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의 빛이 손계문 목사와 분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1

생애의 빛 선교센터의 문을 두드려주시고 생애의 빛이 전하는 진리와 참 복음에 동참하신 여러분들께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SOSTV 웹사이트에 올린 공지사항을 보고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자세한 사실을 설명해드리는 일이 꼭 필요하게 되었기에 이 문서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여러분의 마음에 큰 염려와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정말 송구하게 생각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부디 여러분의 마음 속에 심겨진 진리가 이 일로 인해 훼손되거나 영적으로 손해보시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붙들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전적으로 진리와 기별에 관한 일이지 인간적인 마찰이 아님을 알아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

생애의 빛의 역사

생애의 빛은 변질되지 않은 성경의 순수한 진리를 전하고, 왜곡된 복음을 회복시키는 사역을 위해 세워진 세계적인 독립 선교기관입니다.

생애의 빛은 1989년 강 병국 목사님께서 창설하신 선교기관으로 어떤 교단의 후원이나 교단의 조직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30여년이나 되는 오랜 세월 동안 생애의 빛은 바벨론의 오류가 섞이지 않은 성경의 순수한 진리와 신신학의 침투로 변질되지 않은 완전한 복음을 전해왔으며, 그 모든 진리의 기별은 성경과 영감의 글의 가르침에 토대와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생애의 빛은 1996년부터 “SOSTV”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선교사역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평을 더 넓혀 전 기독교계를 향하여 복음을 외치기 위해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을 발행하고, DVD와 CD, 그리고 TV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진리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한국과 중국과 뉴질랜드와 일본까지 생애의 빛의 사업이 넓혀지게 되어 세계적으로 생애의 빛 지부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월간지와 소책자들과 말씀에 의해, 또한 SOSTV 웹사이트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이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현재도 수많은 영혼들이 진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애의 빛을 통해 진리의 빛을 받은 사람들에게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회가 어디 있는지 문의하기 시작했으며, 진리를 들을 수 없는 교회에 더 이상 참석하기가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해왔습니다. 그래서 각 개인들이 있는 곳 가정이나 모임에서 진리로 양육받으며 홀로 설 수 있도록 예배방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생애의 빛 예배방송은 지금 벌써 5년 이상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제공되고 있으며, 세계 각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접속을 하여 함께 진리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생애의 빛은 조직이나 교파를 세우지 않습니다

생애의 빛 독립선교기관은 종파나 교단이나 조직을 세우는 데  설립 취지와 목적을 두지 않으며, 교회를 건립하거나 세우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생애의 빛은 현 기독교 안의 모든 개신교회들에게 참된 복음과 진리를 제시하여, 하나님께서 준비되기를 원하시는 마지막 백성을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창설자이신 강병국 목사님은 생애의 빛 독립 선교기관의 설립 목적과 취지를 매우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세우거나 종파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에 들어온 복음과 교리와 진리의 타협을 알리고 온전한 복음을 전하므로, 그 회복된 복음을 진정으로 체험하고 주님의 재림을 위해 준비되는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 여자의 남은 무리를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손계문 목사의 “열 한시 교회” 건립

2017년 3월 한국지부의 지부장으로 있던 손계문 목사는 그동안 오랜 세월 동안 발행되던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의 이름을 “열 한시”로 바꾸어 발행하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7월 1일에 “열 한시 교회”를 건립하고 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한국지부가 독자적으로 열 한시 교회를 세운 일은, 생애의 빛 선교기관의 설립 목적과 취지를 잘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냈습니다.

진리대로 사는 분들이 모여서 예배 드리는 것이 잘못이 아니며, 창설자이신 강병국 목사님도 가정 모임들이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정 모임들이 생겨나는 것을 장려하고 가정교회의 숫자를 늘리는 사역에 집중하거나, 그런 모임들을 한 곳에서 관리하고 운영하게 될 때에, 그것은 나중에 새로운 교파와 교단 조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농후하게 됩니다.  

