갈채와 칭송을 돌렸습니다. 큰 부와 명예가 이긴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수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 버릴 보잘것없는 화관을 얻는 것이 가장 큰 영예로 여겨졌습니다.
만일 육신의 경주에서 결국 시드는 승리의 월계관과 세상에서 곧 없어질 명예와 보상을 받기 위해 그렇게 힘든 훈련을 받는다면, 영원한 보상과 불멸의 면류관이 달려 있는 영적 싸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식욕과 정욕을 이성과 하나님의 지배 아래 두는 것은 얼마나 더 중요한 일입니까!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을 엄격하게 훈련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생각, 감정, 습관과 정욕은 가장 엄격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오락과 사치와 안일로 인해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의해 계발되고 성령의 지도를 받는 이성이 마음의 고삐를 잡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승리를 얻기 위하여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헬라의 경기에서, 경주자들이 결승지점에 가까워지면 최후의 달리는 그 발걸음이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은 고통스러운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결승점에 가까이 이를 때, 처음 시작할 때보다도 한층 더 단호한 결심과 열심으로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는 도중에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영적인 경주에 걸린 운명이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승리자가 되는 것은 오로지 오랫동안 인내하는 일, 자아를 자제하는 노력, 고된 훈련, 엄격한 투쟁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광야의 유혹을 승리하신 예수님이 승리하신 것처럼 인내하고 자제하며 단호하게 승리한다면 영생의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말씀에 우리를 비춰보며 순종하는 인내를 훈련해야 합니다. 육신의 충동이 일어날 때 그것을 주님께 굴복하고 포기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구하면 하늘의 큰 축복과 은혜가 우리 속에 임하여 우리 속에서 이 일이 가능해지도록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2).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히 12:4).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영적 싸움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투쟁의 생애입니다. 이 세상의 악의 임금과 겨루는 영적 싸움터에 우리는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싸움의 장소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 인류가 지금껏 싸운 가장 큰 싸움은 자아를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이겨야만 하는데, 이것은 모든 싸움 중에 가장 힘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길과 잘못된 습관을 단호하게 대항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싸우셨습니다. 그분은 어둠의 주관자들과 전투를 치르셨습니다. 그 싸움은 겟세마네와 십자가에서 절정에 도달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도 영적 싸움에 있어서 죄와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습니다.

영적 싸움의 본질
하나님을 마음의 보좌에서 몰아내고 인류의 본성을 그의 악한 형상으로 형성하는 것이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그는 모든 죄악의 성벽을 격발시키고 정욕과 야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는 이 모든 권세와 존귀와 그리고 재물과 죄악적 쾌락을 주리라고 유혹합니다. 이렇게 하여 사탄은 인간의 기능을 타락하게 하고 그들을 죄의 종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죄악의 세력을 대항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12,13).

선과 악 사이에 계속되는 투쟁은 시대가 갈수록 점점 더 맹렬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힘써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영적 진보를 방해하는 모든 애지중지하는 방종은 끊어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오른눈과 오른손이 우리를 실족케 하면 그것을 빼어 내버리거나 찍어 내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전 4:9)고 말합니다. 당시 이 경주는 왕과 귀인들과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았습니다. 이것처럼 세상의 많은 군중들은 인생의 이 시합, 곧 그리스도인 싸움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주의 왕되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그리고 무수한 하늘의 천사들이 이 경주의 구경꾼들입니다. 구름같이 많은 증인들이 우리 그리스도인 경주를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누가 승리자가 될 것인지 그리고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인지를 알기 위하여 열심히 주시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인 경주에 참여한 자들의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 그리고 고통스러운 노력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승리하는 길은
우리는 사탄의 유혹과 지배권을 가지려고 애쓰는 악한 욕망과 습관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수 있습니다! 의와 불의의 쟁투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음으로써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자아와 또 자신의 의지와 습관을 정복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의 동의와 협력이 없으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협력하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유한한 우리의 의지는 무한하신 분의 의지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합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려고 한다면 인내와 끈기와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매 발걸음마다 열렬히 기도하며 자아를 낮추는 일 없이는 승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능력에 억지로 협력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자발적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보다 백 배나 더 큰 강도로 누가 우리를 강요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하늘에 적합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의 목적과 욕망과 성향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려고 하는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 일을 이루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고후10:5)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기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과 합치시키고 날마다 시간마다 그분과 협력하여야 합니다. 자신을 살리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자아와 교만과 자부심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요구된 대가를 즐겨 지불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뜻을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시키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성령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분께서 꼴 지으시도록 자신을 굴복한다면 주님 안에서 온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회개한 영혼을 모본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아지게 합니다. 성령의 감화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적대하는 마음은 믿음과 사랑으로, 자랑하는 마음은 겸손으로 변화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변화가 생길 때에 천사들은 환희의 노래를 터뜨리며,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한 여러분을 보시고 즐거워하실 것입니다.

대가가 가져오는 보상

대가가 가져오는 보상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3).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치르는 대가와 비용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따른 자들이 미래에 받을 놀라운 보상과 축복에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진실된 주님의 제자들은 보상을 바라지 않고 주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진리에 감사하고, 새 삶과 새 생명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매일의 생활 속에서 행복과 기쁨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따릅니다. 그러나 인자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치른 작은 대가에 엄청난 선물과 축복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앞서 바울이 언급한 경주에서는 한 사람만 상을 받았습니다. 썩을 면류관을 위하여 경쟁하는 자들이 승리자가 되기 위해 엄격한 절제를 실천하고 고된 훈련을 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다 상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상은 오직 한 사람만 받을 수 있었습니다. 상을 받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은 상을 받는 그 한 사람처럼 충실하게 노력했을 것이며, 최고의 영예를 얻기 위하여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상을 거머쥐기 위하여 손을 내뻗었을 때, 그들보다 한 발 앞서 다른 사람이 그 탐하는 보물을 움켜쥐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싸움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경주에 참여할 수 있으며 한 사람만이 아니고 주님을 위해 싸운 사람들은 누구나 승리와 불멸의 영광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눅 18:28~30).

어느 날 베드로는 예수님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기와 자기의 동료들의 희생의 대가로 무엇을 받게 되느냐고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한 베드로의 질문은 제자로서의 합당하지 않은 정신을 나타낸 것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대가와 보상을 바라는 이 정신을 고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들은 진정한 종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정신은 품꾼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랑에 끌리어 그분을 따르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들은 바리새인적 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저희의 수고에 합당한 보수를 받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받을 보수의 다소를 생각지 말고 그분을 따르며 신뢰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는 보수에 대한 생각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봉사를 촉진시키는 동기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차적인 의미로는 보상 받을 것을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보상받는 일에만 열중하거나 우리가 행하는 의무에 대한 모든 보수를 다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보수를 바라지 말고, 보수의 여하를 막론하고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행동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이 하나님께 가납되도록 해주는 것은, 우리가 일한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일에 자원해서 바친 우리의 사랑의 마음과 충실함입니다. 모든 봉사에는 완전한 헌신이 요구됩니다. 아무리 작은 의무라 할지라도 자신을 잊고 성심 성의껏 할 때에, 그것은 이기심과 교만으로 덧입혀진 어떤 큰일보다 더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그분은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정신을 품고 있으며, 우리의 일이 얼마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는지를 주목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성취한 일의 분량보다도 우리가 일하는 동안 가졌던 사랑과 성실성을 더욱 귀히 보십니다.
진실한 일꾼들은 주님을 따르는 것과 주님을 위한 봉사의 일이 아무리 괴로울지라도 그것을 고역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신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하나님 안에 있는 기쁨이 표현됩니다. 예수님과 같이 그 입술에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요 4:34)이 기쁨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그들의 모든 수고를 가볍게 하고 결심을 견고하게 하며 어떠한 일을 당할지라도 용기를 가지고 전진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더 고상해지고,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누어주면서, 이기심 없는 마음으로 일하여 주님의 축복과 기쁨을 확산시켜 사람들로 예수님께 찬송을 돌리도록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위해 참된 봉사를 하는 모든 사람이 지녀야 할 정신과 태도입니다.

