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숨겨진 성소의 비밀

서론-숨겨진 성소의 비밀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그래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인들이 원하고 찾기만한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해 놓으셨습니다. 바로 죄인이 어떻게 용서를 받아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 보좌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 비결을 다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 구원의 도를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 구원의 비밀은 바로 성소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성소제도와 현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무슨 관계가 있으며, 그 비밀을 연구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성소를 연구해보면 그 속에는 놀라운 구원의 도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소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사람은 구원의 신비한 비밀을 깨닫도록 하나님께서 고안해 놓으셨습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이 흥미로운 연구를 해볼까합니다. 성소 속에 숨겨진 비밀이 독자 여러분 마음 속에 이루어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 편집실 –

우리 손에 쥐어진 보물 지도

미국 NBC뉴스에 매우 흥미로운 기사가 난 적이 있다. 2013년 2월 28일자에 나온 그 뉴스에 의하면, 미국 뉴멕시코주의 한 억만장자가 수백만 달러의 귀금속이 들어있는 보물상자를 산속 비밀 장소에 숨겨놓고 “찾는 사람이 다 가지라”고 공개 발표했다. 뉴멕시코 주 싼타페에 살고 있는 포레스트 펜(80)은 자신이 늙고 불치의 병으로 죽게될 것을 알게 되자, 그의 재산을 나눠주기 위해 한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산 속 비밀 장소에 수백만 달러의 금화,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등 보석을 숨겨놓았다고 한다. 그의 자서전에는 보물 묻힌 곳에 대한 단서를 써놓았는데, 그것은 암호와 같은 다음의 문장이었다. “따뜻한 시냇물이 흐르는 계곡 어딘가, 그러나 걸어가기엔 너무 먼 곳에”. 이 뉴스를 본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자서전을 읽고 암호를 풀면서 보물 찾기에 도전했다는 기사였다.


어린이들에게 유명한 보물섬 동화 이야기는 어른들에게도 익숙할 것이다. 사람들은 보물찾기라면 흥미를 느낀다. 그런데 만일 우리 손에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보물지도가 들려있다면 어떨 것인가?
성소는 우리 손에 들려진 보물지도이다. 보물을 찾기 위해 지도에 그려있는 암호를 하나씩 풀면서 보화를 찾는 것과 같다. 성소 곳곳에는 값진 보화와 진주되시는 예수님을 표상하는 암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그 기호들을 하나씩 찾아 연구하면 보물이신 예수님을 찾을 수 있다.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암호를 풀어가는 것처럼, 성소의 곳곳에는, 각각의 기구와 의미들에는 예수님이 숨어 있다. 우리가 이 보물 지도를 펴서 자세히 연구하면, 보화를 얻는 길, 구원을 얻는 길을 발견하게 되고, 결국 황금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함께 그 보좌에 앉을 수 있게 된다. 얼마나 놀라운  보물창고인가! 함께 이 보물지도를 따라 성소를 탐험해보자!  

 

성소 안에 숨겨진 구원의 길

“오, 하나님, 당신의 도는 성소에 있나이다!”
(시 77:13 킹제임스 역).
시편 77장 13절의 원래의 뜻은 킹제임스 역 영어 본문에 잘 나타나 있다. 일반 한글 성경에는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라고만 번역되어 있지만, 킹제임스역 영어 원문에는 “Thy way, O God, is in the sanctuary”라고 되어있다. 시편의 시인은 성소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도의 비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자칫, 성소는 구약 시대의 흘러간 한 때 존재했던 구 시대의 유물로 생각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성소에는 어떻게 죄인이 구원을 받고 죄를 해결할 수 있는지 자세한 구원의 방법이 나타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체험해야 경험들이 숨겨져 있으며, 성소 연구를 통해 심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도 명확하게 알게 된다.


성소의 모든 것은 예수님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는데, 예수님의 신분, 구속의 사역, 구속계획, 구원의 모든 교리를 다 가르쳐 준다. 성소만큼 성경의 모든 부분을 하나의 조화롭고 완전한 전체로 통합시키는 다른 주제는 없다.
이제부터 함께 성소에 숨겨져있는 비밀과 암호들을 구체적으로 풀어보면서 성소로 들어가는 여행을 시작 해보자.  

 

울타리와 문에 숨겨진 암호
성소의 모든 기구와 장식들과 색깔 속에는 놀라운 의미들이 암호처럼 숨겨져 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지시에 의해 지어진 성소는 성소 뜰과 성소, 그리고 지성소 이렇게 세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일 먼저 성소 뜰을 두르고 있는 벽인 울타리와 정문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성소 울타리는 왜 흰색이었을까?
성소의 울타리는 60개의 놋 기둥에 의해 흰 세마포 포장으로 둘려 있었다. 왜 흰 세마포가 사용되었을까? 흰 세마포는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한다. 성경 계시록 18장 9절에는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는 말씀이 나온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 의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 수 없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려주신 귀한 보혈의 값, 헤아릴 수 없는 비용으로 마련된 의의 옷이다. 더러운 옷과 같은 인간의 의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의는 보혈로 희게 씻은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소의 울타리는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 밖에는 없다는 것을 표상하기 위해, 예수님의 의를 상징하는 흰 세마포로 둘려 있었다.

2. 문과 휘장에 사용된 색깔의 비밀은?
성소 뜰로 들어가는 정문과 성소의 입구인 문, 지성소의 입구인 휘장은 모두 비슷한 휘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매우 아름다운 색깔로 수놓아진 휘장이었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출 27:16) 이 휘장은 실을 더  튼튼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 금을 얇게 쳐서 만든 금 실과 함께 수놓아져 있었는데, 빛이 그 위에 비치면 금실이 반짝거리면서 찬란한 빛을 반사하였다. 그런데 왜 네 가지 색깔의 실을 사용하라고 하셨을까? 색깔에는 하나님께서 넣어 놓으신 놀라운 의미가 들어 있다.


가는 베실은 흰색으로 그리스도의 순결과 의를 상징하고(계 19:8), 홍색은 예수님의 희생과 보혈의 피를 상징한다(계19:13). 자색은 자주색으로 왕실에 서 쓰이던 색으로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색이었는데,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상징했다(요19:2,3). 그렇다면 청색은 무엇을 상징했을까? 청색은 하늘의 영원한 진리에 대한 순종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입는 옷에 청색 리본으로 단을 대도록 하셨는데(민 15:37~40), 청색단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한다는 의미였다.  

