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첫열매 십사만 사천인

시작하는 말

세상에 일어나는 두려운 사건과 정치적인 혼란과 재난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왔다고 말합니다. 더구나 나날이 고갈되어가는 자원과 공해와 해결하기 어려운 인재들을 보면 지구의 수명이 다해간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지구의 역사가 마지막 장으로 다다르고 있는 이 시대에, 성경은 마지막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을 백성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구원받는 백성이 되려면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14:1,4,5).


이 사람들은 십사만 사천인입니다. 구원받을 자들인 십사만 사천인은 특별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닌 특성들에 대해 연구해보면 그 속에 담긴 깊은 영적인 의미가 큰 감동을 줍니다. 그리고 그런 특성을 가져야 마지막에 구원받는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호 신앙기사에서는 이 마지막 무리의 특성들 중에서 처음 익은 “첫 열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이 중요한 주제의 연구가 독자 여러분들의 신앙에 큰 활력을 주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무리-십사만 사천

마지막 무리-십사만 사천-1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한 백성이 있다. 그 사람들은 바로 마지막 시대에 구원을 받아 하늘 시온산에 설 백성 십사만 사천인이다. 십사만 사천은 마지막 시대에 이루어야 할 중대한 사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남은 무리로서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영광스러운 성품을 온 우주에 증거할 백성이다.

그날에 능히 설자들
요한 계시록 6장에는 세상과 교회에 임할 심판에 대한 “일곱인” 예언이 나온다. 그 중 여섯째 인에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구원 받지 못하는 자들이 두려움에 질려 이렇게 외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예수께서 오실 때에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이렇게 외치는 사람들은 재림을 위해 준비되지 못한 자들이다.
성경은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는 놀랍고 두려운 최후의 날에 과연 누가 능히 설 수 있겠는가 라고 묻는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그런데 그 다음 장인 요한 계시록 7장에는 그 날에 능히 설 수 있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가에 대해 나온다. 그들은 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십사만 사천이다. 


1) 십사만 사천은 누구인가?
십사만 사천인의 정체는 누구인가? 먼저 그들은 마지막 때와 관련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방의 바람이 놓이기 전, 즉 마지막 재난의 바람이 불려고 하는 시점에 등장하며,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치는 시점,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이 오기 직전에 등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십사만 사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계시록 14장 1~5절에 나오는데, 구원을 받고 하늘로 승천하여 시온산에 서서 구속의 노래를 부르는 십사만 사천은 그 전 장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표 환난을 이기고 승리하여 구원을 받는 마지막 세대인 것을 알 수 있다.


심판과 재림과 구속은 모두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십사만 사천은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마지막 세대(last generation)인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세대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는 “남은 무리”와 연관이 있다. “남은 무리”는 영어로 “remnant”인데, 이 단어의 뜻은, 천의 남은 “자투리” , 곧 “마지막 남은 천”이라는 의미가 있다. 성경은 이 세상 마지막 시대에 생겨날 하나님의 남은 무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닷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그런데 그 남은 무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견디는 믿음을 가진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십사만 사천은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한 무리의 사람들, 즉 남은 무리인 하나님의 참 백성을 가리킨다. 


2) 십사만 사천, “인을 받은 사람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 7:2~4).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계 14:1).


계시록 7장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올라오는 천사가 사방 바람을 잡고 있는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천사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바람을 놓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데, 인맞은 자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계시록 14장 1절에는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이 시온산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들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다. 십사만 사천은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사람들인 십사만 사천이 이마에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인이란 무엇일까?

“인”이란 영어로 “seal”이다. 고대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문서들이나 자신의 소유에 봉인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것을 가리켜 “인”(seal)이라고 불렀다. 고대에는 “인”을 도장으로 사용했는데, 도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인이 쳐지면 그것은 그 인을 친 사람의 소유라는 것이 인정되었다. 하나님의 인이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물이라는 표로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정신을 가진 사람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성품으로 온전히 변화한 사람들의 이마에 쳐지는 하나님의 인정하시는 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의 성품의 사본이 되는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받게 되며, 사단의 모든 시험과 마지막 환난의 시련들을 통과하고 모든 것을 이긴 마지막 백성들이 받게 되는 표이다.

