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경이 말해 주고 있는 참된 그리스도의 수난


    할리웃의 영화 배우 멜 깁슨 씨가 최근에 만든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는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예수님에 대한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기 리에 상영된 영화이다.

    자기의 개인 자금 3천만 불을 투자하여 만든 이 작품은 엄청난 관중들과 또한 엄청난 수입을 끌어 들이는데 성공하였다. 미국에서만도 많은 교회들이 단체로 구경을 가서 예배를 보는 분위기에서 그 영화를 감상하였고, 많은 교회의 이름있는 지도자들이 이 영화를 교육적인 차원에서 추천하였다. 여러 영화 비평가들의 투쟁적인 언급들 때문에 더욱더 보고 싶은 욕망을 끈 것도 사실이었지만 특히 요즈음처럼 폭력적인 장면들과 피 흘리는 끔찍한 영화들을 좋아하는 현 시대의 관중들의 기호에 잘 맞춘 것이었기에 그 인기가 더 폭발적이었다고 평할 수가 있겠다.

    그러나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제기해야 할 한가지 큰 문제가 있다. 이 영화가 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Passion 즉, 그리스도의 생애의 마지막 부분인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뇌하시던 기도의 밤부터 시작해서 십자가에서 운명 하시기까지인 12 시간 동안의 수난에 대한 내용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것이다. 만약 이 영화의 내용이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셔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강조하시려고 하신 그 원래의 초점에서 벗어나 구속에 대한 다른 이해와 인상을 갖도록 조장하는 것이라면 그 부정적인 면의 심각성은 참으로 큰 것이다.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저 대중적인 인기와 여러 지도자들의 추천에 따라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영화의 장면들이 제시하고 있는 잘못된 신학과 제시들을 받아드리며 따라가고 있다는 데에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기회를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의 의미가 무엇이며 또한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그 초첨이 어디에 있는가를 연구하는 기회로 삼는 것은 합당한 일이라 하겠다.

    먼저 영화나 연극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하나를 알고 지나가야 하겠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어떤 인간에 대한 묘사나 얼굴 표현들은 많은 경우에 사실과 다르거나 아니면 사실을 곡해 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가 있다. 그래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진정한 역사와 사건들에 대한 충실한 이해 보다는 그 작자나 배우들의 묘사에 따른 다른 종류의 인상을 지니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부도덕하고 또한 잘못된 성품들을 가지고 있는 인간 배우들이, 어떻게 인간 역사에서 가장 거룩한 생애를 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내어 연기 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과연 그들의 얼굴 표정 연기와 행동들이 오히려 보는 이들로 하여금 구세주에 대한 곡해된 이해와 잘못된 인상을 가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이러한 영화들은 연약한 교인들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이는 배우의 연기에 의존하여 상상하며 이해하게 만드는 우를 범하게 만든다. 그래서 과거의 양심적인 제작자들은 예수님의 정면 모습은 나오지 않고 뒷모습만 보이게 하는 영화들을 종종 만들어 내곤 하였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는 거룩하신 예수님의 성품을 묘사하기 보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예수의 고통과 그 끔찍한 시련의 장면들에 그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바로 그러한 것이 로마 천주교회가 강조하는 미사 예배에 대한 신학의 실체이다. 예수의 육체적인 고통이 우리의 구원을 이룬다는 개념을 가지고 드리는 미사의 예배 과정에서, 진짜로 예수의 찢겨진 몸으로 변한다고 믿는 떡 조각들을 신부로부터 받아 먹으며, 화체설이라는 잘못된 신학에 기초한 잘못된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상징적인 예식인, 주의 성만찬 예식에 대한 그릇된 신학이며 또한 매 미사 시간 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고통을 재현시키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이 비 성서적인 이러한 미사제도를 철폐하는 일을 이루어 놓았던 것이 아닌가!

    로마 교회의 가르침은 인간 예수의 고상한 품격과 그 사랑의 성품을 강조하는 면 보다는 눈에 보이는 기적들이나 또한 눈에 보이는 십자가의 고통에 대하여 더 강조하는 면이 많다. 그리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예수의 상을 조각해 만들어 벽에 걸어 놓는다. 또한 로자리 묵주들을 들고 기도하며 눈에 보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상을 손에 들거나 아니면 바라 보도록 만들어 준다. 그래서 성당에 들어서면 눈에 볼 수 있는 성경의 인물들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려 계신 모습들을 돌이나 나무들로 조각하여 벽들에 걸어 놓고 있는 것들을 흔히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시는 장면이나 육체적인 고통의 장면에 대하여 거의 말씀하고 있지 않다. 왜 그러할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강조하며 가르치고자 하는 초점은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품성에 있지 그 육체적인 고통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 흘리는 모습을 보기 좋아하는 인간들의 욕망들을 채워 주기 위한 어떠한 묘사도 성경에는 없다. 인간의 두뇌의 심리적인 면에서도 어떠한 끔찍한 모습을 그리는 과정 속에서는 진정한 영적인 감화가 동시에 우러 나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십자가의 피에 대한 언급은 우리의 죄를 씻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상징으로 기록하였지, 그 끔찍한 장면들을 우리의 마음으로 연상케 만드는 의미로서는 결코 사용되지 아니하였다.

    많은 교인들이, 특히 천주교인들이 자기들의 집안에 눈에 보이는 우상들을 즐비하게 구비하여 놓고 산다. 마리아 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리신 상, 성자들의 상들, 사도들이나 예수님의 그림이나 사진들, 그리고 촛불들 등등. . . . 이러한 것들이야 말로 이교도인들의 예배의 형식들이다. 이러한 식의 예배는 신자들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하여 명상하며 진리를 생각함으로 속사람, 즉 그 영혼이 순결하여 지는 내적인 경험에서 떠나 오히려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예배로 전락시킨다. 그러한 것이 곧 이교들의 신전들의 건축 형태나 그 예배 형식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만드는 미사의 의미를 부각시킨 이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는 심지어는 그 대사를 라틴말과 아람어로 만들어서 그 신비함을 극대화 하였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멜 깁슨은 이 영화를 제작하여 자기 교회의 구원론을 온 세상에 퍼뜨리는 일을 위하여 큰 공헌을 하게 된 셈이다. 바로 그것이 미사 드릴 때 쓰는 용어 들이기 때문이다. 미사를 드릴 때에 찢긴 예수의 몸을 실재적으로 내 몸 속에 받아 드림으로 구원이 내 속으로 임한다는 로마교회의 구원론을 토대로 한 것기에 그러하다. 천주교회가 가르치는 구원론이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천주교회는,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은혜를 교회에게 주셨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교회는 각 개인들에게 교회가 설정한 Sacraments 즉, 거룩한 예식들을 통하여서 이 구원의 은혜를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한 거룩한 예식들이 바로 미사를 드리는 일과 고해성사와 같은 행함들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사시던, 아니면 지어 놓으신 집을 남겨 놓지 않으셨다. 심지어는 당신께서 입으시던 옷이나 어떠한 물건도 유물로 남기어 놓으신 적이 없으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소나 당신의 몸을 누우셨던 무덤도 그 정확한 장소를 남겨 놓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그러한 눈에 보이는 일들은 믿는 이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에 가까운 예배로 전락시킬 수 있으며 또한 속 사람을 정결케 하고 승화 시키기 보다는 다분히 외부적이고 감정적인 예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악한 유대인들과 로마 군인들이 예수를 죽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전혀 다른 곳에 그 초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우리 자신들이 지은 죄가 우리 주님을 죽였다는 사실이다. 십자가의 못이 예수를 죽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속죄 양이 되어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고뇌 하시다가, 그 죄책감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고 커서 당신의 심장이 터져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멜 깁슨이 만든 것처럼, 끔찍하여 볼 수가 없는 그러한 식의 잔인하게 매를 맞는 모습, 피가 낭자하며 상처 투성이로 눈이 퉁퉁 부어 있는 얼굴과 온 몸, 그리고 더 나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무서운 장면들을 적나라 하게 그린 그러한 끔찍한 예수의 외부적인 모습에 대하여서는 성경이 전혀 언급을 하고 있지 아니하다. 오히려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십자가의 고통의 장면은 그 내용이 거룩하고 조용하며 엄숙하다.

    천주교회에는 죄인들이 자기 자신들을 육체적으로 때리고 고통을 주는 일로 자기의 회개를 나타내고 구원을 이루어 낸다는 식의 사상이 아직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마틴 루터는 로마서의 복음을 깨닫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성경적 진리의 길을 이해하고 난 후에, 과거에 그의 자신을 학대하며 죄책감을 없애려 했던 이교적인 수행의 길과, 행함으로 자신을 깨끗이 하겠다던 고행의 행습들에서 박차고 일어나 그러한 미신적이고 이교적인 사상들을 타파하기 위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것이 아니었는가! 그는 신부로서 생활했을 때에 자주 추운 겨울날 밖으로 나가 차디 찬 바위 위에서 잠을 잤으며 자기의 등을 채찍으로 때리는 고행을 하였었다.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고통이 우리의 구원을 가져 왔다는 사상에서 비롯된 고행의 가르침이 바로 그러한 잘못된 수행의 습관들을 낳게 만든 것이었다.

    이러한 잘못된 신학에서 비롯된 영화를 보면서 감동적이라고 외치며 눈물을 흘리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제발 성경이 제시하여 주고 있는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하여 다시 연구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십자가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어떠한 고통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인지 그 참된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독자들은 이번 호가 다루고 있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12시간의 수난의 내용들을 다룬 성서적인 기사들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설명해 주고 있는 진정한 수난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게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 드린다.

 

권두언

강병국 목사

두 달 전쯤에 전 세계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큰 쎈세이션을 일으키며 개봉되었던 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The Passion of The Christ”(그리스도의 수난) 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첫 주 동안에 어떤 오락물 영화보다도 훨씬 더 많은 표가 팔려 나가면서 매진 사례를 기록하는 가운데 온 세상의 극장가를 강타하였습니다. 그 영화를 본 자들의 의견들이 서로 엇갈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끔찍한 장면들은 보는 이들에게 충격적이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과연 그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수난의 장면들에 대한 내용과 그 강조점이 올바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는 십자가에 대한 영화가 잘못 왜곡된 이해를 토대로 하여 제작된 것이라면 그 영화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끼치는 잘못된 감화와 영향력은 참으로 큰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는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마지막 수난의 장면들을 올바른 각도에서 이해하도록 도와 드리기 위해서 준비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12시간 동안의 고통과 고뇌의 의미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를 죄에서 구원 얻게 하신 십자가의 고통이란 과연 어떠한 고통을 말하는 것입니까?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가 말해주는 그러한 끔찍스러운 육체적인 고통이 십자가의 중심적인 의미일까요?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수난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번 호에서 읽으실 영감적인 글들은 여러분들을 참된 성서적인 십자가의 고난에 대한 이해로 인도해 드릴 것입니다.

 

1막 - 마지막 12시간의 시작


서곡: 겟세마네로 향하심

    구주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계셨다. 유월절의 크고 둥근 달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비치고 있었다. 순례자들의 천막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고요하기만 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진지하게 이야기하시고 그들을 가르치시고 계셨었다. 그러나 문득 겟세마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분은 이상하게도 침묵에 잠기셨다. 예수께서는 때때로 기도와 명상을 하시기 위하여 이 곳에 오셨으나 당신의 마지막 고민의 이 밤처럼 이렇게 슬픔에 가득 찬 마음으로 오신 때는 결코 없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서의 당신의 온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의 빛 가운데서 행하셨다. 그러므로 사단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고무된 사람들과 투쟁할 때에도 그분은“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붙드시는 임재의 빛을 차단당한 것처럼 보였다. 이제 그분은 범죄자들과 같이 헤아림을 받으셨다. 타락한 인류의 죄짐을 당신이 지셔야만 하였다.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분이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지셔야만 하였다. 죄가 그분에게 매우 무섭게 보이는 그만큼 그분이 지셔야 할 죄악의 무게는 컸으며, 그분은 이것 때문에 당신이 아버지의 사랑에서 영원히 쫓아내지지는 않을까 염려하도록 유혹을 받으셨다.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달으시고 예수께서는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부르짖으셨다.
    제자들은 동산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저희 주님에게 이른 변화에 주의를 집중시켰다. 전에는 결코 예수께서 그토록 큰 슬픔과 침묵에 잠기신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분이 앞으로 나아가심에 따라 알 수 없는 슬픔은 더욱 깊어 갔으나 그들은 그 원인을 감히 물어볼 수 없었다. 그분의 거동은 마치 넘어지시려는 것처럼 흔들렸다. 동산에 도착하자 제자들은 저희 주님을 쉬게 하려고 예수께서 항상 쉬시던 장소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이제 그분의 걸음은 단 한 걸음도 옮기기에 괴롭고 힘이 들어 보였다. 마치 무거운 짐에 눌려서 고통 당하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 신음하셨다. 두 번이나 그분의 동료들이 그분을 부축하였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땅에 쓰러지셨을 것이다.
    동산의 입구 가까이에서 예수께서는 세 제자 외에 모든 제자들을 거기 두시고 그들 자신과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하셨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동산의 격리된 휴식처로 들어가셨다. 이 세 제자는 그리스도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그들은 변화산에서 그분의 영광을 보았으며, 모세와 엘리야가 그분과 더불어 이야기하는 것도 보았고, 하늘에서 들리던 음성도 들었다. 이제 당신의 큰 투쟁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당신 가까이 있기를 원하셨다. 가끔 그들은 이 은신처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밤을 보낸 일이 있었는데, 이런 때에는 한동안 깨어서 기도한 후에, 아침에 예수께서 다시 일하러 가도록 깨울 때까지 저희 주님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서 평안히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그들이 당신과 같이 기도로써 밤을 새우기를 원하셨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조금 나아가사 그들이 당신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멀지 않은 거리의 땅바닥에 엎드리셨다. 이제 예수께서는 당신이 견뎌야 할 고민을 그들이 목격하는 것조차 견디실 수 없으셨다. 그분은 자신이 죄로 말미암아 아버지에게서 분리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심연(深淵)은 매우 넓고, 매우 검고, 매우 깊었으므로 그분의 심령은 그 앞에 떨고 있었다. 이 고민을 피하기 위하여 그분은 그의 신성의 능력을 행사하지 말아야 하였다. 인간으로서 그분은 인간의 죄악의 결과를 감당해야만 하였다. 인간으로서 그분은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견디어야 하였다.