벌써 성소의 울타리에서, 그리고 성소로 들어가는 정문의 상징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발견하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영적 의미들인가! 우리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얼마나 감동적으로 가르쳐주고 있는가! 성소 울타리가 흰 세마포로 쌓여있었듯이, 우리는 우리의 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 속에 늘 거해야 한다. 그리고 구원을 얻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문도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성소 뜰의 번제단과 십자가

성소 뜰의 번제단과 십자가

이제부터 성소 안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성소의 정문을 들어서면 성소 뜰이 나타난다. 성소 뜰에서 우리는 구원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님에 대한 생생한 증거를 발견한다.  
성소 뜰로 들어가면 무엇이 보이는가? 번제단과 물두멍이 보인다. 번제단은 성소 뜰 중심에 있었고, 번제단과 성소 문 사이에는 물두멍이 있었다.

 

1) 번제단

번제단은 희생제물 드리는 제단이었다. 희생제물로는 무엇을 드렸는가? 일반적으로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출 12:5)” 어린 양을 드렸다. 이 번제단은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이 이루어졌던 십자가를 상징한다. 번제단 위에서 희생제물이 죽음으로써 죄인의 죄가 속하여졌듯이, 희생제물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속해 주셨다.  


1. 번제단은 왜 성소 뜰 중앙에 있었을까?
번제단이 성소 뜰 중앙에 자리 잡고 있듯이, 번제단으로 표상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속의 중심이 된다. 아무리 훌륭한 구속의 계획이 세워졌을지라도 십자가에 친히 달리신 구주의 희생이 없이는 죄인들의 구원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의 시작이요, 중심이다.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사랑과 이기심이 서로 대립하였다. 선과 악의 본성이 각각 최고로 표현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로지 남을 위로하고 복 주기 위하여 사셨고, 사단은 그리스도를 죽임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그의 증오심을 나타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고통스럽게 죽음을 당하시는 어린 양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통회하게 된다. 우리 죄가 주님을 못박았음을 보고 통곡하며 죄를 버리게 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가 나타난 곳이다.


2. 왜 놋으로 만들어졌는가?
번제단은 놋으로 만들어졌는데, 여기에는 깊은 의미가 들어있다. 놋은 힘과 인내, 동시에 선고와 심판을 의미한다. 그리고 놋은 고난과 희생을 통한 승리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고난과 희생을 통해 승리를 얻으셨지 않는가? 성경에는 예수님이 고난을 통해 온전케 되셨다는 기록이 나온다(히2:10).

놋은 성경에서 주석으로 표현되어 있다. 놋은 용광로에서 만들어지는데, 가장 높은 온도로 금속을 녹여내야 놋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요한의 계시에서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주석같고”(계1:15) 라는 표현이 얼마나 적절한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의 맹렬한 풀무불을 지나셨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간고와 질고를 많이 겪으셨다. 어린양이 바쳐지는 번제단이 놋으로 된 데는 이렇게 깊은 뜻이 숨어있는 것이다. 우리도 앞서가신 주님을 따라 그의 고난에 동참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되자!

3. 번제단에는 왜 네 뿔이 있었는가?
번제단에는 모서리에 있는 네 뿔은 힘과 명예와 승리를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속죄의 보혈의 능력이 사방, 세계 방방 곡곡에 미치는 것을 뜻한다. 또한 보혈의 능력은 힘이 있어서 우리 죄를 용서할 뿐만 우리로 하여금 죄를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의미로 네 뿔이 달려있었다.

 

2)   희생제물과 제사

죄인이 양을 끌고 성소를 향해 갈때 겸비한 마음 갖게 된다. 양을 끌고가는 갈 때 가족과 이웃들의 “저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양을 끌고 가지?” 라는 수근거림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죄인이 회개할 때 자신의 부족함과 죗됨을 겸손히 인정하며 나아가야 하는 경험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몇 가지 제사의 방법들 속에는 놀라운 의미와 교훈들이 숨어있다. 함께 연구해보자.


1. 번제 (Burnt Offerings)

번제는 속죄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하게 바친다는 헌신과 봉헌의 의미로 드린 제사였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에게 번제를 하루 두 번, 아침 저녁으로 드리라고 하셨다. 번제의 방법을 연구해보면 우리의 헌신이 어떻게 되어야 함을 낱낱이 알게 된다.
레위기 1:6~8 “그는 또 그 번제의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불 위 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A. 왜 제물의 가죽을 벗기었을까?
제물의 가죽 벗기는 의미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릴 때, 자신의 욕구대로, 명예를 위해 맘대로 하던 교만의 가죽과 자아의 가면 벗어 버리라는 뜻이다.


B. 왜 내장을 씻어야 했나?
제물의 배를 가르고 내장들을 끌어내어 맑은 물로 씻는 의미는, 우리 생애의 모든 부분과 몸을 하나님께 다 헌신한다는 뜻이다. 우리 몸의 모든 것을 산제사로 드린다는 의미인데, 입맛대로 맘대로 먹고 방종하던 위장, 좋지않은 흡연으로 망가뜨린 폐, 화를 내고 잘못된 것들을 섭취하므로 혹사한 간까지 모조리 하나님께 바치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겠다는 헌신의 의미인 것이다. “하나님! 이제부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겠습니다!” 라는 헌신의 의미가 들어있다. 각을 뜨고 일일이 내장들을 물로 씻는 것은 우리의 철저한 굴복을 말하는데, 여기서 물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우리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물과 성령으로 씻고 거듭나는 경험을 해야 한다.


C. 왜 제물의 머리와 다리를 잘랐을까?
이것은 우리 머리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생각과 동기와 묵상까지라도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이다. 두 다리는 우리의 행함을 말하는데, 자행자지하고 맘대로 살고 죄악의 길을 걷던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뜻이 들어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의미인가! 후에 모든 부분들을 번제단 위에 올려 놓고 태웠는데, 이것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완전한 굴복과, 회개와, 죄를 버리는 일이 생길 때 기뻐하시며 우리를 흠향 하며 받으신다.