출애굽기 33:18, 19절, 34:5~7절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선포하시면서 그분의 성품을 말씀하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동일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이마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영적인 의미로서, 우리의 두뇌, 특히 이성과 의지의 선택과 결정이 이루어지는 전두엽이 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복하므로 주님의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매일 의지를 주님의 성령께 굴복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생애와 성품을 살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을 닮은 품성을 소유한 자들 위에 쳐지는 특별한 표이며, 또한 어린양의 이름이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셨을 때에 아버지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신 거룩한 성품을 닮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란, 회개하고 거듭나서 성령의 인을 받은 후(엡 1:13), 계속적으로 성령을 통해 예수께서 마음에 내재하시는 경험을 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나 열매를 맺은 성도들에게 쳐지는 것이다. 구원 얻는 모든 성도들은 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사는 마지막 성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다. 모든 죄를 극복하고 마지막에 늦은 비 성령을 받아 바벨론을 향하여 큰 소리 외침을 할 준비를 갖춘 자들 위에만 쳐지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계명을 지키는 경험을 하는 자들이다. 십사만 사천은 그들의 마음과 정신에 하나님의 계명이 기록되는 경험, 새 언약의 경험을 한 사람으로 죄를 승리하는 사람들이며, 그리하여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지막 남은 참 백성이 되기를 원하고 있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십사만 사천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면밀히 살피고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닮기 위해 기도하도록 하자! 

첫열매-십사만 사천의 특성

첫열매-십사만 사천의 특성-2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계 14:4).

구원 받을 무리 십사만 사천은 중요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특성인가? 그들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쓰여 있는 자들이며, 그들만이 부를 수 있는 경험의 노래를 부르고,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정절이 있는 자며,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며, 처음 익은 첫 열매로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 이 특성들은 모두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 의미들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다. 이 특성들은 영적인 것으로 십사만 사천인이 지녀야 할 성품과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 그 특성들에 대해 연구할 기회가 있을 것이므로, 이번 호에서는 그 특성 중 처음 익은 “첫 열매”라는 특성에 대해서 함께 공부해보기로 한다.   

1) 첫열매

‘첫 열매’는 구약성경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다. 신약에서는 그 의미가 상징적 것으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한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6~20).
또한 사도 요한은 신약 요한 계시록에서 십사만 사천을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라고 표현하고 있다.


첫 열매란 그해에 처음 익은 곡식이나 열매 가리킨다. 첫 열매는 제일 먼저 익은 극상품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그와 같은 똑같은 수확이 곧 올 것을 상징하고 예표한다. 그러므로 첫 열매는 모든 수확의 시작이요 보증이 되는 것이다. 첫 열매를 보고 확인하면서 그것과 똑같은 곡식과 열매들이 곧 익어 수확하게 될 것을 믿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러므로 십사만 사천을 처음 익은 첫 열매라고 묘사한 이유는, 그들이 영적으로 첫 열매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경험을 하며 예수님의 성품과 생애를 그대로 닮은 사람들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첫 열매가 되므로, 곧 그들이 대표적으로 먼저 준비되므로, 그와 같은 사람들이 더 준비되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2) 첫열매와 절기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거기에는 땅에서 수확한 모든 결실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감사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첫 열매를 바칠 것을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출 23:19).
그런데 첫 곡식과 첫 열매는 절기와 깊은 관련 있다. 이스라엘의 절기들과 첫열매와 연관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1. 유월절
1월 14일(아빕월, 니산월이라고도 함)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의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pass over”이라고 부르는데, “지나가다, 넘어가다”는 뜻이 들어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전날 밤, 열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인 장자 재앙이 내려 애굽 장자들이 죽임을 당할 때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의 집은 구원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유대력은 태양력이 아니고 달의 주기로 만든 음력을 사용하므로 유월절은 태양력의 3~4월 정도이다. 아빕월은 어떤 달의 이름이 아니고 농사와 관계있는 용어인데, “아빕”은 “봄, 보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비브는 보리 줄기가 튼튼해지고 보리알이 한참 익어가는 시기이며 이 때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2. 칠칠절 (오순절, 맥추절이라고도 함)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로 오순절이라고도 부른다. 보리를 추수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날이므로 맥추절로도 불리는데, 유월절 후 7일(한 주간)이 일곱번 지난 다음 날이라고 해서 칠칠절이라고 한다.


3. 초막절 (장막절, 수장절이라고도 함)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이다. 7월 15일부터 1주간 초막을 짓고 대속죄일에서 죄를 용서받은 기쁨을 축하하며 감사하는 절기였다. 이 때는 알곡이 드려지는 시기이고, 농사철이 끝나고 곡식이 저장되는 시점이었다.


4. 첫열매를 드린 “무교절”
유월절 다음 날부터 1주일간의 기간을 “무교절”이라 부른다. 정확한 날짜로는 1월 15일부터 21일까지이며, 이 기간에 무교병, 누룩없는 떡을 먹었으므로 무교절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출애굽 전날 밤 쓴나물과 무교병을 먹은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는데, 이 때에는 집안에서 모든 누룩을 제하여야 했다. 쓴 나물을 먹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겪은 고난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들이 겪은 고난을 잊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있었고, 누룩을 제한다는 것은 그들에게서 모든 죄를 없애고 정결케 하라는 영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무교절에 바로 첫 열매를 드렸다.



