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깊은 심연을 넘어


“거룩하게 하는 자와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히 2:11).
“이는 주께서 진실로 천사들의 본성을 입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씨를 입으셨음이라”(히 2:16, 킹 제임스 성경).

쏟아져 내릴 듯이 유난히 별이 많은 밤, 찬란히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이신가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올 때가 있다. 아니, 둥근 수평선 끝으로 한없이 펼쳐지는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가 망연해 질 때가 있다. 하나님의 손가락은 얼마나 크실까? 흙을 빚어 아담을 만드신 하나님의 손가락은... 하나님은 정말 얼마나 크실까?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으로 날아가도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그리고 이 지구는 물통의 물 한 방울 같다고 시편의 시인은 말했는데... 그렇게 무한한 우주와 별세계들을 손으로 붙드시는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보이지도 않는 먼지 같은 이 지구의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베푸신 크나큰 사랑을 생각해 보면, 영원 자체도 그 사랑을 완전히 드러내기에 부족하리라는 마음이 든다.

그런데 그 모든 생각들 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전율하게 만드는 생각은, 그렇게 크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작은 아기가 되셔서 이 땅에 태어나신 “성육신”에 관한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우리처럼 느껴보시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아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신 그 놀라우신 “성육신”에 관한 생각 말이다.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언젠가 애견을 데리고 동물병원에 간 적이 있다. 동물을 꽤 좋아하던 터라 아픈 강아지를 그냥 둘 수 없어 동물병원에 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내어 준 기록서류에 애견에 대한 정보를 적다가, 잠깐 생각에 잠기게 하는 질문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것은 “당신은 당신의 애견동물을 어떻게 여기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 두 가지 대답 중 하나에 표하게 되어 있었는데, 1번은“애견동물의 하나로서”, 2번은 “가족의 하나로서” 였다. 어떤 답에 표를 할까 생각하다 순진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 보고 있는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다. 아파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할 때 숟갈로 음식을 떠 먹이던 사랑하는 강아지였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강아지가 가족의 하나로 여겨질 만큼 귀하게 생각되지는 여겨지지는 않았고, 또 일개 동물을 한 가족으로 여긴다는 일이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인 것 같아 그냥 1번 “애견동물로서”라는 항에 표를 했다.

돌아오는 길, 차 옆 자리에서 잠든 강아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 하나가 마음을 흔들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는 피조물인 인간과 한 혈통이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는데...

하나의 유전자 속으로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인간이 되셨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니, 타락한 우리를 도와 다시 하나님의 순결하고 깨끗한 하늘 가족으로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사단이 온 세상에 뿌려놓은 잘못된 하나님의 모습, 곧 냉혹하고 어그러지고 벌주시기를 좋아하시는 어두운 하나님의 모습의 그림자를 걷어내시고, 함박꽃 같은 미소를 지니신, 용서하시고 받아들이기를 좋아하시는 부드러운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 세상에 드러내시려고... 유혹에 떠는 연약한 우리의 느낌을 함께 느끼고 어떻게 위로하실지를 아시기 위하여, 그리고 시험 당하는 자를 어떻게 도우실지 아시기 위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인성을 쓰시고도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믿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죄를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모본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셨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신성과 인성을 겸하여 가지신, “만세 전부터 감추어 온 비밀”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광대한 우주를 운행하시던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소박한 인성의 하나님의 모습의 차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의지없는 갓난 아기 사이에 놓인 그 멀고 먼 간격을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헤아릴 것인가! 그렇게 크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작은 인간의 유전자 속에 들어가셔서 하나의 핵이 되시고, 그리고 인간의 비천한 태에서 10개월을 계셨던 그 놀라운 오묘를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것은 언제나 우리 앞에 미쳐 다 깨달을 수 없고 측량할 수도 없는 신비가 되어 나타나며, 그 신비한 연합 앞에 서면 누구나 말을 잃은 채 아연해지고 만다.

항복할 가능성이 있었던 유혹

항복할 가능성이 없다면 유혹은 유혹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당한 유혹은 무서운 현실이었다. 인간이 나쁜 행동을 하라는 강력한 유혹을 받을 때 유혹은 저항을 받는다. 그는 나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믿음으로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저항한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통과하신 괴로운 체험이었다. 만약 그분이 실패할 가능성이 전혀 없으셨더라면 그는 인간이 시험당하는 것같이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분도 아담처럼, 그리고 모든 사람들처럼 시험대 위에 올려진 자유 행위자였다. 곧, 그분은 사단의 유혹에 굴복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을 할 자유를 가진 자유행위자로서 시험대 위에 놓여 있으셨다는 것이다.

만약 타락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더라면, 그분은 인간 가족들이 시험을 당하는 것처럼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사실이 예수님을 그렇게 끈질기게 그리고 존절히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는 믿음으로 사시게 한 것이었다.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와 겟세마네와 십자가에 달려 계시던 마지막 몇 시간 동안 그분은 인간이 죄를 대항해서 싸울 때 경험해야 할 것을 충분히 경험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그 무서운 결과를 실감하셨다. 왜냐하면 온 세상의 죄가 그분 위에 놓여 있었고 그분은 죄 자체가 되셨기 때문이었다.

위험한 결정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사단이 통치권을 가졌노라고 주장하는 이 세상에 인간의 연약함을 가진 가엾은 어린 아기로서 오시는 것을 용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인간으로서 누구나가 당하는 인생의 위험을 겪을 것과, 또한 인간으로서 누구나가 싸워야 할 싸움을 실패와 영원한 손실을 걸고 싸울 것을 용납하셨다. 육신의 아버지는 자기의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 아버지는 자기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그 아들의 생명이 위험하게 될 경우를 생각하면 떤다. 하나님도 그러셨다.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 사단의 권세에서 보호되어 시험과 투쟁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만일 예수께서 하나의 점에서라도 실수를 하신다면 이 지구의 구원과 타락한 인류를 위한 속량은 허지로 돌아갈 것이었다. 온 우주의 안전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걸렸던 성육신! 그러나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셔서 더욱 심한 투쟁과 더욱 무서운 위기를 당하게 하신 것은,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고 우리의 가는 길을 안전하게 하시기 원하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깊은 심연을 넘은 사랑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내었다. 죄로 인하여 생긴 넓고 검은 심연은 너무 깊고 어두어 예수께서 건너시기가 두려울 정도로 그분의 심령을 떨게 했다. 그리고 그 고뇌와 시험을 피하기 위하여 신성의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아야 하는 것도 그분에게는 큰 시험이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으로 그 깊은 심연을 가로지르고도 남음이 있게 한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욕망과 큰 사랑이었다.

때때로 넓은 밤하늘은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랑을 더 생각해보라고 반짝이는 언어로 우리에게 속삭인다. 하늘의 보좌를 구유와 바꾸시고, 경배하는 천사들의 수행을 가축의 외양간과 바꾸신 그 희생에 대하여 더 명상해 보라고...
때때로 끝없는 바다는 쉴새없는 파도로 밀려와 출렁이며 우리에게 노래부른다. 인간의 마음의 통로를 통하여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내려오는 모든 형태의 부성애와 모성애,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흐르는 모든 종류의 사랑의 샘들은 무한하고 끝없는 대양같은 하나님의 사랑에 비교할 때 너무나도 작은 실개천에 불과하다고...

깊은 심연을 넘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신비! 그 신비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는 여러 해를 두고 연구한다해도 여전히 무한한 피안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으리라!

권두언


강병국 목사

기독교회의 역사는 마치 바닷물이 밀물 썰물로 그 조수를 바꾸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교회가 영적으로 발전하는가 하면 다시 배도와 타락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개혁과 부흥으로 일어서고, 그리고는 다시 타협과 부패로 점철되는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는 모습들이 기독교회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당신의 교회를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돌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교회가 하나님과 협력하지 않는한 하나님께서도 마음대로 하실 수가 없습니다. 집 나가는 자식을 부모들이 집에 있도록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손이 마귀와의 전쟁에서 그 전쟁의 규칙들 때문에 묶여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마음대로 주물러서 지구의 역사를 끝내버리지 못하시는 심정이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하시면 마귀도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셔야 하는 안타까운 실정을 누가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현재 하나님의 교회는 다시금 핍박과 순교의 시대로 접어들려 하고 있습니다. 순교자의 시대의 조수가 다시 밀려오려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많은 경우에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진리를 전할 수 있었던 시대들은 핍박과 순교의 시대들이었습니다. 생명을 바쳐가면서까지 진리와 말씀을 수호하고 높이는 모습들을 보고나서야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서 순교자들이 외쳐온 진리들에 관심들을 가지고 다시 살펴보는 기회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짐승의 표의 환란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 처해 있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이렇게 통신이 발달된 때가 없었습니다. 온 세상이 서로 일일 생활권에 들어 있을 정도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지금 오류와 비성경적인 사상들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공언하에 잘못된 가르침들로 인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비상수단을 허용하실 것입니다. 다시 순교자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과거 개국이래로 없던 환란이 이르러 오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을 잠에서 깨우는 외침들이 곳곳에서 들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과거의 순교자들의 생애들을 다시 살펴보는 일은 경우에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번호를 통하여 큰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 속에 임하시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달콤한 파괴자


“북 베트남을 진정으로 정복하고 싶다면 미군 군용품을 투하하면 됩니다. 설탕과 캔디, 초콜릿, 콜라 등을 말이죠. 이것들은 폭탄보다 더 빨리 사람들을 파멸시킬 것입니다” - William Dufty의 저서 “슈가 블루스” 中에서 -

베트남 전쟁 이후 베트남 주민들 사이에서는 전에 보지 못했던 괴질이 유행했다. 원인모를 고열과 함께 극심한 피로가 엄습하면서 다리가 붓고 아픈 증세가 주로 미군이 주도했던 막사 주변에 살던 주민들에게 집단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전문가들의 조사결과 그것은 “베리 베리”라고 불리는 질환이었다. “베리 베리”란 “쇠약하다” 라는 뜻의 세네갈 언어로 의학적으로 비타민B 결핍증을 말한다. 흔히 “각기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다리의 기운이 빠진다는 의미에서 명명된 것이다. 그런데 건강했던 주민들에게 느닷없이 이 각기병이 생긴 이유는 미군이 남긴 군수물자에 다량으로 포함된 설탕을 즐겨 먹었기 때문이다.

비타민 B1(티아민)이 부족하면 신경이나 순환계에 장해가 오고 말초신경염이 발생하여 마비되고, 각기병으로 발전하며 각종심혈관계의 이상이나 수종, 식욕감퇴, 신경통, 졸림증, 권태증, 나른한 상태, 특별히 임산부는 입덧이 심해지는 등의 여러 증세가 나타난다. 과거에 도정하지 않은 현미 쌀을 즐겨먹던 베트남 주민들에게 각기병은 없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혀가 설탕의 단맛에 길들여지면서 각기병이 발생한 것이다.

설탕에 대하여

오늘날 패스트푸드 등의 가공식품의 확산으로 설탕의 소비량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어 설탕은 이미 우리생활 구석구석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설탕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티아민의 흡수와 대사가 억제된다. 설탕의 다량섭취도 문제지만 설탕 같은 단순당질을 어떠한 형태의 식품으로 섭취하는 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설탕처럼 빨리 소화되는 당질은 반드시 흡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섬유질이 풍부한 식품과 함께 섭취해야 한다. 왜냐하면 충분한 섬유질이 설탕의 피해를 일정 부분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바람직한 것은 섬유질과 비타민, 미네랄이 그대로 남아있는 자연 그대로의 식품을 섭취하는 것이다.

비타민 바이블의 작가 얼 민델씨는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설탕 속에 잠겨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유아용 조리법은 설탕으로 감미를 내게 되어 있고 어린이가 먹는 음식의 대부분도 마찬가지이다. 또 설탕은 수분을 유지 흡수하여 방부제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지도 않던 제품에도 설탕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자주 있다. 예를 들면) 소금, 땅콩버터, 야채통조림, 고형 스프가루 등.

우리가 햄버거에 쳐서 먹는 케첩에 아이스크림보다 8%가 더 많은 설탕이 들어 있으며, 복숭아 통조림은 무게의 20%가 설탕이다. 커피에 넣는 크림 대용품은 65%, 초콜릿은 51%가 설탕이고, 콜라에는 8.8%, 요구르트에는 13.7% 의 설탕이 함유되어 있다.

또 단맛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 설탕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감자튀김에도 튀기기 전에 감자자체를 설탕시럽에 절이기 때문에 설탕이 들어있다. 아무튼 현 시대의 사람들은 설탕을 과잉 섭취하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케이크, 단 푸딩, 페이스트리, 젤리, 잼은 소화불량의 주원인이 되는데, 특별히 우유와 계란과 설탕이 주요성분이 되어있는 카스타드와 푸딩류는 건강에 좋지 않다. 그러므로 건강하려면 우유와 설탕을 많이 쓰거나 함께 사용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설탕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

1. 면역력과 저항력을 떨어뜨린다.

설탕을 많이 섭취하면 감기에 잘 걸리고, 피부나 입안 등에 상처가 잘 생기며, 한번 생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백혈구의 일종인 단핵구의 숫자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단핵구란 세균 등의 이물질을 가장 먼저 포착해 아메바처럼 잡아먹는 면역의 최전방을 담당하는 백혈구이다.

많은 임상실험에서 실제 설탕섭취 전에는 하나의 백혈구당 45개의 세균을 잡아먹었으나, 설탕 섭취 후에는 고작 6.5개를 탐식하는데 그쳤다. 설탕을 평소 즐겨먹지 않던 사람이라도 설탕을 많이 먹으면 30분만 지나도 백혈구의 탐식작용 기능이 떨어져 면역력이 약화된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설탕의 또 다른 이름으로 회도(灰盜)라는 말이 쓰였다고 한다. 灰; 나무의 재‘회’, 盜; 훔칠‘도’- 灰盜(회도). 예로부터 灰(회) 자는 알카리 혹은 미네랄을 뜻하는 글자였다. 그래서 “회도”의 뜻은 미네랄을 훔친다는 뜻인데, 결국 설탕은 미네랄을 훔쳐서 몸의 기능과 균형을 깨뜨린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미네랄은 인체의 균형과 기능을 조절하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영양소이다.