2. 화목제
화목제는 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가 화목하게 되는지 말해주는 감사제이다. 특징은 제사 후 희생제물의 고기를 같이 나누는 것인데, 희생양 고기 중 하나님께 드리는 부분은 불태우고, 제일 많은 부분은 희생을 드리는 사람에게 주고, 제사장에게는 그 양의 가슴과 오른쪽 어깨와 두 뺨을 주었다(레 7장 참조). 특히 여기서 하나님께 드리는 부분은 기름만 잘라내어 단 위에서 태웠다. 성경에서 기름은 죄를 상징한다.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되어 없어지리로다”(시 37:2).
화목제의 또 다른 특징은, 제물을 돌려받은 사람의 식구들이 제물의 고기를 먹되, 삼 일이 지나면 먹지 못하게 되었있었는데, 이것은 예수께서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상징했다. 즉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죄인이 살게 되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A. 왜 제사장에게 희생제물의 앞 가슴과 오른쪽 어깨를 주었을까?  
여기에는 눈물겨운 의미가 숨어있다. 우리 죄인들이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때, 주님은 두 손을 벌리시고 가슴으로 안으시며 환영하신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가슴에 있다는 의미이다. 얼마나 감사한가! 또한 오른쪽 어깨(킹제임스 역에는 어깨로 되어있음:편집자 주)를 준 이유는, 주님과 화목한 이후에 우리의 모든 생애가 주님의 어깨에 달려 있음을 상징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들을 책임져주신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우리의 생애는 예수님의 어깨위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B. 제사장에게 왜 제물의 두 뺨을 주었을까?
여기에는 죄인이 주님께 헌신한 후에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 들어있다. 한쪽 뺨을 얻어 맞을 때에 다른 쪽 뺨도 돌려 대라는 주님의 가르침처럼 온유하고 선한 성품으로 살라는 말이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화목하는 경험을 너무나 잘 요약해서 가르쳐주는 놀라운 시청각 교훈이 아닌가!


3. 속죄제
속죄제는 죄를 용서 받기 위해 드리는 가장 중요한 제사였다. 이것은 죄없는 어린양의 피가 죄를 속한다는 상징 속에서, 어린 양 예수의 보혈이 어떻게 죄인의 죄를 씻으며, 그 죄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생생하게 가르쳐주는 제사이다. 평민이 범죄했을 때 드리는 속죄제의 희생제물은 양이나 염소였고, 제사장이나 온 회중이 범죄했을  때는 수송아지를 드렸다. 이것은 지도자의 죄가 더 엄중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A. 왜 속죄제를 고안하셨을까?
죄가 용서받기 위해,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얼마나 무한한 희생이 치러져야 하는지 알게 하시려고 고안하신 것이다. 죄인이 가져온 희생제물 양을 드릴 때, 자신이 손수 그 죄없는 양을 칼로 죽여야 했다. 목을 따고 제물을 번제단 불 위에 올려놓고 태울 때, 자기의 죄 때문에 죄없는 양이 괴로워 하며 죽을 때, 죄인은 그 모든 고통을 다 목격한다. 그럴 때 그는 괴로운 심정으로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처럼 죄인들이 속죄제물 되신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 바라볼 때, 그 엄청난 사랑과 희생을 보고 무릎을 꿇고 자신의 악함을 자복하며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치르신 그 참혹스런 고통을 진정으로 느낀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죄를 지어 예수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B. 죄가 상징 속에서 어떻게 사해졌을까?
죄인은 희생제물 머리에 손을 얹고 모든 죄를 고백했다. 그리고 희생제물의 피를 성소 안에 있는 휘장에 일곱번 뿌렸다. 그리고 또 번제단 네 뿔에 바르고 단 밑에 쏟았다. 이제 죄인의 죄는 양에게 전가되었고, 그 피를 가지고 성소로 들어가서 (피 속에 고백한 죄 들어있음) 휘장 앞에 뿌리므로 죄가 성소로 옮겨졌다. 또 다른 방법이 있는데, 일반 개인이 속죄제 드릴 때에는 피가 성소로 들어가지 않고 제사장이 그 고기를 조금 떼어 먹음으로 그 죄가 제사장에게 전가되어 성소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은 영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죄자체가 되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중보하심을 의미한다. 죄가 어떻게 사해지는지 성소 제도를 통해 세세히 가르치시는 주님의 자비가 얼마나 놀라운가!

 

3)   희생제물과 십자가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 자체가 되셔서, 죄인이 자비가 섞이지 않은 심판을 지나가는 경험을 십자가에서 대신 경험하신 그분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죄를 짐에 따라 아버지로부터 분리됨을 느낄 때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당한 말할 수 없는 고민에 대하여 우리는 희미한 개념밖에 가질 수 없다. 그분은 타락한 인간을 위하여 죄가 되셨다. 영원히 신비로 남게될 영원한 사랑외에는 어떤 것도, 그리스도로 하여금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죄된 세상에 오셔서 멸시와 배척을 받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도록 할 수 없다. 십자가 상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렇게 신속히 끊어진 것은 육체적 고난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짓누르는 세상 죄악의 무게와 하늘 아버지의 진노 때문이었다. 그분의 창백하고 떨리는 입술은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고통의 부르짖음을 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형벌이 죄인들에게 내려질 때 느낄 그 절망을 느끼셨다.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사랑인가!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영원히 죽어 없어진다고 해도, 죄인을 구하실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을 나타내셨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정으로 감사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계속적으로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에게 십자가의 고통을 계속 드릴 수 있겠는가? 우리가 주님의 사랑의 능력과 은혜 안에서 어서 속히 죄를 그치고 승리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성소 뜰의 영적 경험

성소 뜰의 영적 경험

성소를 연구하면 깨닫게 되는 매우 중요하고 놀라운 진리가 있다. 이것은 성소 연구를 통하지 않으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소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을 뵙기 위하여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셨다. 완전한 구원이란 죄인이 다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서 죽지 않고 영원히 같이 살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소제도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쉐키나 영광 앞에 나아가기 위해, 즉 지성소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 위해 죄를 어떻게 용서 받으며, 나아가서는 어떻게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수 있는지,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여기서 잠깐 성소 뜰에서의 영적 경험을 살펴보고 지나가자.