미래의 보상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각 시대를 통해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놀라운 축복의 약속들을 많이 해놓으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1~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계 22:3~5).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살 처소를 마련하시고 불멸의 영생과 면류관을 준비하셨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구원얻을 성도들을 데리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는 초라하고 미천한 가운데 오셨고 이곳에서의 그분의 삶은 고통과 고난의 생애였지만, 그분의 두 번째 오심은 완전히 그 반대일 것입니다. 그분은 이제          하늘의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분 자신의 영광과 아버지의 영광과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 안에서 오실 것입니다. 아름답고 의기양양한 승리한 왕으로서 탁월한 아름다움과 영광을 지닌 천천만만의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시면서 오실 것입니다. 가시 면류관 대신 영광의 면류관, 즉 면류관 위에 면류관을 쓰시고, 자색 옷 대신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막 9:3) 희디 흰 예복을 입으시고 오실 것인데, 그 찬란한 예복에는 “왕 중의 왕, 만주의 주”라는 이름이 쓰여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른 자들은 아름다운 하늘 본향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한 도성, 새 예루살렘 안식처를 마련하시고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도성에는 슬픔이 없습니다. 그곳에는 슬픔의 통곡, 깨어진 희망과 약속으로 인한 실망과 절망, 사망의 고통이나 질병이나 고난이 없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재능이 계발되고 모든 능력이 증가할 것입니다. 가장 높은 이상과 포부가 실현될 것이요 가장 높은 희망이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늘에는 정복해야 할 새로운 고지, 찬탄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경이, 이해해야 할 새로운 진리, 몸과 정신과 마음의 능력을 요구하는 새로운 연구 제목이 나타날 것입니다. 거룩한 자들과 나누는 순결한 교제, 축복받은 천사들과 그 옷을 어린양의 피로 씻어 희게 한 각 시대의 충성된 자들과의 조화로운 생활,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을 함께 결합시키는 거룩한 유대 관계, 이것들은 구속받은 자들이 누릴 행복의 요소들이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죽지 않을 특권을 얻은 사람들은 영원토록 창조력의 경이, 우리를 구속하신 사랑의 오묘를 결코 사라지지 않을 기쁨으로 명상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등한히 하도록 유혹하던 잔인하고 기만적인 원수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죄는 없어지고 죄의 그늘도 사라질 것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땅에서 구속함을 입은 자들은 타락하지 않은 다른 우주의 주민들의 지혜와 기쁨을 같이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더욱 풍성하고 더욱 영광스러운 앎과 계시가 나타날 것이며, 또한 지식이 발전되어 감에 따라 사랑과 존경과 행복도 증가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면 배울수록 그분의 품성에 대한 감탄은 더욱 커질 것이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속죄의 풍성한 부와 사탄과의 대쟁투의 놀라운 결과를 제시해 주실 때, 구속받은 자들의 마음은 더욱 열렬한 헌신의 마음으로 감동되고, 그들은 더욱 충만한 기쁨으로 금 거문고를 타며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사들과 합해진 천천만만의 무리는 모든 음성을 합하여 찬양의 대합창을 하나님께 드릴 것입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계 5:13).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든, 무엇을 성취하든, 무엇을 만들든 그것들은 다 일시적이어서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허무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른 사람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님을 통해 얻을 영생은 이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그 무엇보다 훨씬 가치가 있고 영원할 것입니다.

마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치르신 희생과 고난을 생각하면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상을 바라서 주님을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길이 힘들게 느껴질 때,
주님께서 주실 최후의 상급에 눈을 고정하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도록 합시다!
그러면 결국 우리는 제자가 되기 위해 치르는 대가가
아무리 크더라도 최후의 상급에 비해
그 값이 오히려 너무 싸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 하나님의 권고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에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리로다” (시 46:5).

 

권고는 주님께 속함
“내게는 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잠 8:14.

예수께서는 천부의 품성을 보이시고자 오셨고 그분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그분의 제자들을 보내셨다. 그분은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는 그분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말씀을 전하라고 우리에게만 맡기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그 일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어떠한 자라도 마음에 임하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체험하지도 알지도 못한 것을 슬퍼하며 의심하며 행할 필요가 있는가? 그대는 의의 교훈에 굶주리고 목말라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대가 만족할 수 있는 분명한 언약이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늘의 지혜의 정신을 소유할 수 있게 하셨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필요할 때 지혜의 정신을 구하기 위하여 그분께 끈질기게 조르며 기도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은밀한 것을 보여 주시고 나에게 당신을 가르쳐 주소서”라고 기도하는가? 오, 진실한 입술에서 나오는 겸손하고 열렬한 기도가 하나님의 권고를 구하고 있는가?
제자들은 예수께 와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예수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용기를 내어 예수 앞에 좋고 궂은 경험들 즉 저희의 활동의 결과를 봤을 때의 기쁨, 그들의 실패와 과오와 연약으로 인하여 맛본 슬픔을 보고하였다.



오라, 사라, 값없이 먹으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예수께서는 참되신 분이신가? 그분께서는 그가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는가? 그분께서는 그가 하신 모든 말씀을 이루신다 라고 단호하게 답하라. 그렇게 될 때 만일 그대가 그분께서 하신 모든 언약들을 믿음으로 주장하고 축복들을 받음으로써 이점을 확고하게 고정시킨다면,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영혼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된다. 비록 그대가 그분의 자녀들 가운데서 연약하고 가장 무가치한 자신으로 느낀다 할지라도 그대는 예수께서 그대에게 있어서 참된 분이시라고 하는 것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이것을 믿을 때에 그대의 모든 캄캄하게 덮는 의심들은 그것들을 만들어 낸 미혹하는 자들의 우두머리에게로 던져지게 된다. 비록 그대 안에서 불신의 말을 하도록 하는 충동이 강렬하다 할지라도 산 믿음으로써 그대는 그분을 신뢰할 것이다.
정신을 상쾌하게 한 물 즉, 바싹 마른 불모의 땅에서 샘물이 솟아나고 사막을 꽃피는 곳으로 만들고, 멸망을 당할 자들에게 생명을 주도록 흘러내린 물은 그리스도께서만 주실 수 있고, 생수로써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새롭게 하고 활력을 주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이다. 그리스도께서 내재하시는 자는 자신 속에 결코 실패함이 없는 은혜와 능력의 샘을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는 참으로 당신을 찾는 모든 사람의 생애를 기쁘게 하고 그들의 길을 밝게 하신다. 마음속에 받아들여진 당신의 사랑은 샘솟아 영생을 얻게 하는 선한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샘솟게 한 영혼만이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의로운 말과 행실에서 산 샘이 흘러 나와 그 주위의 갈 급한 자들을 활력 있게 할 것이다.
우리의 육신이 계속적으로 생명과 활력을 유지하는 양분을 받는 것과 같이 우리의 신령한 생애도 그리스도로 더불어 계속적으로 교제하며 그분께 복종하고 그를 온전히 의지하여야 하는 것이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 1:18.