2. 암세포의 먹이인 설탕물

전신온열요법으로 유명한 독일 풀다의 한 병원에서는 자궁경부암과 난소암에 걸린 여성암 환자들에게 치료를 하는데, 환자들을 옷을 벗은 상태로 누워 적외선을 전신에 쪼이게 하여 체온을 40도 가까이 올린 후, 혈관을 통해 10% 포도당을 주사한다. 이 병원의 전신온열요법을 담당하는 알렉산더 헤르초크 박사는 “정상세포는 주로 지방을 에너지 원료로 사용하는데 비해 암세포는 주로 포도당을 이용한다”고 말하면서, “암환자에게 포도당과 함께 열을 가하면 포도당이 급속하게 분해 되면서 젖산이 만들어지고 이 젖산이 암세포를 파괴한다” 고 설명했다. 암세포가 좋아하는 포도당이라는 설탕을 미끼로 암세포가 과도하게 신진대사를 하도록 유도하고 이때 만들어지는 젖산이 암세포를 파괴시키도록 고안한 치료법이라는 설명이다. 이 치료가 암환자들의 생존율을 실제 얼마나 향상시켰는지 여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포도당을 비롯한 설탕을 암세포가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다.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3~8배나 많은 포도당을 대사시킨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에서는 실제 동물의 포도당 섭취를 제한할 경우 암세포로 바뀌기 쉬운 암이 예방된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3. 설탕은 비만증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비만증을 가진 사람들의 식이에는 설탕이 많이 들어간 단 음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설탕은 사탕무나 사탕수수를 정제 가공한 식품으로 다른 영양소는 전혀 없이 99.5% 당질로만 이루어져 있고, 혈당을 올리는 단순당이므로 비만을 유발한다. 비만증은 대사 장애라는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당뇨병 및 지질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대사증후군 증가를 초래한다.

* 대사증후군이란? : 고혈압, 당뇨, 콜레스테롤 수치 증가 등 각종 성인병이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ex) 열량의 섭취과다는 비만유도 -> 비만해지면 인슐린 표적장기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수용체의 숫자 감소 -> 수용체가 감소하면 필요한 인슐린 요구량 증가 -> 인슐린 요구량이 증가하면 혈중 인슐린이 항상 많아지고 -> 고인슐린혈증 일으키며 식욕 증가시킴 -> 식욕 증진되면 열량과다섭취로 비만증 초래.

* 대사증후군 진단법

혈압을 측정하여 수축기혈압 : 130mmhg 이상, 이완기혈압 : 85mmhg 이상일 때,
혈당을 측정하여 공복혈당이 110mg/dl 이상일 때.
지방을 측정하여 중성지방이 150mg/dl 이상일 때,
고밀도 콜레스테롤이 남성: 40mg/dl 미만, 여성: 50mg/dl 미만일 때,

위의 증상 중 3가지 이상이 해당되면 대사 증후군으로 진단할 수 있다.

4. 설탕은 치명적인 저혈당증을 유발한다.

설탕은 혈당을 급속하게 올리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혈당이 갑자기 떨어지는 저혈당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문제는 고혈당증이 당뇨와 비만 등 성인병을 일으키는 것처럼 저혈당증도 건강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저혈당증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장기가 바로 인간의 뇌이다. 뇌세포는 지방이나 단백질 혹은 포도당을 제외한 다른 탄수화물을 일절 에너지원으로 이용하지 못한다. 오직 포도당만을 사용한다. 포도당이 있어야 뇌가 작동해 사고와 기억 등 정신활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저혈당증에 빠지면 뇌기능이 떨어져 학습장애와 업무능률 저하 등 부작용이 생긴다. 운전이나 위험한 작업을 할 때에는 부주의로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심지어 설탕으로 인한 저혈당증이 폭력성과 충동적인 성격을 유발한다는 보도도 있다.

일본 이와테 대학 명예교수 오오사와 히로시 교수는 “설탕 섭취로 저혈당이 되면 항상 초조하고 신경이 과민해지며 이유 없이 공포에 질리거나 불안에 떠는 증상이 나타난다. 또 떨어진 혈당을 회복하기 위해 부신에서 아드레날린이라는 비상시 분비되는 호르몬이 분비 되어 사람을 공격적으로 만든다.” 고 말했다.

- 저혈당 증세 check -

1. 배가 고픈 것을 참지 못한다.
2. 밥을 제 때 안 먹으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3. 밥을 제 때 안 먹으면 안절부절 해지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4. 눈물이 많아지고, 눈에 까만 점이 아른거린다.
5. 갑자기 일어날 때 어지럽고 자주 졸린다.
6. 신경질과 짜증이 늘어난다.
7. 마음이 허전하고 불안, 초조하며 우울해진다.
8.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
9. 저녁식사 전에 많이 나른해진다.
10. 조금만 걸어도 힘들고 오래 서 있기 힘들다.
11. 피곤함과 무기력감을 느낀다.
12. 여드름이나 종기가 잘 생긴다.
13. 흉터가 잘 없어지지 않는다.
14. 두통을 심하게 경험한 후 음식섭취 후 경감된다.
15. 소리나 빛에 민감하다.
16. 한숨이 나고 하품이 자주 난다.
17. 식사를 잘 거른다.
18. 한꺼번에 과식이나 폭식을 하는 편이다.
19. 단 것을 좋아한다.
20. 커피, 콜라와 같은 자극성음료에 대한 욕구가 강렬하다.
21.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증후군” (주의가 산만하고 인내력이 없고 요구사항이 있을 때 즉시 충족되어야 하는 아이들. 공격적인 성향이 보이는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증상) 과 같은 증상 자주 발생.

- 위 항목 중에 1.2.3을 포함하여 10개 이상의 항목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잘못된 식생활에 의한 저혈당증이 의심되므로 정확한 검사와 식생활의 개선이 요구된다.

설탕 같은 단순당질 섭취가 습관화되고 생활화되면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을 자극하여 췌장은 비대해지고 지쳐간다. 그러면 췌장은 계속적으로 과도한 인슐린을 만들어가는 도중에 인체는 뭔가를 많이 먹든 적게 먹든 혈당을 급속하게 떨어뜨리게 되고 습관적인 저혈당 상태를 만들게 된다. 이 단계를 지나 췌장의 기능이 떨어지면 당뇨병의 발병확률도 함께 증가한다.

이와 같이 섬유질 없이 단순당을 섭취하면 충치질환,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비만증, 영양실조와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감소한다. 또한 혈액 내 고농도의 혈당은 LDL콜레스테롤과 결합한 물질이 혈관 내벽을 손상시켜 동맥경화를 촉진한다. 당과 결합(당화)한 LDL은 산화 LDL이라서 심장질환의 위험률을 높인다.

*건강생활을 하려면*

1. 운동

운동은 혈당을 낮추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움직이는 근육은 인슐린에 대한 저항력을 낮추는데 규칙적인 운동은 인슐린 민감성을 향상시킨다. 다시 말하면, 운동은 당뇨 환자들에게 인슐린처럼 작용한다. 조스린의 당뇨의학 교과서에 의하면 운동 부족은 사람이 늙어가면서 인슐린 저항이 증가하는 “중요한 요인” 이라 한다. 오늘날은 운동 부족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과로로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다.

2. 좋은 음식, 올바른 식사법

흰쌀, 흰 밀가루, 흰 설탕, 고도로 정제된 정제유와 같은 영양가가 하나도 없는 junk food(텅빈 열량식품), empty calorie 대신 우리는 열량을 자연식품인 과일, 곡류, 야채와 같은 양질의 복합탄수화물을 공급하자. 또한 식물성 단백질과 함께 이상적인 지방섭취는 주로 호두, 땅콩, 아몬드, 캐쉬넛, 잣 등의 견과류와 참깨, 들깨와 같은 종실류에서 얻어지는 불포화지방산과 오메가 3지방으로 섭취하자.

현대 생활 습관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데 가장 좋은 고탄수화물 식사와 고섬유질식사 즉, 풍부한 양의 복합탄수화물과 섬유질이 풍부한 과일, 통곡식과 야채의 섭취를 습관화하게 될 때 음식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음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와 아울러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좋지 못한 식사법 과식, 간식, 폭식, 늦은 저녁식사와 같은 식사법을 버리고 올바른 음식물 배합법과 조리방법(가급적 기름에 튀기고, 지지고, 볶아서 산화시키는 조리법을 배제하고 천연 그대로 또 천연의 맛을 살리면서 견과류와 종실류로 맛을 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최고의 지혜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몸이 마음의 종이 되어야 하는데 마음이 몸의 종이 되어 왜곡된 식욕의 노예가 되어 있다면, 이것을 다스리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재창조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도록 하자.

서론 - 순교자의 신앙을 본받아서


현시대처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순교자”라는 단어는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순교”라는 것은 옛날 초기 기독교 시대나 중세기 때처럼 종교의 자유가 없던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머지않은 장래에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요한 계시록 6장 9~11절은 다섯째 인을 떼실 때(다섯째 인 시대에) 순교자들이 많이 생겨날 것을 예언하였고, 앞으로도 순교자들이 생겨날 것을 말하고 있다. 즉, 순교자들의 수가 차기까지 또 다른 순교가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며 요한 계시록 13장 15~18절은 마지막 때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과 뜻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 남은 무리들은 환란과 핍박과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종내는 승리하여 하늘을 보상으로 받을 것이지만...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5).

옛날,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중세기 종교 암흑시대를 지나는 수백 년의 세월에 걸쳐 하나님께 충성하는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그들은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어긋나는 일은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으며, 성경과 맞지 않는 오류나 가르침에는 목숨을 걸고 반대하였을 뿐 아니라, 한치의 타협함도 없이 진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고문과 핍박과 고통을 감수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히 11:15) 사람들이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순교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런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보다, 자신의 가족보다, 자신의 명예보다, 자신의 안일한 삶보다, 세상의 인정보다, 무엇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의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그리하여 온 우주에 누가 과연 목숨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진리에 충성하는 당신의 참 백성인지를 들어올리시고 보이시기를 원하고 계신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는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다루어 보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불원한 장래에 이루어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순교를 하라는 부르심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불에 태워지는 화형과 물에 빠뜨려 죽는 것과 칼과 태형과 살이 찢어짐을 당하는 고문과 그 외에 수많은 끔찍하고 무서운 고문들과 죽음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로 하나님께 충성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 사랑에 보답하고 싶은 충성심이었을 것이며, 또한 그들로 그 모든 무서운 고문들을 견디고 평화스럽게 하나님을 찬송하며 죽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성령의 충만하신 능력과 내재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기사가 독자 여러분들의 신앙에 큰 활력소가 되기를 바란다.

순교자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순교자에 대한 이야기는 요즘 같은 시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순교에 대한 얘기는 설교에서나 아주 가끔 들을 수 있는 주제일지도 모르고, 그것도 아니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어떤 이야기쯤으로 우리에게 들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순교를 당한 사람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들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실리는 이야기들은 순교자의 생애를 직접 목격하고 들은 죤 폭스의 역사적인 생생한 증언과 그의 저서를 바탕으로 한 실화들을 편집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죤 폭스의 생애를 살펴보자. 죤 폭스는 151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명석한 두뇌와 깨끗한 도덕적인 삶은 26세라는 어린 나이로 천주교 대학인 마그달린 대학의 특별 연구원으로 선출되게 하였으며, 로마 교회의 흥망의 원인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는 종교사를 연구하였다. 그는 불과 30세의 나이로 헬라와 라틴 교부들의 작품들, 스콜라 신학자들의 논쟁들, 의회의 조례들을 읽고 교회사에 정통하게 되었으며, 또 성서를 원문으로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성서를 연구하여 올바른 진리를 알게 된 후, 그는 프로테스탄트(개신교도)가 되었다. 그가 이단이라는 의혹을 받게 되자 그는 연구원 직에서 밀려나든지, 옥스포드 대학에 사표를 내고 떠나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그의 계부였던 아버지는 상속 재산을 주지 않고 보류하였고, 그는 많은 고난과 궁핍함을 겪다가 놀포크 공작의 손자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가 되었다. 메리 여왕이 왕위를 계승한 후 악독한 가드너 감독이 그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였으나, 어떤 공작의 도움으로 대륙으로 피하여 생명을 건지게 되었으며, 1587년 70세를 일기로 죽기까지 훌륭하게 목회와 책 쓰기에 전념하였다. 그의 선한 행적과 용기와 신념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하였고, 엘리자베스 여왕도 그를 “우리들의 아버지, 폭스”라고 불렀다.

이 이야기들은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 중 하나인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증언한 “위대한 순교자들”이란 책에서 발췌하여 편집한 실화들이다.

한 가지 더 부연하여 설명하자면, 독자가 이 역사적인 증언과 이야기들을 읽을 때, 이 이야기들에 나오는 순교자들이 당했던 고문과 죽음의 방법들은 인간이 차마 목격하고 읽기조차도 힘든 방법들이 동원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와 같이 연약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로서 그런 잔인하고 무서운 고문과 죽음을 기쁘고 용감하게 감당해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 순교자들을 도우신 하나님의 능력과 강력한 성령의 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시대별로 순교자의 이야기를 구별하여 엮어보았다. 죽기까지 충성한 그들의 신앙을 본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1부 - 12제자들의 생애와 순교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외롭고 슬펐으나 주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사명,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사랑하는 주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지만 그분께서 하늘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계시며, 세상 끝날까지 그분의 성령으로 함께 하실 것을 믿었다. 신약성서는 제자들과 사도들이 얼마나 오래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리스도 승천 이후 처음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 저술가들이나 사가들의 저서, 그리고 그들이 이 거룩한 사람들에 관하여 들은 전승이나 말들은 그들 모두가 복음을 전파하는 중 고통스럽고 어려운 삶을 살다가 순교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다.

1. 야고보 : 야고보는 세베데의 아들로서 갈릴리 사람이었고, 사도 요한의 형이었다. 야고보는 사도들 가운데 첫 번째로 순교 당한 사람이다. 헤롯 아그립바가 로마 황제 갈리굴라에 의하여 유대나라 총독이 되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고 특별히 제일 처음으로 야고보를 복수의 표적으로 내세웠다. 그가 죽게 되어 끌려 나왔을 때 그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한 사람이 그와 함께 형 집행 장소까지 함께 걸어갔다. 그 사람은 의심없이 야고보의 얼굴이 창백하게 되고 두려운 빛을 나타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오히려 큰 전쟁을 이긴 승리자처럼 기쁜 표정을 하고 있는 야고보를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크게 놀랐고 자기 옆에 죄수로 지목되어 죽으러 가는 이 사도가 믿는 구주가 참된 하나님이심에 틀림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죽음에 임하는 사람에게 그와 같은 즐거움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 자신도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자처하여 기독교에 전향하였으며, 사도 야고보와 함께 정죄를 받고 죽었다. 두 사람은 결과적으로 같은 날 같은 칼로 목베임을 당하였는데, 그 일이 일어난 때는 서기 44년이다.

