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말, 영혼을 비추는 거울

말, 영혼을 비추는 거울

얼굴이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거울이라면, 말은 그 사람의 영혼을 드러내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곧 그 사람의 됨됨이인 것처럼, 그 사람의 말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영혼과 사상과 품성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 12:35~37).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는 가장 정확한 척도는 그가 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말은 하늘에 유일하게 가져갈 품성의 여부를 알려주는 바로미터입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말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봅니다. 언행이 일치된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생애의 빛 편집실

말, 품성의 척도

말, 품성의 척도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34).

날마다 우리들은 미래의 삶을 위하여 씨를 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씨는 내세에서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확실한 수확과 결실을 거둡니다. 우리가 심는 씨 중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로써 심는 그 씨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종종 생각없이 던지곤 잊어버린바 되는 말들은 반드시 선이나 악 둘 중에 하나를 추수하게 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갈 6:7)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의도를 나타내는 도구
언어는 마음의 미덕이 외부로 표현된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나타내는 말의 표현은 마음 속의 의도를 나타내는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다 드러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신을 스스로 진실한 것처럼 가장하여도, 어떤 일이나 상황에 부닥쳤을 때에 무심코 그 입에서 표현되어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의 의도와 속마음을 그대로 다 드러내고맙니다. 그러므로 그 입의 말이 바르면 마음도 바를 것이고, 그 입의 말이 순결하면 영혼도 순결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계시다면, 그 사람의 사상과 말은 순화될 것입니다. 그는 말로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증거할 것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중생의 여부를 드러내 줍니다. 거듭나고 중생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순결하고 깨끗하고 진실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기도가 매 순간 그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 141:3).  
 순결하지 못한 말과 더러운 말은 부패한 마음의 징표입니다. 악한 의도와 은근히 불신을 일으키는 말, 비난과 비판과 판단의 말, 경박하고 음험한 농담과 경솔한 말들은 그리스도인 생애에서 끊어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거듭나지 못한 정신의 특징입니다. 말은 그 영혼과 그 사람이 지닌 품성을 나타내는 척도입니다.

말의 영향력
말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은 다른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그 말을 한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는 너무도 흔히 우리가 하는 말에 대하여, 그리고 그 말이 끼칠 영향과 파급과 결과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은 채 말을 던집니다.
사람들은 어느 때 자기가 생각없이 무심코 던진 말에 의해 자신이 영향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존심 때문에, 혹은 자기가 한 말을 철회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또는 자신의 말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자기가 한 말을 더 밀어붙이게 되면서 스스로 그 말을 믿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했던 말에 의해 스스로 세뇌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의 사상들은 우리의 말을 일으키며 우리의 말들은 우리의 사상에 반응합니다. 그렇게 되어 그 말은 들은 사람과 그 말을 한 사람에게 여러 배의 영향이 되어 되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때에 알맞은 말은 마음에 뿌려진 좋은 씨와 같아서 자신과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결과를 맺습니다. 그러나 그릇된 말은 사람들의 발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마다 우리의 입술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모들은 특히 말을 더 조심해야 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하는 모든 말들은 자녀들에게 선악 간에 영향을 끼칩니다. 말은 자녀들에게 햇빛이 되게 할 수도 있고 어두운 그늘을 주기도 합니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교제하는 모든 사람에게 말은 햇빛이 되거나 그늘을 드리웁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족 간이나 아무에게라도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지 않도록 거칠게 말하는 것을 금할 것입니다. 불행은 종종 언어의 어리석은 사용에 의해 야기됩니다. 우리는 성급한 성질을 정복해야 하고 우리의 언어를 제어하므로 매일의 생활에서 승리를 얻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말과 성질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사탄의 노예입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가 사탄에게 예속되어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표가 됩니다. 모든 귀에 거슬리고 불쾌하고 참을성이 없이 쏟아낸 성난 말들은 악의 제단에 바쳐지는 제물입니다. 말은 온 가족의 평화와 행복을 깨뜨리고, 주위의 영혼들에게 시험을 주고 영생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말은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온유와 축복의 말 같은 좋은 언어로써 씨를 심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에게 풍부한 보상을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가 밀을 심으면 밀을 거둘 것이고 가라지를 심으면 가라지를 거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이 그들의 말을 잘 삼가는 지혜로운 종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말로 주님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자취를 따라서

예수님의 자취를 따라서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골 4:6).

 

예수님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모본이 되는데, 그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말은 우리가 따라야 할 귀한 모본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심령에 내리는 이슬이나 부드러운 보슬비와 같았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아실 수 있도록” 그분의 입술에 은혜가 부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임하리니” (시 72:6).


말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
예수님의 생애에 나타났던 태도와 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까요?
온화하고 친절하고 인정 깊으셨던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을 하나라도 숨기지 않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결코 무례하거나 함부로 가혹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하실 때 사람들의 약점을 비난하지 않으셨고, 진리를 말씀하시되 항상 사랑으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짓과 불신과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음성에는 슬픔과 사랑이 스며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성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성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구세주를 받아들이지 않고 배반하였지마는 그분은 그들을 따뜻한 동정심으로 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은 항상 사려깊고 친절하셨기 때문에, 예민하고 여린 마음의 소유자들을 결코 근심하게 하거나 상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의 말이 예수님으로부터 그렇게 흘러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의 강물이 하나님의 마음에서 그분의 아들을 통하여 흘러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품성을 그대로 나타내 보여주신 생애였고, 자애로우시고 긍휼하신 구주 예수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동료들에게 나타내는 말과 태도에 의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그리고 우리가 이웃에게 하는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렇게 언급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아무 까닭 없이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누구든지 자기 형제에게 라가라 말하는 자는 공회의 위험에 처하게 되거니와 누구든지, 너 어리석은 자여, 하고 말하는 자는 지옥 불의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 (흠정역, 마 5:2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선물로 주심으로, 각 영혼들을 얼마나 귀중하고 높이 평가하시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 서로 경멸하는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창조를 통한 소유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지불을 통한 소유, 이렇게 이중적 소유권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심지어 가장 타락한 사람들까지도 존경과 친절로써 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한 영혼을 모독하는 한 마디의 말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도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사탄과 싸우실 때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유 1:9)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셨을 것 같으면 그것은 사탄의 방법과 뜻을 반영하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방은 악한 자의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사탄은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계 12:10)로 불립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무기를 하나도 이용하려고 하지 않으시고, 다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리라”(유 1:9)는 말씀으로 그를 대항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본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원수와 싸울 때에라도, 보복의 정신을 가지고 말을 하거나 욕하고 비난하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대변자로 서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사탄과 싸우실 때 사용하지 않으시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판단하고 비난하는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사람들의 지친 심령에 원기를 주고 슬픔에 싸인 마음에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짐을 나눠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애와 선하심에 대하여 여러 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어떤 사람도 무가치한 존재로 지나쳐 버리지 않고 각 영혼에게 구원의 치료제를 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어떤 무리 가운데 있을지라도 때와 환경에 적절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형편없고 난폭하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자들에게도 소망을 고취시켜 주고, 그들도 흠 없고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의 성품을 가질 수 있다는 보증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분은 종종 사탄의 지배 아래 휩쓸려 들어가서 그의 올무에서 벗어날 힘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셨을 때에, 이런 낙망하고 병들고 시험에 빠지고 타락한 자들에게 가장 부드러운 동정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도움을 받은 자들은 그들이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한 분이 계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그들이 당신의 동정하는 귀에 고백하는 비밀을 결코 누설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태도와 말
예수님의 주위에는 분별이 없고 난폭하고 버릇없는 자들 곧, 부정한 세리, 무모한 탕아, 불의한 사마리아 사람, 이방 나라의 군인, 거친 농부, 잡된 무리들도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한 번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동정하는 가운데, 매 순간이 영원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매 순간을 소중하게 가치 있게 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심령뿐만 아니라 육신도 고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목도하는 온갖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그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셨으며, 그분의 친절한 말씀은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향유와 같았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분이 이적을 행하셨다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늘 치료하는 사랑의 능력이 그분으로부터 흘러나와 고난당하는 자들과 병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그것이 그처럼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즐겨 들은 까닭이었습니다.

가장 훌륭한 웅변은 사랑과 동정 가운데 발하는 말들입니다. 이러한 말은 혼돈된 마음에 빛을, 또는 낙담된 자에게 빛을 가져감으로 그들의 전망을 환하게 비춰줍니다. 이런 말을 발하기 위해, 예수님의 모본을 따르려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이 일에는 성화된 힘과 열성과 또 가장 부드러운 동정과 사랑이 요구됩니다. 불행을 확장시키는 말이 아닌, 믿음과 희망을 고무시키는 말이 우리 입에서 울려 나와야 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동정의 말로써, 용기와 격려하는 말로써 우리 주위의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품성과 생애를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분의 교훈을 실천하는 산 선교사가 될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을 것입니다.