3) 유월절과 무교절이 주는 영적 교훈

니산월 1월 14일에는 유월절 양을 잡았다. 유월절의 어린 양은 십자가에서 희생 당하실 그리스도를 상징했는데, 예수님은 정확히 1월 14일 금요일 오후 3시 경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무교절의 누룩 없는 떡은 죄 없는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성경에서 누룩은 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무교절에 누룩을 제했던 일은, 영적인 의미로 우리 생애에서도 모든 죄악이 제해지는 경험, 곧 유월절 어린 양되신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정결케함을 받고 온 생애에서 누룩이 제해지는 경험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생애에서 유월절을 경험한 사람,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의 생애에는 반드시 죄를 정결케 함을 받는 경험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예수님을 믿고 진정으로 죄를 회개한 사람이 계속 죄 가운데 산다는 것은 타당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8)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마 16:6)고 하셨다. 여기서 누룩은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먼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가르침에 나타난 거짓 교리들을 가르치며, 또한 바리새인들의 탐심과 불의, 질투, 교만, 이기적이고 심술 사나운 정신, 의와 인과 신을 저버리고 헛된 형식에 치우치는 것, 위선과 관용치 못함과 잔인함 등을 가리킨다. 

우리 생애의 누룩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오래 동안 믿어왔어도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제해야 할 죄악은 무엇인가? 아직 남아 있는 얼룩, 지워야 할 얼룩은 무엇인가?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운 이 때에 우리 생애의 모든 누룩을 낱낱이 살피자! 그리고 그 죄악들을 주님께 드리지 않겠는가? 정결하게 함을 받은 사람만 주님의 날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첫열매가 주는 깨달음

첫 열매가 주는 깨달음-3

이제부터 첫 열매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해보자. 첫 열매를 드리는 방법, 그 속에 담긴 의미 등에는 아름다운 영적 교훈이 담겨있다.

1) 첫 열매를 드리는 시기와 방법

1. 시기
첫 열매는 언제 드렸는가? 첫 열매를 드린 대표적인 두 시기가 있다.
A. 무교절: 유월절 안식일 바로 다음 날 아침, 곧 무교절이 시작되는 아침에 첫 열매를 드렸다.
B. 오순절: 유월절이 지나고 50일 되는 날에 첫 열매를 드렸다.

2. 방법
첫 열매를 드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한 가지는 곡식단으로 드리는 방법, 또 한 가지는 새 곡식을 가루로 빻아 떡을 만들어 드리는 방법이 있었다.



2) 첫 곡식단 바침 속에 담긴 의미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우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레 23:10~11).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곡식의 첫 이삭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가서 드렸다. 제사장은 정말 이것이 하나님께 드릴 만한 최상품의 첫 열매인가 면밀하게 살핀 후, 이 첫 곡식단을 성소 뜰 놋제단 앞에서 흔들어 바쳤다. 이것은 흔들어 드린다는 의미로 ‘요제’라고도 부르고, 요제절이라고도 부른다.

1. 흔들어 바침의 의미
유월절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아침, 보리의 처음 익은 첫 곡식단을 흔들어 바치는 이 제사 속에는 매우 아름다운 영적 의미가 들어있다. 이 흔들어 바치는 첫 곡식단은 부활의 첫 열매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안식일 바로 다음 날 아침 요제절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다 이루셨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는 흠없는 아름다운 생애를 사시므로 그 성품과 삶은 하나님께 바쳐질만한 온전한 제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온 우주에 보이실 만한 모본이 되셨다. 흔들어 바친다는 것은 온 우주에 첫 열매를 주목하여 보도록 흔들어 보인다는 것을 상징한다. 높이 들어 보이는 것을 상징한다. 온 세상에 높이 들어 알릴만큼 흠없는 제물되신 주님이 이루신 구속의 역사는 완전하고, 또한 그분이 사신 생애는 완전한 표본이 되셨다. 

이것은 또한 첫 열매 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무리가 곧 준비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십사만 사천은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들은 첫 열매 되신 예수님과 똑같은 삶을 살고 그분과 똑같은 성품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님과 같은 표본의 삶을 살므로 하나님께서 우주에 높이 들어 올리실 사람들이다. 그들은 온 우주에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증거할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첫 열매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할 수 있도록 성품과 삶에서 주님을 닮아야 한다. 곧 우리의 아름다운 성품과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며 주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바쳐진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 일을 할 수 없지만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것은 가능한 일이다.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첫 열매 되신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자!