1막 1장 - 세상 죄를 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그분이 전에 항상 서시던 바와는 다른 태도로 서 계셨다. 그분의 고통은 다음과 같은 선지자의 말 가운데 가장 잘 묘사되어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슥 13:7). 죄 많은 인간들의 대속자 그리고 보증인으로서 그리스도는 거룩한 공의 아래서 고통을 받고 계셨다. 그분은 공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셨다. 지금까지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의 중보자가 되셨으나 이제 그분은 자신을 위한 중보자를 가지고자 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의 연합이 깨어진 것을 느끼셨을 때에, 그의 인성으로 다가오는 흑암의 세력과의 투쟁을 견딜 수 있을까 두려워하셨다. 광야의 시험에서 인류의 운명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 때 그리스도께서는 승리자가 되셨다. 이제 유혹자는 무서운 최후의 투쟁을 위하여 나왔다. 이 일을 위하여 유혹자는 그리스도께서 봉사하시는 삼년 동안을 준비해 왔었다. 사단은 이 일에 모든 것을 걸었다. 만일 그가 여기서 실패하면 패권을 잡으려던 그의 희망은 좌절될 것이며, 세계는 마침내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고 그 자신도 실패하고 내어 쫓길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께서 실패하신다면 지구는 사단의 왕국이 될 것이며 인류는 영원히 그의 권세 아래 있게 될 것이었다. 당신 앞에 놓인 투쟁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사단은 그리스도에게, 만일 그가 죄악이 가득 찬 이 세상을 위하여 보증인이 된다면 하나님과는 영원히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분은 사단의 왕국에 동화될 것이며 다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희생으로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 죄 많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볼 때 얼마나 절망적으로 보였는가! 사단은 가장 어려운 면을 들추어서 구주를 다음과 같이 느끼게 하였다. 세속적으로나 영적으로 다른 모든 백성들보다 우월함을 주장하는 백성이 그대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그들을 특별한 백성으로 만든 약속의 기초요 중심이요 확증이 되는 그대를 죽이려고 찾고 있다. 그대의 교훈을 듣고 교회의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제자 중에 하나가 그대를 배반할 것이다. 그대를 가장 열심히 따르던 자 중에 하나가 그대를 부인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대를 버릴 것이다. 그리스도의 온 영혼은 그 생각을 몹시 싫어하였다. 그분이 구원하시고자 했던 자들, 그분이 그렇게 극진히 사랑하신 자들이 사단의 음모에 연결되리라는 사실은 그분의 마음을 찔렀다. 투쟁은 무서웠다. 이 투쟁은 유대 민족의 죄악과 그분을 고발하고 배반한 자들의 죄악과 죄 가운데 놓인 이 세상의 죄악을 포함하였다. 사람들의 죄악이 그리스도를 무겁게 억눌렀으며,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의식함으로 그분의 생명은 파쇄(破碎)되고 있었다.
    인간의 영혼을 위해 지불할 값을 깊이 생각하시는 예수님을 보라. 고통 중에 마치 그분은 하나님에게서 더 멀리 떨어지지 않으시려는 것처럼 차디찬 땅바닥에 엎드리셨다. 찬 밤이슬이 예수님의 극도로 지친 몸 위에 내리고 있었으나 그분은 그것을 개의치 않으셨다. 그분의 창백한 입술에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하실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고통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그분은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덧붙이셨다.
    고통 가운데서 인간의 마음은 동정을 갈망한다. 이와 같은 갈망을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속 깊이에서부터 느끼셨다. 극도로 고민하는 가운데 그분은 그처럼 자주 축복하시고 위로하셨으며, 슬픔과 어려움에서 보호하셨던 제자들에게서 어떤 위로의 말을 듣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에게로 오셨다. 항상 그들에게 동정의 말씀을 하셨던 그분이 이제 초인간적인 고민을 당하시면서는 그들이 당신과 그들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자 열망하셨다. 죄의 악함이 얼마나 어둡게 보였던가! 인류로 범죄의 결과를 당하게 하고 당신 자신은 하나님 앞에 결백한 사람으로 서라는 유혹은 무서운 것이었다. 만일 제자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감사한다는 것을 아실 수만 있었더라도 그분은 용기를 얻으셨을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고통스럽게 일어나셔서 동료들을 두고 오신 장소로 비틀거리며 걸어가셨다. 그러나 그분은 “저희가 자는 것을 보”셨다. 만일 그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셨더면 그분은 고통을 면하셨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았더라면 사단의 작용이 그들을 넘어뜨릴 수 없었을 것이며 예수께서는 그들의 꿋꿋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반복하여 경고하신 말씀에 유의하지 않았다. 처음에 제자들은 항상 매우 평온하고 위엄이 있으신 저희 주님께서 이해할 수 없는 슬픔으로 고투하시는 것을 보고 매우 걱정했었다. 고통하는 자의 힘찬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은 기도했었다. 그들이 주님을 버리려고는 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하나님께 계속하여 간청하였더라면 쫓아버릴 수 있었던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시험을 물리치기 위하여 깨어서 열심히 기도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발걸음을 동산으로 향하기 바로 전에 이미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저희가 예수님과 같이 옥에나 죽는 곳에라도 가겠다는 가장 굳센 보증을 그분에게 드렸다. 불쌍하고 자부심이 강한 베드로는 덧붙여서“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막 14:27, 29)라고 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들을 의지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권고하신 대로 강한 조력자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하여 구주께서 그들의 동정과 기도를 가장 필요로 하였을 때에 그들은 잠자고 말았다. 베드로까지 자고 있었다.
    예수님의 품에 의한 일이 있었던 사랑하는 제자 요한까지도 자고 있었다. 확실히 주님을 사랑했던 요한은 깨어 있어야만 하였다. 요한은 그의 사랑하는 구주께서 극도의 슬픔에 처했을 때에 그분과 함께 열렬히 기도했어야 하였다. 구주께서는 온 밤 동안 그들의 믿음이 식어지지 않도록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만일 예수께서 지금 야고보와 요한에게 전에 질문하신 일이 있는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시며 나의 받을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신다면 그들은 감히 “할 수 있나이다”라는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었다(마 20:22 참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잠이 깨었으나 그분의 얼굴은 고민으로 몹시 변하여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의 제자들의 연약함이 예수님의 동정심을 일깨웠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배반당하여 죽임을 당하심으로 그들에게 임할 시험을 그들이 견디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책망하시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비록 큰 고통 가운데서라도 제자들의 연약함을 용서하려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셨다.

1막 2장 - 겟세마네의 그리스도의 고뇌의 극치

    다시 하나님의 아들에게 초인간적인 고통이 엄습하였으므로 그분은 기진 맥진하여 실신 상태로 전에 투쟁하시던 곳으로 비틀거리며 되돌아가셨다. 그분의 고통은 전보다 더욱 격심하였다. 마음의 고민이 그분에게 이르렀을 때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 삼(杉)나무와 종려나무들은 예수님의 고통을 고요히 지켜보고 있었다. 잎이 무성한 가지들에서 진한 이슬이 내려 고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떨어지는 모습은 창조주께서 홀로 악의 세력과 더불어 싸우시는 것을 보고 대자연이 우는 것 같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께서는 굳센 백향목처럼 서서 그에게 분노를 퍼붓던 반대의 폭풍우를 물리치셨다. 악한 의도와 적의와 교활한 마음으로 가득찬 자들이 예수님을 어지럽히고 넘어뜨리려고 헛되이 노력했으나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거룩한 위엄 가운데 계셨다. 그분은 모든 국면에서 악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승리를 얻은 정복자로서 당신의 사업의 완성을 향하여 가까이 이르고 계셨다. 그분은 영화롭게 하심을 받은 자로서 당신은 하나님과 하나이심을 주장하셨다. 분명한 어조로 그분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셨다. 그분은 용기와 친절의 말로 당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제는 어두움의 권세의 때가 이르렀다. 이제 그분의 음성은 승리의 음조가 아니라 인간적인 고민으로 가득 찬 음조로 조용한 저녁 공기를 타고 들렸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고 하시는 구주의 음성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제자들의 귀에 들려왔다.
    처음엔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고자 하는 충동을 받았으나 그분은 그들에게 거기 머물러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명하셨다. 예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에 그들이 또 다시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셨다. 예수께서는 거의 자신을 정복한 듯한 계속적인 흑암을 깨뜨리고 구원을 줄 수 있는 우정이 넘치는 말을 그들로부터 듣고자 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피곤하여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들은 잠을 깼다. 그들은 그분의 얼굴에서 고통으로 피와 땀이 얼룩진 것을 보고 공포심으로 가득찼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의 심령의 고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사 52:14)다.
    예수께서는 돌아서신 후 다시 기도하시던 곳을 찾으셨으나 큰 어두움의 공포로 말미암아 힘이 진하여 땅에 엎드러지셨다. 그 시련의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은 떨렸다. 지금 그분은 제자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시험받고 고통당하는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두려운 순간, 세계의 운명이 결정되려고 하는 순간이 이르렀다. 온 인류의 운명이 저울 위에서 떨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이라도 범죄한 인류가 마셔야 할 잔을 거절하실 수도 있으셨다. 지금도 이 일은 너무 늦지 않았다. 그분은 이마에서 흐르는 피땀을 씻어 버리고 죄 가운데 인류가 멸망하도록 버려 두고 떠나가실 수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범죄자로 하여금 그의 죄의 형벌을 받게 하라, 그리고 나는 내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멸시와 고통의 쓴 잔을 마실 것인가? 무죄한 그분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죄의 저주의 결과를 맛볼 것인가? 예수님의 창백한 입술에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말씀이 흘러나왔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이나 그 기도를 드리셨다. 인성이 마지막 더할 나위없는 희생으로부터 세 번 움츠러드셨다. 그러나 이제 인류의 역사가 구주 앞에 펼쳐진다. 그분은 율법을 범한 자들을 그대로 버려 두신다면 틀림없이 멸망당할 것을 보신다.
    그분은 인류의 무력함을 보신다. 그분은 죄의 세력을 보신다. 운명지워진 세계의 재난과 비탄이 그리스도 앞에 떠오른다. 예수께서는 세계의 절박한 운명을 바라보시며 결심하신다. 그분은 자신에게 어떤 희생이 요구될지라도 인간을 구원하려고 하신다. 멸망하는 무수한 인간이 그분을 통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그분은 피의 침례를 받아들이신다. 그분은 순결과 행복과 영광의 하늘 조정을 버리시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 즉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한 세계를 구원하려고 오셨다. 그분은 자기의 사명에서 돌아서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스스로 범죄한 인류의 화목 제물이 되실 것이다. 그분의 기도는 이제 복종하시겠다는 말씀뿐이다.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와 같은 결정을 하신 후 잠시 일어나시던 몸은 죽은 듯이 땅에 쓰러졌다. 졸도하신 주님의 머리 위에 그들의 손을 부드럽게 대어, 숱한 일반 인생들보다도 더 상하신 그분의 이마를 씻어드려야 할 제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구주께서 홀로 포도즙 틀을 밟으셨는데 그분과 함께 한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셨다. 천사들은 구주의 고통당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천사들은 저희 주님께서 사단의 군대에 포위되어 그분의 육신이 몸서리나고 신비스러운 공포에 눌린 것을 보았다. 하늘에는 침묵이 흘렀다. 거문고는 모두 멈췄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당신의 빛과 사랑과 영광을 거두시는 아버지를 침묵과 슬픔 가운데 지켜보았던 수많은 천사들의 놀라움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얼마나 불쾌한지를 좀더 잘 깨달았을 것이다.

1막 3장 - 고뇌 속에서의 평온의 모습

    그리스도의 고민은 그치지 않았으나 억압과 좌절은 그분을 떠났다. 폭풍은 결코 경감되지 않았지만 폭풍의 표적인 그분이 폭풍의 분노를 대면할 강한 힘을 얻은 것이었다. 그분은 침착하고 평온하게 되셨다. 피에 젖은 그분의 얼굴에는 하늘의 평화가 깃들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의 고통을 맛보심으로 어떤 인간도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셨다.
    잠자던 제자들은 구주를 두른 빛으로 인해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땅에 엎드러지신 저희 주님을 굽어보는 천사를 보았다. 그들은 천사가 구주의 머리를 그의 품에 들어 올리고 하늘을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제자들은 가장 아름다운 음악처럼 안위와 희망의 말을 하고 있는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 제자들은 변화산의 광경을 회상하였다.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님을 둘렀던 영광과 구름 속에서 들렸던 하나님의 음성을 회상하였다. 이제 그와 같은 영광이 다시 나타났으므로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더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있었으며 그분을 보호하려고 힘센 천사가 보내심을 받았다. 제자들은 피로한 나머지 다시금 그들을 엄습한 이상한 혼수 상태에 빠져 들어갔다. 다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셨다.

