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재림, 지구 역사의 끝

재림 지구 역사의 끝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일어나는 두려운 일들을 보면서 종말
이 가까왔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행과 고통과
슬픔을 보면서 이 세상이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 것인
가 불안해합니다.

이 세상은 곧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구의 종말은 비
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머지않아 지구의 역사가 끝나고 마지막
지구의 종말과 함께 복된 미래가 도래 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의 역사의 마침에 있어서 아주 행복한 결
말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지구 역사 상 단 한번 일어날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머지않아 곧 이 지구의 죄의 역사가 끝나고 예수께서 다시 오
실 것입니다. 성경은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 재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원한 미래로 인도
할 그 놀라운 사건을 소망 가운데 기다릴 것입니다 .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이 지구 역사의 끝에 있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함께 연구해 보려고 합니다. 곧 다가올 재림의 날
을 위해 준비하는 독자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생애의 빛 편집실

기독교인들에게 잊혀진 예수 재림

잊혀져가는 예수 재림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을 가장 벅차게 만들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일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지구의
비극적인 죄의 역사를 끝내시고 영원한 행복과 불멸의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하실 이 놀라운 사건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감동으로 뛰게 만들어야 할 사실이건만, 이 사실에 대해 이렇듯 잠잠하
고 조용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 감격스러운 재림의 순간을 기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준비조차 갖추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현재 기독교가 이 중대한 사실을 가르치기 않으며, 또한 진리에서 벗어난 가르침이 현 기독교계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오류가 섞인 현 기도교의 교리와 가르침은 성경이 말하는 가장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재림, 가장 감격스럽고 놀라운 사건의 의미를 퇴색시켜 버렸다.


예수님의 약속
재림의 약속은 예수께서 친히 주신 약속이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예수님은 자신의 참혹한 죽음의 고통이나 고난에 대해 염려하시기보다 이 땅에 외롭게 남겨질 제자들에게 희망찬 약속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구속의 시작이기 때문이었다. 그 대속의 죽음은 이 세상 온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올 것이었고, 그 보혈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을 영원한 하늘 본향으로 데려가 불멸의 삶을 살도록 만들 아름다운 전주곡이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
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
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
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
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
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놀라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약속을 천사를 통해 상기시키셨다. 그 천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
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 1:11).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강림하실 것에 대한 언급을 신구약을 통하여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신약 성경에서만 331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성경이 이렇게나 강조하고 있고, 또 지금 현재 이 시대야말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세상 끝과 재림의 징조들의 예언 성취가(마 24장) 눈 앞에 확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야 하는 재림이 이렇게 잊
혀진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기독교에 스며들어온 잘못된 교리들 때문이다.

 

재림의 진리를 희석시키기 위해
기독교회를 강타한 오류들

기독교인들의 장례식에 가면 제일 먼저 듣는 말이 “OOO님이 소천하셨습니다!”이다. 소천의 뜻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늘의 부름심을 받고 하늘로 갔다는 말이다. 정말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금방 승천하여 올라가는 것일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죽은 사람들이 이미 다 하늘에 가 있는데 왜 예수님이 또 다시 성도들을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해 이 땅에 강림하셔야 하는가? 기독교에는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을 무효하게 만드는 오류들이 섞여 있다. 이 잘못된 가르침들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재림을 위해 준비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


▼ 영혼 불멸의 오류 1


1. 영혼 불멸설은 예수 재림을 부인한다
현재 기독교 안에는 오류의 교리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영혼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것과 사람이 죽으면 바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가르침이다. 예수님께서는 재림 때에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사람이 죽어서 다 하늘로 가있다면, 무덤에 누워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사람이 어디있는가? 만일 죽은 후에 이미 천국에 다 가있다면
재림이 왜 필요한가?


2. 영혼은 영원히 사는가?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 spirit)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12:7). 이 성경절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영혼이 불멸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이 “영”이란 똑같은 단어가 야고보서에는 이렇게 사용되었다. “영혼(spirit)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여기서 “영혼(spirit)”이란 말이 성경의 난외 주에는 “호흡(breath)을 뜻함”이라고 나와있다.

이 말의 헬라어 원어는 “프뉴마(Pneuma)”로서 “호흡” 또는 “공기”를 뜻한다. 성경 전체에 사용된 “영혼”이나 “영”이라는 말로 번역된 이 단어의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는 “루아흐”, “네페쉬”, “네솨마”, “푸뉴마”이다. 이 단어는 성경에 약 1700번 이상 사용되었는데, 그런데 이 단어가 불멸의 성질을 가졌다거나 죽지 않는 성질을 가진 것으로 언급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성경에서는 이 단어는 헬라 원어의 뜻인 “호흡(breath)”과 “영(spirit)”으로 번갈아 사용된 것을 알수 있다.
“나의 생명(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호흡, spirit)이 오히려 내 코에 있느니라”(욥 27:3).
여기서 욥은 “호흡”과 “영”이란 말을 동일한 의미로 사용했다. 사람의 코 안에는 호흡이 있다. 호흡은 창조 시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불어 넣으신 생명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그러므로 여기서 “영혼은 하나님께 돌아간다”는“호흡”을 말하는 것이다. 호흡(생기)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주신 것이기 때문에, 호흡, 생명력만이 주신 분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성경은 죽으면 사람이 하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무덤 속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잠을 잔다.
영혼은 불멸하는 것이 아니다. 죽을 수 있으며 죽는다고 말한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18:4). 이 말씀은, 영혼이란 불멸의 특성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죽음을 경험 할 수 없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입증하고 있다.


▼ 영혼 불멸의 오류 2


1. 영혼 불멸설은 부활의 진리를 부인한다
사람이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으로 곧바로 간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오순절 날 베드로는 죽은지 1000년 이상 되는 다윗에 대해서 매우 강력한 발언을 했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행 2:34). 성경은 다윗이 죽고 난 후 아직 무덤에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에 대하여 분명하게 대답하신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 29).


