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의 마음


때때로 하나님의 가슴 속에는 깊은 망각의 심연이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이 지구의 수 많은 사람들이 드리는 회개의 기도를 다 들어 주시며 빠짐없이 그 많은 사람들의 죄들을 다 용서 하시니까 말이다.

아니 용서하실 뿐 만 아니라 망각의 심연 너머로 던져 버리신 듯 깨끗이 잊어버리시니까?그리고 마치 전혀 한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사람처럼 우리를 새 사람으로 여겨주시니까?우리가 진정으로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버리기만 한다면 말이다. 때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죄인들을 향해 가지신 그 놀라운 사랑과 신뢰를 생각하면 감탄이 입술에서 흘러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형편없는 죄인인 우리들을 어쩌면 그렇게 믿어 주시는지! 그리고 어떤 때는 속을 줄 아시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또 용서해 주시는지! 한번의 꾸지람이나 눈 흘김 없이, 또 그럴거냐는 질문도 안 하신 채, 격려와 사랑의 미소만을 지으시며 우리들은 마치 아버지를 떠나 방황 했던 탕자처럼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지며 방황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가운데 남겨 놓은 고통과 그리움에 대해서 조금도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방탕한 아들이 그의 친구들과 춤추며 먹고 마실 때 그의 고향집에 드리운 우울에 대하여 전혀 생각지도 못하였던 것처럼?그러나 하루도 빠짐없이 문 앞에 나와 아들을 기다린 아버지처럼, 돌아온 아들의 초라하고 남루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멸시 하거나 모욕하지 못하도록 자기의 넓고 좋은 외투로 덥석 안아 덮어주며 받아드린 아버지처럼, 하나님께서는 몇 번이고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박은 우리들을 얼마나 놀라운 사랑으로 받아 주시는가!

하나님의 기쁨

만일 우리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께로 한 걸음만 나아갈 지라도 그분께서는 무한하신 사랑의 팔로 급히 우리를 안아 영접하신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모하는 생각이 첫 번째로 생길 때에 그분께서는 벌써 아신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들의 통회하는 부르짖음을 들으시려고 귀 기울이고 계신다. 아무리 더듬는 기도일지라도, 아무리 은밀한 눈물일 찌라도, 하나님을 사모하는 생각이 아무리 미약할 지라도 하나님의 성령이 마중 나가지 않으시는 때가 없다. 기도가 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또는 마음의 소원이 알려지기도 전에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은혜가 사람의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은혜를 만나기 위하여 나온다. 거룩한 천사들의 찬양대의 찬미소리 가운데서라도 하나님께서는 가장 연약한 인간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다. 우리가 골방에서 우리의 소원을 쏟아 놓을 때에, 우리가 길을 가면서 묵묵히 기도할 때에, 아니 어떤 때는 미처 기도의 문장도 꾸미지 못한 채 큰 눈물방울만 떨어뜨릴 때도 우리의 소리 없는 심령의 소원은 우주의 임금의 보좌에 상달된다.

비록 그 기도가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지라도 그것은 사라져 버리지 않고 거리의 잡음과 군중의 소요를 초월하여 하늘 조정에 상달된다. 그리고 기다리셨다는 듯이 하나님께서는 어떤 아름다운 선율보다도 더 아름답게 울리는 우리의 회개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슴을 활짝 여시고 용서와 평화와 기쁨을 선물로 퍼부어 주신다. 마치 하프의 선들이 손가락의 당김에 전율하여 아름다운 음악을 온 주위에 울려 퍼지게 하듯 빚어내는 그 기쁘고 아름다운 하모니는 아마 온 우주를 울릴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신약 성경에 묘사된 비유의 이야기이리라. 벗과 이웃을 불러 기쁨의 잔치를 베푸는 것으로 묘사된 하나님의 기쁨의 이야기?곧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기쁨으로, 잃은 은전을 찾은 여인의 기쁨으로, 아니 잃은 아들을 다시 찾은 아버지의 기쁨으로 묘사된 비유의 이야기이리라. 우리가 회개하여 주께 돌아 갈 때 가슴 벅차 기뻐하시며 선뜻 용서하시며 좋아하시는 하나님의 기쁨! 우리가 그렇게 크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지!

용서받은 사람의 이야기

그런데 성경 다른 장에는 우리의 죄가 진짜 용서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시험할 수 있도록 주신 또 다른 비유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성경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빚진 자의 이야기이다. 갚을 능력이 없도록 큰 빚을 지었지만 임금에게 탕감 받은 그 사람은 자기에게 적은 빚을 진 친구의 빚을 너그럽게 탕감해 주어야 마땅 했었다. 자기를 그렇게 은혜롭게 용서하여준 주인의 모본을 따를 기회가 왔을 때?감옥에 넣겠다는 위협을 하는 대신에....?

오늘 날에도 우리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정신을 나타내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한 두 번쯤은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거듭 거듭 자기에게 잘못하는 사람이 자기의 잘못을 고백할 때 우리는 싫증이 생기어 내가 너무 많이 용서 하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 짓는 자를 취급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 하거든 용서할.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 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눅 17:3,4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를 사람이 우리에게 와서 잘못을 고백하면 그 사람의 겸손이 아직 부족하다든가 그 사람이 진정으로 자복하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든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는 그만큼 여러 번 용서 하여 주어야 한다. 주기도문을 되뇌어 보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되어 있지 않은가! 누가복음 11장 4절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조금 다른 표현으로 묘사되어 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같이 하시리라. 마 6:12.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 줄 때만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신다.

용서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자비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끊어버리게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해를 끼친 자들이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 한 그들을 용서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물론 회개와 고백으로 마음을 겸손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도리이긴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을 범한 사람이 그 실수를 고백하든지 않든지 간에 그들에 대하여 긍휼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아무리 심한 상처를 줄지라도 불만을 품거나 상처 받은 자신을 동정하지 말며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용서 받으려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잘못한 모든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죄에 빠진 사람에게 낙심할 원인을 만들어 주지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바리새인 같은 완고성이 우리 마음속에 생기어서 그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마음이나 정신에 조금이라도 조롱하거나 비웃은 생각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자. “저 사람 조금 있다. 또 그럴 걸 뭐” 라고 말하지 말자. 우리에게 속으시면서도 몇 백번이고 믿어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나님의 용서

용서 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용서는 단순히 우리를 정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사법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완전히 돌아서게 한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표현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또 남을 용서해 주기 위하여 우리가 필수적으로 해야 할 것 하나는 그분께서 우리에 대하여 가지신 사랑을 깨닫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주셨다. 그리고 구주께서는 우리를 당신께로 이끌기 위하여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죄악의 짐을 담당하셨다. 갈바리 십자가를 진정으로 쳐다보는 사람은 자기의 죄 때문에 구주께서 그곳에 달리셨음을 보고,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를 위해 드리신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를 생각하며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고 통회할 뿐 아니라 다시는 사랑하는 주님을 못박는 죄를 지을 마음이 없어진다. 이렇듯 용서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그분께로 이끌며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용서를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사랑에 마음이 감동되면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용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자기의 죄에 대하여 용서를 받는 중에 죄를 지은 자의 마음이 무한하신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의 크신 마음에 이끌려 가게 되었고,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동정과 사랑의 조류가 그 죄인의 심령으로 흘러 들어가 그에게서 다시 다른 사람의 심령으로 흘러 들어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또 다른 놀라운 말씀이 쓰여있다. 그것은 바로 미가 7:19에 있는 말씀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그 죄에 대하여 깨끗이 잊어버리신다는 것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남을 용서 한다면, 아니 하나님께서 잊어버리시는 것처럼 자기를 파멸시키도록 아픔을 준 그 사람의 잘못을 깨끗이 잊어 버린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화기 애애한 세상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얼굴 붉힘과 고개를 꼬며 외면하는 것과 두고 두고 한탄하며 가슴을 뜯는 증오가 사라질 수 있을까? 우리들이 진정으로 십자가에서 크신 예수님의 사랑을 본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진정으로 용서 받은 사람들이라면.... 그런 우리들 사이에서 말이다.

권두언


강병국

만일 종교 개혁자들이나 초대 교회의 교인들이 부활하여 일어나 현대 교회를 바라 본다면 충격을 받고 놀랄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게 될 이유들 중에 하나가 바로 지금의 교회들의 세속적인 부흥의 모습일 것입니다.

진리를 가지고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요소들로 성장한 많은 교회들을 바라 보면서 그들은 과연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들을 고수하기 위하여 그렇게 고통과 핍박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순교 당해 죽어가면서까지 지켰던 그들의 희생들이 이렇게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말았는가 하는 회심의 한숨을 쉬지 않을까요? 세속에 물들거나 세상에 쉽게 타협해 버리고, 마치 비즈니스 적으로 사람들의 숫자만 많이 모으면 성공인 것처럼 인정하려면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러한 고난과 대가를 지불했어야 했다는 말입니까?

성경에는 두 무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알곡과 가라지로 구분하고 있고 어떤 경우에는 곡식과 포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흥미 있는 사실은 성경이 항상 두 무리에 대하여 구분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마지막 시대에 가서는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고 부르며 구별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참된 하나님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번 호를 통하여 여러분들께서는 이 중요한 사실에 대하여 더 확실하게 이해하시게 되실 것입니다.
 

동물성 단백질에 대한 오해


로버트의 식생활은 매우 이상하게 바뀌었다. 그는 매일 학교 식당에 고 단백질 음식이 담긴 도시락을 가지고 왔다.

하루는 땅콩, 다음 날은 볶은 콩, 그 다음 날은 호두나 해바라기씨. 식생활을 채식으로 바꾼 로버트는 동물성 음식을 자제하는 대신에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서 애썼다. 그는 채식 주의자가 된 후로 단백질의 섭취량이 부족해 질 것을 염려하여 기회가 되는 대로 식물성 고 단백질 식품을 마구 섭취하였다. 그로부터 일년 후, 로버트는 대학에서 영양학 강의를 신청해서 듣게 되었고 교수의 강의를 통하여 그는 매우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몸에 필요한 단백질 양의 2~3배 이상을 섭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실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단백질을 과잉 섭취함으로써 오히려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였다. 로버트는 자신의 식단을 검토한 결과 채식을 하더라도 단백질의 과잉 섭취를 피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 하버드 대학과 로마린다 대학에서는 채식과 단백질 문제에 대해서 매우 중요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연구학자인 하딩스 박사(Dr. Harding)와 스태어박사(Dr. Stare)는 채식주의자들이 인체의 건강 유지에 필요한 단백질의 모든 종류와 양을 충분히 섭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딩스와 스태어 박사의 이러한 연구 결과 이전에도 많은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결코 흔드들릴 수 없는 진리처럼 여겨져 왔던 단백질 섭취량에 대하여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영양학의 저명한 권위자이며 코넬 대학의 영양 생물화학 교수로 있는 T. 캠벌 박사는 이 문제에 대해서 특이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는 중국의 저 단백 식생활이 건강에 가져다 주는 이익을 수년간 살펴 보았다. 1999년 9월자 새세기 영양이란 건강지를 통하여 러셀 키튼든(Russell Chittenden) 박사의 연구 결과와 자신의 경험을 발표하였다. 키튼든 교수는 지난 수세기 동안 당연한 진리처럼 받아들여져 왔던 견해, 즉 육류로 구성된 고 단백질 식품들이 인체에 힘과 활력을 줄 뿐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주장에 대해서 가장 활발하게 의문을 제기했던 선구자였다. 키튼든은 육류와 고 단백질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가져다 주는지 대해서 3번의 연구를 시행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조사는 잘 훈련된 운동 선수들을 상대로 한 연구조사였다. 연구 대상으로 채택이 된 운동 선수들은 전형적인 육류식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키튼든 교수는 이 선수들을 5달 동안 채식을 기초로 한 식사로 바꾸었다. 연구가 끝난 5달 후에 그들의 건강을 비교 검토해 보았다. 선수들은 건강이 35%나 증진되었다. 캠벌 박사는 “식생활의 변화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라고 말했다. 이러한 종류의 연구 결과를 통하여 육류와 동물성 단백질은 건강을 위한 최선의 식품이 아니라는 사실이 오늘 날에는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그러면 도데체 언제, 어디서 육류와 단백질에 관한 오해가 시작 되었는가?