1막 4장 - 폭도들에게 잡히심

    슬픔으로 그들을 바라보시면서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바로 이 말씀을 하셨을 때에 예수께서는 당신을 찾는 폭도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셨다. 그분은“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당신을 판 자를 만나기 위하여 걸어가실 때에 조금 전까지 고민하시던 흔적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분의 제자들보다 앞서 가시며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내로라”고 대답하셨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예수께 수종들던 천사가 예수님과 폭도들 사이로 나섰다. 거룩한 빛이 구주의 얼굴을 비추고, 비둘기 같은 모양이 그분을 가리웠다. 이 거룩한 영광이 나타날 때에 살기 등등한 군중들은 잠시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제사장들, 장로들, 군사들, 그리고 유다까지도 죽은 사람들처럼 땅에 엎드러졌다.
    천사는 물러가고 빛은 사라졌다. 예수께서는 도망하실 수 있는 기회가 있으셨지만 조용하고 침착하게 남아 계셨다. 영광을 받으신 그분은 지금 당신 발 앞에 무기력하게 엎드러진 그 무정한 무리들 가운데 서 계셨다. 제자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잠잠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광경은 곧 변하였다. 폭도들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로마군인들과 제사장들과 유다는 그리스도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저희 연약함을 부끄럽게 여기며 그분이 도망하지나 않을까 근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구주께서는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다. 저희는 저희 앞에 서 계시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았으나 그것을 수긍하려고 하지 않았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라는 질문에 그들은 다시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하였다. 그 때에 구주께서는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이 얼마나 약한지를 아셨으므로 시험과 시련에서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셨다.
    반역자 유다는 그가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았다. 폭도들이 동산에 올라올 때에 그는 길을 안내하였으며 대제사장은 그를 가까이 따랐다. 유다는 예수님을 찾는 자에게 신호를 주어“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마 26:48)고 말하였다. 이제 그는 그들과 아무 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이려고 한다. 예수께 가까이 나아가서 다정한 친구인 것처럼 예수님의 손을 붙잡는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는 말로 유다는 연거푸 예수님의 입을 맞춘다. 그리고 마치 위험 가운데 계신 그분을 동정하여 우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다시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고 말씀하실 때에 그분의 음성은 슬픔으로 떨렸다. 이 호소는 반역자의 양심을 일깨웠을 것이며 그의 완고한 마음을 감동시켰을 것이나 그는 염치와 성실과 인간적인 친절을 이미 저버렸다. 그는 상냥해지는 의향이 없음을 보이며 방약 무인(傍若無人)하게도 버티어 섰다. 그는 자신을 사단에게 내어 주었기 때문에 사단을 대항할 아무런 능력도 없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반역자의 입맞춤을 거절하지 않으셨다. 폭도들은 조금 전에 저희 눈앞에서 영화롭게 되셨던 그분의 몸에 유다가 접촉하는 것을 볼 때에 대담해졌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붙잡아 선한 일에만 쓰시던 그 귀하신 손을 묶기 시작하였다.
    제자들은 저희 주님께서 자신을 잡히도록 내어 주시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었다. 왜냐하면 폭도들을 죽은 사람처럼 넘어지게 한 그와 같은 능력이 예수님과 그의 동료들이 도망할때까지 폭도들을 무기력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은 저희가 사랑한 그분의 손을 묶으려고 포승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 분개하였다. 베드로는 분개하여 성급히 칼을 뽑아 주님을 방어하려고 하였으나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을 뿐이었다. 이 일을 보신 예수께서는 로마 군병들이 굳게 붙잡은 그 손을 푸시고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시며 상한 귀를 만지시니 곧 귀가 완전히 나았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각 제자들 대신에 한 군단(軍團)씩]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왜 그분은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시는가 하고 제자들은 생각하였다. 그들의 발설되지 않은 생각의 대답으로 그분은 다시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2막 -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2막 1장 - 빌라도의 법정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죄수처럼 포박되어서 로마 총독 빌라도의 재판정에 서셨다. 감시하는 군사들이 그분을 둘러서 있었으며 재판정은 구경꾼들로 꽉차 있었다. 출입문 바깥에는 산헤드린의 재판관들, 제사장들, 관원들, 장로들과 폭도들이 서 있었다.

    예수님을 정죄한 후에 산헤드린 의회는 선고를 확인받아 집행하기 위하여 빌라도에게 갔다. 그러나 이들 유대인 관리들은 로마인의 법정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의문의 율법에 의하면 그들이 그 일로 더렵혀지게 되면 유월절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들은 우매하여 저희 마음 속에 가득 찬 살기 등등한 증오심을 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참 유월절 양이신 것과 그들이 그분을 거절한 이상 그 큰 잔치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구주께서 재판정에 끌려나오실 때에 빌라도는 그분을 다정한 눈으로 보지 않았다. 이 로마의 총독은 그의 침실에서 급히 불려나왔으므로 그는 할 수 있는 대로 일을 빨리 끝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죄수를 매우 혹독하게 다루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몹시 엄격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떤 류의 사람을 심문해야 하기에 휴식 중인 사람을 이렇게 한 시간이나 일찍 불러내는가 하고 둘러 보았다. 그 사람은 유대인의 관원들이 급히 심문하여 처벌하기를 바라는 그런 류의 사람일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2막 2장 - 그리스도와 빌라도

    빌라도는 예수님을 고소하는 사람을 쳐다보고 그 다음에 날카로운 시선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온갖 종류의 죄수들을 다루었으나 이와 같이 선량하고 고상한 특성을 풍기는 사람이 그의 앞에 온 일은 전혀 없었다. 그는 예수님의 얼굴에서 죄의 흔적이나 두려워하는 표정이나 완고하거나 도전적인 태도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정숙하고 존귀한 태도를 지닌 사람, 죄인의 흔적이 없는 하늘의 특색을 지닌 사람을 보았다.
    그리스도의 용모는 빌라도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의 선한 본성이 일깨워졌다. 그는 이미 예수님과 그분의 사업에 대하여 들어 알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신 갈릴리의 선지자가 행한 놀라운 일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이제 그것이 꿈처럼 빌라도의 마음에 다시 회상되었다. 그는 여러 곳에서 들은 소문을 다시 회상하였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그 죄수를 고소하는 죄목이 무엇인지를 묻기로 결심하였다.
    빌라도는 “이 사람이 누구며 어디서 데려왔느냐?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하고 물었다. 유대인들은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정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드러내 놓고 심문하기를 원치 않았다. 저희는 대답하기를 “그는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우는 한 기만자라”고 하였다.
    또 다시 빌라도는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고 물었다. 제사장들은 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초조한 모습으로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이 나라의 일인자들이 사형에 처할만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당신에게 데려왔는데 그에 대한 고소 죄목이 왜 또 필요한가? 그들은 빌라도에게 자기들이 중요한 사람들이란 인상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많은 예비 심문을 거치지 않고 그들의 요구를 수락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스도의 놀라운 이적을 목격한 백성들이 저희들이 지금 시도하고 있는 거짓말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한 선고에 대해 속히 재가 받게 되기를 열렬히 원하였다.
    제사장들은 연약하고 우유부단한 빌라도와는 그들의 계획을 무난히 성취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저희가 알기로는 일전에 빌라도가 사형에 처할 만한 죄가 없는 사람들에게 사형 선고를 하고 그 사형 영장에 급히 서명한 일들이 있었다. 그의 생각에는 죄수의 생명이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며 그에게 죄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사장들이 바란 것은 빌라도에게 예수님과 말할 수 있는 여지도 주지 않고 그로 하여금 사형을 선고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민족의 대축제일에 드리는 청이므로 이것을 그대로 받아 주도록 간청하였다.
    그러나 이 죄수에게는 빌라도를 주저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는 감히 이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제사장들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에 예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어떻게 살리셨는지를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정죄의 선고에 서명하기 전에 예수님을 고소하는 죄목이 무엇이며 저희가 능히 그것에 대하여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그대들의 재판으로도 충분하다면 왜 죄수를 나에게 데려왔느냐고 하였다.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말하자 제사장들은 저희는 이미 그분에게 선고를 내렸으나 그들의 정죄를 유효하게 하기 위하여 빌라도의 선고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그대들의 선고가 무엇이냐고 빌라도는 물었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그것이 사형 선고이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면 그것은 불법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그리스도가 유죄하다는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이 내린 선고를 집행하도록 요청하면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기들이 지겠다고 하였다. 빌라도는 공정하거나 양심적인 재판관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심지(心志)가 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들어 주지 않았다. 그는 예수께 대한 고소가 성립되기까지는 예수님을 정죄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2막 3장 - 교회 지도자들의 고소

    제사장들은 궁지에 빠졌다. 그들은 자기들의 위선을 깊숙히 은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종교적 문제로 잡혀왔다는 것을 나타내지 말아야 하였다. 만일 그것이 잡혀온 이유로 대두된다면 그들의 추진하는 일이 빌라도에게 아무 가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공법(公法)에 위배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야만 했고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정치범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 가운데서 로마 정부에 대한 폭동과 반란이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이러한 반란을 매우 가혹하게 다스렸으며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항상 경계하고 있었다.
    이제 제사장들은 이 기회에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기를 바랐던 그것을 그분이 가르쳤다고 주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후 수단으로 그들은 도움이 될 만한 거짓 증인들을 불러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하였다. 세 가지는 전혀 터무니 없는 고소였음을 제사장들은 알고 있었으나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같은 위증죄(僞證罪)를 범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빌라도는 그들의 목적을 간파하였다. 그는 죄수가 정부를 전복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주장을 믿지 않았다.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자태는 고소 내용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빌라도는 유대 고관들이 그들의 진로를 가로 막는 이 무죄한 사람을 멸하기 위하여 음흉한 음모를 꾸몄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그가 물었을 때에 구주께서는 “네 말이 옳도다”고 대답하셨다. 그분이 말씀하실 때에 그분의 용모는 마치 햇빛이 비추고 있는 것처럼 빛났다.
    가야바와 그와 함께 한 자들이 그분의 대답을 듣고 빌라도에게 예수님 자신이 고소당하고 있는 죄를 자인했다는 사실을 증언하도록 요청했다. 소란스럽게 큰 소리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관원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기를 요구했다. 폭도들의 울부짖음이 일어났고 그 시끄러운 소요로 귀청이 터질 지경이었다. 빌라도는 당황하였다. 예수께서 당신을 고소하는 자들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음을 보고 빌라도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저희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소하는가 보라 하되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셨다.
    재판정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볼 수 있는 빌라도의 뒤편에 서셔서 온갖 욕설을 들으셨으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모든 거짓 고소에 대하여 한 마디도 대답지 않으셨다. 그분의 모든 태도는 자기가 양심적으로 무죄하다는 증거였다. 그분은 당신의 신변에 부딪치는 성난 파도에도 불구하고 끄떡하지 않고 서 계셨다. 마치 사나운 대양의 물결처럼 높이 치솟는 거세고 성난 파도가 그분의 주위에서 파열하지만 그분을 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분은 말없이 서 계셨으나 그분의 침묵은 웅변이었다. 그것은 한줄기의 빛이 속에서부터 나와 겉 사람을 비추는 것 같았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태도를 보고 놀랐다. 이 사람이 자기의 생명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의 진행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 하고 자문해 보았다. 모욕과 조롱을 당해도 보복하지 않고 참는 예수님을 볼 때에 그는 예수께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제사장들처럼 불의하거나 부정한 일을 할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분에게서 그같은 실증을 얻어내는 동시에 군중들의 소동을 피하기 위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을 자기 곁으로 가까이 오게 해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다시 물었다.
    예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빌라도는 진리를 알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나아가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고 힘주어 선언했다.
    한 이방인 재판관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구주를 고소하던 이스라엘 관원들의 배신과 거짓에 대한 통렬한 견책이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빌라도에게서 이러한 말을 들었을 때에 그들의 실망과 분노는 몹시 컸다. 그들은 이런 기회를 얻기 위하여 오랫 동안 음모를 꾸미고 기다려 왔다. 이제 그들은 예수께서 석방될 가망이 보이자 그분을 갈갈이 찢을 듯이 보였다. 그들은 큰 소리로 빌라도를 탄핵하고 그가 로마 정부의 질책을 받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였다. 그들은 가이사에게 대담하게 도전하는 예수를 정죄하기를 거절하고 있다고 그를 힐난하였다.