확실하고 분명하며, 풍부하고 완전한 약속들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조건적이다. 그대가 만일 그 조건을 충족시키면 주님께 그분의 말씀을 이루어 주시도록 신뢰할 수 있지 않은가? 이 복스러운 약속들을 믿음의 골격으로 삼아 기억의 창고에 저장하도록 하라. 그것들 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이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히 10:23)다.
주님께서는 죄인이 회개하고, 그의 죄를 버림으로 품성의 완성을 위하여 애쓰는 그의 노력과 하나님이 협력하실 수 있게 될 때 그를 받으실 것이다. 그 약속들은 예이면서 동시에 아니 요가 아니다. 만일 사람이 조건에 따르기만 하면 그 약속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고후 1:20)된다.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의 죄를 위하여 내주신 전반적인 목적은, 사람을 구원하시되, 범죄와 불의를 통해서가 아니고 죄를 버리고, 그의 품성의 옷을 씻고,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희게 함으로 구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미워하시는 불쾌한 것을 사람에게서 제거하고자 하신다. 그러나 그 사업에 있어서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해야 한다. 죄는 버려지고, 증오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의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과 인간은 협력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의심과 불신이 들어오도록 용납하고, 실망의 태도로서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하고 그분을 세상에 잘못 나타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를 논쟁에서 사단의 편에 두게 된다.



내 멍에를 메라- 그것은 쉽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예수님과 교제하는 자들은 끊임없는 안식과 평안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분과의 동행을 멸시하고 혼자서 걸어가는가? 왜 우리는 모든 일에 그분과 의논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가지고 그분께 나와서 그분의 약속의 능력을 입증하지 않는가?
예수님께서는 근심되고 마음이 괴로운 자들, 희망이 꺾인 자들, 세속적 기쁨으로 심령의 갈급을 진정시키고자 애쓰고 있는 자들을 바라보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부르사 당신 안에서 쉼을 얻으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수고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멍에를 메라...”고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계셨다. 사람이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모든 사람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벗겨 주실 수 있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우리가 지고 있는 가장 무거운 짐은 죄의 짐이다. 만일 우리가 그 짐을 질 수밖에 없도록 버려졌다면, 그것이 우리를 부서뜨렸을 것이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에 그 짐을 지셨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짐을 지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피곤한 어깨에서 짐을 벗겨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안식을 주실 것이다. 근심과 슬픔의 짐 역시 그분께서 지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근심을 당신께 맡기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당신의 마음에 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떨고 있는 연약한 하나님의 자녀인 그대를 살펴보신다. 그대는 시험을 받고 있는가? 그분께서 건져 주실 것이다. 그대는 연약한가? 그분께서 강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대는 무지한가? 그분께서 밝혀 주실 것이다.



오라, 내가 가르쳐 주리라
“너희 소자들아 와서 내게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시 34:11.

성령께서는 우리의 어두움을 비춰 주시고, 우리의 무지를 깨우쳐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많음을 아시고 우리를 도와주신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을 따라 끊임없이 나가고 있어야 한다. 만일 냉랭함과 세속적인 것이 들어오도록 허용되면 우리는 기도할 마음이 없어지고, 힘과 지혜의 근원 되시는 분을 바라볼 용기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 자매들이여, 항상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딤전 2:8)하라. 그대의 요구를 은혜의 보좌에 상달시키고 매 시간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라.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 그대의 동료들과의 관계를 조절하고, 그대의 생애를 선한 열매가 가득한 생애로 만들어 줄 것이다.
아무도 이기심과 자존심과 자아 방종이 그리스도의 정신과 일치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회개한 모든 남녀들에게는 우리가 올바로 측정할 수 없는 책임이 지워진다. 세상의 처세훈(處世訓)과 방법이 하늘 왕의 아들과 딸들에게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자아를 정복하기 위하여, 거룩함과 하늘을 위하여 끈덕지게 투쟁하는 것은 필생의 투쟁이다. 이 전쟁에는 휴식이 없다. 그 노력은 계속적이고 끈질긴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정직은 저항할 수 없는 정력으로 구하고 단호하게 확고한 목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진실한 종교적 경험은 나타나고 심화된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계속적으로 향상하고, 지식과 능력이 증가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생명적 연결에서 오는 자연적 결과이다. 거룩한 사랑의 빛은 점점 밝아져서 원만한 광명에 이를 것이다.



주님을 의지하라
“여호와를 의뢰하며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정녕히 먹으리로다”시 37:3 (난외주석).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적게 신뢰하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또한 우리를 통하여 하실 수 있는 것을 더욱 많이 신뢰해야 한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업을 하고 있다. 그대의 의지와 길을 그분께 맡겨라. 단 한가지도 자신을 위하여 남겨 두지 말고, 단 한 가지도 자신과 타협하지 말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라.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우리 개인의 경험으로 만들지 않으면 단순히 안식일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되풀이해서 통독하고, 성경 절을 하나 하나 설명하는 것 등이 우리와 우리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해력과 의지와 애정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 말씀의 교훈이 생애의 원칙으로 바뀌어 질 것이다. 그대가 주님께 도움을 구할 때, 그대가 그분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그대의 구주를 영화롭게 하라. 모든 지혜, 모든 능력은 우리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는 오직 구하기만 하면 된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걸어가라. 하나님의 품성을 밤낮 명상하라. 그리하면 그대는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분의 선하심을 기뻐할 것이다. 그대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불타오를 것이다. 그대는 마치 영원한 팔에 안겨 있는 것처럼 높이 들려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빛으로 그대는 그대가 전에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깨닫고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자기를 따르라고 하신 후에 우리를 내버리시지 않으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온 생애를 바쳐 주의 사업에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대책을 마련해 놓으시지 않으신 어떤 경우에 처하게 되는 법은 결코 없다.



가만히 있어, 알지어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 46:10.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완전히 헌신하는 생애를 통하여, 구주께서는 끊임없는 활동과 인간의 필요에 부딪히는 일을 떠나서 휴식을 찾고 하나님 아버지와 완전한 교제를 나누어야 할 필요를 깨달으셨다. 당신을 따르는 군중들이 떠나가자 그분께서는 산으로 올라가신다. 그곳에서 그분께서는 오직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고난 당하고, 죄많고, 궁핍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므로 당신의 심령을 쏟아 놓으신다... 하나님의 훈련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과, 천연계와,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통할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세상과 세상의 풍습과 습관에 일치되지 않는 생애가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얻는 일에 있어서 개인적 경험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분께서 마음속에 말씀하시는 음성을 개인적으로 들어야 한다.
모든 다른 음성이 그치고 정적 속에서 그분 앞에 나갈 때, 조용한 심령은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확실히 구별하게 된다. 그분께서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시 46:10).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모든 활동에 있어서 효과적인 준비가 된다. 분주한 군중들과, 긴장된 생애의 활동 속에서 이와 같이 기운을 회복한 사람은 빛과 화평의 분위기에 싸이게 될 것이다. 그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새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의 생애는 향기를 발산하고, 사람들의 심령과 접촉할 수 있는 거룩한 능력을 나타낼 것이다.
이 미치게 하는 세력의 진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는 우리에게 거기서 나와서 당신으로 더불어 사귀자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잠깐 동안 하나님의 앞에서 쉬는 것이 아니요 친히 그리스도로 더불어 교제하고 그리스도로 더불어 함께 앉아서 교제하는 것이다.