2. 부활과 새 생애
부활의 첫 열매 되신 그리스도는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 되신다. 부활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큰 교훈을 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부활이 있으려면 반드시 그 전에 죽음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도 죽으셨기 때문에 부활하셨다. 그것처럼 우리도 영적으로 주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기 위해 죽어야 한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야 하며, 예수님과 합하여 장사되고 새 생명으로 일어나 새 삶을 살아야 한다. 죄로 가득 찼던 삶이 주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고 거듭나서 의로운 삶으로 변하게 되는 것, 그것이 진리로 변화되는 것이고 복음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죽는 흉내만 내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죽으셨다. 하나님께서 잠깐 동안 존재 하기를 그치신 것이다. 우리도 죽되 완전히 죽어야 새롭게 살아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생애가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죽을 수가 없다. 진정한 죽음은 자신의 죄악의 깊이를 깨닫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 속에 육체의 일이 계속 됨을 보고 슬퍼하고 애통하고 아파해야 완전히 죽을 수 있다. 육체의 일을 행하는 자는 어떤 자인가? 그것은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29~31).
우리는 육체의 일이 아직 우리 속에 있음을 볼 때 통회하면서 울부짖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육체의 일을 끊고 새로운 피조물로 일어날 준비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쳐다보아야 죽을 수 있다. 십자가 밑에 나아가 예수님의 손에 못을 박은 장본인이 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을 찌른 병사가 나였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 날 예수님이 달렸던 십자가에 달려야 했던 사람이 나였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주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때 온전한 회개가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새로운 마음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이 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삶 전체를 온전히 주님께 바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죽어 없어지고 예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첫열매에 담겨있는 죽음과 부활 의미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적 교훈을 주는가!


3) 첫 곡식 떡을 바침 속에 담긴 의미

오순절(칠칠절)에 드리는 첫 열매를 드리는 방법은 조금 달랐다. 오순절에는 새 곡식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새 곡식을 가루로 빻고 누룩을 넣어 떡 두개를 구워 만들어 그것을 흔들면서 드렸다.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찌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레 23:17).

1. 왜 누룩 넣은 떡을 드렸는가?
무교절에는 모든 누룩을 모두 제하라고 하셨는데, 왜 오순절에 드리는 떡에는 누룩을 넣었을까? 여기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있다. 성경에서 누룩은 죄악을 상징한다. 유월절이 되면 사람들은 저희의 마음속에서 죄를 없이 하듯이 저희 집에서 모든 누룩을 없애버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이야기에서 “누룩”은 또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 13:33).
예수님의 이 비유 가운데서는 누룩이 하늘나라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성령의 능력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이나 의지로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가루 속에 넣은 누룩이 속에서부터 부풀게 하는 작용을 일으키듯이, 하나님의 은혜의 성령의 능력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변화가 생길 수 없다. 누룩을 가루에 넣어 섞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 아니면 아무 것도 우리를 변화시킬 수 없다. 변화는 오직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누룩을 넣은 떡은 성령으로 거듭난 것을 상징한다. 성령을 충만히 받고, 성령의 작용으로 부푸는 것을 상징한다. 자신의 자랑이나 교만으로 부푸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반죽되고 성령에 완전히 사로잡힌 바 되어 주께 바쳐진 사람을 상징한다.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는 사람 속에는 새로운 생명소가 심어져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회복된다. 빵이 혼자 부풀 수 없듯이, 가루 속에 넣은 누룩이 속에서부터 부풀게 하는 작용을 일으켜 점차 밖으로 나오는 듯이, 우리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도 먼저 마음속이 새로워짐으로 이루어진다. 가루 속에 감추인 누룩은 모르는 사이에 그 모든 가루를 부풀게 만든다. 그것처럼 성령의 변화를 받은 사람은 새로운 사상과 감정과 동기가 심어져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다.

2. 흔들어 바친 거제의 떡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타작 마당의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민 15:20).
이 구절에서 나타난 것 처럼, 첫 곡식을 빻아 만든 떡도 곡식단을 흔들어 바쳤듯이 흔들어서 바쳤다. 여기서는 “거제”라는 표현으로 쓰여진 것을 알 수 있는데, 거제란 제물을 높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 제사를 말한다. 거제는 히브리어로 “테루마”(terumah)로서 “들어올려진 것”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위로 제물을 높이 들었다가 아래로 내려 놓는 제사의 한 형태로, 위 아래, 좌우로 흔들었다.
이것을 영적인 의미로 보면, 성령이 충만한 준비된 하나님의 백성이 “보시옵소서!” 라고 하나님과 온 우주 앞에 자랑스럽게 들어올려지는 것을 뜻한다. 머지않은 장래에 있을 두번째 오순절 때, 늦은 비 성령을 받은 마지막 백성들이 준비될 때에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증거하며 온 우주에 그렇게 들어올려질 것이다. 