2막 4장 - 그리스도와 헤롯왕

    그 때까지 빌라도는 예수님을 정죄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유대인들이 증오와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고소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공의는 그리스도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으나 빌라도는 백성들의 악의를 두려워했다. 그가 예수님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기를 거절하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는 그것을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갈릴리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그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그 지역의 통치자 헤롯에게 그리스도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빌라도는 심문의 책임을 헤롯에게 전가시키려 했다. 그것은 또한 자신과 헤롯 사이의 오랜 분쟁을 종식시킬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그 일은 예상한 대로 되어서 두 장관은 구주의 심문을 계기로 서로 친구가 되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다시 군사들에게 내어 주었고 예수님은 폭도들의 조롱과 모욕을 받으면서 혜롯의 재판정으로 끌려갔다.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였다. 그는 전에 구주를 만나본 일은 없었으나“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마음 때문이었다. 이 헤롯은 자기의 손을 침례 요한의 피로 물들인 사람이였다. 처음으로 헤롯이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때에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막 6:16; 마 14:2). 그러나 헤롯은 예수님을 보고자 했다. 그는 이제 이 선지자의 생명을 구원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마음에서, 피가 흐르는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오던 기억을 영원히 씻어 버리기를 원했다. 그는 또 자기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싶었다. 만일 예수께 석방될 수 있다는 가망성을 보여 준다면 그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리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헤롯이 여러 말을 그리스도께 질문했으나 구주께서는 시종 깊은 침묵만을 지키고 계셨다. 왕의 명령으로 노쇠한 불구자들을 불러들인다음 그들에게 이적을 행해서 그분의 주장을 입증하도록 요구했다. 사람들이 그대가 병자를 고칠 수 있다고 말하니 나는 그대의 널리 퍼진 명성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기를 원하노라고 헤롯은 말했다. 예수께서 이에 응하지 않자 헤롯은 계속해서 재촉하기를 그대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이적을 행할 수 있다면 그대를 위하여 지금 행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그대의 선한 의도에 도움이 되리라고 하였다. 그는 다시 명령하기를 그대가 소문난 대로 능력을 가졌다는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듣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사람과 같았다. 하나님의 아들은 인성을 취하셨으므로 그같은 환경에서 인간이 하는 것처럼 하셔야만 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인간이 다 같은 처지에 놓일 때에 참아야 되는 고통과 모욕을 피하기 위하여 이적을 행하지 말아야 하였다.
    헤롯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앞에서 어떤 이적을 행한다면 석방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스도를 고소하는 자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위대한 일들을 친히 그들의 눈으로 보았다. 그들은 그분의 명령으로 무덤이 죽은 자를 내어 주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들은 그분의 명령에 의하여 죽은 자가 나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지금 그분이 이적을 행하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그분이 능력을 나타내지나 않을까 하여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렇게 되는 경우에는 그들의 계획은 치명타를 입을 것이며 아마 그들의 생명까지도 잃을지 모를 일이었다. 몹시 근심하면서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또다시 그분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그들은 목청을 돋구어 그분이 반역자요 참람된 말을 하는 자라고 선언하였다. 그분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이적을 행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부르짖고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말함으로 재판정은 수라장이 되었다.
    헤로디아가 침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할 때 공포에 떨던 그 때보다 지금 헤롯의 양심은 훨씬 덜 민감하였다. 한 동안 헤롯은 그가 저지른 무서운 행위에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 심한 고통을 느꼈으나 음탕한 생애로 인하여 그의 도덕적 지각은 점점 타락하였다. 이제 그의 마음은 매우 완고해져서 담대히 자기를 책망했던 요한에게 형벌을 내린 것을 자랑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자기가 예수님을 석방할 수도 있고 정죄할 수도 있다는 것을 되풀이해 말하면서 예수님을 위협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 말도 못 들으신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으셨다.
    헤롯은 이와 같은 침묵에 분노하였다. 그것은 자기의 권위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자만심이 강하고 도도한 왕에게 있어서 이와 같이 무시당하는 것보다는 공개적인 견책이 훨씬 덜 모욕적이었을 것이다. 다시 그는 화를 내며 예수님을 위협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역시 움직이지도 않으신 채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사명은 쓸데없는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혜롯의 얼굴은 격정으로 점점 어두워갔다. 그는 군중들을 둘러보며 분노한 음성으로 예수님을 협잡꾼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그대가 그대의 주장에 대한 증거를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그대를 군병들과 백성에게 넘겨줄 것이다. 그들은 그대로 하여금 말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협잡꾼이라면 그들의 손에서 그대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 뿐이며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적을 행하여 그대 자신을 구원해야 할 것이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군중들은 그리스도를 치기 위해 달려들었다. 야수처럼 군중들은 그들의 노획물에 달려들었다. 예수께서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셨으며 헤롯은 폭도들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모욕하였다. 로마의 군병들이 사이를 가로막아 미친 폭도들을 물리치지 않았더라면 구주께서는 갈갈이 찢기셨을 것이다.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혔다. 로마 군병들도 욕설하는 데 가담하였다. 헤롯과 유대인의 고관들의 지지를 받은 사악하고 부패한 군병들이 선동하는 온갖 모욕을 구주께서는 다 받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거룩한 인내심을 잃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자들은 자신들의 품성으로 그리스도의 품성을 저울질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그분을 그들처럼 비열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때 나타나고 있던 모든 장면의 뒤편에는, 그들이 장차 어느날 보게 될 영광에 둘린 장면이 소개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 앞에서 떨고 있었다. 무례한 무리가 그분의 앞에 조롱하는 태도로 절을 하고 있는 반면에 어떤 자들은 그렇게 할 목적으로 나왔다가 돌아서서 무서워 떨며 말없이 서 있었다. 헤롯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었다. 마지막 자비의 광선이 죄로 굳어진 그의 마음을 비치고 있었다. 그는 이 죄수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느꼈다. 이는 그의 인성을 통하여 신성이 번쩍였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조롱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과 살인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인 그 시간에 헤롯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처럼 마음이 굳은 헤롯도 그리스도에 대한 선고를 감히 재가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무서운 책임에서 놓여 나기 위하여 예수님을 로마인의 재판정으로 돌려보냈다.


2막 5장 - 다시 빌라도에게로

    빌라도는 몹시 실망했을 뿐 아니라 매우 불쾌해 했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죄수를 끌고 돌아왔을 때에 그는 그들에게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를 성급하게 물었다. 그는 이미 예수님을 심문해 보았으나 그분에게서 아무런 허물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그들이 그분을 고소하려고 데려왔으나 그들 역시 단 하나의 허물도 입증하지 못했잖느냐고 그들에게 말했다. 그는 갈릴리의 분봉왕이요 그들의 민족 중의 한 사람인 헤롯에게 예수님을 보냈으나 그도 역시 예수님에게서 죽일만한 허물을 찾지 못했으니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고 빌라도는 말했다.
    여기에서 빌라도는 그의 연약함을 나타내었다. 그는 예수님이 무죄하지만 예수님을 고소한 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기꺼이 채찍질하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는 폭도들과 타협하기 위하여 공의와 원칙을 희생하려 했다. 이 일이 그를 불리한 형편에 놓이게 만들었다. 군중들은 그의 우유부단함을 이용하여 더욱 더 죄수의 생명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당초에 빌라도가 굳게 서서 죄를 찾을 수 없는 그 사람에게 정죄하기를 거절했더라면 그는 평생동안 그를 양심의 가책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든 숙명적인 쇠사슬을 끊었을 것이다. 그가 의에 대한 자기의 확신을 실행하였더라면 유대인들도 감히 그로 하여금 사형령을 내리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사형을 당하신다 해도 그 죄는 빌라도에게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의 양심에 거스리는 길을 따라 그의 발길을 한 걸음씩 내딛었다. 그가 공명 정대하게 재판한다고 자신을 변명하였으나 이제 그는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수중에서 속수 무책인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흔들림과 우유 부단함이 그를 멸망시켰다.
    지금이라도 빌라도는 맹목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야 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기별이 그가 막 행하려고 하는 행동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그리스도의 기도의 응답으로 빌라도의 부인은 하늘에서 온 천사의 방문을 받았으며 꿈 속에서 그는 구주를 바라보고 그분과 더불어 담화하였다. 빌라도의 부인은 유대인이 아니었으나 꿈 속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에 그는 예수님의 품성과 사명에 대하여 아무런 의심도 없었다. 그는 그분이 하나님의 왕자이심을 알았다. 그는 재판정에서 심문받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으며 죄수의 손처럼 단단히 묶인 그의 손을 보았다. 그는 헤롯과 그의 군병들이 무서운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질투와 악의가 가득찬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미친 듯이 고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다고 선언한 후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채찍질하는 자에게 내어 주는 것을 보았다. 그는 빌라도에 의하여 사형이 선고되는 것을 들었으며 그가 그분을 살해하는 자들에게 내어 주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갈바리에 십자가가 세워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 지구가 어둠 속에 덮이는 것을 보았으며 “다 이루었다”는 신비스러운 부르짖음을 들었다. 더욱 그의 시선은 다른 장면을 보았다. 그리스도께서 크고 흰 구름 위에 좌정하신 장면과 이 지구가 허공에서 비틀거리고 그분을 살해한 자들이 그분의 영광 앞에서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그 여인은 몹시 놀라 큰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 즉시로 빌라도에게 경고의 기별을 써 보냈다.
    빌라도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망설이고 있는 동안에 한 사신이 군중들을 헤치고 들어와서 그의 부인이 보내는 편지를 전달했는데 그 사연은 아래와 같았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빌라도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그는 자신의 상반되는 감정 때문에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행동하기를 지체하고 있는 동안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백성들의 마음을 한층 더 격화시키고 있었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결단을 내리도록 강요했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를 석방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를 한 관습을 생각해 냈다. 이 유월절에는 백성들이 선택하는 죄수 한 사람을 석방시키는 관습이 있었다. 이 관습은 이교도가 창안한 것으로 거기에는 공의라고는 추호도 없었으나 유대인들은 이를 매우 귀중히 여기고 있었다. 이 때에 로마 관원들은 바라바라고 불리우는 한 죄수를 잡아 두었는데 그는 사형에 처해질 것이었다. 이 사람은 자신을 메시야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하여 사물에 대한 다른 질서를 세울 권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악마적인 착각 아래 도둑질과 강도질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다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사단의 역사를 통하여 놀라운 일들을 행하였으며 백성들 중에서 추종자를 얻어 로마 정부에 대한 반란을 선동했다. 그는 종교적 열성의 가면을 쓰고 반역과 잔인한 일을 감행하는 무정하고 절망적인 악인이었다. 빌라도는 백성들로 하여금 이 사람과 무죄하신 구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함으로 그들에게서 정의감을 불러일으키기로 생각했다. 그는 백성들로부터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주장에 반대되는, 예수께 대한 동정을 얻게 되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군중들을 돌아보며 그는 진지하게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하고 물었다.
    폭도들은 야수의 울부짖음과 같은 소리로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라고 대답하였다. “바라바”라는 부르짖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백성들이 그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줄로 생각하고 빌라도는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부르짖기를 “이 사람을 없이 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고 빌라도는 물었다. 또다시 밀려 오는 파도처럼 웅성거리는 군중들이 악마처럼 부르짖었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이 군중 속에 있으니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라는 대답 밖에 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빌라도는 곤혹스러웠다. 그는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무죄한 사람을 그가 선고할 수 있는 수치스럽고 잔인한 죽음을 당하도록 내어 주기를 두려워하였다. 포효(咆哮)하던 음성이 그친 후에 그는 백성들을 향하여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논의하기에는 너무나 멀리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무죄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정죄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빌라도는 그분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었다. 빌라도가 세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하였다. 그러나 그분을 석방하겠다는 이 말이 백성들을 십배나 광포하게 만들었다.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하고 그들은 부르짖었다. 빌라도의 우유 부단함이 초래한 폭풍우는 점점 거세만 갔다.

2막 6장 - 채찍에 맞으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피로에 지치고 온몸에 상처를 입으신 예수님은 끌려나오셔서 군중들의 목전에서 채찍에 맞으셨다. “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예하여 가로되 유대 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때때로 어떤 악인의 손이 예수님이 손에 쥐고 있던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이마에 씌워진 가시관을 쳤다. 그 때마다 그분의 관자놀이는 가시에 찔려서 붉은 피가 그분의 얼굴과 수염에 흘러내렸다.
    하늘이여! 경탄하고 놀랄지어다. 땅이여! 압박하는 자와 압박받는 자를 바라보라! 미친 군중들이 세상의 구주를 에워쌌다. 조롱과 조소가 야비하고 참람된 저주와 뒤섞여 나왔다. 그분의 미천한 태생과 초라한 생애는 잔인한 폭도들의 비평을 받았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분의 주장은 조소를 받았으며 비루한 농담과 모독적인 욕설이 이 입술 저 입술에서 터져 나왔다.
    사단은 구주를 모욕하는 일에 잔인한 폭도들을 지휘하였다. 할 수 있는 대로 그분을 노하게 하여 보복을 하게 하거나 그로 하여금 자신을 구출하기 위하여 이적을 행하도록 하여 구원의 경륜을 무산시키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었다. 이 땅에서 사신 그분의 생애에 단 하나의 흠이 있거나 무서운 시험을 견디는 일에 있어서 그분의 인성에 단 한 가지 실수라도 있었다면 하나님의 어린양은 불완전한 제물이 되었을 것이며 인류의 구속은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마디 명령으로 하늘 군대를 불러와 자기를 돕게 할 수 있고 신성의 위엄을 번쩍이심으로 그분의 안계에서 공포에 싸인 폭도들을 몰아내실 수 있는 분이 가장 비루한 모욕과 폭행을 더할 나위 없이 침착하게 감내하셨다.
구주께 가한 온갖 모욕으로도 그분의 입술에서 지극히 적은 한 마디의 불평도 흘러나오게 하지 못하자 사단은 몹시 분노하였다. 예수께서는 인성을 취하셨지만 그분은 성스러운 참을성으로 견디셨으며 조금도 아버지의 뜻에서 떠나지 않으셨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내어 주어 채찍에 맞게 하고 조롱을 당하게 함으로 그분에 대한 군중들의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고자 했다. 그는 저희가 이것으로 형벌은 넉넉하다고 결정하기를 바랐다. 제사장들의 악의도 그쯤으로써 만족하리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민한 지각으로 유대인들은 무죄하다고 선언된 사람을 이렇게 처벌하는 약점을 간파하였다. 그들은 빌라도가 죄수의 생명을 구하려고 애쓰고 있음을 알고 예수님을 놓아 주지 않게 하려고 단단히 결심하였다. 우리가 문제를 결정적인 점까지 밀고 나아간다면 분명히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이제 빌라도는 사람을 보내어 바라바를 재판정에 데리고 나오도록 하였다. 다음에 그는 두 죄수를 나란히 세우고, 구주를 가리키면서 엄숙하게 간청하는 음성으로 “보라 이 사람이로다”,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라고 말하였다.
    조롱거리의 옷을 입으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신 하나님의 아들이 거기 서 계셨다. 허리까지 옷이 벗겨지고 등에는 길고 흉칙스러운 매 자국이 보였으며 그 곳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분의 얼굴은 피로 물들여져 있었고 피로와 고통의 흔적이 역력했으나 지금보다 더욱 아름답게 보인 적은 전혀 없었다. 구주의 모습은 원수들 앞에서 일그러지지 않았으며 모습 하나하나마다 평온과 인내와 잔인한 원수들에 대한 가장 부드러운 동정이 나타나 보였다. 그분의 태도에는 비겁하게 약점을 보이는 일이 없었고 오히려 오래 참으시는 힘과 위엄이 있었다. 그분의 곁에 있는 죄수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바라바의 모든 면모는 그가 냉혹한 악한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들의 대조는 모든 관중에게 어떤 것을 말하여 주는 듯 했으며 관중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울고 있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저희 마음은 동정심으로 가득 찼다. 제사장들과 관원들까지도 예수님은 당신이 주장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였다.
    그리스도를 둘러싸고 있던 로마 군병들 모두가 다 마음이 완악한 자들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그분이 범죄자인지 또는 위험한 인물인지에 대한 증거를 얻기 위하여 예수님의 얼굴을 열심히 주목하였다. 때때로 그들은 방향을 바꾸어 바라바에게 멸시의 시선을 던졌다. 그들은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하나 훑어 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다시 심문을 받으시는 그분을 쳐다보았다. 그 때 그분에 대한 깊은 동정심으로 그들은 그 거룩한 고통자를 바라보게 되었다. 저희가 그분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든지 아니면 그분을 거절해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든지 간에 그리스도의 조용한 복종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장면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졌다.
    불평 없이 참으시는 구주를 보자 빌라도의 마음은 놀람으로 가득 찼다. 그는 바라바와 대조되는 이 사람을 볼 때에 유대인들에게 동정심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세상의 빛으로써 그들의 어두움과 잘못을 드러내신 그리스도를 제사장들이 왜 그처럼 몹시 미워하는지를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제사장들은 폭도들을 움직여 미친 듯이 날뛰게 했으며 또다시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하고 무섭게 부르짖었다. 마침내 빌라도는 그들의 까닭 모를 잔인성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포 자기하여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고 부르짖었다.
    비록 잔인한 일에 익숙한 로마의 총독이었을지라도 정죄를 받고 채찍에 맞아서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등에는 골이 패여 있으면서도 보좌에 앉은 왕과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는 고통 당하는 그 죄수에 대하여 동정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빌라도는 깜짝 놀랐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명에 대하여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나 그는 하나님과 인간보다도 높으신 존재에 대하여 희미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 스쳐 지나갔던 한 생각이 더욱 분명하게 떠올랐다. 조롱의 표시인 자주빛 옷을 입고 가시관을 쓰고 그의 앞에 서 있는 이분이 거룩하신 하나님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그에게 일어났다.