말,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말,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사 43:10).

언어는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입니다. 이 달란트는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들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말과 행실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말과 행실로 정당하게 주님을 대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혀가, 우리의 말과 언어가 거룩하게 성화되어야 합니다.

말이 증거함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 3:17).

말을 할 때 우리는 항상 그 말이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경우에 합당하고 유익될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말로 주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성경은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7)고 선언합니다. 입에서 발한 말로 인해 큰 잘못이 저질러질 때가 많습니다. 말이 모든 일에 원인이 됩니다. 우리는 말로써 우리 자신의 품성을 남에게 재현시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 가운데 그들을 거짓 길로 인도하게 만드는 많은 생각의 노선들을 불러일으킵니다. 자신은 믿음의 길을 걷고 있다고 자부할지 모르나 자신이 던진 말이 때때로 다른 사람의 마음 밭에 해독을 끼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표준을 높이 들어 우리의 모든 말들을 소금으로 고르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정신과 말과 태도로써 그 이름을 높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은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자처하지만 자신의 생애에 그리스도의 품성의 미덕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은 구세주를 반대로 대적해서 증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공공연하게 수치를 당하게 함으로써 그분께 욕을 돌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자처하면서도 그분의 은혜를 나타내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주장이 거짓됨을 스스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저속하고 값싸고 야비하고 무의미한 말, 악한 의도를 가진 말과 과장하여 하는 말을 싫어하십니다. 이런 악하고 어리석은 말은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어떤 사람에게도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영성을 저해시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그의 제자로서 삼으실 수 없고 증인으로 삼으실 수 없습니다.


잘 증거하기 위하여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 4:1).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에 합당하게 되기 위해, 주님을 잘 증거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혀와 언어를 잘 훈련해야 합니다. 언어의 재능은 귀중한 달란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더불어 일하는 동역자로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말과 행동으로써 나타내어야 합니다.

만일 영혼들을 예수님께 인도할 목적   으로 사람들과 교제하게 될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여 가볍고 가치 없고 값싼 말은 일절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영혼의 가치를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해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일하는 동역자요 증인됨을 증거해야 합니다. 가치 없는 경박한 말과 세속적인 대화와 경솔한 말을 함으로 자신을 세상의 불신자의 수준과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내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말로 성경의 진리의 원칙들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을 나타내면서 그리스도의 종교를 매력 있게 나타내야 합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는 자에게 부드러운 애정을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온유함으로써 옷 입고 하나님과 더불어 날마다 교제함으로써 우리의 입술에서 아름답고 유쾌하고 희망적이고 용기와 격려를 주는 말이 나가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속에 좌정하여 계실 때에 말로써 모든 길에 사랑과 친절의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혀는 하늘의 영광을 말하고 예수님의 비할 데 없는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교육을 받고 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먼저 역사할 때에 우리는 그 성령의 변화시키는 감화와 협력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을 잘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유쾌하고 명랑한 말은 불유쾌하고 우울한 말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값이 들지 않습니다. 날카로운 말은 영혼을 상하고 해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싸워야 할 난관을 가지고 있고 슬픔과 낙담을 만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애에 소망의 햇빛을 가져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을 도와주고 축복하는 말들을 함으로써 그들을 격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말은 다른 사람에게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꼭같이 축복이 될 것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잠 25:11).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권장이 될 만한 말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과오를 범하여 수치와 낙담 속에 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과오와 잘못을 계속 바라봄으로써 드디어 절망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망하고 정죄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정죄와 가혹한 말은 그 사람을 돌이키거나 회개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오히려 위로와 이해하고 용서한다는 한 줄기 햇빛 같은 따뜻한 말은 상한 심령에 향유가 되어 실수와 과오를 범한 사람을 돌이키게 합니다. 우리의 말이 마음 가운데 자라나는 부드러운 희망을 꺾어서 파괴시키는 황폐의 우박처럼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드럽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하지 않은 까닭에 많은 영혼들이 아무 도움없이 외로운 가운데 굶주리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이슬처럼 부드럽게,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처럼 영혼의 마음을 주님께로 이끌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영적인 귀중한 사물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에 대하여, 또한 구주의 비할 데 없는 사랑에 대하여 우리는 더 많이 자주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말은 찬송과 감사의 말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정신과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대화에 나타날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사상, 주님을 닮고자 하는 고상한 포부, 진리에 대한 명백한 이해, 사욕이 없는 의욕과 열심, 경건과 성결에 대한 갈망 등은 우리의 말 속에 열매를 맺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어떠한 것임을 드러내고 증거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말 가운데 나타나시게 되어 그 말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말이 부르는 심판

말이 부르는 심판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 139:4).

언어는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입니다. 이 달란트는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들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말과 행실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말과 행실로 정당하게 주님을 대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혀가, 우리의 말과 언어가 거룩하게 성화되어야 합니다.

하루 하루 모든 시간에 있어서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을 보시며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을 들으신다는 엄숙한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청자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말합니다. 왜 두렵고 떨려야 할까요? 천박하고 경솔한 말이나 행동, 사탄의 유혹에 따라 펼치는 비판과 흠잡는 말, 세속적인 희롱과 농담 등,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가 거룩한 믿음을 잘못 나타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우리의 그러한 말들로 인해 우리가 믿는다고 고백하는 진리가 품성을 거룩하게 하는 감화력을 가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서 엄격한 순결을 보존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은밀한 죄악들을 당신의 얼굴의 빛 가운데 두실 수 있음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우리의 허망한 말과 비그리스도인적인 모범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며 우리 자신의 심령뿐 아니라 우리가 교제하는 사람들의 심령을 훼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때가 가까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죄의 중보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중보 사업이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중보 사역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 곧 자신의 죄를 온전히 고백하고 회개하며, 새 마음을 받고 죄를 승리하는 성품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심판은 하늘에 있는 책들에 의해 진행됩니다.

하늘에는 사람들의 이름과 그 행위를 기록한 책들이 있는데, 그것들에 의하여 심판의 판결이 결정됩니다. 다니엘은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고 말합니다. 요한은 그 같은 광경을 묘사하면서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라고 기록했습니다.
다니엘은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의 때를 미리 보면서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그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계 21:27)만이 하나님의 성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거기에는 또한 사람들의 죄악을 기록하는 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 12:14).
구주께서는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 37)고 말씀하셨습니다. 각 사람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심사되어 성실한 것과 불성실한 것들이 기록됩니다. 하늘의 책들에는 각 사람의 이름 아래 온갖 악한 말, 모든 이기적 행위, 온갖 의무 태만, 모든 은밀한 죄, 모든 기만 등이 무섭게도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경고와 견책을 등한히 한 것, 시간을 낭비한 것, 기회를 놓친 것, 선악간의 감화와 그 결과가 멀리까지 미친 일이 모두 기록하는 천사에 의하여 기록됩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심판 때에 사람의 품성과 생애를 측정하는 표준입니다. 야고보는 그의 형제들에게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 2:12)고 권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살아날 죽은 의인들은 심판 때에 생명의 부활에 합당한 자라는 선고를 받은 자라야 비로소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보자로서 그들을 위하여 탄원하고자 하나님 앞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1).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9:24, 7:25).

심판은 오늘날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얼마나 신속히 오늘날 살아 있는 자들의 사건이 취급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엄숙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온 생애가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주님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막 13:33).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계 3:3).


심판 때에 펼쳐질 책

심판 때에 기록한 책들을 펼치면 예수님을 믿은 모든 사람들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 나타납니다. 우리의 대언자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처음 생존한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사건을 제시하십니다. 각 사람의 이름이 불려지고, 모든 사건이 세밀히 검토됩니다. 어떤 이름들은 가납되고, 어떤 이름들은 거절됩니다.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고 용서받지 못한 채 기록책에 죄를 남겨두고 있으면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그들의 선행의 기록도 하나님의 기념책에서 지워질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출 32:33)고 선언하셨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면…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겔 18:24)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자신의 속죄 제물로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책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 아래 용서받았다는 말이 기록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들의 품성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된다는 것이 나타날 때, 그들의 죄는 도말되고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버리지 않은 죄는 용서를 받지 못하고 기록한 책들에서 도말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큰 날에 그 죄인에게 불리한 증거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죄와 악행은 백주에 행한 것이나 밤의 어둠속에서 행한 것이나를 막론하고 우리를 취급하시는 하나님 앞에 공공연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모든 죄를 목격하고 절대로 잘못이 없는 기록으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단 하나의 생각이나 말까지도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갖 공정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아니한 행위와 생각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가지고 계십니다.