내 안에 거하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계시, 곧 그분의 교훈과 일치되는 매일의 경험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우리는 고상하고 거룩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지식과 덕행에 있어서 끊임없이 향상하는 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모든 사람에게 “높이 올라오라, 거룩하게 되라, 더욱 거룩하게 되라”고 초청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인 품성의 완성을 향하여 전진할 것이다.
주님을 위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고, 깊고, 넓은 경험이 필요하다. 이미 하나님의 위대한 가족에 속한 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며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별로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에 대하여 희미하게 깨닫고서도 그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감격한다. 그들은 구주의 사랑을 좀 더 완전하고 깊게 깨닫고자 갈망한다. 그러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는 온갖 욕망을 간직하게 하라. 성령께서는 역사 하도록 용납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역사하고, 꼴 지어질 수 있는 사람들을 꼴 짖고 새로운 형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새형 상으로 조성하신다. 그대 자신을 신령한 생각과 거룩한 교제로서 계발시켜라. 그대는 하나님의 영광의 여명의 첫광선을 본데 불과하다. 그대가 주님을 알기 위하여 노력함에 따라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게 된다는 말을 깨닫게 될 것이다(잠 4:18).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사명의 결과를 보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지상 생애가 어려움과 자아 희생으로 충만해 있었지마는, 그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기뻐하셨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침으로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에게 회복해 주실 것이었다.



하나님께 예배하라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 에서 경배할지어다 대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시 99:9.

거룩한 산이나 성전을 찾음으로 사람들이 하늘과 교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외관적인 형식과 의식에 한정되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종교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종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정당하게 섬기기 위하여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이렇게 되면 마음이 정결하여지고 정신은 새로워져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새로운 능력을 얻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즐거이 순종할 것이다. 이것이 곧 참된 경배이다. 그것은 성령께서 역사 하신 열매이다. 모든 신실한 기도는 성령이 기록하시는 바 되어 하나님의 가납하시는 바가 된다. 어디서나 영혼이 하나님을 구하는 곳에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서 하나님께서 친히 그 영혼에게 나타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경배 자들을 찾고 계시다.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영접해서 당신의 아들과 딸로 삼으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시다.
예배를 위한 우리의 집회는 거룩하고, 귀중한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적이 아닌 냉정한 정신의 냄새가 나는 것은 아무것도 들어오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자비와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모였기 때문이다. 구주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2). 누가 하나님 앞에 서서 흠없는 품성, 책망할 것이 없는 생애를 위하여 탄원할 것인가?
우리의 집회들은 참으로 흥미로운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들은 바로 하늘의 분위기로 차 있어야 한다. 단순히 시간을 메우기 위하여 지루하고, 맥없는 설교와 형식적인 기도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자원해서 각자의 몫을 담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의무가 끝나면, 집회는 마쳐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 가납되는 예배의 제물이다.



내 법을 잊지 말라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 3:1,2.

누구든지 복음이 없이 하나님의 율법을 바로 소개할 수 없을 것이고 율법이 없이는 복음을 바로 소개할 수 없다. 율법은 구체화된 복음이요 복음은 율법에서 전개(展開)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율법은 뿌리가 되고 복음은 향기 나는 꽃과 그 꽃이 맺는 열매이다.
병고 침을 받은 많은 고통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5:14)고 하셨다. 이와 같이 그는 질병은 자연적,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결과라고 가르치셨다. 사람들이 만일 창조주의 계획에 일치하게만 생애 하였다면, 세상에 큰 불행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불 충성하였으므로 에덴 동산을 잃어버리고 죄로 인하여 온 땅은 저주를 받았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교훈을 따라 행하였을 것 같으면 저희의 땅은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으로 회복되었을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저들에게 토지 경작에 관한 지시를 주셨으므로 저희는 그 토지를 회복하는 일에 하나님과 협력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온 이스라엘땅이 영적 진리의 실물 교훈이 되었을 것이었다. 마치 이 땅이 하나님의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귀중한 곡식을 산출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의 도덕적 율법을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품성의 특성을 반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방 사람들까지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의 우월성을 인정하게 되었을 것이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를 받아들임으로써만 율법을 지킬 수 있다.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가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타락한 사람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자기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될 수가 있다.



너의 길을 그에게 맡기라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시 37:5.

보편적 인간성에는 하나님의 사업에 손해가 되는 이기심과 야망이 있다. 사리 사욕은 잊혀져야 한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목적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의 일꾼들과 초연한 위치에 서고자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냉정하고 경건하게 살펴서 겸손하게 의회 앞에 제출하지 않은 것을 고집스런 방법으로 말하고 기록해서도 안 된다.
미래의 세계는 그 불변의, 엄숙한 계쟁점들과 함께 가까이, 너무도 가까이, 매우 가까이 이르러 있다. 그러므로 너무도 큰 사업이 수행되어야 하고, 너무도 중요한 많은 결정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대들의 위원회에서는 선입견과 이기적 사상과 계획들, 또한 나면서 이어받은 그릇된 결함들을 개입시켜 그것들이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되고 있다. 그대들은 충동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언제나 느껴야 한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능력을 남용하여,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대들은 그대들이 받은 능력을 거룩하고 엄숙한 위탁물로 사용하고, 그대들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이므로 그대들이 하는 모든 결정을 심판 때에 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그대들의 행동이 이기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들은 어려운 시험을 견디게 될 것이다. 야망은 영적 진보를 중단시키며, 천재도 실수하게 되고, 나태는 죄이다. 그러나 모든 정당한 원칙이 존중되는 생애는 틀림없이 성공적인 생애가 될 것이다.
어린아이가 조만 간에 자기 자신의 길을 택하고 인생의 문제를 스스로가 영원히 결정지을 여행을 떠나려고 함에 임하여 우리는 확실한 안내자이시요 돕는 자이신 하나님께 아이의 신뢰를 지향시키는 데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여야 할 것인가!


네 짐을 그에게 맡겨 버리라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예수께서는 그대가 당하는 시련들과 곤란들로 인하여 놀라도록 그대를 내버리지 않으셨다. 그는 그것들에 관하여 그대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대가 또한 시련이 올 때에 버림을 당하고 압박을 받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다. 그대의 구속자 예수를 바라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견디기에 가장 어려운 시련들은 우리의 형제들과 우리의 절친한 친구들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이러한 시련들은 인내로 극복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지금 요셉의 새 무덤 안에 누워 계시지 아니하신다. 그는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사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시고 계시다. 우리에게는 그를 통하여 우리가 희망과 힘과 용기를 가지고, 또한 하나님의 보좌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자리를 소유하도록 하시려고,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구세주가 계시다. 그대가 그분을 부를 때에는 언제든지 그는 그대를 도우실 수 있으며 도우실 것이다.
만일 그대가 그대의 짐들을 홀로 지려고 시도한다면 그대들은 그것들 아래서 부서져 버릴 것이다. 그대는 무거운 책임들을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것들을 알고 계시나 만일 그대가 그분께 그것들을 맡기지 않는다면 그분께서는 그대를 해방시키지 않으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대가 그대의 영혼을 신실하신 창조주께 하듯 그에게 지켜 주실 것을 부탁할 때에 영광을 받으신다. 예수께서는 그가 그대에게 이러한 무거운 책임들을 그대의 힘으로 지는 것을 원치 아니하신다는 것을 믿으면서 그대가 그분의 자비를 신뢰하라고 하신다. 오직 믿으라. 그러면 그대는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그대가 위하여 많은 것을 행한 사람이 그대를 반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대의 원수가 되는 때에 그대는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그대가 예수님께로 부터 돌아서는 때에 그대는 거의 같은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가장 좋은 친구이시었다. 예수께서는 그의 멍에는 쉽고 그의 짐은 가볍다고 선언하신다. 그대가 이것을 믿고 있음을 나타내라. 하나님을 그의 말씀으로 붙잡으라.