2막 7장 - 하늘의 왕과 지상의 총독 사이의 대화

    그는 다시 재판정에 들어가서 “너는 어디로서냐”고 예수께 물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구주께서는 진리의 증거자로 자신의 사명을 설명하시면서 이미 빌라도에게 거침없이 말씀하셨었다. 빌라도는 빛을 거절하고 폭도들의 요구에 응하여 원칙과 권위를 굽힘으로 재판관이란 높은 직분을 남용했다. 이제 더 이상 예수께서 그를 위하여 비추실 빛이 없었다.
    그분의 잠잠하심에 성이 난 빌라도는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고 거만하게 말했다. 예수께서는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넘겨 줄 자의 죄는 더 크니라”고 대답하셨다.
    이와 같이 동정심이 많으신 구주께서는 극도의 고통과 슬픔 중에서도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준 로마 총독의 행동을 가능한 한 변호하셨다. 그것은 후세에까지 계속하여 전해질 얼마나 무서운 장면인가! 온 땅의 재판관인 그분의 품성에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빛을 비추어 주는가!
    “나를(그대에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대제사장으로서 유대 민족을 대표한 가야바를 의미하였다. 그들은 로마 관원들을 지배하는 정책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입증해 줄 예언과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치신 교훈과 이적에 대한 빛을 받고 있었다. 유대의 재판관들은 저희가 사형을 선고한 그분의 신성에 대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는 증거를 받았다. 또한 저희가 받은 빛에 따라 그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빌라도는 다시 구주의 석방을 제안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이 위선자들은 가이사의 권위에 대하여 열심이 있는 체하였다. 로마 통치를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 중에 유대인들처럼 다루기 어려운 사람들은 없었다. 그들이 민족적 종교의 요구 사항들을 시행하는 것이 그들에게 안전하다고 생각될 때에는 그것을 무모하리 만큼 강행해 나갔으나 그들이 어떤 잔인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할 때에는 가이사의 권세를 높였다. 그리스도를 멸하는 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들은 저들이 미워하는 외국인 통치자에게 충성을 공언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2막 8장 - 십자가 형의 선고

    그 후에 빌라도는 재판석에 앉아서 다시 예수님을 백성들에게 보이며 “보라 너희 왕이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고 미친듯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멀고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빌라도는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고 물었다. 그러나 야비하고 참란된 입술에서는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이와 같이 한 이방인 통치자를 저들의 왕으로 선택함으로 유대 민족은 신정(神政)에서 물러났다. 그들은 하나님이 저들의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 때부터 그들에게는 구원자가 없었다. 가이사만이 저희의 왕이었다. 제사장들과 교사들이 백성들을 이렇게 인도하였다. 이것과 그에 뒤따른 무서운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저들에게 있다. 한 민족의 죄와 멸망은 그 민족의 종교적 지도자들 때문이었다.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하였다. 공포와 양심의 가책 속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찌푸린 수다한 얼굴들 가운데 그분의 얼굴만이 평화스러웠다. 그분의 머리 주위에는 은은한 빛이 비취는 것처럼 보였다. 빌라도는 마음속으로 그분은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군중들을 향하여 “나는 그의 피에 무죄하다”고 그는 선언했다. 너희가 그분을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그러나 제사장들과 관원들이여, 내가 그분을 의인이라고 선언한 것에 주의하라. 그리스도가 자기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분이 이 날의 일에 대하여 나를 재판하지 않고 너희를 재판할 것이다. 그 다음 그는 예수께 “이 행동에 대하여 나를 용서하라 나는 그대를 구원할 수 없노라”말하였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을 채찍질한 다음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 주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구원하기를 열망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 일을 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는 자기의 세속적 권력을 잃어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무죄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편을 택하였다. 빌라도는 폭도들의 요구에 굴복하였다. 그의 지위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기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 주었다. 그가 몹시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 그가 무서워하던 바로 그 일들이 그에게 닥쳐왔다. 그의 명예는 박탈당하고 그는 높은 관직에서 쫓겨났으며 양심의 가책과 상처 입은 자존심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얼마 안 되어 그의 생애를 끝마쳤다. 죄와 타협하는 자들은 이와 같이 모두 다 슬픔을 당하고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
    빌라도가 그리스도의 피에 대하여 자신의 무죄를 선언했을 때에 가야바는 도전적으로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대답하였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이처럼 무서운 말을 받아서 말했으며 그 말은 비인간적인 소란스런 부르짖음으로 군중에 의해 되풀이 되었다. 온 무리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선택을 결정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고 말하였다. 강도요 살인자인 바라바는 사단의 대표자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대표자였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거절 당하시고 바라바는 선택되었다. 그들은 바라바를 갖고자 했다. 이와 같은 선택을 통하여 그들은 태초부터 거짓말쟁이요 살인자인 사단을 받아들였다. 사단은 그들의 인도자였다. 민족적으로 그들은 그의 명령을 실행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사단의 일을 하고 싶어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의 지배도 받아야만 한다. 그리스도 대신에 바라바를 선택한 백성들은 시간이 계속하는 한 바라바의 잔인성을 느껴야만 하였다.
    침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고 유대인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부르짖었다. 그 무서운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었다. 저희가 친히 저희 자신에게 선언한 선고가 하늘에 기록되었다. 그들의 기원은 응답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는 저희 자자 손손에게 영원한 저주였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멸망 때에 무섭게 실현되었다. 그것은 또 천팔백년 동안의 유대 민족이 겪은 상태 가운데 무섭게 나타나 있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시들고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모아서 불에 태워 버리는 것이다. 수세기를 통하여 온 세계 여러나라에서 그들은 허물과 죄로 죽고 또 죽어 갔다.
    그 기도는 큰 심판 날에 무섭게 성취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는 사람들이 그분을 폭도들에 둘러 싸인 죄수가 아닌, 하늘의 왕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아버지의 영광과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오실 것이다. 천천만만의 천사들과 놀랍도록 아름다움과 영광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들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그분을 호위할 것이다. 그 때 그분은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이며 천하 만국이 그분 앞에 모이게 될 것이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이며 그분을 찌른 자도 역시 볼 것이다. 가시관 대신에 그분은 면류관 속에 면류관이든 영광의 면류관을 쓰실 것이다. 낡은 자주빛 왕의 예복 대신에 그분은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막 9:3) 가장 흰 세마포 옷을 입으실 것이다. 그리고 그 옷과 그 다리에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계 19:16)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그분을 조롱하고 그분을 때린 자들도 그 곳에 있을 것이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재판정의 광경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3막 - 해골의 언덕 갈바리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 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히 13:12)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까닭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 우리의 대속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 성밖에서 고통을 당하셔야만 하셨다. 그분은 중범자들과 살인범들이 처형받던 성문 밖에서 죽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갈 3:13)다는 말은 참으로 의미 심장한 말씀이다.

3막 1장 - 십자가를 지시다

    많은 군중들이 재판정에서부터 갈바리까지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분이 정죄를 받으셨다는 소식이 온 예루살렘에 퍼지자 각 계층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힐 장소로 모여들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잡히시게 되면 그분의 제자들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제자들과 여러 도시와 인근 지방에서 온 신자들이 구주를 따르던 무리들과 합세했다.
    예수께서 빌라도의 법정문을 나설 때에 바라바를 위하여 준비되었던 십자가가, 찢어져 피가 흐르는 그분의 어깨에 메워졌다. 바라바의 두 동료들도 예수님과 같은 시간에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만 했고 그들에게도 역시 십자가가 지워졌다. 그분의 연약함과 고통당한 참상으로 보아 구주의 십자가는 너무도 무거운 짐이었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잡수신 후에 예수께서는 음식은 고사하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셨다. 그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단의 대리자들과의 투쟁으로 고뇌하셨다. 그분은 배반당하심으로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을 참으셨으며 제자들이 자기를 버리고 도망하는 것을 목격하셨다. 그분은 안나스에게로 끌려가셨고 그 다음에는 가야바에게로 다음은 빌라도에게로 끌려가셨다. 빌라도는 그분을 헤롯에게 보냈고 헤롯은 다시 그분을 빌라도에게로 보냈다. 그러는 동안에 계속적으로 모독과 조롱을 당하셨다. 두 번 채찍으로 고문을 당하셨고 밤새도록 사람의 영혼을 극도로 괴롭히는 장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모든 일에 실패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씀밖에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 모든 수치스럽고 조소 섞인 심문을 받으시는 모든 시간동안 그분은 확고 부동하고 존귀하게 처신하셨다. 두째번 채찍질이 있은 후에 십자가가 그분의 어깨에 지워졌다. 인간의 체력으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분은 십자가의 짐에 눌려 졸도하셨다.
    구주를 따르던 무리들은 그분의 허약하고 비틀거리시는 발걸음을 보았으나 그분에게 동정을 나타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예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은 그분을 조소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 짐은 다시 그분의 어깨에 놓여졌다. 그분은 또다시 졸도하여 땅에 쓰러지셨다. 박해자들은 그분이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 굴욕의 짐을 지고 갈 사람을 찾기에 고심했다. 유대인들은 그 일을 할 수 없었는데 이는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를 더럽히는 자는 유월절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분을 따르던 폭도들 중에서도 몸을 굽혀 십자가를 질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때에 시골에서 올라오던 이방인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군중들과 마주쳤다. 그는 군중들이 퍼붓는 욕설과 조소를 들었다. 그는 멸시하는 말투로 유대인의 왕을 위하여 길을 비키라고 외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그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 몹시 놀라서 발길을 멈추었다. 그가 그분을 측은이 여기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잡아서 그의 어깨에 십자가를 지웠다. 시몬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다. 그의 아들들은 구주를 믿는 자들이었으나 그 자신은 그분의 제자가 아니었다. 갈바리까지 십자가를 지고 간 것이 시몬에게는 큰 축복이 되었다. 그는 그 때 이후로 그같은 섭리를 항상 감사히 여겼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자진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고 항상 즐거움으로 그 십자가 아래 서게 하였다.
    적지 않은 부녀자들이 그분이 참혹하게 죽게 될 장소까지 유죄 선고를 받지 않은 분을 따라가는 군중들 속에 끼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목하였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전에 예수님을 본 일이 있는 자들이었고 어떤 이들은 그들의 병자와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그분에게 데려온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들은 자기 자신이 병 고침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광경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저희 마음은 예수님을 위하여 녹는 듯하였고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분에 대한 군중들의 증오심을 보고 그들은 몹시 놀랐다. 미쳐 날뛰는 군중들의 행동과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노기 등등한 말에도 불구하고 이 부녀자들은 그분에 대해 동정심을 나타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눌려 쓰러지시자 그들은 심히 통곡했다.
    이것만이 그리스도의 주의를 끌게 한 유일한 사건이었다. 세상 죄를 지시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계시면서도 그분은 그들이 나타낸 슬픔에 무관심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부드러운 동정심을 가지고 그 부녀자들을 바라보셨다. 그들은 그분을 믿는 신자들이 아니었다.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그분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요 단지 인간적인 동정심에서 우러나는 감정으로 슬퍼한다는 것을 그분은 아셨다. 그분은 그들의 동정심을 무시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의 마음 속에는 그들에 대한 깊은 동정심이 일어났다.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앞에 있는 장면으로부터 예루살렘의 멸망의 때까지를 내다보셨다. 그 무서운 장면 가운데서 지금 그분을 위하여 울고 있는 자들 중에 많은 사람이 저희 자녀들과 함께 멸망당하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의 장면으로부터 예수님의 생각은 더욱 큰 심판으로 향했다. 그분은 회개하지 않은 도성의 멸망이 이 세상에 임할 최후의 멸망의 상징임을 보셨다. 그분은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을 푸른 나무 곧 무죄하신 구속자로 나타내셨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자의 범죄에 대한 당신의 분노를 사랑하는 아들이 당하도록 허락하셨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만 하였다. 그렇다면 계속하여 범죄하는 죄인이 져야 할 고통은 어떠하겠는가? 회개하지 않는 자들과 믿지 않는 모든 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구주를 따라 갈바리로 가던 군중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전에 예수께서 나귀를 타시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에 기뻐 호산나를 외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그분을 따라갔던 자들이었다. 그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인기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분을 찬양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에 제자들의 희망은 최고 절정에 달했었다. 그분과 연합한 것이 몹시 큰 영예라고 느끼면서 제자들은 주님의 곁으로 바싹 다가갔다. 그러나 이제 그분이 굴욕을 당하시게 되자 그들은 멀찌감치서 그분을 따라갔다. 그들은 슬픔과 실의에 젖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마 26:31)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분명하게 맞았는가!