2. 빌립 : 빌립은 복음을 전파하는 중요한 임무를 띠고 이방 나라에 보내졌는데, 특히 아시아 지방에서 설교하며 복음을 전파하도록 파견되었다. 그는 사도로서 열심히 일하였다. 그 때 그는 브리기아로 여행하였다. 그가 히에라볼리에 이르자 그 지방 주민들이 울상을 하며 큰 뱀을 예배하는 것을 보았다. 빌립은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그 뱀을 파괴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자 지도급에 있는 자들, 특히 미신을 이용하여 많은 돈을 번 제사장들은 화가 나서 그를 투옥시켰고, 그는 지독하게 채찍질을 당한 후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 일은 서기 52년의 일이었다.

3. 마태 : 세금 징수원이었으나 즐겨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른 마태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 9년 동안 유대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그의 복음서를 히브리 말로 기록한 후, 에디오피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고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그는 후에 파르디아로 갔는데 서기 60년경에 복음을 전하다가 목베임을 당하여 죽었다.

4. 마가 : 마가는 베드로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데 많이 도왔으며, 그의 복음서의 말들은 사실 베드로가 한 말들이 많다고 한다. 로마의 개종자들을 위하여 그는 헬라어로 복음서를 기록하였으며, 알렉산드리아와 리비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개종을 시키고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가 알렉산드리아에 돌아오자마자 몇 애굽 사람들이 그의 세력에 대해 질투를 느끼고 그를 죽일 것을 결정하였다. 그들의 음모로 마가는 붙잡히었고 그의 발은 함께 묶이어 거리로 끌려 다녀 상처가 생겼고 온 밤을 더러운 곳에서 피를 흘리었다. 다음 날 그들은 그의 몸을 불에 태웠다. 크리스챤들은 후에 그의 뼈를 조심스럽게 모아 잘 매장하였다고 한다.

5. 작은 야고보 : 사도 요한의 형과 구별하기 위하여 작은 야고보라 불렸으며, 예수님의 승천 후 예루살렘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모든 크리스챤들과 개종자들을 위하여 일반 서신(야고보 서)을 써서 오류를 막는데 최선을 다하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들은 이 때 크리스챤들에게 크게 분개하여 야고보에게 복수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들은 대중을 선동하여 그를 습격하여 넘어뜨리고 쳐서 상처를 내고 돌로 쳐 죽였다.

6. 안드레 : 베드로의 형제였던 안드레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헬라에 있는 파트레의 지방 총독은 안드레가 자기가 예배하는 우상을 공격하는 설교를 하자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안드레는 굽히지 않고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과 복음에 대해서 설교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붙잡혀 길이가 꼭 같은 두 조각의 나무로 만들어진 높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좀 더 천천히 죽도록 하기 위하여 못으로 박히지 않고 줄로 꽁꽁 묶이어졌다. 그 사도의 장엄하고 두려워할 줄 모르는 용기에 대해서 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안드레는 십자가가 준비된 것을 보았을 때 그의 안색이나 용모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전혀 괴로워하지 않는 가운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불타는 사랑이 가득 찬 말을 이렇게 외쳤다.” “오, 십자가여! 나는 그대를 몇 번이고 환영하며 쳐다본다. 나는 기쁨과 소원에 찬 즐거운 마음으로, 그대에게 와서 그대(십자가)에게 달렸던 분의 제자가 되었다. 나는 항상 그대(십자가)에게 달리신 나의 스승을 사랑하였고, 그 십자가를 늘 포옹하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오! 반가운 십자가여!” 안드레는 삼일 동안 내내 십자가에 달려서 무서운 고통을 당하였으나 계속해서 시종일관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라고 말하였다. 고통 중에 보이는 그의 태도에 감화를 받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기 시작하였고 총독에게 그를 십자가에서 내려놓자고 하였다. 그도 결국 그것을 거절하지 않고 명하여 밧줄을 끊게 하였으나 마지막 줄이 떨어질 때 사도의 몸은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7. 베드로 :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크리스챤들을 박해 하였고, 베드로를 포함한 몇 사도들은 붙잡혀 무서운 채찍질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벌을 강한 인내로 참으면서 그들의 구세주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는 것을 값진 것으로 생각하고 기뻐하기까지 하였다. 헤롯 아그립바가 야고보를 죽이자, 유대인들이 그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죽이려고 감옥에 가두었으나, 베드로는 밤에 주의 천사의 도우심으로 풀려나 계속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베드로는 많은 이적을 행하고 복음을 전한 후 로마로 갔다. 그 때 바울도 거기에 함께 있었다. 그 당시의 로마의 황제는 네로였는데, 그는 큰 도시에 불을 지르게 한 후 그 화제를 보고 즐거워하며 그 화제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리고 그들 가운데 수백 명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도록 명하였다. 이 때 로마에 시몬이라고 하는 마술사가 있었는데, 그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자처하였다. 그가 약속한 대로 어느 날 그가 공중을 나르는 것을 보려고 많은 무리가 모였다고 한다. 그 무리 가운데는 베드로와 바울도 있었다. 마술사 시몬은 처음에 실제로 어떤 놀라운 묘기를 보였고 사람들은 그 묘기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때 베드로와 바울이 무릎을 꿇고 그 마술사를 혼동케 해주시며 그의 행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자, 시몬은 그 즉시로 땅에 떨어졌고 그의 양 다리는 부러졌다. 네로 황제는 마술사 시몬을 대단히 좋아하였기 때문에 사도들에게 크게 노하였고, 특히 사도들이 자신의 가족 가운데 몇 사람을 기독교로 개종시키자 더욱 분노하여 그들을 9개월 동안 옥에 가두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들은 간수장들과 그 밖의 47명을 기독교로 개종시키었다. 9개월의 복역을 끝내고 베드로는 밖으로 끌려 나와 채찍질을 받은 후 머리를 거꾸로 하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는 자신이 그의 사랑하는 주님과 똑같은 방법으로 고난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죽을 때 스스로 이처럼 고통스러운 자세를 취하였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8. 유다 (야고보의 형제) : 유다는 보통 다데오라고 불리었다. 그는 파사로 보내져 많은 기적을 행하고 많은 사람을 개종시킴으로써 권력자들의 비난을 사게 되어 주후 72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9. 도마 : 도마는 파르디아와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개종시킨 후 이방 제사장들의 분노를 사서 창으로 찔려 순교를 당했다.

10. 시몬 : 마우리타니아와 아시아의 여러 지방에서 전도를 했으며 영국에서까지 크게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개종시킨 후 74년에 이방인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11. 요한 : 예수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제자로 알려진 요한은 헬라에 많은 교회를 세웠다. 그가 에베소에 있을 때, 도미시안 황제는 그를 로마에 보내어 끓는 기름가마 속에 던지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어 밧모섬으로 유배를 가서 요한 계시록이라는 놀라운 계시의 책을 썼다. 그는 나이가 많을 때까지 살다가 자연사 하였다고 한다.

12. 바울 : 유대인이고 베냐민 지파에 속한 바울은 처음에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으나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주님을 만나 예수님을 위한 사도가 되었다. 기적적인 개종을 한 후, 예루살렘에 가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사도들을 만나고 바나바와 같이 복음 전파에 나섰다. 그는 그가 만난 그리스도를 전파하다가 이고니움에서 성난 유대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거의 죽을 뻔 하였고, 또한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성 밖으로 끌려나가 버려져 죽을 지경에도 이르렀었고, 빌립보에서는 실라와 투옥되어 채찍질을 당했고, 데살로니가에서 많은 학대를 받았다. 바울은 후에 예루살렘으로 붙잡혀 가서 가이사랴로 보내졌으나 로마의 감옥으로 가게 되어 거기서 2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풀려 나와 헬라와 로마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고 골과 스페인에서 전도하였다. 그는 로마에 돌아와 9개월 동안 베드로와 함께 투옥되어 있다가 네로의 명령에 따라 칼로 목베임을 당함으로써 순교하였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다 순교를 당하였다. 혹은 칼로, 혹은 십자가로, 혹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하였으나, 그들이 그렇게 용감하고 또 기쁘게 죽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요, 그들의 스승이셨던 예수님의 사랑에 그들이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다는 기쁨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위해 충성하고 싶은 신앙과 성령의 사랑이 넘치고 있었으므로...

2부 - 제1차 박해, 네로 황제 시대(주후 64년)


네로 황제의 폭정

네로 황제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죽게 한 바로 잔인한 폭군이었다. 역사상 초대 교회에 있어서 “크리스챤에 대한 최초의 일반적인 박해”라고 말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네로 황제 때의 일이었다.

그는 로마 제국의 제 6대 황제로서 사도 바울이 고소를 당하였을 때에 호소하였던 바로 그 가이사(시이저) 황제이다.

네로는 그의 사악한 어머니 아그리피나(Agrippina)의 음흉한 간계로 겨우 16세의 나이로 황제에 즉위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인 당시 황제 클라우디어스(Claudius)와 그의 아들을 독살함으로써 전 남편과 낳은 아들 네로가 황제로 즉위할 길을 열어주었다. 네로는 결혼하여 옥타비아라는 아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지만 악명 높은 여자 사비아와 결혼하여 그녀의 지배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이를 반대하는 자기의 어머니와 본처를 교묘하게 죽였고, 점점 더 잔인하고 방탕하게 되어, 황제의 체면과 위신을 버리고 그 당시 유행하던 싸움의 현장인 투기장에 뛰어들어 투사들과 함께 피흘리는 장면에 참여하는 등 이상한 행각들을 일삼았으며, 황금의 집이라고 부르는 큰 궁전을 세우고 훌륭한 장식으로 채우느라 많은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았고 또 그들을 죽였다.

그 무렵 로마에 큰 불이 일어나 14구역 중 6개 구역이 파괴되었다. 6일 동안 불은 무섭게 타올랐고 또 다른 불이 반대 방향에서 타기 시작할 때에도 거의 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당황하였고, 또 네로 황제가 불타는 것을 보고 즐기기 위하여 불을 질렀다고 생각하였다. 불길이 높이 타오를 때 네로가 탑에 올라가 불타는 시가지를 보며 하프를 타며 노래를 불렀으며 “나는 모든 것이 파멸되는 것을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 퍼졌다. 네로는 그가 백성들에게 증오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왕위가 위태롭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빨리 거리로 나가 그의 재산이 다할 때까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돈을 뿌리며 무고한 크리스챤들을 화재의 주범으로 몰아가도록 소문을 퍼뜨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무정한 로마 사람들까지도 동정심을 일으키게 하는 여러 가지 무서운 방법으로 크리스챤들을 박해하고 고문하고 죽이는 일들이 시작되게 되었다.

박해의 방법

네로 당시의 크리스챤들은 잡히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그들은 아무 죄도 없이 다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잔인한 대접을 받았으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들은 그 무서운 박해와 고문과 죽음을 주님을 위한 고난으로 달게 받았다.

A. 어떤 사람들은 들짐승의 가죽을 입혀 꿰맨 후 사나운 개들이나 짐승들에게 쫓겨 기진맥진하여 죽게 하였고
B. 어떤 사람들은 밧줄로 묶어 던져서 중상을 입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서 황제의 궁전 동산에 높은 장대에 그 크리스챤들을 묶어 불에 타게 하며 네로는 그의 신하들을 대동하고 발코니에 앉아 그것을 자신의 “횃불”이라고 부르며 그 광경을 보고 그것을 즐기곤 하였다.
C. 원형극장 ; 투사들이라고 불리는 훈련된 무사들 사이에 또는 포로, 노예, 죄수 등과 야수들 사이에 죽음을 건 투쟁은 로마 사람들이 즐기는 오락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피비린내 나는 오락을 가장 많이 보여줄 수 있는 황제가 사람들의 우상이 되었다. 원형극장이라고 불리는 지붕이 없는 이 거대한 돌집에서 이런 경기가 열렸다. 원형극장은 좌석이 경사진 계단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거의 10만 관중을 위한 좌석이 만들어져 들어가게 지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의 대중들이 잔인하고 피 흘리는 광경을 보기 위하여 그곳으로 몰려 들었다. 그런데 피로 얼룩진 바로 이 투기장으로 많은 초대 크리스챤들이 끌려와 가장 무서운 형태의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 원형극장에서 많은 크리스챤들이 그들의 신앙을 이유로 죽음을 당하였는데, 그들이 죽임을 당한 방법은 오랫동안 굶긴 사자들에게 잡아 먹히거나, 십자가에 화형을 당하는 것, 그것도 아니면 사나운 짐승들과 싸우다가 죽게 하는 법등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당하였다.