영원한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날마다 하늘의 책들에 기록의 양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얼마나 엄숙한 일입니까! 한 번 입에서 나온 말, 한 번 나타낸 행위는 결단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천사들은 선악간의 행위를 다 기록하여 두며, 세상의 가장 강한 정복자도 단 하루의 기록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 우리의 말, 심지어 가장 은밀한 동기까지도 모두 행복과 불행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역할을 합니다. 비록 우리가 그것들을 잊어버렸을지라도 그것들은 의롭다는 판결을 받느냐 정죄의 선고를 받느냐 하는 문제에서 증거가 될 것입니다.

흠이 없는 입술과 거짓이 없는 혀

흠이 없는 입술과 거짓이 없는 혀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 14:5)..

요한 계시록 14장 1~5절에 보면 마지막 때에 구원 얻을 십사만 사천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원 받는 자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입에 거짓이 없고 흠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피로 사신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전인적인 성화, 곧 그리스도의 순결하심과 같이 순결하고 주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도성에는 더러운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가지신 이상은 사람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높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마음이 정결하고 우리의 입이 순결하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손가락으로만 진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구주의 구원의 은혜와 능력을 이야기하는데 바쳐야 할 귀중한 시간이 악한 보고를 하는데 허비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이 결정적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부족함이 발견될 것입니다. 품성에 전적인 변화가 없다면 결코 하늘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순결한 말, 개심의 표

진정으로 개심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생각하거나 이야기할 성향을 갖지 않습니다. 그의 입술은 말로 성화되며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의 심령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악을 생각하거나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할 유혹을 이긴 자들만이 하늘에 들어갈 것입니다.

성화된 혀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결점을 곰곰이 생각하는 일을 그치고 하나님 앞에 계속 혀를 성결하게 간직하고 있으십시오! 다른 사람의 감화력을 손상시킬 수도 있는 말은 어떤 말이든지 금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바쳐진 혀를 갖지 않도록 특별히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혀는 말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직접 방해하는 길에 서 있게 될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이 틀림없이 우리 위에 임할 것입니다.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말을 하라는 성경 말씀의 권고를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은 언제나 상대방이 그 말을 듣기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며 유익하고 덕을 세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말은 동료에게 유익한 것이어야 하는데, 버릇없는 말뿐 아니라 이기적이고, 악의적이고, 비판적이고, 외설적인 말도 동료와 우리를 더럽힙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부적절한 말을 삼가는 정도에 머물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말로 유용한 목적을 성취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익한 말, 즉 선한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마 12:36). 우리는 수다쟁이나 험담하는 사람이나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며, 거짓 증거를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에 대하여 하나님께 회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말하는 자나 듣는 자에게 조금도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성급한 말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농담과 어리석은 말들과 비판의 말들을 하면서 허비한 시간에 대해서도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덕을 세우는 경향이 있는 말들을 하도록 하십시다.

예술가의 조각판에 얼굴의 모양이 틀림없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처럼, 사람의 품성도 하늘의 모든 기록에 충실하게 묘사될 것입니다. 만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구분해 놓은 휘장을 제거해버림으로 심판날에 다시 목격하게 될 모든 말과 행동을 기록하고 있는 천사를 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하는 말을 그치고 많은 행동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고백하는 일만으로는 가치가 없습니다. 오직 말과 행위에 나타나는 사랑만이 참된 것으로 인정될 것입니다. 무엇이나 사랑으로 한 말과 일은 비록 그것이 사람들이 평가할 때는 아무리 작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께는 그것이 가납되고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보여 주신 모본은 모든 경솔함과 값싼 말들을 금하게 하는데, 만일 우리의 생애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향기를 발한다면 이러한 요소들이 우리 생애에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순결한 말은 그 사람이 진정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확실한 표입니다.

죄를 승리하는 사람들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리라 …
내가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일평생 내 마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하리라”
(욥 27:4~6).

사탄이 제안하고 일으킨 사상과 감정과 말들은 선한 사람들까지라도 괴롭힐 수 있지만, 만일 그것들을 마음에 품지만 않는다면, 또한 그것들을 옳지 않은 것으로서 물리치기만 한다면, 그 영혼은 그 죄에 감염되지 않고 그의 감화로써 더럽힘을 받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 주위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성령께서 온 하루를 통하여 우리의 생각과 말들을 통제하시도록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말과 행동은 품성을 형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말들은 깨끗하고 순결하며 단순하고 동시에 고결해야 합니다. 모든 환경 아래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그리스도가 처음이요 나중이시며, 모든 것에 최선과 모든 것이 되시도록 할 때에 우리는 죄를 승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말로 범죄하지 않는 상태에 늘 처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도록 늘 교육시켜서, 우리가 슬플 때나 기쁠 때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줄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충만함을 심령 속에 간직하도록 합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하늘 천사들의 방언을 배울 수 있으며, 만일 우리가 충성한다면 하늘 천사들을 영원한 세월을 통하여 우리의 친구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매일 우리는 품성의 완전을 얻도록 향상해야 하며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면 우리는 확실히 이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탄의 큰 능력에 대하여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에 대하여 말하도록 합시다!
죄를 정복하는 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대리자들과 함께 투쟁에 참여하여야 하며 마음속의 부패한 생각들을 정복해야 하고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영혼을 순결케 하고 세련되게 하며 단련시켜 하늘의 성도들과 천사들과 함께 교제하기에 적합한 자가 되도록 항상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우리들은 승리자들이 되기 위하여 열렬한 노력을 해야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가짐, 음성 및 언어의 결함을 고침으로 우리는 우리의 유용성과 감화력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품위가 없고 저속한 표현들을 건전하고 순결한 언어들로 대치되게 해야 합니다.

하늘에 가서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살 사람들은 죄를 승리하고 악한 말을 승리하고 모든 옳지 않은 행동에서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 하늘의 언어, 순결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말을 하는 사람은 하늘에 가서도 똑같이 순결한 혀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늘에 가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솔로몬의 충고

솔로몬의 충고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사특한 자는 입으로 그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어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찌니라.

잠언에서

 

내가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 옛것은 지나갔도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 옛것은 지나갔도다

새벽에 하나님이 나를 도우리시리로다 (시 46:5).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됨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8.

위대한 가치가 있는 진주가 청년들에게 제공되었다. 저들은 모든 것을 팔아 이 진주를 사든지, 아니면 그것을 거절하여 자신들에게 무한한 손실이 되게 할 수 있다. 하늘은 하나님의 말씀안에 제시된 조건들에 응하는 모든 자들에 의해 얻어질 것이다.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그분께서는 자신을 죄를 위해 제물로 주셨다. 젊은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들의 힘으로 진지한 목적들을 세우고 그대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제어하시는 감화에 마음을 굴복시키지 않고도 스스로 곧은 행로를 추구할 수 있다고 우쭐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렇게 함으로 행복하게 되지 못한다. 그대들의 침착지 못한 정신은 변화되어야 하며, 오락과 들뜬 기분과 젊은 친구들의 사회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갈망도 변화되어야 한다. 그대들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파고 있다. 행복은 오직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대들의 마음은 반역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그대들의 말에 표현된다. 그대들의 이기적인 기도와 종교의 형식은 양심을 달랠지 모르나 그것들은 단순히 그대들의 위험을 증가시킬 뿐이다. 그대들의 본성은 새롭게 되지 않았다. 마음을 예수께 굴복시킴은 반역자를 참회자(懺悔者)로 복종시키며 그렇게 될때 순종하는 영혼의 언어는“예것은 지나갔으니....”가 될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참 종교이다. 이에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것도 다 속임수이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거듭남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3.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것과 기도의 시간에서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는 청년은 생명의 근원을 통해 계속적으로 신선하게 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도덕적인 탁월함의 높이와 생각의 넓이에 도달할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선한 생각과, 고상한 포부와, 진리에 대한 명백한 지각과, 행동의 높은 표준을 고무시킨다. 이렇게 저희 영혼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자들은 그분에 의해 당신의 아들과 딸로 인정하심을 받는다. 저들은 주님께서 저들을 세상에 빛과 지혜의 통로로서 삼으실 때까지 계속적으로 높이, 더욱 높이 향상하며, 하나님과 영원에 대한 더욱 명확한 견해를 얻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마음의 변화를 성경에는 새로 나는 것으로 말하였다. 또는 그것을 농부가 뿌린 좋은 종자가 싹이 나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이와 같이 회개하고 새로 그리스도께로 나아간 자들은 “갓난아이”와(벧전 2:2구역)같이 “점점 자라”(엡 4:15)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장성한 남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천연계의 생물에서 여러가지 실례를 인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영적 생명에 관한 신비스런 진리를 더욱 깨닫기 쉽게 하였다.
만일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 생애를 산다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과의 끊임없는 접촉으로 인하여 생기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한한 값으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모든 귀중한 사물들을 우리가 만일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못할 것이며 우리를 강하게 하거나 영적 성장을 촉진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하며 우리 자신들의 한 부분으로 삼아야 한다.


거듭남은 성령의 역사임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5,6.