오류로 인해 퇴색된 재림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빠져나와 영원히 산다고 믿는 잘못된 사상과 가르침, 또한 죽음 이후에 천국이나 지옥에 가서 영원히 거한다는 가르침은 예수님의 재림의 의미를 퇴색시켜 버렸다. 만일 현 기독교에서 가르치는대로 사람이 죽은 후에 이미 천국에 가있다면, 왜 구태여 예수께서 그들을 다시이 땅에 데리고 오셨다가 또 다시 하늘로 가시겠는가? 이런 가르침이야말로 바벨론의 오류에 근원을 둔 모순 투성이의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를 강타한 그 오류들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구태여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게 만들
고 말았다.
믿음의 선구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렸다. 모든 신실한 선구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그들의 말을 들어 보라!

루터:“나는 심판의 날이 앞으로 3백 년이 못되어서 올 것으로 확신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악한 세상을 더 이상 오래 참지 않으실 것이며, 참을 수도 없으실 것이다.” “이 가증한 나라가 전복될 큰 날이 다가오고 있다.”

칼빈: “그리스도의 오시는 날을 모든 사건들 중에서 가장 기쁜 사건으로 주저하지 말고 고대
하라.”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나라의 영광을 완전히 나타내시는 그 큰 날이 밝아오는 것
을 볼 때까지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명상하기를 주린 것처럼 해야 한다.”

녹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하늘로 가지 않으셨는가? 그리고 다시 오실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분께서 돌아오시되 속히 돌아오실 것을 믿는다.”

무디: "주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는 이귀중한 교리는 여느 다른 교리들처럼 신약이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교회에 들어온지 15, 16년이 되어서야 재림에 관한 설교를 듣게 되었다. 침례에 대한 주제를 크게 다루지 않는 교회는 없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모든 편지서에서 침례는 불과 13번 언급되는 반면에, 우리 주님의 오심은 50번 이상이나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교회는 그것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말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아는 것을 마귀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 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교회를 그처럼 크게
깨어나게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추종자들을 당신께로 영접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라는 진
리를 굳게 붙잡는 순간, 이 세상은 그에 대한 지배력을 잃게 된다." D. L. Moody, The Second Coming of Christ (Revell), pp. 6, 7.

재림의 소망은 그들의 최대의 소망이었다. 재림은 우리에게도 최대의 소망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 재림을 기다리고 고대하고 준비했던 믿음의 조상들처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고대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재림의 징조와 짐승의 표의 환난

재림의 징조와 짐승의 표 환난

 

지금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세상 끝과 재림의 징조에 대한 예언 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어느날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24:3).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 끝을 함께 묶어서 답을 해주셨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 24:6~9).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눅 21:25,26).


기근과 지진과 온역과 하늘의 징조들

 

재림의 징조 중에는 지진, 기근, 온역, 바다와 하늘에 일어나는 일들 등 자연계 현상이 포함되어 있는데, 지면상 모든 징조들을 다 다루지 않고 지진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고 지나가도록 하자. 지구상에 지진들이 있었지만, 마지막 때에는 세계 곳곳에 빈번하게 큰 지진들이 일어날 것이다. ‘처처에’라는 표현은 대규모의 지진이 여기저기서 자주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상 대 지진들이 간혹 일어났지만 최근처럼 대형지진이 연달아 일어난 적이 없다. 과학자들은 “불의 고리가 끓고 있다”라는 말을 하는데, 불의 고리란 세계 주요 지진대와 화산대 활동이 중첩된 환태평양 조산대로서, 지진판과 활화산이 고리같은 원 모양으로 분포돼
있어 ‘불의 고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 세계 지진의 80~90%가 이곳에서 발생한다.


2천년대 들어서는 불의 고리대 지역에서 대형지진이 지속적으로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대지진(9.1), 2006년 통가 대지진(8.1), 2008년 일본 이와태현 대지진(7.2), 2009 미국령 사모아섬 강진(8.0), 2010년 칠레서부 대지진(8.8), 2011년 일본도호쿠 대지진(9.0), 2014 칠레 대지진(8.2), 2016년 일본과 에콰도르에 일어난 7도 이상의 대지진들이 모두 불의 고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불의 고리를 떠나서도 대형 지진은 세계적으로 계속 일
어났는데, 2015년에 네팔에서 강도 7.9의 대지진이 일어나 8천명 이상이나 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땅이 흔들렸다.

지진의 횟수도 세계적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
다. 1970년 대에는 51회 일어났던 지진이 1980년
대에는 86회, 1990년대에는 100회이상으로 증가
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는 더욱 빈번해져
서 미국지질조사소(USGS) 발표에 따르면 2016
년 동안 전 세계에서 발생한 규모 5.0 이상의 지
진은 총 1,669회로, 이 1년 동안의 지짓 횟수가
1978~2015년까지 37년 동안 일어났던 지진 발생
횟수인 1,637회보다 32회 많다. 2017년에는 일본
한 나라에만 26회의 지진이 발생했고 2018년 중
반까지 31회 발생했다. 세계 각 곳에 이렇게 지진
이 빈번하게 일어난 적이 과거에 없었음을 보며
재림의 징조를 피부로 느낀다.
또한 종말의 징조 중에, 예수께서는 ‘바다와 파
도의 우는 소리’를 인해 혼란 중에 곤고할 것이
라고 말씀하셨다.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란
무엇일까? 그것은 폭풍과 해일, 그리고 거대한 쓰
나미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2천년대에 들어서 인
도네시아와 일본, 최근에 여러 다른 곳에서 대형
쓰나미들이 발생했다. 빈도가 점점 심해지는 초대
형급 쓰나미들이 순식간에 도시들과 집들을 휩쓸
어 가고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내는 것을 우리는 목
격한다. 정말 사람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
에 놀라 혼돈하고 곤고할 것이라는 예언이 그대
로 성취되고 있지 않은가?
예수께서는 언급하신 세상 끝의 징조 중 자연
계에 일어나는 현상들은 재난의 시작이라고 알려
주셨다. 재난의 시작이라 함은 곧 환난이 시작될
것이라는 말이다. 재림 직전에 이 세상에는 큰 환
난, 엄천난 지진과 기근과 전쟁이 있을 것이다. 지
금은 하나님의 참 백성들이 준비될 때까지 네 천
사가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다. 하나님의 인을
받는 사람들이 준비 될 때까지 잠깐 동안 엄청난
재난과 재앙들이 보류되고 있는 것이다.