카타콤의 크리스챤들

이 핍박받는 암흑시대에 크리스챤들은 교회가 없었고 감히 사람들의 눈에 뜨이게 모이지 못하였다. 그들은 어디로 피난하든지 맹수처럼 추적당했다. 그래서 그들은 방해를 받지 않고 모일 수 있는 어떤 비밀 장소를 찾았는데, 그곳은 로마시 외곽의 카타콤이라고 불리우는 바위 속에 파진 깊은 터널 같이 생긴 굴이었다. 그것은 오래 전에 도시 건설용 돌을 얻기 위하여 파둔 것이었다. “카타콤”(Catacombs) 은 무수한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그것은 로마성 밖에 있는 언덕들 밑에 흙과 바위를 뚫고 만든 긴 굴들로 그물 모양으로 이리저리 뚫린 굴은 성밖 멀리 수십리의 지점에까지 뻗어 있었다. 바위는 움푹 파져서 많은 복도가 있었고, 여기저기에는 둥근 천장이 있는 여러 개의 작은 방들이 있었다. 노예나 죄수들이 이곳에서 일을 하였고, 또 그 당시에 죽은 시체를 이런 굴 속에나 복도 옆에 파놓은 움푹한 곳에 장사 지냈다. 여기가 크리스챤들이 숨기에 안전한 곳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지하의 피난처에 죽은 그리스도인들의 시체를 묻었다. 또한 그들이 의심을 받고 그들에게서 법률의 보호가 제거되었을 때 여기서 살았다. 그리고 거기서 그들은 사자에게 던져지고 불꽃에 던져진다는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그들이 당한 고통과 시련을 서로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서로서로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진지한 기도의 응답으로 받은 축복들을 간증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구세주가 피흘리신 것을 기념하는 성만찬 예식에 참여하고 그 사랑의 잔치가 끝나면 서로의 평안을 빌며 입맞추며 헤어졌다. 그 시대에는 모든 크리스챤이 하나의 선교사였다. 군인은 군인들을, 죄수는 그의 간수장을 그리스도에게 데려오려고 했으며, 여종은 그녀의 마님의 귀에 복음을 속삭였고, 젊은 아내는 그녀의 남편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믿음과 신앙의 기쁨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기 원하여 그들의 모든 열심을 다 쏟았으며, 박해와 고문과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기 위해 그들의 힘을 다하였다. 이렇게 해서 크리스챤의 수는 빨리 증가하게 되었다.

로마에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믿는 비밀모임이 있다는 소문이 해외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국가의 안전을 위하여 신들을 경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던 통치자들은 놀라게 되었고, 국가의 신들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크리스챤들을 반대할 목적으로 명을 내리고 그들의 비밀모임을 금지하였다. 그리하여 세상에 일어나는 어떤 재난 - 페스트, 화재, 기근, 홍수 - 이 일어날 때는 그것이 반대를 받는 신들의 노여움을 산 데서 온 것이라고 하여 크리스챤들을 비난하게 되었다. 그러나 박해를 아무리 하여도 날로 늘어나는 개종자들을 어쩔 수 없었다. 박해는 오히려 그들의 수를 증가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뿐이었다. 왜냐하면 크리스챤들에게는 죽음이 영원한 행복의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몇 순교자의 이름

* 아리스타커스 : 이 사람은 사도 바울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후 바울을 따라 에베소, 그리이스, 아시아의 여러 곳, 유대를 다니며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는 바울과 함께 로마에 가서 확신에 찬 설교와 진리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고 예수님을 위한 열렬한 신앙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던 그는 결국 크리스챤이라는 죄목으로 잡혀 고통을 받고 네로의 명령으로 목베임을 당해 죽었다.
* 트로피모 : 에베소에서 태어난 트로피모도 바울에 의해 개종한 사람으로 바울을 도와 스페인과 골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밤낮을 모르고 그가 알게 된 주님을 전파하기 위하여 애쓰다가 신앙 때문에 붙잡히어 네로에 의해 목베임을 당했다.
* 에라스도 : 고린도 출납 공무원이었던 에라스도도 바울의 전도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복음을 받아들인 후 그의 직장과 가정과 모든 것을 떠나 바울을 따라 복음전파에 힘쓰다가 빌립보에서 이방인들에게 많은 고문과 학대를 당한 후 순교하였다.
* 요셉과 아나니아 : 요셉은 제자들을 보선할 때 맛디아와 함께 추천되었던 사람으로 유대지방의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으며, 끝내 그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아나니아는 바울의 눈을 안수했던 사람으로 70인 제자 중에 하나였고, 다마스커스에서 순교 당하였다.

많은 크리스챤들은 아무 이유 없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란 이름 하나 때문에 무고히, 애매히 고난을 당하였다. 그러나 모진 고문과 위협과 죽음도 그들을 그리스도에게서, 아니 크리스챤이라고 불리는 그 특권에서 그들을 빼앗아갈 수 없었다.

3부 - 계속되는 박해와 순교


제2차 박해 ­ 도미시안 황제 시대(주후 85년)

도미시안 황제는 네로 못지않게 잔인하고 난폭한 폭군이었다. 그는 많은 크리스챤들을 죽였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거짓 고소를 당하게 하였다.

그 거짓고소들은 - 크리스챤들은 무질서하고 밤모임을 갖는다, 반역적이고 거친 정신을 가졌다, 어린 애들을 죽이고 그들을 먹는 식인종들이다, 로마를 괴롭히는 모든 재난, 곧 기근과 페스트와 지진들은 신들이 크리스챤들을 벌하기 위해 보냈다­ 는 것들이었다. 돈을 위해 무흠한 사람들을 고소하는 자들이 증가되었고, 그들의 신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이 크리스챤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형벌과 고문과 죽음을 당하였다. 그들이 당한 형벌은 여러 가지 였는데, 그것들은 투옥, 고문, 화형, 태형, 돌로 쳐죽이기, 장대에 달아 죽이기, 야생 동물로 위협하기, 높은 곳에서 강제로 떨어뜨리기, 들소의 뿔 위로 던져 죽게 하는 것 등등 이었고, 이렇게 잔인하게 죽인 후 시체를 매장할 권리마저도 주지 않았다.

몇 순교자의 이야기

* 디오니시우스 : 아테네에서 출생한 디오니시우스는 그리이스의 문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또 이집트에서 천문학을 배운 유식한 사람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로 시의 평의원이 되었다. 그는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후, 오만한 이방 평의원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겸손한 신자가 되었으며, 복음과 교회를 위해 아테네의 감독으로도 열심히 일하였다. 그는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고, 부도 명예도 다 가진 사람이었으나, 오로지 크리스챤이라는 이유로 붙잡혀 검으로 목베임을 당해 순교의 면류관을 받았다.

* 디모데 : 사도 바울의 제자이며 에베소의 감독이었던 디모데는 잘 알려진 대로 신실한 바울의 동역자였다. 그는 고린도, 예루살렘, 에베소, 데살로니가, 아테네로 다니며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돌보았다. 그는 투옥된 바울을 방문하고 에베소에 돌아와 97년까지 교회를 관리하였다. 그러던 중, 이방인들의 축제에는 사람들이 손에 지팡이를 들고 마스크를 쓰고 그들의 신상을 들고 거리로 다녀야 했는데, 디모데는 그 행렬을 만났을 때, 그것이 우상숭배라고 그것을 말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화가 나서 그를 막대기로 넘어뜨리고 무섭게 때리고 쳐서 이틀 후에 그 상처로 죽었다.

* 시므온과 플라비아 : 예루살렘의 감독 시므온은 매우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용감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잔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로마 원로원의 딸이며, 부한 가문에서 출생하여 고생을 모르고 자란 플라비아는 크리스챤이라는 이유로 쫓겨난 후 아무 권리도 없는 신세가 되어 홀로 폰도로 추방되었다.

* 니고데모 : 도미시안 황제 때 뛰어난 크리스챤으로 알려진 니고데모는 고통 당하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돕고 위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늘 옥에 감금된 사람들을 방문하였고 그들을 돕고 위로하며 그들의 믿음을 확고히 하였다. 그러던 중, 이 일이 알려져 붙잡힌 후 심한 매를 맞고 죽었다.


제 3차 박해 ­ 트라얀 황제 시대(주후 108년)

도미시안 황제를 계승하여 네르바 다음에 트라얀이 횡제로 즉위하자, 크리스챤들의 제 3차 박해가 시작되었다. 박해가 너무 심하자, 이방인 철학자 플리세니오 세쿤도가 크리스챤들이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닌 것을 밝히는 편지를 써서 보냈으나 그 간청은 들어진 바 되지 않았다.

포카스와 다른 사람들이 당한 잔인한 고문

* 포카스 : 포카스는 본도에 살던 신실한 크리스챤이었다. 그는 열심으로 교인들을 돌보았으며, 교회의 감독으로 책임감 있게 일하였다. 그 당시 크리스챤들이 잡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포기하고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드릴 것을 강요 받았다. 포카스는 잡혀가 넵튠신에게 제사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나는 하늘과 땅에 한 분이신 나의 하나님과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경배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계속되는 심문과 강요에도 굽히지 않자 행정관들은 그를 끓고 있는 석회 굽는 큰 솥 속으로 던졌다. 그러다가 다시 거기서 그를 꺼내 끓는 물통 속에 그를 던졌다. 그는 거기서 예수님을 위해 죽는 것을 큰 특권으로 여기며 찬송을 부르며 죽었다.

* 이그나시우스 : 이 거룩한 사람은 어린 아이였을 때,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실 때 본보기로 그리스도에 의해 앞으로 불림을 받았던 아이였다는 전승이 있다. 그는 사도 요한에게서 복음을 받았고, 대단히 진실하고 선교열이 많은 사람으로서 후에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황제 앞에서 그리스도의 신앙을 담대히 변호하였다. 그것 때문에 투옥되었고, 또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는 잔인하게 매를 맞았고, 그의 몸은 칼로 난도질이 되었으며, 기름적신 나무에 묶이어 불타게 되었다. 그러다가 도중에 들짐승들에게 던져져 그의 몸은 산산조각으로 찢기어 죽었다. 그는 그의 무서운 운명을 알고 서머나의 감독 폴리갑에게 이렇게 편지하였다. “나는 하나님께, 나를 위해 예비된 짐승들이 와서 그들이 큰 입들을 벌리고 달려와 지체 없이 나를 삼키는 것에 준비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가 기도한 대로 주님을 위하여 기쁨으로 잔인한 고문과 순교를 받아들였다.

* 심포로사와 일곱 아들들 : 심포로사는 과부였는데, 그녀의 일곱 아들들과 함께 이방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신실한 크리스챤으로서 겸손하게 그러나 명료하게 그 명령을 거절하자, 황제는 화가 나서 그 여인을 헐큘리스의 신전으로 옮기라고 명하였다. 그녀는 거기서 매를 맞고 얼마 동안 그녀의 머리털로 묶이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큰 돌 하나를 그녀의 목에 달은 후 강물 속으로 던져 죽게 하였다. 그녀의 아들들은 일곱 장대에 묶이어 밧줄과 도르래로 끌어올려졌기 때문에 그들의 수족은 제대로 되어있지 못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무서운 고문도 예수님을 위한 그들의 사랑과 결심을 바꾸게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은 모양으로 죽게 되었다. 장자 크레세티오는 목을 단도로 찔리어 죽었고, 둘째 아들 율리안은 가슴에, 세째 아들 네케시오는 심장에, 네째 아들 프리미티오는 중심부에, 다섯째 아들 욱스티스는 등에, 여섯째 아들 스탁테우스는 옆구리에 각각 단도로 찔리어 죽었고, 가장 나이 어린 아들인 유게니우스는 톱으로 조각 조각 내어 죽임을 당하였다. 그 온 가족의 놀랍고 용기있는 신앙은 많은 크리스챤들에게 큰 감동을 끼쳤다.

* 장수 유스타키오 : 그는 용감한 로마의 장수로 많은 승전기록을 냈다. 그는 황제에게서 우상숭배의 제사에 참여하여 그가 승리한 것들을 축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그 명령을 거절할 만큼 컸다. 무자비한 황제는 그가 복종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나서, 지난 날 그가 그토록 숙련되고 용감한 장교로서 봉사한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와 그의 전 가족에게 사형언도를 내려 처형시켰다. 그는 아무 불평도 없이 가족과 함께 기쁘게 순교 당하였다.

그 외에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의 자리에 나아갔으며, 무섭고 잔인한 고문에도 굽히지 않았다.

 

4부 - 또 다른 순교자들의 이야기 1


제4차 박해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통치기간 (주후 163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덕스러운 통치가이기는 하였으나, 크리스챤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몰랐고 또 무관심하였다.

그 당시 아시아와 골 지방에서 일어난 박해는 얼마나 잔인했던지 구경하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보기만 하여도 무서워 떨었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용기에 놀랐다는 말이 전해진다. 어떤 순교자들은 이미 상처가 나있는 발로 가시와 못과 날카로운 조개껍질 위를 걸어가야만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근육과 핏줄이 터져나올 때까지 매를 맞았다. 그들은 가장 참기 어려운 고문을 당한 후 결국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였다.

폴리갑의 이야기

폴리갑은 사도 요한에 의하여 개종한 후, 그의 평생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모두 바쳤다. 그는 86세의 노인으로서 그 잔인한 순교에 임하게 되었는데 그 배경의 이야기를 어떤 역사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게르마니쿠스라고 불리는 한 나이 어린 크리스챤은 그의 신앙 때문에 들짐승에게 갈기갈기 찢기는 형을 받았는데, 놀라우리만큼 용감하게 행동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보던 몇몇 구경꾼들은 즉석에서 크리스챤이 되기로 결심하고 개종하여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한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화가 크게 나서 “그 사람들을 크리스챤과 같이 죽이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최근에 자기 고향인 프리지아에서 온 퀸투스라는 사람이 그 광경과 소란스러운 소리와 들짐승들이 굶주려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크게 감동되어 재판석으로 달려가 판사를 공공연히 비난하였다. 그는 이것 때문에 당장 죽임을 당하였다. 그 때 갑자기 크리스챤을 원수로 여기는 어떤 사람들이 “모든 사악한 사람들, 크리스챤들을 파멸하라! 교회 감독 폴리갑을 잡으라!”고 소리치기 시작하자 곧 큰 소요가 일어났다.

폴리갑은 자기가 크게 위험한 지경에 있다는 것을 듣고 피하였으나 밤에 자신의 침대가 갑자기 불에 타서 순식간에 소멸되는 꿈을 꾸었다. 그러자 그는 그가 순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고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을 반갑게 맞았다. 그를 잡으러 온 사람들은 그의 청명하고 기쁨에 찬 얼굴을 보고 놀랐다. 그는 그들을 기쁘게 대접한 한 후 마지막으로 기도할 시간을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는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열심히 기도한 후, 산채로 끌려가 화형 될 것을 언도 받고 형장으로 끌려갔다.