지혜를 얻으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잠 4:7.

참된 교육은 과학적 지식이나 문학적 재예 (才藝)를 경시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식보다도 능력을, 능력보다도 선량을, 지적 재예보다도 품성을 중히 여긴다. 세상은 큰 지식을 가진 사람보다도 고상한 품성을 가진 사람을 더욱 요구한다. 세상은 견고한 원칙에 의하여 그 재능이 지배되고 있는 인물을 요구한다... 품성을 쌓아 올리는 일은 인류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일로써 이에 대한 부지런한 연구의 중요성이 오늘날처럼 고조되어야 할 시기는 일찍이 없었다. 이처럼 중대한 문제에 당면한 시대는 일찍이 없었고 또한 청년 남녀가 오늘날처럼 큰 위기에 직면한 일도 일찍이 없었다.
학생들이여 그대들의 학창 생활이 가급적 완전한 것이 되게 하라. 그대들은 한번밖에 거치지 못할 길을 통과하게 될 것이며 그대들에게 주어진 기회들은 너무나도 귀중한 것이다.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교훈들을 배워야 할뿐만 아니라 그 교훈들을 실천해야 한다. 따라서 그대들은 교육을 받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놀라운 진리들을 증거할 기회들을 가지게 된다. 그 귀한 모든 기회를 계발시키라, 이런 식으로 사용된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부어 주실 것이다. 그대들이 단순함과 영혼들을 위한 사랑을 간직할 때에 주님께서는 그대들을 안전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대들이 맛보게 될 귀중한 경험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들보다도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대들이 장차 어떤 지위에 부르심을 받을는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상의 권세 있는 자들에게 진리에 대한 지식을 전하기 위하여 당신께서 다니엘을 쓰셨던 것처럼 그대들을 쓰실 수 있다. 이 사업을 행하기 위하여 그대들이 재능과 지식을 쌓고 못 쌓는 것은 순전히 그대들에게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의 모든 배움의 길에 재능을 주실 수 있다.



네 혀를 지키라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시 34:13.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모든 은사 가운데 말의 은사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 성령에 의하여 거룩하게 되기만 하면, 그 은사는 선을 위한 하나의 능력이 된다. 말의 선물을 가지고 우리는 확신을 주고 권유를 하게 되고,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우리는 또한 그것을 가지고 구속주의 사랑에 대한 풍성한 사상을 전달하게 된다.  
영적 진리를 분명히 식별하기를 원하는 자는 모든 불결한 말이나 생각을 피할 것이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건에 응하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온유하고 겸손하신 구주의 모본을 즐겨 따르고자 하는 자들은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께 그들을 겸손하게 만들어 달라고 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필요한 훈련에 응하고자 하지 않는다. 시험이 닥치고 시련이나 어떤 난처한 일이 생기면, 마음은 반역을 하고 혀는 독을 지닌 화살이나 황폐시키는 우박과 같은 말을 쏟아 놓는다.
험담은 듣는 사람에게보다는 말하는 자에게 훨씬 더 중하게 내리는 이중의 저주이다. 분열과 분쟁의 씨를 뿌리는 자는 그 자신의 심령에서 치명적 열매를 거둔다.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자, 악을 추측하는 자는 얼마나 불행한가! 그는 진정한 행복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모든 부정한 사상은 즉시 배척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밀실로 가라. 믿음으로 기도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라. 사단은 그대의 발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주시하고 있다. 그대가 그의 간계를 피하고자 하면 그대는 위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주안에서 쉬라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시 37:7.

많은 사람들은 저희가 기도 드리는 시간에 있어서도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제함으로 얻는 참된 축복을 받지 못한다. 저희는 너무 조급히 한다. 저희는 빠른 발걸음으로 급히 그리스도의 사랑하시는 앞으로 나아가서 잠깐동안 그 거룩한 경내에서 쉬는 듯하지마는 권고를 받고자 기다리지 아니한다. 저희는 거룩한 교사와 함께 머무를 여유가 없다. 그리하여 저희는 저희 짐을 진 채 저희 일터로 돌아간다.
이런 일군은 저희가 힘의 비결을 배우지 아니하는 한 결코 최고의 성공에 도달할 수는 없다. 저희는 지(知), 덕(德), 체(體)의 능력이 새롭게 되기 위하여 생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모시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저희는 성령의 힘으로 고상하여 져야 한다. 이 힘을 얻는 때에 저희에게 신성한 생명이 소생될 것이다. 피로한 신체와 두뇌는 생기를 회복하고 마음의 무거운 짐은 가벼워 질 것이다.
나는 또 말하노니, 주안에서 기뻐하고 그의 안에서 안식하라. 그대에게는 그분의 능력이 필요함으로 그대는 이 능력을 소유해야 한다. 굳세게, 씩씩하게,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라. 그대가 판단하는 일에 잘못을 저지를지라도 그대가 예수를 붙드는 것을 잊지 말라. 그는 지혜이시요, 빛이시며, 능력이시다. 예수님은 그대에게 있어서 피곤한 땅에 큰 반석과 같으시다. 그분의 그늘 아래서 쉬어라. 그대에게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대에게 그것을 주실 것이다. 의심하지 말라. 더욱 그대가 물리침을 받고, 오해를 받고, 잘못 진술되고, 잘못 소개되는 것은 더욱 그대가 크신 교사 예수님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과 더욱 그대가 밀접히 그대의 구세주께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대의 모든 고난 중에서 침착하고, 요동하지 말며, 인내하며, 용서하며,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사다리의 꼭대기를 처다보라. 하나님은 그 위에 계시기 때문이다.



공경하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 3:9, 10.

만일 그대가 그분께 모든 것을 굴복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이 그대에게 임한다면 그대는 번영할 것이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께로부터 돌이킨다면 그분께서도 그대로부터 돌이키실 것이다. 그분의 손은 그대가 모으는 것보다 더 속히 흩으실 수 있으시다.
너그러운 정신은 하늘의 정신이다. 이 정신이 최고로 나타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희생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 이기심의 정신은 사단의 정신이다. 속인들의 생활에서 예증된 원칙은 받는 것, 받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속인들은 행복과 안일을 얻고자 하나 그들의 심은 것의 열매는 비참과 죽음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시기를 그치시기까지는 그분께서 요구하시는 부분을 그분께 돌리는 그들의 의무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분께 속한 부분만 여호와께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또한 감사의 예물로 너그러운 헌물을 그분의 창고에 드려야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것들의 처음 열매 즉 그들의 가장 좋은 소유물들, 가장 좋고 가장 거룩한 봉사를 창조주께 바쳐야 한다. 이와 같이 함으로 그들은 많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영혼을 물이 마르지 아니하는 물댄 동산 같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최후의 대 수확을 거둘 때에 저희가 주께 가져 올 수 있는 단들은 저희가 받았던 냥쭝들을 이기심 없이 사용 한데 대한 보상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손은 번영케도 하시고 보류하시기도 하신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흔히 어떤 사람에게는 보류하시고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번영케 하시는 것 같이 보인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을 검토하고 실험하여 저들의 마음속을 드러내시기 위한 것이다.