 

짐승의 표의 환난은 무엇인가?

그럼 예수께서 말씀하신 환난이 무엇인가?


1. 짐승의 우상
성경의 예언서 요한 계시록에는 마지막 때에 있을 “짐승의 표”의 환난이 등장한다. 계시록 13장에
는 새끼 양으로 표상된 두 번째 짐승 미국이, 첫 번째 짐승인 교황권을 위해 짐승의 우상을 세우고 짐
승의 표를 받게 강요할 것에 대한 예언이 나온다. 만일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못하게 하고
다 죽이리라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짐승의 우상이란 짐승의 “Image”, 곧 형상(모습)이라는 뜻인데, 미국이 첫 번째 짐승의 형상, image
를 따라서, 교황권의 과거의 특성과 행적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가리킨다. 곧 중세기에 이루어졌던
핍박의 공식에 따라서 짐승의 우상이 세워지고 그것에 경배하도록 강요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중세기에 교황권이 정치 권력을 이용하여 종교를 강요하고 자신들이 믿는 교리와 신조를 믿지 않는
자들을 핍박한 일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마지막 때에 그와 또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머지않아 미국은 짐승의 우상을 세운 다음에 온 세계를 향하여 짐승을 경배하고 짐승
의 표를 받으라고 강요할 것이다.


2. 짐승의 표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
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마지막 때에 사단이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 큰 환난의 때가 될 것이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매매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인데, 이 세상에서의 모든 생활의 방도가 끊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핍박과 생명의 위협을 받을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는 하나님의 표, 즉 하나님의 인과 사단의 표가 나온다. 하나님의 인이란 하나님의 소유라고 인을 치시는 것인데, 이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이룬 성도들이 받는 표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인을 받은 표는 어떤 생명의 위협과 고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일로 증명될 것인데, 특별히 하나님의 인이 나타나 있는 넷째 계명 참 안식일을 지키는 일로 증명
될 것이다.
반면에 짐승의 표란 사단이 세운 인간의 유전과 권위로 만들어진 계명을 지키고 그것에 경배하는
것을 말한다. 구약의 예언서 다니엘 서에는 작은 뿔로 표상된 교황권이 하나님의 법을 변경할 것에 대
한 예언이 나온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단 7:25).
계시록 13장에는 첫째 짐승으로, 다니엘 7장 25절에는 작은 뿔로 각각 표상된 교황권은 말로 지극히
높은 자를 대적하고 성도들을 괴롭게 하는데, 특별히 때와 법, 하나님의 십계명을 변경시킬 것이라고 예언되었고, 벌써그 일은 다 이루어졌다.
사단은 교황권을 앞세워 하나님의 계명을 변경하고 대신 인간의 유전대로 인간이 세운 계명을 세워
놓았다. 즉 하나님의 계명을 바꿨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법을 바꾸고 말았다. 현재 로마 교황청이
만든 십계명과 하나님의 십계명에는 두 가지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3. 변경된 하나님의 계명
천주교 교회는 자신들의 교리문답과 교리책에서 두번째 계명을 삭제하였는데, 그 이유는 십계명에
기록되어 있는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두번째 계명이 그들이 숭배하는 마리아 상이나 각종 성자들의 상을 정죄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두번째 계명을 빼버리는 대신에 열번째 계명을 둘로 나눔으로써, 10개의 계명을 가진 십계명의 형태 를 유지시켰다. 천주교회 십계명에는 우상숭배에 대한 계명이 없고, 탐심에 대한 계명이 두개로 중복 되어 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실은, 때에 관한 법을 변경한 것이데, 십계명 중에서 넷째 계명을 변경했다. 어떻게 변경했는가? 넷째 계명에 나오는 일곱째 날 제칠일 안식일(토요일)을 제일일(일요일)로
변경하였다. 그 이유를 천주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카톨릭교회는 안식일을 주일 중 일곱째 날
인 토요일에서 첫째날인 일요일로 변경시킨 후,
십계명의 네째 계명을 고쳐서 일요일을 주일
로 지키라고 명하였다”(카톨릭 사전 4권, 153).
“카톨릭교회가 그 존엄성을 토요일에서 일
요일로 옮겼기 때문에 우리는 토요일 대신 일
요일을 준수한다 (The Convert’s Catechism
of Catholic Doctrine, p. 50).

 

하나님의 계명을 변경한 일을 보면서 종교개혁자들과 믿음의 선조들은 이렇게 강력하게 증언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후서 2장 4절에 ‘하
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
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
이라 하느니라’ 고 기록하였던 그 존재가 여
기에 있다. 적그리스도인 ‘불법의 사람 곧 멸
망의 아들’이 있는데...그는 하나님의 법을 변
경하였으며, 하나님의 계명 위에 자신이 만든
계명을 높였다...우리는 여기서 교황권이 진짜
적그리스도의 권좌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확
신하는 바이다”(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vol.2, P.291,256).