어떤 인간의 발명품이라도 죄 지은 영혼을 위한 치료제를 발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의 냇물이 맑게 되려면 먼저 마음의 샘이 정결하게 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자기 자신의 행위로 율법을 지킴으로 하늘에 들어가고자 힘쓰는 자는 가능하지 못한 것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법적인 종교, 곧 경건의 모양만을 가진 자에게는 안전함이 없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옛 것을 변경하고 개량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자신과 죄에 대하여는 죽고 아주 새로운 생명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성령의 효과적인 역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가 있다.
바람은 잎사귀와 꽃들을 스쳐 살랑거리는 소리가 나무 가지 사이에서 들린다. 그러나 그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므로 아무도 그것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를 못한다. 성령이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는 것도 이와 같다. 바람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이것도 설명할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변화의 과정을 확실한 시간이나 장소를 대어 말할 수 없고 그 모든 환경들을 자세히 더듬어 말할 수 없을지라도 이것이 그가 변화하지 아니하였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람과 같이 보이지 아니하는 능력으로 사람의 마음에 끊임없이 역사하시고 계시다. 받는 사람은 아마 의식하지 못할는지도 모르나 조금씩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게 하는 감명을 받는다. 이러한 감명들은 그리스도를 명상함으로 받을 수도 있을 것이요, 성경을 읽거나 실지로 목사의 말을 들음으로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성령께서 더욱 직접적인 호소를 하실 때에 그 영혼은 기쁘게 자신을 예수에게 바치는 것이다. 우리가 이 곳 지상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구속의 시작을 알 수 있다.


하늘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되는 순종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모든 참된 순종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것은 마음이다. 만일 우리가 동의한다면 그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시고 우리의 사상과 목적을 당신의 뜻과 일치하도록 섞어 넣으실터이니 그리하여 우리가 그에게 순종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받는 자극을 실행에 옮기는데 불과하게 될 것이다. 세련되고 성화된 의지는 그를 봉사하는 일에서 최고의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에 우리의 생애는 계속적인 순종의 생애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품성을 존중하고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우리들은 죄를 미워하게 될 것이다.
어린이들은 저희 재능이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영광을 위하여 주어졌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하여 자녀들은 순종의 공과를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오직 자원하는 순종의 생애로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봉사를 할 수 있으므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저들은 반드시 순종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어린이가 사리를 분별할 나이가 되기 전에 순종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온유하고 집요한 노력으로 그 습관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의지와 권위 사이에 있을 후년의 알력들을 크게 방지할 수 있을 것인데, 이러한 알력은 부모들과 교사에 대한 간격과 불만을 크게 일으키게 하여 마침내 사람과 하나님의 모든 권위에 빈번히 반항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청년들은 힘과 성실로써 저들에게 맡겨진 의무를 감당해야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성공에 대한 보증이 될 것이다.


순종하는 자의 길은 자비와 진리임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시 25:10.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든 세상의 정책을 내던지므로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 행동의 바른 원칙들을 받아들여 저들은 이러한 원칙들을 존경해야 하는데 이는 이것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그대에게 금이나 은보다 더욱 가치가 있다. 그리스도와 멍에를 같이하고 그분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것은 분쟁을 많이 없이할 것이다. 왜냐하면 원수가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올때에 여호와의 신이 원수를 향하여 군기를 쳐드신다.
물질계(物質界)는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으며 천연계도 또한 천연의 법칙을 순종하고 있다. 만물은 다같이 창조주의 뜻을 말하고 또 행하고 있다. 구름과 햇빛, 비와 이슬, 바람과 폭풍,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감독 아래 있고 그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있다. 곡식의 싹이 흙을 뚫고 나와서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 되는 것도 하나님의 법칙을 순종함으로 되는 것이다. 주께서 이것들을 시기를 따라 발육시키는 것은 그것들이 주의 역사하심에 반항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이성(理性)과 말하는 재능을 받은 인간만이 하나님의 선물에 감사하지 않고 그의 뜻에 불순종한다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이성을 가진 인간만이 이 세상에서 혼잡을 일으켜도 좋을 것인가?
순종은 제자됨의 시금석이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사랑한다고 하는 공언이 얼마나 진실함을 증명한다. 우리가 받은 교리가 마음 가운데 죄를 멸하고. 영혼을 더러움에서 깨끗게 하고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할 때에는 그 교리가 하나님의 진리인 것을 알 수 있다. 의로운 행동의 기쁨이 우리 마음에 가득하고 우리가 자신 대신에 그리스도를 높일 때에 우리의 믿음이 바른 것을 알 수 있다.

이방인과 나그네가 하나님께 순종할 것
“저희가 내 풍성(風聲)을 들은 즉시로 내게 순복함이여 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 시 18:44.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 자신만큼 신성하다. 이것은 그분의 뜻의 계시며, 그분의 성품의 사본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표현이다.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모든 것 곧 천지 만물의 조화는 창조주의 율법에 완전히 일치하는 데 의존한다. 하나님께서는 생물 뿐 아니라 모든 자연의 작용을 다스리시기 위하여 법칙들을 제정하셨다. 만물은 무시할 수 없는 철칙들 아래 있다. 그러나 자연계에 존재하는 만물은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으나 지상에 사는 만물 중에 사람만은 도덕적 율법에 복종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극치인 사람에게 당신의 요구를 이해하며 그분의 율법의 공의와 자비, 그리고 그에 대한 율법의 신성한 요구를 납득할 능력을 주셨고, 사람에게는 성실한 순종이 요구되었다.
부모들은 저희 자녀들의 이기심을 제어하지 않는다. 자아 방종이 저들이 추구하는 대상이 되어 왔다. 자신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무수한 자들이 사단의 노예로 묶여 있다. 저들은 사악한 자의 지배를 받는 충동과 정욕의 노예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라고 그들을 부르시며 저희에게 자유를 주신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죄의 속박에서 놓임을 받고 인간의 정욕과 충동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자원하는 순종은 영혼에게 생명의 활력과 힘을 준다. 일군과 또한 그가 위하여 일하는 자들을 위하여 태양과 같이 지속하는 일이 이루어 진다. 이 일을 하는 자의 능력이 아무리 제한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 사업은 하나님께 받으신바 될 것이다.


순종하는 자에게 약속된 장수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왕상 3:14.

사람들은 타락한 식욕과 호색적 정욕을 방종함으로 자연의 법칙을 범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건강개혁에 관한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므로 당신께서 우리의 신체를 위하여 세우신 법칙을 범하는 죄를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셨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모든 고통은 자연의 법칙을 순종하고 불순종하는데 달렸다. 우리의 인자하신 천부께서는 어떤이들은 알면서, 그러나 대다수는 모르는 가운데 당신께서 세우신 율법을 범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비참한 상태를 보신다. 그리하여 주께서는 인류를 사랑하고 동정하심으로 건강개혁에 대한 빛을 주셨다. 주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세우시고 그 율법을 범하는 때에 받을 형벌을 선포하셔서 모든 사람이 배우고 주의하여 자연의 법칙을 따라 살게 하신다.
현재 무지는 율법을 범함에 있어서 변명의 구실이 되지 못한다. 빛은 분명히 비치고 있으며, 크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사람의 교사가 되시기 때문에 아무도 무지할 필요가 없다. 그분께서 지금 저들에게 주시는 건강 개혁에 관한 건전한 철학과 참된 경험을 유의하는데 모든 이들은 가장 신성한 의무로 하나님께 책임을 지고 있다.
우리의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신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왕국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시는 조건으로 당신의 백성에게 건강과 행복, 평화와 기쁨을 주신다. 주님께서는 저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익숙히 알게 됨으로 당신께서 요구하시는 품성의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계명을 준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의 계명을 준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계 22:14(영문성경).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신실히 순종할 때에 사람의 모든 재능은 향상되고, 계발되고, 강화되는 놀라운 힘을 얻는다. 젊어서 하나님의 사업에 몸을 바친 자들은 건전한 판단력과 예민한 식별력을 가진 성인(成人)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또한 그렇게 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세상이 이때까지 안 스승중에 가장 위대한 스승과 교제함이 이해력을 강하게 하고, 정신을 계발하며, 또한 마음을 순결하게 해서 전 인격을 향상하고, 아름답게 하고, 또한 고상하게 한다.
경건하다고 공언하는 많은 청년들 중에는 그 하는 말과는 상반하는 듯이 보이는 큰 계층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지식이나 영성(靈性)에 있어서 자라나지 않는다. 그들의 능력은 계발되는 것보다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에 관한 시인의 말씀은 참되다. 진실로 빛과 지식을 주는 것은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의 문자(文字)가 아니요 그 말씀을 성령을 힘입어 이해하고 마음에 적응하는 것이다. 사람이 진실로 회개하였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신성(神性)을 받는 자가 된다. 다만 마음이 새롭게 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지력(智力)이 힘을 더하게 되고 활기를 얻게 된다. 회개하기 전에는 보통 혹은 이하의 능력을 가진 자로 생각되던 자들이 회개한 후에는 전적으로 변화된 것같이 보이는 사람들의 실례가 많이 있었다. 그 후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이해하고 또한 이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놀라운 능력을 나타낸다.
만일 청년들이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다시 생애에 있어서 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크게 역사하실 것이다.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즐겨 순종하는 생애를 하기 위하여서는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쳐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재능이 주의 것이매 그를 봉사하기 위하여 바쳐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우리 자신을 그에게 바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모든 보화와 아울러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값진 진주를 얻게 된다.
그대에게는 얻어야 할 하늘이 있고, 닫아 버려야 할, 멸망으로 이끄는 열린 길이 있음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대로 하실 작정이시다. 우리의 첫 조상들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했을 때, 그들의 불순종은 온 세상에 저주의 수문을 열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반대로 걸어갈 것 같으면 그분께서도 우리와 반대되게 가실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의 길은 어떤 희생이 있을지라도 그분의 모든 요구에 순종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무한한 사랑과 지혜 안에 기초를 두고 있다.
청년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능력을 정당히 발전시킬 수 있도록 굳건한 원칙에 의하여 지배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청년들은 주의를 무시하고 맹목적으로 충동만을 따름으로 끊임없는 위험 가운데에 있다. 청년들이 언제까지나 부모들과 후견인들의 지도와 보호만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므로 그들은 자립과 극기하는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양심적인 원칙에 의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고 성경 말씀 가운데 나타나 있는 표준대로의 참된 품격에 향상되는 것은 진리의 힘과 그 역사로 말미암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도는 다만 당신의 말씀에 가장 주의하여 복종함으로만 배울 수 있다.