십사만 사천과 고난의 학교

십사만 사천과 고난의 학교-4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 14:3).
처음 익은 첫 열매 십사만 사천인이 가진 특성 중에 매우 의미심장하고 흥미로운 특성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는 십사만 사천 외에는 아무도 능히 부를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1)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

성경 다른 장에는 마지막 때에 짐승의 표의 환난을 이기고 벗어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라고 말하고 있다. 곧 이 세상의 모든 싸움이 마쳐지고 모든 성도가 본향으로 모일 때, 찬란한 유리바닷가에 서서 아름답고 웅장하고 형언할 수 없이 놀라운 화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가 무엇인가? 먼저 모세가 부른 노래는 승리의 노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홍해에 다다랐을 때,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공격해오고 앞에는 바다가 가로막힌 사면초가에 빠져 두려워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과 능력으로 홍해를 가르셔서 그들을 건너가게 하셨다. 그들이 안전하게 홍해를 건넌 후, 모세와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했겠는가?
모세의 노래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셔서 승리하게 하셨는가 찬양하고 고백하는 경험의 노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인 십사만 사천이 부를 노래도 승리의 노래인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단을 이기게 하셨는지, 죄의 권세를 이기게 하셨는지, 어떻게 세상을 승리하게 하셨는지, 특별히 짐승의 표와 짐승의 우상을 이기고 어떻게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하셨는지 고백하고 찬양하는 승리의 노래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 양의 노래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린 양 되신 예수께서 구속하신 은혜와 구원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각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들 각 자를 어떻게 부르시고, 어떻게 회개하게 하시고 또한 변화시켜 구원하셨는지에 대한 체험과 간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간 경험, 곧 어떤 고난의 길이든, 고통의 길이든 주님을 따른 경험이 있다. 특히 어린 양의 성품을 이루기 위해 연단시키시는 고난의 불을 통과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고난의 단련의 과정을 겪은 체험의 노래는 그것을 겪은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다. 그래서 그것을 경험의 노래라고 부른다.
그 노래는 14만 4천 명밖에 배울 수 없는 노래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은 지니지 못한 경험과 체험의 노래, 보좌 앞에서 부르는 “새 노래”인 것이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그들은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의 시기를 지내고, 야곱의 환난을 견디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마지막으로 내릴 때 중보자 없이 선 자들이다. 이제 머지않아 이 세상이 끝나고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긴 자들의 무리가 보좌 앞에 있는 수정같이 맑은 바다, 불이 섞인 유리바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바닷가에 모일 것이다. 땅에서 구속 받은 십사만 사천 명은 하나님의 거문고를 손에 들고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서 노래를 부를 것이다.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소리가 온 우주를 진동시킬 것이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서 땅으로부터 끌어 올림을 받은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인 그들은 그 영원한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실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이 기근과 질병으로 황폐해지고, 태양이 심한 열로 사람들을 태우는 광경을 목격하고, 그들 스스로도 고통과 기갈을 당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2) 첫 열매와 깨어짐의 고난

앞에서 우리는 첫 열매를 바치는 방법, 첫 곡식을 빻아 가루로 만든 다음 떡을 만들어 바치는 것을 연구하였다.
하나님께 바쳐지는 떡이 되기 위해서, 또 우리를 먹여 살리신 생명의 떡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떡이 되기 위해서, 십사만 사천이 반드시 해야 할 경험이 있다. 그것은 보리알과 밀알이 깨어지고 빻아져 가루가 되어야 떡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완전히 깨어지고 빻아지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고난, 첫 열매가 깨어지는 경험이다. 


1. 소제가 되기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중에 소제가 있다. 소제 제물은 고운 가루로 만들어졌다. 소제 제물이 되기 위해서 깨지고 빻아져야 한다. 첫열매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루로 부서지는 경험을 하셨다. 예수님의 생애야말로 깨어지고 빻아져서 완전히 없어지는 실례의 대표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깨어지고 부서져서 우리의 생명의 떡이 되셨다. 그렇게 깨어짐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되려면 ‘나’라는 존재가 부서져야 한다. 통밀알 같은 내가 부서져 만지면 ‘뽀드득’ 소리를 낼 정도로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한다. ‘고운 가루’라는 말은 하나님 안에서 완벽하게 내가 죽은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다 죽은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을 살리는 떡이 될 수 있다. 곱게 빻은 가루로 반죽한 떡은 매우 부드럽고 사람들이 먹기 좋은 떡이 된다.


2. 고난의 불에서 구워지다
떡이 되려면 불에서 구어져야 한다. 불에 구워진다는 것은 불같은 시련 속에서 연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안과 밖이 모두 익을 때까지 뜨거운 불에서 단련을 받아야 한다. 불에서 연단을 받아야 주님께 바쳐질 떡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난의 불을 통과하게 하신다. 떡은 고난과 관계가 있다. 성경은 종종 떡을 “고난의 떡”이라고 불렀다.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신16:3).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사 30:20).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3:10)라고 말했다. 첫 열매 되신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도 주님을 따라 고난을 받아야 한다.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야 한다. 부활에 참여한다는 것은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 아닌가! 고난의 과정에는 반드시 죽음을 통과하는 과정이 있다. 부활에 참여하려면 죽어야 하는데, 나의 모든 것, 자아, 욕심, 이기심, 야망, 탐욕 등이 다 죽어야 한다. 렇게 정결하게 되기 위해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이 고난이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3) 십사만 사천과 고난의 학교