침례교회의 에드워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론 나는 일요일이, 우리가 기독교 교부
들이나 다른 출처로부터 배운 대로 초기 기
독교 역사에서 한 종교적인 날로 사용되었
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일요일이)
배도한 교황권에 의해 채택되고 승인되었을
때, 이교주의의 표시로 낙인 찍히고, 태양신
의 이름으로 명명된 것을 개신교주의가 한
신성한 유산으로서 그것을 상속받았다는 것
은 얼마나 유감스러운 일인가!”(Dr. Edward
T. Hiscox, author of The Baptist Manual
Quoted in the New York Examiner, Nov.
16, 1890).

 

장로교회의 웨스트 민스터 신앙 고백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사람이 교회
의 머리가 될 수 없다. 특히 로마의 교황은
어떤 면에서든지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
교황은 바로 그 불법의 사람이고 멸망의 아
들로서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
스도 위에 자기 자신을 높이는 적그리스도
이다”(The Westminister Confession of
Fatih, Section 6, Chapter 24).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세상 끝에 있을 환난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에게 어려운 시험의 시간이 될 것이지만 그들은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 충성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참 백성들이 환난을 넉넉히 통과할 수 있도록 마지막 늦은비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실 것이며,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인을 받은 마지막 남은 자손들은 환난을 견딜 힘과 능력을 받을 것이다.
인간이 만든 계명이 높여지고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핍박과 고문과 생명의 위협을 받을 날이 가까워오고 있다.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일은 미국을 통해 성취될 것이다. 미국은 머지않은 장래에 종교의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강제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며, 먼저 나온 짐승을 위하여 일하게 될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에서든, 천연재해로 인한 이유에서이든, 미국의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막기 위하여 종교적인 강제성을 입법화 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짐승의 우상이 세워지고 짐승의 표가 내려지기 위한 준비로서, 이미 종교과 경제와 정치의 연합이 배후에 다 이루어져 있다. 앞으로 다시 중세기의 핍박이 재현 될것이며, 바로 미국이 그 선두에 서게 될 것이다.

아직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곧 인간의 유전과 인간이 세운 계명을 지키기를 강요 받을 때가 올 것인데, 그 때가 환난의 때와 시험의 때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와 계명에 대한 빛을 받고도 계속적으로 불순종하며 하나님의 율법보다 인간의 율법을 높이는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대신 국가가 권력으로 강요하는 법률에 순응하여 거짓 계명을 지키는 것은 사단의 세력에 충성하는 표가 되는 한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창조주께 충성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한 계층의 사
람들은 세상의 세력에 복종하는 인을 받음으로써 짐승의 표를 받는 반면에, 다른 한 계층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충성하는 표를 받는 길을 택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느냐 사람의 계명을 순종하느냐 하는 문제 중 어느 한편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때는 시험의 때요, 큰 환난의 때가 될 것이다 .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의인은 환난을 통과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환난 전에 의인들은
들림을 받아서 휴거하여7년 동안 하늘에 가있다가 예수 재림 하실 때 함께 온다고 배워서이다. 그런데 이 가르침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지막 환난과 영광스러운 주님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지 못 하도록 이끄는 위험한 가르침이다. 성경은 의인도 환난을 통과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환난으로부터 구원함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환난을 통과
하지만 그 환난으로부터 구출 받으면서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재림 하시기 전에 일어날  마지막 사건들에 대해 연구해 보자.


1) 은혜의 시기의 끝
하늘 지성소에서
예수님이 인류를 위한 중보 사역을 마치실 때, 이 세상의 은혜의 시기는 끝난다. 그 때에는 인류를 죄로부터 정결케 하는 속죄의 피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인간을 위해 봉사하시던 중보자의 자리를 떠나실 때에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는 엄숙한 선고가 내려진다. 그 때에 누가 구원 받을 사람인지 아닌지 헤아려지며 모든 사람의 운명은 영원히 결정된다. 은혜의 시기는 갑자기, 전혀 예기하고 있지 않은 때에 끝날 것인데, 예수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기 조금 전에
마쳐진다.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도록 잠깐 천사들이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불지 못하게 하고 있다(계 7:1~3). 이 구원 받을만한 때에, 평안한 때에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주님의 재림을 맞기 위해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짐승의 우상은 은혜의 시기가 마치기 전에 형성되고 세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문제가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 짐승의 우상이 세워지고 짐승의 표가 강요될 때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누구를 섬기고 경배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인간이 세운 제도와 권위와 계명에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매매를 못하는 처지에 빠져 극심한 어려움과 생명의 위협과 핍박을 받을지라도 하나님과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고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기로 순종할 것인가 결정해야만 한다. 그 때에 누가 과연 하나님께 충성하는 참 백성인지 드러나고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면서 은혜의 시간이 마치게 될 것이다.


2)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

은혜의 시간이 마치고 성령의 제어하시는 감화가 이 세상에서 떠날 때에 이 세상에는 두려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큰 지진과 민족 같의 다툼과 전쟁과 무서운 기근과 온역(치료되지 않는 전염병:편집자 주)과 하늘과 바다와 땅의 재해와 재난들이 일어날 것이며, 사람들은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마 24, 눅 21장 참조)할 것이다.

1. 늦은 비 성령의 임함
구속사업이 마쳐지려는 때에 이 세상에 환난이 오고 사단의 세력과 열방들이 분노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지막 복음을 전하는 일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고, 무너진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마지막으로 불러내는 큰 소리의 외침을 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환난을 넉넉히 통과하게 하기 위해 준비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늦은 비 성령이 충만하게 부어질 것이다. 이 두번째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매우 놀랍고 큰 능력이 수반될 것이다. 그리하여 담대하게 하나님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다 할 것이다. 특별히 늦은비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환난으로부터 보호할 덮개가 될 것이다.