오해의 시작

1838년, 단백질은 인체에 필요한 영양소임이 발견되었다. 단백질은 생명체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단백질은 오늘 날까지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웹스터 영어 사전은 “단백질”이라는 단어가 그리스어로 “프로토스” 즉, “첫째”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나왔다고 정의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단백질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은 더욱 더 크게 인식되었다. 단백질이 근육의 역할, 호르몬 분비, 그리고 효소의 생산 등 여러가지 작용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성장기간, 상처나 수술 후, 그리고 다른 부상으로 인한 조직의 회복, 그리고 근육을 키우는 운동 중에도 더 많은 양의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 식생활에 있어서 단백질의 중요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체는 20종류의 아미노산을 사용하여 생명과 건강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든다. 이 중 8가지 필수 아미노산은 음식물의 섭취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이소르신(Isoleucine), 르신(Leucine), 리신(Lysine), 메디오닌(Methionine), 피닐라닌(Phenylalanine), 드레오닌(Threonine), 트립토판(Tryptophan), 발린(Valine). 나머지 12가지의 아미노산은 인체 내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다. 적당한 양의 아미노산들이 없이는 기능적인 단백질 분자들을 만들 수가 없다. 사람들은 동물이 식물보다 자연적으로 인간에게 가깝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육류의 단백질 분자들이 식물의 단백질 분자들 보다 인간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하는데 있어서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식물성 단백질 보다 동물성 단백질이 필요한 아미노산의 섭취에 유익을 준다는 오해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식물성 단백질 대 동물성 단백질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오를 수 있다. “그렇다면 동물성 단백질이 식물성 단백질 보다 우월한 영양을 공급해 주는가?” 단백질만을 구별하여 비교하지 않고 인간의 식생활의 전체를 놓고 살펴본다면, 이 질문에 대답은 “아니다”가 된다. 이러한 답변은 1960년도에 하딩스와 스태어가 실시한 연구조사에서 이미 나왔다. 그들은 세 그룹들 즉, 육류를 즐기는 미국인들, 완전 채식주의자들, 그리고 계란과 유제품을 제외한 모든 육류를 금한 채식주의자를 대상으로 연구하였다. 하딩스아 스태어 박사는 세 그룹이 섭취하는 아미노산의 양을 측정해 보았다. 아미노산의 양을 측정한 후, 그들은 인체에 필요한 아미노산을 가장 완전하게 공급해 주는 식단과 식품은 완전 채식주의자들의 식단과 모유라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놀라웁게도 완전 채식주의자들의 식단이 가장 훌륭한 질의 단백질을 공급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 연구 결과가 가르치는 교훈은 단순하다. 한 가지 음식만을 볼 때 동물성 단백질은 식물성보다 우월하다. 그러나 한 가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식생활 균형을 비교 해볼 때, 식물성 단백질 식품이 동물성 단백질보다 그 질이 월등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유와 동물의 젖에 함유된 단백질의 비교

모유나 동물의 젖에 함유되어 있는 단백질 함량은 신생아나 새로 태어난 동물에게 필요한 단백질의 필요조건을 알려준다. 그러면 여러가지 동물들의 젖에 함유된 단백질의 양을 비교해 보기로 하자.

 

단백질의 비교표를 보면, 인간에게 필요한 단백질의 양이 다른 동물들 보다 비교적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포 조직 성장에는 단백질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다량의 단백질이 함유된 젖을 먹는 새끼 동물일수록 성장 속도가 빠르다. 그렇다고 해서 신생아에게 쥐의 젖을 섭취시킨다면 아기의 성장이 짧은 시간 내에 급속하게 이루어 질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성장 속도는 유전적으로 각각 다르게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필요 이상의 고 단백질은 오히려 자라는 아이에게 해를 미친다.

미국 영양학회의 입장

이쯤해서 어떤 사람들은 “하딩과 스태어 박사가 한 조사는 불공평하다. 동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단백질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룬 식단으로 식생활을 해야 한다.” 고 말 할지 모른다. 이러한 주장은 동물성 단백질을 위주로 한 식단을 꾸민 다음, 단백질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식물성 단백질을 “첨가”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전래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건강에 해로운 과다한 고단백질의 섭취를 피하기 위하여 매 식사 때마다 음식의 무게를 재고 아미노산(단백질)의 양을 계산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실천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영양학 협회(American Dietetic Association)는 채식주의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8년 이후, 미국 영양학회는 채식주의를 다음과 같은 말로 지지하기 시작했다. “잘 계획된 채식주의식 식단은 영양학적으로나 건강을 위하여 적합하다는 것이 미국 영양학회의 입장이다.” 과일, 곡식, 채소, 그리고 견과류를 섭취하는 채식주의식 식생활은 적당한 단백질을 공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완전 채식주의 자이던지 육류를 섭취하던지 간에 아미노산(단백질)에 집착하지 않고 “적당한 식사”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미노산 이외의 다른 영양소들도 식사에 포함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육식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채식 주의자들은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 반대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영양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면, 육식을 하기 보다는 채식을 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며 유익하다.

채식과 인체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의 관계

먼로(Munro)와 크림(Crim) 박사는 채식과 필수 아미노산의 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들은 식물성 식품에 함유된 단백질의 함유량과 성인이 필요로 하는 가장 높은 양의 아미노산 양을 비교하였다. 2,500 칼로리를 를 기준으로,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이 즐겨 먹는 11가지 식물성 식품(고구마, 구운 감자, 현미, 토마토, 호박, 통밀, 옥수수, 오우트, 흰 콩, 아스파라가스, 브로콜리)을 대상으로 비교하였다. 그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일일 권장 단백질 섭취량보다 이들 11가지 식물성 식품이 공급하는 단백질 양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 밝혀 졌다. 11가지 식물성 식품 중 어떤 채소나 곡식을 선택해서 섭취할지라도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채식으로 인한 단백질의 결핍이란 있을 수 없다.

먼로와 크림 박사가 연구 대상으로 선택한 식물성 식품 중에는 과일이 빠져 있다. 과일의 단백질 함유량은 매우 낮다. 그러므로 한 종류의 과일만 먹게 되면 필수 아미노산을 충분하게 섭취 할 수 없다. 또한 채소 중에도 과일처럼 단백질의 양이 적은 것이 있다. 그러나 인류가 불을 사용하기 이전 수세기동안 인간은 채식으로만 살아왔다. 인류의 조상들이 그렇게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식물이 건강에 필요한 아미노산들을 충분하게 공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채소, 곡식, 견과류, 그리고 과일을 골고루 먹으면 쉽게 필요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 단백질에 관한 한 가장 훌륭한 권위자로 꼽히는 마크 메시나(Dr. Mark Messina) 박사는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 받고 미국 국립 암 기관 산하의 식생활과 암 센터에서 일하고 이있는데, 그는 식물성 식품의 아미노산 균형에 대해서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혔다. “곡식, 콩,그리고 채소로 구성된 식사를 할 경우, 칼로리를 충분히 섭취할 뿐 아니라 단백질의 결핍도 있을 수 없다.”

단백질과 질병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많은 지방의 섭취와 과다한 설탕 섭취가 건강에 치명적인 해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단백질의 과다한 섭취로 인하여 전혀 예기치 못한 심각한 질병을 가질수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듯하다.

골다공증과 단백질

뼈의 밀도가 줄어드는 질병으로 알려진 골다공증은 이제 현대인들의 생활 용어가 되어 버렸다. 뼈를 약화시키는 골다공증의 가장 무서운 합병증은 골반 골절이다. 허리와 손목 골절 또한 골다공증과 연결 되어 있다. 50세 이상 여인들의 30%는 골다공증을 경험한다. 특별히, 백인여성들에게 있어서 폐경기에 가장 많이 생기는 질병이지만 모든 인종과 성별을 막론하고 높은 발병률을 나타낸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골절중 70%가 45세 이상의 골다공증으로 인하여 생긴다. 또한 골다공증에 대한 통계 자료를 살펴 보면, 갱년기 이후의 여성 중 반이상이 골다공증으로 인한 골절을 경험한다고 한다. 매년 미국에서만 약 130만명 이상이 골다공증으로 인한 골절로 고통당하고 있만다. 1995년,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골다공증과 관계된 골절로 인해 사용한 병원비가 13억 8천 달러이다. 골절은 폐렴과 같은 합병증을 가져와서 불의의 사망을 일으키기도 한다. 말하자면 노년에 들어서 골반 골절을 경험한 사람들의 사망률은 15~20% 정도 증가한다.

의학적 연구 보고들을 살펴 보면 과잉 단백질 섭취, 특히 동물성 단백질의 과잉 섭취는 골다공증의 확률을 크게 증가시킨다. 육식과 골다공증의 관계는 육류를 섭취하면 칼슘 감소를 가져오는 것으로 요약하여 설명할 수 있다. 위스칸슨 대학의 연구 결과는 과잉 단백질의 위험한 영향들을 매우 단적으로 보여준다. 건강한 남자 청년들을 대상으로 규제된 식생활을 4개월 동안 하게 하였다. 4개월 동안 청년들은 1400mg의 칼슘(미국 식품협회에서 권장 하는 일일 칼슘 섭취량은 1000mg)을 매일 섭취시키면서 동시에 저 단백질 식사와 고단백질 식사를 각각 일정 기간동안 공급하였다. 4개월 후, 이들의 뼈에서 칼슘의 감소 내지 증가를 측정하는 테스트를 하였다.
저 단백질 식사를 했을 때, 청년들은 매일 10mg의 칼슘을 몸에 저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 단백질 식사를 했을 때는 동일한 청년들이 매일 84mg의 칼슘을 잃어버렸다. 4개월의 연구 후에 위스칸슨 대학의 연구자들은 “칼슘이 84mg씩 매일 감소되는 고 단백질 식사를 계속해서 공급하였다면 상당한 양의 인체내 칼슘이 감소 되었을 것이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린크윌러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1981년에 다음과 같은 연구를 실시하였다. 그들의 연구는 다음과 같이 세 그룹으로 나누어 실시 되었는데, 첫번째 그룹에게는 일일 48그램의 단백질을 공급하는 저단백질 식사, 두번쩨 그룹에게는 95 그램(1981년도 미국의 일일 단백질 권장량은 99g)의 단백질을 공급하는 식사, 세번째 그룹에게는 142그램의 단백질을 공급하는 고 단백질 식사가 제공되었다. 이 때 모든 그룹에게 1400mg의 충분한 칼슘을 섭취시키면서, 세 그룹의 사람들의 소변과 대변을 통해서 배설되는 칼슘의 양을 측정하였다. 다음에 나타난 도표는 단백질의 섭취량에 따른 인체로부터의 칼슘 배출 내지 축적량의 변화를 나타낸다.

 

142g의 단백질을 섭취한 그룹은 매일 70mg의 칼슘이 배설물을 통하여 배출되었다. 배출된 칼슘은 인체의 어떤 부분으로 부터 빠져나왔는가? 배설된 칼슘은 뼈에 저장되어 있던 것이었다. 인체 내에 있는 칼슘의 99%는 뼈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칼슘을 충분하게 섭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여분의 단백질이 배설물을 통하여 밖으로 나가면서 뼈에서 칼슘을 뽑아 내어 내었던 것이다.