선교기관은 진리를 전하는 일에 열중해야 합니다. 선교기관이 교회를 세우고 관리하기 시작하면, 선교와 전도 사업보다 교인들의 숫자를 늘리는 교회 사역에 더 선교자금이 사용될 확률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한 선교기관이 여러 교회들을 관리하고 주관하는 것, 여러 교회들이 그들의 헌금을 한 곳에 보내고 그 중앙 지도부에 의해 관리되고 운영되는 것은 교단의 형태를 띠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지부가 “열 한시 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건립하고 사람들을  열 한시 교회로 모으는 일은 생애의 빛이 추구하는 선교방향이나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생애의 빛이 믿는 교회의 개념

교회는 조직도, 건물도, 기관도 아닙니다. 참교회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믿음을 가진 백성들, 하나님과 산연결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대형 교회에 다니고, 교회 명부에 교인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해도, 그 사람이 하나님과 산 연결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교회도 아니고, 하나님의 임재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성소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며 진리 안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참교회인 것입니다.

사람이 어디에 있든지, 바른 진리 안에서 자신의 받은 빛 대로 순종하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믿음을 가지고, 그분의 임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참 교회입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생애의 빛 SOSTV는 예언상의 남은 무리를 위해 주신 진리를 전하는 선교기관이지 교회 조직이나 교회들을 관리하는 합회나 본부가 아닙니다.

생애의 빛이 손계문 목사와 분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2

손계문 목사의 저서 “성육신” 책의 문제점

2017년 손계문 목사는 “열 한시 교회”를 세우고 “성육신”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그 책의 대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요한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의 복음의 기별과 셋째 천사의 일은 불완전하였으므로, 넷째 천사가 와서 새로운 기별을 전해야 일을 마칠 수 있다. 그런데 그 넷째 천사가 전하는 기별이 바로 ‘사람의 아들 예수’이고, 그 기별이 늦은비 성령을 가져오는 기별이다.”

곧 손계문 목사는 자신이 넷째 천사이고 자신이 전하는 넷째 천사의 기별인 “사람의 아들 예수”를 깨닫는 것이 늦은비 성령의 빗방울을 받는 길이며, 이 기별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넷째천사의 사명을 받은 11시일꾼이라는 새로운 교리를 전파하였습니다.

손 계문 목사는 저서 “성육신”을 통해, 열 한시 교회 건립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기별에 부합하지 않는 개인의 사적인 적용과 이해할 수 없는 해석을 기별에 섞어 놓았습니다. 그 주장은 그동안 생애의 빛이 전해오던 기별과 대치되는 내용이므로, 손목사가 전하는 “넷째천사의 기별과 사람의 아들 예수를 믿어야 늦은비를 받는다”는 교리가 성경적인 진리인지 아닌지, 그 주장하는 논지가 영감의 글과 일치하는지 검토하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성육신 책에 대한 검토를 간략하게 줄인 것입니다.

“성육신” 책에 대한 검토 및 연구

[1]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늦은비를 가져오는 기별이라는 주장에 대한 검토

< 성육신 책 43쪽 >

늦은 비의 소나기를 이르게 하는 늦은비의 빗방울은 무엇인가? 온 땅을 환하게 할 늦은 비의 복음은 무엇인가?...계시록 18장 천사가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가? …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은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 타락한 인성을 쓰고 오신 성육신이다. ]

< 검토와 반증 >  

성육신 책에서는 여러 가지 주제를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에 맞추어 설명하고 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진리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늦은비의 소나기를 이르게 하는 늦은비의 빗방울”, “온 땅을 환하게 할 늦은비의 복음”, 그리고 “계시록 18장 천사가 전하는 복음”에 대한 모든 답을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과 영감의 글과 모순된다. 늦은 비는 “사람의 아들 예수”라는 기별이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 늦은 비를 가져오는 기별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

늦은비를 가져오는 기별은 저자가 임의로 만든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 ” 교리가 아니라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 늦은비는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그 진리로 변화된 사람들 위에 내리는 마지막 성령을 가리킨다. “성육신의 교리”는 이미 셋째 천사의 기별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를 따로 떼내어 늦은 비를 가져오는 다른 기별처럼 언급하는 것에는 모순이 있다.