네 길을 숙고하라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잠 4:26.

세상의 가장 큰 결핍은 곧 인물의 부족이다. 그 인물이란 매매되지 않는 사람, 저희의 심령 속이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 죄를 그대로 죄라고 부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마치 나침반(羅針盤)의 바늘이 틀림없이 남북을 가리키듯이 양심이 그 의무에 충실한 사람, 비록 하늘이 무너질지라도 옳은 일을 위하여 굳게 서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 품성은 우연히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슨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나 천분(天分)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고상한 품성은 저급한 육욕을 높은 천성에게 복종시킴으로 곧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의 봉사를 하기 위하여 자아를 내어 맡김으로써 하는 자기 수련의 결과이다. 청년들은 자기들의 받은 천분이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힘, 시간 또 지성은 다만 일시로 빌려 받은 보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모든 청년들은 응당 이것들을 최고의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결심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청년들은 각각 저희가 열매를 맺기를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나무의 가지요, 자본을 증식시켜야 할 청지기요, 세상의 어두움을 비추는 빛인 것이다. 청년마다, 아이들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향상을 위하여 각각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전혀 속절없이 우리의 상태를 깨닫고 자신을 의지하는 모든 마음을 버릴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게 될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인 생애의 초기에서만 자아를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하늘을 향하여 옮겨 놓은 매 발자국마다 그 일은 새롭게 반복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선행은 우리 자신의 외부에서 오는 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아가고, 꾸준하고 열렬하게 죄를 고백하고, 그분 앞에 심령을 겸비하게 할 필요가 있다.



네 마음을 지키라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본질적인 교육은 단순히 책을 통하여 배우는 교육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며 필수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영원한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지나쳐 버리면 우리는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실패를 하게 될 것이다.
학생은 지식을 얻기 위하여 그의 모든 힘을 다 기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그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법칙에 순종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는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게 될 것이다. 그릇된 습관으로 말미암아 그는 자중심(自重心)에 대한 힘을 잃어버리고 자제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크게 관련된 문제를 바르게 판단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자신의 심신을 취급하는 일에 있어서 무모하고 불합리해 진다. 올바른 원칙을 계발하는 일을 등한히 함으로써 그는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에서 다같이 파멸을 당하게 된다.
만일 젊은이들이 그들 자신의 약점을 이해했을 것같으면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그들의 힘을 발견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분에게서 가르침을 받고자 노력할 것 같으면 그들은 그분의 지혜로써 현명하게 되고 그들의 생애는 세상에 축복이 되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그들의 마음을 단순히 세속적이며 공리적(空理的)인 연구에 바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면 그들은 생애를 풍성하게 해 주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청년들과 어린이들에 의하여 사회의 장래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청년들과 어린이들이 어떠하냐 하는 것은 가정에 의존될 것이다. 인류를 저주하는 질병과 불행과 범죄의 대부분은 올바른 가정교육의 결핍에서 기인될 수 있다. 만일 가정 생활이 순결하고 진실하였을 것같으면, 그리고 가정의 보호를 받고 나간 어린이들이 생애의 책임과 위험을 감당하리 만큼 준비를 갖추었을 것같으면, 어떤 변화가 이 세상에 나타났을 것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모든 학생은 간소한 생활과 고상한 사상과의 관계를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의 생활이 의지로 말미암아 지배되든지 또는 신체로 말미암아 지배되든 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들 개인들의 할 일인 것이다. 청소년들은 각각 스스로 자기의 일생을 어떻게 형성할까를 선택해야 할 것이요 장차 만나야 할 세력과 자기의 운명과 품성을 형성하게 할 감화가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하여 아무런 수고라도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절제는 모든 사람이 방어하여야 할 원수이다. 이 놀랄 만한 죄악의 급격한 증가에 대하여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일어나서 이를 대적하여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절제의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하여는 우리는 술이나 담배를 사용하는 문제보다도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가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하는 일이 없든지, 일정한 목적이 없이 지나든지, 또는 나쁜 친구를 사귀는 일은 그 간접적 원인이 될 것이다. 이런 원인은 흔히 소위 저희 자신으로써는 음식에 엄격한 절제를 하노라고 생각하고 있는 가정의 식탁에서 볼 수가 있다. 무슨 소화의 부족, 신경에 부당한 흥분을 일으키는 일, 또는 무슨 모양으로 신체를 약하게 하여서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잃어버리게 하는 일 같은 것은 다 신체에 대한 정신의 지배를 약하게 함으로 필경 에는 부절 제한 생활로 지향하게 하는 것이다. 전도가 유망한 청소년들이 타락하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아니한 음식에서 생긴 부자연한 식욕에 그 원인이 있는 수가 많다.
때때로 휴양과 체육(體育)을 위하여 유의하는 것은 학교의 정규적인 과업의 지장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그 지장은 참으로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심신이 함께 원기를 얻고 무아의 정신이 배양되고 교사와 학생이 공통된 관심과 친절한 교제의 끈으로 말미암아 함께 연결됨으로 인하여 휴양과 체육에 쓰여진 시간과 노력은 그 백배나 되는 효과로 보답될 것이다.


힘쓰라(연구하라)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특별히 청년들은 그들을 위하여 귀중한 생명을 주신 그 분께 받으실 만한 봉사를 드리기 위하여 저들의 마음을 훈련시키며 영리하게 되기 위해 모든 기회들을 이용하여야 함을 반드시 느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은 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연이나 책들을 통하여 연구할 필요가 없다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라.
계시와 과학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얻기 위하여 모두는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저들에게 특권으로 주어진 모든 기회들을 계발시키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하도록 배워야 한다. 만일 청년이 사다리의 가장 낮은 계단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하더라도 그는 낙심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아이야, 더 높이 올라오라.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것들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너로 많은 것을 주관하는 주권자로 삼으리라.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하시는 음성을 들을 때까지 한 계단 한 계단씩 기어올라가도록 결심할 것이다.
청년 남녀들이여, 그대들은 무한한 값으로 산 바된 각 개인들로써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기 위해 노력했는가? 그대는 하나님께 그대의 귀중한 음성의 냥쭝을 가지고 와서 정확하게, 명료하게, 그리고 즉시 말할 수 있도록 고심한 노력을 기울였는가? 사람을 태초에 완전하게 창조하신 주님께서 그대의 육적, 지적 능력들을 계발하는데 도우실 것이며 또한 그대를 하나님의 사업에서 짐들과 책임들을 지기에 적합하게 하실 것이다.
생명은 우리로 하여금 게으름과 자기를 기쁘게 하는데 사용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고 그 반대로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신 재능들을 발육시킬 모든 자들 앞에는 위대한 가능성이 놓여져 있다.



정욕으로부터 도망하라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 2:22.