    사형장에 도착해서 죄수들을 형틀에 묶었다. 두 강도는 그들을 십자가에 붙들어 매는 사람들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으나 예수께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의 부축을 받으며 그 아들의 발자국을 따라 갈바리까지 왔다. 그녀는 십자가에 눌려 졸도하는 예수님을 보았다. 그는 그분의 상한 머리에 손을 대어 부축해주고 전에 자기 가슴에 베게 하던 그 이마를 닦아 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같은 슬픈 특권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는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능력을 나타내시어 자기 자신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시리라는 희망을 아직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나리라고 예언하신 말씀을 회상하고 그녀의 마음은 또다시 철렁 가라앉았다. 그녀는 고민에 찬 눈으로 강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근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던 그분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허락하실까?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자신을 이처럼 참혹하게 살해당하도록 버려 두실까? 그녀는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믿는 자기의 믿음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그녀는 고난 당하는 예수께 봉사할 특권마저 얻지 못하고 그분이 당하는 치욕과 슬픔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3막 2장 -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님의 손이 십자가 위에 펴진 것을 보았다. 망치와 못을 가져왔다. 굵은 못이 부드러운 살을 뚫고 들어갈 때에 비탄에 빠진 제자들은 거의 실신 상태에 있는 예수님의 어머니를 그 참혹한 장면으로부터 모셔갔다.
    구주께서는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얼굴은 침착하고 평온했으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분의 얼굴에 맺히는 식은 땀을 씻어 줄 동정어린 손길도 없었고 그분의 마음에 와 닿는 동정의 말이나 변함없는 충성의 말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군병들이 무시무시한 일을 하고 있는데 반해 예수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라”고 기도하셨다. 그분의 마음은 자신의 고통보다 박해자들의 죄를 생각하셨고 그들에게 무서운 보응이 이를 것을 아셨다. 그분을 그처럼 난폭하게 다루는 군사들에게 그분은 아무런 저주도 하지 않으셨다. 저들의 목적이 이루어진 것을 만족히 여기는 제사장들과 관원들에게 아무런 복수도 구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무지와 범죄에 대하여 깊은 동정을 나타내셨다. 그분은 다만 그들을 용서해 주기를 탄원하셨는데 이는 저희가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원수들을 위하여 드리신 그 기도는 온 세계를 포함한다. 그것은 이 세상이 시작한 때로부터 끝날 때까지 이 땅에 살았거나 앞으로 살게 될 모든 죄인을 포함한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가 놓여 있다. 용서는 모든 사람에게 값 없이 제공되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으며 영생을 유업으로 얻을 수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자마자 힘센 사람들이 십자가를 들어 준비된 구덩이에 난폭하게 던져 세웠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가장 격심한 고통을 주었다. 그 후에 빌라도는 히브리어와 헬라어와 라틴어로 쓰인 패(牌)를 만들어 예수님의 머리 위 십자가에 붙였는데 이 패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어 있었다. 이 패는 유대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그들은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요 19:15)라고 부르짖었다. 누구든지 다른 왕을 인정하는 자는 반역자라고 그들은 선언하였다. 빌라도는 그들이 표시한 감정을 기록하였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왕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잘못도 거론되지 않았다. 이 패는 유대인들이 로마의 권세에 충성한다는 사실상의 고백이었다. 누구든지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자는 그들에 의하여 사형에 합당한 자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되었다. 제사장들은 자기 꾀에 넘어졌다. 저희가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하여 모의하고 있을 때에 가야바는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죽음이 이로운 일이라고 선언하였다. 이제 그들의 위선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멸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민족의 존재까지도 희생하려 하였다.
    제사장들은 저희가 한 것을 보고 빌라도에게 패를 고쳐 쓰도록 요청하며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말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전에 자기가 약했던 것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고 이제는 그 질투심이 강하고 교활한 제사장들과 관원들을 철저하게 멸시하였다. 그는 냉정하게 “나의 쓸 것을 썼다”고 답변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심으로 예언은 성취되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여러 세기 전에 구주께서는 당신이 어떠한 취급을 받으실지에 대하여 미리 예언하셨다. 그분은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시 22:16-18)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옷에 대한 예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친구들이나 원수들의 조언이나 간여없이 성취되었다. 그리스도의 옷은 그분을 십자가에 매단 군병들에게 주어졌다. 그리스도께서는 군사들이 자기 옷을 나누어 가지면서 다투는 소리를 들으셨다. 그분의 속옷은 이은 데가 없이 통으로 짠 것이었으므로 그들은 말하기를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고 하였다.
    다른 예언 중에서 구주께서는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시 69:20, 21)다고 말씀하셨다. 십자가에 달려 죽음의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는 고통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기 위하여 마취약을 주는 것이 허용되어 있었다. 예수님에게도 그 마취약이 주어졌으나 예수께서는 맛보시고 그것을 거절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어떤 것도 받지 않으셨다. 그분의 믿음은 하나님을 굳게 붙잡아야만 하였다. 그것이 그분의 유일한 힘이었다. 그분의 감각을 흐리게 하는 것은 사단을 유리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예수님의 원수들은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분에게 그들의 분노를 쏟아부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서기관들은 폭도와 연합하여 막 숨을 거두려는 구주를 조롱하였다. 침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와 변화산에서 변형되실 때에 그리스도를 당신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그리스도께서 배반당하시기 바로 전에 또다시 그분의 신성을 증거하는 아버지의 말씀이 있었으나 지금은 하늘로부터 아무런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스도께 유리한 어떤 증언도 들리지 않았다. 그분은 홀로 악인에게서 모욕과 조롱을 받으셨다.
    그들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말했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라고 외쳤다. 광야에서 그분을 시험할 때 사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마 4:3, 6). 사단과 그의 천사들은 인간의 모양으로 십자가 곁에 나타났다. 사단과 그의 군대들은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더불어 협력하고 있었다. 백성들의 교사들은 무지한 폭도들을 자극해서 그들 중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희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그분에게 형벌을 선고 하도록 유도했으며 심지어는 그분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하도록 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바리새인들과 완악한 폭도들은 미친 듯이 사단의 무리와 결탁했으며 종교 지도자들도 사단과 그의 천사들로 더불어 연합하였다. 그들은 그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고통 속에서 죽어가시던 예수께서는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외치는 제사장들의 말을 다 들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죄인이 하나님의 용서와 은총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은 그분께서 자기 자신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3막 3장 - 십자가 위에서 구원받은 강도

    십자가 위에서 고통당하시는 예수님께 한 줄기 위안의 빛이 비추었다. 그것은 회개하는 강도의 기도였다.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는 처음에는 다 예수님을 모욕하였고 그 중 한 사람은 고통으로 인하여 더욱더 자포 자기 하고 반항적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동료는 그렇지 않았다. 이 사람은 무정한 죄수가 아니었다. 그는 비록 악한 동무들을 사귐으로 인하여 못된 길에서 방황했으나 십자가 옆에 서서 구주를 욕하는 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죄가 가벼웠다. 그는 전에 예수님을 보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죄를 깨달았으나 제사장들과 관원들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돌아서고 말았다. 그는 죄책감을 없애기 위하여 점점 더 깊은 죄에 빠져들어가 마침내 체포되어 죄수로서 심문을 받게 되었고 드디어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도록 선고되었다. 재판정에서와 갈바리로 오는 길에서 그는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였다. 그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요 19:4)하였노라고 선언하는 빌라도의 말을 들었다.
    그는 예수님의 거룩한 태도와 당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동정을 나타내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거룩한 모습을 주목하여 보았다. 그는 많은 위대한 종교가들이 주 예수께 조소와 멸시의 말을 던지는 것을 십자가 위에서 바라보았다. 그는 사람들이 조롱의 표시로 머리를 흔드는 것을 보았다. 그는 행악자인 그의 동료가 그분을 비방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행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옹호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그들이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반복하면서 그분이 행하신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이분이 그리스도라는 확신이 그에게 되살아났다. 그는 동료 죄수를 돌아보며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고 말했다. 죽어가는 강도들에게는 이제 사람을 두려워 할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람에게는 두려워 해야 할 하나님이 계시고 그를 떨게할 미래가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제 그는 죄로 더렵혀진 그대로 그의 생애의 역사를 끝마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고 그는 탄식했다.
    이제 의문은 없어지고 의심도 비난도 없어졌다. 자기 죄로 인하여 정죄를 받을 때에 이 강도는 아무런 소망도 없이 절망에 빠졌으나 지금은 이상하게도 부드러운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는 예수께서 어떻게 병자를 고치셨고 또 어떻게 죄를 용서하셨는지에 대하여 들었던 것들을 모두 마음 속에 회상해 보았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따라온 사람들이 울면서 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구주의 머리 위에 붙은 명패(名牌)를 읽어 보았다. 행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슬퍼하며 떨리는 입술로 읽고 다른 이들은 농담과 조롱으로 그 말을 읽고 되풀이 하는 소리를 들었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비추셔서 차츰 차츰 확신의 고리가 연결되었다. 상처를 입으시고 조롱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서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발견했다. 희망 없이 죽어가던 영혼이 죽어가시는 구주께 자신을 맡길 때에 그의 목소리에는 고민과 희망이 뒤섞이게 되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옵소서”라고 그는 부르짖는다. 응답은 즉시 이르러 왔다. 예수께서는 사랑과 동정과 능력이 충만한 부드럽고 선율적인 음성으로 “내가 진실로 오늘 네게 이르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고민의 긴 시간 동안 예수님의 귀에는 욕설과 조롱의 말만 들렸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는 조롱과 저주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예수께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의 제자들에게서 저들의 믿음을 나타내는 어떤 말을 듣기 위하여 귀를 기울이셨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는 비통한 말 밖에는 듣지 못했다. 죽어가는 강도에게서 믿음과 사랑의 말을 들으셨을 때에 구주께서는 얼마나 고맙게 여기셨을까!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부인하고 그분의 제자들까지도 그분의 신성을 의심하였으나 영원의 벼랑 가장자리에 선 불쌍한 강도는 예수님을 주님이라 불렀다. 예수께서 이적을 행하시고 죽은 자를 무덤에서 일으키셨을 때에는 많은 사람이 서슴지 않고 그분을 주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실 때에는 제 십일 시에 구원함을 받은 회개한 강도 외에는 어느 한 사람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곁에 서 있던 자들은 그 강도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말을 들었다. 회개한 사람의 음성은 그들의 주목을 끌었다.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의 옷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며 그분의 속옷을 제비 뽑던 자들도 그 일을 멈추고 그의 말을 들었다. 그들의 성난 음성은 조용해졌다. 그들은 숨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쳐다보며 죽어가는 그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께서 약속의 말씀을 하실 때에 십자가를 덮고 있던 어두운 구름 속으로 밝고 활기찬 광선이 뚫고 들어왔다. 회개한 강도에게는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확신으로 완전한 평화가 이르러왔다. 굴욕을 당하시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셨다. 다른 모든 사람의 눈에 정복을 당하신 자처럼 보이던 그분은 정복자이셨다. 그분은 죄를 짊어지시는 분으로 인정되셨다. 사람들은 인성을 쓰신 그분의 육체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가시관을 엮어 그분의 거룩한 관자놀이를 찌를 수 있었다. 그들은 그분의 옷을 벗기고 그것을 나누기 위하여 다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용서하는 그분의 권세를 빼앗을 수 없었다. 숨을 거두시면서 그분은 자신의 신성과 아버지의 영광에 대한 증거를 나타내셨다. 그분의 귀는 들으실 수 없을 만큼 둔하지 않으며 그 분의 팔은 구원하실 수 없을 만큼 짧지도 않으시다. 당신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오는 모든 사람을 온전히 구원하시는 것이 그분의 대권이다.

    내가 오늘 네게 이르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리스도께서는 그 강도가 그날 그분과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분 자신도 그날에 낙원에 가지 않으셨다. 그분은 무덤에서 쉬셨으며 부활의 아침에 그분은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요 20:17)고 말씀하셨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 곧 표면상으로 볼 때 패배와 흑암의 날인 그날에 주님께서는 그같은 약속을 주셨다. 죄인의 한 사람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던 그날 곧 “오늘”이라고 하시던 그날에 예수님께서는 불쌍한 죄인에게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은 “좌 우편에 … 예수께서는 가운데”못 박히셨다. 그것은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지시에 의하여 이렇게 했던 것이다. 두 강도 사이에 있던 그리스도의 위치는 그분이 셋 중에서 가장 큰 죄수라는 것을 표시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그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사 53:12) 는 성경의 예언을 성취시켰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그들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예수님은 강도들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그의 십자가는 그들 가운데 세워졌다. 그처럼 그분의 십자가는 죄악 중에 놓인 이 세상의 한 복판에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참회한 강도에게 하신 용서의 말씀은 지구의 가장 먼 변경에까지 비취게 될 횃불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몸과 마음이 다 가장 격심한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다른 사람만을 생각하시고 참회하는 영혼을 믿도록 격려하시는 무한하신 사랑의 예수님을 천사들은 놀라움으로 바라보았다. 그분은 굴욕을 받으시면서도 선지자로서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말씀하셨고, 제사장과 대언자로서 그분은 당신을 살해하는 자들을 용서해 주시도록 아버지께 간청하셨다. 그분은 또 사랑하시는 구주로서 참회하는 도둑을 용서하셨던 것이다.

3막 4장 -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그의 어머니

    예수께서 주위에 있는 군중들을 둘러보시다가 그 중 한 사람에게 그분의 눈을 고정시키셨다. 십자가 밑에는 그의 어머니가 제자 요한의 부축을 받고 서 있었다. 그는 자기 아들과 떨어져 있을 수 없었다. 끝이 가까웠음을 알고 요한은 그녀를 다시 십자가로 데리고 왔다. 숨을 거두려는 시간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어머니를 기억하셨다. 슬픔에 잠긴 어머니의 얼굴과 요한을 바라보시면서 예수께서는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그러고 나서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한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달았으며 그 위탁을 받아들였다. 그는 즉시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그 때부터 그녀를 친절히 봉양하였다. 오! 인정 많으시고 사랑 많으신 구주께서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민 중에서도 당신의 어머니를 몹시 염려하셨다. 그분은 어머니를 안락하게 모실 만한 돈은 없었다. 요한이 자기의 마음 속에 그분을 모시고 있었으므로 그분은 자기 어머니를 귀중한 유산으로서 요한에게 맡기셨다. 그렇게 하여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되는 부드러운 동정 곧 그가 예수님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동정을 그녀를 위하여 준비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하늘의 위탁으로 그녀를 받아들인 요한은 큰 축복을 받았다. 그녀는 그가 사랑하던 주님을 항상 생각나게 하였다.
    효도에 대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본은 어두운 세대를 밝은 빛으로 비춘다. 거의 삼십년 동안 예수께서는 매일의 일과를 수행하심으로 가사를 도우시고 짐을 나누어 지셨다. 이제 그분은 마지막 고통 중에서도 슬퍼하는 홀어머니를 위하여 필요한 준비를 잊지 않으셨다. 그와 같은 정신이 우리의 주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서도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저들의 부모를 존경하고 그들을 부양하는 것이 신앙의 일부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에 간직한 자들은 반드시 저들의 부모에게 사려 깊은 돌봄과 부드러운 동정을 주게 될 것이다.