셋째 천사의 기별에는 성육신의 진리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 “짐승의 표를 받지말라는 경고”의 기별, “안식일 준수” 등, 모든 복음이 다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성육신의 교리를 따로 떼어 마치 그 교리가 늦은비를 가져오는 또 다른 기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된 것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이 늦은비를 가져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영감의 글은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2] 계시록 18장의 천사가 늦은비를 부르는 가르침을 전한다는 주장에 대한 검토

< 성육신 책 44쪽 >

[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순종의 생애를 사셨으므로 “그리스도의 그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도 순종의 생애를 살 수 있다는 것이 계시록 18장의 천사가 전하는 늦은비를 부르는 가르침이다. ]


< 검토와 반증 >

* 요한 계시록 18:1~5 –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요한 계시록 18장의 천사는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고 변화되어 늦은비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들이 나가서 외치는 성령의 운동과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계시록 18장에 나오는 천사가 ‘인간으로 오신 예수’를 전하는 것이 아니며, 그 천사가 전하는 또다른 기별이나 가르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 천사가 늦은비를 부르는 기별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늦은비는 셋째 천사의 기별을 깨닫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거룩하게 변화된 사람들에게 충만히 임했다. 그러므로 그 늦은비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들이 나가서 외치는 것이 계시록 18장 천사의 운동인 것이다. 계시록 18장 천사가 전하는 복음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 무너진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최후의 경고, 짐승과 그의 우상에 대하여 외치는 최후의 경고인 것이다.

그러므로 손계문 목사가 말하듯이, “넷째 천사”가 전하는 기별이 늦은비를 부르는 가르침이고 그것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교리는 맞지않는 이론이다.  



[3] 셋째 천사의 복음이 불완전하다는 주장에 대한 검토

< 성육신 책51쪽>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그리스도의 의의 복음이다. 그런데 셋째 천사가 의의 결과인 계명에 대한 순종만 강조하고, 그 의를 이루는 “영광의 소망”인 죄 있는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비밀의 복음에 소홀하므로, 하나님께서는 계시록 18장의 천사를 통해 “사람의 아들인 그리스도”라는 의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

< 검토와 반증 >

저자는 “셋째 천사가 의의 결과인 계명에 대한 순종만 강조하고, 그 의를 이루는 “영광의 소망”인 죄 있는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비밀의 복음에 소홀하므로”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계시록 18장의 천사를 통해” “‘사람의 아들인 그리스도’라는 의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셋째 천사나 셋째 천사의 기별이 소홀했거나 실패했다는 표현을 한 군데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의 기별이 불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성경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나 사역이 미흡하여 넷째 천사를 통해 “사람의 아들인 그리스도”라는 의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셋째 천사의 기별과 일이 큰 영광과 능력으로 완수된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손계문 목사가 “계명에 대한 순종만 강조하고 죄 있는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비밀의 복음에 소홀”했다고 지적한 셋째 천사는 과연 누구인가? 저자는 그 셋째 천사를 누구라고 지목하고 있는 것인가? 왜 성경에도 없는 “셋째 천사”의 사역이 소홀하여 “실패”했다는 인상을 주는 해석과 표현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귀결을 가져오게 되는가?

그것은 저자가 “셋째 천사”라고 지목하는, 지나간 시대의 어떤 사람이나 어떤 종이나 기별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부족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 넷째 천사인 저자와 저자 자신이 전하는 기별 “사람의 아들 예수”라는 기별을 통해서 완전한 의의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나간 시대에는 실패했고, 지금 자신이 전하는 기별이 완전한 것이고, 이 기별을 믿어야 늦은비가 올 수 있다는 자신의 이론을 합리화 시키려는 의도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의 이런 이론은 검증되지 않은 사적인 해석과 성경과 영감의 글에 맞지 않는 이상한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이설의 시작은 성경의 가르침 대신 자신을 높이고 자신의 이론을 주창하는 데서 온다. 저자는 은연중에 자신의 시대가 넷째 천사의 시대며, 자신의 기별이 늦은비를 불러오는 기별이라는 점을 과하게 부각시키려다가 엉뚱한 이론을 펴는 우를 범하게 된 것 같다. 