멸망은 불순종의 결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 1:19, 20.

경건한 부모의 권면에 대한 존중심의 부족은 이 타락한 시대의 두드러진 죄악들 중 하나이다. 어둠 속으로 한걸음 내딛었기 때문에 어둡고 비참해진 많은 사람들의 생애가 우리 나라에 있다. 하나의 불순종의 행동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은 온 생애를 시들게 하고, 사랑이 많은 어머니의 마음을 번민으로 눌리게 했다. 만일 그대가 이 길을 따라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죄 없다 하지 않으실 것이다. 자신의 생애를 자녀들을 위하여 즐겨 바치고자 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어머니의 권면을 멸시함으로 그대는 다섯째 계명을 범하고 있다. 그대는 그대의 발걸음이 그대를 어디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다시 어머니의 주장, 어머니의 사랑을 변호하는 바이다. 그리스도인 어머니에 대한 불순종의 죄보다 더 저열한 배은 망덕을 나타낼 수 없다. 속절없는 영아 시절에 어머니는 그대를 돌봐 주었고, 그가 애정어린 마음으로그대를 기를 때, 그의 기도와 눈물을 하늘이 목격하였다. 저녀들을 위하여 그는 고생하고 계획하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극기하였다. 그대의 온 생애를 통하여 그의 진실한 마음은 그대의 복리를 위하여 염려하고 성실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대는 그대 자신의 길을 택하고, 그대가 거두게 될 쓰라린 수확과 그대가 어머니에게 가져다 줄 슬픔을 개의치 않고 그대 자신의 맹목적이고 완고한 뜻을 따른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을 수 있는 광대한 지식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만약 인간이 순종하였더라면 하늘 정부의 계획을 이해하였을 것이다. 하늘의 세계는 그의 은혜와 영광의 방들을 열어서 탐험하게 했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님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4, 15.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하는 데는 바른 행위를 하려는 부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나는 품성을 형성하는 일에는 부단의 노력과 활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청년들에게 감명시켜 주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엄정한 성실함의 원칙을 품성 가운데 짜 넣어서 청년들로 남자와 여자의 최고의 표준에 달하도록 함이 필요하다. 청년들은 값으로 산 바된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그리스도의 것인 저희 몸과 정신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한다.
날마다 진보하는 것이 청년들의 할 바 일이다. 베드로는 말하기를,“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것이 너희에게 있어 충만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벧후 1:5-8)한다고 하였다.
그대가 이러한 계단으로 올라가기를 시작할 때에 계속하여 점차로 올라갈 모든 계단을 한꺼번에 마음의 눈 앞에 놓고 세어 보지 말고 오직 예수를 주목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겠다는 일편단심을 가지고 나아가면 그대는 진보할 것이다. 그대는 하루 동안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할 수는 없다. 그대가 만일 앞으로 반드시 당하고 이겨야 할 곤난한 문제를 바라본다면 실망중에 빠져버릴 것이다. 그대는 사단과 싸워야 할 것이니 사단이 그대의 마음을 그리스도에게서 돌이켜 자기에게로 이끌기 위하여 사단이 할 수 있는 온갖 계획을 다 하려고 힘쓸 것이다.


하나님의 지식안에서 증진됨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골 1:10.

인류를 건지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이루려고 진정으로 노력을 다하여 힘쓰는 자는 그의 천부의 재능을 가장 잘 이용하는 자이다. 그대가 승리에 승리를 얻을 때까지, 그대가 시작한 사업을 인내하며 계속하라. 한 목적을 위해 그대 자신을 교육하라. 더욱더 큰 선을 완수하기 위하여 최고의 표준을 늘 염두에 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사람이 되라.
그대가 일평생 동안 해야 할 큰 일에 그대는 스스로 압축되지 말지니 이는 단번에 이 모든 일을 하라는 요구를 받지 않았음이다. 그대의 온갖 능력으로 그날 그날의 일을 하게 하며, 귀한 기회마다 이용하고,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시는 바 도움을 감사히 여기고, 한 걸음씩, 한걸음씩 사다리로 올라 향상 발전하게 하라. 그대는 하루씩, 하루씩만 사는 줄을 기억할 것이니 그 하루는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시는 것이며, 그대가 그 하루 하루에 당하는 특권과 기회를 얼마나 가치 있게 이용한 것은 하늘 책에 기록될 것이다. 그대는 최후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시는 주인의 음성을 들을 만큼 하나님에게서 받은 바 그 하루 하루를 이용하기를 바란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무력한 것 같이 보이나 그 무가치함을 느끼고 온전히 구세주의 공로에 의지하는 영혼보다 더 참으로 정복할 수 없는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이 정복을 당하도록 허용하시기 보다는 차라리 그를 도우시려고 하늘에 있는 모든 천사를 보내실 것이다.
그대들의 생애에 있어서 신앙은 다른 모든 감화력들 중에 일부가 아니요 다른 모든 감화들을 지배하는 영향력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엄격하게 절제하라. 모든 유혹을 물리치라. 교활한 원수에게 추호도 양보하지 말라.

품성의 힘과 미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호 14:5, 6.

젊은 남녀들이여, 그대들이 어떠한 경우에서도 신뢰할 만하고 신실하며 정의의 편을 들 준비와 결심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그대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대들은 바른 습관을 형성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도덕에 건전하고 선행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과 사귀도록 힘써라. 귀한 시련의 기간은 그대들이 모든 품성의 결함을 제거하도록 허락되었으며 그대들은 다만 내세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유용한 자가 되기 위하여 모든 결함을 제거해야만 한다. 좋은 품성은 금이나 은보다도 더 가치있는 재산이다. 이러한 품성은 공포나 어떤 실패로 인해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세상의 재물이 쓸어버림을 받는 날에 품성은 풍성한 보상을 가져올 것이다. 근실, 견고, 인내는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계발시켜야 할 특성이니 대개 이러한 특성은 이를 소유한 자로 저항할 수 없는 능력 곧 선을 행하는데 강하게 하며 악을 대항하는데 강하게 하고 역경을 견디는데 강하게 하는 그런 능력으로 옷입혀 줄 것이다.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책임감은 지력의 발전을 위하여 모든 자극제 중에서도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충동에 의해서 행동이 이루어질 때 그 학생은 경박한 자가 될 수 없다. 그 학생은 항상 진실하게 행할 것이다. 열등한 품성을 가진 청소년들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청소년들과 교제하는 경우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편에 굳게 서 있는 자들은 이성과 양심이 옳다고 가르치는 바를 굳게 지지할 것이다.


은혜와 지식안에서 자람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벧후 3:18.