2. 악인들이 당하는 칠 재앙

대제사장 되신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서 중보 사업을 마치고 일어나서 복수의 옷으로 갈아 입으실 때에 이 세상에는 마지막 일곱 재앙이 부어질 것이다. 요한 계시록 16장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짓밟고 짐승의 우상을 섬기고 짐승의 표를 받은 악인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악인들에게 내릴 일곱재앙에 대해 묘사되어 있다. 독한 헌데, 즉 무서운 피부에 나는 질병, 바다가 피가 되는 재앙, 해가 사람을 태우는 무서운 재앙들이 내릴 것이다. 그리고 특히 다섯째 재앙 때에 짐승의 보좌가 있는 곳에 암흑 재앙이 내릴 것이다.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계 16:10,11). 그 때에 과연 진짜 짐승의 정체가 누구인지 명확히 밝혀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셋째 천사를 통하여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계 14:9) 라고 외치면서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고 호소하고 있다.
여섯째 재앙은 아마겟돈 전쟁인데, 이것은 선과 악의 대쟁투 영적인 전쟁을 말한다. 그리고 일곱째 재앙 때에 큰 지진이 나고 섬들이 자취를 감추고 하늘이 종이축처럼 말리며 드디어 예수께서 재림하시게 된다.  


3. 의인이 당하는 야곱의 환난

짐승의 표를 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핍박과 생명에 위협주는 법령이 반포될 것이다. 사단의 세력과 악인들은 세상에 내리는 재앙들을 하나님의 백성의 탓으로 돌릴 것이다. 인간이 만든 계명을 지키지 않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이 땅에서 박멸시키기 위해 일제히 공격할 것이다. 표면상으로 악인들의 주장과 그 볍령은 세계의 평화와 화합을 위한 좋은 법처럼 포장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라는 법과 사형명령이 공포될 때에 성도들은 하나님께 밤낮 울부짖게 될 것이다. 이 때를 야곱의 환란의 때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 환난은 하나님의 백성의 충성심이 시험받는 시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을 받은 남은 백성 십사만 사천은 어떤 시련과 고난이나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며 온 우주에 하나님의 성품을 증거할 것이다.
그들은 마치 야곱이 얍복강에서 언약의 사자 예수 그리스도와 씨름한 것처럼 영적인 투쟁을 할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과 사랑과 충성이 우주의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죽을지언정 하나님께 반역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여자의 남은 무리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멸하기 위하여 사단의 모든 세력이 동원되고 그들의 생명을 없애려고 하는 위기일발의 순간에 미가엘이 일어나실 것이다(단 12:1).




영광스러운 재림

영광스러운 재림

이 지구 역사상 가장 영광스럽고 놀랍고 감격스러운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사건일 것이다. 지구의 죄의 역사가 끝나고 이 세상이 마치는 날, 그렇게 사모하고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공중에 임하시는 날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것이다. 과거의 믿음의 조상들이 그렇게 보기를 원했고, 우리 믿음의 선구자들이 그렇게 바라던 예수님의 재림의 날! 머지않아 우리는 그 날을 맞이할 것이다!

1) 예수께서 오시는 때

짐승의 표를 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법률상의 보호가 제거되고 그들을 없애려고 하는 운동이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참백성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는 그 위기일발의 순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세상에서 보호가 제거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옥중에서, 혹은 산림과 산중의 적막한 곳에 숨어서 여전히 하나님의 보호를 탄원한다. 사단이 악인들을 선동하고 악한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을 전멸하려고 할 때, 갑자기 짙은 암흑이 온 땅을 덮는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능력을 나타내시는 때는 한밤중이다. 갑자기 태양이 나타나서 혁혁히 빛나고, 이상한 징조와 기사들이 잇달아 일어난다. 하늘은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같이 되고 산들은 바람에 불리는 갈대와 같이 흔들리고 거친 바위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큰 폭풍우가 몰려오는 것같은 소리가 나고 바다에서는 사나운 물결이 일어나 부딪히며 땅의 기초 자체가 무너져 버리는 것 같다. 그 때에 큰 지진이 일어난다.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계 16:18). 산맥들은 가라앉고 섬들은 자취 없이 사라진다.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4~17).


2) 재림의 광경


검은 구름들과 암흑이 두루마리처럼 말려가기 시작하고 갑자기 하늘에 찬란하고 밝은 영광이 비추인다. 곧 사람의 손바닥 반만한 작은 검은 구름이 동쪽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이 인자의 징조임을 깨닫고 엄숙한 침묵 속에서 그 구름이 땅으로 점점 가까워짐을 주목한다. 그 구름은 점점 밝아지고 영광스럽게 되어 마침내 커다란 흰구름이 되는데, 그 아래는 타는 불과 같이 광명한 빛이 있고 그 위에는 찬란한 무지개가 있다. 예수께서는 불꽃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신다! 거룩한 천사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늘의 노래를 부르면서 주님을 수행한다. 하늘은 찬란한 천천만만의 천사들로 충만해지고 아름다운 음악소리 같은 소리가 천지를 울린다.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영광스럽고 휘황찬란하고 빛나는 광경은 사람의 붓으로 묘사할 수 없고, 사람의 마음으로 그 찬란한 모습을 가히 상상할 수 없다!
땅이 흔들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우레 소리가 요란한 중에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이 자는 성도들을 불러 일으킨다. 주님께서는 의인들의 무덤을 보시고 당신의 손을 드시고 “깨어라, 깨어라, 깨어라,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여, 일어나라!”고 외치신다.  이 땅의 어느 곳에서나 죽은 자들이 그 음성을 듣게 될 것이며, 그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날 것이다. 산 의인들과 부활한 성도들은 음성을 합하여 즐거운 승리의 함성을 지를 것이다. 성도들은 “영광! 할렐루야!” 찬양하는 가운데 공중으로 끌어올림을 받아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은 잠자는 성도들을 무덤에서 불러내어 불멸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옷 입히셨다. 살아남은 성도들도 홀연히 변화되어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간다. 구름 주위의 수행하는 거룩한 천사들도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시여!”하고 함께 소리를 높인다. 성도들은 하늘의 구름 병거 속에 끌어올려지고 구원 받은 성도들은 드디어 거룩한 하늘 도성을 향하여 천천히 올라 갈 것이다.