1) 성소 뜰의 영적 경험과 상태
성소 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봉사와 사역은 우리가 만드시 경험해야 할 중요한 영적 경험을 시사하고 있다. 성소 뜰에서 어떤 봉사가 이루어지는가? 번제단에서 희생제물을 드리고 죄를 속함 받는 일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죄인이 고백한 죄가 담긴 피를, 제사장이 성소 안으로 가져가 성소 앞 휘장에 7번 뿌리므로, 그 죄가 성소 안으로 옮겨진다. 그러면 그 죄가 언제 완전히 정결함과 도말을 받는가? 일년에 한번 있는 대속죄일에 모든 죄의 정결함과 도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성소제도를 보면, 속죄는 십자가에서 시작된 것이지 다 완성된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서 중보사업을 이루고 계시는 일은 십자가에 못지 않게 중요하며, 또한 속죄 사업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서 구원이 끝났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소제도에서 십자가는 성소 뜰의 번제단을 의미하며, 아직 성소와 지성소의 경험이 남았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성소 뜰의 경험은 우리의 어떤 영적 경험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때, 희생제물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죄를 가져가신다. 그리고 그분의 순결한 의를 대신 입혀주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의인으로 간주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칭해 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 입혀주시는 의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 용서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경험이 바로 성소뜰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 가 아니다. 성소뜰에서 죄를 속함 받은 사람은 드디어 믿음으로 제사장을 따라 성소 안으로 들어가, 주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을 사는 과정, 곧 성화의 과정을 시작 하게 되는 것이다. 거룩한 순종의 생애는 주님의 보혈로 구속함을 입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매일 죽노라고 하지 않았는가?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한번 구원을 받았다고 그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보혈에는 그 구원과 거듭남이 계속 유지 되도록 지켜주는 능력과 힘이 있다. 그 은혜 가운데서 자아를 주님께 순복하고 매일 죽는 경험을 하며, 마귀와 세상과 죄를 승리하며 사는 생활이 거룩한 성도의 삶, 곧 거듭남이 유지되는 삶인 것이다. 이것을 성화라고 부른다. 이 문제는 성소에서 더 다루기로 한다.     
여기서 성소 뜰의 또 다른 기구와 영적 의미를 공부하고 가도록 하자. 성소 뜰에는 번제단 외에 무엇이 있었는가? 물두멍이 있었다.

2) 물두멍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성전 봉사를 시작할 때와 끝 마칠 때, 희생제사를 드린 후에, 특히 성소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을 씻도록 되어 있던 물 담는 기구였다. 이것은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빛나는 놋거울로 만들어졌다(출 30:18). 물두멍은 불결을 보여주는 거울임과 동시에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세숫통이었다. 거울이 불완전을  보여주는 것처럼, 영적으로 물두멍은 성품과 마음을 비추어 주는 자유의 율법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또 어떤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물두멍은 거울을 보고 죄를 느낀 자가 물로 상징되는 성령과 말씀의 역사로 자신을 깨끗하게 씻는 경험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보혈로 한번 구속 받은 후,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즉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매일 씻고 거듭나야 한다. 그러므로 번제단을 거쳐 성소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물두멍에서 알고 있는 모든 죄로부터 마음을 온전하게 씻는 은혜를 체험해야 한다.


또한 물두멍에서 씻는 것은 침례, 중생을 뜻한다. 이 경험이 칭의의 경험이고 매일의 삶 속에서 체험해야 하는 경험이다. 독자 여러분에게 십자가 번제단의 경험과 물두멍의 정결의 역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성소 안으로 들어가다

성소 안으로 들어가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소 뜰에 들어가 그곳에 담긴 의미와 영적 경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는 휘장을 열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보자. 성소의 첫째 칸이라고 불리는 이 성소 안에서 우리는 놀라운 의미들을 발견할 것이다.

1) 성소에 담긴 메세지
성소 뜰에서 죄를 깨끗하게 씻고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은 이제는 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거듭나고 깨끗하게 된 양심을 계속적으로 성결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구원이란 한번 받았다고 영원히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인데, 그 때에 우리 마음 속에는 특별한 변화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이런 변화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매일 지켜 나가야 하고, 매일 주 안에서 거듭나므로 구원의 경험을 유지해야 한다. 이 경험을 성경은 “나는 포도 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수 없음이라”(요 15:5)고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한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구원 받은 것” 아니라, 우리가 그 받은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와 힘을 힘입어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우리의 의지를 주님께 항상 바쳐야 한다. 우리의 행함과 노력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를 쳐서 복종하고 의지를 굴복시키는 노력이 없이 아무도 구원을 지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이 성소 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소를 통과하여 지성소 안에 들어가서 종결지어진다는 사실을 성소 제도를 통해 배우게 된다. 우리는 거룩하게 사는 성화의 경험을 성소를 통해 배우게 된다. 성화란 곧 칭의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성소가 성화의 경험을 가르쳐주는가? 함께 연구 해보자.

2) 성소안의 기구들
이제는 성소 안으로 들어가보자. 성소 안으로 들어가면, 세 가지 기구가 우리 눈에 들어온다. 금 촛대, 떡상, 분향단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가지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구원을 유지시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놀라운 계시이다.

1. 성소 안의 기구들은 왜 순금으로 만들어졌을까?
여기엔 깊은 영적 의미가 숨어있다. 금을 만들려면 금속을 불로 연단하고 망치로 쳐서 만들도록 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망치이다(렘 23:29). 또한 금은 믿음을 상징한다. 진리의 말씀 때문에 오는 시련들을 통과하며 다져진 믿음, 불순물이 없는 순전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생애를 상징하기 위해 순금으로 만들도록 지시하신 것이다(벧전1:7, 갈 5:6 참조).

2. 금촛대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금촛대는 일곱 가지를 가진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것은 완전한 빛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 하셨다 (요 8:12). 빛이 우리 마음에 들어 오면 모든 오류와 잘못된 것들이 나가게 되어 있다. 금촛대의 빛을 내기 위해 감람유를 사용하였는데, 감람유는 성령을 상징하였다. 흥미롭게도 “겟세마네”의 뜻은 “기름짜는 곳”이란 뜻이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기 위하여 고난의 길을 가신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의 앞길을 진리의 빛으로 비춰주신다.