십사만 사천의 이마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어린 양의 이름이 쓰여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성품을 이룬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품을 단련시키시기 위해 우리를 고난에 학교에 입학시키신다. 깨어짐의 학교에 들어가게 하신다. 고난과 시련과 박해를 통과한 자들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의 품성이 잘 드러난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증오와 박해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좁은 길을 걸으며 고통의 풀무에서 순결하여진다. 그들은 쓰라린 투쟁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고, 극기를 실천하고, 쓰라린 실망을 통하여 죄의 악함과 비애를 배워 죄를 증오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된 그들은 흑암 저편의 영광을 바라보고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고 말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항상 고난의 풀무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시험하셨다. 찌꺼기가 그리스도인 품성이란 순금에서 제거되는 것은 뜨거운 풀무 가운데서이다. 예수께서는 그 시험을 주목하여 보신다.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간증했다.


깨어짐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신 이유를 깨닫고 그 깨어짐을 온전히 겪어내야 한다. 깨어지는 것은 아프고, 고통스럽고, 슬프고, 깨진 흔적을 남기지만, 그 고난의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은 귀한 공과를 깨닫게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깨어지셨다. 깨어진 예수님의 몸에서 물과 피가 흘러나왔다. 반석이 깨어짐으로 생수가 쏟아지듯, 예수님의 몸이 깨어질 때 생수가 쏟아지고 보혈이 쏟아졌다. 예수님은 자신을 깨뜨려 살과 피를 나누어 주셨다. 그와 똑같이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자신이 온전히 깨어지는 경험을 하고 연단을 받아 정결한 품성을 갖추게 될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들이 될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런 모든 고난의 과정, 깨어짐의 관정을 견디고 승리한 사람들만이 경험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치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첫 열매를 모으고 계십니다. 그들은 땅에서 구속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가 될 십사만 사천입니다. 하나님의 첫열매가 되기 위해, 그 사람들은 깨어지고 으스러지고 자신이 완전히 죽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고 승리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보좌와 시온산과 하늘 유리 바닷가에 서서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 경험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처음 익은 열매인 십사만 사천이 부르는 노래는 아무도 따라 부르지 못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첫 열매로 준비되고 계십니까?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변화된, 아름다운 성품을 가진 첫 열매가 되어 하늘 시온산에 서서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양말이 필요없는 새들

하나님의 세계-양말이 필요 없는 새들

만일 우리가 양말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눈이나 얼음 위를 뛰어다닌다면 아마 동상에 걸리고 말겠지요? 그런데 새들은 왜 발이 시렵지 않을 까요? 살얼음이 물가에 동동 뜨는 겨울에도 청동오리는 물속에 발을 담그고 여유로운 자태입니다. 하얀 눈 위에 날개를 반쯤 접고 서 있는 두루미 등 겨울 철새들의 모습은 아주 멋집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흑한을 견디는 새들의 비밀을 아시나요?


새들은 몸 속에 일련의 동맥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들의 발로 혈액을 공급받는 다고 합니다. 새의 동맥들은 발로부터 혈액을 되돌려 받는 정맥들과 서로 얽혀있는데, 이 동맥과 정맥의 네트워크를 “괴망”(wonder net)이라고 부릅니다. 괴이한 혈관망(wonder net)이라는 뜻을 가진 특수혈관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동맥으로 내려가는 혈액은 비교적 따뜻해서 화씨 106도 정도 되고, 발끝에서 냉각되어 올라온 정맥피는 약 화씨 3도 정도 입니다. 정맥 피는 새의 발목에 있는 괴망을 통과하면서 동맥 피의 열을 받아 따뜻하게 데워진 다음 몸 안으로 들어가고, 이 과정에서 열을 방출한 동맥 피는 냉각되어 발끝으로 갑니다. 결국 이 괴망은 혈액의 순환 속에서 일종의 '열교환 장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겨울에도 철새가 생존할 수 있는 비밀이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차가운 혈액은 몸통으로 들어가기 전에 더운 혈액에 의해서 다시 덥혀지기 때문에, 새는 아주 작은 양의 체온만을 손실하게 되고 다리로 들어가는 혈액은 추운 겨울날씨에도 그렇게 위험스러울 정도로 차갑게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일 발을 통과한 찬 피가 그대로 몸통으로 올라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체온이 낮아져서 결국 얼어 죽고 말겠지요?
새들의 몸 속에 있는 이런 놀라운 생리작용은 어디서 생긴 것일까요? 놀라운 지혜를 가지고 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에서 온 것이지요.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

한 마리 참새도 돌보시는 우리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살피지 않으실까요?