미국의 일일 단백질 섭취 규정량에 가까운 양의 단백질을 섭취한 그룹 또한 인체내 칼슘의 양이 감소 되었다. 그들의 칼슘 감소량은 첫번째 그룹보다 적았는데, 그 이유는 첫번째 그룹보다 적은 단백질을 섭취하였기 때문이었다. 저 단백질 식사를 하였던 세번째 그룹만이 뼈 내부의 칼슘 양이 증가되었다. 하루에 20mg정도의 칼슘 증가는 튼튼하고 강한 뼈를 유지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영양학 연구소에서 나오는 자료를 보는 것보다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제 삶의 증거를 보는 것이 더욱 확실하다. 알라스카 에스키모인들은 골다공증에 대한 좋은 예증이다. 위스칸슨 대학의 리차드 마제스(Richard Marzess)와 워런 메더(Warren Mather) 교수는 뼈의 부피와 밀도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40세 이상의 에스키모들은 미국인들보다 10~15% 이상 뼈의 무게와 밀도가 감소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감소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발생되었다. 에스키모의 식단을 영양학적으로 검토했을 때, 에스키모인들은 매일 2500mg이상의 많은 칼슘을 섭취하고 있었다. 에스키모들은 날마다 많은 양의 생선을 뼈를 포함하여 먹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매우 많은 양의 칼슘을 섭취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매우 높은 양의 단백질(250~400g)을 섭취하고 있었다. 고래, 생선, 그리고 바다코끼리와 같은 어류에서 매우 높은 양의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었다. 위스칸슨 대학의 두 교수는 “생선의 섭취가 중년의 에스키모인들이 뼈를 잃고 있는 이유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골다공증이 칼슘의 부족으로 인하여 생기다는 종래의 견해를 완전히 뒤엎는다. 칼슘의 감소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과다한 양의 단백질 섭취이다. 많은 유제품 회사들이 우유를 많이 마시고 치즈와 요구르트를 많이 섭취함으로써 골다공증을 예방하라는 광고를 텔레비젼 방송에서 하고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 칼슘을 유제품 회사가 원하는 양만큼 섭취한다고 할지라도, 고 단백질 식사를 하면 오히려 칼슘의 감소로 인하여 뼈가 약화되어 골다공증 내지 골반의 골절을 일으키게 된다. 불 필요한 단백질은 아무리 넉넉하게 칼슘을 섭취하더라도 인체에 저장된 칼슘의 감소를 초래한다.

라이프 스타일과 골반 골절의 관계

골다공증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그 연구는 칼슘 섭취의 영향뿐 아니라 골반 골절과 관계된 여러가지 생활 요소를 다룬 연구이다. 권위 있는 4 연구소가 공동으로 65세 이상의 백인 여성 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저 칼슘 섭취가 골다공증과 골반 골절의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다음에 나오는 도표는 골반 골절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보여 준다.

관련 요소 .......................... 골반 골절 확률

간질 관련 약을 복용 .............. 2.8배 증가
흡연 .................................2.1배 증가
어머니 쪽의 골반 골절 병력 .......2.0배 증가
휴식시 맥박이 분당 80회 이상 ....1.8배 증가
하루 1.5컵의 커피 .................1.3배 증가
걷기 운동 ...........................0.7배 감소

도표에서 보여준 요소 외에도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는 인체의 뼈의 밀도를 낮추고 골절의 위험성을 높여주는 분명한 증거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식물성 단백질은 골다골증이나 골절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연구 및 통계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또한 30세 이전에 저 단백질 식사와 칼슘 섭취의 증가가 골다공증을 예방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연구 발표가 있다. 칼슘이나 단백질 이외에도 골다공증의 원인으로서 부족한 햇빛(비타민 D 결핍), 알콜, 카페인, 그리고 운동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골다공증에 대한 가장 확실한 식생활 예방책은 칼슘이 충분히 들어있는 식물성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다. 칼슘은 튼튼한 뼈를 위한것이 아니라 인체에 다른 기능들도 유익하다. 예를 들자면 칼슘은 고혈압을 방지한다. 그리고 심장이 활기 있게 박동하는 것을 돕는다.
다음의 도표에는 풍부하고 좋은 질의 칼슘이 함유되어 있는 식품들이 열거되어 있다.

메주콩과 녹색 채소는 칼슘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식품이다. 콜라드와 같은 녹색 잎 채소들은 메주콩 보다도 더 많은 칼슘을 함유하고 있다. 녹색 채소에는 암을 예방하는 요소들도 함유되어 있다. 그 밖에도 채소에는 단백질 함유량이 적어서 인체 내의 칼슘을 감소시키지도 않는다. 육류와 같은 고 단백질을 피하고 여러 종류의 채소를 섭취하면 인체의 칼슘은 적당한 양을 유지된다. 한가지 꼭 알아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식품의 칼슘이 인체내에서 잘 흡수되는가 라는 문제이다. 아무리 많은 칼슘을 함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인체 내에서 제대로 흡수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식품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식물성 칼슘의 흡수와 우유 칼슘의 흡수

우유가 높은 양의 칼슘을 함유하고 있을 지라도 60~80%는 장에서 흡수되지 않는다. 펄두 대학(Perdue University)의 위버 박사(Dr. Weaver)는 식물성 칼슘이 우유에 함유된 칼슘보다 훨씬 더 많이 흡수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물론 식물 중에서도 시금치 안에 든 옥살산(Oxalic Acid)이나 밀겨 안에 파이틱산(Phytic Acid)과 같은 요소들은 칼슘의 흡수를 막는 작용을 하지만, 일반적으로 식물로부터 섭취되는 칼슘은 우유에 함유된 칼슘 보다 더 쉽게 흡수된다는 것은 학계에서 널리 인정된 사실이다.

녹색 잎 채소 속에는 인(Phosphorous)의 양이 적게 들어 있기 때문에 칼슘의 흡수가 수월하다. 녹색 잎 채소에는 인보다 칼슘이 세 배나 함유되어 있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의 식단에는 인의 양이 칼슘의 양 보다 두 배 이상 많다. 그리고 두배 이상 많은 양의 인은 뼈의 밀도를 감소시킨다. 인은 칼슘 감소량을 증가시킨다. 칼슘의 양이 인의 양과 같거나 그보다 높은 것이 바람직한 식품이다. 여러 종류의 식품 속에 함유된 칼슘과 인의 균형은 다음 도표와 같다.

 

골다공증의 예방과 건강에 유익한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인의 양을 줄여가는 식단을 꾸미는 것이 이상적이다. 감자와 메기 중에서 어떤 식품을 선택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비록 메기에 비해서 감자의 칼슘 함유량이 적을지라도 감자에 인의 함유량이 메기에 비해서 현저하게 적으므로 감자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식품을 선택할 때에 그 식품에 함유된 인의 양을 주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인들의 식사는 인의 함유량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 문제이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은 양의 인의 섭취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인이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는 두 가지 식품 그룹은 고기와 유제품으로서 전체 인의 섭취에 60%를 차지한다. 인의 섭취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 두 그룹에 속한 음식의 섭취를 줄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칼슘의 소변 배출은 신장 결석의 원인

소변으로 배설되는 칼슘이 골다공증의 위험을 증가시고킬 뿐 아니라, 신장 결석(Kidney Stone) 문제도 야기시킨다. 45,000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한 하버드 대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과다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신장 결석의 발생 확률은 33% 이상 증가되며, 61그램의 단백질을 매일 섭취하면 신장 결석의 확률이 증가한다는 통계 결과를 내놓았다. 또한 충분한 양의 칼륨(포타슘)을 과일과 채소에서 섭취하면 신장 결석의 위험이 50%로 감소된다는 사실 또한 발견되었으며,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신장 결석의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영국에서 실시된 연구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왔다. 과다한 동물성 단백질은 소변으로 배설된는 칼슘의 양을 증가시키며 신장에 칼슘석을 형성한다. 신결석을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므로 또 다시 신결석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신장 결석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백질이 낮은 식물성 음식을 풍부하게 섭취하는 것이다.

암은 동물성 단백질과 관계가 있다

51암 또한 동물성 단백질과 관계된 문제중 하나이다.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는 국가에서는 치명적인 림프선 암과 림프종(Lymphoma)이 많이 있다. 림프종은 미국에서만 1년에 23,000명이란 숫자의 생명을 앗아간다. 동물성 단백질과 림프종의 관계는 분명하다. 림프종과 가장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동물성 단백질이 있는데 그것은 소의 단백질이다. 알랜 커닝햄(Allan Cunningham) 박사는 유제품과 소고기가 림프종과 가장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음에 나오는 그래프는 소 단백질의 섭취량이 증가함에 따라 림프 관련 질병이 비례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는 림프선 암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종류의 암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암스트롱과 돌(Armstrong and Doll) 연구팀은 증가하는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가 유방, 장, 전립선, 신장, 그리고 자궁암의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보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게 된다. “동물성 단백질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동물성 단백질 자체는 문제되지 않지만, 식물성 음식을 적게 먹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가?” 이 두가지 질문 모두에 진실이 있다. 식물성 단백질과 비교를 해 보면 동물성 단백질 자체에 암 발병의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이와 반대로 식물성 음식에는 오히려 암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성분들이 함유되어 있다. 그러므로 동물성 단백질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동물성 단백질이 가지고 있는 문제로 인하여 건강에 손해를 보고 또한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음으로써 커다란 유익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메주콩에는 암을 예방하거나 암세포와 싸우는 확실한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메주콩 연구학자인 마크 메시나(Dr. Mark Messina)박사는 암과 싸우는 메주 단백질 식품들을 열거하였다. 이 중에는 고립된 메주 단백질(Soy Protein Isolate), 콩 가루, 그리고 야채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다. 메시나 박사는 콩 종류에 함유되어 있는 산화방지제들이 콩이 가져다 주는 항암 효과의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암 중에서도 어떤 특정 암은 동물성 단백질 자체가 암을 유발하는 직접적 원인이다. 뉴욕의 코넬 대학은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와 간 암의 관계를 증명하였다. 간암의 중요한 원인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B형 간염으로 오는 유전자의 변형이고, 다른 하나는 아플라톡신 B1(Aflatoxin B1)이란 발암물질에 노출되는 것이다. (아플라톡신은 곰팡난 땅콩잼과 같은 음식을 오염시키는 곰팡이로 생산된 화학물질들이다.) 코넬 팀은 간 암을 일으키는 두 위험한 원인들이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를 줄이므로서 감소시킬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쥐에게 아플라톡신을 주입하거나 B형 간염과 관계된 유전자의 변화를 줌으로써 암의 발병 가능성을 높였을지라도 동물성 단백질이 낮은 식사를 쥐에게 공급함으로써 간 암의 발병률을 괄목할정도로 저하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근래에 이루어진 한 연구에서는 B형 간염으로 변형된 유전자를 가짐으로써 간암의 발병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두 그룹의 쥐를 사용하여 실험을 하였다. 챙(Dr. Cheng)박사와 동료들은 한 그룹의 쥐들에게는 22%의 우유 단백질 식사를 시켰고, 다른 그룹의 쥐들은 우유 단백질의 양을 75% 줄여서 주었다. 처음 그룹의 쥐들 중 64%는 간 암에 걸렸고 두 번째 그룹의 쥐들 중에는 16%만이 간암에 걸렸다. B형 간염 대신 아플라톡신을 사용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우유 대신 메주콩이나 다른 식물성 단백질을 사용한 쥐들은 암의 위험이 증가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서 우리는 동물성 단백질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가 암의 발병 확률을 높히는가? 동물성 단백질은 암세포의 성장을 자극하는 호르몬의 분비를 증가시킨다는 해석이 있다. 이러한 성분을 IGF2 (Insuline-like Growth Factor II)라고 부르는데, 종양 부위에서 많은 양의 IGF2 성분이 발견된다. 바로 이 성분이 암 세포가 성장하는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고 믿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 B형 간염으로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 쥐들 중에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함으로써 간 암에 걸린 쥐들은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한 쥐들에 비해 IGF2의 양이 4배나 많았다.