성소 안에는 창문이 없어서 외부의 빛이 들어올 수 없었다. 우리 영혼에도 참 빛되신 예수님의 진리 이외에는 어떤 외부의 빛도 들어 오지 않게 해야 한다. 또한 우리 영혼은 진리의 말씀으로 정결함을 받는다(벧전 1:22).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는 것을 말하며, 빛을 좇아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금촛대가 꺼지지 않고 늘 빛을 비춰주었듯이, 우리는 계속적인 말씀의 공급을 받으며, 성령의 임재하심을 충만히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요한 계시록 1장을 보면 예수님이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는 장면이 나온다. 성소의 촛대를 매일 깨끗이 닦고 심지를 손보고 감람유를 채우는 일은 대제사장의 책임이었다. 그러므로 이 모습은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인데, 우리 영혼의 신앙의 불이 꺼지지는 않았는지 항상 관심을 가지고 돌보시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 심지가 너무 올라와 교만으로 까맣게 그을르지않는지, 거듭남 잃지는 않았는지, 진리를 거절하는 생활을 살지는 않는지 늘 살피고 성령의 은혜와 힘을 주시는 예수님은 얼마나 고마우신 분인가! 우리는 매일 진리의 말씀을 먹고 그 빛 가운데 살아야 한다. 이것만이 성화의 유일한 방법이며, 구원을 유지시키는 길이다.

3. 떡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소 안에 있던 떡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했다. 떡을 진설병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대면의 떡” 혹은 “임재의 떡”으로 불렸다. 이것은 “떡을 통하여 하나님을 뵙는다”는 의미였다. 진설병은 산 떡, 곧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요 6:35).


진설병상은 금으로 된 이중 턱과 두개의 금테로 둘려있었다. 이것은 왕관의 테두리와 같이 권위와 능력이 있음을 상징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와 약동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주의 말씀은 우리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화의 경험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방법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힘과 성령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던 기적의 양식 만나는 이 땅에 내려 오신 예수 그리스도, 진리되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만나가 밤에 내렸던 것처럼 이 세상이 죄와 오류로 캄캄할 때에 주님께서 오셨다. 만나는 또한 이른 아침에 나가서 구하지 않으면 스러져 없어졌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른 아침에 만나를 구하여 그날을 위한 영적 양식을 먹어야 한다. 복잡한 하루를 시작하고 나서 잡다한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고 나면 하늘의 만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만나는 내일을 위해 쌓아둘 수가 없었다. 만나는 그날을 위한 하루의 양식이었으며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 만나를 먹으면 우리는 소생할 수 있고 모든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먹는 일에 게을리 하는 사람은 영생을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매일 만나를 먹는 경험을 하고 있는가? 거룩한 말씀을 매일 연구하자! 말씀이 가는 길에 빛이 되고 아울러 여행자에게 힘을 주는 생명의 양식이 되는 것이다.

4. 분향단의 의미는 무엇일까?
분향단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대제사장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시는 중보의 기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인간성을 상징하는 아카시아 나무에다가 정금을 씌워서 만든 분향단은 법궤나 떡상보다 그 높이가 더 높게 만들어졌다. 이것은 예수님의 중보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구원에 있어서 주님의 중보 기도는 없어서는 안되는 절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분향단의 향이 성소 안에 자욱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의 쉐키나 광채로부터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 죄인들의 진지하고 겸손한 기도들이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갈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 기도에 당신의 완전한 순종의 생애와 의를 공로로 섞으신다. 우리들의 기도는 이 향으로 말미암아 향기로워진다. 이것은 또한 거룩한 성도의 생애를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도의 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한가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성소 뜰에서 희생 양을 가지고 속죄제와 번제를 드린 후에야 성소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처럼, 진정한 개심의 경험과 죄를 씻고 버리는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머리로 동의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의로 옷 입혀지거나 중보의 기도를 받을 수 없다. 즉 진정한 성소 뜰의 경험, 거듭남을 통해 성소로 들어가는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는 주님께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의 죄가 진정으로 뉘우쳐지고 포기되어 양에게로 전가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를 위하여 아버지 앞에서 중보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다 성소의 은혜를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유일한 구원의 청사진인 성소 제도의 가르침대로 구원의 경험을 따라가는 자들에게만 중보의 향이 그들의 죄를 가리워 줄 것이다. 분향단의 향은 아무나 그 향의 재료로 흉내내어 만들 수 없도록 되어 있었는데 (출 30:34~38), 이유는 성소의 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죄 없는 생애, 즉 그의 거룩한 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성소 안의 세가지 기구들은 우리가 거룩한 생애를 살기 위해 필요한 방법들을 가르쳐주고 있다. 하늘을 향하여 여행하는 나그네의 길을 비추어 주는 진리의 빛과, 여행하는 나그네에게 힘과 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생명의 떡 하나님의 말씀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공급받기 위한 기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성화의 길을 넉넉히 갈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가!

지성소의 경험 속으로

지성소의 경험 속으로

앞서 우리는 성소뜰을 지나 성소에 들어가는 실제적인, 그리고 영적인 경험에 대해 연구해 보았다. 이제 드디어 우리는 지성소에 대해 연구해 볼 것이다. 지성소는 성소의 목적지이자, 마지막 결론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여 서게 된다. 지성소 연구는 마지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대한 교훈을 주고 있으며, 지성소의 영적 경험은 마지막 성도로서 반드시 가져야할 경험이다.


죄인이 성소뜰의 칭의의 경험과 성소 안의 성화의 경험들을 통과한 것은, 지성소의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인 쉐키나 앞에 설 수 있게 되기 위함이었다. 어떻게 죄인이 하나님의 광채 앞에 설 수 있는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고안하신 방법을 따라 죄의 문제를 해결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나님 앞에 이르게 하시기 위해 마련하신 귀중한 방법이며 길이다. 이제 지성소의 영적 경험에 대해 함께 공부해보자.

1) 휘장을 통해 지성소로 들어가다
지성소는 언제 들어가는가? 일년에 한 번 대속죄일날 대제사장이 들어간다. 지성소로 들어가려면 아름답고 빛나는 휘장을 통해 들어갔는데, 이 휘장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20). 특기 할만한 사실은, 이 휘장은 마치 하늘의 기록책을 상징하듯이 죄인의 죄를 기록하고 있었다. 희생제물의 피를 지성소 앞 휘장에 뿌림으로 죄인이 고백한 죄가 휘장에 다 옮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의 영적 의미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지시고 죄 자체가 되셔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을 의미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벧전 2:24). 얼마나 감사한 사실인가!