[4] 세천사가 일을 끝마치지 못했다는 주장에 대한 검토

< 성육신 책 63쪽 >

[ “추수를 끝마쳐야 하는데, 세천사로는 일이 끝나지 않게 되자 주인이 넷째 천사를 불러온다. 이 장면을 우리는 마태복음 20장 포도원의 비유에서 본 적이 있다. ]

< 검토와 반증 >

추수를 끝마쳐야 하는데, 세천사로는 일이 끝나지 않게 되자 주인이 넷째 천사를 불러온다.”라는 해석과 적용은 성경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 없는 적용이다. 세천사로는 추수가 끝나지 않는다는 해석은 완전히 빗나간 해석이다. 세 천사의 복음과 기별과 일은 완전한 것이고, 셋째 천사의 기별과 일 또한 완전한 것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추수하고 하나님의 인을 치는 기별이다. 최후의 경고를 바벨론을 향하여 외치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알곡을 창고에 들이는 기별과 일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셋째 천사의 일이 완전하게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경과 영감의 글에서 셋째 천사의 하는 일이 불완전하거나 다 마쳐지지 못했다는 표현은 어디 한 군데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세천사로는 일이 끝나지 않아서 넷째 천사를 불러온다는 저자의 해석은 성경의 가르침과 빗나간 해석이다. 넷째 천사를 부각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이론인 것이다.

[5] 넷째 천사와 사중 복음에 대한 검토

< 성육신 51쪽 >

[ 계시록 18장의 천사를 통해 “사람의 아들인 그리스도”라는 의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 70쪽 – [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의의 복음은 세천사의 복음과 함께 연합하여 4중 복음으로 전파된다 ]

< 검토와 반증 >

손계문 목사사 쓴 성육신 책에서는 넷째 천사의 기별 혹은 사중 복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세천사의 기별 혹은 삼중 기별 외에 다른 기별이 존재하지 않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사중기별이라는 말은 성경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 없는 주제이며, 지극히 사적인 예언 해석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계시록 18장 천사의 기별은 둘째천사의 기별과 같은 기별이고 셋째 천사의 기별에 힘을 주는 기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성육신(p. 70) 책에서는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따로 존재하며 그것이 계시록 18장의 천사(성육신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넷째 천사)의 기별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계시록 18장의 “다른 천사”는 다른 기별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셋째 천사의 기별을 더욱 힘있게 증거하기 위해 온다. 마지막 때에 더욱 강력하게 큰 능력으로 전파되는 기별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천사의 기별 외에 다른 기별을 주신 적이 없으시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 예수”라는 넷째 천사의  기별이 따로 있거나 사중 복음이란 말은 성경에 없는 이론이다.



[6] 시대적 구분 도표에 나타난 오류 검토

timeline

< 검토와 반증 >

성육신 책에 나오는 이 도표는 저자가 마음대로 만들어 놓은 “시대적 구분” 이다. 도표를 보면, AD 31년이 첫째와 둘째 천사의 복음이 전해진 시기라고 되어있다. AD 31년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복음을 전파하신 때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전파하신 복음을 첫째 천사와 둘째 천사의 복음이 전파된 시기로 말하는 것은 매우 부적당하고 틀린 적용이다.