이러한 이유 말고도 식물성 단백질의 항암 작용에 대한 또 다른 이유들이 있다. 식물성 단백질은 면역 기능에 활력을 가져다 준다.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 면역 기능(저항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자연 킬러 세포의 숫자가 증가되거나 감소된다. 자연 킬러 세포들(Natural Killer Cells)은 특별한 백혈구이다. 이 세포는 암 세포와 같은 변질된 세포들을 파괴하는 강력한 능력을 가졌다. 동물성 단백질은 자연 킬러 세포의 수를 감소시키며, 다른 두 그룹의 백혈구들에게 영양을 줄 수 있는데, 이 두 백혈구들은 T-보조 세포(T-Helper Cell)와 T 세포독성 세포(T Cytotoxic Cells)이다. 단백질 아미노산 중에서 페닐알라닌(Phenylalanine)과 타이로신(Tyrosine)의 섭취를 제함시킴으로써 저항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연구에서, 28일동안 이 두 종류의 아미노산들을 제한한 식사를 공급하였다가, 28일 이후부터 42일이 될 때까지는 두 종류의 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전형적인 현대인들의 식사를 공급하면서 백혈구 세포들의 숫자가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살펴 보았다. 실험 결과는 다음 그래프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51아미노산(단백질)을 제소량으로 제한한 첫 28일 동안에는 백혈구의 킬러 세포들이 3에서 6으로 2배나 늘어났으며, 암을 예방하는 세포인 T 보조 세포와 T 세포독성 세포들도 각각 증가했다. 그러나 28일 이후부터 2주 동안 페닐알라닌과 타이로신과 같은 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전형적인 현대인들의 식사를 공급한 결과 건강했던 면역 세포들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어떤 식품들이 페닐알라닌과 타이로신을 포함하고 있는가? 다음의 도표는 동물성 식품과 식물성 식품에 함유되어 있는 두가지 아미노산의 함량을 가르쳐 준다.

식물성 식품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렌틸콩(Lentils)에 두 종류의 아미노산 함량이 높으며, 동물성 식품들은 전반적으로 매우 높은 양의 아미노산이 함유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과일은 타이로신과 페닐알라닌을 피하는데 가장 좋은 식품이다. 그러므로 과일로만 일정 기간 동안 식사하거나 금식을 하는 것은 아미노산을 제한시킴으로서 간에 휴식과 치료 효과를 가져다 주는 좋은 방법이다. 페닐알라닌과 타이로신 같은 아미노산들을 제어함으로써 암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치명적인 피부암, 흑색종(Melanoma)이 폐와 간에까지 암세포가 퍼진 쥐들를 이용한 여러가지 연구들이 있는데, 쥐들이 이 두 아미노산의 양이 적은 식사를 했을 때 종양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억제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식사를 한 쥐들은 급속한 흑색종의 성장으로 죽고 말았다. 이러한 연구는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어떤 사람들은 식단에서 이 두가지 아미노산을 제거하는 것은 지나치게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암환자들에게는 한번 시도해 볼만한 식단이다. 전형적인 채식을 하더라도 두 아미노산 양을 줄이는 데에는 특별한 주의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식물성 식품들 중에도 이 두가지 아미노산이 조금씩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 단백질 식사가 신장의 기능을 악화시킨다

오래 전부터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질환들이 네프론(Nephron)이라고 불리우는 신장의 여과기를 손상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져 왔다. 당뇨병 환자들 중 신장 질환은 가장 많은 사망과 신체 장애의 원인이 된다. 당뇨 환자 중에 평균 세 명중 한 명은 인슐린에 의존하다가 나중에는 신장이 쇠약해져서 신장 투석이나 이식을 하게 된다. 미국에만 2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신장 부전증과 요로(Urinary tract) 질환을 가지고 있으며 매년 9만명이 이로 인하여 사망한다. 고 단백질의 섭취는 신장의 네프론(Nephrons)을 손상시키는데, 이러한 손상은 신장을 계속해서 악화시킨다. 당뇨 환자들이 혈당과 혈압을 관리함으로써 얼마간의 도움을 받지만, 결국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악화되어 합병증을 일으키고 만다. 신장의 기능을 거의 잃어 버린 만성 신부전증 환자들을 상대로 한 연구가 발표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환자들은 신장의 여과 기능이 약해져서 소변으로 단백질이 배출되는 상태에 있었다. 건강한 신장은 단백질이 섞인 소변을 배출하지 않는다. 그들의 신장 여과 기능을 측정하였는데, 건강한 사람의 기준은 125 ml/1분 정도인데 반해서 신부전증 환자들의 수치는 50 ml/1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이러한 검사 결과는 이 환자들의 신장 기능이 50% 이상 손상되었다는 증거이다. 이 실험의 연구자들은 환자들에게 하루에 40그램의 저 단백질 식사를 시켰다. 이 연구의 목적은 환자들의 신장 손상을 단백질 섭취량을 줄이므로 막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였다. 이 실험 결과는 다음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다.  

511년 후의 결과를 보면 신장 기능이 계속해서 50 ml/분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연구는 당뇨 신장 질환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그 기능을 유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를 보면서 한 가지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그것은 “단백질의 섭취를 줄이면 혈액 내 단백질 수치가 감소되는가?” 이다. 혈액 단백질 양의 지표인 알부민(Albumin)측정을 이 연구 처음과 끝에 실시했는데, 그 결과는 다음의 그래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혈액 내 단백질의 양은 오히려 증가되었다.  

저 단백질 식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혈액 단백질의 양이 증가한 결과가 나타났는데, 이것은 매우 놀라운 결과였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지난 수 년동안 소변으로 단백질이 배출되는 당뇨 환자들에게 고 단백질 식사를 해야 할 것을 말해 왔다. 소변으로 배출되는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고단백질의 식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는 오히려 저 단백질 식사가 이러한 환자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임을 증명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단백질 섭취량이 줄었는데도 혈액 내의 단백질 함유양은 증가한 것일까? 그 해답은 연구 끝에 측정된 소변으로 배설되는 단백질 양을 측정한 다음 그래프에서 찾을 수가 있다.  

 

환자들이 저 단백 식사로 식단을 바꾼지 1년 후, 환자들의 소변으로 배설되는 단백질 양은 급격하게 감소되었다. 저 단백 식사는 소변으로 배출되는 단백질의 을 급격하게 감소시킴과 동시에 혈액 내의 단백질의 함유량이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저 단백 식사는 심장의 수축기(Systolic)와 확장기(Diastolic)를 낮추어 혈압에도 도움을 준다. 환자의 혈압을 조절하는 것은 병이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나 혈압을 조절하는 것만 가지고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 연구에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단백질 섭취를 제한하는 것은 신장 기능의 악화를 예방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연구를 요약하면, 신장의 여과 기능이 손상된 환자들이 저 단백 식사를 할 경우 다음과 같은 4 가지의 유익을 얻을 수 있다. 1) 신부전증의 악화가 억제되고, 2)혈액 내의 단백질 함유 량이 증가되며, 3) 소변으로 배출되는 단백질 양이 감소되고, 4) 혈압이 낮아진다.

우유와 다이어트

우유 단백질이 많이 함유된 식사는 체중 감소에 더 많은 어려움을 주는 것으로 밝혀 졌다. 코넬 대학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 우유 단백질이 많이 함유된 음식물을 먹인 쥐들의 체중이 그렇지 않은 쥐들의 체중보다 더 많이 증가되였다. 적은 양의 우유 단백질이 함유된 식사는 성장과 장기간의 건강에 유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심장 질환과 단백질

콜레스테롤의 조절에 대한 수 많은 연구 보고서들은 식물성 단백질이 동물성 단백질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설토리(Dr. Sertori)박사는 비슷한 수준의 식사를 하는 2 그룹의 콜레스테롤 환자들을 상대로 6주간의 연구를 하였다. 두 그룹 모두에게 저 콜레스테롤과 저 포화지방, 그리고 콜레스테롤 양을 조절해 주는 고 섬유질 식사를 공급해 주었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점이 달랐는데, 그것은 한 그룹은 유지를 걷어낸 우유(Skim Milk) 단백질을 기초로 한 식사였고 다른 한 그룹은 콩 단백질을 기초로 한 식사였다. 이 두 식사와 혈액 콜레스테롤 양의 비교가 다음 그래프에 나와 있다.  

첫 3주 동안, 우유 단백질을 기초로 한 식사를 했던 그룹은 그들의 혈액 콜레스테롤 양이 20 포인트 감소되었지만, 콩을 기초로한 그룹은 60 포인트 정도의 콜레스테롤 양이 현저하게 감소되었다. 3주 후에는 두 그룹의 식단을 서로 바꾸었다. 우유 단백질을 기초로 한 그룹에게 콩 단백질 식사로 바꾸어서 공급한 결과, 콜레스테롤의 양이 훨씬 더 많이 감소되어 80 포인트 이상이 내려갔다. 이와 반대로 콩 단백질 을 섭취해 오던 그룹에게 우유 단백질 식사를 공급한 결과 그들의 콜레스테롤 양이 40 mg/dl 이나 올라갔다. 설토리 박사의 연구가 동물성 단백질 대신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경우 관상동백 질환의 위험을 현저하게 감소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첫번째 연구가 아니다. 켄터키 대학의 연구소에서도 콩단백질을 동물성 단백질과 비교 한 결과, 콩 단백질이 혈액 콜레스테롤과 중성 지방(Triglyceride)의 양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동물성 단백질은 콜레스테롤 양을 증가 시킨다

동물성 식품에는 많은 양의 아미노산 리신(Lysine)과 적은 양의 알지닌(Arginine)이 함유되어 있다. 이와 반면에 식물성 식품에는 알지닌의 양이 리신의 양보다 많이 함유되어 있다. 이 두 아미노산의 비율은 콜레스테롤의 상승에 깊은 관련이 있다. 알지닌의 함유량이 적은 동물성 단백질은 인슐린 생산을 자극하여 혈중 콜레스테롤의 양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콜레스테롤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케롤(Carroll)과 허프(Huff) 박사는 식물성 단백질과 동물성 단백질이 콜레스테롤의 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4주 동안 콜레스테롤과 식사의 관계가 사람과 가장 유사한 뉴질랜드산 하얀 실험 토끼에게 동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단백질을 먹였다. 동물성 단백질 11종류와 식물성 단백질 10종류를 100여마리의 토끼들에게 4주 동안 공급하였다.
식물성 단백질과 동물성 단백질이 토끼들의 혈액 콜레스테롤 양에 미친 영향은 다음 그패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주 놀랍다.

5151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한 토끼들의 평균 혈액 콜레스테롤은 67 포인트 정도로 낮았으나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한 토끼들의 콜레스테롤의 혈중 수치는 평균 175 였다. 그러나 또한 이 실험은 100여마리의 토끼들을 21 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의 토끼에게 각각 다른 종류의 단백질을 공급하였다. 다음 그래프는 혈중 콜레스테롤 양이 각각의 식물성 단백질 및 동물성 단백질 식품에 의해서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나타낸다. 동물성 단백질을 먹은 토끼들의 콜레스테롤의 양은 101 에서 270 이었고, 식물성 단백질을 먹은 토끼들은 43 에서 96 이었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동물성 단백질 대신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경우, 콜레스테롤과 관련된 여러 종류의 성인병에 매우 유효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식물성 단백질 갱년기 여성 문제

최근 들어서 식물성 단백질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가지 유익들이 영양학계에 발표되고 있다. 갱년기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몸이 뜨거워지는 현상(Hot Flash)이 콩 단백질을 하루에 20g 씩 섭취함으로써 완화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의 그레고리 벌크 박사(Dr. Gregory Burke from Wake Forest University)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함유되어 있는 콩 단백질을 섭취하면 여성들의 갱년기 문제가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화학적인 방법으로 제조된 에스트로겐 약품들과는 달리 자궁암의 위험을 증가시키지 않는다. 콩 단백질은 좋은 콜레스테롤(HDL) 수치는 유지한채 나쁜 콜레스테롤(LDL) 수치를 낮추어 준다.