3막 5장 - 구속의 고통
(인류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정신적인 고뇌)

    이제 영광의 주께서는 인류를 위한 대속물로서 운명하고 계셨다. 그분의 귀중한 생명을 거두실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승리의 기쁨으로 들뜨지 않으셨다. 모든 것은 숨이 막힐듯이 침울했다. 그분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죽음의 공포가 아니었다. 그분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자아내게 한 것은 십자가의 고통과 치욕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당하는 자 중에 제 일인자이셨으나 그분의 고통은 죄의 유해성을 느끼는 데서 오는 고통, 인간이 죄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죄의 흉악성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시는데서 오는 고통이었다. 죄가 인간의 마음 속에 너무나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과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나오려는 사람은 너무도 적다는 것을 그리스도께서는 아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인간이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셨고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셨다.
    우리의 대리자요 보증인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우리 모두의 죄가 놓여졌다. 우리를 율법의 정죄에서 구속하시려고 그분은 범죄자로 헤아림을 받으셨다. 아담의 모든 자손의 죄가 그분의 마음을 눌렀다. 불법으로 인하여 생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하심 곧 그분의 무서운 진노가 당신의 아들의 영혼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온 생애를 통하여 타락한 세상에 아버지의 자비와 용서하시는 사랑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했다. 죄인들의 괴수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그분의 과제였다. 그러나 이제 그분이 지신 죄의 엄청난 무게로 인하여 그분은 화해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 최대의 고민의 시간에 구주께로부터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돌리심으로 인하여 인간이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그분의 마음을 찔렀다. 이러한 고민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분은 육체적 고통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사단은 맹렬한 유혹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쥐어짜듯이 괴롭혔다. 구주께서는 무덤의 문을 꿰뚫어 보실 수 없었다. 그분이 정복자로서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희망이 주어지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자기의 희생을 가납하셨다는 말도 그분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히 미워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자기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자비가 더 이상 탄원하지 않게 될 때에 죄인이 느끼게 될 고민을 느끼셨다. 그분이 마신 잔을 그처럼 쓰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것은 인류의 대속자인 그분에게 아버지의 진노가 쏟아지게 만든 죄에 대한 의식이었다.
    천사들은 놀람으로 구주의 절망적인 고민을 목격하였다. 하늘 군대들은 그 무서운 광경에서 그들의 얼굴을 가리웠다. 무생물계도 모욕을 당하시고 숨을 거두시는 창조주에게 동정을 표했다. 태양은 이 무서운 광경을 보기를 거절했다.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던 한 낮의 태양이 그 때에 갑자기 없어진 것처럼 보였다. 장례식 휘장 같은 칠흑같은 어두움이 십자가를 뒤덮었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였다. 일식이나 다른 자연 현상이 없었는데도 달도 없고 별도 없는 한밤중의 짙은 어두움과 같았다. 그것은 후세 사람들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적인 증거였다.
    그 짙은 어두움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가리워졌다. 그분은 어두움으로 장막을 만드시고 그분의 영광을 인간의 눈으로부터 감추셨다. 하나님과 그의 거룩한 천사들은 십자가 곁에 계셨다. 아버지께서는 아들과 함께 계셨으나 그분의 임재는 나타나지 않았다. 만일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속에서 번쩍였다면 모든 관중들은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무서운 시간에 아버지의 임재하심에서 오는 위로를 받지 못했다. 그분은 홀로 포도즙틀을 밟으셨으며 백성 가운데 그분과 함께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짙은 어두움으로 인간으로서의 당신의 아들이 당하는 마지막 고민을 가리우셨다. 고통 중에 있는 그리스도를 본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신성을 확신했다. 한 번 인간에게 보였던 그 얼굴은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가인의 얼굴이 살인자로서 그의 죄를 나타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얼굴은 무죄와 침착과 자비심이 충만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그분의 고소자들은 하늘의 인(印)에 주의하지 않았다. 조롱하던 군중들이 고뇌의 긴 시간 내내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으나 이제 그분은 자비스럽게도 하나님의 외투로 가리워지셨다.
    죽음의 정적이 갈바리 언덕에 내린 듯하였다. 십자가 주위에 모였던 무리들은 형언할 수 없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저주와 욕설은 도중에 멈춰졌다. 남자들과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은 땅에 엎드렸다. 때때로 밝은 번개가 구름 속에서 번쩍여 십자가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를 환히 비추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서기관들과 사형 집행자들과 폭도들은 모두 다 저들이 보복을 받을 때가 이른 줄로 생각하였다. 잠시 후에 어떤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것이라고 속삭였다. 어떤 이들은 가슴을 치고 무서워 울부짖으면서 더듬 더듬 도성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제 구시에는 어두움이 백성들에게서는 걷혔으나 아직도 구주를 덮고 있었다. 그것은 그분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고민과 공포의 한 상징이었다. 어떤 사람의 눈도 십자가를 둘러있는 그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없었으며 고통당하는 그리스도의 영혼을 싸고 있는 짙은 어둠을 뚫어 볼 수 없었다. 성난 번갯불이 십자가에 달려 있는 그분을 맹렬히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셨다. 구주의 주위에 짙은 어두움이 머물러 있을 때에 많은 사람은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다. 천벌이 그에게 내리고 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분노의 화살이 그를 공격하고 있다. 그분을 믿는 많은 사람이 그분의 절망적인 부르짖음을 들었다. 희망은 그들을 떠나갔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리셨다면 그분을 믿는 자들은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
    억눌렸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부터 어둠이 걷혔을 때에 그분은 다시 육체적 고통을 느끼시고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셨다. 한 로마 군인이 타는 입술을 바라보고 동정심이 일어나 우슬초(牛膝草) 막대기에 해융(海絨)을 매어 그것을 포도주 그릇에 찍어 예수께 드렸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그분의 고통을 보고 조롱하였다. 어두움이 땅을 덮었을 때에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혔으나 그 공포심이 사라지자 그들에게는 아직도 예수께서 도망하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살아났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신 그분의 말씀을 그들은 오해하였다. 심한 멸시와 조소로 그들은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고 말했다. 그분을 고통에서 놓이게 할 마지막 기회를 그들은 거절하였다.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고 그들은 말했다.
    흠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그분의 살은 채찍에 맞아 찢어졌고, 그처럼 자주 축복하시기 위하여 펴시던 그분의 손은 나무 막대기에 못 박히셨다. 사랑의 봉사로 피곤할 줄 모르던 그분의 발도 나무 기둥에 못 박히셨고, 그분의 고귀하신 머리는 가시관에 찔리셨다. 그분의 떨리는 입술은 비통의 부르짖음을 발했다. 그분이 참으신 모든 것 곧 그분의 머리와 손과 발에서 흘러내린 핏방울과 그분의 몸을 괴롭힌 고통과, 아버지께서 얼굴을 숨기심으로 그분의 영혼을 가득 채웠던 말할 수 없는 고민은 우리 인류 각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와 같은 죄악의 짐을 지기로 동의하신 것은 다 그대를 위함이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분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낙원의 문을 여신다고 선언한다.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하시고 거품이 이는 파도 위를 걸으셨으며 귀신들로 떨게 하시고 질병이 물러가게 하셨으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던 그분이 자기 자신을 제물로 십자가 위에 바치셨다. 이것은 다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죄를 짊어지신 그분은 거룩한 공의의 진노를 견디시고 그대를 위하여 죄 그 자체가 되셨다.
    관중들은 말없이 그 무서운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양이 비치고 있었으나 십자가는 여전히 어둠에 싸여 있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예루살렘을 바라보니 빽빽한 구름이 도성과 유대 평야를 덮고 있었다. 의의 태양이시요 세상의 빛이신 그분은, 한때 은총을 받았던 예루살렘 도성으로부터 그분의 광선을 거두고 계셨다. 하나님의 진노의 맹렬한 번갯불이 운명지워진 도성에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어두움이 십자가에서 걷혔다. 그 때 예수께서는 삼라 만상을 울리는 듯한 나팔 소리같은 맑은 음조로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부르짖으셨다. 한 줄기 빛이 십자가를 둘렀으며, 구주의 얼굴은 해와 같은 영광으로 빛났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머리를 가슴 위로 떨구시고 운명하셨다.
표면상으로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으신 그리스도께서는 무서운 암흑 중에서 인간이 마셔야 할 고통의 잔을 남김없이 마셨다. 이 무서운 시간 동안 그분은 이제까지 그분에게 주셨던 아버지의 가납하심의 증거에 의지하였다. 그분은 아버지의 품성을 잘 알고 계셨으며 그분의 공의와 자비와 크신 사랑을 이해하고 계셨다. 그분은 자기가 즐겨 순종하던 그분을 믿음으로 의지하셨다. 그분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 아버지의 은총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은 없어졌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승리자가 되셨다.

3막 6장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심

    이 세상은 전에 이런 광경을 목격한 적이 결코 없었다. 군중들은 넋을 잃고 서서 숨을 죽이고 주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움은 다시 땅을 덮었고 맹렬한 천둥소리와 같은 둔탁한 울림이 들려왔다. 무서운 지진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흔들렸다. 극도의 혼란과 경악이 계속되었다. 근처 산에서는 바위들이 산산이 갈라져서 평야로 굴러떨어졌다. 무덤들이 갈라져 열리고 시체들이 무덤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삼라 만상이 산산이 부수어지는 것 같았다.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군사들과 사형 집행자들과 백성들은 무서워서 숨도 못쉬고 땅에 엎드려 있었다.
    “다 이루었다”는 큰 부르짖음이 그리스도의 입술에서 나왔을 때에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 때는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이었다.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양을 잡기 위하여 끌고 왔다. 의미 깊고 아름다운 예복을 입은 제사장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하던 때와 같이 칼을 높이 들고 서 있었다. 큰 흥미를 가지고 백성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주께서 친히 가까이 오시자 땅은 떨며 흔들렸다. 성전 안의 휘장이 소리를 내면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 한때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했던 곳이 군중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열려 제쳐졌다. 그 곳에 쉐키나가 거했었다. 하나님께서 그 곳 시은소(施恩所)위에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이 부분과 성전의 다른 부분을 갈라 놓는 이 휘장을 쳐들 수 없었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 번씩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그 곳에 들어갔다. 그러나 보라! 이 휘장이 두 조각으로 찢어진 것이다. 지상 성소의 일부인 지성소는 더 이상 거룩한 장소가 아니다.
    모든 것이 공포와 혼란 뿐이었다. 제사장은 희생 제물을 죽이려 했으나 칼은 그의 무기력한 손에서 떨어지고 양은 도망쳐 버렸다. 모형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원형과 마주쳤다. 큰 희생이 이루어졌다. 지성소로 가는 길은 열렸다. 새로운 삶의 길이 만민을 위하여 준비되었다. 더 이상 죄 많고 슬픔에 찬 인간들은 대제사장이 나오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구주께서 모든 하늘의 하늘에서 제사장과 대언자로서 직무를 행하실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예배하는 자들에게 힘있는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한 것 같았다. 이제 죄를 위한 모든 희생과 제사는 끝났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7)는 당신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 그분은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히 9:12) 들어가신다.

4막 - "다 이루었다"


 4막 1장 - 구속주의 사명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이루려 오신 사업을 완수할 때까지는 숨을 거두지 않으시다가 임종을 하시면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부르짖으셨다.