그는 화형주에 묶인 후에도 하늘에 닿는 기도를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불이 나무에 놓아졌고 불꽃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형을 집행하는 사람들도 불이 너무 뜨거워 비틀거리며 비켜섰다. 그러나 그 순교자는 불에 타는 동안 내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불렀고 오랫동안 거기에서 소실되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탄 나무에서는 굉장한 향기가 나와 주위에 향기를 가득 퍼뜨리는 것이었다. 형 집행관들은 이러한 기적을 보고 그의 생명을 끊기로 결정하여 그의 몸을 창으로 찔렀다. 그들은 여러 번 그렇게 한 후에야 그를 죽일 수 있었다. 후에 어떤 역사가는 말하기를 그가 자신을 화형시킬 화형대를 향해 나아가며 “오! 나를 태우려는 저 불꽃이 아름다운 장미 꽃 같구나!”라고 소리치며 자신이 그의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것을 기뻐했다고 하며, 또한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할 것을 강요 받자, “주님은 평생 동안 나를 한번도 부인하신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내가 나의 주님을 부인할 수 있겠소?”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 폴리갑은 주님을 위해 이렇게 그의 생애를 불꽃 위에 바쳤으며, 아직도 후세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놀라운 감동을 주는 순교자로 기억되고 있다.

로마의 한 여인과 그녀의 아들들의 이야기

유능하고 높은 지위에 있던 로마의 여인 페리찌타타스는 독실한 크리스챤이었다. 그녀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어머니로부터 경건한 그리스도인 교육을 받았다. 이 때 온 제국이 지진과 기근과 홍수로 크게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이런 재난이 일어난 것은 크리스챤 때문이라고 하여 많은 크리스챤들이 비난을 받고 잡혀 죽음을 당하였다. 페리치타타스 역시 그러한 비난을 받고 그녀의 가족들 모두가 붙잡히게 되었고 황제는 로마 총독 푸불리우스에게 명령을 내려 그녀에게 소송을 하게했다.

푸불리우스는 그녀에게 종교를 바꿀 것을 설복했지만 그녀의 신앙은 너무나 확고했고,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녀의 아들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하였으나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로마의 총독은 그녀의 아들들을 따로따로 심문하였으나 그들의 신앙은 모두 확고하였고 모두 그들의 믿음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나의 죄를 대속하시고 나를 구원하시려고 귀한 생명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나의 신앙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와 온 가족은 죽도록 판결이 내려졌다. 야누아리우스는 장남이었는데 태형을 맞고 무거운 것으로 내리 눌려 죽임을 당하였다. 그 다음 두 아들 필립과 펠릭스는 방망이로 머리를 맞아 죽었다. 네째 아들 실바누스는 벼랑에서 떠밀려 죽게 되었다. 그 다음 세 아들 알렉산더, 비탈리스, 마르티알리스는 모두 목베임을 당하였다. 그 어머니는 결국 그녀의 세 아들의 생명을 앗아간 같은 칼로 목베이어 죽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온 가족은 모두 예수님을 위하여 순교하게 되었다. 그들의 신앙은 머지않아 예수께서 오실 때 아름다운 보상으로 갚아질 것임에 틀림이 없다.

* 그 당시의 많은 크리스챤들은 하나님 대신 로마의 신들에게 경배하고 희생제물을 드릴 것을 강요 받았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렇게 큰 일이 아닌 것 같이 보였다. 예를 들어 쥬피터 신상 앞에 나가 경배를 한다든가, 향을 피우든가 하면 되는 가벼운 일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신앙에 흠이 가는 일은 추호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어떤 작은 행위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그들의 신앙을 부인하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비록 무서운 고문과 형벌과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지라도... 그리고 그렇게 무섭고 잔인한 죽음도 예수님을 위하여 당하는 것이므로 특권으로 여기고 기뻐하였다. 그들이 그 무서운 고문과 죽음의 고통을 그렇게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고문을 당하고 순교를 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크신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셨음을 의심할 수 없을 것 같다.

순교사에 기록된 이상한 현상

* 블랜디니아 : 블랜디니아는 신체가 몹시 약한 여자였는데, 크리스챤이었다. 그녀는 신앙의 이유로 붙잡혀 고문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약한 몸을 가진 그녀는 하늘로부터 놀랍고 큰 힘을 받아 어떤 고문에도 끄떡하지 않고 견디어내는 것이었다. 그녀를 고문하던 사람들은 싫증이 나게 되었고 그처럼 장시간 동안 어떻게 또 어떠한 결심으로 고문을 참을 수 있는지에 대해 놀라게 되었다.

* 쌍크투스 : 쌍크투스는 비엔나의 집사였는데, 고문을 받았으나 용기 백배하여 참았고 “나는 크리스챤이다!”라고 소리쳤을 뿐이다. 고문하는 사람들은 빨갛게 달은 구리 접시로 그의 신체의 부드러운 부분들을 지졌다. 그러나 그는 너무 확고한 태도를 하고 있었고 아무리 고문을 계속하여도 신앙을 취소하지 않기 때문에 감옥으로 보내졌다. 며칠 후 고문하던 사람들이 그를 다시 소환하여 보니 그의 상처는 다 나아 있었고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그를 계속해서 고문하였고, 결국 그의 생명을 취할 수 없게 되자 다시 감옥으로 보냈다가 목베임을 당해 죽게 하였다.

불에 타죽은 300명의 순교자들

희생자 수나 사형방법에 있어서 기독교 순교 역사에 기록된 가장 무서운 사건 가운데 하나가 고대 아프리카의 가장 큰 도시 우티카에서 일어났다. 그 지방의 총독에 의하여 300명의 크리스챤들이 석회 굽는 끓는 가마 옆으로 줄을 서게 되었으며, 또 가까이에 제단이 세워졌고, 사람들은 이방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드리든지 아니면 끓는 가마 속으로 던져지는 무서운 벌을 받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300명의 크리스챤들은 모두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을 거절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같이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은 무서운 죽음을 당하기 위하여 앞으로 뛰어들었다. 뜨거운 끓는 가마도 그들을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멈추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5부 - 또 다른 순교자들의 이야기 2


제5차 박해; 로마의 황제들의 통치 기간 (주후 200년)

참관인의 회개

로마의 군대 장교인 바실리데스는 포타미에나라는 크리스챤 여자의 형을 집행하는데 참관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는 그 여자의 용기 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에 크게 감동되었다.

그는 그런 무서운 죽음도 불사하게 만드는 신앙을 자신도 갖고 싶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그가 크리스챤이기 때문에 로마의 우상들에게 맹세할 수 없다고 말하자 처음에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참되다는 것이 증명되어 투옥 되었고 다음날 목베임을 당해 죽었다.

페르페투아의 이야기

이제 박해는 북 아프리카까지 확대 되었다. 거기도 로마의 통치구역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였다. 그 가운데 26세된 페르페투아라는 젊은 여자가 있었는데, 결혼하여 젖먹이 어린애가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뜨겁게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녀가 감금되어 있는 감옥으로 가서 그녀에게 기독교를 부인하도록 설득하였다. 그러나 페르페투아는 “아버지! 죄송해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제 결심은 바꿀 수가 없어요!”라고 하며 모든 간언을 물리쳤다. 그녀의 아버지는 크게 슬퍼하며 돌아갔다.

페르페투아는 지방총독 마누타우스 앞에 끌려가서 우상 앞에 제물을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녀가 그것을 거절하자 그녀는 어두운 굴 속에 던져 졌고 그녀의 아기는 빼앗겼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의 딸을 다시 방문하여 젖먹이 아기를 생각해서라도 기독교를 부인할 것을 간언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신앙에 확고히 서서 “아버지! 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가슴이 내려 앉는 듯한 슬픔을 가지고 돌아갔다.

드디어 형을 받는 날이 왔고 많은 크리스챤들이 하나 하나 끌려 나와 그들의 주와 종교를 버릴 것을 명령 받았으나 그들은 하나같이 그 명령을 거절하였다. 페르페투아의 차례가 왔다. 갑자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의 애기를 데리고 앞에 나타났다. “얘야, 너의 이 젖먹이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신앙을 포기한다고 해라!” 이 때 재판관도 감동되는 듯 다시 추가하여 그녀를 설득하기를 “네 아버지의 흰 머리를 감안하여 그에게 불효하지 말고 네 아기를 구하고 황제의 복지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간언에도, 사랑하는 아기의 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크리스챤들과 함께 그녀도 다음 휴일에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들짐승에게 죽임을 당하는 선언을 받았다. 형이 집행되기 전날 크리스챤들은 그들의 가족들의 방문을 받았다. 거기에는 슬픔에 잠긴 페르페투아의 아버지도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위로를 받지 못한 채 버려두지 않으셨다. 그렇게 무서운 죽음을 예상하면서도 그들은 용기 충천하였고, 하늘 영광의 밝은 빛이 그들의 얼굴에 왔는데, 페르페투아의 얼굴에서도 그 빛이 비쳐 나왔다.

드디어 그들이 죽임을 당할 날이 왔다. 페르페투아는 다른 크리스챤과 함께 승리의 찬송을 부르면서 나아갔다. 남자들은 표범과 곰에 의하여 산산이 찢어지도록 하였고, 페르페투아와 페리키타스라는 젊은 여인은 먼저 옷을 벗긴 후 그물에 싸서 높이 달아 올려 구경거리가 되게 했으나, 피의 장면을 즐기는 구경꾼들조차 그들이 옷은 입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그 여인들이 다시 투기장으로 옮겨지자 막대기로 미칠 듯이 날뛰게 만들어 놓은 황소를 그들 사이에 돌아다니게 하였다. 페리키타스는 황소에 받쳐 죽을 상처를 입었다. 페르페투아는 공중으로 높이 들려졌고 그녀의 머리는 흐트러졌으며 풀어진 옷은 쥐어 뜯기었다. 땅에 떨어진 그녀는 재빨리 옷을 걸치고 일어나 죽어가는 페리키타스를 격려하러 옆으로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황소는 더 이상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이 공중이 보는 앞에서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외침이 들렸다. 그들은 서로 입을 맞추고 투기장으로 끌려 나와 칼로 급히 처형되었다. 페르페투아는 경험이 없는 젊은 검사의 손에 맡겨졌는데, 그가 이 일에 익숙하지 않아 떨며 몇 번씩이나 효력 없이 상처만 입히려고 하자 그녀는 칼을 자기의 중요한 부분에 맞게 하여 죽었다. 이 젊은 여인의 굴하지 않는 믿음은 같은 그리스도인들 뿐아니라, 보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진한 감동을 주었고 순교사에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다.

제6차 일반 박해 (주후 235년 이후)

황제 막시미누스는 크리스챤들을 박해하였고 백성들에게 크리스챤들을 누구나 추적하여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크리스챤들은 어디를 가나 안전한 곳이 없었고, 하나님만을 그들의 피난처로 삼았다.

원로원들의 순교

박해를 당해 죽은 크리스챤들 중에는 그 당시 세력있던 로마의 원로원들도 많이 있었다. 로마 원로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파마키우스는 하나님을 믿는 그의 종교 때문에 그의 가족 모두와 다른 42명의 달하는 크리스챤들과 함께 같은 날 모두 목베임을 당했고 그들의 목들은 성문 위에 달아두었다. 다른 원로원으로서 고위 관리를 지낸 칼레포디우스는 크리스챤이라는 이유로 거리로 잔인하게 끌려간 후 목에 연자 맷돌을 매워 티베르 강 속으로 던져졌다.

* 크리스챤 고위 성직자였던 히폴리투스는 들말에 묶이어 그가 죽을 때까지 들판이나 돌밭이나 숲속으로 끌려다녔다.
* 이러한 박해가 계속되는 동안 크리스챤들은 심문도 없이 살해되었고 때때로 한 웅덩이에 50명~60명씩 함께 던져 매장되었다.

뱀과 전갈이 들어있는 가죽자루 속으로

율리안이라는 실리시아 태생의 크리스챤은 붙잡혀 자주 고문을 당하였지만 그대로 꿋꿋이 있었다. 그의 신앙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안 총독은 그를 대중으로부터 욕설을 듣게 하기 위하여 12개월 동안 이 도시 저 도시로 끌려 다니게 했으나 허사였다. 그는 온유하고 기쁘게 그 모진 고문들을 당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옷을 벗긴 채 많은 매를 맞은 후, 수 많은 뱀과 전갈이 들어있는 가죽자루 속에 넣어져서 바다로 던져졌다.

**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수많은 크리스챤들로 하여금, 그렇게 무서운 고문과 고통과 죽음을 꿋꿋이 당할 수 있도록 만든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그들을 잔인한 죽음 앞에서도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분명히 영의 눈을 뜨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천사들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옆에서 그들과 고난을 함께 당하시고 그것을 견딜 힘과 능력을 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들인가! 얼마나 놀라운 순교자들인가!

6부 - 종교 암흑시대의 도래(주후 1200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함

여러 세기 동안 수 만 명의 크리스챤들이 순교를 당했으나, 신앙과 기독교의 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순교자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면 흘릴 수록 더 많은 크리스챤들이 생겨났다.

핍박과 고문과 죽음은 그리스도교를 없앨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을 피로 인쳤고, 그것으로 인하여 복음은 더 널리 전파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핍박의 시대가 지나가고 겉으로 볼 때 크리스챤들에게 평화스러운 듯이 보이는 시대가 도래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주후 312년경, 콘스탄틴이 로마의 황제로 등극하여 사용한 로마의 융화정책으로 온 변화 때문이었다. 콘스탄틴 황제는 이교도들과 크리스챤들을 모두 수용하여 국가를 통합하려는 정책으로 그 자신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던 토요일 안식일을 이교도들이 태양신을 경배하던 일요일로 바꾸어 그 날을 공식적인 국가의 예배일로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계명인 넷째 계명이 사람의 권한으로 바뀌어지는 일이 생겼다. 이런 일들과 함께 기독교에는 많은 이교의 가르침과 예배 형식이 스며들었고, 핍박을 받을 때는 순결하던 하나님의 교회는 세속과 타협하게 되었다.

또한 이 일은 사도 바울의 예언한 것처럼 법왕권의 일어남과 그것이 초래할 큰 배도에 대한 길을 열어주었고, 또 교회 안에 스며 들어온 오류들로 법왕권의 가르침이 더욱 확립되도록 만들었다. 일찍이 바울은 법왕권과 적그리스도에 관하여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살후 2:3,4)리라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계속하여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살후 2:7)다고 형제들에게 경고하였다.

이교의 관습은 거의 드러나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양보와 순응주의적 정신은 교회가 이교 아래서 견뎌낸 맹렬한 박해로 말미암아 한동안 방지되었었다. 그러나 이제 박해가 그치고 그리스도교가 왕궁 안으로 들어가게 되자,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의 겸손한 단순성을 버리고 이교의 제사장이나 방백들의 교만과 허식을 따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사람의 이론과 유전으로 대체시켰다. “불법의 비밀”은 처음에는 조금씩 비밀리에 진전되었으나, 나중에는 세력이 커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더욱 공공연하게 기만적이요, 참람된 교리를 진척시켰다.