성장과 발달, 그리고 단백질

단백질 섭취와 월경을 시작하는 나이와 관련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오래 전에는 일본 사람들의 동물성 단백질 섭취량이 매우 낮았다. 그러한 시절에 일본 소녀들이 월경을 시작하던 나이는 평균 17세 였다. 이와 반하여 동 시대에 월경을 시작하는 미국 소녀들의 나이는 12.8세 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어린 나이에 월경을 시작하면 할수록 유방암과 자궁암의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사실상, 미국 여성들의 유방암과 자궁암 발병률이 일본 여성들에 비해서 4배나 많은 것은 전문가들의 견해를 뒷받침 해준다. 채식을 하는 아이들과 육식을 하는 아이들을 비교 했을 때, 10살 이전에는 육식을 하는 아이들이 채식을 하는 아이들 보다 키가 조금 크지만, 18세가 되면 채식을 하는 아이들이 육식을 하는 아이들 보다 조금 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중국의 음식 그룹

미국 농축산부(USDA)는 40년 전부터 식품을 4 그룹으로 나누고 그것을 영양을 위한 “4 가지 기초”라고 불러 왔다. 그러나 미국 농축산부와는 달리 중국 의학회에서는 전혀 다른 4가지의 음식 그룹을 영양을 위한 기초 식품으로 권장해 왔다. 알다시피, 암, 당뇨, 심장 질환, 그리고 서양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다른 질병들이 중국인들에게는 매우 적게 나타난다. 미국인과 중국인의 “4가지 기초 식품”은 다음 도표에 비교되어 있는 바와 같다.

 

중국인들은 채소와 곡식을 4 그룹으로 나누어 놓았는데, 이들 4가지 식품에는 동물성 식품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4 가지 기초 식품에는 그 절반에 해당되는 2가지 동물성 식품이 포함되어 있다. 동물성 식품없이 오직 채식으로만도 필요한 모든 단백질을 공급받을 수 있다. 중국인들의 4가지 기초 권장량을 보면 단백질 함유량이 매우 풍부한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인의 단백질 하루의 권장량과 섭취량이 다음 표에 나타나 있다. 총 71그램의 단백질은 미국의 권장량인 56 그램을 훨씬 초과하는 양이다.

 

건강과 행복을 약속하는 4가지 식품 그룹

여러가지 복잡한 부작용이 없고, 순수하게 인체 건강을 증진 시키는 식품 그룹은 다음 도표에 나와 있는 4가지 기초 식품 그룹이다.

만약 우리가 이 4가지 음식들만 섭취한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성인병과 암을 예방하고 매우 건강한 생활을 하면서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곡류를 풍부하게 섭취한다고 할지라도, 곡류 표면의 가공 내지 도정으로 인하여 곡류에서 얻어야 할 중요한 영양 성분들이 부족한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공(도정)되지 않은 곡식 즉, 현미나 통밀처럼 섬유질, 비타민, 그리고 미네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곡류를 섭취해야만 한다. 오늘날 수 많은 연구들은 과일, 채소, 그리고 곡식에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효과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 사람들은 암과 심장 질환에 걸리는 확률이 가장 낮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대인들은 이러한 원칙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입맛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식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성경이 권장하는 4가지 식품 그룹

성경의 창세기에 기록된 생명의 시작과 그들의 식생활에 대해서 말씀을 읽으면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아담과 하와의 식생활은 여러 종류의 과일들, 채소들, 곡식들, 그리고 견과류로 구성되었었다. 그러나 창세기 9장에는 인류의 식단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은 사건이 나오는데, 그것은 노아 홍수이다. 노아 홍수로 인하여 모든 식물들이 물과 땅에 뭍혀 한동안 먹을 음식물이 없어지자, 하나님께서는 처음으로 노아의 가족들에게 동물성 식품을 “정결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로 나누어 허락하셨다. 이로써 처음으로 육류와 동물성 식품들이 인간의 식단에 더해지게 되었다. 성경은 육류를 섭취하기 10세대 전과 10세대 후의 생명의 길이를 창세기 5장과 11장에 기록하고 있다. 아래 하단에 나오는 그래프는 성서 시대의 인간 나이의 변화에 대해서 나타내 준다. 인류가 육식을 시작하기 이전 10세대는 평균 900년 정도를 살았다. 그러나 육식을 시작한 이후부터 인간의 연한은 급격하게 줄어서 결국에는 시편에 기록된 대로 평균 70세까지 줄어 들게 되었다.

결 론

동물성 고 단백질에 대한 커달란 오해와 환상적인 기대를 버려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육류와 동물성 단백질은 건강을 증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심장 질환, 암, 골다공증, 신부전증, 그리고 신장결석과 같은 질병들을 불러 오는 주요 원인이다. 식물성 음식은 단백질과 지방이 적당하며 콜레스테롤이 전혀 없는 식품이다. 단백질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우리를 채식 생활로 이끌어 줄 뿐 아니라, 건강과 행복을 우리의 삶 속으로 불러드려 준다.

어쩐지 콜라가 맛있더라!


1. 콜라로 피를 지우는 방법 : 미국의 주정부 고속도로 경찰대는 항상 순찰차에 2갤론 정도의 콜라를 가지 고 다니는데, 그 이유는 고속도로 상에서 인명 사고 가 났을 때 도로 위에 흘려진 피를 쉽게 지우기 위함이다.
2. 콜라로 소고기를 녹이는 방법 : 콜라가 담긴 그릇에 소고기 스테이크를 담궈 두면 이틀 만에 스테이크는 녹아버린다.
3. 콜라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방법 : 콜라 캔 하나를 화장실 변기에 부은 다음, 한 시간 후에 물을 흘려 보낸다. 콜라에 함유 되어 있는 강력한 구연산 (Citric Acid)은 변기에 생기는 모든 찌꺼기와 얼룩 을 지워 버린다.
4. 콜라로 크롬 합금으로 만든 범퍼의 녹을 없애는 방법 : 구겨진 알루미늄 램 한 쪽을 콜라에 담궜다가 그것을 가지고 범퍼를 문지른다.
5. 콜라로 자동차 배터리의 터미날에 생긴 녹을 없애는 방법 : 콜라 캔 하나를 배터리 터미날에 부어 놓는다. 거품이 나면서 녹이 제거된다.
6. 콜라로 녹슬은 볼트나 너트를 빼내는 방법 : 콜라를 적신 천으로 볼트나 너트에 3분 이상 댄 후에 돌린다.
7. 콜라로 옷에 뭍은 기름을 제거하는 방법 : 콜라 캔 하나, 빨래 비누, 그리고 기름이 묻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가동시킨다. 콜라가 옷에 묻은 기름기를 빼준다.
8. 콜라로 자동차 유리를 닦는 방법 : 수건에 콜라를 적셔서 자동차 유리를 닦으면 매우 깨끗하게 된다.
9. 콜라로 쇠를 녹이는 방법 : 콜라의 유효 성분은 인 산(Phosphoric Acid)이다. 인산의 수소 이온 농도 지수(pH)는 2.8인데, 이것은 4일만에 못을 녹일 수 있는 수치이다.
10. 콜라를 수송하는 방법 : 농축된 콜라의 원액을 수송하 는 트럭에는 부식성 물질 임을 알리는 “위험 물질”이 란 표식을 붙혀야 한다.
11. 콜라로 자동차 엔진을 청소하는 방법 : 콜라를 수송하는 미국의 배급업자들은 지난 20년 동안 그들이 사용하는 트럭의 엔진을 청소하는데 콜라를 사용해 왔다.

맛과 건강을 바꾸지 마세요!

하루에 섭취해야 하는 단백질 양에 대한 질문과 답변


질문에 대한 답변은 미국 유치파인 천연 치료소 책임 의사인 에가타 뜨레쉬 의사께서 해 주셨습니다.

질문: 우리가 하루에 섭취해야 하는 단백질 양은 얼마이며, 채식가가 되면 어떻게 충분한 양의 단백질을 섭취 할 수 있나요?

대답: 성인의 일일 단백질 섭취량은 30그램 정도입니다. 정제되지 않은 모든 식물성 식품들은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과일에는 1~3그램, 채소에는 2~8그램의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통밀빵 한 조각에는 3.5~4 그램이 들어 있고, 몇개의 호도, 브로커리 2컵, 그린콩 1컵, 익힌 콩나물 1컵에는 각각 15그램의 단백질이 들어있습니다. 1964년, 로즈박사는 단백질 섭취량은 하루에 18그램으로 충분하다고 발표했습니다. 1971년, 헤그스테드 박사는 우리 몸에서는 자체적으로 아미노산을 재활용하기 때문에 하루에 10그램의 단백질만 섭취해도 충분하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부 영양학자들이 단백질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단백질을 해가 될 정도로 과다하게 섭취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영양소 일지라도 너무 많이 섭취하게 되면 (심지어는 물과 산소일지라도) 인체는 그것을 쓰레기 처리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며, 어떤 경우에는 몸에서는 독소가 들어간 것같은 취급을 합니다. 단백질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식품들에 함유되어 있습니다. 단백질은 채소와 과일, 견과류와 콩, 두부, 그리고 곡식에 들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음식들을 골고루 섭취한다면 단백질을 적게 섭취하는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서론 - 여자의 남은 자손들


각 가정에 족보가 있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엄연히 족보가 존재한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마는 하나님의 참 백성들의 족보와 그 족보의 흐름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남은 자손들이 있다고 성경은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진짜배기 자손들이 있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사람들을 구분하여 갈라놓는 것처럼 드릴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 말씀 자체가 여자의 남은 자손의 특징에 대하여 분명하게 명시해 놓고 있는 이상 우리 마음대로 아니라고 할 수가 없지 않은가!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후에, 그들이 이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선고를 내리신 즉시부터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자손과 뱀의 자손들이 서로 원수가 될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서로 원수가 될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문자적인 직역으로 본다면 하나님께서 그들 사이에 적개심을 두시겠다는 뜻이다. 이 세상 역사는 항상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 사이에 끊임없는 전쟁이 있어 온 사실을 여실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성경 요한 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예언이 바로 그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의 자녀들, 즉 여자의 후손들과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 사이의 전쟁이 예언되어 있는 것이다.  계시록 12장의 출발에서 성경은 햇빛을 입고, 달을 밟고, 12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한 여인을 소개하고 있다.  이 여인이 한 남자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 아이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이며, 용이 여자가 낳은 그 남자 아이를 죽이려고 애를 쓰게 되고, 결국에는 이 아이가 하늘로 승천하게 되는 사실을 말하면서 과거 역사적인 측면에서 이 여인이 누구인지를 설명하여 주고 있다. 이것은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킨 교회를 말하는 것이며 마귀가 그를 죽이려 하는 모습과 결국에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가신 주님을 설명하여 주는 장면이다. 

그러므로 계시록 12장은 하나님의 교회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그들의 정체가 과연 누구인지를 지목하여 주고 있는 예언인 것이다.  여인이 낳은 남자 아이가 하늘로 승천한 후에 마귀는 분이 나서 교회를 핍박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 패한 분풀이를 하나님의 자녀들인 교회에게 하는 것이다.  그는 1260년 동안 교회를 죽여 없애려고 애를 쓰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교회는 광야로 도망하여 살게 되는데 그것은 사단의 핍박을 피하기 위하여 광야와 산골짜기 그리고 동굴 등으로 피신하여 겨우 그 존재의 명맥을 유지해 나가는 참 교회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중세기 동안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여 도망 다니던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하고 있다.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고 복사하지 못하게 할 뿐더러 성경의 진리대로 가르치는 자들을 교회의 권위에 대한 반역자와 이단자들로 몰아 잡아 죽이고 고문한 과거 암흑시대의 역사가 누가 참 하나님의 교회인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중세기에 1260년 동안 핍박을 감행한 세력은 마귀의 앞잡이 노릇을 한 파워이고 그 같은 기간 동안에 핍박을 당한 대상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인 것이다. 