첫째 천사의 복음은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기별이다. 여기서 “심판 하실 시간”이란, 2300일 예언이 끝나는 시점인 1844년에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심판을 시작하신 사실을 말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고 하신 때는 다니엘의 2300일 예언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 가 일어나는 때이지, 첫째 천사의 기별이 전해지는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저자가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싶은 사중복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구태여 성경이 말하지 않는 시대를 마음대로 구분해 놓고, 첫째 천사의 기별이 AD 31년에 전해졌다는 적용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의견과 해석을 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는 것이 되므로 매우 주의해야 하는 일이다. 예언을 공부한 사람들은 첫째 천사의 기별은 반드시 말세의 때, 마지막 대에 전파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저자 마음대로 AD 1517년에 첫째+둘째+셋째 천사의 삼중복음이 전해진 시기라고 분류를 해놓았는데, 1517년이라는 때의 해석은 성경이나 영감의 글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 없다. AD 1517년이란 년도의 출처가 어디인가? 아마도 저자는 자신의 “열 한시 교회”를 세우고 “11시 일꾼”을 부르는 사역을  종교개혁운동의 일환이라고 강조하고 싶은 마음에,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종교개혁을 시작한 1517년을 집어넣은 것 같다. 그러나 이 적용은 전혀 성서적이지 않고 예언 해석에 맞지 않는 적용이다. 1517년의 적용은 성경의 예언 어디에고 나오지 않는 이상한 해석이다.

계속 이어지는 저자의 AD 1843년 AD1948년 넷째 천사의 사중복음이라는 시기의 적용과 해석도 두 말할 나위 없이 극히 사적인 잘못된 해석이다.

[7] 넷째 천사와 11시 일꾼에 대한 주장 검토

< 성육신 책 69쪽 >

[ “11시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는가? 11시 일꾼의 사명을 가지고 있는가? ]

71쪽 – [ 11시에 부름을 받은 계시록 18장의 천사는 진리를 회복시키는 운동을 하는 무리다 ]


< 검토와 반증 >

저자는 “11시에 부름을 받은 계시록 18장의 천사는 진리를 회복시키는 운동을 하는 무리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계시록 18장의 천사가 11시에 부름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성경이나 영감의 글에 없으며, 그 천사가 진리를 회복시킨다는 사실 또한 이상한 이론이다. 셋째 천사와 그 기별에 의해서 진리를 회복하는 일은 벌써 일어났다.  


성육신 책 70쪽, 표2와 표3에서는 현재를 11시 일꾼의 시기, 넷째 천사의 사중복음 시대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복음을 늦게 받아들인 특정한 집단이 11시 일꾼이고, 그 11시 일꾼이 넷째 천사라는 가르침은 성경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요한 계시록 18장은 셋째천사에 힘을 더해주는 늦은비 성령의 역사이며, 또한 셋째 천사가 권세와 영광을 얻어서 선포하는 큰 외침이다.


* 손계문 목사의 문제는 “넷째 천사”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셋째 천사의 기별만으로는 부족해서 넷째 천사가 와서 “사람의 아들 예수”라는 기별을 전해야 하는데, 이 기별이 늦은비를 부르는 기별이라는 맞지않는 해석을 붙이는 데에 있다. 저자는 세 천사의 기별 외에 성경에도 없는 넷째 천사의 복음인 넷째 복음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모든 영혼들의 운명은 사중복음인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를 깨닫는데 있다고 주장하는 데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람의 아들 예수, 성육신의 기별은 벌써 셋째 천사의 기별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하자.


* 다음의 손계문 목사가 만들어 놓은 문장들은 성경과 배치되는 적용과 해석이다.   

“마지막 세대에 전해질 복음 = 늦은비 빗방울 =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 = 영원한복음 = 사중복음”

“사중(四中)기별” “넷째천사복음”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를 깨닫는 성육신”

“천자인자(天子人子) 인자천자(人子(天子), 늦은비 빗방울”

첫째+둘째+셋째기별+넷째복음(사중복음=늦은 비=사람의 아들 그리스도)

이 모든 캐치프래이즈들은 극히 사적인 해석과 주장임을 알 수 있다.

** 그러므로 이 주장들의 결론은, 저자와 11시 교회는 세천사가 끝내지 못한 추수를 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넷째 천사라는 결론이 나오며, 자신의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늦은비를 받지 못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8] 성육신 책의 “포도원 비유의 잘못된 해석” 검토

<  성육신 책70쪽 >

[ 포도원 비유의 예언적 적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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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토와 반증 >


1)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오해

위의 도표와 같은 이중적 적용과 사중 복음에 대한 이론을 만들게 된 것은 마태복음 20장에 나온 포도원의 비유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포도원의 비유에 나온 네 번의 일꾼을 부르신 네번의 시간(3시, 6시, 9시, 11시)에 꿰어 맞추려고 하다 보니 성경과 증언에 없는 시대적 이중 적용과 사중 복음이란 이론이 생겨난 것이다.