젊은 친구들이여, 주를 경외함이 모든 진보(進步)의 기초에 놓여 있다. 그것은 지혜의 근원이다. 그대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대에게 청구하시는 것이 있다. 왜냐하면 그대의 편에서 아무런 간청이나 공로가 없어도 그분의 섭리의 풍성함을 그대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보다도 그분께서는 그대에게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주심으로 온 하늘을 한 선물 안에 주셨기 때문이다.
이 무한한 선물의 보답으로써 그분께서는 그대에게서 자원하는 순종을 요구하신다.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의 귀중한 피의 값으로 산 바 되었으니 그분께서는 그대가 누리는 그대의 특권들을 옳게 사용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대의 지적, 그리고 도덕적 기능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지혜롭게 계발시키기 위하여 그대에게 위탁된 달란트들이기 때문에 그대는 그것들을 동면(冬眠)하고 있도록 내버려 두거나 나태하게 내버려 두어서 불구나 난장이가 되게 할 자유가 없다. 그대에게 놓여진 중대한 책임들이 충성스럽게 충족되고, 그대의 노력들이 똑바로 향하며 그대의 최선인지는 그대가 결정할 일이다.
우리는 말세의 위기에 살고 있다. 온 하늘은 그대가 형성하고 있는 품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대가 세상에 있는 정욕으로 인하여 썩어질 것들을 피하여 신에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모든 준비가 그대를 위해 이루어 졌다. 사람은 악의 세력들을 자신의 연약한 노력으로 저항하도록 홀로 버려두지 않았다. 도움은 수중에 놓여 있으며 그것을 진정으로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질 것이다. 야곱이 계시중 본 사다리 위로 오르락 내리락 하던 하나님의 천사들은 가장 높은 하늘까지 기어오르려고 결심하는 각 영혼을 도와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장을 고무시킴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벧전 2:2, 3.

우리들은 인간의 지능이 미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연구가 되며 이생과 내세를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식이 담긴 책으로서 가장 위대한 책인 성경을 모든 학생들에게 권하는 바이다. 성경의 진리를 깊이 배우며 심령을 변화시키는 진리의 능력을 느낄수 있는 학생은 균형잡힌 생애와 경건한 대화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낼 것이다.
생명이 그러한 것처럼 자라남도 또한 그러하다. 꽃봉오리를 피게하고 꽃이 열매 맺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씨가 발육되어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을 이루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모든 초목과 꽃들은 저희의 염려나 걱정이나 노력으로 말미암아 자라나는 것이 아니요 다만 하나님께서 저희의 생명을 위하여 공급하시는 것을 받으므로 말미암아 자라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무슨 염려나 자기의 힘으로써 저희의 키를 조금이라도 늘일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대들도 그대들의 염려나 노력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자라날 수 없는 것이다. 초목이나 어린 아이는 저희의 주위에 있는 것들에게서 저희의 생명을 위하여 공급되는 것들-공기, 일광, 영양-로 말미암아 자라나는 것이다. 이 천연계의 선물들이 동물과 식물에게 관계되고 있는 그러한 관계가 그리스도와 그를 의지하는 자들 사이에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무한한 선물로 주심으로 온 세상을 은혜의 분위기로 둘러 싸기를 마치 공기가 지구를 둘러 싼 것같이 하셨다. 누구든지 이 생기를 주는 분위기를 호흡하기를 선택하는 자들은 살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장성한 남녀가 되기까지 자라날 것이다. 꽃이 태양을 향하는 것처럼 우리도 ‘의로운 해’이신 예수께로 향할 때에... 우리의 품성은 계발되어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서 온 떡임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 6:57, 58.

우리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결합(結合)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늘에서 오신 생명의 떡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를 먹음으로 그에게서 항상 양분을 섭취하며 언제나 신선하고 풍성한 보물이 용솟음치는 샘에서 마셔야 한다. 우리가 항상 주를 우리 앞에 모시고 또한 우리 마음에서 그에게 감사와 찬송이 나오게 할 것 같으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 생애 가운데서 항상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마치 우리가 우리의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당신의 오묘한 뜻을 말씀하여 주실 것이다. 예수의 임재로 평안함과 즐거움이 때때로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우리 마음은 때때로 그가 에녹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가까이 오실 때에 뜨겁게 될 것이다. 이런 미덕들을 가진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종교는 생기를 주고 보편적인 원칙이 되고 살아 활동하는 영적 세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서는 언제나 청년다운 싱싱하고 활력있는 희락이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그 마음은 고갈(枯渴)하는 못이나 밑이 빠져서 그 담은 것을 잃는 물통과 같지 않다. 그것은 마치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샘들의 물이 합류되어 흐르는 산골짜기의 물과 같다. 이 샘물은 돌 사이로 거품을 이루면서 피곤하고 목마르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시원하게 하여 준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곧 일어날 놀라운 일을 위하여 준비하여야 하며 이 준비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함으로 그 계명에 저희 생애를 일치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푯대를 향하여 나아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3, 14.

하늘의 천사들은 굳은 믿음을 가지고 행실에까지 완전히 나타나는 그러한 품성의 완성을 위하여 힘쓰는 사람들과 협력할 것이다. 이 일에 힘쓰고 있는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네 오른 편에 서서 너를 돕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의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가 협력할 때에 그것은 전능한 것이 된다. 무엇이나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는 것은 그의 힘을 의지하여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 그가 명하는 모든 것은 다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인생의 아침부터 시작하여 자연과 하나님의 법칙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전진하고 향상한다. 그리하여 날마다 그의 하늘 집으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는데 그 곳엔 생명의 면류관과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계 2:17)는 새 이름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행복과, 성결과, 가치는 끊임없이 자라난다. 해마다 그 전해보다 더욱 진보한다.
하나님께서는 청년들에게 올라갈 사다리를 주셨으니 곧 땅에서부터 하늘에 닿은 사다리이다. 이 사다리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 그리하여 전후 좌우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나는 광선이 흘러 내린다. 주께서는 올라오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지키시나니 붙잡는 손이 상하거나 디딘 발이 흔들릴 때에는 언제든지 도움을 보내 주실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다, 기쁨이 충만한 어조로 일러 주라. 누구든지 인내하면서 사다리를 올라오는 사람은 하늘 도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으리라고.
사단은 청년들에게 많은 유혹을 제시한다. 그는 그들의 영혼을 얻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승부를 결단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유인하고 멸망시키기 위하여는 모든 수단을 남김 없이 활용한다.


나는 요동치 않으리라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심으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 16:8.

우리의 품성이 성실의 습관을 형성하는 것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중 아무것도 참으로 작은 것은 없다. 매 행위는 옳은 편이든 그른 편이든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품성이 형성되고 시험되는 것은 평범한 생애에서 적은 것을 취급함에 있어서 원칙을 실천함으로만 되는 것이다. 생애의 여러가지 환경들속에서 우리는 시험되고 입증되며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견디어 내어야 할 더욱 크고 중요한 시험들을 대항할 힘을 획득하게 되고 더욱 중대한 위치를 채우기 위한 자격을 준다. 마음은 매일의 시험들을 통하여 충실의 습관을 얻고 기호나 쾌락 위에 정의와 의무의 인식을 두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그렇게 훈련된 마음들은 옳은 것과 그른 것 사이에서 마치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과 같이 요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신 그들에 앞에 문제가 제시되는 즉시 그들은 그것에 원칙이 개입된 것을 단번에 식별하고, 그 문제에 관해 긴 논쟁 없이 본능적으로 옳은 것을 택한다. 저들은 저들 자신을 성실과 진실의 습관으로 훈련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충성스럽다. 작은 일에 충실함으로 저들은 힘을 얻었으며 그리하여 저들은 더욱 큰 일들에도 충실하기가 쉽다.
만일 우리의 생애가 거룩한 향기로 충만해 있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선한 생각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을 높인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선한 행동을 한다면, 우리가 오두막 속에 사느냐 왕궁에 사느냐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환경은 영혼의 경험에 별반 상관이 없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위대한 이름은 모래 위에 쓴 글자와 같지만, 흠없는 품성은 영원토록 존속할 것이다.


나는 나무와 같으리라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입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 1:3.

우리가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대로 가장 신성하고 엄숙한 기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생애에는 겉치레(허영)가 없어야만 한다. 세상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인들을 주목하고 있으니 이는 저희가 우리의 신앙 고백과 우리의 높은 표준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신앙 고백대로 살지 않는것을 세상 사람들이 보는 때에는 저들은 경멸하여 우리들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이다.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은 저들의 생애 가운데서 모든 것을 그분의 뜻과 일치시킬 것이다. 우리는 주의 편에 설것을 선택하였으므로 우리의 생애는 세상 사람들의 생애와 선명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 시험하는 자는 그의 아첨과 뇌물을 가지고 저희들에게 와서 말하기를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그가 아무것도 받을만한 가치가 없음을 알므로 저희는 시험하는 자의 유혹에 굴복하기를 거절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저들은 깨끗한 원칙에 대한 저희들의 순결함을 지킬수가 있다. 거룩한 천사들은 저희 곁에 가까이 있고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진리를 굳게 붙잡는 가운데 나타나시는 것이다. 저들은 참된 증인으로써 진리의 은혜 가운데서 결정적인 증언을 나타내는 의용병들이다. 저들은 사람들이 줄 수 있는 모든 선물로 인하여 남자와 여자들이 진리와 공의로 부터 한치라도 물러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같은 자들은 저희가 어떠한 장소에 있든지 하늘로 부터 영광을 받을 것이니 왜냐하면 저들은 저희가 희생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을 상관하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뜻에 저희의 생애를 일치 시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도덕적 용기, 우쭐해지거나, 매수 당하거나, 위협당할 수 없는 정직이 있어야 한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함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눅 16:10.