로마 천주교의 등장과 세력

크리스챤들의 교회는 벌써 오래 전에 이교도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교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교리가 적당히 섞여진 채로 로마는 기독교 국가처럼 행세하였고, 고대제국의 영역 안에서 거의 모든 세계는 로마를 신앙의 지상도성으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6세기에 법왕권은 확고하게 확립되었다. 그의 권좌는 로마에 위치하게 되었고, 로마의 감독은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공포되었다. 그들은 교황을 하늘의 가시적 중재자로 보았다. 이교는 그의 지위를 법왕에게 넘겨 주었다. 곧 용이 짐승에게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계 13:2)를 준 것이다. 이리하여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예언된 1260 년간의 법왕권의 박해가 시작되었다(단 7:25; 계 13:5-7 참조). 이제 교회와교회의 의식, 감독, 성직자들을 위하여 세워진 듯한 로마는 크리스챤들을 다스리는 거대한 힘을 강화시켰으며, 교회는 교황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과 가장 높은 교회의 공직을 차지한 사람들을 폭군으로 만듦으로써 그 사명의 끝을 맺었다. 어느새 교황의 힘과 그가 임명한 사람들의 힘은 절대적이 되었고, 그들이 세운 교회의 법이나 의식을 항거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은 한치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성경적이고 본질적인 신앙을 지키는 크리스챤들은 억압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로마의 전권적 율형에 대항하여 감히 그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자마자 “이단”이 되었다.

교황권이 하나님의 법을 변경시키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태양신을 섬기는 이교도였던 로마 제국의 콘스탄틴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자신의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면서 기독교회를 로마의 국교로 삼았는데, 이것을 기점으로 해서 수많은 정치인들과 이교도들이 황제의 뒤를 따라 그리스도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기독교회로 새로 개종한 황제는 이교도들의 반발을 막기 위하여 그들의 풍습과 전통인 우상을 만들어서 신전에 세우는 관습과, 그들이 태양신에게 예배 드리는 날을 기독교회가 수용해 줄 것을 요구하였는데, 교황권의 지도자들은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신 십계명을 변경시킴으로써 황제의 요구를 수락하였던 것이다.

박해의 시초 - 믿는 자가 믿는 자를 핍박함

프랑스의 왈도파 : 이 사람들이 역사에서 가지게 된 “왈도파”라는 이름은 그들의 지도자 피터 왈도에게서 유래한다. 왈도는 리옹의 부한 상인이었는데, 그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복음은 이렇게 전해져야겠다고 생각한 대로, 즉 가장 성서적이고 그리스도의 원래의 가르침에 맞는 복음대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왈도에게는 많은 추종자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사용하기 위하여 신약성서를 프랑스어로 옮기었다. 그와 그의 설교자들은 이곳 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삶을 살도록 권면하였고 그들을 성직자에게 데려오기보다는 오히려 구원으로 인도하는 지식을 얻기 위하여 성서로 돌아오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로마에 그 말이 전해지자 교황은 어떤 사람도 자기에게 먼저 그 특권을 받지 않고는 설교할 수 없다고 금지하는 명령을 보냈다. 그러나 왈도는 “나는 사람보다 오히려 하나님을 복종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것 때문에 그는 곧 출교당해 “이단자”가 되었고,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범법자로 여겨졌다. 로마 교황은 그런 무리들을 파괴하고 없애는 것은 크리스챤 교회가 전체적으로 나서서 협조할 의무라고 공포하고, 그들을 괴롭히고 박해하기 위해 여러가지 규정들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자, 그는 더 나아가 가지각색의 파문과 법규와 율령을 선포하였으므로 왈도파는 그 정부하에서는 어디에서고 안전을 기약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땅은 빼앗겼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를 당했으며 죽은 자들의 시체까지도 장례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도망가려고 하면 그들을 발견되는 대로 죽이라고 했다.

최초의 종교 재판관들

로마교회가 최초로 종교재판관들을 임명한 것은 왈도파와 그의 추종자들의 설교 때문이었다. 교황 이노쎈트 3세는 자신의 영향권 내에서는 사람들의 신앙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어떤 수도사들을 종교 재판관으로 임명하여 이단의 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하고 유죄 선고를 내리도록 하였다. 종교재판관들은 모든 나라에 파견되었으며, 그들의 세력은 제한을 받지 않았고, 그들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고소자들이 아무리 파렴치하여도 그들의 고소를 들었고, 가장 사랑스러운 친구나 친척도 종교 때문에 투옥된 사람은 이유없이 죽음과 고통을 당하여야 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왈도파나 또는 로마교회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성경을 그대로 따르는 독자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지면 그의 목숨과 재산은 끝장이었다.

종교재판소에서 일반적으로 집행되는 고문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다. 그곳에는 늘 무시무시한 살인도구들이 있었고 죄수들의 뼈와 사지를 늘어뜨려 어긋나게 하는데 쓰여지는 도르래와 밧줄, 뺀찌 등등 무서운 기구들이 있었는데, 몇 주일이고 고문을 하다가 결국에는 산채로 불에 태워 죽였다. 역사에 보면 스페인 세빌레 시에 세워진 종교재판소 소장으로 죽을 때까지 18년간 봉사한 토르크마다라는 성직자는 그의 임기 동안 10,220명이나 되는 사람을 산채로 불에 태워 죽였고, 97,322명의 재산을 몰수, 투옥시켰으며, 1808년 종교재판소가 파괴될 때까지 희생자의 수는 산채로 불에타죽은 사람이 31,912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웃지 못할 사실은, 그들이 이단자들을 이렇게 고문을 한 이유는 그들이 소위 말하는 이단(성경대로 믿는 기독교 신앙)을 믿는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하여, 그들이 이단을 믿는 것을 포기하게 하여야 지옥이나 연옥에 가서 받을 형벌이 감해진다고 믿었으므로 그 고문이 이단자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한 것이었다.

피드몬트의 왈도파

A. 진리의 보전자들 ; 로마 천주교가 장기간에 걸쳐서 최상권을 잡고 있는 동안 이 세상은 암흑으로 덮여 있었지마는, 진리의 빛은 아주 소멸되지 않았다. 로마의 관할 밖에 있는 나라들에는 여러 세기 동안 법왕교의 부패에 전혀 감염되지 아니한 그리스도인 단체들이 있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증인들,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의 중보자이심을 확실히 믿고, 성경을 인생의 유일한 지침으로 삼고, 참 안식일을 거룩히 구별하여 지키는 증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단자로 낙인이 찍히고, 그들의 동기는 비난을 받고, 그들의 품성은 중상을 받고, 그들의 저서들은 압수당하고 오전(誤傳)되고 삭제 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굳게 서서 오는 세대를 위한 신성한 유업으로써 그들의 순결한 믿음을 대대로 물려가며 간직하였다. 그들은 성경을 신앙의 유일한 표준으로 생각하고 성경에 있는 진리의 대부분을 고수해 왔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을 믿고 십계명 중의 넷째 계명인 참 안식일을 지켰다.

B. 암흑의 세력에 대항한 왈덴스인들 ; 이렇게 신실하게 신앙을 고수하며 법왕권의 침입을 저항한 사람들 중에서 왈도파 - “왈덴스인” (Waldenses)들이 최선봉에 섰다. 수백 년 동안 그들은 알프스 산맥 동부에 위치한 험한 산골짜기에서 피난처를 찾고 거기서 살았다. 그들은 법왕의 지위가 확립되어 있는 나라에 살면서도 그 허위와 부패를 꿋꿋이 저항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그들의 믿음의 순결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깊은 산골짜기나 험준한 산 속으로 피해 가서 거기서 자유로이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왈덴스”교도들이 몇 세기 동안 가르쳐 온 신앙은 로마로부터 나온 허위의 교리와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들의 종교적 신조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되었다. 세상과 차단된 궁벽한 곳에서 날마다 양떼를 치며 포도원을 가꾸는 매일의 고역에 시달리고 있는 비천한 그 농부들은 배교한 교회의 교리와 이설(異設)에 반대되는 진리를 자기들 스스로가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종교적 신조는 그들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C. 왈덴스인들의 신앙생활 ; 첩첩이 싸인 알프스 산악의 높은 성채들은 여러 세기를 통하여 박해를 받고 압박을 받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이 곳에서 중세기의 암흑을 뚫고 진리의 횃불이 계속하여 타올랐다. 후에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말틴 루터도 왈덴스인들의 가르침과 성경을 통하여 진리를 깨우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 머리 위에 높이 솟아 불변의 위엄을 지니고 있는 산들을 자녀들에게 가리키면서 언제나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또는 그 말씀이 영구히 서 있는 묏부리처럼 영원하신 이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은 고생스러운 그들의 운명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았고, 궁벽한 산중에 외로이 있으면서도 결코 외롭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의 분노와 강포를 피할 수 있는 한 피난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유롭게 경배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하였다. 때때로 원수들의 추격을 받았지만 험준한 그 산들이 견고한 산성이 되었다. 그들은 높은 절벽 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으나 로마의 군대들은 그들의 감사의 찬미를 침묵시킬 수 없었다.

D. 왈덴스인들의 교육사업 ; 왈덴스인들은 진리의 원칙을 집이나 토지나 친구나 친척이나, 심지어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그뿐만 아니라 그 원칙들을 젊은이의 마음에 철저히 새겨 주기 위하여 학교를 세웠고, 그들의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성경으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율법의 명령을 신성하게 여기도록 교육을 시켰다. 당시에는 성경의 사본이 매우 귀하였으므로 그들은 그 가운데 있는 귀중한 말씀들을 외웠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신구약 성경의 여러 곳을 반복하여 암송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 중에 목사를 세워 젊은이들을 목사에게서 교육을 받게 했다. 그들은 일반적인 학문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중요한 과목으로 배웠다. 그들은 또한 성경을 복사하여 기록하는 일도 하였다. 그들은 불굴의 노력으로, 때로는 어둡고 깊은 동굴 속에서 횃불의 희미한 불빛 아래 한절 두절, 또 한장 두장 성경을 베끼어 나아갔다.

어떤 청년들은 그 산간의 학교로부터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도시들에 있는 교육 기관으로 파견되었다. 그들은 어느 학교로 가든지 함부로 비밀을 드러내는 그런 벗을 사귀지 않았다. 그들의 의복은 가장 귀중한 보물인 성경 사본(聖經寫本)을 감출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수고하여 필기한 성경 사본을 가지고 다니면서 기회가 있는 대로 의심을 받지 않을 만큼 주의하면서 진리를 갈망하는 자로 인정되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부분을 보여주었다. 참된 신앙으로 회개한 사람들이 이러한 학교 안에 생겨났으므로 이따금 믿음의 원칙이 온 학교에 보급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법왕교의 지도자들이 아무리 세밀하게 조사를 할지라도 소위 부패케 하는 이단의 근원(根源)은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E. 왈덴스인들의 전도 ; 왈덴스인들은 유럽의 여러 백성들 중에서 최초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종교 개혁이 일어나기 수백 년 전에 벌써 자국어로 필사(筆寫)한 성경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더욱 증오와 박해의 표적이 되었다. 그들은 로마교회를 요한계시록에 있는 타락한 바벨론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들은 암흑과 배교의 전 기간을 통하여 로마교의 최상권을 부인하고 성상(聖像) 숭배를 우상 숭배로 보고 거부하고 참 안식일을 지켰다. 그들은 가장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그들의 믿음을 유지하였다. 비록 창에 찔리고 로마의 화형주(火刑柱)에 타 죽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두려움 없이 굳게 섰다.

또한 왈덴스인들은 그들이 밤새워 베껴 손수 만든 성경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러 장사꾼으로 가장하여 먼 길을 가곤 했다. 그들은 그 당시에 먼 곳에 있는 시장에 가지 않으면 쉽사리 얻을 수 없는 비단과 보석과 그 밖의 물품들을 가지고 다녔는데, 선교사로서 가면 추방당할 곳이라도 행상인으로 갔으므로 환영을 받았다. 그들은 세밀히 필사한 성경의 전부 혹은 일부분을 가지고 다니면서 기회를 얻을 때는 언제나 그것을 끄집어 내어 그들의 고객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자 하는 흥미가 일깨워졌으며 성경의 사본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의 어떤 부분을 즐거운 마음으로 주었다. 이런 활동으로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교회가 생기고, 순교자들의 피가 진리를 증거하게 되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성경을 읽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참된 복음을 몰랐고, 구원을 받기 위하여 자기들의 선행을 의지하도록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들의 죄 많은 상태와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에 합당한 자신들을 보고 심신(心身)을 괴롭게 하였으나 마음의 평안은 얻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양심적인 사람들은 로마교의 교리에 얽매이게 되었고 그들은 죄의식으로 압박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형벌을 내리시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감으로 늘 번뇌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왈덴스인들은 이처럼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떡을 나누어 주고,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있는 평안의 기쁨을 알려 주고, 그들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었다. 이리하여 진리의 빛은 암흑에 쌓여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추어지고, 어두운 구름은 사라져 버리고, 마침내 치료하는 광선을 가진 의의 태양이 그들의 마음에 떠오르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로마교의 주장이 그릇된 것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은 죄인을 위하여 사람이나 천사의 중보가 참으로 무익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구주의 사랑의 보증을 받고 그처럼 큰 안도감과 밝은 빛을 받게 되었으므로 마치 천국으로 옮겨진 듯이 생각되었다.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구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감옥이나 화형주도 달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복음을 깨달은 그들은 소리쳤다. “이제는 먼 길의 순례가 쓸데 없다. 이 이상 더 고행을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죄 많고 불결한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가겠다. 아아! 그분께서는 나의 죄, 나의 죄까지도 사하여 주신다!” 거룩한 기쁨의 물결이 마음을 채우고, 찬미와 감사로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되자, 기쁨으로 충만해진 그들은 진리와 생명의 길 되신 예수님을 찾은 새로운 체험을 사람들에게 증거하고, 받은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기 위하여 친구들을 찾아갔다.