그런데 계시록 12장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4-17). [*14절의 한때 두때 반때의 기간을 6절에서는 1260일이라고 말했다.  예언 기간에서 하루는 일년을 상징함으로 이것은 1260년 동안의 종교 암흑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이때 용이 물을 토하여 교회를 없애려고 하는데, 이 물은 성경의 예언에서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다(계 17:15 참조).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핍박한 교황권의 활동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폭로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때에 땅이 교회를 도와 주게 되는데 이 땅이란 바로 다음 장인 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땅에서 올라오는 나라인 미국을 상징한다.  그래서 중세기의 핍박에 시달리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미국이라는 대륙이 발견되자 그곳으로 이주하여 옴으로 그 핍박을 피하여 살게 되지 않았는가! 콜럼버스가 그 즈음에 미국을 발견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마귀는 인간의 범죄 후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 하시려는 계획을 알아차리고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죽이려고 사력을 다하여 싸워 왔다.  우리는 그 사실을 성경의 역사를 살펴 보면서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먼저 가인을 통하여 아벨을 죽인 마귀의 역사를 보자.  마귀는 여인의 후손, 즉 하와의 아들인 가인을 자기의 자손으로 삼는 일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 충성하며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는 동생 아벨을 미워하여 죽이게 하는 일에 성공하였다.  가인은 여인의 자손이었으나 실상은 뱀의 후손 즉, 마귀의 후손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 사이에 전쟁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 후에 아담은 셋을 낳고 기뻐하였으며 셋은 아벨을 대신하여 여인의 후손 즉, 참 하나님의 교회가 된다.  그 후로 셋의 후손들과 가인의 후손들은 서로 떨어져서 살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인의 후손들로부터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창세기 6장에 가서 슬픈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마귀가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들이 서로 섞이게 만드는 일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2,3,5,6).  마귀는 여자의 남은 자손들 즉,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다 죽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가 간구해낸 묘책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들어 와 그들을 타락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딸들과 결혼함으로 타락시키는 일에 성공하였다.  그 결과 비참한 노아 홍수가 임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만히 놓아 두실 수가 없으셨다.  죄악의 파급이 너무나 신속하였기 때문에 메시야가 오시기도 전에 세상이 자멸 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아 홍수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참 백성들을 구별하여 놓으셨다.  세상의 타락한 와중에서도 진리를 고수하며 의로운 생활을 사는 백성들을 구별하여 놓으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브라함었다.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그를 불러내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계명을 지키는 자로 삼으신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라.”(창 18:19)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는 의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여자의 후손 곧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구별하여 두시는 이유다. 

노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읽어 보자.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보았음이니라.”(창 6:22-7:1).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남겨 두시는 이유가 얼마나 꼭 같은가!  바로 이러한 같은 이유에서 계시록 12장이 여자의 남은 자손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이 바로 여자의 남은 무리들이다.  참된 하나님의 남은 자손들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  계시록 1장 2절은 요한이 본 계시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고 부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는 자들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 사단의 자손들과 여자의 남은 자손들의 특징을 이해하는 자들이 지금도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이라는 것이다.  사단은 초대 교회 때에 오류를 가지고 교회에 들어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자기의 부하들로 만드는 일에 성공하였다.  침례 요한이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부른 것을 기억하시는가?  그것은 그들이 실상에 있어서는 마귀의 자식들이라는 말이다.  예수께서도 그들을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하시지 안았는가?  그러므로 지금도 교회 안에 하나님의 백성들과 마귀의 백성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여자의 남은 무리들을 핍박하고 있다.  앞으로 이 일은 온 세계적으로 일어 날 것이다.  두 무리가 분명하게 분리되어 서게 될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과연 어느 편에 속하게 될 것인가?  참으로 심각한 질문이 아닐 수가 없다. 

예수를 그저 머리로만 믿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이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자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만 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따라 사는 자들이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다.  자기의 목숨을 잃어 버리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더 높이는 자들, 하나님의 명령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 먹고 사는 일보다 주님의 명령이 더 중요한 자들, 그러한 자들이야 말로 참된 하나님의 남은 자손들이 아니겠는가!

 

1부 - 기독교에 왜 이렇게 교파가 많은가?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사람이 어떤 교회로 나갈 것인지를 찾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충과 혼돈을 겪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 안에 너무나도 많은 교파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중 많은 교파들이 저마다 자기들의 가르침이 가장 성서에 맞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왜 이렇게 교파가 많아졌을까?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과연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참된 진리만을 가르치고 있는 교파를 발견 할 수 있는 것일까?

장로교회, 침례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오순절파 교회, 순 복음교회, 유니테리안, 몰몬교회,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여호와의 증인교회, 루터교회, 성공회, 천주교회,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교회, 사도교회, 기독과학교회, 동방 정교회, 세계 복음교회, 구세군교회 등등.. 이 세상에 기독교 교파들이 약 200여개나 된다. 또 거기에다가 그 교파들 가운데서도 다시 여러 그룹들로 갈라져 있는데, 예를 들자면 침례교회나 장로교회 안에서도 여러 가지 다른 그룹 계열들로 갈라져 있다. 미국에 있는 침례교회 안의 다른 계열들만 약 20여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워 온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교파들이 생겨나서 우리를 혼란하게 만드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참된 교회를 발견 할 수 있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워진 기독교회가 초대 시대와 중세기를 통과 하면서 많은 순교자들을 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 가면서까지 성경의 진리와 교회를 옹호하였다.

서기 306년도에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젊고 부자인 빌레아가 로마 총독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죄목 하에 단두대에 올랐다. 부인과 자녀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그는 자기의 믿는 믿음을 위하여 생명까지 바쳤다. “너의 미친 마음의 상태에서 돌이키라”는 말을 듣자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한번도 미쳐 본적이 없고 지금도 정신이 깨끗합니다.” 로마 총독은 소리를 높여 명령하였다. “죄수를 우리의 신들에게 희생 제물로 바치라!” 빌레아는 말했다. “나는 희생을 오로지 한 분이신 성경의 하나님께만 드립니다!” “너는 그 하나님에게 어떠한 희생을 드린단 말이냐?” “예, 저는 우리 하나님께 청결한 마음과, 진실된 믿음과, 참된 진리를 희생으로 드립니다.” 그렇다. 수 많은 순교자들이 진리를 고수하고 그 순수함을 보전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진리와 하나님의 교회는 생명을 바쳐 가면까지 지키고 고수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를 원래 신약 성경이 말하고 있는 초대교회의 순수함으로 되돌리기 위하여서 싸워왔다. 우리는 중세기 시대 동안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종교인들이 다른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수천만 명이나 핍박하고 죽여온 사실을 역사에서 보게 된다. 개혁자와 순교자들의 저항은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려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과연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개혁을 시도해야 하는가?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진리로 인도하는 원칙들을 제시해 주고 있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복음서와, 사도 바울과 다른 제자들이 기록한 편지서들을 통하여서 보면 그 원칙들은 꽤 간단하다. 1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용납하신 것처럼 서로 용납하라. 2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라. 3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따라 생애 하라는 것이다. 로마의 쥴리안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나그네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자들”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렇다.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은 단순하였고, 그들이 믿고 따르던 진리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들은 또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성경의 진리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성경 말씀에 기초하지 아니한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추측에 불과한 것이요, 그러한 믿음은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기초한 믿음을 고수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열두 사도들에게서 물려 받은 가르침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진리는 바로 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만일 그리스도 교회의 기별이 그렇게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이라면 왜 이렇게 많은 교파들이 생겼느냐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다 같은 한 곳으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다면 왜 이렇게 서로가 멀리 분리된 채 다른 교파들을 형성하여 높은 벽들을 쌓아 놓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한가지 간단한 대답이 있다. 우리가 많은 주제들에 있어서 서로 상반된 의견들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어떤 교회들은 신약 성경이 가르치고 있지 않는 점들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신약성경이 간단하게 말하고 있는 것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서로 불필요하게 어떤 주제들을 마치 머리카락을 자르듯이 논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예를 들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많은 교회들이 인간들의 유전인 교회의 전통들 때문에 갈라졌다. 러시아의 알렉시스 황제 시대에 많은 선교사들이 러시아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러시아의 교회는 교파의 분리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어떻게 예배를 드리느냐 하는 예배 형식에 대한 의견들의 차이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교회의 정통파들은 머리와 가슴에 그리는 십자가를 세 손가락으로 해야 하며 두 손가락으로 하는 것은 불경건한 것이라고 단정 지웠고, 나아가서는 예배시에, 할렐루야를 두 번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세 번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처형을 당하였고 교파가 갈라지게 되었다.

또 다른 예로서는 성만찬 예식(주의 만찬)이 있다. 성경에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주님의 죽으심을 상징하고 기념하여 기억하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성만찬 예식을 행하도록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행하느냐 하는 문제와 또한 그 예식에 사용되는 떡과 포도주가 그저 상징적인 것인가 아니면 그것들이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견의 차이가 교파들이 갈라지는 이유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문제가 우습게 들릴지는 모르지마는 이 성만찬을 미사(Mass)로서 행하던 중세기 교회는 떡과 포도주를 그저 상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고문하고 핍박하여 결국에는 죽이기까지 하였다.

왜 이렇게 교파가 많아 졌는가? 그 큰 이유는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것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며 고집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이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마가복음 7:7,8.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염려하면서 경고한 바 있다. “뱀이 그 간계로 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 하노라.” 고린도후서 11:3

사도행전은 기록하기를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하였다 (사도행전 2:41,42). 초대 교회가 생겼을 때는 복잡한 의식이나 혼돈된 가르침이 없었다. 그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께 헌신하고, 주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기도하며, 서로 사랑하면서 지냈다. 그러할 때 그 교회에 성령께서 같이 하셨고 능력을 가지고 나아가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였다. 교회가 첫 사랑을 잃어 버렸을 때에, 인간의 전통과 가르침으로 그것을 대치하기 시작하였고, 냉랭하여진 교회는 서로 서로 높은 장벽들을 쌓고 자기들만의 교파들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독교계에 왜 이렇게 교파가 많은지에 대한 또 다른 두 번째 이유는 교회의 조직이 타락하기 시작한 데서 연유된 것이다. 성경은 교회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하며 어떻게 타락할 것인지에 대하여 이미 자세하게 예언하여 두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요한 계시록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이 두 번째의 중요한 이유를 다음의 기사에서 요한 계시록의 예언을 연구해 가면서 살펴보기로 하자.

2부 - 기독교에 교파가 많은 이유


요한계시록 6장에 나타나 있는 교회의 타락

우리들에게 익숙한 요한복음 17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에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21절)라는 말씀이 있다.

교회에 그러한 연합이 이루어 졌는가? 오히려 수백 개의 다른 주장들과 교파로 갈라져 버리게 되었다. 같은 성경을 가지고 왜 이렇게 교파가 많이 생겼을까? 제1부에서 언급한 이유 다음에 그 두 번째 이유로 우리는 교회 조직의 타락을 들 수가 있다. 이 사실은 이미 요한 계시록에 예언 되어 있어서 지난 1900여 년간 그리스도인들을 줄 곳 경고하여 왔다. 그 예언이란 다름아닌 계시록 6장에 나타나는 네 명의 말탄자에 대한 예언이다. 사도 요한이 죄수의 몸으로 밧모섬이라는 곳에 유배되어 가 있을 때에 그는 사랑하는 주님으로부터 앞으로 일어 날 교회의 역사와 사건들에 대한 계시를 받게 되었는데, 한번은 하늘로부터 네 말탄자가 달려 오는 광경이 나타났으며 그것은 분명 어떤 불길한 큰 흉조를 나타내는 계시로 느껴졌다. 그 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것이 자기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며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쳐 보호해 오던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한다는 사실이었다.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세우신 바로 그 교회란 말인가? 예수께서는 지옥의 세력이 교회를 침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약속하시지 아니했던가? 그런데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어떻게 되었길래 성경에 기초하고, 그리스도 중심이었으며, 성령이 충만하였던 교회가 이렇게 깊이 타락하여 내려 앉게 되었을까?