먼저 마태복음 20장 1-16절에 나온 포도원에 대한 비유는 초대교회부터 마지막 때까지의 하나님의 교회(시대적 기별)에 대한 예언인가? 아니면 은혜의 보상에 대한 교훈적 비유인가?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이들을 열한시의 일꾼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마지막 시대 그분의 사업을 마치는 이들이기도 하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열한시 일꾼의 정신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대적인 구분을 떠나서 포도원의 비유에서 열한 시 일꾼의 정신을 가진 이들을 11시 일꾼인 것이다. 위 도표에서 언급한 포도원의 비유를 일꾼들을 부른 시간에 따라 4시대로 나눈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에 세천사의 기별에 있지도 않은 넷째 천사의 기별을 억지로 맞춰 넣은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열한 시 일꾼이 네번째로 부름 받은 일꾼이기에 온 땅을 환하게 하는 넷째 천사의 기별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올바른 적용이 아니다. 


2) 11시 일꾼의 적용

성육신 70페이지에 있는 도표를 참고하여 내용을 요약하면, 셋째 천사 즉 9시 일꾼으로 표상된 2300주야 이후의 무리들이 그 사업을 끝마치지 못하여 11시 일꾼인 넷째 천사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자신들이 넷째 천사요 11시 일꾼이며 그것이 그들의 정체성이라고 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부분적으로 틀리다.

손계문 목사는 성육신 책에서, 9시에 일하는 일꾼들을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사람들로, 11시에 일하는 일꾼들을 넷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사람들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영감의 글에는 넷째 천사라는 말이 없을 뿐 아니라, 11시가 언제부터 시작되는 지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없다.

또한 계시록 18장의 천사를 11시 일꾼들, 혹은 늦은비 운동을 하는 인간 기별자들, 혹은 무리라고 성육신 책에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무리들과는 시대와 기별이 다른 무리라고 강조하므로, 성육신이라는 책을 통해 새로운 시대, 새로운 단체, 새로운 교회 혹은 조직을 위한 교리를 만들었다는 오해의 소지를 갖게 하였다.


생애의 빛이 손계문 목사와 분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3

손계문 목사의 빗나간 설교 멜기세덱

손계문 목사는2017년 11월 “멜기세덱의 정체와 히브리서의 3가지 목적”이라는 설교에서 멜기세덱을 사람의 반차를 좇은 인간이라고 풀었으며, 야설을 인용하면서 멜기세덱을 노아의 아들 “셈”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설교를 듣고 생애의 빛을 후원하는 많은 성도들이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특히 강병국 목사님이 멜기세덱을 성령님이라고 지금까지 가르친 것을 뒤집는 논리였기에 더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도들이 문의를 하자, 손계문 목사 측은 강병국 목사님께서 멜기세덱에 대해 말씀하신 설교가 거짓되며 그 증명을 신뢰할 수 없다는 증거를 세 가지로 증명하며 카페에 올렸습니다.

* 멜기세덱 인간화의 위험성

생애의 빛은 지금까지 가장 성경적이고 인간의 사견이 섞이지 않은 진리만을 전해왔습니다. 그동안 월간지와 책자들과 말씀을 통해 기독교에 들어온 바벨론의 오류를 지적하고 훼파된 복음으로부터 회복된 완전한 복음만을 전해왔습니다.

사교가 아닌 이상, 보통 기독교에서도 멜기세덱 부분은 함부로 인간적인 논리나 해석을 섞어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 부분은 인간이 함부로 논할 수 없는 신비한 주제이므로 우리는 그 주제를 다룰 때에 각별한 주의를 요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는 멜기세덱을 인간 제사장이 아닌 신성을 가진 제사장으로 해석합니다. 생애의 빛의 창설자이신 강병국 목사님께서도 가장 합리적이고 정확한 논리로 멜기세덱을 성령 하나님으로 적용하셨습니다.