그런 후에 진리의 사자(왈덴스 인들)는 가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가 혹시 천사가 아니었던가 하고 의심하기도 하였다. 많은 경우에 사자는 한 번 보이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다른 나라로 갔거나, 혹은 어떤 미지의 감옥에서 고생을 하고 있거나 자기가 진리를 증거한 그 곳에서 이미 생명을 잃고 백골만을 남겨놓은 신세가 되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이렇게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증거한 왈덴스인들로 말미암아 진리의 빛은 꺼지지 않고 암흑시대 동안에도 활활 타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 로마 천주교의 성경과 달리하는 교리

다니엘서의 예언을 보면 법왕권(작은 뿔로 표상됨: 살아남는 이들 월간지 33, 52호 참조할것) 이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단 7:25)라고 되어있다. 성경의 어떤 진리들을 변경시켰는지를 살펴보자.

1. 교황권은 교황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거나 동등시하는 주장을 한다;

“교황은 너무 존엄하고 높기 때문에 단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천주교회 백과사전에 기록된 “교황”에 대한 정의(교황 레오 13세의 말 중에서 발췌)
“교황들은 이 지구상에서 전능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한다.” 1894년 6월20일 교서 중에서
“교황은 하늘의 왕, 지상의 왕, 연옥의 왕으로서 삼층 면류관을 쓴다.” Feraris저, Prompta Bibliotheca 제 6권, p. 26 (바티칸에서 발행한 공식 서적)
“성경에서 교회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모든 명칭들과 그분의 최상권에 관한 모든 내용은 모두 다 교황에게도 적용된다.” Bellarmin, Authority of Councils, 2권 17장
“우리(주: 교황들)는 이 땅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Pope Leo XIII, Encyclical Letter, 7/20, 1894.
“교황은 너무나 위엄이 있고 지고하기 때문에 그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인 동시에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다. 교황은 지상의 하나님이시며, 왕중의 왕이시고, 최고의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 Prompta Bibliotheca, vol. VI, p. 25-29.

2. 교황권은 자신들이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참람된 주장을 한다;

“하나님 자신도 신부들이 용서해 주거나 용서하기를 거절하는 사제들의 판단에 따라서 행하시며, 신부들의 선언이 선제한 후에야 하나님께서 그것에 의해 판단하신다.” 신부의 존엄성과 의무들, 12권, p. 27
“교황은 그의 권세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할 수 있고 땅 위의 대리자로서 그는 그의 양들을 매고 푸는 가장 큰 권세를 가지고 행동한다.” Ford, p.151
“용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주 신부들에게 죄를 고백해야만 하는 것이다.” 1984년 12월 11일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137페이지에서

3. 교황권은 종교 암흑 시대 동안에 십계명을 변경시켰다;

카톨릭 교회는 자신들의 교리문답과 교리책에서 두번째 계명을 삭제하였는데, 그 이유는 십계명에 기록되어 있는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두번째 계명은 그들이 숭배하는 마리아 상이나 각종 성자들의 상을 정죄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계명을 빼버리는 대신에 열번째 계명을 둘로 나눔으로써, 10개의 계명을 가진 십계명의 형태를 유지시켰다.

또한 네번째 계명인 제칠일 안식일(토요일)을 제일일(일요일)로 변경하여 준수하도록 하게 하였다. “카톨릭교회는 안식일을 주일 중 일곱째 날인 토요일에서 첫째 날인 일요일로 변경시킨 후, 십계명의 네째 계명을 고쳐서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라고 명하였다” 카톨릭 사전 4권, 153.

7부 - 종교 암흑시대에 일어난 순교자들


프랑스 왈도파 사람들이 당한 초기의 박해

교황은 왈도파(왈덴스인)들의 신앙이 계속 퍼져나가는 것을 보자, 로마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증오스러운 종파를 영원히 지상에서 종식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는 왈도파를 그들의 골짜기에서 끌어내려고 크레모나의 대집사 알베르트 카피타나이스를 프랑스로 보냈고 대규모의 군대를 일으키는데 성공하였다. 군인들이 왈도파 사람들을 잡으려고 알프스의 어느 골짜기에 도착했을 때 집들은 비어 있었고 사람들을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그곳 사람들이 벌써 군인들이 오는 것을 알고 동굴이나 바위에 숨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온갖 수단을 다하여 그들을 찾아내고 추적하여 많은 사람들을 잡아 낭떠러지에서 거꾸로 떨어뜨려 죽게 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비밀 통로를 이용하여 동굴에 피해 있었다. 군인들이 그들을 붙잡을 수가 없게 되자, 동굴을 찾아내어 어귀에 나무를 쌓아 놓고 큰 불을 질렀다. 동굴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연기와 열로 질식되어 죽었다. 불이 다 탄 후 동굴을 뒤지자 1,000여명이나 되는 시체가 발견되었고 그 가운데 대부분은 여자들과 어린이들이었다. 이 공격에서 죽은 사람들은 3,000명에 달했다.

그 외에도 알프스 산의 북쪽인 이태리 북방으로 가서 산 사람들, 알프스의 또 다른 산맥에 사는 사람들도 이와 유사한 핍박들과 죽음을 당하였다. 긴 세월 동안 많은 어린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 아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주 골짜기를 습격하는 십자군 (무서운 죄를 지은 죄수들로 구성된 군대로서, 만일 그들이 이단을 믿는 크리스챤들을 많이 죽이면 용서해 준다는 조건으로 만들어진 군대) 에 의해 무섭고도 매우 잔인한 죽음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불타는 신앙은 칼로도 화형으로도 창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알비젠스파 사람들

알비젠스파 사람들은 남프랑스 알비라고 불리는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역사상에 언급된 것은 주후 약 1100년부터이다. 100년 후에는 그 수가 대단히 많아졌는데, 그들도 왈도파와 같이 예배형태를 로마교회와 달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로마의 성직자들이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서 있다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으므로 그들의 신앙은 후대의 프로테스탄트의 의견과 같은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천주교 교황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주는 면죄부를 돈을 받고 팔고 있는 실정이었다. 교황 이노쎈트 3세는 알비젠스파 사람들을 완전히 격파시키기에 충분한 대규모의 병력을 일으키기 위하여 전 유럽에 통신문을 내었다. 왜냐하면 몇 세력있는 귀족들도 알비젠스를 지원하였는데, 그 중에는 세력있는 백작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알비젠스 사람들의 순교
알비젠스파 사람들 중에 특별히 툴루스의 백작 레이몽 같은 사람은 브지에르 시와 신실한 알비젠스파들을 보호하려고 교황의 그 많은 군대와 끝까지 저지하고 싸우다가 힘의 부족으로 지게 되어 브지에르 시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일이 역사에 나온다. 교황의 군대들은 그들에게 로마 교회의 예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자비가 섞이지 않은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사람들이 이에 굴하지 않자 군인들은 그 성과 마을들을 맹공격 하였고, 그 마을은 피를 물처럼 쏟고 누워 있는 사람들의 신음소리와 자기의 아이들을 데려다가 자기들의 눈 앞에서 칼로 난도질 받는 것을 보고 있던 어머니들의 울부짖는 소리와 큰 시가지를 휩쓸고 있는 불타는 소리로 가득 찼다. 로마의 군인들이 놓은 불길은 불쌍한 주민들을 거리로 몰아냈고 자기 집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불을 피해 밖으로 나오다 모두 칼에 맞아죽임을 당하여 거리는 피로 물들여졌다. 잔인한 교황의 대사는 이 무서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그 대량학살의 작업을 즐기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군대를 격려하기까지 하였다. 군인들이 살해를 다했을 때, 30,000명 이상이나 되는 송장들이 아름다웠던 브지에르 시의 폐허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많은 수의 참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들의 신앙을 위해 장렬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왈도파가 당한 마지막 박해

왈도파 사람들 중 일부는 이태리 북부로 갔다. 거기서도 그들은 로마 교황이 보낸 군대에 의해 많이 죽었으나, 산으로 도망하여 가서 산 사람들 중, 후에 그들의 후예들의 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그들은 땅을 갈고 파는 근면한 사람들이어서 번창하였고 얼마간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예의 주시를 하던 로마 투린의 대감독은 결국 그들의 피난처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군대들을 보내어 많은 난폭한 짓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그러나 그들의 수가 많아 때때로 파견된 군대가 그들의 저항을 받아 포기하고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수백 년을 그칠 줄 모르는 박해가 계속되었지만 그들의 신앙과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1650년 로마 의회는 희년을 맞아 “신앙을 전파하고 이단들을 파괴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법을 통과시키는 중, 왈도파 사람들을 상하고 괴롭게 하려는 법과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유난히 심하게 추운 겨울에 왈도파 모든 주민과 이미 공개된 지역사람들은 삼일 안에 그들이 로마교회로 개종하지 않으려면 그들의 집을 떠나 산으로 은퇴하라는 것이었다. 놀라운 이야기지만,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주저하지 않고 그 조건들을 수락하였다. 그들은 “우리는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 한분 만을 믿는다. 그리고 성경을 따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법대로 구원을 얻는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어떤 교리와도 타협할 수 없으며, 어떠한 세력도 우리를 우리의 신앙에서 떠나게 할 수 없다”고 말하며 그들의 거처와 집들을 포기하였고, 눈속에서 강을 건너며 어렵게 급류를 통과하여 동굴이나 불쑥불쑥 내민 바위 아래 안식처를 마련하였다. 15,000명의 군대가 즉시 그 골짜기로 파견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거기를 떠나려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고 야만스럽게 살해되었다. 남은 사람들은 그들의 고향 땅을 강제로 빼앗기게 되었고 피드몬트의 다른 도성에 있는 감옥에 감금되었다.

12,000이나 넘는 남녀 성인이 어두컴컴한 토굴에 갇혀서 가장 잔인한 취급과 고문을 받았다. 그들은 아주 형편없는 빵을 먹었으며 썩은 물을 마셨다. 그들의 유일한 침대는 맨 돌이나 썩은 짚이었다. 그들은 일부러 사람들을 매우 빽빽하게 차게 했기 대문에 열병과 다른 질병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교회로 개종하려는 의사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신앙을 계속해서 고수하였다. 그러한 취급을 받는 가운데 몇 개월 안에 그들의 수가 12,000명에서 3,000명으로 감소되었다. 그러나 동굴 안을 늘 채웠던 찬송소리는 그들의 기도와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핍박하는 일에도 막대한 경비와 인원이 요구되자 싫증이 난 박해자들은 왈도파의 나머지 남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정배를 가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에 강제로 행군하여 가게 되었고 또 매우 빨리 재촉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죽었다. 그리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스위스에 가서 정착하게 되었다.

비록 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때문에 목숨을 잃고 죽었지만, 그러나 결국 그들의 이러한 고난과 시련, 또 죽음을 불사한 신앙열, 수없이 흘려진 귀한 순교의 피 때문에 후대에 저 위대한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귀중한 성경을 우리가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그 성경에서 비쳐 나오는 진리를 믿고 깨달아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 고맙고 놀라운 순교자들이 아닐 수 없다!

8부 - 보헤미아의 순교자 허스


복음이 보헤미아에 전파되기는 이미 9세기의 일이었다. 그 때 영국의 위대한 개척자요 성서 번역자인 위클립으로 인해 성경이 번역되었고 보헤미아인들은 자국어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도 법왕권의 세력이 확장됨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은 가리워졌다. 평소에 왕들의 권세를 꺾어 버릴 뿐 아니라 백성들을 노예의 상태로 만들고자 꾀해 오던 법왕 그레고리우스 7세는 예외 없이 보헤미아어로 공중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교서를 내렸다. 그와 같이 로마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꺼버리고 백성들을 암흑 가운데 가두어 두도록 명령하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박해를 만나 쫓겨난 많은 왈덴스와 알비젠스(Albigenses)인들이 보헤미아로 피난하였다. 비록 그들은 그 곳에서 공공연하게 전도하지 못하였으나 은밀한 가운데서 열심히 활동하였다. 그리하여 참된 신앙이 여러 세기를 통하여 보존되어 왔다.

허스가 태어나기 전에 보헤미아에는 이미 교회의 부패와 백성들의 비행을 공공연하게 규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의 주의와 관심을 끌었다. 그러므로 승려 계급은 두려움을 느끼고 복음 사도들에게 박해를 가하였다. 그들은 숲 속과 산으로 쫓겨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군사들은 그들을 찾아내어 많은 사람들을 살육하였다. 얼마 후에 로마교의 예배에서 벗어나는 자는 화형에 처한다는 명령이 내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순교를 당하면서도 그들의 사업의 승리를 확신하고 눈을 감았다.

쟌 허스는 1369년에 훗세닛츠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허스는 농부 계급의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에 그의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러나 그의 경건한 어머니는 교육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귀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하였으므로 그러한 유업을 그 자식에게 남겨 주고자 애를 썼다. 허스는 처음에 시골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하였으나 그 후에 프라그 대학의 자선 장학금으로 공부하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프라하를 향한 여로에 올랐다. 과부로서 가난에 시달리던 그의 어머니는 그 아들에게 줄 만한 세상 재물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 큰 도시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아버지 없는 자기의 아들을 위하여 무릎을 꿇고 하늘 아버지께 복을 빌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자기의 기도가 어떻게 응답될 것인지에 대하여 거의 깨닫지 못하였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허스는 부지런한 공부와 신속한 학업의 향상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그의 깨끗한 생애와 온유하고 쾌활한 성격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는 또한 로마교를 열렬히 신봉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교회가 수여한다고 공언하는 영적 축복을 매우 갈망하였다. 그는 어떤 큰 성회에 참석하였을 때 참회하러 나아가 호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돈을 다 털어 바치고 사면(赦免)을 얻기 위하여 행렬 가운데 참례한 일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 그는 신부의 직분을 얻었으며, 그 후 신속히 승진하여 왕실 전속의 승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모교의 교수가 되고, 그 후에 그 대학의 총장까지 되었다.

그리하여 불과 수년 만에 구호금의 장학금을 받던 비천한 일개 학생이 보헤미아의 자랑이 되고, 그 명성을 온 유럽에 떨치게 되었다. 성직에 나간 지 수년 후에 그는 베들레헴 회당의 설교자로 임명되었다. 그 당시에 성경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무지는 실로 컸으며, 모든 계급의 사람들은 가장 악한 일들을 서슴없이 행하던 때였다. 허스는 이러한 죄악들을 기탄없이 견책하고, 자기가 설명한 진리의 원칙과 순결을 역설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곡히 호소하였다.