흰말 시대 (승리의 시대): 요한 계시록 6장의 예언은 그 질문에 대한 생생한 답변을 계시로 보여 주고 있다. 그 계시의 서두에 예수께서는 장래의 사건들을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시기 위하여 닫혀진 인들을 떼기 시작하시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예수께서 그 첫째 인을 떼시자 흰말이 달려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2절

흰색은 순결한 초대의 사도교회를 상징하는 것이고 면류관을 쓰고 말을 탄 자는 교회를 주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였다. 그 분은 나아가서 교회를 통하여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여 이기고 또 이기었다. 로마 시대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개선 할 때에 흰 말을 타고 오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므로 흰 말은 순결한 사도 교회뿐만 아니라 승리하는 교회를 상징한 것이었다. 제 1세기에 하나님의 교회는 순수한 진리를 가지고 있었고 악을 정복하며 복음으로 세상을 쳐서 이기는 능력의 교회로 존재하였었다.

붉은말 시대 (핍박시대): 그러나 요한은 장면이 바뀌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단이 교회를 무섭게 공격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달려오는 말의 색깔은 붉은 색이었고 이 말을 탄 자는 칼을 받아 쥐고 있었으며 서로 서로 죽이는 일이 감행되고 있었다. 이 붉은 말은 핍박 시대를 상징하였다. 교회는 순교자들의 피로 붉게 물들이게 되었다.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콜로세움의 원형 극장에서 야수들의 밥으로 또는 화형대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 지방에서 무자비한 핍박과 죽음을 당하였는데, 그 기간은 역사가들에 의하여 A.D. 100 - A.D. 323으로 추정하고 있다.

검은 말 시대 (타협의 시대): 그 다음으로 요한은 검은 말을 보게 되는데, 그 말 탄 자는 손에 저울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또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었을까? 핍박이 그치자 기독교회는 갑자기 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종교가 되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콘스탄틴 황제의 추천에 따라 수 많은 이교도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교도인들이 개종하여 들어 오면서 그들의 이교적인 풍습과 전통들을 가지고 교회 안으로 들어 오게 된 것이다. 더 슬픈 사실은 교회 자체가 그들을 수용하기 위하여서 이교적인 풍습들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렇게 교회에 들어 온 이교의 풍습들 중의 하나가 우상들을 들여 온 것이었다. 십계명에 금지되어 있는 우상들을 들여 오면서 그 이름들과 모습들을 바꾸어 가지고 성경적인 냄새가 풍기게 하기 위하여 베드로, 요한, 바울과 같은 형상들로 만들어 교회 안에 들여 와 달기 시작한 것이었다. 쥬피터 신의 이름은 베드로로 바꾸고 다산 신을 상징한 여신은 그 이름을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로 바꾸었을 뿐이었다.

또 다른 하나의 타협은 성경의 안식일 문제였다.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기념일로 안식일을 제정하시어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쉬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십계명 속에 포함시키시고 친히 당신의 손가락으로 돌비 위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기록하여 두셨다 (출애굽기 20:8).

예수께서도 안식일에 교회에 참석하심으로 하나님의 안식일 준수에 대한 모본을 남기어 두셨고, 주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도 여전히 안식일을 준수해 온 사실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4:16; 사도행전 17:1-3; 18:1-4 참조).

그런데 성경은 다니엘 선지자를 통하여 교회가 정부의 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바꾸려고 할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을 이미 해 두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핍박하며”, 또한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을 선지자 다니엘은 후손들을 위하여 기록하여 두었다 (다니엘 7:25 참조).

태양 신 숭배는 로마 제국에서 인기 있는 종교였었다. 그래서 교회와 국가는 이교도인들을 수용하고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예배일을 일요일로 변경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면, 그 당시 미움을 받고 있었던 유대인들과 거리를 두게 되고, 또한 이교도인들이 기독교로 개종 할 때에 훨씬 편안하게 느끼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일석 이조의 효과를 가져 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다. 성경의 계명은 여전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말 시대의 교회는 참으로 타협의 시대였다. 진리가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으로 드러난 시대였다. 그 시대는 복음의 빛 대신 어두움이 교회를 뒤 덮어 이교적인 미신적 풍습들이 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 온 그러한 시대였다.

청황색말 시대 (영적 죽음의 시대): 끝으로 요한은 청황색 말이 달려 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청황색은 시체의 색깔이다. 그래서 그 말 탄 자의 이름이 “사망”이었다. 그 뒤에는 음부(무덤)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 난 것이다. 교회가 영적으로 죽은 것이다.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가 예전과 같은 교회가 아니었다. 한 때 흰색으로 상징되었던 순결하였던 교회가 이제는 죽음의 사신이 뒤를 따르는,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버린 교회가 된 것이다.

이 네 말 탄 자의 계시는 교회 역사에 대한 생생하고 적나라한 묘사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 날 것에 대하여 미리 아시고 이렇게 예언하여 두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개인이나 단체에게 순종하도록 강요하시지 않으신다. 부드러운 손으로 인도하시고 호소하실 뿐이다. 참된 성품의 변화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선택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교파가 많은가? 그 이유 중 하나는 교회의 조직과 단체들이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남은 무리와 종교 개혁 운동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개혁자들을 일으키셔서 각 시대마다 교회의 개혁과 부흥을 가져오도록 애를 쓰고 계신 것이다. 신성 로마 제국의 챨스 대제와 그 옆에 찬란한 옷을 입고 둘러 서 있는 교회의 대표자들 앞에, 이단이란 죄목 하에 끌려가 심문을 받기 위해 서 있는 한 신부가 있었다. 그는 독일의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신부가 된 자로서 아무런 특별한 명예나 높은 직위도 없는 한갓 성직자에 불과 하였다. 그의 이름은 다름아닌 마틴 루터였다. 그는 홀로 서 있었고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대항할 아무런 인간적 권위도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왕과 교회의 권위자들 앞에 패기 있게 서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 한 권위가 있었는데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권위였다. 그는 당당히 말하였다. “왜 벌레 같은 내가 감히 성경의 복음과 선지자들의 말씀에 위배되는 오류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보여 주시기만 한다면 지금 당장 나의 책들을 불 속에 집어 넣겠습니다.”

루터는 선택을 하여야만 하였다. 성경의 진리를 고수하다가 죽음을 당하던지, 아니면 교회의 권위에 굴복하던지... 그는 전자를 선택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성경을 통하여 분명한 이유를 제시 받기 전에는 그 어느 누구의 권위, 설령 그것이 교황이든 의회이든 간에, 누구에게든지 복종 할 수 없으며,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매어 있으며 바로 그러한 확신 가운데 나는 서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서, 그 당시의 고해 성사와 순례 제도와 사죄권을 파는 일과 행함으로 구원을 얻도록 믿게 만드는 제도들을 대항하여 일어서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기별을 과감하게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 하여금 용기 있게 일어나 설 수 있도록 만들 한 근거가 있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거대한 중세기의 교회의 세력을 대항하여서 프로테스탄트(개신교회)운동을 전개하게 된 것이었다. 그와 함께 선 자들의 숫자는 적었고 그는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였다.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사실 때에도 유대 교회는 인간적인 전통으로 죽은 교회가 되어 있었고 그분께서는 “기록 되었으되” 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개혁을 시도하시지 않았던가? 교회의 권위는 성경보다 높은 곳에 서 있을 수가 없으며, 성경이 교회의 조직이나 전통 위에 반드시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베드로 전서 1:24,25)

역사를 통하여 교회가 타락하고 실패하였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불변하게 견디어 왔고, 그러므로 말씀대로 사는 보이지 않는 참된 신자들이 항상 모든 시대마다 각 나라마다 조금씩 존재하여 왔다. 예를 들어 보자.

13세기에 아씨시에 살던 플란시스는 마태복음 10:5-15절에 있는 예수님의 분부를 단순하게 받아드리고 자기의 모든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을 위하여 평생 동안 봉사하는 생애를 살았다. 14세기 때 영국의 쟌 위클립은 교회를 향하여 단순하고 순수한 신약시대의 교회의 믿음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그래서 그는 소수의 추종자들과 함께 성경을 평민들이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하는 일에 큰 공헌을 세웠다. 같은 시대에 요한 허쓰는 보헤미아에서 성경의 말씀대로 교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그는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으며, 교회에게 그 권한이 없다는 사실을 항의하며 일어섰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이 집은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라”고 말하였다 (디모데전서 3:15). 그러므로 외형적으로 교회가 부패하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었을 지라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의 기초 위에 서 있었던 소수의 보이지 않는 무형적인 하나님의 교회가 꾸준히 존재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을 성경은 남은 무리라고 부른다. “...남은 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학개 1;12.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로마서 11:5

이러한 남은 무리에 속했던 위클립과 요한 허쓰와 마틴 루터 같은 그리스도인들 이외에도 많은 개혁자들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그 이후에 “아나뱁티스트” (재 침례파-유아 세례를 반대하고 성인 침례를 주장함) 가 일어나 양심의 자유 의사에 의한 침례와 또한 물을 뿌리는 세례가 아닌 성경적으로 몸을 물에 잠그는 침례를 베푸는 개혁을 시도하고 나섰다.

18세기에는 요한 웨슬레가 일어나 형식으로 죽어가는 교회에 개혁과 부흥을 일으켰으며, 신자들의 성화와 거룩함에 이르는 실제 생활의 열매를 강조하는 참된 제자의 가르침을 들고 일어났다. 그래서 교회는 죽었던 상태에서 또 다른 진리의 전진을 거듭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남은 무리들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중세기를 통하여 감추어 지거나 타협된 진리들을 하나 하나 다시 개혁하여 내어 진리가 계속 전진해 나가서, 결국에는 사도 교회의 상태까지 회복 되도록 계획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개혁자들의 추종자들은 자기들의 지도자들이나 그 가르침이 완전한 것처럼 생각하고 그 주위에 성을 두껍게 쌓고 자체 만의 교파를 형성하여, 계속적으로, 그리고 더 밝은 빛으로 전진하여 나가기를 거절하기에 이른 것이다.

빛은 전진하는 것이다. 진리도 점점 더 밝게 전진하는 것이다. 특히 종교 암흑시대를 통하여서 진리가 많이 타협되어 버린 상태에서, 교회는 온전한 빛으로 회복되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서는 다른 사람들이 줄 곳 발견해 나가는 감추어 졌던 진리, 아니면 채 이해하지 못했던 진리들을 접할 때에 겸손한 마음으로 그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살펴보고, 그것이 성경적이면 새로운 것을 계속 받아드리는 겸손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교파의 벽을 두껍게 쌓은 개혁자들의 후예들은 이미 설립한 조직들과 편견의 벽이 너무 높아서 계속 전진하는 진리의 빛을 따라가지 못하고 머물러 앉아 있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렇게 많은 교파들이 교회 안에 생겨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잠언 4:18.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은 과연 어느 편에 속하여 있는가? 여러분은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진리를 따라 계속 전진하고 있는가?

3부 - 참 교회의 역사


참 교단을 찾고 있습니까? 아니면, 참 교회를 찾고 있습니까? 참 교회는 실제로 존재할까요? 만일 존재한다면, 그 교회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오늘날 세상에 있는 수많은 교회 중에서 어떤 교회가 참 교회일까요?