사람이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 많은 생각들이 기록되지 않은 하루 하루의 역사를 조성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사상들은 성격을 조성하는 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우리의 생각에 엄격한 주의가 필요한바 이는 하나의 불순한 사상이 마음에 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나쁜 생각은 마음에 나쁜 인상을 남겨 준다. 만일 사상이 순결하고 신성하면 그 사람은 그러한 사상을 가졌으므로 말미암아 더욱 더 향상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영적 고동(鼓動)은 활발해지고, 선을 행하는 능력은 증가된다. 마치 한 방울의 비가 땅을 축여서 다음의 빗방울의 길을 준비해 주는 것과 같이 한 개의 선한 생각이 다음 선행의 길을 예비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을 계속함이 우리를 목적지에 다다르게 한다. 가장 긴 쇠사슬도 한개, 한개의 고리로써 연결된다. 만일 여러 고리 중에 단 하나가 결함이 있다 해도 그 사슬은 쓰지 못하게 된다. 사람의 성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균형이 잡힌 성격은 온전히 이행된 한개, 한개의 행동으로써 이루어진다. 단 한개의 결함일지라도 이를 극복하지 않고 그대로 배양하면 사람을 불완전하게 만든다. ... 하늘에 들어가는 자는 점이나, 주름이나, 또는 아무 그러한 것이 없는 품성을 가지지 아니하면 안 된다. 어떠한 것을 물론하고 더러운 것은 결코 거기 들어갈 수가 없다. 모든 구속 받은 무리중에는 한 사람도 결함 있는 자를 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이 전체적으로 완전한 것은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각개의 부분이 모두 완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한개의 작은 풀잎을 지으심에 있어서도 세계를 지으시는 데 사용하신 것과 꼭 같은 주의를 가지고 하신다. 만일 우리가 완전하고자 하면 우리는 작은 일을 행하는 데 신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두려워 하지 않으리라
“여호와는 나의 빛이시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 27:1.

최후의 승리를 얻을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무서운 당황과 시련의 시기를 겪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저희 담대함을 잃어서는 안 될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받는 단련의 일부이며 또한 동녹을 전부 씻어버리는데 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종들은 대적의 공격과 그의 극악한 능욕을 꾸준히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실망시키려고 힘쓸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들이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사단은 그의 가증한 그림자로 앞길을 가로막아 예수를 보지 못하게 하고, 주의 사랑을 명상하지 못하게 하며, 천국의 유업의 영광을 차단한다. 하나님의 자녀들로 끊임없이 의혹을 품고, 위축되고, 전률하고, 그리고 수고하면서 걸어 나가게 만드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다. 그는 사람의 앞길을 할 수 있는 대로 슬프게 만들려고 힘쓴다. 그러나 만일 그대의 눈을 항상 위로 향하고, 그대의 곤난을 내려다 보지 아니하면 그대는 도중에서 지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대는 곧 예수께서 당신의 손을 펴시고 그대를 도우려 하시는 것을 볼 것이다. 그대는 다만 단순한 믿음으로써 그대의 손을 그에게 드려 주께서 그대를 인도하시게 할 것뿐이다.
예수는 이 세상의 빛이시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의 생애를 본받아서 그대의 생애를 빚어 내야 한다. 그대는 그리스도 안에서 도움을 얻어 강하고 균형을 얻은 아름다운 품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단은 이러한 품성에서 흘러 나오는 빛을 무효화 시킬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할 일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람의 칭찬과 총애의 힘으로써 살아 나가게 마련하시지는 않으셨다. 주께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힘입어 설 수 있도록 뜻하셨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리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 3:16.

그대가 구주의 흠없는 생애와 그의 무한하신 사상을 깊이 상고함으로써 구주를 더욱 잘 알게 될 때에는 예수를 믿는 그대의 믿음은 자라날 것이다. 주를 멀리하거나 또는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서는 자라지 아니하면서 주의 제자라고 공언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은 없다.
그대가 은혜중에서 자라고 있다면 그대는 종교적 집회에 출석하기를 좋아할 것이요, 또한 그대는 즐거이 회중앞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간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로 말미암아 청년을 분별 있는 사람이 되게 하고, 또한 그의 자녀들에게 지식과 경험을 주실 수가 있다. 그들은 날마다 은혜중에서 자라날 수 있다. 그대는 그대의 기분으로 그대의 신앙을 헤아려서는 안 된다.
그대 자신의 마음과 또한 하나님께 대한 그대의 사랑의 상태를 면밀히 조사해보라. 물어 보라. 나는 오늘 하루의 귀한 시간을 내 자신을 기쁘게 하는 데나 내 자신의 오락을 추구하는 데에 바쳤는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들을 행복스럽게 해 주었는가? 나는 나와 관계되는 이들을 도와서 그들이 하나님께 더 큰 헌신을 하게 하고 영원한 사물을 이해하게 하였는가? 나는 나의 신앙을 나의 가정에 들여 왔으며 거기서 나의 언어와 행동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타냈는가? 공손한 순종으로써 나의 부모를 공경하였으며 그리고 이로써 다섯째 계명을 지키었는가? 나는 나의 적은 일상의 의무를 기쁘게 받아들여 믿음으로써 이를 이행하고, 다른 사람들의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나의 최선을 다하였는가? 나의 입을 막아 죄악을 말하지 않고 나의 혀를 금하여 간교(奸巧)를 말하지 아니하였는가? 내가 능히 영생을 차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당신의 귀하신 생명을 주신 나의 구주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였는가?


우리는 그분 안에서 뿌리박히고 세워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6, 7.

우리는 날마다 개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더욱 열심히 기도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기도에 능력이 더할 것이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로 거룩하고 순결하게 하시며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곧고 향기롭게 하시리라는 우리의 확신을 좀 더 굳게 하여야 한다.
많은 사람은 그들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미덕으로 인해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행위의 동기를 귀중히 보심으로 때때로는 사람들의 많은 칭찬을 받는 행위일지라도 이기심과 비열한 위선에서 나온 행동으로 간주하신다. 우리 일상생애의 모든 행위를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를 행하게 된 그 동기를 보아 판단하신다.
주의 사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아직까지 다른 많은 사람들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경험보다도 더 높고 깊고 넓은 경험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대 가족 가운데 한 식구가 된 자라도 주의 영광을 보니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는 의미를 알지 못하는 자가 많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공로에 대하여 매우 미미하게나마 알고 마음 가운데 기뻐뛰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충분히 더욱 깊이 알고자 한다.
성령께서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여 그가 형태를 만들며 꼴 짓는대로 순종하는 자와 함께 역사하신다. 그대는 힘써 신령한 생각과 거룩한 교제를 갖도록 하라. 그대는 오직 주의 영광의 희미한 새벽빛을 본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주를 계속해서 더 알기 위해 노력하면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원만한 광명에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 6:13.

하나님의 영광을 방어(防禦)하며 어떠한 값을 치루고서라도 진리의 순결을 유지하는 자들은 우리 구세주께서 시험의 광야에서 받으신것과 같이 여러가지 시련을 만날 것이다. 양보하는 기질을 가진 자들, 잘못을 정죄할만한 용기가 없는 자들, 정의를 방어하는데 어떠한 압력이라도 대항하여 서기 위해 저들의 감화력이 필요될때 침묵을 지키는 자들이, 많은 번민을 피하고 많은 난국을 피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또한 매우 값진 상급을 잃을 것이며, 아마도 저희 영혼까지 잃어버릴지 모른다. 하나님과 조화되는 자들, 또한 부정을 대항하고 정의를 방어하여 서기 위해 그분안에서 믿음으로 힘을 받는 자들은 언제나 맹렬한 투쟁을 만나며 또한 흔히 저들은 거의 홀로 서야 한다. 그러나 저들이 하나님을 저들의 신뢰자로 삼는 동안은 귀중한 승리들이 저희의 것이 될 것이다. 그분의 은혜는 저들의 힘이 될 것이다. 저들의 도덕적 감수성은 예리하고 명확하며, 저들의 도덕적 힘은 그릇된 감화력들을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저들의 성실 또한 모세와 같이 가장 순결한 성질의 것이 될 것이다.
어리석음은 떨쳐버려야 한다. 우리가 대항하지 않으면 우리의 멸망을 분명히 초래할 혼수 상태에서 반드시 깨어나야 한다. 사단은 마음들에 강하고도 지배적인 감화력을 가지고 있다.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자들 중 많은 이들이 저들 자신들의 위험에 대해 눈멀어 있다. 그들은 그들의 심령에 죄악을 품고 있으며 저들의 생애에 실행한다. 저들의 친구들은 그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므로 흔히 그런 자들이 모두 옳은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진리의 변화시키는 능력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3.