멜기세덱의 정체와 반차가 하나님의 표징인가 아니면 인간의 표징인가는 신앙적으로 또한 교리적으로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한국의 이단의 대부분이 멜기세덱을 인간화하여 자신들의 교리를 전하는데 합리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인간으로 해석함으로 인해 각종 이설과 이단들이 생기게 되어,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않거나, 교주(敎主)의 위치가 된 사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일들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그 일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일입니다.

* 멜기세덱 인간화 교리와 사교들

개인적으로 성경의 교리를 마구 해석하는 종교들을 보면 대부분 사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종교에서는 특히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아주 단순한 진리를 인간화시켜 놓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사교에는 멜기세덱을 인간 제사장으로 믿으며, 계시를 본다고 하는 인간 교주 멜기세덱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는데, 별 큰 문제같아 보이지 않는 그 작은 하나의 차이가 결국에 가서는 끝이 다르기 때문에 이설을 전하는 이단(異端)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여호와의 증인교와 신천지 등도 멜기세덱을 인간으로 믿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을 인간이라고 믿는 사교들의 예

○  하나님의 교회의 주장: “멜기세덱은 안상홍이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멜기세덱을 예수님으로 귀결짓기 힘든 이유는, 첫째, 멜기세덱은     족보가 없고, 둘째, 아비, 어미가 안계셔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족보는 이스라엘 족보를 뜻하는데 예수님은 마태복음 1장부터 보시면 족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아비, 어미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의미하며 예수님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님 뜻을 행하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멜기세덱은 하나님을 안 믿는 부모님 슬하에 태어나셔야 하며 족보없는 이방나라에서부터 오셔야 된다”

“또한 멜기세덱의 증거가 되는 유월절 떡과 포도주로 영생의 축복을 주셔야 하며 이 모든 조건을 갖추시고 등장하시는 그분이 바로 진정한 멜기세덱이시자, 생명의 끝도 시작도 없으신 하나님이신데, 이러한 성경과 선지자들의 모든 증거를 가지고 오신 분은 안상홍님이다.” 그래서 그들은 떡과 포도주를 마시고 절기를 지킵니다.  

○  멜기세덱교 새예루살렘 : 재림하는 새 멜기세덱을 기다림.

그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예수의 인도를 받던 신약교회 성도들의 유랑생활은 멜기세덱으로 인해서 끝이 나게 될 것이며, 멜기세덱의 신원의 시대로 인해서 그 얻으리라 약속하여 주신 마지막 기업을 얻게 되리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제 멜기세덱은 여호수아가 되어서 예수의 인도하시던 그 남은 교회들과 성도들을 떠맡게 될 것이며, 그 은혜시대에 얻을 것이라 맹세하여 놓으신 성령의 기업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다.”

○  여호와증인의 멜기세덱 교리

그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왜 멜기세덱의 방식을 따라 제사장이 되십니까?

아브라함의 후손이 약속의 땅을 상속받기 오래전에, 살렘의 왕 멜기세덱은 “가장 높으신 하느님의 제사장”으로 일했습니다.

멜기세덱은 그렇게 하도록 여호와로부터 직접 임명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그는 기록상 전임자나 후임자가 없었기 때문에 ‘영구적인 제사장’으로 불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히브리어 성경에 언급된 사람들 가운데서 왕 겸 제사장으로 일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여호와로부터 직접 제사장으로 임명되며 “멜기세덱의 방식을 따라 영원히 제사장”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    “멜기세덱은 ○○○이다”라고 믿는 사람들;

오늘의 진리의 “새 말씀“을 가지고 천국의 문을 열은 자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오시는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이다. 저는 이 분의 말씀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증인으로서 여러분에게 “실존 예수님”을 소개합니다”라고 주장하며 믿습니다.