3) 모든 사람이 목격할 재림
 
예수께서는 당신의 재림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27)고 하셨다. 재림은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니다. 재림의 놀라운 광경은 세상의 온 족속과 민족이 목격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것이다. 어두운 밤에 밝은 번갯불이 각 사방으로 번쩍일 때에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처럼 주님의 오심도 그럴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눈에 완전히 보이게 임하는 것 외에도 재림 시에는 굉장히 큰소리가 나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고 하였다. 그 놀라운 광경과 소리는 죽은 자들이 깨어 무덤에서 일어날 정도로 굉장한 일일 것이다. 주님의 외치는 음성과 나팔 소리는 해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들릴 것이다.


마치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고 무관심한 채로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슬픈 이야기 중의 하나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주님을 만나게 될 재림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지 않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분을 보기를 간절히 사모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말하고 노래하며 전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예수의 다시 오심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진리입니다. 이 세상은 산산조각난 평화의 계획들과 깨어진 약속들과 수포로 돌아간 희망들로 인해 병들어 있습니다. 지구는 두려움과 슬픔과 불안 속에 병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구는 비극 속에 이렇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빈곤과 질병, 전쟁과 죽음은 예수께서 오실 때에 다 끝이 날 것입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예수님의 재림을 목격하고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품어 왔던 소망과 꿈의 가장 높은 클라이맥스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옵니다. 재림의 날에 설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과 성품을 준비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소통하는 나무들

하나님의 세계-소통하는 나무들

나무들로 빼곡히 들어찬 숲속을 걸어보신 적이 있나요? 나무들의 향기가 우리의 코를 간지럽게 하고 나무틈 사이로 여과된 아침 태양빛이 눈부시게 우리를 매혹하는 그런 숲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 숲의 나무들이 서로 소통하며 돕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한 나무가 아프면 인근 나무가 영양분을 공유해 준다는 사실이 산림 생태 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예를 들면, 카나다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로지폴 소나무(lodgepole pine)는 높고 곧은 것이 특징인데, 밀도도 적당할 뿐 아니라 패널 표면이 매끈하며 접착성이 뛰어나 제재목으로 많이 쓰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거진 숲의 그늘에서 로지폴 소나무의 묘목이 자란다면 묘목이 햇빛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는지, 늙은 나무들은 그들의 뿌리 구조를 변경하여 묘목을 위한 공간을 열어준다고 합니다. 따뜻한 배려이지요?


식물들은 땅속에서 어떻게 대화를 할까요? 연구자들은 식물이 소리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연구팀들이 특수한 도구를 이용하여 실험한 결과 묘목에서 발생하는 진동을 감지했고, 그 진동은 220 헤르츠로 측정되었습니다. 실험에 의하면, 측정기에 연결하지 않은 뿌리들도 측정기에 연결된 뿌리로 부터 나는 주파수의 진동 소리를 듣고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220 헤르츠의 나지막하고 ‘탁탁’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묘목의 뿌리 끝이 소리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식물들이 주파수를 인식한다는 것은 들을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나무들은 사람처럼 소리를 내어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화학적 메시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답니다. 또한 숲속의 식물들은 토양에 있는 다른 이웃에게도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이웃들이냐구요?


바로 박테리아와 곰팡이와 같은 유익 미생물들입니다. 이 미생물들은 나무가 필요로 하는 물과 영양분을 다 모으지요. 따라서 뿌리는 이들 생물체를 끌어들이기 위해 당분과 단백질과 같은 영양 물질을 생산합니다. 어떤 특수한 곰팡이(fungi)들은 뿌리와 상호작용을 하여 파트너십을 형성한다고 하는데요, 예를 들면 곰팡이는 뿌리에 들어갈 필요가 있을 때 이것을 나무에 알리고 나무는 곰팡이가 들어올 수 있도록 뿌리 벽의 한 지점을 부드럽게 함으로써 반응을 한다고 합니다.


곰팡이들은 그들의 몸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당분과 단백질을 제공 받는 대신 나무가 물과 미네랄을 얻도록 도와줍니다. 또 곰팡이들은 영양부족과 가뭄, 독성 중금속으로부터 어린 나무를 보호하며 도와줍니다. 나무들은 미생물들이 토양으로부터 채굴해 놓은 무기질들을 꾸준히 공급받아야 키가 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산림 생태 학자들은 이러한 네트워크를 ‘지하 인터넷’ 이라 부르지요. 나무들은 이러한 '지하 인터넷'이라 불리는 네트워크를 통해서 서로 소통하고 있다고 하네요.


나무들은 소리와 화학물질 또는 전기와 같은 통신수단을 통해 함께 일하면서 숲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이 관계는 다른 숲의 거주자들에게 건강한 서식처를 제공하면서 건강한 삼림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96 장 12 절에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물들을 화학물질, 소리, 전기 자극 등으로 서로 소통하는 유기체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런 숲의 조화는 인간의 반란으로 지구가 부패하기 이전의 완벽한 창조를 상기시켜 줍니다.
서로 배려하고 소통하고 돕는 나무들을 보면서,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돕지 못하는 우리 인간들이 부끄러워지네요.