2) 지성소의 정경
지성소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접견하는 가장 거룩한 방이었다. 지성소안에는 순금으로 반들어진 금빛 찬란한 법궤가 있었고, 그 법궤 위 속죄소에는 금으로 만든 두 그룹 천사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 그룹 사이에 인간의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눈부시고 환한 하나님의 셰키나 영광의 빛이 존재한다. 천장과 휘장의 청색, 붉은색, 자주색은 황금에 반사되어 하나님의 보좌를 두른 무지개 연상시켰다. 지성소는 영광의 방이라고도 불렸는데, 이곳은 뜰에서 과거의 죄를 다 용서받고 예수님의 의가 입혀진 후, 성소에서 나누어주시는 의를 받아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성화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만이 들어가는 곳이다. 그런 사람들만이 지성소가 표상하는 영광화를 위해 준비될 것이다.

3) 법궤와 속죄소에 담긴 의미  
 지성소 중앙에 있는 금으로 된 법궤 속에는 하나님의 정부의 법, 결코 변할 수 없는 십계명이 들어있었다. 또한 그 속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다. 속죄소는 법궤의 뚜껑에 자리하고 있었다.

 
1.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에 들어있는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만나는 40년의 광야 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대대로 기념하기 위해 보존되었다. 이 만나가 계명 옆에 함께 보관된 것은, 계명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생명의 떡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분의 은혜와 보혈의 공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지자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의미가 들어있는데, 아울러 마른 지팡이에서 새싹이 난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자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가 있다는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속죄소가 무엇인가?
속죄소는 법궤의 덮개이다. 이 속죄소는 정금으로 만들어졌는데, 이곳은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자비의 자리였다. 십계명 바로 위에 하나님의 자리를 정하신 데는 놀라운 영적 의미가 들어있다. 곧 율법을 범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율법은 거울처럼 죄를 지적해주며 공의를 요구한다. 곧 율법은 인간이 법을 어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위 속죄소에 자비로 좌정하셔서 사랑으로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겠다고 보증해 주시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인가!
속죄소 위에 있는 금으로 만들어진 두 그룹 천사는 날개로 속죄소를 가리고, 얼굴은 속죄소를 향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기이한 법을 경탄하면서 바라보고 경배 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룹 사이에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빛 셰키나가 빛나고 있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빛이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4) 대속죄일에 일어난 일
지성소는 일년에 한번 있었던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대속죄일에는 무슨 일이 행하여졌는가? 그 날은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일이 행해졌다. 일년 동안 모든 죄인들이 고백한 모든 죄들이 희생제물의 피를 통해 성소로 옮겨졌고, 그 피가 지성소 앞 휘장에 일곱번 뿌려졌음으로 인해 성소는 죄의 기록으로 더럽혀져 왔다. 이 모든 죄의 기록이 대속죄일에 정결하게 되었다. 어떤 봉사를 통해 이 일이 이루어졌는가?


제일 먼저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수송아지를 희생제물로 드리고 그 피를 지성소의 속죄소 위에, 그리고 성소와 성소뜰 번제단에 뿌렸다. 이것은 중보자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일이었다.
그 다음 두 염소를 취해 제비를 뽑았다.  

1. 대속죄일에 뽑힌 두 염소는 누구를 상징할까?   
  한 마리는 그리스도를 상징했는데, 그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백성들의 죄의 도말과 성소 정결을 위하여 드려졌다. 그리고 다른 한 염소는 마귀를 상징했는데, 그 염소는 모든 이스라엘의 죄를 지고 광야로 쫓겨 나가는 아사셀 염소였다.

2. 성소는 어떤 방법으로 정결하게 되는가?
대속죄일에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를 제물로 드리고,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 동쪽과 그 앞에 일곱번씩 뿌렸다. 그런데 이 염소의 머리 위에는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고백하지를 않았다. 이 염소의 피는 그동안 회개한 모든 자들의 죄를 영원히 도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소의 향단과 뜰의 번제단의 뿔에 그 피를 바르고 각각 그 단위에 피를 뿌림으로 성소 자체를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하였다.
그 다음에는 준비된 아사셀 염소 위에 손을 얹고, 회개한 모든 백성들의 죄를 그 위에 다 고백하여 전가시킨 후에, 그를 미리 정한자의 손에 맡기어 광야로 끌어내어 갔다. 그렇게 함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죄가 드디어 해결되게 되었다.

5) 지성소의 경험과 하늘 성소
대속죄일은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영적 경험에 대한 가르쳐 주고 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2300일 예언이 끝나는 시점인 1844년에 예수께서는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다. 지금 우리는 영적 대속죄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대속죄일에 성소로 옮겨진 모든 죄가 도말되었듯이, 지금 주님께서도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속하시고 도말하시기 위해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다.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자신을 살피고 괴롭게 하며 금식하고 회개했다. 모든 죄로부터 깨끗하게 분리되지 않은 사람들은 진 밖으로 끌어냄을 당하여 돌로 침을 당하였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은혜와 보혈의 공로로 죄를 승리하고 죄와 분리된 생애를 살아야 한다. 영적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주님의 사역이 끝나기 전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드리는 제사를 통해 죄를 고백하였을 때 그들의 죄가 용서를 받아 왔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왜 대속죄일날 죄를 다시 조사하고 씻어야 하는 일이 필요했는가? 그것은 그들의 회개가 진정한 것이었는지, 그들의 죄가 완전히 도말될 수 있도록,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며 죄와 분리된 사람이 되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늘 성소의 일도 이와 똑같다! 지금 하늘 지성소에서는 누가 진정으로 죄를 회개하고 하늘에 와서 살 성품을 준비했는지 확인하는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사실 그 전까지의 용서는 조건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변치않는 분이시지만 인간 편에서 마음이 변하고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일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은 그 죄인이 아직도 여전히 그 죄를 진정으로 미워하며 용서 받고 싶어하는지, 그 마음과 행위를 조사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타락하지 않은 우주 거민들과 천사들 앞에서 당신의 의로우신 심판을 펼쳐 놓으시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들은 또 다시 이 우주에 죄와 반역이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와 반역의 역사를 영원히 마감하기 위해서는 믿는다고 공언하는 자들의 품성을 조사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하늘 지성소의 심판의 장면이 성경에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9~10).