우리는 잃어버릴 시간이 없다. 우리는 얼마나 빨리 우리의 집행 유예가 끝나게 될지 모른다. 영원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휘장이 열려 지려 한다. 그리스도께서 빨리 오시게 되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우리를 자신들과 세상에 속한 사물들로부터 끌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저들로 헛되이 수고하지 않게 하라.
예수께서 지성소에서 일어나실 때에는 그의 중재의 옷을 벗으시고 친히 복수의 옷을 입으신다. 그리고 다음의 명령이 선포될 것이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1,12.
폭풍이 오고 있다. 이것은 그 광포함에 있어서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이것에 직면할 준비가 되었는가?
우리는 마지막 시대의 위험들이 우리에게 빨리 오게 될 것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벌써 위험들이 임하였다. 우리에게는 지금 바로 혼과 육체의 색욕과 식욕과 정욕을 찔러 쪼갤 여호와의 검이 필요하다. 생각을 느슨하게 하도록 버려진 마음은 변화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생각은 반드시 하나님께 집중되어야 한다. 지금은 세속적인 마음의 타고난 성질들을 이기기 위하여 열렬한 노력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우리의 노력, 우리의 극기, 우리의 인내는 반드시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이 한없는 가치에 비례되어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것처럼 이김으로써만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목을 끄는 수많은 이야기들로부터 돌아서야 한다. 시간을 소모하고 질문을 일으키는 문제들이 있으나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끝난다. 가장 고상한 흥미들은 비교적 하찮은 사물들에 너무 자주 바쳐진 정밀한 주의와 정력을 요구한다.



존경할만하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12:17.

생애는 훈련 과정이다. 세상에 있는 동안 그리스도인은 불리한 영향을 만나게 될 것이다. 기질을 시험하기 위한 도전이 있을 것이다. 바른 정신으로 이런 것을 만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덕성은 계발된다. 손해와 모욕을 온유하게 참고, 모욕적인 말들에 부드러운 대답으로 반응하고, 압제적 행동을 친절로 대하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마음속에 거하고, 산 포도나무에서 받은 수액이 가지로 흐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학교에 다니게 되는데, 그 곳에서 마음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한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장애, 우리가 담당하도록 부름을 받은 모든 난관과 곤란은 그리스도인 생애의 원칙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실제적 교훈들인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잘 견디기만 하면 그것들은 품성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같아지게 해주고 그리스도인을 세상 사람과 구별되게 해준다.
우리가 고상하고, 순결하고, 정결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하면 우리가 도달해야 할 높은 표준이 있다. 또한 우리가 이 표준에 도달하려면 전지(剪枝)의 과정이 필요하다. 만일 직면해야 할 어려움이 없고, 극복해야 할 장애가 없고, 인내와 참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이 전지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이런 시련들은 우리의 경험에서 가장 적은 축복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성공을 거두게 하는 일에 우리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하여 계획된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를 방해하고, 억압하고, 파멸시키도록 허용하는 대신에 자아에 대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얻게 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야 한다.
정직이란 것이 실업 생활에 중대한 원칙이라고 할 것 같으면 하물며 우리들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모든 일들의 기초가 되어 있는 의무를 인정해야 할 것이 아닌가?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 키라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 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잠 1:23.

교만한 마음은 그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힘쓴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에 들어가는 자격과 적합성은 그리스도의 의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모든 자부심을 벗어버리고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기 전에는 주께서 사람의 회복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으시다. 그때에야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기 위하여 기다리시는 선물을 받을 수가 있다. 필요를 느끼는 영혼은 아무 것이라도 거절을 당하지 아니한다. 그는 “모든 충만이 그 안에 거하는” 예수께 무제한으로 접근할 수 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을 줄 줄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이에게 더욱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대표인 성령은 모든 선물 가운데 가장 큰 선물이다. 모든 좋은 것은 성령 안에 포함되어 있다. 조물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중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실 수 없다. 우리가 환난 중에 주께서 불쌍히 여기사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탄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모른 척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지체 없이 제군은 자신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두지 않겠는가? “나는 나의 의지를 예수께 바치겠다. 그리고 이제 곧 이를 실행하겠다”고 제군은 말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이 순간으로부터 완전히 주의 편에 서지 않겠는가? 습관과 또한 식욕과 정욕의 강한 요구를 경시하라... 의지를 하나님 편에 굳게 보전할 때에 모든 감정은 예수의 뜻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제군은 제군의 발이 견고한 반석 위에 놓여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때로는 제군이 소유한 의지력을 한 줌의 힘까지도 남김 없이 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제군을 위하여 역사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하여 제군이 모형에서 나올 때에는 영광의 그릇이 되어 나올 것이다.


내 말에 주의하라
“아들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지어다”잠 7:24, 25.

우리 구주의 기쁨은 타락한 인류를 향상시켜서 구원하는데 있었다. 그는 이 기쁨을 인하여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 이와 같이 천사들도 항상 남의 행복을 위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 이것이 저들의 기쁨이다. 품격과 계급이 열등한 가련한 자들을 봉사하는 일은 이기심이 있는 자들이 비천한 봉사로 여기는 것이지만 이것은 죄가 없는 천사들의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적 사랑의 정신은 온 하늘에 충만한 정신이니 이것이 곧 하늘의 행복의 요소이다. 이 정신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가져야 할 정신이요 또 이 일은 그들이 하여야 할 일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속에 있으면 마치 좋은 향기와 같아서 그것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이 사랑의 거룩한 감화는 우리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이 받게 될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정신은 마치 사막 가운데 있는 샘과 같이 흘러서 모든 사람을 시원하게 할뿐만 아니라 죽어 가는 자들에게 생명수를 마시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하여 준다.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은 인간의 의지는 악을 저항하고 이길 진정한 힘을 전혀 가지지 못했다. 영혼의 방호벽은 무너지게 된다. 사람은 죄를 대항할 방어책을 갖지 못하게 된다. 일단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제지가 거부될 때, 우리는 사람이 얼마나 깊이 죄에 빠지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배우게 되면 우리는 사도들이 저들에게 성령이 부으신 바 되었을 때에 기도했던 것처럼 기도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의 침례가 필요 된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태만하고 있는 동안은 한 시간도 안전하지 못하다.


악을 피하라
“사특한 자의 첩경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날지어다”잠 4:14, 15.

저들의 본을 따르기에 안전치 못한 자들과 친밀함이 맺어지지 않도록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 큰 주의가 활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친밀함의 결과는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하며, 신앙심과 진리의 사랑에서 떠나게 하기 때문이다. 신앙적 경험이 없는 친구들과 친밀함이 그대에게 절대적으로 위험하다... 영원한 중요성이 그대에게 첫째가 되어야 한다. 마음에 더욱 교활하고 확실하게 영향을 끼치고, 신중한 감명과 하나님의 영의 설득하심을 추방시키는데 있어서, 허영 적이고 경솔하며 저들의 대화가 세상과 허탄함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 이 사람들이 다른 점들에 있어서는 더 매력적인 것 같으면 같을수록 저들이 동료로서의 저들의 감화가 더욱 위험한데 이는 저들이 불 경건한 생애 주위에 너무나 많은 유쾌한 유혹 물들을 흩어 놓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너무도 흔히 경건치 않은 자들과의 우정을 맺기 위하여 세속적 감화에 복종하고 그 원칙과 습관을 따른다. 그러나 종말에는 친구라고 공언하는 이 자들이 가장 위험한 원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 사이에는 조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사단은 경건치 않은 자들을 통하여 외면상의 우정이란 가면 아래 하나님의 백성을 죄 가운데로 유혹하여 그들을 하나님과 분리시키도록 일한다. 그들을 보호하는 방벽이 제거될 때에 사단은 그의 대리자를 인도하여 그들에게 대항하여 그들의 멸망을 성취시키려고 할 것이다.



떨치고 깨소서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시 35:23.