오늘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척추를 알면 건강이 보인다 1

척추를 알면 건강이 보인다 1

시편 139장 14 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신묘막측”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엄위하고 기이하며 비상하여 감히 헤아릴수 없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놀랍고 신비로운 솜씨를 강조한 표현이다.


우리의 인체를 살펴보면 볼수록 정말 신묘막측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인체의 가장 작은 부분인 세포로 부터 인간의 몸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뼈, 그리고 그 뼈들을 덮고 있는 근육들과 그들의 동작들을 보면, 또한 인간의 몸을 감싸는 피부와 몸 안에 있는 많은 장기들의 활동들을 보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와 손길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몸은 무려370조개의 세포로 조직 되어 있으며, 뇌 세포만도 1000억개의 신경세포가 활동하고 있다. 우리 몸에는 206 개의 뼈가 있으며 650 개의 근육들이 있다.
이번 부터 몇 번에 걸쳐 “척추를 알면 건강이 보인다”는 주제로 건강 정보를 나누고자 한다.


독자들 중 허리나 등, 그리고 목을 삐거나 다쳐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허리나 목이나 등은 다쳐본 사람만이 그 고통과 괴로움을 이해 할수 있다.
아무리 체격이 크고 단련이 되어 있는 사람일지라도 목이나 허리를 다치면 꼼짝못하고, 걷기는 커녕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해 쩔쩔매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허리나 목을 다친 이유들을 보면 별 것 아닌 이유들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큰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혹은 높은데서 떨어졌거나 또 겨울에 얼음판이나 눈길에서 심하게 엉덩방아를 찌어 허리나 목을 다치는 경우도 있겠지만, 80~90% 의 환자들은 대부분 일상 늘 하던 일을 하다가 갑자기 목이나 허리를 삐거나 삐끗해서 병원을 찾는 경우들이다.


예를 들면, 아기 침대에 누어 있는 아기를 들어올리다가, 허리를 굽혀서 양말을 신다가, 바지를 입다가, 바닥에 있는 쓰레기를 줍다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허리를 움직이다가, 재채기를 하다가, 심지어는 하품을 하다가 허리나 목에 심한 통증과 함께 움직일수 없는 형편에 처하는 경우들을 보게 된다.

척추
먼저 척추에 관해 알아보자.
인체의 대들보이면서 중심기둥이 되는 척추는, 인체의 두개골을 바치고 있는7개의 경추(목뼈)로부터 시작해서12개의 흉추(등뼈), 그리고 5개의 요추(허리뼈), 그리고 5개의 천추(엉치뼈), 마지막으로 4개의 미추(꼬리뼈) 등 모두 33개의 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면서 천추 5개와 미추 4개가 각각 하나로 합쳐져 천골과 미골을 형성하기 때문에 총 26개로 구성이 된다.
척추 주위에는 150개 이상의 근육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매 척추뼈마다 인대( ligament), 힘줄(tendon)들이 26개의 척추뼈들을 붙잡아 주고 있다. 인체를 건물에 비교 한다면 척추뼈는 철근에 비교할수 있고 근육들과 인대 그리고 힘줄은 철근위에 부어지는 시멘트라 표현할수 있다.
인간의 경추가 7개의 목뼈로 구성되어 있다면 동물중 가장 목이 긴 기린의 목뼈는 몇개나 될까?
사람의 목의 길이가 3.9~4.7 인치(10~12 센티) 인데 비해 기린의 목의 길이는 6 피트 (1.8 미터) 인데 기린의 목뼈는 과연 몇개나 될까?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면 대부분 30개 내지는 40개 정도 될 것이라는 답을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기린의 목뼈도 인간과 같은 7개의 목뼈로 구성되어 있다.
말이나 개 심지어 고래같은 척추 동물의 대부분은 인간과 같은 7개의 목뼈를 가지고 있음을 보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창조의 놀라운 역사를 깨닫게 된다.


척추의 기능
척추의 기능을 한번 살펴보자. 인체의 두개골이 뇌를 간직하며 외부의 충격으로 부터 보호해주듯이, 척추는 위쪽으로는 머리를 받치고 아래쪽은 골반과 연결되어 체중을 하지로 전달하고 신체를 지지하며 평형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척추관내의 감각, 운동 신경을 포함한 중추 신경을 외상으로 부터 보호해 준다.
뇌로 부터 시작된 척추 신경은 척수 앞뿔쪽의 운동신경과 뒷뿔쪽의 감각신경, 자율신경의 일부가 합쳐진 신경으로, 각 척추뼈 사이에서 갈라져 나오며 총 31쌍이 존재한다.
더 쉽게 설명하면, 운동신경은 인체의 모든 장기들과 근육들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도록 해주는 신경이고, 또 감각신경은 인체 외부의 감각자극을 중추신경계를 통해 전달 해주는 신경인데,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척추의 각도