사람을 창조하신 그분 외에는 아무도 인간의 마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자는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증가케 하실 수 있다. 모든 교사들은 저들이 거룩한 대리자들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가장 경험이 많은 인간의 판단이나 의견들이라도 불완전하고 결점이 많기 쉬우며, 저희의 품성에 유전적인 특성에 지배를 받는 연약한 도구는, 매일 성령의 성화하심에 복종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자아가 고삐를 잡고 몰려고 하기 때문이다. 배우는 자의 온유하고 겸손한 정신을 가지고 모든 인간의 방법과 계획과 의견들을 하나님께 교정과 승인을 받기 위하여 가져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울의 쉼 없는 정력이나 아볼로의 능숙한 논법도 영혼들을 개심시키는 효과를 주기에 무능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인간을 만나시기 위하여 인성을 쓰셨다. 그분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셔서 변화시키는 진리의 능력 가운데로 그들을 이끄셨다. 그는 그들의 성질과 관심이 자신과 동일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도록 동정과 믿음을 구하며 마음에 접근하셨다. 진리는 그 자체의 단순함을 지니고 그러나 위엄과 능력을 가지고 아름답게 그의 입술에서 흘러 나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교사이셨는가! 그분은 진리를 구하는 모든 정직한 자들의 동정을 얻고 그들의 마음에 평강을 찾게 하고자 그들을 얼마나 부드럽게 대하셨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가 임마누엘의 영광을 가지고 세상의 빛으로서 환하게 되고 하나의 변화된 단체가 되게 하기 위하여 일체의 준비를 하셨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빛과 평화의 영적 분위기로 두루 싸이게 되기를 하나님께서는 목적하신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임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할 때에 우리의 품성은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이 형성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의 사랑에 관한 생각으로 차게 된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품성을 명상할 때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모든 생각 가운데 자리잡게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싸준다. 만일 우리가 단 한순간 동안이라도 한낮의 밝은 태양을 바라본 다음 우리의 눈을 돌리면 태양의 영상(影像)이 우리가 보는 모든 물건 위에 나타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를 바라볼 때에도 그러하니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이 의의 태양이신 그의 형상을 반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밖에 다른 것을 볼 수 없고 또한 다른 어떤 것을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눈에 새기어져서 우리의 일상 생애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준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성정을 부드럽게 하고 또한 복종시킨다.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룩한 형상 곧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하게 된다. 우리들은 우리와 교제하는 모든 사람에게 광선을 반사한다. 우리는 성격의 변화를 얻나니 그것은 마음과 영혼과 정신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바치신 그 분을 반사함으로 밝히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 속에 거주하는 개인적인 산 감화력의 실현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주의 말씀이 우리를 점령하고 있을 때에 예수는 우리에게 한 영원불멸의 임재자(臨在者)가 되신다. 그리하여 우리의 사상과 행동을 지배하신다. 우리는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최대의 교사이신 그리스도의 교훈에 감화를 받고 있다. 인간의 책임과 인간의 감화력에 대한 인식은 생애와 및 일상 의무에 관한 우리의 견해에 권위를 준다.


변화된 마음은 성실함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빌 1:10.

하나님께서 큰 일을 하도록 자격을 주신 많은 사람들이 아주 조금밖에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저희가 적게 노력하는 때문이다. 허다한 사람은 저희가 확실한 생애의 목적도 없고 달하여야 할 표준도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저희의 행위에 따라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이 세워 놓은 표준보다 더 높은 표준에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그대는 표준을 높이 세워 놓고 한 계단, 한 계단씩 비록 고생이 되더라도 극기와 희생으로 그 진보의 사다리를 꼭대기까지 올라가라. 아무 것도 그 일에 방해를 하지 못하도록 하라. 운명이라는 것이 아무리 사람을 변통할 수 없을 만큼 단단히 붙잡아 맨다 할지라도 그것을 타개(打開)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경은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굳은 결심을 일으킨다. 한 장벽을 깨뜨리면 전진할 더욱 큰 기능과 용기를 얻게 된다. 단호한 결심을 가지고 옳은 방향으로 매진하라. 그리하면 역경도 그대의 방해자가 되는 대신에 돕는 자가 될 것이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또한 품성의 미(美)를 닦기 위하여 대망(大望)을 가져라. 그대가 품성을 닦는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그대도 이를 능히 할 수 있을 것이니 대개 에녹도 비록 부패된 시대에 살고 있었으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던 까닭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에녹과 같은 사람이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이루어진 품성만이 우리가 오는 세상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재물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훈계를 받고 있는 자들은 모든 신령한 학식을 하늘 집으로 가지고 가게 된다. 그리고 하늘에 가서도 우리는 계속하여 진보하게 된다. 그런즉 현세에서 우리의 품성을 계발하여 닦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할 수 없다.


변화된 마음은 열매를 맺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 1:11.

곡식이 싹을 내어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고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주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어떠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위하여서만 살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대표자로 있는 것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생애 가운데는 자라남이나 열매 맺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였다면 그대는 자신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도와 주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말하고 그의 인자하심에 대하여 이야기하라. 모든 기회에 의무를 다하라. 영혼 구원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온갖 방법으로 잃어버린 자를 구하려고 힘써라. 그대가 그리스도의 정신-다른 사람을 위하여 이기심 없는 사랑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정신-을 받아들일 때에 그대는 자라나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그대의 품성 가운데 맺힐 것이다. 그대의 믿음이 더욱 굳어지고 그대의 신념은 더욱 확고하여 지고 그대의 사랑은 온전하게 될 것이다. 순결하고 고상하고 사랑스러운 일에 있어서 그대는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더 많이 반사하게 될 것이다.
날마다 그의 종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화하게 하시며 저들로 신의 성품에 참여자가 되게 하며, 저들로 풍성하게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계획이시다. 주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복음의 진리 안에 있는 실질적인 경험을 통하여 참되고 견고하고 믿을 수 있는 실제적인 선교사들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는 저희로 하여금 우리 시대에 나타난 것보다 더욱 고상하고 더욱 거룩하고, 더욱 뚜렷한 결과를 나타내게 하려고 하신다.


성령의 열매가 맺힘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 23.

이 열매는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고 그 종류대로 수확을 내어 영생에 이르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안에 당신 자신을 나타내시고자 간절히 열망하신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의 백성에게서 완전히 재현될 때에는 그는 당신의 것을 찾으시려고 강림하시게 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우리는 바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촉진시키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다. 그의 이름을 믿노라고 하는 자들이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열매를 맺는다고 하면 온 세상에는 얼마나 속히 복음의 씨로 뿌려질 것인가! 최후의 큰 수확은 속히 익을 것이요, 그리스도께서는 귀한 곡식을 거두시려고 강림하실 것이다.
사랑이 지배하는 마음은, 자존심과 이기심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상처 때문에 분노와 복수심으로 충만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의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동기를 언제나 가장 호의적으로 해석한다. 사랑은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결코 폭로시키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좋지 못한 소문을 듣기 위하여 열광적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명예가 실추된 사람의 어떤 좋은 특성들을 생각해 내고자 노력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다. 불화와 다툼은 사단의 일이며 죄의 열매이다. 우리가 한 백성으로서 화평과 사랑을 맛보려면, 우리는 우리의 죄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피차간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각 사람은 이렇게 자문해 보도록 하라. 나는 사랑의 덕성을 소유하고 있는가? 나는 오래 참고 온유하게 되는 길을 배웠는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7, 20.

공언하는 바가 아무리 클지라도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이 물들어 있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 비록 그가 큰 믿음을 가지고 있고 이적을 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의 믿음은 가치가 없다. 그는 크게 자선을 베풀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사랑보다는 어떤 다른 동기에서 그의 모든 재산을 주어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한다면 그런 행동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열성 때문에 그는 순교자의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의 황금이 부족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만당한 열심가 혹은 야망적인 위선자로 취급하실 것이다.
순결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조용하고, 언행이 일치되는 생애에는 유창한 말보다 더욱 강력한 웅변이 있다. 사람의 인격은 그의 말보다 더욱 많은 감화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감화력을 결정해 주는 것은 우리 자신의 품성과 경험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의 능력을 확신시켜 주려면 우리는 그 능력을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애에서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증거하는 복음은 우리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 준 복음이어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산 믿음을 통해서먄 우리의 감화력을 불신의 세계가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다. 우리가 급히 흐르는 물결 속에서 죄인들을 건져내려면, 우리 자신의 발이 만세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굳게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휘장은 겉으로 보여 주는 표지가 아니며, 십자가나 면류관을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