     싸움은 승리로 끝났다. 그분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이 그로 승리하게 했다. 그분은 정복자로서 당신의 깃발을 영원한 고지 위에 꽂으셨다. 천사들이 기뻐하지 않았겠는가? 온 하늘은 구주의 승리에 개가를 불렀다. 사단은 패배했다. 그는 자기의 나라를 잃어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다 이루었다”는 부르짖음은 천사들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에 깊은 의미를 던져준다. 위대한 구속 사업의 성취는 우리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도 요긴하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승리의 열매를 나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전까지는 사단의 성격이 천사들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에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았었다. 대반역자는 매우 교묘한 속임수로 자기 자신을 가리웠기 때문에 거룩한 존재들도 그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의 반역의 성격을 분명히 알지 못했다.
    스스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나선 사단은 놀라운 능력과 영광을 지녔던 존재였다. 루스벨에 대하여 주님은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겔 28:12) 고 말씀하셨다. 루스벨은 덮는 그룹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존전의 빛 가운데 서 있었다. 그는 창조함을 받은 피조물 중에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목적을 우주에 나타내는 데 있어서 첫째가는 존재였다. 범죄한 후에 그의 속이는 능력은 더욱 기만적이 되었기 때문에 그의 정체를 알아내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는 그가 하나님과 함께 높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조약돌을 땅에 던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단과 그의 동조자들을 쉽게 멸망시킬 수 있으셨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반역을 힘으로 정복해서는 안 된다. 무력으로 강요하는 일은 사단이 통치하는 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의 통치 원칙은 이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선과 자비와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러한 원칙들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정부는 도덕적이며 진리와 사랑이 그 보편적인 힘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일을 영원한 안전의 토대 위에 놓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므로 하늘 회의에서는 사단에게 그의 정부 조직의 기초가 된 원칙을 발전시킬 시간을 주기로 결정했다. 사단은 그것이 하나님의 원칙보다 더 훌륭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하늘의 우주가 볼 수 있도록 사단의 원칙을 실행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사단이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하게 했으므로 구속의 경륜이 가동되었다. 사천년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애쓰셨으나 사단은 인류를 멸망시키고 타락시키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 그리고 하늘 우주는 이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자 사단은 그분을 대적하는 일에 그의 모든 능력을 쏟았다. 예수께서 젖먹이로 베들레헴에 나타나셨을 때부터 찬탈자는 그를 파멸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그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완전한 유아 시절에서 흠없는 장년 시절로 성장해서 거룩한 봉사와 흠없는 희생 제물이 되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실패하였다. 사단은 예수님을 죄짓게 할 수 없었다. 사단은 예수님을 낙담하게 할 수도 없었고 그분이 이루려고 오신 사업에서 손을 떼게 할 수도 없었다. 광야에서부터 갈바리까지 사단의 분노의 폭풍이 그분에게 휘몰아쳤으나 그것이 무자비하게 치면 칠수록 하나님의 아들은 더욱더 굳게 하나님의 손에 매달리셔서 그 피로 물든 그 길을 헤치고 나아가셨다. 그분을 억압하고 정복하려는 사단의 모든 노력은 그분의 흠없는 품성을 더욱더 순결하게 빛내줄 뿐이었다.
    온 하늘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들은 대쟁투를 목격해 왔다. 큰 흥미를 가지고 그들은 투쟁의 마지막 장면까지 따라갔다. 그들은 구주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시는 장면과 그의 영혼이 엄청난 어둠의 공포 때문에 기가 죽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 라는 그분의 비통한 부르짖음을 들었다. 아버지의 임재가 거두어졌을 때에 그들은 죽음과의 마지막 대쟁투에서 오는 엄청난 슬픔 때문에 탄식하시는 그분을 바라보았다. 땀구멍에서 흘러나온 피땀이 물방울처럼 땅에 떨어졌다. 구원을 간청하는 기도가 그분의 입술에서 세 번이나 흘러나왔다. 하늘은 그 광경을 더 이상 보고 견딜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한 사자가 위로의 기별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에게로 날아왔다.
    하늘은 살기 등등한 폭도들의 손에 팔려 조롱과 모독을 받으며 이 법정 저 법정으로 급하게 끌려 다니시는 희생 제물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그분의 미천한 출생 때문에 그분의 핍박자들이 조소하는 것을 들었다. 하늘은 그분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 중 한 사람이 저주와 맹세로 그분을 부인하는 것을 들었다. 하늘은 사단의 광포(狂暴)한 사업과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그의 능력을 보았다. 오! 이 얼마나 무서운 광경인가! 구주께서는 밤중에 겟세마네에서 잡히셔서 이 재판정 저 재판정으로 이리 저리 끌려다니셨다. 그는 제사장들 앞에서 두 번, 산헤드린 앞에서 두 번, 빌라도 앞에서 두 번, 헤롯 앞에서 한 번 고발을 당하셨다. 그는 또한 조롱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정죄를 받으신 다음에 예루살렘의 딸들의 통곡과 잡다한 무리들의 조롱을 들으면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하여 나아가셨다.
    상처난 관자놀이에서 피가 흐르고 이마는 피땀으로 범벅이 된 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하늘은 슬픔과 경탄으로 바라보았다. 그분의 손과 발에서 흐르는 피가 십자가를 세우기 위하여 뚫어 놓은 바위 위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못 박힌 상처들은 몸무게를 견디지 못해 크게 찢어졌다. 그분의 영혼이 세상의 죄짐에 눌려 헐떡일 때에 몰아 쉬는 호흡은 점점 빠르고 깊어만 갔다. 그리스도께서 무서운 고통 가운데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 하실 때에 온 하늘은 경탄으로 충만하였다. 그러나 그 곳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을 해치는 일에 가담하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하늘 우주 거민에게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었겠는가!
    어두움의 주권자들과 권세자들이 십자가 주위에 모여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지옥같은 불신의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주께서 이들을 창조하셔서 그분의 보좌 앞에 서게 하였을 때에 그들은 아름답고 영광스러웠다. 그들의 사랑스러움과 거룩함은 그들의 높은 지위와 조화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로 부요하였고 하늘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사신들이었다. 그러나 이 타락한 천사들이 한때 하늘 궁정에서 섬기던 영광스러운 스랍이었다는 것을 그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사단의 대리자들은 백성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죄인의 괴수로 믿게 하고 그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일에 악인들과 동맹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그분을 조롱하던 자들은 최초의 대 반역자의 정신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단은 그들을 비루하고 야비한 말로 가득 채웠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욕설을 퍼붓도록 고무시켰다. 그러나 이 모든 것으로 그는 아무 유익도 얻지 못했다.
    그리스도에게서 단 한 가지 죄라도 발견되거나 그분이 무서운 고문을 피하기 위하여 어느 한 조목에서라도 사단에게 굴복했더라면 하나님과 인류의 원수는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머리를 숙이고 운명하셨으나 그분은 당신의 믿음을 굳게 붙잡으시고 하나님께 복종하셨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계 12:10)다.
사단은 자기의 가면이 벗겨진 것을 알았다. 그의 행적은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과 하늘 온 우주 앞에 공개되었다. 그는 살인자임이 판명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흘림으로써 그는 하늘 존재들의 동정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때부터 그의 사업은 제한을 받았다.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던지 간에 그는 더 이상 하늘 궁정에서 내려오는 천사들을 기다렸다가 그들 앞에 죄로 인해 검고 불결해진 옷을 입고 있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을 고소할 수 없었다. 사단과 하늘 세계 사이에 연결되어 있던 마지막 동정의 고리가 끊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은 그 때에 파멸되지 않았다. 천사들은 그 때에도 대쟁투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것을 다 깨닫지는 못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원칙들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야만 했다. 인류를 위해서도 사단은 계속 존재해 있어야 했다.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인류도 영광의 왕과 흑암의 왕사이에 있는 차이점을 알아야만 한다. 인류는 자기가 섬길 자를 선택하여야만 한다.

4막 2장 - 마귀의 고소 (죄의 시작과 그 전쟁의 이유)

    대쟁투의 초기에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으며, 공의가 자비와 조화되지 않으므로 율법을 파기하지 않고는 죄인이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모든 죄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만일 하나님이 죄의 형벌을 면제해 준다면 그분은 진리와 공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사단은 주장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그분의 뜻을 대항할 때 사단은 기뻐 날뛴다. 사람은 율법을 순종할 수 없으므로 용서받을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고 그는 선언한다. 사단은 자기가 반역한 후에 하늘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에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총에서 영원히 제거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직도 죄인들에게 은혜를 나타내고 계심으로 그분은 공의로우실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류가 비록 죄인일지라도 사단과는 다른 입장에 놓여 있었다. 루스벨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 가운데서 범죄했다. 지음을 받은 어떤 다른 존재들에게도 나타낸 일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가 그에게 주어졌다. 사단은 하나님의 품성을 이해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알면서도 자기 자신의 이기적이고 독자적인 생각을 따르기로 선택했던 것이다. 이 선택은 그에게 결정적인 것이었다. 더 이상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실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인류는 속임을 당했으며 사단의 궤변에 의하여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졌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알지 못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하나님의 품성을 바라봄으로 인류는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가 사람들에게 나타났지만 그 자비가 공의를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타락한 인류에게 알맞게 일점 일획이라도 변경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율법을 변경하지 않으셨으나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고후 5:19)셨다.
    율법은 의, 즉 의로운 생애, 완전한 품성을 요구하지만 인류는 그 요구에 미칠 수 없다. 인류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으로서 지상에 오셔서 거룩한 생애를 사시고 완전한 품성을 계발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받고자 하는 모든 자들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신다. 그분의 생명은 사람들의 생명을 대신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관용하심을 통하여 과거의 죄를 용서받는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으신다. 그분은 인간의 품성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품성을 따라 형성하시어 영적인 힘과 아름다움을 지닌 훌륭한 건물이 되게 하신다. 그리하여 바로 이 율법의 의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서 성취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롬 3:26)실 수 있으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자비에 못지 않게 그분의 공의에도 표현되어 있다. 공의는 그분의 보좌의 초석이며 그분의 사랑의 열매이다. 진리와 공의로부터 자비를 분리시키려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의 의가 평화의 적이 된다는 것을 밝혀 보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는 이것들이 서로 분리될 수 없도록 단단히 결합되어 있으므로 전자는 후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시 85:10)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자비를 손상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죄는 용서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율법은 의로우며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셨다. 율법에 대한 사단의 비난은 반박을 당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그분의 사랑의 명백한 증거를 주셨다.

    그러자 사단은 또 다른 속임수를 내놓을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가 그분의 공의를 파괴시켰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율법을 폐기시켰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만일 율법을 변경시키거나 폐기시킬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율법을 폐기할 수 있다면 범죄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이 세상은 사단의 지배 하에 있게 될 것이다. 율법은 결코 변함이 없으며 인류는 이 교훈을 순종함으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확립하신 바로 그 방법을 사단은 율법을 파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놓고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마지막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 자신의 육성으로 말씀하신 율법에 결함이 있어서 어떤 특정 부분이 제거되었다고 사단은 이제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주장은 그가 세상에 가져올 마지막 대 기만이 될 것이다. 그는 율법 전체를 공격할 필요가 없다. 만일 그가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의 한 조항에 대해 부주의하게 할 수 있다면 그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그 까닭은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약 2:10)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율법의 한 조항을 깨뜨리는 데 동의함으로 사단의 권세 아래 들어가게 된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을 인간의 법으로 대치시킴으로서 세계를 지배하고자 할 것이다. 그런 일이 예언되어 있다. 사단을 대표하는 큰 배교자의 권세에 대하여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단 7:25)리라고 발표되어 있다.
    사람들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율법을 대항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율법을 제정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지배하고자 애쓸 것이며 그들의 율법을 시행하려는 열심으로 저희 동료들을 압박할 것이다.

4막 3장 - 선악간의 대전쟁의 해결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전쟁은 하늘에서 시작되었고, 그 전쟁은 세상 종말까지 계속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순종이냐 불순종이냐는 온 세계가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과 사람의 율법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그 때 분리(分離)의 선은 그어질 것이며 거기에는 오직 두 가지 부류의 사람 밖에는 없을 것이다. 모든 품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며 모든 사람은 저희가 충성의 편을 택했는지 아니면 반역의 편을 택했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그 때에 끝이 이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옹호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사단과 그의 반역에 가담한 자들은 모두 끊어질 것이다. 죄와 죄인들이 다 파멸될 것이다. “뿌리와 가지”(말 4:1) 즉 뿌리인 사단과 가지들인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렇게 될 것이다. 다음의 말씀이 악의 왕자에게 성취될 것이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 너 덮는 그룹아 … 내가 너를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 네가 경계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그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본래 없던 것같이 되리라”(겔 28:6-19; 시 37:10; 옵 16).
    그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독재적인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한 자들이 저희가 심은 것을 거두는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다. 사람이 죄를 섬기기로 선택할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 스스로 생명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엡 4:18; 잠 8:36)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자기들의 성격을 개발시켜 그 본질을 드러낼 때까지 그들을 생존하도록 허락하신다. 그것이 이루어진 후에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것의 결과를 거두게 된다. 사단과 그와 연합한 모든 자들은 반역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과 조화될 수 없는 곳에 자기 자신을 둠으로 인해 하나님의 임재는 그들에게 삼키는 불이 될 것이다. 사랑이신 그분의 영광이 그들을 멸할 것이다.
    대쟁투의 초기에 천사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만일 그 때에 사단과 그의 군대가 저희 죄의 결과를 몽땅 다 거두도록 버려두었더라면 그들은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죄의 결과라는 사실을 하늘의 존재자들에게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지 못했을 것이며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의심이 악한 씨앗처럼 저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어서 결국에는 죄와 저주의 치명적인 열매를 맺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쟁투가 끝나게 될 때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는 구속의 경륜이 완성되며 하나님의 성품은 창조함을 받은 모든 지적 존재자들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교훈은 완전하고 영원 불변하다는 것이 알려질 것이다. 그 때에 죄는 그의 본성을 드러내고 사단은 그의 성격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죄가 근절됨으로 인하여 당신의 뜻을 행하기를 즐거워하고 저희 마음속에 당신의 율법이 있는 우주의 거민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옹호되고 그분의 영광이 확립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구주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기뻐한 것은 당연하였다. 왜냐하면 저희가 그 때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죄와 사단의 멸망이 영원히 확실해졌다는 것과, 인류의 구속이 보장되었다는 것과 이 우주가 영원히 안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 자신은 갈바리에서 이루신 희생의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셨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내다보시고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셨다.

에필로그

    
    그리스도의 마지막 지상생애의 12시간의 수난에 있어서 그분의 육체적인 고통이 그 고난의 초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분의 영혼 속에 있었던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이 그 수난의 초점을 이룬다.

    바로 그 정신적인 고난이 인류의 구속을 이루어 놓은 것이다.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의 선택이 인류를 파멸에서 구원하신 것이다. 십자가의 못이 그의 부드러운 육신을 찢을 때 생긴 고통에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 졌다기 보다는 오히려,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시는 그분의 영혼의 고통과 사랑의 선택이 우리를 우리들의 죄로부터 구속하신 것이다.
    그분의 영혼이 희망 없이 둘째 사망의 고통 속에서 떨고 계셨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을 보이신 것이 십자가의 의미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육체적인 고통에 대하여서는 별로 심각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의 대가를 대신 지셨기 때문에 그 책임으로 하나님의 자비 없이 죽어 갈 죄인의 사망의 고통을 대신 경험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는 고뇌를 느끼셨던 것이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짖으신 그리스도의 절규 속에서 우리는 십자가의 참 고통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죽게 내버려 두시기 보다는 차라리 당신께서 영원히 죽으시기로 선택하시었다. 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드디어 온 우주는 하나님의 참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사랑이란 단어의 정확한 정의이다. 그것은 죽음보다 강한 것이다. 율법을 어긴 죄인들은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이지만, 십자가의 사랑은 그들을 그 죄의 결과에서 구원하신다. 그리하여 죄인들이 다시 순종의 생애로 돌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드디어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율법의 공의가 입 맞추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류도 구원하시고, 동시에 우주의 기초인 율법도 붙드신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인류는 마땅히 죽어야 하며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고소한 것이다. 만일 범죄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면 하나님의 계명을 차라리 없애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만일 범죄한 인간들을 구원하여 주실 것 같으면 자기와 자기의 부하들도 다시 하늘에 들여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은 범죄한 죄인들의 마음을 감동하여 변화시키기에 충분하다. 인류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는 자들의 마음 속에는 죄를 미워하며 진심으로 회개하는 심령이 솟구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을 것이라는 품성을 마음 속에 아로새기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회개한 죄인을 다시 하늘로 들여보내셔도 우주는 안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십자가의 사랑 만이 이러한 기적을 가능하게 만든다. 구원은 강제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회개는 이기적인 동기나 강요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구속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십자가는 창세전부터 감추어 왔던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불러 지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은 십자가에 있다! 그래서 십자가는 영원히 빛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