척추를 알면 건강이 보인다 2

척추를 알면 건강이 보인다 2

지난 호에서는 척추의 일반적인 구조와 기능 그리고 각도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이번 호에는 목과 허리 뿐 아니라, 팔과 다리 등 뼈와 근육이 함께 붙어 있는 조직들의 건강 상태와 올바른 유지 방법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에스겔서 37장에는 아주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 37:3,6).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흩어져 있는 수많은 뼈들 위에 힘줄을 입히고, 또 그위에 살(근육)을 입히고, 또 그위에 가죽(피부)으로 덮으시겠다고 하셨다. 물론 이 말씀은 영적으로 죽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회복시키시겠다는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우리의 몸을 육적으로도 잘 표현 하셨음을 볼 수 있다.

우리의 몸을 단계적으로 구분하면, 뼈, 인대, 힘줄, 근육, 살 그리고 피부이다. 우리 몸을 고층 건물에 비교한다면, 뼈는 철근, 근육은 철근위에 부어지는 시멘트, 살은 방을 나누는 나무로 된 벽으로 표현 할 수 있겠다. 뼈는 우리 몸의 기관중 가장 단단한 물체이므로 실제로 우리 몸을 지탱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뼈는 주위의 인대나 힘줄 그리고 근육이 양쪽에서 땡겨주고 받혀주지 않으면 제 구실을 할수 없다. 우리의 일어서고 앉고 걸어가고 뛰어가며 손과 팔을 움직이는 모든 행동들이 뼈와 근육의 완전한 협력 하에 가능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어떤 뼈나 근육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 몸의 정상적인 활동에 큰 지장을 줄수 있다. 

이제 척추 전반에 걸쳐 생기는 부상들의 종류와 치료 방법 그리고 회복 후의 유지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척추(목, 등, 허리)를 다치는 이유들
 


1. 교통 사고
자동차 추돌사고는 아무리 작은 충격이라도 인체 특히 목 부분에 심각한 부상을 줄 수 있으므로, 반드시 교통 사고 전문 병원을 찾아가 X-ray 를 찍어서 일단 뼈에 이상이 없나를 확인하고 필요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교통사고 후휴증은 몇개월 후에도 올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2. 낙상 사고
겨울에 눈이나 얼음 때문에, 혹은 미끄러운 길을 걷다가 낙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심하게 엉덩방아를 찧을 경우 척추와 척추 사이의 추간판이 함몰이 되거나 추간판 탈출증을 야기 시킬 수도 있고 또 골반에 금이 가거나 고관절의 골절이 생길수 있다. 특히 나이 드신분들은 넘어지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3. 무거운 물건 들기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을 하거나 특히 여행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15kg(33 lb) 에서 많게는 32kg(70 lb) 되는 여행 가방이나 물건을 들게되는데, 그 와중에 허리 뿐 아니라 목을 다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4. 특별한 이유 없이 다친 경우
척추를 다치는 가장 흔한 케이스는 이유없이 다친다. 의자에 앉아서 양말을 신다가, 허리를 굽히며 바지를 입다가. 침대에서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다가, 아기를 들어 올리다가, 기지개를 펴다가, 심지어 하품이나 재채기를 하다가 뚝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나 허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생긴다. 


목이나 허리를 다쳐 보지 않은 사람은 다쳤을때 오는 심한 통증이나 불편함을 전혀 이해 할 수가 없다. 갑자기 꼼짝못하고 통증을 호소 할 때는 마치 꾀병을 부리는 것 같다. 


 뼈와 근육의 상호 관계


척추에 생기는 부상들을 이해하려면 먼저 뼈와 근육의 상호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뼈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뼈를 움직여 주는 것은 근육인데 뼈의 움직임에 따라 사용되는 근육은 각각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목이나 허리를 앞으로 숙일 때는, 척추 앞에 있는 근육들은 수축하고 등 뒤에 있는 근육들은 펴져야 한다. 또 팔을 굽히려면 윗쪽에 있는 근육은 수축을 하고 뒤쪽에 있는 근육은 쫙 펴져야 제대로 팔의 움직임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 고개를 앞으로 숙일때는 목 앞쪽에 있는 근육이 수축이 되고 목 뒷쪽에 있는 근육은 가능한 많이 늘어나줘야 원만한 움직임이 이루어 질수 있다. 이렇듯 우리 몸의 뼈와 근육들은 하루 24시간 동안 쉬지않고 움직인다. 심지어 자는 동안에도 이리저리 뒤척이기 때문에 근육들은 쉴새없이 움직인다. 
그렇다면 왜 큰 충격이나 낙상이 없이 단순한 움직임 속에서 부상을 당하는 것일까? 