무엇에 따라 심판이 베풀어지는가? 책에 기록된 기록에 의해 베풀어진다. 그러므로 대속죄일에 성소 휘장에 있던 죄의 기록이 완전히 도말된 것처럼, 기록책에 기록된 우리의 죄가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완전히 정결케 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죄를 위한 용서를 구하며 회개할 때 우리의 죄의 기록 밑에는 “용서 받았다’는 기록이 쓰여진다. 그렇다면 언제 그 죄가 다 도말되는가? 우리의 성품이 완전히 하나님의 뜻과 계명과 조화된다는 것이 증명될 때 도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영어로는 죄의 도말임:필자 주)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 3:19,20). 베드로는 우리가 회개하고 거듭나서, 죄에서 돌이키고 악에서 떠나면 죄의 도말의 경험이 이르러 온다고 말하고 있다. 그 시기는 주 앞으로부터 오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 될 것인데, 지성소에서의 예수님의 중보 사역이 거의 끝날 시점, 마지막 환난을 위해 늦은비 성령을 내려주실 때에 유쾌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며 그 때에 죄의 도말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 때에 늦은비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이 사건을 위해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마치면서

지금 우리는 주님의 은혜 속에서 매일 죄와 상관 없는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현재 하늘 지성소에서는 누가 하늘에 적합한 성품을 가졌는지 조사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정결하게 하시는 중보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 우리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사업에 영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대속죄일을 맞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살피며 회개 하였듯이, 우리 자신을 살피고 모든 죄를 회개할 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죄를 이길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의 의지와 마음을 매일 주님께 바치고 주님의 뜻에 매일 순복하는 생애를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지속적인 임재 속에 살아갈 때에 우리는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계명이 쓰여지는 새언약 속에 들어가 죄를 승리하며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성소뜰의 회개와 칭의의 경험을 하고, 거룩한 성화의 길을 가며, 하나님을 대면하여서도 설 수 있는 거룩한 독자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암과 싸워주는 최고의 음식

암과 싸워주는 최고의 음식(Super Foods)

우리가 즐겨 읽는 성경 말씀 중에 고린도전서 10장31 절과 6장 19 절에는 다음과 같은 귀한 말씀이 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이 말씀들은 우리의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터 위탁 받았고, 또 우리의 몸은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가장 건강하고 정결하고 깨끗하게 보전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먹고 마시는것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특권임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바로 깨달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함께 어울려 실행되어야 하는데, 그 중 중요한 하나가 우리가 먹는 음식이다. 좋은 음식의 섭취는 우리 몸의 면역력을 길러주고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과 싸워 이길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켓에서 흔히 구할수 있는 음식물중 항상 우리에게 위협을 주는 질병과 암과 싸워 이길수 있는 최고의 음식 (Super Foods) 5가지를 소개 한다. 아래 소개하는 음식들은 질병과 싸우는데 꼭 필요하기도 하지만, 건강한 사람들이 계속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도 꼭 필요 불가결한 음식이기도 하다.



1. 브로컬리 ( Broccoli)

브로콜리(broccoli)는 겨자과에 속하는 짙은 녹색채소로 '녹색 꽃양배추'라고도 불린다. 브로콜리는 아직까지 한국인에게는 생소할수도 있지만 샐러드, 수프, 스튜 등 서양음식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채소 중 하나다

아주 작은 나무처럼 생긴 이 채소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대표적인 거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채소를 아이들에게 먹이려면 “부로컬리를 먹어야 맛있는 간식을 먹을수 있어” 라고 말해야 겨우 먹일수 있었던 경험을 대부분의 부모들은 경험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싫어 하는 채소이지만, 암을 비롯한 질병이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아이들뿐 아니라 노인들을 포함한 모든 성인들이 가장 먹기를 좋아하고 즐겨야만 하는 음식이 바로 브로컬리이다.

브로콜리에는 비타민 C, 베타카로틴 등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다. 베타카로틴은 비타민 A의 생성 전단계 물질로 항산화 작용을 가지고 있는 미량 영양소이다. 항산화 물질은 우리 몸에 쌓인 유해산소를 없애 노화와 암, 심장병 등 성인병을 예방한다. 브로콜리에 함유되어 있는 다량의 칼슘과 비타민 C는 골다공증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브로콜리 100g에 비타민 C가 98㎎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레몬의 2배, 감자의 7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따라서 브로콜리 두세 송이면 하루 필요한 비타민 C를 섭취할 수 있다.

또한 브로컬리에는 설포라판(Sulforaphane) 이라는 물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물질은 유방암 세포의 수와 크기를 확연하게 줄여줄 뿐 아니라 전립선암 세포들을 죽여주는 물질임을 실험결과를 통해 밝혀졌다. 그뿐아니라 브로컬리에는 섬유질이 풍부해서 대장암을 일으키는 암세포들의 증식을 막아주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식단에 브로컬리를 포함 시킨다면 금방 그 효과를 체험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브로컬리가 입맛에 맞지 않을수도 있지만 맛있는 쌈장이나 양념장을 함께 사용하면 쉽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2. 당근(Carrot)

한마디로 당근을 표현 하라면 종합 비타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근에는 베타 캐로틴으로 구성된 비타민 A 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눈의 시력에 큰 도움이 될뿐 아니라 성장 그리고 발달과 면역에도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비오틴(Biotin) 은 몸의 지방과 담백질 대사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 그리고 당근에 들어있는 비타민 K 는 혈액응고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뼈를 건강하게 해주는 요소이다. 그리고 몸에 필수 광물인 포타시움(Potassium) 은 혈압을 조절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비타민 B6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영양분으로 바꿔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최근 실시된 연구에 의하면, 항산화제인 리코펜(Lycopene), 폴리아세틸렌(Polyacetylene), 안토시아닌(Anthocyanins) 이 많이 포함된 당근을 규칙적으로 섭취할때 심장 질환이나 특정 암에 걸릴 확율을 줄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콩(Beans)

콩의 종류는 다양한데 우리가 먹을수 있는 콩 몇종류를 소개 하자면, 리마 빈.(lima beans), 검정콩(black beans), 블랙 아이드 피스(black-eyed peas), 메주콩(soybeans), 덩굴 강낭콩(kidney beans), 갈반조 콩(garbanzo beans), 흰 강낭콩(navy bean), 핀토 콩(Pinto beans) 그리고 붉은콩(red bean) 등이 있다

콩은 20세기 들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산과 이용 면에서 세계 최고의 신데렐라 작물로 부상하였으며, 21세기에도 여전히 주목받는 밀레니엄 식품이다. 콩은 세계적인 식품으로 1,000여 가지의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콩에 들어 있는 단백질의 양은 농작물 중에서 최고이며, 구성 아미노산의 종류도 육류에 비해 손색이 없다. 콩에는 비타민 B군이 특히 많고 A와 D도 들어 있으나 비타민 C는 거의 없다. 그러나 콩을 콩나물로 재배할 때는 싹이 돋는 사이에 성분의 변화가 생겨 비타민 C가 풍부한 식품이 된다. 콩은 단백질 35∼40%, 지방 15∼20%, 탄수화물 30%가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식이섬유, 비타민, 무기질 등이 들어 있는 영양식품이다. 콩(대두, soybean)에 함유되어 있는 주요 성분에는 100g당 열량 400㎉, 탄수화물 30.7g, 단백질 36.2g, 지방 17.8g, 비타민(비타민 B1, B2, 나이아신 등), 무기질(칼슘, 인, 철, 나트륨, 칼륨 등), 섬유소 등이 있다.