만일 우리가 유약한 경험을 가지는 것을 피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지체없이 열심히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저희가 저들의 침례 서약에 충실하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나타내지 않는 자들이 많다. 저들의 열심은 형식, 세속적 야망, 교만과 자기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쌀쌀하다. 이따금 저희의 감정은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저들은 반석이신 그리스도 예수 위에 떨어지지 않는다. 저희는 회개와 자복으로 깨어진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 오지 않는다. 저희의 마음속에 진정한 자복에 역사를 경험하는 자들은 저들의 생애 가운데서 성령의 열매들을 나타낼 것이다. 오, 그와 같이 적은 영적 생명을 가진 자들이 정욕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자가 되는 자들에게만 영생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만 하늘 왕국에서 그와 함께 새 생명에 참예할 모든 자들이 반드시 경험해야 할 마음과 정신의 변화를 이룩하실 수 있으시다.
행동에 있어서 맹목적이고 결과에 있어서 파괴적인 아무 계획도 목적도 없이 무지하게 떠드는 열성이 있다. 이런 열성은 그리스도인적 열성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적 열성은 원칙을 따르는 것이며 발작적(發作的)인 것이 아니다. 이 열성은 진실하고 심각(深刻)하고 강한 것이고 온 성품을 다하여 도덕적 감각을 활용하도록 분기시키는 것이다.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은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과 하나님께 영화를 돌리는 일 보다 더 큰 열성을 요구하는 사업이 있는가?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하나님의 독특한, 공언하는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너무나 일치되었기 때문에 저들의 독특한 성질이 드러나지 않으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 사이에 분별하기가 어렵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당신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나와 분리되어 있다면 저들을 위하여 큰 일을 이루실 것이다. 만일 저들이 그분에 의해 인도되도록 복종한다면, 그분께서는 저들을 온 세상에서 부러움의 대상을 만드실 것이다.
참된 증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구원받을 후사들에게 봉사하는 하나님의 천사들은, 모든 이들의 상태에 익숙함으로 각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믿음의 정확한 분량을 잘 이해한다. 하나님의 공언하는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불신과, 교만과, 탐욕과, 세상에 대한 사랑은 죄없는 천사들을 슬프게 하였다. 저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통탄할 만하고 건방진 죄들을 보고, 또한 그들의 모순되고 비뚤어진 행로로 인해 하나님께서 굴욕을 받으심을 볼 때 저들은 비탄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죄의 장본인(張本人)이고 교회를 가장 약하게 만들고, 저들의 거룩한 신앙에 오점을 가져오는데 원인이 된 그들은 전혀 놀라지도, 마음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저들이 주님 안에서 형통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다.
우리는 자원해서 세속적, 불신적 환경에 자신들을 세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여 드리며 우리 가정에서 거룩한 천사들을 쫓아낸다. 저희 자녀들의 영원에 대한 관심을 희생하면서까지 세속적 재산과 명예를 얻는 사람들은 결국 이 이점들이 한 무서운 손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유업은 이 세상에 있는 유업이 아니다.


어리석음을 버리라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잠 9:6.

영원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휘장은 바야흐로 걷혀 지려고 한다. 이 엄숙하고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 주변에서 영혼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안락을 좋아하는 우리의 이기적 마음에 붙들려 있는가? 우리의 마음은 완전히 무감각하게 되어 버렸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해야 할 사업이 있다는 것을 느끼거나 이해할 수 없는가?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계층에 속해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아는 지식을 그대들에게 주신 것이 헛된 일인가? 그분께서 계속해서 그대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보내신 것이 헛된 일인가? 그대는 세상에 바야흐로 임할 일에 관한 영원한 진리의 선포를 믿는가? 그대는 하나님의 심판이 사람들에게 내리기 직전임을 믿는가? 그러면서도 그대는 여전히 안락하고, 게으르고, 부주의하고, 쾌락을 사랑하면서 앉아 있을 수 있는가?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그들의 애정을 두거나 그들의 재물을 쌓아 둘 때가 아니다. 초기의 제자들처럼 우리가 황량하고 외진 장소에서 피난처를 찾지 않을 수 없을 때가 멀지 않았다.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가 유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도망하라는 신호가 되었던 것처럼, 법왕권의 안식일을 강요하는 법령을 통한 우리 나라에서의 권력 장악은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가 될 것이다. 그 때는 대도시들을 떠나고, 산간(山間) 한적한 곳에서 궁벽한 거처들을 마련하기 위하여 더 작은 도시들을 떠나갈 준비를 할 때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여기서 값비싼 주택들을 구하는 대신에 우리는 더 좋은 나라, 하늘까지 옮겨갈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들로부터 도망하라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딤전 6:11.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우리는 다만 한 번만 이 세상을 통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통과하는 동안 생애를 가장 잘 이용해야 한다. 우리가 부름 받은 일은 재산과 사회적 지위와 큰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가. 그것은 친절하고 자아 희생적인 정신과 확고한 목적을 요구한다. 아무리 작은 등불일지라도 그것이 꾸준히 켜져 있는 동안에는 많은 다른 등을 밝혀 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좁은 것처럼 보이고, 우리의 재능이 적고, 우리의 기회가 많지 못하고, 우리의 학력이 제한되어 있을지라도 우리의 가정에 주어져 있는 기회들을 충실히 이용함으로써 우리에게는 놀라운 가능성이 있다. 만일 우리가 거룩한 생애의 원칙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과 가정의 문을 열게 되면 우리는 생명을 주는 능력의 물결을 전달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우리의 가정에서 치유의 물결이 흘러나와 오늘날 불모(不毛)와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과 미와 결실이 풍성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많은 사람은 다만 인간 도덕가에 불과하다. 저들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옳게 대표함으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을 거절하였다. 성령이 역사 하시는 일은 저희에게 이상한 것이 된다. 저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자들과 세상과 하나가 된 자들을 구별하게 하는 하늘의 원칙은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하는 자들은 따로 구별된 특수한 백성이 되지 못한다. 분계선은 희미하다. 그리스도의 의는 품고 있는 단 하나의 죄라도 가리워 주지 않을 것이다.
모든 행동은 그 행동을 일으킨 동기에 의하여 판단된다.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에 부합된 것만이 심판 때에 능히 설 수가 있다.


훈계를 굳게 잡으라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잠 4:13.

그대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구하기만 하면 그대들은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그 말씀을 능력으로 만들 수 있는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일이다. 그대들이 마음과 뜻과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할 때, 교통의 길은 막히지 않게 될 것이다. 성령의 지도 아래 깊고 열렬하게 말씀을 연구하면, 그대들에게는 새로운 만나가 주어질 것이며, 그 동일한 성령께서는 말씀의 활용에 효력을 나타내 주실 것이다. 고상하고 거룩한 포부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정신을 계발시키는 젊은이들은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방면에서 불굴의 노력을 쏟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일에 마음을 바치는 자들은 하나님과 동역 자가 될 준비를 갖추게 된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안전한 교사로 인정할 수 없는 어떤 사람들을 교사로 인정한다. 이와 같은 교사들에 의하여 성경은 버림을 받고 무신론 저자들의 서적들이 마치 품성에 흡수되어야 할 사상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추천된다. 그대들은 이와 같은 종류의 씨를 뿌리는 데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이 부당한 서적들을 연구함으로써, 학생들은 물론이요 교사들의 마음도 부패해지고 원수가 그의 가라지를 뿌리게 된다. 거기에는 그 밖의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불결한 샘에서 물을 마시므로, 독소가 신체 조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와 같은 분야의 공부를 하는 경험 없는 젊은이들은 그들의 사상을 경건에 있어서 치명적인 길로 이끌어 가는 영향을 받게 된다. 영혼이 하나님의 지도 아래 있지 않으면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하나님의 지도 아래 있으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