 수분이 부족한 근육이 원인


그 원인은 근육의 약해진 상태가 원인인데, 사실은 근육 안에 수분이 충분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우리 성인의 인체는 거의 60% 의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인체 속의 심장은 79%, 뇌는 75% , 폐는 83%, 피부는 64% , 근육은 75%, 신장은 83%, 그리고 심지어 뼈도 31%의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매일 성인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수분의 양이 2.5~3.5 리터나 된다. 주로 소변과 대변, 땀으로도 빠져나가고 또 숨을 내쉴때마다 수분이 빠져나간다. 물을 마시든 안마시든 수분은 계속해서 우리 몸에서 빠져나간다. 그렇다면 이 많은 양의 수분을 어떻게 보충 해야 할까? 먹는 음식을 통해서 수분을 섭취할수 있지만, 대부분의 수분은 마시는 물을 통해 섭취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몸의 수분과 부상은 어떤 관계일까? 특별한 이유 없이 목이나 허리를 다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하루에 2컵에서 3컵 정도의 물만 마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물대신 커피를 4잔~ 5잔 정도 마신다. 그런데 커피속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우리 몸속에 들어 있는 물을 빼내가는 이뇨제 역할을 한다. 위에서도 언급 했듯이 인체의 근육은 75%의 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수분의 공급을 충분히 해주지 않을 경우 근육에서 물이 빠져나간다. 


 근육은 수축과 이완 작용을 통해서 몸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주는데, 근육에서 수분이 많이 빠져나갈 경우 수축과 이완 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근육에 수분이 부족해서 충분이 이완되지 못할경우 lock 이 생기게 되고, 그럼에도 무리해서 허리를 굽힐 때 근육에 무리가 와서 찢어지게 되고 동시에 심한 통증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나뭇가지를 예를 들면, 살아 있는 나무에서 가지를 잘라 부러뜨리려면 절대로 부러지지 않고 그냥 휘기만 한다. 그러나 땅에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마른 가지를 구부리면 그냥 부러지고 만다. 똑같은 가지인데 왜 하나는 휘기만 하고 다른 하나는 그냥 부러지고 마는가? 바로 그 가지 속에 수분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때문이다. 인체의 근육도 수분의 양에 따라서 근육이 충분히 늘어났다 줄어들고, 수분이 부족할 때는 근육이 제대로 늘어나지 못하고 찢어지게 되는것이다. 그러면 부상을 당하게 되고 통증이 유발되는 것이다. 충분한 수분 섭취로 우리 몸의 근육을 돌보자. 단순한 방법으로 손쉽게 부상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다.

다음 호에서는 부상을 치료하는 법과 예방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다양성의 존중

다양성의 존중

가정에서 서로간의 존중과 상호의 존의 관계

다양성 가운데서의 조화
우리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식물과 꽃으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모든 꽃은 모양과 색깔이 동일하지 않다. 어떤 꽃은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 어떤 꽃은 항상 향기를 발한다. 다른 그리스도인을 모두 자기처럼 만드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자칭 그리스도인이 있다. 이것은 인간의 방침이지 하나님의 방침이 아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정원의 다양한 꽃들처럼 각양각색의 기질을 위한 자리가 있다. 하나님의 영적 정원 안에는 온갖 꽃들이 있다.
주님께서는 꽃들을 돌보신다. 그분은 꽃들에게 아름다움과 향기를 주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욱 명랑한 기질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를 주시지 않겠는가?
나와 안 어울릴 것 같은 다양한 기질을 가진 가족 구성원들 가운데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인내하고 관용하는 법을 배운다. 때로는 나와 성격이 다른 구성원들로 인해 나의 부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못난 성격을 성령의 감화에 굴복시키므로 성품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들
주님의 계획 아래 인간은 서로에게 필요하도록 만들어졌다. 모든 사람이 도움과 사욕 없는 동정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얼마나 복된 일을 행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달란트를 위탁하셨다. 우리는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서로를 돕는 데 이러한 달란트들을 사용해야 한다. 이 일을 할 때에 각 사람은 다른 사람과 서로 연결이 되며 모두는 그리스도와 연합된다. 우리가 달란트를 향상시키고 증가시키는 것은 바로 이타적인 봉사를 통해서이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길
사람의 마음은 동정, 신앙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만 감동을 받고 향상된다.
그대는 거만하게 ‘나는 너보다 거룩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의 이론이 아무리 정확하고 그대의 말이 아무리 진실할지라도 그와 같은 자세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결코 움직일 수 없다. 교훈과 논쟁의 반복으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 오직 말과 행동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이 영혼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을 본받음
우리는 자신들의 결점들을 잘 알기에 서로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긍휼한 마음으로 변화를 일으킨다. 다른 이들은 경외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불구덩이에서 건져 내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엄격한 훈련을 감당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의무에 대해 다른 사람과 똑같은 개념을 갖도록 성장할 수도 없다. 다른 기질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용납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대하실지 아신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불친절하고 불공평한 처사에 대하여 계속 해서 생각하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그들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결함밖에 볼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존경해야 한다.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의 실수를 참아주면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더욱 친절하고 관대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과 긍휼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동일한 그리스도의 정신이 우리에게서 흘러나가게 된다.


우리의 성품과 생애를 통해 흘러나가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를 통해 어두운 세상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하늘의 빛을 비춰주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