4. 산딸기류 열매( Berries)

레즈베리(Raspberries) , 블랙베리(Blackberries) , 블루베리(Blueberries), 딸기(Strawberries)

야채와 콩 종류와 함께 많은 종류의 건강한 과일들은 암과 싸우는데 도움을 줄수 있다. 그중에 산딸기류 열매들이 있는데, 모든 종류의 산딸기류 열매들은 많은 양의 항산화제를 포함하고 있어서 여러 종류의 암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레즈베리, 블랙베리 그리고 블루베리에는 석류 다음으로 가장 많은 항산화제를 포함하고 있어 우리몸에 활성 산소로 인해 우리몸에 생체조직을 공격하고 세포를 손상시키는 활동을 막아줄수 있다. 그리고 베리속에 들어있는 항염증제는 부상이나 감염으로 인한 염증을 제거해 주는 탁월한 요소 이다. 블랙 레즈베리와 딸기는 비만이나 대사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베리 안에 많이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Anthocyanin), 엘라그산 ( Ellagic Acid), 레스베라트롤( Resveratrol) 같은 항산화제 성분은 우리 몸에 암의 생성을 막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루에 적어도 한 종류의 산딸기류 열매를 섭취하면 우리 몸에 암세포가 생기는 것을 막아줄 수 있다. 믹서에 넣어서 스무디를 만들거나 주스로 만들어 마실 수도 있다.



5. 아보카도 (Avocado)

아보카도는 속이 단단한 핵으로 구성되고 잘 익으면 껍질안은 부드러운 크림처럼 질감이 느껴지는 따뜻한 기후에서 자라는 과일과에 속한다. 아보카도는 신진대사를 증진시키고 우울증을 경감시키며 암 발생을 억제해 주는 역할을 한다.

아보카도는 다량의 비타민 C, E, K 그리고 비타민 B6, B2(Riboflavin), 비타민 B3(Niacin), 엽산(Folate), 판토텐산(Pantothenic Acid), 마그네시움, 포타시움 을 함유하고 있고, 또 루테인(Lutein), 베타 카로틴(Beta-Carotene) 그리고 오메가 3 지방산을 제공해 준다. 아보카도에 함유된 베타 시토스테롤은 건강한 콜레스테롤 상태를 유지 시켜주고, 또 루테인 (Lutein) 은 자외선으로 부터 피부를 보호해주며, 또 비타민 K 는 정상적인 뼈의 상태를 유지시켜 준다. 그리고 적당한 양의 엽산(Folate) 은 위장암, 대장암, 췌장암 그리고

자궁경부암으로 부터 보호해준다. 그리고 아보카도와 콩 그리고 야채에서 얻어지는 사포닌(Saponin) 은 무릎관절염 통증을 해소시켜주는 작용을 한다.

그 외에도 우리의 몸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암을 예방 및 치료해주는 많은 수퍼 푸드(Super foods) 들이 있는데 지면상 관계로 개별 소개는 하지 못하지만, 계피( Cinnamon), 견과(nuts), 올리브유(Olive oil), 아마 씨( Flaxseed), 감귤류의 과일(Citrus fruit), 강황(Turmeric), 마늘(Garlic), 대추(Dates), 생강(Ginger), 케일(Kale), 석류 쥬스( Pomegranate Juice), 컬리플라워(Cauliflower), 단고구마(Sweet Potatoes) 등이 있다.

위에 언급한 음식들이 우리 식단에 적당하게 잘 차려진다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도 할 수 있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건강한 몸과 마음이 하나님께 매일 바쳐지는 경험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요한3서 에 있는 말씀으로 우리의 소원을 아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1:2).

꽃들도 귀가 있나요

꽃들도 귀가 있나요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것을 표현할 때 꽃에 비유합니다.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로 부터 길가에 피는 들꽃이라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로 미소짓게 만드는 것 역시 꽃이라 할 수 있겠지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길옆 풀섶에 피어 있는 꽃들이 괜히 반갑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그 뿌리나 잎이 약으로 쓰이는 식물들도 가끔 있는 걸 보면 참 신기한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꽃들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것을?
식물학자들은 식물이 단지 광합성을 하고 번식만을 하는 생물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수십년 전부터 연구해 왔습니다. 근래에 식물학에서 새롭게 시작되고 있는 한 분야가 있는데 바로 식물음향학(Plant acoustics)이라고 불리는 분야입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생물학자들로 구성된 한 연구팀이 실제로 벌 날개의 진동 주파수를 식물이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들의 연구대상으로 선택된 식물은 달맞이꽃(Evening primrose)이었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먼저 식물이 벌의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의 반응 속도에 주목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식물은 3분 안에 꿀의 당도를 최대 20%까지 일시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연구팀은 이 식물의 어느 부분이 귀의 역활을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특별한 레이저를 사용하였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꽃잎이 위성접시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연구팀은 달맞이꽃 650송이를 대상으로 4번 실험을 거듭했는 데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윙윙 거리는 꿀벌의 신호를 받을 때만 꿀을 더 달게 만들도록 설계되었고 바람과 같은 관련 없는 소리는 무시하기 때문에 이 식물은 더 달콤한 꿀을 만들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달맞이꽃 꽃잎에 벌의 날갯짓 소리가 닿아 일으키는 진동을 레이저로 측정해 본 결과 벌이 일으키는 특정 주파수만 공명하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꽃을 유리 덮개로 가리자 당분 증가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작은 꽃잎에도 귀를 달아놓으신 분은 누구일까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신기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