척추를 앞에서 혹은 뒤에서 볼때는 일직선으로 되어 있는게 정상이지만, 옆에서 볼때는 목뼈와 허리뼈는 전만각도, 등뼈과 엉치뼈는 후만각도를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목뼈와 허리뼈는 몸이 왼쪽으로 향했을 때, 앞쪽으로C 자형 커브 (Lordosis)로 되어 있고, 등뼈와 엉치뼈는 뒤쪽으로reversed C 자형 커브(Kyphosis)로 되어 있다.
정상적인 목뼈와 허리뼈의 각도는 30도에서 40도, 그리고 등뼈와 엉치뼈의 각도도 20도에서 40도 정로로 본다.
또 한 가지 알면 좋은 사실은, 매 척추 뼈 사이에는 추간판이 있는데, 추간판이란 척추뼈 사이의 원반으로 (intervertevral disc) 척추뼈 사이에서 완충(shock absorbers)역할을 해 준다. 추간판은 척추의 정상적인 각도가 성립되어 있을 때 척추뼈 사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완충 역할을 해 줄수 있다. 그런데 척추의 각도가 정상적인 각도인 30도에서 40도를 넘어서 50도 이상이 오래 지속될 경우, “척추 전방 전위증”(spondylolisthesis) 을 유발 시킬수 있고, 또 정상적인 각도가 줄어서 20도 이하가 되면 “추간판탈출증”(herniated disc), 흔히 말하는 디스크를 유발 시킬수 있다.
건강한 척추를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척추가 바르지 못할 때 여러 가지 질병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르지 못한 자세, 즉 다리를 꼬고 앉는다든가, 한쪽으로 무거운 가방을 매고 다니는 습관 등은 척추를 휘게 만드는데, 정면에서 볼때 일직선으로 되어 있어야 할 척추가 옆으로 휘는 척추 측만증을 유발하는 등, 척추의 위치 변화나 각도 변화에 따라 여러가지 문제들이 야기되는 것을 주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음 호에서는 목이나 허리를 다치는 이유와 치료방법 그리고 오랫동안 척추를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살수 있는 올바른 척추 관리방법들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평소에 유의하자.

하늘의 분위기

하늘의 분위기

그리스도인 가정은 지상에서 하늘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곳이다. 이 세상 그 어느곳 보다도 가정은 가장 즐겁고 편안하고 아늑한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쉼과 기쁨과 행복은 가족 서로간의 사랑의 관계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원수 마귀는 가정이 하늘의 분위기를 맛보는 곳이 아니라 지옥을 맛보는 곳이 되게 하려고 유혹한다. 그러한 사단의 유혹과 사단이 던져주는 분위기를 버리고 하늘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특권이며 또한 의무일 것이다. 혹은 어린 자녀라 할지라도 자녀의 밝고 기쁜 말 한마디가 때로는 온종일 부모와 가족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
나의 가정을 하늘의 분위기로 둘러 싸이게 하기 위해 때로는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한 하늘의 분위기를 가정에서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밝고 기쁘고 감사한 것을 찾으라
매일의 생활의 혼란과 번민이 우리들의 마음을 괴롭히고 우리의 표정에 구름이 서리게 하는 것을 허용하지 말자. 만일 우리가 그것을 용납한다면 우리는 항상 어떤 일로 초조하고 괴롭힘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슬픔과 번민을 찾는다면, 만일 우리가 사소한 곤란을 크게 확대하려는 기분에 사로잡힌다면, 우리는 우리의 사상과 대화를 독점할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사물들의 밝은 면만을 찾는다면, 우리는 우리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들을 발견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미소를 보낸다면 그 미소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며 만일 우리가 유쾌하고 즐거운 말들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그런 말들은 다시 우리에게 말하여질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기뻐하는 것과 그리스도인의 품격의 위엄과는 모순된 것이라는 생각을 품은 때도 있었으나 이것은 잘못이다. 하늘은 기쁨으로 가득한 곳이다. 우리가 하늘의 기쁨을 우리의 심령 가운데 모아서 간직하고 가능한 한 그 기쁨을 우리의 언어와 태도에 나타낸다면 우리가 우울하고 슬퍼할 때보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 더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슬픔과 염려는 단 하나의 죄악에 대한 치료책도 되지 못함은 물론 큰 해까지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기쁨과 희망은 다른 사람들의 길을 밝혀 주는 동시에 “얻을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된다.


봉사는 우리를 명랑하게 한다
 참된 종교의 결핍이 우울함과 낙심과 슬픔을 가져온다. 열성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모방하기 위하여 힘쓸 것이니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습관에 관하여 올바른 관념을 가짐으로 그리스도와 같이 되고자 하는 우리들 속에 그의 원칙이 재생되도록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예수님께 대한 진심 어린 봉사가 명랑한 종교를 낳는다. 그리스도를 가장 가까이 따른 사람들은 우울해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안에는 영원히 빛과 평화와 기쁨이 있다.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고 세상의 욕심을 적게 하며 더욱 그리스도를 바라고 덜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


가정을 밝게하는 유쾌한 미소와 목소리
부모들이여, 미소지으라. 교사들이여, 미소지으라. 우리들의 마음이 슬플지라도 그것을 얼굴에 나타내지 말라. 애정 깊고 감사함이 넘치는 마음으로부터 비치는 햇빛이 얼굴에 비쳐 나도록 하라. 우리들의 무쇠 같은 위엄으로부터 벗어나서 우리들 자신을 자녀들의 요구에 적응시키고 그래서 그들로 우리들을 사랑하게 하라. 만일 우리들이 그들의 심령에 종교적인 진리로 감화를 끼치고자 한다면 우리들은 반드시 그들의 애정을 획득해야 한다.
부모들이여, 기뻐하라. 품위 없고 천박하게 되지 말고 그대의 하늘 아버지께 감사하고 순종하고 복종하라. 비록 짜증나는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대는 그대의 감정대로 행동할 자유가 없는 것이다. 그대의 어린이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려오라.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되도록 가르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결코 꾸짖는 식으로 그들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대 자신을 유쾌한 표징을 지니도록 교육하고 그대의 목소리에 가능한 한 모든 포근함과 유쾌한 가락이 있도록 하라. 하나님의 천사들은 항상 그대의 아이들 곁에 계시며, 그대의 거칠고 성난 큰 어조는 그들의 귀에 불쾌하게 들릴 것이다.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미덕
다른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배양하라. 기쁨과 친절과 사랑이 가정에 스며들도록 하라. 이것이 종교적 의식에 대한 사랑을 증진시킬 것이며 대소간의 의무들은 쾌활한 마음으로 수행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위엄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 경박함이 없는 기쁨은 일종의 그리스도인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