○    그 외 오늘날의 목사들을 특별한 제사장직으로 믿으며 그    권위가 성경보다 최고의 권위라고 추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참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일부교단에서는 멜기세덱은 아브라함 계열의 백성이 아니여서 현재 중동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할 특별한 이방민족을 상징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셈의 족속중 동방에서 제천의식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욕단계열인 한국인이 멜기세댁의 영적후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멜기세덱 복음전파”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작게 보이는 단어하나, 말씀 하나가 잘못 해석되어 교리로 받아지게 되면서 사람들의 신앙이 왜곡되어 가는 모습을 많이 목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애의 빛은 손계문 목사의 멜기세덱이 셈이라는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절대로 “셈”이 될 수 없는 이유들

1. “평강의 왕”, “의의 왕”은 하나님과 신성의 특성임

* 창 14:18 –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 시 110:4 –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 히 7: 2 –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 사 9:6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2. 하나님의 제사장이심

* 히 7:3 –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셈의 족보는 창세기 10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 창 10:1 –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 창 11:10, 11 –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셈의 족보는 확실하게 나와있고, 그는 계산해보면 600세 되는 해에 죽었음이 증명됩니다.

* 히 7:17 –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예수님을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고 히브리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셔서 지상에 계실 때는 인간으로 사셨지만, 하늘로 승천 하셔서는 다시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대제사장으로의  임무를 시작 하셨습니다. 히브리서는 하늘 서소에서 봉사하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만일 멜기세덱을 “셈”이라고 한다면, 죄의 역사가 1000년이 지난 후에 죄로 물든 인간 셈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은 언어도단이고 참람된 표현입니다.

손계문 목사는 멜기세덱을 인간 셈이라고 말하므로써, 당시 아브라함과 동 시대에 살았다는 이유와 노아의 아들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셈을 멜기세덱으로 둔갑 시키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나타나신 구약의 예

성경 창세기에도 하나님께서 그리고 천사들이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셔서 사람과 함께 거하시고 잡수시고 대화 나눈 예가 나옵니다.

* 창세기 18장1~33절: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대화 하시고 식사도 하심

* 창세기 19장 1~23절: 두 천사가 사람의 모양으로 롯의 집에 방문 해서 롯의 식구들을 불의 멸망으로부터 구해줌.

* 창세기 21장 17절: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 사사기 6장 12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4. 성경은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라고 함

* 히 5:10~11 –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왜 설명하기 어렵다고 사도바울이 말했을까요? 만일 멜기세덱이 “셈”이었다면 그냥 셈으로 부르면 되는데 왜 설명하기 어렵다는 표현을 썼을까요? 그 이유는 멜기세덱은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의 영역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 하다”는 의미를 살펴보면 답이 나오는데, “방불하다”는 “비슷하다”, “닮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비슷하다는 뜻이고 동격이라는 뜻이 됩니다. 즉 예수님과 닮은 분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병국 목사님은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한 분이기 때문에 성령님이라고 해석하셨던 것이며, 영감의 글은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신분을 회복 하시고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사역을 하실 때에 예수님께서 죄된 인간 셈의 반차를 쫓아 하늘 대제사장의 임무를 시작 하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분께서 대제사장의 임무를 시작 하실 때는 오직 성령 하나님의 반차를 쫓아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 히 6:19,20 –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 앞의 연구를 통해 멜기세덱을 인간으로 해석하는 것의 위험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멜기세덱 제사장을 인간화(人間化)시킴으로 해서 성경의 진리가 왜곡되고 다수의 이설(異說)과 이단(異端)교단이 출현하게 되는 위험성은 현재도 농후합니다. 기본적인 기독교 교리상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또 다른 모습이며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애의 빛에서는 손계문 목사의 멜기세덱의 가르침에 대해 동의할 수가 없으며, 더구나 그 주장이 외경과 야설을 이용한 것이어서 더욱 신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 마치면서 >


생애의 빛은 그동안 가장 성서적이고 균형진 완전한 복음을 전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질되지 않은 완전한 복음을 전할 것을 여러분들께 약속드립니다.

생애의 빛은 함께 진리의 복음에 동참하신 여러분들과 함께 이 진리를 지켜나갈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마지막 여자의 남은 무리를 준비시키고 임박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사명을 다 완수할 때까지 쉬지 않고 변함없이 진리의 좁은 길을 달려갈 것입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진리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