진실한 마음으로 진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자 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하고 심각한 질문은“과연 참 교회는 존재하며, 그것은 어떤 교회일까?”라는 질문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각종 교단이나 종파 내에 존재하는 세속적인 정신과 부패와 부정직을 보면서 회의와 불신의 늪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참 교회”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다른 교회에 비해서“좀더 나은 교회”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한가지 분명하게 이해해야 할 사실은, 이 세상에서 죄와 부패와 세속적인 정신으로부터 완전하게 분리된“참 교단이나 참 교파”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교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서 인간이 세운 조직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연약하고 이기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모여서 세운 어떤 종류의 종교 조직 속에도 죄와 실수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참 교단”을 찾으려고 하는 대신에 “참 교회”를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참 교회”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어떤 조직이나 교단이나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담과 하와에게 가르쳐 주셨던 진리, 노아가 전파하였던 진리, 아브라함이 믿었던 진리, 엘리야가 경고하였던 진리, 다니엘과 사도 요한에게 계시되었던 예언,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가르쳤던 가르침을 정확하게 보존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즉, 남은 무리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참 교회란 참 진리를 보존하고 그대로 살기 위해서 자신의 생애를 바치는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또 하나의 질문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참 교회는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어떤 교파나 교단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참 교회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어떤 조직이나 교파의 이름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세운 조직에는 항상 죄와 잘못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또한 교회란 영적인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역사와 초기 그리스도 교회사와 중세기의 역사를 살펴볼 때, 우리는 항상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전수하며 생애 하였던 하나님의 교회 즉 남은 무리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당신의 특별한 교회를 가지고 계십니다. 과거의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 즉 소수의 남은 무리가 항상 존재해 왔듯이, 말세인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참 교회를 가지고 계시며, 세상 끝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그 교회는 진리를 사랑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한가지 놀라운 소식이 있는데, 그것은 말세에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참 교회를 구성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예언이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참 교회의 특징을 묘사하셨습니다. 여기에 소개되는 놀라운 소식을 매우 주의 깊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자로 상징된 참 교회

요한계시록 12장에는 참 교회의 역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12장 1절에서 우리는 여인으로 표상된 참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a woman)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성경절은 문맥상으로 볼 때, 상징적인 표현임에 틀림없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상징적 표현 중의 하나는 교회를 여인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의 참 백성인 교회를 정결한 처녀로 표현하였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고린도후서 11:2. 또한 선지자 예례미야는“아름답고 묘한 딸 시온”이라고 말하였으며(렘 6:2), 이사야는“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라고 말하였는데(사 51:16),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성경에서 시온은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딸(여인)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결한 처녀=시온=아름다운 딸=여인=하나님의 백성=참 교회)

이제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여인 즉, 교회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이 교회는 해를 입고 있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머리에 쓰고 있는 면류관에 달린 12별은 12사도들을 상징합니다. 또한 발 아래에 있는 달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내지 못하며, 태양에서 나오는 빛을 반사할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참 교회란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여 12제자들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보존하고 있어야 하며, 그들의 생애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하게 빛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는 12사도들의 가르침과 순결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참 교회가 어떠한 시련과 역사를 통과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놀라운 예언적 장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중세기에 참 교회(여자)가 받았던 핍박의 역사를 공부해 보면, 예언에 나오는 참 교회(여자)가 오늘날에는 어디에, 어떠한 모습으로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2-5절에서, 우리는 아기를 해산하려고 하는 여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여자(woman)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만국을 다스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올려간 이 아기는 누구입니까? 이 성경절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용은 누구이며, 누가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까? 예수께서 마구간에 태어나셨을 때, 사단은 로마의 헤롯 왕을 통하여 2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을 학살함으로써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용은 사단 자신을 상징하는 말이지만, 특별히 이 시대에는 사단이 로마제국의 권력과 너무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제국을 용으로 상징하였습니다.

어떻게 아기 예수가 헤롯 왕의 살해 명령을 피할 수 있었습니까? 꿈에서 마리아와 요셉은 천사의 경고를 받아서 애굽으로 피신할 수 있었으며, 헤롯 왕이 죽은 후에 어린 아이가 된 예수와 함께 나사렛 마을로 돌아와 생애한 사실을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과 희생의 생애를 마치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신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핍박 받는 여자, 핍박 받는 교회

용으로 표현된 로마제국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극렬하게 핍박하였습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요한계시록 12:13.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교인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만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강을 이루었던 사실을 역사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교신을 믿었던 로마제국이 교황권의 세도에 굴복한 이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교황권의 핍박은 오히려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역사가들은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죽은 순교자의 숫자가 5천만 명에 달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기 위하여 깊은 산과 계곡으로 피신하였던 참 교회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요한계시록 12:14. 중세기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기 위해서, 여자(참 교회, 남은 무리)는 알프스의 깊은 산속으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260년 동안의 종교 암흑 시대

그런데 참 교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광야에서 피신하였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예언은 말하기를“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이상한 표현이 나옵니다. 참 교회가 광야에 피신하였던“한 때와 두때와 반 때”란 얼마나 긴 기간이며, 그 핍박의 기간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날까요? 같은 장 6절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 여자가 광야로 도망가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요한계시록 12:6. 자, 이제 좀더 분명해졌습니다. 참 교회가 광야에 도망하여 피신한 기간을 한 성경절은“1260일”이라고 했는데, 다른 성경절은“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했습니다. 두 성경절의 문맥과 내용으로 보아서, 두 기간은 동일한 기간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때(time)”란 1년을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 임을 다니엘 11장 13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북방왕은 돌아가서 다시 대군을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준비하였다가.” 성경 예언의 기간을 나타내는 상직적 표현에서“때”는 곧“해(year)”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년+2년+반년=3년 반을 의미하는 예언적 기간인데, 이것은 정확하게 1260일이 됩니다(성경에서 1달은 30일로 계수됨).

여기서 놓치지 말고 지나가야 할 성경 예언 연구의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기간을 상징하는 예언에서 1일은 1년이 된다는 원칙입니다. 우리는 에스겔 4장 6절에서 이 원칙을 뒷받침하는 열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네게 사십 일을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또한 민수기 14:34에도 또 하나의 증거가 나와 있습니다. “사십 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러므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1260일이라는 예언적 기간은 공히 1260년으로 환산되어야 합니다.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원칙을 성경에 나오는 모든 날짜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는 예언 해석 원칙은, 날짜가 기간적인 예언을 나타내는 상징어로 사용되었을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언 해석법이 올바로 적용되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성취된 예언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예언 해석법의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서, 중세 시대의 참 교회가 광야에서 1260년 동안 핍박을 받았는가를 역사 속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참 백성들이 1260년 동안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여 광야 생활을 하였던 사실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역사는 이 예언이 시작되는 한 시점을 우리에게 가리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A.D. 538년에 로마제국의 저스티니안 황제가 로마 교회(교황권)에게 절대적인 종교적 권위를 부여했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때부터 교황권은 종교적인 독재를 휘두르다가, 나중에는 유럽제국들의 왕이 취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황의 인가를 얻어야 할 정도로 그 세도가 하늘을 찌르게 되었으며, 종교 및 정치에 있어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교황권이 이러한 권력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양심과 신앙을 핍박하였는데, 역사가들은 이러한 시기를 종교 암흑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종교 암흑시대 동안에 교황권의 핍박이 극렬해지자, 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게 전수 받은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깊은 산과 계곡으로 숨어 들어 갔습니다. 특히, 신실한 왈덴스인들과 휴그노와 알비젠스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깊은 산속에 숨어서 수세기 동안 자신들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교황권의 압력과 핍박에 대항하였던 사실을 역사에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126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내려가서 하나님의 예언의 시계가 1798년을 가리킬 즈음, 유럽은 프랑스 혁명으로 인하여 대변혁을 겪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특권을 누리던 성직자들을 향하여 저항하는 농민들의 반란이 일어났으며, 결국에는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프랑스 혁명군의 버티어 장군이 로마로부터 교황 피우스 6세를 잡아다가 파리의 감옥에 수감하여 교황을 감옥에서 죽게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바로 그 해가 1260년이라는 기간의 종점인 1798년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로마 교회의 교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교황권의 핍박 시대였던 종교암흑시대는 역사적인 종말을 고했습니다.

“여자가 광야로 도망가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요한계시록 12:6
“여자가 큰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요한계시록 12:14

1260일=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A.D. 538년: 로마제국의 저스티니안 황제가 로마 교회에게 절대적인 종교적 권한을 인정하기로 선포한 해.
A.D. 1798년: 교황 피우스 6세가 프랑스 혁명정부군의 버티어 장군에게 체포되어 옥중에서 죽음으로써, 1260년 간의 종교적 암흑 시대가 종말을 고한 해.

다시 미국으로 피신하는 참 교회

1260년 간의 종교 암흑시대가 끝나갈 무렵, 사단의 공격으로 하나님의 참 교회를 보존하시기 위하여 한“땅”을 준비하는 예언의 장면이 나옵니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요한계시록 12:15-16. 이 성경절은 살아남는 이들 5호에서 깊이 있게 다룬 성경절 입니다. 1260년간의 종교암흑시대 말 옆에, 그 당시의 참 교회였던 유럽의 청교도들을 정치적, 종교적 핍박을 피하여 신대륙인 미국으로 피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의 핍박으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대륙을 사용하셨습니다. (“미국의 출현”에 대한 예언은 살아남는 이들 5호를 참조할 것)

4부 - 누가 여자의 남은 자손인가?


하나님께서 미국이라는 신대륙을 통하여 당대의 참 교회였던 신실한 청교도들을 구원하시자, 사단은 분노하는 모습이 12장의 마지막 절인 17절에 그려져 있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요한계시록 12:17.

이 성경절은 성경에 나오는 예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이 예언은 중세기 암흑시대 이후에 적용되는 것으로서 즉, 미국의 출현 이후부터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의 참 교회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의 여자의 남은 자손 즉, 참 교회를 설명하면서“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18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참 교회의 특징을,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마지막 절에 나오는 성경절에서, 우리는 사단이 여자의 남은 무리(remnant)와 전쟁을 벌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서 남은 무리(remnant)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요? remnant의 원어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옷감을 파는 집에 가면 천을 큰 두루마리로 말아놓은 것이 있는데, 그 두루마리의 마지막 남은 조각을 remnant라고 부릅니다. remnant는 두루마리의 첫 번째 천과 동일한 천으로써, 맨 마지막에 남는 조그만 천 조각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무리는 사도시대의 교회가 가지고 있던 가르침과 동일한 변질되지 않은 가르침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시대에 짐승의 표가 강요된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짐승의 표가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요한계시록 14:11. 사도 요한은 계시 속에서 마지막 시대에 전세계적으로 강요되는 짐승의 표를 보면서 두려움과 엄숙함으로 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계시에서 그는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승리하는 참 교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요한계시록 14:12. 바로 여기에 짐승의 표를 피하는 참 교회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 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우리는 하늘에 들어갈 마지막 참 교회는 어떤 사람들로 구성될 것인가에 대한 결정적인 대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누가 끝까지 살아남아 영생을 누리는 자들이 될까요?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요한계시록 22:14, (한글 성경에는“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킹 제임스 영어 성경과 성경의 원문에는“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음, 역자주).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하늘에 들어가는 자들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신실하게 지킨다는 표현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를 묘사하면서, 참 교회는 계명을 지키는 자들로 구성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과연 누가 사도 요한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예언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면, 너무나 많은 목사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은 십자가에서 폐해졌다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시대에 사단이 분노하여 전쟁을 벌이는 상대는 오직 여자의 남은 자손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요한계시록 12:17. 하나님의 계명이 폐하여졌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의 공격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며, 그들은 짐승의 표를 받고 오히려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세력에 가담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계명을 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였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고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5:17-19.

물론, 참 교회의 교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였기 때문에, 청결하고 순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며 그것을 지키는 변화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구원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닌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18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참 교회의 교인들을 설명하면서 3번이나 반복하여“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 독자들께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참 교회의 교인들이 되지 않으시렵니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