개혁주의로 전향(轉向)함

그 때, 후에 허스의 절친한 친우가 된 프라하 출신의 제롬(Jerome)이 영국으로부터 귀국하면서 영국의 위대한 개혁자요, 성서 번역자인 위클리프의 저서를 가지고 돌아왔다. 허스는 그러한 저서들을 흥미있게 읽었다. 그는 그 저자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었으며 위클리프가 주장하는 개혁주의에 찬동하게 되었다. 허스는 성경과 위클리프의 저서를 더욱 세밀히 연구하게 되자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그는 아직 위클리프의 개혁설을 모두 받아들일 단계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마는 법왕교의 진상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으므로 타는 듯한 열성으로 교권의 부패와 교만과 야심을 규탄하였다.

개혁자가 된 허스

위클립의 문서들이 프라그에서 특히 허스와 제롬의 인정을 받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연구하게 되자, 로마교회의 대감독은 새로운 교리가 퍼져나가는 것을 보고 놀라서 그것의 배포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그 일은 그 문서의 인기를 더하게 하였으며, 그 대학에 있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 문서와 접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위클립의 견해를 찬성 지지하게 되었다. 진리의 빛은 보헤미아에서 독일로 전파되었다. 왜냐하면 프라그 대학의 소동으로 수백명의 독일 학생들이 고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의 많은 학생들이 허스에게서 처음으로 성경의 지식을 배웠는데, 그들은 돌아가서 각자 자기 나라의 여러 곳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프라그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소식이 로마에 전해지자 허스는 곧 법왕의 소환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그 명령에 응하는 것은 자기의 몸을 죽음에 내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보헤미아의 윈체스라우스 왕과 왕후와 대학과 귀족과 정부의 고관들이 연합하여 허스는 프라그에 머물러 있게 하고, 대리자를 로마에 파견시켜 대답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법왕에게 애소하였다. 그러나 법왕은 그 요구를 수락하는 대신에 도리어 허스에게 대하여는 심문 선고를 내리고 프라그 시를 파문(破門)에 처한다고 선포하였다. 그 당시에 있어서 이와 같은 선고는 언제나 큰 공포를 일으켰다. 그 당시 모든 의식들은 법왕을 하나님의 대표자로 존경하고, 그를 천국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영적 심판은 물론이요, 세속적 심판까지 행할 권능을 가진 자로 알고 있는 백성들을 공포에 질리게 할 수 있도록 잘 꾸며져 있었다. 파문의 선고를 받은 지방에는 하늘의 문이 닫혀지므로 법왕이 그것을 열기까지는 죽은 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처럼 두려운 재난의 증거로서 온갖 종교적 의식은 정지되고, 교회는 폐쇄되고, 결혼식은 교회당의 뜰 앞에서 거행되고, 죽은 자는 성별된 묘지에 매장되지 못하고 장례식 없이 도랑이나 벌판에 매장되었다. 로마는 사람의 상상력에 자극을 주는 이런 종류의 처사를 통하여 사람의 양심을 지배하고자 하였다. 프라그 시에서 허스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났다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동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허스는 깨달음을 통하여 전달된 성경의 교훈들이 양심을 지배해야지 인간이 만든 유전이 양심을 지배하면 안된다고 믿고 계속 굽히지 않고 그렇게 가르쳤다. 즉 그릇됨이 없는 지도자는 신부를 통하여 말하는 교회가 아니고,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가르친 것이었다. 얼마 후에 프라그의 소동이 진정되자, 허스는 자기가 맡은 베들레헴의 회당으로 돌아가서 더욱 큰 열심과 용기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하여 전하였다. 그의 원수들은 활발하고 강력하였지만, 왕후와 많은 귀족들이 그의 친구가 되었고, 많은 백성들이 그를 지지하였다. 그의 순결하고 고상한 교훈과 경건한 생애를 로마 교도들이 전하는 타락한 교리와 그들의 탐욕적이고도 방탕한 행동과 비교할 때에 많은 사람들은 허스의 편에 가담하는 것을 명예로운 일로 여겼다.

콘스탄스에서 개최된 큰 회의

그런데 그 당시 로마교회 내에서는 분열이 심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세 사람의 법왕이 제각기 최상권을 장악코자 다투고 있었으므로 그리스도교국은 범죄와 소동으로 들끓게 되었다. 그들은 피차에 저주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세속적 무력에 호소하여 각각 무기를 구입하고 군대를 모집하기 위하여 애썼다. 물론 돈이 필요하였다. 그러므로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소위 교회에 속한 은사, 지위, 축복 등이 돈으로 매매되었다. 신부들도 역시 그들의 위에 있는 성직자들의 본을 받아 성직을 매매하고 자기의 상대자를 넘어뜨리고 자기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싸웠다. 이러한 철면피한 행동들이 날마다 증가되어감으로 허스는 소위 종교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는 가증한 행위에 대하여 강력하게 비난하였다. 또한 백성들도 로마교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교국을 비참하게 만드는 자들이라고 공공연하게 비난하였다. 그러자 온 유럽을 혼란에 빠지게 한 화근을 제거하기 위하여 콘스탄스에서 총회가 소집되었다. 이 회의는 시기스문트(sigismund) 황제의 희망에 따라 세 경쟁자 중의 하나인 요한 23세가 소집한 것이었다. 회의에서 달성되어야 할 주요한 목표는 교회의 내분을 화해시키고, 이단을 뿌리 뽑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새로운 주장을 퍼뜨리는 주동자로 지목된 쟌 허스가 그 회의에 소환되었다.

허스는 자기를 위협하고 있는 위험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그 길을 마치 영원한 이별의 길인 것처럼 느끼고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그리고 그는 차츰 화형주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처럼 느끼면서 여행을 계속하였다. 그는 보헤미아의 왕으로부터 그의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는 통행권을 받았고, 또한 시기스문트 황제가 보증해주는 여행 도중의 안전을 위한 통행권까지도 받았지마는 도저히 사망을 피할 수 없는 줄로 생각하고 모든 일을 다 처리하고 갔다.

회의에 임석하려는 허스 프라그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형제들이여 … 나는 왕의 통행권을 가지고 나의 많은 대적들을 만나고자 떠나가고 있다. … 나는 나의 구주가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 내가 능히 저들을 대항할 수 있도록 나의 입에 하나님의 지혜와 그분의 신중하신 정신을 넣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그대들의 열렬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줄로 나는 믿는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진리로 강하게 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주시고, 시련이나 감옥이나 필요하면 잔인한 죽음까지라도 용기있게 당하게 하실 줄로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일에 참을 수 있도록 본을 보여 주셨으니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분께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의 주인이시며, 우리는 비천한 인간들이다. 그렇지만 그분께서는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들 또한 고난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정결해 지는데 어찌 우리가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즉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만일 나의 죽음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된다면, 그날이 하루 속히 이르도록, 그리고 내가 당하게 될 모든 고난에 그분께서 항상 나를 붙들어 주시도록 기도하라. 만일 내가 그대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더욱 좋은 일이라면 나로 하여금 오점(汚點)없이 돌아가게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라. 곧 나의 형제들에게 훌륭한 본을 남겨 나를 따라오게 하도록 복음의 진리의 일점 일획이라도 숨기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라. 아마도 프라그에서 그대들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이 나로 하여금 돌아가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그 때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의 지식과 사랑으로 마음을 더욱 굳게 하여 전진하여야 할 것이다.” 허스는 그 여행 중에서 자기의 교리가 도처에 전파된 것과 자기의 전도 사업이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의 곁으로 몰려왔으며, 어떤 고을에서는 지방 장관이 그를 따라 거리를 같이 걷기도 하였다.

신앙의 포기냐, 죽음이냐

허스에게는 완전한 자유가 약속되었었다. 황제의 통행권에는 다시 법왕의 개인적인 보증이 첨부되었다. 그러나 이 엄숙하게 반복된 보증도 무시되고, 그 개혁자는 법왕과 추기경들의 명령으로 체포되었다. 그는 곧 불결하고 음침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 후에 그는 라인 강 건너편에 있는 튼튼한 성안으로 이송되어 죄수로 수감되었다. 그들은 먼저 위클리프의 가르침을 정죄하기로 결정하였고, 벌써 죽은 이 영국의 개혁자의 시체를 다시 파서 불에 태워야 한다고 결정하고 지시하였으며, 이 가르침을 지지한 허스를 투옥하여 심문하기로 하였다.

감방의 습기와 불결한 공기 때문에 열병에 걸려서 거의 죽음 직전에 놓여 있었던 허스는 마침내 대회의에 끌려나왔다. 그는 무거운 쇠사슬에 매인 채로 황제 앞에 섰다. 긴 심문을 통하여 허스는 확고 부동하게 진리를 주장하였다. 그는 이제 그 곳에 열석한 교회와 정부의 고관들 앞에서 거리낌없이 교권의 부패를 규탄하였다. 자기의 교리를 취소하든지 죽음을 택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그는 순교자의 운명을 수락하였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붙들므로 그가 최후의 선고를 받기 전 지낸 고난의 몇 주일 동안에 그에게는 하늘의 평화가 마음에 충만하여졌다. 그는 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나는 옥중에서 내일 사형 선고가 내릴 것을 기다리면서 쇠사슬에 매인 손으로 이 편지를 쓴다. …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내세의 귀한 화평 중에서 다시 만나게 될 때, 그대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어느 정도의 자비를 베푸신 것과 내가 당한 시험과 시련 중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나를 도우셨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허스의 장렬한 최후

허스는 마지막으로 큰 회의에 소환되었다. 그것은 실로 규모가 크고도 엄숙한 집회였다. 황제와 왕공과 사신과 추기경들과 감독과 신부들이 열석하고, 밖에는 허다한 방청자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양심의 자유를 얻기 위한 긴 투쟁에서 최초의 큰 희생자를 목격하고자 그리스도교국의 각 곳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허스는 최후의 결심을 표명하도록 요구받았을 때, 자기의 견해를 철회하기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러자 로디의 감독은 “죄의 몸은 파멸되게 하라”는 성경 구절로 설교하고 형을 언도하였다. 협의회에 의하여 허스에게 “완고하여 고치기 힘든 자”라는 선고가 언도되고, 지위를 박탈하는 의식을 하였다. 감독들은 “그는 성직에서 강등되며 그의 책은 공적으로 불태워질 것이고 집행을 위해 시민법정에 넘어갈 것이다”라고 언도 하였다. 허스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언도를 받았다.

그의 제복(祭服)이 하나씩 차례로 벗기워질 때마다 의식을 행하고, 열석한 감독들은 차례대로 저주를 선언하였다. 드디어 그의 머리 위에는 피라밋 모양으로 만든 종이 고깔이 씌워졌는데, 거기에는 악마의 무서운 형상이 그려져 있고 “이단의 주모자”라는 글자가 그 앞면에 뚜렷하게 씌여 있었다. 그는 다시 그의 주장을 취소하라는 권고를 받자 군중을 향하여 돌아서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하늘을 쳐다볼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까지 순결한 복음을 전한 저 사람들을 무슨 면목으로 쳐다볼 수 있겠는가? 나는 그들의 구원을 이제 죽기로 작정된 불쌍한 나의 몸 이상으로 귀중하게 여긴다.” 그리고 허스는 “주 예수여! 이 종은 더할 수 없는 기쁨으로 당신을 위하여 치욕의 관을 쓰나이다. 나를 위하여 가시관을 쓰신 주 예수여!”하고 부르짖었다.” 모든 의식을 행한 후에 주교는 “네 영혼을 마귀에게 주노라”고 말하였다. 그 때에 쟌 허스는 하늘을 우러러, “오, 주 예수여! 당신이 나를 구원하셨으니, 나는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고 말하였다.

그 후에 그는 처형장으로 끌려나갔다. 그의 뒤에는 많은 군중, 몇 백 명의 무장한 사람들, 아름다운 의복을 입은 신부와 주교들, 콘스탄스 성의 주민들이 따랐다. 그가 화형주에 결박되고 불을 붙일 수 있는 준비가 다 갖추어졌을 때에 그 순교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다시 한 번 그의 오류를 취소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무슨 오류를 취소하라고 하는가? 나는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저술한 것과 전파한 것은 모두 사람을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증거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저술하고 전파한 진리를 나의 피로써 확인하기를 매우 기뻐한다.”

이윽고 불이 붙여지자 그는 “다윗의 아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찬미를 그의 목소리가 영원히 그쳐질 때까지 불렀다. 심지어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의 영웅적인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 열광적인 법왕당의 한 사람은 허스와 그 후에 있은 제롬의 순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두 사람은 다같이 최후의 순간까지 변함없이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화형을 받기 위하여 나아가기를 마치 혼인 잔치에 나아가는 것과 같이 하였다. 그들은 아무런 고통의 부르짖음도 발하지 않았다. 불길이 일어날 때에 그들은 찬미를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그 불길의 기세도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그치게 할 수 없는 듯하였다.”

허스의 몸이 다 타버린 다음에 그들은 그 재와 흙을 모아서 라인 강에 던져 대해로 흘러가게 하였다. 그의 핍박자들은 그가 전한 진리를 근절한 것처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날에 던져진 재가 대해로 흘러가서 각 나라에 씨를 뿌리고,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나라에서까지 진리를 증거하는 열매가 풍성하게 맺혀질 것을 그들은 거의 생각지 못하였다. 콘스탄스의 회의장에서 부르짖은 그의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그 후 각 시대를 통하여 쉬임없이 울려 퍼질 것이었다. 허스는 이미 가고 없으나 그가 생명을 바쳐서까지 옹호한 그 진리는 결코 멸절될 수 없었다. 그의 신앙과 충성의 모본은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문과 사망을 당하면서도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 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렇게 잔인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주님을 위해 한결같이 기쁘고 즐거운 얼굴로 찬송을 부르면서 죽었던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우리의 손에 들려진 성경이, 또한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진리가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우리에게 전수해 내려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순교자들의 피 때문에 보존되어 온 이 진리와 성경에 대해 이제 우리는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성경은 머지않은 미래에 마지막을 통과할 성도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들의 신앙을 위해 순교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만일 당신에게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특권이 온다면 당신도 웃으며 그 길을 갈 신앙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앞서간 순교자들의 신앙을 따라서 우리도 주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